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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남성 2명 서해로 귀순

    남북 정상회담 이후 급속하면서도 순탄하게 진행되던 남북관계 개선 기류에 ‘이상신호’가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북한 주민 2명이 귀순해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탈북 종업원들의 송환을 요구하고 나선 북한이 이번 귀순 사건에 어떻게 반응할지 주목된다. 20일 군 등 당국에 따르면 40대 북한 남성 2명이 전날 새벽 3시 30분쯤 작은 목선을 타고 서해 최북단 백령도 인근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귀순했다. 해군 고속정이 해당 선박을 발견할 당시 부근 해역은 달빛조차 없이 칠흑처럼 어두웠고, 파도는 비교적 높게 일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선박에 타고 있던 40대 북한 남성 2명이 분명하게 귀순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당초 귀순자 중 1명이 북한군 소좌(소령)로 알려졌으나, 관계 기관의 조사 결과 2명 모두 민간인으로 확인됐다. 귀순자의 진술 또는 복장 때문에 한때 북한군 소좌가 귀순했다고 보고되는 혼선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일부 귀순자들이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신분을 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점에서 비슷한 사례로 보인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서해로 귀순한 북한인, 장교 아닌 민간인으로 드러나

    서해로 귀순한 북한인, 장교 아닌 민간인으로 드러나

    19일 새벽 목선을 타고 서해 상에서 귀순한 2명 중 1명은 우리 군의 소령에 해당하는 북한군 소좌로 알려졌으나 조사 결과 민간인으로 드러났다.이날 새벽 인천 옹진군 백령도 북쪽 해상에서 작은 목선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오자 우리 해군 고속정이 출동해 목선에 타고 있던 북한 주민 2명의 신병을 확보했다. 이들은 우리 해군과 최초 접촉 당시 귀순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귀순자 2명의 신병은 해군에서 해경으로 인도됐고, 이 과정에서 1명의 귀순자가 자신이 북한군 소좌라고 진술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군 당국 등 관련 기관에도 초기에는 북한군 소좌가 귀순했다고 보고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관계 당국이 귀순자 2명에 대한 본격 조사를 벌인 결과, 둘 다 민간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이날 오후 귀순자 2명에 대해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이고 현재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귀순자는 자신의 신분을 과장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혀 귀순자의 신분을 둘러싼 혼선이 귀순자의 진술 때문임을 시사했다. 현재 관계 당국은 귀순자 2명의 귀순 경위 및 동기와 함께 정확한 신분과 직업을 조사 중이다. 이 소식통은 “한때 북한군 소좌로 알려졌던 귀순자는 과거 간부로 군 복무를 했거나 군무원 신분이었을 가능성도 있어 이에 대한 조사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오늘 새벽 북한군 장교 1명·주민 1명 서해상에서 귀순”

    “오늘 새벽 북한군 장교 1명·주민 1명 서해상에서 귀순”

    북한군 장교 1명과 주민 1명이 19일 새벽 배를 타고 서해 상에서 귀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소식통은 이날 “인천 옹진군 백령도 북쪽 해상에서 소형 배가 포착돼 군 고속정이 접근했다”며 “배에는 북한 장교 1명과 주민 1명이 타고 있었고,이들은 귀순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북한 장교의 계급은 소좌(소령)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군 장교가 접경지역에서 남쪽으로 귀순한 것은 2008년 4월 당시 북한 보위부 소속 이철호 중위가 서부전선 판문점 인근 우리 군 GP(전방초소)로 귀순한 이후 10년 만이다. 접경지역을 통한 북한 군인의 귀순은 2000년 이후 이번이 14번째다. 서해 상으로 북한 주민이 귀순한 것은 지난해 8월 북한 주민 1명이 서해 교동도로 넘어와 귀순한 이후 9개월 만이다. 귀순자 2명의 신병은 현재 해경이 확보하고 있으며, 조만간 관계기관에서 이들의 귀순 동기 등을 조사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북한군 장교와 주민의 귀순이 올해 들어 훈풍을 타다가 최근 숨 고르기에 들어간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 종업원 기획 탈북 의혹… 민변, 이병호 고발

    北 종업원 기획 탈북 의혹… 민변, 이병호 고발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국가정보원이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들의 집단 탈북을 기획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이병호 당시 국정원장이 국정원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됐다.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 탈북 의혹사건 대응 태스크포스(TF)’는 14일 이 전 원장과 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 국정원 전 해외정보팀장 정모씨 등에 대한 고발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당초 민변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병기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도 고발하겠다고 밝혔지만 “범죄 증거가 좀더 명확하게 드러날 때 추가 고발할 것”이라며 이번 고발 대상에서는 일단 제외했다. 민변은 고발장에서 “이 사건은 중국 저장성 류경식당 지배인 허강일이 국정원의 지시를 받고 종업원 12명에게 다른 식당으로 이사 간다는 명목으로 말레이시아 한국대사관으로 이동시킨 뒤 ‘이제 북한으로 돌아가면 죽는다’고 협박해 강제로 한국으로 유인, 납치한 사건”이라며 “특히 집단 탈북의 동기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의 선거에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종업원들과 그 부모들에게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로 강제 격리되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인권침해 범죄”라며 “검찰은 철저히 수사해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피해자들이 원하는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발인인 장경욱 변호사 등 9명은 종업원 12명의 부모로부터 종업원들의 모든 법률상 대리권을 위임받은 변호사들이라고 밝혔다. 2016년 4월 박근혜 정부는 중국 북한식당에서 일하던 여종업원 12명이 자유의사로 집단 탈북했다고 밝혔다.하지만 정부가 이들의 탈북을 공개한 시점이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엿새 앞둔 때여서 일각에서는 ‘기획 탈북’ 의혹이 있었다. 더군다나 당시 통일부는 이례적으로 이들의 귀순 하루 만인 2016년 4월 8일 집단 탈북 사실을 발표해 의혹이 더욱 커졌다. 최근 한 방송을 통해 기획 탈북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방송에 출연한 식당 지배인 허씨는 본인과 부인만 귀순하기로 했으나 국정원 직원이 ‘종업원들을 다 데리고 들어오라’고 지시했고 이에 따라 종업원들을 협박해 함께 탈북했다고 주장했다. 방송에서 일부 종업원은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통일부 “북한 여종업원 집단 탈북 사실관계 확인 필요하다”

    통일부 “북한 여종업원 집단 탈북 사실관계 확인 필요하다”

    “당시 면담 불충분, 파악 한계 …북 송환 면밀히 검토”통일부는 11일 “집단 탈북 종업원 문제와 관련해 입국 경위, 자유의사 등에 대한 지배인과 일부 종업원의 새로운 주장이 있었다”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지난 2016년 4월 여종업원의 집단 탈북과 한국행 과정에 의혹을 제기한 한 방송사의 보도와 관련한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전날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지난 2016년 4월7일 중국 류경식당에서 일하다 귀순한 지배인과 종업원 13명 가운데 지배인 허강일씨를 인터뷰하고 이들이 자유의지로 탈북한 것이 아니라고 보도했다. 정부는 당시 이들이 자유의사로 집단 탈북해 입국했다고 밝혔으나 허씨는 국회의원 선거를 엿새 앞둔 시점에 이뤄진 기획 탈북이었다고 주장했다. 백 대변인은 “통일부가 탈북민 정착 지원과 관련한 주무부서로서 필요한 경우 정착상황 등에 대해 파악하고 있고 그런 차원에서 몇 차례 (여종업원들) 면담을 시도했는데 당사자들이 면담을 원치 않아 파악에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관계기관에서 통보해주는 내용을 토대로 해서 (관련 내용을) 판단해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여종업원들이 북으로 송환을 원하면 돌려보낼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어제 방송과 관련해 여러 가지 내용이 있고 그런 부분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정부는 그동안 2016년 4월 중국의 북한 식당에서 일하던 여종업원 12명이 자유의사로 집단 탈북해 입국했다고 밝혔다. 당시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엿새 앞둔 시점이어서 일각에서 ‘기획 탈북’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휴전선 도발과 철책

    [그때의 사회면] 휴전선 도발과 철책

    1960년대 초반까지 휴전선에는 철책이 없었다. 남방·북방한계선을 경계로 남북군이 경계를 서고 있었을 뿐이다. 철책이 없었기에 북한군이나 공비가 남방한계선을 넘어 우리 지역으로 침투해 도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휴전선을 넘어 북한군이 귀순하거나 반대로 월북하는 일도 자주 발생했다.군대에 다녀온 장년층이 군복무 중 들었던 “북한군이 내려와 우리 병사들을 죽이고 귀를 베어 갔다”는 증언도 틀린 게 아니다. 신문에 전부는 아니겠지만 북한군의 도발 사실이 보도됐다. 1976년 8월 18일 발생한 북한군의 판문점 도끼 만행은 철책선 설치 이후에 발생한 사건이지만 철책선이 없을 때는 휴전선은 전장과 큰 차이가 없었다. 북한의 도발은 소위 4대 군사노선을 채택한 후인 1960년대 들어 본격화됐다. 1962년 7월 14일 북한의 정찰부장이 직접 북한군을 지휘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내려와 장병 4명을 납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해 11월 20일 밤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유엔군 감시 초소에 북한군이 수류탄을 던쳐 미군 병사 1명이 사망했다. 유엔군 초소를 공격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이듬해 7월 29일에도 미군 2명이 북한군의 기습을 받고 사망했다(동아일보 1963년 7월 31일자). 우리 쪽에서 응사는 당연했고 비무장지대 주변에서 교전이 수시로 벌어져 전쟁을 방불케 하는 살벌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휴전선에 목책을 설치하기 시작한 때는 1964년이다. 당시 6군단장 한신 중장이 남방한계선 일반전초(GOP)에 목책을 설치했다. 휴전선 철책의 효시다. 그러나 전 전선에 설치되지는 못해 침투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북한군의 도발은 더 격화됐다. 1966년 11월 2일 서부전선에서 한ㆍ미 장병 6명이 북한군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존슨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고 떠난 직후였다. 1967년 4월 12일에는 중동부전선에 북한군 소대 병력이 침입한, 휴전 이후 최대의 침입 사건이 일어났다. 같은 해 육군 21사단에 북한군이 침투해 모 연대 부연대장 홍두표 중령의 목을 베어 갔다고 전해지고 있다. 북한군 소행이 확실하지만 목을 베어 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도발이 심해지자 휴전선 155마일 전 전선에 철책 설치 계획이 세워졌다. 1967년 1야전군사령관 서종철 대장이 주도했다. 미군 지원으로 난공사 끝에 2중·3중 철책이 설치됐다. 그러나 초기의 철책은 몹시 허술해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철책을 자르고 침투했다. 붙잡힌 김신조씨가 현장검증에서 발로 철책을 찼더니 뻥 뚫렸다. 철망을 자르고 표시나지 않게 붙여 놓은 줄 군이 몰랐던 것이다. 사진은 1970년 1월 휴전선 철책 근무를 보도한 기사(경향신문 1970년 1월 7일자). 손성진 논설주간 sonsj@seoul.co.kr
  • “北 기생충 감염은 쉽게 해결…저출산 고령화가 더 큰 문제”

    “北 기생충 감염은 쉽게 해결…저출산 고령화가 더 큰 문제”

    北 출산율 1.94명 모자보건 열악 정부 차원의 총괄기구 신설해야“북한 주민의 기생충 감염은 화학비료 대신 인분을 사용해 발생한 문제로 산업 인프라가 개선되면 약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다.” 서울대 통일의학센터의 박상민 가정의학과 교수는 지난 25일 북한 내 감염병의 심각성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11월 귀순한 북한 병사에게서 기생충과 B형 간염 등이 발견됐지만, 그보다는 북한도 저출산 고령화를 겪고 있어 남북의 공동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유엔이 집계한 북한의 합계출산율(2015년 기준)은 1.94명이다.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비슷한 저개발국 평균 4.74명과 비교해 한참 낮다. 모자보건 수준도 열악하다. 서울대 통일의학센터가 출간한 ‘통일 의료-남북한 보건의료 협력과 통합’에 따르면 임신이나 분만 중 사망하는 모성 사망비가 2015년 기준 북한이 인구 10만명당 82명이다. 남한(11명)의 7배 이상이다. 5세 미만 아동 사망률도 인구 1000명당 25명으로 남한(3명)의 8배를 넘는다. 박 교수는 “2005년 이후 북한의 영유아나 모자보건 지표가 개선되고 있지 않고 있으며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0%를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령화로 인해 향후 만성질환이나 심혈관계 질환, 암을 겪는 주민들이 늘어나 국가에 부담이 될 게 분명한데 북한 내부에선 질병 예방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북한이 겪고 있는 다양한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해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70년간 벌어진 의료 격차를 개선하려면 통일부, 외교부,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가 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남북 공동 보건의료 용어사전과 전문인력양성 커리큘럼, 연구개발(R&D) 등 남북 보건의료 협력을 기획하고 총괄할 수 있는 기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 의료협력을 통해 박 교수는 북한 내 높은 감염률을 보이는 B형 간염도 성공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봤다. 박 교수는 “과거 한국도 인구의 10% 이상이 B형 간염을 앓았지만, 출산 과정에서 아이에게 전염되는 수직감염을 막아 1% 미만으로 줄였다”면서 “북한 의료진에 의료기술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북한의 B형 간염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 차원의 TF에서 통일 후 우리의 건강보험제도와 북한의 사회보험제도를 적절히 융합하는 방안 또한 설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다시 보는 비무장지대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다시 보는 비무장지대

    “남북 정상의 만찬 식탁에 비무장지대 산나물로 만든 비빔밥이 오른다”는 뉴스를 듣고 필자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그 지역을 떠올렸다. 어느 추운 겨울 철책 근무를 하며 밤마다 그쪽을 바라본 경험이 있음에도 북한 병사의 귀순 소식이 있을 때만 옛날이야기처럼 어슴푸레 잠시 떠올려졌던 곳이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이번 남북 정상회담으로 다시 떠올렸을 뿐 아니라 그것이 가진 가치를 깊게 생각해 보는 여유를 갖게 됐다. 65년 전 남북이 휴전을 하고 군사분계선 양쪽으로 2㎞씩 물러나면서 형성된 비무장지대. 천백년 전쯤 그곳에는 태봉의 도성이 있었다. 901년 고구려의 부흥을 내세우며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는 911년 국호를 태봉으로 바꾼다. 고려시대부터 천여년 동안 변화 많은 지형에 적응해 곳곳에 마을이 조성된 그 지역은 개경과 남경, 곧 개성과 서울을 연결하는 문화의 허리 역할을 했다. 그러던 문화와 평화의 지역이 1950년 6월부터 3년 1개월 동안 치열한 전쟁터가 돼 장구한 세월 동안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든 경관은 무참히 파괴됐다. 그리고 1953년 7월부터는 일체의 인간 거주가 금지됐다. 그렇게 반전을 거듭해 온 그곳이 다시 한번 극적인 전환을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머지않아 비무장지대가 맞이할 대전환은 과연 무엇일까. 필자는 비무장지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충분한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다. 세계유산의 종류에는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복합유산이 있다. 문화유산은 기념물·건물군·유적지를 대상으로 한다. 기념물에는 건축물, 기념비적 조각과 회화, 고고학적 성격의 유물과 구조물, 금석문, 혈거지 등이 해당하고, 건물군은 독립되거나 연결된 건물들의 군집을 뜻한다. 유적지는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나 자연과 사람의 합작품을 말하는데, 고고학적 유적 지역도 여기에 해당한다. 한편 자연유산은 물리적·생물학적 생성물 또는 이러한 생성물의 집합체로 구성된 자연의 특징물, 지질학적·지형학적 생성물,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 종의 서식지 등을 대상으로 한다. 복합유산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범주에 중복해서 해당하는 유산이 대상이다. 그 어느 것이든 유산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고 인정받아야 세계유산이 될 수 있다. 그럼 비무장지대는 세계유산의 어느 부류에 해당할까. 먼저 태봉도성이 있던 그곳은 거대한 미발굴 유적지다. 남북한이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쳐 발굴조사와 연구를 온전히 이루어 내면 태봉도성은 한반도에서 전모가 밝혀진 가장 오래된 도시가 될 것이다. 또한 65년 동안 지역의 문화가 동결됨으로써 비무장지대는 한반도 중부지방의 문화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곳은 문화유산으로서 세계유산에 등재될 잠재력이 있다. 전쟁이 멈추자 거주할 수 없는 곳이 된 비무장지대는 자연의 힘, 특히 스스로 치유하는 힘을 확인할 수 있는 둘도 없는 지역이다. 그 땅은 재자연화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속도로 어떤 양상으로 일어나는지 알려 줄 수 있는 매우 드문 곳이다. 인간의 간섭과 개입이 상당 기간 중단됐기 때문에 동식물의 서식지가 풍부해지고 생태계가 복원됐을 가능성이 크다. 환경부가 2003년과 2016년에 발간한 비무장지대 일원의 생물다양성 관련 보고서를 비교해 보면 식물이 1597종에서 1854종으로, 조류가 201종에서 266종으로 증가하는 등 생물다양성이 계속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지역에 사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만도 16종인데, 두루미, 사향노루 등은 우리나라에서 비무장지대 일원에서만 살고 있다. 따라서 자연유산으로서 그곳이 지닌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에 모두 해당할 때 그 유산을 복합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다. 그러니 비무장지대는 어느 종류의 세계유산도 될 가능성이 있는 귀중한 자산이다. 비무장지대는 이 땅에 사는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전쟁과 분단이 안겨 준 슬픈 유산이다. 그러나 그곳을 온 인류가 전쟁과 평화, 자연과 문화, 거주와 생태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으로 다시 보니 슬픔은 봄날 같은 희망에 슬그머니 길을 내준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친교 다질 ‘도보다리’가 온통 파란색인 이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친교 다질 ‘도보다리’가 온통 파란색인 이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남북 정상회담장인 판문점에서 신뢰를 다질 친교산책을 할 때 갈 ‘도보 다리’는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시설이다. 이에 따라 도보다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26일 경기 일산 킨텍스에 차려진 남북정상회담 메인프레스센터(MPC) 브리핑에서 “(남북 정상이) 공동 식수를 마치고 나면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 다리까지 친교산책을 하면서 담소를 나눌 예정”이라고 밝혔다. 산책하는 동안 수행원들이 따라붙지 않을 것으로 알려져 두 정상이 속마음을 서로 털어놓을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도보 다리는 판문점 우리쪽에서 봐서는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공동경비구역(JSA)을 가로지르는 군사분계선(MDL) 위에 지어진 T1∼T3 건물과 그 동쪽에 떨어져 있는 중립국감독위원회(중감위) 캠프(사무실) 사이에 놓인 길이 50m쯤 되는 작은 다리다. 보통 중감위 요원들이 판문점 회담장으로 이동할 때 도보 다리를 지나간다.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당시 다리가 만들어질 때는 실개천이 흘렀지만, 지금은 다리 아래로 물은 흐르지는 않고 습지가 형성돼 있다.JSA 남쪽 구역을 관할하는 유엔군사령부에서 ‘풋 브리지’(Foot Bridge)로 부르던 것을 우리 말로 그대로 옮기면서 ‘도보 다리’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도보 다리는 파란색 페인트칠을 했다. 유엔군사령부가 관리하는 시설은 모두 파란색으로 칠했기 때문이다. 유엔사 관계자들이 도보 다리를 ‘블루 브리지’(Blue Bridge)라고도 부른 이유는 이 때문이다. 반면 중립국감독위는 파란 색이 유엔색이기도 하지만 한반도기색이라고도 한다. 도보 다리가 놓인 곳은 1998년 2월 판문점 경비를 담당하던 북한군 부대 소속 장교인 변용관 상위(당시 계급·우리 군 중위~대위)가 귀순한 루트이기도 하다. 과거 북한군 탈북통로가 이제 남북 평화를 상징하는 역사적인 장소로 변모하게 됐다. 임 실장은 브리핑에서 “이제부터 도보 다리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슬로건인 ‘평화, 새로운 시작’ 그 자체를 상징하는 역사의 현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보 다리는 폭이 좁아 두 사람이 나란히 지나가기도 어려웠으나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확장공사를 해 성인 세 명이 나란히 걷기에도 충분할 정도가 됐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정전협정 체결 해인 1953년생 소나무 공동 식수를 하는 장소는 1998년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 떼 방북’ 루트인 ‘소 떼 길’로, 이 또한 T1∼T3 건물 동쪽에 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소 떼 길에서 공동 식수를 하고 도보 다리까지 자연스럽게 걷게 될 것으로 보인다.도보 다리 인근에는 다리에서 맨눈으로 보일 정도의 거리에 MDL 표식물이 있다. 높이 1m 크기의 나무 말뚝인 이 표식물은 겉면에 노란색이 칠해졌다. 남쪽에서는 ‘군사분계선’이란 한글과 ‘MDL’이란 영어 글씨가 보인다. 북한 쪽에서는 한자와 한글로 쓴 군사분계선이란 글씨가 보인다. 155마일 MDL에는 이런 말뚝 1292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도보 다리까지 친교산책을 한 다음, 평화의 집으로 돌아가 오후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이와는 달리 JSA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72시간 다리’는 제법 많이 알려졌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정전협정 직후 포로 교환을 했던 곳으로, 분단의 상징으로 통한다. JSA 북쪽 구역에 있는 72시간 다리는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이후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폐쇄되자 북한이 72시간 만에 건설한 다리를 말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재가동 ‘훈풍’… 설레는 산업계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재가동 ‘훈풍’… 설레는 산업계

    현정은 회장 “현대 의해 꽃필 것” 그룹 “사업 재개 기대감 커” 화색 도로·철도·송전 등 인프라 확충 토목사업 먼저 시범 발주 가능성 중소·중견기업 개성공단에 촉각 유통·호텔, 中과 관계 개선 희망 “남북 간 경제협력과 공동 번영은 반드시 현대그룹에 의해 꽃피게 될 겁니다. 남북 교류의 문이 열릴 때까지 흔들리지 않고 사명감으로 담담하게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남북 정상회담이 몰고 온 ‘10년 만의 봄바람’에 기업들이 설레고 있다. 금강산 관광 재개, 초코파이 부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할인) 해소, 개성공단 재가동 등 저마다 기대치는 다소 다르지만 분주한 모습이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가장 화색인 곳은 금강산·개성관광 사업권자인 현대그룹이다. 올해는 현대그룹이 금강산 관광을 시작한 지 20년, 중단한 지 꼭 10년째 되는 해다. 그런 만큼 대북 사업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그 어느 그룹보다 크다. 금강산 관광 중단 등으로 그룹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알짜배기 계열사인 현대증권과 현대상선 등을 모두 팔았다. 악화일로인 경영 상황에 대북 사업 재개는 ‘반전 카드’가 될 수 있다. 이런 기대감에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는 이날 9만 8100원으로 연초 대비(5만 5500원)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해소가 선결돼야 해 조심스럽다”면서도 “기대감이 큰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도 남북 경제협력에 따른 인프라(사회간접자본) 확충으로 신규 일감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크다. 이날 오후 2시 현재 유가증권시장 건설업종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3.41포인트(2.75%) 뛴 127.37을 찍었다. 업종지수가 120선을 회복한 것은 지난해 8월 이후 처음이다. 남북 화해 무드가 익어 가면 상징성이 있는 토목사업이 가장 먼저 시범 발주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과 평양, 동해안 남북을 잇는 고속도로·철도 연결 사업과 송전 사업이 우선 시작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공기업인 한국도로공사와 철도시설공단이 오래전부터 남북 연결 사업을 내부적으로 준비해 왔기 때문에 정치적인 결심만 이뤄진다면 공사 발주는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대북 송전 사업도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한국전력과 전기공사업 경험이 있는 건설사들도 유리하다. 토목·송전 사업이 시작되면 시멘트, 철강과 같은 건축 자재 수요도 덩달아 늘어나는 만큼 관련 업계도 남북 정세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식품 업계에서는 개성공단의 인기 상품이었던 ‘오리온 초코파이 부활’에 관심이 쏠린다. 초코파이는 2004년 북한 개성공단 근로자들에게 간식 명목으로 하루 2개씩 지급됐다. 그러나 ‘웃돈 받고 되팔기’가 적발돼 2011년 중단됐다. 지난해 말 총상을 입은 채 귀순한 북한 병사 오청성씨가 수술 직후 “초코파이를 먹고 싶다”고 말해 오리온 측에서 병원에 100상자를 전달하기도 했다. 오리온 측은 “회사 전체로 보면 개성공단 납품 물량은 소량이라 수익에 별 영향이 없겠지만 남북을 매개하는 상징적인 이미지가 큰 만큼 금전 이상의 가치”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는 “비슷한 입맛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직 개척되지 않은 북한 시장이 (식품업계의) 매력적인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통·호텔업계도 남북 관계 개선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남북 해빙 분위기가 외국인 방문객과 유커(중국인 단체관광객) 유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과 LG 등 대기업들도 지정학적 리스크 해소에 따른 글로벌 경영 환경 개선 등 전반적인 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외국인 자금 재유입과 국내 증시 재평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 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주식시장은 벌써부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따른 ‘사상 첫 코스피 3000 돌파’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중소·중견 기업들은 개성공단 재가동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은 “지금까지는 희망고문 심정이었지만 이제는 희망에 더 무게를 실어도 될 것 같다”면서 “지난 정부가 ‘개성공단 자금이 북핵 개발에 전용됐다’는 잘못된 사실관계를 근거로 공단 가동을 갑작스럽게 중단시킨 만큼 반드시 재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北 아킬레스건’ 확성기 OFF… “정상회담 분위기 조성”

    ‘北 아킬레스건’ 확성기 OFF… “정상회담 분위기 조성”

    北과 합의 없이 이례적 선제 조치 군사분계선서 완전 철거 가능성도군 당국이 23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격 중단한 것은 오는 27일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를 군사적 차원에서 지원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한·미 연합군사훈련 축소 등 대북 군사적 조치의 완화와 같은 맥락인 셈이다. 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중지하는 등 선제적으로 정상회담 분위기를 고조시킨 데 대한 화답 성격도 짙다. 국방부도 남북 정상회담과의 관련성을 분명하게 밝혔다. 최현수 대변인은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 및 평화로운 회담 분위기 조성을 위해 중단했다”고 말했다.북측과의 합의가 없었는데도 우리 측이 선제적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 것은 사실상 전례 없는 일이다. 1963년부터 시작된 최전방에서의 대북 확성기 방송은 남북 관계 개선·악화에 따라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 왔다. 물론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 합의에 따라 완전히 철거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우리 군은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 시설을 다시 구축한 뒤 2015년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로 재개했다가 ‘남북고위당국자 접촉’에서 북측이 유감을 표명하자 보름 만에 중단했다. 이후 2016년 1월 북한의 제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재개했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군과 주민의 심리를 흔드는 효과가 크다. 그 때문에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이기도 하다. 지난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북한 병사 오청성도 평소 대북 확성기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케이팝 등을 즐겨 들으며 남쪽을 동경해 왔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우리 측의 선제적 중단을 북한이 높게 평가할 여지가 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어차피 남북 정상회담 당일에는 양측이 확성기 방송을 끌 수밖에 없다는 점도 반영됐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회담이 열리는 JSA 일대는 사방이 트여 있어 평소에도 확성기 방송이 매우 크게 들리는 지역이다. 정상적으로 대북·대남 확성기 방송이 흘러나온다면 아무래도 회담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북한이 올 초부터 대남 확성기 방송의 내용을 크게 순화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측보다 앞서 북한이 기존의 극단적인 비난 언사 대신 음악방송으로 대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적인 논의는 없었지만 서로 확성기 방송을 지속하는 데 부담을 가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리 측은 최전방에서 40여대의 대형 확성기로 대북 방송을 내보내 왔다. 북측도 마찬가지다. 우리 측 조치에 화답해 북측도 곧 대남 확성기 방송을 중단할 것으로 예상한다. 남북이 추가적인 협의를 통해 또다시 확성기 방송 시설을 아예 MDL 일대에서 철거할 가능성도 있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평화의집’ 비닐 가림막 치고 회담장·연회실 변신 중

    ‘평화의집’ 비닐 가림막 치고 회담장·연회실 변신 중

    근로자 드나들고 드릴소리 요란 군사분계선 걸어서 5분도 안 걸려 ‘2018 남북 정상회담’ 개최가 채 열흘도 남지 않은 지난 18일 회담장소인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은 막바지 보수 공사 작업으로 분주했다. 정상회담을 위해 3층 대회의실을 오찬과 만찬이 가능한 연회실로 바꾼다고 했지만, 파란색 비닐 가림막으로 가려져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었다. 건자재가 담긴 박스 등을 든 작업복 차림 근로자 서너 명이 이곳을 드나들었다. 새 울음 사이로 전동 드릴 소리도 요란했다.청와대의 내외신 언론사 취재진 프레스 투어가 진행된 이날 북측 ‘통일의집’에선 남북 실무준비회담이 열렸다. 평화의집이 있는 구역의 공식 명칭은 ‘유엔군사령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이다. 이 지역은 지름 800m 타원형 모양의 회담 구역으로 이 안에서는 유엔사 측과 북한군 측이 자유롭게 남북을 오가며 공동으로 경비임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공동경비구역(JSA·Joint Security Area)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평화의집 앞마당에도 이미 봄이 내려앉았다. 봄 햇살을 받은 나무들이 푸르게 빛났다. 그러나 눈을 돌리면 높은 첨탑 등 군사 초소 시설이 보인다. 지난해 11월 북한군이 귀순할 때 총격전이 있던 곳이다. 본격적인 탐방이 시작되자 유엔군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북측을 향해 손을 흔들지 말고 주요 군사 시설에 대해선 사진 촬영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평화의집에서 군사분계선(MDL)까지는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MDL 위로 설치된 6채의 컨테이너 박스 모양 건물 너머로 북측 판문각이 보였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본 익숙한 곳이다. 건물 사이 폭 5m쯤의 골목길 가운데에는 MDL를 의미하는 높이 5cm 콘크리트 연석이 있었다. 유엔군은 6채 건물 중 파란색 건물 3채만 사용한다. 왼쪽부터 중립국감독위 회의실(T1),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T2), 군사정전위 소회의실(T3)이다. ‘T’는 ‘임시’라는 뜻의 영어단어 ‘Temporary’의 약자다. 유엔군사령부 공보관은 “처음 회담장을 설치할 때 이렇게 오래 사용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 ‘임시’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65년간 휴전 중인 한반도의 상태를 잘 보여 주는 ‘T’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북측에서 출발해 도보로 평화의 집으로 걸어오려면 T1과 T2 사잇길이나 T2와 T3 사잇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T2와 T3 사잇길은 북측 판문각과 남측 연락사무소인 ‘자유의집’ 정문을 한 프레임에 잡을 수 있어, 김 위원장이 도보로 내려온다면 이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이 자동차를 타고 건물 옆 공터로 MDL을 넘는 방법도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8년 소떼 1001마리를 몰고 방북한 길이다. 다만 남북이 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만나는 순간을 생중계하는 만큼 김 위원장이 걸어서 MDL을 넘을 가능성이 높다. 판문점의 원래 이름은 널문리다. 원래 휴전회담 장소였던 개성 내봉장 부근에서 전투가 잦자 장소를 널문리로 옮겼고 중공군을 위해 인근 이름 없던 주막에 ‘판문점’이라는 중국식 간판을 붙였다. 비무장지대의 한가운데, 휴전회담이 진행됐던 판문점이 이제는 북측 정상의 첫 남측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판문점서 360회 만난 남북…‘한반도 항구적 평화’ 역사 쓸까

    판문점서 360회 만난 남북…‘한반도 항구적 평화’ 역사 쓸까

    1971년 첫 판문점내 남북회담 정상회담 준비회담은 17회 열려 노무현 정부 169회 가장 많아 27일 ‘허심탄회’ 정상회담 목표 의전·경호·보도 등 꼼꼼히 점검68년 분단의 역사를 상징하는 판문점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여는 대전환의 시작점이 된다. 오는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까지 남북 당국은 여기서 360차례 만났다. 이 만남들을 포함해 전체 남북 회담은 무려 655회가 열렸다.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의전·경호·보도 실무회담과 고위급회담이 각각 한 번씩 남았으니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658번째 만남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통상 비핵화의 진입로로서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역할과 의미가 강조되고 있지만, 종착점은 한반도와 전 세계에 평화를 구현하는 것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17일 “고위급회담(일정)은 남북 간 협의 중으로 남북 정상회담(준비상황)을 고위급 차원에서 최종 마무리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고위급회담은 의전·경호·보도 실무회담(18일) 직후인 오는 20일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회담 1주일 전까지 의제, 보도, 의전 등 남북 간 조율이 사실상 마무리되는 것이다. 비핵화가 주된 의제임에도 남북은 두 정상 간 ‘허심탄회한 대화’가 우선이라며 의제의 범위를 열어 뒀다. 반면 의전과 경호는 지나칠 만큼 꼼꼼하게 점검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분단 후 북한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군사분계선(MDL) 이남인 판문점 평화의집으로 이동하고, 부인 리설주 여사를 동반할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김 위원장을 맞는 역사적 장면이 연출된다면, 이 순간부터 청와대 경호처와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당조직부 소속 974부대가 공동 경호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이 ‘평화’를 주제로 회담을 진행할 판문점은 굴곡의 역사를 안고 있다. 북한군과 국제연합군은 1951년 10월 22일 널문리 주막마을에 천막을 치고 첫 연락장교 접촉을 시작했고, 중국측이 이곳에 ‘판문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전까지 765회의 휴전회담이 이곳에서 열렸고, 남북 당국 회담은 ‘남북 적십자 파견원 제1차 접촉’(1971년)을 시작으로 360회가 개최됐다. 이 밖에 김일성 전 주석의 사망으로 실현되지 못한 1994년 남북 정상회담, 2000년·2018년 남북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17번의 준비회담이 판문점에서 있었다. 1976년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을 북한군이 도끼로 살해한 ‘도끼만행사건’이나 지난해 11월 북한 군인 오청성의 귀순 등은 양측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던 사건이다. 판문점은 또 1994년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방북과 1998년 정주영 전 현대 회장의 ‘소떼몰이 방북’에 통로로 이용되면서 잠시나마 화해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정권별로는 노무현 정부 때 169번의 남북 회담이 열려 가장 많았고, 노태우 정부(164회), 김대중 정부(87회) 순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16회로 가장 적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유엔군과 현 정전체제를 관리·감독 및 협의하는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은 정전체제를 넘어서는 길을 모색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강윤혁 기자 yse@seoul.co.kr
  • 이국종 교수 “인력 고용 대신 용역 사업에 돈 빠져나가”

    이국종 교수 “인력 고용 대신 용역 사업에 돈 빠져나가”

    “대형병원, 바닥에 대리석 깔고 있어” 북한군에 의한 총상을 입고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북한군 병사 오청성(25)를 구해낸 이국종 아주대 교수(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는 14일 “아직 변한 건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당시 이국종 교수가 일했던 권역외상센터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관심과 함께 청와대 청원이 제기됐다. 이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 지금 이국종 교수가 원화던 변화가 왔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이국종 교수는 이날 BBC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뭐가 필요한지 (예산 집행 결정자들이) 모르는 것 같다”며 “인력을 더 고용해야 하는데 그런 데 쓸 돈은 없고, 용역 사업이니 뭐니 하는 그런 본질적이지 않은 쪽으로 (예산이) 다 빠져나간다”고 비판했다. 그는 “큰 희망을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못 견딘다”며 “한국은 (환자를 위해서라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다 아는데도 그게 실현이 안된다”고도 했다. 이 교수는 “나는 어떻게 해야 환자가 산다는 걸 아니까 마른 수건 쥐어짜듯이 일하고 있다”며 “‘한국에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쉽게 쉽게 가면 저의 의사로서의 인생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또 “한국 병원이 수익 일변도로 달리니까 대형병원은 (환자를 위한 곳에 돈을 쓰는 게 아니라)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고 있다”며 “환자를 위한 진정성 있는 문화로 바뀌어야 하는데 바뀌질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자신이 영국 로열런던병원 외상센터에서 일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로열런던병원 한 곳에서 일어나는 출동 건수는 1500회라며 “한국 전체의 4~5배 되는 숫자”라고 설명했다. “한국보다 낡고 부족한 장비를 가지고도 영국은 그렇게 일을 한다”고 지적했다. 이기철 기자 chuli@seoul.co.kr  
  • ‘한류 날라리풍’에 물든 북 주민들, 백지영·레드벨벳에 열광할까

    ‘한류 날라리풍’에 물든 북 주민들, 백지영·레드벨벳에 열광할까

    백지영 ‘총 맞은 것처럼’ 한때 평양 대학생 애창곡 1위귀순 병사 오청성, 기운 차리자 “남한 노래 듣고 싶어”지난해 말까지 ‘비사회주의 섬멸전’ 주문했던 김정은南 예술단 평양공연에 어떤 반응 보일 지 주목 다음달 초 평양에서 열리는 우리 예술단 공연에 참가하는 가수 가운데 백지영의 노래가 북한에서 특히 인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류 문화에 관심 많은 평양 시민들이 조용필, 이선희, 레드벨벳 등 우리 예술단의 공연에 어떤 반응을 보일 지 주목된다.22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후계 구축 시절인 2009~2011년 평양시 대학생을 상대로 ‘자본주의 날라리풍(한류)’ 집중 단속을 했고, 당시 대학생 방이나 가방을 뒤지면 가장 많이 나온 노래파일이 백지영의 노래인 것으로 전해졌다. 2013년까지 한류 단속 업무를 했던 탈북민 A씨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특히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은 평양 대학생 애창곡 1위였다”면서 “백지영 노래가 하도 많이 나와 단속반도 그 노래를 줄줄 외우고 다녔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중국 등을 통해 들어온 한국 영화, 드라마, 가요 등 한류가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총격을 받으며 귀순한 북한 병사 오청성(24)씨도 여러 차례 수술 끝에 일주일 뒤인 같은 달 21일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여기가 남쪽이 맞으냐”, “남한 노래가 듣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고 전해진다. 오씨는 국가정보원 조사에서 ‘드림하이’, ‘동이’ 등 한국 드라마를 USB 파일로 시청하며 남한 사회를 동경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지난해 개봉한 영화 ‘강철비’에서는 지드래곤의 노래를 북한군으로 등장한 정우성의 어린 딸이 즐겨 듣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이와 관련 강철비를 연출한 양우석 감독은 “몇년 전에 북에서 한국 가요가 인기가 있고, 특히 빅뱅이 인기가 많다는 말을 들었다”며 지드래곤의 ‘삐딱하게’와 ‘미싱유’ 노래 2곡을 영화 소재로 사용한 배경을 설명했다. 북한 지도부는 알음알음 퍼지고 있는 한류 문화를 경계하며 단속해왔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4일 “비사회주의적 현상(자본주의화)과 섬멸전을 벌여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북한 관영 매체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바 있다.북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됐던 당시 김 위원장은 제5차 당 세포위원장 대회 폐막 연설에서 “지금 미제와 적대세력들이 우리 공화국에 대한 침략책동과 제재 압살 책동을 전례없이 강화하는 것과 함께 우리 내부에 불건전하고 이색적인 사상 독소를 퍼뜨리고 비사회주의적 현상을 조장시키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북 당국이 대대적인 한류 단속을 예고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불과 일주일 뒤 내놓은 신년사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남북대화 가능성을 언급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일정이 잡혀 있고, 완전 비핵화와 종전 선언 가능성까지 타진되는 등 ‘한반도의 봄’이 성큼 다가왔다. 이런 가운데 ‘한류의 얼굴’인 우리 가수들이 평양 무대에 선다. 평양 시민 등 북한 주민들의 반응이 기대되는 이유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뉴스를부탁해]‘페미니즘 의무교육’ 국민청원 20만 돌파…중복·부정투표 논란 재점화

    [뉴스를부탁해]‘페미니즘 의무교육’ 국민청원 20만 돌파…중복·부정투표 논란 재점화

    ※[뉴스를 부탁해]궁금한 뉴스를 서울신문에 부탁하세요. 화제가 되는 이슈를 요리조리 뜯어보고 속 시원히 풀어드립니다. 청와대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가장 뜨거운 곳은 국민소통 광장, 그중에서도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인 지난해 8월 17일 오픈됐습니다. 미국 백악관의 시민청원 사이트 ‘위 더 피플’과 비슷한 형식입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제안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이 청원게시판을 내놓으면서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직접 소통을 통해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을 지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30일 동안 20만명 이상의 국민이 추천한 청원은 각 부처 장관, 대통령 수석 비서관, 특별보자관 등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직접 답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청원 목록만 보면 6일 현재 10만 8000건 이상의 청원이 등록됐습니다. 이 가운데 정부가 답한 청원은 소년법 폐지 청원, 낙태죄 폐지 청원, 주취감형 폐지 청원(조두순 사건), 권역외상센터 지원 확충 청원(판문점 귀순 북한병사 총격 사건), 전기생활용품안전관리법(전안법) 개정 청원 등 5건입니다. 20만명 이상이 동참해 청와대 답변을 기다리는 청원은 가상화폐 규제 반대 청원,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의 평창올림픽 위원직 파면 청원, 미성년자 성폭행 형량 강화 청원, 대전 아파트 교통사고 처벌 청원 등 4건입니다. 여기에 5일 청원 한 건이 동참인원 20만명을 넘겼습니다. 초· 중·고등학교에서 페미니즘(여성주의) 교육을 의무화해달라는 국민청원입니다. 청원인은 “아직 판단이 무분별한 어린 학생들이 학교에서 여성비하적 요소가 들어있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장난 치며 사용한다”며 “양성평등과 페미니즘에 대해 학교에서 주기적으로 교육하고 학생과 선생님도 배우는 제도가 있었으면 한다”고 주장했습니다.그런데 이 청원을 두고 부정 중복투표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1월 6일 등록된 이 청원은 2월 5일 자정까지 20만명 이상의 참여인원을 받아야 청와대 답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5일 오전까지만 해도 10만명 안팎이던 청원 참여 인원은 오후 5시쯤 15만명으로 불어났고 다시 5시간 만인 오후 10시 20만명을 넘겼습니다. 짧은 시간 내 10만명 이상이 청원에 참여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번 투표에 참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실제 여성회원이 많은 이른바 ‘여초카페’에서는 한 사람 당 2번 이상 투표하자는 내용의 중복 투표 독려 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중복 투표가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국민청원게시판에는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등 3개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으로 접속할 수 있습니다. 각 SNS 계정이 있으면 최대 3번까지 투표가 가능합니다. 트위터의 경우 한 사람이 여러개의 계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여러 번의 중복 투표도 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SNS 애플리케이션 설정에서 과거 접속기록인 캐시, 데이터를 삭제한 뒤 여러번 청와대 청원에 로그인해 청원에 동의하는 편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이런 방식 때문에 청와대 국민청원은 종종 부정중복 투표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청와대의 ‘2호 답변’을 이끌어 낸 낙태죄 폐지 청원이 대표적입니다. 지난해 9월 30일 등록된 이 청원은 투표 마감 이틀 전부터 참여인원이 폭증해 같은 해 10월 29일 하루에만 15만명 이상 늘었습니다. 여초 카페에서 중복 투표를 독려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실명 인증을 통해 한 사람이 한 번만 청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이에 대해 청와대는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합니다. 국민의 자유롭고 활발한 청원 기회를 보장한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청와대는 최근 카카오톡 계정을 통한 청원 동의를 잠정 중단했습니다. 일부 이용자의 “부적절한 로그인 정황”이 발견되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와 관련해 부정한 국민청원을 막아달라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이 참여인원 20만명을 넘기자 한 청원인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청원 게시판에 이렇게 부정적인 방법으로 청원할 수 있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부정 청원으로 의심되는 동의 수는 모두 누락하고 앞으로 부정적인 투표를 할 수 없게 막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국민청원 게시판이 인터넷 포털의 댓글창을 능가할 정도로 여론이 모이고 표출되는 공간으로 성장한 만큼, 대다수가 신뢰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장치가 필요한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때입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목숨 건 탈출, 편견ㆍ차별… 겉도는 새터민의 삶

    목숨 건 탈출, 편견ㆍ차별… 겉도는 새터민의 삶

    지성호 북한 인권단체 나우(NAUH) 대표가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 현장에 등장해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꽃제비’ 출신인 지씨는 1996년 음식과 바꿀 석탄을 훔치다 기차에 치여 왼쪽 다리와 왼쪽 손을 잃고, 2006년 탈북해 북한의 인권 실태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지난해 10월 통일부 기준 탈북자는 모두 3만 1000여명. 목숨을 걸고 북한을 나왔지만, 이후 삶도 만만치는 않다. 이런 가운데 탈북 과정과 탈북 이후 한국에서의 삶을 생생하게 그린 책이 나왔다. 탈북자 출신 박사 주승현씨가 낸 ‘조난자들’(생각의 힘)이다. 비무장지대 북한군 심리전 방송국에서 근무했던 주씨는 남측의 심리전 방송을 들으며 의도치 않게 한국 사회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아버지의 죽음과 군관학교 입학 보류 소식이 그를 흔들었다. 비무장지대에서 수년간 근무해 주변 지형이 익숙했던 그는 22살이던 2002년 25분 만에 비무장지대를 건너 귀순했다.주씨의 탈북 과정은 지난해 11월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북한군 병사 사례와 많이 닮았다. 이 병사의 탈북 당시 영상뿐 아니라 치료 경과와 내장 상태까지 전국으로 중계되면서 논란을 빚었다. 주씨 역시 이와 관련해 많은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언론이 진실을 원한다기보다는 그저 그를 이용하고 있다는 불온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하나원에서 탈북민 정착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일식당에 취직한 주씨는 남들보다 궂은일을 했지만, 월급은 더 적게 받았다. 첫 월급을 받은 주씨는 월급 절반을 내어 입시 학원에 등록했다. 대학 졸업 후 여러 기업과 국회 등에서 일하며 석·박사 과정까지 마친 뒤 마침내 통일학 박사가 됐다. 현재는 여러 대학에서 강의 중이며,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등으로 일한다. 탈북자로서는 성공한 편에 속한다. 그러나 주씨는 여전히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의심과 불안을 떨치지 못한다”고 책을 통해 고백한다. 특히 한국 사회의 편견과 차별이 탈북민을 가장 힘들게 한다고 말했다. 귀순 병사 문제에 대해서도 국방부의 일방적인 신상 공개, 상업주의를 되풀이하던 언론을 비판하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개인정보가 공개된 그는 온갖 혐오나 편견에 맞서 위태로운 싸움을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분단의 슬픔은 이 지점에서부터 거듭 시작된다”고 밝힌 이유다. 실제로 탈북자들은 목숨을 걸고 한국에 왔지만,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다시 한국을 떠난다. 일각에서는 대략 5000명의 탈북민이 탈남했거나, 탈남 후 다시 돌아온 것으로 추정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과 달리, 탈북민들의 남한에서의 삶이 장밋빛은 아닌 셈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현장 행정] 평범한 인생도 역사가 됩니다

    [현장 행정] 평범한 인생도 역사가 됩니다

    “평범한 사람의 인생도 역사가 될 수 있습니다.”지난 30일 오후 서울 관악구청 강당에서는 특별한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평범한 지역 노인 8명이 출판 기념회의 주인공이었다. 강당 뒤쪽에는 8권의 각기 다른 자서전과 저자들의 사진, 기념품, 육필 원고 등이 놓여 있었다. 자서전 집필자 외에도 집필자의 가족, 친구 등 150여명이 모여 출판을 축하했다. 구는 2011년부터 만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어르신 자서전 제작 사업’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7년간 출판된 자서전만 58권에 이른다. 이날 출판 기념회를 연 노인들은 지난해 사업에 참여, 자전적 글쓰기 법 등을 배웠다.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평범한 돌멩이 하나에 지구의 역사가 들어가 있듯 평범한 사람의 인생에도 우리 현대사의 굴곡이 담겨 있다”며 “누구라도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 모두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사업의 취지를 설명했다. 유 구청장은 또 “어르신들께 칠순, 팔순 잔치 때 수건 같은 기념품 대신 자서전을 선물하라고 권한다”며 “결정적 순간에 어떤 고민으로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 자녀나 배우자에게 일일이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담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병철(83) 할아버지는 ‘북풍은 남풍이 되어’라는 제목의 자서전에서 일제강점기에 징용을 피해 만주로 도피한 아버지를 따라 일가족이 만주로 이주한 내용, 대한민국 사람이 아닌 ‘조선족’으로 힘겹게 살아간 가족사를 엮어 냈다. ‘일곱 개의 보석’이란 제목의 자서전을 쓴 구귀순(71) 할머니는 1971년 큰딸을 낳은 뒤 1987년까지 7명의 딸을 낳아 기르며 맏며느리로 병든 시부모님을 모시며 살아간 인생 이야기를 담았다. 구 할머니는 “내가 글을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이런 계기를 마련해 준 분들께 감사하다”며 “자식들 키워서 다 출가시키고 말년에 또 다른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8권의 자서전 저자 중 ‘은혜와 감사로 충만한 삶’이란 제목의 자서전을 쓴 서진율 할아버지는 참석하지 못했다. 자서전 집필을 마친 뒤 갑자기 발견된 암으로 지난해 10월 별세했기 때문이다. 대신 참석한 서 할아버지의 아들은 “자서전이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유 구청장은 “아무리 평범한 인생이라도 똑같은 내용은 하나도 없다”며 “어르신들이 글을 쓰면서 본인 인생에 감동하는 기쁨을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사진설명] 유종필(가운데) 서울 관악구청장이 지난 3…

    유종필(가운데) 서울 관악구청장이 지난 30일 구청 강당에서 열린 지역 어르신 자서전 출판 기념회에서 8명의 필자 중 1명인 구귀순 할머니와 환하게 웃으며 악수하고 있다.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co.kr
  • 평범한 인생도 역사가 됩니다

    “평범한 사람의 인생도 역사가 될 수 있습니다.”지난 30일 오후 서울 관악구청 강당에서는 특별한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평범한 지역 노인 8명이 출판 기념회의 주인공이었다. 강당 뒤쪽에는 8권의 각기 다른 자서전과 저자들의 사진, 기념품, 육필 원고 등이 놓여 있었다. 자서전 집필자 외에도 집필자의 가족, 친구 등 150여명이 모여 출판을 축하했다.구는 2011년부터 만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어르신 자서전 제작 사업’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7년간 출판된 자서전만 58권에 이른다. 이날 출판 기념회를 연 노인들은 지난해 사업에 참여, 자전적 글쓰기 법 등을 배웠다.유종필 관악구청장은 “평범한 돌멩이 하나에 지구의 역사가 들어가 있듯 평범한 사람의 인생에도 우리 현대사의 굴곡이 담겨 있다”며 “누구라도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 모두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사업의 취지를 설명했다.유 구청장은 또 “어르신들께 칠순, 팔순 잔치 때 수건 같은 기념품 대신 자서전을 선물하라고 권한다”며 “결정적 순간에 어떤 고민으로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 자녀나 배우자에게 일일이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담을 수 있다”고 말했다.서병철(83) 할아버지는 ‘북풍은 남풍이 되어’라는 제목의 자서전에서 일제강점기에 징용을 피해 만주로 도피한 아버지를 따라 일가족이 만주로 이주한 내용, 대한민국 사람이 아닌 ‘조선족’으로 힘겹게 살아간 가족사를 엮어 냈다. ‘일곱 개의 보석’이란 제목의 자서전을 쓴 구귀순(71) 할머니는 1971년 큰딸을 낳은 뒤 1987년까지 7명의 딸을 낳아 기르며 맏며느리로 병든 시부모님을 모시며 살아간 인생 이야기를 담았다. 구 할머니는 “내가 글을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이런 계기를 마련해 준 분들께 감사하다”며 “자식들 키워서 다 출가시키고 말년에 또 다른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8권의 자서전 저자 중 ‘은혜와 감사로 충만한 삶’이란 제목의 자서전을 쓴 서진율 할아버지는 참석하지 못했다. 자서전 집필을 마친 뒤 갑자기 발견된 암으로 지난해 10월 별세했기 때문이다. 대신 참석한 서 할아버지의 아들은 “자서전이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유 구청장은 “아무리 평범한 인생이라도 똑같은 내용은 하나도 없다”며 “어르신들이 글을 쓰면서 본인 인생에 감동하는 기쁨을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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