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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의 북한 1년(오늘의 북한)

    ◎노동당 비서 11명 풀가동… 쌀외교 주력/「김일성 유훈」 실천 독려… 식량난 해결 심혈/아·태시대 개막대비,외교관들 대폭 경질/황장엽·김용순·김영남 맹활약… 요인 24명 1회이상 외국방문 김정일이 「상중」이란 이유로 권력 전면등장과 대중앞 출현을 꺼리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지난 1년간 김용순 황장엽등 11명의 노동당 비서들에 의해 이끌어져온 것으로 밝혀졌다.그러나 비록 눈에 드러나게 행보는 하지 않았어도 김정일은 막후에서 노동당비서국을 장악,북한핵타결과 쌀지원,서방을 겨냥한 남방외교 등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분석됐다.이같은 사실은 서울신문사 통일안보연구소가 20일 간행한 1995년 개정·증보판 「북한인명사전」이 파악한 북한요인들의 지난 1년 행적 정밀분석결과 밝혀진 것이다.다음은 북한인물 1만6천명을 수록,규모와 내용면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북한인명사전」수록자료분석을 통해 조감해본 요인들의 주요활동과 북한의 지난 1년 결산이다. 김정일이 「김일성 없는 북한」을 이끌어온 지난 1년동안 주요 직책에대한 인사를 단행하지 않음으로써 북한내 권력의 큰 부침은 없었던 것으로 분석됐다.그러나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인민무력부 부부장 김봉률 사망 등 변수가 돌출,그의 전면등장시 세대교체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됐다.김정일은 또 숙부인 김영주등 4명의 부주석에게 업무를 분담시킴으로써 충성심 경쟁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년간 김일성의 유훈이란 그늘막에 숨어서 북한을 통치해온 김정일의 이같은 행보는 「즉위」시기를 늦춤으로써 자신의 「효자」이미지를 한껏 치켜올리면서 「등극」에 필요한 정지작업의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김정일 무얼 했나 김일성 사후 지난 1년 동안 김정일은 김일성 노선을 충실히 답습,주민들에게 소위 「유훈관철」을 독려해온 것으로 분석됐다.귀순자들에 따르면 북한주민들은 간단없이 지속돼온 「운동」이나 「전투」에 지쳐 이젠 어떤 새로운 구호가 등장해도 움직이질 않는다고 한다.따라서 기계 대신 전적으로 인력에 의존,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밖에 없는 김정일에게 인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김일성의 「유훈」은 허기진 주민들을 노동현장으로 내몰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두번째로 김정일은 인민군 끌어안기에 많은 신경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올해 벽두 제241부대(1.1)방문으로 시작된 김정일의 군선무활동은 지난 4월말까지 ▲제9차 군선동원대회 참가자 접견(1.28) ▲제291부대 여성해안포중대(2.5) ▲해군 155부대(2.6) ▲제1017부대(4.25)시찰로 이어졌다.김정일의 이같은 잦은 군부대방문은 군경력이 없는 자신의 약점을 커버하면서 군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계산된 행동으로 분석됐다. 세번째로 김정일은 식량난 해결에 사활적 노력을 경주한 것으로 확인됐다.북한이 우리의 대북 쌀지원을 받아들인 것이나 일본에 쌀을 요청한 것도 김정일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부주석들의 역할분담 생전에 김일성이 제정받던 외교관들의 신임장은 부주석 이종옥(5회)과 박성철(2회)이 나누어 접수한 것으로 나타났다.같은 부주석이면서도 김영주나 김병식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은 업무분담원칙과 견제(김영주)때문이란 분석이 가능할 것 같다. ○주요직책 임면 김정일은 김일성 사후 주요직책에 대해 불과 5건의 인사밖에는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현준극의 노동당 국제부장 기용이다.현준극은 지난 88년 이래 노동신문의 책임주필 자리를 16년간 지켜온 언론통으로 북한 기자동맹중앙위 위원장직도 겸직하고 있는 인물.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현준극을 당국제부장이란 요직에 앉힌 것과 관련,주중국대사(66년)·당중앙위 국제부장(86년)을 지낸 그의 경력을 사 대중국외교에 무게를 실으려는 행마일 가능성이 높다고 풀이하고 있다. 한편 외교관에 대한 인사는 고위직책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와 폭이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지난 4월30일까지 김정일에 의해 이뤄진 외교관 인사는 대사 26명 신규 임명,경질 15명 등 41명에 이르렀다.아프리카와 아시아지역이 중점 인사대상지역이었는데 이는 향후의 아·태시대개막 대비와 비동맹국 중시차원에서 이뤄진 인사로 풀이된다. ○외국방문 누가 많이 했나 김일성사후 외국을 제일 많이 나다닌 북한요인은 대외경제위원회 위원장 이성대였다.그는 중국 두번,태국·방글라데시 각각 한번씩 모두 네차례 해외 나들이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직책이 대외경제와 유관한 탓에 최다 해외방문자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그다음으로는 현준극 노동당 국제부장이 3회로 2위,황장엽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등 5명이 두번씩 외국엘 나간 것으로 나타났다.그밖에 당·정간부 가운데 부장급 이상과 정당·사회단체장으로 한차례씩 외국을 방문했던 인물은 이종옥 부주석 등 모두 17명이었다.이들의 방문국은 중국·태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이 대부분이어서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외화난의 심각성과 그들의 수교범위를 한눈에 읽게 하고 있다. ○회담 누가 많이 했나 94년 7월8일 이후 지난 4월30일 사이에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사 또는 대표단과 회담을 가장 많이 한 인물은 13회를 기록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황장엽으로 밝혀졌다.그다음은 대외경제위원회의 이성대 위원장이 3회로 2위,여연구 최고인민회의부의장 등 3명이 2회,김영남 부총리겸 외교부장 등 4명이 각각 1회씩을 기록했다. ○담화와 환담 정식 회담은 아니지만 집무실에서 얘기를 나눈 것을 담화로 정의했을 때 이 부문에선 직책이 직책인지라 황장엽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와 김영남 부총리겸 외교부장이 각각 16회씩으로 공동 1위를 차지했다.부주석 이종옥은 이들보다 2회가 적은 14회로 2위에 올랐으며 3위는 9회를 기록한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의장에게 돌아갔다.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비서는 8회,부주석 박성철과 부총리겸 문화예술부장 장철이 각각 6회를 기록했다.부총리 홍성남과 부주석 김병식은 각각 4회를 기록.김정일의 숙부인 부주석 김영주는 단 1회로 말석을 차지했는데 이는 두차례의 공장 격려방문외 김일성 사후 파악된 그의 유일한 공무다. ○면담과 접견 인사차 들른 외빈을 가볍게 만난 횟수로는 부주석 이종옥이 8회로 선두를 지켰다.김영남 부총리겸 외교부장이 6번으로 차석.그 뒤를 각각 5번씩 기록한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황장엽 노동당 국제담당비서가 이었다.
  • “통일조국서 「한표」 던졌으면…”/귀순 안혁씨 등 첫 주권 행사

    ◎눈치안보는 자유로운 분위기에 감명/입후보자 많아 선택에 적잖이 고민도 『통일된 조국에서 투표할 수 있는 날이 곧 오기를 바랍니다』 북한에서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내려온 귀순자들은 27일 민주시민으로서 주권행사를 한 뒤 한결같이 남북통일을 간절히 바랐다. 이날 상오 서울 광진구 광장교회 교육관에 마련된 광장동 제2투표소에서 92년 북한에서 귀순한 이후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한 안혁(27·한양대 경영학과3)씨는 『난생처음 자유로운 투표에 참여하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89년말 북한에서 도의원선거를 할 때는 정치범수용소에서 나온 지 얼마 안돼 주위의 눈치를 보느라 제일 먼저 투표했다』면서 『북한과는 사뭇 다른 우리의 자유로운 선거분위기에 놀랐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북한에서 귀순한 여만철(48·방지거병원)·이옥금(45)씨 부부도 딸 금주(21·중앙대 유아교육과1)양과 함께 상오7시5분쯤 서울 구로구 수궁동 동사무소에 마련된 투표구에 나와 주권을 행사했다. 여씨는 『4가지 선거가 동시에 치러져처음에는 혼란스러웠으나 TV나 유세장에서 후보들의 면면을 자세히 지켜보고 나름대로 후보를 결정했다』고 첫 투표소감을 밝히고 『북한선거는 안전부 스파이노릇을 하는 인민반장(통장)과 경찰이 감시를 하고 있는데다 기표소는 없고 투표함만 있어 말이 비밀선거이지 선거가 아닌 요식행위였다』고 북한의 실상을 공개했다. 지난주 주민등록증을 분실한 금주양은 학생증으로 신분확인을 하려했으나 투표소 직원들이 「절대불가」판정을 내려 발을 동동 구르다가 참관인 5명이 『신분이 확실하니 투표를 하게 하자』고 동의,간신히 투표를 마쳤다. 귀순용사의 「맏형」격인 이웅평(41)씨도 부인 박선영씨(34)와 함께 상오10시쯤 서울 서초구 서래국교에 마련된 방배본동 제1투표소에 나와 투표권을 행사했다. 정치학도 출신의 이씨는 『시민이 후보자가 많다는 이유로 투표를 포기하거나 무관심을 보이는 것은 민주주의의 포기』라고 지적하고 『모든 시민은 반드시 주권을 행사할 권리는 물론 의무도 갖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그맨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전철우(28·서울 강동구 둔촌동 둔촌아파트 146동)씨는 상오 8시40분쯤 둔촌1동 제1투표소에서 귀순이후 네번째로 주권을 행사한 뒤 『북한에서는 후보자가 1명이어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으나 남쪽에서는 후보자가 많아 적잖이 고민했다』고 귀띔했다. 이들 이외에 92년12월 러시아에서 벌목공으로 일하다 귀순한 강봉학(35·경희호텔전문대2)씨와 같은해 8월 북한 정치범수용소를 탈출,귀순한 강철환(27·한양대 무역과3)씨도 주권을 행사하며 서울시민으로서의 긍지를 누렸다.
  • 안혁·강철환·연만철씨 포함/북한 귀순자 5명 첫 투표

    27일 실시되는 지방 선거에는 92년 8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를 탈출한 안혁(27·하나은행 근무·한양대 경영학과 3년)씨가 성동구 광장동 광장중고에서 투표하는 등 귀순자 5명이 처음으로 자유 민주국가의 시민으로 투표에 참여하게 돼 이채. 안씨 외의 나머지 4명은 강철환(국민은행 근무·한양대 무역학과 3년),강봉학(35·삼림식품 근무·경희호텔전문대 3년),정기해(53·무직),여만철(42·방지거병원총무과)씨 등이다. 또 이웅평(41·공군대학 교관) 전철우(28·대우전자 근무) 김용(37·한국관광공사 근무) 김영성(61·한국기술개발공사 고문) 등 이제 우리에게 낯익은 4명의 귀순자들도 함께 투표한다.
  • 6·25 45주년을 맞으며/이호철 작가(일요일 아침에)

    강원도 동해항에서 태극기를 단 국적선이 남북분단 이후 처음으로 2천t의 쌀을 싣고 북한 나진 항을 향해 첫 출발할 예정이다.이어서 3천t,5천t급 우리 국적선들이 잇따라 남한 곳곳에서 쌀을 싣고 목포·군산·마산항 등지를 출발,북한측이 지정한 남포·원산·청진·나진항 등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금년 6·25 45주년의 뜻은 바로 이 엄연한 사실로 함축되지 않을까.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너무 기이하다.하필 어째서 6·25인가.하필 어째서 6·25 45주년을 맞아 북한에 가게 되는가. 하늘의 뜻 같은 것이 문득 와닿는다.45년 전,바로 이날에는 똑같은 최단거리 항로로 무시무시한 남침이 자행되었던 것이다.그리고 이날 이때까지 1백55마일 휴전선을 비롯한 남북 대치 상황은 애오라지 철통처럼 이어져 오기만 했던 것이다.아아,그렇다.이게 하늘의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보도에 따르면 동해항에 첫 도착한 쌀은 강원도 고성에서였다고 한다.이 점도 남달리 뭉클하게 와닿는다.역시 그렇지,그 곳은 45년전 6·25때까지는 북한 체제에 속해 있었고,지금도그 지방에는 6·25 피난민들이 가장 많이 터를 잡고 살며 몽매에도 잊지 못하는 고향하늘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그이네들이 어찌 이 일에 화끈하게 나서질 않을 것인가. 김영삼 대통령도 「남북관계 해빙의 대전기」를 획하게 된 남북한간의 쌀 협상이 타결되고 나서 지난 22일,『앞으로 더 주겠다.보유량 중 여유분이 없으면 외국에서 사서라도 주겠다』고 언명했다. 요컨대 이일에 화끈하게 들어서는 데는 위 아래가 없고 정부당국과 민간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굶기 직전의 북한 동포들에게 쌀을 보내주자는 일에 어느 누가 망설인다는 말인가.다만 여기서 다음 두가지 사실만은 명백하게 못 박아두어야겠다. 그 첫째는 이 쌀이 과연 남쪽 민초들의 뜻대로 정말로 굶주리기 직전의 북쪽 민초들에게 가 닿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사실은 북쪽의 민초들도 벌써 환히 알고는 있을 것이다.남쪽 동포들이 1차분으로 1천8백억원어치나 되는 쌀의 일부를 보내주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런 소식은 공기 알갱이의 기별과도 같은 「눈치」로 이미 훤히 꿰고 있는것이다.그것이야말로 유구하게 이어져 내려오는 바로 민초들,백성들의 지혜인 것이다.이것을 모르거나 소홀히 여길때 그 권력은 볼장 다 보게 된다.반드시 망한다.이 이상의 만고의 진리가 없다.남쪽 쌀이 들어왔다는 것을,남쪽 민초들의 피와 땀이 어린 갸륵한 정성이 가 닿은 것을 추호나마 속이려고 들거나 어물쩍하게 넘기거나 왜곡하려고 들때는 하늘의 철퇴가 내려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금년 초에 귀순한 한 농업 전문가는 『남한 정부가 북한에 쌀을 지원해주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김정일은 남한이 준 쌀을 끝까지 숨기면서 인민들에게 나누어 주지도 않고,설령 나누어준다 해도 자신의 은덕으로 선전하는데 이용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는데,설마 그러기야 할까.아무리 악독한 권력자라 할지라도 그런 종류의 행태 끝이 어떠리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선전? 선동? 그런 것들은 벌써 오래 전에 끝장나 있는 정보화 시대인 것이다.아무리 알 길을 막으려 들어도 막아지지 않는 것이 작금의 지구촌 세계이다. 둘째,이번 「쌀협상」에서도 북한측은 안간힘으로 우리 「당국」과 민간을 분리시키려고 하였는데 북한 당국의 그 저의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을, 우리 남쪽의 민초들은 이미 속속들이 훤히 꿰고 있다.그리하여 이 자리서 다시 한번 분명하게 밝히거니와 이제 이 남쪽 세상은 이런 문제에 관한한 「당국」과 「민간」이 따로 없고 우리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바로 「당국」이기도 하고 「민간」이기도 한 것이다.얼핏 「난장판」처럼도 보일 터이지만 이틀 뒤에 있게 될 우리 지자제선거는 바로 우리 민초 한사람 한사람이 진짜 진짜 당국자임을 보여주고 바로 이 힘으로써 딱한 처지에 있는 북한 민초들을 도우려고 나선 것이다.
  • 김정일의 측근 실세들(북한 특권층 심층 해부:2)

    ◎핵심 20여명 당·군부 포진/거의 혁명2세대… 충성경쟁 치열/비서진­강상훈·이명제·이제강 주축 집무실 근무/친인척­매제 장성택·당숙 박기서 등 지근서 보좌/작전부장 오극열·대남비서 김용순·공업비서 한성용 등 영향력 막강 북한통치의 특성상 김정일은 철저하게 인치에 의존하고 있다.때문에 김정일주변과 요직엔 그의 신임과 총애를 받는 핵심 실세들이 포진하고 있다. 김의 측근은 그가 누구를 얼마나 신임하고 중용하는가에 따라 결정되며 대외적으로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김의 신임이 없으면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현재 정치국원이며 부주석들인 이종옥·박성철등은 예우차원에서 권력서열이 3,4위에 올라 있으나 실제 권력에 있어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보다도 못하다.권력서열이 북한 권력층의 변동과 위계를 파악하는데 참고자료는 될지언정 그 서열이 곧 실세서열은 아닌 것이다. 김정일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실세들은 20여명으로,지근거리에서 그와 같이 생활하며 그를 보좌하는 비서진,친인척그룹,당및 군부에 배치돼영향력을 행사하는 실행그룹 등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이들은 김이 행사참석이나 현지지도에 나설때 수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 비서진은 현재 「1강3이」로 구성돼있다.이들은 비록 급수가 실행그룹보다는 낮아도 영향력은 이들보다 더 크다.권력이 김의 집무실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이 가운데 김정일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무시로 그에게 건의와 조언을 할 수 있는 최측근은 노동당 조직부의 김정일집무실 담당 부부장인 강상춘이다.집무실의 안살림과 김정일의 면담·행사일정을 책임지고 있는 인물로 나이는 김보다 위인 55세 정도.누구도 그를 통하지 않으면 김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1백72㎝의 키에 다부진 인상의 그는 또 김이 술을 마시고 싶어할 때 분위기에 맞게 참석인원을 선정·동원하고 장소를 결정하며 기쁨조와 음식등을 준비하는 내밀한 일도 관장한다.그가 이러한 핵심요직에 발탁된 것은 호위사령부의 행사부 부부장(대령급)으로 있으면서 김정일과 오랫동안 같이 다니는 과정에서 김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다.김정일 집무실에 권총을 차고 유일하게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강밖에 없다. 강과 함께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운 사람은 선전과 조직업무를 보좌하고 있는 이명제와 이제강.두 사람 모두 60대 초반으로 노동당 조직부 김정일집무실담당 부부장으로 있다.이명제는 조선기록영화촬영소에서 촬영기사로 근무하면서 김일성부자의 현지지도활동을 자주 수행하다 김정일과 가까워지기 시작,김이 조직부부장으로 있을 때 조직부로 옮겨 80년대 중반부터 집무실에서 근무해오고 있다.이제강도 김이 조직부 부장으로 있을 때 과장으로 있다가 김의 신임을 받아 조직업무라는 중요한 일을 맡고 있다. 이들 세사람이 집무실에 근무하면서 김정일을 보좌하고 있다면 현재 스위스 대사인 이철은 외국에서 김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그는 김과 김일성대학 동기동창으로 외교부소속 유엔옵서버대표로 있다가 집무실요원으로 발탁됐다.현재 김정일이가 체제붕괴등에 대비,스위스은행등에 예치해놓은 비자금 규모는 20억∼3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노동당쪽에는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이 전진배치 돼있다.북한에선 모든 국가기관과 군부및 사회단체를 당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김정일은 당에 그가 가장 신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심어놓고 있다.이중 핵심인물이 바로 친인척그룹의 대표주자 장성택이다.김의 분신으로 불리는 장은 김의 누이동생인 김경희(당 경공업부장)의 남편으로 현재 조직부 제1부부장으로 있으면서 당을 관리하고 있다.군쪽에서는 당숙인 박기서(대장)가 요직인 탱크지도국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실행그룹으로는 당쪽엔 간부담당비서인 김국태를 비롯,작전부장 오극렬,김정일의 비자금을 조성하는 39호실 1부부장 임상준,중공업비서 한성용,대남담당비서 김용순,선전담당비서 김기남,조직부부부장 조순백,군수담당비서 전병호,조직부 무력담당부부장 김용현등이 있다.이 가운데 조순백은 국가보위부장을 겸직하면서 김정일체제에 대한 불만과 불평이 있는 사람들을 검거하는등 체제유지의 중책을 맡고 있다.군부에 포진된 실세는 인민무력부 부부장인 차수 김광진,공군사령관 조명록,해군사령관 김일철,인민무력부 작전국장 김명국대장,인민무력부 총정치국 선전담당부국장 박재경상장등이다. 강성산총리는 단지 예우차원에서 서열 2위에 올라있을 뿐 이렇다할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게다가 사위(강명도씨)의 귀순과 건강상의 문제(당뇨병)외에 경제난타개 실패등이 겹쳐 곧 경질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김의 숙부인 김영주 역시 서열이 5위에 올라있으나 부주석 대우나 받으면서 치료나 받고있지 실권은 없으며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호위사령부에서 통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정일의 측근실세들은 김이 공식적으로 권력승계를 하는 시점을 전후해 당정군의 핵심요직을 차지하거나 주요 포스트에 전진배치될 것으로 전망된다.강성산의 후임으론 한성용과 전병호가 유력시 되고 있다.또 공석중인 인민무력부장엔 오극렬이,총참모장에는 김광진,인민무력부 총정치국장엔 김용현이 기용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현재 김정일의 측근실세들은 매제인 장성택을 빼고는 모두 김보다 연상이며 대부분 혁명 2세대들이다.김정일은 이들과 술자리에서자주 어울리고 있으며 대화할 때는 친근감을 주기 위해 반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측근 사이에선 김의 총애를 더 많이 받기 위해 눈에 안보이는 충성경쟁이 치열하다.실세들은 또 성격이 급하고 괴퍅한 김의 비위를 맞추느라 애를 먹고있다.이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김의 눈밖에 나면 하루 아침에 별볼일 없는 신세로 전락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항상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 강성산 총리의 하루(북한 특권층 심층 해부:1)

    ◎강성산 총리 사위 강명도씨의 증언/특미로 지은 아침밥먹고 벤츠로 출근/하루 양담배 3갑… 람보 등 미 영화 즐겨/공관 6m 높이 담장위에 3겹 철조망/당뇨병 10년 앓아 매일밤 인슐린 주사/김정일과 관계 껄끄러운듯 비공식 연회 참가 안해 북한 권부의 요인과 특권층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또 특권계층인 혁명 2세대들은 어디까지 진출해 있으며 김정일의 측근실세들은 누구인가.서울신문 통일안보연구소는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북한 상층부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귀순자 강명도(36)씨와 최근 사흘간에 걸쳐 인터뷰를 가졌다.북한 권력서열 2위인 강성산 총리의 사위로 지난해 5월 귀순한 강씨의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북한 특권층을 해부하는 시리즈를 6회에 걸쳐 연재한다. 평양시 보통강구역 서재동에 있는 노동당 정치국원공관단지는 경관이 그림처럼 아름답다.해발 2백m 가량되는 봉화산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상오 6시30분쯤 잠자리에서 일어난 강성산총리는 잠옷차림으로 집안 뜰을 산책한다.20분남짓 공관주변을 돈 그는상오5시면 어김없이 배달되는 노동신문을 읽는다.이어 세면을 하고 7시20분쯤 아침식사를 든다.식탁엔 하얀 쌀밥과 쇠고기무국·김치·생선구이등의 찬이 오른다.당뇨로 고생하고 있는 그는 소식을 하는 편인데 밥은 16분도 특미로 지은 것.총리에게 공급되는 쌀은 껍질을 너무 깎아내 희고 길쭉하며 찹쌀처럼 진기가 있다.일반주민이 식량난으로 옥수수죽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전형적인 경제 테크노크라트로 두번째 총리를 역임하고 있는 그는 8시쯤 부관인 박영춘대좌(대령)가 대령한 벤츠 380을 타고 정무원청사로 출근한다.총리 차량번호는 2166666.차량번호 앞부분의 216은 김정일의 생일(2월16일)에서 따온 것으로 김의 전용차나 최측근의 차에만 부여하는 특수번호다.차안에는 카폰이 설치돼 있다.현재 그에겐 380외에 3대의 벤츠가 더 있다.가족용으로 230 한대가 있고 구형인 300과 94년에 김정일이 선물한 신형 500이 있다. ○부인과 연애결혼 정치국원공관단지의 하나인 서재동단지엔 현재 정치국원인 강총리 외에 같은 정치국원으로 부주석인 박성철·이종옥,인민군총참모장 최광 등 6명이 살고 있다.강의 부인인 전인숙은 정치국원공관단지의 반장일을 맡고 있다.나이는 강과 동갑으로 체코유학을 같이했고 연애결혼을 해 둘 사이는 좋은 편이다.강은 업무와 관련,집무실에선 부하에게 고함을 치면서 질책하는 일이 많으나 집에선 큰소리 한번 내는 법이 없을 정도로 가정적이다. 총리공관은 건평이 3백평을 넘는 석조 2층건물로 주위엔 2.5m 높이의 울타리가 쳐져 있다.또 널따란 공관단지는 꼭대기가 3겹철조망으로 된 높이 6m의 시멘트담으로 외부와 철저히 차단돼 있다.모통이마다 호위사령부에서 파견된 보초가 서 있고 정문에선 호위총국 소속 장교 2명이 출입을 통제한다. 공관에는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난방은 중앙난방이며 취사는 LP가스로 한다.1층엔 방 5개에 화장실 2곳,식당,욕실,전실,널찍한 응접실등이 있으며 김정일과 직접 연결되는 전화와 정무원에서 설치한 2대의 전화가 있다.2층엔 총리침실·서재·응접실·욕실·화장실등이있으며 2층에도 전화가 2대 놓여있다.식당엔 용량 4백50ℓ짜리 일제 냉장고 2대와 대형 가스오븐레인지가 있고 응접실에는 대형 TV와 VTR가 있다. 약 20분쯤 걸려 정무원에 도착하면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서기(비서실장격)가 맨먼저 집무실에서 하루일정과 처리해야 할 문건을 보고한다.강총리의 복장은 넥타이를 맨 양복차림이 많은 편으로,이들 양복은 김정일이 선물한 외국복지로 만든 것이다.총리집무실은 2층에 있으며 집무실 옆방에는 서기·부관·기술서기(여비서)가 근무한다.또 그 옆방엔 정치국원만 돌보는 봉화진료소 소속의 의사와 간호사가 대기하고 있다. ○밤늦은 귀가 잦아 상오중에는 주로 문건을 검토하거나 업무지시를 하며 점심은 호위사령부 소속의 식료차에서 제공되는 식사를 든다.전임자인 연형묵은 부총리나 부장(장관)들과 함께 점심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강성산은 어울리기를 싫어해 대부분 혼자 한다. 하오에는 경제난타개를 위한 각종 회의주재와 계획검토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바쁘거나 밀린 일이 없으면 이따금 6시쯤 퇴근,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도 한다.저녁식사는 강냉이에 단콩등을 섞어만든 죽을 별미로 즐겨 든다.집에 일찍 돌아올 때는 외손자인 명인(4·사위 강명도 아들)을 제일 먼저 찾는다.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니는 아들 영일(29)과는 시간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아 접촉할 기회가 적은 편이다. 그는 식량난등 경제문제가 잘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밤늦게 집에 돌아오는 경우가 더 많다.그의 일과중 밤에 빠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당뇨치료를 위해 인슐린주사를 맞는 일이다.그는 10여년간 주사를 맞아왔기 때문에 봉화진료소에서 나온 간호사가 주사놓을 곳을 찾는데 애를 먹는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집에 와서도 줄담배를 피운다.담배는 북한산은 거의 손에 대지 않고 양담배인 로스만이나 던힐등을 즐기며 하루에 3갑정도 태운다.비디오도 자주 보는 편이다.공관엔 비디오가 2대 있는데 그가 즐겨보는 것은 사위가 외국출장때 구해온 로키·람보등 미국영화가 대부분이다. 성격이 꼬장꼬장한 그는 외국에서 대표단이 올경우엔 연회에 참석하지만 김정일이 개별적으로 주최하는 주연엔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본인이 술과 기쁨조등 여자가 끼는 연회를 좋아하지 않는데다 성격상 김정일이나 그의 측근과 잘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에 김이 아예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강은 현재 북한 권력서열면에선 김정일 다음으로 높은 편이지만 실세가 아닌데다 아버지인 김일성이 총리로 재임명한 탓에 김정일과의 관계는 껄끄러운 편이다.게다가 지병으로 심신은 고달프고 경제문제마저 잘 풀리지 않는데다 사위귀순까지 겹쳐 요즈음은 총리자리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을 것이며 신상에 어떤 변화가 올지 몰라 불안하고 초조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 북 사병 1명 귀순

    국방부는 12일 하오 6시50분쯤 중부전선 0사단 지역에서 북한군 병사 1명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아군 관측초소로 귀순해왔다고 발표했다. 귀순자는 북한군 제1군단 13사단 19연대 3대대 8중대 3소대 소속 한명수 상등병(한국군의 상병)으로 현재 관련당국에서 구체적인 귀순동기와 상황 등을 조사중이라고 국방부는 밝혔다. 이 북한군병사는 혼자 은밀히 남측으로 넘어와 북한군이 추격하거나 총을 쏘는 등의 일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 함흥,범죄 최다지역 “악명”(북한 이모저모)

    ◎식량사정 최악… 외지인 출입많아/김정일 “비닐조화는 허례허식… 녹여서 가방 만들라” ○…최근 극심한 식량날을 겪고 있는 북한은 향기는 없지만 경제적 효용성 때문에 각종 장식물로 활용되고 있는 조화마저돕 「곁제적 낭비」나 「허澤허옭」으로 간주,금기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신문 최근호는 김정일이 몇해전 간부들과 점심식사를 위해 한 식당에 들렀다가 합성수지로 만든 복숭아나무와 포도덩굴을 보고 『숱한 수지를 낭비하고 돈을 들여서 가짜 복숭아나무를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는가』라고 지적하면서 당장 해체해 공장으로 보낼 것을 지시했다는 일화를 소개. 김정일은 이어 『그것이야말로 허례허식이다.가짜를 가지고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관계자들을 심하게 질책하는 한편 『저런 것을 만들 비닐이 있으면 신발이나 가방 같은 것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한다』면서 공장에 보내 제품생산에 쓰도록 했다는 것. ○…북한에서 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지역은 함흥인 것으로 전해졌다. 귀순자들의 증언을 보면 함흥이 북한 최고의 범죄 다발지역이 된 것은 크게 세가지 이유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분석.우선 식량사정이 북한에서 가장 좋지 않은데다 특히 인구밀도에 비해 농경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 두번째는 주민들간의 심한 빈부격차로 비교적 여유 있는 계층인 화교나 재일동포 출신들이 이 지역에 많이 살고 있어 주민들 대부분이 상대적으로 위화감과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 또 함흥이 북한 동북부의 교통요충지라는 점도 범죄 다발의 한 요인.
  • 귀순 문충일씨 맏아들 취수장서 변사로 발견

    10일 하오5시쯤 서울 강동구 암사3동 암사취수장에서 지난해 8월 미얀마를 탈출해 귀순한 문충일(57·경기 미금시 도농동)씨의 맏아들 철(20)군이 숨져있는 것을 방범원 정재성(40)씨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검정고시 준비를 하고 있는 철군은 지난 5일 하오3시쯤 동생 미령양과 심하게 다투고 집을 나간 뒤 소식이 없어 가족들이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 상태였다.
  • 호국의 넋 기려…/어제 제40회 현충일 추념식 엄수

    ◎동작동 국립묘지 참배객 줄이어 제40회 현충일인 6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현충일 추념식은 이날 상오 10시 이홍구 국무총리·황낙주 국회의장·윤관 대법원장 등 3부요인과 전몰군경 유족,시민 등 2천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묘지 현충탑 앞뜰에서 국가보훈처주관으로 엄수됐다. 이 총리는 이날 추념사에서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 자유와 번영을 누리며 세계 속의 중심국가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순국선열과 전몰호국용사들을 비롯한 국가유공자의 성스러운 희생이 밑거름이 됐기 때문』이라고 호국영령의 애국정신을 기렸다. 한편 이른 새벽부터 손에 꽃을 든 참배객들이 몰리기 시작해 이날 하룻동안 동작동 국립묘지에는 참배객 20여만명이 다녀갔다. 이날 상오 10시30분쯤에는 지난 83년 2월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북한 공군대위 출신 이웅평 중령(41·공군대학 교관) 등 귀순자 30여명이 국립묘지를 참배,눈길을 끌었다.
  • 주택난 극심/신혼부부 3년 기다려야 배정

    ◎자본·원자재난으로 건설계획 큰차질/김정일 우상화 위해 기념건축에 주력/노동력 확보하려 군동원·여성엔 만혼 권장 최근 북한의 각종 매체들이 주택과 공공건물등 북한의 도시건설 실적을 김정일의 업적으로 연결시키는 우상화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를테면 북한의 중앙방송이 지난 9일 서해갑문·김일성광장·평양고려호텔·평양산원등 북한의 모든 건축물들에 대해 『김정일의 통이 큰 작전과 현명한 영도 밑에 태어난 기념비적 창조물』이라고 선전했다.이 방송은 최근 한술 더떠 제3세계 친북 대표단의 발언을 인용해 김정일을 『창조와 건설의 영재』라고 치켜 세웠다.평양방송도 평양의 창광거리에 늘어서 있는 고려호텔·아파트·학교등이 김정일의 「사랑과 배려」의 결과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김정일 우상화 작업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북한의 심각한 주택난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최근 귀순한 인사들은 북한의 상당수 신혼부부들이 2∼3년을 기다려야 주택을 배정받을 정도라고 주택난을 증언하고 있다.북한당국이 최근 이례적으로 언론매체를 통해 조혼의 폐해를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저간의 사정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즉 여성 노동력 확보와 주택난 완화를 동시에 겨냥한 고육지책으로 여성들의 만혼을 권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북한당국도 올들어 주택난의 심각성을 인식,나름대로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다.하지만 대내외 자본조달의 한계와 원자재난으로 지난해 건설부분 성장률이 -9.7%를 기록한데서도 알 수 있듯 군인력의 건설현장 추가동원 이외에는 별다른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열악한 북한의 주택사정은 제3차 7개년계획기간 중인 87∼93년간 주택건설 부진이 누적된 결과이다.이 기간중 북측은 연평균 15만∼20만가구의 주택건설 목표를 세웠으나 실제로는 연평균 4만1천∼4만9천가구를 건설하는데 그쳤다. 이같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북한당국은 지난해 단군릉·당창건기념비등 이른바 기념비적 건축물에 건설역량을 집중했다.가뜩이나 부족한 투자재원의 상당부분을 주민생활과 직접 관계 없는 정치사상적 목적의 건조물에 쏟아부은 것은 김일성 사망 이후 체제안정이 최대 당면 목표였기 때문이다. 북한당국은 주민의 성분과 계급에 따라 주택을 차등배정하고 있다.부부장급 이상 당정 고급간부들이 거주하는 특호에서부터 말단노동자와 집단농장원에 배정되는 1호주택에 이르기까지 5단계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다. 물론 이중 주택부족의 피해를 몸으로 느끼는 계층은 고위간부나 외화를 많이 만지는 특수계층이 아니라 1,2호 주택을 배정받는 북한의 보통 주민들이다.
  • “북한 인권문제 본격 거론하라”/헨리 홍 재미목사·미평화목자회장

    ◎정치범 수용 실상 알려 세계문제화 해야 미국은 북한을 잘 모르는 듯하다.미국은 나름대로 북한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북한의 속셈을 너무 모른다.미국이 북한과의 핵문제 협상과정에서 질질 끌려다녔다는 인상을 씻어버릴 수 없었던 것도 바로 그 증거이다.남한과 북한은 반 세기가 다 되도록 여러번 만나 대화를 나누었지만 무슨 결실을 얻었던가? 실제로 미국의 대북한 정책은 혼선을 거듭하여 의회의 질책을 받기도 했다.북한에 관한한 미국의 전문가가 없는 셈이다.국무부 한국과의 북한문제 담당관이나 백악관·의회 그리고 협상실무자의 의견이 서로 달라 왔다. 미국은 실제로 북한의 감추어진 속셈을 파악하지 못하여 북한의 표면적 요구사항만을 놓고 씨름해왔다.북한은 미국의 이런 약점을 간파하여 벼랑외교의 곡예를 부리는 여유를 보여주기도 했다. 미국은 북한의 시간벌기에 휘말려 들었고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따라서 명분없는 협상에 휘말려들었다 하여 공화계 의원들의 질타를 받는 고뇌를 겪기도 했다.미국이 대북한 협상에서 말려들어간 느낌을 지울수 없었던 근본 이유는 그 협상의 근본 명분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핵카드 뒤에 숨겨진 궁극적 목표는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어 국제사회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자는 것이었다.이것이 그들의 1단계 목표이다.그렇게 하여 동북아의 평화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이를 발판으로 미국의 한반도 내정간섭문제를 들고나와 대남정책에 있어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자는 것이다. 북한이 앞으로 수년간 핵 불투명성을 유지하면서 특별사찰 시기를 최소 5년후로 미루도록 이끌어나간 것도 대미 평화협정의 가능성을 높이고,이 평화협정을 발판으로 대남 정치·군사전략의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것이 바로 북한의 내면적 전략이다. 미국은 전 인류의 가장 뚜렷한 대의명분인 북한의 인권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여 북한을 궁지로 몰아붙여야 했다.미국이 이 점을 깊이있게 이용하지 못했던 이유는 북한의 인권유린의 심도와 실상을 깊이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귀순자 중에서도 안명철씨의 증언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필자는 지난 3월2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초청으로 북한 인권문제에 관한 강연회를 가졌는데 2백여명의 미국인 북한 전문가및 관심있는 사람들이 참석했었다.이 자리에서 필자가 북한 정치범수용소 내의 실태를 보고했을 때 그들은 글자 그대로 경악을 금치못하여 그 대학에서 필자에게 감사장을 주고 미국의 다른 대학에서도 초청할 수 있도록 소개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미국인들은 북한을 잘 모르고 있다.특히 회령수용소의 경비원이었던 귀순자 안명철씨가 폭로한 북한 수용소의 참상을 필자가 소개했을 때 미국인 교수·학생들은 물론 북한 전문가들까지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인간의 목숨을 파리목숨만큼도 여기지 않는 인권유린은 북한의 가장 큰 약점이다.김정일 교시에 따르면 수용소 인권문제는 『수령님의 권위와 위신에 관련되는 사항이니 완전 극비사항으로 하라』고 했을 정도였다. 미국은 왜 이 약점을 이용하지 못하는가? 미국은 북한을 잘 모르고 있다.한국의 대북한 정책도 이점을 감안하여 가장 큰 인권문제의 하나인 이산가족 문제와 더불어 인권외교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이혼한 사람도 자기 자녀를 만나 볼 권리가 있는 법인데 반세기가 되도록 친족의 생사 여부조차 알 수 없도록 방해한다면 이보다 더 큰 인권침해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김영삼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근대사법 백주년 기념식에서 강조한대로 이제 우리는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북한인권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어 세계문제화해야 할 것이다.가능하면,북한 인권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구를 만들어 인권 외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시급하다 하겠다.
  • 탈북 귀순/북 고위층 늘어난다/통일원,귀순동기·연령 등 분석

    ◎80년대이후 급증… 체제불안 반증/평양·신의주 등 「중심지」 출신 상당수 북한으로부터의 귀순자들이 과거에는 혜택받지 못한 소외계층이 주류를 이뤘으나 근래에 들어 수혜계층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4일 밝혀졌다. 또 귀순자들은 과거에는 황해도·강원도 등 주로 휴전선인접지역의 변방출신이었으나 최근에는 평양·신의주등 북한 중심지역 출신이 많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통일원이 지난 60년대이후 북한에서 우리측으로 넘어온 7백여명 가운데 순수귀순자 2백9명을 대상으로 출신지역·연령·직업 및 귀순동기·귀순경로 등을 분석한 결과에 의해 확인됐다. 이 분석결과에 따르면 탈북귀순자는 북한사회가 비교적 안정된 70년대에 가장 적었던 반면 80년대이후 증가일로에 있어 80∼90년대 들어 북한체제의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했다. 귀순자의 북한에서의 직업도 60년대에는 군인·농어민이 주종을 이뤘으나 90년대 들어서는 당정 간부와 학생·벌목공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북한체제에 대한 불만도 종전에는 이념적·추상적이었으나 최근 점차 구체적·현실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귀순자의 출신지역은 평양이 전체의 18%로 가장 많았고,다음이 ▲황해남도 14% ▲평북·함북 각 13% ▲함남 11% ▲평남 9%▲강원 7% ▲황해북도·자강도 각 4% ▲양강도·남포·개성 각 2%등의 순이었다. 지난 60년대 귀순자의 약 50%가 황해도나 강원도에서 휴전선이나 해상을 통해 귀순했으나 80년대를 거쳐 90년대에는 중국 및 러시아 인접지역인 함경남·북도와 평안남·북도에서 제3국을 경유해 귀순하는 등 탈북경로도 폭넓어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귀순자들은 우리 사회에 편입된 뒤 소득 및 보유재산을 기준으로 중류층이 74%,하류층이 19%,상류층이 7%를 보여 대체로 잘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귀순후 직업은 전체의 절반이상인 53%가 회사(42명)·은행(20명)·국영기업체 직원(20명)으로 중류생활을 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 김만철 여만철 대담/서울신문사 통일안보연구소 주선

    ◎“지하철로 출퇴근… 이젠 서울사람 다됐지요”/일가 이끌고 귀순한 두 만철씨 자유의 삶을 말한다/김/“탈출때 11명이던 가족이 18명으로 늘어”/여/“서울생활 1년만에 체중 13㎏ 붙었어요”/북 주민 개방에 눈뜬 것은 남쪽방송 많이 듣기때문/최근엔 지도원까지 북체제 비판… 변화 실감/남한사람 씀씀이 헤프고 낭비많아 안타까워 『형님,오랜 만입니다.혈색 좋습니다』 『만철씨 얼굴에도 희색이 도는데…』 지난 87년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소형선박에 10명의 대가족을 태우고 복합을 탈출했던 김만철씨(55). 그리고 지난해 처자 4명을 거느리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죽음의 땅」을 빠져나온 여만철씨(49). 풍요로운 자유대한에 새 보금자리를 튼 두 귀순가장이 1일 서울신문이 언론사로서는 처음으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마련한 특별대담에 건강한 모습으로 자리를 함께 했다. 여씨의 귀순 1돌(30일)을 하루 앞두고 이뤄진 이날 대담에서 여섯살 아래인 작은 만철씨는 김씨를 깍듯이 형님이라고 불렀고,큰 만철씨는 반말을 곁들여 가며 여씨를그냥 만철씨라 불렀다. 추운 겨울에 가족들을 이끌고 한 사람은 망망대해를 표류하며,또 한 사람은 가슴을 죈채 두만강을 건너 동토를 탈출했던 두 만철씨의 만남은 「운명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귀순이 인연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생면부지의 남남이,잡고 잡히는 사이가 될 뻔했던 사람들이 만나 형제보다 더 끈끈한 사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두 귀순 가장은 형·아우가 되어 가족들과 정착해서 오붓하게 살아가는 얘기며 서로의 북한 체험담으로 장장 4시간동안 훈훈한 얘기꽃을 피우면서 7년에 이르는 간극을 좁혔다. 『형님,그동안 몸무게가 13㎏나 늘었습니다.살찌기운동을 했지요』 작은 만철씨가 불어난 체중을 자랑하자 큰 만철씨도 최근에 몸무게가 5㎏이나 늘었다면서 고개를 내젓는다.귀순초기와는 달리 이제는 체중이 느는 것이 반갑지 않다는 표정이다.북한에서 제대로 먹지 못해 삐삐 말랐다가 이제서야 살이 올라 보기 좋을 정도의 체격이 됐다고 마냥 좋아하는 여씨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 뿐인줄 아세요,형님,막내 은룡(17)이는 키가 1년새 12㎝나 자랐습니다』 여씨는 아이들이 북한에서 제대로 먹지못해 키가 크지 않았는데 여기와서 몰라보게 자랐다고 계속 자랑이다.이에 김씨가 『나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뼈만 앙상해 그당시 쉰이 안됐는 데도 예순이 넘은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지금은 그 당시보다 훨씬 젊어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아마 만철씨도 젊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을거요』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만철씨 아이들은 어느 학교 다니나요』 『큰 딸(금주)은 중앙대학에 다니고 금룡이와 은룡이는 우신고등학교에 다닙니다.그런데 얘들이 얼마나 적응이 빠른지 막내아이는 남녀공학이 아닌 학교를 다니는 데도 벌써 여자친구를 사귀었다고 합니다.나 참…』 작은 만철씨는 신바람이 났는지 묻지도 않은 아이들의 이성교제 얘기까지 했다. 『형님은 어떻습니까.자녀들과 처남들은 결혼했지요』『큰 애 광규는 홍대 미대를 나와 토지개발공사에 다니고 있는데 장가들어 손녀가 둘이나 생겼지.이젠 나도 할아버지가 됐어요.함께 온 두 처남들도 결혼해 애들을 다섯이나 낳아 탈출 당시 11명이던 가족이 18명으로 늘었지』 김씨도 가족들의 근황을 전하면서 뿌듯해 한다. ○손녀 둘이나 생겨 『만철씨는 요즘 어떻게 지냅니까』 『그리 크지 않은 종합병원의 총무과에서 주임으로 일하고 있습니다.봉급은 1백10만원 받고있는데 북쪽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지하철로 출퇴근도 하고 이젠 서울사람 다 됐지요』 비교적 적응을 잘 하고 있다는 여씨 말에 귀순 선배인 김씨는 자못 안도하는 표정이다. 『형님,나는 이곳에서 새 사람 됐습니다.중국으로 탈출할 때 도와준 사람의 인도로 천주교회에 다녔는데 지난 16일 부활절때 영세까지 받았습니다』 『축하합니다.나도 김신조씨의 전도로 하느님을 믿게 돼 벌써 오래전에 집사가 됐지.요즈음은 경남 남해군 미조면에 세운 기도원을 관리하면서 이곳저곳 간증하러 다니느라 바쁜 편이지』 큰 만철씨는 신앙생활에 대해 얘기하면서 자신이 북한에서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종교를 이곳에서 접하게 된 것은 자신을 구해준 것이 사람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그러자 작은 만철씨도 아직 큰 만철씨 정도로 깊은 믿음생활은 못하고 있지만 교회는 일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나가고 있다고 화답한다. 여기까지 우스갯소리를 곁들여 가며 자유대한에서 살아가는 얘기를 주고 받던 두 귀순자는 끔찍스러운 지난날의 북한생활로 화제가 옮겨가자 얼굴색이 굳어진다. 『만철씨,내가 탈출한 이후 북한 사회는 얼마나 변했습니까』 김씨가 그간의 북한소식을 무척 궁금해하자 입담좋은 여씨가 술술 얘기를 이어간다. ○집사로 간증에 바빠 『북한의 유일체제는 변함이 없지만 형님이 탈출한 이후 북한에서는 식량난이 갈수록 악화되고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참,형님 탈출얘기를 하다보니까,내가 형님을 체포하러 강추위 속에 청진 바닷가로 작전 나갔던 생각이 납니다.그당시 육해공군과 노농적위대까지 동원돼 동해안 바닷가를 사흘동안 샅샅이 뒤졌는데 배가 도망 못가고 표류하다 잡히면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었습니다』『그래요? 당신이 나를 잡는데 동원됐었단말이지. 내가 그당시 3년동안 얼마나 세밀하게 연구한 끝에 탈출했는데…,어림없는 소리지』김씨는 여씨의 작전참가 사실에 새삼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그 당시 풍향에 대한 면밀한 관찰 끝에 탈출했기 때문에 표류하더라도 해안으로 떼밀려올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고 밝힌다. 『형님이 탈출했을 때 나는 청진에 있었는 데 이미 이 때 일반인들에 대한 배급량이 줄고 군인들마저 잘 먹지 못해 영양실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그런대로 곡물배급은 되는데 부식이 형편 없었어요.훈련도 심하고 중노동을 하는데 육류섭취를 제대로 못하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지요』 『내가 탈출할 당시에도 15일치 배급에서 이틀분이 공제되기 시작했었지.하루 7백g이 정량인 데 5백80g밖에 안나왔거든.그나마 배급시기가 하루 이틀 밀리더니 보름씩 늦어지더라구』 『그 때만해도 괜찮은 편이었어요.종전까지 30%였던 쌀 혼합비율이 89년 들어 10%로 낮아지고 한 두달 밀리더니만 90년엔 석달씩 지체됐고 93년 2월엔 양강도와 강원도 등지에서는 배급이 아예 중단되는 때도 있었습니다』 작은 만철씨는 북한물정을 잘 아는 사회안전부 대위 출신답게 식량배급제의 문제점까지 짚어나간다.『동해안 쪽에는 냉해로 흉작이 들어 실제 1개 협동농장의 생산량이 3∼4t에 불과한데도 이곳에 나와있는 3대혁명소조원들이 어떻게 보고한 줄 압니까.불켜서(늘려서) 5∼6t 된다고 보고하는데,탈곡하고 보관하고 운반하면서 이놈저놈이 빼가는 바람에 1∼2t 밖에 안남게 되지요.그런데 계획에는 5∼6t으로 잡아놓고 배급하니 어떻게 되겠어요.배급체계가 마비될 수 밖에』 이 때쯤 점심식사를 하는데 큰 만철씨가 밥 한그릇을 추가 주문한다.『북한에서는 쌀밥을 곡상(고봉)으로 주면 제일 좋아하지.나는 여기서도 밥을 많이 주면 아직도 기분이 좋아.만철씨는 어때?』 『나는 된장국 같은 것에 쌀밥 한 그릇이면 족해요.북한에선 얼마나 먹고 싶은 것이었습니까.북한의 식량난은 정말 최악의 상태입니다.허리띠 졸라매기,한끼 절약운동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어요.93년 12월엔 김일성이가 직접 텔레비전에 나와 하루 두끼만 먹고 죽을 쑤어먹자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직장에서는 쌀을 구하러 가겠다고 하면 아무나 허가가 납니다.못먹으면 일 못하니까 쌀 사오라고 여행허가증을 떼줍니다』 『그래요,내가 있었을 때는 어림 없었지』 ○북 군인들 영양실조 『다른 것도 변한게 많습니다.청소년들의 행태를 보면 머리는 길게 기르고 미니 스커트가 등장했어요.남한노래를 많이 부르고 디스코 춤도 춥니다』『내가 있을 때는 미니 스커트는 구경조차 못했는데…』 7년간의 시차이지만 세대차를 느낀다고 할 정도로 북한의 사회풍조가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에 김씨는 계속 놀란다. 『이런 것들은 김정일의 승인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김정일이 인민들을 다독거리기 위해 이만큼 개방한 것으로 보아야 하지요.지금 북한 주민들의 견해는 우리가 중국처럼 개방해야 잘 살 수 있고 식량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땅의 사적소유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씨는 주민들이 개방에 눈뜨기 시작한 것은 남한방송을 많이 듣기 때문이라고 전한다.『예전에는 남한방송을 듣지 못하게 라디오에서채널을 통째로 빼내 고정시켰는데 요즈음은 납땜만 합니다.그래 놓으니 땜질한 곳만 적당히 손질해 대낮에 남한방송을 몰래 듣는 사람이 많아요.들키면 호기심으로 그랬다고 하면 되는 것이고,재수없이 안전부에 붙들려 가면 서너달 혼좀나지요』 이에 큰 만철씨는 그당시 남한방송 청취란 생각할 수도 없었고 탈출때 남한이 이처럼 살기 좋은 곳인지도 전혀 모르고 무조건 따뜻한 남쪽나라만을 찾아 뱃머리를 돌렸다고 회상한다. 김씨가 여씨의 얘기에 더욱 놀란 것은 체제비판에 관한 것이었다.『김부자의 유일체제가 변함이 없자 밑에서는 냉가슴 앓는 불만의 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노동자나 지도원 가릴 것 없이 같은 급이 모여서 술을 마시다가 먹을 걱정 얘기라도 나오면 공공연하게 체제를 비판하고 나옵니다』『아무리 끼리끼리라지만 그렇게 비판하고 나오다니 많이 변했네』김씨는 새로운 사실들에 연신 놀라는 표정이다. 『형님이 있을 때도 그랬겠지만 요즈음은 으레 뇌물이 오가고 뇌물로 안되는 일이 없을 정도로 뇌물이 횡행합니다.아이들을좋은 대학에 보내거나 벌목공으로 나가려면 엄청난 액수의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안됩니다.요즈음은 젊은 애들이 군대를 가지 않기 위해 뇌물을 바치고 신체검사 때는 떨어지기 위해 별별짓을 다합니다.정말 많이 달라졌지요』 『왜 그렇지? 그전에는 군에 가면 잘 먹을 수 있고 당원이 되려면 복무를 해야하기 때문에 모두들 입대하려고 야단들이었는데….군에 가기 위해 뇌물도 바쳤지 않아요』 김씨가 잘 이해가 안간다는 반응을 보이자 여씨가 설명을 덧붙인다.『앞서도 얘기했지만 군에 들어가도 먹는 것이 시원찮아 영양실조에 걸리는 상태에서 핵문제로 국제적인 제재가 있게되면 군인들은 전장에서 모두 죽는다는 소문들이 나도는데 누가 가려고 하겠습니까.또 뇌물로 젊은이나 늙은이나 돈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달려졌습니다』 『내가 있을 때는 돈을 많이 벌어봤자 쓸 데가 없었지.어쩌다가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 은밀하게 열리는 암시장에 가보면 쌀 한되에 20원씩 했는데…』『그 때만 해도 옛날 얘기입니다.지금은 쌀 한 되에 60원씩 합니다.그리고요즈음은 돈이 없으면 살 지를 못합니다.모두들 돈 맛을 알아 금전제일주의가 판을 치고 있지요.암시장은 이제 공공연하게 열리고 당국도 묵인하고 있습니다.모든 물자가 모자라니까 사람들이 암시장을 찾게 되고 암시장에서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살 수 있습니다.암시장엔 중국등에 나가 싼 물건을 사다파는 보따리장수들이 많습니다』 ○중국마저 돕지않아 두 귀순자는 대담 후반부에 오늘의 북한문제를 얘기할 땐 강경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이들은 현재 북한에서 권력의 공식 승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음에도 김정일체제에는 아무 이상이 없으나 혈맹인 중국마저 돕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일본이 지원하지 않으면 경제가 파탄돼 그냥 무너지게 돼있다고 단언했다. 두 만철씨는 이어 우리가 인도적 차원에서 양곡을 지원하게 될 경우 양곡은 우리가 보낸 것이 아니라 김정일의 선물로 둔갑하고 미국이 대주는 중유도 군수용으로 전용될 것이 뻔하다면서 절대로 지원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북한이 한국형 경수로 수용을 계속 거부한채 전쟁운운하며 위협적으로 나오고 있는데 대해서도 몹시 못마땅하다는 반응이다. 『북한이 어디 사람이 살 곳입니까.지구상에 그런 곳이 어디 있습니까』 두 만철씨는 생지옥 탈출이 아직도 꿈만 같다고 회상하면서 헐벗고 굶주리는 북한주민들을 생각할 때 남한사람들이 너무 풍족한 나머지 씀씀이가 헤프고 낭비가 많아 안타깝다며 대담을 마쳤다.
  • 귀순 북송교포 오수룡씨/재일 누이와 눈물의 상봉

    ◎서울 앰배서더호텔서/노신사·할머니 되어 이별의 33년 회상/“다시 헤어지지 말자” 손 맞잡고 다짐도 일본에서 북송선을 타고 북한에 들어가 살다가 지난달말 탈출한 북송교포와 재일교포 남매가 33년만에 만나 얼싸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27일 하오2시 서울 중구 소피텔앰배서더호텔 로비에서는 북송교포 오수룡(61)씨 일가족 5명과 오씨의 누나 경자(63)씨,동생 삼룡(51)씨가 지난 세월만큼이나 변한 서로의 모습을 쳐다보며 한동안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다. 한창나이의 이들 오누이가 헤어지게 된 것은 오씨가 일본에서 북송선을 탄 지난 62년.그로부터 33년이 지난 지금 남매는 반백의 노신사와 할머니가 돼있었다. 오씨 일가족을 만나기 위해 일본에서 입국한 누나와 동생이 예정대로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먼저 와있던 오씨는 단번에 달려가 부둥켜안았다. 『형님,어디 계시다 이제 오셨어요』 『여기 오길 잘했다.이제 마음놓고 편히 살겠다』 『아버님은 9년전에,어머님은 7년전에 돌아가셨어』 서로의 안부인사를 끝내자 누나 경자씨는 처음보는 올케 김초미(54)씨를 얼싸안았고 올케는 시누이에게 『북한을 탈출한 게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동생 삼룡씨는 『언론을 통해 형님이 북한을 탈출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만나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되뇌이다 조카 명선(31)씨의 인사를 받고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1시간남짓 극적인 해후를 마친 이들은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며 손을 꼭 쥐었다.
  • 북한인 귀순자 급증/한국 고민거리 부각/NYT 보도

    【뉴욕 연합】 북한으로부터의 귀순자가 최근 부쩍 늘어나면서 한국내에서는 이들에 대한 환영이 예전 같지 못하고 오히려 우려감마저 대두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9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부인과 세자녀와 함께 작년에 북한을 탈출,한국으로 귀순해온 여만철씨(50)의 사진을 곁들인 기사에서 여씨는 종전의 귀순자처럼 대대적 환영과 10만달러가 입금된 통장까지 받았다고 소개하고 그러나 올들어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몇년에 한명씩 넘어올 정도로 귀순자가 드물었으나 올들어서만 최소한 10명에 달하고 있어 한국정부당국은 이들 숫자가 대규모로 늘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
  • 김현희­여금주양 서울신문 합동인터뷰

    ◎두 북녀 서울서 뜨거운 만남/“언니” “금주야” 친자매처럼 남북얘기꽃/KAL기 희생넋 위로 「참회의 기도」/김/미팅·김건모 노래 배우며 대학생활/여 『현희언니』 『금주야』 대한항공 858기 폭파범으로 사형이 확정됐다가 정부의 특별사면조치로 자유인이 된 김현희씨(34)와 지난해 4월 30일 일가족 5명과 함께 귀순한 전 북한 사회안전부 대위 여만철씨의 외동딸 여금주양(21)이 서울신문의 주선으로 처음 만났다. 북에서 온 두 여인의 운명적인 첫 만남은 봄기운이 완연한 주말인 15일 벚꽃이 만발한 덕수궁정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서울의 한복판 프레스센터에서 이루어졌다. 서울생활 9년째이지만 참회와 고뇌로 보내 아직도 「북의 여인」티가 남아있는 현희씨에 비해 금주양은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미팅등 자유분방한 대학생활을 하고있는 탓인지 서울 젊은이 못지않게 맑고 발랄했다. 두 사람은 생전 처음 만났음에도 친자매처럼 금방 친해져 남과 북의 다른 모습과 생활얘기를 나누었다. 여양은 『최근 상당수의 북한주민들이「귀국자」(재일북송교포)로 부터 듣거나 남한방송을 청취,남한이 잘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해 서울에 오기전까지 한국을 「파쇼와 미제국주의자들이 판치는 지옥」으로만 알고 있었던 현희씨를 놀라게 했다. 여양은 또 최근들어 『북한에서는 청소년들의 군입대기피 현상이 확산되고 있으며 상당수의 군인들이 영양실조로 군요양소에 후송되고 있다』고 밝혔다. 여양은 북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공산당에 입당,출세하는 것보다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게 낫다는 풍조가 만연되고 있으며 외화(외화)를 만질 수 있는 직업의 남자가 여성들이 가장 원하는 배우자로 꼽히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도 매주 일요일 교회에 나가며 책을 쓰는 등 열심히 살고 있다는 현희씨는 그동안 모은 10억원에 가까운 출판인세 수입을 KAL기 희생자 유족들에게 마음의 빚을 갚는데 쓰고싶다고 말했다. 현희씨와 금주양의 만남은 4시간동안 계속됐다.
  • 김현희씨·여금주양이 말하는 남과 북/서울신문 첫 합동인터뷰

    ◎“진한 화장 짧은 머리… 평양패션 서양화”/“KBS듣고 남쪽 잘 산다는 것 알았어요”/“외화벌이 남자와 결혼하는게 여성의 꿈”/김/“요즘도 북한의 가족 찾는 꿈 꿔요”/여/“영어에 깜깜… 학교공부 힘들어요” 『현희언니,정말 만나고 싶었어요』 『나도 금주양이 보고 싶었어요』 15일 한국 프레스센터 20층 동백실에서 첫 대면한 김현희씨(34)와 여금주양(21)은 한동안 포옹을 풀지 않았다. 김현희.올해로 서울생활 9년째를 맞는 그가 북한탈출 귀순자를 만난 것은 김만철씨에 이어 두번째.그러나 여성 귀순자를 만나기는 여양이 처음이었다. 검은 블라우스 위에 베이지색 재킷차림의 김씨와 체크무니 재킷차림의 여양은 흡사 친자매같았다.지난해 4월30일 사회안전부 대위출신인 아버지 여만철씨(49)등 일가족 5명과 함께 동남아를 거쳐 귀순한 여양은 서울에 오기 전까지 김씨가 누구인지를 몰랐다고 한다.그도 그럴 것이 북한에선 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해 일절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여양은 서울에 온 뒤 비디오 「마유미」와 그의 고백록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를 읽고 나서 김씨의 아픔을 알게 됐고 언니가 가여워 울었다고 한다. 『화면을 통해 봤을 때와 달리 가까이서 보니 정말 언닌 젊고 예쁘네요.언니가 똑똑하고 예쁘지 않았으면 공작원으로 뽑히지도 않았을 텐데…예쁘게 태어난게 「원수」인 것 같아요.아마 언니가 남쪽사람으로 북한에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벌써 죽었을 거에요』 ○93년 평양 많이 변해 김씨와 여양의 연령차는 13살.그러나 나이차보다 더 큰 간극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시차 7년이었다.김씨가 마지막으로 평양을 떠난 87년까지 북한여성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먹고 사는 일이 전부였다.그러나 여양이 전하는 그 뒤의 북한,특히 여성사회엔 미미하나마 나름대로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88년 처음 평양에 갔을 때는 그곳 여자들이나 내가 사는 함흥여자들이나 별로 다른게 없었어요.그러나 93년 다시 평양에 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달라진 여자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머리모양이 짧아졌을뿐 아니라 브래지어 바람에 속이 훤히 드려다보이는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더라니깐요.거기다 화장도 서양식으로 진하게 하는 등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한 느낌을 받았어요』 여양이 전하는 북한의 이성교제 역시 김씨의 재북시절과는 많이 달라진듯 했다.김씨가 공작원 교육을 받던 87년엔 남녀가 대동강변을 손을 잡은채 돌아다니는게 「첨단 데이트」에 속했다는 것.그러나 요즘엔 남녀가 껴안은채 밀어를 나누는 모습을 대동강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고 여양은 말했다. 밝고 활달한 여양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던 김씨는 여양이 가족과 함께 자유를 찾은 사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북한이 어떤 사회인데,일가족이 고스란히 탈출할 수 있었다니 정말 천행에요』.김씨는 여양 일가의 귀순보도를 대하면서 함남 요덕 「2951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간 가족생각에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이젠 가족생각도 희미해졌다』고 말한 김씨는 『가끔씩 여동생 현옥이와 남동생 현수가 나타나 큰 누나 때문에 식구들이 고생을 하게 됐다고 말하거나 아니면 내가 스웨터 등 보따리 꾸려들고 우리가족을 찾아가는 꿈을 꾸기도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가 지난 91년 3월 여의도침례교회서 세례를 받은후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에 의해 목숨을 잃은 무고한 KAL858기 희생자들에 대한 속죄와 아울러 가족들의 무사함을 하느님께 빌기 위해서라고 한다. 올해 중앙대학교 유아교육과에 입학한 여양이 한국에 와서 놀란 것은 그가 북한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판자집과 거지 천국」에 판자집과 거지 대신 하늘을 찌를듯이 솟은 빌딩숲과 흘러 넘치는 경제적 풍요였다고 한다.여양은 북한에서 KBS 사회교육방송등을 통해 남한이 잘 산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았지만 이렇게 잘사는 줄은 몰랐다고 한다.북한에선 라디오를 구입하면 의무적으로 안전부에 등록하도록 돼있고 안전부는 채널을 납땜,남한방송청취를 원천봉쇄한다고 한다.그러나 일단 등록만 하고 나면 추후검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상당수의 주민들이 몰래 고정납땜을 뜯어내고 남한방송을 듣고 있다는 것.특히 친한 학생들끼리는 남한방송에서 들은 내용을 서로 주고 받기도 하는데 그 가운데는 『남조선에선 거리 청소부도 집에 전화를 매놓고 산다』는 얘기도 들어 있다고 한다.놀랍게도 여양은 친척이 중국에 있는 남학생으로부터 6·25가 남침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고 밝혔다. 북한당국이 주민들에게 북조선이 「지상의 낙원」임을 끝없이 세뇌하고 있지만 정작 북한주민들은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잘산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다고 여양은 말했다.북한주민들은 주로 「귀국자」나 중국연변의 조선족,러시아벌목공들로부터 바깥 세상정보 특히 남한정보를 듣고 있는데 러시아벌목장에서 일하다 귀국하는 벌목공의 경우 품질이 좋은 남한치약을 압수당하지 않기 위해 「MadeinKorea」란 글자를 긁어낸채 갖고 들어온다고 한다.여양은 그래도 평양에서 만든 치약은 품질이 괜찮은 편이지만 지방산 치약은 흰 치분을 물에 반죽해놓은 정도여서 대부분의 가정에선 소금으로 이를 닦고 평양치약은 손님 접대용으로 모셔놓는다고 말했다. ○6·25는 남침 들었다 북한청소년들의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여양은 『북한 청소년들은 꿈을 위대하게 갖지 않는다』고 말하고 요즘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면 장사에 나서 돈을 벌겠다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최근들어 북한에서 군복무기피현상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한 여양은 이같은 풍조 역시 돈을 벌어 잘살아보겠다는 청소년들의 가치관과 무관치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김씨가 『그전엔 김일성과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치겠다』며 입대를 자원하는 청소년들이 많았다고 말하자 여양은 『이젠 어쩔 수 없어 군에 가는 경우가 더 많다』며 김일성종합대학의 경우 전엔 고등중학교 추천 70%,군추천 30%로 신입생을 받아들였으나 이제는 고등중학교 추천 30%,군추천 70%로 그 비율을 바꿔 청소년들의 군입대를 회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양은 젊은이들의 군입대를 기피하는 이유는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과 사망,핵문제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제재로 전쟁이 일어날 경우 맨먼저 죽게 될것이란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했다.물론 군인은 일반 주민에 비해 훨씬 많은 식량(1일 800g)이 지급되지만 변변한 부식없이 쌀 30%,잡곡 70% 비율로 지은 밥만 먹곤 엄청 강도가 높은 훈련을 감당못해 영양실조에 걸리는 장병이 적지 않다는 것.이런 소문이 쫙 깔리는 바람에 젊은이들이 그럴듯한 구실이나 꾀병을 이유로 입영을 기피하고 있다는 것이다.여양은 인민군의 요양소는 대부분 영양실조로 쓰러진 군인들을 수용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젊은이들이 군입대를 기피할 목적으로 자주 써먹는 방법은 신검수검 직전에 엿을 잔뜩 집어 먹고 혈압을 올려 고혈압환자로 위장하거나 X레이 촬영시 러닝셔츠속 가슴팍에 담배곽에서 떼낸 은박지를 붙여 필름에 폐결핵 환부가 나타나도록 위장하는 것 등이라고 한다. 서울생활 1년을 맞는 여양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햄버거.『북한에선 돼지고기도 꿀처럼 먹었는데 여기와선 너무 자주 먹는 탓인지 이젠 신물이 났다』는 여양.그러면서 그는 『사람의 입이 참으로 간사한 것 같다』고 했다. 이미 4권의 고백록과 2권의 번역서를 낸 김씨가 독서에 취미를 가진 반면 여양은 TV시청을 즐기는 편이다.여양이 즐겨 보는 드라마는 KBS­2TV의「딸부잣집」과 SBS의 「이 여자가 사는 법」.김씨 역시 즐겨보는 TV프로로 「딸부잣집」과 뉴스프로를 꼽았다. 강연이나 신앙간증에 나서는 틈틈이 책을 읽고 쓴다는 김씨는 최근에 펴낸 「이은혜,그리고 다구치 아예코」를 얼마전에 구입한 컴퓨터로 썼다면서 『요즘엔 컴퓨터가 생활의 또다른 즐거움으로 추가됐다』고 말했다. 한편 얼마전부터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다는 여양의 가장 큰 고민은 학교공부다.특례입학으로 진학은 했지만 영어에 깜깜한데다 교과과정이 북한과 다르기 때문에 따라가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고 한다.또하나,여양을 괴롭히는 건 미팅이다.얼마전 같은 대학 법대생들과 그룹미팅을 가졌을 때 마음에 쏙드는 남학생을 발견,「찍었는데」 그 남학생이 다른 여학생을 파트너로 정하는 바람에 요즘 「열을 받고」있다는 것이다. ○청소년 군기피 확산 여양은 나이로 보면 분명 X세대지만 부를줄 아는 노래가 주로 가요곡집의 앞쪽에 실린 노래들 뿐이어서 노래방 가기를 꺼린단다.그러나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요즘 독한 마음 먹고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이상적인 남성상을 『비록 자판기 커피일망정 함께 나누며 나를 기쁘게 해주는 남자』라고 밝힌 여양은 같은 또래의 여대생들이 브랜드옷을 고집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몸에 잘맞고 색깔만 잘 받으면 됐지 메이커가 무슨 상관이냐』는 의젓함을 보였다. 서울엔 미인이 많은 것 같다는 여양 말에 김씨는 아마도 식생활이나 환경 탓일 것이라고 설명.북한여성들도 성형수술을 하느냐는 질문에 여양은 『돈을 주고 병원에서 쌍꺼풀수술을 하는데 시술수준이 낮은 탓인지 3년 못가 풀린다』고 말하고 수술이 잘못돼 고등중학교 학생이 할머니로 변하는 웃지 못할 일이 자주 벌어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북한여성들의 꿈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김일성종합대학이나 평양외대를 졸업,외화벌이 기관에서 근무하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으로 두사람이 똑같았다.여양은 그래서 『요즘 북한여성들 사이에선 시집 잘가는게 대학 15곳 다닌 것보다 낫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생지옥」에서의21년의 생활을 마감하고 자유를 마음껏 호흡하게 된 여금주양.그는 이제 배고픔과 유일사상체제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풀려난 것이다.더는 금요노동에 나오라는 지시도 받지 않게 됐으며 영농철 두달간의 노력동원으로부터도 해방이 됐다.어디 그뿐인가.스스로 능력을 키우고 노력만 하면 원하는 것을 움켜쥘 수 있는 가능성의 문앞에 바짝 다가선 것이다.그래서 여금주양은 이제 행운의 여신과 손을 잡은 것이나 다름없다. ○인세 고스란히 저금 그러나 같은 북한에서 태어났어도 평생 벗지 못할 무거운 멍에를 지고 있는 김현희씨.그는 한 인간이 겪어야 하는 불행의 끝이 어디인가를 가늠하지 못한채 오늘도 번민과 죄책감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다.그는 10억원에 가까운 출판인세를 한푼도 쓰지 않은채 고스란히 저금해놓고 있다.KAL기 희생유족들과 합의가 이뤄질 경우 그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는데 쓰기 위해서다.자유의 땅 대한민국에서 거듭 자유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북한의 억압속에 신음할 가족생각에 하루도 눈물 마를 날이 없는 김현희.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 두 여인에게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준 이 불행한 시대상황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하루 빨리 청산해야할 공동의 빚이 아닐는지.여양은 4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끝내고 일어서면서 『언니,외롭거나 마음이 아플 때면 제게 전화 하세요』라며 김현희씨를 다시 껴안았다.
  • “남 기술 수준알면 주민 동요/북,한국형 수용못해”/귀순 강명도씨

    북한 정무원 강성산총리의 사위로 지난해 5월 한국으로 귀순한 강명도씨는 6일 『북측은 체제 혼란을 우려해 한국형경수로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낮 김일성종합대 교수로 있다 지난해 귀순한 조명철씨와 함께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경수로가 남한에서 제공된다는 사실을 북한주민들이 알게되면 엄청난 의식변화가 일어날 것을 무엇보다 경계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조씨도 이와 관련,『북한 고위층은 한국형경수로 건설과정에서 대규모 남한 인력이 투입될 경우 한국의 정확한 실상이 북한주민들에게 전해지거나 건설 이후 운영과정에서 한국측에 기술을 의존하는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또 『지난 91년 이진우란 북한의 유명 시나리오작가가 자료수집차 비밀문헌고에서 김일성과 스탈린의 대화록 테이프를 듣고 난뒤 사석에서 한국전쟁이 북침이 아니라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말을 유포시키다 국가보위부에 끌려가 총살됐다』고 폭로했다.
  • “북,식량 수입하려 아편 재배”/귀순 오수룡씨 가족 회견

    ◎약 대신 사용… 중독자 늘어/평양젊은층 남한방송 청취 열기/오페라 여가수 일방문단 조직하다 행불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북송교포들의 대부분은 일본에 있는 친척들로부터 도움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형편이며 송금된 금액마저도 일부는 북한당국으로부터 세금명목으로 착취당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북송교포들은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당간부들에게 뇌물을 주고 불법사업을 하청받거나 더러는 강도짓을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7일 제3국을 통해 귀순한 북송교포 오수룡(61)씨와 부인 김초미(54),아들 명선(31)씨와 오씨의 손녀 인화(4)·수화(2)자매등 일가족 5명과 이들과 함께 온 박철만(28)씨등 6명은 3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인을 포함해 약 10만명에 이르는 북송인들의 생활상은 천대와 멸시 고통의 연속』이라며 『일본친척들로부터 송금을 받는 북송일본인보다 북송교포들의 생활이 더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이들은 특히 『일본인의 경우 북송될당시 일·북간에 3년에 한번씩 고향을 방문하기로 약속했으나 북한의 실상을 우려한 북한당국의 원천봉쇄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으며 일본에 가려고 시도할 경우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며 『오페라 여가수인 김연길(일본명 나가다 겐지로)씨의 경우는 암암리에 일본 방문단을 조직하다 발각돼 현재 가족들 모두가 온데 간데 없이 행방불명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최근 북한의 실상과 관련,『김일성의 후계자로 김정일이 부상하기 시작한 80년대후반부터 북한의 생활은 갈수록 힘들어 졌으며 특히 심각한 식량난으로 북한당국은 식량수입의 재원마련을 위해 함경도등 산간지방에 「아펜(아편)재배」(일명 도라지밭개간)에 혈안이 돼 있다』며 『그러나 의약품이 부족해 「아펜」을 약으로 사용하는 바람에 부작용으로 죽거나 또는 중독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의 실상을 어떻게 알게 됐느냐는 질문에 『지난해 남한방송을 통해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접하게 됐으며 북한의 젊은층들간에는 남한방송을 듣는 것이 노동신문보다 세계의 움직임을 더 잘 파악할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이때문에 남한방송을 듣는 젊은층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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