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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축구] 황새의 포항, 독수리의 서울 겨우 이겼다

    [프로축구] 황새의 포항, 독수리의 서울 겨우 이겼다

    ‘황새’ 황선홍 포항 감독이 ‘독수리’ 최용수 FC서울 감독보다 높게, 멀리 날았다. 포항은 3일 스틸야드에서 열린 FC서울과의 K리그클래식 16라운드에서 고무열의 결승골을 앞세워 1-0으로 이겼다. 지난 라운드에서 인천에 패하며 휘청였던 포항은 승점 32(9승5무2패)로 단독 선두를 굳건히 했다. 반면 서울은 포항에 3경기 연속무승(1무2패)으로 약한 모습을 보였고 중위권에 머물렀다. ‘잇몸 승부’였다. 서울은 에이스 데얀과 중원의 핵 하대성이 부상으로 빠져 에스쿠데로와 최현태를 투입했다. 포항도 부상 중인 미드필더 황지수 대신 김태수를 선발로 냈다. 조찬호, 배천석, 김승대 등이 슈팅을 날렸지만 김용대가 지킨 서울 골문은 지독히도 열리지 않았다. 서울도 에스쿠데로, 최현태가 부지런히 두드렸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슈팅수(11-7)와 점유율(54-46)에서 포항이 근소하게 앞섰다. 무승부를 예감하던 후반 42분, 고무열이 김승대의 크로스를 오른발로 정확하게 차 넣어 골망을 흔들었다. 최강희 감독의 복귀로 신바람을 내던 전북은 안방에서 성남에 2-3으로 졌다. 좀처럼 보기 힘든 황당한 장면이 연출됐다. 전북은 1-2로 뒤지던 후반 32분, 이동국이 스로인 상황에서 공격권을 성남으로 돌려주기 위해 찬 공이 골키퍼 키를 넘겨 머쓱하게 골망을 갈랐다. 성남은 강하게 항의했고, 특히 김태환은 박희도를 강하게 밀쳐 퇴장까지 당했다. 결국 전북 골키퍼 최은성이 페어플레이 의미로 자신의 골문으로 공을 차 넣었고, 그게 결승골이 됐다. 성남은 5경기 연속 무패(4승1무)를 달렸고, 승점 25(7승4무5패) 고지를 찍어 선두 추격에 불을 댕겼다. 이동국은 시즌 10호골로 페드로(제주)와 득점 공동 1위에 올랐지만 찝찝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수원은 대전을 3-1로 꺾고 홈 3경기 연속무패(2승1무)를 달렸다. 이날로 2년간 정들었던 빅버드를 떠나는 스테보(마케도니아)는 1골1어시스트를 터뜨리며 고별전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울산은 하피냐의 두 골을 앞세워 전남을 3-1로 누르고 2연승, 리그 2위(승점 30·9승3무4패)를 지켰다. 대구는 경남FC를 3-2로 누르고 시즌 3승(5무9패)째를 챙겼고 강원FC는 부산과 2-2로 비겼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2전 3기’ 러드 호주총리 복귀

    케빈 러드(56) 전 호주 총리가 줄리아 길라드 총리와의 경선에서 승리해 3년 만에 총리직에 복귀했다. CNN 등에 따르면 러드 전 총리는 26일(현지시간) 집권 노동당 대표 경선에서 길라드 총리를 57대45로 12표 앞서 당 대표 겸 총리로 선출됐다. 실질적 의원내각제 국가인 호주에서는 집권당 경선에서 승리하면 자동으로 당 대표 겸 총리가 된다. 또 일정 수 이상의 당 소속 의원들이 청원할 경우 수시로 대표 경선을 실시할 수 있다. 러드는 2010년 6월 길라드 총리가 여성 최초로 총리직에 오르면서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물러났었다. 당시 부총리이던 길라드 총리는 자신을 정치적으로 키워준 러드를 당에서 밀어내 자리를 꿰찼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로 실업률이 상승하면서 지지율이 하락했다. 러드는 지난 3년간 꾸준히 총리직 탈환에 도전했다. 지난해 2월과 올해 3월에는 당 대표 경선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길라드 총리에게 패했다. 하지만 오는 9월 열리는 호주 총선 결과 여론조사에서 집권 노동당의 참패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러드의 복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노동당 내 러드 지지파 의원들이 청원을 통해 경선을 요구했고 러드는 당 대표 및 총리직 복귀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의 복귀로 다가오는 9월 호주 총선은 새로운 양상을 맞게 될 전망이다. 이전까지는 토니 애벗 대표가 이끄는 연립 야당이 압승을 거둘 것으로 예상됐다. 러드 신임 총리는 “총선을 앞두고 노동당의 역량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며 “우리가 힘을 모은다면 반드시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시생처럼 아예 엄지머리로 지내는 것이 신수에 편한 것이겠습니다.” “딱히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 지게를 지고 제사를 지내도 제멋이란 말도 있긴 하지만, 식솔을 두고 성가심을 받는 것도 겪어보면 사람 사는 낙이 아니겠나.” “행중 식구에게 부대끼는 것도 시생에게는 힘에 겨운데요.” “세상사란 보기에 따라서 다르게 보일 수 있네. 조그만 구멍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바위를 높다랗게 쌓았다고 볼 수도 있고, 다르게 보면 높은 성벽을 단단하게 쌓기 위해서 둥그런 구멍을 터놓았다고 볼 수도 있지 않겠나.” “무슨 말씀을 하는 것인지 시생은 대중을 못 하겠습니다.” 그때 권재만은 말없이 웃고 말았다. 상단 식구는 오랜만에 종아리에 칭칭 감았던 통행전과 신들메를 풀어 거풍을 시키거나, 담배 잎이나 신갈나무 잎사귀로 밑창을 깐 짚신들을 벗어 햇볕에 말리기도 하였다. 뼈에까지 사무쳤던 땀을 들인 축들이 나귀 등에서 복물짐을 내리는 광경을 멀리 비켜 앉아 지켜보면서, 정한조는 그런 생각에 젖어 있었다. 문득, 콧등을 스치는 강바람이 크게 차갑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강가에는 부들솜을 뭉친 것 같은 버들개지가 흐드러지게 피었고, 멀리 바라보이는 몇 그루의 버드나무는 어느새 연둣빛을 띠며 봄바람을 타고 주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에 분천 강가 길턱에는 나른한 봄빛이 찾아든 것이었다. 시절이 4월 하순으로 들어서면, 질경이에 새순이 돋고, 노린내 나는 괴불주머니, 노란 꽃다지, 눈 속에 피는 복수초, 자주색의 제비꽃, 쇠뜨기, 진달래, 곤드레 잎들이 피면서 수리부엉이가 번식을 시작한다. 너무 바쁘게 설치며 살아온 터라 시절이 바뀌는 것조차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생각이 가슴속으로 가만히 스며들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봄볕에 취해 앉은 채로 꼬박 졸고 말았다. 상단 일행이 등짐을 거룻배로 옮겨 싣느라 북새통을 벌이는 중에 정한조는 사공막 앞에 앉아 흐릿한 눈으로 강 건너를 바라보는 늙은 사공 곁으로 갔다. 그가 나이로 보아선 띠 동갑으로 십수년 손위였지만 안면을 트고 흉허물 없이 지낸 지도 십 년이 넘는 사이였다. “요지간에 짐이나 괴나리봇짐 없이 거루를 타고 건너 다닌 패거리가 여럿이었소?” 강가에 기거하면서 늙어가는 사공이라면 지금 정한조가 건넨 언사가 언중유골임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사공으로 연명하려면 알고 있는 것이 많다 할지라도 미주알고주알 주둥이를 헤프게 놀려서는 안 된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었다. 언사를 사양하지 않고 대중없이 나불거렸다간 사공막이 불살라지고 옆구리에 칼침을 맞는 변고를 겪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울진 염전과 현동과 내성을 수시로 오가는 소금 상단 행수와는 자별한 사이로, 나중에야 조리돌림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닌 보살로 손사래만 칠 수 없는 처지였다. 금쪽 같은 됫박 소금도 수시로 얻어먹은 전력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입이 간질간질하였으나 또다시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처지는 그렇다 할지라도 지금 거룻배에서 노질하고 있는 두 젊은이는 모두 늙은이 슬하에 거두고 있는 소생들이었다. 낡은 거룻배 한 척에 늙은이를 비롯해서 주렁주렁 매달린 가솔의 생계가 붙잡혀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간질거리던 입술이 굳어지고 말았다.
  • [미·중 정상회담 이후] 정상회담 평가 전문가 인터뷰

    [미·중 정상회담 이후] 정상회담 평가 전문가 인터뷰

    지난 7~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휴양지에서 열린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 첫 정상회담이 강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미·중 정상회담 역사상 최고의 파격적 형식과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데 두 정상이 완전하고 절대적인 합의를 이뤘다”는 획기적 회담 결과는 두 강대국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데탕트(긴장완화) 국면’에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관측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연 이번 회담의 형식과 결과가 새로운 미·중관계의 서막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로 인해 세계질서가 다시 쓰여지는 것인지에 대해 세계는 지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중 양국의 전문가들로부터 이번 회담의 성과와 향후 양국 관계 전망을 들어봤다. ■앨런 롬버그 美스팀슨센터 동아시아 국장 “美·中정상 새 관계 구축 성공적” “두 정상 간 새로운 관계 구축이 목표였다고 본다면 이번 회담은 성공적이다.” 앨런 롬버그 미국 스팀슨센터 동아시아 국장은 9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전날 끝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첫 정상회담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롬버그는 국무부 정책기획국 부국장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중국 분석관 등을 역임한 미국 내 대표적인 동아시아 전문가다. →이번 정상회담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나. -양국이 당초 설정한 회담의 목표는 두 정상 간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회담 결과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협력’을 말했고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회담 결과는 앞으로 양국 관계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줄 것이다. →백악관은 이번 회담의 의미를 1972년 당시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과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주석 간 만남에 견줬는데. -양국 관계가 의미심장하고 진지하게 변화할지, 전략적 긴장관계가 완화될지 등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고 싶다. →백악관은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이 8시간이나 만나는 등의 파격이 전례 없는 일이라고 평가했는데. -그 점에는 동의한다. 두 정상이 이번 회담의 형식에 의기투합한 것은 옳은 판단이다. 타이밍상 오는 9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나는 것보다 시기를 앞당긴 건 잘한 일이다. 수도에서의 퍼레이드나 공식 만찬 등 격식을 갖춘 회담에 비해 이런 비공식 회담은 이점이 많다. 원고 없이 오랜 시간 대화하다 보면 진정한 속내를 교환할 수 있다. →두 정상의 친분이 두터워진다 하더라도 시 주석의 경우 중국 특유의 집단 지도체제 때문에 재량권을 발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도 있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색이 ‘넘버원 권력’인데, 이런 식의 회담이 아예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시 주석이 이런 파격적인 형식의 회담을 수용한 것 자체가 그의 파워를 보여 준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시 주석은 국가이익과 직결되는 현안을 다루는 데는 조심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 정상도 마찬가지다. 시 주석이 귀국한 뒤 이번 회담 결과에 대해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와 논의하게 되는 것처럼 오바마 대통령도 각종 현안에 대해 내각은 물론 의회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시 주석과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스타일이 다르다고 보나. -후 전 주석에 비해 시 주석이 더 개방적인 성격인 것 같다. 대화를 피하지 않고 원고 없이 말하는 경우도 더 많다. 하지만 그런 차이가 국가의 정책에까지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다.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완전한 합의’를 이룬 것을 어떻게 평가하나. -전반적인 톤은 긍정적인 게 틀림없다. 물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양국이 강한 어조로 미래의 협력을 말한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중국의 대북 입장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보나. -2010년 북한의 도발(천안함, 연평도 사건) 때 북한을 감싸고 돈 것과 비교하면 최근의 자세는 협조적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중국은 여전히 북한의 붕괴까지는 바라지 않는다고 본다. →최근 재개된 남북대화를 미·중은 지지할까. -그렇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 모든 나라는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지 주의깊게 평가하고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대화 테이블에 올린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비핵화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징후는 아직 없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방침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대화 기류가 장기적으로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북한이 확실하게 대화 기조로 돌아선 것으로 보이나. -단기간 내 도발은 안 할 것이다. 지금은 도발하면 중국으로부터 ‘징계’와 불이익을 받는 국면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왜 대화 기조로 돌아섰을까.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전 대화를 재개하는 게 유용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진찬룽 中인민대학교 국제관계학원 부원장 “中의 변화는 北태도 수정 전략” “중국은 제3자와 북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지만 이번 정상 회동에서 보듯 많이 달라졌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북핵 불용(不容)’을 함께 천명했고, 오는 27일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때도 북한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중국은 북한에 대화를 종용하고 있지만 비핵화에 대한 성의 있는 조치를 하기 전까지 중·북 정상회담은 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인민대학교 국제관계학원 진찬룽(金燦榮) 부원장은 1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중·미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중국의 대북 전술 변화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진 부원장은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박사 출신으로 중·미 관계, 중국 국내와 한반도 문제 등에 정통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중·미 두 정상의 북핵 불용 선언이 북한에 어떤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보나. -북에 근신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더 이상 도발할 경우 아무도 북한과 상대하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를 던졌다. →중국의 대북 태도 변화가 이번 정상회담에 반영됐나. -과거 중국은 북한의 기분을 살피느라 제3자와 북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었으나 이제는 공공연히 하고 있다. 이는 북에 대한 압력 행사다. →중국은 대북 문제에 있어 앞으로 어떤 식으로 북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나.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방중 때 ‘대화’는 언급했으나 중국이 요구한 비핵화는 말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6자회담 재개는 어렵다. 중국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대화에 나서는 등 미국에 이어 한국과도 만난다. 반면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북·중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중·한·미가 대북 공조를 이룬다면 북한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고 결국 우리의 요구(비핵화)에 응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태도 변화는 대북 정책 변화를 말하나. -아니다. 중국은 북한을 포기할 수 없다. 미국은 북한 정권의 붕괴를 원하지만 중국은 북한이 정책을 바꾸기만 바랄 뿐 북이 계속 완충지대로 남길 바란다. 다만 북의 태도를 수정하기 위해 전략만 바꿨을 뿐이다. →한국에서는 중국이 ‘북핵 불용’을 공식화한 것은 처음이란 반응도 있는데. -일관적인 입장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다만 중·미가 뜻을 모아 재천명한 것은 처음이어서 의미가 있다. →이번 회담의 성과는. -중·미 양국 지도자가 개인적인 신뢰를 형성하고, 중국이 요구한 새로운 대국 간 관계에 대한 의견 일치를 이뤘다. 북핵·군사교류 개선·사이버 안전·기후변화 등의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하는 등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냈다. 양국 정상 간 상호 방문, 통신, 전화 등의 교류를 강화하고 각 부문 간 소통을 넓혀 양국의 갈등을 관리하기로 했다. 국제 및 지역 문제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도 후한 점수를 줘야 한다. →중국의 입장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와 남중국해 영토분쟁 문제에 있어 미국에 우리의 반대 편에 서지 말아 달라고 말했지만 미국 측 발표로 볼 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동은 누구에게 더 이득인가. -중국이다. 우선 형식적인 면에서 기존에 랜초미라지 서니랜즈로 초청됐던 원수들은 모두 영어권 국가나 미국의 맹방이었다. 이번에 중국을 초청한 것은 중국이 미국의 친구라는 점을 인정하겠다는 메시지다. 특히 오바마는 이번 회담에 대한 미국 엘리트층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시진핑 국가주석을 초청했다. 미 엘리트층은 아직 중국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오바마가 중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지하고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선택을 했다. →아메리칸드림과 시 주석이 주창한 ‘차이나드림’은 시 주석의 말처럼 서로 통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반론이 많은데. -차이나드림은 당초 중국 내 좌우 간 이데올로기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적 역량을 하나로 결집시키기 위해 탄생한 개념이다. 외부 세계에서는 이를 민족주의 회귀로 해석했다. 중국은 이 같은 문제점을 발견한 뒤 다시 개인의 이상을 실현하면서 국가도 더불어 발전시켜 나간다는 의미로 이 개념을 개선했다. 개인의 꿈을 실현하는 부분이 포함되면서 아메리칸드림과도 통하는 부분을 갖게 됐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현장 행정] 조길형 영등포구청장의 18개동 ‘일일 동장 투어’

    [현장 행정] 조길형 영등포구청장의 18개동 ‘일일 동장 투어’

    “우리 동네에는 노숙인 보호 시설이 너무 많아요.” “영등포역 앞을 지날 수 없을 정도로 노점상이 많아요.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아요.”(주민 대표) “시설에 계신 분들은 사회 복귀를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죠. 같은 자리에서 30~40년 장사한 분들을 강제로 내쫓기는 어려워요. 상생하는 방법을 고민해 보겠습니다.”(조길형 영등포구청장) 건장한 체격의 한 남성이 29일 오전 10시 영등포구 기계공구상가 거리에 있는 영등포동 주민센터에 들어서더니 “사랑합니다”라고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아침 일찍 온천 나들이에 나선 독거 노인 100여명을 배웅하고 온 조 구청장이다. 오는 7월까지 18개 동을 순회하는 ‘일일 동장 투어’의 두 번째 날이다. 사무실보다 현장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로 현장행정이 일상이지만 일일 동장 체험은 특별한 시간이다. 동네 한 곳 한 곳을 집중적으로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여서다. 30년 넘게 살아온 곳이라 눈을 감고도 구석구석 모르는 데가 없을 텐데 민원 사항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주민 의견은 귀로 직접 듣고, 무엇이든지 몸으로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고 했다. 구정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구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지름길은 현장행정밖에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섬세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동장이 병가에 이은 교육 연수로 장기간 자리를 비우고 있는 탓에 조 구청장은 영등포동이 무척 신경 쓰이는 눈치였다. 진지한 표정으로 여름철 침수 대비 현황을 꼼꼼하게 점검하다가 주민센터 여직원까지 양수기 다루는 방법을 배웠다고 하자 그제서야 웃음을 지었다. 그는 주민 간담회에서 나온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답하면서도 “물기를 조금만 줄여도 예산이 엄청나게 절약된다”며 다음 달 1일 시작하는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민원이 끊이지 않는 재정비 촉진 지역을 살피러 영등포시장통을 걸어가면서도 쉴 새 없이 곳곳을 살폈다. 쓰레기가 버려졌거나 상점에서 인도를 점거한 곳이 눈에 띄면 득달같이 지시를 내렸다. 중앙공원 인근 영삼어린이집을 찾아 어린이들에게 ‘손 하트’를 날리며 환하게 웃던 조 구청장은 곧 자치회관을 찾아 사물놀이를 즐기던 동네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주민센터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하며 직원들의 고충에 귀를 기울이고는 인근 한국조리사관학교에서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제공하는 요리 강좌의 수료식도 찾아갔다. “구민과의 약속은 끝까지 지키는 구청장으로 남고 싶다”는 조 구청장은 양평유수지 생태공원에서 열린 모내기 체험 행사까지 숨가쁜 일정을 거듭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최근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주최 민선5기 3년차 기초단체장 공약 이행 평가에서 최우수구로 선정된 게 이처럼 현장을 누빈 덕택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양복 입고 다니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도 듣지만 이렇게 민방위복을 입고 넥타이를 풀어버린 채 뛰어다니는 게 좋아요. 현장에서 문제를 찾고, 현장에서 답을 찾는 것, 지역 일꾼이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깔깔깔]

    ●알 건 다 아는 나이 가정주부가 딸아이에게 줄 인형을 만들고 있었다. 무릎 부분을 힘겹게 마무리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나야. 지금 뭘 하고 있어?”하고 일곱 살 된 아들 녀석이 묻는 것이었다. 엄마는 입에 물고 있던 핀들을 치우고 대답했다. “아기를 만들고 있다.” 그랬더니 아무 말이 없다가 녀석은 침착하게 묻는 것이었다. “그럼 아빠 집에 있는 거야?” ●난센스 퀴즈 ▶핑계만 대는 고등학교는? 아니그게 아니고. ▶자기만 갈수있는 나라는? 꿈나라. ▶쇼핑을 가장 많이 하는 동물은? 사자. ▶입으로 먹지 않고, 귀로 먹는 것은? 욕. ▶한국 최초로 새 발의 피를 본 사람은? 흥부.
  • [씨줄날줄] 용감한 시민/최광숙 논설위원

    1912년 1월 17일 영국군 스콧 대위는 평생의 소원이던 남극점을 밟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노르웨이의 아문센보다 불과 한 달이 늦어 첫 남극 탐험자라는 영광을 누리지는 못했다. 게다가 그는 귀로에 사나운 눈보라에 갇혀 죽고 말았다. 몇 달 후 그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와 함께 발견된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용기를 잃지 말자!” 지난해 1월 17일 교통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미국의 그랜트 코건이 2주 동안 극한의 추위를 견디며 특별히 제작한 ‘좌식 스키’에 앉아 손으로 스키를 밀어 120㎞를 이동, 남극점에 도달했다. 이날은 스콧이 남극점을 정복한 지 꼭 100년째 되는 날이었다.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향해 모험의 도전장을 내고, 신체 장애를 극복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일은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다. 남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용기 아닌가.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가 저서 ‘수상록’에서 일찍이 “미덕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고매하며 훌륭한 것은 ‘용기’다”라고 말한 것도 그래서일 게다. 용기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지난 3월 자살하는 이를 살리려고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사망한 강화경찰서 정옥성 경위, 지난 2003년 달리는 열차에 치일 뻔한 어린이를 구하고 두 다리를 잃고도 보육원 아이들을 데리고 열차 여행을 시켜주는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씨. 살신성인(殺身成仁)하는 용기로 세상을 환하게 밝혔던 이들이다. 사회의 거울이 되는 특별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 있듯이, 동물 세계에도 특별히 용감한 동물이 있어서 전체 무리를 이끈다. 얼음 위에서 무리를 지어 생활하던 펭귄들이 먹이를 찾아 바닷속으로 뛰어들려 할 때 한순간 모두 멈칫거린다. 바닷속에서 상어나 바다표범 등이 펭귄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한 펭귄이 바다에 몸을 던진다. 그 ‘용감한’ 펭귄이 몸을 사리지 않고 맨 먼저 뛰어들면 그제야 다른 펭귄들도 뒤따라 바다로 향한다. 최근 영국 런던에서 흑인 청년이 영국 군인 한명을 살해했다. 두 아이의 어머니인 잉그리드 로요 케네트가 마침 차를 타고 가다가 이 장면을 보고 차에서 내려 칼을 든 테러범을 설득해 다른 피해를 막았다고 한다. 지하철 자리를 놓고도 다툼을 벌일 정도로 소소한 이기심이 넘치고,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범죄도 외면하는 각박한 세상에서 홀로 테러범에 맞선 이 여성의 용기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다. 용기가 가장 빛이 날 때는 바로 역경에 처해 있을 때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서울광장] ‘한 길 사람 속’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한 길 사람 속’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최광숙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5일 언론사 정치부장단 만찬에서 ‘윤창중 스캔들’과 관련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그런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혹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윤씨를 청와대 대변인으로 뚝심 있게 밀어붙인 박 대통령의 입장에서 얼마나 실망을 했으면 저런 말까지 하랴 싶다. 버선 속 뒤집어 보듯 사람 가슴속 면면을 훤하게 들여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라 박 대통령의 답답한 심정이 이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을 곱씹어 보면 정작 중요한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의 말 속에는 윤씨가 설마 대통령 방미 수행 중 어린 인턴에게 엉뚱한 짓거리를 하리라 누가 어떻게 알았겠느냐며 그를 탓하고 있다. 하지만 잘못된 판단으로 윤씨에게 중책을 맡긴 인사권자의 ‘과오’나 ‘실책’에 대한 반성은 없다. 어제는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대통령의 심경을 들으면서 불교의 ‘여실지견’(如實知見)이란 말이 떠오른다. ‘여실’이란 ‘있는 그대로’고, ‘지견’은 ‘알고 본다’는 뜻이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 알고, 있는 그대로 본다’는 의미다. 여기 물병에 든 물, 큰 바다의 물, 동물들이 마시다 만 물이 있다고 하자. 이들 물은 보는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맑다고도 하고, 더럽다고도 한다. 하지만 나중에 무엇이 섞이건 본디 물은 맑은 물 하나일 뿐이다. 어떤 상황이든 사물의 본성(本性) 자체를 바로 볼 수 있는 지혜를 갖추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윤창중씨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거 대통령이 만났던 윤창중과 현재의 윤창중은 과연 다른 인물일까. 자극적 글귀로 칼럼을 써대던 보수 논객 윤창중, ‘밀봉인사’ 논란을 일으켰던 인수위 대변인 윤창중, 메이컵에 신경을 쓰던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 생일이니 외롭다며 딸뻘 되는 인턴에게 치근덕거린 윤창중. 이 모두 같은 윤창중이다. 예전에 대통령에게 그럴싸하게 보였던 윤창중이나 세계적 웃음거리로 전락한 윤창중이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다만 그의 민낯을 ‘여실지견’하지 못한 무명(無明·어리석음)이 있을 뿐이다. 사실 그가 몸담았던 언론계의 많은 사람들은 윤창중의 실상(實相)을 알 만큼 알고 있다. 대통령만 ‘한 길 속 윤창중’을 몰랐지 않았나 싶다. 박 대통령은 이날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을 또 하게 될지 모르겠다”고도 했다고 한다. 이런 말을 반복하는 상황이 와서는 안 된다. 이번 윤창중 스캔들을 통해 어떤 경우든 ‘인사(人事)가 망사(亡事)’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지 않았는가. 박 대통령이 앞으로 ‘한 길 사람 속’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인사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상시 검증체제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대 과거 정권에서도 대통령이 낙점한 인사라면 인사검증 시스템이 아예 작동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대통령이 개인적 인연이나 주관적 판단으로 인사에 임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인사 시스템도 무용지물로 전락하게 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 스스로 사람이든 정책이든 ‘여실지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올바른 판단으로, 맑은 마음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면 사람이든 정책이든 바로 볼 수 없다. 그러려면 편견이나 선입견에 얽매이지 말고, 과거 경험에 대한 지나친 맹신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는 구도의 길이 힘들 듯 국정 운영에서도 ‘여실지견’할 수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변에 좋은 참모를 둬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대통령의 심기 보좌에만 전전긍긍하는 참모는 멀리해야 한다. “아니되옵니다”를 외칠 수 있는 소신과 용기를 가진 참모를 일부러 찾아 곁에 둬야 한다. 성공적 국정 운영은 박 대통령 자신의 철학과 소신도 중요하지만, 많은 이들과의 소통을 통해 자신과 다른 시각을 얼마나 많이 포용하는가에 달렸다. bori@seoul.co.kr
  • [깔깔깔]

    ●20대 중반이 넘으면 하지 말아야 할 행동 2 1. 구차한 변명 따위를 늘어놓지 않는다. ▶‘과정의 중요성’이란 구차한 변명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결과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2. 근거 없는 소문에 열 내지 않는다. ▶자신이 관련된 것이건 아니건 소문은 함부로 믿지도 말고, 퍼뜨리지도 않는다. 특히 가십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3. 무슨 일이든 ‘배째라’ 식으로 나가지 않는다. ▶이제는 자신이 하는 일에 책임을 져야 할 때, 시작했으면 중도에 포기하거나 징징거리지 않는다. 4. 술은 주는 대로 홀라당 받아 마시지 않는다. ▶이제는 스스로 주량도 알 때 아닌가.
  • 총리비서실 이태용 민정실장 무슨 역할 할까

    총리비서실 이태용 민정실장 무슨 역할 할까

    국무총리의 눈과 귀로 불리는 총리 비서실의 민정실장 자리가 정부 출범 이후 두 달 보름 남짓 만에 가까스로 채워졌다.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 사람으로 알려진 이태용(52) 전 한나라당 부대변인이 임명돼 지난 13일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이로써 옛 국무총리실인 총리 비서실과 국무조정실(국조실)은 6번째 고위공무원단 가급 인사 끝에 1급 실장 인사를 마무리했다. 총리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민정실장을 긴 공백을 거쳐 임명한 것은 집권당 내 일부 인사들이 제 사람 심으려는 다툼으로 ‘교통정리’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라는 게 새누리당 안팎의 이야기다. 이태용 신임 실장은 신민주공화당에서 정당 생활을 시작해 자민련 조직국장, 김용환 상임고문(당시 한나라당 국가혁신위원장)의 보좌역 등을 지낸 정당인이다. 새 정부 실세로 통하는 김용환 상임고문의 사람으로 알려져 그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실장의 행보에 따라선 총리산하 국조실과 총리 비서실의 분위기나 역학 관계도 크게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실장은 정홍원 국무총리와도 고향이 같은 경남 하동 출신이다. 민정실장은 현장에서 민심과 민원, 공직 활동 및 국정 진전 상황을 점검·파악하고 총리에게 그 결과를 보고한다. 총리를 수시로 만나고 주요 현안 내용을 얼굴을 맞대고 보고하는 일이 많은 탓에 ‘총리의 암행어사’로도 불린다. 총리와 호흡 맞추기에 따라선 차관급인 비서실장과 국무차장들을 쥐락펴락할 수도 있는 자리다. 과거 국조실과 총리 비서실 인사가 나눠져 있을 때에는 민정실장의 커진 역할로 두 기관이 불편한 관계에 빠졌던 적도 많았다. 민정실장이 국조실의 문제점들을 들춰내 궁지에 몰아넣거나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의 애를 먹이는 때도 적지 않았던 탓이다. 게다가 민정실은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비정부기구(NGO) 및 시민사회와의 소통 업무를 담당하는 특임장관실의 업무를 흡수했고, 예산 일부도 이어받아 업무 범위와 추진 여력도 크게 확대된 상태다. 일반인들의 민원·건의사항을 접수해 대응하고, 여론을 총체적으로 평가해 총리에게 보고하는 역할도 한다. 한편 지난 5년 동안 민정 업무를 매끄럽게 관리해 왔던 김성완 민정민원비서관은 지난주 사표를 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총리 인사검증에서 정 총리의 검증 자료 준비를 총괄하는 신상팀장으로 검증 문제 등을 무난하게 넘긴 데다 정치권에 인맥도 넓어 민정실장 기용설이 나오기도 했었다. 세종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기고] 외국인 눈에 비친 우리 공권력/이석 서울경찰청 생활안전과장

    [기고] 외국인 눈에 비친 우리 공권력/이석 서울경찰청 생활안전과장

    국내에 있는 외국인들에게서 통상 우리가 아는 그들과 다른 행태를 보는 경우가 있다. 남에게 피해를 줄세라 소곤소곤 얘기하는 일본 사람들이 서울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에선 왁자지껄한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해가 지면 그야말로 가정으로 사라져 여행자들을 따분하게 만드는 서구인들이 한국에선 술에 취해 이태원과 홍대 주변을 배회하며 싸움에 휘말린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여행자의 객기로 이해할 수 있다. 또 다른 모습이 있다. 불법 행위를 하면 상원의원도 순경에게 꼼짝없이 체포되고 대들었다간 경찰관의 총을 맞을지도 모르는 사회가 미국인데, 이런 환경에서 태어나 성장한 미군 병사가 이 땅에선 차로 경찰관을 밀어붙였다. 수많은 인파가 공안 한 명의 대나무 회초리를 피해 황급히 줄을 맞추던 이웃나라 중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단속 경찰관에게 민주 경찰, 폭력 경찰하며 주먹질에 칼까지 휘두른다. 타국에 가면 행여 그 나라 관헌에게 단속당할 일이 없는지 조심스러운 것이 보통인데, 일부이지만 어째서 한국에 있는 외국인은 정반대인가. 범죄단원이 아닌데도 말이다. 현재의 체류 외국인 증가 추세를 감안하면 이런 상황들은 더 빈번해질 것이 분명하다. 법질서를 흐리는 외국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먼저 정부 차원이다. 외국인 출입이 급증하는 현실에서 출입국 관리가 진정으로 우리 사회를 보호하는 장치로 작동해야 한다. 단순 불법체류자 강제출국보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흉악·파렴치 범죄를 저질러 공동체 사회에 해악을 끼친 외국인을 과감히 강제 퇴거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인권단체의 시비를 우려해 관계기관이 소극적이기엔 한국은 이미 충분히 열린 사회이고, 인권보호국이다. 출입국관리법 11조에 따르면 경제, 사회 질서를 해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칠 ‘염려’만으로도 입국을 거부할 수 있으나, 이미 입국한 외국인은 금고형 이상의 중죄를 저질러야 출국시킬 수 있다(46조). 게다가 요즘은 웬만한 사기, 폭력, 심지어 강·절도범조차 벌금형이 보통이므로 출국당할 일도 별로 없다. 벌금형이라도 전과가 반복되면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위로 간주, 강제출국시킬 수 있어야 한다. 조밀한 사회에서 다국적민들이 어우러져 살려면 내외국인 관계없이 규칙 위반(즉 범죄)의 대가는 엄중해야 한다. 다음으로 사회의 분위기다. 일반적으로 외국인들은 체류국의 법, 제도 등을 잘 모르니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체류국 국민들의 행동을 따라 하기 마련이다. 자국민들이 지키지 않는 사회질서와 공중도덕은 외국인도 안 지키며, 국민들이 무시하는 공권력은 외국인들도 함부로 생각한다. 국내 외국인들이 평소의 그들과 다른 행동을 보이거나 법질서 일탈과 대한민국의 공권력을 무시하는 행위는 결국 외국인에게 투사된 우리의 모습인 셈이다. 주권자인 국민들이 자기 나라 법질서와 이를 수호하는 경찰을 소중히 생각해야 외국인들도 따라할 것이다. 외국인이 우리의 공권력을 우습게 보면 그 피해는 누가 받겠는가. 결코 외국인 혐오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반수님께서도 안녕하신지요?” “예.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었지요.” “이번 파수에는 어떤 물화를 가져갈 요량입니까?” “궂은 날씨에 소금섬을 지고 오느라 행중 모두 뼛골이 어긋날 정도였소. 그래서 우리 행중은 보행객주에 등짐을 내리면 너 나 할 것 없이 정강이를 내놓고 쑥찜질하느라 분주하오. 젊을 땐 얼추 쑥으로 다스린다지만, 나잇살이나 들면 병증이 골수에 사무쳐 기동이 임의롭지 못할 것이오. 그래서 이번 파수에는 피륙을 흥정하든 담배나 곡물을 흥정하든 동무들에게 맡겨 두려 하오. 행중 식구들과 오랫동안 작반하면서 살펴보았소만, 그만하면 나름대로 안목을 가졌고 눈썰미도 출중해서 모두 제 그릇을 가진 터에, 도감이라 해서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사사건건 간섭이 낭자하면 여기저기서 불퉁가지들 내겠지요.” 정한조의 말에 둘러앉았던 동무들 중에 어떤 사람은 빙긋 웃고, 어떤 사람은 떨떠름해서 마뜩잖아하였다. “임방 하직하고 도가로 오는 중에 술청 거리 앞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어디서 논다니들이 떼로 몰려왔는지 예전과 달리 퍽이나 분주하더군.” 정한조가 술청 거리를 지나오면서 받은 뒤틀린 심사를 얼굴에 그대로 꿰고 윤기호를 쏘아보는데,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반에 놓아 둔 막걸리 한 잔을 정한조에게 낼름 권하며 말했다. “잘 아시다시피 현동 저자나 내성장에는 경상우도 상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멀리 송도(松都)나 원산(元山)의 행상이나 심지어 호상(胡商) 들까지 출입을 합니다. 그중에서도 울진 포구 염전에서 온 소금장수 행수 상단의 주머니가 가장 두둑하다는 것을 뜨내기 논다니들이라 할지라도 모를 리 없지요. 떼배들이 숨차게 오르내리는 충청도 목계 갯벌 저자나 고령의 개포 뱃나들에는 삼폐 기생이며 들병이들 수십 명이 떼를 지어서 몰려와 주변에 원진을 치고 있답니다. 한수를 오르내리는 떼꾼들의 엽전 꿰미를 겨냥하는 것이지요. 그들에게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안동부중을 통틀어 울진 포구에서 온 내성 장시 소금 상단만큼 주머니 사정이 두둑한 행중도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논다니들은 계집에 주린 상단이 들이닥치면 불난 집 개처럼 날뛰게 되지요.” “귀로 듣기는 좋을지 몰라도 실은 좋지 않은 소문이오. 소금 팔아 길미를 보기는 하지만, 모두 전대에 넣고 다니진 않소.” “모두가 집도 절도 없는 홀아비 신세들인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다니 포주인이 우리 행중 모두 사타구니라도 뒤져 보았더란 말이오?” “아이구, 아닙니다. 시생이 자발없이 내뱉은 말일 뿐이지요.” “말이란 어 다르고 아 다르다 하지 않았소.” “우리는 전대를 차고 다니지도 않을뿐더러 계집에 주린 사람들도 아니오.” 그 순간, 둘러앉았던 행중의 시선들이 어찌 된 셈인지 일제히 길세만에게 쏠렸다. 눈치를 알아챈 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열없어서 입도 뻥긋 못 하고 있던 그가 한참만에 모꺾어 앉으며 볼멘소리를 하였다. “이런 낭패가 있나. 왜 나를 쳐다들 봐. 내 턱에 개똥이라도 묻었나?”
  • 20살 ‘풋내기 중수’, 51년만에 숭례문 복구하다

    20살 ‘풋내기 중수’, 51년만에 숭례문 복구하다

    “숭례문을 뜯어는 놓았는데 기술자가 없어 다시 세우지를 못 한다네.” 어둑어둑해지는 해거름 무렵 서울 마포구 아현동 골목 어귀에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런거렸다. 1961년 7월 해체를 시작한 숭례문은 1962년 3월쯤 완전히 해체됐다. 현재 남대문시장 쪽에 아름드리 나무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1962년 4월 ‘급래’(急來) 딱 두 글자의 전보를 받고 서울로 뛰듯이 올라와 숭례문 중수 현장에서 일하던 당시 20살의 어린 목수 신응수는 걸어서 아현동 거주지로 퇴근하던 길에 이런 걱정을 들었다. 신 목수는 마음속으로 “내가 바로 그 숭례문을 다시 세우는 사람입니다”라고 외치며 어깨에 한껏 힘을 주고 뿌듯하게 지나갔다. 해체된 목공사가 완료되던 1962년 12월 20일 숭례문은 국보 1호로 지정됐다. “지금이라면 가던 길을 멈추고 ‘어르신 걱정하지 마세요. 대목장 조원재(1903∼1976) 지휘 아래 잘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할 텐데?”라고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신응수(71) 대목장은 회상했다. 그는 1963년 3월까지 만 11개월 동안 조원재 대목장 밑에서 대패질과 톱질을 하면서 숭례문이 조선 전기 건축물 양식으로 군더더기 없이 완전해지는 데 힘을 보탰다. 1963년 5월 14일 숭례문에서 완공식을 했다. 그 뒤 50년이 지난 2013년 5월 4일, 2008년 2월 방화로 2층 문루가 크게 소실됐던 숭례문이 5년 3개월 만에 복구공사를 마치고 국민들에게 완전히 돌아온다. ‘숭례문, 문화의 새 문이 열린다’는 슬로건 아래 연극 연출가 이윤택(61)씨가 경축 행사를 총감독한다. 중수에 참여했던 20살의 신응수는 66세에 대목장으로 숭례문 복구공사에 참여해 칠순을 넘겼다.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신응수 대목장과 28일 숭례문 현장을 찾았다. 숭례문은 1395년(태조 4)에 짓기 시작해 1398년 완성한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조선의 수도인 한성을 보호하는 성곽의 남문으로 남대문으로 더 잘 알려졌다. 이후 1447년(세종 29)에 개축했으나 1961~1963년의 중수 과정에서 1479년(성종 10)에도 대규모 보수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번 복구의 기준은 1960년대 중수였다. 그래서 복구된 숭례문의 외관은 조선 전기에 사용했던 녹색과 청색이 주조를 이루는 단청을 입었다. 울긋불긋한 절집의 단청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위엄 있고 묵직한 느낌이다. 당시 중수의 책임자였던 조원규 대목장은 숭례문의 1층이 조선 후기 양식으로 변형돼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전기 양식으로 바로잡았다. 조선 후기 건물 양식인 광화문 등에 달렸던 완초공 등을 제거했고, 덩굴무늬 등도 당연히 없앴다. 그 과정에서 문화재 담당 공무원과 갈등도 빚고 그만두기도 했다. 당시 문화부 차관이 조 대목장 집을 찾아가 모셔 오지 않았더라면, 숭례문 중수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는 일화도 있다. 이번 복구공사가 1960년대 중수와 다른 점은 더 철저하게 전통 방식으로 복구하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공장에서 찍어 낸 기와가 아니라 손으로 직접 제작한 가벼운 기와를 썼고, 대장간을 숭례문 복구 현장에 설치해 직접 못과 철물을 만들어 썼다. 중수보다 용마루 길이가 0.9m 늘어나 16.6m가 됐고, 1층 잡상(지붕 장식물)도 8개에서 7개로 줄었다. 1층 마루도 우물마루에서 장마루로 바뀌었다. 성곽을 좌로 16m, 우로 53m 복원해 군사시설이란 목적을 확실히 했다. 목재도 도끼와 자귀로 다듬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런 시간을 계산하지 않은 탓에 늘어난 목수들 품삯을 놓고 문화재청과 갈등이 생겨 지난해 1월 목공사가 한 달 정도 중단되기도 했다. “옛날만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완공된 모습을 보니 뿌듯합니다. 도편수(대목장)가 돼서 공사가 잘못됐으면 당시 도편수였던 조원재 선생님이 나한테 잘못 전수한 것이 됐을 테니 그런 무례가 없잖아요.” 복구 기간 내내 전통 방식으로 목공사를 않았다느니, 한옥에는 못을 사용하지 않는데 못을 썼다느니, 단청을 한 용무늬가 잘못됐다느니, 적심 탓에 화재에 취약하다느니 등등 말도 많았다. 신 대목장은 “눈으로 보이는 부분에 못을 안 쓰니까 한옥은 끼워 맞추기만 하는 줄 아는데, 오해다. 근정전을 해체해 보니 2m 가까운 대못이 나오기도 했다. 우물마루는 목재를 끼워서 쓰지만, 장마루에는 못을 써야 한다. 또 용무늬 단청이 잘못됐다는 오해는 풀리지 않았나. 적심 탓에 화재에 취약하다는 것은 문제지만 차차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마지막으로 문화재 보호를 기계에만 맡기지 말고, 국민 모두가 감시자가 돼 국보 1호를 보호했으면 좋겠다”며 복구된 숭례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숭례문 5월 4일 공개] 615년 전 숭례문에 가깝게, 옛 방식대로 지었습니다

    [숭례문 5월 4일 공개] 615년 전 숭례문에 가깝게, 옛 방식대로 지었습니다

    “숭례문을 뜯어는 놓았는데 기술자가 없어 다시 세우지를 못 한다네.” 어둑어둑해지는 해거름 무렵 서울 마포구 아현동 골목 어귀에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런거렸다. 1961년 7월 해체를 시작한 숭례문은 1962년 3월쯤 완전히 해체됐다. 현 남대문시장 쪽에 아름드리나무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1962년 4월 ‘급래’(急來) 딱 두 글자의 전보를 받고 서울로 뛰듯이 올라와 숭례문 중수 현장에서 일하던 당시 20살의 어린 목수 신응수는 걸어서 아현동 거주지로 퇴근하던 길에 이런 걱정을 들었다. 신 목수는 마음속으로 “내가 바로 그 숭례문을 다시 세우는 사람입니다”라고 외치며 어깨에 한껏 힘을 주고 뿌듯하게 지나갔다. 해체된 목공사가 완료되던 1962년 12월 20일 숭례문은 국보 1호로 지정됐다. “지금이라면 가던 길을 멈추고 ‘어르신 걱정하지 마세요. 대목장 조원재(1903∼1976) 지휘 아래 잘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할 텐데…”라고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신응수(71) 대목장은 회상했다. 그는 1963년 3월까지 만 11개월 동안 조원재 대목장 밑에서 대패질과 톱질을 하면서 숭례문이 조선 전기 건축물 양식으로 군더더기 없이 완전해지는 데 힘을 보탰다. 1963년 5월 14일 숭례문에서 완공식을 했다. 그 뒤 50년이 지난 2013년 5월 4일, 2008년 2월 방화로 2층 문루가 크게 소실됐던 숭례문이 5년 3개월 만에 복구공사를 마치고 국민들에게 완전히 돌아온다. ‘숭례문, 문화의 새 문이 열린다’는 슬로건 아래 연극 연출가 이윤택(61)씨가 경축 행사를 총감독한다. 중수에 참여했던 20살의 신응수는 66세에 대목장으로 숭례문 복구공사에 참여해 칠순을 넘겼다.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신응수 대목장과 28일 숭례문 현장을 찾았다. 숭례문은 1395년(태조 4년)에 짓기 시작해 1398년 완성한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조선의 수도인 한성을 보호하는 성곽의 남문으로 남대문으로 더 잘 알려졌다. 이후 1447년(세종 29년)에 개축했으나 1961~1963년의 중수 과정에서 1479년(성종 10년)에도 대규모 보수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번 복구의 기준은 1960년대 중수였다. 그래서 복구된 숭례문의 외관은 조선 전기에 사용했던 녹색과 청색이 주조를 이루는 단청을 입었다. 울긋불긋한 절집의 단청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위엄 있고 묵직한 느낌이다. 당시 중수의 책임자였던 조원규 대목장은 숭례문의 1층이 조선 후기 양식으로 변형돼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전기 양식으로 바로잡았다. 조선 후기 건물 양식인 광화문 등에 달렸던 완초공 등을 제거했고, 덩굴무늬 등도 당연히 없앴다. 그 과정에서 문화재 담당 공무원과 갈등도 빚고 그만두기도 했다. 당시 문화부 차관이 조 대목장 집을 찾아가 모셔 오지 않았더라면, 숭례문 중수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는 일화도 있다. 이번 복구공사가 1960년대 중수와 다른 점은 더 철저하게 전통 방식으로 복구하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공장에서 찍어 낸 기와가 아니라 손으로 직접 제작한 가벼운 기와를 썼고, 대장간을 숭례문 복구 현장에 설치해 직접 못과 철물을 만들어 썼다. 중수보다 용마루 길이가 0.9m 늘어나 16.6m가 됐고, 1층 잡상(지붕 장식물)도 8개에서 7개로 줄었다. 1층 마루도 우물마루에서 장마루로 바뀌었다. 성곽을 좌로 16m, 우로 53m 복원해 군사시설이란 목적을 확실히 했다. 목재도 전동기기 대신 도끼와 자귀로 다듬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런 시간을 계산하지 않은 탓에 늘어난 목수들 품삯을 놓고 문화재청과 갈등이 생겨 지난해 1월 목공사가 한 달 정도 중단되기도 했다. “옛날만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완공된 모습을 보니 뿌듯합니다. 도편수(대목장)가 돼서 공사가 잘못됐으면 당시 도편수였던 조원재 선생님이 나한테 잘못 전수한 것이 됐을 테니 그런 무례가 없잖아요. 정말 잘 배웠구나 싶습니다.” 복구 기간 내내 전통 방식으로 목공사를하지 않았다느니, 한옥에는 못을 사용하지 않는데 못을 썼다느니, 단청을 한 용무늬가 잘못됐다느니, 적심 탓에 화재에 취약하다느니 등등 말도 많았다. 신 대목장은 “눈으로 보이는 부분에 못을 안 쓰니까 한옥은 끼워 맞추기만 하는 줄 아는데, 오해다. 근정전을 해체해 보니 2m 가까운 대못이 나오기도 했다. 우물마루는 목재를 끼워서 쓰지만, 장마루에는 못을 써야 한다. 또 홍예의 용무늬 단청이 잘못됐다는 오해는 풀리지 않았나. 적심 탓에 화재에 취약하다는 것은 문제지만 차차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마지막으로 문화재 보호를 기계에만 맡기지 말고, 국민 모두가 감시자가 돼 국보 1호를 보호했으면 좋겠다”며 복구된 숭례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金 여유롭게… 李 차분하게… 安 바짝 긴장

    金 여유롭게… 李 차분하게… 安 바짝 긴장

    지난 4·24 재·보선에서 당선된 의원들의 19대 국회 데뷔전으로 26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는 오랜만에 여야 의원들의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김무성·이완구 새누리당 의원과 안철수 무소속 의원 등 이른바 ‘빅3 후보’로 불렸던 이들이 동료 의원들 앞에서 보여준 제각각 스타일 덕분이었다. 5선 고지를 달성한 김 의원은 세 의원 가운데 가장 최근까지 국회에 있었던 만큼 여유롭고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대표로 국회의원 선서를 힘차게 낭독하며 의정활동에 대한 각오를 다졌고 무엇보다 여야를 넘나들며 소통하고 격의 없이 지내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의원은 인사말을 통해 “앞으로 특히 야당 의원들을 자주 뵙고, 소주 한 잔 하고 싶은데 콜할 때 응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1분도 채 안 되는 인사를 마친 뒤 의원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본회의장에 있던 야당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충청의 맹주 역할이 기대되는 이 의원은 9년 만의 국회 복귀로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다. “얼떨떨하다. 촌놈이 돼서 길도 잘 모르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러나 곧 차분한 말투로 포부를 밝혔다. 이 의원은 “지역과 정파를 초월해 국민들이 바라는 바를 정치권이 해내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에게 희망과 꿈을 제시하고 새로운 국가발전의 성장동력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선 주자에서 ‘새내기’ 의원이 된 안 의원은 바짝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스스로를 ‘늦깎이’로 소개한 안 의원은 굳은 표정으로 준비해 온 A4 용지를 꺼내 인사말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안 의원은 “이번 선거를 통해 많이 배웠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 이 자리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이고 엄중한 책임인지 많이 체험했다”면서 “선거란 궁극적으로 유권자와 정치인이 약속을 맺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권자와의 약속을 지키고 기대의 절반이라도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안 의원은 이어 “정치란 절대 혼자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안다”면서 “여야 의원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부족한 부분은 도움을 청하고 늘 겸손한 자세로 함께 하겠다”고 강조했다. 무소속의 한계를 넘기 위해 여야 두루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모범생 같은 인사말이었지만 안 의원은 곧바로 동료 의원에게 질책을 받았다. 의장과 의원들에 대한 인사를 생략한 탓이다. 한 새누리당 의원이 “의원들한테 인사하고 가야지”라며 목소리를 높이자 안 의원은 뒤돌아 고개를 숙였다. 안 의원이 선서를 하자 앉아 있던 의원들이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거나 대정부질문이 진행되는 동안 안 의원의 자리에 찾아와서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이름만 책임총리?

    이름만 책임총리?

    국무총리의 눈과 귀로 불리는 민정실장 등 총리 산하 비서실의 일부 보직이 정부 출범 두 달이 넘도록 임명되지 않고 있다. 집권당 몇몇 인사가 제 사람을 심기 위해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것에 대해 ‘정치 근육’이 없는 정홍원 총리가 수수방관한 채 적극적인 인사권을 행사하지 않아 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무조정실과 총리 비서실은 지난 7일부터 고위공무원단 가급인 실장 인사를 네 차례 단행했다. 지난 7일 국정운영·정부업무평가·규제조정·경제조정 실장 등을 임명했고 8일 공보실장, 17일 사회조정실장, 23일 정무실장 등을 발령했다. 정무실장은 새누리당이 추천한 인사가 청와대 인사검증에서 낙마하는 바람에 새로 인선해 지난 23일에야 가까스로 자리를 메웠다. 총리실이 한꺼번에 인사를 하지 못하고, 퍼즐 맞추듯 조금씩 ‘조각 인사’해 빈자리를 덧대고 있다. 그만큼 인사가 수월하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민정실장 인선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정부 관계자는 “민정실장에 대해 인사검증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민정실장은 일정상 5월 초쯤에야 임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민정실장 인사가 늦어진 것은 새누리당 내부에서 민정실장 자리를 놓고 벌인 다툼을 제때 수습하지 못한 채 끌어온 탓이다. 집권당의 밥그릇 싸움에 대해 정 총리는 별다른 견해를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정실장은 현장에서 민심과 국정의 진전 상황, 공무원 활동을 점검·파악하고 총리 지시 사항의 이행 여부를 확인하는 한편 국민의 목소리와 하소연을 청취해 총리에게 전달하는 ‘암행어사 역할’을 총괄하는 자리다. 정 총리가 보좌기구인 비서실의 고위직인 정무·민정 실장에 대해서 인사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집권당을 지나치게 의식해 인사권을 행사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소한 총리가 인사 지연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혀 인사 공백 장기화 사태는 막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국조실에 대해서도 정 총리는 인사에 거의 관여하지 않고, 김동연 총리실장에게 일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총리들은 비서실 인사와 일부 보직에 대해선 자신과 호흡이 맞는 사람을 앉히거나 낙점해 데려오는 예가 일반적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잘못된 인사 관행이나 행태에 대해서도 총리가 나서서 제동을 걸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책임총리제가 바로 서지, 그러지 않으면 자칫 ‘의전 총리’ ‘대독 총리’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김문이 만난 사람] 소리인생 50년… 경기민요 무형문화재 이춘희 명창

    [김문이 만난 사람] 소리인생 50년… 경기민요 무형문화재 이춘희 명창

    맑고 투명하다.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함이 있다. 하여 경쾌함이 그지없다. 편하고 친숙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듣기는 좋지만 제대로 부르기는 결코 쉽지 않다. 우리가 흔히 듣는 ‘아리랑’도 그렇다. ‘아리랑’을 제대로 부르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된장국이라도 다 똑같은 된장국이 아니듯 말이다. 그래서 경기민요는 부르기가 무척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해 12월의 일이다.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본부 회의장에서 우리의 ‘아리랑’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키로 하는 순간이었다. 즉석에서 이춘희 명창에 의해 아리랑 열창이 이루어졌다. 심금을 울리는 명창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엄숙했던 회의장 분위기는 어느새 편하고 부드러워졌다. 많은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한국의 ‘아리랑’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다들 ‘역시 세계 문화유산이여~’ 하는 것 같았다. 무형문화재57호(경기민요) 이춘희 명창은 50년 소리인생을 맞이하고 있다. 전통민요협회 이사장, 한국전통예술학교 교장 등의 직함 외에도 대학 강의와 공연 등으로 여전히 분주하다. 5월 한 달만 해도 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가정의 달 명품 콘서트-행복’에 출연한다. 국악오케스트라와 함께 북한 작곡가 최성환의 ‘아리랑 환타지’로 시작해 ‘이별가’ ‘한오백년’ 등 애조띤 노래 위주로 부른다. 8일 어버이날을 맞아 부산국립국악원에서 ‘회심곡’ 등 평소 즐겨 부르는 경기민요를 열창한다. 그러면서 ‘아리랑’을 들고 서울, 부산, 대구 등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공연을 한다. 아리랑의 세계 인류무형문화재 등재를 기념하기 위한 무대이기도 하다. 그는 무대에 설 때마다 빼놓지 않을 만큼 ‘아리랑’을 각별하게 여긴다. 우리 민족의 한을 늘 가슴에 품는 까닭이다. 지난 22일 낮 한양대 캠퍼스 음악관에서 이 명창을 만났다. 매주 월요일에 한양대 강의가 있기 때문이다. 봄날 햇볕이 따사로운 음악관 앞에서 잠시 사진 촬영을 한 뒤 안으로 들어가 마주 앉았다. 요즘 근황에 대해 물었더니 “얼마 전까지 맡고 있던 국립국악원 예술감독은 임기가 다 돼 그만두었고, 보다시피 대학과 한국전통예술학교 등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통예술학교에서는 1년 전부터 학교장을 맡고 있단다. 경기민요 등 전통예술을 배우려는 40여 명의 학생이 현재 공부 중이며 생긴 지가 얼마 안 돼 졸업생은 아직 4명 정도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다음 달에 있을 공연 준비는 잘 돼 가느냐는 질문에 “늘 하는 공연이기도 하지만 소리 인생 50년이기도 하고 특히 유네스코 등재를 기념해 아리랑 전국 순회공연을 하게 돼 의미가 있는 것 같다”는 소감으로 대신했다. 얘기가 나온 김에 지난 12월 유네스코본부 회의장에서 ‘아리랑’을 부를 때의 느낌이 어떠했는지 다시 물었다. “그날 오전부터 한복을 입고 11시간을 꼬박 기다렸습니다. 장소가 무대도 아닌 썰렁한 회의장이고 그쪽 분들의 귀를 깜짝 놀라게 해야 하는데 걱정이 됐죠. ‘아리랑’이 문화유산으로 확정됐다는 발표가 있자마자 객석에 앉아 있다가 바로 ‘아리랑~’ 하면서 소리를 지르며 앞쪽으로 치고 나갔지요. 분위기가 확 달라졌고 표정을 보니 아주 호의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정말 아름다운 소리다’ ‘같이 사진 찍자’고 하면서 인터뷰하자는 사람이 많더군요. 지금도 그 광경이 눈에 선합니다. 제 자신도 정말 감동적이고 역사적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아리랑을 늘 부르고 사랑했지만, 앞으로도 더욱 좋아하게 된 운명이 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2년 전 독일 단독 공연무대에서도 이와 비슷한 감동을 하였다고 회고한다. “반주 4명과 함께 아리랑, 회심곡 등을 불렀습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감상하던 독일인들이 공연이 끝날 때 많은 박수와 함께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독일인들이 진중하게 한국의 민요를 감상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외국에서의 반응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매우 좋습니다. 우리 민요를 들고 해외로 자주 나가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경기민요란 어떤 것인지 물었다. “진짜 수도 서울의 민요이며 경쾌하고 투명하면서 야질야질하다. 그러나 밝음과 섬세함 등 전체를 넘나들어야 하기 때문에 부르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대답이 얼른 돌아온다. 이어 “경기민요에는 옛날 역사나 변화의 과정이 없다. 그래서 15년 전부터 희로애락이 담긴 실험적인 소리극을 통해서 많은 성과도 거두었고 진화를 거듭해 오고 있다”고 부연했다. 소리극은 그가 매년 공연 때마다 시도하는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경기민요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을까. 그는 서울 토박이다. 집안 대대로 용산구 한남동에 살았다. 그 때문에 어릴 적 친척집에 가느라 기차를 탈 일이 한 번도 없었다. 그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라디오 등을 통해 흘러나오는 경기민요를 대중가요처럼 듣는 것이었다. 특히 14살 때 라디오 드라마 ‘장희빈’의 주제곡에 홀딱 반했다. ‘구중궁궐 긴 마루에 하염없이 눈물짓는 장희빈~’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당시 우상으로 여겼던 황금심씨가 불렀으니 더욱 그랬다. 무조건 가수가 되고 싶었다. 소녀의 이런 열망이 깊고 깊어져 어느 날 위경련이 생겼다.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일주일째 입원하던 날 주위에서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주라’고 권유했고 부모는 딸을 살리고 싶은 심정으로 노래를 허락했다. 결국, 가수가 되려고 대중가요 학원에서 3년 가까이 최숙자의 ‘백령도 처녀’ 등 당시 유행하던 여러 대중가요를 배웠다. 그러던 16살 때 우연히 친구 따라 종로3가에 있는 민요 학원을 가게 됐다. 그곳에서 경기민요 명창 이창배(1983년 작고) 선생을 만나면서 민요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이창배 선생은 당시 ‘선소리타령’의 명인이었다. 혹독한 가르침을 받던 어느 날 이창배 선생한테 ‘너한테 노래가 도대체 뭐냐?’라는 질문을 받게 되고 그 답을 구하려고 죽기 살기로 소리 연습을 했다. 지금처럼 녹음기나 캠코더가 없어 항상 귀로 듣고 연습을 했다. 밥을 먹을 때나 길을 걸을 때에도 늘 소리를 질러댔다. 길을 걷다가 전봇대나 담벼락에 부딪힌 경우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후회도 적지 않았다.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레슨비에 교통비를 감당하기 힘들어 여러 번 그만둘까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이창배 선생한테 소리 배운 지 10년이 흘렀다. 이후 명창 안비취 선생의 문하로 들어가면서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하지만 그에게 찾아온 또 하나의 시련이 있었다. 다름 아닌 무대 공포증이었다.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을 때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무대는 엄청 무서웠습니다. 벌벌 떨리고 숨이 차고 중환자처럼 공포증이 심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단받고 약을 먹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극복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는 운동을 하면서 극복했지요. 그러면서 노래 연습 또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했습니다.” 방음장치를 한 골방에서 하루는 ‘유생가’만 30회, 또 하루는 ‘제비가’만 30회 등 매일 다섯 시간씩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면서 소리를 했다. 뿐만 아니다. 한동안 두문불출하고 산을 찾아 판소리의 득음 과정처럼 소리를 내고 또 소리를 내는 혹독한 고행을 해서야 비로소 스스로 창법을 터득했다. 그래서 1985년 첫 개인 발표회 무대를 무난하게 끝냈다. 자신의 소리인생에서 가장 자신감을 준 무대였다. 이를 두고 “아마 실패했으면 어디에 가서 죽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후 여러 차례 성공적으로 무대에 서면서 그의 진가를 발휘해 나갔다. 1997년 나이 50에 스승 안비취의 계보를 이어 경기민요 문화재 보유자가 되면서 명창이라는 수식을 얻었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무대는 그때도 무서웠지만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무섭다”며 웃는다. 소리는 한도 끝도 없기 때문이란다. 그에게 꿈을 물었다. “우리나라에는 국악 중·고등학교는 있으나 초등학교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기초가 튼튼해지고 명창과 대가가 나오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여력이 되는 대로 제자를 양성하는 일에 온 힘을 쏟을 것이며 그 제자들이 잘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또한 자신이 어렵게 소리인생을 살아온 만큼 후학들에게는 좀 더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겠다고 말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이춘희 명창은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0대 때부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중가요와 경기민요에 심취했다. 14살 때 대중가요 학원에서 노래공부를 하다가 16살 때 경기민요 학원에서 이창배 선생을 만나 민요의 길로 들어섰다. 10년 동안 경기민요를 배운 뒤 안비취 선생의 문하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무대에 서면서 이름을 알린다. 1985년 첫 개인 발표무대를 시작으로 매년 국내외 공연을 가졌다. 1997년 나이 50에 안비취 선생의 계보를 잇는 무형문화재 57호에 지정되면서 명창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2012년 12월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본부 회의장에서 ‘아리랑’이 인류무형문화재로 등재되는 순간 ‘아리랑’을 불러 역사적 순간을 연출했다. 현재 한국전통민요협회 이사장, 한국전통예술학교 교장 외에 여러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제23회 한국방송대상 국악인부문 대상(1996년), 제32회 대한민국 문화예술대상(2000년), 국민훈장 화관문화훈장(2004년) 등을 수상했다.
  • [포토 다큐 줌인] 소외된 자들의 일터, 사회적 기업

    [포토 다큐 줌인] 소외된 자들의 일터, 사회적 기업

    사회적 기업이 낯설지 않다. 2007년 7월 사회적기업육성법에 따라 본격 시행됐지만 나눔과 상생의 취지 아래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 출발한 미국이나 유럽의 사회적 기업에 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는 이윤 추구를 절대적 목적으로 두지 않고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의 복지 및 고용증대 등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회사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 위치한 도서출판 ‘점자’도 사회적 기업이다. 지난 2009년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됐다. ‘점자’라는 회사명처럼 장애를 가졌거나 장애가 없는 20여명의 직원들이 일반도서가 아닌 특수 책을 만들고 있다. 손끝으로 만져 읽는, 귀로 들어서 읽는 책들이다. 중증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 문맹자, 난독증 학습장애인, 지적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유형의 책이다. 지금까지 3700 종의 점자책, 1200종의 수준별 점자라벨도서, 120종의 큰 글자도서, 23종의 촉각도서, 17종의 창작도서를 발간했다. 다국어도서, 수화도서 등도 제작하고 있다.  청각장애인 김주현(25)씨는 “장애 여부를 떠나 함께 일하는 게 좋다. 전혀 어색하지도 않다, 적당히 일하려는 동료는 없어요. 서로 더하려고 애를 쓰죠”라면서 손수 만든 책을 들어보이며“예쁘죠”라고 자랑했다. 김씨는 전에 일하던 직장보다 급여는 다소 적어도 일에 대한 자긍심과 보람이 크다고 했다.  육근해 대표는 “사회적 기업은 수익 창출과 공익 목적 두 가지를 다 이뤄내야 한다”면서 “장애인뿐만 아니라 생활이 어려운 비장애 차상위계층의 수요까지 제공할 수 있는 토대 마련과 함께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 대표의 목표는 책을 읽는 즐거움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없는 세상이다.  I’m Cafe(아이엠 카페)는 경기도와 한국마사회가 장애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해 추진 중인 ‘꿈을 잡고(Job Go)’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설립된 사회적 기업이다. 경기 구리시청 민원실에 최근 터를 잡은 3호점에는 비장애인 매니저와 3명의 지체장애인이 일하고 있다. 매출이 아직 많지 않아 협력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지만 전망은 밝다. 직원들의 열정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대형 제과업체에서 근무하다 취약계층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생각에 직장을 바꾼 매니저 고희경(32)씨는 “자리가 잡히는 대로 저소득층이나 노인들에게 무료로 커피교육을 해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머잖아 바리스타 자격증을 손에 쥘 꿈에 부푼 직원 김지윤(32)씨는 “커피향이 너무 좋아요. 이런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라며 즐거워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에 자리한 한국컴퓨터재생센터도 사회적 기업이다. 중고컴퓨터를 수거해 수리한 뒤 저소득층에게 무료로 나눠주거나 판매하는 회사다. 컴퓨터의 혜택을 주기 위해서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 허리우드극장은 실버전용이다. 젊은 시설의 추억과 함께 감동을 일깨워주는 명화를 상영하는 곳이다. 1969년 세워진 허리우드극장은 2009년 실버영화관으로 재개관했다. 서울시의 후원을 받는 사회적 기업이다. 요금도 2000원으로 일반 영화관에 비해 무척 싸다. 옛 악극단 공연도 선사하고 있다. 때문에 4년 만에 관람객이 50만명을 넘을 정도로 인기다. “작년에 알게 됐는데 옛날 영화를 볼 수 있어 너무 좋아, 공연도 하고 간식도 나눠주고?무엇보다 친구들을 사귈 수 있어서 좋아” 일주일에 서너 차례 온다는 이기영(82)씨의 말이다. ?김은주 대표는 “어르신들을 배려하는 문화적 공간이 별로 없잖아요. 행복하게 늙어가는 게 뭘까 고민했어요. 그러다 어르신들의 극장이 하나 정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라며 극장을 운영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시선이 따뜻한 이유다. 글·사진 이호정 기자 hojeong@seoul.co.kr
  • ‘낙천적 믿음’이 주는 마법 같은 동심 이야기

    ‘낙천적 믿음’이 주는 마법 같은 동심 이야기

    “간다령 간다령 새끼 들고 간다령.” 새끼 서 발 달랑 들고 길을 떠난 뒹굴뒹굴 총각. 집에서 쫓겨나고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뒹굴뒹굴 총각이 꼰 새끼 서 발’(길벗어린이 펴냄)은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곤 뒹굴뒹굴하는 것밖에 없는 옛 게으름뱅이 이야기다. 어머니가 “새끼라도 꼬아라” 했더니 사흘 낮과 밤 동안 고작 새끼 서 발을 꼬았다. 두 팔을 활짝 벌린 길이가 한 발이니, 서 발 갖고는 짚신 한 짝도 제대로 삼을 수 없다. 총각은 집에서 쫓겨났다. 길을 가던 총각은 동이 장수를 만난다. 짐을 묶는 새끼줄이 필요했던 동이 장수에게 새끼 서 발을 주고 동이 하나를 얻는다. 다시 길을 떠난 총각. 동이를 깨고 우는 아낙에게 자신의 동이를 주고 쌀 서 말과 맞바꾼다. 이렇게 쌀 서 말은 죽은 나귀로, 죽은 나귀는 다시 산 나귀로 바뀐다. 총각은 산 나귀와 죽은 색시, 죽은 색시와 산 색시를 다시 맞바꾼다. 마지막으로 욕심 많은 부자 영감과 색시를 놓고 한판 수수께끼 내기를 벌여 덤으로 소와 돈까지 얻었다. 집으로 돌아온 총각은 사흘 밤낮 동안 혼인 잔치를 벌인다.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총각이 부자 영감에게 낸 수수께끼는 무엇일까. “사흘 낮 사흘 밤에 새끼 서 발, 새끼 서 발이 동이 하나, 동이 하나가 쌀 서 말, 쌀 서 말이 죽은 나귀, 죽은 나귀가 산 나귀, 산 나귀가 죽은 색시, 죽은 색시가 산 색시는 뭘까요?”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총각의 이야기는 한 번만 들어도 머릿속에 쏙 새겨지도록 멋진 짜임을 갖고 있다. 일정한 형식을 갖고 이야기를 풀어 가는 ‘형식담’이다. 전래동화인 ‘꼬부랑 할머니’나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커다란 순무’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오호선 작가는 “‘좁쌀 한 알로 장가든 총각’이 이 이야기와 아주 흡사한 구조를 지녔다”면서 “그림 형제가 모은 옛날 이야기 가운데 ‘운 좋은 한스’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이야기를 쓰면서 구전 설화인 ‘이상한 수수께끼’ ‘새끼 다섯 발이 처녀 되다’ 등을 참고했다. “간다령 간다령”이란 조어는 경기 용인에 사는 어느 할머니가 들려준 만담에서 빌려 왔다. 작가는 “손에 쥔 게 초라해도 행복해진다는 낙천적인 믿음, 이것이 이 이야기의 진짜 마법이고 옛 이야기가 주는 변치 않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유승하 화백의 익살스러운 그림이 잘 어울리는 그림책. 1만 1000원.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록에 랩까지…가왕 조용필 ‘틀’을 깨다

    록에 랩까지…가왕 조용필 ‘틀’을 깨다

    ‘가왕’ 조용필(63)이 10년 만의 새 앨범인 19집 ‘헬로’의 발표를 앞두고 수록곡을 공개했다.  오는 23일 앨범 발매에 앞서 조용필의 기획사인 YPC프로덕션은 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사옥에서 19집 감상회를 열었다. 이날 조용필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가 1년 6개월 동안 미국, 호주, 영국, 태국 등지를 오가며 세계적인 스태프와 작업한 결과물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그는 이번 앨범에서 1970~80년대 그룹사운드 시절을 보낸 중장년층은 물론 10~20대 젊은 층을 두루 아우르는 음악을 선보였다. 기획사는 “자작곡은 한 곡만 담고 미국과 영국 등지 작곡가들의 곡을 주로 담은 것에는 ‘내 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조용필씨의 숨은 뜻이 있다”고 설명했다. 수록곡들은 록에 뿌리를 두면서도 일렉트로닉과 어쿠스틱 사운드를 오갔으며 팝,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됐다. 여기에 세월에 녹슬지 않은 조용필의 보컬, 그의 밴드인 ‘위대한 탄생’과 해외 음악인들이 빚어낸 균형 있는 연주, 해외 유명 엔지니어들이 공들인 사운드가 완성도를 높였다.  타이틀곡 ‘헬로’는 록 사운드에 속도감 있는 비트, ‘헬로’란 가사가 반복되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가 귀를 먼저 사로잡았다. ‘그대에게 빠져들어 정신 잃기 직전이야’, ‘서로의 눈빛을 보면 뜨거운 맘을 느껴’ 등의 노랫말에 래퍼 버벌진트의 랩이 더해졌다. 기획사 측은 “50채널 가까운 화음과 코러스를 조용필씨가 직접 했을 정도로 보컬 작업에 심혈을 기울여 오랜 시간 공들인 노래”라고 강조했다.  전반적으로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곡들이 주를 이뤘지만 조용필과 동시대를 살아온 중장년층을 위로하는 묵직한 트랙도 숨어 있다. 조용필의 유일한 자작곡이자 서울대 송호근 교수(사회학)가 작사에 참여한 발라드 ‘어느 날 귀로에서’는 시적인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가 주는 따뜻함이 눈길을 끌었다.  기획사 측은 음악이 젊어졌다는 견해에 대해 “의도적으로 젊은 층을 겨냥한 게 아니다”라면서 “조용필씨가 현재의 음악 트렌드를 좇은 것이 아니라 라디오 주파수를 AFKN 하나에 맞춰 놓고 늘 그 속에 살아 이런 앨범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곡들을 2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열리는 쇼케이스에서 라이브로 공개한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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