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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일본 초계기 도발, 강력히 대응하라

    군 당국이 어제 우리 대조영함에서 촬영된 일본 초계기의 저고도 위협비행 장면이 담긴 사진 5장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일본 P3 초계기가 23일 오후 2시 3분쯤 이어도 인근 해상에서 해군 구축함인 대조영함에 540m까지 접근해 고도 60~70m의 초저고도로 근접해 비행한 장면이 확인된다. 일본 P3 초계기는 대조영함이 “귀국은 우리 쪽으로 접근하고 있다. 경로를 이탈하라”, “더이상 접근하면 자위권적 조치를 취하겠다”며 20여 차례 경고통신을 했으나,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은 채 함정 60~70m 상공에서 원을 그리며 선회 비행을 했다. 일본 초계기의 비행은 의도를 가진 악질적인 위협 비행이 아닐 수 없다. 초계기의 위협 비행은 지난달 20일부터 그제까지 네 차례나 감행됐다. 일본의 의도는 분명하다. 초계기 도발로 인해 이익을 보는 정치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내각의 지지율이 지난달 광개토대왕함과 일본 초계기의 레이더 논란 이후 4% 포인트 올랐다. 2021년까지 집권이 보장돼 있는 아베 총리로서는 정권의 안정을 위해 ‘한국 때리기’를 이용하는 최악의 정치 수법을 쓰고 있다. 이번 초계기 도발도 마찬가지다. 근대국가형 정치 수단이 아닐 수 없다. 그제 우리 정부는 일본의 도발에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방장관이 하려던 위협 비행 발표를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으로 바꾸고, 자위권 조치 언급도 뺐다. 우리 군은 지난달 일본 초계기의 광개토대왕함 위협 비행 이후 자위권적 조치의 ‘대응행동수칙’을 보완했다. 이 수칙은 경고통신→사격통제레이더(STIR-180) 가동→ 경고사격 포함 무기체계 가동 등의 순으로 대응하는 내용을 담았다. 일본 초계기가 우리 함정에 근접해 저고도 위협 비행을 계속한다면 변경된 이 수칙을 적용해 군 당국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위권을 행사해야 한다. 여당 일각에서 오는 8월 연장 여부가 결정되는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도 주장한다. 정부는 일본이 군사도발을 지속한다면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폐기도 검토하는 등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 외교부, 그랜드캐니언 추락사고 병원비 지원 어려울 듯

    외교부, 그랜드캐니언 추락사고 병원비 지원 어려울 듯

    외교부가 미국 애리조나주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에서 추락해 의식불명 상태인 대학생 박준혁(25)씨에 대해 의료비 등 비용 지원이 어렵다는 뜻을 피력했다. 다만 사고를 안타깝게 생각하며 박씨와 그 가족들에게 영사 조력을 계속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정례브리핑에서 박씨 지원에 대한 정부 입장을 묻는 질문에 “이번 사고로 우리 대한민국 젊은이가 중태에 빠져 있는 상황에 대해 저희도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국민청원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동아대 수학과에 재학하던 박씨는 1년여간 캐나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 미국으로 관광을 하러 갔다가 변을 당했다. 지난해 12월 30일 그랜드캐니언 사우스림 야바파이 포인트 근처에서 발을 헛디뎌 수십 m 절벽 아래로 떨어진 박씨는 늑골 골절상과 뇌출혈 등 중상을 입었다. 근처 플래그스태프 메디컬센터로 옮겨져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뇌손상이 심각해 아직도 의식불명 상태로 전해졌다.박씨 가족은 박씨가 현지 병원에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면서 치료비가 10억원에 이르고 환자를 국내로 이송할 경우 2억원이 든다며 정부의 도움을 요청했다. 박씨 가족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이제 25살된 이 청년의 잘잘못을 떠나서 타국에서 안타까운 사고를 당했다”며 “개인이 감당하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 단 1명의 국민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면 국민의 일원인 박군이 고국에 돌아올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일부 네티즌들은 개인의 잘못으로 인한 사고를 국가 세금으로 돕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놨다. 지난 17일 등록된 국민청원에는 24일 현재 2만명 이상 참여했으나 “동의하지 않는다”, “개인이 해결할 문제”라는 등 부정적인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외교부 노 대변인은 이어 “현재 주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을 통해서 필요한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이 사항(정부 지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관여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여러 문제에 대해서 검토하고, 사실관계를 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도 우리 외교부로서는 현지 공관을 통해서 필요한 영사 조력을 계속 제공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대단히 안타까운 사건”이라면서도 “그렇지만 가능한 것이 현재로선 영사 조력 제공”이라고 말했다. 이는 박 씨에 대한 병원비 지원 등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당국자는 “이 사고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사실관계 파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현송월, 방중예술단 이끌고 베이징 도착

    현송월, 방중예술단 이끌고 베이징 도착

    현송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장이 중국 공연을 위해 예술단을 이끌고 베이징에 도착했다. 현 단장은 3년전 모란봉악단장으로서 베이징을 찾았다가 중국 측과 갈등으로 급작스레 공연을 취소한 바 있어 이번 공연이 중국 데뷔무대라고 할 수 있다. 리수용 북한 노동당 국제 담당 부위원장과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북한 예술단은 이날 오전 11시쯤(현지시간) 임시열차 편으로 베이징 기차역에 도착했다. 방한모에 군복 차림의 북한 예술단원들은 기차역 플랫폼에 깔린 빨간 카펫에 내리며 중국 측의 각별한 의전을 받았다. 이날 기차역에는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가 나와 영접했으며 중국 무관 등 중국 측 관리들도 대거 모습을 보였다.리수용 부위원장은 중국 측이 제공한 차량으로 조어대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280여명의 예술단원들은 7대의 버스에 나눠타고 숙소인 수도대반점(호텔)에 짐을 풀었다. 이날 베이징 기차역과 수도 호텔에는 수많은 경찰 인력이 배치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 때에 버금가는 삼엄한 통제가 이뤄졌다. 북한 예술단의 공연은 오는 26일과 28일 열릴 것으로 보인다. 중국 관원들을 대상으로 하며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도 참석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북한 예술단의 이번 공연은 지난 2015년 12월 북·중 관계가 한창 경색됐을 당시 현송월 단장이 이끈 모란봉 악단의 방중 이래 처음이다. 당시 모란봉 악단 공연은 공연 시작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북·중 간 공연 내용 등을 놓고 불협화음이 일며 공연단이 갑자기 귀국해 버려 북·중 갈등이 커진 적이 있다. 북·중 양국은 모란봉 악단 철수 이후에도 북한의 핵ㆍ미사일 시험 등으로 관계가 냉각되면서 국가 차원의 예술단 교류를 하지 않았다. 현 단장은 지난 7∼1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4차 방중에 동행했으며, 당시 이번에 공연 문제를 중국 당국 측과 조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그랜드캐년 추락 사고 “25살이면 상폐” 워마드 조롱글 논란

    그랜드캐년 추락 사고 “25살이면 상폐” 워마드 조롱글 논란

    페미니즘 커뮤니티인 ‘워마드’에 그랜드캐년 추락사고를 희화화하는 내용의 글이 게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23일 워마드 게시판에는 그랜드캐년 추락 사고를 당한 유학생 박모(25)씨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어차피 XX는 25살 이후 다 상폐(상장폐지의 준말)다”라면서 “뭘 25살 넘어서도 살려 하나. XX값도 떨어질텐데”라고 조롱했다. 글에는 “XX가 집에서 밥이나 하지 겁도 없이”라는 댓글도 달렸다. 워마드의 남성 혐오 관련 글은 이번 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강릉 펜션 사고 당시 한 회원은 “남고딩 3마리 재기, 7마리 재기 직전”이라는 글을 올려 큰 비판을 받았다. 이 회원은 “사람들이 여성들이 성폭행 살해 당해도 관심 안 가지더니 고작 남고딩 몇 명 죽었다고 슬퍼한다”며 “오늘 종강했는데 남자 10마리 재기 각이라 상쾌하다”고 써 논란을 일으켰다. 한편 박씨의 가족이 박씨의 귀국을 도와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리면서 네티즌 사이에서 논쟁이 일고 있다. 박씨 가족은 10억이 넘는 병원비에 이송료 2억이 든다며 국가의 지원을 요청했다. 책임소재를 놓고도 여행사와 박씨 가족이 각기 다른 주장을 내놓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윤봉길 의거 후 일제 핍박…상하이 떠나 8년간 ‘고난의 행군’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윤봉길 의거 후 일제 핍박…상하이 떠나 8년간 ‘고난의 행군’

    1929년 10월 미국발(發) 경제공황이 전 세계로 퍼졌다. 1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과 영국, 일본은 그간 협력하던 자세를 버리고 각자도생에 나섰다. 내수시장 규모가 작았던 일본은 경제 위기를 탈출하고자 1931년 9월 중국 만주를 공격했다. 1932년 1월에는 상하이도 침공했다. 이 지역 이권을 선점한 미국과 영국이 철군을 요구하자 일본은 1933년 2월 국제연맹을 탈퇴하며 이들과 갈라섰다. 이 시기 임정은 일본의 공세를 피해 상하이에서 항저우, 전장, 창사, 광저우, 류저우, 치장 등으로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마지막 정착지인 충칭에 도착하는 데 8년이 걸렸다. 역사학계에서는 이를 ‘임정의 이동시기’라고 부른다.●“임정 지도자 중 군대 편성 실현은 김구뿐” 일본이 열강 질서에서 이탈해 파시즘으로 치닫던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왕 히로히토(1901~1989)의 생일 축하연이 열렸다. 일제가 점령지 한복판에서 보란 듯 승전고를 울리는 모습에 중국인들은 말할 수 없는 굴욕감을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 스물네 살 한국인 청년 윤봉길(1908~1932)이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요시노리(1869~1932) 등 일본군 수괴들을 한꺼번에 처단했다. 그의 희생으로 한국 독립운동이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각지에서 지원금이 쇄도하며 임정의 권위가 되살아났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모욕을 한국이 대신 갚아준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때부터 두 나라는 항일 역사 인식을 공유했다. 중국 국민당 정부도 임정을 ‘진정성 있는 파트너’로 대하기 시작했다.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1887~1975)는 임정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중국군관학교 뤄양분교에 한인특별반도 마련했다. 한국독립군(1930년대 북만주에서 활동하던 항일부대) 출신 이청천(1888~1957) 등이 교관으로 참여했다. 이곳 출신들은 1940년 9월 임정 최초 정규 부대인 한국광복군의 주축이 됐다. 장제스는 일본의 패망이 유력하던 1943년 전후처리를 논의하려고 연 카이로회담에서 미국과 영국의 반대에도 한국 독립 약속을 받아냈다. 임정 연구의 권위자인 한시준(65)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1919년 임정이 세워진 뒤로 수많은 지도자가 있었다. 하지만 (항일투쟁의 최종 목표인) 군대 편성 계획을 실현한 이는 김구뿐이었다”며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충칭에서 광복군을 만들어 낸 일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임정은 잃은 것도 많았다. 일제가 즉각 보복에 나섰기 때문이다. 윤봉길이 훙커우 공원에서 거사를 벌인 것이 오전 11시 40분쯤이었는데, 일본 경찰은 오후 1시 프랑스 조계로 들이닥쳤다.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벌여 안창호(1878~1938)를 비롯한 임정 관계자 12명을 체포했다. 그간 임정은 ‘폭력을 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프랑스 조계 당국의 보호를 받았다. 하지만 윤봉길 의거에 충격을 받은 프랑스는 더이상 임정을 지켜 주지 않았다. 이때부터 임정은 상하이를 떠나 생존을 위한 장정에 나섰다. 일본 경찰과 군대, 밀정을 피해 중국 각지를 떠돌았다. 우선 급한 대로 찾아간 곳이 상하이에서 멀지 않은 항저우였다. 1932년 5월 임정 국무위원 대다수가 상하이에서 빠져나와 이곳으로 모였다. 반면 김구와 일부 위원들은 항저우 인근 자싱으로 몸을 숨겼다. 서로 흩어져 있는 것이 임정 존속에 유리하다고 판단해서였다. 중국 국민당 첩보기구 소속 천리푸(1899~2001)가 김구의 피난처를 주선했다. 그는 저장성장을 지낸 자싱의 유명인사 추푸청(1873~1948)에게 “김구를 누구보다 잘 챙기라”고 부탁했다. 이때부터 김구는 추푸청의 비서 겸 수양아들 천둥성의 별채(메이완제 76호) 등에서 숨어 지냈다. ●가장 두려운 것은 돈에 눈이 먼 ‘한국인 밀정’ 항저우는 ‘물의 도시’라는 별명답게 호수와 수로가 산재해 있다. 임정 요인들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려고 배를 띄우고 호수 위에서 회의를 열었다. 말 그대로 ‘물 위에 떠다니던 정부’였다. 항일무장단체 의열단 리더 김원봉(1898~1958)이 배를 타고 김구를 만나러 가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 ‘암살’(2015)은 바로 이 시기 항저우 임정을 배경으로 했다. 하지만 이곳 생활도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임정이 상하이를 떠났다는 것을 눈치챈 일제가 추격에 나섰다. 특히 김구에게는 일본 외무성과 조선총독부, 중국 상하이주둔군 사령부가 각각 20만 대양(大洋·중국 화폐단위)을 걸었다. 60만 대양은 지금 가치로 150억~2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에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당시 김구 등 임정 요인들은 일본 경찰보다 한국인 밀정을 더욱 두려워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독립운동의 큰 적은 현상금에 눈이 먼 우리 자신이었다”고 씁쓸해 했다. 김구는 많은 이들에게 쫒기며 인생에서 가장 외롭고 힘든 때를 보냈다. 다음은 광복군 출신 인권변호사 태윤기(1918~2012)가 쓴 수기 ‘회상의 황하’ 가운데 일부다. “윤봉길 의거 뒤로 일본은 대(大)상금을 건 동시에 밀정 300여명을 풀어 백범을 생포하는 데 집중했다. 김구는 이를 눈치채고 2년 가까이 행적을 감췄고 임정 요인에게도 위치를 알리지 않았다. 그의 행방을 아는 이는 안공근(1889~1940·안중근의 동생)뿐이었다. 그러면 김구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는 중국옷을 입은 촌로 복장을 하고는 ‘정크’라고 부르는 작은 배로 이 마을 저 마을 떠돌아다녔다.”‘풍찬노숙’ 김구 지키며 생사 함께한 中 처녀 뱃사공 주아이바오 ●부인 역할하며 日검문서 보호한 주아이바오 풍찬노숙하던 김구를 5년이나 돌보며 일본 경찰과 밀정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준 중국인 여성이 있다. 자싱에서 뱃사공으로 일하던 주아이바오(1913~?)다. 사실상 김구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김구는 ‘장천’, ‘왕사장’, ‘장전추’라는 가명을 쓰며 광둥인 행세를 했다. 하지만 중국어가 서투른 데다 키도 너무 커 쉽게 의심을 샀다. 실제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가 풀려나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1933년 추푸청의 장남 추펑장은 그에게 신분 세탁을 위해 위장결혼을 제안했다. 김구는 자싱에서 추푸청의 집에 갈 때 우연히 만난 처녀 뱃사공을 떠올렸다. 세상 물정에 어두워 자신의 정체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김구와 주아이바오의 선상(船上) 생활이 시작됐다. 백범이 57세, 주아이바오가 20세였다.처음에는 김구에게서 매달 일정 금액을 받고 일하는 계약 관계였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신뢰가 쌓여 운명공동체로 바뀌었다. 주아이바오는 9년 전 아내 최준례(1889~1924)를 잃고 혼자 살던 김구를 애틋한 마음으로 보살폈다. 밤낮없이 이뤄지는 경찰 불심검문에서 그를 지켰다. 1937년 중일전쟁 때는 일제의 폭격이 극심하던 난징까지 따라가 그와 생사를 함께 했다. 이들은 정식으로 혼인하지 않았을 뿐 부부로 살았다. 둘 사이에 자녀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일본의 공세가 거세지던 1937년 11월. 김구는 주아이바오의 안전을 염려해 집으로 보냈다.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이었다. ‘백범일지’에도 당시 안타까운 감정이 기록돼 있다. “난징에서 떠날 때 주아이바오를 고향인 자싱으로 돌려보냈다. 지금도 이따금 후회되는 것은 그와 헤어질 때 여비를 100원밖에 주지 못한 것이다. 뒷날을 기약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돈을 넉넉하게 주지 못한 것이 지금도 미안할 따름이다.” 김구는 왜 그와 재혼하지 않았을까. 가족들의 반대가 극심했다고 전해진다. 서른일곱 살이라는 나이 차가 큰 걸림돌이었다. 서울신문 중국 취재에 동행한 김주용(53) 원광대 교수는 “주아이바오는 김구의 장남 김인(1917~1945)과 네 살밖에 차이가 안 났다. 차남 김신(1922~2016)은 한국 독립운동의 상징이 된 아버지가 이런 일로 구설에 올라 대사(大事)를 그르치지 않을까 걱정이 컸다”고 설명했다. 그런 부담 때문이었을까. 김구는 해방 뒤 주아이바오를 찾아가지 않았다. 그를 한국에 데려갈 때 생길 정치적 파장을 고려한 결정이 아니었나 싶다. 김구의 경쟁자인 이승만(1875~1965)이 스물다섯 살 연하였던 벽안(碧眼)의 이혼녀 프란체스카 도너(1900~1992)와 함께 귀국한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중국 작가에 의해 소설 ‘선월’로 재탄생 중국 작가 샤녠성(71)은 김구와 주아이바오의 이야기를 소설 ‘선월’로 재탄생시켰다. 여기서 주아이바오는 1949년 김구가 살해됐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아 자살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샤녠성은 몇 년 전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1970년대까지 생존했다는 것을 최근에 들었다. (김구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혼하지 않고 평생 혼자 살았다고 한다”고 밝혔다. 이원규 작가는 “주아이바오는 백범과 함께 살며 어렴풋하게나마 그의 목에 거액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당시 현상금을 받고자 김구를 노리던 한국인이 많았지만 이 가난하고 순박한 중국 여성은 그와의 인연을 소중히 여겨 끝까지 의리를 지켰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임정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믿는다면 이 나라가 주아이바오에게도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상하이·항저우·자싱·난징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그랜드캐년 추락 청년 “병원비 10억+이송비 2억 원, 도와달라” 청와대 국민청원 반응은?

    그랜드캐년 추락 청년 “병원비 10억+이송비 2억 원, 도와달라” 청와대 국민청원 반응은?

    그랜드캐년 추락 사고를 당한 한국인 대학생의 귀국을 도와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17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5살 대한민국의 청년을 조국으로 데려 올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해당 청원은 23일 오후 기준 1만5000명이 참여 중이다. 청원인은 “부산 동아대에 재학 중인 박(25)씨가 지난해 12월 30일, 그랜드캐년에서 발을 헛디디며 추락해 머리 등을 크게 다쳐 현재 혼수상태”라며 “한국으로 데려 오고 싶지만 관광회사와의 법적인 문제 뿐 아니라 병원비만 10억원, 환자 이송비만 2억원이 소요돼 불가능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개인의 잘잘못을 떠나 타국에서 당한 안타까운 사고로 청년과 가족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국가는 단 1명의 자국 국민일지라도 이를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고 한다면 이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인 박씨가 고국으로 돌아 올 수 있게 도와주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청원에 동의한다고 밝힌 네티즌들은 “우리 가족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려온다”, “국가 세금이 아니더라도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한 청년의 인생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등의 의견을 전했다. 반면 개인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를 국가가 책임져야 하느냐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날 오후 기준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그랜드캐년 추락사고 관련 청원글 삭제 부탁드립니다’ ‘그랜드캐년 추락사 지원절대 반대’ ‘그랜드캐년 청원 삭제해주세요’ ‘그랜드캐니언의 청년 귀국 지원은 다르게 해야한다고 봅니다’ 등의 귀국 지원 반대 청원도 올라왔다. 이들은 “개인과실로 일어난 일을 왜 세금으로 도와달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나라 지키러 군대 가서 다친 사람들이 보상을 얼마나 받는지 아느냐. 말도 안 되는 청원”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계명문화대 글로벌 미션프로젝트 수행 16명 출국

    계명문화대 학생 16명 5개 팀이 글로벌 미션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22일 필리핀 바클로드와 마닐라로 출국했다. 오는 31일까지 진행되는 ‘글로벌 미션 프로젝트’는 계명문화대 국제교육원에서 2018년 동계 어학연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학생들의 영어학습에 대한 동기부여와 성취동기를 높이고자 신규로 시행한 프로그램이다. 서류심사와 인터뷰를 통해 1차 선발된 학생들은 3주간의 사전교육을 거쳐 목표한 공인어학 성적을 취득해 최종 선발이 확정됐다. 이후 팀 별로 영어권 탐방 국가에 대한 팀별 미션주제 선정을 위한 자료조사 및 토론, 일정과 내용, 설문지 작성 및 인터뷰 연습 등을 자기주도적으로 준비해 미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대학에서는 사전 교육비를 포함해 현지 미션 수행에 필요한 항공비와 숙박비 등 경비 전액을 지원한다. 이번 미션 프로젝트에 참가한 호텔항공외식관광학부 박정원(20)씨는 “미션 주제 선정을 위해 팀원들과 토론을 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고, 짜여진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팀별로 스스로 미션을 만들어가도록 한 점이 다른 어학 프로그램과 차별화돼 의미 있는 것 같다”며 “더 많은 학생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션은 마닐라 대학교를 비롯해 펩시, 봉봉 등 현지 제조업체와 Asia Mall 등 대형 백화점, 현지 여행사 및 한인기업, 시청과 역사공원 등을 방문해 인터뷰와 자료조사, 동영상 촬영 등으로 진행된다. 탐방결과는 귀국 후 파워포인트와 UCC 등을 제작해 성과발표회를 통해 발표회를 가지고 우수팀에게는 장학금을 지원한다. 국제교육원에서는 이 프로그램이 차별화된 자기주도적 어학연수 프로그램으로 정착되도록 해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할 계획이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검찰 ‘계엄 문건’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 강제송환

    검찰 ‘계엄 문건’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 강제송환

    검찰이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문건 의혹의 핵심 인물인 조현천(60) 전 기무사령관의 강제송환 절차에 착수했다. 22일 검찰과 법무부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양중진 부장검사)는 미국 외교·사법당국에 조 전 사령관에 대한 범죄인인도를 요청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청구서 번역 등 실무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범죄인인도 청구서는 대검찰청과 법무부·외교부를 거쳐 늦어도 이달 안에 미국 사법당국에 접수될 전망이다. 조 전 사령관은 2017년 9월 전역한 뒤 같은해 12월 미국으로 출국해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계엄령 문건 관련 의혹 군·검 합동수사단’은 지난해 조 전 사령관의 자진귀국을 타진했지만 여의치 않자 지난해 9월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강제 신병확보를 준비해왔다. 조 전 사령관은 이후 외교부의 여권 반납 통지에도 응하지 않아 여권이 무효화됐다. 수사단은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에도 조 전 사령관의 수배를 요청했다. 다만 인터폴의 수배 발령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미 당국이 조 전 사령관의 신병을 확보해 범죄인인도 결정을 내리면 실질적인 송환절차가 시작된다. 다만 조 전 사령관이 현지에서 소송 등으로 이의를 제기하면 송환이 길게는 수 년 간 지체될 수 있다. 검찰은 조 전 사령관이 자진귀국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조 전 사령관은 2017년 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계엄령 문건 작성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문건을 작성하도록 지시하고 이를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문건에서 조 전 사령관은 계엄령 시행 중 경찰과 국정원, 헌병의 기능과 역할을 총괄하는 합동수사본부장을 맡는 것으로 돼 있다. 계엄문건 수사단은 박 전 대통령과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장준규 전 육군참모총장 등에 대해 조 전 사령관의 소재가 발견될 때까지 참고인 중지 처분을 내렸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귀국길 베이징서 포착된 김영철·김성혜

    귀국길 베이징서 포착된 김영철·김성혜

    미국 워싱턴 방문을 마친 김영철(가운데)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21일 경유지인 베이징 서우두공항에 도착해 이동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성혜 북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베이징 연합뉴스
  • ‘007작전’ 같았던 김영철 방미… 킹 목사 배경 기념사진도 화제

    ‘007작전’ 같았던 김영철 방미… 킹 목사 배경 기념사진도 화제

    2박3일간 노출 꺼리고 귀국길 연막작전 롤러 美국무부 의전장 환송 등 ‘특급 예우’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2박 3일간 미국 워싱턴DC 방문을 마치고 19일(현지시간) 워싱턴을 출발해 20일 귀국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 17일 오후 미국 입국부터 19일 출국까지 김 부위원장은 한 편의 ‘007 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일정과 동선의 노출을 최소화했다. 북·미는 김 부위원장의 출국 순간까지 취재진을 상대로 연막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방미 일정 마지막 날인 19일 김 부위원장이 숙소인 워싱턴DC 듀폰서클호텔을 나선 것은 낮 12시 40분쯤이었다. 그의 일정에 맞춰 취재진이 몰려들자 미 경호요원들은 호텔 로비에 있는 취재진 신원을 확인하더니 밖으로 쫓아냈다. 앞서 ‘김 부위원장 일행이 일찍 호텔을 떠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화물용 쪽문에서 대기하던 경호차량이 오전 11시 30분쯤 움직이며 호텔 건물을 한 바퀴 돌아 정문을 지나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김 부위원장을 기다리던 취재진을 따돌리기 위한 연막작전으로 밝혀졌다. 김 부위원장 일행은 오후 1시 10분쯤 덜레스공항에 도착했다. 미국 측에서 숀 롤러 국무부 의전장과 마크 내퍼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 등이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무부 의전장은 통상적으로 장관급 인사에 대한 의전을 맡지만 정상급 외교행사도 담당한다. 때문에 롤러 의전장의 환송은 그만큼 미국이 북한에 ‘특급 예우’를 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전날인 18일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오전 10시 45분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함께 호텔에 나타났고, 취재진을 피해 전날 김 부위원장이 이용한 쪽문을 통해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북·미는 9층 연회장 ‘더하이츠’에서 50분 동안 고위급회담을 했다. 이어 김 부위원장은 백악관으로 이동해 낮 12시 15분부터 90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뒤 오후 2시쯤 호텔로 돌아왔다. 이어 폼페이오 장관과 비건 대표가 다시 호텔을 찾았고 9층 연회장에서 오찬을 겸한 2차 회동이 1시간 30분가량 이어졌다. 김 부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의 고위급회담 기념사진도 화제였다. 기념사진 배경이 미 인권 상징인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가 나온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인권 등 특별한 정치적 의도를 갖고 배치됐는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올해는 3·1운동 기폭제 된 고종 승하 100주년…모르는 사람 많아 안타까워”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올해는 3·1운동 기폭제 된 고종 승하 100주년…모르는 사람 많아 안타까워”

    ‘황사손’ 이원이 말하는 고종 승하 100주년“올해가 고종광무태황제 승하 100주년입니다. 3·1만세운동 100주년인 것을 알면서도 만세운동의 직접적 도화선이 된 고종 황제의 붕어 100주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황사손으로서 안타깝고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고종 황제는 1919년 1월21일 오전 6시30분쯤 일제에 의해 독살되셨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이지만 해마다 이날 정오에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홍릉에 가서 제향을 봉행합니다. 고종 황제가 당시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는데, 나라를 잘 못 이끌었다는 오해를 아직도 받고 있습니다. 역사교육이 잘 못된 점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21일 정오 고종 왕릉인 남양주서 ‘홍릉제향’ 봉행 그를 만나면 무엇부터 질문할까 고민했다. ‘군주국이 아닌 나라에서 황위 계승자 제1순위로서의 삶’을 먼저 물어볼까하다 ‘고종 사망 100주년의 소회’를 물었다. 황사손(皇嗣孫·(대한제국)황실의 적통을 잇는 후손) 이원(57·본명 이상협)은 2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만감이 교차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제5대 대한제국 황실의 수장으로, 사단법인 대한황실문화원 총재,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총재도 겸하고 있다. 고종의 증손자인 이원 총재는 2005년 영친왕계의 이구 황태손이 타계한 이후 3년상을 치르고 그의 계자(系子)로 입양돼 황가의 법통을 이어가고 있다.- 고종 황제의 승하 당시 어땠나요. -> 고종이 항일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기에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역적 매국노들은 눈엣가시 같은 고종을 독살했든 겁니다. 1919년 1월 21일 아침 6시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에서 한약·식혜·커피를 드시고 30여분만에 시해되셨습니다. ‘윤치호 일기’에 의하면 황제는 식혜를 마신지 30분도 안 되어 심한 경련을 일으켰고, 사후에 보니 혀와 치아가 타 없어지고, 30cm 가량 되는 검은 줄이 목 부위에서 복부까지 길게 나 있었으며, 온몸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는 것입니다. 독살됐다는 확실한 증거 기록입니다. “고종, 21일 아침 6시 한약·커피·식혜 마시고 승하심한 경륜 후…혀·치아 타 없어져 독살 시해 증거고종 시해 이유…항일독립 망명정부 차단하려고”- 고종 승하에 백성들은 왜 ‘만세(萬歲)’라고 외쳤을까. -> 만세가 요즘이야 축하나 환호할 때 외치는 소리이지만, 그때만 해도 황제에게만 사용하는 경칭이었고, 죽음이란 단어를 꺼렸습니다. 국호가 ‘대한제국’이었으니 자연스럽게 ‘대한독립 만세’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대한광복군정부(大韓光復軍政府)의 수장이었던 황제가 억울하게 독살당하자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염원한 백성들이 공분을 일으킨 것입니다. 고종의 항일 투쟁의 뜻을 기리는 백성들이 인산일(因山日·왕과 왕가의 장례일)인 3월 3일에 앞서 자발적으로 모여 만세를 외쳤던 것입니다. 인산일에 맞추려다 국장날 소요는 예가 아니다고 미루고, 전날인 3월2일은 일요일이어서 하루 늦췄다고 합니다. 결국 1일로 날짜가 맞추진 것이 3·1독립만세운동입니다. - 고종의 독립운동 가운데 일반인이 잘 모를 법한 이야기는. ☞ 고종 황제는 1897년 황제국을 선포한 것도 지금보면 여러모로 의미있는 일입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을 1894년 갑오개혁때 공식적인 국문 즉 ‘나랏글’로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근대 문명의 초석이 된 겁니다. 한글을 이용한 잡지와 신문 발간도 적극 권장했지요. 서울신문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도 출간도 가능했던 겁니다. 또 일본보다 2년 빠른 1884년 미국 에디슨전기회사와 협약해 창덕궁에 전기등소를 설치하고 종로에 전차를 도입했습니다. 종로를 아시아에서 가장 번쩍이며 화려한 명소로 탈바꿈시키셨던거죠. 친일역적 매국노들이 고종 황제를 철저히 암군(暗君·어리석고 아둔한 군주)으로 묘사했지만 최근 학자들에 의해 개명군주(開明君主)로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고종, 한글 공식 나랏글 선포…개명군주 역할 많아대한광복군정부 수장…항일 구국 독립운동 구심점- 대한광복군정부에 대해 설명하면. ☞ 고종 황제는 1907년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황위에서 강제로 퇴위되셨습니다만 1914년 이상설(1871~1917)을 중심으로 설립된 첫 망명 정부인 대한광복군정부의 수장이 되어 항일구국 운동을 지원하셨습니다. 대한광복군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규군으로, 다시 대한민국국군의 모체가 됩니다. 간접적인 독립활동에 한계를 느끼신 황제는 이상설과 이회영(1867~1932)의 계획 아래 중국에 망명해 항일구국 독립투쟁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려 하셨습니다. 이런 망명 계획을 첩보로 입수한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민병석·송병준·이완용·윤덕영·한상학이 고종의 망명을 차단하려고 암살을 한 겁니다. - 군주국이 아닌 공화국에서 황사손의 역할은. ☞ 가장 대표적인 직무는 종묘대제·사직대제·환구대제(대한제국 황실 선포 및 국태민안 기원 제사)·조경단대제(조선왕실 시조 즉 전주이씨 시조묘 제사) 그리고 연중 66회의 왕릉제향의 초헌관(初獻官)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연간 70번 거행되는 제사에서 왕과 왕비 신위에 술잔을 처음으로 올리는 제관 역할을 하는 겁니다. 왕실 초헌관은 조선시대 때부터 국왕이 그 역할을 했습니다만 이구 황태손 저하를 이어 제가 그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조선왕실과 대한제국황실의 그 유구한 역사·문화적인 유산을 지금도 계승하고 있으며, 대한제국황실이 그 정통성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공화국이 된 나라에서 황제 계승자라는 직위는 다른 분들에겐 사실 설명하도 이해를 잘 못하는, 그래서 외로운 면이 있습니다. “황사손 역할, 연중 70회 대제·제향 초헌관 맡아유구한 역사 계승…대한민국 정통성 뒷받침 자부”- 황실 최고령인 이해경씨 환국은. ☞ 제게는 고모님이 되시는 해경 황녀님은 1930년 태어나셨서 올해 구순이 됩니다. 고종 황제의 다섯째 왕자이신 의친왕(1877~1955)의 5녀입니다. 조선왕실 법도로 보면 의친왕의 공주가 되고, 대한제국 황실 법도로 보면 황녀가 됩니다. 1956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신 이후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한국학 사서로 조선의 기록을 많이 발굴해 내셨습니다. 1996년 정년퇴직하신 이후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홀로 거주하고 계십니다. 뉴욕의 한인사회 주요 행사에 참석하시며 교민들에게 정신적 구심점이 된다 들었습니다. 뉴욕에서는 황녀라는 호칭보다 ‘한국 공주님’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계십니다. 독립한 조국이 있는데 이역만리에서 홀로 생활하시는 게 너무 마음에 걸립니다. 더 늦기 전에 환국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환국시 친모이신 의친왕비가 생활하셨던 안동별궁이나 사동궁이 좋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습니다. 황실의 상징성을 고려해 이구 황태손 저하와 영친왕비, 그리고 덕혜옹주께서 기거하셨던 창덕궁 낙선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황사손으로 보람을 느꼈던 일은. ☞ 2017년과 작년 미국 수도 워싱턴D.C에 있는 스미스소니언박물관 관계자들과 오하이오주에 사는 고종 황제의 주치의였던 호러스 알렌 박사 후손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소개되자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관계자들은 저를 ‘His Imperial Highness’(저하)로 경칭해 놀랐습니다. 또 알렌 박사의 고향에선 ‘한국의 황태자가 온다’는 소문에 알렌 박사의 증조카 며느리의 집에 동네사람들이 저를 만나려 몰려왔습니다. 그들도 저를 ‘Your Highness’로 높여 불러주었습니다. 한 이웃은 오찬 음식점까지 자신의 자녀들을 데려와 소개시켜주면서 “오늘 한국의 황태자를 알현하는 것은 저희 가족에게는 큰 영광이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대한제국 황실의 수장으로서의 뿌듯한 마음을 갖게 됐고 또한 큰 위로도 받았습니다. 황사손에 대한 마땅한 영어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해외왕실교류수석위원이신 김영관 박사는 제1위 황위 계승자이니 영어로 ‘The Crown Prince His Imperial Highness’(황태자 저하)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고, 현재 영어로는 그렇게 호칭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알렌 후손들로부터 환수된 문화재는 서울시에 기증하였습니다. “황실 최고령 이해경 황녀, 늦기 전에 환국해야사직대제·환구대제·왕릉제향 유네스코 등록 추진”- 앞으로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은. ☞ 올해는 특히 국민을 섬기며 대한민국의 문화 융성에 이바지하려고 합니다. 종묘대제와 종묘제례악이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가장 큰 이유는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즉, 민주공화정에서도 종묘에 모셔진 역대 왕과 왕비의 직계손이 제향에 초헌관으로 참여함으로서 그 뿌리와 원형이 인정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사직대제와 환구대제 그리고 왕릉제향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올해도 지속적인 노력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뉴욕한인축제나 에딘버러축제에서 어가행렬을 재현하는 행사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종묘제례악이나 어가행렬은 단순한 제례의식의 절차를 뛰어 넘어 대한민국만이 보유한 역사·종교·문화 유산으로서 그 가치가 지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우리의 역사문화 유산에 큰 자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또 알렉 박사의 후손들을 올해 직접 방문해 작년에 환수하지 못한 나머지 유물 환수와 숨겨진 역사적 사실들은 발굴할 계획입니다. 이런 여정을 영상으로 남길까합니다. 그는 황사손이라고 하지만 궁궐이 아니라 서울 성북동의 한 아파트에 산다고 했다. 황사손이 되기 전에는 그도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상문고와 뉴욕공과대(NYIT)를 마치고 미국 케이블사 홈박스오피스(HBO)의 PD로 일하다 1990년 귀국했다. 금강기획을 거쳐 현대방송 PD, 현대홈쇼핑 디지털방송본부장으로 있다가 황사손으로 선정됐다. ‘직장인으로 승승장구했는데, 미련이 많겠다’고 하자 그는 “하늘의 부름이죠”라며 말끝을 흐렸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방미 마친 김영철 베이징 도착…최소 1박 할 듯

    방미 마친 김영철 베이징 도착…최소 1박 할 듯

    미국 워싱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예방하고 귀국길에 오른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20일 오후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 김 부위원장은 최소 하루 이상 베이징에서 휴식을 취한 뒤 북한행 항공편을 탈 것으로 보인다. 김 부위원장은 이날 오후 6시 36분(현지시간) 워싱턴발 중국국제항공편으로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했다. 귀빈실을 통해 전용 차량을 타고 공항을 빠져 나갔기에 취재진과는 접촉하지 않았다. 이날 공항 귀빈실에는 중국 측이 제공한 의전 차량과 주중 북한대사관 차량이 대기해 김 부위원장 일행을 태웠다. 김 부위원장 일행은 이날 평양행 항공편이 없어 주중 북한대사관에서 최소한 1박을 할 예정이다. 21일에는 평양으로 가는 중국국제항공이 있으나 북한 고위 관리들이 고려항공만 이용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22일 귀국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베이징에서 김 부위원장이 중극과 접촉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나눈 2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대화 내용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고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김 부위원장은 이번 2박 3일간 방미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90분간 면담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과 비핵화 의제를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김 부위원장은 백악관 예방에 앞서 폼페이오 장관과 고위급 회담을 가졌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안산서 영유아 5명 홍역 확진…의심자도 7명

    안산서 영유아 5명 홍역 확진…의심자도 7명

    대구와 안산 등 전국에서 홍역 확진 환자가 연이어 나오면서 보건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20일 20일 경기도 등에 따르면 지난 18일 안산시에서 0∼4세 영유아 5명이 홍역에 걸렸다. 도는 현재 의심증상자 7명에 대해서도 검사를 의뢰하고 집중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홍역 확진자 중 2명은 어린이집 2곳에 다니는 어린이로 알려졌다. 일부는 지난 11일 시흥에서 홍역 환자로 확진된 생후 8개월 된 영아와 접촉한 이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도는 지난달 24일 안양에서 홍역 확진 환자가 발생한 이후 3주간 추가 환자가 발생하지 않아 지난 13일 홍역 감시체계를 해제한 바 있다. 안양에 거주하는 A씨는 태국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지난달 9일 귀국한 뒤 열흘이 지나 홍역 의심증세로 병원에 검사를 의뢰했고 지난달 24일 확진 진단을 받았다. 홍역 감시체계가 종료된 지 며칠 만에 안산에서 또다시 홍역 확진 환자가 발생하면서 도는 앞으로 6주 동안 비상대응체계를 유지할 방침이다. 도 관계자는 “확진이 확인된 18일 이후부터 관련 의료기관 종사자 및 방문자, 어린이 등 접촉자 400여명에 대해 역학조사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대구에서는 지난 19일 동구 한 소아과의원과 문화센터를 방문한 생후 9개월 된 남자아이가 홍역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금까지 대구·경북의 홍역 확진자는 16명으로 알려졌다. 20∼30대 성인이 8명, 영유아가 8명이다. 홍역은 초기에 감기처럼 기침, 콧물, 결막염 등 증상이 나타나고 고열과 함께 얼굴에서 시작해 온몸에 발진이 나타난다. 증상이 나타나면 질병관리본부 콜센터(국번없이 1339)로 문의하면 된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방미 마치고 귀국길 오른 김영철…결과 묻자 ‘노코멘트’

    방미 마치고 귀국길 오른 김영철…결과 묻자 ‘노코멘트’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19일(현지시간) 2박 3일의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김 부위원장은 철통 경호 속에 취재진을 따돌리며 베이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방미 성과에 대해서는 철저히 입을 함구했다. 김 부위원장은 이날 오후 3시 49분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중국 베이징으로 가는 에어차이나(중국국제항공·CA) 818편을 타고 출국했다. 김 부위원장은 베이징을 거쳐 북한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낮 12시 40분 숙소인 워싱턴DC 듀폰서클 호텔을 나선 김 부위원장은 비행기 출발 예정시각보다 2시간여 이른 오후 1시 10분께 공항에 도착했다. 김 부위원장은 공항 1층 중앙에 마련된 귀빈 전용 출국 수속대를 통해 곧바로 통제구역 안으로 들어갔다. 김 부위원장은 숀 롤러 국무부 의전장과 마크 내퍼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을 비롯한 국무부 측 환송 인사와 보안요원들의 안내를 받아 이동했다.김 부위원장이 17일 입국할 때에 이어 귀국길 공항에도 국무부 의전장이 나온 것은 미국측이 그에 대한 예우에 특별한 신경을 쓴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VIP 통로로 이동하던 중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백악관 면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의 고위급 회담 등에 대한 결과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일절 답변하지 않았다. 공항에 같이 들어선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도 취재진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함께 이동하던 최강일 외무성 북아메리카국장 직무대행은 2층 출국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방미 결과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노코멘트”라고만 짧게 답했다. 김 부위원장은 이번 2박 3일간 방미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90분간 면담하고 2차 북미정상회담과 비핵화 의제에 관해 논의했다. 트럼프 대통령 면담은 지난해 6월 1일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김 부위원장은 백악관 예방에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고위급 회담을 가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백악관을 방문한 김 부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이 보낸 친서를 직접 전달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백악관은 친서가 전달됐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김 부위원장 면담 이후 보도자료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김 부위원장과 90분간 비핵화와 2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논의했다”며 “2차 정상회담은 2월 말쯤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담 장소는 추후에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이에 앞서 김 부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의 회담 후 국무부는 “폼페이오 장관과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김 부위원장과 (지난해 6월1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한 약속들에 대한 진전을 이루는 노력들에 대해 좋은 논의를 했다”고 밝혔다. 김 부위원장의 이번 방미는 ‘로우키 행보’였다. 지난해 5월 뉴욕을 방문해 비교적 과감하게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과 대조적이었다. 당시 김 부위원장은 뉴욕 도착 당일 폼페이오 장관과 만찬을 했다. 만찬장은 맨해튼 야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38번가의 초고층 빌딩에 마련됐고, 폼페이오 장관이 창밖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김 부위원장에게 설명하는 모습은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당시는 미국이 6·12 1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경제적 번영 모델을 보여주면서 비핵화를 설득하려는 취지였다면, 이번에는 ‘스웨덴 실무협상’과 맞물려 북미 간 민감한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 측 실무협상 대표인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이날 스웨덴 스톡홀름을 방문,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 2차 정상회담을 위한 북미간 실무협상에 들어갔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 17일 베이징에서 출발한 유나이티드항공(UA808) 직항편을 타고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북한 고위 관리가 미국의 심장부인 워싱턴을 통해 입국한 것은 김 부위원장이 처음이다. 수행원을 포함한 북측 일행은 10명 안팎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영철, 폼페이오와 트럼프 차례로 만나”…이르면 내일 북미회담 일정 발표

    “김영철, 폼페이오와 트럼프 차례로 만나”…이르면 내일 북미회담 일정 발표

    1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날 것이며, 이르면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공식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은 17일 2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김 부위원장을 워싱턴DC의 한 호텔에서 만날 것으로 예상되며 (이후) 백악관으로 가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AFP통신도 “김 부위원장이 숙소인 듀폰서클호텔에서 폼페이오 장관을 만날 것으로 보인다”며 “둘이 이른 오찬을 함께 하고 백악관으로 향할 것 같다”고 전했다. 김 부위원장의 숙소에서 백악관까지는 차량으로 5∼6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로이터통신도 소식통을 인용해 “김 부위원장은 오는 18일 폼페이오 장관과 회담할 예정이며 고위급회담과 잠재적인 트럼프 대통령 면담의 결과로 2차 북미정상회담 계획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폼페이오 장관과 김 부위원장은 이날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 일정과 의제를 최종 조율한다. 고위급회담에서는 미국이 요구하는 중대한 비핵화 조치와 북한이 원하는 제재완화와 종전선언 등 상응조치 사이에 치열한 접점찾기가 시도될 것으로 예상된다. 2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고위급회담이니만큼 핵 목록 신고 등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제재 완화는 없다고 강조해온 미국과 상응 조치에 따라서는 영변 핵시설 폐기까지 고려할 수 있다는 북한이 어느 정도 수준에서 절충점을 찾을 지 주목된다.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문제도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김 부위원장은 폼페이오 장관과의 고위급회담에 이어 백악관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예방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위원장은 2박 3일간 워싱턴에 체류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최고위급 인사가 워싱턴에서 묵는 것은 2000년 10월 조명록 당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4박5일간 방문한 후 19년 만이다. 조 부위원장은 백악관 인근의 메이플라워 호텔에 투숙했다. 김 부위원장은 2박3일간의 방미 일정을 마친 뒤 19일 베이징을 경유하는 귀국길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과 최강일 외무성 북아메리카국장 직무대행, 통역관 등 총 5명인 김 부위원장 일행은 오는 19일 오후 3시 35분 워싱턴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에어차이나 항공편을 예약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북 김영철 워싱턴 도착…2차 북미정상회담 조율 등 일정 돌입

    북 김영철 워싱턴 도착…2차 북미정상회담 조율 등 일정 돌입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17일(미 동부시간) 2차 북미정상회담과 비핵화 논의를 위해 미국 수도 워싱턴DC에 도착했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베이징에서 출발한 유나이티드항공(UA808) 편으로 이날 오후 6시 32분 워싱턴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북한의 고위 관리가 미국을 움직이는 워싱턴에 직항편으로 입국한 것은 처음이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해 5월말 고위급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뉴욕 JFK공항으로 입국,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회담을 가진 뒤 워싱턴을 차편으로 당일치기 방문했다. 미 국무부가 여전히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문 및 일정을 공식 발표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의 고위급회담은 이튿날인 18일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은 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2차 북미정상회담 일정과 의제를 최종 조율한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폼페이오 장관과의 고위급 회담에 이어 백악관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을 예방하고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영철 부위원장과 면담을 가진 뒤 이르면 18일 제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공식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위원장은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 만찬을 하거나 별도의 부대 일정을 소화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부위원장은 2박 3일간의 방미 일정을 마친 뒤 19일 오후 베이징을 경유하는 귀국길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북 김영철, 베이징 도착…오후 6시 워싱턴행 비행기

    북 김영철, 베이징 도착…오후 6시 워싱턴행 비행기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 일정과 의제 등을 논의차 워싱턴으로 가기 위해 17일 낮(현지시간)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다. 김영철 부위원장 일행은 이날 오전 11시 30분쯤 평양발 고려항공(JS251)편으로 베이징 서우두 공항 2터미널에 도착한 뒤 귀빈실에 대기한 전용 차량 편으로 빠져나갔다. 이날 공항 귀빈실에는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 차량이 마중 나왔고 중국 측에서 국빈용 차량을 제공하며 의전을 갖췄다. 김 부위원장은 이날 오후 6시 25분에 워싱턴으로 출발하는 항공기에 탑승하기에 앞서 주중대사관 등에서 휴식을 취하며 북미 협상 전략 등을 최종적으로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미에는 지난 1차 북미 정상회담과 마찬가지로 김성혜 통일전선부 실장, 최강일 외무성 북미국장 대행이 수행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부위원장은 미국 동부 시간으로 17일 저녁 덜레스 공항에 도착한 뒤 휴식을 취하고 18일 오전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고위급회담, 18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면담 등의 일정을 소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부위원장의 일정은 당초 1박 2일로 알려졌으나 귀국 항공편을 19일로 예약해 2박 3일로 연장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하지만 김 부위원장이 수시로 항공편을 바꾼다는 점을 고려하면 워싱턴 일정에 따라 귀국 일정이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마닷 부모, 변호사 선임하고 피해자들과 합의 시도

    마닷 부모, 변호사 선임하고 피해자들과 합의 시도

    사기혐의를 받고 있는 래퍼 마이크로닷(본명 신재호·26)의 부모인 신모(61)씨 부부가 변호사를 선임하고 조카를 통해 채권자들과 합의를 시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16일 제천경찰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중순 신씨 부부가 선임한 A변호사가 경찰서를 찾아와 사기피해 신고 금액과 명단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A변호사는 이때 경찰에 선임계를 제출했다.변호사 선임은 귀국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언제 출석할지는 불투명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현재까지 피해를 봤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사람은 총 14명이다. 이들의 피해금액은 총 6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신씨 조카는 이달 초 마을을 찾아와 피해자들을 만난 뒤 차용증을 갖고 있는 2명과 합의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한 피해자는 “4000만원과 1500만원을 각각 빌려준 주민 2명이 합의를 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합의보다 사과를 먼저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사건은 지난해 11월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때문에 촉발됐다. 20년 전 제천에서 목장을 운영한 마이크로닷 부모가 친척과 이웃 등에게 거액을 빌려 뉴질랜드로 도주했다는 게 글의 요지였다. 마이크로닷이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지만 신씨 부부가 1998년 5월 뉴질랜드로 출국해 기소중지 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경찰은 이 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받자 인터폴에 신씨 부부의 적색수배를 신청했다. 이와 별도로 검찰은 범죄인 인도 청구 절차를 진행 중이다. 마이크로닷은 현재 출연 중이던 모든 방송에서 하차 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제천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문장길 서울시의원, 사할린 영구귀국동포들과 간담회 개최

    서울시에 거주하는 영구귀국동포들은 모두 50명이며 모두 강서구에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 노령이어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여 국가지원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사할린에 거주하는 자손을 만나려 해도 항공교통비 등 경제적 어려움으로 방문에 애로점이 있었다. 2000년경 대한적십자사의 사할린동포 영구귀국사업을 추진할 당시 2년에 한번 고향방문 여비를 지원하도록 계획되었으나 이후 영구귀국자가 급증하면서 현재는 4~5년에 한번 고향을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문장길 의원이 발의한 서울특별시 사할린영구귀국동포 지원에 관한 조례는 영구 귀국한 사할린 동포가 사할린 방문 시 교통비 80만원 지급과 사후 장제비 200만원을 지원하는 내용이 골자를 이루고 있다. 문 의원은 나라가 곤궁할 당시, 국가존재의 기본 임무인 동포들에 대한 보호와 귀국을 지원하지 못한 점에 대하여 대단히 잘못된 행위라 언급하며 이제라도 어르신들이 편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언급하였다. 간담회에 참석한 동포들은 대한민국에서 편하게 살 수 있게 배려해 준 점에 대하여 감사하다고 발언하고 사할린에 있는 가족들이 모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에 대하여서도 고민해달라고 하였다. 또한 사할린에 있는 자제들이 부모가 계시는 한국을 방문할 시 방문기간을 일주일 주는데 시간이 짧다며 방문시간의 연장도 부탁하였다. 4단지 귀국동포 대표는 영구 귀국 후 18년 동안 시의원등 고위 정치권에서 관심을 가져주고 방문하여 간담회를 가져본 기억이 없다며 문장길 시의원의 이번 간담회와 조례 성안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등촌9종합사회복지관 김기철 관장과 김지식 복지사는 사할린영구귀국동포 지원조례를 성안하여 고향방문기회를 확대시켜준 문장길 시의원의 노력에 감사하며 귀국동포들이 편안하게 고국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피력하고 문장길 시의원에게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곤궁하고 궁핍한, 소외되고 하소연 할 데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보살피는 의정활동을 해주십사 당부하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마이크로닷 부모, 변호인 통해 경찰에 귀국 의사 전달

    마이크로닷 부모, 변호인 통해 경찰에 귀국 의사 전달

    ‘사기 후 도피 이민’ 논란을 촉발시킨 래퍼 마이크로닷(신재호·26)의 부모 신모(61)씨 부부가 변호인을 통해 경찰에 귀국 의사를 전달했다. 충북 제천경찰서는 신씨 부부의 대리인인 A 변호사가 최근 경찰에 선임계를 제출했다고 16일 밝혔다. A 변호사가 방문 당일 경찰로부터 사기 피해 신고 금액과 명단을 확인하고 돌아갔다고 경찰이 전했다. 신씨 부부는 변호사가 확인한 자료를 바탕으로 피해자들과 합의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씨 부부가 변호사 선임계를 제출한 만큼 조만간 경찰 조사에 응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부부가 변호사를 통해 귀국 의사는 밝혔지만, 언제 출석할지는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마이크로닷이 방송을 통해 인기를 얻어가던 중 인터넷을 통해 마이크로닷 가족이 20여년 전 제천에서 목장을 운영하다가 친척과 이웃에게 거액을 빌려 뉴질랜드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들이 1998년 5월 뉴질랜드로 출국하자 검찰은 신씨 부부에 기소중지 조처를 내렸다.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논란이 커지면서 경찰은 인터폴에 신씨 부부에 대한 적색수배를 신청했고, 인터폴이 이를 받아들여 지난해 12월 12일 적색수배를 발부했다. 그러나 그간 신씨 부부는 물론 마이크로닷 형제도 행방이 묘연해져 이들이 또다시 잠적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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