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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일제 아픔 서린 ‘공사관’·한인 애환 함께한 ‘영사관’ 사라진다

    대한제국 독립외교 의지 알린 공사관 1974년 직제에서 없애 사실상 사문화 일본 내 마지막 영사관 1995년 철수 1887년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서기관이었던 월남 이상재 선생은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나라에 주재하는 각국 공사는 30여개국으로 모두 부강한 나라이고 오직 우리나라만 빈약하지만 각국 공사와 맞서 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때 만약 조금이라도 꺾이면 국가의 수치이고 사명을 욕보이는 것”이라며 독립외교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영국 런던의 서리 공사였던 이한응 선생은 1905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공사관이 폐쇄되자 유서를 남긴 채 음독으로 순국했다. 그는 본래 ‘3등 참서관’이었지만 상관이 여러 이유로 귀국하자 홀로 남아 대한제국을 위한 외교를 펼쳤다. 그가 순국한 런던 얼스코트의 주영 한국공사관 건물은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대한제국부터 일제의 아픔을 오롯이 받아 낸 공사관과 1960~70년대 재외 한국인의 애환을 함께한 영사관이 법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외교부 관계자는 11일 “공사관, 영사관 제도를 현행 법률에서 삭제하는 대한민국재외공관설치법 개정안을 이날 입법예고했다”고 밝혔다. 공사관, 영사관이라는 용어와 함께 법적 설치 근거도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공사관은 1974년 외교부 직제에서 삭제됐고 일본 오키나와 나하에 위치했던 마지막 영사관은 1995년 철수됐다. 이후 신설된 공사관 및 영사관은 없으며 현재 재외공관은 대사관과 총영사관, 분관, 출장소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조직상으로는 사실상 사문화된 제도지만 이들 기관은 외교사적으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대한제국부터 시작된 공사관은 일본에 대항해 마지막까지 독립을 위해 헌신한 외교관들의 얼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제국은 1800년대 말 스스로 독립국임을 열강에 인식시키고 독립외교를 펼치겠다는 의지를 널리 알리려 미국, 유럽 등 곳곳에 상주 공사를 파견했다. 당시 한국에 있었던 열강의 공사관 제도를 빌려 외교에 나섰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신은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해 독립의 정당성을 알린 김규식 임시정부 대표 등에게 이어졌다. 주로 일본에 많았던 영사관 역시 1960~70년대 재외 한국인의 애환과 함께했다. 당시 외화벌이를 나섰던 많은 한국인이 영사관을 기억한다. 다만 한국의 국격이 높아지면서 영사관은 대사관과 총영사관으로 승격됐고 영사관이라는 명칭 자체가 일본의 영향으로 생겼기 때문에 자연스레 소멸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단독]일제 아픔 서린 공사관, 한인 애환 함께한 영사관 사라진다

    [단독]일제 아픔 서린 공사관, 한인 애환 함께한 영사관 사라진다

    이상재 선생, 주미공사관에서 독립외교 의지 다져주영공사 이한응 선생, 일제 폐쇄 조치에 음독 순국외교부, 재외공관설치법 개정안 입법예고사문화된 공사관 및 영사관 제도 없애기로 1887년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서기관이었던 월남 이상재 선생은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나라에 주재하는 각국 공사는 30여개국으로 모두 부강한 나라이고 오직 우리나라만 빈약하지만 각국 공사와 맞서 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때 만약 조금이라도 꺾이면 국가의 수치이고 사명을 욕보이는 것”이라며 독립외교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영국 런던의 서리 공사였던 이한응 선생은 1905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공사관이 폐쇄되자 유서를 남긴 채 음독으로 순국했다. 그는 본래 ‘3등 참서관’이었지만 상관이 여러 이유로 귀국하자 홀로 남아 대한제국을 위한 외교를 펼쳤다. 그가 순국한 런던 얼스코트의 주영 한국공사관 건물은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대한제국부터 일제의 아픔을 오롯이 받아 낸 공사관과 1960~70년대 재외 한국인의 애환을 함께한 영사관이 법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외교부 관계자는 11일 “공사관, 영사관 제도를 현행 법률에서 삭제하는 대한민국재외공관설치법 개정안을 이날 입법예고했다”고 밝혔다. 공사관, 영사관이라는 용어와 함께 법적 설치 근거도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공사관은 1974년 외교부 직제에서 삭제됐고 일본 오키나와 나하에 위치했던 마지막 영사관은 1995년 철수됐다. 이후 신설된 공사관 및 영사관은 없으며 현재 재외공관은 대사관과 총영사관, 분관, 출장소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조직상으로는 사실상 사문화된 제도지만 이들 기관은 외교사적으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대한제국부터 시작된 공사관은 일본에 대항해 마지막까지 독립을 위해 헌신한 외교관들의 얼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제국은 1800년대 말 스스로 독립국임을 열강에 인식시키고 독립외교를 펼치겠다는 의지를 널리 알리려 미국, 유럽 등 곳곳에 상주 공사를 파견했다. 당시 한국에 있었던 열강의 공사관 제도를 빌려 외교에 나섰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신은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해 독립의 정당성을 알린 김규식 임시정부 대표 등에게 이어졌다. 주로 일본에 많았던 영사관 역시 1960~70년대 재외 한국인의 애환과 함께했다. 당시 외화벌이를 나섰던 많은 한국인이 영사관을 기억한다. 다만 한국의 국격이 높아지면서 영사관은 대사관과 총영사관으로 승격됐고 영사관이라는 명칭 자체가 일본의 영향으로 생겼기 때문에 자연스레 소멸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한국 음악축제에서 ‘욱일기’ 두르고 돌아다닌 일본인

    한국 음악축제에서 ‘욱일기’ 두르고 돌아다닌 일본인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경기 용인에서 열린 음악축제 ‘울트라 코리아 2019’에서 한 일본인이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전범기인 ‘욱일기’를 몸에 두르고 돌아다닌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 알리기 활동을 하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1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여러 건의 제보를 받았다”며 “이를 본 입장객들이 주최 측 경호원에게 항의해도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서 교수는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나라 안에서 벌어질 수 있나”라며 “축제 관계자들은 당연히 이런 상황을 제지해야 마땅했고, 반항한다면 축제장에서 끌어 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일본인은 귀국하면 분명히 ‘한국에서 욱일기를 펼쳐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얘기를 여기저기 떠들고 다닐 게 뻔하다”며 “이를 방치한 주최 측은 공식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 교수는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하루빨리 ‘욱일기 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을 제정해야 다시는 이런 일이 국내에서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국회에서 잘 움직이지 않는다. 참 답답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민혁이가 아버지와 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

    “민혁이가 아버지와 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

    “직계 보호자 아버지 난민 인정돼야”“민혁이 아버님은 고국으로 돌아가면 죽습니다. 공정한 심사로 난민으로 인정해 주세요.” 10대 청소년들이 난민 친구의 아버지를 돕기 위해 10일 일일 릴레이 1인 시위에 나섰다. 이란 난민 소년 김민혁(16)군과 김군의 친구 4명은 이날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제협약인 난민협약과 국내법인 난민법에 의해 규정된 ‘가족 재결합’ 원칙에 따라 민혁이의 직계 보호자인 아버지는 당연히 난민으로 인정돼야 한다”며 “(이슬람 율법에 따라 개종을 중죄로 여기는) 이란으로 귀국하면 (기독교로 개종한) 아버지의 생명은 보장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군의 아버지 A씨는 11일 난민 재심사를 받는다. 김군과 9년지기라는 박지민(잠일고 1년)군은 “내가 돕지 않아 민혁이가 잘못된다면 후회할 것 같았다”면서 “이 자리에 나온 건 작게는 민혁이 아버지를 위해, 크게는 가혹한 난민 심사 시스템의 고리를 끊어내고 싶어서다”라고 말했다. 김군은 “아빠와 함께 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하나로 이 자리에 왔다”면서 “난민을 괴물이 아닌 사람으로, 차별이 아닌 존중으로 대해 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2010년 일곱 살 때 사업가인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온 김군은 기독교로 개종했다. 2016년 처음 난민신청을 했지만 불인정됐고 행정소송에서도 최종 패소했다. 김군은 중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의 지원을 받아 재심사 절차를 밟았으며 지난해 10월 끝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1차 신청 때 아들과 마찬가지로 불인정 처분을 받았던 A씨는 역시 소송을 진행하다가 상고를 포기하고 올해 2월 재심사를 신청한 상태다. 이번에도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하면 이란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에 올해 고등학생이 돼 흩어졌던 김군의 친구들이 다시 뭉쳤다. 김군은 11일 아버지에 대한 난민 재심사가 열리는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별관 앞을 지킬 예정이다. 심사는 2시간가량 진행되며 2주 후에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글 사진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선체 감싸는 본와이어 4묶음 연결 완료… 오늘 오후 인양할 듯

    선체 감싸는 본와이어 4묶음 연결 완료… 오늘 오후 인양할 듯

    클라크 아담호 인양작업 지점으로 이동 한 번에 5㎝ 들어올려… 3시간 소요될 듯 화장 절차 끝낸 희생자 4명 유가족 귀국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 침몰한 허블레아니호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인양 작업이 사고 발생 14일째인 11일(현지시간) 진행된다. 여센스키 난도르 헝가리 대테러청 공보실장은 10일 현지 브리핑에서 “오늘 와이어 결속작업을 모두 완료했다”며 “아직 안전과 관련된 잔업이 남아있다”고 밝혔다. 이날 우리 정부 합동 신속대응팀 현장지휘관인 송순근(주헝가리 한국대사관 국방무관) 대령은 브리핑에서 “어제 인양을 위한 본와이어 4개 중 3개(1·3·4번)의 연결을 완료했고, 오늘은 2번 와이어 연결 작업을 최대한 마칠 것”이라며 “인양은 내일 오전부터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초 2번 와이어는 선박 아래 강바닥에 단단한 돌이나 콘크리트 조각이 있어 연결 작업이 쉽지 않았다. 양국 인양 준비팀은 4개의 와이어로 선체를 감싸는 작업을 마쳤고, 허블레아니호를 들어올릴 대형 수상 크레인 ‘클라크 아담’도 인양 작업을 진행할 지점으로 이동했다. 11일에는 와이어와 ‘클라크 아담’ 사이를 로프로 연결해 인양 작업에 돌입한다. 신속대응팀은 크레인과 와이어 결속이 완료되면 허블레아니호를 인양하는 작업에는 약 3시간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송 대령은 “선체 높이가 5.4m이고 현재 다뉴브강 수위가 7.1m이니 약 2m를 끌어올리면 선체가 수면 위로 드러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블레아니호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면 양국 수색팀은 육안으로 조타실과 갑판 등을 살펴볼 예정이다. 이후 선실 창문을 깨트려 물을 뺀 뒤, 양국 대원 2명씩 선체에 진입해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게 된다. 인양 도중 선체가 흔들리거나 파손될 수 있기 때문에 한 번에 5㎝ 정도씩 천천히 들어 올리며 균형을 유지할 방침이다. 양국 대원들의 수색 작업 뒤에는 선박 구조를 잘 아는 현지 전문가를 대동해 두 번째 수색을 진행한다. 더이상 실종자가 발견되지 않으면 배를 바지선 위에 올릴 예정이다. 여센스키 난도르 공보실장은 “와이어로 선체를 결속하는 부위를 계산했기 때문에 선체가 파손될 위험은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헬리콥터와 보트를 이용한 수색 작업도 이어지고 있다. 데일리 뉴스 헝가리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헝가리 당국은 실종자 수색을 위해 다뉴브강 일대에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했다. 10일 기준 허블레아니호에 탑승한 한국인 33명 가운데 사망자는 19명, 실종자는 7명이다. 헝가리인 2명 중 선원으로 추정되는 시신 1구는 수습됐지만, 선장은 실종 상태다. 한편 이번 사고로 숨진 일부 희생자의 유해가 국내에 송환됐다. 항공업계와 신속대응팀에 따르면 희생자 4명의 유가족은 화장 절차를 마친 유골함을 들고 이날 입국했다. 희생자 유가족이 귀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사고 생존자 2명도 귀국했다. 이날 대전과 경기 안양시의 장례식장에서는 희생자들의 첫 장례식이 엄수됐다. 부다페스트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부다페스트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여성인권 투쟁 큰 별, DJ와 동행길 떠나다

    여성인권 투쟁 큰 별, DJ와 동행길 떠나다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97) 여사가 노환으로 10일 밤 별세했다. 97세. 김대중평화센터는 이날 “이 여사가 10일 오후 11시37분 소천했다”고 밝혔다. 이 여사는 그간 노환으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아 왔다. 1922년 태어난 이 여사는 이화여고와 이화여전,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뒤 미국 램버스대를 거쳐 스카렛대를 졸업했다.귀국 후에는 이화여대 사회사업과 강사로 교편을 잡는 한편 대한YWCA 한국 여성단체협의회 이사 등을 역임하며 여권 신장에 기여한 여성운동가로 활동했다. 1922년생인 이 여사는 앓고 있던 간암 등이 악화되면서 지난 3월부터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하지만 지난 8일부터 병세가 악화돼 이날 영면했다. DJ의 영원한 동반자이기도 한 이 여사는 DJ와 결혼하기 전 미국 유학을 다녀온 사회학 연구자로 여성계에서는 촉망 받는 사회운동가였다. 이 여사는 여성문제연구회의 창립을 주도했고 대한YWCA연합회 총무로서 여성기독교운동을 이끌었다. DJ가 정치낭인 시절 만나 결혼한 뒤 기나긴 옥바라지는 물론 민주화운동을 함께하면서 누구보다도 DJ와 가까운 조언자이자 비판자로 지냈다. DJ의 대통령 당선으로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자 여성·사회운동가였던 이 여사의 역할로 여성가족부의 모태가 되는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출범하는 등 여성 관련 정책에 큰 영향력을 줬다. 이 여사는 1999년 한국여성재단 발족 후 명예추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2009년 DJ 서거 후에는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으로 선임돼 별세 전까지 활동했다. 2015년 8월에는 93세의 노구를 이끌고 생애 3번째 방북에 나섰다. 이 여사의 건강은 올해 들어 악화돼 지난 1월에도 매년 해 오던 김대중평화센터 신년 하례식도 주치의 권고에 따라 취소하기도 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이희호 여사 별세…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반려이자 정치적 동지

    이희호 여사 별세…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반려이자 정치적 동지

    여성운동가로서 독자적 업적…여성 정치 확대에 기여김대중 전 대통령 별세 뒤에도 남북 평화 위해 헌신 이희호 여사가 10일 별세했다. 97세.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는 이날 “이희호 여사가 오늘 오후 11시 37분 소천했다”고 밝혔다. 이희호 여사는 최근 노환으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1922년 태어난 이희호 여사는 이화여고와 이화여전,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뒤 미국 램버스대를 거쳐 스카렛대를 졸업했다. 귀국 후에는 이화여대 사회사업과 강사로 교편을 잡는 한편 대한YWCA 한국 여성단체협의회 이사 등을 역임하며 국내 대표적인 여성 운동가로 활동했다. 상처했던 고 김대중 대통령과 1962년 결혼한 뒤에는 인생의 반려자이자 정치적 동지로서 고난과 역경, 그리고 영광을 함께 겪어왔다.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과 납치 사건, 내란음모 사건으로 인한 수감, 가택연금 등 군사정권 내내 이어진 감시와 탄압을 함께 겪으며 이겨냈다.특히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당시 사형 선고의 부당함을 알리는 등 국제적인 구명운동에 앞장섰다. 이를 위해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1997년 김 전 대통령이 4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70대를 넘어선 나이에 ‘퍼스트 레이디’로서 활발한 내조 활동에 나섰다. 특히 외환위기 직후 사회봉사 단체 ‘사랑의 친구들’과 ‘여성재단’을 직접 설립해, 마지막까지 고문직을 맡는 등 아동과 여성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이들의 권리 신장에 심혈을 기울였다. 김 전 대통령 재임 때 여성의 공직 진출 확대를 비롯해 여성계 인사들의 정계 진출의 문호를 넓힌 당사자이기도 하다. 한명숙 전 총리를 비롯해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미경 한국국제협력재단 이사장,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등이 김 전 대통령 발탁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 전 대통령과 동행해 영부인으로서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했다.그러나 김 전 대통령 재직 시절 3남 홍걸씨에 이어 차남 홍업씨까지 잇달아 구속되는 등 시련도 겪어야 했다. 이희호 여사는 김 전 대통령 별세 이후에도 재야와 동교동계의 정신적 지주로서 중심을 잡아 왔다. 마지막까지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자리를 지키며 남북 관계가 교착 상황에 빠졌을 때에도 남북 평화를 위한 조언과 행동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 교회여성연합외 ‘용감한 여성상’, 미국 캘리포니아주 ‘이 해의 탁월한 여성상’, 무궁화대훈장, 펄벅 인터내셔널 ‘올해의 여성상’ 등 인권과 여성문제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특1호실에 마련됐다.(02-2227-7550) 발인은 14일이며, 당일 오전 7시 고인이 장로를 지낸 신촌 창천교회에서 장례 예배가 열린다. 장지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이다. 이 여사는 가족 측의 의사에 따라 사회장으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이 여사의 장례를 주관할 장례위원회가 구성된 가운데 장상 전 국무총리서리와 평화당 권노갑 고문이 위원장을 맡고, 5당 대표가 장례위원회 고문으로는 참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선체 감싸는 본와이어 4묶음 연결 막바지… 11일 오후 인양할 듯

    선체 감싸는 본와이어 4묶음 연결 막바지… 11일 오후 인양할 듯

    와이어 작업 끝나면 클라크 아담과 연결 사고 지점 부근 인양 도울 선박 3대 배치 화장 절차 끝낸 희생자 4명 유가족 귀국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 침몰한 허블레아니호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인양 작업이 사고 발생 14일째인 11일(현지시간) 진행된다.  정부 합동 신속대응팀 현장지휘관인 송순근(주헝가리 한국대사관 국방무관) 대령은 10일 현지 브리핑에서 “어제 인양을 위한 본와이어 4개 중 3개(1·3·4번)의 연결을 완료했고, 오늘은 최종적으로 크레인 고리까지 걸 수 있도록 2번 와이어 연결 작업을 최대한 마칠 것”이라며 “작업이 순조롭게 끝나면 인양은 내일 오전부터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양 작업은 언론에 공개된다.  마지막 남은 2번 와이어 연결 작업이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송 대령은 “선박 아래 강바닥에 단단한 돌이나 콘크리트 조각이 있어 작업이 쉽지 않다”며 “오늘 오후 늦게 와이어 연결이 완료돼도 야간에는 수색 작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인양은 11일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작업이 완료되면 와이어가 선체를 감싸게 되고, 사고 지점 남쪽에 배치된 대형 수상 크레인 ‘클라크 아담’과 와이어 사이를 로프로 연결하면 인양 준비가 완료된다. 인양에 대비해 허블레아니호가 침몰한 지점 양옆으로는 인양 작업 바지선과 인양 선박 거치용 바지선이 놓였다. 사고 지점 북쪽에도 바지선이 배치돼 선박 위 포크레인이 강물 속 허블레아니호를 고정하고 있다.  신속대응팀은 본와이어를 크레인과 결속하기만 하면 허블레아니호를 인양하는 작업에는 3시간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송 대령은 “선체 높이가 5.4m이고 현재 다뉴브강 수위가 7.1m이니 약 2m를 끌어올리면 선체가 수면 위로 드러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블레아니호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면 양국 수색팀은 육안으로 조타실과 갑판 등을 살펴볼 예정이다. 이후 선실 창문을 깨트려 물을 뺀 뒤, 양국 대원 2명씩 선체에 진입해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게 된다. 인양 도중 선체가 흔들리거나 파손될 수 있기 때문에 한 번에 5㎝ 정도씩 천천히 들어 올리며 균형을 유지할 방침이다. 양국 대원들의 수색 작업 뒤에는 선박 구조를 잘 아는 현지 전문가를 대동해 두 번째 수색을 진행한다. 더이상 실종자가 발견되지 않으면 배를 바지선 위에 올릴 예정이다.  헬리콥터와 보트를 이용한 수색 작업도 이어지고 있다. 데일리 뉴스 헝가리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헝가리 당국은 실종자 수색을 위해 다뉴브강 일대에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했다. 10일 기준 허블레아니호에 탑승한 한국인 33명 가운데 사망자는 19명, 실종자는 7명이다. 헝가리인 2명 중 선원으로 추정되는 시신 1구는 수습됐지만, 선장은 실종 상태다.  한편 이번 사고로 숨진 일부 희생자의 유해가 국내에 송환됐다. 항공업계와 신속대응팀에 따르면 희생자 4명의 유가족은 화장 절차를 마친 유골함을 들고 이날 입국했다. 희생자 유가족이 귀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사고 생존자 2명도 귀국했다. 이날 대전과 경기 안양시의 장례식장에서는 희생자들의 첫 장례식이 엄수됐다.  부다페스트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서울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문 대통령 북유럽 순방 수행장관 4명 중 3명 여성인 까닭은?

    문 대통령 북유럽 순방 수행장관 4명 중 3명 여성인 까닭은?

    핀란드는 유럽 첫 여성참정권 부여여가부 수장으론 역대 첫 수행문재인 대통령이 6박 8일 일정으로 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 3국을 순방 중인 가운데 수행 장관 4명 가운데 3명이 여성으로 채워져 눈길을 끈다. 핀란드가 지난 1906년 유럽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부여하는 등 북유럽 3국이 양성평등 선도국가인 점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의 북유럽 순방을 수행하는 장관은 강경화 외교부, 진선미 여성가족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4명으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진 장관은 역대 여가부 장관 중 처음으로 대통령 순방 공식수행단에 포함됐다. 앞서 2014년 조윤선 여성부 장관이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참석했지만, 국제회의가 아닌 대통령의 국빈방문 일정을 수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 장관이 수행장관에 포함된 데에는 북유럽 국가들처럼 일·가정 양립 지원대책을 강화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핀란드는 여성들의 각료직 진출도 활발하다. 현재 6명의 여성 각료(35%)가 활동 중이며, 지난 4월 총선결과 여성의원 비율이 47%에 이른다. 중소벤처기업부를 이끄는 박 장관이 문 대통령의 3개국 순방 일정을 주도적으로 준비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번 순방에는 중소벤처기업와 스타트업 관련 일정이 다수 배치됐다. 문 대통령은 핀란드에서는 10일 북유럽 최대 첨단기술 허브인 오타니에미 산학연 단지를 방문하고, 11일에는 양국 기업인들이 집결한 가운데 ‘한·핀란드 스타트업 서밋’에 참석한다. 스웨덴에서도 ‘한·스웨덴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하며, 에릭슨사에서 개최되는 e스포츠 친선전 및 5G 기술시연도 관람할 예정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신산업 분야에서의 혁신성장 협력 강화가 순방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라며 “그만큼 박 장관과 중소벤처기업부가 준비에 힘을 쏟았다”고 설명했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지난 8일(현지시간) 세르비아를 방문, 고위급 인사를 만나 헝가리 유람선 침몰사고 실종자 수색에 힘써 달라고 요청한 후 귀국하지 않고 곧바로 문 대통령의 첫 순방지인 핀란드로 합류했다. 헬싱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포토] ‘방탄꽃이 피었습니다’ 귀국하는 방탄소년단

    [포토] ‘방탄꽃이 피었습니다’ 귀국하는 방탄소년단

    유럽투어를 마친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가 1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진, 제이홉, 슈가가 해바라기 분장으로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19.6.10 연합뉴스
  • 방탄소년단 진 제이홉 슈가, 이런 입국패션은 처음 ‘활짝 핀 해바라기’

    방탄소년단 진 제이홉 슈가, 이런 입국패션은 처음 ‘활짝 핀 해바라기’

    방탄소년단 진, 제이홉, 슈가의 입국패션이 화제다. 10일 오후 방탄소년단은 52일 동안의 유럽 투어를 마치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이날 진, 제이홉, 슈가는 해바라기 분장을 하고 등장해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진, 제이홉, 슈가는 해바라기 분장에도 귀여운 매력을 선보였다. 한편, 이날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방탄소년단은 지난 1~1일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 7~8일 프랑스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 등 2개 도시에서 ‘러브 유어셀프: 스피크 유어셀프’(LOVE YOURSELF: SPEAK YOURSELF) 공연을 진행했다. 이들은 4회 공연을 전석 매진시키며 총 23만 관객과 만났다. 사진=연합뉴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現정부 최장’ 46일째 국회 표류 중인 추경안… 文 “답답하다”

    ‘現정부 최장’ 46일째 국회 표류 중인 추경안… 文 “답답하다”

    황교안 “비정상 원인 文대통령·민주당” 오늘 각당 대표 정기회동도 불참 시사 민주당 “원안” vs 한국당 “재난 예산만” 이번주엔 상정돼야 이달말 집행 가능 여야 간 국회 정상화 협상이 9일까지도 진척되지 못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세 번째 추가경정예산안은 46일째 표류하고 있다. 국회가 정상화되더라도 2주 정도의 추경 심의과정을 고려하면 문재인 정부 들어 최장기 계류한 추경이 될 전망이다.문재인 대통령은 6박 8일간의 북유럽 순방 출국에 앞서 이날 문희상 국회의장과 전화 통화를 갖고 “정부에서 긴급하게 생각하는 추경안이 국회에서 심사조차 되지 않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출국하려니 마음이 좋지 않다. 순방 전에 여야 지도부를 만나려 했으나 그것도 안 됐으니 의장님께 부탁드린다”고 국회 정상화 노력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서울공항 환송행사에서 이해찬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를 만나 국회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을 표하며 “추경이 안 돼 답답하고 국민도 좋지 않게 볼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에게 “출국 전에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해 송구하다”며 “대통령 귀국 전에 잘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이해찬 대표는 “내일 초월회가 모이는 날인데 반응이 없어 안타깝다”고 밝혔다. 반면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국회가 열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돼야 하는데 지금 국회가 비정상이 된 원인은 문 대통령과 민주당에 있다”고 비판했다. 황 대표는 서울 영등포 당사에 개최한 ‘육아파티’에 참석한 후 “국회가 빨리 정상화되기를 바라지만 정상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지 않아서 들어와 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재해 추경이란 것을 빌미로 해서 정상 예산이나 예비비로 할 수 있는 것을 추경으로 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황 대표는 10일 예정된 문 의장 주재 각 당 대표 정기 회동인 ‘초월회’ 참석 여부에 대해서도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불참을 시사했다. 여야 원내 교섭단체 대표는 주말까지 국회 정상화를 위한 물밑 접촉을 이어갔지만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변인은 “협상 관련 부분은 계속 기다리고 진행 중인데 아직까지 큰 진전은 없다”며 “이번 주가 중요한 시점인데 10일을 넘어서 상정해 합리적 수준의 심의가 2주 정도 걸리면 6월 말 의결하고 집행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문구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조정하고 있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민주당의) 태도”라고 강조했다.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는 “정상화를 위해 대화하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여야는 추경 예산 중 재난 대응 예산의 분리 처리 여부를 두고 대립하고 있다. 민주당은 정부가 제출한 추경을 원안 그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한국당은 강원 산불·포항 지진 등 재난지역 지원예산을 분리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바른미래당은 추경 예산 중 절반 이상이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되는 데 주목해 민생 예산이 아닌 끼워넣기 사업 등을 밝히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희생자 장례비·유족 체류 재해구호기금 우선 지원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발생한 선박 침몰 사고와 관련해 정부가 피해자를 재해구호기금 우선 지원 대상에 포함하고 트라우마센터를 이용토록 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9일 “보건복지부에서 이번 사안과 관련해 피해자나 그 가족이 원하면 각 지방자치단체에 마련된 트라우마센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며 “또 복지부 직원은 희생자의 장례 절차를 위해 직접 병원을 찾아 관련 예약을 진행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도 지난달 30일 해당 선박의 탑승객에 대해 재해구호기금의 우선 사용이 가능하다는 공문을 지방자치단체에 보냈다. 33명의 탑승객 중 8명이 포함된 충남도·대전시는 항공료, 체류비, 장례비 등 관련 소요비용을 재해구호기금을 통해 지원할 예정이다. ●파견 잠수사 건강 우려 대체인력 구성 외교부는 영사조력 및 외교 협조를 위한 인력을 대거 현지에 파견했고 해경, 국방부 등은 잠수사를 투입한 데 이어 이들의 체력 저하 등을 우려해 대체인력을 구성했다. 여성가족부는 세월호 사고 당시 피해 가족을 상담했던 인력을 포함해 가족전문상담사를 헝가리 현지에 파견했다. 현지에 갔던 피해자 가족 49명 중 2명은 생업 등을 이유로 귀국했으며 구조자 7명과 희생자 7명은 아직 입국하지 않았다. 외교부 청사에 마련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는 외교부를 중심으로 각 부처에서 연락관을 파견해 역량을 모으고 있다. 현지 교민 역시 통역 지원 및 자원봉사에 참여하고 추모 집회를 여는 등 힘을 보태고 있다. ●강 외교 “비셰그라드 국가 지원에 감사” 한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8일(현지시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를 방문해 이비차 다치치 부총리 겸 외교장관과 회담을 갖고, 아나 브르나비치 총리를 예방했다. 실종자 수색 협조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 마지막까지 적극 협조해주기를 요청했다. 강 장관은 전날에도 슬로바키아 브라타슬라바에서 한·비셰그라드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해 비셰그라드(폴란드·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 국가의 지원을 높이 평가했다. 다뉴브강 상류의 슬로바키아가 강 수위를 낮춰 사고 선박을 인양할 대형 크레인이 사고 지점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박정희 방탄차·일제시대 소방차까지… 50년간 올드카에 미쳤다

    박정희 방탄차·일제시대 소방차까지… 50년간 올드카에 미쳤다

    1955년 8월 시발 자동차 생산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60여년 만에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발전했다. 생산량에서 세계 5위에 이르며 품질 및 디자인 면에서도 강대국이 됐다. 이런 저력의 밑바닥에는 뚝심과 열정으로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온 자동차 장인들이 있었다. 그중 경기 여주시 대신면 옥촌리에 있는 ‘금호클래식카’ 백중길(71) 회장 같은 사람도 있다. 그는 1969년부터 반세기 동안 자동차 수집에 몰두해 왔다. 지난 50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수집해 온 자동차는 대통령이 타던 방탄차를 비롯해 1000여대에 이른다. 문화재로 등록된 국내 자동차 7대 중 3대를 백 회장이 갖고 있다. 그동안 모아 온 자동차는 영화, TV 드라마, CF 등 제작에 필수품이 됐다. 그의 자동차는 영화 ‘밀정’을 비롯해 TV 드라마 ‘모래시계’ 등 5000여편에 출연해 왔다. 대당 몇십만원에 불과한 대여료만으로는 20명에 가까운 직원들 인건비와 자동차 유지 관리비에 턱없이 부족하다. 모두 처분하고 편하게 여생을 보낼 수도 있었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이 미친 일을 하겠냐’ 싶어 손을 놓지 못한다고 한다. 자동차박물관 건립을 꿈꾸는 백 회장으로부터 지난 얘기를 들어봤다.-많은 비용이 드는 자동차를 수집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가 해방 이후 택시사업을, 6·25전쟁 후에는 운수업을 하셨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핸들을 돌리며 놀 만큼 자동차와 친했다. 1965년 홍천 수송학교에서 4주 교육받고 맹호부대 공병대에 배치되면서 기술을 배우게 됐다. 제대 후 1년 동안 베트남에 기술자로 가서 번 돈으로 서울 신당동에 자동차부품 수입판매회사를 차렸다. 1973년 오일쇼크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사업이 잘됐다. 이후 유럽으로 건너가 트레일러 운전을 하면서 자동차 튜닝 등에 견문이 넓어졌다. 귀국해 보니 1962년 정부의 자동차진흥정책 발표 이후 새나라, 코로나 등 국산 자동차들이 하나둘 도로 위에서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다. ‘누군가는 모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1대, 2대 수집하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많아졌다. 처음에는 100대만 사 모을 생각이었다.” -여주로 오게 된 과정은. “‘자동차를 사 모으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나자 전국 각지에서 연락이 왔다. 50~70대로 금방 불어나 서울 장안동에 땅을 빌려서 주차해 놨는데 금세 차 고양 능곡에 500평을 매입해 보관해 왔다. 그런데 1990년 9월 한강둑이 터지면서 큰 피해를 봤다. 정비공 4명을 고용해 고쳤지만 귀한 차를 많이 잃었다. 2년 후 남양주 덕소로 이전했으나 그곳에서도 물난리를 겪으며 많은 차를 잃었다. 이후 안전하고 더 넓은 곳이 필요해 2014년 이곳으로 오게 됐다. 이렇게 힘든 줄 미리 알았더라면 시작을 안 했을 것이다(웃음).”●대기업 회장·연예인 타던 수입차도 모아 -한눈에 봐도 귀한 차가 눈에 많이 띈다. 수집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국내에 문화재로 지정된 자동차가 7대 있다. 내가 일제강점기 때 소방차를 비롯해 3대를 갖고 있다. 1950년 러시아산 가즈트럭, 1955년 최무성과 그의 두 동생이 드럼통과 폐기된 지프 본체를 이용해 만든 시발택시, 1960년산 히노트럭, 1968년 신진자동차가 만든 코로나 등 지금은 구경이 쉽지 않은 차량이 많다. 막상 수집을 하다 보니, 국산차는 정비해도 쉽게 망가졌다. 그래서 대기업 회장이나 연예인들이 타고 다니던 수입차도 모으기 시작했다. 세관에 압류된 차나, 외교관 또는 주한미군들이 타던 차들도 ‘판다’는 소문만 들으면 한걸음에 달려갔다. 판매자 변심으로 몇 년씩 걸린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1960년식 캐딜락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서 탔었던 1968년식 캐딜락은 참으로 어렵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영화사나 방송국 대여는 언제부터 하게 됐나. “1982년인가 홍콩영화 촬영이 서울에서 있었는데 차를 빌려 달라고 하소연해 대여해 준 적이 있었다. 이듬해 KBS에서 3·1절 특집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달리 빌릴 곳이 없다며 방송국 견학까지 시켜 주며 여러 번 부탁을 해 왔다. 어쩔 수 없이 또 빌려줬다. 이후 여기저기 소문나면서 임대업이 됐다. 그동안 국내에서 방송된 TV 시대극이나 영화 대부분에 우리 차가 출연했다.” -모두 운행이 가능한 차인가. 유지 관리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낡을 대로 낡아 운행하기도 힘든 차들도 많지만 대부분 정상 작동된다. 촬영현장에 빌려줄 때는 안전을 위해 밤새워 정비한다. 현장에 정비팀이 항상 대기도 한다. 사실 10만~50만원 받는 대여료만으로 유지 관리가 어렵다. 부품도 조달이 어려워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3년 전부터는 큰 건물 2개 동을 영화나 드라마를 찍는 스튜디오로 빌려주면서 경제적 사정이 좀 나아졌다. 문제는 밖에서 비바람을 그대로 맞는 귀한 차들도 많다는 점이다. 자식들을 밖에서 재우는 듯한 아픔을 느끼지만, 축구장 3개 넓이인 지금의 부지도 비좁아 어쩔 수 없다. 이 차들을 제대로 보관할 수 있고, 교육용으로 보여줄 자동차박물관을 만드는 게 마지막 꿈이다.”-오래전부터 박물관 건립을 계획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교육·관광 목적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정비하고 복원하는 데 수천만원이 드는 차들도 있다. 제대로 된 시설에 보관해야 한다. 한 대기업에서 많은 돈을 준다며 팔라고 했지만 거절했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방송국이나 영화사에 대여도 안 한다는데 어떻게 팔 수 있겠나. 그래서 제대로 복원해서 자동차박물관을 제대로 만들어 운영해 볼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이게 규모가 규모인지라 나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부천시, 강화군, 포천시 등등 여러 곳에서 유치 제의를 해 왔는데 임기제인 시장이 바뀌고 나면 모두 흐지부지됐다. 지금 이곳도 여주시에서 지역 명물로 자동차박물관 건립을 돕겠다고 해서 왔는데 얼마 뒤 시장이 바뀌니까 없었던 얘기가 됐다.” ●“튜닝 규제 완화… 올드카 산업 활성화돼야” -단종된 노후 자동차를 운행 가능한 상태로 보관하려면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닐 텐데. “우리나라 자동차 제작기술이 세계시장에서 손색이 없을 만큼 발전했지만 20년 이상 된 올드카 운행을 막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단종 후 몇 년 지나면 부품을 공급하지 않는다. 중고부품을 비싸게 사거나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 미국, 쿠바, 유럽 등에서는 올드카 가치가 날로 상승한다. 올드카에 대한 정비와 튜닝 등 다양한 부대사업들이 발전하면 일자리가 늘고 관광산업과 지역경제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정부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드카 산업 활성화를 가로막는 규제를 현실에 맞게 완화해야 한다. 미국 등에서는 올드카에 대해서 생산 당시 기준을 적용하거나 아예 면제를 해 준다. 오래된 차를 정비하면서 내외부를 바꿔 보려고 해도 튜닝 규제가 엄격해 어렵다. ‘추억이 깃든 차량이 명차’다. 국민 누구나 ‘클래식카’를 부담 없이 소유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文대통령 “추경 안돼 답답”…민주 등 “평화협력” 한국당 “현실 도피”

    文대통령 “추경 안돼 답답”…민주 등 “평화협력” 한국당 “현실 도피”

    “추경, 국회 심사조차 안돼…출국하려니 마음 안 좋아”민주당 “귀국 전엔 잘 되도록”…한국당 “갈등 파문만”9일 오전 북유럽 3개국 순방길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은 출국에 앞서 문희상 국회의장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에게 조속한 국회 정상화를 당부했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이날 오전 10시 45분쯤 문 대통령이 문 의장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정부에서 긴급하게 생각하는 추경안이 국회에서 심사조차 되지 않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출국하려니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순방 전에 여야 지도부를 만나려 했으나 그것도 안 됐으니 의장님께 부탁드린다”며 한시라도 빨리 국회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에 문 의장은 “순방 잘 마치고 돌아오시기 바란다”며 “저도 더 애써보겠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성남 서울공항에서 출국 전 환송을 나온 민주당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도 국회 정상화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이 “추경이 안 돼 답답하고 국민도 좋지 않게 볼 것 같다”고 하자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대통령 출국 전에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해 송구하다”며 “대통령 귀국 전에 잘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응대했다. 이해찬 대표는 “내일 초월회(국회의장 주재 각 당 대표 정기회동)가 모이는 날인데 반응이 없어 안타깝다”고도 했다. 이날 문 대통령의 북유럽 순방에 대해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 협력을 기원했지만, 자유한국당은 어려운 외교·안보와 경제 현실은 뒤로 한 ‘현실 도피’라며 비판했다.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번 순방은 신남방·신북방 정책과 함께 새로운 글로벌 시장 개척이 절실한 대한민국의 경제 다변화에 기여하고,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국제 사회의 참여와 지지를 끌어내는 외교 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종철 바른당 대변인은 “상호 관계 강화와 북유럽 외교 지평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민주주의 제도와 문화, 분배 정책, 노사 상생문화 그리고 중립 외교 등 모범이 되는 북유럽 모델로부터 많은 시사점을 얻고 우리 실정에 맞게 참조하고 접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주현 평화당 수석대변인도 “한반도의 평화를 진전시키고, 북유럽의 합의민주주의를 도입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특히 핀란드는 두 차례 분권형 개헌에 성공한 나라인 만큼 선거제와 정치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 역시 논평에서 “교착상태인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 물꼬를 트는 구상이 제시되길 기대한다”며 “포용국가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반면 민경욱 한국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대한민국 역사 덧칠 작업으로 갈등의 파문만 일으키더니, 국민 정서에는 비(非)공감의 태도로 나 홀로 속 편한 현실 도피에 나섰다”며 “불쏘시개 지펴 집구석 부엌 아궁이 있는 대로 달궈놓고는 천렵(川獵) 질에 정신 팔린 사람마냥 나 홀로 냇가에 몸 담그러 떠난 격”이라고 깎아내렸다. 민 대변인은 “경제의 토대가 무너지는데 눈에 보이는 것은 북한, 귀에 들리는 것은 대북 지원뿐”이라며 “개인의 가치와 이념을 대변하러 떠난 것이냐”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당신이 몰랐던 ‘진짜 영웅’ 이야기

    [밀리터리 인사이드] 당신이 몰랐던 ‘진짜 영웅’ 이야기

    임부택 소장부터 딘 헤스 대령까지나라를 지킨 위대한 6·25 전쟁 영웅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은 3년간 이어지며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9일 국방부와 국가기록원 등에 따르면 민간인 24만 4663명이 사망하고 학살당한 사람도 12만 8936명에 이르렀습니다. 부상자와 행방불명자 등을 모두 포함하면 99만명이 희생됐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군의 피해도 컸습니다. 전쟁 기간 한국군 13만 7899명, 유엔군 3만 7902명이 전사·사망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흘린 피를 잊지 않기 위해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했습니다. 보통 ‘영웅’이라고 하면 영화 속 전쟁 영웅, 스포츠 영웅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저는 6월을 맞아 여러분이 잘 모르는 전쟁 영웅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세월이 지나 잊혀졌지만, 우리가 잊어선 안 되는 그들의 영웅담을 전합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매달 국가보훈처가 발표한 ‘이달의 6·25 전쟁 영웅’을 참고했습니다. ●6·25 전쟁 첫 승리 주역 ‘임부택 육군 소장’6·25 전쟁 영웅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이가 바로 임부택(1919.9.24~2001.11.13) 육군 소장입니다. 그는 국군경비대 창설 멤버로, 중사 계급으로 교관을 맡아 사병(병사와 부사관) 군번 ‘1번’(110001)을 받았습니다. 이후 국방경비사관학교(현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1기로 소위 임관을 했습니다. 임 소장은 1950년 1월 6사단 7연대장으로 부임한 뒤 북한군의 남침 징후를 포착하고 강원 춘천 소양강변 인근에 방어진지를 구축해 준비태세를 갖췄습니다. 6월 25일 개전 당일, 그의 예측이 적중해 열세의 화력으로도 춘천으로 향하는 북한군을 3일간 막아냈습니다. 이는 개전 초기 큰 혼란에 빠졌던 국군이 전열을 가다듬어 한강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북한군은 개전 당일 춘천을 점령하고 곧바로 수원으로 진격해 국군 증원부대와 한강 이북의 국군을 포위·섬멸할 계획이었지만, 임 소장을 포함한 장병들의 악착같은 방어로 계획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그는 다음달인 7월 충북 음성 ‘동락리 전투’에서 북한군 15사단 48연대를 기습공격으로 섬멸해 6·25 전쟁 첫 승리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공로로 7연대 부대원 전원이 1계급 특진 영예를 안았다고 합니다. 1951년 4월 6사단 부사단장으로 있던 시기에는 경기 양평 용문산에서 중공군 3개 사단의 공격을 받고도 반격해 2만명을 사살하고 3500명을 포로로 잡아 전쟁 최대의 승리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1953년 7월 11사단장으로 있었던 임 소장은 ‘휴전전투’로 불리는 ‘삼현지구 반격 작전’에서 중공군 4개 사단의 공세를 저지해 현재의 휴전선을 확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중공군 총사령관이었던 펑더화이(팽덕회)가 임 소장을 제거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생전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2차례 받는 등 모두 17개 훈장을 받았습니다.1961년 5·16 쿠데타 당시 1군단장으로 있었던 임 소장은 “반란군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내전에 대한 우려와 ‘국군끼리 충돌하지 말라’는 윤보선 대통령 공문이 상부에 전달되면서 나서지 못했고 얼마 뒤 군복을 벗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1월 11사단에는 그의 투혼을 기리는 뜻에서 ‘임부택 장군실’이 마련됐습니다. ●공군 역사를 새로 쓴 ‘김신 공군 중장’김신(1922.9.21~2016.5.19) 공군 중장은 우리 공군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분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차남으로, 대를 이어 나라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바로 다음날인 6월 26일 이근석 대령 등 10명의 공군 장교와 함께 미군으로부터 ‘F-51 머스탱’ 전투기를 인수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당시 미국은 F-51 전투기 인수 조건으로 ‘훈련 없이도 전투기를 탈 수 있는 조종사’를 원했습니다. 당시 중령이었던 김 중장은 10명 중 유일하게 미 공군에서 F-51로 훈련받은 경험이 있어 ‘국군 첫 전투기 인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일행과 쉬지 않고 훈련해 7월 2일 전투기를 이끌고 귀국했고, 휴식도 없이 바로 다음날인 3일부터 출격해 강원 묵호·삼척지구, 서울 영등포·노량진지구 전투 등에서 적 부대와 탄약저장소를 맹렬히 공습했습니다. 1951년 10월에는 한국 공군 단독출격 작전도 주도했습니다. 특히 대령으로 제10전투비행 전대장을 맡은 뒤에는 미 공군이 수차례 출격하고도 성공하지 못한 평양 근교 ‘승호리 철교’ 폭파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승호리 철교는 평양 동쪽 10㎞ 지점, 대동강 지류인 남강에 설치된 철교로 군수물자를 중·동부 전선으로 수송하는 적 후방보급로 요충지였습니다. 그는 “적의 극심한 대공포화 위협을 감수하고라도 고도를 낮춰 폭탄을 투하해야 한다”며 목숨을 건 공격전술을 도입했고, 1952년 1월 15일 3번째 출격에서 승호리 철교 폭파에 성공했습니다. 한국 공군의 새 역사를 쓴 김 중장은 1962년 공군참모총장을 마친 뒤 제9대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고 ‘을지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의 나라를 지킨 ‘김영옥 미국 육군 대령’김영옥(1919.1.29~2005.12.29) 미국 육군 대령은 재미교포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이탈리아와 프랑스 전선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는 제대 후 자영업을 하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모님의 나라를 구하겠다’며 자원입대해 대위로 군에 복귀했습니다. 김 대령은 주로 정보 수집 업무를 맡으며 한국인 유격대를 조직하다 1951년 ‘중공군 춘계공세’ 때 직접 부대를 지휘해 혁혁한 공로를 세웠습니다. 특히 1951년 5월 중공군 2차 춘계공세 때는 구만산·탑골 전투와 금병산 전투에서 참전해 사기가 떨어진 부대원을 독려해 승리로 이끌었고, 유엔군 부대 중 가장 빠른 진격으로 ‘캔자스선’(1951년 서울 탈환 뒤 38도선을 전술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마련한 전선)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같은 해 6월 ‘철의 삼각지대 전투’를 수행하다 중상을 입고 일본 오사카로 후송됐지만, 치료를 받고 다시 전선에 복귀하는 투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1952년 9월 미국으로 복귀할 때까지 수많은 전공을 세웠고,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2005년에는 우리 정부는 그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습니다. ●서울 수복 후 태극기 휘날린 ‘박정모 해병대 대령’‘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한 박정모(1927.3.20~2010.5.6) 해병대 대령은 1950년 9월 27일 서울탈환 작전 당시 해병대 2대대 6중대 1소대장으로 최전선에 섰습니다. 그는 소대원들과 새벽에 공격을 감행해 치열한 교전 끝에 서울 중앙청(당시 정부청사)으로 들어가 옥상의 인공기를 걷어내고 태극기를 가장 먼저 게양했습니다. 이 역사적인 장면은 사진으로 남아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립니다.이후 1951년 전쟁 최대 격적지였던 ‘가리산지구 전투’에서 최종 목표인 957고지를 야간 기습공격으로 탈취했고, 연합군 총반격 작전인 ‘리퍼 작전’에도 기여했다고 합니다. ‘도솔산지구 전투’에서는 24개 목표 중 적의 최후 방어선인 제9목표를 일주일 만에 탈환하는 공로도 세웠습니다. 정부는 박 대령에게 ‘을지무공훈장’과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했습니다. ●한국 공군의 아버지 ‘딘 헤스 미국 공군 대령’딘 헤스(1917.12.6~2015.3.3) 미국 공군 대령은 6·25 전쟁 당시 우리 공군을 지원하기 위해 창설된 ‘제6146군사고문단’ 책임자로, 한국인 전투기 조종사 양성을 진두지휘한 인물입니다. 한국 공군이 최단 기간에 ‘싸울 수 있는 군대’로 거듭나게 된 것은 헤스 대령의 공로가 매우 컸습니다. 그는 F-51 전투기로 1951년 6월까지 1년간 무려 250회를 출격하는 초인적인 활동으로, 개전 초기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또 ‘1·4 후퇴’ 직전 중공군 개입으로 전황이 악화됐을 당시 적이 눈앞까지 닥친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안고 수송기에 태워 950명의 전쟁 고아와 성인 80명을 제주도로 안전하게 대피시키기도 했습니다. 전후에도 그는 제주도를 찾아 전쟁고아들을 돌봤고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불렸습니다.2017년 3월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비가 건립됐습니다. 우리 공군은 그를 ‘6·25 전쟁 중 한국 공군의 아버지’로 기리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공로로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중국 유학생들, 졸업 3년 안에 ‘귀국 러시’…그 이유는?

    중국 유학생들, 졸업 3년 안에 ‘귀국 러시’…그 이유는?

    몇 년 전 영국 요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중국인 진쉬 씨(33). 그는 지난해 중국에 귀국한 뒤 현재 항저우 소재의 알리바바 그룹 안에서 데이터 분야의 전문가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진 씨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계한 유통업이 발달하면서, 국내에 이와 관련한 데이터 전문가의 수요 현상이 두드러졌다”며 “넓은 중국 영토를 중심으로 특화된 최적의 유통망에서 데이터 전문가에 대한 지원과 대우가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고 귀국한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진 씨가 학사 학위를 받았던 지난 2000년대 후반까지 이 분야 관련 일자리는 중국 내 턱없이 부족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학사 졸업과 석사 졸업 이후 귀국해 중국 내에서 일자리를 찾았지만 당시에는 국내에서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다”면서 “하지만 박사 졸업 무렵부터 이 분야에서의 인재 채용 증가와 해외 인재의 귀국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항저우 소재 알리바바 그룹 본사에 재직 중인 또 다른 해외파 출신 루 씨. 그는 호주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직후 곧장 미국의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인재로 알려졌다. 당시 호주에서 금융 관련 전공을 했던 루 씨는 이후 석사 과정 시에는 응용수학 및 통계 관련 학과로 전공을 변경했다. 루 씨는 대학원 졸업 직후 미국 현지 기업으로부터 관리직급 일자리를 제안받았으나, 곧장 귀국을 선택한 사례자다. 그는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금융업에 종사하려는 젊은 청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그 관심이 알리바바, 샤오미 등 인터넷, IT 분야와 연계한 업체로 이동하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지난해 기준, 중국인 해외 유학생 중 약 84%가 대학 또는 대학원 졸업 후 3년 이내에 귀국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교육부는 중국인 해외 유학생들의 국내 회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8일 이 같이 밝혔다.중국 교육부가 조사한 ‘2018년 중국 회귀직업창업 조사보고’(2018年中国海归就业创业调查报告)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해외로 유학을 떠난 유학생의 수는 66만2100명, 귀국을 선택한 이들의 수는 51만9400여명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보고서 조사는 1989년 이후 출생한 지우링허우(90後) 유학생 출신 2190명을 대상으로 시행됐다. 같은 기간 해외 유학을 선택한 이유로 “다른 나라의 문화와 교육 등을 경험하고 싶다”고 답한 비율이 76%로 가장 높았다. 이어 “부모 곁을 떠나 독립적인 생활을 경험하고 싶다”, “외국의 높은 교육을 받고 싶어서”라고 답변한 비율은 각각 52%, 51%를 차지했다. 또, 기타 사유로 “중국의 치열한 교육 상황을 회피하고 싶어서”, “외국에서 더 큰 발전을 하고 싶어서”라고 답변한 사례도 확인됐다. 이와 함께 유학 후 결과가 기대치에 상응하는지 묻는 말에 대해 약 45%의 답변자가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35%의 답변자는 “기대치 이하의 유학 성과를 얻었다”고 했고, 20%의 답변자는 “잘 모르겠다”고 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지난해 기준 해외 유학생 가운데 학부생이 약 51.54%로 가장 많았고, 이어 고등학생 29.79%, 대학원 재학생 12.12% 순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17년과 비교, 고등학교 재학 유학생의 비율은 9% 이상 상승한 반면 학부생, 대학원 재학생 등의 유학 비율은 각각 4%, 7% 감소하는 등 유학생의 저연령화 현상이 두드러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지난해 기준 귀국한 해외파 출신 인재들의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상당수 인재가 귀국 후 선택한 기업체가 인터넷, IT관련 업종이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같은 해 기준, 유학파 출신 인재들의 약 32%가 인터넷, IT 분야에 재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귀국 인재 중 약 30%가 중국에서 스타팅 업체 운영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이 분야 대표 기업으로 알려진 알리바바 그룹은 지난 1999년 항저우시를 중심으로 창업에 성공한 이후 지난해까지 총 4082만여명에게 일자리를 이 분야 일자리를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알리바바 인사부 측은 올해 내에 약 13개의 신규 부문 일자를 추가로 창출하겠다는 방침이 전해졌다. 한편, 중국 교육부는 개혁개방 이후 약 40년 동안 해외로 출국한 중국인 유학생 수가 총 519만4900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들 중 약 315만 명 이상이 이미 귀국한 것으로 집계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독립운동단체들 “김원봉 서훈, 서명운동할 것”

    독립운동단체들 “김원봉 서훈, 서명운동할 것”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 기념사업 일환…“역사가 재평가”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의 독립운동 ‘공적’을 거론하면서 ‘서훈 논란’이 재점화된 가운데 주요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이 조만간 대대적인‘김원봉 서훈 서명운동’에 들어간다. 8일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등에 따르면, 이 단체를 포함해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와 단재 신채호 기념사업회 등 국내 7개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은 올해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11월 9∼10일)을 맞아 이달부터 연말까지 다양한 기념사업을추진한다. 조선의열단은 약산 김원봉이 단장(의백·義伯)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항일독립운동 단체다. 1919년 11월 중국 만주 길림성에서 결성된 의열단은 1920년대 일제 요인 암살과 식민통치기관 파괴 등 각종 의거를 이끈 주요 비밀결사다.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폭탄투척 의거, 최수봉의 밀양경찰서 폭탄투척 의거,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탄투척 의거, 김지섭의 동경 니주바시 폭탄투척 의거, 나석주의 동양척식회사 및 조선식산은행 폭탄투척 의거 등은 익히 알려진 의열단의 활동들이다. 중국 시인 궈모뤄(郭沫若)는 ‘항일투쟁의 가장 용감한 전사’라고 평하기도 했다.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중심이 돼 조직됐던 이 독립무장단체의 단장이 바로 ‘서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김원봉으로, 이번 기념사업은 김원봉과 함께 역사에서 잊혔던 많은 조선의열단원들의 활약상을 재조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들 단체는 특히 오는 8월부터 11월까지 광주·대구·대전·부산을 순회하며 ‘약산 김원봉 서훈 대국민 서명운동’을 전개한다. 국내 학술대회와 한중 학자들이 참여하는 국제학술대회도 계획하고 있다. 민성진 ㈔운암김성숙기념사업회장은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당시 김원봉 선생이 왜 월북할 수밖에 없었는지 등도 다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해방 후 미군정체제의 남한으로 귀국한 김원봉은 임시정부 김구 주석과 함께 좌우합작을 추진했다.그러나 그 과정에서 역시 남북 좌우합작을 위해 활동한 여운형의 암살을 목격하고, 친일경찰의 상징이었던 노덕술에게 검거돼 모욕을 당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 기념사업회장은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기도 하지만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이기도 하다. 조선의열단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굉장히 중요한데도, 이념 대립 문제 때문에 묻혀왔다”고 말했다. 이번 기념사업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식 및 국민참여 문화행사’는 11월 9∼10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 회장으로 최근 신임 광복회장에 취임한 김원웅 전 의원은 “조선의열단에 몸담은 사람들은 약산(김원봉)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신채호, 이육사, 정율성, 윤세주 등 여기 몸담았던 사람들은 정말 눈부신 활동을 전개했다”며 “이제 역사가 재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침몰 유람선’ 인양 크레인 도착…유실 방지작업 병행

    ‘침몰 유람선’ 인양 크레인 도착…유실 방지작업 병행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침몰한 유람선 ‘허블레아니’ 인양 예정일을 하루 앞둔 8일(현지시간) 헝가리 당국은 인양 크레인이 도착함에 따라 인양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선체 내부 유실방지 작업과 함께 수상 수색을 동시에 전개했다. 앞서 전날 오후 사고 유람선을 인양할 대형 크레인 ‘클라크 아담’은 교량 2개를 지나 선체 침몰 지점에 도착했다. 높아진 수위 탓에 5.5㎞ 상류에서 이틀간 대기한 크레인선은 예인선의 유도에 따라 머르기트 다리의 아치형 교각에서 가장 높은 부분을 통과하는 데 성공, 인양 예상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헝가리 당국은 이날 잠수부를 투입해 크레인에 연결할 와이어를 선체에 감는 결속작업을 수행한다. 또 인양 과정에서 선체 내부의 유실을 막고자 선체의 창문과 문을 막는 작업도 병행한다. 선체 결속과 유실방지대책이 완료되면 헝가리 당국은 9일 오후 인양 작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인양 작업이 시작되면 약 4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수상 수색활동도 이어진다. 정부합동신속대응팀에 따르면 수상 수색은 침몰 지점으로부터 하류로 80㎞ 떨어진 두너우이바로시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헝가리 당국은 차량으로 이 지역으로 이동한 후 선박을 이용해 상류 방향으로 수색을 진행하기로 했다. 강변 수색활동에는 수색견이 투입된다. 정부합동신속대응팀 현장 지휘관인 송순근 주헝가리 한국대사관 국방무관은 전날 오전 언론 브리핑에서 “대형 크레인이 교량을 통과할 수 있고, 선체 내부 유실방지대책이 완료된다는 조건이 충족되면 9일 인양작업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다만 헝가리 대테러본부는 인양 시점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해 작업 일정이 8일로 앞당겨지거나 10일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도 열어뒀다. 지난달 29일 부다페스트에서 크루즈선과 부딪힌 후 침몰한 유람선에는 한국인 33명과 헝가리인 승무원 2명 등 35명이 타고 있었다. 8일 오전 현재까지 신원이 확인된 한국인 사망자는 18명, 실종자는 8명으로 각각 집계됐다.한편 전날인 7일 사망자 화장을 시작으로 장례·운구 절차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구조된 승객 가운데 갈비뼈 골절 등 부상으로 입원 치료를 받은 이모씨가 이날 퇴원했다. 장례를 마친 유족은 이르면 주말 중에 귀국길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한국 정부는 신속대응팀을 통해 부다페스트 검찰에 추가보완수사를 촉구했다. 신속대응팀에 따르면 부다페스트 검찰은 5명과 검사보들로 허블레아니호 침몰사고 특별수사팀을 구성·운영하고 있다. 부다페스트 검찰은 또 유럽연합(EU)의 사법 공조기구인 유로저스트를 통해서도 증거 확보에 나서는 등 최선을 다해 진상 규명 노력을 펼치겠다고 우리 측에 답변했다. 이상진 정부합동신속대응팀장은 “우리 정부는 엄정한 책임 규명이 있어야 한다는 의지를 여러 경로로 전달했다”고 강조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미국 멕시코 합의 불발, 10일부터 관세 부과되나

    미국 멕시코 합의 불발, 10일부터 관세 부과되나

    미국과 멕시코가 불법 이민자 유입 및 관세 문제를 놓고 6일(현지시간) 이틀째 협상을 벌였으나 합의 도출에는 이르지 못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對)멕시코 관세 부과를 저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미 의회에 대응해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전날 백악관에서 열린 고위급 협상에 이어 이날 백악관에서 실무급 협상을 이어나갔으나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이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은 예정대로 오는 10일부터 멕시코산 모든 수입품에 5%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멕시코가 미국으로 들어오는 중미 지역 이민자를 막지 않으면 당장 다음주부터 멕시코 제품에 관세를 매겨 10월에는 25%까지 늘리겠다고 경고했다. 회담이 끝난 후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으며 현재 우리는 여전히 관세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협상을 이끈 마이크 펜스 부통령 부통령도 이날 펜실베이니아를 방문해 “현시점에서는 관세가 월요일에 부과될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펜스 부통령은 영국에 이어 아일랜드·프랑스 방문을 마치고 7일 귀국할 예정인 트럼프 대통령과 “주말 동안 멕시코의 제안에 관해 대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멕시코 대표단의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외교부 장관 대변인은 트위터 계정에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면서도 “옵션들이 계속 탐구될 것”이라고 전했다. 협상에서 상당한 진전은 있었으나 멕시코 측 제안에 미국이 기대한 수준에 못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멕시코 측은 이날 이민 브로커들이 소유한 것으로 의심되는 계좌를 동결했으며, 미와의 협상에선 남부 과테말라 국경 지역에 군인 6000명을 배치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對)멕시코 관세 부과가 양국 경제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미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뿐 아니라 공화당 내에서도 반대 여론이 상당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감안해 국가비상사태 선포 계획을 세웠다고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이날 보도했다. 더힐은 2019년 회계연도에 67만 5000명이 국경에서 체포되거나 입국 거부 조치됐다는 내용과 멕시코 제품에 대한 관세부과 계획이 초안에 들어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면 트럼프 대통령과 의회 간 대치가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소속 리처드 닐 하원 세입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관세부과를 시도한다면 이를 막기 위한 반대 결의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멕시코 관세 부과와 관련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면 이민정책을 위해 동원되는 두 번째 국가비상사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15일 국경장벽 건설자금 조달을 위한 권한 확보를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바 있다. 1976년 제정된 국가비상사태법은 대통령이 국가적 위기에 따라 비상사태를 선포할 경우 의회의 견제를 받지 않고 예산 재배정 등 평상시보다 확대된 권한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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