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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린도」와 승은호 회장:9·끝(테마가 있는 경제기행:47)

    ◎수구초심/「애국애사」 사훈 걸고 고국투자 기회 타진/승 회장 정력적 사회사업… 인니에 한국심기 열중 승은호 회장은 쉴새없이 현장을 돌아본다.지난달 22일 코린도의 보세창고 공사장. 『저 철제기둥은 쓸데없이 굵은 것을 사용했어….시멘트바닥 갈라진 부분 있지,이거 시공한 업체에 돈 다주지 못하겠다고 해.이 문짝은 어디서 만들었나.발로 만들어도 이것보다 잘 만들텐데.뭐 자체제작했다구…』 『비가 오면 홈통의 물이 넘칠 것 같은데,잘 계산해서 홈통을 여러개 설치해야 겠어.남의 물건 비맞히면 물건 값 물어주고 뭐가 남아.빨리는 하되 엉터리는 안돼』 승회장은 「야단 반 격려 반」 벌써 완공됐어야 할 보세창고 건설작업을 챙기고 있었다. 승회장은 신중하다는 평을 듣는다.그러나 일단 결정하면 일사천리다.때에 따라 지나치게 꼼꼼할 때도 있다.이런 꼼꼼함이 오늘의 코린도를 있게 했는 지 모른다. (주)대우 주재원으로 현지에서 4년 일했던 이기훈 대조양행 전무는 『코린도가 외국인이라는 제한속에서 그룹을 이룬 것은 한국의 잣대로 보면 별 것 아니지만,인도네시아 시각에서 보면 하나의 기적』이라며 『국내 기업들이 외국에서 제대로 성공한 예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승회장은 사업비결을 물으면 『운이다』『열심히 하다보니 커졌다』고 말한다.『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기회와 여건이 맞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우며,선견지명을 갖고 투자한다는 것은 궤변』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그는 사업을 골프에 비유한다.『핸디 싱글인 사람도 어느날 날씨가 안좋거나 컨디션이 나쁘면 90을 넘긴다.사업은 바로 골프와 같다』 승회장은 핸디 6이다.그래서 컨테이너 제조사업 등 잘 안되는 사업이 있지만 낙담하는 편이 아니다. 앞으로 코린도가 얼마나 커질 지는 미지수다.인도네시아가 워낙 빠르게 변하고 경제정책의 흐름도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무한확장은 어렵고 코린도 역시 언젠가는 주력업종 중심으로 재편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코린도가 고국에 투자하고 싶어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그러나 아직은 여건이 미흡해 주저하고 있다.승회장은 미흡한 게 뭐냐고 묻자 『재외동포들이 고국에 부담없이 송금·투자하는 것』이라고 했다.코린도 전신인 인니동화가 인도네시아에 진출했을 때 사훈이 「인화단결」이었다.수구초심 이랄까.코린도는 현지에 진출한 뒤 사훈을 「애국애사」로 바꾸었다. 승회장이 현지에서 정열적으로 펼치고 있는 사회사업도 조국에 대한 애정표현에 다름아니다.그는 한인학교 이사장으로 인도네시아 한인학교의 산파역을 했다.한인회장이면서 해외 평통자문위원도 겸임하고 있다.곧 3백만달러를 출연,한·인도네시아 장학재단도 만들어 인도네시아의 유수한 인재을 뽑아 한국에 유학시킬 계획이다.인도네시아에 한국을 심기 위해서다. 이국에서 맨손으로 부를 일군 망명기업,코린도.코린도 임직원들은 지금도 고국을 바라보며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 「궤변의 국회」/오일만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는 건강을 잃어가고 있다는 표시다. 의장단 선출을 둘러싸고 파행을 거듭하는 국회를 바라보자니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특히 지난 12일 본회의장은 궤변이 난무하는 국회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줬다. 의사진행발언 도중의정사상 처음으로 『존경스럽지않은 선배의원 여러분』이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몸싸움과 욕설이 난무한 국회를 바라보는 초선의원으로서 솔직한 감정이라는』전제를 달긴 했지만…. 순간,야당의원들은 예상대로 『취소해』라는 고함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며 장내는 어수선한 『저자거리』처럼 변했다. 『명예』를 생명으로 여겨야할 의원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를 여과없이 보여준 현장이었다. 궤변의 논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5일 법정개원일부터 국회에서 일관되게 통용되어온 논리이다. 법리논쟁이라는 허울을 쓴 최연장 의원인 김허남 임시의장대행의 산회선포로 야기됐다. 과거 개원때마다 일어난 국회공천을 막겠다는 취지에서 법정개정일을 여야합의로 제정했다면 차연장자로의 사회권이양은 당연한 상식이다. 그러나 이후 12일까지 야당은 『유권해석』이라는 엄호물에 기대,국회를 공천으로 이끌었다. 심지어 김의장이 『감기가 걸려 사회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김명윤의원에게 사회권을 넘기겠다』는 입장표명을 했지만 여전히 등단을 저지당하는 초유의 일이 계속됐다. 마치 『날아가는 화살은 정지상태다』라는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소피스트 제논의 궤변학을 그대로 갖다놓은 듯 싶었다. 궤변은 또다른 궤변을 낳게 마련이다. 궤변으로 일관된 말싸움은 결국 국민들의 짜증만을 부른다. 정치는 최소의 비용으로 민의를 파악,원만한 사회운영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장이다. 의원들은 말끝마다 『민의를 대변하는 정도의 정치』를 암송하듯 뇌까리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으로 바뀌어야 할 판이다. 민의가 바라는 정도와는 여전히 거리가먼 행태들의 연속이다. 진정 『큰정치』는 인도의 네루 총리가 설파한 『국민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라는 생각이다.
  • 이순자씨,전씨 공판 첫 방청/12차공판 이모저모

    12·12 및 5·18사건에 대한 12차 공판이 열린 10일 서울지법 주변은 마침 「6·10 항쟁」 기념일과 겹쳐서 그런지 평소보다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었으나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날 공판에는 처음으로 전두환피고인의 부인 이순자씨가 방청석에 나와 안팎의 시선이 집중.베이지색 바지 정장 차림에 금테 안경을 쓴 이씨는 공판 시작 15분전인 상오 9시45분쯤 장남 재국씨와 함께 417호 대법정 입구에 모습을 드러낸 뒤 법정 안으로 직행.이씨는 방청석에 앉아 아들과 귀엣말을 나누기도 했으나 주위의 시선에 관심을 나타내지 않은 채 재판정을 정면으로 응시. ○…이씨는 상오 10시 개정에 맞춰 김영일 재판장이 전피고인의 입정을 호명했으나 20여초가 지나도 피고인이 입정하지 않자 자리에서 목을 길게 빼고 피고인들이 입정하는 문에 시선을 고정. 잠시 뒤 전피고인이 입정하자 이씨는 담담한 표정으로 전피고인에게 눈길을 주었으며 전씨도 잠시 방청석 쪽을 바라보다 피고인석에 착석. 이씨는 상오 공판이 끝난 뒤 경호원들의 경호 속에 법정을 떠나며 기자들의 질문에는 묵묵부답. ○…법정 주변은 궂은 날씨에 아랑곳없이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방청권을 얻으러 나와 눈길. 공판이 장기화되면서 이 날도 일반인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으나 5·18 관련단체 및 재야 운동권 관계자들은 평소보다 10여명 많은 30여명이나 눈에 띄었다. ○…전피고인에 대한 이양우 변호사의 변호인 반대신문이 50여분간 진행된 상오 10시50분쯤 김재판장이 이변호사의 목소리 크기를 문제삼아 신문이 잠시 중단되는 해프닝을 연출. 김재판장은 이변호사가 웅변조로 계속 강변하자 『목소리를 좀 낮춰달라』며 2차례 요청했고 이변호사는 이에 대해 『목소리가 본래 크다』고 대답한 뒤 목소리를 낮춰 방청석에서 폭소가 터지기도. ○…이변호사는 80년 당시 국보위의 활동을 현 대통령 자문보좌기구인 세계화추진위원회(세추위)와 비교하는 등 궤변을 구사. 그는 『검찰의 주장대로 전피고인이 국보위 상임위원장으로서 공무원 숙정 등 월권행위를 했다면 현 정권내의 세추위가 법조개혁을 추진한 것과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느냐』며 당시 전피고인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시도하다 재판부의 제지를 받기도. ○…전피고인은 『언론인 해직 등 언론계 정화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면서도 당시 해직된 언론인들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언급,「사후약방문」격이라는 비난을 사기도. 그는 애써 착잡한 목소리로 『당시에는 몰랐으나 88년 청문회때 피해사실을 비로소 알게 됐다』며 『뒤늦게나마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후회. ○…이변호사는 하오 속개된 공판에서 『보안사 권정달 정보처장이 시국 수습방안의 작성을 주도한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불구,왜 검찰이 그를 내란혐의로 기소하지 않았느냐』고 항변. 권씨는 「정상참작」 등의 이유로 12·12사건은 기소유예,5·17사건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리됐었다. 한편 검찰은 변호인이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았으나 「이 사건의 수사 및 공소제기의 책임자」가 「국보위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자 『점잖치 못한 처사』라며 몹시 못마땅해 했다.〈박상렬·조현석·박현진 기자〉
  • 「12·12」 2차 공판­법정 이모저모

    ◎전씨 변명·부인으로 일관/국회증언까지 번복… 자신행위 정당화/당당한 자세 답변… 뉘우침 안보여/“당시 정부 실권 없어” 오만한 진술 쿠데타 세력들에 대한 법의 신문은 준엄했다.그러나 쿠데타의 주역은 여전히 변명과 궤변으로 일관했다. 18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12·12 및 5·18 사건의 2차 공판(재판장 김영일 형사수석부장판사)에서 12·12 쿠데타의 주역 전두환 피고인은 국회에서의 증언까지 번복하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전 피고인은 『12·12는 정승화 총장의 연행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군 내부의 소장파 움직임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 89년 12월31일 국회 5공청문회에서 전 피고인 자신이 12·12는 정총장의 연행과 군의 개혁을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음을 지적했다. 전피고인은 『당시는 남이 써 준 것을 읽었을 뿐이고,이를 검토할 시간도 소명자료도 부족했다』며 『국민 여러분께는 죄송하지만 당시 국회 증언은 잘못된 것』이라고 떳떳하게 말했다.『이 법정에서의 증언도 번복하겠습니까』라는 검찰의 반문이 날카로웠다. 전 피고인은 여러차례 증언을 번복했다.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출국을 둘러싼 정승화 총장과의 갈등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검찰이 지난 12월3일 전 피고인이 안양교도소에서 『이후락을 둘러싼 정총장과의 갈등이 있었다』고 진술한 조서를 증거로 들이댔다. 그러자 전 피고인은 『단식 중이라 기력도 없고 피곤해서 수사검사를 빨리 돌려보내려고 말한 것이다』라고 부인했다. 검찰은 그 날이 구속 첫 날이었음을 상기시켰고,전 피고인은 『이후락은 잘 아는 사이이고,당시 답변은 잘못된 것』이라고 우겼다. 게다가 총장 연행과 관련한 재가에 관해서는 『대통령이 반드시 재가할 것으로 확신했다.안 할 수가 없다』『아는 사람끼리 저녁먹기 위해 (전방 부대 지휘관들이)서울에 오는 것은 출·퇴근과 같은 것이지,계엄하에서의 수소지역 이탈은 아니다』『당시 정부는 과도 정부로 실권이 없었다』는 등 군의 규율과 국헌에 대한 전씨의 오만했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진술로 일관했다. 전 피고인은 자신의 행위를 필요에 따라서는 구국의 결단처럼 강변하고,때로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얼버무리면서 궁색하게 검찰의 추궁을 피하려 했다.〈박상렬 기자〉
  • 「12·12」「5·18」 공판­역사적 현황

    ◎“쿠테타 아닌 구국행위” 궤변/수의입은 전·노씨 뉘우침 없이 당당/“당신들이 스타냐” 항변에 한때 술렁/“불행한 현대사 심판”… 방청객 착잡한 표정 17년 전 무력으로 국권을 장악했던 쿠데타의 주역 16명이 마침내 모두 한 법정에 섰다.두 사람은 전직 대통령이다.현대사의 획을 긋는 역사적 재판으로,전 세계의 이목도 집중됐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을 비롯,국권탈취 주역들의 표정에서는 뉘우침을 읽을 수 없었다. 11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재판부의 호명에 따라 전두환 피고인이 먼저 법정에 들어섰다.이어 노태우 피고인이 입정해 전피고인 바로 옆에 섰다. 노씨 비자금사건이 터지기 직전인 지난 해 10월7일 육사 교정에서 11기 임관 40주년 기념식에서 만난 이후 6개월여만의 기구한 만남이었다. 두사람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노피고인은 쿠데타의 좌장이자 옛 동지인 전피고인의 오른 손을 왼손 안쪽으로 잡았다. 이어 유학성·황영시 피고인 등 나머지 피고인들도 차례로 법정에 들어섰다. 피고인들은 12·12 쿠데타로 군권을 장악한 뒤 보안사에서 당당하게 기념 촬영을 했고 이듬해인 80년 5월 국보위를 출범시켰다.이를 바탕으로 5∼6공의 대통령으로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하지만 이 날은 피고인석에서 뒷모습을 「단체촬영」당하며 역사의 죄인으로 전락했다.그럼에도 이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장의 인정신문에 이어 김상희 부장검사의 공소요지 낭독이 끝난 상오 10시25분부터 시작된 변호인의 공소요지 반박은 정오까지 진행됐다. 하오 2시30분에 속개된 재판에서도 계속됐다. 『민주화 운동이란 이름으로 10여년간의 진실을 호도했다』며 시작된 전상석 변호사의 반박요지는 5공화국의 정통성과 검찰기서의 부당성을 강변하는 것이었다. 노태우 피고인은 검찰의 직접 신문에서도 자신의 행위가 국가를 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숨겨진 진실을 공개해 참다운 정의를 구현하는 계기가 되고 후손들에게는 더 이상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재판』이라는 검찰의 모두진술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재판 내내 역사의 심판을 벗어나려는 쿠데타 주역들의 강변이 계속됐다.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상오 재판이 끝나고 피고인들이 악수를 나누자 방청석에 있던 고 강경대 군의 아버지 강민조씨(55)가 『너희들이 스타냐』라고 고함쳤다. 그 순간 강씨의 주변에 있던 20여명의 전·노피고인의 측근들이 일제히 일어나 『조용히 해』라며 달려들어 한동안 소란이 빚어졌다. 방청객들의 표정도 모두 착잡했다.
  • 「12·12」·「5·18」 공판 정치권 반응

    ◎여야/전·노씨 참회­진상규명 촉구/일부선 “총선에 어떵영향 줄까” 촉각 여야 4당은 11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이 나란히 법정에 출두한 「세기의 재판」에 대해 각각 논평을 내고 전·노씨의 참회와 진상규명을 촉구했다.일부에서는 전­노씨의 진술내용이 한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신한국당의 손학규 대변인은 『군사반란과 쿠데타의 굴절된 역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과거에 대한 당사자들의 겸허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라며 『전­노씨는 이제라도 사건 진상을 소상히 밝혀 의혹을 해소하고 역사와 국민앞에 진정으로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논평했다. 손대변인은 『핵심주모자인 전·노씨를 비롯한 관련자들은 헌정파괴의 죄과에 대한 반성없이 궤변으로 국론분열만을 획책하여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면서 『사법부는 5·18특별법의 입법취지에 따라 엄정한 자세로 진상을 밝혀 다시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12·12와 5·18관련 공판은 21세기 선진 민주국가 구현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화해와 용서,국민대화합의 정치를 이룩하여 세계를 향한 전진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회의 등 야권3당은 11일 12·12 및 5·18 사건 첫공판과 관련,일제히 논평을 내고 검찰의 진상규명 노력과 전두환·노태우씨의 솔직한 진술을 촉구했다. 국민회의 김한길 선대위대변인은 『검찰이 학살주모자와 발포명령자를 규명하지 않고 김대중 내란음모사건도 다루지 않은 것은 이번 재판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진상접근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총선후 다른 대응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또 『외무부가 최근 드러난 「미국의 광주진압 묵인」과 관련된 문서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광주항쟁의 진상을 규명할 의지가 없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 했다. 민주당 김홍신 선대위 대변인은 『이번 공판은 군사반란 및 양민학살 등 헌정유린과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대해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가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며 『전­노 일당은 국민과 역사 앞에 참회하고 사죄하는 자세로 재판에 임하라』고 촉구했다. 자민련 이동복 선대위 대변인도 『5공 성립과정에 대한 진실규명과 정의구현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헌정사에 다시는 이같은 불행한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희망하며 국민적 화합을 회복하는 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일 역사학자 독도는 한국땅/65년 발간 「코리아 평론」서 지적

    ◎일 억지는 제국주의 욕심 【도쿄 연합】 일본이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는 독도문제를 제국주의 영토 확장욕에서 비롯된 역사의 문제로 명쾌하게 규정,일본측 주장의 허구성을 파헤친 일본인 역사학자의 논문이 2일 확인됐다. 한일협정 체결 직전인 65년 「코리아 평론」 2월호에 실린 「독도문제의 역사적 고찰」이라는 제하의 야마베 겐타로씨(산변건태낭,77년 타계) 논문은 『독도문제는 지리나 지지의 문제가 아닌 제국주의 영토 확장욕에 따른 역사의 문제이며,설사 지리나 지지의 측면에서 본다 하더라도 독도는 맑은 날 을릉도에서 육안으로도 보이기 때문에 한국의 주장은 정당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논문은 특히 일본은 독도를 고유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작 『고유라는 말에 대해서는 아무 정의도 내리지 않고 있으며 제국헌법 제정 당시의 고유영토에 대한 정의에는 독도가 없었다』고 지적,일본의 독도 고유영토설은 근거없는 궤변이라고 통박했다.
  • 신년회견속의 잘못된 전제(사설)

    국민회의 김대중총재의 신년회견 내용을 뜯어보면 정치적 과장,억지주장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공당,그것도 수권을 목표로 하는 제1야당의 주장과 정책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바탕만은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김총재의 발언에서 잘못된 가정과 허구,그리고 왜곡과 억지를 더많이 발견한다. 우선,여권의 내각제 개헌음모설이 그것이다.김영삼대통령은 집권후 지금까지 임기내 개헌가능성을 철저히 부인해왔고,여당인 신한국당은 최근 전당대회에서 대통령중심제 정강정책을 재확인했다.그럼에도 이번 총선에서 국민회의가 3분의1을 못얻으면 개헌소동이 일어난다고 한 김총재의 주장은 억지요,궤변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또한 현정부의 성격과 관련,5·6공시대와 크게 변화된 것이 없고 전두환·노태우정권의 반민주적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주장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두 전직대통령이 구속되고 5·18특별법의 제정으로 잘못된 과거에 대해 준엄한 단죄가 이루어지고 있는 마당에 『계승』운운의비난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여당이 중앙선관위로부터 받은 지정기탁금 7백31억원을 김대통령이 경제인으로부터 받은 컴컴한 비자금인양 매도한것 역시 정직한 비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김총재는 이번 회견의 역점을 현정부에 대한 비판못지 않게 정책대안 제시에 두어 4월 총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구하는 진지한 자세를 보였어야 했다.그런 점에서도 김총재의 회견내용은 대안부재를 느끼게 한다.김총재가 「경제 제1주의」를 표방하면서 내세운 물가안정·무역경쟁 능동대처·대기업 규제완화·중소기업 대폭지원등은 새로운 정책제시라기 보다 현정부가 추진중인 시책의 복사판이라는 인상을 떨쳐버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김총재가 공명선거 구현을 강조하면서 자당소속 자치단체장에 대해 선거개입 중지를 요구한건 환영할 일이다.우리는 김총재의 공명선거 다짐이 말로 그쳐선 안된다고 지적하고자 한다.
  • 역사청산과 나라 세우기/김석준 이대교수·정치행정학(서울광장)

    전두환·노태우씨의 구속기소로 잘못된 과거역사의 청산작업은 본격적인 단계에 접어들었다.지난 한세기동안 오욕의 역사는 일제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되고 일제잔제의 청산이 없는 위에 분단국가수립과 동족상쟁,5·16,10·17,12·12,5·17 등 일련의 군사쿠데타로 이어졌다.이처럼 외세와 정치군인에 의해 오염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온 국민들의 여망을 바탕으로 문민정부는 과거청산작업을 추진해왔다.하나회 등 군사조직해체와 안가철거,안기부등 국가정보기관의 문민화,공직자 재산공개와 율곡비리등 부정부패 척결,전 조선총독부건물 철거,관권·금권·행정·흑색선거추방,지방자치 전면 실시,정치관계법·금융실명제·부동산실명제 등 제도개혁의 추진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이러한 정지작업위에 12·12군사반란과 5·18내란사건에 대한 청산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이는 김영삼정부가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한국병 치유」와 「신한국 창조」의 약속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청산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권위주의 질서가 형성되고 기득권세력이 지배세력으로 형성되지 않고는 아무리 잘못된 역사라도 유지될 수 없고 그것이 불법적·폭력적일수록 더욱 광범위하게 물리적·인적 통치구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진민주국가들이 시민혁명이나 전쟁을 통해서 과거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열 수 있었던 것이다.특히 우리처럼 여러차례의 군사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유지해왔던 권위주의체제는 그만큼 청산하기가 쉽지 않고 청산과정에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어쩌면 지금 겪고 있는 일부 정치·경제의 혼란과 불안은 너무 가벼운 것일 수도 있다. 역사청산의 핵심적인 과제는 인적·물적·제도적·문화적 청산작업이다.일제식민통치나 군사쿠데타의 핵심세력들이 정치·경제·사회 등 역사의 중심적인 위치에서 물러나는 인적 청산이 가장 현실적인 과제이다.전·노씨의 구속기소뿐만이 아니라 5·16이후 12·12와 5·17군사쿠데타에 참여하고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청산이 엄중히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으로 물적·제도적 청산작업이다.정경유착의 구조적·제도적 관계를 와해시키고 통치자의 도구로 전락한 법과 검찰·경찰등 국가기구의 자율성을 회복하는 일이다.야당과 사회일부에서 특별검사제를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도 이에 연유한다.그리고 문화적 청산은 모든 국민의 의식·정신및 문화생활과 관련되기 때문에 가장 장기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조선총독부 건물과 쇠막대기 철거,일제지명 개칭 등이 일제 청산이라면 정치군인들이 심어온 잘못된 「군사문화」의 청산은 쿠데타역사의 문화청산문제이다. 이처럼 역사청산은 인적·물적·제도적·문화적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각각 새로운 것으로 채워질때 역사 바로세우기와 나라세우기가 성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국민과 각계가 나서야 한다.먼저 구세대의 정치인들이 물러나고 새롭고 능력있는 정치집단이 시민과 함께 정치를 주도하는 세대교체가 나라세우기의 우선 과제이다.여야를 불문하고 과거 잘못된 역사의 직·간접적인 책임을 정치지도자들이 지고 스스로 물러나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지역주의를더이상 정권장악의 볼모로 악용하는 죄악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새로 출범한 이수성내각과 김광일 청와대팀은 역사청산과 나라세우기라는 중요한 역사적 임무를 부여받았다.96년 총선과 97년 대선이라는 목전의 이해관계를 떠나 역사적 관점에서 나라 바로세우기작업을 기획하고 추진해야 한다.구질서와 기득권세력의 조직적인 저항을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국민과 역사를 위한 국가운영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과거청산의 소극적인 기능을 넘어 세계화와 개혁을 통한 「신한국 창조」라는 적극적인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무기력하기만 했던 여당도 이제 신한국당으로 거듭나서 나라세우기의 주체로 서야 한다.당내의 인적 청산과 신진대사를 통해 현시국의 주체적·능동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나아가 정부여당은 협력하여 역사청산과정에서 침체한 경제와 불안해하는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생활개혁작업을 본격적으로 과감히 추진하면서 역사 바로세우기작업을 실천해야 하겠다. 야당과 사회단체도 더욱 적극적으로 역사적인 과업에 주체로 나서야한다.정략적·수단적인 문제보다도 역사적·목적가치문제를 우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국민과 언론도 보다 이성적·역사적 판단과 행동을 필요로 한다.가식과 위선,잘못된 의리나 단식행위와 같은 감성에의 호소,궤변과 사술을 통한 보혁갈등구도로의 왜곡,개혁작업의 폄하와 당리당략적인 비판,막무가내적인 증언거부와 진실호도,일부언론의 재벌기업 비호 등 역사 바로세우기의 장애물은 도처에 있다. 마지막으로 불편을 끼치는 입원환자와 국민에 봉사한다는 심정으로 전두환씨는 단식을 중단하고 떳떳이 병원이 아닌 교도소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최규하·노태우씨는 국민에게 진실을 밝혀 진실이 폭력보다 강하고 영원함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역사를 세워야 한다.국민이 스스로 청치와 선거에 참여하고 감시·감독할 때만이 진정한 민주주의가 자리잡을 수 있다.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인류보편의 가치와 질서를 실현하는 나라세우기작업에 모든 국민이 주인이 될때 정치인,경제인,언론인,검찰등 국가기구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노씨 “기억 안난다” 되풀이/노씨 재판­노씨 법정표정

    ◎뇌물수수 추궁에 “당시관행” 강변/검찰 2백여항 질문에 핵심 회피/정경유착 부분엔 “잘못했다” 시인 「피고인 노태우」가 대통령재직중에 저지른 죄과에 대해 법의 심판을 받기 위해 18일 법정에 섰다. 상오 10시를 1분정도 넘긴 시각.재판장인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 김영일 부장판사와 주심 김용섭,좌배석 황상현판사가 입정하면서 헌정사상 초유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인 공판이 개정됐다. 재판부가 착석한 직후 재판장인 김부장판사가 『95고합 1228호 피고인 노태우』를 호명하자 수인번호 「143」를 왼쪽 가슴에 단 노씨가 두손을 한복 수의 소매속에 팔짱을 끼듯 가지런히 모은채 천천히 왼쪽 피고인대기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법정정리의 안내를 받아 입정한 노씨는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으나 피고인석 앞에 서서 방청석을 향해 목례한뒤 재판부를 향해 또 한차례 고개를 숙이는 예의를 보였다. 재판장은 이어 『피고인 이건희·김우중·최원석·장진호·이준용·김준기·이건·이현우·금진호·김종인·이원조·이경훈·이태진·정태수』등 15명을 차례차례 호명해 정해진 자리에 세웠다. 피고인들이 모두 자신의 자리앞에 서자 재판장은 방송카메라와 신문사진기자 2명에게 사진촬영을 허락했고 기다렸다는듯 수십차례의 플래시가 한장면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터졌다.이때 일부 피고인들의 몸이 움찔했으며 대부분은 촬영을 허용한 재판부를 불만스러운 듯 응시했다. 본적과 주거지,직업,생년월일을 일일이 묻는 인정신문이 끝난뒤 이어 10시16분부터 문영호 주임검사가 검찰측 직접신문을 시작했다. 재판내내 국민들이 듣기를 원하는 대답이 노씨의 「입」을 통해 나오지 않았다.노씨는 예의 궤변과 억지논리로 무장하고 있었다. 한달이 넘는 구치소생활동안 국민앞에 겸허하게 반성하고 죄를 뉘우쳤으리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깨졌다. 노씨의 뇌물수수를 입증하기 위해 검찰은 2백여항목의 예리한 질문을 퍼부었으나 노씨는 『국민과 민족을 위해』를 수 없이 반복했고 『잘 기억나지 않는다』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뇌물을 준 사람이 그렇게 말했으며 맞을 거다』 『주는 입장과 받는입장은 서로 다르다』며 마치 망각증환자처럼 행세했다. 『반성합니다』는 말은 정경유착부분에서 꼭 한번,『잘못했다고 생각한다』는 말은 뇌물수수부분에서 단 두번 들을 수 있었다.노씨는 뇌물수수에 대해 『당시는 관행이었고 잘못되지 않았다고 여겼다』는 말을 계속해서 읊조렸다. 이날 재판과정에서 노씨는 검찰의 직접신문에 대답하기 곤란한 부분은 얼버무림으로 일관했다.전직 대통령의 위엄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으며 낯 두꺼운 한명의 뇌물수수피고인에 불과했다.
  • 전직대통령 재판의 역사성(사설)

    1995년 12월 18일.「피고인 노태우」가 법정에 선 이날은 우리에게 창피하고 슬픈 하루였다.죄수들이 입는 허연 솜저고리 옷소매에 두손을 찌른채 수척하고 긴장된 모습으로 「긴급호송」차에서 내린 그는 이미 역사의 부끄러운 묘지에 묻힌 사람이다. 우리는 슬프지만 불행하지는 않다.정당치 못한 것을 그냥 묻어두고 뒷걸음치는 역사를 살지않는 시대가 이제는 시작되었기 때문이다.정당성에 하자없는 정부가 출발하여 개혁을 실시하지 않았다면 이 일은 가능하지 못했다.개혁은 그것을 선택한 정권에게 인기보다는 고달픔을 준다.고통과 인내를 요구하고 실인심을 동반할 뿐 당장의 개인적 이득을 국민 손에 잡혀주는 작업도 아니다. 그러나 수천억 비자금이 지하에 숨어 검은 루머를 양산하는 그 고약한 범죄적 행태가 「금융실명제」가 아니었던들 오늘처럼 드러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이 제도는 국민의 적지않은 고통을 담보로 진행되어온 것이다.그렇다고 확실한 미래의 열매를 실감시키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권모술수적 정치에서는 절대로 선호할 품목이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선택한 것은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또한 문민정부의 용기로 선택했더라도 국민적 용기가 그것을 뒷바침해 주지 않았다면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그것을 극복하고 제도적 성공을 이룬 결과,부패만은 전직 대통령을 포함하여 어떤 성역도 인정되지 않는 민주화의 성숙한 발걸음을 이룩했다. 반세기의 세월동안 우리는 세계를 놀라게 한 발전을 이뤄온 위대한 민족이다.그러나 그 뒤안에는 많은 「허물」의 퇴적을 만드는 시절도 살아왔다.오늘 정당성이 완벽한 문민정부를 창출하여 개혁을 진전시키고 「역사 바로세우기」를 착수할 수 있었던 것은 민족의 진운을 보여주는 일이다.날조된 궤변과 시대착오적 논리로 국면탈출을 시도하는 어떤 기도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잡기가 우리에게는 긴요하다. 처참하게 법정에 앉은 「피고인 노태우」의 뒷모습도 역사 치유의 냉정한 눈길로 우리는 주시한다.
  • 「12·12」 반란자들의 궤변(오늘의 눈)

    「12·12」가 일어난지 만 16년이 지났다.입밖에 낼 수조차 없던 군사반란의 내막이 이제 안방극장에서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다.사건의 성격규정도 대통령시해 공범을 처벌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에서 하극상에 의한 군사반란으로 뒤바뀌었다. 그러나 반란의 장본인들이 보여주는 역사인식은 16년의 세월을 무색케하리만치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다.특히 「보안사 4인방」으로 불리는 핵심가담자들이 검찰에 출두하면서 보여주는 태도는 가관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먼저 소환된 허삼수 당시 보안사 인사처장은 지난 9일 출두하면서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한 것이 정당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서너차례나 고개를 끄덕이며 강한 긍정을 표시했다.10일 상오 출두한 권정달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은 『최근 TV드라마에 나오는 이야기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최소한의 진실마저 외면했다. 5공정권의 정통성을 내건 「수괴」의 항의 단식에 힘을 얻은 걸까.허화평 당시 보안사령관 비서실장과 이학봉 당시 보안사 대공과장의 출두장면은 점입가경이다. 『정전총장이 박정희전대통령 시해범인 김재규와 행동을 같이 하는 등 연행이 불가피했다』『정전총장이 무죄를 입증하려면 무덤에 있는 김재규를 불러내야 한다』(10일·허씨) 『박전대통령이 살아났다면 정전총장이 하는 행동을 보고 상을 주었을지 체포해서 처벌했을지 여러분이 더 잘 알 것』(11일·이씨) 이씨는 이날 『10·26사건 이튿날부터 정전총장을 잡아야겠다고 판단,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건의했다』고 「모의시점」을 드러내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그처럼 명백한 혐의가 있다면 왜 사전에 재가를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르러서는 『(사후재가 일지라도) 재가를 받는 쿠데타가 어디 있느냐』고 강변했다. 그는 입가에 엷은 미소까지 띤 채 답변자료로 준비한 두툼한 서류봉투를 흔들어 보이며 조사실로 향했다.마치 검사와 대담이라도 하러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기변명의 궤변만 늘어놓는 이들에게서 사죄의 말이나 유감표시는 단 한마디도 기대할 수 없었다.이들은 비현실적인 가정법 표현을 유난히 자주 쓰면서도 왜 이런 가정은 못해보는 걸까.『12·12와 5·18로 무고하게 살상된 한서린 장병들과 시민들이 살아난다면…』
  • “공권력 도전­구속 수사를”/전씨 소환 불응… 여야 성명

    여야는 2일 전두환 전대통령이 대국민 성명을 통해 5·18관련자의 처벌방침에 반발하고 나선데 대해 각각 논평과 성명을 통해 비난하고 나섰다. ◇민자당 손학규 대변인=5·18관련자 처벌에 대해 전씨가 사회적 혼란 운운한 것은 자신의 살상행위로 국가를 혼란에 빠뜨린 책임을 망각하고 국가 공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망발이다.검찰 재수사가 정치적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비난한 것은 자신의 죄과를 반성하지 않는 후안무치한 행동이다.헌정파괴 행위로 정통성을 후손한 전씨는 자신이 정통성을 운위할 자격이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울분 금치 못해” ◇국민회의 박지원 대변인=우리는 전씨의 반성없는 후안무치한 태도에도 울분을 금치 못하지만 김영삼 대통령과 반란수괴와의 야합의 결과,그들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한 김대통령의 태도에 대해서도 울분을 금치 못한다. ◇민주당 이규택 대변인=전씨의 소위 「대국민성명」은 한마디로 12·12반란과 5·18학살에 대한 일말의 반성과 참회가 없는 반역사적,반민족적 변명과 궤변으로 국민과 함께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한다.전씨를 즉각 강제구인해 구속수사할 것을 촉구한다. ○“불행한 사태 우려” ◇자민련 구창림 대변인=법치국가에서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에 국회가 심의하고 있는 가운데 긴급소환 같은 처사가 자초한 일이 아닌가 한다.또 다른 불행한 사태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심히 우려된다.
  • “제2쿠데타” 전씨 망발 맹공­민주/야 3당 반응

    ◎전씨 보다 정부 공격 치중­국민회의/“현정국 가변성 많다” 우려­자민련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전두환씨의 「대국민 담화」에 대해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자민련 김종필 총재도 할말이 많은 표정이었으나 『전두환 전대통령이 많은 얘길 했다』며 비켜갔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볼 때 극히 이례적인 일로,야3당 모두 간단한 대변인 성명으로 대처했을 뿐이다. 먼저 국민회의는 신중한 자세를 취했는데 이는 12·12사태와 5·18의 반역사성에도 불구,그의 담화내용이 김영삼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고 있는데서 비롯되고 있는 것 같다.전씨의 발언 내용중 현정부를 공격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지원사격」자세를 취하면서도 전씨의 신병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엄중 처리』라는 이중태도를 보였다. 박지원 대변인은 『우리는 전씨의 후안무치한 태도에도 울분을 금치 못하지만,김대통령이 반란수괴와 야합한뒤 그들로부터 지난 2년반동안 격려와 조언을 받은 사실에 대해서도 똑같은 울분을 느낀다』고 말했다.박대변인은 또 전씨의 발언을 빌려 3당합당에 대한 김대통령의 생각을 물었다. 민주당은 이규택 대변인 논평등을 통해 「국민에 대한 반역」이라는등 극단적인 용어를 구사하며 전씨 담화를 집중 성토했다.강창성 의원은 『정부에 항거하고 국민을 협박하는 제2의 쿠데타』라며 전씨의 망발에 맹공을 퍼부었다.이대변인은 『한마디로 12·12반란과 5·18학살에 대한 일말의 반성과 참회가 없는 반역사적,반민족적 변명과 궤변으로 국민과 함께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한다』며 전씨에 대한 즉각적인 강제구인을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당이 이처럼 국민회의와 달리 전씨만을 겨냥한 것은 12·12와 5·18의 반역사성에 훨씬 무게를 두고있을 뿐더러,노씨 비자금 등 정치권의 악재에 비교적 자유로운 처지인 때문으로 이해된다. 자민련은 12·12와 5·18에 대한 국민의 비판여론을 감안해 공개적 입장표명을 극도로 자제하면서도 전씨의 담화내용이 현정부를 겨냥한데다,전씨에 대한 검찰의 강제구인이 확실해 정국이 요동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김총재가 이날 당무회의에서직접적인 언급은 피한채 『현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돌변하고 가변성이 많다』고 걱정한 대목도 이를 반증하고 있다. 구창림 대변인도 『김대통령이 특별법 제정을 지시해놓고 국회에서 특별법을 제정하기도 전에 전씨를 긴급소환함으로써 전씨의 반발을 자초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논평했다.
  • “역사의 죄인이 국민 우롱”/「전씨 검찰소환 불응성명」시민 반응

    ◎용서못할 행동… 즉각 구속 마땅/죄과 뉘우침 없는 궤변에 분노/“좌파 논리 운운에 할말잃어”­광주·전남 전두환 전대통령이 2일 현정부를 비난하며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한데 대해 대다수 시민들은 『법과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TV를 통해 전씨의 성명발표가 중계된 직후 검찰과 언론사 등에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이다』『아직도 착각에 빠져 정신을 못차렸다』『철저한 응징만이 해결책이다』라는 등 흥분한 시민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시민들은 『조금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전씨를 구속시켜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인걸(서울대 국사학과교수)=전씨는 12·12사건과 5·18사건의 진상규명과 역사의 심판을 요구하는 국민의 뜻을 무시했다.검찰의 소환을 부당하다고 생각했다면 검찰에 당당하게 출두해 사실과 소신을 밝혀야 할 것이다. ▲기동민(전국연합 부대변인)씨=전씨는 역사의 용서를 받기 위해 검찰소환에 즉각 응하고 진상을 스스로밝혀야 한다.검찰은 국민의 이름으로 전씨를 강제소환해야 한다. ▲김일수(고려대 법학과교수)=전씨는 자신의 잘못을 모면하기 위해 현정부를 비난하는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역사를 바로잡으려는 법과 정의의 집행은 정치,상황논리보다 엄중해야 한다. ▲신대균(경실련 부정부패추방본부 운영위원장)=국민은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청산하려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전씨를 포함한 5·18세력들은 비자금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부정과 부패로 일관해 왔다. ▲정태흥(한총련 의장)=5월 영령에 대한 참회의 마음으로 용서를 구해야 마땅할 전씨가 또다시 국민을 능멸했다.현정부는 정치적 고려나 법리적 해석 이전에 국민의 이름으로 전씨를 즉각 구속하라. ▲이용재(고교교사)=괴변으로 자신의 죄를 모면하려는 전씨의 뻔뻔함에 분노한다.전씨가 현정부를 비난하고 있지만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5·18학살의 책임을 물어 처벌해야 한다. ▲안상수(변호사)=검찰이 불기소처분을 내렸지만 확정효력은 없어 언제라도 재수사가 가능하다.5·18관련자 처벌을 원하는 대다수의 국민을 좌익으로 몰아붙이면서 죄를 피하려는 것은 비열한 행위다. ▲김경록(29·회사원)=전씨 자신의 개인적 생각을 밝힌데 불과하다.그러나 노태우씨와 다른 모습을 보여 그의 임물됨을 가늠케 했다. ▲장철운(40·공무원)=전씨가 5·18사건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을 변론하는 태도가 당당해 보였다.감추고 숨긴다고 끝날 애기가 아니므로 당당하게 검찰의 수사에 응하는게 좋겠다. ◎학살자 사법처리를 【광주=최치봉 기자】 광주와 전남 지역 주민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담화가 너무 뻔뻔하다고 분개했다.5·18 민주화 운동의 현장이었던 이곳의 주민들은 전씨 등 학살자들을 하루 빨리 사법처리하라고 요구했다. 전남도 의회 최성호(53·국민회의) 의원은 『담화의 내용이나 태도가 너무나 떳떳해 5·18에 대한 반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개탄했다. 서갑성(조선대 교수협의회 의장·47)씨는 『총칼로 수많은 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은 자가 반성은커녕 「좌파의 논리」니 「정치적으로 끝난 문제」이니 운운하며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겠다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라며 흥분했다. 조비오 신부(60·광주 봉선동 성당)는 『나라와 국민과 역사를 무시하는 후안무치한 태도에 분노를 느낀다』며 『회개하는 자에게는 용서가 따르고 사죄하는 자에게는 자비가 따르나,그처럼 자신의 죄를 은폐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발언을 일삼는 자는 법을 이용해 강제로 무릎을 꿇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광주·전남 대학총학생회연합 이몽석(25)군은 『이제껏 피흘리며 쓰러져간 민주인사와 민주화 투쟁을 좌파세력의 주장이라는 데는 할 말이 없다.당장 구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일 언론의 양면성/강석진 도쿄 특파원(오늘의 눈)

    서울과 도쿄는 비행기로 2시간.가깝다.양국관계는 최근 일본 매스컴을 보노라면 이런 지리적 거리보다도 더 가까운 관계라는 느낌이다. 일본 매스컴 특히 신문에는 두가지 한국과 관련된 뉴스가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다.하나는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수사관련 기사들이고 또 하나는 「식민지시대에 일본이 좋은 일도 했다」는 에토 다카미(강등륭미)총무청장관의 망언파동이다. 우선 비자금사건보도를 보면 이현우 전경호실장의 검찰진술로 비자금전모 수사의 단서가 열리면서 본격화됐다.그러나 처음에는 다소 흥미에 치중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뒤 시간이 흐르면서 분석적이고 객관적인 보도로 흐름이 잡히고 있다.10월29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이 「한국은 투명한 체제를 확립하라」는 사설에서 사건노출에 금융실명제가 기여했으며 부패척결의지도 작용했다면서 철저한 부패척결을 바란다고 말한 것은 다소 내정간섭적이라는 인상에도 불구하고 이웃나라 언론으로서 충정이 담긴 내용이었다고 할 수 있다.그 뒤 재벌의 소환,노재우씨의 소환등 사건수사를 중심으로 충실히 객관적으로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와 다소 비교되는 것이 에토장관의 망언파동보도다.에토장관의 발언은 지난달 초순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기자간담회에서 한 것이다.「강간범이 범행당시 피해자에 즐거움도 주었다」고 강변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비유해 지적하는 말도 있다.궤변임을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망언이 보도된 것은 한달 뒤며 상당수 일본언론들은 발언이 비보도 전제였음을 누누이 강조하면서 소극적 보도에 그치고 있다.오히려 일부 언론들은 비보도 약속이 깨진 점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취재원과 보도기관사이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외상의 방문이 거절당할 정도로 악화된 양국관계도 중요하지 않은가.지난 10일에는 신진당 구사카와 쇼조(초천소삼)의원이 망언가운데는 남경학살 부인,대동아전쟁의 미화내용도 있다고 폭로했지만 일본언론은 12일까지 그 사실여부와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있다.올바른 역사인식과 밝은 양국관계를 위해 일본언론들이 에토망언보도에 보다 단호한 태도를 보인다면 양국관계 회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 무라야마 총리 망언에 대하여(사설)

    ◎일 「한일합방 늑약」 원인무효 확인하라 유감스런 일이지만 다시 한번 일본은 대단히 교활하고 이기적이며 반성할줄 모르는 속성의 나라임을 실감한다.기회있을 때 마다 과거 일제의 한반도병합과 식민지통치에 대한 유감과 사죄의 뜻을 표시해온 일본이 그 병합조약은 합법적인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총리의 국회답변 망언이다.그것이 우리와의 미래지향적 우호협력관계를 강조하는 일본정부의 기본인식이라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중대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늑약합법이 기본입장 이라니 우리대통령이 심한 불쾌감을 표시하고 정부가 강경대응에 나섰으며 국회가 원천무효의 결의문을 채택했는가 하면 국민과 여론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한일합방조약」이 합법적이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우리에 대한 민족적 모독이다.일제의 식민지통치는 우리가 원해서 일본이 베풀었다는 논리가 되지 않는가.그리고 그에 의한 극악무도했던 일제통치도 합법적이며 목숨과 재산을 빼앗기고 참을수 없는 고통을 강요 당한 우리애국선열과 일반국민의 저항이 오히려 불법이었다는 주장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일합방조약」이 불법조약임은 아사히신문 사설도 지적했듯이 일본인들 자신이 더 잘 알것이다.조약이 합법적이기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조건은 체결당사자가 자유로운 의사표시를 할수 있는 분위기에서 하자없는 의사표시를 할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약은 자유의사가 기본조건 당시 조약체결권자인 고종황제가 강제로 체결된 「늑약」이라고 지칭했으며 서명날인도 하지않았다는 증거까지 있는 이 조약이 어떻게 합법적일수 있는가.강압에 의한 것임은 무라야마총리 자신도 인정하고 있다.그것을 한·일기본조약 체결당시 표현이 모호하다 해서 합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만적 궤변이며 설사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 해도 그렇게 하지않는 것이 일본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문민정부 출범 이후 우리는 대일관계에 있어 과거사의 포로가 되지않으려 노력해왔다.동시에 미래지향적인 우호협력관계발전을 적극 지향하면서 일본의 호응을 기대해 왔다.그러나 그것이 일방적인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호소카와 정부 때를 제외하면 일본정부는 우리의 이같은 노력에 호응하기보다는 역으로 이용하는 인상마저 주었다.무역적자의 누적(금년들어 8월말 현재 1백7억6천만달러 적자로 작년동기비 29억2천만달러 증가)은 방치됐으며 기술이전 문제에도 여전히 무성의한 태도가 일관되었다.특히 과거사문제엔 패전50주년을 기해 채택하려 했던 일제침략전쟁 사죄및 부전결의의 증발에 이은 망언소동으로 우리국민의 감정만 자극했다. ○우리정부 미래지향 보답인가 그리고 마침내 총리의 입을 통해 한일합방조약이 합법적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망언이 다시 나왔으며 일본정부가 30년동안 지켜온 입장이기 때문에 바꿀수 없다는 궤변까지 듣게된 것이다.틀린 것이 있고 그것을 알았으면 당장에 고치고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도리요 순리일 것이다.서로의 해석에 차이가 있다면 옳은 방향으로 조정해야 하는것 또한 두말할 필요가 없다.그것이 그동안 끊임없이 계속된 일본망언들의 뿌리라면 다시는 양국관계 발전을 가로막지 못하도록 차제에 확실히 뽑아버려야 한다.그렇지 않고는 진정한 미래지향적 한·일 우호협력관계 성립과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차제에 망언의 뿌리제거해야 일본은 언제까지 과거사의 문제로 숙명적인 이웃인 우리와의 관계를 이런식으로 방치할 것인가.갈등이 해소되고 새로운 관계의 발전이 기대될만 하면 과거사문제가 터져나와 발목을 붙잡는 것이 지난 50여년을 이어온 한·일관계의 불행한 전개였다.이같은 전개의 되풀이는 참으로 유감스럽고 한·일 양국국민 모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백해무익한 일이다.일본 정부는 종전50주년인 금년이 다 가기전에 「합방조약」의 법적인 원인무효를 확실하게 인정하고 말만이 아닌 진심의 사과를 함으로써 이 「과거사의 문제」에 완전한 종지부를 찍어주도록 일본의 양심에 촉구한다.
  • 공명 선거와 새정치의 의지(사설)

    김영삼 대통령이 96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이홍구 국무총리 대독)에서 밝힌 내년 국정운영의 기조는 전체적으로 안정과 통합,그리고 발전의 세가지로 이해된다.국회의원 총선이 예정된 내년도는 그 다음해 대통령선거까지 이어질 치열한 선거공방기로서 자칫하면 국가사회가 갈등과 대립,분열과 혼란의 격랑에 빠질 우려가 크다.그런 점에서 남북관계와 물가에 이르기까지 안보와 경제,치안등 모든 부문에 걸친 안전과 안정의 확보,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사회통합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민생과 생활개혁의 실현을 다짐한 것은 적절하고도 올바른 방향이 아닐수 없다. 시정연설내용에서 주목되는 것은 갈등과 대결의 낡은 잔재를 청산하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지역할거주의를 불식하는 「새로운 정치」와,깨끗하고 공명한 선거를 실현하기위한 강력한 의지표명이다.올해로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 진입하게 되는 우리 경제를 세계화를 통해 선진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그런데도 국민저력의 결집보다 국력의 분산을 가져오는 낡은 정치는 이제 국민의 힘과 의지로 청산되어야 할 때다. 민주화 이후 국민을 위한 대의와 정책 대신 지역 맹주와 파당의 이익 극대화에 몰두하는 「정치인을 위한 정치」가 판을 치고,그에 따른 부패와 타락은 심각한 정도에 이르고 있다.지역감정을 바탕으로 한 정당파괴와 이합집산,탈법과 궤변의 줄서기 등 국민을 지역감정의 노예로만 아는 정치지도자들의 횡포는 정치를 저질화하고 병들게 하는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그것은 결국 이들이 국민들의 수준을 얼마나 낮게 평가하고 있는가를 말해준다.내년 총선은 국민의 자존심이 걸린 국민수준의 심판기회다.국민을 우롱하는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거부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나아가서 내년의 총선은 또한 지방자치제도와 통합선거법 등 정치개혁과 제도정착의 성패를 가름한다.어떤 대가와 희생을 치르더라도 불법 타락을 척결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정당과 정치인들이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또 망언인가(외언내언)

    일제가 조선강점이후 첫번째 착수한 전국 규모의 사업이 「토지조사」였다.합방직후 토지조사국을 만들었고 1918년말까지 계속된 이 조사작업은 식민지 경제수탈의 근간이었다.수많은 조선인 지주가 땅을 빼앗기고 더 많은 소작인들이 농토를 잃었다.역둔토 14만5천정보가 국유화되었고 4만6천여정보의 민간인 농토가 총독부소유로 바뀌었다. 토지조사 7년만에 조선에서 일본인의 토지경영은 10배로 늘어났고 면적도 4배나 증가한다.1930년 조선의 쌀생산고는 1천3백51만섬,이중 40%인 5백42만섬을 일본으로 빼돌렸다.조선인들은 만주에서 들여온 좁쌀과 콩깻묵을 식량으로 삼아야 했다.농업생산이 경제의 대종을 차지하던 때였으니 조선의 경제전체를 약탈해 간 것이다. 그뿐인가.6백여만명의 노동인력을 징용이란 이름으로 끌고갔으며 태평양전쟁중에는 50만명의 젊은이를 징병으로 사지에 몰아넣었다.심지어는 부녀자와 어린 여학생까지 종군위안부로 끌어간 일제다.그 만행을 조선인들은 36년동안 겪고 지켜 보았다. 그런데도 일본은 전후 과거역사에 대한 사죄는 건성으로 해넘기고 기회있을 때마다 식민지통치를 정당화하거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망언을 되풀이해왔다.「식민지 지배가 한국에 도움이 됐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각료까지 등장했으니까. 우리에겐 광복50년,일인에겐 패전50년 기념일을 며칠 앞두고 문부상에 취임한 시마무라(도촌의신)는 「망언행진」을 또 되풀이했다.『태평양전쟁은 일본의 침략전쟁이 아니며 따라서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보수 우익의 견해를 대변하는 것이지만 그런 망언을 들으며 「일본인의 왜소한 심리」에 분노와 함께 연민을 느낀다. 『전쟁에서의 죄악과 옳지 않았던 일을 공평하게 판단하려면 역사의 진실에 눈을 감아서는 안된다』는 바이츠제커 전 독일대통령의 최근 일본방문 강연은 옹졸한 일인의 망언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 과소비억제 국민의 몫이다/강광하 서울대 교수(시론)

    우리 경제는 제대로 잘 굴러가고 있는가.8%가 넘는 성장률을 놓고 이견이 분분하다.그 정도의 성장률을 기록하기가 어디 쉬운 일이냐고 낙관적인 관측을 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너무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 것은 과열 우려가 있다고 비관적인 관측을 하는 분들도 있다.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것은 매우 소망스러운 일이다.문제는 이 속도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데 있다.경제는 단숨에 승부를 내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경주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가령 2시간30분대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마라톤 선수가 선두 그룹에 끼기 위해서 무리하게 초반 레이스를 펼치다가는 완주는 커녕 중도에 탈락하거나 자신의 기록도 유지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나라 경제는 실력에 맞게 적정한 속도로 성장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따라서 지금 우리 경제의 성장 속도가 적정한 것인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결론을 내기가 어려운 문제이다.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 경제가 요즈음과 같은 속도로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94년에 이어 95년에도 8%대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경상수지 적자폭은 확대되고 물가상승 압력도 가중되고 있다.고급 내구재와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소비지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점이 특히 우려할 만하다.한국금융연구원의 예측에 따르면 95년의 성장률은 8%대이지만,경상수지 적자는 64억 달러,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대에 이르러 경제가 불안정한 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민간소비증가율은 94년 3·4분기부터 경제성장률을 앞질렀고,특히 고급가구나 자동차 등 사치성 내구재의 수입이 95년 2월중에 45.7%나 크게 증가하였다.이것은 결코 건전한 성장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또한 이것이 저축률 하락으로 이어진다면 외채가 급속하게 늘어날 것으므로 더욱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하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점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소비는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반면에 이를 통제하거나 조절하기 위한 수단이 별로 없는 것이 특징이다.따라서 경제안정을 위해서도,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건전한 소비행태를 확립하는 것이 급선무다.국민 각자가 스스로 소비를 억제하지 않고서는 이 문제의 해결이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정부의 각종 시책이 소비 촉진의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시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의 실시,특별소비세 인하 그리고 시장개방 등이 모두 소비를 유발시키는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현상만을 말한다면 이러한 지적은 옳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이것은 정부 시책의 본뜻을 왜곡한 일부 바람직하지 못한 소비행태에 핑계를 제공하는 궤변에 불과하다.다만 당연히 시행해야 할 바람직한 정책이 일시적으로 소비를 촉진하는 역기능을 보이고 있는 만큼,정부가 이를 상쇄시킬 좋은 방도를 강구해야 할 터인데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결국 이 과제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국민들이 해결할 수 밖에 없다.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가 소비를 억제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튼튼해질수 없다는 자각을 바탕으로 자발적인 소비억제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6월에 있을 지방자치단체장 및 의원 선거는 또 한차례 소비를 조장하고 물가상승을 부추길 복병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과소비의 핑계를 대기보다 건전한 소비자로서의 자긍심을 되찾아야 한다.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하는 적극적인 참여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우리 경제의 성패 여부는 이제 우리 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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