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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 은행강도 목격자 나왔다

    지난 21일 발생한 국민은행 대전 둔산지점 권총살인강도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은 용의자 2명을 봤다는 목격자들을확보,이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몽타주를 제작,26일 전국에배포했다. 경찰은 “범행 전 범인들의 그랜저 승용차를 세차와 선팅 등을 해준 업체 종업원들과 탈취당한 현금을 옮겼던 청원경찰 등의 진술을 토대로 몽타주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용의자들은 모두 170∼172㎝의 키에 얼굴이 둥글고 머리는 스포츠형으로 30대 중반은 눈이 처졌고,20대 후반은 눈과 입술이 두툼한 편이다. 범인들은 범행 전 대전에서 차를 2번 세차하고 선팅까지하는 등 치밀한 계획을 세운 뒤 범행했다. 경찰은 또 “범행현장에서 수거한 범인들의 총알은 경찰에 권총 총알을 독점 공급하고 있는 P금속에서 만든 것”이라며 “이 회사에서는 군 고위간부와 경찰에 지급된 38구경 권총의 총알을 공급하고 있으나 군에서는 권총을 분실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10월15일 대전시 동구 송촌동 주택가를순찰하던 노모 경사(33)의 권총을 빼앗은 범인들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다. 이들이 범행에 사용한 총알은 위협용 1발을 포함,모두 3발로 노 경사가 탈취당한 공포탄 1발,실탄 4발 가운데 범행 전에 시험 사격용으로 1발을 소비했을 경우 1발이 남아 경찰은 제2차 범행에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현상금은 1,000만원.신고 전화는 (042)476-3002. 대전 이천열기자 sky@
  • 권총강도사건 나흘째 ‘제자리’

    대전 국민은행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권총 살인강도 사건이 범행발생 나흘째인 24일까지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이 사건 수사본부는 이날 “지난 21일 범행에 쓰인 차량에서 채취한 지문이 감식결과,차주 김모씨(51·여)의 것으로 밝혀졌다”며 “차량에서 수거한 머리카락 4점과 차량안에 버려진 마스크에서 떼낸 수염 1점의 DNA 분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해 신원을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경찰에 총알을 독점 공급하고 있는 P금속에사건현장에서 수거한 총알에 대한 정밀 분석을 의뢰했다. 이 총알이 경찰에 공급하고 있는 38구경 권총의 총알로밝혀질 경우 최근 대전과 대구에서 경찰관들로부터 권총을 탈취한 범인들이 범행을 저질렀을 것으로 경찰은 확신하고 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 권총강도 수사 장기화 조짐

    대전에서 발생한 은행 권총 살인강도 사건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23일 이 사건 수사본부에 따르면 지난 21일 범행에 이용된 차량 트렁크에서 발견된 서류봉투 등에서 지문 4개를채취,감식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차주 김모씨(51·여)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 경찰은 또 5개 은행의 폐쇄회로(CC)TV 테이프 판독작업도 병행했지만 이 역시 화질이 좋지 않아 작업을 종료했다. 용의자로 보이는 남자들을 택시에 태워줬다는 내용 등 2건의 제보 또한 모두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경찰은 총기 이용 강도 전과자 117명 중 대전·충남권 연고자 14명과 올들어 대전교도소를 출소한 20∼30대 강·절도 전과자,은행 퇴직자 26명,대전권 출신 경비용역업체 직원 5명 등의 최근 행적 수사에 실낱 희망을 걸고 있다. 경찰은 또 지난 10월 발생한 대전 동부경찰서 경찰관 권총탈취사건 현장과 이번 사건 현장 주변에서 범행 시간대에 휴대폰을 쓴 사람들의 명단을 확보,범죄 연관성을 수사하는 한편 현상금(1,000만원) 내역과 용의자 인상 착의 등이 담긴 수배전단 13만5,000장을 추가 배포할 예정이다. 경찰은 이밖에 도난 당시 다소 옅던 범죄이용 차량의 선팅이 발견시에는 짙게 바뀐 점을 중시,차량 선팅업소 등에 대한 탐문수사도 진행중이다. 한편 이번 사건에 사용된 총기가 경찰관이 빼앗긴 것일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지난해 3월 대구에서 성폭행 용의자 검거과정에서 탈취당한 3.8구경 권총 1정 역시 회수되지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경찰이 최근 잃어버린 권총은 2정으로 밝혀졌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 [사설] 구멍 뚫린 연말 비상령

    은행들이 잇달아 강도에 털리고 있다.대구에서 엽총을 들고 은행에 침입했던 강도 사건이 발생한 지 열흘 만에 이번엔 대전에서 38구경 권총으로 무장한 2인조 강도가 현금 수송을 노려 3억여원을 강탈해 달아났다.범인들은 반항하는은행지점 과장에게 실탄 4발을 쏴 무참히 살해했다.강도사건은 하나같이 경찰의 ‘연말연시 방범활동 강화기간’중,그것도 한낮에 일어났다. 대전 국민은행 강도들의 권총은 주로 경찰이 사용하는 38구경으로 밝혀졌다.범인들은 범행에 앞서 경찰관으로부터총기를 탈취했을 가능성이 높다.대전에서는 지난 10월15일순찰 중이던 경찰관이 뺑소니차에 치여 공포탄 1발과 실탄4발이 장착된 38구경 권총을 빼앗겼다.대구 기업은행 강도도 범행에 앞서 총포사 주인을 살해하고 엽총을 빼앗았던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경찰이 일련의 총기 탈취 사건을 제대로만 추적했다면 이런 불상사들은 없었을 것이다. 허술한 총기 관리도 문제다.민간이 보유하고 있는 총기는39만4,398정이다.전체의 76.7%가 공기총이지만 이 중에는사람에 치명적인 엽총도 3만6,473정이나 된다.문제의 핵심은 대구 사건에서 보았듯이 언제라도 범죄자들이 이들 무기를 탈취해 범행에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총포상들은 뒤늦게 위기감을 느끼고 저녁 시간 영업을 자제하는 한편 사설 경비업체와 비상 연락망을 점검하고 있다지만 미봉책에불과하다.총기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시급히정비해야 한다. 경찰 수사는 두 사건 모두 아직 이렇다할 진전이 없다.범인들은 지문 하나 남기지 않을 만큼 치밀했고 목격자를 완벽하게 따돌릴 만큼 순식간에 해치웠다.대구 강도는 범행승용차를 불 태워 흔적을 없앴고 대전의 복면 강도는 단 3분만에 범행을 끝냈다.그러나 사전 대비는 찾아 볼 수 없었다.수억원의 현금을 정기적으로 옮기는 대전 국민은행 지하주차장에는 그 흔한 폐쇄회로 TV조차 없었다. 금품 강탈의위험에도 불구하고 경비 절감을 이유로 전문성이 없는 직원들이 현금을 다뤄왔다는 것이다. 경찰은 동일 수법의 전과자 행적을 추적하면서 목격담을토대로 수배 전단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범인들이 또 경찰 검문검색을 자유 자재로 넘나 들게 해서는 안된다.수사가 장기화되어 경찰이 무력하게 비쳐질 경우 모방 범죄를촉발할 수도 있다.벌써 전북 전주에서는 20대가 총포사에서범행할 총기를 훔치려다 검거되기도 했다. 연말 연시 ‘비상령’이 발령된 상황에서 무장 강도가 재발되어서는 안된다.경찰의 심기일전을 촉구한다.
  • 日, 괴선박 격침 안팎/ ‘구명조끼 한글’ 北선박 단서

    [도쿄 황성기특파원]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과의 교전 끝에 침몰한 괴선박이 북한 배일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이선박의 임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3일 해상보안청이 인양한 괴선박 선원의 구명조끼에 한글이 씌어져 있는 점은 북한 선박으로 추정케 하는 결정적 단서이다.해상보안청은 침몰 직전 바다로 뛰어든 선원의 수색과 함께 괴선박의 임무를 밝히기 위해 선박의 잔해와 유류품 인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까지 일본 당국의 분석으로는 침몰한 괴선박이 북한배일 경우 공작선이기보다는 밀수 임무를 띤 선박일 것으로보고 있다. 이 배를 밀수선으로 추정하는 근거로는 해상보안청 순시선의 추격에 불과 시속 15노트밖에 내지 못한 점이 꼽힌다.1999년 일본 영해인 노토(能登)반도에 출몰했던 북한 괴선박은 35노트의 속도로 유유히 순시선의 추격을 따돌렸다. 보통 공작원과 배를 조종하는 극소수 인원으로 운용되는공작선과 달리 침몰한 선박은 무려 15명 안팎의 선원을 태우고 있었다.일본 야쿠자 조직에 밀매하는 마약이나 권총같은 소형 무기의 하선에 필요한 인원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또한 공작선의 경우 보통 무장하지 않으나 괴선박은 자동화기로 순시선에 사격을 가했으며 통상 최소한의 자위를 위해 무기를 휴대하는 밀수선의 특징을 보였다. 일본 정부 한 관계자는 “공작선을 이용한 공작원 침투는위험도가 높기 때문에 최근 들어 거의 없어졌다”면서 “베이징(北京)을 거쳐 일본에 입국시키는 방법이 있기 때문에굳이 지금 시기에 공작선을 보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작선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하지 않고 있다.이 관계자는 “재일 조선인총연합(조총련)의 북한 송금 의혹에는조총련이나 북한 노동당 인사가 수금된 돈의 전액을 송금하지 않고 가로채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면서 “북한 당국이이를 조사하기 위해 몰래 공작원을 보내려고 했을 가능성도있다”고 덧붙였다. 괴선박이 북한 배로 드러날 경우 가뜩이나 얼어붙은 북·일 관계는 더욱 냉각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아직까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으나 괴선박의 정체가 밝혀지면 최근 베이징 등에서 간간이 이뤄지고있는 실무자급 북·일 접촉마저 일본 정부가 중단할 공산이큰 것으로 관측된다. marry01@
  • 세밑 2인조 권총강도 은행원 살해 3억 강탈

    세밑 비상방범령이 내려진 가운데 대전에서 2인조 권총강도가 현금을 수송중이던 은행 직원을 쏜 뒤 3억원을 털어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21일 오전 10시쯤 대전시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 충청지역본부 지하1층 주차장에서 2인조 복면 강도가 현금을 옮기던 같은 은행 용전동지점 김경환(金璟煥·45)출납과장을쏘고 현금 3억원이 든 돈가방을 빼앗아 검은색 그랜저를타고 도주했다. 가슴 등에 총탄을 맞은 김 과장은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으나 숨졌다. 김 과장 등은 국민은행 대전 용전동지점에서 고객예탁금6억원을 2개 가방에 나눠 충청지역본부로 수송하던 중이었다. 현금 호송에 동행했던 청원경찰 박갑채씨(52)는 “지하주차장에서 현금을 차에서 내리는 순간 복면 강도가 총기를들이대며 위협했다”며 “범인들은 김 과장이 반항하자 실탄 4발을 쐈다”고 말했다.경찰은 사건 발생 즉시 대전둔산경찰서 삼천파출소에 수사본부를 설치하는 한편 주요 예상 도주로 등에서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다.경찰은 범인들이 현금수송 시각을 정확히 알았던 점으로미뤄 은행 내부사정을 잘 아는 자들의 범행으로 보고 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 대전 권총강도 사건 상보

    국민은행 대전 용전동지점 김경환 출납과장(45)등은 21일 오전 9시 10분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고객예탁금을 입고시키기 위해 충청지역본부로 출발했다.시내길을 달리면서 현금을 호송하던 50분동안 별다른 징후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사건 순간=이들이 충청지역본부인 둔산지점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김씨 등이 이스타나 승합차의 뒤 트렁크를열고 예금이 든 청색 돈가방을 핸드카에 옮겨 싣는 순간,회색 복면에 아래 위로 검은색 가죽옷을 입은 남자가 공포탄 1발을 천정을 향해 발사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손들어!”라고 위협했다. 얼어붙듯이 긴장된 탓에 청원경찰 박갑채씨는 차고 있던가스총을 미처 뽑아 대응하지 못했다.그러자 운전기사 박성진씨(23)가 범인들을 항해 돌진하려고 승합차 운전석으로 달려갔다. 그 순간 청색 트렁크 모양의 돈가방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김과장에게 범인들은 김과장의 가슴·배·허벅지 등에 권총 4발을 쏴 쓰러뜨리고 돈가방 1개를 낚아챘다.이들은 나머지 돈가방마저 빼앗으려 달려드는 순간 운전기사박씨가 이스타나 승합차를 후진시켜 범인들의 차량옆을 3차례 들이받았다.이에 역시 복면한 채 검은색 가죽점퍼와 회색 작업복 바지 차림의 범인이 타고온 검은색 그랜저가 전속력으로 허둥대며 달아났다.범행은 불과 20∼30초만에 끝났다. 범인들은 곧바로 차를 몰고 건물 밖으로 나오다 지하주차장으로 진입중이던 쏘나타 승용차를 들이받은 뒤 그대로도주했다. ◆경찰 수사=사건발생 직후 경찰은 대전 둔산경찰서 삼천파출소에 수사본부를 설치,주요 예상 도주로에서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다. 경찰은 현장에서 탄피 1개를 수거,정밀 감식을 벌이고 있으나 38구경 권총의 탄피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이에 따라 지난 10월 15일 대전시 동구 송촌동 주택가를 순찰중이던 노모 경사(33)가 실탄 4발과 공포탄 1발이장전된 권총을 도난당한 사건의 범인과 동일범의 소행일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연계수사를 펴고 있다. 경찰은 이와함께 입고차량을 미리 기다리고 있던 점으로미뤄 은행업무를 잘아는 자들의 소행일 것으로 보고 동일수법 전과자들을대상으로 수사중이다. 청원경찰 박씨는 “범인 둘다 170㎝이상 되는 키에 몸매가 호리호리했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이들이 타고온 경기 XX5427호 검은색 그랜저XG는 지난 99년 9월 18일 경기도 평택시에서 도난 신고된차량인 것으로 밝혀냈다. ◆문제점=경찰이 지난 5일부터 금융기관 등을 중심으로 연말 연시 방범활동을 강화하고 나선지 보름만에 발생했다. 지난 11일 대구 기업은행에서 발생한 복면강도,18일 경북경주 현금 수송차량 탈취사건 등이 잇따라 경찰의 방범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은행건물의 지하주차장에 폐쇄회로(CC)TV조차 설치되지 않았으며 범인들이 갖고 달아난 돈가방에는 리모콘 작동시 강한 전류가 흐르도록 고안됐으나 이마저 작동되지 않는 등 금융기관의 안일한 방범의식도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 印尼 한국학교에 무장 떼강도

    [자카르타 연합] 이슬람 성월인 라마단을 맞아 인도네시아에서 강력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5일(현지시간) 한국학교(JIKS)에 무장 떼강도가 침입, 거액을 강탈한 사건이 발생했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권총과 칼로 무장한 15인조 강도가 이날 오전 3시쯤 수도 자카르타 외곽에 위치한 한국학교 사무실에 침입, 미화 3만7,000달러와 토지관련 서류가 들어있는 중·소형 철제금고 3개를 털어 달아났다. 경찰은 범인들이 금고가 보관된 사무실로 곧바로 침입하고 최근 학교 주변 주차 및 교통 체증 문제로 인근 주민들이 강력 반발해온 점 등으로 미뤄 학교 사정을 잘 아는 현지인 직원과 공모해 범행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해 집중 조사중이다. 앞서 자카르타 서부 치안주르 지역에 거주하는 한국인 장 모씨(58)는 지난 2일 권총으로 무장한 10인조 강도로부터 1억루피아(1,300만원) 상당의 금품을 강탈당하는 등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교민들을 상대로 한 강력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 폭력피의자에 권총 발사 경찰 과잉대응 논란

    경찰이 술에 취해 후배를 흉기로 찌르고 집으로 도주한 40대 폭력피의자에게 권총을 발사,과잉대응 논란을 빚고 있다. 경남 진주경찰서는 27일 밤 11시50분쯤 진주시 상대동 S꽃집에서 술에 취해 자신의 아들(10)을 흉기로 위협하던 집주인 권모씨(40)를 신고를 받고 출동한 동부파출소 소속 이모경사(45)가 실탄 2발을 발사,검거했다고 28일 밝혔다. 경찰은 흉기로 아들을 위협하던 권씨와 대치중 권씨가 김모 경장의 권총을 뺏으려고 해서 공포탄 1발과 실탄 2발을 발사했다고 설명했다. 진주 이정규기자 jeong@
  • 北, DMZ서 아군초소 총격

    합참은 27일 오전 10시42분쯤 경기도 파주군 파평면 장파리 중서부 전선 비무장지대(DMZ) 북방 7㎞ 지점의 북한군 경계초소(GP)에서 아군 경계초소를 향해 2∼3발의 총격을 가해왔으나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밝혔다. 합참은 북한의 총격이 있은 직후 교전규칙에 따라 “총격도발은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다.즉각 도발을 중지하라”는 경고 방송과 함께 소총 15발을 응사했다고 덧붙였다. DMZ에서 북한군이 총격을 가하고 우리군이 대응사격을 한 것은 98년 6월 같은 지점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3년5개월만이다. 합참은 “북한군이 쏜 1발은 북측 초소에서 770m 떨어진 아군 GP 유리창을 파손시켰고,나머지 총탄은 GP 철책에 맞았으며 총격전 이후 북측의 특이한 군사동향은 관측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북한군이 발사한 탄환은 7.62㎜ 기관총탄으로 정전협정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전협정에 따르면 DMZ내에서는 권총과 보총(단발총)만 휴대할 수 있다. 황의돈(黃義敦) 국방부 대변인은 “군 당국은 현장에 수사관을 파견, 북측의 총격이 실수인지아니면 고의성이 있는지 조사중”이라면서 “”조사결과 정전협정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북측에 유엔사 군사정전위 비서장급 접촉을 제의, 정확한 경위설명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강동형기자 yunbin@
  • 추적보도로 14년만에 재수사 끌어낸 이정훈기자

    지난 87년 1월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수지 김사건’이 최근 검찰의 재수사로 사건발생 14년만에 진실이밝혀졌다.당시 안기부는 ‘홍콩 여간첩 수지 김’(본명 김옥분)이 남편 윤모씨를 납북하려다 미수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 13일 검찰은 “수지 김은 북한 공작원이 아니며,남편에 의해 피살된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남편 윤씨를 살인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한편 검찰이 이 사건을 재수사하게 된 데는 6년전부터 이사건을 끈질기게 추적해온 한 기자의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은 이정훈(39·사진)‘신동아’ 기자.당시 주간조선기자로 있던 그는 사건발생 8년 뒤인 95년 이 사건에 의혹을 품고 관계자들을 취재한 끝에 김씨가 간첩이 아니라는 심증을 굳혔다.“간첩이라면 흔히 난수표,노동당가,권총 등이 집에서 나오는 것이 보통인데 그런 것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그가 근무했던 주간조선,시사저널 등에서는 이를 기사화하지 않았다.그는 “이미 상당히 시간이 지난 사건이어서 데스크들이 이해가 부족했던데다 소송에 휘말릴 것을 우려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결국 그는 주간동아로 옮긴 이후인 지난해 1월 사건발생 13년만에 처음으로 그간의 취재내용을 보도했다.이 내용은 다시 SBS ‘그것이 알고싶다’팀이별도 취재를 거쳐 한달 뒤인 2월 12일 ‘누가 수지 킴을 죽였나’로 방영하면서 비로소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됐다. 이 기자는 “기사를 써놓고도 보도를 하지못하자 수지 김의사진을 볼 때마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김씨의 명예가 뒤늦게나마 회복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 가스식 모의총포 1만정 밀수입

    서울경찰청 외사과는 12일 플라스틱 ‘BB탄’을 사용하는 일본·대만제 가스식 모의총포 1만여정을 완구류로 속여 수입한 김모씨(50)와 조모씨(49) 등 2명을 총포도검화약류 단속법 위반혐의로 구속하고 판매업자 백모씨(45) 등 8명을 입건했다. 김씨 등은 99년 3월 일본의 D사로부터 M-4소총 45정 등 권총과 자동소총,유탄발사기 등 모의총포 1만여정을 110여차례에 걸쳐 들여와 백씨 등을 통해 개인 소장 또는 서바이벌 게임용으로 판매,12억7,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모의총포를 장난감으로 속이기 위해 총기 실린더의 스프링을 늘려 탄성을 약화시키고 총열 등을 조잡한 플라스틱 재질로 바꿔 수입한 뒤 별도로 들여온 부품으로 교체했다. 모의총포에 사용된 BB탄의 위력은 국내산 플라스틱 소총의 5∼6배나 돼 10m 거리에서 신문지 80장을 뚫고 맥주병을 깨뜨릴 정도로,인체에 쏘면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병규기자 cbk91065@
  • 재무구조 좋은 상호신금 신규지점 설치 허용

    금융감독위원회는 12일 재무구조가 좋은 상호신용금고는 새로 지점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금고는 단일점포 원칙에 따라 합병이나 부실금고인수 때만 예외적으로 지점을 둘 수 있었다.그러나 앞으로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8% 이상이면서 고정이하 여신비율이 8% 이하인 금고는 지점을 열 수 있다. 이와 함께 그동안 금고가 기업어음을 매입할 경우,유가증권총투자한도(자기자본의 100%) 적용을 받도록 했으나 이를 배제해 동일인여신 한도내에선 별도 제한없이 기업어음에 투자할 수 있게 했다. 박현갑기자
  • 여성장군 탄생 무엇이 달라지나

    군 창설 53년 만인 8일 처음으로 탄생한 여성 장군은 복장을 비롯,각종 예우 등에서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모든 것이 변한다. ●무엇이 달라지나= 대령에서 장군으로 승진하면 모두 100여 가지가 바뀔 정도로 위상이 달라진다. 양승숙(梁承淑·51)육군 간호병과장은 특히 첫 여성장군으로 복장부터 새 디자인을 해야 할 형편이다.기본적으로 금테를 두른 5∼6가지의 ‘장군모’에다 정복·예복,신발류등 30여 가지가 새로 지급된다.여성 장군용 군화도 선보일예정이다. 운전병과 전속부관(중위 또는 소위)이 딸린 2,000㏄급 이상의 차량이 제공되고,개인소지용 권총도 45구경에서 38구경으로 교체된다. 장군 전용 식당과 화장실을 비롯해 집무실에 장군기,삼정도(三精刀)를 게시하고 차량에는 ‘별판’을 단다. ●여군과 간호병과= 우리 여군의 모태는 49년 6월30일부터1개월간 현재의 국립의료원에서 훈련받은 여자배속 장교 1기 32명이다.한국전쟁 중인 50년 9월1일 여군 창설명령에따라 부산에서 총 491명으로 여자의용군 교육대가 창설됐다.이에 따라 9월1일이 여군 창설기념일이 되고 있다. 이번에 1호 여성 장군의 영예를 안은 양 준장은 73년 간부후보 29기로 임관했다.80년 국군간호학교 교수부장,99년국군간호학교장 등 간호병과의 정통코스를 거쳤다. 전투병과를 제치고 첫 장군을 배출한 간호병과는 여군 창설 2년 전인 48년 31명의 간호사로 발족했다. 49년 해군 간호장교가 탄생했고,한국전 및 월남전때 엄청난 역할을 했다. 64년 육군간호학교(현 국군간호사관학교)가 창설되면서 위상이 한층 높아졌으나 98년 학교의 존폐문제로 홍역을 치렀다.그러나 여성계의 지원과 간호병과원들의 단결된 힘으로 ‘학교 폐지론’을 폐기시켰다.현재 2,600여명의 여군가운데 간호병과는 800여명으로 전투병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수다. 한편 북한 군에서 최초 배출된 여성 장군은 군의관 출신인 전구강 소장(72)으로 현재 인민무력부 산하 종합병원의하나인 ‘46호병원’ 원장으로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동형기자
  • 차이나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 (하)실패한 차이나 드리머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K씨(37)는 98년 IMF 경제위기로 카센터 사업이 부도가 나자 ‘차이나 드림’을 꿈꾸며 집을팔아 전세들고 남은 돈 5,000여만원을 들고 중국에 건너왔다.하지만 음식점·옷가게 등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바람에 가지고 온 돈을 모두 날려버려 아내를 대할 면목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한탕한 뒤 한국으로 도망가겠다는 것. 김씨는 조선족 2명과 한족 1명 등과 함께 돈이 많은 환치기상을 털기로 모의,권총강도를 벌이다가 중국 공안당국에 붙잡혔다. B씨(33)는 사업자금 3,000여만원을 들고 인천에서 배를 타고 톈진(天津)에 들어왔다.그는 물가가 싼 중국에서 이만한돈이면 무슨 사업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톈진시내에 한국산 액세서리를 취급하는 가게를 열었다. 하지만장사가 본궤도에 오르자 건물주가 계약을 파기하고 가게를비워달라고 요구해 큰 손해를 봤다. 소송도 해봤지만 결국빈털터리 신세가 됐다.참다 못한 그는 중국에 좋은 사업 아이디어가 있다며 한국의 친구를 불러들여 투자자금을 가로챘다가 붙잡혔다. 차이나 드림을 꿈꾸며 중국 대륙에 진출했으나 사업이 실패하는 바람에 각종 범죄의 소굴에 빠지는 사례가 늘어나고있다. 주중 중국대사관에 따르면 중국에서 범죄혐의로 수감중인 한국인은 모두 104명.이중 마약범죄 및 밀입국 관련사범이 각각 28명으로 가장 많다.밀수가 15명,살인·강도·강간·절도는 15명 등이다. 중국 대륙에서 한국인 범죄가 늘어나는 것은 중국 땅이 넓어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실제로 중국의 범죄자 검거율은 30∼40%선에 머물러 한국의 범죄자 검거율 80% 선에는 크게 못미친다는 게 중국 공안당국의 통계다. 특히 랴오닝·지린(吉林)·헤이룽장(黑龍江)성 등 동북 3성지역에는 동포 조선족들이 살고 있어 사회주의 중국에 왔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범죄 유혹에 쉽게 빠지는 경우가많다.이들 범죄자가 한국인을 등치는 전형적인 수법 중 하나는 여자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들은 돈 있는 한국인들에게 접근,식당·가게 등에 투자를 하면 재미가 쏠쏠하다며 유혹한다.참한 젊은 여자를 내세워 유혹하는 것은 기본이다.여자와 6개월 정도를 동거시키는 동안 투자한 업체의 일을 조직적으로 방해해 손해를보게 한 뒤,여자를 통해 돈을 더 내놓으라고 조른다.그 다음 폭력배를 동원해 공갈·협박으로 사업을 포기하고 물러나게 한다. 베이징의 소식통은 “개인 사업자들의 십중팔구는 이 방법으로 넘어가 사업자금을 탕진한다”며 “중국에서 사업을하려면 첫째도 여자 조심,둘째도 여자 조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khkim@
  • 러서 순국 구한말 이범진선생 묘터 확인

    구한말 외교관이자 순국지사인 이범진(李範晉·1852∼1910)선생의 묘소 위치가 최근 러시아 교포들에 의해 확인돼 그 자리에 기념물이 세워질 예정이다. 최근 재외동포재단의 초청을 받아 러시아측 자문위원 6명과 함께 고국을 찾은 조 바실리 이바노비치(51·모스크바 거주)고려인연합회 회장은 “최근 상트페테르부르그 시내 한 아파트단지에서 이 선생의 묘소자리를 고증을 거쳐 확인했다”며 “조만간 시 당국의 허가를 받아 현지에 기념표지판을 부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이 선생의 묘소는 러시아 공산혁명 이후 멸실돼 흔적을 찾을 수 없다가 지난 90년 한-러 수교 이후 한국측에서 다시 수소문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서울출신으로 1879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선 선생은‘아관파천’의 주역으로 법부대신 겸 경무사를 지냈으며 이후주미공사를 거쳐 1900년 주러시아공사로 전임돼 근무했다.1905년 ‘을사조약’으로 재외공사 소환요구가 있자 이에 불응,현지에서 밀사로 활동하였으며,1907년 고종이 파견한 ‘헤이그밀사’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였다.3년 뒤 1910년 ‘한일병합’으로 국치를 당하자 통분을 이기지 못해 휴대한 권총으로 자결,순국했다.헤이그밀사 3인중 1인인 이위종(李瑋鍾)은 그의 아들이며,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정운현기자 jwh59@
  • 실탄사격장서 또 권총자살

    최근 서울의 한 실탄사격장에서 권총자살 사건이 발생한데 이어,5일 인천의 실탄사격장에서도 40대 남자가 권총을 이용,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5일 오후 2시 5분쯤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 S실탄사격장에서 김모씨(45·서울 동대문구 휘경동)가 38구경 권총으로 자신의 관자놀이에 실탄 1발을 발사해 숨졌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이날 사격장에서 4만원을 주고 실탄 20발을 받아 다 쏜뒤 10발을 더 받아 첫번째 1발을 이용,자신의머리에 총을 쏜 것으로 밝혀졌다.사격장에는 안전요원 1명이 김씨 뒤에 배치돼 있었으나 김씨의 갑작스런 행동을 말리진 못한것으로 알려졌다.사고 당시 김씨 주머니에는 ‘미국에서 31년만에 귀국했는데 한국에서 적응을 못해 목숨을 끊는다’는 내용의 유서와 여권이 발견됐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 “안중근의사 주 활동무대는 연해주”

    26일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 92주년.최근 몇년 새 안 의사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는데 올해는 러시아 학자들의 관심이 특히 돋보이고 있다.이같은 경향과 관련,안 의사가 일제의 한반도 침략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의거지는 중국 하얼빈이지만 안 의사가 항일의식을 고양·성숙시킨 곳은 러시아 연해주라는 사실이 주목된다. 한국과 러시아 학자들은 의거 기념일에 앞서 의사가 동지들과 ‘단지(斷指)동맹’을 맺은 연해주 현지에 유허비(遺墟碑)를 세운 데 이어 국제학술회의를 개최,안 의사의 항일투쟁운동을 재조명했다.한국민족운동사학회(회장 서굉일)가 국가보훈처·고려학술문화재단 후원으로 지난 1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대학교 한국학대학에서 서굉일(한신대)·오영섭(연세대)·박환(수원대)교수 등 한국측 교수 8명과 러시아 극동문서보관소 연구원 등 러시아측 연구자 7명등이 참가한 가운데 ‘안중근과 러시아지역 항일민족운동’을 주제로 학술행사를 가진 것. 이 행사에서 한러 양측의 학자 12명이 총12편의 안 의사및당시 극동의 정세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특히 수원대의 박환 교수는 ‘러시아 연해주에서의 안중근’이라는 논문발표를 통해 안중근 의사에 대해 색다른 주장을 폈다.흔히 안 의사는 의거 장소가 만주의 하벌빈이고,순국 장소가뤼순인 점을 들어 만주지역 항일그룹의 일원으로 분류돼 왔다.그러나 박 교수는 안 의사가 연해주지역 의병의 일원임을 강조하고 나섰다.박 교수는 “안 의사는 극동 크라스키노 카리에서 ‘단지동맹’을 결성하고 블라디보스토크 대동공보사(大東共報社)에서 의거를 최종결심했으며,블라디보스토크 역사(驛舍)에서 권총을 받아 하얼빈으로 떠났다”며“안 의사의 의거와 러시아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안 의사는 1907년 군대해산 후 러시아 연해주로 이동하여동의회(同義會),단지동맹,대동공보 등 러시아지역 민족운동진영에서 활동했다는 것이다.안 의사가 주도한 소위 ‘단지동맹’ 역시 ‘동의단지회’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동의회의 산하조직이었는데 안 의사는 동의회에 발기인으로참여하였다.박 교수는 “결국 안의사의 의거는 동의회의‘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박 교수는 연해주 현지에서 안 의사가 1908년 러시아지역 최초의 의병조직인 동의회가 결성된 상(上)얀치혜 마을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박 교수는 “안 의사가 단지동맹을 결성한 크라스키노 쥬카노프카 마을 위쪽12km 떨어진 곳에서 흔적을 확인했다”며 “현지 주민들의증언에 따르면 1937년 조선족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후 60년대까지 러시아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으며 현재는 폐허가 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안중근의사 남·북 스크린 조명 색깔차?.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통해 남북한의 안중근 의사에 대한 시각을 비교한 논문이 발표돼 눈길을 끈다. 한신대 신광철 교수(종교문화학과)는 남한의 ‘의사 안중근’(1972년,주동진 감독)과 북한의 ‘안중근 이등박문을쏘다’(1979년,엄길선 감독) 등 두 편의 영화를 분석해 최근 종교사연구소 연구발표회에서 ‘남북한의 안중근관’으로 내놓았다. 신 교수는 논문에서 남북한 영화는 모두 안 의사의 구국투쟁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남한이 안 의사를 민족사적 영웅으로 부각시킨 것과는 달리,북한영화는 안 의사의 투쟁을미완의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두 영화에 나타난 시대적 배경,안 의사가 독립투쟁을 결심하게 된 동기,독립 투쟁과 이등박문 사살 과정,재판과정에 나타난 안 의사의 독립 사상,안 의사의 독립운동에 대한 평가 등을 비교한 결과 이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북한영화가 안 의사의 투쟁을 미완으로 규정한것은 이른바 ‘지도 사상’이 부재했다는 관점에 기인한 것임을 밝히면서 이는 김일성의 지도 체계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안 의사의 독백을 통해 안 의사가 영웅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묘사한 점이 주목된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안 의사가 구국 투쟁에 나서게 된 동기에 관한영화적 장치도 남북간에 미묘한 차이를 보여준다고 말하고있다.남한 영화는 안창호 선생의 연설회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구국 투쟁에 나섰다고 묘사하고 있으나,북한영화에서는 민중적 저항에 의한 결의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논문은 또 남한영화가 ‘계몽’ 쪽에 무게 중심을 실었다면,북한영화는 ‘투쟁’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남한영화가 빌렘 신부와의 관계,안 의사의 기도 등을통해 천주교 신앙 관련성을 암시하는 데 비해 북한영화는김일성 지도 체계를 전제하는 관점에서 안 의사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이같은 차이는 스토리·주제 중심으로 설명적인 북한영화,이미지·빠른 템포를 앞세운 오락적 가치에 익숙한 남한영화가 갖는 현실적 거리 탓”이라며 “이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고 환경의 차이인 만큼 영화분야의 학술적교류나 공동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김삼웅 칼럼] 연해주의 안중근·이상설 유허비

    순국 92주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이름앞에 옷깃이 여며지는 안중근의사와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고 이역에서 서거한 보재(溥齋) 이상설선생의 유허비(遺墟碑)가 연해주에세워졌다.러시아 땅에 처음 세워진 유허비다. 1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동차로 5시간 거리인 크라스키노 류하노프카(煙秋 下里)마을에서 안의사 유허비가 제막되었다.1909년 안의사 등 동지 12명이 왼쪽손 무명지를 잘라‘대한독립’이라 쓰고 조국독립을 다짐한 유서깊은 지역이다.정작 단지동맹을 했던 장소는 이웃마을인데 그곳은 황무지로 변해 인적이 끊겨서 대로변에 비를 세웠다. 광복회(회장 尹慶彬)와 국가보훈처가 주관하여 해외 독립전쟁의 본거지에 표지석을 세운 의미는 각별하다.광복회가지난 8월 중국에 ‘청산리 항일대첩비’를 세운 데 이어 두번째다. 연해주 한·러 국경지역은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땅에 둥지를 튼 한인의병과 독립운동가들의 활동무대였다.1937년 스탈린이 이 지역 한인을 중앙아시아로 쫓아낸 이후 광대무변한 지역이 대부분 황무지로 변했다.안의사는이곳에서 의병활동을 하다 국적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듣고 뜻을 같이한 우덕순과 권총 한자루씩을 준비하여 하얼빈 역두에서 이토를 처단했다. 안의사의 거사 소식에 신규식(申圭植)은 이렇게 썼다.“푸른하늘 대낮에 벽력소리 진동하니/6대주 많은 사람들 가슴이 뛰놀았다/영웅 한번 성내니 간웅(奸雄)이 거꾸러졌네/독립만세 세번 부르니 우리 조국 살았도다.” 보재선생 유허비는 18일 우스리스크 수이푼강 유역에서 제막되었다.발해의 남경(南京)이었던 이 지역 역시 항일지사들이 조국광복운동을 벌인 곳이다. 보재선생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준·이위종을 대동하고 고종황제의 정사(正使)로 파견되었지만 일제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서울에서는보재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귀국을 단념하고 미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1910년 연해주에 이르러 유인석·이범윤 등과 13도의군을 편성하여 일군과 싸우고 권업신문 주필로 활동했다.이어 1914년 이동휘·이동녕 등과 중국·러시아령의동지를 규합, 대한광복군정부를 세워 정통령(正統領)에 취임했다. 1915년 상하이에서 박은식·신규식 등과 조직한 신한혁명단 본부장에 선임되어 조국광복투쟁에 앞장섰던 보재는 1917년 연해주의 니콜니스크(雙城子)에서 눈을 감았다.47세 때이다.보재의 유허비가 세워진 곳은 발해의 옛토성이 바라보이는 수이푼강 언덕이다.발해가 망할 때 수많은 병사와 백성들이 이 강물에서 죽어 발해유민들이 ‘슬픈강’이라 불렀던 것이 수이푼강이란 이름의 사연이라 전한다. 안의사가 순국 직전 아우들에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곁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던 고국으로 반장해다오”란 유언을 남겼듯이,보재선생도 “동지들은 합심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나는 광복을 못보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내 몸과 유품은 남김없이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버리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고 이동녕·조완구등이 화장하여 재를 강물에 뿌렸다. 안중근의사와 보재선생 유허비 제막식을 지켜보고,극동대학에서 안의사의거 92주년 한·러 국제 학술회의에 참석하고,두만강 건너 북녘땅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한반도의 넓이만한 연해주의 광활한 지역을 종단하면서 이국에서 숨진 순국선열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안의사의 유해는 아직도 조국으로 반장되지 못하고 남북관계는 이어질 듯 끊어질 듯하고 국내에서는 친일파 후손들이활개친다. 심지어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 아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세태가 되었다.안의사나 보재선생을 기리는 상은없어도 친일파를 기리는 상은 줄줄이 제정되고 시상되는 조국의 현실에서 동토에 잠든 순국 선열들의 영령 앞에 발걸음이 무겁구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삼웅 주필 kimsu@
  • 울산서 파출소장 권총 자살

    경찰대 14기 출신의 파출소장이 권총으로 머리를 쏴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17일 오전 10시 45분쯤 울산시 울주군 온산파출소안 간이무기고에서 이기영(경위·25) 소장이 38구경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쏴 신음중인 것을 이 파출소 조규진 순경(28)이발견,시내 동강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날 오후 2시 40분쯤숨졌다. 조 순경은 “이날 소내 근무를 하고 있는데 이 소장이 간이 무기고로 들어가 무기고 점검을 하는 줄 알았다”며 “그런데 무기고에서 ‘꽝’하는 소리가 들린 뒤 인기척이 없어 들어가 보니 권총이 떨어져 있고 소장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 소장의 자살 동기를 찾는 한편 파출소 직원들을 상대로 자세한 사건 경위를 조사중이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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