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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에 이런일이] 비아그라 = 잘살그라?

    별거중인 아내의 환심을 사려던 한 이집트인 의사가 비아그라를 훔친 혐의로 체포됐다고 알 메사 신문이 최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름과 나이가 알려지지 않은 이 의사는 최근 카이로 시내 약국에서 비아그라 네 알들이 한 팩을 훔치다 약사에게 발각되자 권총을 꺼내들어 “죽이겠다.”고 위협한 뒤 그대로 달아났다. 때마침 주변에서 근무중이던 사복경찰에게 덜미를 잡힌 이 의사는 경찰에서 “별거중인 아내에게 ‘선물’하고 싶었다.‘값비싼’ 비아그라를 주면서 함께 살자고 설득할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이집트에서는 비아그라 한 알(50㎎) 값이 5000원선이다.카이로 연합뉴스
  • 美 괴짜작가 톰슨 유언대로 ‘하늘로 쏴 올린 유해’

    지난 2월 권총 자살한 미국의 괴짜 작가 헌터 톰슨의 유해를 그의 유언대로 47m 높이의 탑에서 쏘아올려 하늘에 흩뿌리는, 기이한 추도회가 20일(현지시간) 거행됐다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사망 6개월째를 맞아 이날 밤 콜로라도주 우디 크릭의 한 농장 주변에서 거행된 추도회 비용은 1998년 그의 원작을 영화화한 ‘라스베이거스의 혐오와 공포’에 출연한 인연으로 가깝게 지냈던 영화배우 조니 뎁과 빌 머레이가 댔다. 그의 유해는 할리우드 스타와 친구, 팬, 친지 등 350여명이 지켜보며 환호성을 지르는 가운데 네가지 색깔의 불꽃화약에 섞여 탑에서 발사돼 하늘에 흩뿌려졌다.47m 높이의 탑은 맨 위에 그가 주창한 ‘곤조(gonzo) 저널리즘’을 상징하는 주먹쥔 손을 형상화했다. 미국 반문화의 상징적 작가인 톰슨은 1970년대 자유분방한 필체로 주관적이고 참여적인 보도를 강조하는 ‘곤조 저널리즘’을 창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작품 세계처럼 평생 술과 마약, 담배를 달고 살다 지난 2월 부인 애니타와 통화하던 중 갑자기 머리에 총을 쏴 67년의 굴곡많은 삶을 마감했다. 지난 1978년 BBC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는 자신이 죽으면 곧바로 친구와 친척들이 의논해 자신의 유해를 대포로 발사해 “지구에서 탈출시켜 달라.”고 유언한 바 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비극의 주인공서 전설로

    불리한 신체 조건을 딛고 우뚝 선 스포츠맨들의 얘기는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잔잔히 요동치게 한다. ‘맨발의 마라토너’ 비킬라 아베베(사진 왼쪽·에티오피아)는 1960년 로마올림픽 마라톤에서 맨발로 질주, 월계관을 썼다.64년 도쿄올림픽에서 2연패를 일궈낸 그는 69년 자동차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불운을 겪었다. 하지만 불굴의 투지로 장애인올림픽의 전신인 70년 ‘스토크·맨더빌 게임스’에서 양궁 금메달을 목에 걸어 전세계를 울음 바다에 빠뜨렸다. 로마올림픽 100m와 200m,400m 등 단거리 3개 종목에서 여자 최초 3관왕에 오른 윌마 루돌프(미국)는 11살 때까지 목발에 의지해야 했던 장애인. 그는 피나는 운동 끝에 걷기에 성공한 것으로도 모자라 비장애인보다 더 잘 뛰겠다는 목표를 세워 결국 육상 단거리의 여왕이 됐다. 미국프로야구의 짐 애보트(오른쪽)는 오른손을 쓸 수 없는 조막손 투수. 그는 왼손으로 투구한 뒤 오른손에 걸치고 있던 글러브를 다시 왼손에 끼고 수비를 하는 등 남들이 불가능하리라던 동작을 연습으로 극복했다. 그는 93년 뉴욕 양키스에서 노히트노런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이와 함께 수류탄 폭발로 오른손을 잃었지만, 왼손으로 48년 런던과 52년 헬싱키올림픽 자동권총 2연패의 위업을 수립한 카로리 타카스, 사고로 눈과 귀를 잃었지만 88년 서울과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수영에서 2관왕에 오른 타마스 다르니(이상 헝가리) 등이 우리의 가슴에 남아 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오일만특파원 베이징은 지금] 권력형 폭력조직과의 전쟁

    중국당국이 흑사회(黑社會·폭력조직)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흑사회에 ‘자양분’을 제공하는 성매매업과 도박장, 가라오케 등 유흥업소들이 번창하면서 조직폭력 세력들이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일부 조폭 집단들은 각종 총기와 수류탄으로 중무장하는 추세다. 홍콩의 삼합회(三合會)처럼 기업형 조폭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높다. 중국당국이 바짝 긴장하는 이유다. 최근 베이징 공안(公安·경찰)은 203개의 폭력 조직을 적발, 조직원 1182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불법 도박과 성매매에 개입, 폭리를 취하거나 시장과 상가의 영업권을 독점, 수십억원을 갈취하는 등 9가지 죄목으로 기소됐다. 이번에 구속된 1182명의 조직폭력배 가운에 63%가 30세 이하이고,30∼40세 24%,40세 이상이 13%를 차지했다. 이들은 흑사회를 배경으로 고위직 관료와 결탁, 권력형 조폭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왕단(王丹·35)은 통저우(通州)의 부동산업자로 경쟁업체들을 폭력으로 제압하고 불법 부동산 개발에 개입해 수백억원대의 자산가로 성장했다. 거액의 뇌물로 맺어진 현지 관리들을 동원, 사업을 확장하다 철퇴를 맞았다. 선전의 조폭들이 뤄후(羅湖) 공안국 안후이쥔(安惠君·50·여) 국장을 뇌물로 매수, 자신들의 ‘보호막’으로 삼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일부는 ‘권력’에 직접 진입하려는 대담성도 보였다. 성매매업으로 떼돈을 번 리잔(李戰·39)은 최근 하이덴(海淀)구 상좡(上庄)향 첸장(前章)촌 주임선거에 출마했다. 부하들을 동원, 상대 후보자를 협박하거나 매수하는 수법을 쓰다 이번에 구속됐다. 베이징 이외에 쓰촨에서는 지난해 900여개 폭력 조직의 조직원 3737명을 구속했다. 권총 21자루 이외에 수류탄 14점도 압수했다. 개혁·개방이 일찍 시작된 상하이·광저우 등 대도시들에서 조폭 세력들이 확장일로에 있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분석이다. 중국당국이 흑사회와 ‘무기한 전쟁’에 착수한 것은 조폭 근절이 사회치안 확보는 물론 관료와 결탁된 부정부패 척결의 지름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oilman@seoul.co.kr
  • [현대무술의 향수] (4)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고흐

    [현대무술의 향수] (4)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고흐

    지독한 가난과 고독 속에서 살다 간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그는 사후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생전에는 유화 한 점만이 팔렸지만, 그의 작품은 현재 경매시장에서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후기 인상파 화가로서 독특한 그의 화풍은 독일 표현주의에 영향을 미치는 등 현대 미술사에 새생명을 불어 넣었다. 우리는 그의 찬란한 작품뿐만 아니라 그 작품 뒤에 숨어 있는 비극적인 삶에 다가가면 다가 갈수록 영혼의 위안을 얻게 된다. 꿈틀거리며 밀려오는 파도처럼 가을 벌판을 온통 뒤덮은 노란색 물결. 그 밑밭에서 낫질을 하는 한 사나이. 반 고흐가 태어난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반 고흐 미술관’ 2층 전시장에 걸린 ‘수확하는 사람’(1889년 9월초). 화가의 초상이 담겨 있는 그 작품에 사로잡힌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떠날 줄을 모르고 있다. ●그림 뒤에 숨어 있는 진실 “뙤약볕에서 온 힘을 다해 일하는 흐릿한 인물에서 나는 죽음의 이미지를 발견한다. 그건 그가 베어들이는 밀이 바로 인류인지도 모른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이 죽음 속에는 슬픔이 없다. 태양이 모든 것을 순수한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환한 대낮에 발생한 죽음이기 때문이다.”(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그는 생산을 의미하는 ‘수확’을 화폭에 담으며 아이러니하게 ‘죽음’에 다가가고 있었다. 이 작품은 그가 죽기 9개월 전에 그려졌다. 자신의 가슴에 권총 한발을 날리며 자살을 기도한 곳도 바로 밀밭이었다. 프랑스 프로방스 생레미에 있는 어두컴컴한 요양원 병실 철창을 통해 망연히 바라본 밀밭 풍경은 반 고흐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이글거리는 노란색과 역동성을 길어올렸다. “화가는 그림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 반 고흐의 이 말은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반 고흐는 밀밭 그림 속에 삶과 죽음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치열한 예술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반 고흐는 네덜란드의 영웅 매년 전세계에서 130만명의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하루 3560여명이 찾는 셈이다. 마치 순례자들의 성지 순례 코스처럼 미술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암스테르담을 찾는 관광객들의 단골 코스다. 1973년 개관한 이 미술관은 현대적 양식에 맞춰 설계한 건축가 이름을 따 ‘리트벨트’라고도 불린다. 본관에선 반 고흐 작품의 상설전시가 열리며,1999년 만들어진 신관에선 작가를 바꿔가며 전시를 한다. 이곳에선 마침 ‘에곤 실레’의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천장이 뚫려 있는 본관 2층은 반 고흐의 작품들을 연대별로 정리해 짧은 생애지만 불꽃처럼 화려한 그의 작품 변화를 한눈에 보여 준다. 반 고흐 유화 200점, 드로잉 500점, 고흐가 모은 회화 등 세계 최대의 반 고흐 컬렉션을 자랑한다. 특히 이곳에 있는,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 700통은 그의 삶과 작품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술관에서 만난 사람들은 “네덜란드인의 자랑이자 긍지”라고 입을 모았다. 암스테르담에서 승용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질랜드에서 왔다는 엔 마이어스(62)는 “이번이 4번째 방문”이라며 “반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손꼽히는 위대한 사람 10명 중 하나이자 영웅”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헤이그, 누에넨 등에서 살며 그린 초창기 작품 중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 단연 눈에 띈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네덜란드 농부들의 모습은 비록 비천한 신분이지만 삶의 엄숙함과 성스러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초기 작품 ‘새둥지’ 등은 당시 활동한 다른 화가들과 별 차이 없는 평범한 톤의 작품들이다. 이후 10년, 반 고흐는 놀라운 변신을 한다. 동생 테오가 화상 점원으로 있던 프랑스 파리로 옮겨 그림 공부를 하던 시절, 그의 작품 ‘자화상’‘구두’ 등에서 서서히 놀라운 재능이 엿보이기 시작한다. 큐레이터 루이 반 틸보르흐(48)는 “반 고흐의 초창기 그림을 보면 별로 좋은 그림이 아니다. 처음부터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2년간 그림을 배운 뒤 큰 성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27세부터 10년간 주요 작품 남겨 파리를 떠나 여러 화가들이 같이 생활하고 작품활동을 하는 공동체를 꿈꾸던 아를 시절,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던 반 고흐는 미치광이로 오인돼 주민의 고발로 병원에 감금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 시기에 그린 200여점 가운데는 그의 대표작 ‘해바라기’‘침실’‘노란집’이 포함되어 있다. 만 고갱과의 불화로 자신의 귀를 잘라 창녀에게 전해주는 기괴한 행동을 벌인 뒤 그린 ‘귀에 붕대를 감고 있는 자화상’‘파이프를 물고 있는 자화상’은 미국과 영국에 각각 소장돼 있어 아쉽게도 미술관에서는 감상할 수 없었다. 아쉬움도 잠시, 더 큰 감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병원에서 나와 자발적으로 요양원에 들어갔던 생레미 시절에 그린 ‘수확하는 사람들’‘붓꽃’, 그리고 마지막 삶의 터전 오베르 쉬즈 오아즈 시절에 그린 ‘까마귀 나는 밀밭’‘오베르 풍경’ 등은 마지막 불꽃 같은 열정이 담겨 있다. 반 고흐 작품에 푹 빠져 눈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호사’를 만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를 시절 이후 정신 질환에 시달리면서도 붓을 놓지 않은 예술정신이 우리를 더욱 열광시키는지 모른다. “발작의 고통이 나를 덮칠 때 겁이 왈칵 난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남프랑스에 와서 나의 모든 것을 그림에 던졌다.”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속에서 자신의 삶을 온통 그림에 바쳤음을 토로했다. 상상하기 어려운 고난 속에서도 그의 작품세계가 중단되지 않은 것은 경이였다. 반 고흐가 예술의 절정에 오른 것은 파리를 떠나 남프랑스 지방 아를과 생레미에서 작품활동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의 색감은 기존 화가들의 제약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비상했고, 거칠 것 없는 붓놀림은 화폭 위에 고스란히 흔적을 남겼다. 그는 빨간색과 초록색 같은 보색이 어우러진 작품을 통해 사랑과 운명의 대비와 엇갈림을 표현했다.‘해바라기’‘고갱의 의자’를 보면 그가 보색에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작업했는지 알 수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왔다는 빌 데니히(52) 부부는 “반 고흐가 그렇게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 몰랐다.”며 ”그러한 역경 속에서도 정작 작품에는 화려한 색깔을 자유분방하게 사용했다는 것이 인상 깊다.”고 말했다. 3층에서는 인터넷과 책자를 통해서 반 고흐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할머니 세분이 한가롭게 반 고흐의 도록과 관련 책들에 빠져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의 할머니들과 37세에 요절한 영원한 청년 반 고흐. 시간과 경계를 훌쩍 뛰어넘은 이들은 ‘예술’을 화제로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반 고흐 미술관 큐레이터 루이 반 틸보르흐 “반 고흐의 작품은 현대 미술에 끼친 지대한 영향, 천재성, 드라마틱한 삶 등 3가지 요소가 잘 어우러져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것 같습니다.” 반 고흐 미술관 큐레이터 루이 반 틸보르흐(48). 카키색 양복 안에 받쳐 입은 진한 녹색 와이셔츠가 잘 어울린다. 어떻게 반 고흐 작품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나. -파리에서 네덜란드로 건너온 반 고흐의 동생 테오의 부인 요한나가 죽자 그의 아들 윌렘(엔지니어로 알려짐)이 재단을 만들어 작품들을 관리하다 이 미술관에 영구 임대해주고 있다. 요한나에 의해 반 고흐 형제들의 편지가 일찍 번역되는 바람에 그의 삶과 그림세계의 조화가 잘 이뤄졌다. 반 고흐가 현대미술에 끼친 영향은. -그는 현대미술의 아버지다. 색깔, 밝기, 하모니(색깔의 조화) 등 세 가지에 영향을 줬고 특히 독일의 표현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반 고흐는 죽기 직전부터 조금씩 화단에서 알려지기 시작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15년만 더 살았다면 그는 부자로 살았을 것이다. 네덜란드 미술에 미친 영향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예술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반 고흐의 그림도 처음에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다가 조금씩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천재성에 대해. -프랑스에서 2년 공부하면서 스타일이 바뀌고 대담한 색채를 썼다. 두꺼운 붓터치 스타일을 즐겼던 그는 느낌으로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굉장히 빨리 그렸다. 모티프, 즉 주제를 찾는 데 재능이 뛰어났다. 그래서 ‘반 고흐는 어디에 갔다놔도 주제를 찾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자연을 보는 눈도 순수하고, 그의 그림은 추상적이지 않아서 이해하기 쉽다.
  • 金청장·김씨 대질조사서 엇갈린 진술

    여경 간부의 운전면허증 위조 사건으로 직위해제된 김인옥(53·여) 제주경찰청장이 23일 참고인 자격으로 수사를 맡은 강남경찰서에 출두, 조사를 받았다. 김 청장은 이날 오후 7시40분쯤 귀가했다. 경무관급 간부가 일선서에 소환된 것은 1989년 변심한 애인 집에 찾아가 권총을 쏘며 난동을 부린 혐의로 조사를 받은 심모 경무관 이후 처음이다. 경찰은 강순덕(39·구속) 경위에게 사기 혐의로 수배 중이던 김모(52·구속)씨를 소개시켜 준 경위와 운전면허증 위조에 개입했는지 여부, 김씨가 소년소녀가장돕기 성금 명목으로 입금한 돈의 용처 등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김 청장은 김씨와의 대질신문에서 “강 경위를 김씨에게 소개시켜 준 것은 97년 청소년후원행사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그 이후 김씨를 이 자리에서 처음 만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씨의 뜻대로 ‘소년계’라는 명의로 계좌를 개설해 소년소녀가장들을 도왔다.”면서 “김씨가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고소고발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수배중이라는 사실은 몰랐다.”고 경찰청 감찰 때와는 다른 진술을 했다. 반면 김씨는 경찰에서 “김 청장과 2001년 초까지 3∼4개월에 한 번씩 만났고, 강 경위와는 2001년 말까지 매달 만났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또 운전면허증을 위조하는 과정에서 신분증을 빌려준 서울 N경찰서 김모(49) 경감을 공문서위조 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김 경감이 당시 강 경위로부터 ‘도망다니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것’이라는 말을 들었고,2003년 감사원으로부터 ‘수배자가 면허증을 도용해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다.’는 통보를 받고도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미뤄 신분증 위조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캄보디아 인질극주범 “한국인 폭행때문”

    |시엠레압 연합|16일 캄보디아 국제학교에서 발생한 인질극은 주범이 자신을 폭행한 한국인 고용주에게 복수하기 위해 모의된 것으로 밝혀졌다. 시엠 레압주 헌병 부사령관인 프락 칸톤은 17일 23살의 주범은 두 자녀를 학교에 데려다 주기 위해 자신을 고용한 한국인 고용주로부터 폭행당한 데 앙심을 품고 범행을 모의했다고 밝혔다. 칸톤 부사령관의 말에 따르면 이 범인은 한국인 고용주가 최근 화를 내면서 얼굴을 때리고 해고해 칸달주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진술했다. 범인은 매일 한국인에 대한 복수를 생각하고 권총을 구입, 고향 친구 3명에게 외국인들과 캄보디아 부유층 자녀들이 다니는 국제학교를 급습해 돈을 탈취하자고 범행을 제의했다. 사건 당일 범인은 국제학교로 가 2명의 한국인 어린이들을 찾아 살해하려 했으나 찾지 못해 당초 의도는 물거품이 됐다. 범인으로부터 인질극은 캐나다 국적의 두살난 사내아이 1명이 울다가 머리에 총을 맞아 숨지고 6시간 만에 종료됐다.
  • [하프타임] 이호림, 월드컵사격 공기권총 금메달

    한국 여자공기권총의 ‘기대주’ 이호림(서울체고)이 16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국제사격연맹(ISSF)밀라노월드컵에서 485.9점을 쏴 루디밀라 카바타르(벨로루시·485.1점)와 랠리타 아우레우스카야(호주·484.3점)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호림은 이로써 지난 4월 창원월드컵대회에서 첫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한진섭(상무)과 뮌헨월드컵 1위를 차지한 신예 박남숙(동지여상)에 이어 국내 선수로는 세 번째로 베이징올림픽 출전 자격을 획득했다.
  • [하프타임] 박남숙, 10m 공기권총 金

    국내 여자공기권총의 ‘신예’ 박남숙(동지여상)이 지난 11일 국제사격연맹(ISSF) 뮌헨월드컵사격대회 여자10m공기권총에서 486.6점을 기록,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야스나 세르카리치(486.2점)와 니노 살루크바드제(그루지야공화국·485.3점)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기대주’ 이호림(서울체고)은 484.5점을 쏴 4위를 기록, 아쉽게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 7억원 어치 황금의 배를 몰고 온 사나이

    7억원 어치 황금의 배를 몰고 온 사나이

    자유를 보상 받은 방진호(方震昊)「총좌(總佐)」의 현주소는 전쟁이 한창 막바지에 이른 1950년 10월 14일 새벽 - 인천 앞바다에는 자욱한 아내를 헤치면서 북괴기가 펄럭이는 50「톤」급 발동선 한 척이 소리없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갑판 위에는 괴뢰군 총좌(대령급) 한 사람을 둘러싸고 20명의 북괴장교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대한민국 만세」를 목청이 터져라 소리쳐 부르고 있었다. 자유를 찾아 남하한 조그마한 발동선. 그러나 이 발동선에는 시가 7억원 상당의 금괴 1「톤」반이 실려 있는 황금의 배였다. 18년 전 영웅, 오늘은 왕초(王草) 거부(巨富)의 꿈 대신「평애원장(平愛院長)」 괴뢰군 방진호 총좌. 부하장교 20명과 황금덩어리를 싣고 자유를 찾았던 이 영웅은 자기와 자기 부하가 자유를 찾은 대신 황금은 몽땅 대한민국 정부에 바쳤다. 그러나 정부는 이 영웅의 값진 행위에 보답하기 위해 1억 3천만환(현화 1천 3백만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했다. 1억 3천만환의 거액을 쥐고 거부의 꿈을 지닌 채 한때 군에서 문관으로 있다가 53년 가을 홀연히 자취를 감추어 버린 지난 날의 영웅 방진호 총좌는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오늘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경기도 평택군 송탄읍 신장(新場)리 경부선철도 연변에 30채의 집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서 있는 평애원. 고아원겸 양로원인 이곳에서 넝마주이 왕초라는 별명을 가진 50대의 허수룩한 한 사나이가 조용히 과거를 되씹으며 살아가고 있다. 평애원 원장인 이 사나이 - 이 사람이 바로 황금의 배와 부하장교 20명을 데리고 자유를 찾았던 지난 날의 영웅 방진호씨(49)이다. 1억 3천만환의 보상금 태풍 사라호로 일장춘몽 한때 거부의 꿈을 지니고 전남 목포 근해에서 간석지를 막아 염전을 만들었지만 예기치 않았던 「사라」호 태풍으로 방대한 염전을 하루 아침에 잃어버린 채 알거지가 되어버린 방씨. 그 후 이곳에서 넝마주이들을 모아 스스로 넝마주이 왕초로 전락(?)해버린 이 사나이의 기구한 운명은 글자 그대로 파란만장의 연속이다. 평안북도 신의주가 고향인 방씨는 해방 전 만주국 안동현(安東縣)에서 측량학원을 수료한 뒤 집안현(輯安縣)의 건설국 기사로 취직, 기구한 운명의 첫발을 내디뎠다.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누렸던 방씨는 그곳 요릿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요릿집 종업원「요리명」이라는 중국 사나이와 친히 사귀기 시작했다. 타향에서의 고독도 풀 겸「요리명」과 술자리도 같이하여 손님과 종업원의 관계가 아닌 서로의 심금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이국땅에서 해방을 맞은 방씨에게는「요리명」을 사귄 덕분으로 하루 아침에 큼직한 감투가 굴러들어왔다. 며칠 전까지 요릿집 종업원 행세를 하던 중국 공산당의 거물「요리명」이 집안현 수석(首席)의 자리에 있으면서 방씨를 집안현 평양변사처장(平壤辯事處長:영사)으로 임명한 것이다. 벼락감투를 뒤집어 쓴 방씨는 46년 2월 평양에 부임했다가 그 해 11월에는 소위 북조선인민위원회 조직에 관여, 평양철도경비사령부 총책 유경수(柳慶洙)중장(김일성의 매부)의 부책(副責)으로 중용되었다. 그 후 괴뢰정권의 내무성 정치보위부 직속기관인 진남포(鎭南浦)제련소 총책으로 영전한 방씨는 6·25 동란을 이 자리에서 맞았다. 원래부터 투철한 공산주의 사상자가 아닌 방씨는 차차 자유에의 향수를 느끼기 시작, 기회만 있으면 남하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뜻이 같은 부하장교 20명을 포섭한 방씨는 이왕이면 당시 진남포제련소에 보관되어 있던 백금 3「톤」, 금 1「톤」반, 수은 70「톤」까지 같이 싣고 자유를 찾기로 결심했다. 드디어 50년 10월 한창 패주에 정신 없던 괴뢰정권은 방총좌에게 진남포제련소의 금과 수은을 만주 여순(旅順)으로 운반하라는 긴급지시문을 띄웠다. 이 지시문을 받은 방총좌는 때가 왔다고 느꼈다. 3개월 전부터 탈출 모의를 진행해오던 부하 20명과 비밀회의를 거듭한 끝에 D「데이」를 10월 10일 밤 11시로 정했다. 10월 10일 밤 11시. 칠흑같이 어두운 진남포 부두에는 50「톤」급 발동선 2척이「엔진」소리마저 죽여가며 조용히 와 닿았다. 북괴 경비병 10여 명의 엄중한 감시 아래 한 척에는 황금 1「톤」반이 실려지고는 또 한 척에는 백금 3「톤」과 수은 70「톤」이 실려졌다. 방총좌와 부하장교 20명은 황금이 실린 앞배에 탔다. 배 두 척이 진남포항을 벗어나 망망한 서해에 들어서서 한 시간쯤. 선수를 중공방면으로 막 돌리려는 찰나. 방총좌는 선장의 뒷머리에 권총을 갖다 대고 조용히 그러나 엄숙하게 명령했다. 『선수를 남쪽으로 돌려라!』 이 때 경비병 10여명이 반항, 조그마한 발동선에선 교전이 벌어졌다. 20분만에 싸움은 방총좌의 승리로 끝나고 10여명의 경비병은 서해에 수장되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해전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총격 소리를 들은 북괴경비정 한 척이 추격, 또다시 해상총격전이 벌어졌다. 간신히 경비정의 추격을 벗어나 연평도 앞바다에 도달했을 때 수은과 백금을 실었던 뒷배가 총탄에 구멍이 뚫려 애쓴 보람도 없이 바다 깊숙이 수장되어 버렸다. 진남포를 떠난 지 나흘 만에 방총좌는 수은과 백금은 바다에 수장되었지만 부하장교 20명과 황금 1「톤」반을 이끌고 무사히 목마르게 그리던 자유를 찾은 것이다. 53년 봄 1억 3천만환의 거액을 쥔 북괴총좌가 아닌 민간인 방진호씨는 거부의 꿈을 안은 채 전남 목포 근해에서 간석지를 막아 염전을 만들었지만 4년간의 피땀나는 노력도「사라」호 태풍으로 일장춘몽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다. 수장(水葬)한 백금 3톤 수은 70톤 꼭 찾고 말겠다는 게 소원 돈하고는 인연이 없는 방씨. 이때부터 인생을 덤으로 생각한 방씨는 남을 위해 살기로 작정했다. 57년 가을 무작정 찾아온 것이 지금 그가 살고 있는 경기도 평택군 송탄읍 신장리 일명「쑥고개」라는 미(美)기지촌 주변이었다. 방씨는 우선 손수 흙벽돌을 찍어 경부선 철도연변에 조그마한 집을 짓고 거리에서 방황하는 걸인 20명을 수용했다. 1개월이 지난 뒤 평애원이라는 간판이 내걸리고 식구도 1백여 명으로 불어났다. 11년이 지난 오늘날 평애원은 30채의 집이 들어섰고 식구도 372명으로 불어났으며, 평택과 방성(彭城) 두 곳에는 분원도 마련됐다. 그 동안 이곳을 거쳐간 원생 중에는 현역 육군대위가 있는가 하면 수백만원을 치부한 어엿한 실업가도 10여명이나 된다는 것. 원장으로 보다는 넝마주이 왕초로 더 알려진 방씨. 방씨의 유일한 소원은 자유를 찾아 남하하던 당시 연평도 앞바다에 아깝게 수장되어버린 백금 3「톤」을 꼭 찾고 말겠다는 것이다. <수원 = 한의교(韓義敎)씨> [ 선데이서울 68년 10/13 제1권 제4호 ]
  • 잠깐 참으셔요 - 방년 20세의 겨울

    잠깐 참으셔요 - 방년 20세의 겨울

    늘어나는 여성자살 전체 사인(死因)의 제2위 「덴마크」10만명에 29명 한국은 25명의 자살률 자랑스럽지 못한 기록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태복음 27장 5절) - 「유다」이후 많은 인간가족이 저마다의「절박한 이유」로 자살을 했다. 「클레오파트라」나「오필리아」,「마릴린·몬로」는 결국 자살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여심의 선각자지만 현대인에 있어, 특히 여자의 경우 자살은「아주 매력적인 것」으로까지 언제부터인가 심상에 뿌리 박혀져 버리고 말았다. 세계의 자살 추계는 10만에 대해 10명 꼴이 평균. 자살률이 제일 높은 나라는「덴마크」로 10만 명에 대해 29명이며 가장 적은 나라는 이태리,「스페인」으로 2명 꼴이다. 우리나라는 25명 정도로 자랑스럽지 못한 세계기록. 우리나라의 자살이「가난형」인데 반해「덴마크」같은 쪽은「부자형」으로 통하고 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너무나「스트레스」가 없어도 파멸적인 고적감을 느끼게 된다는데「덴마크」같은 선진국의 자살이 이런「케이스」. 일반적으로 자살 기도자는 여성쪽에 많은데 남자와의 비율은 1대 1.3 정도. 그러나 여자에겐「미수」가 많아 실제로 죽는 숫자는 남녀가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최근 자살추세를 보면 10대와 젊은 여성층에서 특히 자살자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은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너무나 한국적인 경향이라고-. 인간해약(解約) - 20세가 절정 67년 한 해 동안의 통계에 의하면 서울시내에서의 여성의 자살은 전체 사망원인의 제2위를 차지하고 있다. 1위는 결핵이며 3위는 암. 우석(友石)의대 산부인과 교실에서 최근 조사한 사인별 사망통계에 의하면 총 대상 1천 9백명 중 결핵으로 인한 병사는 309명이며 2위인 자살은 288명, 3위인 암은 209명이며 그 다음이 뇌일혈 167명, 모성사망 128명, 고혈압 110명의 순서로 되어있다. 자살자 중 36%인 105명은 겨울에 죽었으며 여름에는 80명, 가을에는 53명, 그리고 봄에는 50명이 각각 자신에 대한 살인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종전의 통계는 봄에 특히 자살기도자가 많음을 보여주었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겨울이 단연 으뜸. 이것은 또 다른 뜻에서 겨울이 자살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계절이라는 의미도 된다. 자살을 가장 즐기는 여성군(群)은 어느 연령층일까? 우석의대의 이번 조사에 의하면 288명의 자살여성 중 33%인 95명은 20세에서 24세까지의 방년. 다음이 15세에서 19세까지의 10대 여성이며(47명), 25~29세는 46명, 30~34세는 36명, 35~39세는 21명, 40~44세는 18명, 그리고 45~50세는 21명으로 되어있다. 결국 많은 24세 이하의 꽃다운 처녀가 겨울이라는 낭만적인 계절을 택해 스스로「인간해약(人間解約)」을 하고 있다고 이번 조사를「리드」한 홍성봉(洪性鳳) 교수는 말하고 있다. 여자들은 왜 자살에 매료되는가? 장병임(張秉琳) 교수(서울문리대)는 가능한 자살예방수단으로「초자아(超自我)」를 역설한다. 『정신분석학상의「초자아」는 교육이다. 젊은 여성들의 자살은 90%가 애정문제에 원인이 있는데 이것은 가정교육이라는 하나의「절대수단」으로 극복될 수 있는 문제이다. 요즘 부모들은 딸에게 이성교제(정신적인)는 허용하면서 막상 정조관에 있어서는 애매하고 엄격한 자신들의 견해를 강요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결국 자살을 할 수 밖에 없는 젊은 여성들의「의식의 파탄」은 부모에게 절대적인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자살예비역 하루 20명꼴 「살 수 없어」아닌「싫어서」 예방센터 신세 4천여 성모병원 안에 있는 음독자살예방「센터」(소장 김종은(金鍾殷)박사)에는 해마다 약 9백명의 음독자가 들어온다. 67년 한 해 동안 이곳 신세를 진 자살기도자만 해도 남자 355명에 여자 488명 등 도합 843명. 그런가 하면 서울, 연세, 우석, 적십자 등 비교적 큰 종합병원의 응급실에 실려오는「자살예비역」만 해도 하루 20여명을 헤아린다. 김종은 교수에 의하면 지난 63년부터 67년까지 5년 동안 성모병원의 자살예방「센터」를 이용한(?) 음독자는 모두 4,548명에 이르고 있다. 남자는 1,975명이며 여자는 2,573명,「여성우세」는 여기서도 예외가 없다. 전체 자살기도자의 57%인 2,591명은 20대, 17.5%인 792명은 10대이며, 16.3%는 30대, 9.23%는 40대라는 것이 김종은 교수의 조사에서 밝혀지고 있다. 여성자살자에겐 자살원인, 자살방법, 연령분포 등 자살 주변에 얽힌 심리적「델리커시」가 현란하리만큼 많다. 한마디로 살 수 없어 죽는다는 것보다는 살기가 싫어서 죽는다는 것이 그녀들의 죽음의 변(辯). 20대 여성의 경우 자살원인의 46%가 애정 갈등으로 되어 있으나 간접적이고 충동적인 것까지 합하면 거의 90%가 애정문제에 귀착되고 있다.「도니제티」의「멜로디」같은「사랑의 묘약」이 그녀들의「목마른 상심」엔 필요하다는 얘기. 좀 묵은 통계지만 이 땅 춘향의 후예들에게는 거의「스폰테이녀스」할 정도로「자살에의 향수」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수년 전「가톨릭」의대에서 3천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여고생의 49%, 여대생의 62%가『자살을 할 수도 있다』는 우울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의지박약에서 오는 생활의 도피』라는「뒤르케임」의 자살론은 이젠 아무래도 너무 낡은 관념론인 것 같다. 한국 - 자살자의 천국 장병임 교수는 여자들, 특히 젊은 여자들의 자살을 최대한 막는 효과적인 처방으로『올바른 성교육의 실시』를 주창한다. 이성교제 자체를「타부」시 하든지, 그렇지 않을 바에야 최소한 정조관에 대한「개념의 정립」만큼은 딸들에게 세워 주어야겠다는 것이다. 한국「가이던스·센터」엘 찾아오는 여성 중「자살에의 의지」를 호소하는 층은「하이틴」과 25세 이전의 미혼여성들.「카운슬링」의 내용도 이상적인 상대를 얻기 위한 것보다는 이미 저질러진 사건들 - 이를테면 처녀성의 상실이라든지 혼전임신 같은 건강치 못한『어찌 하오리까』뿐이라고 장교수는 개탄한다. 「또 하고 말겠다」도 43%나 이유는 애정, 성교육 급무(急務) 김종은 교수는 이와는 좀 다른 각도에서 자살예방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전체 자살자의 반이 약물에 의한 자살을 기도하고 있으며 약물의 58%가 정신신경안정제인 만큼 이들 약품의 판매를 엄격히 규제하면 될 것 아니냐는 것이다. 김교수에 의하면 자살약으로 이용되는 정신신경안정제를 거의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대만 그리고「타일란드」정도 뿐이라고. 외국의 경우 한 번 자살을 기도한 사람은 으레 정신과에 입원시키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35%만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음독자살예방「센터」의 집계에 의하면 자살 재기도자는 전체의 10%이며『또 자살을 하겠다』는 사람만도 전체 자살기도자의 43%나 되고 있는 딱한 실정이다. 「딱한 여심(女心)」몇 가지 금년에 들어와서도 많은 생명이 자살의 길을 택했다. 현직 검사가 목매어 죽었는가 하면 대학교수가 채귀(債鬼:채무)에 시달리던 끝에 음독 자살했다. 국민학교 교장과 현직회사 사장이 빚에 쪼들려 투신을 했으며, 악명 높은 집단자살도 연달아 일어났다. 여자들의 자살은 그에 비하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사뭇 분홍빛. 자살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딱한 여심」의 명세(明細)는 이러했다. <케이스·1> 최X순(32)여인. 어머니날인 5월 8일 세 딸과 함께 음독, 두 딸과 함께 자살했다. 작년 10월 남편과 사별한 최여인은『남은 두 아들을 공부시켜달라』는 요로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겼다. <케이스·2> 김X자(27)양. 6월 5일 이룰 수 없는 결혼을 비관, 애인집의 연탄난로에 머리를 파묻고 자살했다. 노처녀인 김양은 애인과 깊은 관계까지 맺어 임신까지 했으나 사회적인 흠(전과자?)이 있는 남자에게는 딸을 줄 수 없다는 모정 앞에서 좌절, 자살했다.『엄마의 훌륭한 딸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나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그분을 버릴 수는 없었어요…』김양의 유서. <케이스·3> 이X관(21)양. 6월 22일 조흥은행본점 12층에서 투신자살한 이양은 모 공대건축과 2년생. 2년 동안 서울대, 연세대를 계속 낙방한 것을 비관하고 자살했다. <케이스·4> 홍X정(35)여인. 1월 4일 애인 황모(24)씨와 인천 모 여관에서 권총 자살했다. 손아래 남자와의 사랑이 빚은 정사 사건. [ 선데이서울 68년 10/6 제1권 제3호 ]
  • [중앙PSAT연구소 실전풀이]

    문제1. 다음 글의 뒤에 이어질 내용으로 가장 적당한 것은 전지구적 차원에서 담배소비를 억제하기 위한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이 공식 발효됐다. 전세계 성인 사망원인의 10%, 한해 1000만명의 사망자를 내고 있는 담배에 대해 보건위생 분야 최초의 국제행동을 요구하고 있는 이 협약에 우리나라가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한국은 협약을 주도한 세계보건기구(WHO)의 이종욱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로 협약채택 두 달 만에 서명을 하고서도 비준절차를 미뤄 최초의 협약 당사국 지위를 놓쳤다. 공공장소 금연구역 확대, 담뱃값 인상 등 최근 우리나라가 확고하고 강력한 금연정책을 펴온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담배의 해악으로부터 국민을 충분히 보호해 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60%대를 간신히 면한 성인흡연율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 수준이며 중학생, 여학생 등의 흡연율은 오히려 늘고 있기 때문이다. 담배규제 기본협약이 제시하고 있는 강력한 경제적·비경제적 판매규제, 경고 강화, 보건교육, 청소년 보호조치 등이 우리에게도 시급한 이유다. (1)국민의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정부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정부와 국회는 하루빨리 협약을 비준해야 한다. (3)청소년들을 담배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4)담배는 폐암의 원인이다. (5)많은 사람들이 협약의 비준을 원하고 있다. ●풀이 및 정답 윗글의 논리상 ‘전세계에서 담배규제기본협약 공식 발효→한국은 비준절차를 미뤄 협약 당사국 지위를 놓침→현재 한국에서의 흡연 실태→신속한 협약 비준이 필요’의 흐름으로 가는 것이 적당하다. 정답은 (2) 문제2. 다음 보기 중 (가)의 내용에 들어갈 가장 적당한 것은 1774년 독일의 문호 괴테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한다. 약혼한 여성을 사랑한 끝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이 소설의 줄거리는 괴테 자신의 실연 체험에 절친한 친구의 자살을 접목한 것이었다. 하지만 작품의 주제는 연애담이라기보다 사랑·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절대성을 추구하던 18세기의 시대적 열정 그 자체였다. 소설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그에 못잖은 부작용을 불러왔다. 주인공 베르테르를 흉내내 권총 자살하는 젊은이가 급증한 것이다. 책은 다음해 판매금지됐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세상에 나온 지 딱 200년 뒤인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자살에도 일종의 전염 현상이 있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그는 자살 소식이 신문 1면 머리기사로 나온 뒤의 두 달 동안 자살자 수가 평상시보다 평균 58명 더 많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주장에 ‘베르테르 효과’라는 이름을 붙였다. 필립스의 가설이 나오자 구미 각국의 학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검증했지만 결론은 찬반으로 확연히 갈렸다. 어쨌거나 그 뒤로 베르테르 효과라는 불길한 용어는 사회학과 정신의학의 영역에 자리를 마련했다.(가) 베르테르 효과의 특징은 전염성에 있다. 저명인사의 자살 소식을 접한 충격이 바이러스처럼 내재해 있다가 특정한 자극이 가해지면 충동적으로 발병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살 뉴스를 전하는 언론매체, 또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네티즌 모두가 선정성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로써 자살 대책이 완료되는 것은 아니다.‘젊은 베르테르’의 죽음이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까닭이 시대상황에 있듯이, 현재 우리 사회에 드리운 어둠을 함께 걷어내 자살이라는 악질(惡疾)을 잠재울 것이다. (1)‘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난 실례들 들어준다. (2)‘베르테르 효과’의 사회악적인 면을 보여준다. (3)‘베르테르 효과’가 사회적으로 옳은 가설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4)자살의 해악에 대해 이야기한다. (5)언론과 인터넷에 나타난 자살의 양태에 대해 이야기한다. ●풀이 및 정답 앞에서 ‘베르테르 효과’의 정의를 제시했고, 마지막에서는 ‘베르테르 효과’의 특징과 대책에 대해 이야기했으므로 (가)의 부분에는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난 실례를 들어주는 것이 글의 흐름상 가장 자연스럽다. 정답은 (1)
  • ‘신용회복’ 영세자영업자 지원

    조흥은행이 시중은행으로는 처음으로 소액신용대출(마이크로 크레디트)기관과 손을 잡고, 신용대출 금리 중 가장 낮은 수준인 연 6%로 생계형 영세 자영업자 400여명에게 총 50억원 규모의 대출을 하기로 했다. 조흥은행은 이를 위해 2일 본점에서 소액대출 전문기관인 ‘함께 만드는 세상 사회연대은행’과 업무제휴 조인식을 가졌다. 조흥은행은 업무제휴를 통해 영세 자영업자에게 대출을 해주고 사회연대은행은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들에 대한 사후관리를 맡는다. 대출대상은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신용회복이 확정된 영세 자영업자로 금융기관 채권총액(신용카드 포함)이 5000만원 미만인 경우다. 대출 금리는 6%, 한도는 1인당 2000만원이며 상환은 1년 거치 3년 원금분할방식이다. 조흥은행 관계자는 “신용대출 금리는 보통 연 10% 이상인데 이번 대출금리는 국내 최저수준”이라면서 “씨티은행이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과 손잡고 기술지원과 자금관리를 해주는 것이 은행과 소액대출기관간의 대표적인 제휴사례”라고 말했다. 조흥은행은 특히 이번 업무제휴를 통해 사회연대은행에 직원 2명을 1년간 파견, 대출대상자 선정 및 사후관리 기법을 벤치마킹할 계획이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씨줄날줄] 권총차는 기자들/육철수 논설위원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만 목숨 걸고 싸우는 줄 알았는데, 이젠 언론인들도 그 범주에 들어서고 있는 모양이다. 진실을 밝히는 일이 때로는 생명을 던져야 할 정도로 위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언론인들이 거대 독재권력이나 비리집단에 의해 생명을 잃거나, 체포·구금과 위협을 당하는 일이 지구촌 곳곳에서 여전히 자행되는 현실은 유감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1988년 군사문화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당시 중앙경제신문 오홍근 사회부장에 대한 정보부대 장교들의 단검 테러가 국민을 경악시킨 바 있다.1990년대 초 특정정당을 비판한 어느 일간지 기자는 “딸아이를 숯덩이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협박전화 때문에 정신적 살인에 가까운 고통을 겪기도 했다. 민주화로 인해 국가정보기관 등에 의한 언론인 겁주기는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요즘은 다른 측면에서 협박과 욕설에 종종 시달린다. 인터넷 상에서 이뤄지는 ‘악플’이 대표적 사례다. 신문에 이름을 밝히고 사진까지 박아서 쓰는 칼럼의 경우 성향이나 내용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네티즌에게 일방적이고도 좋은(?) 표적이 된다. 기자에게 물리적 위해(危害)가 아니라 불쾌감과 모욕을 주려는 의도이겠으나 ‘욕설탄(彈)’ 또한 다른 형태의 테러임은 불문가지다. 세계신문협회(WAN)에 따르면 1998년 이후 현재까지 세계 각국에서 언론인 409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특히 필리핀에서는 최근 20년간 언론인 67명이 취재와 관련해서 살해됐다. 이 나라 정부는 급기야 이달초 기자들에게 호신용 권총 휴대를 전면 허용했다. 신변보호를 요청하면 경찰이 경호도 해준단다. 며칠전 마닐라발 외신사진에는 경찰의 지도로 사격연습을 하는 여기자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권총을 겨눈 기자의 표정에 전장에 나서는 듯한 비장함이 서려 있어 이국의 동종 직업인으로서 시선을 한동안 떼지 못했다. 비무장에 ‘PRESS 완장’ 하나로 버텨야 하는 종군기자들의 모습도 딱하지만 권총을 차고 취재원 앞에 다가갈 필리핀 기자들을 떠올리면 끔찍하다. 최근 국내에서는 보도의 진위에 대한 기자의 책임은 물론, 언론의 탈(脫)권력과 고도의 윤리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안정된 치안과 민주화된 나라에 사는 덕분에 한국 기자들이 목숨을 지키려고 권총을 차는 일만은 없을 터이니 그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79년 10월 7일 파리 외곽 숲에서 총살

    다음은 국정원 진실위가 발표한 김형욱 실종사건의 중간조사 결과를 기초로 구성해 본 내용이다. 1979년 9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김형욱 전 중정부장이 프랑스로 갈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주프랑스 중정 거점장이던 이상열 공사에게 김 전 부장 살해를 지시했다. 이 공사는 9월 말쯤 파리에 머물고 있던 중정 연수생 가운데 신현진·이만수(가명)를 적임자로 선택했다. 이 공사는 신현진에게 “중정부장 출신이 거액의 외화를 빼돌려 카지노에서 탕진하고 국가 기밀을 마구 폭로하고 있다. 이런 사람을 그냥 둬서는 안 된다.”면서 “김 부장 지시를 받았는데 자네가 적극적으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운을 뗐다. 신현진은 “목표가 김형욱이죠.”라고 대답했다. 중정부장 출신이 개인 영달을 위해 국가 기밀을 폭로한다는 얘기에 극도의 증오심을 갖게 된 그는 김 전 부장을 살해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10월1일, 이 공사는 비밀리에 귀국해 김 부장을 만나 김형욱을 살해할 도구로 쓰기 위해 소련제 소음권총과 독침을 넘겨받았다. 신현진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구권 출신의 제3국인 친구 2명에게 미화 10만달러라는 거액을 제시하며 살해 음모에 가담할 것을 약속받았다. 살해 당일인 1979년 10월7일. 이 공사는 김 전 부장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카지노 자금을 빌려달라는 전화였다. 이 공사는 급히 신현진을 불러 “두 시간 뒤 샹젤리제 거리로 김형욱을 오라고 했으니 오늘 처치해야 한다.”고 다급하게 말했다. 신현진은 즉시 이만수와 3국인 친구 2명을 샹젤리제 거리로 불렀다. 이들은 이 공사가 몰고 나온 관용차 ‘푸조 604’안에서 살해계획을 확인한 뒤 이만수는 미화 10만달러가 든 돈가방을 들고 개선문 근처 호텔 바로, 나머지 4명은 김형욱을 만나러 리도극장으로 향했다. 이 공사는 나와 있던 김 전 부장에게 3국인 2명을 돈을 빌려줄 사람이라고 속이고 김 전 부장을 차에 태운 뒤 자리를 떴다. 차량이 어두워진 파리시내를 뚫고 외곽순환도로를 건너던 찰나, 뒷좌석에 앉아 있던 3국인 중 한명이 김 전 부장의 머리를 수차례 가격했고, 김 전 부장은 정신을 잃었다. 어느새 승용차는 인적이 드문 작은 숲속에 도착했다. 신현진은 차에서 대기하고,3국인 2명은 실신한 김 전 부장을 끌고 도로에서 50m정도 떨어진 숲속으로 사라졌다. 이들은 김 전 부장을 내려놓은 뒤 방아쇠를 7번 당겼다. 이들은 시신을 낙엽으로 덮어놓고 현장을 빠져 나왔다. 이들은 김 전 부장의 바바리코트에 여권과 지갑, 시계를 넣은 뒤 벨트로 묶어 차에서 대기 중이던 신현진에게 건넸다. 사흘 후인 10월10일, 귀국한 신현진이 “그림(살해경과)에 대해서는 신군한테 들으십시오.”라는 이 공사의 보고문을 김 부장에게 보여주자 그의 얼굴은 환해졌다. 김 부장은 현금 300만원과 20만원씩이 든 봉투를 신현진의 두 손에 쥐어 주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김형욱 살해 김재규가 지시”

    1979년 10월 7일 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실종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의 지시로 프랑스에 있던 중정 거점요원들과 이들이 고용한 제3국인에 의해 파리 현지에서 살해된 것으로 조사됐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위원장 오충일)는 26일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당시 중정 직원 등 사건관련자 33명의 면담내용과 국정원자료 1만905쪽 등 관련자료 2만9126쪽의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해 이같은 내용의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진실위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당시 부장에게 직접 살해 지시를 했는지는 확인 못했다.”고 밝혔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김재규 부장은 1979년 9월말 이상열 당시 주프랑스 공사에게 김형욱 살해를 지시했고 이 공사가 당시 중정 연수생이었던 신현진·이만수(가명)에게 살해임무를 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위는 “신현진은 동구권 출신의 지인 2명을 살해가담자로 고용한 뒤 10월 7일 함께 김형욱 전 부장을 승용차로 납치해 파리 근교로 끌고가 이들을 시켜 권총으로 살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은 시신을 낙엽으로 덮고 현장을 나왔다고 진술했지만 정확한 사체유기 장소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해 추가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경기도 성남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이상열씨는 조사 시작 이후 2개월째 집을 비운 채 외부와 연락을 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10·26 사건’ 당시 김재규 부장의 변호를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는 “김형욱씨가 숨지기 전까지 김재규 부장은 관련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면서 “만약 중정에서 김형욱 살해 지시를 내렸다면 김 부장을 전기고문까지 해가며 조사했던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측이 이같은 사실을 왜 밝혀내지 못했겠냐.”고 반문했다. 한나라당 임태희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최근 국회를 통과한 과거사법은 조사후 확정된 사실을 발표하게 돼있는 만큼 조사내용을 중간에 발표하는 것은 명백한 법위반”이라며 국정원측이 일부 과거사 사건을 중간발표한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진실위는 “이 사건에 대한 무수한 억측과 근거없는 낭설이 쏟아져 국민에게 혼란을 주고 국정원의 진실규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줘 이를 정리할 필요성이 제기됐다.”면서 “사건 조사가 종결된 것이 아니므로 국정원의 책임과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사후 처리방향은 포함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하프타임] 진종오, 권총 50m 한국신

    한국사격의 간판 진종오(KT)가 19일 제1회 경호실장기 사격대회 50m권총에서 결선 합계 666.5점을 쏴 지난해 경찰청장기에서 자신이 세운 한국신기록(664.6점)을 경신했다. 아테네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진종오는 본선에서 573점을 쏜 뒤 결선에서도 93.5점을 기록, 결선합계 666.5점으로 김준혁(649.5점·충남체육회)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 경찰에 ‘앙드레 김 혁대’

    경찰이 유명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감수한 혁대를 찬다. 경찰청은 1㎏이 넘는 경찰관 혁대의 무게를 줄이고 디자인을 바꾼 새 혁대를 개발하고 있다고 24일 밝혔다. 앙드레 김과 이상봉 등 디자이너들은 5개 업체가 제시한 모델을 놓고 최종 모델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심사와 감수를 맡고 있다. 20여년 전부터 보급된 지금의 혁대는 무겁기도 하고 착용하면 허리와 혁대 사이에 공간이 생겨 허리통증도 일으킨다는 불만이 있었다. 경찰관에게 혁대는 권총과 호신용 삼단봉, 수갑, 무전기 등을 차는 중요한 장비다. 새 혁대는 무게를 지금의 절반 정도인 500g 이하로 줄이고, 척추 부분을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했다. 혁대의 재료로는 미국 듀폰사에 주문한 특수재질을 사용해 가벼우면서도 내구성도 뛰어나다. 경찰은 또 항공기 소재로 쓰이는 첨단 합금인 두랄루민으로 만든 호신용 삼단봉도 지급해 일선 경찰들의 ‘허리 부담’을 줄이도록 했다. 철로 만든 지금의 삼단봉은 무게가 450g가량 나간다. 두랄루민은 비중이 철의 3분의1밖에 안 되지만 강도는 뛰어나다. 경찰청은 무게를 260g으로 줄인 새 경봉 4400여개를 올해 안에 일선 지구대 등에 보급할 계획이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인사]

    ■ 통일부 △정책홍보관리실장 洪良浩△홍보관리관 金弘宰△재정기획관 李忠元 ■ 외교통상부 △재외국민영사담당대사 張哲均△부산광역시 국제관계자문대사 全富寬△동북아평화를 위한 바른역사정립기획단 재단설립팀장 李均東△동북아평화를 위한 바른역사정립기획단 파견 尹盛渼 ■ 산업자원부 ◇국장급 △무역유통심의관 申東湜△지역산업 균형발전기획관 安哲植△기술표준원 안전서비스표준부장 趙基成△산업자원부 이사관 李康厚◇파견 △장관 법률자문관 河洪植 ■ 재정경제부 △정책홍보관리실장 尹大熙 △정책홍보관리관 金璟浩△비상계획관 盧明九 △정책기획관 趙源東 △혁신기획관 李錫駿 △재정기획관 周龍植 △정책상황팀장 陳良鉉△종합민원실장 李唐榮△교육홍보팀장 진승호△홍보관리팀장 朴南爀△비상계획관실 趙源雄△외환제도혁신팀장 金根秀△남북경제팀장 柳卜煥 ■ 교육인적자원부 ◇부이사관 전보△역사정립기획단 파견 尹龍植 ■ 중소기업청 △정책홍보관리관 李鎔斗△홍보담당관 孫光熙△재정기획법무관 尹道根△국제협력과장 許尙茂 △재정기획법무관실 공업서기관 白雲晩 ■ 국무조정실 ◇과장급 전보△국무조정실장실 閔容基△의정심의관실 李政垣△조사〃 金忠浩△산업〃 朴章鎬△규제개혁2〃 孫東均◇서기관 승진△총괄심의관실(혁신팀) 張榮圭△정책상황실 李敎榮△심사평가2심의관실 千明煥△복권위원회사무처 복권총괄과 朴孝健 ■ 한국전력기술 △기계설계처장 金仁鎔△토목기술〃 李用浩 ■ 하나은행 (지점장)△경주 太水龍△칠곡 兪炳吉△충주 丁文鎭 (개설준비위원장)△길음뉴타운 文炯寀 ■ YTN △마케팅담당 전무 李斗杓
  • [책꽂이]

    ●쇼핑하기 위해 태어났다(줄리엣 B 쇼어 지음, 정준희 옮김, 해냄 펴냄) 놀이터에서 잠자리, 그리고 학교까지 아이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키즈 마케팅의 실태를 해부한 책. 키즈산업의 무한팽창 속에 보다 전략화되어가는 광고와 마케팅 등 새로운 소비환경이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룬다.1만 5000원. ●청계천에서 역사와 정치를 본다(조광권 지음, 여성신문 펴냄) 복원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이른 청계천의 문화·역사적 환경을 살펴 보고, 청계천 살리기의 구체적 과정을 소상히 담았다. 서울시교통연수원장인 저자는 이명박 시장 선거캠프의 정책 책임자로서 청계천 복원사업 입안단계부터 깊이 관여했다.2만 5000원. ●나무들의 어머니, 왕가리 마타이(슈테판 에레르트 지음, 김영옥 옮김, 열림원 펴냄) 아프리카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케냐의 왕가리 마타이의 삶을 그린 전기집. 숲을 지킴으로써 사막화를 방지하고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환경운동과 여성 인권운동을 실천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1만원. ●히틀러 최후의 14일(요아힘 페스트 지음, 안인희 옮김, 교양인 펴냄) 1945년 4월16일 250만 소련 군대가 베를린 공격을 시작한 후부터 히틀러가 지하벙커에서 권총으로 자살하기까지 14일간 히틀러와 그 추종자들의 파멸과정을 생생히 그렸다.1만 2000원. ●악인열전(허경진 편역, 한길사 펴냄) 우리 역사에 명멸했던 음악인들의 삶과 예술적 자취, 그들을 둘러싼 문화적 동향을 정리했다.‘공무도하가’의 여옥에서부터 조선후기 여자 기생까지, 각종 악기 연주의 달인, 명창과 가무의 명인들, 음악이론가 등을 영역별로 소개한다.2만 5000원. ●애장본 나무(송기엽 지음, 진선출판사 펴냄) 초봄에 새순을 틔우며 꽃망울을 터뜨리는 나무부터 한겨울을 견뎌내는 나무의 앙상한 어깨까지, 사진작가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나무의 다양한 모습을 들여다 본다. 생성과 소멸이라는 큰 틀 안에서 나무를 바로 보는 시선이 경이롭다.1만 6000원. ●책은 밥이다(장석주 지음, 이마고 펴냄) 시인이자 평론가, 소설가, 북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지은이의 북리뷰집. 경기도 안성의 외진 시골에 자리잡은 지은이의 집 ‘수졸재’에서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스스로를 비우고 채워가는 그의 내면이 글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1만 8000원. ●삽화로 보는 수술의 역사(쿤트 헤거 지음, 김정미 옮김, 이룸 펴냄) 인류 역사를 가로지르는 수술의 발달사를 담았다. 원시 시대와 고대 동양의 의술에서부터 그리스·로마와 중세시대, 르네상스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수술의 발달 이야기를 200여장의 컬러 삽화와 함께 살펴 본다.3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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