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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기의 영화, 99가지 모놀로그] 강한 여자가 아름답다

    누구나 사랑하는 상대의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르다. 그의 단단한 어깨나 그녀의 가냘픈 목선에 설레기도 하고, 달콤한 목소리와 감미로운 노래실력에 전율하기도 할 것이며, 바다 같은 마음과 호수 같은 눈빛에 정신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코끼리 같은 다리와 항아리 같은 허리, 남산 만한 배와 숱 없는 머리가 아름답지 말라는 법은 없다. 여기 강인한 두 여성이 있다. 그녀의 강함은 성별을 구분 짓는 이분법을 가볍게 비웃으며, 마초적인 남성 뒤에 숨은 채 비명만 질러대던 기존의 영화 속 여성 이미지를 전복시킨다. ‘블루스틸’(Blue Steel,1990년)은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일생의 꿈이었던 경찰관이 된 메건 터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순찰 첫날 그녀는 권총 강도를 쏴 죽이게 된다. 강도는 슈퍼마켓 바닥에 쓰러지고, 그의 총은 바닥을 뒹군다. 강도와 메건의 총격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그 곳에 있던 유진 헌트는 그 총을 집어 주머니에 숨긴다. 경관 옷을 입고 강도를 쏘아 죽이는 메건의 모습을 보고 그는 반하고 동시에 미쳐버린다. 한편, 이 일로 메건은 상관과 다투게 되는데, 유진 헌트는 마치 우연히 만나게 된 것처럼 그녀를 속여 데이트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광기는 점차 심해져간다. 16년이나 지났지만, 영화는 여전히 강렬하고 힘이 넘친다. 감독 캐슬린 비글로와 배우 제이미 리 커티스라는 걸출한 두 여성의 시너지는 시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유효하다. 뒷골목의 불량소녀 니키타는 정체가 분명치 않은 비밀 정보기관에 의해 전문 킬러로 거듭난다. 엄청난 트레이닝으로 인간 병기가 된 니키타는 이제 조세핀으로 이름도 바꾸고 도시에 던져진다. 임무가 주어지면 때로는 팀을 이뤄, 때로는 홀로 양손에 대형 매그넘 권총을 들고 뛰어들어가 가차 없이 수행해내는 니키타. ‘니키타’(Le Femme Nikita,1990년)와 ‘블루스틸’의 공통점은 푸른빛의 영상과 강인한 캐릭터, 그리고 남성성을 상징하는 총을 여성에게 건넸으며 같은 해에 만들어져 지금까지도 찾아볼 수 없는 영화적 캐릭터의 성과를 일정 정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영화의 마지막. 자신들의 힘으로 자유를 얻는다. 우리가 이 두 영화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성성을 강조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여자는 매력 없다던, 아는 이 하나가 최근 연애를 시작했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려 하고, 먼저 차 문을 연 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더란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도 들 수 있다며 큰 배낭을 힘주어 어깨에 메었고, 열어놓은 문을 지나 건너편으로 가서는 핸들을 잡더란다. 앞서 칼럼에서 유아적 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들의 기능적 후퇴원인을 여자들의 지나친 방조와 넘쳐나는 애정에서 찾아보려 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여자들의 지나친 기댐과 연약함을 미덕으로 아는 원인은 남자들의 보호본능과 생식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일부일처제의 신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런 무리수를 부려 고민할 필요는 없다. 곰 같은 아내와 여우 같은 여자는 개인 취향의 문제이므로. 하지만 스스로 자유를 찾는 강인한 여성의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델마와 루이스, 매건 터너와 니키타는 그리하여 지금까지 가장 아름다운 여성들로 기억된다. 시나리오 작가
  • [2006 도하 아시안게임] “나이는 숫자일 뿐” 박병택 7일 金조준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한국사격대표팀의 ‘맏형’ 박병택(KT)이 7∼8일 남자 25m 스탠더드권총과 센터파이어권총에서 금메달을 정조준한다.
  • [오늘의 아시안게임]

    ■ 야구 ●한국-중국(오후 7시30분) ■ 볼링 ●여자개인종합 결승(오후 6시30분) ■ 당구 ●남자 스누커 단식 결승(오후 4시) ■ 하키 ●여자 한국-중국 (오후 8시) ■ 조정 ●남녀 더블스컬 결승(오후 4시) ■ 사격 ●남자 25m 속사권총 결승(오후 8시30분) ■ 정구 ●남녀 단식 결승(오후 9시) ■ 수영 ●남자 자유형 100m 결승(밤 12시6분) ■ 탁구 ●여자 복식 결승(7일 오전 1시) ■ 역도 ●여자 75㎏이상급 결승(오후 7시)
  • [2006 도하 아시안게임] 승마 최준상·사격 손혜경 金 추가

    아시안게임 2연속 2관왕이 하루 2명이나 나왔다. 5일 ‘오뚝이 여사수’ 손혜경(30·국민은행)이 도하아시안게임 사격 더블트랩 본선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 2개를 챙긴 데 이어 승마의 대들보 최준상(아래 사진·28·삼성전자 승마단)도 마장마술 개인전 결선에서 1위를 차지, 전날 단체전에 이어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둘은 2002년 부산 대회에 이어 2연속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손혜경은 이날 루사일 사격장에서 열린 더블트랩 본선 개인전에서 3라운드 합계 105점을 쏴 태국의 스리송크람 자네지라(103점)를 따돌렸다. 또 이보나(우리은행), 김미진(울산체육회)과 한 조를 이뤄 출전한 단체전에서도 합계 303점으로 중국(288점)을 여유있게 제쳤다. 손혜경은 사냥을 좋아하던 아버지의 권유로 부산 혜화여고 진학 뒤 총을 잡았다. 다른 선수보다 늦어도 한참 늦은 것. 하지만 입문 2년 만에 1994년 태극마크를 달았고 국제무대 데뷔전이던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더블트랩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부산 아시안게임 2관왕에 올랐을 때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2004년 불운이 덮쳤다.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면서 결혼마저 미뤄야 했고 격발된 파편을 눈에 맞고 다리가 부러지는 등 악운이 겹쳤다. 올림픽 쿼터는 자신이 따놓고도 평가전에서 밀려 아테네올림픽에는 나가지도 못하고 후배 이보나가 은·동메달을 따내며 스타덤에 오르는 것을 씁쓸히 지켜보아야 했다. 그러나 손혜경은 지난해 여름 혹독한 훈련을 견뎌낸 끝에 지난 1월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고 8월 자그레브 세계선수권 더블트랩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따내 화려하게 부활했다. 손혜경은 “어제까지 연습에서 너무 안 맞아 울기까지 했는데 변경수 감독이 용기를 줘 이겨낼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부모님과 남편이 너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7일 스키트 개인보다는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며 다관왕의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한편 이보나는 트랩 단체전 동메달에 이어 더블트랩 개인전 동과 단체전 금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진종오(27·KT)는 남자 50m 권총에서 6위에 그쳤다. 마장마술의 최준상도 개인전 결선에서 71.550%의 점수를 얻어 1,2차전 예선 및 결선 합계 68.602%로 1위를 차지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2006 도하 아시안게임] 中, 브레이크 없는 질주

    ‘만리장성’ 중국이 ‘잔인한 독주’를 펼치고 있다. 일찌감치 예고돼 있었지만 중국은 도하아시안게임 초반부터 한국과 일본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선두를 질주, 세계 최강의 면모를 한껏 뽐내고 있다. 5일 오전 0시30분 현재 33개의 금메달을 쓸어담아 일본(8개), 한국(6개)과의 수준차를 실감케 했다. 게다가 메달 사냥은 특정 종목에 한정되지 않았다. 수영, 역도, 체조 등 거의 모든 종목에서 고루 이뤄져 중국의 힘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여기에다 중국의 초강세 종목이며 45개의 금메달이 걸린 육상이 7일부터 시작됨에 따라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미 탈아시아를 선언, 세계 정상을 넘보고 있다. 안방에서 열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꿈’을 이루겠다고 벼른다.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스포츠왕국 미국(금메달 35개)에 단 3개의 금메달 차이로 종합 2위(32개)를 차지, 가능성을 엿보였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세계 정상을 향한 시험무대에 불과한 셈. 스포츠 일등국가의 실현 가능성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사격 여자 10m공기권총 단체에서 세계기록을 세웠고, 여자역도 56㎏급에서 첸옌친이 인상 용상 합계 모두 세계기록을 갈아치웠다. 특히 사격은 여자트랩 2관왕에 오른 첸리를 비롯, 대부분 신인이 출전했지만 금메달을 휩쓸었다. 중국은 베이징올림픽에서 겁없는 신예들과 백전노장들의 조화로 최강의 전력을 구축할 것으로 예상된다.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오늘의 아시안게임]

    ■ 배드민턴 ●남녀 단체 결승(오후 10시) ■ 수영 ●남자 400m 자유형 결승(밤 12시10분) ■ 볼링 ●남녀 3인조 결승(오후 3시·오후 11시30분) ■ 승마 ●마장마술 개인전 결승(오후 8시) ■ 체조 ●남자 개인전(오후 10시) ■ 유도 ●남자 60㎏급·무제한급 예선 및 결승●여자 48㎏급·무제한급 예선 및 결승(이상 오후 8시) ■ 사격 ●남자 50m 권총 결승(오후 5시)●여자 25m 권총 결승(오후 7시30분)
  • [2006 도하 아시안게임] ‘위암 극복’ 부순희 ‘동’명중

    |도하(카타르) 임일영특파원|아시안게임 여자 10m 공기권총 경기가 열린 3일 루사일사격장. 너무 오랜 만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탓일까. 산전수전 다 겪은 부순희(39·창원경륜공단)지만 잔뜩 긴장한 듯 사대에 오를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딸뻘인 팀의 막내 이호림(18·서울체고)은 연신 수다를 떨어댔지만 부순희는 가만히 손을 모은 채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10m 공기권총은 한순간이라도 리듬을 잃으면 망가지기 십상이어서 극도의 집중력과 체력을 요구한다. 지난 1994년 세계선수권과 97·98년 월드컵을 제패하는 등 최고의 명사수로 이름을 떨쳤던 부순희지만 아시안게임에서는 94년 히로시마대회 스포츠권총 은메달이 최고.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빈 손으로 돌아온 뒤 잇단 시련에 한동안 사대를 떠나야 했다. 시드니올림픽에서 돌아온 10월, 유방암으로 투병하던 시어머니가 폐암으로 번진 암세포를 이겨내지 못하고 작별을 고했다. 그해 겨울엔 폐암과 싸우던 친언니마저 두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부순희를 사격으로 인도했던 선배이자 친구 같던 언니 신희씨의 죽음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불운의 그림자는 좀처럼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2002년 3월 위암 진단이 내려진 것. 초기에 발견된 덕분에 위를 절반 이상 떼어내는 대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다. 제대로 먹지 못하는 탓에 체중이 쑥쑥 빠지고 몸은 망가졌지만 사격에 대한 그의 열망을 꺾지는 못했다.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선으로 돌아온 부순희는 당당한 실력으로 꼭 6년 만에 태극마크를 되찾았다. 그리고 도하 사선에 선 부순희. 너무 긴장한 탓일까. 권총을 내려놓은 채 호흡을 가다듬었지만 좀처럼 리듬을 찾지 못했다. 방아쇠를 당길수록 체력은 떨어졌고 팔은 조금씩 흔들렸다.결국 개인 결선 진출에 실패했지만 후배인 김병희(24·상무), 이호림과 함께 1140점으로 중국(1161점) 인도(1142점)에 이어 단체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권오근(우리은행) 감독은 “중국이 너무 잘해 금메달은 힘들었다. 경기내내 순희가 쓰러질까봐 걱정이었는데 끝까지 버텨줘서 고맙다. 모레 25m는 중간중간 휴식이 있어서 좀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argus@seoul.co.kr
  • [2006 도하 아시안게임] 女정구 ‘金’ 스매싱

    |도하(카타르) 임일영특파원|정구 여자대표팀이 극적인 역전승으로 한국에 두 번째 금메달을 안겼다.1994년 히로시마 대회 이후 4연패. 간판스타 김경련(안성시청)이 이끄는 정구 여자대표팀은 3일 칼리파 정구코트에서 벌어진 단체전 결승에서 일본에 2-1 뒤집기승을 거뒀다. 복식 2경기, 단식 1경기로 치러지는 단체전에서 첫 복식에 나선 민수경(하나은행)-이복순(농협중앙회) 조가 교쿠센 하루미-우에시마 아루미 조에 2-5로 무릎을 꿇었지만 이은 단식에서 김경련이 쓰지 미와를 7-5로 잡아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세번째 복식에서 김지은(농협중앙회)-이경표(안성시청) 조는 우에하라 에리-하마나카 히로미 조에 타이브레이크 접전 끝에 5-4로 승리, 역전드라마의 대미를 장식했다. 그러나 남자는 4강전에서 일본에 0-2로 패한 뒤 몽골을 2-0으로 물리쳐 동메달을 획득했다. 사격에서는 진종오(KT)와 이대명(송현고), 김영욱(경북체육회)으로 구성된 남자대표팀이 10m 공기권총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땄다. 이어 열린 남자 50m 소총복사 단체전에서도 박봉덕(부산체육회), 이현태(KT), 전동주(경기도청)가 2위에 올랐다. 전종오는 10m 공기권총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추가했고, 김병희(상무)도 여자 10m 공기권총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앞서 ‘고교생 총잡이’ 유재철(17·대전체고)은 남자 10m 공기소총 단체전에서 채근배(기업은행), 김혜성(동국대)과 함께 은메달을 따낸 데 이어 개인전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했다. 기대를 모았던 아테네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이보나(우리은행)는 여자 트랩 개인전에서 결선 진출에 실패했지만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땄다. 2일 수영에서는 한규철(전남수영연맹)이 남자 400m 개인혼영에서 4분17초91로 깜짝 동메달을 딴 데 이어 여자는 400m 계영에서 4분9초22로 동메달을 보탰다. 남자 역도의 이종훈(충북도청)은 남자 56㎏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했고, 남자 체조에서는 간판 양태영(포스코건설)이 철봉 연기 도중 바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단체전 동메달에 그쳤다. argus@seoul.co.kr
  • [2006 도하 아시안게임] 남북 “우리 넘어서자”

    ‘우정은 우정, 승부는 승부.’ 제15회 도하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남북한이 우정을 잠시 접고 메달을 향한 치열한 대결을 펼친다. 종합 2위 수성에 나선 한국은 탁구, 축구, 사격 등 일부 종목에서 북한을 넘어야 한다. 종합 5위를 목표로 한 북한도 같은 처지다. 남북 모두 세계 정상급 기량을 자랑하는 탁구가 최대 관심이다. 예선리그 C조에 속한 한국은 조 1위를 사실상 확정하며 8강행 티켓을 획득,A조 1위가 확실한 북한과 준결승(2일)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다.2002년 부산대회 결승에서 중국을 꺾어 ‘녹색 테이블 기적’을 일으켰던 북한이 톱시드를 받아 한국이 예상대로 8강 관문을 통과하면 북한 또는 중국과 맞붙기 때문이다. 한국은 현정화 여자대표팀 감독이 선수로 맹활약하던 1991년 바르셀로나 월드컵까지 북한에 8승4패의 우위를 점했지만 이듬해 칭다오 그랑프리 대회 패배를 시작으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준결승까지 10년 간 7연패를 당했다. 다행히 지난 4월 브레멘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 5∼8위 결정전에서 북한을 꺾어 상대전적에선 10승10패의 균형을 맞췄다. 한국은 전성기보다 전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북한도 최상의 전력은 아니라는 점에서 결과를 쉽게 장담할 수 없다. 북한은 ‘만리장성’을 격파한 부산대회 이후 ‘쌍두마차’였던 김현희와 김향미가 은퇴, 세대교체 진통을 겪고 있다. 남녀 축구에서도 양보없는 혈전이 예상된다. 아시아 최강인 북한 여자팀은 오는 7일 예선 B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 나서는 한국과 맞붙는다. 객관적 전력에선 북한이 한 수 위지만 남북대결인 만큼 부담감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남자축구는 예선 F조에 편성된 북한이 라이벌 일본을 꺾고 8강에 오른다면 B조 1위가 유력한 한국과 10일 4강행 티켓을 다툰다. 북한 이정만 감독은 남북대결 가능성에 대해 “일단 8강에 가는 게 먼저 아니냐.”면서 즉답을 피했다. 여자 유도 78㎏급에서는 이소연(포항시청)과 북한의 김연미가 나란히 출전했고, 사격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도 진종오(KT)는 북한 김현웅, 김정수와 사선에서 금메달을 향해 자존심 대결을 벌인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2006 도하 아시안게임] “금메달쯤이야” 겁없는 10대들

    ‘한국발 젊은 피, 도하를 뜨겁게 달군다.’ 도하아시안게임에 나서는 한국 선수는 모두 645명. 이 가운데 무려 43명이 고교생이다. 중학생도 4명이나 눈에 띈다. 모두 한국 스포츠의 미래인 셈. 어린 나이지만 참가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 ‘영 블러드’는 최대 금메달 10개를 노리며 한국선수단의 목표인 금 70∼75개의 10%를 책임질 것으로 기대된다. 여자양궁 개인·단체전에 나서는 ‘고교생 궁사’ 이특영(17·광주체고)은 유력한 2관왕 후보. 올해 대표선발전에서 윤미진 박성현 등 걸출한 선배들을 제치고 1위로 뽑혔다. 올림픽과는 달리 아시안게임에선 개인전 결선에 나라별 쿼터(2장)가 있어 내부 경쟁이 심하지만 최소 한 차례 이상 금빛 과녁을 꿰뚫을 것으로 점쳐진다. 세계 정상에 바짝 다가선 수영의 박태환(17·경기고)은 자유형 100·200·400·1500m에 나서 3관왕에 도전한다. 여자 개인혼영 200·400·자유형 800m의 정지연(17·경기체고)도 이번 대회를 통해 베이징올림픽 도약을 꿈꾼다. ‘제2의 박주봉’ 이용대(18·화순실업고)도 당일 컨디션에 메달 색깔이 달려 있다. 지난 1월 독일오픈 남자복식에서 시니어 첫 우승을 일구며 자신감을 얻은 주니어 최강 이용대는 남자복식과 혼합복식, 단체전에 나서 금을 벼른다.10·50m 공기권총에 출전하는 ‘고교생 총잡이’ 이대명(18·송현고)도 빼놓을 수 없는 금 후보. 여자 10m 공기권총의 이호림(18·서울체고)은 다크호스다. 여자태권도에선 진채린(18·리라컴퓨터고)이 ‘금 발차기’를 준비중이다. 여자 골프의 여고생 트리오 유소연(16·대원외고) 정재은(17·세화여고) 최혜용(16·예문여고)과, 카누의 안현진(17·서령고), 요트의 여수고 삼총사 방경재(16·종목 레이저 4.7), 김장남, 김종승(이상 17·종목 420) 등도 메달을 사정권에 뒀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카다피 경호원 300명 ‘외교 망신살’

    해외순방 때마다 미녀 여성 경호원들을 대동하는 것으로 유명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나이지리아에서 톡톡히 망신살이 뻗쳤다. 아프리카-남미 정상회의에 참석차 방문하면서 300여명의 중무장 경호원을 대동한 외교적 결례를 저질렀을 뿐 아니라 나이지리아 공항 당국과 대치하며 떼를 쓰다 나이지리아 대통령까지 협박했다. 영국 BBC뉴스 인터넷판은 28일 카다피 국가원수가 이날 벌인 엽기적 행각을 ‘장황스러운 한편의 드라마’로 자세히 소개했다. 나이지리아 공항 당국은 리비아 대표단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항공기 5대에 나눠 탄 중무장한 300여명의 경호원이 수도 아부자에 입국한 것이다. 리비아 대표단은 항공기에서 무기와 탄약을 빼내 대기하고 있던 50여대의 호송차량에 싣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보안요원들이 입국을 제지했다. 무기를 잠시 맡기고 입국하라는 요구에 카다피 원수는 차량에서 내려 걸어가는 시위를 벌였다. 도심까지 40여㎞를 걸어서라도 간다고 떼를 쓴 것이다. 마침 공항에 들른 올루세군 오바산조 대통령이 직접 중재에 나섰다. 무기를 등록한 후 입국하라는 중재안에 아예 다시 돌아가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격분한 나이지리아 정부가 경호원에 대해 권총 8자루만 허용하겠다고 최후 통첩을 하면서 수시간에 걸친 대치는 끝이 났다. 카다피 원수는 30일 열리는 아프리카와 남미 외무장관들의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했다.BBC는 대표단 규모보다 이들이 가져온 엄청난 무기와 탄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전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정인숙(鄭仁淑)-그여자의 일생

    정인숙(鄭仁淑)-그여자의 일생

    3월 17일 밤 11시30분께. 서울 강변3로서 울린 3발의 총성은 죽은 정인숙(鄭仁淑)양의 신원이 밝혀짐에 따라 뜻밖의 파문을 몰고 왔다. 저명인사들과의 접촉이 잦았으며 아버지의 이름이 밝혀지지않은 3살짜리 어린애를 가진 처녀 엄마라고해서 이러쿵 저러쿵 파다한 후문을 일으킨 것. 타고 난 미모 하나로 밤의 요화로 군림, 각계 실력자들과 어지러운 관계를 가졌던 정인숙(鄭仁淑)양. 45구경 권총탄환 2개로 26세의 나이로 비명에 숨져야했던 그녀의 「짧고도 긴 생애」는 어떤 것이었을까? 다음은 가족 ·친구들의 말을 바탕으로 한 「정본(正本) 정인숙전(鄭仁淑)傳).」 옛 이름은 정금지(鄭金枝). 해방되던 해인 1945년 2월 13일 대구시 남산동 681의 2에서 전 대구부시장을 지낸 정도환(鄭道換)씨(65)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인숙(仁淑)양의 아버지 정(鄭)씨는 12살 때 일가 중 후손이 없었던 정남수(鄭南洙)씨의 양자로 입양했다. 그러나 입양한 해에 양부 정남수씨가 돌아가자 정(鄭)씨는 호주상속을 받아 바로 그해 11월 인숙양의 어머니인 전(全)씨(61)와 결혼했다. 당시 정씨가 살던 곳은 경북(慶北) 김천(金泉)군 (금릉군) 개영(開寧)면. 정(鄭)씨 일가는 해방되기 전 해까지 줄곧 이 곳에서 살며 슬하에 4형제를 두었다. 이 4형제 중 4남이 바로 인숙양 살해혐의를 받고 있는 종욱(宗旭)씨다. 생전 인숙양이 주장하던 것처럼 「뼈대있는 집안」은 아니었다는 게 김천(金泉)일대 주민들의 말이다. 정씨는 행정관리로 출발, 대구(大邱)부시장의 자리에까지 오른 자수성가형. 인숙(仁淑)양의 출생에 관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즉 아들만 넷을 둔 정씨의 부인은 어떻게든 딸을 보고 싶어 절에 다니며 『딸자식 하나만 낳게 해달라』고 불공을 드렸다는 것. 과연 불공의 효험이 있었던지 45년 정씨의 아내 전씨는 딸 자식을 낳았다. 그것도 인숙양 하나가 아닌 딸 쌍동이였다. 그래서 바라던 딸을 한꺼번에 둘이나 얻게 되자 「금이야 옥이야」기르며 이름조차 금지(金枝)·옥지(玉枝)로 지어주었다. 아들 4형제의 막내딸로 태어난 금지·옥지 두 쌍동이는 온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며 자라났다. 그러나 생후 1년 반만에 옥지는 죽고 금지만 살아 남게 되었다. 옥지가 죽은 다음해 정씨는 자식을 또 보았으나 이번 역시 아들. 그래서 금지의 외동딸의 위치는 변함이 없었고 그녀를 아끼는 일가의 귀여움을 독차지. 특히 어머니 전씨가 금지를 위하는 것은 딴 가족들보다 더 심했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귀여움을 받으며 자라난 인숙(仁淑)양이 자존심 강하고 오만한 성격을 갖게 된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인숙(仁淑)양이 대구(大邱)서 국민학교 다닐 시절 인숙(仁淑)양에게 몸종이랄 수 있는 여자아이하나를 따로 두었다. 학교 갈때 따라가는가 하면 세수할때, 밥먹을때 등 노상 인숙(仁淑)양의 옆에 붙어 잔심부름과 시중을 들게 했다. 인숙(仁淑)의 성격은 더욱 오만해 졌다. 인숙(仁淑)양의 윗 오빠 네 사람은 이런 인숙(仁淑)양을 가리켜 『어머니가 너무 쟤만 위해 주니까 계집애가 버릇이 나빠진다』며 불평, 이따금 여동생 인숙(仁淑)에게 기합을 주었으나 그때마다 인숙(仁淑)양을 감싸고 도는 어머니 때문에 인숙(仁淑)양의 성격을 끝내 뜯어 고치지 못했다는 둘째오빠 종구(宗九)씨의 말이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인숙(仁淑)양은 대구(大邱) S여중에 진학했다. 이 때 아버지 정(鄭)씨는 경북(慶北)도청의 고급 관리로 집안형편이 넉넉할 때였다. 인숙(仁淑)양의 오만한 성격은 더욱 심해지고 이에 따라 오빠들과의 의는 점점 나빠졌다. 호랑이같은 오빠 4명이 인숙(仁淑)양이 조금만 늦게 귀가해도 때리고 꾸지람하기 일쑤. 이래서 정(鄭)씨집은 오만한 인숙(仁淑)양의 기를 꺾으려는 오빠 4명과 인숙(仁淑)을 편들어 주는 어머니 전(全)씨와 인숙의 두 패로 갈리게까지 되었다. 대구 S여고시절 인숙(仁淑)양의 학교성적은 중 이하. 그러나 영어실력만은 대단해 이때부터 이미 외국손님이 오면 안내역을 맡곤 했다. 인숙(仁淑)양이 영어에 능하게 된 데는 오빠들의 도움이 컸다. 현재 일본「도꾜」 의 「아까사끼」서 전기 부속품상을 하고 있는 큰오빠 종원(宗源)씨나 H무역의 대표로 현재 「인도네시아」에 있는 세째오빠 종인(宗仁)씨가 모두 영어라면 귀신. 이런 오빠 밑에서 익힌 인숙(仁淑)양의 영어실력이 뒷날 요정 「선운각」 에서 외국인들에게 술을 따르며 쓰이게 될 줄이야. S여고에 남은 인숙(仁淑)양의 학적부를 들추어보면 『명랑하고 성실하나 안일하고 책임감이 없다』고 되어있다. 인숙(仁淑)양이 S여중 3학년에 올라갔을 때 4·19가 터졌다. 대구 부시장으로 있던 아버지 정(鄭)씨가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자 가세는 기울기 시작. 이 때무터 인숙(仁淑)양의 집 살림은 어머니 전(全)씨가 계 등으로 꾸려 나갔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실직은 인숙(仁淑)양에게도 심한 충격을 주었다. 낭비벽 심하고 화려했던 인숙(仁淑)양의 생활은 집안 형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쪼들리기 시작했다. 살고 있던 대구(大邱) 남산(南山)동 집을 팔고 삼덕(三德)동으로 이사, 집 규모를 줄여야 하는 등 집안형편이 어려워지면서부터 인숙(仁淑)양의 성격도 비뚤어지기 시작. 62년 S여고를 졸업한 인숙(仁淑)양은 E大 영문과에 진학하겠다면서 서울로 올라왔다. 당시 서울엔 인숙(仁淑)양의 세째오빠 종인(宗仁)씨가 S 무역에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응시했던 E大 영문과 입시에서 인숙(仁淑)양은 깨끗이 낙방. 세째 오빠 종인(宗仁)씨가 주는 돈으로 M초급대학에 입학했으나 등록금만 내고 학교에는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실직, E大 낙방 등의 겹친 불운은 콧대 센 아가씨 인숙(仁淑)양의 자존심을 꺾어놓기에 충분했다. 집안의 외동딸로 귀여움을 독차지 하며 자라온 인숙(仁淑)양이 두차례에 겹친 좌절끝에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곤 태어날 때부터의 타고난 미모뿐. 콧대 꺾인 방년 19세의 아가씨 인숙(仁淑)양은 마지막 남은 재산인 미모를 마음껏 이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당시로선 요정의 「호스테스」란 생각지도 못했고 『나 정도의 얼굴이면 영화배우가 될 수 있지 않느냐?』하는것. 그래서 인숙(仁淑)양은 등록한 M여대엔 나가지도 않고 서울 충무로 영화가를 기웃거렸다. 이 때 만난 사람이 「시나리오」작가인 장(張) 모씨. 당시 장(張)씨는 KBS에 『태양은 늙지 않는다』란 연속극을 집필하고 있었는데 인숙(仁淑)양은 친구들을 만나면 자주 『우리 애인은 유명한 작가야』하며 뽐냈다. 張씨 자신도 張씨가 인숙(仁淑)양의 첫 애인이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콧대꺾였던 인숙(仁淑)양의 자존심은 유명작가를 애인으로 둠으로써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은듯 했다는게 그녀 친구들의 이야기다. 당시 인숙(仁淑)양은 친구를 만날 때마다 張씨를 자랑했다고. 인숙(仁淑)양은 1년남짓 장(張)씨와 동거생활을 하기도 했다. 친구들에겐 『장(張)씨와 약혼한 사이며 곧 영화에도 출연하게 될 것』이라고 비치기도했다. 장(張)씨와 동거할 때도 인숙(仁淑)양의 타고난 사치벽은 버리지 못했다. 이래서 이따금 장(張)씨와 말다툼을 하고 장(張)씨 집을 뛰쳐나온 인숙(仁淑)양은 친구들 집을 찾아 하룻밤씩 자고 가기도. 그러면서 옛날 외동딸로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것을 잊지 못해 어떻게든 상처입은 자존심을 되살리기 위해 몸부림쳤다. 이 때 인숙(仁淑)양이 알게 된 것이 지금 신촌(新村)모처에서 비밀요정을 경영하고 있는 K「마담」. K 「마담」은 한때 배우 윤(尹)모씨와 동거, 「패션·모델」생활도 한적이 있는 멋장이 「마담」으로 인숙(仁淑)양은 K 「마담」의 소개로 「디자이너」조(趙)모씨를 통해 「패션·모델」로 몇차례 나서기도 했다. 인숙(仁淑)양과 K 「마담」의 관계는 그뒤 줄곧 계속되어 K 「마담」이 경영하는 한남(漢南)동 비밀요정에 인숙(仁淑)양은 1급 「호스테스」로 나갔었다. 인숙(仁淑)양은 몇차례 「패션·모델」로 나가는 한편 동거하던 장(張)씨의 소개로 S영화사와 접촉이 되어 2,3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신촌(新村), 수유리등을 전전하며 하숙생활을 하던 인숙(仁淑)양과 장(張)씨의 동거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숙(仁淑)양의 타고난 허영과 장(張)씨의 사업실패가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은 원인이 되었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두 사람의 사이는 동거 1년만에 끝장을 보고 말았다. 그러나 장(張)씨가 인숙(仁淑)양으로선 첫 남자였던 만큼 장(張)씨를 향한 인숙(仁淑)양의 마음은 어지간히 강했었다. 피살되기 한달전 인숙(仁淑)양을 만난 한 친구는 『여러가지로 골치 아픈 일이 많아 못 살겠다』면서 『그래도 장(張)씨가 제일 잊혀지지 않고 그립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장(張)씨와 헤어진 인숙(仁淑)양이 다음에 발 디딘 곳이 바로 요정 선운각(仙雲閣). 타고 난 미모와 영어실력이 그녀를 선운각(仙雲閣)의 1급 「호스테스」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선운각(仙雲閣)에서 인숙(仁淑)양이 만난 사람이 바로 A씨. 미남이자 이름이 알려져 있는 A씨라 인숙(仁淑)양의 허영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A씨를 만나면서부터 인숙(仁淑)양은 저명 인사들의 노리개감으로 전락, 밤의 꽃으로서의 진면목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A씨와 인숙(仁淑)양의 관계는 석달남짓 계속되었다는게 당시 인숙(仁淑)양 동료들의 이야기다. A씨를 알게 될 때 인숙(仁淑)양을 가운데 두고 A씨와 역시 A씨만한 실력자 B씨가 한달 남짓 열띤 각축전을 벌였다는 소문도 있다. 그 뒤 인숙(仁淑)양은 선운각(仙雲閣)을 떠나 활동무대를 비밀요정으로 옮겼다. 전부터 아는 K 「마담」이 경영해 오던 한남(漢南)동 비밀요정을 주무대로 2류급 여배우들을 잘 불러내는 것으로 소문난 S 「마담」집등에 단골로 불려 다녔다. 그러나 비밀요정 「호스테스」로 나가는 동안에도 인숙(仁淑)양은 콧대가 높아 반드시 「마담」들에게 그 날 참석자들을 알아보고 웬만한 이름이 아니면 응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밤이면 이름있는 사람들과 접하는 인숙(仁淑)양은 낮이면 필동2가에 자리잡은 집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지냈다. 어렸을 적부터 인숙(仁淑)양 편이었던 어머니 전(全)씨는 남편 정(鄭)씨가 일가를 이끌고 서울로 올라와도 남편집에서 살지 않고 인숙(仁淑)양과 단둘이 살며 딸의 뒷바라지를 해 주었다. 필동에서 살때 인숙(仁淑)양은 아들(3)을 낳았다. 인숙(仁淑)양의 가족들은 그 아이가 인숙(仁淑)양의 아이가 아니고 인숙(仁淑) 양의 배다른 동생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①가족 주장대로 배다른 동생이며 대구(大邱)서 낳아 서울로 데려다 길렀다면 최소한 5살은 되었어야 하는데 3살이라는 점 ②배 다른 동생이라면 미국 갈때 굳이 인숙(仁淑) 양이 아기를 함께 데리고 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점등을 보면 인숙(仁淑) 양의 아이로 볼 수 밖에 없다. 그럼 이 아이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시체해부에서도 드러났듯이 인숙(仁淑) 양은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바 있다. 더우기 비밀요정가에선 「호스테스」가 아이를 낳는 것은 「터부」로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숙(仁淑)양이 아기를 낳았을 때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 충분한 이유란 사후보장. 처녀(?)가 호적에도 올리지 못할 아기를 낳을땐 어딘가 굳게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란건 틀림없는 일이다. 워낙 남자관계가 복잡한 인숙(仁淑)양이라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는 것은 인숙(仁淑)양 자신만이 알 일이지만 항간에선 일본에서 요정을 경영하고 있는 갑(甲)씨, 을(乙)씨, 병(丙)씨등 알만한 이름들이 나돌고 있다. 그러나 인숙(仁淑)양이 아이를 낳은 후부턴 『내 말 한마디면 안되는 일 없다』혹은 『 서교동집도 아기 아빠가 사준 거야』등의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세사람중 한사람일것이라는 소문. 68년 12월 30일자로 발급된 수속서류 없는 회수여권 MA 10647이 발급된 경위만 하더라고 웬만한 실력자가 아니고선 어림도 없는 일이란 것. 어쨌든 아기를 낳은 인숙(仁淑)양의 주변은 전보다 눈에 띄게 달라졌다. 우선 본거지인 비밀요정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 68년 8월엔 싯가 7백만원이 넘는 단층 석조주택을 사 서교동으로 이사했다. 평소 친하던 K 「마담」 이외엔 좀체로 그녀를 만날 수 가 없었다. 비밀요정 대신 「타워 · 호텔」, 「사보이 · 호텔」, 반도 ·조선 「아케이드」에 자주 나타났다. 69년 봄 일본에 다녀온 인숙(仁淑)양은 그해 5월에 K 「마담」의 소개로 한남동 조(趙)모씨로 부터 문제의 「코로나」를 사들였다. 이 때 부터 인숙(仁淑)양은 다시 남성편력을 시작했다. 이번엔 전과는 달리 주로 돈 잘쓰는 사람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재일교포인 갑(甲)씨 등 적지않은 사람들이 인숙(仁淑)양을 거쳐 갔다. 아마도 『 아이를 낳고 보니 무엇보다 돈 걱정이 앞섰던것 같다』는게 인숙(仁淑)양을 아는 친구와 「마담」족의 중론이다. 지난 69년 10월 10일 인숙(仁淑)양은 아기를 데리고 미국행을 했다. 이 때 인숙(仁淑)양이 친구에게 밝히기론 『 잠시 골치아픈 일이 있어 외국에 나갔다 와야겠다』는 것. 인숙(仁淑)양은 미국서 석달 있다가 되돌아 왔다. 1월21일 다시 돌아온 인숙(仁淑)양의 주변은 의문투성이뿐. 『 곧 미국에 갈테니 차를 팔아야 겠다』는가 하면 『 돈 달라는 사람 많아 귀찮아 죽겠다』고 하기도 했고 한때는 『 이젠 미국 안갈래』하기도 했다. 사건당일만 해도 자동차매매업소에 나타나 「시보레」6기통 짜리 흥정을 했다는데 미국에 갈 생각이었다면 한국에서 차를 바꿀 이유가 없다. 이래서 그녀의 주변에서 『 미국에 가 있으라』는 「그이」의 요구와 이를 선뜻 응낙치 않은 인숙(仁淑)양의 태도에 이번 사건의 수수께끼가 숨어 있지않나 보기도 했다. 어쨌든 3월 17일밤 11시 20분 한강변에 울린 3발의 총성으로 한때의 요화(妖花)정인숙(鄭仁淑)양은 비명에 갔다. 아빠 이름도 모르는 아이를 홀로 남겨 놓은채. [선데이서울 70년 3월 29일호 제3권 13호 통권 제 78호]
  • 경찰 사격연습중 권총자살

    경찰관이 사격 연습 중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9일 오전 10시쯤 서울 창동 도봉경찰서 실내 사격장에서 강북경찰서 수유지구대 소속 이모(38) 경사가 지급 받은 권총으로 오른쪽 머리에 총을 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경찰은 “권총과 실탄을 받은 뒤 영점 사격을 위한 실탄 장전 후 준비 중 갑자기 자기 머리에 권총을 대고 한 발을 쐈다.”고 밝혔다. 이 경사의 주머니에서는 ‘미안합니다. 모든 잘못은 나한테 있습니다. 모든 걸 짊어지고 가겠습니다.’라고 쓴 유서가 발견됐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은행 PB센터 보안허술… 전담경비인력 없어

    국민은행 강남 PB센터 권총강도 사건으로 부자들의 ‘요새’나 다름없는 PB센터가 처음으로 털린 사실이 밝혀지자 은행에 비상이 걸렸다. 시중은행의 한 PB팀장은 “PB고객들로부터 ‘마음 놓고 센터에 들를 수 있겠느냐.’는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고 전했다.이번 사건은 강남 PB센터의 경비와 현금출납 과정이 허술해 발생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고객의 자산은 물론 가정사까지 훤히 꿰고 있는 PB들은 일반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고객이 방문한다고 연락하면 은행에서 차를 대신 보내주거나, 직원들이 센터 앞에서 대기해서 안내하는 게 보통이다.A은행의 PB담당 부행장은 “용의자처럼 다짜고짜 찾아와 ‘돈이 많으니 상담받겠다.’는 사람들은 사기꾼으로 의심받아 안내 데스크에서 걸러진다.”고 말했다.그러나 붙잡힌 강도 용의자 정모(29)씨는 강남 PB센터에 들어가서 8억원을 예치하고 싶은데 상담을 받고 싶다고 말한 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지점장을 만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보안과 경비가 허술했다는 얘기다. 사건 당시 청원경찰 1명이 건물 1층 국민은행 강남역지점에 근무하고 있었다.PB센터는 2층에 있다. 1억원을 용의자에게 준 과정도 석연치 않다.PB센터는 상담이 주업무이기 때문에 현금을 거의 보관하지 않는데다 있더라도 전표 작성 등의 절차를 거쳐야만 출금이 가능하다. 국민은행을 포함해 대개의 은행에서는 지점장이 전화로 부하 직원에게 돈을 가져오라고 시킬 수 없게 돼 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협박받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지 않은 지점장에게 직원이 1억원을 가져다 준 것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PB 관계자들은 말한다. 한편 용의자 정씨는 수배 중에 버젓이 해외에 드나들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 강남경찰서 유재선 강력계장은 23일 “7월 초부터 인터넷 상거래 사기 등 8건의 혐의로 수배됐던 정씨가 올 5월22일 중국으로 출국했다가 체코와 오스트리아 등을 거쳐 8월24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던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강남경찰서는 이날 정씨에 대해 특수강도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이창구·이재훈 기자 window2@seoul.co.kr
  • 은행 권총강도 잡혔다

    지난 20일 발생한 서울 역삼동 국민은행 강남PB(프라이빗 뱅킹·고액 자산관리)센터 권총강도 사건 용의자가 붙잡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22일 오후 5시쯤 경기도 안양시의 한 호텔에서 정모(29)씨를 붙잡았다. 조사결과 용의자는 범행 직후 대담하게도 현장 근처 모텔에서 하루를 머물러 경찰의 허를 찌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범행에 사용한 권총과 실탄 20발, 은행에서 빼앗은 1억 500만원 중 9500여만원을 압수했다. 정씨는 없어진 1000여만원으로 여자친구와 쇼핑을 하고 신분증 위조 및 오피스텔 계약 비용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범행동기 및 의문점 정씨는 지난 18일 오후 서울 목동의 한 실내 사격연습장에서 훔친 45구경 권총을 이용해 20일 국민은행 강남PB센터에서 강도질을 했다. 정씨는 사기·절도 등 전과 8범으로 전국에 수배 중인 상태였다. 경찰에서 정씨는 “자살하기 위해 권총을 훔쳤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총을 이용해 은행을 털기로 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수배 중인 몸이라 약 10일전 어머니가 별세할 때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장례도 치르지 못했다.”면서 “이를 괴로워하다 자살을 하려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씨의 진술을 범행동기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범행이 워낙 대담했던 데다 치밀한 사전 계획 없이 이뤄졌다고 보기에는 너무 정교했다는 얘기다. 굳이 구하기 어려운 총으로 자살하려 했던 점도 정확히 규명해야 할 대목이다.●강남 PB센터를 턴 이유는 경찰은 정씨가 우연히 국민은행 강남PB센터를 턴 것으로 보고 있다. 정씨는 경찰에서 “권총을 갖고 강남역에서 역삼역 방향으로 걸어가던 중 우연히 국민은행 PB센터가 있는 것을 보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주장했다.또 “사람이 많은 일반 창구은행보다는 고액 자산가를 관리하는 PB센터가 안전하다고 생각했으며 우발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은행 지점장을 여러 차례 미행하거나 사전에 은행을 답사한 적도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점장과 자연스럽게 긴 시간 동안 재테크 상담을 한 점으로 미루어 우연히 범행장소를 정했다는 주장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은행에 들어가 1시간 가까이 머문 이유 정씨는 사건 당일 은행 마감시각인 오후 3시55분쯤 손님으로 가장해 들어와 4시5분쯤 혼자 지점장실을 찾았다. 지점장과 30∼40분간 상담을 받는 척하다 갑자기 강도로 돌변했다. 정씨가 은행을 빠져나온 시각은 5시10분쯤이었다. 은행에 머문 1시간여 동안 정씨는 빠져나갈 상황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계획적으로 범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파악을 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검거과정 경찰은 정씨가 목동 실내사격장 등으로 전화를 걸 때 사용한 이른바 ‘대포폰’(무적폰)을 역추적해 정씨를 검거했다. 경찰은 정씨에게 대포폰을 배달한 택배회사 직원을 통해 정씨가 머문 서울 송파구의 L호텔을 확인했으며 이 호텔에서 정씨가 사용한 인터넷 접속 내역을 근거로 정씨의 애인 이모(27·여)씨의 신병을 확보, 정씨의 소재를 알아냈다.김기용 이재훈기자 kiyong@seoul.co.kr
  • 국민銀에 권총강도

    20일 오후 5시쯤 서울 강남구 역삼동 국민은행 강남지점 2층 PB센터에 30대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45구경 권총을 들고 침입해 실탄을 보여주며 직원들을 위협한 뒤 현금 1억 500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범인은 175㎝ 정도의 키에 짧은 머리 스타일이며 진곤색 양복과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사건 당시 은행 안에는 손님이 없었고 직원들만 7명이 있었지만 이들은 별다른 상해를 입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로선 단독 범행으로 보이며 범행에 이용한 차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경찰은 폐쇄회로(CC)TV 화면 등을 토대로 용의자를 쫓고 있지만 국민은행 측이 한 시간이 지나서야 경찰에 신고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대낮 강남서 은행 권총강도

    대낮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권총을 든 강도가 은행에 침입해 억대 현금을 빼앗아 달아났다. 20일 오후 5시쯤 서울 강남구 역삼동 국민은행 강남지점 2층 PB센터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권총을 들고 침입해 직원들을 위협한 뒤 현금 1억 500만원을 훔쳐 달아났다. 경찰에 따르면 범인은 이날 3시55분쯤 은행에 들어와 “8억원을 투자할 곳을 찾고 있다.”며 지점장 면담요청을 한 뒤 황모(48) 지점장과 1시간가량 상담을 하다 갑자기 권총과 실탄을 꺼내보이며 현금 2억원과 수표 1000만원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황 지점장은 “은행 금고에 이것밖에 없다.”며 직원을 시켜 현금 1억 500만원을 보라색 종이가방 2개에 담아 건넸다. 범인은 오후 5시10분쯤 강남역 방향으로 걸어서 도주했다. 황 지점장은 경찰에서 “범인은 175∼178㎝ 정도의 키에 짧은 머리, 진한 감색 양복과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둥글고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으며 서울 말투를 썼다.”면서 “범인이 우리 집과 가족을 알고 있어 신고하지 말라고 협박해 1시간이 지나서야 신고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건 당시 센터에는 손님이 없었고 직원만 12명 있었지만 별다른 상해를 입지는 않았다. 한편 경찰은 지난 18일 오후 9시30분쯤 양천구 목동사격장에서 발생한 권총 도난 사건 용의자와 이 범인이 동일인물인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은행 강도범과 인상착의가 비슷한 인물이 사격장을 찾아와 “실탄 사격장을 자주 찾는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관광홍보회사 직원인데 권총 사진을 찍게 해주면 홈페이지에다 홍보해 주겠다.”고 요구한 뒤 주인이 한눈을 파는 사이 오스트리아제 삽탄식 9㎜ 글락(GLOCK)17 권총 1정과 실탄 여러 발을 훔친 뒤 달아났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로선 단독 범행으로 보이며 사격장 주인에게 은행 폐쇄회로(CC)TV 화면에 찍힌 용의자와 권총 도난 사건 용의자를 보여준 뒤 두 사람이 동일인물임을 확인, 인근 지하철역과 주차위반 CCTV를 조사하고 있으며 현상금 1000만원을 내걸고 수배 전단지 10만장을 배포해 용의자를 공개수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고는 서울 강남경찰서 (02)552-0112로 하면 된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이기섭, 전국체전 남50m 권총 한국新

    이기섭, 전국체전 남50m 권총 한국新

    이기섭(28·경북체육회)이 제87회 김천 전국체육대회 사전경기로 열린 사격 남자 50m 권총에서 한국신기록을 세웠다. 이기섭은 11일 충북 청원종합사격장에서 열린 일반부 50m 권총 개인전에서 결선 합계 667.3점(575+92.3점)을 쏴 종전 한국기록 666.5점(진종오·573+93.5점)을 깼다. 이기섭은 지난해부터 10m 공기권총과 50m 권총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정작 도하아시안게임 대표 최종선발전에서는 8위에 그쳐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체첸 인권 보도 러시아 여기자 피살

    체첸에서 러시아군이 저지른 인권유린을 낱낱이 전해 온 여기자가 살해된 채 발견됐다. 보도에 불만을 품은 세력의 소행이 유력해 러시아의 언론자유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러시아 일간지 ‘노바야 가제타’에서 활동한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48)는 7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머리와 몸에 3발의 총격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 근처에는 권총 한 자루와 탄환 4발이 떨어져 있었다. 고(故) 폴리트코프스카야는 반전주의자로 그동안 러시아 정부군이 체첸에서 자행한 광범위한 민간인 인권유린 상황을 집중 다뤄 러시아 정부의 ‘눈엣가시’였다. 검찰은 피살 사건이 그녀의 언론 활동과 관련된 것이 분명하다며 아파트 내 보안 카메라 등 단서를 수집, 용의자 검거에 나섰다고 이타르 타스 통신이 전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과 숀 매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 인권 및 언론단체 등은 일제히 “러시아의 언론독립에 일격을 가하는 흉악 범죄”라고 성토했다. 폴리트코프스카야는 지난 2001년 10월에도 살해 위협에 시달리다 오스트리아 빈으로 망명한 적이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체첸 사태 대응을 비판한 책을 냈다. 또 2004년에 러시아 남부 북(北)오세티야 공화국의 작은 도시인 ‘베슬란’에서 학교 인질사건이 일어나 달려갔다. 하지만 기내에서 차 한 잔을 마신 뒤 중증 식중독에 걸려 취재를 포기해야 했다. 당시 동료들은 암살 기도로 추정했다. 앞서 2001년에는 체첸 전쟁 보도의 공로로 러시아 기자들에게 주는 아르촘 보로비크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모스크바 극장 인질사건 때 체첸 무장세력측의 특별 요청으로 중재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美학교 또 총기난사… 5명 숨져

    美학교 또 총기난사… 5명 숨져

    말 그대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자동차·전기 등 현대문명의 이기를 거부한 채 엄격한 금욕생활을 이어온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아미시 공동체의 마을학교에 2일 총을 든 30대 남자가 난입, 어린 학생 등 5명을 살해한 것이다. 학교 총기사건으로만 일주일새 세번째. 지난달 27일 콜로라도주 베일리에서 50대 남자가 여학생 6명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이다 1명을 살해한 플랫캐니언 고교 사건이 일어난 지 닷새 만이다. ●여학생만 골라 ‘처형하듯’ 범인은 이웃마을에 사는 32세의 트럭운전사였다.AP통신 등에 따르면 그는 이날 오전 10시쯤 트럭을 몰고 랭커스터 카운티에 있는 ‘웨스트 니켈 마인스 아미시 스쿨’로 향했다. 새벽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세 아이들을 버스에 태워 등교시킨 직후였다. 권총과 소총 등으로 무장하고 학교로 들어간 그는 남학생과 교사들은 내보낸 뒤 준비해 간 각목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대치하다 인질로 잡고 있던 10여명의 소녀들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3명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2명은 치료 도중 사망했다.6명은 중태다. 살해 수법도 충격적이었다. 여학생들의 발목을 서로 묶어 칠판 앞에 한 줄로 세워놓은 뒤 정면에서 ‘처형하듯’ 차례로 방아쇠를 당겼다. 경찰과 대치 중 범인은 아내를 불러 “20여년전 복수를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그가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고 전했다. 범인은 경찰 진입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5일전 플랫캐니언 고교 사건과 유사 미국에서는 지난 1999년 4월 콜로라도주 리틀턴의 콜럼바인 고교에서 학생 2명이 총기를 난사,15명의 학생과 교사가 숨진 참사가 발생한 뒤 10여건의 크고 작은 학원 총기사건이 잇따랐다. 경찰은 이번 사건의 범행 수법이 지난달 27일 플랫캐니언 고교 사건과 닮은꼴인 점에 주목, 유사 사건이 확산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현지 보안관은 “만약 이번 일이 플랫캐니언 사건을 모방한 것이라면 모두에게 불길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전미 학교안전·치안 서비스의 케네스 트럼프 회장은 “총기사건이 소형 마을학교나 대형 도시학교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면서 “무장 침입자들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우린 아니겠지.’라며 대비를 게을리 하는 학교와 치안 관계자들”이라고 꼬집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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