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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0 민주항쟁 22주년] ‘행복했던 그 날’ 되뇐 얼굴엔 짙은 그늘이…

    [6·10 민주항쟁 22주년] ‘행복했던 그 날’ 되뇐 얼굴엔 짙은 그늘이…

    1987년 6·10항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22년이 지난 오늘 서울광장에서 착잡함을 토로했다. 서울광장에서 만난 이들은 그날을 ‘행복한 날’로 추억했다. 온 국민이 함께 쟁취한 민주주의의 힘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강산이 두번 바뀌는 동안에도 촛불시위,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등을 겪으면서 스스로 세운 민주주의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10일 서울광장을 찾은 그들의 얼굴에는 6월항쟁의 빛만큼이나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어느새 기성세대가 되고… 당시 고려대 87학번 신입생이었던 김영남(41·여)씨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다. 김씨는 “시청앞 무대 위에서 ‘광야에서’를 부르던 것이 생생하다.”면서 “학생들이 주도하고 시민들이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했던 진정한 축제였다.”며 그 때를 기억했다. 운동권 학생은 아니었지만 원하는 것을 스스로 외치면서 실제 성취하는 희열을 맛보았기 때문이라고 김씨는 아스라이 그때를 되돌아봤다. 1987년 “독재타도, 호헌철폐, 직선제 쟁취”를 연호하며 6·10항쟁의 주역으로 섰던 대학생들은 대부분 40대 중년이 됐다. 항쟁에 참여했던 학생들의 모임인 ‘7080 민주화학생운동연대’ 회원들도 이날 서울광장에 섰다. 하지만 경찰이 에워싼 광장을 지켜보면서 “일생을 바쳐 일궈낸 민주화가 후퇴하는 것 같아 참담한 심정”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서울광장에 서게 되다니…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송세언(47)씨는 당시 3년차 직장인이었다. 송씨는 “22년 전 오늘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지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다.”면서 “그날 오후 6시 광화문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항의의 표현으로 경적을 울려달라고 전단을 돌렸는데, 6시 정각 일제히 경적이 울리는 것을 들으며 민주화가 오는 것을 느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하지만 송씨는 “투쟁은 우리 세대에서 끝내자고 친구들끼리 다짐했는데 다시 서울광장에 서게 되다니….”라며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 “광장이 통제되고 정부의 일방통행식 독주가 계속되는 걸 보면서 내가 뭣 때문에 온갖 희생을 치르면서 학생운동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며 고개를 떨궜다. ●민주주의 성취감에 젖은건 아닌지 유시춘 6월계승사업회 사무총장은 이날 ‘6월항쟁 계승·민주회복을 위한 범국민대회 준비위원회 결성을 위한 대표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대성당을 찾았다. 이원기 한대련 의장이 “현 정부는 권위주의적 치안통치와 사문화된 법과 관행으로 국민들의 권리를 옭죄고 있다. 6월항쟁 정신을 기리며 국민들이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며 대국민 호소문을 낭독하자 유 사무총장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는 22년 전 같은 장소에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으로서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대통령 후보지명 무효를 선언하는 문안을 직접 작성하고 발표했었다. 유 사무총장은 “22년만에 다시 민주주의를 되찾자는 선언문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면서 “우리 모두가 민주주의를 얻었다는 성취감에 젖어 있는 동안 상황은 악화됐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분향소를 만들고 수백만명이 질서정연하게 조문하는 모습을 보며 미래는 여전히 희망적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평가했다. 박건형 김민희기자 kitsch@seoul.co.kr
  • 현장에서 본 2009 베니스 비엔날레

    현장에서 본 2009 베니스 비엔날레

    │베니스 문소영특파원│ 이탈리아 북부 도시 베니스는 2년에 한번씩 6월만 되면 전세계 현대미술 작가와 큐레이터, 화랑 관계자, 취재진 등으로 북적댄다. 대중교통이라고는 수상버스가 전부이고, 물가도 비싸고, 숙소조차 찾기 쉽지 않은 다소 불편한 베니스에서 1895년 이래로 현대미술대전인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리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세계 경제 위기의 여파로 대회가 위축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베니스비엔날레는 여전히 괴력을 발휘했다. 역대 최연소 감독인 스웨덴 출신의 다니엘 범바움(45)이 올해 비엔날레의 주제 ‘세상 만들기’(Making Worlds)를 통해 젊은 작가와 거장들 사이에 조화와 화음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상·회화·조각 등 작품 배치도 조화롭게 영국에서 활동하는 독립큐레이터 이지연씨는 “2007년 비엔날레는 상업화랑에서 직접 구매가 가능할 만큼 지나치게 상업적인 작품이 많이 나왔다면 올해는 30, 40대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실험적인 작품이 많이 나왔다.”면서 “경제가 불황일 때 늘 좋은 작가와 작품이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씨는 1989년 미국불황, 1999년 아시아 등에서의 외환위기 때도 작품의 질이 좋았다고 말했다. 김선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젊은 작가뿐만 아니라 1920년대에 출생한 70, 80대 작가의 작품들도 전시돼 신·구 작가들 사이에서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면서 “영상과 회화, 조각작품 등도 적절하게 배치돼 어떤 곳은 어두운 전시장(영상)과 밝은 전시장(설치) 등이 잘 섞여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30대의 아르헨티나 출신의 젊은 작가 토마스 사라세노(36)는 자르디니 공원 안에 옛 이탈리아관을 개조해 만든 본 전시장에 밝고 흰 공간으로 가득 차도록 거대한 거미줄을 설치했다. 반면 또다른 본 전시장인 아르세날레의 입구에 들어서면 컴컴한 가운데 규칙적으로 사선으로 배열된 피아노 줄들이 부분 조명을 통해 마치 구름을 뚫고 지상에 떨어지는 햇빛처럼 드러난다. 개막을 하루 앞둔 6일 ‘특별 언급상’을 받은 브라질 출신의 작가 리지아 파페의 작품이다. 김 교수는 또한 “범바움 총감독이 관람자들의 눈높이에 대한 고민을 잘 처리했다.”고 말했다. 86세의 헝가리 출신 작가 요나 프리드맨은 천장에 실들을 얼기설기 연결한 뒤 그 위에 판지 등을 얹은 설치작품을 내놓았다. 멕시코 출신 작가인 헥터 자로라(1974년생)는 우주선 모양의 광고용 풍선을 천장에 매달아 놓았다. 검은 지팡이를 천장 높이에 걸어놓고 빛으로 그림자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리처드 웬트워스의 작품도 ‘수준 높은’ 관람객들을 위한 작품이다. 반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모섹와 랑가(1975년생)의 ‘스테이지(Stage)’ 작업은 바닥에 다양한 색깔의 실패나 맥주병, 디스코텍 반짝이 은공 등을 깔아놓은 ‘낮은 눈높이용’ 작품이다. ●전쟁·폭력·고문 등 사회· 정치적 풍자 작품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유쾌한 정치· 사회적 풍자 작품들도 있다. 호주 오페라하우스, 발리 해변의 레프팅 현장, 동남아시아 바다 등의 엉뚱한 사진에 ‘베네치아’라고 로고를 찍은 수 만장의 엽서를 제작해 관객이 가져가게 함으로써 비로소 작업이 완성되는 폴란드 출신 작가 알렉산드로 미르의 ‘베네치아’가 눈에 띈다. 또 잠비아 출신 작가 아나와나 할로바가 선진국이 제3세계 국가에 샘플로 제공하는 가솔린, 유기농 콩과 같은 사각 컨테이너 안에 사탕과 초콜릿 등을 넣어둔 ‘더 위대한 G8이 광고하는 시장기준’과 같은 작품도 비판적이다. 섹스를 소재로 해 전쟁과 폭력, 고문, 권위주의를 고발한 작품들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도 높다. 이탈리아관에서 펼쳐진 스웨덴 작가 나탈리 뒤버그의 클레이 애니메이션 ‘Experimentet’, 아르세날레 본 전시장에서 걸린 홍콩 출신 폴 챈의 ‘Sade for Sade’s Sake’라는 영상 작업 등이 그것이다. 뒤버그는 젊은 작가에게 주는 ‘은사자상’을 받았다. ●관객 줄세운 국가관 경쟁 치열 자르디니 공원에 위치한 국가관들의 경쟁도 볼 만하다. 이곳은 참가국들이 독립된 전시관을 설치해 자국의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자리이다. ‘관람객이 길게 늘어선 전시가 좋은 전시’라는 입소문이 난 탓인지, 각 국가관마다 관람객 줄세우기 경쟁도 이어진다. 스티브 매퀸의 베니스 비엔날레에 관한 비평을 담은 30분짜리 영상 ‘자르디니’를 선보인 영국관의 경우 전날 오전까지 예약을 하지 않으면 관람이 불가능할 정도. 네온, 밀랍, 브론즈 등 다양한 매개체를 활용한 브루스 나우만의 신·구작을 선보인 미국관도 30분 넘게 줄을 서야 했다. 미국관은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3개의 방향에서 국적 표시가 없는 청회색의 국기만 펄럭이는 프랑스관의 경우는 다소 황당한 느낌이 들었다. 러시아관에서는 ‘승리의 여신상’의 작은 유리 복제품에 러시아 군인의 실제 피를 분사하는 모습을 대형 프로젝트에 투사한 안드레 몰드킨의 작품이 주목의 대상이 됐다. 버려진 공간으로 인식됐던 아르세날레의 구석진 숲까지 전시장으로 활용한 것도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1991년부터 파리와 런던 등에서 활동하는 한국작가 구정아씨의 고목 작품이 숨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구씨는 자르디니 본 전시장 앞뜰에도 설치작업을 해놓았는데, 작품 표지판만 보이고 작품을 찾을 수 없어 곤혹스럽기도 하다. 푸른 잔디밭 위로 인조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하려면 적잖은 노력이 필요하다. 김선정 교수는 “아마 찾아가는 예술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대표 작가이기도 한 양혜규씨는 아르세날레 본전시장에 7점의 ‘광원(光源) 조각’을 내놨다. 한편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은 독일 조각가 토비아스 레베르거가 받았다. symun@seoul.co.kr ■ 사진작가 김아타 베니스 특별전 사진 1만장 뿌리기 퍼포먼스 배우 김혜수 깜짝 출연 눈길 1만장의 사진이 하늘에서 흰 눈처럼 쏟아져내렸다. 검은색 제복을 입은 작가 김아타(53)씨가 붉은색 천으로 감싼 10m 높이의 리프트 위에서 지난해 로마를 찍었던 사진을 한지에 인쇄해 뿌린 것이다. 5일(현지시간) 베니스 팔라초 제노비오 초록 잔디밭. 김아타의 전시를 구경왔던 100여명의 사람들은 떨어지는 사진들을 주우러 돌아다녔다. 허공에서 자신의 사진을 버리는 행위는 그에게 있어서 욕망을 버리는 행위이자 자유의 선언이었다. 그러나 땅 위의 사람들에겐 회색 사진 한장으로 압축된 ‘인달라 시리즈-로마’를 해체한 사진 1만장은 총천연색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자 욕망이었다. 욕망을 뿌리는 행위와 줍는 행위가 동시에 벌어지는 찰나의 순간에 일상의 수행을 표현하는 퍼포먼스는 끊이지 않고 진행됐다. 수원대 이주향 철학과 교수는 땡볕 아래 계속 절을 했고, 그늘에서는 미모의 동양 소녀가 아주 느린 동작으로 호흡을 했으며, 이탈리아 한 여인은 관람객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너는 누구냐-후 아 유’(Who are you)라고 화두를 던졌다. 계단을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서양 남자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관람객 사이를 돌아다니던 서양 여자, 김아타까지 6인 1조의 퍼포먼스였다. 더 넓게 보자면 사진을 줍기 위해 우왕좌왕 이리 뛰고 저리 뛰던 관람객도 퍼포먼스의 일부였을 것이다. 베니스비엔날레 연계 특별전 ‘AttAKIM-ON AIR’ 전시 개막을 알리는…. 지난해 53회 베니스 비엔날레 연계 특별전을 열게 돼 기쁨을 감추지 못했던 그이지만 6개월 남짓만에 “이제 베니스 비엔날레를 초월하고 싶다.”고 말한다.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버리고, 변화하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그는 “‘버린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 자신의 이미지가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어렵지만, 버리지 않으면 또한 변할 수 없다.”면서 “지독한 욕망이 또 찾아오더라도 또 버릴 것이고, ‘인달라’가 다른 곳으로 나를 데려가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는 명상적인 영상으로 유명한 빌 비올라를 능가하는 영상작업을 하겠다.”고도 말했다. 이번 특별전이 열리는 2층 건물 전관에서 퍼포먼스에 사용된 사진들을 겹쳐서 만든 ‘인달라 시리즈’들과 얼음조각 파르테논 신전과 마오쩌둥이 녹아내리는 과정을 찍은 실제하는 것과 허상에 관한 ‘아이스 시리즈’, 작가가 2002년부터 진행해온 ‘온-에어’ 프로젝트 작품 22점이 전시됐다. 이날 개막전에는 여배우 김혜수씨가 검은 색 드레스 차림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김혜수씨는 “2년 전쯤 잡지에서 김아타 작가의 ‘인간문화재’ 시리즈 사진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이날의 퍼포먼스와 함께 베니스 비엔날레를 보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symun@seoul.co.kr
  • [김형준 정치비평] 서거 정국과 ‘소통의 민주주의’

    [김형준 정치비평] 서거 정국과 ‘소통의 민주주의’

    수백만명의 깊은 애도속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끝났다. 하지만 고인에 대한 추모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전례 없는 애도와 추모를 몰고 온 ‘노무현 현상’의 본질은 무엇일까? 일부에서는 서민적 동질감과 현 정부의 실망감이 교차하면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극적으로 반전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설명한다.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미안함,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고인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했던 가치들에 대한 성찰이 한데 섞여 나타난 현상이라는 해석도 있다. ‘노무현 현상’에 대한 이러한 설명과 해석은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리서치플러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정치보복이다.’는 견해에 ‘공감한다.’는 응답은 59.3%인 반면, ‘그렇지 않다.’는 34.7%였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의 최고 업적을 묻는 질문에 ‘서민·국민을 위한 정치’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응답자들은 노 전 대통령이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고(13.0%), 서민을 대변하며(7.6%), 복지 정책을 확대한(1.5%), 서민과 친숙한 대통령(1.4%)이라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 청와대 기자들과 가진 송별 간담회에서 “퇴임을 하면 마주서서 대결하고 승부를 항상 겨뤄야만 했던 것에서 탈피하는 게 제일 하고 싶은 가장 큰 전환”이라며 “앞으로는 승부의 대척점에 서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애석하게도 고인의 이러한 꿈과 희망은 척박하고 모진 한국 정치 풍토속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노 전 대통령은 영면했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슬픔과 긴장이 흐르고 있다. 이러한 미묘한 흐름이 정부에 대한 끝없는 저항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사회 발전에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될지는 그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 다만 국민 통합의 최전선에 서야 할 대통령은 국민의 슬픔과 좌절을 위로하고 그동안의 국정 운영 방식과 노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죽음에서 드러났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깊이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민심의 키워드는 소통과 자성으로 집약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앞으로 국정운영 방식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86.2%가 ‘지금보다 국민의 여론 수렴과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전반적으로 나빠졌다.’는 주장에 대해 67%가 공감을 표시했으며, 국민 절반 이상(56%)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이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 대통령은 이러한 민심에 대해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되겠지.”하는 안이함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국민과 소통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장 소중한 덕목은 소통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따라서 현 정부는 “비민주주의적으로 결정하고 권위주의적으로 관철하려고 한다.”는 진보 진영의 비판을 흘려듣지 말고 문제 해결을 위해 고심초사해야 한다. 현 정부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으로 유난히 법치를 강조했다. 그런데 정부가 법치를 전면에 내세울수록 국민들은 권위주의 통치로의 회귀로 인식하고 있다. 그 이유는 법치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냉정하고 잔인하게 적용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국정 운영 기조의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정부 여당은 밀어붙이기 국정 운영을 포기하고 비판자의 목소리를 수용해서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보수는 성장·효율·경쟁을, 진보는 분배·균등·투명을 얘기하는데 진보의 가치는 잘못됐고 보수만 옳다는 식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보수의 입장에서 진보의 가치를 수용하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
  • 경찰 비리근절 인적쇄신 대책 일부조항 갈등

    경찰 비리근절 인적쇄신 대책 일부조항 갈등

    경찰이 잇단 비리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한 ‘인적쇄신 대책’ 가운데 일부 조항을 놓고 내부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 1월 ‘재직자 인적쇄신대책 추진계획 및 지침’을 마련했다. 본지가 1일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기존의 징계조치외에 별도로 내놓은 16개 항목 가운데 문제가 되는 조항은 ‘징계 전력은 없지만 상당한 위험이 있는 자’를 규정한 대목이다. 16개 조항에는 반복 직무태만 또는 지시명령 위반자, 허위사실 유포로 조직 화합을 저해하는 자, 근무성적평정 2년 연속 또는 3년 내 2회 이상 최하위 등급자, 사생활 문란자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징계방침은 잠재적으로 사고 위험이 있는 자들을 사전에 가려 ‘쇄신교육, 인사재배치, 집중관리’ 등 3단계 방식으로 관리한 뒤 변화가 없으면 퇴출한다는 것이다. 서별 교육대상 선정 심의위원회가 매년 6월·12월(연 2회) 이들 항목에 해당하는 경찰관을 가려낸 뒤 경찰종합학교에서 4주 동안 기본교육, 의식쇄신교육, 심화교육, 복귀적응교육을 실시한다. 교육 수료자들은 원 소속 경찰서에서 다른 경찰서로 발령받은 뒤 집중관리 대상자로 분류돼 서별 전담관리요원에 의해 복무 실태 등을 감찰을 받게 된다. 징계(정직 70점·감봉 50점·견책 30점·계고 15점 등) 누적 점수가 70점 이상인 경찰들도 이번 지침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한 경찰관은 “비리 경찰을 처벌하는 것은 관련 법 규정이 있다.”면서 “이번에 신설된 별도 조항은 지휘관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해 악용할 소지가 높다. 권위주의를 공고히 하려는 술책”이라고 성토했다. 한 간부는 “교육을 다 받고나서 ‘앞으로 시책 등에 대해 비판하지 않겠다.’는 등의 각서를 쓰도록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는 양심의 자유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징계 등 필수교육자 외에 사전 비리 차단을 위해 임의선정 대상자 16개 항목을 따로 정했다.”면서 “자의적으로 악용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순 있지만 단계별 심의 과정을 거치는 등 적법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이후] ‘사회통합 어떻게’ 전문가 진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어떤 형태로든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화두를 던졌다. 분열과 갈등, 대립에서 벗어나 화해와 통합의 사회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불행한 사태를 새로운 사회 변화의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래서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의 원인과 책임 규명이 전제돼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각계 전문가들로부터 노 전 대통령이 남긴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를 실천하기 위한 대안을 찾아봤다. ●정부서 진정어린 의지 보여야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한국 민주주의가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는 데 뜻을 같이하면서 ‘정부의 태도변화’와 ‘소통하는 정부’를 강조했다. 전북대 설동훈 사회학과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자체가 현 정부와의 갈등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정부의 근본적인 태도변화에 해결의 열쇠가 있다.”면서 “법질서를 준수해야 한다는 말은 백번 옳지만 특정한 사람들(정치권과 정권)의 이해관계를 위한 법질서 준수라는 의심을 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의 진정어린 의지를 보여주면 시민들도 이에 화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의 1차적 원인은 정부의 법치로 포장된 권위주의적 통치 태도에 있다.”면서 “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정부에 소통을 요구했지만 전혀 변화가 없었던 것이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는 “정부가 소통을 거부한다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후퇴한다.”면서 “현 상황이 바로 그렇다는 점을 정부가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효종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는 “국민통합이 화두”라고 전제하면서 “절제력을 유지한 상태에서 주장을 해나가야 진정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통합을 위해서는 이번 사태의 본질을 규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화해와 통합을 위한 전제조건이란 것이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적 억압이나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눈을 감고 무조건 사회를 통합하라는 것이 노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아니다.”며 이번 사태의 원인을 먼저 짚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일각에서는 검찰의 책임을 묻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정당한 수사라고 하는데 어떻게 통합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라면서 “핵심적인 시각차를 묻어두고 손을 맞잡자는 것은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피의사실이 충분히 보도된 만큼 그것이 진실이었는지 검찰 수사기록을 살펴보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고원 상지대 연구교수는 “지금은 사과와 유감을 표명할 때”라면서 “국민통합이 궁극적인 목표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짓밟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통합을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적 참여민주주의 전통” 이번 사태에서 한국 사회의 희망을 봤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았다. 시민들의 성숙한 추모 열기가 이를 방증한다는 주장이다. 김호기 교수는 “1987년 6월항쟁을 시작으로 2000년대 낙천운동, 탄핵반대집회, 촛불집회, 이번 추모열기까지 모두 한국적 참여민주주의의 전통으로 볼 수 있다.”면서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참여가 한국만큼 활성화된 나라도 없다.”고 분석했다. 설동훈 교수는 “폭력이 없었다는 것은 국민들이 스스로 만든 민주주의 질서를 깨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장희 교수도 “대부분의 추모행사가 자원봉사로 이뤄졌고 참여자들도 스스로 분향소에 나왔다.”면서 “민주주의의 기반이 탄탄한 만큼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민주주의의 기본’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국정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조언이 많았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추모 열기가 높다는 것은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크다는 얘기지만 그만큼 기대가 높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면서 “소통과 통합에 대해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가 깊이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박건형 유대근 오달란기자 kitsch@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弔辭 무슨 내용 담았나

    “화합과 통합을 반드시 실현하겠습니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민주주의를 다시 꽃 피우게 해주십시오.” 29일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國民葬) 영결식에서 공동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와 한명숙 전 총리가 조사(弔辭)를 통해 고인의 서거를 애도했다. 한승수 총리는 “애석하고 비통하다.”고 운을 뗀 뒤, “대통령님의 일생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모든 것을 바친 삶이었다.”고 노 전 대통령의 삶을 요약했다. 한 총리는 이어 “재임 기간 동안 대통령 스스로 낮은 곳에 내려와 국민과 함께하는 서민대통령이 돼 권위주의를 청산했다.”고 회상했다. 한 총리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이념·정쟁 논란이 증폭되는 것을 우려한 듯, “화합과 통합을 반드시 실현하겠다.”며 각종 갈등에 대한 타개 의지를 밝혔다. 한명숙 전 총리는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한다.’고 하신 님을 지키지 못한 무력함이 참으로 통탄스럽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자책감을 토해냈다. 한 전 총리는 또 “님은 실패하지 않았다. 님의 꿈을 따라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겠다.”면서 “분열로 반목하는 우리를 화해와 통합으로 이끌고 대결로 치닫고 있는 민족간 갈등을 평화로 이끌어 달라.”고 말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열린세상] 살아남은 자의 슬픔/김동률 KDI 언론학 연구위원

    [열린세상] 살아남은 자의 슬픔/김동률 KDI 언론학 연구위원

    1980년대 후반 이땅에 민주화란 말이 낯설었던 시절, 나는 신촌의 한 여자대학 강당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가했다. 거리에는 최루탄 냄새가 매캐하고 그로 인해 강요된 눈물이 멈추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날 결혼식의 가장 큰 이변은 축가였다. 초대된 소프라노는 칼날 같은 목소리로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어머님의 눈물이’로 시작되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불렀고 ‘창살 앞에 네가 묶일 때 살아서 만나리라’로 끝나는 대목에서 많은 하객들은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용기가 없거나 모질지 못한 사람들은 보다 우회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그들만의 타는 목마름을 표현해 냈고 그것은 점차 하나의 거대한 물결로 한국 사회를 휩쓸었다. 1987년 오뉴월은 뜨거웠다. 그해 오월, 민주항쟁의 폭발을 예고하는 사건들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엄청난 폭로가 나왔다. 5월 말에는 종교계·재야단체 등 2000여명이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란 긴 이름의 재야단체를 조직하고 민주항쟁을 선언했다. 집행위원장 노무현이라는 이름도 발견된다. 6월10일, 넥타이 부대까지 합세한 국민항쟁이 마침내 폭발했다. 잠실체육관에서 여당 대통령후보 지명대회가 열린 그 날, 전국에서 40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 나왔다. 거대한 시위 물결은 결국 집권여당의 ‘6·29선언’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정부 수립 이후 30년간에 걸친 권위주의 체제를 마감하고 우리 역사에서 민주화의 전환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1987년의 6월 민주항쟁은 이렇게 이뤄졌다. 그로부터 22년, 특별히 잔인하고도 슬픈 6월이 오고 있다. 거칠고 폭압적인 과거의 독재에 비한다면 지금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엄청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독재 경험과 민주화의 험난한 장정을 겪지 못한 세대들에게 지금의 민주주의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주어진 것으로 특별한 감흥을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재의 폭압을 딛고 6월항쟁의 경험을 겪은 기성세대는 그 쟁취의 경험과 의미를 결코 잊지 못한다. 4·19가 나던 해 세밑/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하얀 입김 뿜으며/열띤 토론을 벌였다/어리석게도 우리는/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우리는 모두 오랜만에 무엇인가 되어…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떠도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부끄럽지 않은가/부끄럽지 않은가/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김광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오늘, ‘부끄러워하라’는 구절이 새삼스럽다. 모든 것을 안고 이제 그는 갔다. 고요한 새벽길을 혼자서 차마 떨치고 갔다. 황금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한 줌 재가 되어 봄바람에 날아갔다. 만날 때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나보내는 지금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 그는 갔지만 우리는 그를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함께했던 뜨거운 환희와 감동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타는 목마름으로 함께 이룬 민주화의 감격은 서서히 빛바래지고 역사와 맞섰던 그는 스스로 역사가 되고 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그날의 뜨겁던 노래도 끊긴 지 오래다. 이 땅에 이제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대통령이기보다는 땀내 나는, 가까운 이웃 같았던 사람이 있었다. 가슴 벅찬 민주주의와 삶의 의미를 우리에게 곱씹게 해 준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가서 이제 전설이 되고, 우리는 살아남았다. 김동률 KDI 언론학 연구위원
  • [노 前대통령 국민장] 각계 인사 제언

    [노 前대통령 국민장] 각계 인사 제언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충격에 빠진 대한민국은 전국 분향소에서 뜨거운 눈물로 슬픔을 달랬다. 우리의 무심함을 반성하고 그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며 차츰 그가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행진을 다짐했다. 노 전 대통령을 보내며 각계 인사와 시민들이 전하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의 의미와 우리에게 남은 과제를 정리한다. ●이만섭 前 국회의장 - 이젠 원망 말고 미워 말자 고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용서와 화해다. 생전 진실하고 솔직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남긴 말은 ‘원망하지 마라. 모든 게 운명이다.’였다. 그런 만큼 이제는 서로 원망하고 미워하지 말자.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이나 사회 각계각층이 서로 용서하고 화합하고 힘을 합쳐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나 권위주의 해소를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 지역주의나 권위주의는 다 정치인들이 만들어 낸 것들이다. 여당도 야당을 포용하고 야당도 여당과 함께 국정을 의논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도 촛불시위 때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 각별한 체육 사랑 기억할것 평소 스포츠에 각별한 사랑을 보여 주셨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한데 이제는 다시 뵐 수 없다는 사실이 매우 애통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재임시 태릉선수촌을 손수 찾아와 선수들을 격려하시고, 지난 2007년에는 과테말라까지 오셔서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애쓰셨던 그 모습을 떠올리며, 우리 체육인들은 고인께서 미처 이루지 못한 올림픽 유치에 온 힘을 쏟겠다. 평소 작은 곳에도 사랑을 쏟았던 노 전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우리나라가 진정한 스포츠 선진국으로 발돋움하여 고인께서 꿈꾼 건강한 나라, 하나가 되는 사회가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또한 그곳 하늘에서도 힘을 실어 주시길 빈다. ●권영준 경희대교수 - 용서와 화해 정신 되새겨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서에서도 밝혔다시피 보수·진보를 뛰어넘는 사회 통합과 지역 갈등의 극복, 용납과 화해 등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 이런 과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추진할 것이냐에 대해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참여정부가 추진한 정책 가운데 방향은 옳았지만 미완성으로 끝난 과제들에 대해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제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민의를 충분히 수렴하지 못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고, 중소기업은 쓰러지고 있다. 국민들의 지지가 뒷받침되지 않는 밀어붙이기식 국정관리는 위험하다.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 - 국민의 분노·슬픔 직시해야 국민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현 정권의 정치보복과 강압통치가 낳은 비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출범과 동시에 촛불·미네르바·용산으로 이어졌던 현 정권의 폭압적 통치는 결국 전직 대통령을 벼랑 끝에서 밀었다. 현 정권은 국민들의 분노와 슬픔을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일방통행식 통치를 중단하고 고인이 평생을 바쳐 이룩하고자 했던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 특히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 양심적 비판세력에 재갈을 물리고, 민주세력을 탄압하는 폭압적 통치를 중단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것이 고인의 삶이었고, 뜻이고, 그를 편히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정윤철 영화감독 - 이제 고인과 소통하는 법 찾아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인 배형진군을 청와대에 초대했을 때 대통령은 점심으로 자장면을 함께했다. 배군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자장면이라는 걸 미리 챙길 만큼 따뜻한 분이었다. 재임 때 스크린쿼터를 축소해 대통령을 많이 원망했다. 되돌아보니 진보와 보수를 끌어안고 싶었던 한 이상주의자의 발버둥이었구나 싶다. 이제서야 대통령과의 소통 방법을 찾은 듯하다. 그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겨 주었다. 자신의 존재를 걸고 싸우지 않으면, 일상에서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뀔 수 없다는 것. 투표로 충분하다며 나머지는 정치 지도자가 할 일이라며 맡겨 놓았고, 책임 없는 비난만 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다. ●정장식 공무원교육원장 - 고인 고귀한 뜻 승화시켜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우리 모두 서로 사랑하고, 통합하고, 마음을 비우고, 용서해야 한다. 특히 공직자들은 시대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어려운 때일수록 자기를 희생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난관에 봉착하거나 국민이 도움을 요청해 올 때 뒤에서 뒷짐지지 말고 내 한 몸 던지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지금은 남북간 첨예한 대립 속에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경제적으로도 여전히 높은 실업률 등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런 때일수록 공직자들이 고인의 뜻을 기려 힘들고 낮은 곳에 있는 국민들을 섬기고 보살피며,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앞장서야 한다. ●오탁번 시인협회장 - 질서있는 애도는 민족의 힘 서거 후 1주일, 또 국민장 행사 동안 우리 국민들은 단합되고 질서 있게 슬픔을 표현했다. 이런 것이 우리 민족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국가적 비극을 계기로 이제 나를 떠나서 사회와 민족을 위해 내가 얼마나 올바른 행동을 했느냐를 고민하고 반성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앞으로 목전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서로를 배타적으로 대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정당들 역시 자신의 이익이 아닌 국민들의 이익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또 비극적 사건에 대한 이런 반응과 다짐들은 단순히 사회적 이슈로 잊고 넘어갈 게 아니라 가정과 지역 문제에까지도 향후 이어져 마음의 진정성을 보여줬으면 한다. ●김현 서울변호사회회장 - 슬픔 정치적 이용은 안돼 애도의 물결과 추모의 열기는 변화와 개혁의 상징이었던 지도자를 잃은 슬픔과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근거없는 음모론이 떠돌고 현 정권에 책임을 추궁하며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서는 안 된다. 화합과 공존을 강조하던 고인의 유지(遺志)를 저버리는 일이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는 도중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검찰의 수사진행 방식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검찰이 수사진행 상황을 언론에 연일 브리핑해 ‘여론몰이’를 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죄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피의자나 피고인의 인권은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 ●김인국 정의구현사제단 신부 - ‘사람사는 세상’ 큰뜻 이루자 비보를 들으며 주님승천대축일을 맞이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승천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참 난감하고 괴로웠다. 하지만 부활 승천의 감격은 아픔 후에 벌어진 하느님의 역사였다. 이레째 복잡한 도심이나 고요한 산골을 가리지 않고 잠시도 쉼 없이 도도하게 이어지는 500만명의 추모 물결과 이 땅 구석구석 높이높이 피어오르는 분향의 향기는 부활승천의 저 장엄했던 장면을 상상하게 해준다. 우리는 오늘 국민들의 뜨거운 눈물 속에서 희망의 싹을 발견했다. 노 전 대통령이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은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를 꼭 닮았다. 임의 간절했던 소망을 향하여 공손히 경배 드린다. ●오영호 무역협회 부회장 - 국민 화합으로 경제난 극복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온 나라를 충격과 비통함에 휩싸이게 한 슬픈 일이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고인의 유지를 헤아려 우리 사회에 혼란과 무질서가 초래되지 않도록 국민적 화합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는 어두운 터널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한다. 세계 교역 위축이 우리 경제에 직격탄이 되고 있는 가운데 환율과 유가도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에 따라 남북간의 긴장관계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고인에 대한 추모로 결집된 열정을 모아 경제 살리기에 힘써야 한다. 그것이 고인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 노무현 前대통령 영결식 생중계

    노무현 前대통령 영결식 생중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관련 추모 열기가 식지 않는 가운데 방송사들도 계속해서 관련 방송을 제작·방송하고 있다. 29일 오전 9시30분부터는 일제히 노 전 대통령 국민장 과정을 현장 중계할 예정이다. KBS 1TV는 이날 9시 뉴스를 특집으로 꾸며 1시간30분 동안 방송한다. 장례식 현장은 물론 서거 이후 수사 진행 상황 및 각계 반응도 함께 취재했다. 이어 오후 10시30분에는 추모특집방송 ‘노무현 떠나다’(연출 윤태호)를 마련했다. 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부터 장례식날까지 1주일 동안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을 밀착취재해 생전의 행보를 더듬어 본다. 또 200만명이 넘어선 추모행렬과 그의 죽음이 주는 사회적 메시지도 분석해 본다. 또 지역주의, 권위주의 등 한국사회의 병폐에 정면으로 맞섰던 고인의 정치적 행적도 함께 조명한다. OBS경인방송도 30일 자정에 특집좌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우리 사회의 과제’를 편성, 정치평론가와 정치외교학 교수 및 언론인 등을 통해 서거 이후 한국사회의 과제 등에 대해 집중 토론한다. MBC는 이날 오후 9시50분에, SBS는 오후 9시30분에 역시 특집 방송을 마련한다. MBC는 이미 지난 26일 ‘PD수첩’으로, SBS는 27일 ‘뉴스추적’을 통해 서거 관련 특집 보도를 한 바 있다. 이외에도 방송사들은 1주일 동안 수차례 뉴스속보·특보를 편성, 방송했다. 시청률 조사기관 TNS에 따르면 서거일인 23일과 다음날인 24일 기준, KBS는 총 904분, MBC는 824분, SBS는 643분 동안 노 전 대통령 서거 관련 방송을 편성했다. 한편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국민적 애도 분위기로 방송을 하지 않고 있던 KBS ‘개그콘서트’, MBC ‘무한도전’, ‘황금어장’, SBS ‘일요일이 좋다’ 등 예능 프로그램들도 30일부터는 정상적으로 방송될 예정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기업·국가에 변화를 준 그들의 힘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6년 올해의 인물로 ‘당신(You)’을 선정해 화제를 모았다. ‘당신’은 인터넷을 통해 디지털 민주화라는 새로운 사회 현상을 만들고 있는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협업하면서 창조와 혁신을 이뤄내는 ‘집단지성’은 그 후 기업 경영을 변화시키고, 정치적 실체로 드러나는 등 끊임없이 발달해왔다. 영국의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인 데모스의 선임연구원 찰스 리드비터는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이순희 옮김, 21세기북스 펴냄)에서 ‘집단지성’의 뿌리부터 미래의 방향을 다각도로 모색한다. 리드비터는 실제로 집필 과정에 집단지성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했다. 2006년 10월부터 책의 초고를 홈페이지에 올리고 네티즌들의 의견을 반영해 원고를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1년여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보였다. 출판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거나, 사람들의 아이디어로 책을 펴내 돈을 버는 것이 현명한지에 대한 논란도 생겼다. 그러나 대부분은 발전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아이팟 세대를 위해 콘텐츠를 자유롭게 옮기도록 제작한다거나, 논의를 확대하는 데 필요한 자료와 사례를 제공했다. 1장의 제목인 ‘우리는 공유한다, 고로 존재한다.’도 참여자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 자세한 의견을 달아준 덕에 책 내용이 더욱 알차졌다.”고 평가하며 “단순한 친목모임이 아니라 특정 신념을 가지고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지성은 기업의 경영, 국가 정책 등에 변화를 가져온다.”고 강조한다. 물론 집단지성을 맹신하는 것은 경계한다. 개인의 생각을 멈추고 그룹에 몰입하는 것은 집단지성이 아니라 군중심리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 “리더가 권위주의를 버리고 구성원들의 공동 소유권을 인정하며 개방적인 혁신을 받아들일 때 집단지성은 긍정적인 효과를 발한다.”고 저자는 조언했다. 저자는 미국의 네트워크 ‘무브온’, 컴퓨터 운영체계 ‘리눅스’, 컴퓨터게임 ‘월드오브크래프트’ 등 다양한 사례를 들며 집단지성의 가능성을 설명한다. 한국의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노사모’ 등 한국의 사례도 소개됐다. 1만 3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안도현 시인 조시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노제가 열린 29일 1시 20분쯤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안도현 시인이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라는 제목의 추도시를 직접 낭송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영전에 바침’이라는 부제의 이 시에서 안 시인은 “당신이 일어나야 산하가 꿈틀거려요/당신이 일어나야 동해가 출렁거려요/당신이 일어나야 한반도가 일어나요/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아아, 노무현 당신!”이라며 애도를 표시했다.  이날 서울광장은 노 전 대통령의 장의행렬과 노제에 참여하기 위한 국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경찰은 이날 낮 12시 30분쯤 서울광장에 모인 추모객들이 약 16만명이 운집됐다고 발표했으며,노제 주최측은 50만 명 이상으로 추정했다.  방송인 김제동이 사회를 맡은 노제 추모행사에서 가수 양희은과 윤도현밴드(YB) 안치환이 참석해 각각 ‘상록수’와 ‘후회없어’ ‘마른 잎 다시 살아와’를 불러 애도를 표했다.이어진 노제는 여는 마당,안도현· 김진경 시인의 조시,안숙선 명창의 조창,진혼무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다음은 시 전문.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무거운 권위주의 의자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끝도 없는 지역주의 고압선 철탑에서  버티다가 눈물이 되어 버티다가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편 가르고 삿대질하는 냉전주의 창끝에서  깃발로 펄럭이다 찢겨진, 그리하여 끝내 허공으로 남은 사람    고마워요, 노무현  아무런 호칭 없이 노무현이라고 불러도  우리가 바보라고 불러도 기꺼이 바보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아, 그러다가 거꾸로 달리는 미친 민주주의 기관차에서  당신은 뛰어내렸어요, 뛰어내려 으깨진 붉은 꽃잎이 되었어요  꽃잎을 두 손으로 받아주지 못해 미안해요  꽃잎을 두 팔뚝으로 받쳐주지 못해 미안해요  꽃잎을 두 가슴으로 안아주지 못해 미안해요  저 하이에나들이 밤낮으로 물어뜯은 게  한 장의 꽃잎이었다니요!    저 가증스런 낯짝의 거짓 앞에서 슬프다고 말하지 않을래요  저 뻔뻔한 주둥이의 위선 앞에서 억울하다고 땅을 치지 않을래요  저 무자비한 권좌의 폭력의 주먹의 불의 앞에서 소리쳐 울지 않을래요  아아, 부디 편히 가시라는 말, 지금은 하지 않을래요  당신한테 고맙고 미안해서 이 나라 오월의 초록은 저리 푸르잖아요  아무도 당신을 미워하지 않잖아요  아무도 당신을 때리지 않잖아요  당신이 이겼어요, 당신이 마지막 승리자가 되었어요  살아남은 우리는 당신한테 졌어요, 애초부터 이길 수 없었어요    그러니 이제 일어나요, 당신  부서진 뼈를 붙이고 맞추어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흐트러진 대열을 가다듬고 일어나요  끊어진 핏줄을 한 가닥씩 이어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꾹꾹 눌러둔 분노를 붙잡고 일어나요  피멍든 살을 쓰다듬으며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슬픔을 내던지고 두둥실 일어나요  당신이 일어나야 산하가 꿈틀거려요  당신이 일어나야 동해가 출렁거려요  당신이 일어나야 한반도가 일어나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아아, 노무현 당신!    안도현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노 前대통령 서거] 노무현의 공과 1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실험’의 정치인이었다. ‘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치판에서 소수파를 자처했고, 지역 정치를 해소한다며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 정치에 뿌리박힌 지역주의에 맞섰고, 권위주의를 깨려 했다. 적지 않은 이들이 그의 이런 모습을 평가했다. 정치인으로서 성공한 주요 배경이었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개인사가 있었기에 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험’이 늘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법이다. 전진을 이룬 듯 제자리에 맴돈 듯, 그의 실험은 평가에 앞서 논쟁의 한가운데 서곤 했다. 권위와 권위주의 논쟁이 대표적이다. 금권 정치 극복을 위한 진일보한 환경을 조성한 반면, 스스로는 그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실험은 후진들에 의해 계속되겠지만, 그의 삶은 실험의 소용돌이 속에서 산화했다. ■ 민주주의 발전 “연대와 사회 정의를 이상으로 하는 진보라야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란 보통사람들이 힘쓰고 사는 세상이다. 진보란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기 펴고 사는 세상이다. 지금은 절반의 민주주의일 뿐이다.” ‘민주주의’에 관한 한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에 가장 많은 설명과 주석을 내놓은 대통령이었다. 그 개념도 이전의 것과는 상당히 ‘차별화’된 것이었다. 그러기에 노 전 대통령은 ‘노무현식 민주주의’를 직접 설명하려 애썼다. 전에 없이 ‘국민과의 대화’를 애용했다. 언론을 통한 전달과 ‘재해석’에는 거부감을 드러냈다. 노 전 대통령은 화두를 던지고 스스로 재해석을 내놓는 방식을 선호했다. 예컨대 민주주의의 발전 측면에서, 노 전 대통령은 “통합과 개혁에 가치를 두었다.”고 했다. 간단하고 명료해 보이지만, 그의 민주주의 소신은 늘 논쟁의 대상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이 설명하고 구현하려던 민주주의가 여러 측면에서 복합적인 모양새를 띤 것도 한 이유다. 노 전 대통령은 “보수주의는 국내·대외 정책에서 대결주의를 취한다. 평화는 진보주의가 가깝다.”, “오늘날의 한국은, 지난 20년간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해온 사람들의 성과물이다.”, “역사에는 중립이 없다. 우리 좋은 역사 만드는 데 동업하자. 절반까지 온 민주주의 역사를 완성하자.”며 끊임없이 화두를 제시했다. 국민들의 ‘개념 따라잡기’가 부족하다고 느낀 때문인지, 설명이 덧붙여지고 논쟁이 뒤따랐다. 이 작업에 힘이 부쳤는지, 노 전 대통령은 “국민의 의견과 대통령의 의견이 다를 때, 때론 다르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참 어렵다.”고도 했다. 이런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노 전 대통령의 공과는 셈하기가 쉽지 않다. 민주주의 발전이 진보의 확장 또는 진보의 발전과 연관돼 있다면, 노 전 대통령이 바라는 민주주의는 여전히 절반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할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는 ‘국민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대통령’,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려 했던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권위주의 타파 ‘비주류 노무현’은 대통령 재임기간 중 ‘주류’들과 끊임없이 맞섰다. 주류 진영의 ‘성역’과 ‘금기’를 타파하기 위해 때로는 무모한 도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취임 직후인 2003년 2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판사 출신의 강금실 변호사를 임명했다. ‘파격 인사’였다. 진보성향의 여성 변호사를 장관 자리에 앉히자 검찰은 반발했다. 노 전 대통령은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전국 검사와의 대화’를 가졌지만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포기하지 않았고, 검찰 내 상명하복의 근거가 됐던 ‘검사 동일체 원칙’을 폐지했다.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해 상사 명령에 복종한다.’는 검찰청법 조항을 ‘소속 상급자의 지휘 감독에 따르도록 한다.’고 고쳐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게 했고, ‘이의 제기권’도 신설했다. ‘국정원 쇄신’ 역시 노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내세웠던 공약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말 국정원의 국내 사찰업무를 중지시키고 도청을 금지하는 개편안을 마련했다. 국내 정치정보에 투입됐던 많은 요원들이 대테러와 산업보안 분야에 배치됐다. 청와대 내부 분위기도 이전 정부와 많이 달랐다. 노 전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 비서관이나 담당 행정관을 배석시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도록 했다. 청와대 내 온라인 업무관리시스템인 ‘e-지원’을 통해 비서관은 물론 행정관까지 노 전 대통령과 정책 토론을 벌였다. 퇴임 직후 봉하마을에 돌아가 주민들과 함께 어울려 생활한 모습은 국민에게 신선함을 주었다. 역시 전례없는 일이었다. 이같은 모습은 ‘서민 대통령’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그러나 그는 임기 내내 공식·비공식 자리에서 거침없는 발언을 내놓아 ‘가볍다.’는 인상을 심어줬고, “권위주의 타파가 아닌 (대통령의)품위를 떨어뜨렸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사설] 전직 대통령 비운의 역사 고리를 끊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온 국민은 깊은 슬픔에 잠겨 있다. 빈소가 차려진 봉하마을에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분향소까지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고, 전 세계도 노 전 대통령 서거에 충격과 슬픔을 함께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에 깊은 애도를 표하면서 유가족에 삼가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한다.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뒤 봉화산에서 바위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지키려 했던 것은 도덕성과 자존심이었던 듯하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600여만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의 멍에를 짊어지고 살기에는 63세라는 노 전 대통령의 나이가 젊었을지 모른다. 형에 이어 부인, 아들, 딸까지 모두 비리에 연루돼 있다는 의혹은 진실 여부를 떠나 밤잠을 이루기 어려울 정도의 심적 부담이었을 것이다. 유서에서 ‘앞으로 받을 고통이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대목은 심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그대로 보여준다. 다만 심적 고통을 극단적인 방법으로 단절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금할 길 없다.노 전 대통령은 도덕성을 정치 밑천이자 상징으로 살아온 인물이다. 탈권위주의를 몸으로 실천했고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깨끗한 정치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내리기에 인색할 국민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기업체 사장을 죽음으로 몰고갈 정도로 거침없고 거친 표현으로 민주주의를 한단계 성숙시킨 자신의 업적을 희석시켰던 측면도 있다. 링컨을 닮고자 했으면서도 링컨식 국민 화합보다는 승부사적인 편가르기를 해서 비난을 사기도 했다.노 전 대통령을 갑작스럽게 잃은 우리의 아픔과 슬픔은 너무나 크다. 전직 대통령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대통령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가 가야 할 바람직한 길을 제언해 줄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몇 안 되는 원로다. 그런 전직 대통령을 떠나보냈다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고, 국민적인 불행이다.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우리가 할 일은 수난과 비운의 전직 대통령 역사 고리를 단절시키는 일이다. 이제는 전직 대통령 본인 또는 가족들이 비리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거나 구속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이다. 아울러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정치·사회적인 시스템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박연차 수사와 관련해서도 노 전 대통령이 관련된 부분은 수사가 중단되었다고 하더라도 천신일씨 등 다른 권력 비리는 끝까지 파헤쳐 비리척결의 귀감을 삼아야 한다.땅콩농장 농부와 빈농의 아들, 고집스러운 점, 인권 관심 등에서 닮은 꼴로 미국의 지미 카터와 노 전 대통령은 화제를 모았다. 노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환경운동도 카터의 해비탯 운동과 비슷한 점이 많다. 하지만 카터는 백악관을 떠난 지 30년이 지났음에도 의회에 나가 에너지 문제에 고견을 낼 정도로 존경받고 있다.우리는 왜 카터와 같은 전직 대통령을 갖지 못하는지, 우리 사회의 무엇이 잘못돼 있는지를 냉철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전직 대통령이 국가적 큰 일이 있을 때 고견을 내놓을 수 있고, 국민들이 그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국민적인 과제라고 본다.
  • 중견 만화가들 한국 만화의 역사와 미래를 말하다

    중견 만화가들 한국 만화의 역사와 미래를 말하다

    한국 만화 100주년이다. 일반적으로 1909년 6월2일 대한민보 창간호 1면에 실린 이도영 화백의 시사만화를 한국 근대 만화의 출발점으로 본다. 한국 만화는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100년을 향한 도약을 꿈꾸고 있다. 관련행사도 다채롭게 열린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호흡하며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왔던 김동화(59) 화백, 이희재(57) 화백, 박재동(56) 화백이 지난 20일 남산 자락의 서울애니메이션 센터 인근 찻집에서 한국 만화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만화는 무엇인가. 김동화 만화는 간식이다. 안 먹어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만화는 새로운 면을 보여주며 생활을 즐겁고 윤택하게 만든다. 이희재 영양가 있는 간식이면 더욱 좋겠지. 작가 입장에서 보면 그리는 대상이 무엇이든 친철하고 쉽게 표현하는 게 쉽지 않다. 만만하고 쉬운 것 같지만 노하우와 내공이 있어야 한다. 박재동 그림과 시와 연출 등이 집약된 게 만화다. 예술 양식의 정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폭발력 있게 무엇을 전달할 수 있는 매력적인 방법이다. 작가는 그것을 위해 고통스러운 즐거움을 누린다. 만화는 정말 사랑스러운 매체다. →한국 만화가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닌데. 김동화 내가 가진 한국 만화 이미지는 대체로 회색 풍경이었다. 비바람, 눈보라 등 알록달록한 화려함보다 무채색이다. 사회적 여건이 어려웠다. 사전 검열이 가장 그랬다. 창작하는 사람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을 찾아내야 하는데 검열에 걸리고 수정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이어졌다. 칼을 제대로 그릴 수도 없었고, 찢어지거나 때묻은 군복을 입은 군인을 그려서도 안 됐다. 박재동 어릴 때 부모님이 만화방을 했다. 남들은 만화를 골라서 봤지만 나는 무차별적으로 봤다. 너무 행복했다. 그런데 학교 선생님들은 만화방에 가지 말라고 했고, 학부모들은 만화를 찢어버렸다. 단속 때문에 부모님이 잡혀가기도 했다. 만화는 천시받고 금기시됐다. 또 울며겨자먹기로 재미 없는 책도 사야 할 정도로 독점 자본식 출판사가 횡포를 부렸다. 그런 사회적 편견과 출판사의 횡포가 검열과 함께 우리 만화 발전을 막았다. →지금은 만화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됐나. 김동화 굉장히 달라졌다. 과거에는 오해가 많았다. 만화를 보지 않는 세대가 사회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직접 보지 않고 나쁘거나 반사회적이라고 재단했다. 우리는 굉장히 억울했다. 지금도 동시대 작가를 보면 동료라기보다는 전우라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현재는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사회를 이끌어간다. 만화를 봤고, 좋아했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희재 조선 시대 500년 동안 글 중심의 유교적 사고 속에서 살아 왔다. 글을 알아야 현자가 되고 출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림은 가벼운 것이라는 의식이 생겼다. 그림 그리는 사람을 환쟁이로 낮춰 불렀다. 많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500년 관습이 유전자처럼 조금은 남아 있는 것 같다. 박재동 과거에는 한글도 천하게 생각해 한글 소설은 불량한 것으로 여긴 적이 있었다. 요즘은 소설을 권장한다. 입시에 나오기 때문이다. 영상 시대인데 글을 우위에 두는 것은 여전한 것 같다. 그렇지만 교과서에 만화가 실리고, 만화학과도 생기다 보니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아마 시험 문제로 만화가 출제되면 더욱 달라질 것 같다. 내가 대학에 갔을 때 어머니는 만화방 아들이 대학에 갔다고 동네방네 소리치셨다(웃음). →한국 만화의 기념비 같은 작품을 꼽는다면. 이희재 각 시대마다 대중들과 호흡한 작품들을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김종래의 ‘엄마 찾아 삼만리’는 1950~1960년대 히트했다. 전쟁 뒤 이산가족이 많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1960년대 김산호의 ‘라이파이’는 우울한 현실을 잊게 하는 환상적인 영웅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1970년대는 이상무의 독고탁이 절대적이었다. 서울 변두리를 무대로 우리들의 동생 같은 주인공을 내세워 당시 정서를 듬뿍 담았다. 1980년대에는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있다. 과거와는 달리 비호 같은 날렵한 템포로 질주하는 까치를 통해 사람들은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1987년 민주화의 물결과 함께 허영만이 한국 최초 이데올로기 만화인 ‘오! 한강’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만화 장르에 스포트라이트가 쏠리고 있다. 김동화 당연한 현상이다. 이제는 콘텐츠 시대다. 즐기는 시대인데 그 중심에 만화가 있다. 글과 그림을 함께 가지고 있는 만화로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영화, 게임도 만들 수 있다. 만화가 뜨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중국이 발표한 5대 국가 사업에 만화와 애니메이션 육성이 들어가 있다. 이희재 문화 시대에는 원천 소스가 중요하다. 1990년대 이후 문화·예술 관련 창작품 한 개가 자동차 10만 대를 파는 것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다. 문화의 힘을 알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만화는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투자 대비 파급 효과가 가장 큰 고부가가치의 장르다. 수많은 창작 만화가 나왔을 때 어떤 작품이라도 문화 폭탄이, 문화적 영약이 될 수 있다. →이제 한국 만화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김동화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었던 일본 만화는 1960년대에 문학과 겨뤄보자며 양장에 평론까지 붙인 고급 만화를 내놓기도 했다. 우리는 검열 등 외부 여건과 싸우는 데 시간을 소모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노하우와 실력을 쌓았다. 실력으로 따지면 우리 작가들은 세계적이다. 이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좋은 작품을 내놔야 할 때다. 내부 혁명이 있어야 한다.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 아동·청소년에게 집중했는데, 이제는 아저씨·아줌마·할아버지·할머니를 위한 작품도 늘려야 한다. 100명의 작가가 있다면 100개의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박재동 100명의 작가, 100개의 이야기는 정말 중요한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주로 만화가가 되는데 나중에 보면 늘 스토리에서 부딪히게 된다. 만화의 본질은 스토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한계를 일찍 드러내게 된다. 이희재 작가들에게 그림은 기본이다. 그런데 그림은 내용을 담는 그릇일 뿐이다. 우리가 먹는 것은 그릇에 담긴 밥이다. 맛있는 만화를 짓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하고 또 창작을 할 때 몰입해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선사할 수 있다. 스토리가 부족하면 좋은 스토리 작가와 협력하면 된다. 예술가는 혼자 하려는 성격이 강하지만 좋은 결과를 위해 만남과 협력의 폭을 넓혀가는 게 필요하다. →창작 만화를 발표할 통로가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동화 예전에는 출판물만 중요하게 여겼지만, 요즘은 인터넷이라는 바다와 같은 잡지가 있다. 만화 독자는 늘었지만 만화 잡지를 사는 독자는 줄었다. 그들은 인터넷으로 만화를 본다. 환경이 변한 것이다. 적극적으로 인터넷을 활용해야 한다. 지금은 적응하는 시기라 힘들지만 곧 극복할 것으로 본다. 이희재 인터넷은 만화시장의 문제이자 해법이다.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진다. 하지만 창작자가 스스로 설 때까지 안전 장치가 필요하다. 독자를 구축하고 성과가 이익으로 돌아와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작가가 전체 5% 정도다. 그 폭을 적어도 20~30%로 늘려야 한다. 창작 인력을 발굴하고, 일선에 오래 머물게 하며 내공을 키워 거인이 될 수 있게 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게 만화계와 정부의 숙제다. →한국 만화의 미래는 어떠한가. 김동화 60억이라는 120배 시장이 있는 세계로 나가야 한다. 일본을 비롯한 세계의 만화 작가들이 한국 만화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역사가 있고, 아픔이 많은 민족이라 필연적으로 만화 왕국이 될 수밖에 없다. 전국에 만화 관련 학과가 140~150개가 있다. 해마다 1000명 정도의 만화 인력이 배출된다. 지금 당장은 일본과 차이가 있겠지만 빠른 시일 내에 만회할 것이다. 박재동 노인들 사랑 이야기를 담은 만화가 등장할 정도로 폭이 넓어졌지만 일본 만화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분도 있다. 나는 미래를 준비하자는 말을 하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찍은 스필버그가 성공한 것처럼, 우리 어린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만화를 그리는 풍토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 그렇게 10년을 키우면 더욱 탄탄해지지 않겠나. 이희재 우리 만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국 만화 100년이지만 우리가 가진 생각을 신명나게 풀어낸 것은 10년 정도밖에 안 됐다. 일제 시대, 권위주의 정부 시절 탄압,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사건에 이르기까지 힘든 과정을 겪었다. 지금은 세계에서 만화를 가장 활발하게 지원하는 나라가 될 정도로 상황이 달라졌다. 가을에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도 출범한다. 이제 만화가들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정리 홍지민 강병철기자 icarus@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김동화 화백 한국형 순정만화의 아버지.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만화 100주년 위원회 공동위원장이다. 대표작으로는 ‘요정 핑크’, ‘기생 이야기’, ‘황톳빛 이야기’, ‘빨간 자전거’ 등이 있다. 부인이 한승원 작가로 만화가 부부다. ●이희재 화백 우리시대 최고의 리얼리스트. 우리만화연대 대표를 지냈으며 한국만화 100주년 위원회 집행위원장이다. 대표작으로 ‘악동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간판스타’, ‘저 하늘에도 슬픔이’ 등이 있다. 소설가 이문열과 ‘만화 삼국지’를 펴내기도 했다. ●박재동 화백 국내 대표 시사만화 작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교수이자 한국만화 100주년 위원회 공동위원장이다. 대표작으로는 ‘목 긴 사나이’, ‘만화 내사랑’, ‘정치야 맛좀 볼텨’ 등이 있다. 애니메이션 ‘오돌또기’를 만들었다.
  • 조갑제·진중권 반응…김동길의 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이 전해진 23일,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논객들이 사뭇 다른 태도를 보여 입맛을 씁쓸하게 만들고 있다.특히 노 전대통령에게 자살하거나 감옥에 가야 한다 취지의 글을 남겼던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에게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40여일 전 “자살하거나” 글에 비난 집중  김동길 명예교수는 지난달 15일 ‘먹었으면 먹었다고 말을 해야죠’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가 5년 동안 저지른 일들은 다음의 정권들이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도덕적인 과오는 바로잡을 길이 없으니 국민에게 사과하는 의미에서 자살을 하거나 아니면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서 복역하는 수밖에는 없겠다.”라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김 명예교수의 글 내용이 알려지자 여러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검색 순위 상위에 김 명예교수의 이름이 올라갔다.  김 명예교수의 홈페이지는 이날 오후 2시30분까지 다운돼 열리지 않고 있다.노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 접속이 가능했던 오전 10시30분쯤에는 “본인 묘나 찾아봐라.” “말이 씨가 됐다.”는 등 누리꾼들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그러나 김 명예교수는 아직까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또 대표적인 보수 논객 조갑제 씨는 홈페이지에 올린 ‘노무현의 자살,남상국의 자살’이란 제목의 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사망한 지금 많은 국민들은 5년 전의 南 사장 자살을 떠올렸을 것이”이라며 “인간의 생명은 지구보다 무겁다고 한다.그 생명의 값에는 차별이 없다.대통령을 지낸 노무현,사장을 지낸 남상국씨의 목숨은 똑같이 소중한 것이다.마찬가지로 노무현씨 장인의 목숨과 그로 인하여 목숨을 잃은 11명의 양민들 목숨값도 같다.”고 또다시 처가쪽의 좌익 전력을 결부시켰다.  나아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가족은 고 남상국 사장에 대하여 조문한 적도 사과한 적도 없었다.남 전 사장의 가족이 노 전 대통령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사건도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함께 종료된 셈”이라고 말했다.  특히 노 전대통령의 죽음을 다룬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 “서거는 자살로 고쳐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전과 14범도 멀쩡히 대통령 하는데…”  진보진영의 대표 논객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도 진보신당 당원 게시판에 애도의 뜻을 밝히며 동시에 현 정권에 대한 쓴소리도 내뱉었다.진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추억’이란 제목의 글에서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소개한 뒤 “케네디가 TV 덕분에 대통령이 됐다면,인터넷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최초의 인물이 노무현.그의 당선엔 역사적 의미까지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별로 인기는 없지만,노무현 정권이 한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사회 곳곳에서 ‘권위주의’를 무너뜨린 것은 그의 가장 큰 업적”이라며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사회는 커뮤니케이션의 양상을 바꿔야 한다.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삽질하던 시대의 권위주의는 창의력과 상상력이 곧 생산력이 되는 미래에는 적합하지 않다.그런 의미에서 계급장 떼고 토론하려 드는 대통령의 체통 없는 태도에는 평가해줄 만한 구석이 있다.”고 했다.  진 교수는 이어 “한나라당이야 자기들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나,10년 전에 나라경제를 말아먹은 분들이 버젓이 그런 얘기하는 것을 들으면,그 얼굴 가죽으로 구두를 만들고 싶은 엽기적 충동을 느끼게 된다.”고 비난했다.  이어 그는 “(노 전 대통령이) 도덕적으로 흠집을 남긴 것은 유감스러운 사실”이라면서도 “전과 14범도 멀쩡히 대통령 하고 쿠데타로 헌정 파괴하고 수천억 검은 돈 챙긴 이들을,기념공원까지 세워주며 기려주는 이 뻔뻔한 나라에서 목숨을 버리는 이들은 낯이 덜 두꺼운 사람들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법학자 2인의 우리시대를 향한 두가지 시선

    법학자 2인의 우리시대를 향한 두가지 시선

    어려서부터 공부깨나 한 사람치고 ‘판·검사가 돼라.’는 소리를 안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부모님은 물론 담임 선생님, 친인척까지 주문처럼 외던 ‘판·검사가 돼라.’는 말에는 다양한 함의가 들어 있다. 개인의 영광과 출세, ‘개천의 용’들에게는 집안의 부흥, 전관예우로 표현되는 막대한 미래의 확보된 부, ‘백’이 생겼다는 안심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판·검사의 신성불가침의 높은 지위와 명예 등등이다. 대통령도 탄핵하는 선진국형(?) 사회가 됐으니 말이다. 그러나 ‘판· 검사가 돼라.’는 주문에는 결정적으로 ‘법이 한 사회에서 어떤 형식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배제돼 있다. 과거와 달리 이것이 사회적 부담이 되는 시대가 됐다. 한 사회를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로서 법을 다루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실존적인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 불멸의 신성가족 】김두식 지음 창비 펴냄 ‘불멸의 신성가족’(창비 펴냄)은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내부자로서 사법부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과 사법 시스템의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1년간 판·검사 25명을 인터뷰해 써낸 연구논문이다. 익명을 전제로 한 이 인터뷰는 사법시스템 내부의 썩은 부분을 솔직하게, 또 고스란히 드러낸다. 어디가 잘못됐고, 어디가 곪았는가. 왜 판사와 검사, 변호사는 서로 끌어 주고 밀어 주면서 ‘사법 패밀리’를 형성하고, 불멸의, 신성불가침의 가족으로 재구성 될 수밖에 없는지 말이다. 법조계는 매우 좁은 동네다. 대체적으로 같은 대학을 나와 사법연수원에서 같이 교육을 받고, 동기로 묶여서 패키지로 돌아다니는 극소수의 엘리트 집단이다. 이러다 보니 거절할 수 없는 돈이나 청탁 등이 법조계 내부에 존재하게 된다. 이를테면 부장판사로 모시던 선배가 변호사 개업을 해서 참석하게 된 회식자리에서 상품권이나 돈봉투가 뿌려지면, 그 자리에서 받기를 거부하는 청렴한 법조인이 ‘또라이’로 찍힐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새끼 웃기는 놈이더라.’는 평판이 돌면, 승진도 어렵고 아울러 부장판사나 대법관으로 옷을 벗은 뒤 변호사 개업을 했을 때와 달리 큰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다. 신영철 대법관이 촛불재판에 개입해 소장 판사들로부터 사퇴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이 왜 벌어질 수 밖에 없는지 파악할 수 있다. 판·검사가 되는 것과 대법관이 되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명예와 부가 걸려 있었다. 비교적 청렴하다고 평가되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경우를 보자. 대법관을 마치고 변호사를 지내던 2000년 9월부터 2005년 8월까지 5년 동안 472건의 사건을 수임하고 60억 여원의 수임료를 받았다. 사회적으로 전관예우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신동 소리를 듣던 고시생이 바늘구멍 같은 사법시험을 뚫고 나면, ‘마담 뚜’를 거쳐가야 하고, 결혼이란 거래를 마치면 선배 판사들의 빡빡한 도제식 수업을 통해 표준화되고 규격화된 법조인으로 거듭난다. 이 과정에서 권위에 도전하거나 기존 질서를 흔드는 성향의 사람들은 도태되고, ‘원만한’ 사람들만 살아 남아 최고의 승자가 된다. 이런 역경을 거쳐 법원을 졸업하면, 법원 브로커들에게 밥줄을 대주는 전관 변호사 개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사법개혁이 왜 필요한지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몸에 사무치도록 느껴진다. 고압적인 사법부 내부를 들어다 보는 재미에 책을 언제 다 읽었는지 모르게 마지막 장을 넘길 수 있다. 저자는 서울지검 검사를 경험한 법학과 교수로, 2004년 ‘헌법의 풍경’이란 책을 내 법조계에 평지풍파를 일으킨 이 분야에 경륜 있는 저자다. 1만 3000원. 【 보노보 찬가 】조국 지음 생각의 나무 펴냄 보노보 원숭이가 있다. 종명이 파니스쿠스로 아프리카 콩고 밀림지대에서 산다. 이 종은 원숭이의 대명사인 침팬지(종명 트로글로디테스)와 완전히 구별되는 영장류다. 보노보 원숭이는 집단내 수직적인 서열을 만들지도 않고, 평등한 문화를 유지하며, 무리 내에 병자나 약자를 소외시키거나 구박하지 않고 보살피고 끌어안는다. 인간적 특성으로 평가되는 동성애적인 경향까지 있어 인간과 가장 유사한 영장류로 평가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 세계가 침팬지와 비슷하다는 거다. 무한경쟁, 수컷들의 권력투쟁, 전쟁, 유아학살, 남성지배 등의 모든 특징이 그렇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의 ‘보노보 찬가’(생각의 나무 펴냄)는 ‘정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평화적인 보노보 원숭이와 같은 길을 찾아보자고 말한다. 저자는 현재 한국 사회가 자본의 이익추구를 위해 인간과 자연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을 으깨고 갈아서 상품화하는 ‘악마의 맷돌’이 통제되지 않은 채 빠르고 거칠게 돌아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 양산과 청소년 실업, 열악해지는 복지환경을 우려했다. 한국 사회가 이런 식으로 돌아가다 보면 ‘21세기 공산당 선언’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촛불집회와 관련한 법 적용을 두고 권위주의 정부시절로 돌아가는 인상을 주는 형법의 남용을 우려했다. 특히 ‘불법집단행위에 관한 집단소송법안’ 등은 집권세력의 막가파식 복수극의 대본에 불과하고, 집회와 강경진압의 악순환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비판한다. 역사적 경험 속에서 우리 민족과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 한국인들은 ‘방어적 민족주의’와 ‘단일민족론’ 등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 왔지만, 지금에 와서는 이런 성향이 인종차별적인 사상으로 전환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하라는 주문도 나온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나 양심적 병역거부자, 한센병 환자, 여성, 급증하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에 대한 너그러운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1만 1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정순원 삼천리 대표 경영서 출간

    정순원 삼천리 대표가 20일 경영서 ‘경제학자 CEO, 현장에서 경영을 말하다’를 출간했다. 경제학자 출신으로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녹여 담았다.정 사장은 이 책에서 ‘권위주의형 최고경영자(CEO)’의 시대는 갔다고 단언했다. 그는 “권위주의적 CEO는 외로운 산장에 있는 노인과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라면서 “상사가 부하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설명했다.신입사원 선발 방법부터 중견사원들의 애사심 향상 전략, 임원의 역할과 조직관리 비결 등이 책에 망라됐다. 그런가 하면 “환 헤지 계약은 장기로 하지 말 것”이라거나 “원가 점검은 상시적으로 할 것”, “구조조정을 해야 할 때 최악의 상황이더라도 연구직은 내보내지 말 것” 등 경험에서 우러나온 철학도 담았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씨줄날줄] 네루-간디 가문/함혜리 논설위원

    인도 ‘건국의 아버지’ 자와할랄 네루의 웅변은 지금도 역사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다. 그는 1947년 8월14일 자정 직전 이런 명연설을 남겼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세상 사람들은 잠들어 있겠지만 인도는 생명과 자유를 위해 깨어날 것입니다.” 인도 국민회의를 이끌던 마하트마 간디가 비폭력 무저항운동을 전개한 것과 달리 강경한 투쟁을 벌이다 8차례나 체포되고 9년동안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던 네루는 독립 후 초대 총리에 취임해 1964년 죽을 때까지 지위를 고수했다. 인도 정치에 큰 영향력을 미친 ‘네루-간디 가문’의 영광은 이렇게 시작됐다. 네루는 다양한 인종과 종교, 카스트, 지역, 문화를 아우르는 범민족주의를 기본 통치이념으로 국가의 통합을 유지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미국과 소련 중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는 비동맹 외교로 제 3세계의 지도자를 자임하며 인도의 국익을 챙겼고 자주 국방에도 힘썼다. 인도의 자존심을 한껏 치켜세워 준 네루에 대한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물려받은 것은 네루의 무남독녀 인디라 간디다. 영국에 유학 중 페로제 간디와 결혼하고 귀국해 정계에 입문한 인디라는 1966년 당시의 총리 샤스트리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인도 최초의 여총리가 됐다. 녹색혁명을 성공적으로 실시하는 등 국민들의 신임을 받았지만 권위주의적인 정치로 권좌에서 물러나는 비운을 맛본다. 1980년 재집권에 성공하지만 1984년 10월31일 시크교도 경호원들에 의해 총을 맞고 암살당했다. 연방의회는 만장일치로 인디라 간디의 아들 라지브 간디를 총리로 선출했으나 그 역시 1991년 선거를 지휘하던 중 암살당하고 만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라지브 간디의 아들 라훌 간디가 최근 인도 총선에서 국민회의당 승리의 일등공신으로 단숨에 정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하버드대를 나와 인터넷 회사를 경영하던 라훌은 귀공자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빈민촌에서 밤을 지새우고 지구 두 바퀴에 이르는 거리를 누비며 총선유세를 펼쳐 젊은 유권자들을 사로잡았다. 이변이 없는 한 40세가 되는 2년 후 만모한 싱의 뒤를 이어 총리직을 맡게 될 전망이다. 네루-간디 가문의 영향력이 얼마나 지속될지 관심거리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사방이 유리벽 행정도 투명하게

    사방이 유리벽 행정도 투명하게

    6일 낮 서울 성북구 보문로 삼선동 5가. 햇빛을 반사해 번쩍이는 12층 유리 건물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직육면체를 벗어나 살짝 웨이브를 탄 건물의 외형에는 개성이 넘쳤다. 청사 뒤 개운산공원과 성신여대 캠퍼스가 늘씬한 건물에 싱그러움을 더했다. 외국계 금융회사의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실내 공간은 ‘투명행정’을 강조하기 위해 유리벽과 유리문이 즐비했다. ●북카페·옥상정원 주민들의 쉼터로 올해로 개청 60주년을 맞은 성북구가 2년 6개월여의 공사를 마치고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서찬교 구청장은 7일 준공식을 앞두고 6일 청사 내부를 살짝 공개했다. 건물 밖에서 내부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단번에 오른 건물 3층. 사방이 유리로 된 승강기로 갈아타니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살펴볼 수 있다. 한 직원은 “건물 어디에서도 민원인이 직원들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면서 “구청장실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6층의 구청장실은 집들이 축하객들로 벌써부터 붐볐다.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한 장애인부터 스님, 환경운동단체 회원들까지 20여명이 첫 손님이다.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청장실에선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 오히려 감성적인 냄새가 피어오른다. 5층 하늘마루는 평소 콘서트와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원목으로 꾸며진 공연장은 아늑함을 풍긴다. 지상12층, 지하4층 규모의 청사에는 북카페와 옥상정원, 쉼터마당 등 주민편의시설이 가득하다. 12층 북카페와 옥상정원은 전망대 역할도 겸한다. 아늑한 쇼파에 앉아 책을 읽다가 창밖을 바라보면 시원한 북악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문을 열면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옥외 정원이다. 청사 곳곳에는 민원인을 배려한 흔적이 스며있다. 은행과 함께 여권과, 건축과, 교통행정과, 민원정보과가 한자리에 모인 2층에선 ‘원스톱 행정’이 가능하다. 3층에는 언어·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통역 중계서비스센터가 자리한다. 새 청사는 정부로부터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1등급)’ 예비인증도 받았다. ●민원부서 한층에 주민 배려 돋보여 성북구는 7일 오후 2시 새 청사 준공식을 갖고, ‘미래도시 2020 성북비전’을 선포한다. ▲미래형 첨단도시 ▲푸른 친환경도시 ▲함께하는 문화·교육도시 등 청사진을 담았다. 구민의 날 기념식을 겸한 자리에는 구를 상징하는 주민 60명도 초청했다. 성북구가 1949년 서울의 9번째 구로 개청한 해에 태어난 ‘성북둥이’ 황근필(60·정릉3동), 구금순(60·장위2동)씨를 비롯해 구두수선공, 건설노동자, 간호사, 환경미화원, 소년소녀가장 등 다양한 계층의 주민들이 초대받았다. 서 구청장은 “새 청사는 성북 사람들이 일군 결실이며 새로운 60년을 향한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청사 완공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25년된 낡은 콘크리트 건물을 헐고, 토지용도변경을 한 뒤 청사를 짓는데 꼬박 2년 6개월이 걸렸다. 구청장과 직원들은 청소집하장으로 쓰이던 하천복개지에 가건물을 지어 업무를 봤다. 덕분에 서울시 구청 가운데 가장 협소한 공간(3830㎡)에 효율적으로 랜드마크를 세울 수 있었다. 사무용 집기도 예전의 것을 거의 그대로 재활용하고, 일자리창출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제주지사 주민소환 추진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가 6일 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추진을 선언했다. 제주군사기지반대 범도민대책위원회와 강정마을회 등 지역 29개 단체가 참가한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는 이날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전국적으로 하남시장과 시흥시장, 광역의원 등에 대해서 주민소환이 추진돼 왔지만 광역단체장은 김 지사가 처음이다. 이들은 “김 지사가 도민의 여론을 무리하게 끌어내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했고 최근 정부와 체결한 양해각서(MOU)에서 ‘평화의 섬’ 제주를 ‘군사기지의 섬’으로 만들 수 있는 빌미만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또 “그동안 해군기지와 관련해 주민갈등 해결에는 진심 어린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 등 과거 권위주의시대에나 있을 법한 관제 여론몰이 등을 일삼았다.”고 덧붙였다. 김 지사의 주민소환이 이뤄지려면 제주지역 만19세 이상 41만 6490여명의 10%인 4만 1649명의 서명을 받아 임기 만료 1년 전인 다음달 말까지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에 청구해야 한다. 이와 관련, 김 지사는 이날 “해군기지는 국가가 추진하는 안보사업이며 자치단체도 지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노력과 병행하여 일정 부문 책무도 갖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추진 과정에 국가의 목적과 제주의 이익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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