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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륜·폭력·패륜 난무 막장드라마보다 더한 그리스의 귀신들

    불륜·폭력·패륜 난무 막장드라마보다 더한 그리스의 귀신들

    귀신이나 신이나 국어사전에서는 모두 ‘초인적이고 초자연적 위력을 가진 존재’로 정의된다. 그런데 왜 우리가 제사로 모시는 조상들은 귀신이라고 하고 제우스, 헤라, 프로메테우스, 아르테미스는 신이라고 할까. 그들을 ‘그리스 귀신’이라고 부르면 왜 이상할까. 그리스 철학자 크세노파네스는 그리스 신들이 인간과 같은 존재이고 음모·계략·살인·절도 등 범죄와 폭력을 일삼는 부도덕한 존재라고 비판했고, 플라톤도 “신화는 인간의 비이성적인 면을 부채질한다.”고 신화를 거부했다. ●권선징악조차 빠진 그리스 신화 그리스 신화의 문제점을 지적한 시각은 고대 그리스부터 있었지만, 우리에게 그리스 신화는 학생들에게는 강력 추천되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서양 문화, 예술, 지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신화를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도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이 있고, 알에서 나왔다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하늘에서 떨어진 황금알이 변한 가락국의 시조 수로왕 등 신적인 존재가 있지만 그리스 신화만큼 추앙받지는 못한다. 진보 법학자로 꼽히는 박홍규 영남대 교수는 그의 최신작 ‘그리스 귀신 죽이기’(생각의나무 펴냄)에서 거꾸로 뒤집어 그리스 신화를 파악한다. “그리스 신화는 여러모로 유해하다.”는 박 교수는 가부장적 권위성, 세속성, 오락성이 뒤섞인 그리스 신화를 불륜, 폭력, 복수 등이 난무하는 한국의 막장 드라마에 비교하기도 한다. 그래도 한국의 막장 드라마가 조금 더 낫다. “극단적인 요소들의 뒤범벅으로 오락성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적어도 그 외양만은 권선징악이라는 최소한의 도덕성을 띠는 반면 그리스 신화에는 그것조차 빠져 있다.”는 것이다. 제목처럼 ‘그리스 신’을 ‘그리스 귀신’이라고 하는 것은 비판하는 차원을 넘어서 부정에 가깝다. 그리스 신화에서 주체인 자기는 신과 영웅들이고, 남성에다 지배자이며, 그리스이고 서양이다. 객체인 타자는 괴물이나 여성, 피지배자, 그리스가 아닌 비서양이다. 게다가 사악하고 음탕한 존재들로 묘사된다. 신이나 영웅은 항상 ‘한번 보면 반하고야 마는’ 선과 미를 갖춘 얼짱에 몸짱이다. 그리스 신화는 태생부터 당혹스럽다. 우주와 신들의 탄생에 대해 가장 체계적이고 신뢰할 만하다는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는 ‘카오스(혼돈)’에서 ‘에레보스(암흑)’와 ‘닉스(밤)’가 생기고, 그 둘 사이에서 ‘아이테르(하늘)’와 ‘헤메라(낮)’가 생겼다고 한다. 결국 에레보스와 닉스는 형제 사이인데, 그들에게서 하늘과 낮이 나왔다니, 패륜이라는 것인가. 또 닉스는 혼자서 운명과 죽음, 고뇌, 운명의 여신과 죽음의 여신 등의 자식을 낳는데, 이는 죽음이 여성에게서 비롯됐다는 것을 드러내는 극단적인 가부장적 태도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모습을 한 전지전능한 신 제우스만 봐도 그렇다. 절대 권력의 상징인 제우스는 정복하고자 마음 먹은 대상은 성별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부인은 첫번째 지혜의 여신 메티스부터 마지막인 여동생 헤라까지 무려 다섯명이다. 지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다른 여인인 레다를 유혹하기 위해 백조로 변신했고, 황금비로 변해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의 딸 다나에에게 내려 페르세우스를 낳았다. 그러나 전쟁과 이성의 여신 아테나에게는 정절을 강요한다. 아테나가 고취하는 미덕은 정치적 영지, 용기, 조화, 규율, 자기억제이며 처녀의 전형이다. 인간 여성의 기원도 차별적이다.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은 프로메테우스 때문에 화가 난 제우스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판도라를 만들게 했다. ‘신통기’에는 판도라를 ‘파멸을 가져다주는 여자들의 종족’으로 표현한다. 괴물을 무찌르는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영웅의 모습은 다분히 제국주의적 이미지이다. 폭압성과 무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정의를 실현하고 세상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정당화된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는 그 안에 신과 인간, 영웅과 괴물, 남성과 여성 등의 차별구조를 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유도하고 있다. ●“신화에 대한 열광은 정신적 제국주의” 저자는 “그리스 신화가 원초적 본능을 숨김 없이 드러내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것이라고 예찬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음란, 강간의 폭력주의만이 아니라 전제주의, 제국주의, 침략주의, 귀족주의, 영웅주의, 군사주의, 물질주의, 권위주의, 성차별주의, 남성주의, 기계주의 따위를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 신화에 대한 열광은 비윤리적 행태와 서구 중심의 사유를 퍼뜨리는 ‘정신적 제국주의’라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동양에 대한 편견과 폄훼가 묻어 있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제기하는 서구 제국주의의 지배를 합리화시키는 수단이고,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근원적 힘일 뿐이다. 저자는 민족과 계급, 성별 등의 투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리스 귀신이 추방돼야 한다.”고 꼬집는다. 책은 그리스 신화를 읽는 것조차 막아 서지는 않는다. 다만 읽으려면 비판적인 시각으로 읽기를 권한다. 더 멀리는 평화적 질서를 뒤흔드는 서구의 폭력성을 이해하고 서구중심적 사유를 넘어서는 길로 인도한다. 1만 2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열린세상] 북한의 ‘선군헌법’ 대비책 마련해야/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북한의 ‘선군헌법’ 대비책 마련해야/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최근 공개된 북한의 새 헌법은 ‘선군헌법’(先軍憲法)으로 불러야 하겠다. 개정헌법에서는 공산주의를 삭제하고 ‘선군사상’을 주체사상과 함께 핵심적 이념으로 채택했다. 선군사상은 군부를 체제 유지의 근간으로 삼고 모든 자원을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함하여 군사력 증강에 집중하겠다는 노선이다. 또한 ‘선군헌법’은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3대 세습을 추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봐야 할 것이다. 북한의 새 헌법 채택 이후 전개될 상황에 우리가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다. 새 헌법 채택 이후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더욱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기 위해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도 가동하고 있다고 스스로 밝혔다. 파키스탄의 경우 2000개의 원심분리기로 연간 60㎏의 핵무기용 농축우라늄을 생산했다. 현재 북한은 파키스탄으로부터 원심분리기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정확한 숫자는 확인되지 않지만 북한이 200개의 원심분리기를 지난 5년간 지하에서 가동했다면 핵무기 하나를 충분히 만들 수 있는 30㎏가량의 농축우라늄을 확보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북한의 핵 보유가 기정사실화되면서 과연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는 것만이 능사인지 국민의 안보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미국 핵우산이라는 ‘약속어음’에만 의존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도 철저한 군사대비태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방예산을 둘러싸고 벌어진 국방부 내부의 논란은 국민을 실망시켰다.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제창한 ‘고효율 다기능’ 군대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국방비의 적정 수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국방비는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삼고 초당적으로 합의해 나가야 한다. 우리의 국방비는 최근 GDP의 2.7%라는 매우 낮은 수준에 계속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분단상태에서 북한의 핵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정도 수준의 국방비를 쓰고 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미국은 GDP의 4%를 국방비로 편성하고 있다. ‘평화헌법’을 갖고 있는 일본은 GDP 1%를 국방비로 쓰지만 그 총액은 우리 국방비의 두 배에 달한다. 우리의 국방비는 GDP의 3.5%선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이 수준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지적한 대로 ‘비효율과 낭비의 낡은 관행’을 과감히 도려내고 철저한 국방개혁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선군헌법’은 최근 더욱 악화되고 있는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을 피해 나가기 위해 ‘인권조항’을 신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선군노선을 고집할 경우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과 식량난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급격히 증가하는 탈북자의 숫자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북한인권재단’의 설립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최근 이명박 정부가 북핵 문제를 일괄타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한 ‘그랜드바겐’ 구상에 북한 인권 문제를 제외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선군헌법’ 채택 이후 북핵 문제는 장기화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북핵, 경제협력, 인권 문제를 삼위일체로 묶는 ‘한반도형 헬싱키 프로세스’를 국제공조 하에 추진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정권 하에서 채택된 ‘유신헌법’이 민주주의와 인권에 얼마나 부정적이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전체주의 국가 북한에서 채택된 ‘선군헌법’은 ‘유신헌법’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남북관계와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에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북한 내부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북한의 새 헌법 채택 이후 전개될 상황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 나가야 할 때이다.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시론] 기업의 투자활성화 이끌어 내려면/김필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시론] 기업의 투자활성화 이끌어 내려면/김필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지난해 국제 금융위기가 최고조에 달하면서 대외의존도가 유난히 높은 우리 경제의 미래도 캄캄하기만 했다. 그러나 정책당국의 파격적 금리 인하와 재정지출 대폭 확대 등이 효과를 내면서 1년 사이에 우리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180도 바뀌었다. 향후 회복 속도가 가장 빠를 것이라는 전망도 잇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경기회복세가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에 기인하는 데다가 정작 중요한 민간기업의 투자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투자가 이렇듯 장기간 부진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대내외 환경의 불확실성이 확대됨에 따라 투자에 따른 기대수익률이 저하된 데 기인한 바가 크다. 세계화로 인한 신흥공업국의 급부상과 해외시장에서의 무한경쟁은 투자에 따른 기대수익률을 저하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기업들이 처한 대외여건의 악화와 함께 대내적으로도 경기변동 주기가 더욱 짧아져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통계를 보면 1990년대 국내경기의 확장기는 초반의 22개월(1990년 8월~1992년 5월)과 중반의 39개월(1994년 11월~1998년 1월)로 비교적 장기간 지속되었다. 이에 반해 2000년대 이후에 와서는 경기 확장기의 지속기간이 훨씬 짧아져서 최대 20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경기변동 주기의 단축은 기업의 수익변동성을 확대시켜 투자 증가세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투자부진의 지속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어렵게 하여 우리나라의 고용률을 떨어뜨리고 이는 다시 민간소비와 투자의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빚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투자 관련 정책의 일관성 유지와 더불어 규제환경의 개선을 통해 불확실성을 해소시키는 것이다. 시장조건을 반영하여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투자를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처럼 강제로 종용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부작용이 크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법인세를 줄여주고 기업관련 규제도 많이 완화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별 효과가 없음을 지적하면서 기업의 무사안일을 탓하기도 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지금까지 내놓았던 투자활성화 대책들을 다시 거두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최근 정부가 들고 나온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 폐지와 최저한세율 인상도 이러한 맥락에서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다소 근시안적인 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법인세 인하와 규제완화에 따른 투자확대 효과를 바라기에는 아직 시기적으로 이른 감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제 금융위기가 겹쳤기 때문에 현 정부의 투자활성화 대책들이 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고 단언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정부의 정책기조 전환은 투자결정에 필수적인 정책방향의 예측을 어렵게 하고 기업이 직면한 불확실성만 더욱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가뜩이나 대내외적으로 불확실성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들의 눈에 정부의 이러한 행태가 어떻게 비칠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지금은 좀 더 참을성을 가지고 투자활성화 정책을 더욱 확대해야 할 때이다. 기업에 대한 질타는 그 후에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김필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CEO 칼럼]다양성이 경쟁력이다/김중겸 현대건설 사장

    [CEO 칼럼]다양성이 경쟁력이다/김중겸 현대건설 사장

    기성세대는 ‘튀는 것’을 싫어한다. 개인의 취향이나 다양성을 존중하기보다는 통제와 획일주의에 익숙하다. 직장 동료들과의 회식 자리에서도 개인의 기호보다는 ‘통일’을 선호한다. 좌장 격인 사람이 먼저 주문하면 으레 그 음식이 곧 그날의 메뉴가 된다. 이런 분위기에선 남들과 다른 행동, ‘튀는 것’을 감행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흔히들 ‘다르다’와 ‘틀리다’라는 말을 혼동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A와 B는 다르다.’고 해야 할 부분에 ‘A와 B는 틀리다.’고 사용한다. 다름과 틀림은 뜻이 다르다. 다름은 같지 않음을 말하고, 틀림은 옳지 않음을 뜻한다. 다르다고 해야 할 때 틀리다고 한다면 차이가 있는 것을 잘못됐다고 하는 분명히 잘못된 어법이다. 단순 실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름을 틀림과 동일시하는 것은 나와 다른 주장, 다른 생각, 다른 모습을 꺼리고 배척하는 심리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권위주의 시대에 나고 자란 우리 기성세대에게 다양성은 곧 혼란과 무질서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21세기는 창조의 시대이고 창조는 다양성에서 온다.’는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획일주의로는 한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기업경영도 마찬가지다. 일사불란한 통제 대신에 다양성에 기초한 창의경영이 시대의 화두다. 기업마다 직원 개개인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유발하기 위한 체계구축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인재의 기용만 해도 다양성의 확충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가 됐다. 세계를 상대하는 기업이라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소비자의 욕구를 읽어 내고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성별과 나이, 인종을 뛰어넘어 다양한 인재를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해졌다. 국제 금융시장을 선도하는 미국의 투자회사 골드만삭스는 84개 언어를 구사하는 150여개 국적 출신의 직원들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이 회사의 경쟁력은 성(性)과 종교, 국적, 문화 등 배경이 다양한 인재풀에서 나온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다양성의 중요성은 건설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건설업체도 이젠 다양한 인재풀과 창의적 콘텐츠로 승부하는 시대다. 해외시장도 중동, 동남아뿐 아니라 아프리카, 중남미 등으로 다변화해야만 한다. 단순 시공도 탈피해야 한다. 대체에너지, 물관리사업, 원자력사업 등 저탄소 녹색성장분야와 U시티, 기획제안형 개발사업 등 신수종 사업분야를 끊임없이 발굴해 다양한 콘텐츠를 확보하고 이종(異種) 사업간 크로스오버에 성공하는 기업만이 명함을 내미는 시대가 됐다. 기업들이 획일성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모색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획일적 선택으로는 끝내 경쟁에서 도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847년 아일랜드 800여만명의 인구 중 절반 이상이 사망하거나 해외로 이주했던 대기근도 획일적 선택이 초래한 참사였다. 당시 아일랜드인들은 오랜 노하우를 토대로 주식인 감자 가운데 단 하나의 우량종만 재배했다. 너도나도 우량종에만 매달리다 이 우량종이 특정 병충해에 맥없이 쓰러지자 아무런 대안 없이 아비규환에 빠지게 된 것이다. 지금 당장 성과가 좋다고 해 다른 품종을 배척하며 다양성을 포기한 결과다. 그러니 다양성은 예측불허의 위기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이정표이자 생존방식인 셈이다.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
  • [시론] DJ 이후 시대의 리더십/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론] DJ 이후 시대의 리더십/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다차원의 시대 선도자였다. 한국 정치사에 여러 번의 획을 그으며 여러 번 시대변화를 선도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국가건설이라는 큰 획을 긋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산업화라는 큰 획을 그은 데 비해, 그는 민주화라는 획, 지역균형발전이라는 획, 남북화해라는 획 등 여러 차례 획을 그었다. 역대 대통령 중 누가 더 위대한지 비교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그가 수차례에 걸쳐 시대변화의 주인공이었다는 데 이의를 달 수 없다. 물론 그 명암이 분명히 있고 아직도 논란을 낳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다양한 족적을 남기며, 항상 긍정적이지만은 않았지만 시대구분의 여러 계기를 제공했다. 민주화는 김 전 대통령이 선도한 시대변화 중 첫 번째이고 가장 널리 칭송받는 것이다. 권위주의적 탄압을 인동초(忍冬草)처럼 참으며 민주화를 견인한 공로는 참으로 크고 결정적이었다. 야당 지도자로서 추락한 국회의 권위를 지키고 꺼져 가는 정당정치의 불씨를 살리며 민주화를 향한 희망을 불어 넣은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유신 시대와 제5공화국 시대에 이어 민주화 시대가 등장할 수 있었다. 그가 이끈 두 번째 시대변화인 지역주의 구도의 형성은 칭찬보다는 비판을 더 받는다. 1987년 민주 대 반민주 대립구도가 깨지자 김대중·김영삼·김종필 3인은 각기 지역주의 감정을 조장하며 지역주의 시대를 열었다. 물론 김 전 대통령은 오래 차별받아 소외된 호남을 살려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나름대로의 의도를 지녔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지역 간 반목과 갈등의 골을 깊게 했다. 민주화나 지역주의 시대가 평생의 경쟁자이자 동지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합작품인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주도한 세 번째 시대변화인 남북화해는 그만의 결단에 의한 것이다. ‘햇볕정책’, 정상회담과 6·15선언, 금강산 관광 등으로 상징되는 남북화해 시대는 그의 오랜 신념 덕에 그 첫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일방적 퍼주기’였고 북핵 개발을 오히려 도왔다는 비난이 있지만, 남북 긴장은 적어도 한동안 크게 줄었다. 시대 선도자로서 김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이념의 사회적 분출에까지 이어졌다. 이념적 폐쇄성을 면치 못하던 우리 사회는 그의 당선 자체, 그리고 그의 적극적 시민사회 지원정책과 남북교류 노력으로 인해 이념적 다양성의 시대에 접어들 수 있었다. 이념의 분출이 지나쳐 남남갈등이 격화됐다는 평가도 있지만, 어쨌든 후임 노무현 전 대통령 시기에 정립된 이념적 대립구도라는 시대추세의 기저에는 김 전 대통령의 원초적 역할이 있었다. 이처럼 여러 갈래의 시대흐름을 이끌며 그는 공과를 함께 남겼다. 우리의 과제는 이 중 공은 살리고 과는 줄이는 것이다. 민주화를 성숙시키되 방종과 아집으로 흐르지 않고, 지역균형발전을 이루되 지역감정을 북돋우지 않고, 남북화해를 진행시키되 그 효과성을 따지고, 이념의 다양성을 중시하되 추상적 이념대립이 구체적 현안 중심의 대화를 막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제 누가 이런 방향으로 시대를 이끌까? 누구보다 김 전 대통령이 거쳤던 직(職)을 현재 맡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그의 공과를 헤아리며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 그러나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개인적 리더십이 작동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오늘의 사회상황은 개인보다 제도·시스템 중심의 새 시대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시대를 이끌어야 할 이유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김 전대통령 서거] 역대 美대사가 본 DJ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역대 주한 미국대사들은 한결같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에 애도를 표하면서 한국 민주화와 인권 향상에 남긴 족적을 높이 평가했다. 김 전 대통령 납치사건 때 생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도널드 그레그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장(전 주한 미국대사)은 18일(현지시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50여년간 아시아와 관련된 일을 해오면서 가장 위대한 아시아인 3명을 만났는데 바로 김 전 대통령과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였다.”고 말했다. 그레그 이사장은 “김 전 대통령은 한국에 강력한 민주주의를 가져왔고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의 화해를 향한 중대한 진전을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그의 업적에 대한 평가와 명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올 봄 김 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대북정책에 대해 조언을 해달라고 요청했었고, 김 전 대통령이 서한을 작성, 지난 5월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방한때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1993~97년까지 주한 미국대사를 역임한 제임스 레이니는 “김 전 대통령은 삶 자체가 민주주와 인권향상을 위해 헌신한 삶이었으며, 특히 수십년간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싸워온 민주화 투쟁의 상징이자 영웅이었다.”고 평가했다. 레이니 전 대사는 김 전 대통령이 70년대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을 당시 석방운동을 한 것을 시작으로 오랜 기간 인연을 이어와 김 전 대통령이 평소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말할 정도로 각별했다. 주한미국대사 시절 정계에서 은퇴한 김 전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자주 만났는데 당시 김영삼 정부로부터 눈총을 받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김 전 대통령 임기 말기인 지난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주한 미대사로 활동했던 토머스 허바드는 “한국은 물론 세계가 민주주의와 평화에 중대한 기여를 한 위대한 정치가를 잃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허바드 전 대사는 “김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것은 물론 지난 2000년 북한 방문을 통해 남북관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보였다.”고 평가했다. kmkim@seoul.co.kr
  • [사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며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어제 영면에 들었다. 한국의 민주화를 대변하는 큰 정치인의 서거를 국민들과 함께 애도한다. 고인이 편안히 하늘나라에 들 것을 기원하면서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고인이 남긴 정치적 족적은 우리 헌정사에서 뚜렷이 기록될 것이다. 남은 이들은 고인이 생전에 강조했던 민주·평화의 열망을 이어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일생은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권위주의 군사정권에 항거해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투옥, 가택연금, 망명생활 등 온갖 어려움을 겪었으나 결코 독재정권과 타협하지 않았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한국이 오늘날 민주국가로 발전하게 된 데는 고인과 김영삼 전 대통령 등 이른바 ‘양김(兩金)’의 정치투쟁에 힘입은 바 크다. 고인은 대통령선거에 4차례 출마, 3전4기 끝에 당선되는 집념을 보여줬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민주선거를 통한 여야 정권교체를 이룸으로써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켰다. 대통령 재임 중 생산적 복지를 내세워 서민과 소외계층 등을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에 힘썼다. 특히 고인이 일생을 통해 추진한 것은 한반도 평화공존이었다. 근래 퍼주기 논란을 빚고 있지만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대북정책은 고인이 심혈을 기울였던 작품이었다. 평양 정권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남북 경협사업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진행시켰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고인이 추진했던 한반도 평화정책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았던 셈이다. 南南갈등 증폭시키지 말기를 몇년 사이에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을 거듭함으로써 햇볕정책의 효용성이 의심받고 있다. 하지만 대화로써 북한 정권을 설득해 핵무기를 포기케 하고, 공동번영을 누리자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남남(南南)갈등을 증폭시키기보다 고인의 유지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계승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고인이 궁극적으로 바랐던 것은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정착이었던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완강하던 북한이 최근 남북관계 개선에 응할 분위기로 돌아서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점은 다행스럽다. 고인의 정치일생에서 그늘도 있었다. 영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호남 출신으로서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치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스스로는 지역감정 해소를 위한 노력을 했다고 밝혔으나 고인으로 인해 지역주의가 강화됐다는 지적을 비켜가지 못하고 있다. 집권 당시의 DJP연합 등을 비롯해 정치권의 잦은 이합집산을 주도했다는 평도 듣는다. 재임시 아들들과 측근들이 비리 의혹에 휩싸인 점은 고인에게 뼈아픈 대목이다. 물론 민주화와 평화공존과 관련한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이 커서 이러한 문제들은 지엽적으로 비친다. 병상서도 화해분위기 확산시켜 특히 고인이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국내외의 많은 인사들이 병문안을 다녀갔다. 마지막 가는 길에 통합과 화해의 기운을 확산시킨 셈이다. 고인의 정치적 라이벌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병문안을 한 뒤 ‘화해’를 선언했다. 비록 고인의 육성은 없었으나 깨어 있었다면 분명히 화답했을 것이다. 양김의 불화와 대결은 한국 지역주의가 심화된 주요 요인 중의 하나였다. 양김 화해를 계기로 정치권은 행정구역 개편과 선거구제 개선으로 지역감정 타파를 위한 제도정비에 나서야 할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을 문병한 인사 가운데는 전두환 전 대통령도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박해하고, 광주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했던 장본인까지 문병객으로 맞이함으로써 화해·용서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본다. 이러한 화해 무드가 전 사회로 확산되길 바란다. 김 전 대통령은 근래 현실정치에 개입하는 발언을 자주 했다. 현 이명박 대통령 정부를 매섭게 비판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다가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방법으로 서거한 뒤 현 정부를 향한 비난의 강도가 더욱 높아졌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현실정치에 너무 간여한다는 힐난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우리 정치를 걱정하는 고인의 충정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김 전 대통령이 이승을 하직함으로써 고인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 논란은 수그러들게 되었다. 수십년간 한국 정치를 눌러 왔던 양김 정치시대는 끝났다. 김 전 대통령의 진심은 민주화의 진전과 국정안정을 바랐다고 보며 여야 정치권은 고인의 유지를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맞아 현 정부와 여야 정치권 모두 옷깃을 여며야 한다. 정부·여당은 혹시 권위주의 시대로 역행하는 일은 없는지 정책과 언행을 다시 살펴야 할 것이다. 민주당 등 야당은 고인의 영향력에 기대어 표를 모으려는 생각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부터는 야당 스스로의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 국민들로부터 평가받아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의 카리스마에 업히려 해서는 안 되고, 또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다. 삼가 김 전 대통령의 명복을 다시 빌면서, 국가적인 경건함 속에 장의절차가 차질없이 진행되길 바란다.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사선 다섯번 넘어… 민주주의 유토피아 꿈꿨다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사선 다섯번 넘어… 민주주의 유토피아 꿈꿨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동초’,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리며 반세기 한국 정치사를 풍미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3김(金)시대’의 한 축이었던 고인(故人)은 1997년 겨울, 반세기만에 ‘선거혁명’을 통한 정권교체를 이뤘다. 3전4기로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한반도 정세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5차례의 죽을 고비와 5년여의 감옥생활, 6년여의 가택연금, 3년의 망명생활 등 고인의 삶은 견디기 어려운 시련으로 점철됐다. 가톨릭 세례명인 ‘토마스 모어’처럼 고행하는 구도자의 삶을 이어온 셈이다. “정이 많은 분이다.” 영원한 비서실장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을 이같이 묘사했다. 말년에도 거의 매일 서울 동교동 자택을 드나든 박 의원은 “지난 1월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방문해 용산참사에 대해 말을 꺼내자 이내 김 전 대통령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면서 “평소에도 드라마 속 (비참한) 사람들을 보며 눈시울을 붉힐 만큼 평소 인정도 많으셨다.”고 전했다. 말년에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등장과 맞물려 케네디 전 대통령과 관련된 책을 탐독하고 여론주도층을 만나 서민과 비정규직을 위한 사회 안전망, 생산적 복지를 강조했다고 한다. 전남 목포에서 뱃길로 150리. 김 전 대통령은 1924년 매서운 바닷바람을 등진 하의도라는 작은 섬에서 3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는 지금도 생가터가 남아 있다. ‘후광’(後廣)이라는 호(號)도 여기서 따왔다. 중농의 아들이었던 그는 목포상고(현 전남제일고)에 수석 입학한 수재였지만 반일운동으로 학적부에 ‘시찰계요’라고 적힐 만큼 반골기질을 드러냈다. 1945년 약관의 나이에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 신민당에 입당했지만 8개월 만에 탈당한다. 이어 3단계 통일방안(1972년)과 광주 민주화운동(1980년) 등을 거치면서 색깔론에 휘말렸다. 고인은 1946년 첫 부인 차용애 여사와 가정을 꾸리고 해운회사를 경영, 큰돈을 모은다. 뛰어난 상술로 목포일보를 인수한 뒤 주필을 겸하기도 했다. 자금을 끌어대고 경쟁상대를 꺾으며 사람의 마음을 낚는 장사와 정치는 닮은꼴이다. 1950년 한국전쟁 때는 우익단체 참여를 빌미로 인민군에게 처형될 위기에 몰렸지만 이송 중 극적으로 탈출, 첫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서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3대를 포함, 4차례 낙선의 쓴잔을 연거푸 마셨다. 1958년 강원도 인제군 민의원 선거 때는 후보등록이 취소됐고, 1959년 보궐선거에선 색깔론에 휘말렸다. 4·19혁명이 일어난 1960년 선거에서도 낙선했다. 1961년 인제군 보궐선거에서 당선의 첫 기쁨을 누린 김 전 대통령. 하지만 사흘 만에 5·16을 맞아 반혁명사건에 연루돼 교도소로 직행한다. 토머스 모어의 교훈은 오히려 고난 극복의 힘이 됐다. “늦어도 100년 뒤면 (토머스 모어처럼) 역사에서 재평가받을 것”이라며 고통을 이겨냈다. 1962년 이희호 여사와 재혼한 고인은 이듬해 목포에서 민주당 후보로 공화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1964년 5시간20분간 행한 ‘필리버스터’ 발언과 6개월간 13차례 본회의 발언 등은 지금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71년 7대 대선은 기회이자 시련의 계기였다. 1970년 45세의 나이에 ‘40대 기수론’의 라이벌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물리치고 신민당 후보로 나섰지만 이듬해 선거에선 94만표 차로 패배했다. 이후 20년간 혹독한 시련이 밀려왔다. 일본 망명 중인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을 시작으로 전두환 군사정권까지 55차례의 연금생활, 5년반 동안의 감옥생활, 2차례의 망명생활을 겪었다. 1976년 명동 3·1구국선언으로 구속(긴급조치 9호 위반)됐고, 1981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훗날 고인은 “솔직히 죽는 것이 두려웠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고 회고했다. 가톨릭계의 구명운동 덕에 목숨을 건진 고인은 1982년 도미, 두 번째 망명길에 오른다. 한국인권문제연구소와 민주화추진협의회를 이끌며 민주화 운동의 외로운 무게중심이 됐고, ‘인동초’란 별칭도 얻게 된다. 19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전격 귀국한 고인은 김포공항에서 연행돼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만든 신한민주당이 2·12총선에서 109석을 확보, 1987년 6월 항쟁의 기틀을 마련한다. 사면복권 뒤 1987년 13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3위에 머무르며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 실패에 따른 비난에 휩싸였다. 1988년 총선의 평민당 ‘황색 돌풍’으로 일선에 복귀했지만 1992년 12월 대선에서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고인은 “40여 년의 파란 많았던 정치생활에 사실상 종막을 고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며 대선 낙선의 소회를 곱씹었다. 막을 내릴 것 같던 정치인생은 영국으로 건너간 지 6개월만에 다시 불꽃을 살렸다. 1993년 귀국해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했고, 빗발치는 비판 여론을 무릅쓰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듬해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올라서자 대선 4번째 출마를 선언한다. ‘대통령병 환자’라는 비난이 일었지만 단 1.6%포인트의 표차이로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색깔론과 지역감정의 벽을 넘었다. 보수세력인 자민련과의 DJP연합이 힘이 됐지만, 역설적으로 색깔과 지역의 부조화스러운 조합이기도 했다. 고인의 대표 브랜드는 ‘햇볕정책’이다. 반세기 동안 닫혔던 북쪽의 문을 열게 하는 열쇠로,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뤄진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가 ‘레드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탈냉전체제로 진입하는 촉매제가 됐다. 고인을 한반도 유일의 노벨상 수상자로 만든 일대 사건이었고, 퇴임 뒤에도 논쟁이 있는 사안에 대해 비중있게 언급할 수 있는 유일한 지위를 부여했다. 고인은 대통령 임기말 측근들의 비리가 뒤늦게 터진 데다 아들들이 구속되는 등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북한과 밀거래한 사실은 안타까운 기록으로 남게 됐다. 또 완벽주의와 제왕학적 리더십은 권위주의적 통치라는 오명도 남겼다. 오상도 허백윤기자 sdoh@seoul.co.kr
  • 이왈종 춘화 21년만에 빛보다

    이왈종 춘화 21년만에 빛보다

    “이 그림들은 빼도록 해요.” 1987년 서울 강남에 화랑을 연 ‘청작화랑’을 도와 주기 위해 이듬해인 1988년 2월 운보 김기창은 자신이 직접 선정한 한국화가 15명의 기획전시인 ‘15인 두방전’의 개막일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다름 아닌 이왈종의 그림들이었다. 당시 한국화단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운보의 결정인지라 화랑은 거스를 수도 없었고, 당시 추계대 예술대 교수였던 이왈종도 “내 그림 내가 냈는데….”라며 다소 투덜거렸지만, 그림 3점을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청작화랑은 원래 전시하려던 그림 3점을 모두 구입해 갈등을 일부 봉합했다. 당시 문제의 이왈종 그림은 춘화(春花)로 제목은 ‘생활의 중도’ 였다. 전시회가 끝난 직후 운보는 이왈종과 식사를 하면서 “‘전시회 이미지에 맞지도 않고 저런 그림을 걸면 신생 화랑에 누가 될 수 있어서 그림을 내리라고 했다.”고 설명한 뒤 “국립박물관에 조선후기 화원이던 김홍도 신윤복 등 대가들의 춘화들이 있으니, 참고해 보라.”는 조언을 하며 서로 마음의 앙금을 풀었다고 한다. 그 문제의 춘화 3점이 21년 만에 청작화랑의 전시장에 걸린다. 18일부터 9월11일까지 열리는 ‘춘정(春情)과 순정(純情)사이’ 전이다. 1990년 이후 제주도에 내려가 그림을 그리는 이왈종은 요즘 골프공에 남녀상열지사를 그리기도 하고, 직접 그린 춘화도를 모아서 전시회를 하기도 했지만, 춘화도의 시작은 1988년 청작화랑 전시부터였다. 이번 전시 도록에 실린 춘화도는 크게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1980년대 후반의 엄숙주의와 권위주의가 팽배한 상황에서는 걸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손성례 청작화랑 대표는 “최근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 20년 간 이왈종의 춘화도를 소장한 배경 등의 이야기를 우연히 꺼냈다가 전시회를 열어 보라는 권유를 받고 큰맘 먹고 전시를 시작했다.”면서 “이왈종의 그림 외에도 누드화를 그리는 작가들에게 춘화도 2점과 누드화 1점씩을 요청했는데, 막상 도착한 작품들은 누드화 2점에 춘화 1점이었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누드전이나 춘화 등은 공개적으로 구입하기는 쉽지 않지만, 일부 컬렉터들의 경우 소품 누드 등은 부부침실에 걸어 두는 경우를 적잖이 봤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노골적으로 여체를 보여 주는 이숙자, 산수화를 주로 그리는 오용길, 구자승, 류영도, 이두식, 김재학 등 회화작가 13명과 조각가 이일호와 김일용, 신일수 등이 참여했다. 전시의 특성상 19세 미만인 미성년자의 관람은 제한하고, 입장료로 3000원을 받는다. 입장료 수입은 장애인 잡지 ‘열린 지평’에 기부할 예정이다. (02)549-3112.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현회장 “김위원장 원하는거 다 말하라며… “ 웨이터 출신 ‘제주 야생마’ 양용은 황제 등극 해외포르노 저작권 처벌은 ‘복불복’ ”최진실 묘위치 찾던 50대 전화 단서” ’파리대왕’ 골딩 15세소녀 겁탈하려 했다 신종플루 치료병원 의사도 환자도 몰라 ”KT 테스트서비스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 이슬람 수영복 ‘부르키니’ 논쟁
  • 진실화해위 권고 안먹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권고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실화해위의 활동시한이 내년 4월로, 8개월 정도 남은 가운데 위원회 권고가 내려진 160건 중 국가기관에 의해 이행이 완료된 사건은 8건, 일부 이행된 사건은 54건으로 집계됐다.12일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지난 2005년 위원회 출범 이후 지난 6월말까지 진실규명과정을 통해 위원회가 권고를 내린 사건은 모두 160건이다. 일부 이행된 사건까지 포함해도 이행률은 40.0%에 지나지 않는다. 행정안전부 권고사항처리심의위원회를 거쳐 국가기관이 권고를 수용한 사건이 123건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행률은 매우 낮은 셈이다. 사건유형별로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은 44.0%(59건 중 26건), 권위주의 시절 ‘인권침해 사건’은 42.6%(61건 중 26건), 북한군이나 좌익세력에 의한 양민학살인 ‘적대세력 사건’ 31.0%(29건중 9건), 기타 50%(2건 중 1건) 등이 일부라도 이행됐다. 대구대 김영범 교수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즉각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 위원회 설립 취지였다.”면서 “일부라도 이행된 사건이 40% 정도 라는 것은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박건형 유대근기자 kitsch@seoul.co.kr
  • [객원칼럼] 한국 언론의 태생적 굴레/정인학 한국수력원자력 감사

    [객원칼럼] 한국 언론의 태생적 굴레/정인학 한국수력원자력 감사

    한국 언론의 태생적 이력은 ‘이유 없는 반항’을 연출한 드라마 한 편을 연상케 한다. 한국 언론은 1883년 9월 박문국에서 한성순보를 발간하며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러나 한성순보는 정치적 격동에 휘말려 1년3개월 만에 비운을 맞았고, 한성순보의 비운은 일제강점기를 예고하는 먹구름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제의 한반도 침탈이 노골화되자 구국의 지성인과 지식인들은 언론에서 길을 찾았다. 숱한 신문들이 밤하늘 별처럼 빛났다가 스러졌다. 민족의 선각자들은 언론 활동에 매진하면서 당시 정치권력을 거부하고 일제에 항거했다. 일제는 조국을 강탈한 반민족적 외세로 절대 악(惡)이었고 따라서 정치권력을 매도하는 언론 활동은 절대적 선(善)이었다. 정치권력에 다가서면 어용(御用)이고 반민족적 변절(變節)이었다. 일제강점기라는 뒤틀린 세월은 40년이나 이어졌고, 어둠의 40년은 이유 없는 반항의 언론관을 만들어 냈다. 한국 언론의 태생적 굴레는 다른 나라 언론 발달사와 겹쳐 보면 뚜렷하게 도드라진다.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게 애국이요, 역사적 가치였다. 각국의 언론들이 저마다 국익을 최우선하는 논조를 펴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일제의 어둠은 한국 언론을 뒤틀어 놨다. 광복 이후 권위주의 정권이 잇달아 들어서며 정부 정책이라면 허물부터 끄집어내 비판해야 언론의 정도를 걷는 것처럼 오해되었다. 한국 언론의 ‘비판 지상주의’는 국익에 역행하거나 국가적 불이익이 우려되는 경우에도 그대로 관통한다. 미국 언론의 징고이즘(Jingoism)을 비롯해 일본 등 선진 외국 언론의 비이성적 애국주의가 도마에 오르는 현실과 크게 대비된다. 언론의 비판 기능은 물론 핵심적인 역할이다. 그러나 비판 기능이 기형적으로 강조될 경우 자칫 사회적 분란을 조장하고 사회적 갈등을 확산시키기 십상이다. 언론도 국가 공동체의 생산성을 강화하고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사회제도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선진 언론일수록 국가 사회를 발전시키고 구성원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사회적 의제를 발굴해서 공론화하는 의제설정(Agenda Setting)에 악센트를 두고 있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일제강점기 구석구석에 똬리를 틀었던 역사적·정신적 독소를 거둬 내야 한다. 일제에 기생하여 축적한 재산을 몰수하고 몇몇의 친일 행각을 들춰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이제는 떨쳐내야 한다. 반항의 언론관을 극복해야 한다. 7개월이 넘게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는 미디어법 논란을 보자. 언론은 간 데 없고 정치의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다. 비판은 없고 구호성 주장과 선전성 예단들이 넘쳐난다. 정보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동일한 인터넷 시대에 언론 매체를 어떻게 해서 여론을 장악한다는 주장은 적어도 억지다. 백보를 양보한다 해도 지금 한국에는 미디어 문제가 국정의 전부란 말인가. 2009년을 온통 미디어법 논쟁으로 지새워야 하겠는가. 언론이 정치에 편승하는 시기는 지났다. 언론이 이념적 성향으로 패거리를 지어 이리저리 우르르 몰려 다녀서는 안 된다. 언론은 국가 사회의 건전성을 신장시키고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 누가 주장했느냐가 아니라 무슨 내용이냐를 보고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한다. 누구에게 유리한지를 계산하기 이전에 국가 발전에 어떻게 밑거름이 되느냐를 새겨야 한다. 한국 언론은 지금쯤은 태생적 굴레를 벗어던지고 정론(正論)의 길로 나가야 한다. 정인학 한국수력원자력 감사
  • [김형준 정치비평] 미디어법 담판과 역지사지의 정치

    [김형준 정치비평] 미디어법 담판과 역지사지의 정치

    여야가 핵심 쟁점 법안인 미디어법에 대한 최종 담판에 착수했다. 하지만 의견 차가 워낙 커서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한나라당은 2012년까지 지상파의 소유와 경영에 대기업과 신문의 참여를 유보하는 협상안을 제안했지만 민주당은 지상파든 종합편성채널이든 보도전문채널이든 신문이 참여하는 것 자체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법이 극적으로 타결되든 결렬되든 간에 이제 상쟁과 공멸의 의회 정치는 끝을 내야 한다. 걸핏하면 점거 농성하고, 수시로 합의를 뒤집고, 소수의 대표들만 모여서 밀실에서 협상하는 후진적인 관행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재의 비뚤어지고 왜곡된 의정 문화를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 KBS와 동서리서치가 지난 7월9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여야가 서로 반목하는 원인으로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 부재’(27.2%), ‘국회의원의 자질 부족’(21.6%), ‘상호간의 불신’(17.3%) 순으로 대답했다.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이 잘 안 되는 이유로 ‘보스 중심의 계파 정치’(30.9%)와 ‘당론 중심의 표결’(27.0%)을 가장 많이 지적했다. 이런 조사 결과가 주는 함의는 의원들이 자신의 정치 철학과 신념을 갖고 양심에 따라 정직하게 의정 활동에 임해야만 국회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원들은 ‘나는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는 국회법 46조와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라는 114조 2항을 금과옥조로 삼아 정파적 또는 계파적 이익에서 벗어나 국민만을 바라보며 우직하고 양심적인 의정활동을 펼쳐야 한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과거 열린 우리당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지난 2004년 열린 우리당은 참여정부의 존재 이유였고 지상 과제였던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개혁 입법을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조차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던 국가보안법은 여론과 야당의 극렬한 반대에 직면하면서 다수 의석을 갖고 있었던 진보세력이 법 개정을 포기했다. 실제로 2004년 10월29일 한 언론기관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가보안법 폐지와 형법보완 입법에 대해 찬성은 35.9%인 반면 반대는 58.6%였다. 비슷한 시기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분야는 경제회복(75.6%)으로 나타났으며 집권당이 추진하는 정치개혁(7.2%), 과거사문제(2.4%), 언론개혁(1.3%)은 우선순위에서 뒤처져 있었다. 국민의 다수가 반대하는 법안은 어떤 논리와 명분으로도 일방적으로 관철시킬 수 없다. 또한 국민이 요구하는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있는 법안을 힘으로 밀어붙일 경우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힘으로만 밀어붙이려는 권위주의 정치를 종식시키고, 민생우선의 서민 정책을 펼치며,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야당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바로 여당 성공을 위한 근원적인 처방이다. 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의 나쁜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핵심 쟁점에 대해선 국민앞에 떳떳하게 대안을 제시하고 심판받아야 한다. 더욱이 목적이 합당하면 이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 불법이라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편의주의적인 시각도 버려야 한다. 걸핏하면 국회를 포기하고 길거리로 나가 투쟁하는 자기 부정적이고 패배주의적인 행보도 자제해야 한다. 엄밀히 따져 보면 이번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승자는 없고 모두가 패자이다. 성공하는 정치의 핵심은 민심을 제대로 읽는 것이다. 여야 모두 민심은 공기와도 같은 것이어서 민심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마치 공기를 거부하면서 결국 질식되어 죽음의 길로 가는 것과도 같다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
  • [시론] 무늬만 남은 한국의 대의민주주의/장성호 배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론] 무늬만 남은 한국의 대의민주주의/장성호 배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민주주의 이상적 모델인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주의 산실은 아고라(Agora)였다. 시민들은 그들의 시장인 아고라에 모여 민회를 열고 국가 중대사를 투표로 결정했다. 광장에서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할 정도로 인구가 적은 시대적 상황과 경제·군사적 면에서 효율성이 담보되었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고 소통의 방법이 바뀐 오늘날의 민주주의 방식은 ‘광장의 정치’가 최선의 방식이었던 고대국가와는 천양지차다. 그래서 대의민주주의로 대표되는 간접민주주의가 출현했다. 오늘날 대의민주제의 가장 상징적인 기구가 민주주의 위기를 걱정하며 우리가 마음 졸이며 보고 있는 국회다. 그러나 21세기 민주주의 산실인 대한민국 국회는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며 장내가 아닌 장외정치만을 고집하며 당리당략의 음모와 선동, 불신만이 판치는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얼마 전 이른바 7·7대란이라고 일컫는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의 국가주요기관, 기업 사이트에 대한 공격으로 우리 사회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국가 정보통신 컨트롤 타워의 부재로 우왕좌왕하며 대책도 중구난방으로 혼선이 극에 달했다. 이 와중에도 정치권은 당파적인 이익을 내세우며 정쟁에 여념이 없었다. 국가기관인 국가정보원은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국회 정보위 소속 의원들 앞에서 ‘사이버테러의 배후’가 북한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된 사이버 북풍논란은 한국정치의 고질병의 단면을 보여줬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북풍을 일으킨다고 가능하겠으며, 그것을 믿을 국민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럼에도 사이버 북풍을 이슈화해 정치권뿐 아니라 국민들을 자극하는 야당의 속셈은 과거 권위주의정권하에서 자행된 북풍공작정치의 향수를 그리는 것에 불과한 3류정치 수법이다. 북풍 운운하며 정치논쟁으로 확대시켜 가는 모습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할 정치의 구태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정치라는 것이 무엇인가? 서로 발전적인 논의를 통해 위기의 해법을 논의해 가는 과정이 아닌가. 정상적인 국가기구의 대응을 방해하는 행위보다는 향후 유사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사이버위기관리법’, ‘테러방지법’ 등의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도록 여야가 함께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지금 우리 국회는 민생마저 외면한 채 최대 쟁점인 미디어관계법 등을 비롯한 쟁점법안을 놓고 여야가 극한 대립을 하고 있는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여당과 야당이 동시에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하는 사상초유의 코미디 같은 사태도 빚어졌다. 민주주의 보루라는 국민의 대표기관에서 또다시 지난 연말의 폭력·막장 국회가 재연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태산이다. 서로의 의견에 대해 충분한 대화와 타협의 정신을 살리되 합의가 안 되면 다수결의 원리에 따르는 승복의 정치문화가 민주주의 요체다. 민주주의 의사결정 구조인 다수결의 원리는 소수파의 횡포를 합리화시켜주는, 대중을 이용한 ‘포퓰리즘적 다수결의 효과’와는 차원이 다르다. 국가적 위기라는 중차대한 문제에서조차 국민의 선택을 외면하고 당리당략적 장외 정쟁에 몰두하는 행태는 청산돼야 한다. 차제에 정치권은 음모적 논쟁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국가적 낭비와 소모적 탁상행정을 바로잡을 수 있는 대안 마련에 힘을 합쳐 절차적 민주주의에 충실하는 게 주권자인 국민을 위한 길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장성호 배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개헌 논의 시작해야 할때”

    김형오 국회의장은 17일 “여야 정치권과 국민 여러분께 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와 공론화를 정식으로 제안한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개헌을 위해 국회 내 개헌특별위원회 구성도 촉구했다. 김 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제헌 61주년 기념식 경축사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9차례 개헌으로 권위주의 해체와 평화적 정권교체, 인권 신장, 지방자치 등 민주화의 값진 성과를 거뒀지만 현행 헌법은 급변하는 환경과 시대조류에 대처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이같이 제안했다. 그는 “9차례 개정 가운데 1987년 민주화 열망과 시민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현행 헌법을 빼고는 대부분 집권세력의 정권연장을 위한 것이었다.”면서 “지금이야말로 ‘87년 체제’에 대한 근본적 성찰 위에서 이를 창조적으로 극복하는 개헌을 시작해야 할 때이며, 선진국 진입을 위해 국가의 체계를 다시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헌의 방향으로 새로운 국가비전을 제시하는 ‘선진헌법’, 권력분산으로 견제와 균형에 충실한 ‘분권헌법’, 국회가 중심이 돼 국민에 의한·국민을 위한 ‘국민통합헌법’ 등 3가지 를 제시했다. 이어 “개헌의 최적기는 18대 국회 전반기”라면서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에 새로운 헌법안을 마련해 국회 의결과 국민투표까지 마무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에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개헌논의가 정략적으로 이용돼선 안 된다. 시민사회와 전문가 집단의 국민적 공감대를 이룰 연구가 우선돼야 한다.”며 현 시점에서 개헌 논의를 반대했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국회가 다양한 민의가 수렴되는 곳인 만큼 개헌에 대한 논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보지만, 개헌은 국가 100년 대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고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이지운 주현진기자 jj@seoul.co.kr
  • [사설] 노 전 대통령 안장, 이젠 편히 쉬길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제 영면할 장소에 들었다.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마련된 묘역에 고인의 유골이 안장되었다. 안장식에 앞서 유가족과 참여정부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49재를 올리는 의식이 있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고향마을에서 평안히 영면하기 바란다. 노 전 대통령이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한 뒤 고인을 추모하는 국민적 열기가 대단히 뜨거웠다. 정치를 하는 동안 공과가 있겠지만 고인이 줄곧 추구했던 민주주의와 탈(脫)권위 정신을 기린 때문이라고 본다. 고인이 묻힌 곳은 삶과 죽음이 교차했던 고향마을이다. 고인의 유지에 따라 너럭바위를 비석 겸 봉분으로 삼았다.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고 소박한 묘역을 조성한 것 역시 많은 국민들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갈 것이다. 이제 고인이 남긴 정신을 어떻게 이어갈지는 살아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현 정부는 이전 정부와의 차별화에만 너무 골몰해 권위주의 쪽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참여정부가 시행착오를 겪긴 했으나 민주화, 분권화 노력을 기울였고 서민을 위하려 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이념 지향의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지켜야 할 가치들이다. 민주당과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 일부 진보단체들은 차분해지기 바란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고인의 뜻에 어긋난다. 고인을 내세워 정치결사를 만드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용서와 화해를 당부했던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평화와 국민통합을 추구해야 한다. 안장식을 위한 봉하 전례위측도 “슬픔, 미안함, 원망을 내려놓자.” 고 강조했다. 고인의 평화로운 안식을 거듭 빌고,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면서 노 전 대통령이 남긴 가치가 올바르게 계승되기를 기원한다.
  • [글로벌시대] 건국 60주년, 중국지식인은 살아있는가/ 민귀식 한양대 중국 정치경제 연구교수

    [글로벌시대] 건국 60주년, 중국지식인은 살아있는가/ 민귀식 한양대 중국 정치경제 연구교수

    건국 60주년을 맞은 중국이 더욱 크게 보이는 한 해이다. 중국은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도 6%대의 성장을 계속하고 있고, 최대 외환 보유국답게 각국의 채권을 거침없이 사들이고 있다. 미국 국채 매입에 신중하겠다는 중국의 방침에 미국 행정부가 눈치를 보고 있다. 그래서 미국 중심의 국제경제 질서를 재편해야 한다는 중국의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리는 것도 당연해 보이기까지 하다. 중국이 국제질서 재편의 중심축 역할을 하겠다는 이런 자신감에 대해 세계는 기대와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우려에는 중국이 과연 세계를 이끌 만한 시대가치를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중국이 경제규모에 걸맞은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국제사회가 인정할 만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자유와 인권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문인 셈이다. 그런데 현실은 오히려 중국의 정신문화가 경제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사회를 향한 가치기준 제시는 고사하고, 중국 내부의 시민의식도 성숙되지 못해 국가에 대한 시민의 영향력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인터넷을 통제하기 위해 ‘그린 댐’이라는 검색 프로그램을 모든 컴퓨터에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요구하는 것이 오늘날 중국의 현실이다. 이런 국가통제 강화와 시민역량의 미숙에는 중국 지식인의 책임이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지식인은 항상 비판적인 눈으로 사회를 감시해야 하고 특히 변혁기에는 시대방향 제시라는 엄중한 책임이 부여된다. 그러나 중국 지식인은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화두를 제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정책에 대한 비판기능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홍콩에서는 천안문사건 20주년을 맞아 20만명의 추모인파가 모여 중국의 민주화를 촉구했지만, 중국의 지식인은 이런 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국왕 앞에서 역성혁명론을 펼치고도 무사할 수 있었던 춘추전국시대의 지식인의 위상은 한무제가 유학을 관학(官學)으로 흡수한 이래로 지속적으로 하락되어 왔다. 문화혁명 시기에는 아홉 가지 사회악(臭九)으로까지 그 위상이 추락되었던 중국지식인은 아직도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지식인의 이런 무기력은 권위주의체제인 중국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지만,현실을 바꾸는 위험보다는 현실과 타협하는 안전책을 선호하는 전통적인 중국지식인의 생활태도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도(道)가 있으면 세상에 나아가고, 도가 없으면 물러나는 것이 군자의 자세라는 논어의 구절이 바로 이런 책임회피에 면죄부를 주는 주문이 되고 있다. 그래도 과거에는 ‘문관은 간언하다 죽고, 무관은 전쟁터에서 죽는다(文死諫, 武死戰)’는 기개를 내세워 황제에게 직언하는 선비도 종종 나왔다. 황제에게 직언은 목숨을 거는 경우도 있었으니 봉건시대의 현실비판은 지금과 비교하면 훨씬 강한 기개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법과 제도로 움직이는 현대국가에서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생명을 담보로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시대방향을 제시하는 중국지식인을 찾을 수 없다. 지금의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국력에 어울리는 대우를 받지 못하고, 국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지식인이 소명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지식인의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고, 지식인이 용기를 내지 않는다면, 건국 60주년을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중국의 희망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지식인의 기개는 사회의 소금이다. 그래서 문사간(文死諫)을 문사간(文事奸:일을 간사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풍자하는 것을 중국지식인들은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한국의 지식인은 어떤 모습일까? 민귀식 한양대 중국 정치경제 연구교수
  • [김형준 정치비평] ‘근원적 처방’과 대통령 인식의 전환

    [김형준 정치비평] ‘근원적 처방’과 대통령 인식의 전환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쇄신을 요구하는 정치권을 향해 라디오 연설을 통해 주목할 만한 화두를 던졌다. “민심은 여전히 이념과 지역으로 갈라져 있다. 상대가 하면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정쟁의 정치문화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사실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이런 고질적인 문제에는 대증요법보다는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는 “국면전환형 쇄신은 없다.”는 말만 내세우며 아직까지 처방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참다못해 한나라당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은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의 조속한 개편, 박근혜 전 대표의 국정동반자 관계 약속 이행, 탈이념과 중도실용의 정신에 입각한 국정기조 재확립 등이 포함된 쇄신 제언을 발표했다. 왜 대통령은 화두만 던진 채 정치권과 민심의 요구를 적절히 묵살하면서 상황을 주도하지 않는 것일까? 대통령의 상황에 대한 인식의 오류가 근본적인 이유가 될 수 있다. 첫째, 경제가 좋아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믿음이다. 정부는 “한국이 제일 먼저 경제 위기에서 탈출할 것이다.”라는 해외 경제 기구들의 장밋빛 전망에 고무되어 있는 듯하다. 하지만 경제 지표가 좋아진다고 서민 경제가 좋아진다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참여정부가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참여정부 5년 재임기간 동안 연 평균 4.2% 경제성장, 외환 보유고 2000억달러, 주가 2000포인트 달성 등 외형적인 경제 지표는 상당히 좋았다. 그러나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를 망쳤다고 인식했다. 경제 지표는 좋았지만 사회 양극화는 심화되면서 민심이 급속하게 이반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박근혜 전 대표는 결코 한나라당을 탈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1990년 3당 합당, 97년 DJP연대,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등 한국 정치에서 불가능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대선 승리를 위해 한나라당을 탈당해 동서연합을 기치로 김대중 전 대통령 세력과 연대할 수도 있다. 만약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내년 지방선거 전에 실현된다면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소수 정권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 셋째, 올해가 정치적인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MB식 정치를 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집착이다. 따라서 정치 논리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려서는 안 되며 무리를 해서라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욕구가 강하다. 문제는 이러한 경직성과 강박감으로 인해 정치로 풀어야 할 일을 정치로 풀지 못하고 종종 타이밍을 놓치면서 상황을 악화시키는 정치적 미숙함을 연출했다. 동시에 “독재시대의 권위주의로 회귀하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넷째, 국민들은 여전히 성장과 효율 등 보수 가치를 지지하고 보수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는 기대이다.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가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진보가 진보에 대해 ‘좋다’는 비율은 72.2%인 반면, 보수가 보수에 대해 ‘좋다’는 비율은 33.1%에 불과했다. 한편 중도층에서는 ‘진보가 좋다’는 비율은 28.5%인 반면 ‘보수가 좋다’는 비율은 19.3%에 불과했다. 정권 교체 1년 반 만에 보수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이다. 인식과 전제가 잘못되면 올바른 진단은 물론 내실 있는 처방이 나올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국정쇄신을 위한 ‘근원적 처방’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분명해졌다. 제도와 인사 개편은 부차적인 것이고 대통령 인식의 근원적인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때만이 지혜의 눈이 비로소 열리고 ‘거꾸로 가는 정부, 대답 없는 정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국민의 신뢰를 받는 올바른 처방이 도출될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
  • [지방시대]전주 한옥마을 추억 한자락/이종민 전북대 영문과 교수

    [지방시대]전주 한옥마을 추억 한자락/이종민 전북대 영문과 교수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 우리의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는 이곳 중심에 있는 한옥마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추억 한 자락이 서려 있다. 2006년 2월21일. 참여정부 핵심정책의 하나인 혁신도시 출범식이 있었던 날. 전국 시장·도지사와 정부 각 부처 장관은 물론 청와대 주요 인사들도 전주를 찾았다. 그만큼 비중 있는 행사였다. 이러니 그날 축하 오찬이 얼마나 중요한 일정이었느냐는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이 그곳 대신 한옥마을에서 점심을 하겠다는 것이다. 전통문화도시 조성을 위해 애쓰는 전주문화예술인들과의 오찬 간담회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대통령이 자신이 제안한 핵심 정책사업 관련 행사장 대신 한옥마을을 찾았다는 것은. 그날 잔치의 주인장 역할을 톡톡히 하며 주목을 받고 싶었던 도지사가 ‘남의 잔치’의 들러리 역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렇고(그때까지만 해도 전라북도는 전주전통문화사업에 매우 미온적이었다). 이것으로 전주전통문화도시조성사업은 엄청난 힘을 받게 되었다. 우리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래서 당시 참석 원로들에게 이런 부탁을 드렸다. 제발 ‘소외론’, ‘낙후론’을 내세우며 ‘징징거리지’ 말라고. 대신 참여정부가 잘한 일, 지방분권이나 국가균형발전, 권위주의 청산과 민주주의 확산,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 및 복지정책의 확충 등을 강조하며 덕담으로 분위기를 잡아달라고. 전통문화도시사업에 관한 것은 추진단장과 전주문화재단이사장이 적당하게 건의하겠다고. 참여정부의 정책기조나 대통령의 일처리 방식을 감안한 전략적 대응을 준비한 것이다. 사실 이 사업을 앞장서서 추진해 왔던 사람들의 전략이 그랬다. 지금은 금기의 용어가 되어버렸지만 당시 지역민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었던 지역혁신, 지역균형발전, 지방분권 등 참여정부가 소중하게 여기는 정책 명분에 호소한 것이다. 우리가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일,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일, 그중에서도 국가사업으로서의 명분을 갖춘 일을 앞장서 해 나갈 테니 필요한 만큼의 지원을 해달라는 논리를 내세웠던 것이다. 간담회 결과는? 전반적으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한국무형문화전당, 아·태무형문화센터 등 구체적인 사업에 대한 약속도 받았다. ‘이 정도면 됐다!’ 했는데 원로들의 생각은 좀 달랐던 모양이다. ‘얘기를 듣고 보니 지역에서 해야 할 일이 있고,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적극 해나가겠다.’는 노 대통령의 마무리 발언이 좀 미흡하다 싶었던 것이다. 광주광역시의 아시아문화수도처럼 ‘전주를 전통문화중심도시로 만들어주겠다!’와 같은 명백한 선언적 약속을 기대하고 있던 어르신 한 분이 기어이 ‘우리 지역은 수십년간 낙후되고, 산업화에 소외당하고’ 타령을 늘어놓고 만 것이다. 아차! 싶었지만, 노 대통령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특유의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우리 한번 잘해 봅시다.”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언론 홍보를 위한 기념촬영도 대통령이 직접 챙겨주었다. 그렇게 하여 전주한옥마을은 우리 전통문화의 중심으로 거듭날 동력을 얻었다. 그 이전에 이곳을 찾아 ‘매우 한국적’이라고 감탄했던 권양숙 여사에 이어 기로에 서 있던 우리 전통문화와 한옥마을에 큰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제 우리들의 몫은 바로 그 소중한 뜻을 살려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를 진정 멋스럽게 가꾸어가는 일이리라! 이종민 전북대 영문과 교수
  • 소크라테스·로젠버그 부부 등 부당한 세기의 재판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공연을 할 때 ‘히어스 투 유’라는 곡을 자주 들려준다. 1971년 이탈리아 출신 줄리아노 몬탈도 감독이 연출했고, 리카르도 쿠치올라가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영화 ‘사코와 반제티’에 쓰여진 노래다. 모리코네가 애절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멜로디를 쓰고, 포크가수이자 인권운동가, 반전 평화운동가인 존 바에즈가 ‘죽음으로 승리를 거뒀다’는 비장한 노랫말을 썼다. 영화는 미국 최악의 사법 살인으로 꼽히는 재판의 피고인이었던 구두 직공 니콜라 사코와 생선 장수 바르톨로메오 반제티의 실화를 다뤘다. 이탈리아 이민자였던 이들은 강도살인 사건으로 기소됐고, 혐의를 부인했으나 재판은 유죄 분위기로 흘러갔다. 재판이 진행된 7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항의 데모와 소요 사태가 끊이지 않았다. 사코와 반제티는 결정적인 유죄 증거가 없었음에도 결국 1927년 8월23일 전기의자에 앉는다. 50년이 지난 1977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재판이 정당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하며 이들이 사형당한 날을 기념일로 선포한다. 그들이 실제로 유죄였을까, 무죄였을까는 지금도 논란이 있지만 국적과 정치적 견해에 대한 편견 속에서 재판이 진행됐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고 한다. 아서 슐레진저 하버드대 교수는 “사코와 반제티는 이민자였고, 가난했으며 무신론자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였고 무정부주의자였다는 점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들이 무슨 짓을 했든 미국인들은 무조건 유죄라고 생각했을 만한 바로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지난해 가을 사법부 60주년 기념식에서 이용훈 대법원장은 “권위주의 체제가 장기화되면서 법관이 올곧은 자세를 온전히 지키지 못해 국민의 기본권과 법치질서의 수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고 그 결과 헌법의 기본적 가치나 절차적 정의에 맞지 않는 판결이 선고되기도 했다.”고 국민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등 권위주의 시절에 유죄 판결됐던 많은 사건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로 뒤바뀌고 있는 게 우리의 요즘이다. 영국 출신의 변호사 브라이언 해리스는 ‘인저스티스’(이보경 옮김, 열대림 펴냄)를 통해 기원전 4세기 소크라테스 재판부터 20세기 원폭 기밀 간첩 로젠버그 부부 재판에 이르기까지 부당한 재판으로 인식되는 13가지의 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한다. ‘사코와 반제티’ 사건은 물론 무고한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거나, 유죄 판결에 적어도 합리적인 의혹이 존재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세기의 정치범 재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는 “권력자가 자신을 위협하는 인물에게 가하는 행동이며, 불확실함과 도덕적 모호함이 넘치는 정치범 재판은 인간의 행동 방식을 관찰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시험대”라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사회는 반대자를 어느 정도까지 용인해야 하는가. 사회 정의를 향한 불타는 신념이 테러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가. 자국 방어를 위해 무기를 든 사람에게 반역죄 혐의를 씌우는 것이 적절한 대응인가. 자국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다른 나라의 압제자를 공격하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가. 2만 3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관가 포커스] “겉모습 치장보다 민생현안 우선”

    [관가 포커스] “겉모습 치장보다 민생현안 우선”

    “겉모습을 치장하는 것보다 민생현안을 챙기는 게 우선이다.” 정부청사관리소가 최근 3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의 현판을 ‘멋스럽게’ 교체하는 작업을 추진했지만,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의 지적으로 무산됐다. 청사관리소가 현재 중앙청사 정문에 있는 현판을 교체하려 했던 것은 설치된 지 10년이 지났고,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현재 중앙청사 현판은 가로 105cm, 세로 55cm의 동판으로 우중충한 색깔을 띠고 있다. 청사관리소는 또 광화문광장 조성사업으로 인해 40년 만에 중앙청사 정문 이전공사를 하면서 현판도 함께 바꿀 기회라고 판단했다. 이에 청사관리소는 최근 한국디자인문화재단과 디자인 전문업체인 ‘AGI Society’사 등에 새 현판 디자인을 의뢰했고, 다음달 초순 가로 2m·세로 1.7m가량의 ‘멋스러운’ 현판을 새로 설치할 계획이었다. 또 다음달 10일에는 이달곤 장관 등을 초청해 제막식도 가질 예정이었다. 청사관리소는 이와 함께 오는 8월 광화문광장 조성공사가 끝나면 많은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들이 중앙청사 앞에서 사진 촬영 등을 할 수 있도록 현판 인근을 ‘포토존’으로 활용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18일 청사관리소의 보고를 받은 이 장관은 “청사 겉모습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보다 민생현안을 챙기는 게 우선”이라며 “현판을 교체하는 데 투입되는 예산을 다른 곳에 돌리라.”고 지시했다. 청사관리소 관계자는 “청사 멋부리기보다 민생을 먼저 챙기려는 장관의 지적이 타당해 현판 교체 작업을 전면 취소하게 됐다.”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18일 굴착기와 인부들이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입구를 정비하고 있다. 정부중앙청사는 광화문광장 조성에 맞춰 오는 30일까지 청사 대문과 차량 진출·입로를 이전, 확장하는 등 대대적으로 손질한다.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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