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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각하(閣下) /이춘규 논설위원

    최고권력자 황제는 제국 군주의 존호다. 동양 황제의 어원은 중국 건국신화의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 비롯된다. 하위개념 왕은 상나라·주나라 군주가 칭했다. 왕을 칭하는 자가 많아 가치가 폭락하자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 시황이 황제(皇帝)라고 처음 칭한다. 황제 난립시대도 있었지만, 청나라까지 사용된다. 당 고종은 ‘천황’(天皇)이란 칭호도 사용했다. 우리는 고조선부터 왕을 사용했다. 조선 고종은 대한제국 황제로 칭해졌다. 각하(閣下)는 관직·외교에서 사용하는 경칭 중 하나다. 많은 나라에서 최고권력자나 고위관리가 각하(excellency)로 호칭된다. 주로 외교 의전용으로 사용된다. 외국의 군주 이외에도 대통령 등 국가원수나 각료, 그리고 대사에서 영사까지 고위 외교사절에 대한 경칭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귀족에 대한 경칭으로도 사용된다. 국제 외교에서는 각하를 영어인 오너러블(honorable)로도 표현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건국 초기에는 각하라는 호칭이 폭넓게 사용됐다. 인촌 김성수는 부통령에게도 각하를 사용하자 1955년 비민주적이라면서 각하 호칭 폐지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엔 대통령만이 독점하게 된다. 1979년 10·26 때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차지철 경호실장을 겨냥해 “각하, 이런 버러지 같은 놈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라고 했다는 진술이 있다. 현장에 있던 가수 심수봉이 “각하, 괜찮으세요.”라고 했다는 법정진술도 전해지며 각하가 부각됐다. 문민정부까지 사용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청와대는 각하라는 호칭을 폐기했다. 각하가 권위주의적이기 때문에 ‘대통령님’이라고 하겠다고 당시 박지원 청와대 대변인이 밝히자 청와대 출입기자나 국민들은 정권 교체를 실감하는 용어로 받아들였다. 이후 참여정부로 이어지며 대통령님이라는 호칭이 굳어지고 각하는 잊혀지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 사회 일각에서는 각하라는 호칭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북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지도자 동지’ ‘위대한 영도자’ ‘혁명의 수뇌부’라는 경칭과 함께 ‘김정일 각하’라고 칭한단다. 북한에서 각하는 ‘외교 관계에서 지위가 높은 인사들에게 쓰는 공식적인 존칭’이기는 하다. 그런데 북한의 대남 심리전 방송이 김일성 주석 사망 다음 날인 1994년 7월 9일 ‘친애하는 김정일 각하’라고 호칭한 뒤 가끔 매체들이 사용한다. 사회주의권 국가들은 권위적인 직책명을 배격하는데, 이례적이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여의도 블로그] ‘황우여 스타일’ 적응하기

    [여의도 블로그] ‘황우여 스타일’ 적응하기

    지난 22일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서울 중구에 있는 서울경찰청 기동본부를 방문했다. 여당 원내대표이자 당 대표 권한대행을 맞아 주차장에는 전·의경 80여명이 나란히 서서 도열했다. 그러자 황 원내대표는 당황했다. “나는 전·의경들과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몸으로 부딪치고 싶었는데 여러 제한이 있었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한나라당 안팎이 ‘황우여 스타일’ 익히기로 분주하다. 황 원내대표의 언행 방식이 기존의 ‘집권여당 원내대표’의 그것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보통 당 지도부에서 중요 정책을 발표하는 시기는 이미 당정협의 등을 거쳐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난 이후다. 그런데 황 원내대표는 다르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도 당정협의 없이 등록금 완화 방침을 밝혀 논란이 됐다. 그는 “일단 내가 화두를 던지고 학부모와 학생들, 전문가들과 대화를 나눈 뒤 최종적으로 정부와 대안을 놓고 머리를 맞댈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유로운 토론을 거쳐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한 뒤에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당정 조율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황 원내대표는 “정치가 한두 사람이 얘기하는 걸로 전달되는 권위주의를 탈피해야 한다.”면서 “민주주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직접 민생 현장을 둘러봐야 한다는 생각에 일정도 빡빡하다. 실무진에서 대표가 챙기기에는 ‘급’이 안 맞는 일정이라고 판단하는 것도 대부분 강행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러한 스타일에 정부는 물론이고 당도 혼란에 빠졌다. 벌써 보름 동안 추가 감세 철회, 반값 등록금 등 대형 정책 이슈들이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기도 전에 쏟아져 나왔다. 정부에서는 재원 조달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반감을 갖고, 당에서도 이견이 많은 문제들이다. 이러한 스타일을 두고 그동안 여당 지도부에서 쉽게 꺼내지 못했던 민감한 문제들에 대해 사회적으로 토론할 기회를 준다는 기대가 나온다. 그러나 혼란만 가중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화두만 던져 놓고 실행하지 못할 경우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기 십상이다. 황 원내대표 스스로도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며 입장이 번복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열린세상] 서태지 사건과 BBK, 왜 음모론이 제기되는가?/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열린세상] 서태지 사건과 BBK, 왜 음모론이 제기되는가?/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지난 22일 서태지·이지아의 비밀결혼과 이혼 소송은 세간에 충격을 주었다. 서태지의 신비주의, 외계인으로 불린 이지아의 비밀이 한 꺼풀씩 벗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BBK사건이 떠올랐다. 서태지·이지아의 법정소송은 BBK사건을 은폐하려는 음모라는 것이다. 이 연결은 말 그대로 ‘음모’일 것이다. 서울고법은 21일 BBK사건 수사팀이 주간지 ‘시사IN’과 BBK 관련 기사를 쓴 기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서태지·이지아 사건이 알려지기 전날이었다. 서울고법은 “기사에 보도된 김경준의 자필 메모와 육성 녹음이 실재 존재하는 등 기사의 허위성을 인정할 사유가 충분하지 않다.”면서 “기자가 직접 관련자를 만나 김씨가 작성한 자필 종이와 육성 녹음을 건네받고 인용해 작성한 것으로 명예훼손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어떻게 해석되는가에 따라서 파장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았고, 이지아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바른이 패소한 BBK수사팀의 변호를 맡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음모론이 확산되었다. 최근 들어 왜 이와 같은 음모론이 수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정권과 주요 언론에 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방사성물질은 편서풍을 따고 태평양 쪽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한반도에 들어올 이유가 없다고 발표한 것은 기상청이었다. 그러나 방사성물질이 한반도에서 검출되었고, 방사능비까지 내리면서 정부와 언론에 대한 불신은 높아졌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방사성물질이 한반도에 유입될 수 있다고 주장한 네티즌에 대해서 검찰은 수사를 하기도 했고, 일부 언론은 이것을 좌파의 음모라고 주장하면서 광우병 촛불집회를 환기시키기도 했다. 지난 몇 개월 사이 발생한 적지 않은 사건들, 예를 들어 국정원 직원의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잠입사건, 아랍 에미리트연합 원전 수주 의문, 금미호 5만 달러 지불설, 구제역 원인을 둘러싼 바이러스 전파경로 등이 명쾌하게 풀리지 않은 채 넘어갔다. 지난 2월 김경준의 누나인 에리카 김이 돌연 귀국한 이후 검찰이 기소유예를 내린 것도 어물쩍 지나갔다. 작년 천안함 침몰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 사건에서도 군 당국이 초기 단계에서 사실을 정확히 발표하지도 않았고, 자주 말을 바꾸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사실이 아닌지에 대해서 판단을 하기 어려웠다. 정부가 불리한 사건들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려고 한다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한·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 삼호 주얼리호 구출작전, 대통령 전용기 고장 등 일정 기간 보도를 유보하는 엠바고(embargo)도 언론에 요청해 왔다. 국가 사회적으로 위중하고 매우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엠바고는 비밀을 전제로 하는 권위주의의 산물이다. 권위주의적인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올해에만 11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방송사나 일부 신문들은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4월 15일에서 18일 사이 7명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말이다. 사업의 속도전이 희생자를 초래했는지, 아니면 충분한 안전대책이 마련되었는데도 사고가 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삼성전자 설비엔지니어의 투신자살사건도 묻히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살 후 97일 만에 장례를 치렀지만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주요 신문과 방송들이 정치나 경제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급급해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지금은 소셜 네트워크가 일상화되면서 소통의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공유·개방·참여로 특징지어지는 소통의 혁명으로 정보는 즉각적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그러나 정부와 일부 언론은 시대의 흐름과는 반대로 나아가고 있다. 서태지·이지아 사건이 발생하자 곧바로 BBK 음모론이 나온 것은 불신의 정도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권력과 언론에 대한 불신이 커져 가면, 앞으로 음모론들이 계속 등장할 것이다. 소통의 혁명이 진행 중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소통의 단절이 이루어지고 있다.
  • [시론] 오글 교수와의 추억/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매체경영 교수

    [시론] 오글 교수와의 추억/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매체경영 교수

    내연구실에는 빛바랜 흑백 사진이 한 장 붙어 있다. 한 외국인 노부부와 우리 가족이 함께한 모습이다. 주인공은 나의 학위 공부를 도와준 교수 중 한 분이다. 십여 년 전 방한 당시 우리 가족과 함께 한 저녁 자리에서 찍었다. 노 교수는 당시 미국 조지아주 에모리 대학 오글 교수였다. 이쯤 되면 ‘아’ 하고 고개를 끄떡이는 사람들이 꽤 있겠다. 많은 한국인에게 오글 교수는 낯익은 인물이다. 특히 이 땅의 민주화 과정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쳐 본 기성 세대에게 그는 잊혀지지 않은 인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사실 오글 교수보다는 오글 목사로 더 알려진 그는 이 땅 민주화 운동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최근 무죄로 판결 난 74년 인혁당 사건 고문 조작설을 처음 제기했다가 강제 추방당한 바 있다. 비록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나는 그가 이 땅의 빈한한 자들에게 바친 희생에 감격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서울에서 가장 근사한 레스토랑에 내외분을 모셔 저녁을 대접했던 기억이 난다. 오글 교수는 휴전 이듬해인 1954년 이십대의 젊은 나이에 아내와 단둘이서 인천시 변두리에 자리를 잡고 노동운동에 투신한다. 이른바 도시산업 선교회의 출발이 된다. 권위주의 시대, 도시산업 선교회는 기업의 ‘도산’을 가져 오는 교회로 기업인들에게는 각인됐지만, 민주화 주역들에게는 든든한 후원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서울대 강단에도 잠시 섰다. 나는 그와 곧잘 논쟁을 벌였다. 그는 기본적으로 재벌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고 나는 그에 맞서 한국적인 상황 논리를 주장하며 이해가 필요하다고 맞섰다. 나는 그런 그의 시각을 고치려고 무척 노력했지만 늘 나의 입만 아플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는 십년 전 우리 가족과 함께한 저녁 자리에서 처음으로 삼성·현대 등 한국의 재벌에 대해 상당 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그는 자신이 평생 몸 바친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민주 국가로 위치를 굳힌 이면에는 재벌의 경제적인 뒷받침이 작용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천 변두리 ‘푸세’식 화장실의 추억 등등을 회고하며 당신의 가족들이 한국에 쏟아부은 애정이 마침내 민주화와 경제성장으로 결실을 본 데 대해 눈물을 글썽거리며 감격했다. 세월이 흘렀다. 한국은 이제 이웃나라들이 부러워하는 민주주의 국가이고 노동자들의 권리 또한 지나친 감이 있을 정도로 강화됐다. 오글 교수가 본다면 상전벽해를 느낄 만큼 모든 것은 변했다. 그래서 재벌에 대한 그의 부정적인 시각도 지금쯤 많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문제는 그토록 오글 교수에 맞서 재벌을 변호하던 내가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초과이익 공유제에 대한 재벌의 거친 반격은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 비상장 계열사에 일감을 몽땅 몰아주고 천문학적인 고배당을 챙기는 재벌의 행태를 어떻게 봐야 할까. 부품 업체를 쥐어짜고, 광고마저도 계열 광고사에 맡기고, 한마디로 땅 짚고 재산 불리기일 뿐이다. 현 정부가 총액출자제한제도, 중소기업 고유업종 등 재벌들을 묶어 놓았던 여러 규제를 ‘친(親)기업’을 앞세워 대폭 풀어 준 다음에 벌어진 현상이다. 심지어 삼성·LG·SK 등은 문방구류 같은 소모성 자재를 공급하는 회사를 운영 중이다. 중소 문방구 제조업체들이 단번에 몰락했다. 고언하건대 한국의 재벌에게 초과이익 공유를 요구하는 것은 반시장주의가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 재벌의 성공 뒤에는 열악했던 노동조건 속에서도 구로공단과 중동 열사에서 흘린 한국인의 눈물과 땀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방한한 억만장자 워런 버핏이 말했다. “내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사과 파는 노점상쯤 돼 있을 것”이라고. 미국과 미국인이 자신의 부를 이루게 해 줬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부의 대부분을 미국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버핏의 말씀, 한국의 재벌이 반만이라도 들어주면 좋겠다.
  • [황진선 칼럼] 변호사들의 공익 활동을 아시나요

    [황진선 칼럼] 변호사들의 공익 활동을 아시나요

    요즘 법조계는 혼란스럽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의 법조 개혁안을 둘러싸고 불협화음이 가득하다. 정치권과 법조계가 국민은 의식하지 않고 자기 조직의 위상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며 직역이기주의에 매몰돼 있다는 소리도 나온다. 그런 가운데 그제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대한변호사협회 공익소송특별위원회가 SK텔레콤의 해외 데이터 로밍 요금제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공익소송을 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10일 기아자동차 카니발의 에어백 장착 광고가 허위라며 낸 손해배상청구에 이어 두번째 공익소송이다. 공익소송특위는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이메일 자동 업데이트 기능을 켜둔 상태로 해외에 가면 이메일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수만원에서 수십만원의 요금이 부과될 위험이 있는데도 고지하지 않았다.”고 청구 이유를 설명했다. 권위주의 정권시대인 20년 전만 해도 법조인은 신뢰받는 최고의 전문직이었다. 변호사 중에도 ‘인권변호사’로 불리는 분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법조인에 대한 신뢰는 크게 떨어졌다. 변호사 수가 크게 늘어난 데 따른 치열한 생존경쟁, 전관 예우와 ‘유전무죄 무전유죄’에서 비롯된 불신 등이 주요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공익활동에 힘을 쏟지 않은 탓도 있다. 변호사법 1조와 27조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하며, 연간 일정 시간 이상 공익활동에 종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형 법무법인들도 최근 공익위원회를 두고 활동 폭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이를테면 태평양은 별도의 공익재단을 만들어 난민·이주외국인팀, 사회적기업팀, 탈북민팀, 장애인팀 등 4개팀에 60여명의 변호사를 배정해 법률 구조, 제도 및 정책 개선, 입법 지원 등의 활동을 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인은 변호사들이 공익활동에 나선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미국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은 ‘프로 보노’라고 칭한다. 라틴어 프로 보노 푸블리코(Pro Bono Publico)의 줄임말로 ‘공익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미국 변호사협회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프로 보노를 권장한다. ‘사법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변호사 숫자가 많은 데다 사회적 인식 또한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기업을 상대하는 바람에 사회적·경제적 약자를 만날 기회가 적은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에게 봉사 시간을 더 많이 할당한다. 우리 법조계도 지금부터라도 공익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내년에는 로스쿨 졸업생 1500명과 사법연수원생 1000명을 합해 2500명의 변호사가 쏟아져 나온다. 2020년에는 변호사 숫자가 지금의 2배에 가까운 2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변호사가 늘어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신뢰는 떨어질 개연성이 크다. 따라서 그만큼 공익활동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역할 분담도 필요하다. 주로 기업을 변호하는 법무법인은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공익활동에, 변호사단체는 법무법인이 나서기 어려운 정부 또는 대기업을 상대로 한 공익소송에 집중해야 한다. 앞으로 공익활동을 확대하고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생색내기로는 국민의 인식을 바꿀 수 없다. 공익위원회 소속 변호사와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기금도 대폭 늘려야 한다. 로스쿨 학생들은 봉사 활동에 적극 참여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대형법무법인은 현재 자신의 공익활동을 알리는 것조차 꺼리고 있다. 그러나 앞으론 그래선 안 된다. 후배 변호사들을 양성하고 그들의 길을 터주려면 공익활동을 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단체와 연계해서 사회적 이슈를 공익활동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방안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러면 변호사에 대한 국민의 시각이 달라질 것이다. 국민의 신뢰와 지지가 없으면 법률 수요 창출과 법조 직역 확대는 어려워진다. 바로 얼마 전 준법지원인제에 대해 거의 모든 언론 매체가 변호사 일자리 챙기기라며 비난을 쏟아낸 것을 되새겨야 한다. jshwang@seoul.co.kr
  • [문화마당] 외규장각 도서의 대여와 정신의 반환/신동호 시인

    [문화마당] 외규장각 도서의 대여와 정신의 반환/신동호 시인

    왕실이나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儀軌)가 창고에 던져졌을 때 조선의 왕운도 기울고 있었다. 단지 외규장각이 불타고 도서가 침탈당한 건 아니다. 그때 ‘홍익인간‘이 불타고 예(禮)가 바다를 건너갔는지 모른다. 그러나 프랑스 국립도서관 창고는 조선의 예를 담기에 비좁고 어두웠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돌아갈 날을 기다렸을까. 500년을 켜켜이 쌓은 나라의 법도와 조선성리학의 정신은 넓고도 견고했으니 갑갑했으리라. 왕은 의궤를 읽고 또 읽으며 백성을 생각하고 예를 다하여야 했다. 왕이 그 지독한 법도를 따를 때 백성들은 비로소 스스로를 반추할 거울이 생기는 법이다. 잊었으리라. 남대문은 불탔다. 2008년이었다. 나라 전체가 화(火)에 휩싸였다. 예고된 일이었다. 가속이 붙은 물질만능을 제어할 브레이크 장치가 부족했다. 투기와 개발이 미화되었고, 미덕과 가난은 천대받았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약게 살라.’고 가르쳤다. 그저 생활전선에서 싸워야 했던 아버지는 대화를 잃었고 가정교육에 소홀했다.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지도자가 선거에 당선되었다. 부덕이 부덕을 낳았다. 모두의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선(善)이 있었지만 행할 기회가 없었다. 양보는 거듭될수록 무능으로 낙인찍혔다. 끼어드는 차량을 향해 욕을 내뱉는 자신을 발견하고도 어느새 무감각했다. 윤리를 반추할 거울이 없었으니 국보1호는 불탔다. 우리 현대사에 화를 도닥였던 시절이 없었던 건 아니다. 민주화에 대한 헌신은 권위주의와 부딪치며 화를 다스렸다. 정치가 행하지 못한 윤리를 재야와 민간, 종교에서 대신했다. 장준하·문익환·김수환 등 지금은 잊혀 가는 이름들, 그들로 인해 도덕이 목숨을 부지했다. 가혹한 희생은 화를 잠재우는 과정이었다. 4·19의 김주열, 청계천의 전태일, 5·18의 광주시민 등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개개인 마음속에 불타던 화가 진화됐다. 예측할 수 없는, 이유 없는, 혹은 잔인한 행동이 도덕과 정의 앞에 무릎 꿇었던 시절이었다. 미덕이 칭송받고 양보와 희생에 예를 다하던 시절이 우리에게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서양이 동양을 배우려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자본주의조차 도덕과 정의, 공익을 끌어들인다.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결국 전체의 복리를 증진시킨다.’고 말한 애덤 스미스, 그가 윤리학자였다는 것을 새삼 들춰낸다. 그가 주장한 분업과 협업, 공정한 교환과 이윤이 이야기될 때 동양의 도덕과 정의는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서양에서 실현되는 듯하다. 우리의 예가 향교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때 저 멀리 프랑스에서 울고 있는 의궤와 논어집주(주희가 엮은 논어의 주석들)의 안간힘이 느껴진다. 인간에 대한, 사회에 대한, 역사에 대한, 아주 작은 일들과 초라해 보이는 것들과 소수인 것들에 대한 예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강탈한 외규장각 도서 297권 가운데 1차분 75권이 돌아왔다. 145년 만이다. 정확히 말하면 대여되었다. 여전히 우리 문화재로 등록할 수도 없으며, 연구를 위한 대여와 전시도 프랑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도서에 담긴 정신까지 대여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정부는 아직 돌려받아야 할 것이 많다는 이유로 환영 행사를 자제하고 있으나 문화재 환수가 갖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은 단지 국가유물의 소유 이전 문제가 아니다. 조선이 꿈꿔온 예의 나라를 되찾는 일이다. 조선은 끊임없이 기록했고 기록을 통해 후대가 그 이상을 되새기길 원했다. 대장금도, 다모도, 조선명탐정도 우리는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만났다. 의궤에 소상히 새겨진 왕실과 국가의 예를 통해 우리가 다시 만나야 할 것들은 제국주의 침탈로 피폐되었던 세계사의 반성이며 다가올 시대의 공정성이다. 또 개인에게는 선을, 국가는 민간에 신세 졌던 윤리를 비로소 실천할 계기점이다. 이것이 반환받아야 할 우리의 정신이며 오히려 프랑스에 대여해 줘야 할 것이 아닌가.
  • 市기록관에서 보관중인 가장 오래된 공문서 아시나요

    市기록관에서 보관중인 가장 오래된 공문서 아시나요

    서울시에서 보관 중인 가장 오랜 공문서는 한 세기 조금 미치지 못하는 97년 전 것이고, 공문서에서 ‘서울특별시’라는 명칭은 60여년째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서울시 각 부서에서 생산된 행정기록물을 이관받아 보존·관리하는 서울시기록관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기록물은 ‘인감증명규칙’이 시행된 다음 날인 1914년 7월 8일 영등포에 등록된 ‘1호 인감대장’(사진①)이다. ●‘서울, 경기에 편입’… 일제 문서 발견 1호 인감은 영등포구 영등포동(당시 경기 시흥군 북면 영등포리)에서 작성된 것으로, 1개 면에 4명의 인감이 등록돼 있다. 인감대장은 등록 순서에 따라 등록일자와 성명, 주소, 본적지, 생일 등이 함께 기재돼 있다. 인감대장 이름난에는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4글자의 한자가 유난히 많았다. 인감대장에 이어 오래된 문서는 당시 서울시 토지대장과 측량원도, 면적측정부 등 지적관련 대장과 도면으로 현재 시민들의 재산권 확인 등에서 여전히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기안문 형태로 된 시 최초의 공문서는 1945년 4월 27일 경성부 도시계획과에서 작성한 ‘환지처분 인가 신청의 건’(換地處分認可申請ノ件②)이다. 1937년 경성시가지 계획사업 돈암토지구획정리지구의 제1공구 사업이 완료돼 경성부에서 당시 상급기관인 경기도에 환지처분 인가를 요청하는 내용의 문서로 부부윤(副府尹·부시장)을 거쳐 부윤(府尹·시장)까지 결재가 이뤄졌다. 당시 일제가 조선시대 한성부를 경성부로 이름을 바꾸고, 수도(首都)로서의 개념을 없애려는 음모 아래 격을 낮춰 경기도에 편입했다는 사실이 공문서에서도 발견된다. 1946년 8월 15일 미군정이 서울시헌장을 선포하면서 공문서에서 ‘경성부’라는 명칭을 ‘서울시’로 바꿨고, 1949년 8월 15일 시행된 지방자치법에 따라 이후 문서부터는 ‘서울특별시’(사진③)라는 명칭이 사용됐다는 점도 알 수 있다. 특히 1960년대 이전 공문서는 상신문서체와 하달문서체로 나뉘어, 상급기관에는 ‘~하고저 재결을 앙청(仰請·우러러 청함)하나이다’와 같은 경어를 사용했고, 하급기관에 보내는 문서는 ‘~차질 없도록 바람’ 등 권위주의적 표현을 사용했다. 이후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행정간소화 지시로 타자기 사용에 대비한 가로쓰기 채택과 한글전용 쓰기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1980년대 이후에는 타자기를 사용한 공문서들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1990년대 이후 컴퓨터로 만든 문서들이 나왔다. 공문서 규격도 B5에서 현재의 A4로 바뀌었다. 1990년 정부 공통 기안용지에 타자기로 작성된 기안문서를 보면 당시 원세훈 주택기획과장(현재 국가정보원장)의 전결로 처리됐으며, 통제관이 있어 외부로 발송되는 문서에 대해 시장 직인 등을 통제했다. ●1961년 한글전용·가로쓰기 단행 1997년부터 서울시에 전자결재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결재를 받기 위해 상사의 사무실 앞에서 문서판을 들고 길게 줄서는 풍경이 사라졌으며, 2004년부터 전자문서시스템이 도입돼 종이문서를 출력해 캐비닛에 보관하는 관행이 급격히 줄었다. 한편 지금까지 생산된 서울시 공문서는 200쪽 분량의 책자 13만권으로 경북 청도서고와 남산서고, 서울서고 등 3곳에 분산해 보관하고 있다. 경북 청도군청 인근 지하 3층에 마련된 시 문서보관소는 1968년 김신조 청와대 습격사건 이후 비상사태에 대비해 공문서를 분산 배치하라는 정부 지시로 설치돼 명맥을 잇고 있다. 홍순성 기록정보팀장은 “공문서에서는 당시의 행정뿐만 아니라 흥미로운 서울의 역사를 담고 있다.”면서 “앞으로 공공기록물관리법에 따라 서울시에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이 설립되면 보다 체계적으로 기록물을 보존·관리·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美, 중동 ‘사이버 마이티 마우스’ 키운다

    중동의 재스민 혁명 이면에는 반정부 시위를 결집시키는 각종 정보기술(IT)이 존재한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그리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대표적인 예다. 때문에 독재정부들은 이를 차단하는 데 부심하고 있고, 이런 정부에 맞서 정보통신 보안벽을 뚫기 위한 노력도 그만큼 치열하다. 미국 정부가 아랍국 보안 당국의 추적을 피해 사이버전을 펼칠 수 있도록 반정부 활동가들을 교육하고 있다는 사실을 8일(현지시간) 공개했다. 마이클 포스너 미 국무부 민주·인권·노동담당 차관보는 아랍 국가와 기타 다른 권위주의 국가의 활동가들이 정부의 인터넷 방화벽을 피하고 휴대전화 문자 및 음성 메시지의 보안을 유지하는 한편, 웹사이트에 대한 공격을 막을 수 있도록 미 행정부가 기술 지원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것은 일종의 ‘고양이와 쥐의 게임’”이라며 “권위주의 정부는 비판자와 반대자들을 추적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 기술을 개발하는 반면 우리는 그보다 앞서 가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기술과 훈련, 외교적 지원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너 차관보는 미국 정부가 지난 2년간 이 같은 기술 개발에 책정한 예산은 5000만 달러에 이르며 세계 5000여명의 활동가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회의도 개최하고 있다고 했다. 6주 전 중동 지역에서 열린 회의에는 튀니지와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에서 온 활동가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이들은 동료들을 훈련시킨다는 목표를 띠고 고국으로 돌아갔으며 이는 파급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미 국부무는 활동가들이 정부 검열을 피하도록 하는 10여개의 기술 개발을 위해 기업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무부 관리는 “그 기술 중 하나는 이란에서 매우 성공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면서 “그것은 바이러스성 기술로, 현재 중동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또 활동가가 체포될 때 휴대전화에 저장된 연락 기록을 삭제하는 ‘패닉 버튼’(panic button)이란 기술도 개발 중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21세기 전 세계인의 광장이자 커피하우스’라고 일컬은 인터넷상에서의 표현·집회·결사의 자유를 위해 직접 참여하고 있다. 힐러리 장관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가 불을 지핀 이집트와 이란 혁명이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변화의 촉매제로서 네트워크 기술의 힘”을 보여준다고 평가한 바 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사설] 총장이 왜 검사장들에게 1억원을 돌렸나

    김준규 검찰총장이 지난 2일 열린 검사장 워크숍에서 참석자 45명에게 200만~300만원씩 든 돈 봉투를 나눠 줬다고 한다. 봉투 뒷면엔 ‘업무 활동비, 검찰총장 김준규’라고 적혀 있었고, 총액은 1억원에 가까운 9800만원으로 알려졌다. 요즘엔 기업에서도 사장 명의로 직원들에게 돈 봉투를 건네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국민의 세금을 제 주머니 속 돈을 꺼내 주듯 했다니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검찰의 조직 문화가 사려 깊지 못하고 권위주의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총장의 통치자금’이란 말도 그런 풍토에 대한 비아냥이다. 김 총장은 2009년 11월 기자들과 저녁을 같이하는 자리에서도 일부 기자들에게 추첨을 통해 50만원씩 든 봉투를 건넸다가 기자들이 봉투를 돌려주는 바람에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워크숍은 국회 사법개혁특위의 검찰 개혁 방안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그래서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은 검찰 본연의 임무인 부패수사에 더욱 매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미묘한 시점에 그런 자리를 만들어 격려성 업무활동비를 지급한 것은 로비용이 아니냐는 의혹을 살 수도 있다. 또한 그 전에 스스로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자리에 검찰 정책자문단으로 참석한 소설가 김훈씨도 “검찰에 대한 불신의 원인은 내부에 있다.”는 뼈아픈 말을 했다고 한다. 밀실 행정과 불투명한 예산 집행은 부적절한 조직 운영으로 연결된다. 영수증 처리가 필요 없는 검찰총장의 특수활동비는 올해에도 189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일선의 업무활동비는 검사장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해당 검찰에 자동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 검찰 개혁을 부르짖는 정치권만 탓해선 안 된다. 스스로 성찰하지 않으면 국민을 위한 검찰은 말 장난일 뿐이다.
  • [열린세상] 저신뢰 고규제의 교육행정/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 교수

    [열린세상] 저신뢰 고규제의 교육행정/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 교수

    21세기 화두를 언급할 때 항상 이야기되는 것이 ‘신뢰’이다. 신뢰는 불확실함 속에서도 상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보편적 규범을 지키며 규칙적이고 정직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렇듯 신뢰가 논의되는 이유는 제도와 규칙을 바꾸고 이런저런 규제를 마련해도 결국 중요한 것은 제도를 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 간의 신뢰가 관건임을 우리 사회가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규제의 정도와 신뢰는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는데, 미국·영국·일본과 같이 신뢰가 높은 국가는 대체로 규제 정도가 낮다고 평가받는 반면, 한국은 중국·이탈리아와 같이 신뢰가 낮고 규제는 높은 국가들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한국에서 저신뢰에 따르는 규제의 정도가 높은 곳을 찾으라면 단연 눈에 띄는 것이 교육행정이다. 최근 교육부와 교육청이 하고 있는 교육정책을 보고 있자면 규제 당국이 학생, 학부모, 교육자들에 대해 갖는 신뢰가 엄청나게 낮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 교육정책의 화두는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이 주를 이룬다. 정부가 주도한 고교등급제·본고사·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대표적 교육규제인 3불정책과 사교육 통제를 위한 밤 10시 이후 학원 야간수업 금지, 외고 입시제도를 비정상적으로 왜곡하는 정책들이 바로 그것이다. 교육의 직접적 당사자인 학교나 학부모들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정책보다는 문제 발생의 소지를 줄일 수 있는 규제정책이 입안되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저신뢰의 결과는 규제당국의 권위주의적 교육 시스템 양산으로 이어진다. 교과부는 ‘창의적 체험활동 시스템’이라는 것을 만들어 초·중·고교 학생들이 체험활동을 기록하고, 교사가 승인하도록 하고 있다. 국가가 전국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학생들의 활동을 기록하는 전체주의적 발상 자체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시스템에 대한 기록을 통해 교육 당국이 얻으려는 목적이 학생들의 창의성이라는 게 더 놀랍다. 규격화되고 통일된 관리시스템이 학생들의 창의적 체험과 발상을 독려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체험하기보다는 입시를 위해 관리해야 하는 사항을 하나 더 늘려 학생·학부모 부담을 가중시킬 뿐이다. 정부의 규제중심적 발상은 정부가 교육현장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세부지침들을 마련하는 데에서도 관찰된다. 이번 대학입시에서 몇몇 고등학교가 생활기록부를 임의로 수정한 것이 발각되자 교과부는 기재 내용의 수정은 불순한 의도가 있는 행위라고 예단하고 이를 금지하는 행정적 지침을 내렸다. 교육 소비자들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한국의 미래를 대비하는 거시적인 정책보다 문제의 소지를 줄이고 단기간의 성과를 기대하는 정책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부 행태가 다시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조장해 교육의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고 불신의 악순환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1945년 이래 한국의 대입제도가 16차례나 바뀐 데서 알 수 있듯이 한국 교육정책은 교육제도의 개혁에 주안점을 두어 왔다. 수많은 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와 다양한 교육관이 얽혀 있는 교육제도의 실험 끝에 이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교육 개혁이 불신에 기초한 제도와 규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교육소비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이고 통제지향적인 정책으로는 정부가 의도한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교육을 이끌어낼 수 없다. 최근 대통령이 교육정책의 중요성을 깨닫고 매달 교육개혁대책회의를 여는 등 직접 교육개혁을 챙기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이 이명박 정부가 출범 당시 표방한, 교육의 관치를 없애고 자율성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기본방향은 불신에 기초한 규제가 아니라 교육현장의 자율과 창의성을 살리고 교사들이 매일매일 신명나게 교육을 담당하도록 격려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들을 사회적 감시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이들에게 전폭적인 사회적 신뢰를 부여함으로써 교육현장의 자율성이 확보되고 책임교육이 시행되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 “한국 교회 세속화·권위주의 심각하게 다시 고민해 봐야”

    “한국 교회 세속화·권위주의 심각하게 다시 고민해 봐야”

    “교회의 대형화로 인한 한국 교회 부패의 현실은 참교회와는 거리가 멉니다. 중세 종교개혁이 일어나던 당시의 부패상과 뭐가 다른가요?” 유럽 종교개혁지 탐방 중에 만난 신국일(56) 목사는 최근의 한국 교회 상황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도 단호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신 목사는 1982년 독일로 유학을 와 마인츠대에서 공부를 마친 뒤 현지에 남아 지금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 근처인 슈발바흐성령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있다. 멀리 떨어져 있기에 한국 교회에 대한 발언은 특히 조심스러웠다. 그는 “종교개혁의 핵심은 종교 본연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지금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의미”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품고 있는 문제의식을 하나씩 풀어냈다. 그는 “한국 교회의 세속화, 권위주의화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오죽하면 목회자들 사이에서 대형 교회 해체 이야기까지 나오겠느냐.”며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는 한국 기독교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히 개별 교회에서 특정한 목사를 중심으로 교회의 외적 성장이 이뤄진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신 목사는 “한국 교회는 목사의 카리스마와 설교의 흥미 등에 따라 교인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시스템을 갖췄다.”면서 “신앙 활동의 주변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오히려 중심이 되어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 독일에서 오랫동안 생활했기에 독일 교회 시스템과의 비교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독일의 국교(國敎)는 기독교다. 그는 “독일은 국민의 80%가 거의 절반 정도로 나뉘어 가톨릭 또는 개신교를 믿는 나라지만 보통의 경우 1년에 한두번 교회를 찾는 정도”라면서 “요란스러운 성직자도, 요란스러운 신도도 없다.”고 말했다. 특히 성직자들의 급여와 교회 지원 등에 주로 쓰이는 ‘종교세’를 걷는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 덕에 일부 목사의 수십억대 연봉 혹은 교회 확장에 혈안이 되는 모습 등과 같은 한국적 현상은 찾아볼 수 없다. 신 목사는 “500년 전 종교개혁의 정신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한 만큼 형식이나 제도가 아닌 정신을 현재 상황 속에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네바(스위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사설] 서울시 교육감 의전용 관사 어처구니없다

    탈권위를 내세워 온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스스로의 가치를 배반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내외 귀빈을 접대하기 위해 교육감 의전용 관사(官舍)를 짓겠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설치 근거를 담은 ‘서울시교육감 소관 공유재산 관리조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전면 무상급식’을 결행해 재정에 부담을 안기고 또 불요불급한 관사까지 건립하겠다니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곽 교육감은 예산 부족으로 꼭 필요한 낙후 교육환경 개선사업조차 차질을 빚고 있는 실정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수십억원의 예산이 들어갈 관사를 고집하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관사라는 거주·업무 겸용 공간은 그 자체가 권위주의의 상징이다. 이른바 진보 교육감으로서 지향해온 탈권위 기조와 어울리지 않는다. 기존의 관사도 매각하거나 다른 용도로 전용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임을 모르는가. 경기·울산 교육감은 관사가 있지만 모두 자택에서 통근한다. 충청북도교육청은 영어교육을 위해 관사를 원어민강사 숙소로 바꿨다. 대전·대구 시교육청은 관사를 팔았다. 서울시교육청만 국가 간 교류 운운하며 ‘관사 초청’ 의전의 필요성을 강변하고 있다. 교육감에 대한 보안강화도 관사 설립 이유로 꼽았다. 곽 교육감은 당선 직후 자신을 찍지 않은 65%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반대 진영의 소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관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그런 점에서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업무 효율을 위한 관사 설립이라면 물론 탓할 수만도 없다. 하지만 일에는 선후완급이 있는 법이다. 곽 교육감은 관사 신축계획을 당장 거둬들여야 한다. 그것이 그나마 혁신학교, 교육격차 해소 등 나름의 개혁조치에 대한 성과라도 보전하는 길이다. 최고위 선출직 교육공직자로서 대외 이미지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교육복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 [오늘의 눈] 미국목사·한국목사/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오늘의 눈] 미국목사·한국목사/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미국 교회는 어떠할까라는 궁금증에 13일 아침 인터넷을 두드려 찾아간 곳은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커뮤니티 유나이티드 감리교회’였다. 청교도적 신성(神聖)과 고풍스러움으로 찬연한 교회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일생을 성경과 기도로 살았을 법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옹기종기 앉아 백발이 성성한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신도들 자리까지 내려와 문답식으로 설교하는 칼 리플리 목사의 모습은 종교적 권위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윽고 단상으로 올라간 그는 설교 내용(사순절)과 관련한 ‘평범한’ 내용으로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다 ‘뜻밖에도’ 일본 지진을 언급하면서 일본인들이 속히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고는 리비아에 평화가 깃들기를 간구하는 것으로 기도를 마쳤다. 아, 인류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무조건적 사랑은 미국의 어느 시골 교회 한 구석에서도 어김없이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흐뭇한 여운을 안고 귀가해 인터넷으로 한국을 연결했을 때 나는 경악했다. 서울 한복판 초대형 교회의 목사가 일본 지진을 두고 일본 국민이 하나님을 멀리한 데 대한 경고라는 식으로 말했다는 것이다. 이 땅에 그리스도가 재림한다면 센다이로 달려가 고통 받는 이들을 치유하고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기적을 베풀까, 아니면 ‘거 봐라, 나 안 믿으니까 그런 꼴 당하지.’라고 고소해할까. 그리스도가 재림한다면 원수는커녕 이웃마저 사랑하는 데 인색한, 가진 것 많은 부자 목사의 편을 들까, 종교를 떠나 불쌍한 자들을 걱정하는 시골 목사를 귀하게 여길까. 개신교를 의미하는 프로테스탄트는 원래 ‘항의하다’(프로테스트)라는 말에서 나왔다. 성직자 마르틴 루터가 타락한 로마 가톨릭 교회에 항거한 정신에서 비롯됐다. 부패하고 비뚤어진 한국의 ‘재벌 교회’에 항거하는 일은 이교도의 몫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서약한 기독교인들의 책무다. carlos@seoul.co.kr
  • [데스크 시각] 법원 자정 노력을/이기철 사회부 차장

    [데스크 시각] 법원 자정 노력을/이기철 사회부 차장

    어느 판사의 미국 연수시절 이야기다. 그가 집에서 책을 읽는데 갑자기 ‘꽝’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아이방으로 달려가 보니 탁상용 스탠드가 부러져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가 중학생 아이에게 “왜 스탠드를 부러뜨렸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데 저절로 뚝 떨어져 부러졌다.”고 답했다. 그는 “갑자기 그럴 리가 없다. 공부하기 싫어서 부러뜨린 게 아니냐.”고 따졌다. 아이가 “그렇지 않다.”고 강변하자, 그는 “이젠 거짓말까지 한다.”며 아이를 다그치며 한참 혼을 냈다. 그때 그의 부인이 집으로 들어왔다. 그는 “아이가 공부하기 싫어 스탠드를 망가뜨리고 거짓말까지 하는데 쇼핑이나 다니느냐.”며 부인을 질책했다. 부인은 쇼핑백에서 전기스탠드를 꺼냈다. 그러곤 “아이방 청소를 하다 스탠드를 밀쳐서 떨어뜨렸다. 임시방편으로 붙여놨으나 새로 사왔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모든 상황을 파악한 판사는 그냥 우두커니 서서 먼 산만 바라봤다. 아이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동시에 예단(豫斷)의 위험성을 깨달았다. 재판을 하면서 사건을 자신의 프레임에 가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단다. 또 다른 일화다. 한 판사에게 시골 농부가 피고로 왔다. 농부는 논을 비옥하게 하고자 객토(客土)를 했다. 하지만 객토업자에게 돈을 주지 않았기에 소송으로 번진 것이다. 판사가 농부에게 물었다. “객토를 했습니까?” 농부는 “예.”라고 답했다. “줄 돈은 있습니까?” “예.” “그런데, 왜 돈을 주지 않았지요?” 법정 분위기에 압도당한 농부는 시멘트 운운하며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이에 판사는 농부에게 “대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농부는 꾸물꾸물하다 법정을 떠났다. 얼마 뒤, 판사는 다른 자리에서 객토업자들의 농간을 들었다. 일부 업자는 시멘트와 돌이 섞인 건설폐기물 같은 것으로 객토해 논을 못 쓰게 버린다는 것이다. 이후 판사는 어눌한 농부가 하고 싶었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보고 싶었던 것만 보았던 것이 아닌가 하고 반성했다는 후일담이 전한다. 지난해 대구지법의 한 부장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몇년간 앓아온 우울증 때문이다. 정신병 환자인 셈이다. 그에게서 재판을 받은 당사자들은 정신병자에게서 재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할 터이니, 모골이 송연해졌을 것이다. 법원은 그가 했던 재판과 관련된 변호사들에게 항소하라고 넌지시 부추겼다는 후문이다. 법원이 그의 결정을 한번 더 살펴보고 오류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함이었다. 그 부장판사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은 법원이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최근엔 광주지법 파산부의 수석부장이었던 선재성 판사의 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법정관리기업에 친형과 친구들을 감사와 관리인 등으로 파견했다. 선 판사는 ‘부실기업 회생을 위해 내가 최선을 다했고, 가장 믿을 만한 사람들을 보냈는데 뭐가 문제냐.’는 태도를 보였다. 최고 엘리트인 내가 하는 결정은 다 맞다는 독선이 사법부 구성원 사이에 만연한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우울증 판사나 친형을 법정관리기업의 감사로 지정하는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은 사법부의 자정 노력에 달려 있다. 문제가 있는 법관을 재판에서 걸러내야 한다. 부장판사가 맡는 윤리감사관을 고법부장급으로 상향조정, 독립적인 감찰활동을 강화해야 국민의 신뢰가 선다. 문제를 일으킨 법관은 과감하게 인사조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권위주의 시절처럼 재판 간섭으로 받아들여서는 법원이 더 이상 성숙하지 못한다. 며칠 전 부산지법 고종주 부장판사가 63세로 정년퇴직을 했다. 지법 판사가 정년퇴직하기는 사법부 66년 사상 6번째다. 그는 전관예우 논란을 빚는 로펌행이나 변호사 개업에 뜻이 없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이니 36년간의 공직 경험을 활용할 기회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법관이 전혀 없는 시·군이 무척 많다. chuli@seoul.co.kr
  • [강지원 좋은세상] 화합형 대통령, 왜 찾을 수 없나

    [강지원 좋은세상] 화합형 대통령, 왜 찾을 수 없나

    당최 화합형 대통령을 찾아볼 수가 없다. 지금 거론되는 대선주자들은 하나같이 쌀쌀맞기가 그지없다. 한번 떴다 하면 차가운 냉기(氣)가 쫙 흐른다. 눈빛에는 독기(毒氣)가 흐른다. 아니면 오기(傲氣)가 흐른다. 심지어 살기(殺氣)마저 비치는 경우도 있다. 어디서 그런 것들을 배웠는지, 입을 뗐다 하면 독설이요, 겉으론 독설이 아닌 것처럼 포장한다 해도 안에는 비수를 품고 있는 듯한 발언들을 쏟아낸다. 일일이 사람을 품평할 수는 없으나, 대충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어떤 이는 멀쩡한 얼굴에 한시도 입을 가만 두질 않는다. 그저 좌충우돌 닥치는 대로 내뱉는다. 노이즈 마케팅이다. 또 어떤 이는 투사(鬪士)를 자처한다. 제 생각이 절대이고 그것과 다른 것은 전적으로 망국의 길이라고 소리친다. 또 어떤 이는 도무지 웃음 띤 얼굴을 찾아볼 수가 없다. 간혹 나름대로 웃는다고 웃는 것 같으나, 다시 보면 마치 비웃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가끔 웃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나, 그저 형식적인 웃음 같아 보인다. 내심에는 독한 무엇이 있는 듯한데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느낌이다. 왜 이럴까. 왜 이들은 이처럼 독선적이고 투쟁적이고 살벌한 기질들을 갖게 되었을까. 왜 하나같이 자폐형 인물들이 되었을까. 먼저 생각나는 것은 그들의 인격 형성과정이다. 사람은 유아기부터, 아니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인격 형성이 시작된다. 너무 호의호식했다거나 못 먹고 못 자랐다는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환경들이 DNA와의 교섭과정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어떻게 극복되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소싯적의 트라우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어떻게 심리적으로 극복했는지가 관전포인트다. 다음으로는 학습효과다. 지난 수십년간의 이 나라 정치풍토가 그들에게 어떤 학습을 시켜주었을까다. 권위주의 독재자들과 이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이들, 그리고 이들에 항거해서 처절하도록 싸웠던 이들 사이에서는 몇 차례의 반전을 거쳐 결국 민주화 투쟁이 성공했다. 이는 성전(聖戰)이었다. 그런데 그 성전 이후에 우리는 진실한 화해와 화합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교묘하게 이념으로 포장된 채 ‘권력’이라는 먹거리를 두고 싸움질을 계속했다. 실권한 정당은 10년 내내 야당으로서 여당을 괴롭히고 일을 못하게 했다. 반대로 10년 동안 잘도 나가던 정당은 다시 야당이 되어 그 특유의 버릇으로 시도 때도 없이 길거리를 누비며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도무지 이 나라는 한개의 나라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니 이들 정치권 인물들이 무엇을 학습했겠나. 죄다 싸우고 깨고 악을 쓰는 것 외에 무엇을 배웠겠는가.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좋은 롤모델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게다. 문제는 이제 그런 시대가 지났다는 것이다. 이만큼 먹고 살 만한 산업화도 되었고 이땅에 카다피 같은 괴물이 다시 존재하지도 않는데,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 다음 일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지금 이 나라에는 현재 거론되는 대선주자들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 얼마든지 많다. 공부 많이 한 사람도, 인격적으로 휼륭한 사람도 훨씬 많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른가. 이들은 이 ‘아수라장’ 같은 정치판에 뛰어들지 않은 것뿐이다. 이들은 여전히 정치판에 뛰어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할 수 없다. 이 주자들에게 변화하라고 촉구할 수밖에. 그래서 권고하고자 한다. 다음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이들, 제발 웃는 얼굴로 TV에 나오라. 쌀쌀맞은 태도 좀 뜯어고치고, 넉넉하고 여유 있고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라. 그리하여 부디 화합형 대통령이 되라. 그러기 위해 다음 대선공약으로 국민화합 매니페스토를 반드시 내놓으라. 대통령이 되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공약으로 내놓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대선은 국민화합을 가장 큰 이슈로 경쟁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내년에 과연 화합형 대통령을 맞이할 수 있을지, 어디 눈을 씻고 함께 찾아보자.
  • [열린세상] 새 세상이 열리는 중동현장에서/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열린세상] 새 세상이 열리는 중동현장에서/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지난 두달 가까이 중동에서 현장연구를 하고 막 돌아왔다. 잘못된 정권을 뒤엎으려는 거센 분노와 새 세상을 만들려는 뜨거운 열기의 한가운데서 나도 새로운 공부를 하고 왔다. 9·11테러 이후 10년간 세상이 바뀌었듯이 중동의 아랍국가들도 엄청나게 변했음을 느꼈다. 많은 국내외 전문가들이 이번 사태를 종파 간·부족 간 권력 갈등과 소외의 문제로 분석하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번 아랍 민주화 시위는 50년 동안 억눌려 왔던 민주, 인권, 복지, 삶의 질을 향한 근원적 변화의 문제이다. 아랍세계이니 다른 세계와 다를 것이라는 전제가 잘못되었다. 다만 독립 이후 최초로 경험해 보는 민주화 실험의 서투른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왜 튀니지에서 촉발된 정권 퇴진 시위가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42년 철권통치의 카다피까지 무너뜨리면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는 이웃 왕정 산유국으로까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고 있는가? 아랍은 80년 전만 해도 하나의 공동체였다. 아랍어를 사용하고, 이슬람교를 믿으며 아랍인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면서 1300년 동안 하나라는 집단의식이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런 아랍세계가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서구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22개의 개별국가로 쪼개져 버린 것이다. 더러는 왕정을 유지하고 더러는 군사 쿠데타를 통해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거듭났다. 통치체제는 각각이지만 그들을 묶어 두는 아랍정신은 지금도 맥이 통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서로에게 영향을 받은 거대한 변화의 욕구가 이슬람식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부르짖고 있다. 첫째,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 중심에는 이념이나 종교 대신 철저하게 삶이 들어와 있었다. 치솟는 물가와 대학을 나와도 직장을 구할 수 없는 청년실업 문제, 30~40년 한결같이 억눌러 온 권위주의 왕정과 군사독재정권을 향한 극에 달한 불만과 분노, 자유롭게 말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은 희구가 자욱이 깔려 있었다. 둘째, 그들은 새로운 삶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소셜네트워크의 힘이고 인구의 60~70%를 차지하는 20대 후반 이하 젊은 층의 요구였다. 그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세상과 실시간으로 호흡하면서 자신들의 처지를 처절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유선전화 시대를 거치지 않는 파격적인 변화의 속도다. 록카페에서 몸을 흔들고 여성들의 히잡 색깔이 화려해졌다. 외국의 유명 브랜드 회사들이 연이어 명품 히잡을 출시하면서 이슬람 여성들의 패션도 첨단을 달리고 있었다. 셋째, 그들은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부르짖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1세대 지도자들은 비록 장기집권과 독재적 통치형태를 밟았어도 기본적으로 독립전쟁의 영웅으로서, 혁명 지도자로서, 국부로서 최소한의 국민 공감대와 신뢰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공헌도 못한 그의 자식들이 권력을 세습하고 호화로운 사치행각에 국가의 부를 탕진할 때 그들은 좌절하고 때로는 침묵으로 인내해야만 했다. 넷째는 미국의 새로운 역할에 대한 주문이다. 독재정권에 시달려온 아랍 민중들은 권력자들을 비호해온 미국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동시에 미국 주도의 새로운 세계질서 구도에 편승하고자 하는 욕구가 또한 묘하게 존재한다. 따라서 미국이 종래처럼 이스라엘 안보와 석유 이익이란 두개의 축을 지키기 위해 독재정권과도 협력하고 지원해 주던 중동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랍 국민들은 미래의 세계질서는 미국-서구, 중국-동아시아 축과 함께 중동-이슬람 축이 굳건히 자리잡아 함께 공존하며 협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 이제는 우리도 중동-이슬람 세계를 무지와 편견 속에 주변부로 몰아내기보다는 주류세계의 파트너로 인식하고 중심부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인구 15억에 57개국을 거느린 세계, 자원과 자본을 가진 거대한 시장을 버려두고 진정한 글로벌 경쟁을 논하는 것은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다.
  • [열린세상] 통일 패러다임 전환 고려할 때/서재진 통일연구원장

    [열린세상] 통일 패러다임 전환 고려할 때/서재진 통일연구원장

    이명박 정부 3년이 지났다.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대북정책의 목적에 따른 평가기준의 차이다. 대북정책의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분단의 평화적 관리요, 다른 하나는 통일 대비, 또는 통일 실현이다. 지난 정부 10년 동안은 남북관계의 평화적 관리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포용과 유화책 중심의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전 정부의 포용정책은 북한을 체제 위기에서 구해주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으로 나갈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었다. 또한 북한이 개혁·개방하면 체제가 변화하여 자연히 통일로 이어질 것이라는 가설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포용정책을 10여년간 추진해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북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포용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던 2002년에도 북한은 앞에서는 핵폐기 협상을 하고 뒤에서는 몰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최근 북한 스스로의 현장 공개로 확인되었다. 포용정책이 한창 추진 중이던 2006년에 북한이 핵실험을 하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망연자실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포용정책은 오히려 북한에 남북관계의 결정권을 넘겨주고, 북한의 선의에 기대를 걸었기 때문에 북한은 이를 이용하여 몰래 핵을 개발하는 선택을 했음이 증명되었다. 포용정책을 추진하면 북한이 변화할 것이라는 근거로 포용론자들은 토크빌의 패러독스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토크빌의 패러독스란 전체주의 체제가 현상유지를 할 때는 안정을 유지하다가 변화를 시도하는 순간 갑자기 혁명을 맞게 된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에 근거하여 현상유지(muddling thru)에 집착하는 북한을 설득하여 개혁·개방을 추진하도록 유도하면 북한이 변화하여 통일에 이를 것이라는 가설을 현실로 믿었던 것이다. 토크빌의 패러독스는 민주주의 전통이 있었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맞는 가설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사회주의 나라들에서는 토크빌의 패러독스가 일어나지 않았다. 체제 유지 방식이 훨씬 권위주의적이기 때문이다. 중국도 베트남도 개혁·개방을 적극 추진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개혁·개방 추진 후 중국은 오히려 체제가 강화되어 G2 반열에 올랐고, 베트남도 안정적인 고도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포용정책은 결국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도 통치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함으로써 북한정권 연장에 도움이 되는 역효과를 냈다. 오히려, 미국 부시행정부 8년간 북한에 가한 봉쇄와 제재가 북한의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를 해체시켰다. 그 결과 북한 주민들이 자구책 차원에서 시작한 암시장이 경제의 전 영역에 확산되었고, 대량 아사가 없어졌고, 시장이 계획을 상당부분 대체하는 수준으로까지 진전되었다. 북한의 시장화를 우리가 원하는 변화로 본다면, 그 변화는 북한의 경제난에 기인한다. 대북 포용정책이 아닌, 미국의 대북제재 효과인 셈이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대북정책은 진정한 대화와 진정한 변화 유도를 위한 정책이다. 정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주민을 위한 정책이다. 단기적 승부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통일에 대비하기 위한 정책이다. 압박을 위한 압박이 아니라 대화를 위한 압박이다. 진정성 있는 대화가 가능한 때는 압박의 효과가 충분히 날 때다. 그렇지 않고 북한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대화는 지금까지 확인된 바와 같이 핵개발을 위한 시간 벌기, 대북 지원을 노린 일시적 유화책이었다. 북한이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도록 압박하는 정책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선택하였을 때와 거부하였을 때의 대차대조표를 가지고 진정한 의미의 선택을 하게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2012년에 강성대국의 문을 연다는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 그리고 3대 권력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자기 이름으로 배급을 정상화하고자 갖은 애를 쓰고 있는 후계자 김정은이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 이제는 3대세습체제와 공존하는 분단체제의 지속이냐, 북한주민들에게 새 삶을 줄 통일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냐를 국민들이 선택해야 할 때다. 이제는 3대세습체제와 공존하는 분단체제의 지속이냐, 북한주민들에게 새 삶을 줄 통일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냐를 국민들이 선택해야 할 때다.
  • [사설] 국회 특수활동비 도대체 무슨 돈인가

    국회가 지난 2년 동안 특수활동비 명목으로 170억원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회는 이 돈을 영수증 없이 사용했다고 하니 도대체 무슨 용도로 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국회는 국민 세금으로 마련된 나라 살림이 투명하게 쓰이도록 감시·감독해야 하는 소임을 안고 있다. 그 본분을 망각하고 오히려 비밀예산을 책정해 흥청망청 썼다면 국민 배신 행위나 다름없다. 국회는 그 많은 돈을 무슨 특수활동에 썼는지 소상히 밝혀야 한다. 특수활동비란 정보 및 사건 수사와 그에 준하는 국정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라고 기획재정부 지침에 명시돼 있다. 국회가 정보 및 사건 수사를 한다는 건지, 그에 준하는 국정수행 활동을 한다는 건지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다. 이런 일을 한다면 그 자체가 불법이고 탈법이며, 하지 않으면서 세금을 쓴다면 세금 도둑질이나 다름없다. 특수활동비는 윤리특별위원회 지원, 특별위 운영 지원, 국정감사 및 조사 지원 등 애매모호한 이름으로 지원됐다고 한다. 이런 통상적인 업무들이 특수활동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국회가 대답해야 한다. 권위주의 시절엔 특수활동비로 불·탈법 내지 부당한 일을 하는 사례가 있었기에 지금도 이를 둘러싼 인식은 부정적이다. 매년 정기국회 때만 되면 야당은 그 비밀예산의 삭감 내지 폐지를 벼르고, 여당도 부분 동조한다. 지난해에도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법무부와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를 전액 삭감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랬던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도 동조해 자신들의 특수활동비를 책정해 아무런 감시도 받지 않고 쌈짓돈처럼 썼다. 이는 이율배반이자 자기모순이며, 몰염치한 행태라고 손가락질해도 붙일 말이 없을 것이다. 정치권은 국회 선진화, 즉 폭력국회 추방을 이번 2월 임시국회의 또 다른 책무로 외친다. 도덕 불감증부터 해소하는 게 먼저다. 윤리특위가 폭력 사태 등으로 제소된 국회의원 징계안 13건을 상정했다.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하다가 정치적 흥정으로 꼬리를 내리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엄한 징계로 개혁 의지를 내보이고, 최소한 징계 대상 의원들로 하여금 공개 반성문을 쓰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수활동비를 쌈짓돈처럼 쓰는 데만 한통속이 될 게 아니라 이런 데 한몸이 되어야 한다.
  • 바레인까지 번진 불길

    튀니지와 이집트를 불태운 민주화 불길이 북아프리카와 중동으로 옮겨붙고 있다. AP통신 등은 13일(현지시간) 예멘과 알제리, 요르단, 바레인, 수단 등 5개국에서 크고 작은 민주화시위가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또 이란 수도 테헤란의 테헤란광장에서 14일 수백명이 이집트, 튀니지의 시민혁명을 지지하는 거리행진을 펼쳤다고 전했다. 수십년 동안 권좌를 지켜온 권위주의 통치자들은 한편으론 정치 개혁 등의 유화책을 내놓고 다른 한편으론 강경 진압으로 위협하며 불길을 잡으려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가장 심상치 않은 흐름을 보이는 곳은 아라비아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예멘이다. 가장 오래된 인류 거주지이며 아라비안나이트의 주요 배경지 가운데 하나인 예멘 수도 사나에선 이날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 1000여명은 대통령궁으로 행진하려다 경찰과 충돌했다. 1978년 북예멘에 이어 1990년부터 통일 예멘까지 이끌고 있는 살레 대통령은 재임 기간만 33년이나 된다. 그는 최근 시위가 격화하자 2013년 임기를 끝으로 물러날 것이며, 아들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지도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이달 말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던 살레 대통령은 국내 상황을 이유로 계획을 연기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갑작스러운 방미 연기는 자신의 퇴임을 요구하는 야권과 대화하기 위한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왕정국가 바레인에서도 14일 시위대와 경찰 간에 충돌이 발생했다. AP통신은 이날 시아파 거주지 남서부 네위드라트 마을에서 경찰이 행진하던 시위대를 해산시키려고 최루가스와 고무탄을 발포해 수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하마드 빈 이사 알 칼리파 바레인 국왕은 가구당 1000디나르(300만원 상당)를 지급하겠다는 유화책을 내놓았지만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시아파 주민들의 불만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알제리에선 오는 18일 2차 민주화시위가 예고되어 있다. 알제리 야당과 인권단체, 비공식 노조 등으로 구성된 ‘변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전국협의’(CNCD)는 이날 수도 알제에 있는 메이데이 광장에서 대규모 민주화 행진을 벌일 것이라고 13일 발표했다. 알제리 정부는 1992년 이후 유지해 온 국가 비상사태를 조만간 해제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위를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경찰 3만명을 배치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도망자 신세 된 독재자… 700억달러 어디로 빼돌렸나

    도망자 신세 된 독재자… 700억달러 어디로 빼돌렸나

    ‘현대판 파라오’를 무너뜨린 것은 차량폭탄·총격 등 10차례의 암살 시도도, 중병도 아닌 그의 국민들이었다. 29년 120일간 지속됐던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의 숨통을 민주화 시위가 18일 만에 끊어 놓은 것이다. 명예퇴진을 고집하던 무바라크는 이제 구원의 손길 없이 남은 세월을 가족과 함께 도망 다니는 신세로 전락했다. 1973년 이스라엘과 맞붙은 제4차 중동전쟁에서 세운 공으로 1975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으로부터 부통령으로 발탁된 그는 1981년 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당하면서 4대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가말 압둘라 나세르와 사다트 같은 전임 대통령들이 군사혁명으로 왕정을 무너뜨려 국민들 사이에 정통성을 획득한 것과 비교하면 처음부터 취약한 기반에서 출발한 그는 철저한 권위주의 정부를 고수했다. 30년간 국가를 옥죄어 온 비상계엄법과 이집트 최대 야권 세력인 무슬림형제단 탄압, 정당·대선 후보 조건 강화로 반대파의 정계 진입 봉쇄 등이 대표적 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정적들을 낳았다. 알지하드, 카마 이슬라미야, 탈레알파타 등 숱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암살 시도에도 여러 차례 직면했다. 하지만 외교적 수완은 남달랐다. 미국·이스라엘 등과 탄탄한 동맹을 유지, 중동평화의 상징적 인물로 자리매김한 동시에 매년 15억 달러의 원조를 얻어내 이집트 경제에 수혈했다. 무바라크의 가장 큰 실책은 차남 가말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이집트 국민들을 돌아서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 가말은 결국 지난 5일 집권 국민민주당 ‘넘버 3’인 정책위 의장에서 사퇴, 세습의 꿈을 버려야 했다. 700억 달러(약 78조 8900억원)로 알려진 무바라크 일가의 재산에도 세계의 눈이 쏠려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관리들은 무바라크 가족들의 재산을 20억~30억 달러로 추산하고 있으며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 등 외국 은행에 은닉돼 있다고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무바라크가 시위기간 중 재산을 추적 불가능한 해외 계좌로 빼돌렸다고 전했다. 스위스 당국이 지난 11일 스위스 은행의 무바라크 자산을 동결한다고 발표한 가운데 무바라크는 자산을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빼돌리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바라크 일가는 미국 뉴욕과 베벌리힐스를 비롯해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에 막대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국영기업 민영화와 외국 기업의 이집트 진출 과정 등에서 이권을 챙긴 의혹을 받고 있다. 특히 가말은 이집트 최대 투자은행인 EFG-헤르메스와 함께 석유, 철강, 시멘트 등의 사업에서 영향력을 행사, 부를 형성한 혐의가 짙다. 유럽연합(EU) 관계자는 14~1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로존 재무장관회의 등에서 무바라크의 자산 동결 여부가 긴급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무바라크 일가의 부정부패로 관심의 초점이 모아지면서 그가 이미 독일로 출국했거나 UAE,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다는 설도 나온다. 허핑턴포스트는 “무바라크가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하면 튀니지 혁명으로 축출된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과 함께 ‘독재자 클럽’을 만들 것이고 이 클럽의 회원 수는 더 많아질 것”이라는 뼈 있는 농담으로 30년 독재자의 말로를 정리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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