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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 인 포커스]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49) 에콰도르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치러진 대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3선에 성공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과 더불어 남미 강경 좌파 지도자 3인으로 꼽히는 코레아 대통령의 승리로 남미 좌파 블록은 더욱 힘을 받게 됐다. 에콰도르 선거관리위원회(CNE)에 따르면 개표 결과 코레아 대통령이 57%를 얻어 2위 후보인 우파 성향의 전직 은행가 기예르모 라소가 얻은 24%를 크게 앞서며 승리를 확정지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코레아는 이번 선거에서 과반 이상 득표를 확보해 2009년 대선에 이어 두번 연속 결선투표를 거치지 않고 연임에 성공했다. 임기는 2017년까지이다. 1963년 에콰도르 항만도시 과야킬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코레아는 과야킬 지역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벨기에와 미국에서 각각 경제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경제통이다. 2005년 알프레도 팔라시오 정부 시절 4개월간 재무장관을 맡았고, 이듬해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 좌파 후보로 출마해 대권을 처음 거머쥐었다. 2007년 취임한 코레아는 대선 공약대로 제헌의회 구성에 나서 임기 4년의 대통령직을 연임할 수 있는 내용의 신헌법을 통과시켰다. 그는 2008년 신헌법을 국민투표에 부쳐 신임을 받아냈고, 이에 기초해 치러진 2009년 4월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코레아는 집권 기간 ‘오일달러’를 활용해 사회 인프라를 확대하는 정책으로 빈민층과 저소득층의 절대적 지지를 이끌어냈다.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유사한 노선으로 인해 ‘제2의 차베스’로 꼽힌다. 실제 친분도 깊어 지난해 12월 쿠바 수도 아바나로 건너가 암수술을 앞두고 있는 차베스를 면회하기도 했다. 대중적 지지 속에 3선을 달성한 코레아지만 독불장군식 권위주의적 태도에 대한 비난도 적지않게 제기되고 있다. 2008년 전임 정부 시절 차관도입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며 채무불이행을 선언했고,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에 보다 많은 개발이익을 받아내기 위해 새로운 계약을 맺도록 거세게 압박한 바 있다. 또한 정부에 비판적 보도를 하는 언론인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등 언론 탄압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과학의 조건/심재억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과학의 조건/심재억 전문기자

    과학의 불행은 주로 권력의 강박에서 비롯된다. 강박은 권력의 셈법으로 도출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다. 성과 독점과 권력 유지 등 정치적 이용가치만을 따질 뿐 과학을 과학으로 이해하지 않는 탓이다. 권력 강화를 위한 디딤돌로 삼든가, 과학의 성과 뒤에서 과학과는 전혀 다른 계산을 할 뿐이다. 여기에 돈(예산)이 결부되면 강박은 집착으로 돌변한다. 과학은 인간과 문명에 헌신하는 수많은 체계 중에 가장 위력적이고 존엄한 분야다. 그래서 과학정책은 더 엄중해야 한다. 물론 과학이 항상 선을 지향했던 것은 아니다. 전쟁에 부역해 문명의 가치를 훼손했는가 하면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소품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과학의 가치중립적 특성이 대중을 설득하기에 용이할 뿐 아니라 대중의 심리를 격발하는 촉매로도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과학이 과학 밖의 다른 힘에 의해 재단되던 시절, 과학은 발전했지만 진보하지 못했다. 우리도 다르지 않았다. 권위주의 시대는 과학을 정치적 이해로만 재단했다. 심장이 식어버린 과학은 권력의 지침에 순종했고, 과학자들은 항상 ‘국가’와 ‘애국’의 무게에 짓눌렸다. 과학의 본질이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그 시절, 과학은 절대권력을 옹위하는 홍위병의 깃발 하나일 뿐이었다. 그 시절의 한국 과학은 확실히 불행했다. 지금은 어떤가. 나라가 부산하다. 정권 교체기의 변혁이 소용돌이치는 까닭이다. 그 중심에 ‘미래창조과학부’가 있다. ‘과학기술’을 ‘교육’과 얽어매 반편이로 만든 MB 정권의 과학에 대한 몰이해를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온갖 역할과 기능을 다 그러모았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이다. 승냥이떼처럼 과학을 뜯어 발긴 탓이다. 과학의 본산인 대학과 불가분의 관계인 산학촉진법과 산학 연계사업이 그렇고, 기초연구사업이 그렇다. 신성장동력사업과 원자력 비발전 분야 관련법은 또 어떤가. 그러면서도 미래창조과학부는 비대하다. 과학자들조차 “MB 정권 때와는 반대의 시각에서 우려된다”고 토로할 정도다. ‘과학을 권력의 자장(磁場) 속으로 너무 깊숙이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을 관장하는 부처의 영지가 확대되고, 그래서 과학을 할 토양은 척박한데 힘만 커지는 상황은 과학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 될 뿐이다. 과학으로 미래를 열겠다는 새 정부의 발상은 옳다. 그러나 과학을 과학으로 보지 않는 퇴행적 관료주의가 이런 정신을 위험하게 흔들어대고 있다. 아직도 과학을 부처 간 힘겨루기의 전리품으로 간주하는 관료주의의 병폐가 ‘미래’와 ‘창조’를 잠식하고 있다. 새 정부가 과학을 말하려면 지금은 물론 이후에도 지속가능한 토대를 닦는 게 우선이며, 그 시작은 먼저 관료주의적 안배의 배제에 둬야 한다. 그래야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학이 ‘시대정신’의 희생제의가 되지 않는다. 구미 제국을 과학 강국으로 키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상기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과학을 할 수 없는 부처를 만들어 놓고 함부로 ‘미래’와 ‘창조’를 말하는 것은 누가 봐도 구두선(口頭禪)일 뿐이다. jeshim@seoul.co.kr
  • 커지는 국세청… 긴장하는 건보공단

    커지는 국세청… 긴장하는 건보공단

    국세청 기능이 어느 때보다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하경제 양성화로 필요한 복지재원의 40%(53조원) 정도를 충당해야 하는 중책을 맡았기 때문이다. 이런 ‘국세청 힘 싣기’에 남모를 고민에 빠진 기관이 있다. 2010년부터 4대보험 통합징수업무를 맡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다. 31일 공단의 한 관계자는“4대 보험 통합징수 기능·조직이 국세청으로 넘어가거나 최소한 국세청 영향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도 “정부 조직개편이 마무리된 후 통합징수 업무 개편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008년 보건복지가족부 국정감사 때 한 발언이 이런 전망에 무게를 실어준다. 당시 박 당선인은 “4대보험을 건강공단에서 징수하는 것은 고지서 통합에 불과하다”면서 “소득 파악 시스템과 정보인프라를 원점에서 구축하려면 국세청이 4대보험 통합징수를 맡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대상자가 같은데 제도마다 다른 기준·방법으로 소득과 재산을 파악해야 할 이유가 없다”면서 “사회보험의 고질적 문제를 줄이려면 국세청이 징수를 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회보험에서의 사각지대는 건강공단도 인정하는 문제다. 공단 노조 관계자는 “현재의 통합은 완전한 통합이라기보다는 과도기”라면서 “징수만 할 뿐 자격 부과업무는 각 공단이 맡아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가입자들은 불편을 겪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지난해 12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건강보험이 경제 내 비공식 부문에 미치는 영향’ 연구보고서를 통해 건강보험 가입자 4명당 1명꼴인 407만명 정도가 보험료를 적게내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당선인의 국세청에 대한 신뢰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일부 지적도 나온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1966년 국세청을 신설하고 강력한 세금징수로 1970~80년대 산업화의 기반을 마련한 것이 박 전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당시 국세청이 1966년 세입목표였던 700억원을 달성해 대외신인도를 높였고, 더 많은 차관을 유치할 수 있었다. 박 교수는 “당선인이 국세청의 전문성을 높이 사는 것에 이런 성장환경이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선인의 ‘뿌리 깊은’ 국세청 신뢰에 대한 우려도 높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국세청의 금융정보분석원(FIU) 정보공유는 개인정보 보호가 전제된 금융실명제를 위반할 소지가 많다”면서 “공약이 도그마가 돼 갇혀 있기보다 세정 개선과 세율 인상을 함께 고려해야 혼선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 국세청을 야당 정치탄압에 활동하기도 하는 등 국민 신뢰가 형성됐는지도 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도 “건강공단의 반발이라든가 국민의 국세청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풀어주는 것이 국세청의 기능을 강화하기 이전 과제”라고 말했다. 세종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朴당선인 폐쇄·권위주의 리더십”

    “朴당선인 폐쇄·권위주의 리더십”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는 ‘적장’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31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찾아 “당선인에게 수직적, 폐쇄적,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이 남아 있다”며 쓴소리를 했다. 인수위원회의 국민대통합위는 이날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청사 별관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윤 전 장관을 초청해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윤 전 장관은 대선에서 박 당선인의 맞상대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전 후보 캠프에서 국민대통합추진위원장을 맡았고, 이전에는 안철수 무소속 전 후보의 ‘정치 멘토’로 불리기도 했다. 윤 전 장관은 이 자리에서 “박 당선인에게는 수직적, 폐쇄적,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남아 있다. 인사문제에 있어서도 그렇다”면서 “새로운 시대에는 민주시대에 맞는 국정 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고 국민대통합위 간사인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전했다. 윤 전 장관은 또 박 당선인을 향해 “집권당의 역할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집권당은 국민통합의 통로인데 역대 대통령은 집권당을 무력화시켰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윤 전 장관은 박 당선인의 장점도 언급했다. 그는 “박 당선인은 과거 어느 대통령보다도 야당에 대해서 포용적”이라며 박 당선인이 여야 정책에서 교집합은 함께 추진하자고 한 것이나 국가지도자 연석회의를 추진하자고 한 것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윤 전 장관은 “당선인 신분이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박 당선인이 여야 지도자 회의를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아울러 윤 전 장관은 과거 대통령들을 평가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분노와 배제의 정치를 했고, 국민통합의 정치는 하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공의 정치를 하지 않았고 강부자, 고소영 인사에서 보듯 사익을 중시했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국민대통합위가 윤 전 장관의 고언을 경청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한 것은 박근혜 정부가 추구하는 ‘국민대통합’을 위해 야권인사의 목소리도 수렴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 의원은 “윤 전 장관이 문 전 후보 캠프의 국민대통합추진위원장이었던 만큼 야권이 생각하는 통합의 의미를 수렴하기 위해 간담회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줄인다던 靑… 3실·3장관급 체제로

    줄인다던 靑… 3실·3장관급 체제로

    청와대 경호실이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격상되면서 차기 정부가 당초 밝혔던 ‘큰 정부-작은 청와대’ 구도에서 ‘큰 정부-큰 청와대’의 구조로 바뀌게 됐다. 새 정부의 청와대가 비서실·국가안보실·경호실의 3실 체제로 운영되며 장관급만 세 명이 배치된다. 특히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축소되던 경호실 권한이 이번에 다시 강화되면서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25일 청와대 경호처를 장관급 경호실로 승격시키는 내용의 청와대 추가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현재 대통령실과 정책실의 2실로 운영되던 청와대가 비서실, 경호실, 국가안보실의 3실로 커져 3실9수석34비서관 체제로 개편되는 것이다. 인수위는 또 국무총리실의 명칭을 국무조정실로 바꾸고 차관급의 총리 비서실장을 두기로 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 경호실 15년만에 장관급으로… “권위주의 시대 회귀” 비판

    경호실 15년만에 장관급으로… “권위주의 시대 회귀” 비판

    청와대 경호실이 15년 만에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격상된다. 과거 권력자의 지근거리에서 무소불위를 휘둘렀던 경호실에 대한 국민적 비판 때문에 지속적으로 역할과 규모를 축소해 오다가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확대 개편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밝힌 ‘작은 청와대 구상’이 뒷걸음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 21일 1차 청와대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현재 청와대의 6개 기획관을 모두 없애 ‘2실 9수석비서관’ 체제로 축소 운영한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이번에 비서실장-국가안보실장-경호실장을 모두 장관급으로 격상시켜 ‘큰 청와대’의 골격을 최종 완성했다. 경호실장의 장관급 격상은 권위주의 시대 체제의 회귀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권위주의 시대 체제에서는 경호실장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김영삼 정부 때까지 장관급으로 운영되던 경호실은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에서는 차관급을 경호실장으로 임명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경호실과 대통령 비서실을 대통령실로 통합하고 차관급으로 운영했다. 경호실의 ‘월권’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인수위는 경호처의 승격 배경으로 독립성 확보와 과중한 업무부담 완화, 사기 진작 등을 꼽았다. 유민봉 인수위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는 25일 청와대 경호처 승격에 대해 “경호처는 상당히 독립성이 있고 경호처의 업무 과중에 대한 요구 사항을 당선인이 수용한 것으로 이해한다”면서 “다만 경호실 인력을 늘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은 “박 당선인이 특임장관을 없애고 청와대 기능과 권한을 축소한다고 해 놓고, 경호처장을 장관급인 실장으로 격상시킨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호실 기능이 비대화될 뿐 아니라 경호실과 경찰청이 수직적인 관계가 돼 무소불위의 경호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에 인수위 측은 “경호실은 대통령의 경호, 경찰은 국민의 치안을 담당하기 때문에 분명히 역할이 다를 것”이라고 반박했다. 청와대 조직개편안은 2인자를 두지 않는 박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비서실장 등에게 과도한 권력을 몰아주지 않고 비서실장-국가안보실장-경호실장 등 3명의 장관급들에게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맡겼다는 것이다. 반면 현재 청와대 내 장관급이 2명에서 3명으로 늘어난 것은 1차 청와대 조직개편 때 밝혔던 슬림화·간결화 기조에 어긋난다. 장관급 아래 보좌진이 필요해 인원이 늘어나고 조직이 커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성수 기자 sskim@seoul.co.kr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열린세상] 강원도·울릉도·독도의 냉가슴/김정기 한양대 교수·언론정보대학원장

    [열린세상] 강원도·울릉도·독도의 냉가슴/김정기 한양대 교수·언론정보대학원장

    “나는 못생기지 않았습니다.”, “나는 귀엽고 예쁜 편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개그우먼이 인기 코미디프로인 개그콘서트에서 일주일에 한 번 사람들의 꼴불견 행위를 고발하는 고정 에피소드의 리드 멘트이다. 스토리, 표정, 감정이입이 잘 어우러져 웃음을 자아내지만 얼짱 외모지상주의에 빠져드는 세상의 편견에 대한 통렬한 고발이다. 점점 더 심해지는,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태도의 범람. 성형을 사회 안착을 위한 통과의례 과정으로 여기는 풍조. 권장은 할 수 없지만 무시하기도 어려운 미묘함을 지닌 외모를 중요시하는 세태에 대한 개그 풍자는 그 적확함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유머러스한 반어법으로 얘기해서 그렇지, 그의 얘기는 보이는 외양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참 못생긴’ 우리 사회에 대한 비애감을 담고 있다. 못생긴 모습은 외모 문제만이 아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도 노출되었다. 또 드러난 특정 지역에서의 특정 후보 지지도 그러하다. 까놓고 말하자면 경상도와 전라도에서의 몰표 현상이다. 민감한 문제라 잘 언급되지 않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통계를 살펴보면 오랫동안 변함없이 타성처럼 되풀이되어 온 일그러진 선거 자화상이다. 민주주의가 통제되던 시대를 청산하고 민간인 출신 대통령을 선택하기 시작한 1992년 14대(김영삼·김대중 후보), 1997년 15대(김대중·이회창), 2002년 16대(노무현·이회창), 2007년 17대(이명박·정동영), 2012년 18대(박근혜·문재인) 대통령선거에서도 두 지역의 특정 후보 몰아주기는 극단적인 대조를 보인다. 예를 들어 대구의 경우 특정 후보자에 대한 지지는 70~80% 선인 반면에 상대 후보자는 한 자릿수(최저 6.00%)이거나 최고 20%를 넘지 못한다. 광주에서도 마찬가지다. 특정 후보자에 대한 지지는 대부분 90%를 훨씬 넘고, 상대 후보자는 한 자릿수 이내(최저 1.71%, 최고 7.76%)에 머문다. 국회의원선거도 거의 판박이였다. 민주사회에서 개인의 투표는 복합적인 요소에 대한 판단을 수반하는 고도의 의사결정 행위이므로 본질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지지의 양적 결과만을 가지고 비판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는 지나친 몰표의 지속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 명의 유권자라도 더 지지하면 대통령과 국회의원 당선자로 결정되는 민주주의 대의제도의 핵심인 종다수결 제도가 지니는 한표 한표의 의미를 훼손한다. 공동체를 지향하는 합리적인 투표행위의 신성함에 대한 부정이다. 지방자치제의 실시가 상징하듯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가치가 대세인 21세기에 특정 지역들이 정치적 편향성을 답습하는 것은 시대착오이다. 묻지마 식 찬성이나 반대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위협한다. 대한민국에 경상도와 전라도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 맞고 있는 새로운 시대는 낯선 곳마저 찾아 끊임없이 옮겨 다니는 노마드(유목민) 시대이다. 국경이나 인종 같은 물리적인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 과거와 연관한 전부나 전무(all or nothing)의 특정 정서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칭기즈칸의 말을 빌리면 견고한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번성한다. 권위주의시대를 지나 민주주의 대한민국으로 발전하는 데 경상도와 전라도의 희생과 기여를 존중하지 않을 이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경상도와 전라도 방식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특정 정당에 대한 몰표는 미래로 가야 하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잘못된 선민의식이다. 그럼 강원도, 울릉도, 독도며 다른 지역은 언제까지 냉가슴을 앓아야 하는가.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중원, 중산층, 청년층, 장년층을 잡아야 한다는 요란한 정치공학적 분석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공동체를 남과 북만큼이나 멀어지게 하는 극단의 몰표와 극단의 주장을 진정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 TV 속 ‘학교’ 드라마 인기에…TV 밖 교장·교사들 시름 왜

    KBS2 TV의 월화드라마 ‘학교 2013’이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나친 입시경쟁에 내몰리는 아이들, 학교에 만연한 폭력 등을 실감 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사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현실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난감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학교 현장의 진짜 교사들이다. 드라마 속의 교장과 교감, 일부 교사들이 학교폭력 문제와 교사 사이의 관계 설정에 있어 무책임하고 권위적인 모습으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학교 현장의 모습을 실감나게 담고 있다는 평을 받는 드라마인 만큼 모든 교사들이 그렇다는 잘못된 편견이 생길까봐 걱정스럽다는 얘기다. 서울의 한 여고 교감(59)은 “민망할 정도로 교장과 교감의 무능력과 권위주의를 강조하고 있다”면서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다른 교사들 보기 낯이 뜨거워질 정도”라고 말했다. 현재 이 드라마 속의 교장은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기간제 교사에게 해고 위협을 서슴지 않는가 하면 학교 이미지 하락을 우려해 학교폭력을 일으킨 학생을 무조건 학교 밖으로 내쫓는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방송이 끝나면 인터넷 홈페이지의 시청소감 게시판에는 “문제아들보다 더 괴물 같은 교사들이 소름 끼친다” 등과 같이 교장과 교사들을 싸잡아 비판하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개씩 올라온다. 반면 이 드라마가 교단에 자성의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서울의 한 지역교육청 장학사는 “교사들도 학생 지도에 있어 권위적이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은 없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박근혜 정부 조직 개편] 작은 정부·큰 정부 왕복… 조직 계속 불어

    [박근혜 정부 조직 개편] 작은 정부·큰 정부 왕복… 조직 계속 불어

    ‘11부4처(1948년 초대 정부)→…→2원14부5처14청(문민정부)→18부4처16청(국민의 정부)→18부4처18청(참여정부)→15부2처18청(MB정부)→17부3처17청(박근혜정부). 정부조직 개편사는 큰 정부와 작은 정부 사이를 오가면서 사실상 몸집을 키운 역사다. 나라가 커지면서 공공분야에서 정부의 역할에 대한 철학과 입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지만, 공무원 조직의 특성상 한 번 불린 몸집은 쉽사리 줄이기 어려운 탓이다. 권위주의적이었던 3공화국, 5공화국 시절은 개발독재를 꾀한 국가주도형 정부조직이었다. 1993년 2월 출범한 김영삼 정부가 ‘작은 정부’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문화부와 체육청소년부를 문화체육부로, 상공부와 동력자원부를 상공자원부로 각각 통합했다. 1년 남짓 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재정경제원으로 합쳐 ‘모피아’라는 공룡 경제부처를 낳았다. 체신부는 정보통신부로 변경됐고, 환경처는 환경부로 격상됐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18부4처16청 조직을 남겼다. 재정경제원을 재정경제부로 바꾸고, 기획예산처를 신설해 정부개혁 및 규제개혁 역할을 맡겼다. 외무부에 통상교섭본부를 신설해 외교통상부로 변경했으며, 내무부와 총무처를 통합해 행정자치부를 만들었다. 중앙인사위원회·해양수산부·여성부는 국민의 정부에서 처음 태어났다. 정부조직에서 기능을 중시했던 노무현 정부는 18부4처18청 조직을 차기 정부에 넘겨줬다. 소방방재청·방위사업청·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이때 탄생했다. ‘작고 유능한 정부’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는 일단 여러 부처를 통폐합했다. 15부2처18청을 만들기 위해 경제·교육·과학기술 부총리제를 폐지했고,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를 기획재정부로 통합했으며, 과학기술부·정보통신부·해양수산부를 각각 없앴다. 과학기술 정책을 교육에 결합해 교육과학기술부로 바꿨다.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를 합쳐 방송통신위원회를 만들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열린세상] 약한 권력, 강한 국가/조성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약한 권력, 강한 국가/조성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곧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다. 민주적 격전을 뒤로 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구성되어 새 정부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많은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 대통합, 경제 민주화, 민생정치를 통해 ‘국민 행복의 시대’를 열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새 정부의 공약을 곰곰이 따져보면 지난 여러 정부들과는 다른 차원의 방향성을 지닌다. 외양의 충족보다는 내실화에 방점이 주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압축적 ‘따라잡기’로 근대적 문명 표준인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했다. 이명박 정부도 국가 선진화를 내걸었다. 우리는 그동안 ‘단선적 추월전략‘에만 몰두했다. 후진국에서 중진국을 거쳐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단계적 비약전략을 구사해 ‘모범 국가’로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이런 성공적 외양에도 우리 내부의 모습은 결코 온전하지가 않다. 정치적 분열, 이념 갈등, 사회·경제적 양극화, 청년실업과 고령화, 성장 잠재력 저하 등으로 내파(內波)의 위기감까지 팽배해 있다. 우리 국민은 박근혜 정부가 대한민국을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니라 단단하고 알찬 호두 같은 나라’를 만들기를 기대하고 있다. 영국의 국제정치학자 부잔은 ‘강한 국가론’을 주장했다. 부잔은 지구상에 수많은 주권국가들이 존재하지만 국민적 합의에 의해 이념과 제도가 유기적으로 결속된 ‘강한 국가’와, 힘에 의해 합의가 강제되거나 국민이 분열되고 제도적 활력이 낮은 ‘약한 국가’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우리는 성공한 국가지만 ‘강한 국가’는 되지 못했다.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은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안착시켰다. 수평적 권력교체까지 경험함으로써 민주적 공고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역·이념·세대의 분열과 대치가 구조화되었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대통령들은 배제·제압·불통의 리더십으로 ‘강한 권력’만 추구하였을 뿐, 소통과 포용을 위한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박근혜 당선인은 ‘설득의 정치’를 통해 대한민국이 민주적 다원성을 유지하면서 국민적 대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민주·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물론 국민 개개인도 향민(鄕民)이나 계급적 전사(戰士)가 아니라 포용적 공민(公民)으로 거듭나 하나가 된 대한민국의 주인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불균형 발전 전략, 개방적 무역국가와 적극적 세계화에 치중했다. 이를 통해 비약적인 발전도 이루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의 양극화와 갈등의 심화로 우리 공동체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화를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 대선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 민주화와 복지가 최우선 의제로 등장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민주화와 복지 증진은 단순한 정책과 제도의 개편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대기업과 승자는 배려와 책임감을 발휘하고, 서민과 약자는 희망을 잃지 않는 ‘의식’의 조화가 메아리쳐야 한다. 이를 위해 새 대통령은 희망의 제공자, 화해의 중재자인 동시에 치유의 전도사가 되어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한민국의 경제는 방향성과 활력을 잃고 있다. 환란 이후 정보기술(IT) 혁명으로 정보화 경제를 이룩했지만 저고용·저성장 경제, 편중 성장의 문제에 봉착했다. 한국 경제는 ‘따라하기’를 통한 ‘따라잡기’ 수준을 넘었지만 스스로 창신(創新)하지 못하고 위기에 직면했다. 우리는 더 이상 성장과 분배, 무역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일면적 선택을 둘러싼 ‘이념경제’의 논란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래의 먹거리 확보, 지속가능한 성장, 고용친화적 산업의 발양을 위해 우리 모두의 에너지가 유기적으로 결집되어야 한다. 새 대통령은 ‘창조경제’ 전략을 수립·실행하여 ‘제2의 산업화’ 붐을 일으켜야 한다. 박근혜 당선인은 대선에서 제시한 공약들을 입체화·전략화시킴으로써 대한민국을 모래알처럼 흩어진 ‘약한 국가’가 아니라 포도송이처럼 알알이 영글어 잘 결속된 ‘강한 국가’로 변신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 국민의 대통합과 조화로운 사회, 창조경제는 ‘강한 대한민국’ 만들기의 전략적 키워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국제질서 속 좌절된 자력독립 ‘혁명의 러시아’를 희망 삼다

    국제질서 속 좌절된 자력독립 ‘혁명의 러시아’를 희망 삼다

    ‘일요일 도착 예정. 만남에 필요한 조치 요망. 박철환.’ 죽산 조봉암(1899∼1959)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925년 6월 17일 모스크바로 보낸 전보다. 식민지 조선의 출판인이자 지식인이었던 27살의 조봉암은 왜 박철환(朴鐵丸)이라는 가명을 썼으며, 모스크바로 갔던 것일까. 성균관대 임경석 사학과 교수가 최근 쓴 ‘모스크바 밀사’(푸른역사 펴냄)는 조봉암을 주인공으로 ‘1925~1926년 조선공산당의 코민테른 가입 경위와 여정을 담은 실화’다. 누구도 연구하지 않았던 영역에 도전한 성과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한 자료까지 꼼꼼히 챙겼다. 일본 경찰의 추적과 이를 피하려는 조선 독립운동가들의 피 말리는 활동은 탐정소설을 방불케 할 정도로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조봉암은 1925년 5월 말쯤 조선공산당의 전권대표 조동호의 보좌역이자 고려공산청년회의 대표 자격으로 모스크바로 파견됐다. 박철환이란 가명은 ‘쇠로 만든 총알과 대포알’이란 뜻으로 조선의 혁명을 가로막는 장벽이 있다면 깨뜨리는 선구자가 되겠다는 조봉암의 결심이 내포된 것이다. 조봉암의 모스크바 파견은 전보를 치기 2개월 전인 4월 17일의 조선공산당 창당과 관련 있다. 이날 서울 시내 황금정 1정목에 위치한 중국요리점 아서원에서는 인텔리풍의 청장년 19명이 모여 ‘제1차 당대표회 비밀결사’를 했다. 19명은 조선의 마르크스 혁명가 130명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또 19명 중 11명은 3·1만세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최소 9개월에서 최대 3년의 징역형을 살고 나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형기를 모두 합치면 20년가량 됐다. 임 교수가 “3·1만세운동은 조선사회주의 운동의 모태다. 이 운동이 없었으면 조선사회주의 운동은 존재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이유다. 하루 뒤인 4월 18일 밤 12시에는 박헌영(1900~1955)의 살림집이 있던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고려공산청년회 창립대표회’가 결성됐다. 이들은 “조선공산당의 지도에 복종하며 국제공청에 가입할 것”을 결정했다. 1925년 4월 창당한 조선공산당은 조선 사회주의운동의 중심이 간도와 연해주, 만주, 러시아 등으로 망명했거나 이민해 활동하고 있던 해외 독립운동가에서 조선 내부로 들어왔다는 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명망가 중심의 운동에서 대중운동 단계로 넘어가는 것으로 임 교수는 판단했다. 조봉암처럼 1920년대 조선의 20~30대 젊은 지식인들은 사회주의 이론에 급속히 빨려 들어간다. 왜 그랬을까. 임 교수는 “3·1만세운동은 고종이 승하한 1919년 1월이 계기였지만, 시선을 넓히면 1919년 세계 1차대전이 끝난 뒤 국제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조선의 독립을 서구 열강에 촉구하는 시위였다. 그런데 전후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국제회의, 즉 파리강화회의(1919년 1월 18일)나 워싱턴회의(1921년 11월)를 거치면서 국제정치질서 안에서 조선의 독립은 완전히 좌절된다. 러일전쟁까지 이긴 일본과 싸워 조선이 자력으로 독립을 취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에서 희망을 준 세력이 있으니 1917년 혁명으로 새롭게 태어난 러시아(소련)였다”고 했다. 파리강화회의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로 김규식(1881~1950)이, 워싱턴회의에는 이승만(875~1965)이 참가했지만, 외교적 성과는 없었다. 미국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1918년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발표했지만 1차대전 승전국에는 영국의 동맹국인 일본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조선 강제 점령 문제는 묵인됐다. 이때 신성처럼 나타난 소련이 식민지로 신음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민족해방운동을 정치적·경제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나섰으니, 절망을 뚫는 희망의 돌파구가 필요했던 젊은 독립운동가들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임 교수는 ‘모스크바 밀사’가 기존 역사학계의 통설을 정정하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통설은 코민테른은 조선 문제의 의사결정에서 조선 대표자를 배제한 채 권위주의적으로 결정했고, 조선공산당이 코민테른에 종속적이었다는 주장들이다. 1925~26년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코민테른은 조선공산당의 가입에 조건부 승인을 하는 ‘9월 결정서’를 내놓았다. 당 강령, 규약, 결정과 관련한 서류를 제시할 때까지 가입은 유보했지만, 조선공산당의 지위는 인정했고, 유학생 파견 등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다. 노선으로 해방된 조선의 미래로 소비에트공화국을 제시하자 조봉암이 조선의 실정을 무시한 급진적이고 좌경적인 목표라고 지적하며 민주공화국 설립 안을 내놓았다. 또 1925년 조선공산당이 진행한 ‘반종교·반기독교운동’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그 요구는 1926년부터 실현됐다. ‘모스크바 밀사’는 역사 전문 출판사 푸른역사가 올바른 역사의 해석과 대중화를 위해 한국역사연구회(1988년 설립)와 함께 기획한 문고판형 한국사 시리즈 100권의 첫 간행물로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한국역사연구회 역사 책장’이란 시리즈의 1권은 ‘고려의 부곡인, 경제인으로 살다’(박종기 글), 2권은 ‘고구려 고분 벽화 연구 여행’(전호태 글)이다. 박혜숙 푸른역사 대표는 “고민하지 않는 사회, 사유하지 않는 사회와 국가에는 미래가 없다. 입시에 시달리는 중고등학생과 스펙 쌓기에 열 올리는 대학생, 연봉과 승진에 목을 매는 직장인들에게 역사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퇴직 1년 남았다고 맘대로 놀지 말라”

    경북 구미시가 새해부터 도내 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공무원이 공로 연수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주목을 받고 있다. 시는 1일 올해부터 공무원 공로 연수제 의무 시행을 폐지하기로 밝혔다. 이에 따라 시는 퇴직 1년 전에 사회적응 준비와 재취업을 위해 공로연수를 요구하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인사위원회를 거쳐 승인해 줄 방침이다. 이는 행정안전부의 ‘지방공무원 인사 분야 통합 지침’이 “지방자치단체장은 정년퇴직 예정자의 사회 적응 준비에 필요할 경우 정년퇴직일 6개월∼1년 이내 공무원을 대상으로 공로연수를 시행할 수 있다”고 규정한 데 따른 것. 시가 구미시의회와 구미시직장협의회의 반발에도 공로연수 의무 시행제 폐지에 나선 것은 그동안 공로연수 기간에 출근도 않고 보수를 받는 ‘무노동 유임금’ 등의 부정적 여론을 일소시키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됐다. 시의회 등은 공로연수를 통한 다른 퇴직 공무원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을 이유로 폐지에 반대했다. 시는 행안부의 관련 지침에 따라 1990년부터 지난해까지 22년간 정년을 1년 앞둔 6급 이상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공로연수제를 시행해 왔다. 하지만 시의 공로연수제는 대부분의 다른 자치단체와 마찬가지로 반강제성을 띠어 왔다. 시의 최근 3년간(2010~2012년) 공로연수 인원은 모두 27명이었다. 시는 또 읍·면·동 하위직 공무원이 시험을 거쳐 시청으로 전입토록 한 권위주의적인 제도를 폐지하고 개인 및 읍·면·동장 실적 평가를 통해 전입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이 밖에 부읍장과 인구 4만명 이상인 동의 주무계장 보직을 현장 전문가로 지정해 육성하고, 하위직급에 편중된 기능직 정원 비율을 조정하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이번 선택형 공로연수제 도입은 그동안 잘못 시행돼 온 공로연수제를 바로잡기 위한 차원”이라며 “다른 자치단체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구미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간첩 누명쓰고 12년간 옥살이 납북어부 36년만에 무죄 판결

    납북된 피해자임에도 간첩으로 몰려 오랫동안 옥살이를 한 어부가 36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법원장은 이례적으로 법원을 대표해 사과하고 반성한다는 말까지 했다. 인천지법 형사13부(부장 송경근)는 26일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12년 넘게 복역한 정규용(70)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씨가 수사관들에 의해 연행돼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전까지 18일간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고 조사 도중 가혹행위가 있었음이 인정된다.”면서 “당시 경찰 신문조서 등 검찰이 제출한 자료는 증거 능력이 없거나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장인 송 판사는 “과거 권위주의와 독재정권 시절의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30여년간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은 정씨에게 법원을 대표해 사과드리고 사법부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선고 직후 정씨는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연발했다. 함께 법정을 찾은 부인 연모(66)씨는 “기쁜 날이다. 남편이 얼마나 불쌍한 인생을 살았는지 모른다.”며 울먹였다. 1968년 당시 26세였던 정씨는 인천 옹진군 소연평도 근해에서 조기를 잡다 납북된 뒤 5개월 만에 돌아왔다. 이후 8년 뒤 경찰은 정씨를 간첩 혐의로 연행해 갔다. 정씨는 고문 끝에 허위 자백을 했고 1976년 법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모범수로 감형을 받아 1989년 풀려날 때까지 정씨는 12년 11개월간 옥살이를 했으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재심을 청구했다. 한편 이날 공판에서 정씨를 고문한 장본인으로 ‘고문기술자’ 이근안씨가 지목돼 눈길을 끌었다. 정씨는 “이씨가 오금에 몽둥이를 끼워 꿇어앉힌 뒤 80㎏이나 되는 거구로 허벅지를 밟아 고통이 말도 못할 정도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까매져 한동안 걷지도 못하고 기어다녀야 했다.”고 증언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신한국” “제2 건국” 등 개혁 주창했지만… 측근비리 등 용두사미 귀결

    역대 정부마다 취임 초기는 화려한 정치혁신 구호로 장식됐다. 그러나 개혁 의지는 번번이 대통령 측근 비리, 제도적 시스템 미비에 밀려 용두사미가 됐다. 1993년 군부 집권을 끝내고 취임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신한국 창조’를 내세워 각종 개혁을 추진했다. 특권층의 부정부패 고리를 끊는 단초가 제공된 시기였다. ●취임 초기는 화려한 구호 장식 김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국무회의에서 본인 재산을 공개한 직후 정치자금을 일절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공직자 윤리법 개정으로 1급 이상 공직자 재산이 처음 공개된 것도 이 해다. 12·12 군사 쿠데타 주역인 하나회 해체도 취임 첫해에 이뤄졌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집권 말기 아들 현철씨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인한 구속, IMF 환란 등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건국 50년 만에 첫 여야 정권교체를 이뤄 낸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를 표방하며 점진적인 정치개혁안을 폈다. 김 전 대통령 자신이 호남 비주류 출신으로 대통령 자리에 올라 보복성 정치개혁을 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IMF 직후였던 만큼 개혁의 보폭은 점진적이었다. 그는 취임 첫해인 1998년 8·15 경축사에서 ‘제2의 건국’을 주창하며 국민대화합에 기반을 둔 개혁에 주력했다. 각각 사형·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전두환·노태우 두 전임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도 임기 초반 이뤄졌다. 새천년민주당에 대통령 후보 국민경선제를 도입해 젊고 개혁적인 정치 지도자를 배출할 수 있는 길도 열었다. 그러나 임기 말은 두 아들, 측근들이 연루된 최규선·이용호 게이트 등 각종 비리로 얼룩지며 도덕성에 타격을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정치개혁은 가장 큰 화두였다. 기존 구태 정치의 틀을 벗고 권위주의를 청산해 새 정치 패러다임을 만들겠다는 게 노 전 대통령의 꿈이었다. 부패 없는 사회에 중점을 두고 4대 국정원리를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로 내세웠다. 새천년민주당 신주류와 386세대, 진보학자 그룹, 운동권 출신을 청와대 비서실, 각부 장관에 발탁 인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인사 방식은 임기 내내 ‘코드인사’라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친형 등의 측근 비리 역시 고질적 병폐로 재현됐다. ●임기 말 개혁의지 퇴색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개혁은 취임 첫해부터 국회와 거리를 두는 ‘탈(脫)여의도 정치’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국회를 정치의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고 행정부 위주로 운영하는 바람에 의회정치가 약화됐다는 비판도 받았다.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인맥), 강부자(강남 땅부자) 등 회전문 인사, 친형 이상득 전 의원 구속, 내곡동 사저 특검 등 측근 비리도 여전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씨줄날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서동철 논설위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26일 문을 연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에 이은 또 하나의 대형 국책 박물관이다. 중앙박물관은 고고미술사 박물관이지만, 최근 역사박물관의 개념을 일부 도입해 고조선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전시실을 새로 꾸몄다. 역사박물관이 출범하면 고조선에서 대한민국에 이르는 한반도 역사가 망라된다는 의미도 있다. 역사박물관은 지난 2008년 제63주년 광복절 및 건국 60주년 기념식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기적의 역사를 남들은 신화라고 하지만, 그것은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의 산물”이라면서 “이 역사가 기록되고, 새롭게 이어질 수 있도록 현대사박물관을 짓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후 ‘국립대한민국관’으로 불리다가 2009년 지금의 이름으로 확정됐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현대사를 긍정의 시각에서 다룬다는 박물관의 성격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특정한 시대의 역사는 어떤 이념을 들이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역사박물관 역시 어떤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주도하느냐에 따라 성격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보수와 진보가 무 자르듯 양쪽으로 갈라진 현실에서 박물관 전시 내용이 조금이라도 한쪽으로 치우칠 때 필연적으로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역사박물관은 벌써부터 전시를 놓고 논란을 빚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보여주려고 기획했다.”는 책임자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전시가 경제발전과 산업화에 집중됐고, 권위주의 시대의 국가폭력이나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자칫 제18대 대통령선거 결과가 지금과 달랐더라면 역사박물관은 문도 열어보지 못하고, 전시물을 교체하는 해프닝을 빚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태생적 한계를 인식했다면 준비 과정부터 달랐어야 했다. ‘역사’보다 ‘박물관’에 초점이 맞춰진 추진단 구성부터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균형 잡힌 시각’이 목표라면 다양한 시각의 역사학자를 대거 참여시켜 논란의 소지를 줄여야 했지만 그런 노력은 부족했다. 진보진영은 물론 보수진영의 역사학자마저 발을 담그기 주저하면서 지난달 열린 개관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역사학 분야 토론자는 구색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진풍경이 빚어졌다. 이래저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한동안 논란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시론] 이제는 정책 토론을 시작할 시간/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시론] 이제는 정책 토론을 시작할 시간/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경제는 일류, 정치는 삼류”라는 편견을 잠시만 버리고 한국의 정치사를 되돌아보자. 의외로 우리는 매우 많은 것들을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이루어 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987년 한국의 민주화 이래 우리의 정치는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을 통해 탈이념적 외교의 근간을 마련했으며, 김영삼 정부의 군(軍)개혁과 금융실명제를 통해 문민통치와 조직적 부패 방지의 기틀을 만들었다. 김대중 정부가 만들어 낸 남북화해의 가능성과 노무현 정부의 권위주의적 정치 문화 극복 역시 우리 정치가 일궈낸 중요한 자산일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우연찮게도 우리는 적절한 때에 적절한 리더십이 항상 존재했다는 점이다. 군 및 여당 출신의 노태우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과연 그 시기에 자유롭게 북방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가능했을지 의문이며, 김영삼 대통령의 전격적인 리더십이 아니었다면 군 개혁이나 금융실명제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평가들 또한 심심찮게 들린다.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이끌어내고 한반도 평화 정착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것이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만의 독특한 방식과 파격으로 정부의 문턱을 낮추고 대통령의 권한을 상당 부분 포기했던 것도 사실이다. 둘째, 우리는 위에 열거한 대통령들의 정치적 성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데 매우 인색했으며, 각 정권의 실정(失政)과 부패만이 뚜렷하게 기억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떠한 정부이든 공과(功過)가 있는 것인데, 흥미롭게도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공(功)보다는 과(過)인 것 같다. 다시 말해 우리는 과거 정부의 레거시(legacy·유산)가 없다는 점이며, 이는 한국정치의 근본적인 비극일지도 모른다. 정권 교체, 나아가 시대 교체 등의 슬로건들이 난무했던 이번 선거 역시 과거의 정치를 부정하고 지워버려야만 현재의 정치가 살 수 있다는 한국정치의 기본적인 인식틀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과거 정권들의 정치적 상속자들이 주요 후보였던 이번 선거의 기본 구도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말들은 ‘혁신’과 ‘개혁’, 그리고 ‘미래’였다. 아마도 정권인수위원회가 출범하면 정부 부처 개편부터 시작해 시민들 삶의 구석구석까지 백지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새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들은 과거 정부들이 남긴 유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평가, 그리고 그 계승이라는 연장선상에서의 고민이어야 할 것이며, 이는 진보-보수 진영 간의 진정하고 솔직한 토론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정치가 얼마나 발전하고 우리의 정책적 토론 기반이 얼마나 성숙했는지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양대 후보 진영이 내놓은 공약과 정책들을 보면 매우 분명하다. 정치 개혁에서부터 경제정의나 복지, 그리고 지역발전 등의 공약에 이르기까지 정책적 논의들이 상당히 수렴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그 논의 수준 또한 몇 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진전되고 구체화된 것이었다. 선거 국면에서는 그 디테일에 대한 차이점만이 강조되었고, 선거 후반 네거티브 공방에 후보들의 정책적 내용이 묻혀 버린 것도 사실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공통점을 찾아 나가는 정책적 토론의 가능성이 이번 선거만큼 열려 있었던 적도 없었다. 우리의 정치가 더 이상 삼류가 아닌 것은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성숙한 정치의식에 힘입은 바 크다. 기록적인 투표 참여를 통해서 그리고 선거과정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적극적인 의견을 표출했던 우리 유권자들은 단순히 주어진 후보들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양 진영의 공약 수립과 선거운동 과정 구석구석까지 논평을 남기고 영향을 미쳤다. 선거라는 거대한 민주주의의 잔치가 끝나고 난 지금이야말로 본격적인 정책적 숙의가 시작되어야 할 시간이며, 이는 박근혜 당선인이 그리고 우리의 정치가 유권자들에게 진 빚이기도 하다.
  • ‘숨은 표’ 막판 판세 흔들까

    ‘숨은 표’ 막판 판세 흔들까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의 2차 토론이 10일 끝나면서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부동층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숨은 표’의 향배가 주목을 끌고 있다. 숨은 표는 부동층으로 숨어 있거나 응답을 하지 않고 위장돼 있는 표들로 3~6%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박 후보나 문 후보 진영은 이들 숨은 표의 향배가 대접전 중인 대선의 막판 판세를 좌우할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 남은 선거 기간 숨은 표를 움직이는 데 사활을 걸 방침이다. 숨은 표는 여론조사상 거의 잡히지 않지만 투표율을 고려하면 100만~200만 표로 추정된다. 민주당은 통상 여론조사에서 야권 성향 유권자들의 경우 상당수가 응답을 꺼리기 때문에 숨어 있던 표가 투표 날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인 야권 성향 응답자의 경우 이명박 정부 5년간 민간인 사찰 의혹 등으로 인해 다시 강해져 숨은 표가 늘었을 것이라고도 분석한다. 반면 보수, 진보의 세 대결이 되면서 유권자 대부분이 이미 지지를 가시화했다는 반론도 없지 않다. 2010년 6·2 지방선거 등 최근 여러 선거 결과를 통해 여론조사에서 잡히지 않은 숨은 표가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숨은 표는 수도권, 40대에 집중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숨은 표는 여론조사와 다른 대선 결과를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당 측의 주장이다. 반면 새누리당은 오히려 세대별 가중치를 고려하면 박 후보 지지세가 더 강해질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감금·고문 ‘공안통치 현장’ ‘인권의 요람’으로 재탄생

    감금·고문 ‘공안통치 현장’ ‘인권의 요람’으로 재탄생

    서울 남산의 옛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터가 내년에 인권 공간으로 바뀐다. 옛 안기부 건물과 터에 표지판이 설치돼, 남산이 권위주의 정권 시절 ‘공안통치의 본산’이었음을 알린다. 현재 남산에는 과거에 고문 등 국가폭력이 자행된 공간임을 알리는 흔적이 전혀 없다. 서울시는 표지판 설치를 시작으로 남산을 향후 인권·현대사 교육의 공간으로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 3일 서울시와 인권단체 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남산 안기부 터에 내년 표지판을 만들기 위해 4000만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안기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1년 중앙정보부(중정)라는 이름으로 만든 뒤 30년 넘게 남산에 위치해 있다가 1995년 서초구 내곡동으로 이전했다. 이후 많은 건물이 보안상의 이유로 폭파·철거됐지만 10개 남짓한 건물은 서울유스호스텔(안기부 남산 본관), 서울시 남산별관(제5별관), 서울시 도시안전본부(6국), 서울시소방재난본부(유치장) 등으로 사용 중이다. 시 관계자는 “해당 건물과 터가 과거 중정·안기부 시절 어떤 용도로 사용됐는지 등을 적을 방침”이라면서 “건물에서 일어난 고문 같은 현대사적 사건도 서울시 인권위원회, 인권단체 및 학계 전문가와 논의해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기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사안의 민감성 등을 고려해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 없이 역사적 사실로 인정된 사건만 기록할 방침이다. 시는 또 표지판이 세워진 옛 안기부 건물·터 등을 잇는 ‘인권 탐방로’도 조성한다. 남산 입구인 퇴계로 교통방송 옆 주자파출소 터(안기부 면회 장소)와 남산 중턱의 서울유스호스텔까지 잇는 탐방로 가장자리에는 유엔 세계인권선언문의 전문과 조항이 새겨진 계획이다. 시는 탐방로의 명칭을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내년에 정하기로 했다. 서울시가 남산을 인권 교육의 공간으로 조성하게 된 것은 “비극적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안기부 터를 보존해야 한다.”는 인권단체의 요구를 일부 수용한 결과다. 특히 인권재단 ‘사람’과 안기부 고문 피해자 등은 지난 6월 “남산 안기부 터에 인권·평화의 숲을 조성하자.”는 시민청원서를 제출했다. 박래군 서울시 인권위원회 부위원장(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은 “표지판 설치는 고문 등 지워져 가는 기억을 되살리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면서 “근·현대사의 고문 현장이었던 남산과 남영동(옛 경찰청 대공분실 터), 독립운동가들이 일제 강점기 때 고초를 겪은 서대문형무소 등을 묶는 기행로 조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단체들은 탐방로뿐 아니라 옛 안기부 건물 내부를 견학하는 프로그램 마련도 서울시에 건의했다. 1989년 방북 사건으로 안기부 제5별관(현 서울시 남산 별관)에서 고문당했던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은 “고문 등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을 남기는 것이 부끄럽다고 여겨 국가가 그동안 숨기려 했지만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안기부 터 등을 반드시 보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文 “朴, 유신 미화” 과거사 맹공

    文 “朴, 유신 미화” 과거사 맹공

    공식 선거운동 사흘째인 29일 ‘경남벨트’를 훑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참여정부 띄우기에 집중했다. 자연스럽게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유세전으로 이어졌다. 참여정부의 성과를 부각해 ‘이명박 빵점 정부론’과 ‘박근혜 후보 공동책임론’에 힘을 싣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문 후보는 이날 경남 김해 내외동에서 가진 유세에서 “이번 선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꿈을 짓밟은 세력과 노무현과 같은 꿈을 꾼 김해시민들과의 한판승부”라고 규정했다. 이어 “제가 노무현의 꿈을 다시 살려내고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한 김해에서 그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지지를 호소한 것이다. 문 후보는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 후보의 큰 결단으로 단일후보가 됐다.”며 안 전 후보를 달래기도 했다. 안 전 후보의 처가가 있는 여수와 순천에서 유세를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여겨진다. 문 후보는 순천시 연향동에서 가진 집중유세에서 “이명박 정권 5년은 중소기업과 재래시장 골목상권 상인들에게 악몽의 세월, 서민들에게 피눈물의 세월, 학부모들에게 사교육의 지옥, 평화와 안보를 잃은 남북대결의 세월이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명박 정권 들어 과학기술부 폐지, 정보통신부 폐지, 해양수산부 폐지, 여성부 축소안 등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박 후보는 이명박 정부 국정 파탄의 공동책임자”라며 싸잡아 비판했다. 문 후보는 “참여정부가 많이 부족했지만 민주주의 발전, 권위주의 해체, 권력기관 개혁, 언론자유 확보, 남북관계 발전, 여성지위 향상, 국가 균형발전 등은 잘한 일로 인정받고 있다.”며 현 정부와 참여정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특히 문 후보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경제성적표는 새누리당이 실패한 정권이라고 주장하는 참여정부 성과에도 못 미치는 낙제점 수준”이라며 ‘이명박 정부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새누리당의 참여정부 실패론에 대한 맞대응 카드로, 정권심판론과 함께 박 후보의 공동책임론을 강조한 것이다. 문 후보은 ‘박정희 대 노무현’ 프레임 대결로 집중되는 것을 우려해 한때 자제했던 박 후보의 과거사에 대한 비판도 재개했다. 그는 “5.16 군사쿠데타와 유신독재를 잘한 일이라고 미화하고 정수장학회 문제를 반성하지 않는 역사인식으로 경제민주화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평생을 공주처럼 살아와서 서민의 삶을 모르는 후보, 취직 걱정, 빚 걱정, 월세 걱정, 한 번도 안 해보고, 물가도 모르는,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적이 없는 후보가 민생과 복지를 말할 수 있는가.”라며 박 후보에 대해 날을 세웠다. 순천·진주·김해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심상정 “野단일화가 진보적 정권교체 연합이라면 주도적으로 나서겠다”

    심상정 “野단일화가 진보적 정권교체 연합이라면 주도적으로 나서겠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대선 후보가 야권 단일화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심 후보는 13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권교체 자체만을 위해 주저앉으라고 하면 수용할 수 없지만 진보적 정권교체 연합이라면 주도적으로 추진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정치개혁 방안은 “번지수가 맞지 않았다.”며 “오히려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강화하고 귀족 정치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지율이 1%도 안 나오고 있는데. -통합진보당 사태로 인해 국민들이 굉장히 화나 있는 상태다. 혹시 지지율이 좀 나오면 진보가 자기 성찰을 하지 않을까봐 지지 의사를 표명하지 않는 분들도 있다.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하고 있어 더 어려운 상황이다. 지지율 이전에 진보 정치의 복원, 진보 정당의 재건이 제가 이번 선거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얼마든지 공간이 열릴 수 있다고 본다. →출구전략은. -‘우공이산’이란 말이 있다. 가장 아픈 곳에서 신뢰와 희망을 모아 내는 것이 진보 결집의 핵심이다. 폼 나는 역할은 관심 없다. 진보 정치가 말라 죽게 생겼는데 정치적 득실을 따질 상황이 아니다. 진보의 미래에 대해 확신을 드리는 게 출마한 목표고, 그렇게 되면 내 생애 최고의 선거가 될 것이다. →차별화할 핵심 의제는 뭔가. -재벌 총수 일가의 지배 구조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도 얘기하지만 기업 지배 구조는 얘기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경영 참가 등 한국형 공동결정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민주적 기업 경영의 질서 구축이 핵심이다. 암 없는 대한민국도 온 국민의 바람이지만 국가가 책임진 적은 없다. 대부업을 폐지하고 서민금융지원법을 마련해 서민이 저리로 돈 구경을 할 수 있도록 해야 경제가 제대로 돌아간다. 당장 실천에 들어가야 한다. →야권 단일화에 참여할 생각인가. -정권교체 자체만을 위해 주저앉으라고 하면 수용할 수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을 비롯해 낮은 곳에서 고통받는 분들, 정치 도움이 가장 필요한 분들을 책임 있게 대변하고 그 요구가 실제 의지로 반영되면 단일화할 수 있다. 진보적 정권교체 연합이라면 주도적으로 추진할 의사가 있다. →문·안 후보에게 복지동맹을 위한 연합 구상을 제안한 배경은. -개혁이 절실하게 필요한 분들, 개혁을 위해 꾸준히 싸워 온 분들을 최대한 광범위하게 동참시키는 협약을 맺어야 승리하는 정책 연합이 될 수 있고, 집권 이후에도 개혁의 추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진보적 정권교체를 위해 야권이 공동협약을 맺어야 한다. →문·안 후보의 정치개혁에 대한 평가는. -정치개혁 논의가 산으로 가고 있다. 두 거대 정당의 기득권을 어떻게 허무느냐가 중요하다. 문·안 후보의 관심은 비용 축소 쪽으로 가 있다. 국회의원 축소 등 안 후보가 제시한 3대 과제는 기득권 구조 해소라는 본질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정치 축소를 불러와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강화하고 귀족 정치화할 수 있다. 대선 결선투표제 등 선거제도 개혁안이 반영되지 않은 정치개혁안은 국민의 열망과도 어긋난다.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많은데. -얼마든지 지금 논의가 가능하다. 결선투표제는 국민의 정치 참여를 풍부하게 하고, 반수 이상의 지지로 정권의 안정성을 확보하게 하며 다양한 연합 정치를 가능하게 해 가치와 정책에 따라 경쟁하는 다원주의적 정당 질서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지금 같은 방식으론 군소 후보에 대한 배제 투표가 이뤄질 수 있고 지역주의와 색깔론이 심화된다. →여성 대통령의 상은.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대표성이 있어야 한다. 박 후보는 여성이긴 하지만 여성 대통령론에 담긴 시대정신과 거리가 먼 분이다. 서민을 대변한 적도 없고 생활정치 비전이나 정책에 앞장선 적도 없다. 권위주의 안에서 성장한 리더십이다. 새삼스럽게 생각난 듯 여성 대통령론을 들고나온 것은 여성들의 표심을 훔치겠다는 마케팅에 불과하다. →진보정의당 내 참여당계 오옥만씨의 구속으로 비례대표 부정경선 화살이 진보정의당으로 향하고 있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후보 진영에서 관행과 허점을 악용한 부정이 이뤄졌다. 잘못을 시인하고 상응한 책임을 졌다면 국민은 용서했을 것이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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