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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세일 “정치인 탤런트 전락…이번주 탈당”

    박세일 “정치인 탤런트 전락…이번주 탈당”

    18일 밤 경기도 안성 도피안사(到彼岸寺)에서 한나라당 박세일 전 정책위의장을 ‘기습적’으로 만났다. 행정도시특별법 통과에 반발, 지난 4일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한 뒤 머물던 사찰이다. 박 의원은 머뭇거리다가 ‘불청객’에게 ‘탈당 의사’를 내비쳤다. 그는 “사퇴문제를 4월 임시국회로 넘길 생각은 없는데 김원기 국회의장이 굳이 사퇴서를 수리해주지 않는다면 선거법에 따른 절차밖에 없지 않으냐.”고 반문한 뒤 “머잖아 결정해야겠다.”라고 말했다. ‘결정’이 탈당을 뜻하냐고 물었더니 “그래야 되겠지.”라고 답했다. 나아가 “박근혜 대표가 없을 때 (탈당계를 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22일 귀국한 뒤 만나서 의사를 전하겠다.”면서 “탈당하더라도 ‘동료 의원들과 당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로 애당심과 탈당의 불가피함을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박 의원의 정치 철학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정책 지향’를 호평했지만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그는 “‘정치는 현실’이란 걸 모른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그런 평가도 가능하다.”고 전제,“그러나 이상이 없으면 정치가 공적(公敵)이 될 수 있다. 현실주의의 승리는 현실 유지에는 도움이 됐지만 정작 역사를 발전시킨 것은 ‘이상주의의 좌절’이었다.”며 아쉬움을 에둘러 피력했다. 거의 마음을 비운 듯하다. 그러면서도 “13∼15년 사이에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하면 영원히 실패한다.”면서 정치권에 열정적으로 ‘쓴소리’를 토로했다. 그는 “일본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앉았다.”면서 “그 원인이 포퓰리즘·평등주의식 통치다.”고 진단했다. 이어 “수도분할법도 그 전형인데 이걸 막지 못해 더 마음이 아프다.”면서 “20세기 인류 경험이 말해주듯 사회주의식 개혁이 아닌 자유주의·시장주의적으로 접근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화제가 최근 그와 전재희 의원을 상대로 한 KBS­TV의 ‘시사 투나잇’의 ‘누드 패러디’로 넘어가자 사뭇 개탄했다.“요즘 정치가 이미지·이벤트만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다. 비전·정책이 없으니 정치인은 탤런트가 됐고 정치권은 권력투쟁만 남았다.”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원인과 해법을 제시했다. 먼저 원인으로 “일본·중국이 한국을 우습게 보는 것인데 이는 한·미 관계 약화와 고도성장이 멈춘 데서 비롯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중국은 미국 등을 타고 중진국 진입을 서두르는데 우리는 되레 내리려 한다.”면서 “대미 관계는 단순히 친미·반미 차원이 아니라 국익을 고려해야 하는데 노무현 정권이 인기 영합용으로 한 발언이 이를 훼손시키자 중국·일본이 오만해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 연장선상애서 “정부·국가 차원에서 이슈화 하면 국제법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일본이 노리는 바다. 차라리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대응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나름의 해법을 내놓았다. 그의 ‘독도 해법’은 공교롭게도 박 대표와 같았다. 내친 김에 박 대표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정책 정당에 집념·애착이 강한 분이다. 정치인 박근혜는 균형감각과 합리성을 겸비, 오래된 정치인의 탁(濁)함이 없는,‘맑은 정치인’이다.” 인터뷰를 마친 박 의원은 기자의 늦은 공양을 지켜본 뒤 귀경 길을 배웅했다. 합장하는 그의 두 손에 ‘이상주의자의 좌절과 희망’이 포개져 있었다. 안성 이종수 · 사진 오정식기자 vielee@seoul.co.kr
  • [사설] 한나라당 제1야당 풍모 찾아라

    행정도시특별법의 국회 통과로 촉발된 한나라당의 내분사태가 조기수습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비상대책회의에서는 오는 11일 의원총회를 열어 사퇴한 김덕룡 원내대표의 후임을 선출키로 하는 등 수습에 나서기로 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의 내분이 확산되는 것은 당은 물론 국민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한나라당은 121석의 원내의석을 가진 정당이다. 공당으로서의 책임뿐 아니라 제1야당으로서 정부여당을 비판하고 견제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국민과 지지자들에 대한 책무 차원에서라도 한나라당은 하루빨리 안정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내분에 휩싸인 것은 행정도시특별법 통과에 대해 상당수 소속의원들이 반발한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더 들여다보면 당론결정 과정의 불투명성과 모호한 태도, 리더십 부재, 지도부에 대한 불신과 당내 권력다툼 등 복잡한 사정이 얽혀있다. 정당이라면 정권획득을 목표로 해야 하고, 권력투쟁도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갖추어야 할 기본도 지키지 못하면서 사사건건 당론이 분열되고, 자리다툼이나 벌인다면 정당으로서 자격이 없다. 야당은 야당다워야 한다. 당론이나 지도부를 선출할 때의 치열한 다툼은 당연하다. 하지만 민주적 절차를 거쳐 당론을 결정했다면 지도부가 잘 이끌어나가지 못한 것도 잘못이지만 구성원들이 발목을 잡는 것도 해당행위다. 불만이 있다면 전당대회나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개선을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행정도시특별법의 국회통과가 전적으로 김덕룡 전 원내대표나 지도부의 잘못 때문이라고 덮어씌우는 것은 남들이 보기에는 누워서 침뱉는 격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총선에서 35.2%의 정당득표율을 기록했다. 절반 가까운 유권자들이 야당다운 역할도 못하면서 사사건건 내부 싸움질이나 하라고 표를 주었겠는가. 원내대표 한사람 바꾼다고 한나라당이 달라질 것인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야당으로서 확고한 노선확립과 리더십 회복, 민주적 절차 존중 등 당내혁신이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다.
  • [열린세상] 외국인 적대적 M&A 규제해야 하나/김화진 법무법인 율촌 미국변호사

    작년 그리스팀이 우승하는 파란을 일으켰던 유로 2004 대회 초반에 영국과 프랑스의 빅매치가 큰 관심을 끌었다. 실전 같았던 경기가 끝나고 베컴과 지단이 덤덤히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스페인의 레알마드리드에서 한솥밥을 먹는 동료들이다. 두 선수는 국가대표팀과 소속 구단 중 어디에 더 강한 로열티를 가지고 있을까? 얼마 전 유럽 몇 나라를 도는 출장길에 글로벌 은행 사람들과 동행하였는데 세계 각지의 지점, 지사망을 통한 든든한 지원을 받는 것을 보았다. 그네들은 여행 중에 사고를 당하기라도 하면 자기 나라 공관보다 자기 회사의 현지 지사를 먼저 찾을 것이다. 실리콘 밸리에 있는 많은 회사들은 인도나 타이완, 이스라엘 사람들의 것이다. 사무실만 미국에 있고 생산이나 판매는 미국 밖에서 이루어진다. 미국계 벤처캐피털의 지원을 받아 나스닥에 상장하기 위해 미국 회사의 탈을 쓰는 것이다. 이사회는 전세계를 옮겨 다니면서 하거나 화상회의로 하고 주주총회는 뉴욕이나 런던에서 하며 사장은 예를 들면 이스라엘에 거주하면서 매달 미국을 왕래하는 식이다. 국제경제와 금융의 현장에서 보면 경제활동의 주체들과 회사의 국적 개념이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이다. 그런데도 요즘 국내에서는 ‘외국인’의 우리 기업에 대한 적대적 M&A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외국인의 적대적 M&A 특별규제론과 반대론의 대립은 회사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 차이에서 연유한다. 주주이익 극대화 모델과 종업원, 지역경제를 포함한 이른바 이해관계자 모델 중 어떤 것을 지지하는가의 차이이다. 후자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제약을 받지 않고 글로벌 규모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외국 기업들이 그 경영전략의 일환으로 우리나라에 있는 기업들을 단순히 활용하는 것이 위험하게만 보인다. 과격한 감자를 통한 자본회수, 구조조정을 통한 감원 등은 그들에게는 주주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술일 뿐이지만 우리와 하루하루의 삶을 같이하는 가족, 친구, 친지들에게는 사활의 문제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지역이나 국가 단위의 경제지표에 복지수준을 결정 받는 사람들(세력)과 국경을 초월하는 활동의 결과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지표에 복지수준을 결정 받는 사람들과의 권력투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사회의 모든 측면에 세계화를 도입하면서 국민들에게 넓고, 내용이 풍부한 시장의 경제적, 문화적 혜택을 누리게 하려고 애쓰고 있지 않은가? 즉, 후자를 지향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기업들이 외국에 나가 투자를 하다가 전략상의 필요에 의해 현지기업에 대한 적대적 M&A를 시도할 때 그 나라가 외국인이라 해서 특별한 규제를 도입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외국인의 적대적 M&A에 대한 특별규제는 적절하지도 않고 방법론상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다만 세 가지에 유념해야 한다. 첫째, 외국인들에게 M&A의 절차적 투명성과 법령의 엄수를 요구해야 한다. 외국인이 제출하는 정보는 시장이 검증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허용된다고 본다. 둘째, 국내기업에 대한 역차별의 제거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법의 경직성 때문에 우리 기업들은 경영권 안정화에 있어서 대단히 불리한 위치에 있다. 셋째, 금융, 정보통신, 에너지, 해운 등의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특별한 배려는 다수 국가가 채택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보호는 세계화에 역행하는 경제이기주의가 아니다. 국제사회에서의 평화를 담보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양해사항이다. 국제시장에서 코리아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악평을 다시 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국제시장에서의 권력투쟁에서 아직 약자이다. 약자에게 페어플레이는 쓴약이지만 먼 장래에 효과를 내는 보약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화진 법무법인 율촌 미국변호사
  • [자오쯔양 사망] 실용노선 외길… 中개혁 ‘야전사령관’

    |베이징 오일만특파원|톈안먼(天安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 중국 공산당 전 총서기가 17일 8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자오 전 총서기는 이날 오전 7시1분 베이징(北京) 시내의 한 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병인 호흡기와 심혈관 질환으로 숨졌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실각 이후 가택 연금돼온 자오 전 총서기는 결국 16년 만에 역사적 재평가는 물론 복권도 이루지 못한 채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자오쯔양의 사망으로 홍콩과 서방을 중심으로 톈안먼 사태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 요구가 제기되고 있지만 ‘반혁명 폭란(暴亂)’으로 규정한 중국 당국의 평가는 당분간 바뀌지 않을 전망이다. 그의 85년 삶에는 중국 현대사의 비극과 권력투쟁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허난(河南)성 화(滑)현 출신으로 중학 중퇴의 학력을 딛고 최고 권좌인 당 총서기에 올랐지만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운을 맞았다. 89년 톈안먼 사태 당시 무력진압을 지시한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과 리펑(李鵬) 총리 등 강경파에 맞서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다가 ‘당을 분열시켰다.’는 죄목을 뒤집어 쓴 것이다. 그해 5월19일 새벽 비가 뿌리는 톈안먼 광장을 찾아가 눈물로 학생들의 시위 해산을 호소한 것이 TV에 비친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학생 제군들은 아직 젊다. 살아서 중국의 4대 근대화를 실현하는 날을 직접 보아야 한다.…”는 간곡한 설득 장면은 아직까지 중국인들의 가슴 속에 각인돼 있다. 자오의 생애는 실각→복권→출세가도→실각이 반복되는 극적인 인생으로 점철된다.1967년 문화대혁명 당시 숙청됐다 4년만인 1971년 네이멍구 자치구 당서기로 복권, 폭넓은 실용주의를 익힌다.75년 쓰촨(四川)성 당서기 시절 ‘식량을 원하면 자오쯔양을 찾아라.’는 유행어가 나돌 정도로 농업개혁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가 도입한 자유시장의 일종인,‘가정생산청부제도(家庭生産請負制度)’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그는 중앙정치국 후보위원, 정치국위원, 상무위원, 부총리, 총리로 거침없는 출세가도를 달렸다. 물론 덩샤오핑의 전폭적인 지원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80년 총리,87년 당총서기에 올라 총설계사 덩샤오핑의 오른팔로서 개혁·개방의 ‘야전 사령관’으로 맹활약했다. 천윈(陳雲)과 리셴녠(李先念) 등 당 보수파들의 치열한 견제 속에서 폭넓은 정치·경제개혁을 도입하는 등 고도성장의 레일을 깐 인물로 통한다. 덩샤오핑은 평소 ‘하늘이 무너져도 자오쯔양과 후야오방(胡耀邦)이 있기에 안심할 수 있다.’는 말로 각별한 신임을 표현했지만, 결국 ‘톈안먼 사태’의 희생양으로 내몰았다. 실각 이후 베이징의 번화가 왕푸징(王府井) 부근 자택에서 연금생활에 들어간 그의 ‘자유’를 위해 각계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홍콩과 서방을 중심으로 연금해제를 촉구하는 서한은 100만통을 넘었고,1998년에는 홍콩 인권단체에 의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추천되기도 했다. 90년대 중반 이후 국내 여행이 허가된 그는 베이징 인근의 순이(順義) 골프장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말년에는 홍콩과 서방언론 사이에서 사망설이 제기되는 등 온갖 풍설을 겪었고 결국 “6·4운동은 재평가될 것”이라는 희망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다. oilman@seoul.co.kr ■ 자오쯔양 연보 ▲1919년 11월 허난(河南)성 화(滑)현 출생 ▲1932년 중학 중퇴후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가입 ▲1938년 중국공산당 입당 ▲1948년 위어(予鄂)지구 당위원회 서기 ▲1951년 광둥(廣東)성 인민정부 토지개혁위원회 부주임으로 토지개혁 주도 ▲1956년 중국공산당 광둥성위원회 서기 겸 광둥성 군구(軍區) 제1정치위원 ▲1963년 광둥성 제1서기 겸 당 중앙 중남국 서기 ▲1967년 문화대혁명으로 비판·숙청 ▲1971년 복권 ▲1975년 쓰촨(四川)성 당위원회 제1서기, 혁명위원회 주임, 청두(成都)부대 제1정치위원으로 농업진흥과 기업자 주권확대에 현저한 성과 거둠 ▲1980년 당 중앙정치국 상임위원 및 국무원 총리 ▲1987년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선임 ▲1988년 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선임 ▲1989년 5월19일 톈안먼 광장에서 단식 농성중인 학생들 방문, 너무 늦게 온 것 사과. 마지막 공식행사 ▲1989년 6월24일 6·4 톈안먼 사태 때 시위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숙청, 공직 박탈당한 채 연금조치 ▲2005년 1월17일 지병으로 베이징에서 사망
  • 라이스, 체니에 정치적 승리

    |워싱턴 이도운특파원|국무장관에 지명된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이 부장관 임명을 둘러싼 권력투쟁에서 딕 체니 부통령을 누르고 첫번째 ‘정치적 승리’를 거머 쥐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로버트 졸릭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국무부 부장관에 지명할 것”이라고 밝히고 “라이스와 졸릭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강력하고 능력 있는 외교정책팀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졸릭은 라이스가 체니 부통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국무부를 독립적으로 장악하기 위해 제시했던 카드였다. 체니 부통령은 측근이자 강경파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인 존 볼턴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의 부장관 승진을 강력히 희망해 왔다. 볼턴 차관은 국무부를 떠날 것으로 알려졌다. 라이스와 졸릭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 행정부에서 소련 붕괴 및 독일 통일을 함께 다루며 인간적 신뢰를 구축한 사이다. 당초 세계은행 총재로 유력하게 거론돼온 졸릭이 국무부로 진로를 바꿈에 따라 제임스 울펀슨 세계은행 총재의 후임으로는 랜들 토비어스 에이즈정책 조정관, 크리스틴 토드 휘트먼 전 환경보호국(EPA) 국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국방부의 폴 울포위츠 부장관은 ‘일단’ 유임됐다. dawn@seoul.co.kr
  • [책꽂이]

    ●한 말씀만 하소서(박완서 지음, 세계사 펴냄) 소설가 박완서가 아들을 잃은 고통을 견뎌내는 과정을 담담하게 적은 산문집. 자식을 먼저 보낸 참척의 고통과 슬픔이 절절히 묻어나는 작가의 내면일기다.9500원. ●연어(전2권)(김하인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멜로소설 ‘국화꽃 향기’의 인기작가가 새로 펴낸 ‘그리움’과 ‘기다림’의 정서가 가득한 장편소설.33세 남자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회한을 그렸다. 각권 7500원. ●조 신부님(토니 헨드라 지음, 이영기 옮김, 랜덤하우스중앙 펴냄) 베네딕트회 소속 수도사였던 조 신부(본명 조지프 워릴로)와의 만남을 통해 믿음과 우정, 가족을 발견해가는 과정을 그린 자전소설. 조 신부는 60여년을 맑은 영혼의 수도사로 살다간 실존인물이다. 지은이는 미국의 풍자작가.1만원. ●술탄 살라딘(타리크 알리 지음, 정영목 옮김, 미래M&B 펴냄) 십자군 전쟁의 영웅 살라딘의 행적을 통해 이슬람 역사를 되짚어본 역사소설. 중세 이슬람 궁정의 사회상과 권력투쟁, 동성애 등을 이해할 수 있다.1만 5000원. ●하룬과 이야기 바다(살만 루시디 지음, 김석희 옮김, 달리 펴냄) ‘악마의 시’로 잘 알려진 인도출신 작가 살만 루시디가 이란 정부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뒤 10년 동안 도피생활을 하면서 쓴 우화소설. 소설의 속성인 허구와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풍자가 담겼다.9000원. ●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이철수 지음, 삼인 펴냄) ‘그림으로 시를 쓰는’ 판화가 이철수가 자연, 이웃들과 교감한 살갑고도 넉넉한 이야기.190여 통의 짧은 엽서 형식에 상념을 담아 작가는 손칼국수, 손자장면 같은 글맛을 전해준다.9800원.
  • [2005 문화코드] ③ 미래담론

    [2005 문화코드] ③ 미래담론

    ■ 석학3인의 미래 진단 앨빈 토플러가 35년 전 ‘미래의 충격’에서 예측했던 사회의 모습은 더이상 충격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웃과 도구가 되어있다. 그가 25년 전 내놓은 ‘제3의 물결’은 이미 전 지구를 뒤덮고 있으며,15년 전 지은 ‘권력이동’의 핵심 키워드 ‘지식정보사회’는 지금 절정에 와있다. 1952년생으로 미래학자 중에선 상당히 젊은 축에 속하는 일본계 미국인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어떤가. 그는 1992년 시장경제체제와 자유민주주의의 완승을 선언한 ‘역사의 종언’에 이어 1999년 ‘대붕괴’란 역작으로 세계 미래학계에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대붕괴’는 전제봉건주의와 공산주의를 물리치고 최후의 승자로 남은 서구 자유민주주의 사회 내부에서 사회질서의 대붕괴가 시작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대붕괴를 불러올 도덕적 해체현상으로 그가 꼽은 것들이 한국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범죄율 증가, 상호 신뢰의 약화, 이혼율 증가와 사생아 증대였다. 최근 10여년간 지적되어온 한국 사회의 부정적 현상들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미래담론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단순한 흥밋거리를 넘어 경계와 준비의 계기를 제공한다. 전 지구적 대재앙과 함께 시작한 새해는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의 안전과 생존, 그리고 행복을 위한 미래담론이 무성할 것이다. 앨빈 토플러와 대니얼 벨, 프랜시스 후쿠야마 등 미래학계의 석학 3인의 미래담론을 통해 2005년 이후의 사회모습을 들여다본다. ●앨빈 토플러 토플러는 1970년 ‘미래의 충격’을 시작으로 10년 간격으로 ‘제3의 물결’(1980),‘권력이동’(1990) 등 대표적 역작을 냈다. 이같은 세 저작의 핵심 키워드를 하나만 꼽으라면 ‘지식정보사회’를 꼽을 수 있다. 물론 ‘미래의 충격’이나 ‘제3의 물결’에선 이같은 단어조차 나오지 않았지만 저작의 전체를 아우르는 미래상은 지식정보사회의 모습이었다. 지식정보사회의 모습은 이미 보편화되어 있어서 그 자체의 현상만으로는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그러나 지식정보사회 안에서의 권력의 움직임을 다룬 ‘권력이동’(1990)은 여전히 유효한 관심사이며, 좀 더 앞서가기 위한 국가나 기업, 개인들은 그 메커니즘을 파악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권력이동은 전통적인 권력의 3요소, 즉 강제력(폭력), 돈(자본), 지식 중 그 비중의 변화를 분석한 것이다. 전제봉건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했던 강제력은 산업사회가 등장하면서 상당부분 돈으로 대체되었고, 지식정보사회로 넘아가면서 돈은 지식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권력의 저울추는 폭력이나 돈을 넘어 이미 기술력과 아이디어, 마케팅, 경영역량, 즉 지식정보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업계에서 벌어지는 정보전쟁은 그야말로 지식정보사회 권력투쟁의 가장 전형적인 표본이다. 지구상으로 볼 때도 세계는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 부국 대 빈국으로 분할되는 것이 아니라 ‘빠른 자’대 ‘느린 자’의 새로운 양극으로 나뉜다.21세기의 새로운 경제는 ‘실시간 속도’로 작용하며, 거대한 정보지식의 흐름을 끊임없이 교환하는 가운데 새로운 부가 창출되는 체제다. 이같은 체제는 그 자체로서 권력의 원천이며, 그것과의 단절은 미래로부터의 탈락일 뿐이다. ●대니얼 벨 미국 사회학자 중 최고봉으로 꼽히는 대니얼 벨은 일찍이 ‘이데올로기 종언’(1960)을 통해 세상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실질적 삶의 개선 문제라고 정확히 예견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체적 모순을 지닌 자본주의를 넘어 새로운 사회의 도래를 예측했다. 즉, 자본주의 사회는 부의 끊임없는 자기 축적 논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의도적(정책적) 개입을 통한 재분배가 없게 되면 어떤 사람은 최악의 경우 굶어죽을 수도 있는 모순을 지닌다고 보았다. 그는 지식정보가 핵심 권력화하는 ‘후기산업사회의 도래’(1999)에서 이같은 점을 분명히 하고 ‘‘공공가계’란 개념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공공가계는 가계와 시장경제를 포용하는 개념으로, 사회적 목적의 틀 안에서 시장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 아이디어다. 즉, 공익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재화와 서비스의 분배에 우선 순위를 매겨주는 공공철학의 개념을 담고 있다. 토플러가 지식정보사회에서 권력의 이동을 분석하면서도 권력의 흐름에서 도태된 이들을 위한 방안 제시에 소홀한 반면, 대니얼 벨은 이들을 함께 아우르며 갈 수 있는 사회체제에 큰 관심을 둔 것이 특징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앞서 이야기했듯이 후쿠야마는 20세기 최후의 승자인 자유민주주의가 내부로부터 붕괴되고 있다고 파악했다. 일과 소비자 중심의 사회에서 서구사회의 전통적인 도덕적 유대가 심각히 타격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자유민주주의의 사회적 뼈대 자체도 위협받고 있으며, 서로 협동하고 연대할 수 있는 가치체계가 마구 동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붕괴를 막기 위한 대안은 없는가. 후쿠야마는 인간에게 자기 생존을 위해 서로 의존하고 협동하게 하는 어떤 천성적 능력이 있다는 데 위안을 찾는다. 인간의 자발적 질서의식이 복원될 가능성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신뢰와 협동이 있는 사회질서 재구축, 요컨대 사회자본 복원을 위한 정치적 노력과 도덕적 시도가 필요하다.19세기 영국에서 선교운동을 통해 ‘빅토리아적 가치’를 불어넣었던 것처럼, 메이지(明治)시대 일본에서 천황숭배론을 활용했던 것처럼 유사한 정치적·도덕적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올 출간될 미래서 올해는 1990년 ‘권력이동’ 이후 뚜렷한 저작을 내지 않았던 앨빈 토플러를 비롯해 미래학계 석학들이 앞다투어 역작을 내놓을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이에따라 미래담론이 한층 활기를 띨 전망이다. 토플러는 10년마다 주요 저작을 내던 관례대로 2000년 책을 내려고 했으나 딸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바람에 충격을 받아 출판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이후 2002년 9·11테러가 터진 후 정세가 급변하면서 저작을 상당 부분 수정한 것으로 전해진다.30% 정도를 다시 썼다고 한다. 토플러의 책은 이르면 오는 4월쯤 나올 예정. 내용은 아직까지 극비에 부쳐지고 있다. ‘Being Digital’로 라이프스타일의 대 혁신을 내다보았던 미국 MIT대학 교수 니컬러스 네그로폰테도 올 상반기 중 중요한 저작을 낼 계획이다. ‘To Be One’, 혹은 ‘Geo Digital’이라는 제목이 될 것이라고. 여기서 네그로폰테는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몇몇 나라에서 나타난 의지가 오늘날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창조해내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창의적이고 활기찬 사회를 이끌어낼지 모른다는 것, 혁신과 리더십은 구경제의 틀에 의하면 개도국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을 것으로 알려진다. 기업경영 분야에서 미래학자로 성가를 드높이고 있는 피터 드러커,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은 비즈니스 리더로 꼽히는 잭 웰치, 리더십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스티븐 코비 등도 올해 주요 저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하인호 미래학硏소장이 본 2005 한국 “올해는 ‘열린통일’로의 행보가 본격화하는 해가 될 겁니다. 개성공단이 활성화하면서 남북간 왕래가 자유로워지고, 북핵 문제도 비교적 순조롭게 풀려나갈 것으로 봅니다.” 국내의 몇 안되는 미래학자 중 한 사람인 하인호 미래학연구원장은 올해 경제 전망이 잿빛 일색인 것은 사실이지만 개성공단이 본격 가동되고 남북교류가 활성화하면서 우리 경제에 활력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4·19혁명 이후 태어난 세대가 점차 나라를 이끌어가는 중추로 자리잡고 있다며 이들은 상당수가 국제적 감각을 갖춘 고학력층으로, 격변하는 국제질서를 해쳐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2005년을 21세기의 특징이 본격적으로 부각되는 시기로 보았다. 즉 21세기는 지식문화, 지식산업, 지식기업, 지식코드가 중추가 되는 사회이며, 올해부터 이같은 경향이 더욱 조밀하게 나타날 것이라는 것. 결국 이같은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이나 개인이 도태되는 현상도 눈에 띄게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는 이같은 흐름 속에서도 ‘정신문화’,‘웰빙 소사이어티’가 각광받을 것이며, 서양에서도 정신 중심의 ‘동양문화’가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개인적으로는 자연친화적·환경친화적인 삶이 보다 중시되고, 사회봉사 등 정신적 건강이 비중있게 여겨지며, 이에따라 행복관이나 인식의 세계도 점차 변화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국제적으로는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매우 힘겨운 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2004년은 미국의 부시, 중국의 후진타오, 일본의 고이즈미, 러시아의 푸틴 등 주변 열강의 정상들이 등극 또는 재등극한 해로서, 올해는 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국제외교정치를 펼쳐나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하 원장은 장기적으로 한반도와 중국을 잇는 경제권, 즉 투더블유(WW)권이 21세기의 중심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즉 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 한국, 일본, 중국, 인도를 연결하는 경제권이 글로벌 구매시장으로 자리잡으면서 세계경제를 주도하게 되리라는 것. 이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 중심의 시각도 점차 엷어지게 되고, 특히 한·중·일 동북아 3국은 지역의 맹주가 아니라 글로벌 경제의 주역으로 자리잡는다는 전망이다. 다만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세계화를 성취하는 일, 투더블유권 내의 보건과 환경문제 해결 등 적지않은 과제도 안고 있다고 분석한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아라파트 사망] 이스라엘 “환영” 美·유럽 “애도”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사망에 대해 세계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중요한 순간’이 다가왔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아라파트의 삶과 아라파트 사망이 중동 평화협상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서는 각국이 다양한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이슬람 국가들은 장례식에 국가원수가 참가할 예정이며, 프랑스와 영국 등 대부분 유럽 국가들은 외무장관을 조문사절로 파견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미국은 몇 단계 낮은 윌리엄 번스 국무부 차관보를 파견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극단 최악의 평가는 요셉 라피드 이스라엘 법무장관에게서 나왔다. 라피드 장관은 11일 아라파트의 사망을 환영한다며 “그가 세상에 없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상의 비극 중 하나는 아라파트가 이곳에서 시작된 테러가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세 카차브 이스라엘 대통령은 “아라파트의 사망으로 새로운 장의 시작이 가능해졌다.”고 반가운 기색을 내비쳤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즉각 논평을 피한 가운데 이스라엘은 아라파트 사망과 장례에 따른 소요를 우려, 이날부터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을 봉쇄하고 병력을 증파했다. 팔레스타인은 비탄에 빠졌다.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선 수만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아라파트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공포를 쏘며 팔레스타인 국기와 아라파트의 상징인 스카프를 흔들며 행진했다. 아라파트 집무실인 라말라의 무카타에는 조기가 걸렸으며 TV는 코란 구절과 함께 아라파트 영상을 방송했다. 아라파트와 권력투쟁 관계에 놓였던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도 애도를 표했고 무력투쟁을 다짐했다. 팔레스타인 정당인 파타의 무장조직 알 아크사 여단은 복수를 선언했다. ●미국·유럽, 애도 속 평가는 엇갈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아라파트에 대한 평가는 유보한 채 애도를 표했다. 부시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원하는 민주 독립국가가 건설돼 이웃 국가들과 평화롭게 공존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아라파트 사망 발표 수시간 전 “역사는 아라파트 총리를 가혹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은 아라파트에 호의적인 평가와 깊은 애도를 표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인들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두 국가를 인정하도록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40년간 팔레스타인의 국가수립 투쟁의 화신이었으며 용기와 신념으로 가득찬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슬람권 ‘엄청난 손실’ 이슬람권은 아라파트의 사망을 팔레스타인에 있어 ‘엄청난 손실’이라고 평가했다. 이슬람권은 더 나아가 팔레스타인의 단결을 촉구했다. 시예드 하미드 알바르 말레이시아 외무장관은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은 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서로의 차이를 버리고 단결하라.”고 촉구했다. 이슬람교도들이 가장 많이 사는 인도네시아의 하산 위라유다 외무장관은 “아라파트는 우리 모두에게 영웅”이었다며 팔레스타인이 용기와 단결로 아라파트 사망을 극복할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아라파트 사경] 점찍은 후계자 없어… 유혈투쟁 우려

    |파리 함혜리특파원|‘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상징’이었던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혼수상태 돌입 및 권력 이양작업 개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관계는 물론 전체 중동 정세에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킬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오랜 갈등의 역사를 감안할 때 그의 병세가 중동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보다는 갈등의 확산과 충돌의 격화로 이어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아라파트의 장례를 전후해 우려되는 소요사태와 치안 불안이 어느 정도까지 격화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데다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탓이다. ●한 시대의 마감 아라파트 수반의 위독으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구심점을 잃게 됐다.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최대기구인 PLO는 1969년 창설 이래 아라파트가 의장직을 맡아왔다. 아라파트가 사라지는 것은 중동지역 장기집권 지도자들의 세대교체를 알리는 전주곡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아라파트가 사라짐으로써 이스라엘과 아랍국들은 증오와 대립의 완충지대를 상실한 셈이다.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저항과 독립투쟁의 대명사였으며, 아랍권은 아라파트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과 간접적으로 싸워왔다. 이제 아랍권은 이스라엘과 화해냐 대립이냐를 분명히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으며 과격 반이스라엘 단체인 하마스, 지하드의 테러 위협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장례 문제 처리 결과 주목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의 이슬람-유대교 공동성지인 ‘하람 알 샤리프(고귀한 성지·템플 마운트)’를 아라파트의 장지로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아라파트는 생전 자신이 사망하면 템플 마운트에 있는 황금 돔 사원 옆에 묻히고 싶다고 누차 말해왔다. 유대교 경전에 성전이 있었던 곳으로 알려진 이 지역에는 회교 3대 성지인 알 아크사 사원이 6∼7세기에 건설돼 유대교와 회교 양측이 서로 성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스라엘 아리엘 샤론 총리는 아라파트의 사망설이 나돌던 4일에도 그가 예루살렘에 안장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밝혀, 아라파트의 시신을 운구하는 수만명의 팔레스타인 군중과 템플 마운트에서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개 속의 후계구도 아라파트는 최근들어 권력 장악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을 맡아 자치지역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유일한 팔레스타인 지도자로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아라파트는 다른 아랍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후계구도를 명시하지 않았다. 잠재적 정적들을 가차없이 제거해왔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확실한 후계자로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팔레스타인 주류 정파인 파타운동은 내분과 지도부의 비리 연계 등으로 대중의 외면을 받고 있으며, 알아크사순교여단 등 무장단체를 이끄는 젊은 세대는 무리지어 흩어져 있는 상태다. 자치정부 기본법은 아라파트가 사망하거나 축출 등으로 실권할 경우 자치의회 의장이 60일간 권한을 대행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나 자치의회 의장은 실제 권한을 행사하기에는 권력 기반이 취약하다. 현재 아라파트를 이을 지도자로는 마흐무드 압바스 전 총리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4월 자치정부 초대총리로 취임했다가 5개월만에 중도하차한 그는 PLO 집행위 사무총장을 맡고 있어 권력의 중심에 가장 근접해 있다. 또 이스라엘 신문 마리브는 아라파트가 PLO 정치국장 파루크 카두미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하는 정치적 유언을 남겼다고 보도했다. 전 안전담당책임자 모하메드 달란, 반이스라엘 투쟁 지도자로 현재 이스라엘에 수감돼 있는 마르완 바구티도 주목받고 있다. lotus@seoul.co.kr
  • 팔레스타인 폭풍전야?

    신병 치료를 위해 파리의 병원에 입원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지난달 31일 측근에게 전화를 해 자신의 건재를 과시했다. 아흐마드 쿠레이 총리와 마흐무드 압바스 전 총리 등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이날 국가안보위원회를 소집, 아라파트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지만 내부적으론 아라파트 이후를 놓고 이미 이스라엘측과 접촉을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책임있는 새 지도부가 들어서면 대화가 재개될 수 있다고 밝히는 등 아라파트가 완전히 사라지기를 바라는 속내를 비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1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자살폭탄테러가 발생,4명이 숨졌다. 범인은 16세의 팔레스타인 소년으로 알려졌다. ●측근에게 전화해 건재 과시 아라파트는 31일 입원 후 처음으로 가벼운 식사를 하고 침대에서 일어나 코란을 읽거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건강을 과시했다. 또 살람 파야드 재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5분간 통화했다. 파야드는 “(아라파트는)자신이 처한 주변 상황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파야드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모든 관계자들이 아라파트의 건강이 호전되고 있다고 전하면서 아라파트의 공백으로 생길지 모를 혼란을 차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또 아라파트는 1일 텔아비브 자살폭탄테러와 관련, 국적과 지역을 불문하고 민간인 공격을 반대한다고 말했다고 나빌 아부 루데이나 대변인이 전했다. ●겉으론 평온, 속으론 후계자 암중모색 이날 압바스 전 총리와 쿠레이 총리 공동 주재로 열린 국가안보위원회에서 두 사람은 아라파트의 자리를 비워 두었다. 아라파트가 여전히 국가원수이며 그가 잠시 자리를 비웠음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의 국가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내분이나 권력투쟁에 대한 걱정은 기우임을 보이려 한 것이다. 그러나 아라파트에 대한 검진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미 아라파트의 보좌관들과 이스라엘 간에 전면 중단된 양측간 대화를 재개하고 미국 주도로 마련된 중동평화 로드맵을 되살리기 위한 접촉이 시작됐다.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도 아라파트 이후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는 압바스 전 총리와 쿠레이 현 총리측의 팔레스타인내 젊은 세대에 대한 접촉 움직임이 물밑에서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예측된다. ●아라파트 죽으면 격돌 예고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아라파트가 치료를 마치면 귀국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에 책임있는 새 지도부가 들어서 대화가 재개되기를 바란다는 희망도 털어놓았다. 샤론 총리는 그러면서 자신이 총리로 있는 한 아라파트가 예루살렘에 묻히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아라파트는 자신의 사후 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에 묻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고 팔레스타인인들도 당연히 그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라파트가 죽는다면 그의 장례 문제를 놓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 대충돌이 우려된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장쩌민 전격퇴진] “후진타오 2007년돼야 완전 장악”

    |베이징 오일만특파원|후진타오(胡錦濤) 시대가 활짝 열렸다.사실상 중국 최고 실권자인 장쩌민(江澤民)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사임으로 후진타오 당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당·정·군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게 됐다. 1989년 당 총서기에 오른 이후 15년에 걸친 장쩌민 시대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고 중국 권력 구도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해졌다.장 주석의 사임은 1949년 공산당 집권 이후 혁명세대가 완전히 정계에서 물러나고 실용주의 노선을 지향하는 ‘테크노크라트’들이 전면에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국은 21세기 새로운 시대조류에 맞춰 공산당 민주화와 집정력 강화 등 사회 전반에 불어닥친 개혁노선이 본격화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장 주석의 사임도 현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4세대 지도부와 40대의 5세대 차기주자들의 변화에 대한 강렬한 요구가 수용된 측면이 적지 않다. ●최대 권력집단 상하이방 세력위축 향후 최대 관심사는 권력의 향배이다.장 전 주석을 중심으로 최대 세력을 형성했던 상하이방들이 다소 밀리는 구도속에서 후 주석을 정점으로 한 집단지도체제가 본격화될 전망이다.특히 후진타오 주석의 권력기반인 공산주의 청년단(공청단) 계열의 인물들이 전면에 등용될 것이란 분석이다. 장 전 주석의 오른팔인 쩡칭훙 국가 부주석이 이번 4중전회에서 군사위 부주석에 합류하지 못한 것도 이러한 권력 이동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홍콩의 언론들은 “장 전 주석이 퇴임 후 안전판을 마련했기 때문에 당분간 장 전 주석 측근들과 후진타오 간의 합종연횡이 이뤄질 것”이라며 “향후 3년간 과도기를 거쳐 2007년 17대 공산당전국대회를 계기로 후 주석이 명실상부하게 권력을 장악하는 구도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장 전 주석,명예로운 퇴진 선택 장 전 주석의 사임은 그동안 ‘시간문제’로 점쳐졌다.장 전 주석이 3세대 지도부 가운데 유일하게 현역으로 남은데다 개혁의 바람 속에서 후 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신진세력과의 권력투쟁설이 심심치 않게 제기돼 왔다.권력투쟁 자체가 장 전 주석의 파워가 빠졌다는 의미인 것이다. 장 전 주석 은퇴의 표면적 이유는 건강 문제이다.당내에 정통한 소식통들도 장 전 주석이 89년 이후 심장에 문제가 있다고 전한다.장 전 주석이 이미 지난 7월말 베이다허에서 측근들과 만나 건강상 이유로 정계퇴임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4중전회를 계기로 78세 고령인 그가 명예로운 은퇴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공산당 집정력 강화와 당내 민주화 요구가 거센 시점을 택해 4세대 지도부에게 완전하게 권력을 이양하는 모양새를 취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소식통들은 “장 전 주석의 이번 사임은 후 주석 지도체제 하에서도 영향력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oilman@seoul.co.kr
  • 권력투쟁 매듭짓나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 공산당은 16일부터 4일간 제16기 당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中全會)를 개최한다. 이번 전체회의의 공식 의제는 공산당의 집권능력 강화와 향후 경제정책 방향으로 집약된다.하지만 비공개 의제로는 타이완(臺灣)의 독립 움직임에 대비한 대미 정책이 주요한 안건에 포함돼 있다는 것이 중국 외교가의 분석이다. 최근 불거진 장쩌민(江澤民) 중앙군사위 주석과 후진타오(胡錦濤) 당총서기겸 국가주석 간의 권력투쟁설이 어떻게 매듭되느냐도 이번 4중전회의 주요 관전 포인트.서방 언론에 보도된 장 군사위 주석의 ‘사임 가능성’은 현재로선 상당히 낮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지 등 홍콩의 언론들은 공산당 고위 관계자를 인용,“장쩌민 군사위 주석이 덩샤오핑(鄧小平)처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파이낸셜 타임스는 “덩샤오핑이 장 주석에게 권력을 이양한 뒤 2년 만에 군사위 주석직에서 물러났던 전례를 들어 당 내외에서 그에 대한 사임 압력이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후진타오 당총서기 역시 권력강화를 위해 ‘무리수’를 두기보다는 장 주석에게 충성심을 보이고 있는 쩡페이옌(曾培炎) 부총리,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인민은행장,황쥐(黃菊) 부총리 등 유력인사들과의 타협 속에 서서히 권력을 확대하는 온건론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4중전회를 계기로 권력의 축이 서서히 후 당총서기에게 넘어갈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 공산당이 관례를 깨고 이례적으로 전체회의가 열리기 전에 회의 안건을 발표한 것도 ‘투명성 강화’에 대한 후 주석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했다. 당 지도부는 공산당의 집정능력 강화 방안에도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5년마다 개최되는 당 전국인민대표자대회의 대표권 및 감독권 강화를 위해 당 대회를 매년 개최하는 ‘상임제 도입’도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후당총서기는 이와 관련,4중전회 개막 하루전인 15일 다당제 민주주의 도입을 일축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후 당총서기는 전국인민대표자대회 창립 50주년 기념을 위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이같은 입장을 피력하고 “역사는 무차별적인 서방 정치체제의 모방은 중국을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4중전회에서는 군 통수기관인 중앙군사위원회 정원을 8명에서 11명으로 확대하는 등 조직을 개편하는 내용의 군사개혁안이 승인된다.198명의 당 중앙위원들이 24명으로 구성된 정치국의 보고를 처음으로 듣게 되며 과열 경기를 잡기 위한 거시경제 조정정책을 지속할 것인지를 포함한 일련의 경제방향도 설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국 정부는 4중전회에 대비,반체제 인사들과 탄원자들에 대한 대대적 척결을 벌여 최소한 수천명을 검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oilman@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36)

    儒林 173에는 布衣(베 포/옷 의)가 나온다.布衣는 ‘베로 지은 옷’,‘벼슬 없는 선비’를 이른다.포의는 庶民(서민)의 옷으로,서민들은 노인이 되기 전 비단 옷을 입을 수 없다는 데서 온 말이라고 한다. 布는 본래 ‘父’(부/보)와 ‘巾’(수건 건)를 합하여 ‘베’를 뜻하는 글자이며,경우에 따라 ‘널리 알리다.’‘베풀다.’의 뜻으로도 쓰인다.‘布告’(포고:고시하여 널리 일반에게 알림),‘布施’(보시:남에게 물건을 베품),‘布衣寒士’(포의한사: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가난한 선비)에 쓰인다. 衣는 웃옷,즉 ‘저고리’를 본뜬 글자이다.허신은 ‘설문해자’에서 ‘옷을 衣라고 함은 사람이 옷에 의지하기 때문이며,웃옷은 衣(의)라 하고,아래옷은 裳(치마 상)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衣자가 들어간 말에는 ‘衣服’(의복),‘衣食住’(의식주),‘衣裳之治’(의상지치:법을 정할 필요없이 인덕으로 나라를 다스려 백성을 교화함) 등이 있다. 史記(사기) ‘項羽本紀(항우본기)’에는 이런 故事(고사)가 전한다.秦(진)나라의 도읍 咸陽(함양)에 입성한 項羽(항우)는 3세 황제 誅殺(주살)과 阿房宮(아방궁) 全燒(전소),始皇帝(시황제)의 무덤 해체,막대한 金銀寶貨(금은보화) 掠取(약취),부녀자 유린 등 반인륜적 행위를 일삼았다.側近(측근)인 范增(범증)을 비롯한 신하들이 부당성을 極諫(극간)하였으나 항우는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부귀한 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누가 알아주랴.’라고 하면서 默殺(묵살)하였다. 항우는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향 彭城(팽성)으로 遷都(천도)하여 고향 사람들에게 자신의 功德(공덕)을 알리는 데에는 성공한다.그러나 關中(관중)지역을 차지한 劉邦(유방)에게 대패하여 천하를 잃고 말았다.여기서 유래한 錦衣夜行(비단 금/옷 의/밤 야/다닐 행)은 ‘아무 보람 없는 행동을 자랑스레 함’을 뜻하게 되었다. 역사 속에서 布衣를 자처한 사람 가운데 중국 춘추시대의 介之推(개지추)가 있다.그는 권력투쟁의 와중에 19년간 망명생활을 한 公子(공자) 重耳(중이:文公)를 줄곧 수행하였다.그러나 그들의 망명생활에 終止符(종지부)를 찍는 朗報(낭보)가 왔다.主君(주군) 중이가 진나라의 왕위를 계승하게 된 것이다.이 소식과 함께 주군을 따르던 무리들은 꿈에 부풀어 황금빛 미래를 그릴 뿐,과거의 쓰라린 기억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배에 오르는 순간 그들은 누더기와 쪽박을 모두 강물 속으로 던졌다.깜짝 놀란 개지추는 그들을 挽留(만류)하며,“우리의 同苦同樂(동고동락)이 이날을 위해서였단 말이오? 어려웠던 과거를 쉽게 잊는 사람은 행복을 논할 자격이 없소.”라고 개탄했다.개지추는 그 길로 벼슬의 미련을 접고 고향 길을 찾았다. 개지추의 예견대로 論功行賞(논공행상)에 눈먼 측근들은 나라와 백성의 安危(안위)보다 일신의 영달에 혈안이었다.민심은 離反(이반)되고 국가 財政(재정)은 枯渴(고갈)되어 갔다.뒤늦게 자신의 과오를 깨달은 진문공은 이 難局(난국)을 타개할 인물은 개지추 뿐이라는 判斷(판단)에서 개지추를 찾았지만 그는 끝까지 綿山(면산)에서 布衣之士(포의지사)로 생을 마감했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장쩌민 軍주석 사임않을것”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장쩌민(江澤民) 중국 중앙군사위 주석이 오는 16일부터 19일까지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당 제16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에서 군사위 주석직에서 사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 겸 당 총서기측 소식통들이 밝혔다.후진타오측의 한 소식통은 “중국에서 중앙군사위 주석직 사임과 같은 중요한 문제들은 원만하고 꾸준히 시간을 두고 해결되지,카드들을 한번 보여준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재 중국은 국가의 안정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가 사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의 한 소식통은 “두 사람의 권력투쟁은 현재로선 정치적 자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oilman@seoul.co.kr
  • “中군부 권력투쟁 장쩌민 軍주석 사임시사”

    “中군부 권력투쟁 장쩌민 軍주석 사임시사”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장쩌민(江澤民·78)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최근 공산당 관료들에게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고 뉴욕타임스(NYT) 인터넷판이 7일 공산당 베이징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이 신문은 장 주석이 지난 주말 공산당 고위관료 모임에서 그같은 사임의사를 표명했으며 이를 계기로 중국 권부내 군 통제권을 두고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신문은 공산당 지도부에 정통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장 주석의 사임표명은 중앙군사위 주석직의 유임이나 다른 영향력 있는 직책을 요청받겠다는 계산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장 군사위 주석이 사임이란 ‘배수진’을 통해 군부의 재신임을 확보하고 후진타오(胡錦濤) 당총서기의 사퇴압력을 돌파하려는 일종의 ‘승부수’란 분석이다. 중국의 관영매체들이 장 주석의 사의 표명을 보도하지 않는 가운데 익명을 요구한 중국관리가 서방 언론에 관련 사실을 흘린 것도 권력 투쟁설과 무관치 않다. 후-장 권력투쟁이 표면화된 계기는 긴축정책을 둘러싼 논란이라는 것이 정설이다.긴축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후 주석-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두톱 체제’에 맞서 장쩌민 주석이 이끄는 상하이방(上海幇)과의 대결로 권력투쟁이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 중국 소식통들의 전언이다.지난 7월 천량위(陳良宇) 상하이(上海)시 당서기가 정치국 회의석상에서 공개적으로 긴축정책을 비난한 것을 기화로 본격적인 파워 게임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홍콩의 아주주간(亞洲週刊)은 최근호에서 쩡칭훙(曾慶紅) 국가부주석 측근인 딩옌성(丁燕生) 중국은행 홍콩지점 부총재를 횡령혐의로 전격 체포한 것도 권력투쟁의 산물이라고 전했다. 취임 초반 극도로 몸을 낮추며 ‘2인자 행보’를 걸어온 후 국가주석이 최근 권력장악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쩡 국가부주석과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무위원장,자칭린(賈慶林) 정협주석 등 장 주석 측근들의 포위망에서 벗어나 후 주석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셈이다. 중국의 한 소식통은 “올들어 후 주석과 장 주석간 고위직 인사를 둘러싼 파워게임이 심상치 않게 진행되고 있으며 최근 타이완과 홍콩 문제를 둘러싸고 양측의 마찰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1989년 중국 최고권부에 진입한 이후 리펑(李鵬) 전 총리,차오스(喬石) 전 전인대 상무위원장 등의 숱한 도전을 물리친 장 주석이 쉽사리 권좌에서 내려올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한 소식통은 “타이완·홍콩 사태 등 국가안보 차원에서 복잡한 사안이 많기 때문에 경험 많은 장 주석이 군부의 지지를 받는 형식으로 2007년까지 당 군사위 주석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래저래 장 주석의 사임 표명으로 이 달 중순에 소집될 공산당 16대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까지 계파간 파워 게임이 최고조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oilman@seoul.co.kr
  • ‘부국강병’ 3國 전문가 진단

    ‘부국강병’ 3國 전문가 진단

    ‘중국 중앙정치국의 부국강병 전략 탐색’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중국이 대외적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에는 대체로 일치했다.주변국의 긴장감도 동반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태환 세종연구소 연구원은 10일 “부국강병 천명은 대내적으로는 국가 통합을 위한 것이며,대외적으로는 위상 강화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려는 정지작업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중국은 그간 자신들이 절대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주변국의 경계심을 늦추려는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으나,이제 자신들의 논리를 좀더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그는 “사실상 공산당 내부 용어였던 ‘부국강병’을 공식화·양성화함으로써 중국 내 ‘내셔널리즘’도 한층 강화될 것이며 해외동포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아울러 동북아에서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새로운 지위를 확립하려는 기도도 시도될 여지가 많다고 전망했다. 이동률 동덕여대 중국어과 교수도 “‘중국 위험론’에 수세적 대응을 해온 중국이 각 분야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그는 “중국이 동북아의 지역 파워(Regional Power)에서 미국처럼 글로벌 파워(Global Power)로 나가는 데 더 이상 주변국을 의식하지 않겠다는 방증”이라고 덧붙였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발언 배경에 대해서는 “권력 이양기에 있는 후진타오 주석이 국방을 포함한 여러 방면에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로 여겨지며,후진타오 체제의 공고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대 외교학과 정재호 교수는 “한달반 전쯤부터 중국이 ‘화평굴기’(和平堀起·평화적으로 일어선다)란 표현을 공식적으로 쓰지 않고 있다.”면서 “정확한 진의를 파악해 봐야겠지만,일단 보도내용대로라면 중국에 새로운 슬로건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정 교수는 “현재 내부 논쟁이 진행 중이어서 이 표현의 사용을 잠정 유보하고 있는 듯 보인다.”면서 특히 “부국강병이라는 용어가 왜 이 시점에서 새삼 선전의 대상이 되는지 주의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 국방과학기술대학 취안린위안(全林遠)교수는 “부국과 강병은 고정불변의 비례 관계가 아니다.”라며 “현재와 미래의 변화 추이에 따라 선택하는 전략적 관계”라고 말했다. 1980년대는 덩샤오핑이 ‘국방건설보다 경제건설이 우선돼야 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타이완 문제가 점점 긴박해져 국가 안전이 가장 심각하고 현실적인 위협이 됐다고 강조했다. 일본 외교문제 전문연구소 ‘카잔카이’의 아베 준이치 주임연구원은 “부국강병 전략은 이미 2003년 제16차 당대회 때 공표된 내용으로 큰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베 연구원은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즉 과학발전과 국방력 발전,지방발전과 중앙정부발전,대도시와 농어촌의 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아울러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장쩌민 중앙군사위 주석의 권력투쟁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나왔기 때문에 의미가 미묘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그는 그러나 “중국경제가 현재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산적한 국내문제를 무시하고 부국강병을 위해 예산을 국방쪽으로 돌릴 수 없는 상황”이라며 실현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도쿄 이춘규·베이징 오일만특파원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부시 “국가정보국장 신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알 카에다의 국제금융기관 테러 위협이 미국 대선정국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국가정보국장직과 대테러센터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고,민주당 존 케리 대통령후보는 부시 정권의 테러 대응을 강력히 비판했다. 한편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은 금융기관에 대한 테러경보를 격상한 것은 3∼4년된 정보에 근거한 조치라고 미국 정보기관 관리들을 인용해 2일 보도했다.다만 관리들은 알 카에다가 이미 사전정찰을 실시해 표적이 된 금융기관들을 공격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얻었기 때문에 이 정보들이 오래되긴 했지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정보국장 백악관 외부 소속으로 부시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9·11조사위원회가 권고한 국가정보국장과 대테러센터를 설립하기로 하고 의회에 필요한 조치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정보국장은 중앙정보국(CIA)과국방정보국,국가보안국 등 15개 정보기관을 ‘총괄조정’하게 된다.그러나 구체적인 권한은 아직 불투명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산과 인사에 대한 통제권이다.현재 미국의 정보예산은 400억달러에 이르며 그 가운데 80%를 군이 장악하고 있다.국방부쪽에서는 국가정보국장이란 자리가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9·11조사위는 국가정보국장을 백악관 소속으로 두도록 권고했으나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 밖에 두겠다고 밝혔다.부시 대통령은 “국가정보국장이 정보기관들을 효율적으로 조정하기 위해서는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말했으나 펜타곤(국방부)측과의 ‘권력투쟁’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테러센터는 미국의 테러 대응정책이 통일성을 갖도록 하기 위해 모든 정부 기구 및 부처들의 대 테러 계획과 조치들을 조정하고 감독하게 된다.부시 대통령은 “현재 테러위협통합센터가 하고 있는 분석 작업을 바탕으로 구축될 것”이라면서 “이미 알려진 테러범이나 테러 용의자들에 관한 정보은행이 될 것”이라고 규정했다. 센터의 수장은 대통령에게 보내는 일일 테러위협 보고서를 준비하게 되며 국가정보국장의 지시를 받게된다. ●부시-케리 공방 격화 케리 후보는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즈에서 가진 유세에서 “부시 정부의 정책은 미국을 겨냥한 반목과 분노의 확산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면서 “테러범들을 훈련시키는 자들은 우리의 조치들을 신병모집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부시 대통령측은 이에 대해 “궤변”이라고 일축했다. ●금융시장 일단 안정세 미국 국토안보부가 테러 경보를 격상함에 따라 유엔도 테러에 대비한 안전조치를 강화했다고 밝혔다.유엔본부 건물은 지난 2001년 9·11 이후 테러 목표물이 될 위험성이 제기돼 왔다. 테러 대상으로 지목되는 뉴욕의 증권거래소과 씨티그룹,뉴저지의 프루덴셜,워싱턴의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주변에는 검문소가 설치되는 등 경계가 한층 강화됐다. 테러 경보 격상 이후 처음 열린 주식 시장은 다우존스 산업평균 지수가 39.45포인트(0.39%) 오른 1만 179.16으로 마감되는 등 주요 지수가 모두 상승, 테러위협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그러나 채권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국채에 투자자금이 몰리면서 10년만기 재무부 채권 수익률은 전날 4.48%에서 4.45%로 하락했다. 또 외환시장에서는 미국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고 금값은 올랐으며 석유시장에서는 원유 선물가격이 큰 변동이 없었지만 사상 최고수준인 배럴당 44달러선에 다가서는 등 증시 이외의 금융·상품 시장 관계자들은 위험을 회피하려는 반응을 나타냈다. dawn@seoul.co.kr
  • [서울광장] 분배도 놓치고 성장도 놓치고/김경홍 논설위원

    [서울광장] 분배도 놓치고 성장도 놓치고/김경홍 논설위원

    방휼지쟁(蚌鷸之爭)에 어부지리(漁夫之利)란 옛말이 있다.조개와 도요새가 서로 물고 버티며 싸우는 동안 이를 지켜보던 어부가 둘다 잡아가 버렸다.조개와 도요새는 파멸했고,어부만 횡재를 했다는 얘기다. 이런 케케묵은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논쟁들을 보면 이보다 더 정확한 비유는 없을 듯싶다.여야와 청와대까지 가세해 펼치고 있는 논쟁은 논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쟁에 가깝다.마치 조개와 도요새의 싸움처럼 보인다.어부는 경제회복이나 성장,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데 혈안이 된 주변국과 세계질서가 될 것이다. 뛰고있는 경쟁자들 사이에서 걷지도 않고 싸우고만 있다면 어찌될 것인가.말로만 동북아중심국가를 외치지만 동북아에서 현재 우리보다 중심에서 더 먼 국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정치권의 논쟁을 보자.노무현 정권 출범후부터 보면 정치권은 이념 논쟁부터 시작해서 분배와 성장,진보와 보수,이라크 파병 논란을 거쳐 마침내 탄핵정국까지 초래했다.전시나 혁명도 아닌 상황에서 대통령이 두달이나 권한이 정지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빚어졌다.그래서 국민들은 17대 국회가 출범하면 뭔가 달라지겠지 하고 기대했다.그런데 17대 국회가 열렸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여야가 상생과 민생정치를 다짐했지만 국회 원구성도 못하고 한달을 또 허비했다. 국회가 구성된 후에는 나아졌는가 하면 오히려 그 반대다.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등 거대정당들은 권력투쟁만 벌였지 민생안정과 경제회복을 위한 올바른 정책대안 하나 내놓은 게 없다.정당대표들도 딱 한번 만나서 싸움하지 말고 상생정치를 하자고 해놓고 돌아서자마자 논쟁거리만 불려나가고 있다. 앞선 논쟁들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 등장한 논쟁거리는 행정수도 이전,친일 및 반민족행위 진상규명법 재개정,의문사위 활동,국가 정체성,일제강점후 과거사 청산 문제까지 확산됐다.굵직굵직한 것만 그렇다.현 추세대로라면 적어도 다음 대통령선거 때까지는 논쟁거리가 줄어들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이 정체성이니 뭐니 하면서 정쟁을 계속하고 있는 사이 국제유가는 연일 최고치를 기록했고,국내 경기는 바닥인지 아닌지도 오리무중이며,물가는 치솟고,청년실업은 나아질 기미조차 안 보인다.이라크에서는 한국인이 피살되고,서해에서는 포격이 있었는데도 교신 상황보고조차 고의로 누락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이런 상황에서 국가경쟁력이 신장되고 민생안정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분배도 놓치고 성장도 놓치고 마는 것이 아닐까. 정체성 논란 등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쟁들은 크게 보면 해답과 방법이 나와 있다.국가정체성은 헌법에 있고,과거사 문제는 국회에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법률정비를 하면 되고,다른 논쟁거리도 이를 담당할 국가기관들이 있다.제도권 안에서 수렴하면 될 일들을 다른 일은 다 제쳐두고 정쟁에만 몰두하는것은 정치가 염불보다는 잿밥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또 여야가 이런 논쟁들을 정책대결로 해결하기보다는 대권과 연계한 인물논쟁과 편가르기 싸움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을 다투는 격이다. 지금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대부분 휴가를 보내고 있다.이른바 하한(夏閑)정국이다.들리는 바로는 책도 보고,해외시찰도 하고,민생현장도 방문하면서 휴가를 보낸다고 한다.많이 보고,많이 고민하고,정치가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과거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걱정하고 대비하는 것이 애국(愛國)이다.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 儒林(121)-제2부 주유열국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주유열국 제1장 첫 번째 출국 공자는 계씨가 팔일무를 자신의 묘정에서 춤추게 한 일과 삼환씨의 집안에서 제사를 지낼 때 천자처럼 옹을 노래한 사실을 두고 다음과 같이 한탄하였던 것이다. “사람으로서 어질지 못하다면 예는 무엇 할 것이며,사람으로서 어질지 못하다면 음악은 무엇 할 것이냐.” 이때 공자는 젊은 시절 승전리(承田吏)라는 하찮은 벼슬에만 잠깐 몸담고 있었을 뿐,이미 그의 명망이 커짐에 따라 제자들이 사방에서 모여들기 시작하여 제자들과 더불어 유가(儒家)를 이룩하기 시작하고 있었다.공자는 ‘스스로 자립하였다.’고 말한 30대로 접어들면서 공자의 학문과 경륜은 더욱 원숙해져서 명망은 이웃나라로 널리 퍼져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 노나라에서는 대사건이 벌어진다.곧 노나라의 임금인 소공은 세력이 강했던 계평자가 지나치게 방자한 것을 참지 못하고 궁중쿠데타로 계씨를 제거하려 하였다.처음에는 성공할 듯도 보였지만 ‘계손씨 없이는 숙손씨도 있을 수 없다.’는 자각아래 삼환씨들이 힘을 합쳐 소공에게 일대반격을 가했던 것이다.왜냐하면 삼환씨들은 모두 16대왕인 환공의 후손들로 서로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전쟁에서 진 소공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채 제나라로 도망친다.제나라에서는 소공을 도와 노나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갖은 방법을 강구하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소공은 결국 7년이란 세월을 외국에서 보낸 후 객사하게 되지만 어쨌든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려고 결심하고 첫 번째 출국을 단행했을 때에는 소공이 전쟁에서 패퇴한 후 제나라로 도망쳤던 바로 그 내전이 있은 직후였던 것이다. 소공을 쫓아낸 뒤에 계씨의 세도는 더 강력해졌다.공자는 임금까지도 쫓아내는 귀족들의 권력투쟁과 그 사이에서 자신들의 이익과 안전만을 노리며 날파리처럼 날아 다니는 관리들에 극도로 실망한 후 이미 노나라에서는 자신의 정치이념을 실현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노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출국하였던 것이다.그러므로 공자가 가는 도중에 만난 한 여인의 눈물을 통해 “잘 명심토록 하여라.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도 더 사나운 것이다.”란 말을 남긴 것은 여인의 경우를 빗대어 자신이 떠나온 가혹한 정치로 도탄에 빠져 있는 노나라를 질타하기 위한 일성이었던 것이다. 공자가 자신의 망명지로 제나라로 택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하나는 이미 노나라의 임금이었던 소공이 노나라를 도망쳐 제나라로 망명하였던 때문이고,또 하나는 제나라에는 경공(景公)과 안영(晏)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특히 공자는 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정치가로 인정받고 있는 안영에게 깊은 호의를 갖고 있었다. 논어의 공야장(公冶長)편에서도 공자는 안영을 평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을 정도였다. “안평중(안영)은 남과 잘 사귀었고 오래도록 남을 잘 공경하였다.” 공자는 뛰어난 안영을 재상으로 등용할 수 있다면 경공은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진 명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미 그들과는 구면이었던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5년 전,그러니깐 소공 20년 공자의 나이 30세 때 경공이 재상 안영과 함께 노나라를 방문하여 예에 대해서 물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공자세가’에는 이때 경공과 나눈 공자의 대화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경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옛날 진나라의 목공은 작은 나라로서 편벽한 위치에 있었는데도 패업을 이룬 것은 어째서입니까.’ 이 질문에 공자는 대답한다. ‘진나라는 비록 작은 나라였지만 목공의 뜻이 컸고,위치는 편벽하였지만 그의 행동은 발랐습니다.몸소 백리해(百里奚)를 등용하여 대부의 벼슬을 주었는데,죄인으로 묶여있는 중에 등용하여 사흘 동안 얘기해본 끝에 그에게 정사를 맡겼던 것입니다.이런 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비록 왕자가 되어도 마땅하며,그가 패업을 이루었다는 것은 오히려 작은 것입니다.’ 경공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 儒林(121)-제2부 주유열국 제1장 첫 번째 출국

    儒林(121)-제2부 주유열국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주유열국 제1장 첫 번째 출국 공자는 계씨가 팔일무를 자신의 묘정에서 춤추게 한 일과 삼환씨의 집안에서 제사를 지낼 때 천자처럼 옹을 노래한 사실을 두고 다음과 같이 한탄하였던 것이다. “사람으로서 어질지 못하다면 예는 무엇 할 것이며,사람으로서 어질지 못하다면 음악은 무엇 할 것이냐.” 이때 공자는 젊은 시절 승전리(承田吏)라는 하찮은 벼슬에만 잠깐 몸담고 있었을 뿐,이미 그의 명망이 커짐에 따라 제자들이 사방에서 모여들기 시작하여 제자들과 더불어 유가(儒家)를 이룩하기 시작하고 있었다.공자는 ‘스스로 자립하였다.’고 말한 30대로 접어들면서 공자의 학문과 경륜은 더욱 원숙해져서 명망은 이웃나라로 널리 퍼져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 노나라에서는 대사건이 벌어진다.곧 노나라의 임금인 소공은 세력이 강했던 계평자가 지나치게 방자한 것을 참지 못하고 궁중쿠데타로 계씨를 제거하려 하였다.처음에는 성공할 듯도 보였지만 ‘계손씨 없이는 숙손씨도 있을 수 없다.’는 자각아래 삼환씨들이 힘을 합쳐 소공에게 일대반격을 가했던 것이다.왜냐하면 삼환씨들은 모두 16대왕인 환공의 후손들로 서로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전쟁에서 진 소공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채 제나라로 도망친다.제나라에서는 소공을 도와 노나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갖은 방법을 강구하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소공은 결국 7년이란 세월을 외국에서 보낸 후 객사하게 되지만 어쨌든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려고 결심하고 첫 번째 출국을 단행했을 때에는 소공이 전쟁에서 패퇴한 후 제나라로 도망쳤던 바로 그 내전이 있은 직후였던 것이다. 소공을 쫓아낸 뒤에 계씨의 세도는 더 강력해졌다.공자는 임금까지도 쫓아내는 귀족들의 권력투쟁과 그 사이에서 자신들의 이익과 안전만을 노리며 날파리처럼 날아 다니는 관리들에 극도로 실망한 후 이미 노나라에서는 자신의 정치이념을 실현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노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출국하였던 것이다.그러므로 공자가 가는 도중에 만난 한 여인의 눈물을 통해 “잘 명심토록 하여라.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도 더 사나운 것이다.”란 말을 남긴 것은 여인의 경우를 빗대어 자신이 떠나온 가혹한 정치로 도탄에 빠져 있는 노나라를 질타하기 위한 일성이었던 것이다. 공자가 자신의 망명지로 제나라로 택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하나는 이미 노나라의 임금이었던 소공이 노나라를 도망쳐 제나라로 망명하였던 때문이고,또 하나는 제나라에는 경공(景公)과 안영(晏)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특히 공자는 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정치가로 인정받고 있는 안영에게 깊은 호의를 갖고 있었다. 논어의 공야장(公冶長)편에서도 공자는 안영을 평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을 정도였다. “안평중(안영)은 남과 잘 사귀었고 오래도록 남을 잘 공경하였다.” 공자는 뛰어난 안영을 재상으로 등용할 수 있다면 경공은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진 명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미 그들과는 구면이었던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5년 전,그러니깐 소공 20년 공자의 나이 30세 때 경공이 재상 안영과 함께 노나라를 방문하여 예에 대해서 물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공자세가’에는 이때 경공과 나눈 공자의 대화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경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옛날 진나라의 목공은 작은 나라로서 편벽한 위치에 있었는데도 패업을 이룬 것은 어째서입니까.’ 이 질문에 공자는 대답한다. ‘진나라는 비록 작은 나라였지만 목공의 뜻이 컸고,위치는 편벽하였지만 그의 행동은 발랐습니다.몸소 백리해(百里奚)를 등용하여 대부의 벼슬을 주었는데,죄인으로 묶여있는 중에 등용하여 사흘 동안 얘기해본 끝에 그에게 정사를 맡겼던 것입니다.이런 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비록 왕자가 되어도 마땅하며,그가 패업을 이루었다는 것은 오히려 작은 것입니다.’ 경공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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