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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트럼프와 ‘초원복국’ 사건/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트럼프와 ‘초원복국’ 사건/최광숙 논설위원

    1952년 미국 대선에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이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존 에드거 후버 미연방수사국(FBI) 국장이 상대 후보에 대해 ‘동성애자이며 공산주의자였다’는 허위 보고서를 작성해 배포한 덕분이었다. 후버는 1944년 대선에서도 해리 트루먼에 대한 나쁜 정보를 상대 후보 측에 제공하며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 시도한 적이 있다.FBI 창설자인 후버는 ‘어둠의 권력자’로 불린다. 1924년부터 1972년 사망할 때까지 48년간 FBI 국장직을 지내면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루서 킹 목사의 사생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여배우 메릴린 먼로와의 관계 등을 무차별로 도청, 사찰을 통해 파일을 만들었다. 대통령의 약점까지 들춰 여러 대통령들을 협박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대선 도청 의혹’을 제기하면서 신·구 정권의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오바마는 대선 때 트럼프 캠프 전화를 도청했다”고 주장했다. “끔찍하다”, “매카시즘 ”, “워터게이트 ”, “역겨운 사람” 등 막말을 쏟아냈다. 그의 이 같은 주장은 트럼프 측근인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이 장관 지명 전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를 만나고도 청문회 때 이를 숨겼다는 것이 밝혀진 이후에 나왔다. 이에 FBI 등 수사·정보기관은 “트럼프의 주장은 거짓으로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바마 측도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역시 “트럼프가 자신의 러시아 스캔들을 덮기 위해 도청 논란을 끌어들였다”며 “그는 물타기 대장”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도청 의혹 제기는 초원복국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1992년 대선을 1주일 앞둔 12월 11일 부산 초원복국 집에 김기춘 법무장관 등 부산의 기관장들이 모여 “우리가 남이가” 하며 지역감정을 선동하며 관권 선거를 부추겼다는 사실이 야당 후보인 정주영 후보 측의 도청을 통해 폭로됐다. 이에 김영삼(YS) 후보 측은 도청을 음모라고 규정했다. 이들 두 사건은 도청이 본질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초원복국 사건은 불법 도청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관권 부정선거가 더 부각됐어야 했다. 트럼프의 도청 의혹 제기도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는 도청 의혹보다는 그의 측근들이 잇따라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러시아 스캔들을 문제 삼는 것이 옳다. 다만 두 사건의 차이는 초원복국 사건의 경우 당시 언론이 YS 편에 서서 도청 문제를 물고 늘어졌지만 현재 미 언론은 “트럼프의 음모론”으로 보며 오바마 편에 서 있다. 정치적 곤경에 처한 정치인들이 국민의 관심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 것은 동서양이 따로 없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그것이 알고싶다’ 김정남 피살 미스터리…왜 공개된 장소에서 살해했나?

    ‘그것이 알고싶다’ 김정남 피살 미스터리…왜 공개된 장소에서 살해했나?

    4일 밤 방송되는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김정남 피살 사건을 파헤친다. 이날 ‘그것이 알고싶다’ 1066회는 ‘무대 위의 암살 - 김정남 피살사건 미스터리’편으로 방송된다.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은 한 순간 살인사건의 무대가 됐다. 1970년 평양 태생 ’김철’. 그는 이른 아침, 공항에서 두 명의 여성으로부터 독극물 공격을 받고 숨졌다. 그리고 한국의 한 종편채널을 통해 남자의 진짜 신원이 공개되는데, 그는 바로 북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현 최고 권력자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이었다. 공개 된 두 여성 용의자는 인도네시아 국적의 아이샤와 베트남 국적의 흐엉. 그들은 어떤 남성들에게 속아 TV방송용 몰래 카메라인 줄 알고 벌인 일이라고 경찰에 진술했다. 두 사람은 충격적인 암살을 감행한 범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범행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특히 베트남 국적의 흐엉은 한국대중문화에 관심이 많고 한국을 드나든 적도 여러 번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용의자 흐엉의 지인 김재민(가명)씨는 “에이 설마 이랬는데 뉴스 보니 진짜더라고요. 자기도 이게 몰래카메라 같은 건 줄 알았다고 이야기하니까...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야말로 매와 같이 달려들어서 거의 2초 만에 목적했던 바를 달성하고 뛰어갔죠”리고 말했다. 두 여성은 얼굴을 가리거나 변장을 하지 않았다. 또한 흐엉은 똑같은 옷을 입고 공항에 다시 나타나 붙잡힌다. 그들의 진술대로 몰랐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으로 보인다. 하지만 CCTV 속 두 여성은 마치 훈련된 요원처럼, 3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범행을 끝내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아난다. 김정남은 피습 이후 30분 만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약 2시간 내에 사망했다. 강력한 독성을 지닌 독극물의 정체는 신경작용제인 VX였다. 아주 적은 양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독성이 강해 생화학무기로 분류되는 물질이다. 과연 이렇게 위험한 물질을 암살의 수단으로 사용하면서도 몰랐을까? 범행 이후 바로 손을 씻으러 갔다는 정황에서도 그들은 위험성을 알았을 것이다. 납득이 안 가는 건, ‘맨손’ 범행이다. 그 정도로 위험한 걸 알았다면 맨손으로 독극물을 만질 수 있었을까? 온통 미스터리한 정황들이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새로운 용의자 북한국적의 ‘리정철’을 검거하면서 사건은 새 국면을 맞는다. 수사결과, 사건의 배후엔 북한국적의 남성 7명이 더 있었다. 그 중엔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도 포함되어 있었다. 의혹이 확신으로 바뀌어가는 순간, 피살의 배경에 이목이 집중됐다. 과연 북한 정권이 사건의 배후에 있다면 그들은 왜 공개된 장소에서 이 시점에 김정남을 살해했을까? 여러 가지 추정이 대두됐다. 김정은의 어머니가 재일교포이기 때문에 김정남에게 백두혈통의 정통성에 대한 열등감이 작용했을 거라는 주장, 만에 하나 현재 북한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의 지위를 위협할지 모를 가능성을 차단하려 했다는 추측, 그리고 심지어 김정남이 지지 세력을 모아 망명정부를 세우려 했다는 이른 바 망명설까지 나왔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북한의 소행,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 범행동기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 범행동기 자체가 일단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있고요”라고 말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 연구소 연구위원은 “장성택이 살아있고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 뒤를 봐주던 이런 세력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도 사실은 깨끗하게 이제 정리가 됐다고 봐야 되는 거죠. 김정남이 평양 내에서 어떤 권력을 지향하면서 세력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었던가”라고 말했다. 수많은 추측들, 그 중에 밝혀진 건 없다. 사건을 담당하는 말레이시아 경찰은 용의자들이 ‘북한국적’인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다고 했다. 하지만 김정남 피살 직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가안보회의(NSC)를 두 차례나 열고 이번 테러로 우리정부와 국민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능성까지 발표했다. 더불어 정치권에서는 이 사태를 계기로 사드 배치를 조속히 진행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북한의 테러위협이 언제 국내를 향할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 빨리 사드를 설치해서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북한 정권이 권력 강화를 위해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을 국내 정치용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공개된 장소에서 감행된 충격적인 김정남 암살사건의 여러 의문점들을 추적하고 사건의 배경으로 제기된 여러 가설들을 검증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데스크 시각] 공무원, 개혁의 동반자와 머슴 사이에서/윤창수 정책뉴스부 차장

    [데스크 시각] 공무원, 개혁의 동반자와 머슴 사이에서/윤창수 정책뉴스부 차장

    국정 농단 사태를 낳은 최순실씨가 눈독을 들인 것 가운데 하나는 평창 동계올림픽이었다. 조카 장시호씨를 동원해 한국동계영재스포츠센터를 만들었으나 문화체육관광부 지원금 6억원, 삼성전자 16억원 정도를 끌어들이는 데 그쳤다. 이는 검사와 감사원 직원 등으로 구성된 올림픽조직위원회의 검증팀이 열심히 일한 덕분이란 분석이 있다. 최순실 사태로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비판이 거세지만 곁에서 지켜본 공무원 집단은 ‘대통령 한 사람에게 목매는 순정파’에 가깝다. 102만여명의 공무원을 모두 ‘순정파’로만 정의할 순 없겠지만, 대부분 공무원은 처우에 불만은 많아도 충성심이 강하다. 한국행정연구원의 공직생활 인식 조사에 따르면 61.4%가 ‘질서 유지를 위해서는 비공식적 규칙도 준수한다’고 답했다. 공무원의 강한 충성심은 정년 보장과 공무원연금이란 제도 덕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랏일을 한다는 자부심과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자긍심이 가장 큰 원천일 것이다. 이런 공무원에 대한 정권의 태도는 보수정권과 진보정권이 확연히 달랐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분과 간사위원을 맡았던 김병준 교수는 “관료들을 개혁 대상이라기보다는 개혁의 동반자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공무원이 스스로 혁신의 전도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관료들이 적응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청와대에 보고하지 말라고 했으나 대통령의 권한 이임에 적응하지 못한 공무원들은 정책상황비서관실로 보고했고, 그 결과 불과 몇 명으로 출발했던 정책상황비서관실의 직원 수는 잠깐 사이에 40~50명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답이 없는 순간 공무원은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는 결국 부처의 인사에 개입하고, 부처 정책에 의견을 전달한 청와대 탓이었다고 털어놨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의 팀장으로 일했던 박재완 성균관대 교수는 “이 전 대통령은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관료와 정부 규제를 개인적으로 불신했다”고 말했다. 실제 이 전 대통령은 ‘공직자는 국민의 머슴’, ‘공무원이 힘들면 국민이 편하다’ 등의 발언으로 공직사회를 긴장시키고 오전 7시 회의, 휴일 회의, 해외출장 다음날 회의, 1박2일 워크숍 등으로 관료들을 다잡았다. 공직자 골프, 국회의원 발의 형식의 청부입법 등을 금지하고 장관 정책보좌관을 2~3명씩 둬 관료를 통제했다. 박근혜 정부도 공무원연금 개혁, 성과연봉제 도입, 관피아 퇴치 등의 정책을 통해 공무원은 개혁 대상이란 정권의 시각을 드러냈다. 차기 정부도 조직 개편이란 칼을 들고 공무원 사회를 정권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 할 것이 분명하다. 역대 정부의 핵심 권력자들이 조직보다는 인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음에도 말이다. 이상적인 정부 조직이란 정답이 없기 때문에 결국 정권의 국정 철학과 공무원에 대한 시각을 담아 결정되기 마련이다. 서울신문 ‘퍼블릭IN’이 최근 정부 조직 개편 관련 조사를 했을 때 공무원들은 극심한 고통을 토로했고, 전문가들은 ‘무심코 던진 돌(조직 개편)에 개구리(공무원)는 죽는다’며 조심스러워했다. 정권을 잡겠다는 정치인들은 쉽게 없애 버린 부처 하나가 수천 명의 에이스 공무원을 일에 대한 열정을 잃은 천덕꾸러기로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geo@seoul.co.kr
  • [역사속 공무원] 관청 물건 착복·기생집 성접대… 선산부사 조진, 곤장 맞고 유배

    [역사속 공무원] 관청 물건 착복·기생집 성접대… 선산부사 조진, 곤장 맞고 유배

    뇌물로 노비 바친 김도련사건 뇌물금지법 만든 세종에겐 오점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첫 시행은 세종 6년인 1424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조정의 무능과 부패가 조선 개국의 주요 명분 중의 하나였지만, 관료들의 부정부패는 쉽게 근절되지 않았다.김영란법과 유사한 뇌물금지법은 세종 6년인 1424년에 있었던 일련의 뇌물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이해 1월 5일 세 번째 기사는 선산부사 조진에 관한 것이다. 사헌부는 조진이 관청의 물건을 사적으로 착복한 것이 22관(貫, 3.75㎏)이니 법에 따라 곤장 100대에 2500리 유배에 해당하고, 태종의 산릉 앞 기생집에서의 성접대와 여우고기를 먹은 일은 곤장 80대에 처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세종실록’ 1424년 7월 14일 다섯 번째 기사가 뇌물을 준 자와 받은 자 모두를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이날 사헌부는 관가의 물건을 축내고 훔쳐 내는 자, 법을 어기고 주고받는 자가 끊이지 않아 폐단이 크다며, 지금부터 준 자와 받은 자를 모두 처벌하고 주고받은 물건은 장물로 본다고 보고했다. 이는 뇌물금지법을 만들라는 임금의 명에 따른 것으로, 보고를 받은 세종은 “전조(고려) 말년 뇌물이 공공연히 왕래하던 구습이 아직도 남아 뇌물 주는 것을 태연하게 여기고, 뇌물을 거절하는 자는 도리어 조롱을 당한다”며 통탄해했다. 세종은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가장 노력한 임금이었지만, 아쉽게도 조선 최악의 뇌물사건을 치러야 했다. 즉위 8년인 1426년 있었던 김도련 뇌물사건이다. 이해 3월 4일 다섯 번째 기사는 김도련이 당시 최고의 권력자이던 병조판서 조말생, 우의정 조연, 곡산 부원군 연사종 등에게 뇌물을 주고 부당한 소송을 벌여 함흥부 홍원현에 사는 김송과 김진의 형제의 재산과 노비 수백명을 빼앗고, 친인척 400여명을 노비로 전락시킨 사건이다. 함길도 행대감찰(行臺監察, 사헌부가 각 도에 파견하는 감찰) 이사증의 조사에 따르면 김도련의 뇌물 중 노비만 따져도 평성부원군 조견 17명, 전 우의정 정탁 7명, 우의정 조연 6명, 병조판서 조말생 36명 등 총 19명의 대소 신료에게 132명의 노비를 뇌물로 바쳤다. 대사헌 권도는 “조말생이 받은 뇌물 중 확인된 노비만 환산하여도 780관에 해당된다. 이는 교형 기준인 80관의 10배에 이르는 것이니, 이를 용서한다면 누가 법을 따르겠는가”고 말했다. 이 밖에도 여러 신료가 극형을 주장했으나 임금은 듣지 않았다. 세종은 “조말생은 태종께서 신임했고 나도 신임했는데, 죽일 수는 없다”며 끝내 유배를 보내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해 스스로 법률을 어기는 오점을 남겼다. 성종 때는 기본법인 경국대전의 일부를 개정해 당상관 이상과 사헌부, 사간원 관리의 집에는 동성(친가)은 8촌, 타성(외가, 처가)은 6촌까지 인접한 이웃 외에는 출입할 수 없도록 했다. 이는 분경(奔競, 벼슬을 얻고자 권문세가를 찾아다니며 벌이는 청탁활동)을 근절하기 위한 것으로 친인척과 가까운 이웃 외에는 권문세가의 집을 아예 출입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이를 어기면 곤장 100대에 3000리 유배의 중형에 처했다. 그러나 이 강력한 뇌물 또는 분경금지법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신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용대상 완화를 건의했고, 그때마다 이를 수용해 적용대상이 극히 일부의 고위직으로 축소되었다. 이 때문인지 성종 재위 기간에 뇌물사건이 가장 많았다. 연평균 뇌물사건이 성종 14.7건, 중종 9.9건, 선조 7.3건으로 성종 때 부패가 가장 심했다. 부정부패 척결 노력이 결국 성공하길 기대해 본다. 최중기 명예기자(국가기록원 홍보팀장)
  • ‘역적’ 이하늬 “가장 아껴둔 패” 요염 장녹수 본격 활약

    ‘역적’ 이하늬 “가장 아껴둔 패” 요염 장녹수 본격 활약

    요염한 입꼬리에 은근한 눈빛, MBC 월화특별기획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극본 황진영, 연출 김진만 진창규, 제작 후너스엔터테인먼트)이 장녹수로 변신한 이하늬의 모습을 공개했다. 오늘(20일) 방송되는 7회에서는 조선 시대 기생 중 유일하게 후궁이 된 여인, 장녹수의 매력이 듬뿍 담긴다. 양반들의 괄시에도 기세를 꺾지 않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예인의 모습은 물론,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기구한 삶도 공개된다. ‘역적’ 속 장녹수는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열패감으로 능상(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업신여김) 척결을 잔악무도하게 휘둘렀던 연산(김지석 분)의 지배 아래서 인간으로 대우받길 갈망하는 인물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길동을 향한 연정을 억누르고 연산과 연을 맺은 장녹수를 통해 우매한 지도자의 백성은 당연한 것을 위해 스스로를 어디까지 몰아쳐야 했는지를 보여준다. 이하늬는 국악을 전공한 몇 안 되는 예인 출신 배우인 만큼 그가 그릴 녹수에 기대감이 쏠린다. 연기 생활을 하는 동안 꼭 해보고 싶은 캐릭터로 장녹수를 꼽았던 이하늬는 자신에게 쏠린 기대감을 정확히 알고,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열을 올리는 중이다. 출연을 확정 지은 후부터 창과 전통무용 수업을 다시 받았고, OST ‘길이 어데요’도 흔쾌히 가창, 한국적 느낌을 듬뿍 담아 드라마에 꼭 어울리는 음악을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앞서 제작발표회에서 “내 전공이 전공인지라 기생 역할이 종종 들어왔지만 나에게 가장 소중한 패였기에 아껴왔다. 그 패를 ‘역적’에서 쓰게 된 만큼 뭐가 달라도 다른 장녹수를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장녹수를 눈으로 보여주기에 앞서 OST로 귀를 먼저 사로잡은 행보부터 확실히 뭔가 다르다. 연출을 맡은 김진만 감독은 “장녹수 역의 이하늬는 국악을 전공한 몇 안 되는 예인 출신의 배우인데 배우 본인이 연기 생활을 하는 동안 꼭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장녹수라고 말했을 만큼 기대에 차 있다. 국악을 접목한 음악프로그램 ‘판스틸러’를 통해 보여준 매력을 유감없이 드라마에서 보여줄 것 같다. 여성 해방운동가로서의 면모를 실현하기 위해 권력자 옆에서 그 힘을 이용해 주체적 삶을 영위하려는 녹수를 그려보고자 한다”고 했다. 이하늬의 열정과 재능으로 뭔가 달라도 다르게 만들어질 장녹수는 오늘(20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역적’ 7회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사진=후너스엔터테인먼트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사회 바꿔온 헌법…어떻게 가꿔 갈까

    사회 바꿔온 헌법…어떻게 가꿔 갈까

    헌법의 상상력/심용환 지음/사계절 352쪽/1만 6000원 헌법은 살아있다/이석연 지음/와이즈베리 232쪽/1만 4000원 바이마르 헌법과 정치사상/헤르만 헬러 지음/김효전 옮김/산지니/994쪽/7만원대한민국 헌법의 ‘시즌 2’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2016년 12월 9일) 이전인 그해 11월 출간돼 서점가의 헌법 열풍을 일으킨 해설서 ‘지금 다시, 헌법’(로고폴리스)이 ‘시즌 1’이라면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인 현재 쏟아지는 헌법 교양서들은 시즌 2의 성격이 짙다.헌법을 둘러싼 담론은 다양화되고 구체화됐다. 역사인문학자 심용환이 쓴 ‘헌법의 상상력’은 헌법적 가치의 역사성을 미국, 독일, 일본, 북유럽 등 각국 헌정사와 우리 헌정사를 교직해 풀어냈다. 우리나라 제1호 헌법연구관이자 법제처장을 지낸 이석연 변호사의 ‘헌법은 살아 있다’는 향후 개헌 헌법에 담아야 할 새로운 헌법적 가치를 제시한다. 김효전 동아대 법대 명예교수가 번역하고, 부산 지역의 대표적 출판사인 산지니가 펴낸 ‘바이마르 헌법과 정치사상’은 ‘바이마르 독일’의 헌법적 고뇌와 당대 시대에서의 실패를 조명한 학술서다. 헌법은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의 원점이자 작동 원리다. ‘법 위의 법’이라는 최상위 지위를 부여한 이유다. 헌법이 바뀔 때마다 우리 현대사는 출렁였고, 이 변화를 읽는 건 정치 체제의 변화를 넘어 당대의 헌법적 가치들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인식하는 토대가 됐다. ‘헌법의 상상력’은 역사학자 시선을 통해 세계사적 헌법의 흐름을 좇는다. 미국은 1776년 7월 4일 독립 선포 후 11년 뒤 연방 국가 형태의 헌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지만 ‘수정 조항’들이 켜켜이 쌓일 때마다 민주적 정신을 상기시켰다. 일본의 헌법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실험된 1920년대의 ‘다이쇼데모크라시’가 1930년대 군부에 의해 무력화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2차대전 패전 후 전쟁과 군비의 포기를 천명한 평화헌법은 아베 신조 정권에 의해 개악 위기를 맞고 있다. 저자는 “시민혁명과 같은 강렬한 역사적 성취가 없는 근대화, 극우보수 성향의 정치문화와 패배하는 진보정치가 발전 없는 민주주의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헌법으로 상상해 보자’는 저자의 관점은 북유럽 헌정사에서 구체화된다. 1930년대 경제대공황 시기에 실업보험법과 국민보험법 등 사회복지제도의 근거를 마련한 덴마크의 ‘칸슬레르가데협약’ 등 보편적 복지국가를 역사에 등장시킨 스웨덴, 노르웨이가 헌법 조항에 부합하는 현실을 만들어 온 역사적 노력을 조명한다. 우리에게도 북유럽 못지않은 헌법적 시도가 존재했다.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제헌헌법 18조의 이익균점권이다. 노동자와 경영자의 기업 수익 공유를 천명한 이 조항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그 가치조차 훼손됐다. 보수 인사로 꼽히는 이석연 변호사의 신간은 자신의 성향과 상관없이 헌법적 가치와 양심에 충실한 책이다. 그는 촛불집회에 대해 “대통령과 그 측근 권력자들에 의해 헌법질서가 침해되는데도 헌법을 지켜야 할 권력기관 등이 방관하자 마침내 이 땅의 주인이 나섰다”고 썼다. 그리고 이를 평화적인 ‘헌법적 저항권’ 행사로 규정했다. 이 변호사는 간통죄, 제대 군인 가산점 제도, 인터넷 게시판 본인 확인 제도, 태아의 성별 고지 금지 등 한국 사회를 바꾼 주요 위헌 결정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아울러 향후 개헌안에 담아야 할 조항으로 ▲국가의 정체성 조항과 저항권 조항 신설 ▲권력 구조 또는 정부 형태 손질 등 10가지를 제시했다. 독일 정치학자 헤르만 헬러는 히틀러의 나치에 대항한 헌법적 토대를 조명하고, 가장 민주적인 헌법으로 평가받고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 바이마르의 헌법적 이상을 환기시킨다. ‘독일 제국은 공화국이다. 국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바이마르 헌법 제1조의 구절이 우리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구현된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잠룡들 이미지 경쟁, 실상은 메시지 전쟁

    잠룡들 이미지 경쟁, 실상은 메시지 전쟁

    때로는 말 한마디보다 한 컷의 사진이 정치인에 대한 강렬한 기억을 남긴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나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눠 본 한국인은 드물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백악관 청소노동자와 주먹을 맞대며 인사하는 모습이나 어린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고 엎드린 모습이 담긴 사진은 감동을 준다. 사진 속 이미지를 품고 오바마의 연설을 들으면 더욱 감화되기 쉽다.정치인의 이미지는 곧 메시지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뜻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 의미 없이 정말 목이 말라 물을 한 잔 마셔도, 옆에 앉은 동료 의원에게 “식사는 하셨냐”고 귀엣말을 해도 카메라 플래시가 연달아 터지는 것은 그것 또한 정치이기 때문이다. 여야 대선 주자들의 이미지 경쟁이 뜨겁다. 소셜미디어 라이브를 통해 주자들의 숨소리까지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는 시대다. 어떤 말을 하느냐에 앞서 누가 하는 말인지가 더 중요하다. 가뜩이나 후보도 많은데, 누가 더 대중이 원하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잘 구현해 가느냐가 승부에 영향을 미친다. 꾸미고 포장하는 것도 이제는 소통하고 공감하는 지도자의 필수 요건이 된 셈이다. ●안희정·유승민·남경필 등 예능 출연 잇따라 최근 이미지 정치를 가장 잘 활용하는 주자로 안희정 충남지사가 꼽힌다. 안 지사의 이미지 관리는 ‘엔터테이너’ 수준이다. ‘안깨비’, ‘충남 엑소’ 등 연예인 패러디도 거침없다. 안 지사가 지난달 19일 SBS 모비딕 프로그램 ‘양세형의 숏터뷰’에 출연해 개그맨을 번쩍 안아 들고 끙끙거리던 모습은 정치보다는 ‘예능’에 가까웠다. 그 다음주 방송에선 입에 한가득 상추쌈을 물고 “어버버” 하는 모습을 보이며 웃음을 줬다.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 1월 3주차 안 지사의 지지율은 4.7%에 그쳤다. 그런데 숏터뷰 1편이 방송된 뒤 1월 4주차 지지율은 6.8%, 2편이 방송된 뒤 2월 1주차 지지율은 무려 13.0%로 뛰었다. 물론 2월 첫주에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 등 다른 요인도 작용했지만, 방송 출연을 통해 인지도를 올리지 않았더라면 수혜를 누리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실제 대선 주자로서 유명해지기 전엔 안 지사의 이름만 보고 여성인 줄 알았다는 사람도 있다. 안 지사의 ‘숏터뷰 효과’는 다른 주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가 ‘숏터뷰’ 출연을 고려하고 있고 KBS 예능프로그램인 ‘해피투게더’에 대선 주자들이 함께 출연하는 일정이 조율 중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17일 “박근혜 대통령의 독선적이고 불통의 이미지에 실망했기 때문에 대선 주자들에게 소통과 친화적인 면모가 무엇보다 크게 요구된다”면서 “과거의 카리스마만 있는 권력자가 아니라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친구 같은 지도자를 원하는 만큼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소통이 효과를 얻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가장 쉬우면서 강하게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역시 패션이다. 새빨간 드레스와 호피무늬 구두를 즐겨 신는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는 중대결심을 발표할 때마다 초록색 체크무늬 정장을 입기로 유명하다. 체크무늬만을 놓고도 갖가지 해석이 나올 정도다. 남성 리더에게는 짙은 남색 정장에 하얀색 셔츠, 푸른색 계열의 넥타이가 패션의 정석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단정하면서도 전문성을 갖춘 리더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번 대선 도전자들은 이 공식에서 새로움을 더하고 있다. ●남성 리더 정석 ‘짙은 남색 정장’ 안 지사는 지난달 22일 출마 선언 때 처음으로 앞머리를 올리고 와이셔츠 대신 터틀넥 니트를 입고 ‘깜짝 변신’했다. 지지율이 선두 그룹에 오르면서 코디네이터도 따로 고용했다. 일정의 목적에 따라 이마를 드러내는 ‘깐희정’과 앞머리로 이마를 가리는 ‘덮희정’을 적절하게 활용하기도 한다. 정연아 이미지컨설턴트협회장은 “터틀넥은 부드럽고 친근한 이미지를 주는데 안 지사의 ‘대연정’ 메시지가 통합과 포용을 상징하게 되면서 패션과 메시지가 딱 들어맞아 효과가 커졌다”면서 “이 시대의 감성에 가장 잘 맞추면서 내면과 외면을 잘 표현하고 있는 베스트 주자”라고 평가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정장엔 구두’라는 틀을 깨고 2월 초부터 양복에 스니커스를 신고 다닌다. 리더가 직접 발로 뛰며 현장에서 소통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이 운동화는 이 시장의 대변인을 맡고 있는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선물했다. 제 의원은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에서 정의로운 남자 주인공이 운동화를 신고 뛰어다니는 모습이 좋아 보여 이 시장의 콘셉트도 그렇게 잡았다”고 했다. 사실 예능 출연을 통해 인기를 얻은 정치인의 원조는 2009년 6월 MBC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다. 하지만 오히려 대선 주자가 되고선 젊은 층의 마음을 제대로 얻지 못했다. 특유의 2대8 가르마와 굳은 표정에 딱딱한 말투가 정치인의 정형화된 모습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앞머리를 짧게 잘라 위로 넘기면서 이마를 드러내고 있다. 밝고 안정적인 모습과 동시에 단호한 인상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지 관리에 제일 어색해하면서도 변화에 조금씩 속도를 내는 이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다. 공식 행사에 나설 땐 제발 BB크림을 발라 달라고 참모진이 애원을 해도 어색하다며 거부했던 그들이다. 문 전 대표는 패션의 정석에 맞게 주로 감청색 양복에 넥타이 차림을 고수한다. 문 전 대표에게 양복은 곧 ‘예의’라는 게 측근의 설명이다. 지난 1일 4차 산업혁명 정책을 발표하면서 넥타이를 풀고 콤비 정장에 푸른색 셔츠 차림으로 참석해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한 것은 문 전 대표에겐 큰 변화였다. 요즘은 방송 출연 때 간혹 붉은색 스웨터 등으로 따뜻하고 편안한 이미지를 주기도 했다. 옷은 대개 부인 김정숙씨가 골라 주는 것을 입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안경’으로 더 알려진 덴마크 ‘린드버그’ 안경도 새삼 화제다. 2012년 대선에선 70만원대 고가 안경이라며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5년째 같은 걸 쓰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소박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얇은 테 안경이 부드럽고 세련된 이미지와 결연함을 동시에 풍긴다고도 평가받는다. 다만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2012년 문 전 대표는 유약해 보이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강인한 이미지가 오히려 굳어졌다”면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부드러움과 열린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문재인·유승민 측근 “BB크림 바르세요” 경제학자 이미지가 짙은 유 의원은 인위적으로 꾸미는 게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이미지 관리는 없는 걸 있어 보이게 하는 게 아닌, 있는 걸 더 잘 보이게 부각시키는 것이란다. 캠프 대변인인 민현주 전 의원은 “유능하고 역량 있는 모습을 통해 믿을 수 있는 리더의 이미지를 주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밝은 색의 넥타이를 주로 하고 자연스러움의 상징이었던 부스스한 앞머리는 최근 깔끔하게 올렸다. 측근들의 설득 끝에 최근 방송 출연이나 공식 행사 시 도움을 주는 메이크업아티스트가 동행하게 됐고 조만간 시간이 나면 미용실에 가서 가르마를 타는 머리로 바꿔 신뢰감을 부각시킬 예정이다. 김 교수는 “차기 주자에게 바라는 모습 중에는 참신하고 개혁적이면서도 유능하고 안정적인 이미지도 크다”고 했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국회의원 시절부터 ‘패셔니스타’로 유명했다. 터틀넥과 카디건은 원래 남 지사의 상징이기도 했다. 남 지사는 옷차림이나 신발, 헤어 등 대부분을 혼자 결정하고 캠프 참모진에게 의견을 묻는 정도다. 남 지사 측 관계자는 “자신이 시대를 바꾸는 젊은 리더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사설] 김정남 피살, 극에 이른 김정은 공포 정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그제 오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집권 후 김정남이 북한의 권력 세습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는 점에서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 안정을 위해 이복형을 암살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김정남이 현지에서 여성 간첩 2명의 독침으로 살해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북한 전문가들은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의 직접 지시나 승인 없이 이복형의 제거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의 소환 명령에 불응에 살해됐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해외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북한군 내 정찰총국이나 보위부가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야 하지만 김정남의 죽음은 김정은 정권의 공포정치와 숙청 통치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김정남은 처형된 장성택 등과 함께 북한의 개혁·개방을 지지했던 인물로서 김정은 체제에 비판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아 해외에서 여러 차례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김정남 제거가 중국을 향한 메시지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은 그동안 ‘백두혈통’으로 개혁·개방 정책에 우호적인 김정남을 음으로 양으로 돌보면서 북한 권력 내부의 변고에 대비해 왔다. 대표적인 친중파였던 장성택을 전격 처형할 당시에도 김정남과의 연계설이 끊이지 않았다. 김정남은 김정일과 본처 성혜림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오랫동안 권력 승계 수업을 받았던 인물이다. 1990년 조선컴퓨터센터(KCC) 설립을 주도하면서 정보기술(IT) 분야와 군사 분야의 주요 직책을 맡았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성격과 돌출 행동 때문에 김정일 눈 밖에 났고 2001년 5월 도미니카 가짜 여권을 소지한 채 일본에 입국하려다 체포·추방된 이후 권력에서 밀려났다. 김정은의 공포정치는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 자신의 3대 세습정권에 걸림돌이 되는 인물들은 가차없이 제거해 왔다. 군부 실세로 꼽히던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을 시작으로 김정일 장례식 때 영구차를 호위했던 김정각 등 ‘군부 4인방’도 숙청됐다. 권력 2인자이자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2013년 12월에 전격 처형해 국제적인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후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재판 절차도 없이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했고 김용진 내각 부총리 역시 불량한 자세로 앉았다는 이유로 처형해 공포정치를 이어 가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이 최근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 도발이나 김정남 암살처럼 앞으로도 가공할 모험주의적 도발을 집요하게 펼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당장 지난해 망명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등 고위급 탈북자들에 대한 신변보호를 강화하는 것도 급선무다. 북한의 호전적인 도발에 대해 정부 당국은 국제사회와 긴밀한 공조가 시급하다.
  • [시론] 최순실에 휘둘린 문화행정 바로잡으려면/김정수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

    [시론] 최순실에 휘둘린 문화행정 바로잡으려면/김정수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

    온 나라를 뒤흔들어 놓은 최순실 국정 농단은 여러 모로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사건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였던 최순실이 그간 저질러 온 갖가지 분탕질은 실로 봉건사회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정상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최순실과 그 주변 인사들의 전횡은 특별히 박근혜 정부의 상징이었던 문화융성 정책을 비롯해 주로 문화체육관광부 업무와 많이 연관돼 있다. 이 점에서 이번 국정 농단 사건은 문화예술계에는 엄청난 충격이 됐고 필자와 같이 문화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자괴감을 안겨 주었다. 역사적으로 박근혜 정부는 우리나라 문화행정에서 참으로 특이한 시기였다고 기록될 것 같다. 툭하면 문화융성을 부르짖고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대통령하에서 실제로는 블랙리스트와 같이 문화예술이 처참하게 농락당하는 비극이 일어났으니 이 얼마나 참담한 아이러니인가. 사실 박근혜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문화융성을 4대 국정 지표의 하나로 힘차게 내세웠던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또한 문화기본법, 지역문화진흥법, 문화다양성보호법 등과 같이 문화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법률들이 제정된 것도 문화행정의 위상을 높이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최고 권력자가 문화에 대해 그토록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문화와 예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희소식이 됐다. 문화융성을 위해 국가의 문화재정을 2%로 크게 끌어올리는 청사진을 발표했을 때에는 문화예술 현장에 실질적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컸었다. 일반 국민들이 볼 때에도 그동안 힘겹게 경제 발전과 민주 발전을 거쳤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품격을 갖춘 나라로 성숙해 갈 것 같은 기대감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비정상적인 민낯이 드러나면서 문화 발전에 대한 그러한 기대와 희망은 한순간에 산산조각 나 버렸다. 문화와 예술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문화행정은 실로 고상한 행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현 정부의 실정은 문화행정의 주무 부서인 문체부의 신뢰도를 땅바닥으로 추락시켜 버렸다. 이 때문에 차기 정부가 역점을 두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바로 문화행정을 정상화시키는 일이 돼야 한다. 문화행정의 정상화 작업은 문화행정의 특성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과 불규칙성으로 가득 찬 ‘이상한 나라’다. 그리고 문화행정 관료들의 지혜와 능력은 결코 완벽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문화행정을 담당하는 정책 결정자들은 철저한 분석과 기획을 통해 세상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기계론적 세계관은 포기해야 한다. 문화·예술의 발전을 가져다주는 마법의 공식이나 과학적 법칙 같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문화의 내재적 불확실성과 정부 능력의 한계를 고려할 때 문화행정의 본질은 일종의 ‘벤처 투자’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어떤 문화 정책이 언제 어디서 어떤 성과를 거둘 것인지 미리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씨앗을 뿌린 후에는 싹이 트기를 그저 기다리며 지켜볼 도리밖에 없다. 정부의 책임은 바로 거기까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화 발전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아무 소용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정책의 미래 성과에 대해 지나친 기대는 하지 말자는 것이다. 대부분의 벤처 투자가 그러하듯이 무수히 많은 정책 시도들이 수포로 돌아갈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렇다고 실패를 두려워해서 정책적 지원과 투자를 중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운 좋게 터진 한 번의 대박이 수많은 손실을 벌충하고도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문화행정의 세계에서는 어쩌면 정책 실패란 있을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모든 문화 정책 하나하나는 그 단기적 효과가 무엇이든 그 나름대로 다 괜찮은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실패작으로 여겨졌던 정책으로 인해 훗날 엄청난 대박이 터져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래의 불확실성, 정부 능력과 책임의 한계, 정책의 실패 가능성, 이 모든 것을 쿨하게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문화행정의 정상화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믿는다.
  • [백승종의 역사 산책] 절대로 의사 노릇 마라

    [백승종의 역사 산책] 절대로 의사 노릇 마라

    다산 정약용이 누구인가. 조선 후기 최고의 실학자다. 시대의 양심이자 진보와 개혁의 상징이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다. 그의 언행에도 시대의 조류를 거스르는 점이 있었다. 1810년 봄 정약용이 유배지 강진에서 큰아들 정학연에게 보낸 편지를 나는 떠올리고 있다. 그때 정약용의 나이 49세였다. 유배된 지 어언 10여년, 세월의 풍파 속에 그의 몸은 이미 상했다. “나는 지금 풍병으로 사지를 쓰지 못한다. 오래 살 것 같지가 않구나. 그저 단정히 앉아 섭생에 힘쓴다면, 혹시 수명을 조금 연장시킬 수 있을까.”(다산시문집 제18권) 입을 다물려 해도 절로 침이 흘러내렸고, 왼쪽 다리가 마비돼 걷기 어려웠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아버지가 아들을 심하게 질책하는 대목이 있다. “네가 갑작스레 의원(醫員) 노릇을 한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무슨 잇속이 있어 그러는 것이냐? 알량한 의술을 통해 고관들과 사귀고, 그리하여 너는 이 아비가 풀려나기를 바라기라도 한다는 말이냐? 옳지 못한 일이다.” 큰아들은 의술에 조예가 있었다. 그는 의술을 통해 권력자들에게 줄을 댈 심산이었던가 보다. 그렇게라도 해서 병든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바란 것이었다. 정약용은 아들의 효심을 알았으나 짐짓 모르는 체했다. “겉으로 덕을 베푸는 척한다는 말이 있다. 저들은 그저 입술만 움직여 너를 기쁘게 만든 것이다. 돌아서서 너를 비웃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너는 아직도 모르겠느냐? 그들의 얕은 술수에 속고 말다니, 어찌 그것이 어리석은 노릇이 아닐까?” 아버지가 보기에 상대방은 도덕성이 결여된 사람들이었다. 천하에 다시 없는 보배를 가지고 애원한다 한들 될 일이겠는가. 이처럼 되묻는 정약용의 글에는 권세가를 향한 원망이 묻어 있다. 그러나 그런 분노가 이 편지의 요체는 아니다. 정약용은 큰아들이 의원 노릇을 하는 것 자체를 못마땅해했다. 아들이 의료 행위로 돈을 버는 것이 싫었던 것인데, 에둘러 반대 의사를 표시했을 뿐이다. 아버지의 진심은 곧 드러난다. “너는 지금 소문을 내고,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그리하여 온갖 사람들이 날마다 거리를 메우며 찾아온다. 물고기 떼도 같고 짐승 떼도 같은 한량과 잡배들이건마는 너는 내력도 묻지 않는다. 그들의 근본과 행실도 모르면서 방금 만난 사람들을 마치 오랜 친구처럼 대하다니.” “도대체 이 무슨 변고인가? 내게도 들을 귀는 있느니라. 만약 그 버릇을 당장 고치지 않는다면, 너와 왕래를 끊어 버리겠다. 아마 죽어도 나는 눈을 감지 못하리라. 내 말을 절대 잊지 마라. 다시는 이런 말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구나.” 정학연은 의원의 길을 포기했다. 절규와 애원으로 가득한 아버지의 분부를 어찌 거스르겠는가. 그런데 말이다. 18세기 후반 서울에는 상당수 의원들이 개업해서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 그들 중에는 내세울 만한 전공 분야가 없는 일반의들이 대다수다. 하나 한 분야에 정통한 요즘의 전문의 같은 의원들도 제법 있었다. 또 그때는 초보적인 수준에서나마 의약 분업도 이뤄졌다. 느린 속도로나마 의약업은 전문직으로서 당당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었다. 이런 사회 변화를 정약용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의학에 소질도 있고 개업 의지도 완강했던 큰아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정약용은 아들에게 유교 경전과 역사책에 정통한 선비가 되라고 강요할 뿐이었다. 후세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화신으로 기리는 위인도 세상 물정에 깜깜한 구석이 있었다.
  • [사설] 한국 조폭 사살하겠다는 두테르테의 언어도단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최근 자국 내에서 활동하는 한국 조직폭력배들을 필리핀인 마약사범처럼 사살할 수 있다고 경고해 비난을 사고 있다. 두테르테는 지난 4일 자신의 고향인 필리핀 남부 다바오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조폭들이 세부에서 매춘, 마약, 납치에 관여하고 있다는 정보를 보고받았다”면서 “불법을 자행하는 한국인은 외국인이라고 특권을 누릴 수 없고 내국인 범죄자들과 똑같은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현지 한 언론이 보도했다. 필리핀은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살인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이다. 매년 10여명이 필리핀에서 희생된다고 한다. 이쯤 되면 필리핀의 최고 권력자로서 한국민을 향해 백배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외려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언어도단이 따로 없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 보호해야 하는 주권국가로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조직폭력배라고 해도 그들을 마음대로 죽일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오로지 법에 따라 사법 처리할 뿐이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다. 더구나 지금 인권을 중시하는 전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 사형제도를 채택한 나라도 무기징역 등으로 사형제를 대신하는 추세다. 그런데 필리핀 대통령이 남의 나라 국민을 자국민 마약범처럼 재판도 없이 ‘묻지마 현장 사살’을 한다니 제 정신인가. 사실 그는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면서 수천여명의 마약범죄자들을 죽여 필리핀 내 인권단체는 물론 국제사회로부터 비난받는 처지다. 그는 범죄자들에게 최소한의 변론권과 재판 기회조차 박탈하는 반인권적인 통치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죽이지 않고는 전쟁을 할 수 없다”며 초법적인 범죄 소탕 작전을 계속 벌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필리핀에서 지난해 10월 한인 사업가가 필리핀 경찰에 납치·살해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한인 관광객 3명은 불법 도박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경찰에 8시간 동안 구금됐다가 700만원의 몸값을 주고 풀려난 적도 있다. 한국인을 상대로 금품 갈취도 모자라 살인까지 일삼는 것이 필리핀 경찰의 민낯이다. 그러다 보니 두테르테의 한국 조폭 사살 발언도 범죄집단으로 전락한 필리핀 경찰의 한국인 살해 사건의 물타기 시도로 해석될 만하다. 외교부는 즉각 두테르테의 발언 진위를 파악해 그 발언이 사실이라면 정부 차원에서 강력 대응에 나서야 한다.
  • 상상력 무대 위로 올라온 이솝과 안티고네

    상상력 무대 위로 올라온 이솝과 안티고네

    아이아스·헤카베 등 그리스 고전 4편 연극적 요소 더해 참신하게 재해석누구나 조금씩 읽어본 적은 있지만 끝까지 제대로 읽은 적은 드물다는 그리스 고전. 아직도 주저하고 있다면 무대로 눈을 돌려보자. 원로 연출가 임영웅이 이끄는 소극장 산울림이 2013년부터 매년 초 선보이는 ‘산울림 고전극장’이 올해도 관객을 찾았다. 현재 대학로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창작단체 4곳이 ‘그리스 고전, 연극으로 읽다’라는 주제로 이솝우화부터 안티고네, 아이아스, 헤카베 등 고전 4편을 참신하게 재해석했다. ‘산울림 고전극장’의 포문을 연 공상집단뚱딴지의 ‘이솝우화’는 고대 그리스의 이야기꾼 아이소포스가 지은 단편 우화 모음집 ‘이솝우화’ 300여 작품 중 11개의 이야기를 발췌해 엮었다. 극은 여우와 새끼양을 중심으로 모기, 늑대, 개구리 등 의인화된 동물을 통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그린다. 여우가 새끼양을 찾는 여정 속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담았다. 새끼양 역을 맡은 강두현(7)군의 순수한 연기가 극의 묘미를 살린다. 지난 1일 산울림 고전극장 개막 시연회에서 만난 황이선 연출은 극 중 늑대왕이 위험에 처한 새끼 늑대를 방관하는 장면이 특정 사건을 연상케 한다는 질문에 “고전을 무대에 올릴 때는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판단은 연극을 보는 관객의 몫이지만 현재 우리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그 일을 떠올리면서 ‘아이는 어른이 구해야 한다’는 진리를 비롯해 리더의 자질 등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극단 작은신화의 작품 ‘카논-안티고네’ 역시 현재 우리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를 고대와 현대 두 세계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국가와 국민, 남자와 여자, 윗세대와 아랫세대 등 고대부터 현재까지 끊이지 않는 인간의 반복되는 갈등과 대립을 그렸다. 김정민 연출은 “그리스 사회도 현재와 다를 것 없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규율과 규칙이 사람을 옭아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올해 산울림 고전극장에 처음으로 참여한 맨씨어터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이아스를 소재로 한 ‘아이, 아이, 아이’(연출 한상웅)를 무대에 올린다. 영웅의 어리석음과 오만함, 권력을 향한 욕망으로 인해 스스로 파멸하는 모습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시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산울림 고전극장 마지막은 창작집단 LAS의 ‘헤카베’(연출 이기쁨)가 장식한다. 아들을 잃은 비극적인 어머니 헤카베가 자신의 사위이자 트라케의 왕인 폴뤼메스토르의 눈을 찌르고 그의 아들들을 살해한 사건의 재판을 담았다. 진실을 파헤쳐 가는 과정 속에서 각 개인, 권력자들의 입장을 통해 정의란 무엇인지 묻는다. 임수진 산울림 극장장은 “고전 작품이 길게는 20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것은 어느 시대에나 들어맞는 이야기이고 가장 현대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극을 현대적으로 해석했지만 고전의 감동은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3월 26일까지. 2만 5000원. (02)334-5915.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대한민국 대통령 ‘비극사’ 끝내는 방법은

    대한민국 대통령 ‘비극사’ 끝내는 방법은

    대한민국의 대통령들/강준식 지음/무선/544쪽/1만 9800원탄핵으로 앞당겨 치르게 된 20대 대선을 앞두고 올바른 정치 지도자상이 사회적인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 책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내각책임제하의 장면 총리까지 해방 후 우리가 겪은 12명의 권력자를 통해 바람직한 정치지도자의 자질을 모색한다. 미국 한인 언론에서 활동했던 저자는 권력이 탄생한 과정에서부터 정치적 상황, 일화, 업적, 평가 등을 통해 역대 대통령들의 공(功)과 과(過)를 살펴본다. 저자는 역대 권력자들에게 부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그 나름의 시대적 역할이 있었다고 말한다. 장면 내각제는 역설적으로 대통령제가 확립되는 계기를 마련했고, 노태우 대통령은 민간정부 등장에 대한 군부의 거부감을 누그러뜨리는 일종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권력자의 자녀로 자란 정치인은 선대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고치기 어렵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청와대는 늘 자신이 돌아가야 할 집이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공과 사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비선에 의지하게 됐다”면서 “당초부터 권력욕은 강했으나 그 권력욕을 성취하고 나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비전은 없었다”고 분석했다. 저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대통령직을 개인의 입신 영달이나 부귀영화를 위한 자리로 인식하는 정치인들이 많았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유권자들은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당신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듣고 나서 투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수요 에세이] 공직자 윤리 확립이 절실하다/장태평 더푸른미래재단 이사장·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수요 에세이] 공직자 윤리 확립이 절실하다/장태평 더푸른미래재단 이사장·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이 대통령 탄핵심판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국정은 더없이 어둡고 불안하다. 주말에는 국민적 분노로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두 편으로 갈라진 듯하지만, 더 깊이 보면 사분오열 수없이 갈라지고 이념화돼 화합하기 힘든 사회적 갈등으로 악화되고 있다. 정당들도 다양한 주장으로 다투고 있다. 의견을 어느 정도 집약할 사회적, 국가적 기준이 보이지 않아 두렵다. 이 사건의 근본적인 실체는 무엇인가. 대통령의 신임을 받은 민간인이 아무런 법적 권한 없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불법행위를 저지른 사건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반드시 법적 권한을 가진 사람이 동원돼야 한다. 즉, ‘법적 권한이 없는 민간인의 호가호위’와 ‘권한 있는 공직자들의 불법행위’가 결합된 사건이다. 입학을 시키기 위해서는 총장과 학장을 동원하고,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담당 교수나 심판을 움직여야 한다. 선진국 같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위세를 부려 불법을 강요할 사람도 없고, 설사 그런 요구를 하더라도 담당자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회도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어떤 학술조사에 의하면 미국 대통령이 자기 의사대로 정책 결정을 할 수 있는 범위가 7% 정도라고 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신임 대통령이 선거 과정과 취임 시에 많은 공약을 했지만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은 7% 수준이라는 얘기다. 공직자들은 법에 따라 일정한 권한을 가진다. 모든 권한에는 나름대로 재량의 범위가 있다. 권한의 범위가 커질수록 재량의 범위도 커진다. 반면에 권한의 행사는 여러 요인으로 제약된다. 우선 법률과 정책 등 원칙에 적합해야 하고, 관례와 국제관계 등에도 맞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윤리와 도덕률 등 사회규범에도 부합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권한을 가지고 있더라도 사회규범에 반하는 일은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이 사회적 통제라는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사회규범이 엄격하다. 대통령이라 해도 공익을 위한다 해도 기업에 기부금을 요구하면 안 된다. 민간기업의 경영이나 인사에 간섭하라거나 소위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라는 지시에 따라서도 안 된다.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 지탄받고 있는 관련자들에게 무조건 돌을 던질 수만은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은 대통령 주변만이 아니라 유력 정치인, 기업인, 법조인들 주변에도 수없이 많다. 주어진 권한을 수행하면서 약자에게 위세 부리고 강자에게 아부하는 사람들이 청와대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널려 있다. 이를 혼자서만 거부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래서 권력자의 친인척 비리가 끊이지 않고, 권력자의 잘못이 눈감아지고 있다. 민간기업이나 단체도 친인척의 위세, 하청기업에 대한 권한 남용, 사적 회계 처리 등이 다반사다. 우리의 사회적 규범이 취약한 탓이다. 미국의 지방경찰이 연방 법무장관을 구속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 법무장관은 수년 전 대선 과정에서 그 지방에서 선거 유세를 하다가 교통신호를 위반한 적이 있었는데, 잊어버렸다가 범칙금 연체자가 돼 있었던 것이다. 그는 범칙금을 완납하고 구제됐다. 법 집행은 공정해야 한다. 오히려 강자에게는 더 큰 사회적 책임이 따라야 한다. 대통령의 이른바 ‘대포폰’은 그래서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 이것을 중대한 사안이라고 느껴야 한다. 불의가 사회규범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안 되게 엄해야 한다. 완장을 찼다고 남용하거나 권력자 옆에 있다고 위세 부리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납돼서는 안 된다. 또한 ‘되는 것은 반드시 되고, 안 되는 것은 절대 안 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래야 권력적 농단 사태가 재발하지 않고 정치개혁, 검찰개혁, 재벌개혁 등도 이뤄질 수 있다. 최순실 사건은 어마어마한 정치행위만으로 만들어진 사건이 아니다. 공직자들의 행정행위가 구체화시켰던 사건이다. 그 과정에서 용기 있게 원칙이 지켜졌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다. 공직사회가 반성해야 하는 이유다. 더 성숙한 나라로 가기 위해 사회규범의 확립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공직자윤리가 먼저 확립돼야 한다.
  • 샤를리 에브도와 악마의 시 그리고 ‘더러운 잠’…표현의 자유를 둘러 싼 논란들

    샤를리 에브도와 악마의 시 그리고 ‘더러운 잠’…표현의 자유를 둘러 싼 논란들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 ‘더러운 잠’에 대한 논란이 정치권에서 더욱 거세지고 있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등 범여권은 해당 그림이 포함된 풍자 전시회를 주최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사퇴나 제명까지 요구하는 등 맹공을 퍼붓고 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또한 표 의원에 대해 “징계사유가 된다”며 “민주당은 신속하게 윤리심판원을 가동해 징계에 돌입하겠다”고 말했다.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로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해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과, 그런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한 예술인의 풍자가 다시 정치 다툼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또 해당 그림에 격분한 일부 보수단체 회원 20여명은 지난 24일 국회에 난입, 전시된 그림을 파손해 경찰에 연행됐다. 이번 논란에 대해 표 의원은 “책임을 져야 한다면 지겠다”면서도 해당 그림과 관련해서는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과 풍자 등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달라”고 강조했다. ● ‘더러운 잠’ 작가 “풍자의 정치적 해석이 더 문제”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른 ‘더러운 잠’은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Olypia)라는 누드화에 박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했고, 그 뒤로 국정농단으로 구속기소된 최순실(61)씨를 배치한 풍자화다. 이 그림이 국회 의원회관에 전시되면서 범여권과 보수단체 등을 중심으로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및 여성에 대한 성희롱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이에 대해 해당 그림을 그린 이구영 작가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20명의 작가들이 기획한 전시회”라면서 “표 의원이 미리 사전에 (그림을) 검수하거나 확인하는 과정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림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악의적으로 확대해석하는 것 같다”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인이라든가 공적인 역할을 하시는 분들, 특히 대통령 역할을 하시는 분들은 굉장히 많은 패러디의 대상이 되고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모두까기 만평’ 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예술인의 풍자와 언론사의 만평 등은 주로 그 대상이 권력자이거나 정치·사회·경제 문제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해석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논란의 선봉에는 단연 ‘성역 없는 풍자’를 표방하고 있는 프랑스 시사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가 있다. 지난 7일은 ‘샤를리 에브도 테러’ 2주기였다. 파리에 본사를 둔 샤를리 에브도는 2015년 1월 7일 이슬람 성전주의자(지하디스트) 사이드 쿠아시(당시 34), 셰리프 쿠아시(당시 32) 형제의 편집국 총기 난사 공격을 당했고, 이로 인해 시사만화가 4명을 포함한 직원 10명과 경찰 2명이 숨졌다. 쿠아시 형제가 샤를리 에브도를 공격한 이유는 이 언론사가 낸 만평에 있었다. 앞서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가 옷을 입지 않은 채 엎드려 있는 모습의 만평을 냈고, 범이슬람권의 공분을 샀다.샤를리 에브도는 세계적인 팝스타 마이클 잭슨부터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까지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2009년 마이클 잭슨이 사망하자 “마이클 잭슨, 마침내 하얗게 됐다”는 글과 함께 백골로 춤추는 마이클 잭슨의 모습을 만평에 실었다. 2014년 12월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암살을 소재로 한 영화 ‘인터뷰’를 제작한 소니 픽처스가 해킹 위협에 영화 개봉을 취소하자, 우스꽝스럽게 그린 김정은 그림에 ‘소니가 멍청이의 뚱뚱한 엉덩이를 핥았다’는 문구를 넣어 조롱했다.전 세계를 울린 난민 꼬마 아일란 쿠르디도 조롱의 대상이었다. 샤를리 에브도는 2015년 만평에 해변에 쓰러져있는 아이와 “거의 다 왔는데?”라는 문구가 적힌 맥도날드 광고판을 함께 그려 넣어 마치 쿠르디가 햄버거 때문에 유럽으로 오려 했다는 듯한 인상을 줘 거센 비난을 받았다.샤를리 에브도는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해 1월 독일 이주민 집단 성폭행을 주제로 한 만평에는 “꼬마 아일란이 성장하면 무엇이 됐을까? 독일에서 엉덩이를 더듬는 사람”이라는 글과 함께 도망가는 여성을 뒤쫓는 남성을 그려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영국 작가 살만 루시디, 소설 한 권에 ‘악마’로 내몰리다 표현의 자유를 논할 때 살만 루시디의 소설 ‘악마의 시’를 빼놓을 수 없다. 1988년 9월 인도 출신 영국 작가 살만 루시디의 소설 ‘악마의 시’는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풍자하고 이슬람 경전 코란을 악마의 계시로 빗댄 내용에 이슬람계는 신성모독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소설을 비치한 서점과 루시디 지지 사설을 실은 신문사에는 폭탄 테러가 가해졌고, 영국과 이슬람 국가 이란의 외교관계까지 단절됐다.항의 시위가 이어지자 책이 출간된 이듬해 2월, 당시 이란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는 루시디를 비롯해 책 출판에 관여한 모든 이들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파트와’를 발표했다. ‘악마의 시’는 금서로 지정됐고, 100만 달러의 암살 현상금이 걸린 루시디는 영국 경찰 보호 아래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악마의 시를 번역한 작가들도 이슬람계의 분노 대상이 됐다. 1991년 7월 이탈리아 번역가 에또레 카르리올로가 괴한에게 공격당했고, 일본 번역가 이가라시 히토가 대학 건물 안에서 살해당하는 등 습격 사건이 이어졌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사람은 누구나 유산을 남긴다. 특히 한국 부모들이 그러하다. 하다못해 숟가락 하나라도 전해 주고 싶어 한다. 그것이 한국 부모들의 마음이다. 이러한 한국 부모들의 유산상속 행위에 서구인들은 토큰상속(token heritage)이라는 재미있는 말을 붙인다. 재산을 흩지 않고 한쪽으로 몰아주는 서구인들이나 일본인들과 달리 한국 부모들은 예부터 장자든 차자든 자식이면 빠트리지 않고 재산을 나눠 줬다. 물론 균등하게는 아니라 해도 많이 주든 적게 주든 나눠 주는 관례 때문에 가난한 집의 여러 형제들은 겨우 토큰 하나 받는 정도의 유산이 될 수밖에 없었다.이러한 유산 중에서 최고의 유산은 무엇일까. 재산일까 권력일까. 재산은 많든 적든 유산으로 쉽게 남겨 줄 수 있는데, 권력은 어떻게 세습화될 수 있는가. 재산과 달리 현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 세습화란 상상할 수가 없다.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중동 아랍권이나 북한 그리고 현대 중국의 혁명 2세대처럼 지금도 권력이 재산처럼 세습되는 나라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권력 세습화는 전통사회에서 보는 양반 상놈 하는 신분(身分)을 통해서였다. 신분은 계급과 달리 획득하기도 어렵지만 한 번 획득하면 잃기도 어렵다. 양반은 권력은 물론 권리를 가진 양반으로서 계속 세습화되고, 상민·천민은 권력은 물론 권리가 전혀 없는, 오로지 의무만 있는 상민·천민으로 세습화됐다. 설혹 그렇다 해도 재산처럼 이 신분도 후손으로 계속 상속되고 지속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이 그것이고, 세불삼대(勢不三代)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이 또한 그것이다. 아무리 큰 부자도 손자 대까지 백 년을 넘기기 어렵고, 아무리 센 권(權)과 세(勢)도 길고 짧음에 차이만 있을 뿐 어느 날에는 끝이 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재산과 권력은 유산으로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금수저’라 해도 허무하게, 그것도 조만간 끝나게 돼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재여권불구절(財與權不久折)이라는 말을 늘 써 왔다. 재산과 권력은 오래 못 가고 끊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이 긴 오래오래 내려가는 유산은 없는가. 수수백 년을 내려가는 유산, 그 수수백 년 동안 수많은 후손들이 싸우지 않고 골고루 물려받아서 대대로 향유하고 만끽하는 유산, 그런 유산은 없는가. 그 유산이 바로 ‘위신’이다. 이 위신에는 근대 사회과학을 만든 독일의 막스 베버가 말하는 카리스마 저장량(stock of charisma)처럼 일정 ‘저장량’이 있다. 예컨대 석가, 공자, 예수는 카리스마 저장량이 많기 때문에 2천 수백 년이 지나도 그 저장량이 계속 유지돼 신도들이 줄을 잇는다. 위신도 그처럼 위신 저장량(stock of prestige)이라는 것이 있어 위 성인들만큼 오래가지는 못한다 해도 최소한 수백 년은 갈 수 있다. # 영의정 셋보다 대제학 하나가 더 큰 가문의 영광 위신이 어떻게 권력 재산과 비교되지 않게 오래 남는 유산이 될 수 있는가. 구태여 따질 것 없이 실제 경험의 세계에서 보라. 세종대왕이나 세조대왕 혹은 영·정조대왕의 후손이면 왕손으로서 능히 자랑할 만도 하다. 그런데 지금 누가 “내가 그 대왕들의 후손이오” 하고 자랑하는가. 자랑 못할 바도 아니지만 자랑한다고 누가 칭송하고 부러워할 것인가. 누가 그 가문의 영예나 권위를 높이 인정하고 널리 선양(宣揚)해 줄 것인가. 삶이 아무리 어렵고 미천한 사람이라 해도 그 대왕들의 후손을 부러워하거나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지는 않는다. 반면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퇴계(退溪) 이황(李滉),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후손이라 하면 은연중 권위를 인정하고 존경하고 부러움을 쌓는다. 어딘지 모르게 법도가 있고 예의가 바르고 신뢰가 두터운 것으로 생각한다. 그 후손들의 현재 지위가 높든 낮든, 재산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사람들은 일정 가치를 갖고 그들을 대한다. 이유는 선조들이 당대에 높이 쌓은, 많은 저장량의 위신 때문이다. 높은 학덕과 고매한 행적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과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부터 ‘이조판서 셋이 대사성 하나보다 못하다’(三吏判不如一大司成)는 말을 해 왔다. 이조판서는 6조(六曹) 중 인사를 맡은 최고의 벼슬이다. 품계도 정이품(正二品)이다. 반면 대사성은 성균관에서 유학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정삼품(正三品) 벼슬이다. 비록 성균관 으뜸의 자리라 해도 권력이라곤 하나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조판서보다 가문의 더 큰 영광이 될 수 있을까. 이뿐이 아니다. ‘영의정 셋보다 대제학 하나가 더 낫다’(三領議不如一大提學)는 말도 늘 해 왔다. 영의정은 내각을 총괄하는 정일품(正一品) 최고의 지위이고, 대제학은 경서와 문서, 문장을 관장하는 홍문관의 제일 윗자리다. 품계(정이품)나 지위, 권력이 영의정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그런데 어떻게 영의정 셋보다 대제학 하나가 가문의 더 큰 영광이 될 수 있을까. 더 기막힌 것은 ‘정승 열보다 왕비 하나가 더 낫고’(十政丞不如一王妃), ‘왕비 열보다 산림 하나가 더 낫다’(十王妃不如一山林)는 말이다. 왕비 하나가 정승 열보다 가문에 더 큰 힘이 되고 영광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산림(山林) 하나가 왕비 열보다 가문의 더 큰 영예라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도 인정하기도 어렵다. 산림은 학문이 최고 경지에 이른, 그러나 벼슬은 전혀 해 본 일이 없는, 글자 그대로 산림에 묻혀 있는 학자다. 이 학자가 어떻게 그렇게 대단하단 말인가. 문제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이고, 또 ‘왜 그렇게 받아들였을까’이다. # 벼슬 사양한 최고의 학자 ‘산림’에 높은 가치 부여 이 역시 간단하다. 권력과 재산은 무상하다. 덧없이 사라져 버린다. 거기에 세인들의 지탄이 끊임없이 따른다. 당사자인 자기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라 자손 대대로 이어 간다. 그 권력을 잡고 그 재산을 모을 때까지의 그 험난한 여정을 세인들은 잘 안다. 아무리 청렴하고 청부(淸富)했다 해도 권력 재산이 갖는 희소가치 때문에 세인들은 그들의 어두운 면만 보고, 역사는 그들의 부정한 면만 비추어 준다. 이는 오늘날의 최고 권력자나 최고 재산가 혹은 수많은 고위직자를 선조로 둔 100년 후의 자손들도 마찬가지다. 당시의 신문을 보면 ‘당신 할아버지가 이러이러한 인물이더라.’ 혹은 ‘오만과 위선에 가득찬 이러이러한 정치인이더라’라고 한다면, 설혹 대통령을 할아버지로 둔 자손일지라도 그 옛날 어느 왕의 후예들처럼 얼굴이 뜨거워지고 고개를 바로 들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존경도 없고 명예도 없다. 비록 치욕은 아니라 해도 자랑할 조상은 못 된다. 당시의 그 아들은 금수저를 물려받았다 해도 3대를 내려가지 못해 그 수저는 부끄러운 유물로 바뀐다. 그에 비하면 권력도 없고 재산도 없지만 널리널리 존경을 받고 깊이 감동을 준 인물들, 그 인물들이 쌓았다 물려준 ‘위신’이야말로 두고두고 후손들이 내세울 수 있는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산림이 그러하다. 오직 벼슬하기 위해 공부하고 벼슬만이 최고의 길로 생각하던 그 시대, 어떻게 산림에 최고의 위신, 최고의 가치를 부여했을까. 더구나 정당성과 정통성을 갖기 위해 최고의 학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에 여념이 없었던 당시 권력층의 압력과 유혹 그리고 위협을 과감히 뿌리치고 어떻게 학문에 그 산림들은 독존(獨存)할 수 있었을까. 오늘날 정치권을 쉼 없이 기웃거리는 대학의 교수들을 보면, 그런 선조에 대해 갖는 자부심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긍지를 가질 수 있다. 그런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 것만큼 또한 누구에게나 모범이 될 수 있고, 누구에게서나 존경과 찬사와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후손에게 위신보다 더 큰 유산이 있을 수 있을까. 권력과 재산처럼 남과 다투지 않아도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희소가치, 오직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만 달려 있는 최고의 유산, 그리고 이보다 더 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자손들에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연세대 명예교수
  • 표창원, ‘더러운 잠’ 논란에 “판단은 여러분의 몫” (전문)

    표창원, ‘더러운 잠’ 논란에 “판단은 여러분의 몫” (전문)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나체가 묘사된 그림 ‘더러운 잠’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표 의원은 지난 20일부터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곧, 바이전’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열고 있으며, 여기에는 대통령의 나체가 묘사된 풍자 그림 ‘더러운 잠’이 전시돼 여권의 반발을 사고 있다. 표 의원은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시국풍자 전시회 관련 사실관계 및 입장’이라는 글에서 “전 늘 말씀드렸듯 비판을 존중하고 다른 입장을 인정합니다. 다만 허위사실이나 사실왜곡에 기반한 정치공세에는 반대합니다”라고 밝혔다. 표 의원은 “탄핵 심판과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논란을 야기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일으킨 점에 대해 지적해 주시는 분들도 많다. 존중한다”면서 “책임을 져야 한다면 지겠다”고 말했다. 그는 전시회 주최 계기에 대해 “블랙리스트 사태와 국정농단에 분노한 예술가들이 국회에서 시국을 풍자하는 전시회를 열고 싶다며 장소대관을 위해 도움을 달라는 요청이 의원실로 왔다”며 “도움을 드리는 것이 맞다고 판단해서 국회 사무처에 전시공간 승인을 요청 드렸다”고 밝혔다. 이어 국회사무처가 난색을 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설득을 통해 결국 전시회가 열렸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표 의원은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라며 “‘예술의 자유’를 지키고 보장해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예술에 전문성이 없고 예술가가 아니라서 개입이나 평가를 할 자격도 없고 의도도 없습니다. 하지만, 제게 예술가들이 해 오신 요청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협조를 해 드리는 것이 제 도리라고 생각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글을 끝맺었다. [시국풍자 전시회 관련 사실관계 및 입장] 전 늘 말씀드렸듯 비판을 존중하고 다른 입장을 인정합니다. 다만, 허위사실이나 사실왜곡에 기반한 정치공세에는 반대합니다. 1. ‘표현의 자유를 지향하는 작가 모임’의 요청 블랙리스트 사태와 국정농단에 분노한 예술가들이 국회에서 시국을 풍자하는 전시회를 열고 싶다며 장소대관을 위해 도움을 달라는 요청이 의원실로 왔습니다. 저는 도움을 드리는 것이 맞다고 판단해서 국회 사무처에 전시공간 승인을 요청드렸습니다. 2. 국회사무처의 난색 표명, 협의와 설득 국회사무처에서는 ‘정쟁의 여지가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셨고, 작가회의에서는 ‘정쟁의 대상이 아닌 풍자라는 예술 장르, 국회라는 민의의 대변장에서 금지해선 안된다’는 입장이셨고 전 “전례가 없지만 시국의 특성과 헌법을 수호해야 할 국회에서 예술에 대한 사전검열이나 금지를 해서는 안되지 않느냐”고 설득해서 결국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3. 예술의 자유, 정치의 배제 이후 모든 준비와 기획과 진행, 경비 확보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 등은 ‘작가회의’에서 주관, 진행했고 저나 어떠한 정치인도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여당 및 친여당 정치인의 “표창원이 작품을 골랐다”는 주장은 명백한 허위 사실입니다. 4. ‘더러운 잠’이라는 작품 전시회가 개막하고 현장을 둘러 본 전 지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더러운 잠’이라는 작품이 있음을 알았고, 그 외에도 국회의원을 ‘머리에 똥을 이고 있는 개’로 묘사한 조각품, ‘사드’ 문제를 풍자한 만화 등 다양한 풍자 작품들 봤습니다. 특히, ‘더러운 잠’은 잘 알려진 고전 작품인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했다는 설명을 들었고, 분명히 제 취향은 아니지만 ‘예술의 자유’ 영역에 포함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 정치적 논란 지난 주 금요일(1월 20일) 오후에 전시회가 개막됐고 저녁 8시에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한 토크 콘서트도 열렸습니다. 이후 별 문제없이 전시회가 진행되던 중, 어제 (23일 월요일) 저녁에 보수 성향 인터넷 신문에서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했고, 이후 언론사들이 이를 받아서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논란이 확대되었습니다. 제 전화는 불이났고 두 명의 기자에게 간략한 사실관계 설명하는 인터뷰 외에는 어떤 연락도 받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제가 속한 정당에서 절 윤리심판원에 회부했다는 이야기도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6. 국회 사무처의 ‘더러운 잠’ 철거 요청 오늘 오전에 국회 사무처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더러운 잠’을 자진 철거해 달라는 요청을 작가께 하겠다 하시면서 제게도 양해와 협조를 요청해 오셨고, 전 국회사무처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처음부터 우려를 하고 계셨고, ‘예술의 자유’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지만, 여러 정당이 협력해야 하는 국회에서 특정 정당에 대한 비난 등 ‘정쟁’의 소지가 되는 사안은 방지해야 하는 ‘중립’의 의무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철거 여부는 제가 개입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작가의 ‘자유’ 영역이라는 점을 설명드렸습니다. 다만 작가와 주최측인 ‘작가회의’에 사무처의 입장과 우려를 충분히 설명해 드리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7.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1) 전 저를 대상으로 한 조롱과 희화화, 패러디, 풍자 예술 작품에 개입하거나 관여하거나 반대하거나 방해할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얼마든지 하십시오. 다만, ‘공인’이 아닌 제 가족, 특히 미성년자인 자녀만은 그 대상에서 제외하셔야 합니다. 그들은 ‘공인’이 아니며 보호받아야 할 약자이기 때문입니다. (2) 같은 마음으로 대통령이나 권력자, 정치인 등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과 풍자 등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 주십사 요청드리고 싶습니다. (3) 하지만, 일반 국민이나 예술인의 ‘자유’에 해당하는 표현이 아닌, 정치인 등 ‘공인’이 정치적 목적이나 이해관계 혹은 감정 때문에 모욕 혹은 명예훼손적 표현을 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제가 이번 전시회를 의도했거나 기획했거나 개입했거나 검열 등 여하한 형태로 관여했다면 당연히 비판받고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위에 설명드린 제 역할과 행위 중에 이러한 부분이 있다면 책임지고 비판도 달게 받겠습니다. (4) ‘시기’의 문제 및 ‘의도하지 않은 효과’에 대한 책임 : 지금이 탄핵 심판 및 (조기)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이며, 이러한 상황에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해서 의도하지 않았을 부작용을 일으킨 점에 대해 지적해 주시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존중합니다. 책임을 져야 한다면 지겠습니다. 어떻게 져야 할 지는 좋은 안을 주시면 신중히 검토하겟습니다. 어떤 방향의 판단이든 여러분의 판단이 옳습니다. 전 제가 하는 언행이 늘 옳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혼자만 옳다는 아집에 빠진것은 아닌 지’ 고민하고 언행을 합니다. 하지만, 저도 부족하고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옳지 않거나 적절하지 않은 언행을 할 수도 있겠죠. 늘 배우고 깨우치려 노력합니다. 다만, 논란이나 불이익 혹은 압력이 두려워 피하거나 숨지는 않겠습니다. 8. 저는 ‘예술의 자유’를 지키고 보장해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예술에 전문성이 없고 예술가가 아니라서 개입이나 평가를 할 자격도 없고 의도도 없습니다. 하지만, 제게 예술가들이 해 오신 요청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협조를 해 드리는 것이 제 도리라고 생각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한 설명이 되었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진모의 테마토크] ‘더 킹’과 ‘공조’로 읽는 정치와 권력

    [유진모의 테마토크] ‘더 킹’과 ‘공조’로 읽는 정치와 권력

    새해 초 극장가 흥행의 쌍끌이는 ‘더 킹’(한재림 감독)과 ‘공조’(김성훈 감독)다. ‘더 킹’은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를 꿈꾸는 스타 검사와 한때 그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젊은 검사가 나락으로 떨어진 뒤 대립한다는 내용이다. ‘공조’는 남측에 숨어든 북측 테러범을 잡기 위해 양측의 형사가 공조수사를 한다는 게 기둥 줄거리다. 이들의 흥행의 이면엔 ‘우리 대한민국’의 민낯 까발리기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킹’. 신입 검사 박태수(조인성)는 형편없는 건달 아버지를 뒀다는 핸디캡에 내내 몸살을 앓는다. ‘족보’ 없는 그를 스카우트한 인물은 스타 검사 한강식(정우성) 전략부장. 이들은 한 팀을 이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전략팀 자료실엔 ‘터지면 이 나라가 들썩들썩할 사건’들이 수두룩하고 강식 일당은 시류에 맞춰 적당히 하나씩 자료를 꺼내 야바위 기획수사, 표적수사 등으로 교묘하게 자신들의 이익에 맞는 정권을 돕는다. 강식의 맹목적인 출세지향 행동의 합리화의 근거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한 사람과 가족은 연금 60만원으로 한 달을 버티지만 친일파 부역자들은 장차관을 해먹었고 그 가족들은 재벌이 됐다’는 것. 그는 자신이 역사고 곧 나라라는 궤변을 펼친다. 국정교과서 파문이다. “조폭인지 경찰인지 검찰인지 구분이 안 된다”는 폭력조직 2인자 최두일(류준열)의 대사 역시 촌철살인이다. 영화는 대중이 잘 몰랐거나 의심하는 검찰 내부의 비리와 관행의 근거를 파헤치면서 결국 그게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지점에 탄착군을 형성한다. 강식의 입을 통해 ‘보복은 복잡한 정치 엔지니어링의 철칙’이라며 왜 검찰이 바로 서야 헌법정신이 곧추서고, 왜 정치가 투명해야 국가질서가 건전할 수 있는지 반어법으로 외친다. 취임 후 검찰개혁을 가장 크게 부르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해석이다. 영화는 자신을 죽이려던 강식에 맞서 진격하는 태수의 반격이 반전의 묘미를 주면서도 그 결론에 대해서는 열어놓고 있다. 투표 참여 독려의 프로파간다다. ‘공조’. 북측은 슈퍼노트(정교한 100달러 위조지폐) 동판을 만들어 세계경제 질서를 교란 중이다. 인민보안부 간부 차기성(김주혁)은 ‘조국’을 배신하고 테러조직을 결성해 동판을 탈취한 뒤 팔기 위해 서울로 숨어든다. 그의 소재를 파악한 북측은 한때 기성의 부하였던 보안부 형사 림철령(현빈)을 공식적으로 남측에 보내 공조수사를 부탁한다. 남측은 무기력한 중년의 생계형 형사 강진태(유해진)를 파트너로 붙인다. 영화는 남북의 이데올로기 대치 국면을 교묘하게 피해 가는 듯하지만 사실 이념 대결의 허상을 일깨우는 가운데 중요한 건 함께 사는 공동체 의식이라고 열변을 토한다. 두 사람은 표면적으론 공조하지만 속으론 각자 상부로부터 받은 임무수행을 위해 서로 속고 속이며 갈등한다. 진태는 매번 투덜대며 철령의 비협조를 힐난한다. 뻔뻔하게 신뢰를 강조하면서. 겉으론 웃으면서 공조를 강조하지만 정작 그들의 속내는 각자의 이해타산이다. 어디선가 많이 본 구조 아닌가? 그럼에도 결론은 ‘중요한 건 국가에 대한 충성심도, 이념의 대립도 아닌, 가족의 정과 친구의 의리, 즉 모든 사람들의 조화롭고 평화로운 공동체 삶의 영위’다. 강우석 감독은 ‘투캅스’(경찰 비리)와 ‘공공의 적’(사회 부조리)을 조합한 영화를 준비하다 캐스팅까지 해놓고 중도에 포기했다고 얼마 전 밝혔다. 그 이유는 “현실이 더 영화 같은데 누가 영화를 보러 오겠느냐”였다.
  • [열린세상] 대한민국은 ‘평가공화국’인가/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대한민국은 ‘평가공화국’인가/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매년 이맘때가 되면 공직사회는 무척 바쁘다. 지난해 업무실적에 대한 평가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국무총리실의 정부업무 평가를 비롯해 중앙부처, 지방자치단체, 시도교육청, 공공기관 평가는 물론 재정사업, 정부 3.0, 규제와 홍보 등 각 분야에 대한 평가가 줄줄이 계속된다. 그러다 보니 모든 직원들이 기관과 자신의 사활을 걸고 성과평가에 매달린다. 이것이 과연 새해를 맞이하는 공직사회의 정상적인 모습일까. 이러한 평가는 1981년 제너럴일렉트릭(GE)의 CEO 잭 웰치의 평가 방식에서 유래했다. 임직원들의 연간 업무실적을 A, B, C등급으로 평가해 상위 20%는 높은 보상을 해 주고 하위 10%는 퇴출하는 방식이다. 공공부문에서도 1992년 미국의 행정개혁론자 데이비드 오즈번과 테드 개블러가 ‘정부 재창조’를 역설하면서 성과평가가 시작됐다. 정부기관도 민간기업처럼 성과를 평가하고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수한 성과에 대해 보상하지 않는다면 결국 무능과 실패에 보상하게 된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세계적인 변화의 흐름에 맞춰 우리 정부도 1990년대 후반 성과평가제도를 전면 도입했다. 20년이 돼 가는 셈이다. 그동안 정부의 생산성과 효율성도 향상되고, 정부 투명성도 과거에 비해 높아졌다. 성과 중심의 조직문화도 어느 정도 자리잡은 듯하다. 하지만 정부의 진정한 성과란 무엇일까. 국민에게 좋은 정부, 국민이 신뢰하는 정부가 아닌가. 유감스럽게도 현재 우리는 역사상 유례없는 나쁜 정부를 목격하고 있다. 부패와 비리, 거짓과 위선이 가득 차고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는 그런 정부다. 이런 정부 모습을 보면 지금까지 성과평가의 ‘성과’가 있었는지, 어떤 ‘성과’를 평가해 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성과 없는 성과평가’의 이유는 무엇일까. 목표에 대한 도구적 평가에 치중했던 것은 아닌가. 정부의 존재 이유나 민주주의 가치에는 무관심하면서 ‘중립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했다고 자부한 것은 아닌지. 평가자와 피평가자 모두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기술적 문제로 돌리고, 최고권력자의 뜻을 무조건 옹호하지 않았는지 반성할 일이다. 핵심 가치와 철학보다는 계량적인 ‘숫자놀음’에 빠져 있지 않았는지도 자문해 보자. 성과평가는 ‘만병통치약’이 아니었다. 오히려 부작용만 많고 약효는 별로 없는 잘못된 처방약은 아니었는가. 평가를 준비하고 또 평가받느라 정작 기관의 본업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고, 성과 부풀리기 경쟁은 도를 넘었다. 알맹이 없이 그럴싸한 문서들만 생산하기도 했고, 성과에 대한 보상도 일부 연공과 정실에 따라 배분됐던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불필요한 내부 경쟁만 부추기고 대화와 소통을 방해하기도 했다. 매년 수많은 우수 성과가 발표되었음에도 나쁜 정부로 전락한 이유를 새겨보아야 한다. 최근 세계적인 기업들이 잭 웰치식 성과평가를 폐기하고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모델을 찾고 있다. 성과에 대한 기계적인 평가는 직원들의 창의성을 제약하고 상호 협력을 방해하며 물질적 보상만을 강조하는 20세기 유물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성과 향상은 물론 미래의 역량 개발도 가로막는 과거형 실적관리에서 벗어나 상시적인 대화와 토론에 기초한 ‘미래형’ 성과관리가 확산되고 있다. 성과관리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우리 정부도 새로운 길을 모색할 시점이다.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은 비만해진 성과관리를 “긍정성의 과잉에서 비롯된 폭력”이라고 규정한다. 성과관리제도의 다이어트와 함께 현재의 성과평가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경쟁보다는 협력, 순위보다는 역량, 형식보다는 내용, 그리고 통제보다는 대화 중심의 평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위장이나 포장이 필요 없는 평가, 별도의 부담을 주지 않는 평가가 돼야 한다. 성과평가가 줄세우기와 길들이기의 수단이 돼서도 안 된다. 새해 초 공직사회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도록 해야 한다. 헌법의 가치와 기관의 설립 목적에 따라 자신의 직무와 역할을 정당하게 수행할 수 있는 평가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이 신뢰하는 ‘좋은 정부’를 위한 ‘평가공화국’을 만들어 보자.
  • [In&Out] 올바르지 못한 권력자와 상관의 지시/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In&Out] 올바르지 못한 권력자와 상관의 지시/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플라톤의 ‘국가’는 여러 제목으로 번역된다. 그리스어 ‘Πολιτε?α’에 주목하는 사람은 ‘정체’(政體), 라틴어 ‘De Re Publica’에 충실한 번역가는 ‘공화국’으로 번역한다. 책의 내용에 충실하게 의역하고자 한다면 ‘정의란 무엇인가’가 제일 어울린다. 이 제목보다 책의 내용을 더 압축할 수 있는 어휘를 찾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흥미로운 건 올바른 사회로 나아가려 할 때 인간사회가 부딪쳐야 하는 상황이다. 권력자가 정의로우면 민중이 그렇지 못해도 문제되지 않는다. 권력자가 만들어 놓은 법으로 처벌받고 교정되기 때문이다. 정의롭고 지혜로운 통치자, 철인이 다스리기만 하면 이상향으로 가는 것은 쉽다. 그러나 정의롭지 못한 권력자가 올바르지 못한 명령을 남발할 때 어려워진다. 부하와 민초들은 현명하게 대처해 살아남아야 하고 사회를 발전시켜야 하는 딜레마에 마주친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신음하는 한국에도 플라톤이 했던 고민은 동일하게 나타난다. 어차피 권력자에게 정의로울 것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의롭지 못한 권력자들과 통치자들, 그리고 그들이 휘두르는 올바르지 못한 지시에 대해 부하 혹은 민초에 머물러야 하는 우리가 대처해야 하는 자세와 방법이 문제이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은 한결같이 윗선의 지시를 탓했다. 속으로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최순실과 결탁했을지 모르지만, 중요한 부분은 상관의 지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랐다는 논리다. 아무리 상관의 명령이라도 그것이 바르지 못할 때에는 명백히 본인의 책임이라는 공무원의 기본 수칙조차 이들은 망각한 듯하다. 2차 대전 때 히틀러의 명령을 따라 유대인 학살에 나섰던 수많은 공무원들이 ‘그것은 국가의 명령이자 상관의 지시였다’고 변명했으나, 예외 없이 사형을 당하거나 감옥에 갇혔다. 상관의 명령은 도덕과 법에 부합할 때만 복종의 가치가 있다. 2015년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은 권력이 줏대 없는 인간을 얼마나 한심한 꼭두각시로 만드는지 보여주었다. 대면 소통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통령은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며 뒤에 배석한 보좌진에게 물었다. 보좌진들은 일제히 아부성 웃음으로 대통령에게 맞장구를 쳤다. 한국이 민주화된 청렴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권력자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국회에 지금 국가공무원법 57조를 보완하려는 법률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공무원은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는 규정에, 상관의 명령이 위법한 경우 복종해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넣자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법체계로도 위법한 명령에 복종해서는 안 되고, 처벌을 받는 게 원칙이다. 중요한 건 위법하거나 부당한 명령들이 투명하게 드러날 구조를 강화하는 것이다. 덴마크에서는 모든 공무원이 개인의 이메일과 서신을 필요 시 제출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고위 공직자에게 사적 이메일을 쓰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정책의 투명성과 반부패를 위해서다. 우병우 사건을 보며 느꼈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공무원을 불러 공직이나 비위에 관한 걸 조사할 수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공무원에 관한 한 국회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를 불러 정책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개인적 비위를 규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있다. 5년 임기도 벅찬 대통령들에게 중임을 허락하는 개헌이 중요한 게 아니라, 투명한 질서를 세우는 게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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