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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김영민 “우리 궁·왕릉 가치, 더 널리 알리겠다”

    배우 김영민 “우리 궁·왕릉 가치, 더 널리 알리겠다”

    “우리 궁을 홍보하는 대사가 됐다니 더욱 명예롭네요. 우리 궁과 능이 겪어 온 역사와 가치, 제가 느낀 아름다움을 지키고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의 아저씨’, ‘부부의 세계’, ‘사랑의 불시착’ 등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은 김영민(53) 배우가 25일 오전 창덕궁 일일 해설자로 나섰다. 이날 문화재청이 그를 조선 궁궐과 왕릉, 종묘 등을 소개하고 알릴 궁능유적본부 홍보대사로 위촉하면서다. 평소 ‘경복궁 별빛야행’, ‘종묘대제’ 등과 같은 문화 행사를 직접 관람하며 우리 문화유산에 큰 관심과 애정을 품어 왔던 그는 두 달 전 종묘제례를 보면서 그간 제의가 있었던 홍보대사를 맡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2시간 동안 300여명의 제례 참여자들이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긴 제례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며 경건함과 형식미, 예술성을 느껴 큰 감동을 받았어요. 이처럼 유산이란 오랜 시간 이를 지켜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이고 스며드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는 지난해 12월 연이어 발생한 경복궁 담벼락 낙서 사건에 대해 “안타까운 사건에 깊고 뜨거운 감정을 갖게 됐고, 홍보대사로서의 책임감도 더 커졌다”고 했다. 이날 관람객 20여명을 부용지, 주합루 등 창덕궁 후원으로 안내하며 홍보대사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딘 그는 곧 드라마 신작으로도 대중과 만난다. 그는 “앞으로도 종묘제례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우리 문화유산을 알리는 데 미약하게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 [이창기의 예술동행] 청룡의 해! 예술이여 용솟음쳐라/서울문화재단 대표

    [이창기의 예술동행] 청룡의 해! 예술이여 용솟음쳐라/서울문화재단 대표

    2024년으로 넘어가는 새해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이내 보신각에서는 갑진년(甲辰年) 시작을 알리는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종대로 인근에서는 태양을 형상화한 거대한 구조물 ‘자정의 태양’이 불빛을 내뿜으며 떠올랐고 화려한 장관이 연출됐다. K팝 공연과 퍼레이드에 환호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희망찬 표정으로 60년 만에 오는 청룡의 해를 맞이했다. 순우리말로 ‘미르’라 불리는 용은 예부터 우리 민족에게 숭고하고 상서로운 존재였다. 논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가물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용을 그려 기우제를 올렸고, 바다를 생업 터전으로 삼았던 어부들은 용왕제를 지내며 어민들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했다. 왕을 의미하는 용은 용안(龍顔ㆍ왕의 얼굴), 용포(龍袍ㆍ왕이 입는 옷), 용루(龍淚ㆍ왕의 눈물)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힘과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지금도 근정전에 가면 ‘상월대 사신상 청룡’을 비롯해 경복궁 곳곳에서 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풍요와 권위의 표상이던 용은 당시 예술에서도 발견된다. 정월 초 궁궐이나 관청 대문에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붙였던 것으로 보이는 ‘청룡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를 통해 궁궐 소속 화가들이 용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또 무악ㆍ무가와 같은 용왕굿에 쓰이는 음악과 노래는 지역 사람들에게 신앙적 의미와 동시에 예술적 욕구를 충족시키며 지금까지 민속음악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 용은 실재하지 않지만, 삶과 가까운 곳에 있었고 희망을 담은 존재였다. 이는 ‘예술이 가진 힘’과도 닮았다. 우리에게 예술이란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삶에 풍요를 주고 때로는 위로와 희망이 돼 주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생존한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의 실화로 알려진 영화 ‘피아니스트’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예술의 힘이 느껴지는 영화로 기억에 남는다. 유대인 학살이 벌어지고 있는 전쟁 속 폐허가 된 건물에서 숨어 지내던 유대인 피아니스트가 독일 장교에게 발각돼 생의 마지막 연주가 될지 모르는 ‘쇼팽 발라드 1번’을 연주하는 숨 막히는 장면. 그 연주를 듣고 난 독일 장교는 슈필만을 살려 주고, 몰래 빵과 옷을 건네며 그를 돕는다. 전쟁도 이념도 뛰어넘는 음악, 예술의 힘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예술은 인류의 역사와 늘 함께해 왔다. 지금도 우리에게는 예술의 힘이 필요하다. 전쟁의 비극 속 새해를 맞는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은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길 간절히 바랄 것이다. 세계 정치의 난맥상 속 갈등과 고립이 심화한 이때 예술은 인간에 대한 존엄을 바탕으로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품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인류를 치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낼 것이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는 백범 김구 선생의 말처럼 여전히 문화강국이 돼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비상하는 푸른 용의 기운과 예술의 힘이 더해져 2024년 모두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받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 달빛기행, 별빛야행 이어 창경궁서도 ‘야간탐방’ 즐긴다

    달빛기행, 별빛야행 이어 창경궁서도 ‘야간탐방’ 즐긴다

    창덕궁의 ‘달빛기행’, 경복궁의 ‘별빛야행’처럼 올해부터는 창경궁에서도 ‘야간탐방’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올해 창경궁 야간탐방 프로그램인 ‘물빛연화’를 새롭게 선보인다고 15일 밝혔다. ‘물빛연화’는 올해 10주년을 맞는 국내 최대 규모의 문화유산 축제 ‘2024 궁중문화축전’ 봄 기간에 운영될 예정이다. 빛과 창경궁의 수려한 자연 경관, 첨단 영상 기술이 어우러진 미디어아트, 궐내 구간별 해설,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물빛연화’의 ‘물빛’은 물과 빛이 어우러진 창경궁 춘당지의 아름다운 전경을, ‘연화’는 봄의 경치라는 뜻으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를 뜻한다. 관람객들이 즐거운 추억을 만들기 바라는 마음을 담은 이름이라는 설명이다. 그간 창덕궁은 2009년부터 ‘달빛 기행’, 경복궁은 2016년부터 ‘별빛야행, 덕수궁은 2021년부터 ‘밤의 석조전’(2021년부터) 등의 야간탐방 프로그램으로 관람객들의 발길을 끌어 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에 창경궁까지 합류하며 4대 궁궐 야간탐방 프로그램이 완성됐다”며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궁궐 대표 활용 콘텐츠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기존 4대 궁궐에서 이뤄지며 호평을 받은 시각장애인 대상 현장 영상 해설 프로그램도 올 하반기부터는 종묘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기존 궁궐 내 운영 횟수도 늘릴 방침이다.
  • “36m 넘는 낙서, 석재 상태 달라 어려움 컸다”

    “36m 넘는 낙서, 석재 상태 달라 어려움 컸다”

    “추운 날씨 때문에 힘들었죠. 복구에 사용하는 장비나 재료가 추위에 취약하니까요.” 4일 서울 경복궁 영추문 담장 앞에서 만난 이태종 국립문화재연구원 학예연구사는 경복궁 담장 낙서 사건 후 복구 작업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 연구사는 “낙서 범위(총 36.2m)가 워낙 넓어서 많은 인력이 투입됐고 석재 상태도 제각각이라 어려움이 컸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16일 경복궁 담장에 스프레이 낙서가 생긴 후 이 연구사 등이 진행한 보존 처리 작업은 한파를 피해 총 8일간 진행됐다. 영추문 쪽은 비교적 석재 상태가 고른 편이라 ‘미세 블라스팅’ 공법만으로 정리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국립고궁박물관 쪽문이었다. 좌우 담장 상태가 달라 공법도 달리 적용해야 했다. 좌측은 석재 상태가 나빠 레이저 클리닝을 반복해야 했다. 반면 우측은 석재는 괜찮았는데 범위가 넓었다. 물리적·화학적 방법을 병행한 뒤 색 맞춤을 진행해 1단계 보존 처리를 완료했다.현재 공정률은 80%다. 추운 날씨에 더 무리하면 담장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마무리는 오는 4월 이후에 지을 예정이다. 이 연구사는 “정면에서 보이는 건 얼추 제거했지만 측면에서 보이는 오염 물질을 어떻게 깨끗하고 조화롭게 없앨 것인지가 앞으로의 과제”라며 “날이 좀 풀리고 처리하는 부분이 비를 맞고 나면 다시 손봐야 할 상황도 생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또 이날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복궁 담장 낙서 후속 조치 현황과 문화재 훼손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들어간 재료비는 총 2153만원이다. 여기에 하루 평균 29.3명의 보존 전문 인력이 투입됐다. ‘문화재 수리 표준 품셈’ 등을 고려했을 때 8일간 인건비 총액은 8000여만원으로 추산된다. 합쳐서 1억여원이 들어간 셈이다. 경복궁 측은 수사 상황을 지켜보며 담장을 훼손한 사람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방침이다. 청구비용의 정확한 규모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실제 비용 청구가 이뤄지면 문화재를 훼손한 사람에게 복구 비용을 물게 하도록 문화재보호법을 개정한 2020년 이후 첫 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비슷한 문화재 훼손 사례를 막기 위해 문화재청은 경복궁 등 4대 궁궐과 전국에 있는 국가유산에 폐쇄회로(CC)TV를 확대 설치하고 ‘문화재 훼손 신고’ 제도를 널리 알리는 한편 신고자에 대한 포상금 지급도 검토할 예정이다. 순찰·훼손 현장 대응력을 강화하기 위한 인력 증원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 “경복궁 낙서 복구, 한파·넓은 범위 이중고…날 풀리면 마무리될 듯”

    “경복궁 낙서 복구, 한파·넓은 범위 이중고…날 풀리면 마무리될 듯”

    “추운 날씨 때문에 힘들었죠. 복구에 사용하는 장비나 재료가 추위에 취약하니까요.” 4일 서울 경복궁 영추문 담장 앞에서 만난 이태종 국립문화재연구원 학예연구사는 앞선 복구 작업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이 연구사는 “낙서의 범위도 워낙 넓어서(총 36.2m) 많은 인력이 투입됐고, 석재의 상태도 제각각이라 복구에 어려움이 컸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16일 경복궁 담장에 스프레이 낙서가 생긴 직후 진행된 보존 처리 작업은 현재까지 한파로 작업을 중단한 5일을 제외하고 총 8일간 진행됐다. 영추문 쪽은 비교적 석재 상태가 고른 편이라 미세 블라스팅 방법만으로 정리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국립고궁박물관 쪽문이다. 좌우 담장의 상태가 달라 공법도 달리 적용해야 했다. 좌측은 석재의 상태가 나빠 레이저 클리닝을 반복한 뒤 모터툴로 마무리했다. 반면 우측은 석재는 괜찮았는데, 범위가 넓었다. 물리적·화학적 방법을 병행한 뒤 색 맞춤을 진행해 현재 1단계 보존 처리를 완료했다. 현재 공정률은 80%다. 추운 날씨에 더 무리하면 담장에 영향을 줄 수도 있어 마무리는 오는 4월 이후에 지을 예정이다. 이 연구사는 “정면에서 보이는 건 얼추 제거했지만, 측면에서 보이는 오염 물질을 어떻게 깨끗하고 조화롭게 없앨 것인지가 앞으로의 과제”라면서 “날이 좀 풀리고 처리하는 부분이 비를 맞고 나면 다시 손봐야 할 상황도 생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문화재청은 이날 경복궁 안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복궁 담장 낙서 이후 후속 조치 현황과 문화재 훼손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아울러 발표했다. 지금껏 들어간 재료비는 총 2153만원이다. 여기에 하루 평균 29.3명의 보존 전문 인력이 투입됐다. ‘문화재수리 표준 품셈’ 등을 고려했을 때 8일간 인건비 총액은 8000여만원으로 추산된다. 합쳐서 1억여원이 들어간 셈이다. 경복궁 측은 수사 상황을 지켜보며 훼손한 사람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방침이다. 청구 비용의 정확한 규모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실제 비용 청구가 이뤄지면 문화재를 훼손한 사람에게 관련 복구 비용을 물게 하도록 문화재보호법을 개정한(2020년) 이후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 앞으로 비슷한 문화재 훼손을 막기 위해 문화재청은 경복궁 등 4대 궁궐과 전국에 있는 국가유산에 폐쇄회로(CC)TV를 확대 설치하고 ‘문화재 훼손 신고’ 제도를 널리 알리는 한편, 신고자에 포상금 지급도 검토할 예정이다. 순찰·훼손 현장 대응력을 강화하기 위한 인력 증원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 ‘영화 꽁짜’ 썼다가 1억원 배상… 경복궁 낙서의 최후

    ‘영화 꽁짜’ 썼다가 1억원 배상… 경복궁 낙서의 최후

    범행은 잠깐이었으나 대가는 컸다. 경복궁 담벼락에 낙서한 이들에게 총 1억원이 넘는 손해배상 청구서가 날아들 전망이다. 문화재청은 스프레이 낙서로 훼손된 경복궁 담장이 복원된 모습을 4일 공개했다. 현재 전체 복구 과정의 80% 정도 마친 상태다. 동절기에 무리하게 작업할 경우 당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문화재청은 당분간 표면 상태를 살펴본 뒤 4월 이후에 보존 처리 작업을 마칠 예정이다. 지난달 두 차례 발생한 ‘낙서 테러’로 피해를 본 담장은 총 36.2m 구간에 달한다. 경복궁 서측의 영추문 좌우측에 12.1m, 국립고궁박물관 주변 쪽문 좌우측에 24.1m가 붉은색과 푸른색 스프레이로 뒤덮여 훼손됐다. 1차는 10대 남성, 2차는 20대 남성이 낙서했다.이번 복구 작업에서 스팀 세척기, 레이저 세척기 등 전문 장비를 빌리는 데 946만원이 쓰였고 작업에 필요한 방진복, 장갑, 작업화 등 용품 비용으로 약 1207만원이 든 것으로 집계됐다. 총 8일간 낙서 제거 작업에 투입된 인원과 작업 기간을 계산한 연인원은 234명으로 하루 평균 29.3명이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인력 하루 일당은 31만원이다. 문화유산 분야에서 인력이나 장비 가격을 산정할 때 참고하는 ‘문화재수리 표준 품셈’ 등을 고려하는데 보존과학 분야 인력의 하루 일당이 31만원이다. 고정주 경복궁관리소장은 “보존 처리를 담당한 전문 인력과 가림막 설치를 담당한 직영보수단의 인건비와 재료비 등을 고려하면 (전체 비용은) 1억여 원으로 추산된다”면서 “수사 상황 등을 지켜보며 (경찰에 붙잡힌) 10대 미성년자, 추가 범행을 저지른 사람, 아직 검거되지 않은 공범 등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문화재보호법이 개정된 이후 손해배상 청구는 첫 사례다. 이전에는 복구 명령을 내리거나 형사처벌이 주를 이뤘다. 2017년 9월 울산 울주군 언양읍성 성벽에 스프레이 낙서를 한 혐의로 기소된 40대에게 1심 재판부는 징역 2년을 선고한 바 있다. 당시 성벽 복원비용에 약 2700만원이 든 것으로 집계됐다.문화재청은 향후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복궁을 비롯한 4대 궁궐, 종묘, 조선왕릉 등 주요 문화유산의 안전 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의 대책도 이날 발표했다. 경복궁은 인적이 드문 야간 시간대 자율적으로 2~4회 이뤄지던 순찰을 8회로 확대하고, 외곽 담장 주변을 비추는 폐쇄회로(CC)TV는 14대에서 20대 추가한 34대로 늘릴 방침이다. 4대 궁과 종묘, 사직단의 외곽 담장에 총 110대를 추가로 설치하기로 했다. 또한 ‘문화재 훼손 신고’(☎1661-9112) 제도를 널리 알리고, 신고자에 포상금을 지급하는 포상제도 등도 검토할 계획이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작은 낙서도 문화유산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 전시장에 쏟아지는 용의 기운

    전시장에 쏟아지는 용의 기운

    용의 상징과 의미에서 피어난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전시도 열린다. ●전지전능한 존재, 민속 문화 속 용 국립민속박물관은 3월 3일까지 특별전 ‘용(龍), 날아오르다’를 연다. 우리 민속에서 용은 수신(水神)이나 우신(雨神)으로 역할한 만큼 조상들은 농사에 필요한 물을 얻기 위해 용에게 비를 내려 달라고 빌었고,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기 위해 풍어를 빌었다. 전시에 소개된 용왕과 용궁부인을 그린 무신도, 기우제 제문 등으로 과거의 풍습을 짚어 볼 수 있다.상상의 동물인 용의 모습에는 아홉 동물의 특징이 어우러진 것으로 전해진다.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와 닮은꼴이라는 것이다. 박물관 측은 ‘운룡도’(雲龍圖), ‘문자도’(文字圖), ‘대모함’(玳瑁函) 등의 그림과 공예품을 전시장에 내놓아 이런 용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게 했다.박물관은 관람객들이 더 실감 나게 ‘청룡의 해’를 즐길 수 있도록 1세대 ‘청룡 열차 체험 코너’도 꾸며 놓았다. 1973년 5월 5일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 개장과 함께 달린 청룡 열차는 우리나라 최초의 롤러코스터로 1983년까지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전시장에서는 일인칭 시점의 영상을 보며 청룡 열차를 타고 기념사진도 남길 수 있다. ‘MBC 청룡 야구공’, ‘한국 프로야구 원형 딱지’ 등도 전시돼 있어 프로야구단 ‘LG트윈스’의 전신인 ‘MBC 청룡’ 시절의 추억을 물씬 느낄 수 있다.●용 그림엔 행운 바랐던 염원 담겨 국립중앙박물관은 상설전시관 곳곳에서 관람객들이 용과 관련된 전시품을 찾아보는 ‘용을 찾아라’ 기획을 마련했다. 고구려실에서는 고구려 강서대묘의 널방 동벽에 그려진 ‘청룡도’를 감상하며 죽은 자를 지키는 사신(四神)의 오랜 전통을 확인할 수 있다. 서화실에서는 가로, 세로가 각각 2m가 넘는 대규모의 용호도를 통해 용 그림을 정월 초 궁궐이나 관청 대문에 붙여 일 년 내내 재앙을 피하고 행운을 바랐던 옛사람의 마음을 느껴 본다. 왕실 항아리인 ‘백자 청화 구름용무늬 항아리’에서는 코발트 물감으로 그려진 오조룡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고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이 기증한 ‘고사인물화보첩’에 수록된 영조 시기 화원 진재기의 작품인 ‘용을 타고 내려오는 소사’도 선보이고 있다.●곳곳에서 용 주제 다양한 전시회 한국만화박물관은 국내 대표 만화가뿐 아니라 일본, 중국, 대만 작가들이 용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 70여점을 선보이는 신년 카툰전 ‘행복하세龍’을 2월 29일까지 진행한다. 울산박물관도 용과 관련된 역사와 문화, 유물을 짚어 보는 기획전 ‘용오름’을 2월 25일까지 선보인다.
  • 청룡 기운 받고 행복하세龍[조현석기자의 투어노트]

    청룡 기운 받고 행복하세龍[조현석기자의 투어노트]

    ‘용’(龍)은 열두 띠 동물 중 유일하게 세상에 없는 상상 속 동물이다. 초자연적 힘을 가진 신령스러운 영물로 인식되면서 동양 문화권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예로부터 특별한 곳에는 용 문양을 사용했다. 임금이 입는 곤룡포(龍袍)와 임금의 앉는 용상(龍牀) 등 왕실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쓰였다. 불교계에서는 불법을 지키는 수호자로 인식되면서 사찰 건축에 사용됐다. 민간에서는 귀한 옷과 그림, 도자기, 가구 등에 용 문양을 활용했다.2024년은 청룡을 상징하는 갑진년(甲辰年)이다. 용은 입신양명, 성공, 재물, 출세 등을 상징한다. 청룡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국내 명소들을 소개한다. 살아 숨쉬는 듯한 화려한 용 문양을 볼 수 있는 곳은 궁궐이다. 용은 왕권과 권력, 수신, 풍요를 상징하는 동물로 왕실을 제외하고 일반인들이 화려한 용 문양을 함부로 사용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경복궁 용조각·근정전 칠조룡 조선 시대의 정궁(正宮)인 경복궁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동물은 용이다. 정문인 광화문 중앙에 용 조각이 새겨져 있고 근정문 앞에 있는 영제교에도 용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조각상이 서 있다. 왕이 연회를 베풀었던 경회루 연못에서는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청동으로 만든 용 2마리를 넣었다고 한다. 청동룡은 1997년 출토돼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경복궁의 중심인 근정전 천장 중앙에는 금박을 입힌 ‘칠조룡’(七爪龍) 한 쌍이 있다. 근정전은 임금이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거나 국가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곳이다. 현존하는 한국 최대의 목조 건축물로 국보 223호로 지정돼 있다. 근정전 옥좌 바로 위에 새겨진 용 조각의 발톱이 7개에 이른다. 용의 발톱 수는 대체로 용의 격을 나타내는데 통상적으로 5개의 발톱을 가진 ‘오조룡’(五爪龍)은 황제만 사용할 수 있었고 제후국의 왕은 4개의 발톱을 가진 ‘사조룡’(四爪龍) 문양을 사용했다. 근정전에 칠조룡이 있는 것은 1867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우리나라의 자주와 자존의 염원을 담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덕수궁 중화전 천장에도 쌍룡 대한제국의 황궁인 덕수궁 중화전 천장에도 쌍룡이 그려져 있다. 한 마리는 사조룡, 다른 한 마리는 오조룡으로 각각 조선과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봉황이 새겨진 다른 궁궐과 달리 왕이 다니던 중화전 계단에도 두 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다. 국내에는 용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는 사찰이 많이 있다. 불교에서 용은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고 중생을 극락의 세계로 인도하는 수호신으로 여겨졌다. 참된 지혜와 깨달음을 얻은 중생이 극락정토로 가기 위해서는 용의 형상을 한 배인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타고 건너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사찰에서는 불전의 기둥이나 외벽 등에서 용 문양을 볼 수 있고 범종의 고리 역할을 하는 종뉴(鐘紐)에 사용되고 있다.‘해돋이 맛집’ 부산 해동용궁사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로 꼽히는 부산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는 한 가지 소원을 꼭 이뤄 준다는 ‘관음성지’ 중 한 곳이다.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와 기암절벽을 마주한 해동용궁사는 이름처럼 곳곳에서 용 기운이 느껴진다. 임진왜란 당시 소실됐다가 1930년 통도사 운강 스님이 보문사라는 이름으로 중창했고 1974년 정암 스님이 관음도량으로 복원했다. 정암 스님이 백일기도를 하다 꿈에 흰옷을 입은 관세음보살이 용을 타고 승천하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해동용궁사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해동용궁사는 해돋이 명소로 아침 일찍 방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정조가 용꿈 꾼 화성 용주사 경기 화성의 용주사(龍珠寺)는 1790년 조선 정조가 비명에 숨진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사찰이다. 인근에 사도세자의 무덤인 융릉과 정조의 무덤인 건릉이 있다. 낙성식 전날에 정조가 ‘용이 입에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고 해서 용주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용주사에는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동종(銅鍾·국보 120호)이 있다. 한국 전통 양식을 충실하게 갖춘 종으로 종의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에는 여의주를 문 용이 두 발로 종 꼭대기 판을 딛고 전체를 들어 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아홉 마리 용이 살던 원주 구룡사 강원 원주 치악산 구룡사(龜龍寺)는 668년 신라 문무왕 때 의상 대사가 창건한 절로 원래 절터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국내에는 용과 관련된 지명은 물론 폭포, 바위, 섬 등이 적지 않다. 국토지리정보원 통계에 따르면 ‘십이지’(十二支) 동물과 관련된 지명 중 용 관련 지명이 1261개로 가장 많다. 서울 용산(龍山), 경기 용인(龍仁) 등 행정지명을 비롯해 용천(龍川), 용소(龍沼), 용추(龍湫), 용암(龍岩) 등 용을 닮은 지형과 전설에서 유래한 지명들도 많다.용머리 닮은 제주 용두암 제주도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용두암(龍頭岩)은 갑진년을 맞아 우정사업본부에서 최근 발행한 연하 엽서에 등장했다. 용두암을 배경으로 떠오르는 일출 그림엽서로 희망이 가득한 새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용두암은 화산폭발로 생긴 용암이 파도에 침식돼 형성된 높이 10m가량의 화산암이다. 바위의 모습이 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용두암으로 불린다. 한라산 신령의 옥구슬을 훔쳐 승천하려던 용이 한라산 신령이 쏜 화살에 맞아 떨어져서 돌로 굳어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인근에는 용이 놀던 연못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 용연(龍淵)이 있다. 용두암에서 도두항으로 바닷길을 따라 이어지는 용담~도두 해안도로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다.용이 승천했다는 고흥 용바위 전남 고흥의 용바위(龍巖)는 용이 암벽을 타고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고흥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용바위는 바다와 맞닿은 120m 높이의 바위산으로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충남 홍성의 용봉산(龍鳳山)은 ‘제2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아름다운 산세가 거침없이 나아가는 용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속초 비룡폭포·예천 회룡포 강원 속초의 비룡폭포(飛龍瀑布)는 설악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폭포로 네 발 달린 용에게 처녀를 바쳐 용을 하늘로 올려보냄으로써 심한 가뭄을 해결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경북 예천의 회룡포(回龍浦)는 용이 날아오르면서 크게 한 바퀴 돌아간 자리에 강물이 흘러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한편 서울 종로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은 용의 해를 맞아 내년 3월 3일까지 용에 얽힌 다양한 문화적 상징과 의미를 소개하는 특별전 ‘용(龍), 날아오르다’를 연다. 전시회에는 신앙, 설화, 놀이, 그림, 건축, 복식, 풍수 등 한국 민속문화 속 용의 다채로운 모습과 상징을 총망라했다.
  • 강추위로 중단한 경복궁 담장 낙서 제거 작업 재개…새해 1월 4일 공개

    강추위로 중단한 경복궁 담장 낙서 제거 작업 재개…새해 1월 4일 공개

    가림막을 치고 낙서 제거 작업이 진행 중인 경복궁 담장이 내년 1월 4일 완전히 시민들에게 공개된다. 문화재청은 지난 21일부터 강추위로 중단했던 경복궁 담장 낙서 작업을 26일 오전 재개한다고 이날 밝혔다. 문화재청은 또 문화유산의 훼손 행위에 대한 체계적 조치와 재발 방지 등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해 내년 1월 4일 발표할 계획이다. 문화재청은 29일까지 세척과 색맞춤 등 후반 작업과 전문가 자문 등을 마친 뒤 내년 1월 4일 오전 가림막을 걷고 제거 작업을 마친 담장을 공개한다. 궁능유적본부는 경복궁 담장과는 별도로 4대 궁궐과 종묘, 조선왕릉 내부의 낙서 현황을 파악한 결과 건물 기둥과 벽체 등에 연필이나 유성펜, 수정액, 뾰족한 도구 등이 사용된 낙서를 확인했다. 본부 측은 이런 낙서들을 수시로 제거하고 상시적으로 관리를 강화해나갈 방침이다. 별도의 보존 처리가 필요한 경우 전문가 검토 등을 거쳐 적절한 방법으로 조속히 제거하기로 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외곽 순찰 인력을 늘리고 외곽 경계를 모니터링하는 폐쇄회로(CC)TV 등을 설치해 더 견고한 방재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새해 발표할 문화유산 훼손 행위에 대한 종합대책과 관련, 문화재청은 국가유산에 낙서하는 행위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라는 사실을 알리는 홍보와 교육을 강화할 예정이다. 궁궐과 종묘, 조선왕릉에는 이달 29일까지 낙서행위 금지를 알리는 안내 배너를 설치하고 안내 책자에도 관련 내용을 싣는다. 관람 해설, 안내 방송 등을 통해서도 인식 개선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 “깨끗해진 모습 보고싶다”…‘낙서 테러’ 경복궁 담장, 내년 1월 4일 공개

    “깨끗해진 모습 보고싶다”…‘낙서 테러’ 경복궁 담장, 내년 1월 4일 공개

    낙서 제거 작업이 한창인 경복궁 담장이 내년 1월 4일 일반에 완전히 공개된다. 26일 문화재청은 강추위로 인해 중단했던 경복궁 담장 낙서 작업을 이날 오전 재개한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오는 29일까지 세척과 색 맞춤 등 후반 작업과 전문가 자문 등을 마친 뒤 내년 1월 4일 가림막을 걷고 제거 작업을 마친 담장을 공개할 예정이다. 또 궁능유적본부는 4대 궁궐과 종묘, 조선왕릉 내부의 낙서 현황을 파악한 결과 건물 기둥과 벽체 등에 연필이나 유성펜, 수정액, 뾰족한 도구 등이 사용된 낙서를 발견했다. 이들 낙서는 수시로 제거하고 상시 관리를 강화할 방침이다. 또 별도의 보존 처리가 필요한 경우 전문가 검토 등을 거쳐 제거하기로 했다. 문화재청은 외곽 순찰 인력을 늘리고 외곽 경계를 모니터링하는 폐쇄회로(CC)TV 등을 설치할 예정이다. 아울러 문화유산의 훼손 행위에 대한 체계적 조치와 재발 방지 등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해 내년 1월 4일 발표할 예정이다.한편 경복궁 담장에 낙서를 한 10대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이를 모방해 2차 낙서를 한 20대는 경찰에 구속됐다. 지난 22일 서울중앙지법 이민수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소년범에 대한 구속영장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발부할 수 없다”며 기각했다. 모방 범행을 감행한 20대 남성 설모씨에 대해선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임군은 지난 16일 오전 1시 52분쯤 경복궁 영추문과 국립고궁박물관 주변 쪽문, 서울경찰청 외벽에 스프레이로 ‘영화 공짜’라는 문구와 불법 영상 공유사이트 주소를 남긴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 및 공용물건손상)를 받는다. 설씨는 경복궁 담장이 첫 낙서로 훼손된 다음 날인 지난 17일 오후 10시 20분쯤 경복궁 영추문 왼쪽 담벼락에 스프레이로 특정 가수의 이름과 앨범 제목 등을 쓴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를 받는다.
  • 문화유산, ‘K국가유산’으로… 더 큰 가치로 누리게 하는 견인차 [윤석열 정부-2023 공직열전]

    문화유산, ‘K국가유산’으로… 더 큰 가치로 누리게 하는 견인차 [윤석열 정부-2023 공직열전]

    문화재청은 우리 문화유산이 국민 사이에서 두루 향유되고 세계 무대와 미래 세대 사이에서 더 큰 가치로 공유될 수 있도록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내년 5월부터는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60년간 이어져 온 문화재 명칭과 분류 체계가 ‘국가유산’이라는 새 틀로 바뀐다. 이에 최근 문화재청은 국가유산청으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K국가유산’의 확산을 통한 신한류 일으키기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심사하고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으로 선출되면서 우리의 문화·정치적 입장을 국제 사회에 적극 반영해 나갈 문화재청의 중요성도 커지게 됐다.1961년 문화재관리국으로 출범한 문화재청은 지난 60여년의 경험을 밑돌 삼아 국가유산을 향유·진흥의 대상으로, 지역 개발의 걸림돌이 아닌 핵심 자원으로 인식하도록 정책 방향을 바꿔 나가고 있다. 출범 첫해와 비교하면 인력은 4배(252명에서 1032명), 국가유산 지정·등록 건수는 41배(129건에서 5282건) 증가했다. 궁궐, 왕릉의 성공적인 활용으로 국가유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끌어내는 데도 이바지하고 있다.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 사이에서 ‘궁케팅’(궁궐+티케팅)이 유행하고 ‘궁투어’가 발매 수초 만에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끈 게 대표 사례다. 최응천 청장은 공직과 학계를 모두 경험한 국가유산 전문가다. 그가 임기를 시작한 지난해 5월은 청와대가 개방돼 전국에서 하루 수만 명이 몰려들던 때였다. 최 청장은 청와대 개방 초기 관련 업무를 꼼꼼히 챙기며 방문객들의 원활한 관람을 이끌었다. 60년간 유지해 온 문화재 명칭과 분류 체계를 전면 개편하고, 국가유산기본법 제정과 문화유산법 등 10개의 연계 법률 개정을 추진하며 내년 5월 국가유산청으로의 새로운 출발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을 지낸 경험 덕에 ‘독서당계회도’, ‘고려나전’ 등 가치 있는 해외 우리 유산을 눈 밝게 알아보고 환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문화재청의 숙원이던 경복궁 월대 복원과 광화문 현판 게시, 문화재 관람료 폐지,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개관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 청장은 발굴된 유물 공개나 문화유산 공개 행사 때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해설에 나설 만큼 전문가적 식견을 동원해 대중이나 언론과 활발히 소통하는 기관장이기도 하다. 문화재청 전신인 문화재관리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 이경훈 차장은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실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정통하다는 평을 받는다. 영국 요크대 고고학 석사 졸업, 유네스코 파견 경험, 국제협력과장 재임 등의 이력으로 문화재청 내에서 ‘국제통’으로 통한다. 빈틈없는 업무 능력에 격의 없는 소탈한 성격으로 직원들에게 신임이 두텁다. 이종희 기획조정관은 문화유산 전반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전문가다. 문화유산 정책과 업무 계획 수립, 예산, 조직, 법무 등을 총괄하고 있다. 무형문화재과장으로 근무할 당시인 2015년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무형문화재 보호 제도·정책의 틀을 새롭게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애인인 국가유산과 열애 중”이라고 늘 말한다. 국립문화재연구원에서 국가유산 조사·연구 업무로 공직에 발을 내디딘 이종훈 문화재보존국장은 국가유산 보존 정책에 대한 이해나 통찰력이 뛰어난 학자이자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용하며 국회·학계의 요구나 민원처럼 직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업무에 적극 나서는 ‘해결사’로, 따르는 직원이 많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채수희 문화재활용국장은 정책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해 막힌 곳을 풀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혜안으로 문화재청 내에서 ‘제갈량’이라 불린다. ‘한국의 탈춤’과 ‘가야고분군’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과 세계유산에 각각 등재시키는 데 이바지한 주역이기도 하다. 안형순 국립무형유산원장은 인사, 예산, 정책업무를 고루 거친 지략적 행정가로, 정확하고 예리하게 판단해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공직자다. 30여년간 쌓아 온 국가유산 보존 관리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6700여건의 문화재 특별 안전 점검과 근현대 문화유산의 보존·활용에 관한 정책 기반을 마련했다. 김연수 국립문화재연구원장은 국립고궁박물관장, 국립무형유산원장,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장, 국립문화재연구원장을 모두 거친 최초의 학예직 공무원으로 유명하다.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기관을 이끌어 2022년도 행정안전부 책임운영기관 종합평가에서 역대 가장 높은 성과(S등급·우수기관)를 거뒀다. ‘천생 공부하는 공직자’라 불리는 김성배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장은 지난해 취임 이후 35개국 250여명이 참석한 아시아태평양지역 수중고고학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 냈다. 한국 수중고고학의 기원을 연 신안선 발굴 50주년을 맞는 2026년까지 해양유산을 총괄하는 해양유산정책과를 신설해 해양 강국의 문화적 토대를 닦고 해양 기후위기에 대응해 나갈 계획이다.
  • 한파에도 전문가 수십명 뭉쳤다…“경복궁 낙서, 얼기 전에 지워야”

    한파에도 전문가 수십명 뭉쳤다…“경복궁 낙서, 얼기 전에 지워야”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서울 경복궁의 담벼락이 스프레이 낙서 범벅으로 훼손되면서 한파에도 복구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17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이날 낙서된 경복궁의 세척과 복구 작업을 위해 오전 11시부터 국립고궁박물관과 국립문화재연구원 보존 처리 전문가 등 20명을 투입했다. 이날 작업은 경복궁 서측의 영추문과 국립고궁박물관 주변에서 동시에 이뤄진다. 스프레이 자국이 굳어 석재 표면에 스며들기 전 빨리 지우는 것이 중요해서다. 현재 영추문 좌측은 길이 3.85m·높이 2m, 우측은 길이 2.4m·높이 2m에 걸쳐 훼손된 상태다. 국립고궁박물관 주변 담장은 좌측에 길이 8.1m·높이 2.4m, 우측 길이에 30m·높이 2m로 낙서가 있는 상황이다.문화재청은 화학 약품 처리, 레이저 세척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세척에 나설 계획이다. 스프레이 흔적을 지우는 데는 최소 일주일 정도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현장의 한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어제 화학약품을 사용해 스프레이가 칠해진 구간을 세척했다”면서도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데다 (스프레이가) 석재에 일부 스며들어서 작업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가능한 한 빠르게 세척 및 복구에 나서야 한다는 게 논의 결론”이라며 “시민 통행에 불편함을 주지 않도록 가림막을 설치하고 양쪽에서 동시에 작업할 것”이라고 말했다.앞서 지난 16일 종로경찰서와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1시 50분쯤 누군가가 스프레이를 이용해 경복궁 서쪽의 영추문 좌·우측, 국립고궁박물관 주변 쪽문 주변에 낙서를 했다. 붉은색과 푸른색 스프레이로 ‘영화공짜’ 문구와 함께 ‘○○○티비’, ‘△△’ 등 불법 영상 공유 사이트를 연상케 하는 문구가 반복적으로 적혔다. 문화재청은 이번 ‘스프레이 낙서’가 문화유산 보존에 심각한 영향을 준 행위로 판단하고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조선 왕조의 법궁(法宮·임금이 사는 궁궐)이었던 경복궁은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대표 명소로, 1963년 국가지정문화재(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됐다. 영추문을 비롯한 경복궁의 담장도 모두 사적 지정범위에 포함된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사적 등 지정문화유산에 글씨, 그림 등을 쓰거나 그리거나 새기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며, 이를 어길 시 원상 복구를 명하거나 관련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무허가 행위 등의 죄’를 규정한 법령에 따라 국가지정문화재의 현상을 변경하거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를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인근 폐쇄회로(CC)TV에 찍힌 영상에는 어두운 색의 옷을 입은 사람이 스프레이를 꺼내 담벼락에 낙서를 하고 휴대폰을 꺼내 인증 사진까지 찍는 모습이 담겼다. 경찰은 용의자가 2명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종로경찰서 지능팀과 형사팀은 합동으로 CCTV 화면 분석, 휴대전화 위치 측정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 다만 젊은 연령대의 용의자들이 주도면밀하게 CCTV를 피해서 도망을 쳐 추적에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CCTV에 잡힌 용의자들의 동선이 잘 연결되지 않아 계속해서 분석 중”이라며 “어느 방향으로 이동했는지에 대한 경우의 수가 많아 현재 그 범위를 좁히고 있다”고 말했다.
  • 조선 최초 왕비의 무덤을 파헤쳐라…청계천 광통교에 숨겨진 이야기 [한ZOOM]

    조선 최초 왕비의 무덤을 파헤쳐라…청계천 광통교에 숨겨진 이야기 [한ZOOM]

    호랑이를 사냥하던 무사가 목이 말라 우물을 찾았다. 우물 가에 있던 여인에게 물 한 바가지를 부탁했다. 여인은 물이 담긴 바가지에 버들잎 하나를 띄워 무사에게 건넸다.“차가운 물을 급하게 드시면 탈이 날 수 있으니, 천천히 드시라고 버들잎을 띄웠습니다” 여인의 현명함에 감탄한 무사는 여인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에 한동안 넋을 잃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무사는 태조 이성계(李成桂, 1335~1408)이고, 여인은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 1356~1396)로 전해진다. 이성계에게는 정실부인이자, 정종(定宗)과 태종(太宗)의 어머니인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 韓氏, 1337~1391)가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조선 건국 1년 전 한씨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신덕왕후 강씨가 조선 최초의 왕비가 됐다. 이 이야기는 이성계와 강씨의 첫 만남을 로맨틱하게 그리고 있지만 사실 두 사람의 만남은 정략결혼이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고려 말기로 돌아간다.  고려 영웅의 등장과 권력 투쟁 1380년 이성계는 전라북도 남원 황산(荒山)에서 1500명의 군사로 왜구 10000명을 무찌르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 황산대첩(荒山大捷)을 통해 이성계는 고려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변방의 무사였던 이성계에게 중앙정계의 벽은 높았다. 이때 개경의 권문세족 강씨의 집안이 이성계에게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의 정략결혼을 통해 강씨 집안은 군사력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성계는 중앙정계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강씨와 결혼한 이성계는 함경도에서 친어머니와 살고 있던 이방원(李芳遠, 1367~1422)을 개경으로 불렀다. 아직 어린 이방원은 강씨의 집에 머무르면서 당대 최고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강씨는 이방원을 친아들처럼 따뜻하게 보살폈다. 이방원 역시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했을 때 목숨을 걸고 강씨와 강씨가 낳은 동생들을 지켰을 만큼 강씨를 친어머니처럼 믿고 따랐다.  1392년 이성계는 조선왕조의 태조가 되었다. 그리고 강씨는 조선왕조 최초의 왕비 신덕왕후가 되었다. 이성계는 개국공신인 아들 이방과(훗날 정종)와 강씨의 큰 아들 이방번에게 태조의 친위군 절제사 벼슬을 내렸다. 하지만 조선건국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이방원에게는 아무런 벼슬도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함경도로 가서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을 맡으라고 명했다.  얼마 후 이성계는 이방원을 궁궐로 불렀다. 당시 명나라는 새로 생긴 조선을 길들이기 위해 갖가지 핑계로 시비를 걸고 있었다. 이성계는 이방원에게 명나라로 가서 조선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외교관계를 수립해 오라고 명했다. 어쩌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이방원은 외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이성계는 이방원의 공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라도로 가서 왜구를 막는 일을 하라고 명했다. 한편, 궁궐에서는 이방원이 친어머니처럼 믿고 따랐던 강씨가 정도전(鄭道傳, 1342~1398)과 손을 잡고 자신이 낳은 둘째 아들 의안대군(이방석)을 왕세자로 만들었다. 이방원은 억울하고 또 두려웠다. 만약 왕세자 의안대군이 왕이 된다면 의안대군과 강씨는 최대 정적인 자신을 살려 두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1396년 신덕왕후 강씨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398년 이방원은 난을 일으켜 왕세자 의안대군을 포함해 신덕왕후가 낳은 자식들과 정도전을 제거했다(제1차 왕자의 난). 충격을 받은 이성계는 왕위를 영안대군 이방과(정종)에게 물려준 후 궁궐을 떠났다. 1400년(정종 2년)에는 이방원의 형인 회안대군(이방간)이 세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난을 일으켰다(제2차 왕자의 난). 이방간의 난을 평정한 이방원은 왕세가가 되었고 얼마 후 조선 제3대 왕 태종(太宗)이 되었다.어머니의 무덤을 파헤치라 명한 임금 1408년 태조 이성계까지 세상을 떠나자 이방원은 신하들에게 도성 안에 있는 신덕왕후의 무덤을 도성 바깥 산기슭으로 옮기고 무덤이 있던 자리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도록 하라고 명했다. 이때 신덕왕후의 무덤이 옮겨간 곳이 지금의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정릉(貞陵)이다.  그리고 1410년 홍수로 청계천 다리가 떠내려가자 이방원은 신덕왕후 무덤에 있는 병풍석(屛風石)을 가져와서 다리를 만들라고 명했다. 백성들이 밟고 다니는 다리에 왕비의 무덤에 있는 돌을 쓰게 한 것이다. 고인(故人)의 무덤을 훼손한 것으로도 모자라 병풍석마저 백성들이 밟고 다니게 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리가 지금 청계광장을 기준으로 두 번째 다리인 청계천 광통교(廣通橋)다. 한때 친어머니처럼 따르던 여인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 때문에 효(孝)와 충(忠)을 근간으로 하는 조선의 왕이 부모에게 복수한 흔적은, 오늘도 청계천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 밑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 경기미 간판스타… 최적의 기온·토양서 생육

    경기미 간판스타… 최적의 기온·토양서 생육

    이천쌀은 예로부터 밥맛이 좋은 걸로 유명했다. 미식가인 조선시대 성종 임금 때부터 궁궐에 진상하는 쌀로 알려진 이천쌀은 국민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경기 이천시 지형은 내륙 중앙에 있는 분지형으로 계절 변화가 뚜렷하고 일교차가 우리나라 연평균 9도보다 큰 11도로 벼가 결실을 보는 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 쌀알이 옹골차게 여물어 찰기와 단맛이 일품이다. 이천지역의 토양은 점토 함량이 높고 마사토로 이뤄져 생육 후기까지 영양분 공급과 물 조절이 잘되는 천혜의 환경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이천 지역은 농민의 88%가 지하수로 농사를 지을 만큼 남한강을 중심으로 깨끗한 물이 흘러 최고의 쌀을 생산하는 데 최적의 조건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특히 ‘임금님표 이천쌀’은 안전한 쌀로 국민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매달 지역 전 농협의 도정공장에서 시료를 채취해 463가지 농약잔류검사를 하고 DNA 검사, 성분과 품위 검사 등 품질 검사에도 적극적이다. 이천시는 국내 쌀 시장 위축 등 위기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해외시장 수출을 위해서도 적극적이다. 김경희 이천시장이 취임하면서 추진해 미국, 말레이시아 등에 100t가량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지난 5월 20일에는 전국 최초로 ‘쌀밥데이’ 선포식을 열기도 했다. 식생활 변화로 쌀 소비가 줄어 쌀값 폭락으로 힘들어하는 농업인에게 희망을 주고 쌀 산업의 경쟁력을 올리기 위한 행사로 성황리에 치러졌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천시가 생산하는 임금님표 이천쌀을 먹고 뛰게 됐다. 지난 10월 이천시와 대한축구협회는 지자체 최초로 임금님표 이천쌀을 국가대표 공식 공급 쌀로 지정하는 협찬 계약을 맺었다. 이천시는 또 지난 4월 GS리테일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이천쌀전통식혜를 GS25 편의점에 출시했다. 또한 수제맥주 전문업체인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와 손잡고 임금님표 이천쌀을 원료로 한 고급 수제맥주 신상품을 세븐일레븐에 출시했다.
  • 조선시대 ‘우주덕후’가 관상감에 취직하려면…[이광식의 천문학+]

    조선시대 ‘우주덕후’가 관상감에 취직하려면…[이광식의 천문학+]

    조선 ‘우주 덕후’들의 꿈의 직장 만약 당신이 천문·우주 분야에 관심이 깊고 관련 정부기관에서 일하고 싶다면, 먼저 대학에서 천체물리학과 등에서 공부하고 한국천문연구원에 시험 봐서 취업하면 된다. 그런데 만약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관상감(觀象監)이란 기관에 취직하면 되는데, 우선 이 기관에 대해 미리 잘 공부해둬야 한다. 관상관은 한국천문연구원에다가 기상청까지 겸한 기구로, 천문학뿐 아니라, 지리학·역수(曆數 ·책력)·측후(測候)·각루(刻漏) 등의 업무를 두루 맡아보던 관청이었다. 관상감의 우두머리는 영사(領事)이며, 보통 정1품으로 영의정이 겸임하고, 제조(提調) 2인을 두었다. 관상감은 잡과에 합격한 65명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이 관장하던 업무를 크게 나누면, 측우기와 각루, 천문관측, 책력 제작 등을 맡은 천문학 파트, 풍수를 다루는 지리학 파트, 운명, 길흉, 화복 따위를 연구하는 명과학 파트가 있었으며, 각 파트는 교수 1명(종6품)과 훈도 2명(정9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말하자면 이들이 조선의 자연과학을 이끄는 전문 과학자 집단이었다. 관상감은 또한 각 분야의 인재들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도 수행했다. 이들 피교육자를 생도라 했는데, 천문학 20명, 지리학 15명, 명과학 10명의 생도를 각각 두었다. 이들은 거의 양반이 아닌 양가(良家)의 자제나 양반의 서얼들이었다. 이 과정을 수료한 생도만이 3년마다 열리는 잡과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지며, 시험은 초시와 복시를 다 통과해야 한다. 선발인원은 천문학이 초시 10명, 복시 5명, 지리학·명과학은 초시 각 4명, 복시에서 각 2명을 뽑았다. 1등 합격자는 종8품, 2등은 정9품, 3등은 종9품 품계를 주어 관상감의 권지(權知·견습)로서 분속시켰다가 자리가 나는 것을 기다려 실직(實職)을 주었다. 이 잡과 시험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인데, 우주 덕후는 그때나 지금이나 있게 마련이어서, 이들은 이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해 비로소 관상감의 관료로 조선의 하늘을 책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우주 덕후들은 우주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중국 고전 <회남자(淮南子)>에는 ‘예부터 오늘에 이르는 것을 주(宙)라 하고, 사방과 위아래를 우(宇)라 한다’는 말이 있다. 조선 우주 덕후들은 이 <회남자>의 말에 따라 우주가 시간과 공간이 얽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천문 관료들이 하는 업무는 궁궐과 도성 안의 측우기를 관리하고 강우량을 측정하며, 천문관측을 행하는 것이었다. 관측은 하루에 15차례 실시되었는데, 3인 1조로 하여 교대로 행했다. 이렇게 밤새 관측을 한 후 하늘의 특이 사항을 보고서로 작성한 아침 궁궐문이 열리면 입시해 보고했다. 특히 헤성 같은 이변이 나타나면 방중에라도 왕에게 보고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낮에 태양을 관찰하기도 했는데, 오수정을 사용하여 태양의 흑자(黑子, 흑점)를 관측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최초로 태양흑점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1610년보다 최소 수백 년은 빠른 것이었다. 일관(日官)이라고도 불린 이들은 오늘날로 치면 천문학자로서 일식과 월식을 예보하는 일도 맡았는데, 세종 때 구식례를 행할 때 이 예보가 약 15분 어긋나는 바람에 관련 일관이 곤장을 맞았다는 기록이 <실록>에 전한다. 조선 우주덕후들이 남긴 기록 유네스코로…어쨌든 이들 덕분에 조선은 세계 최고의 천체관측기록인 <성변측후단자(星變測候單子)>를 남겼다. 별의 위치나 빛에 생긴 이변을 성변(星變)이라 하며, 이러한 변화를 관측하여 기록한 것이 성변측후단자이다. 여기에는 조선시대 천문관측 체계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당시 관상감의 천문학자들은 천문현상 중 혜성, 초신성, 운석을 기록하도록 했다. 특히 이 성변측후단자에는 유일하게 맨눈으로 볼 수 있는 혜성인 ‘핼리혜성’에 대한 기록도 담겼다. 핼리혜성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한 영국의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가 세상을 떠난 뒤 처음으로 남겨진 핼리혜성 관측 기록이다. 점성학에서 의미 있는 천문현상 가운데 절대 다수는 흉조라는 것이 동아시아의 오랜 전통이다. 성변이 계속될 경우에 임금은 수시로 중신들을 모아 이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는 것이 관례였다. 성변측후단자에는 1759년 당시 관측된 핼리 혜성의 모습이 매우 상세하게 적혀 있다.'3월 11일 신묘 밤 5경 파루 이후에 혜성이 허수(虛宿) 별자리 영역에 보였다. 혜성이 이유(離瑜) 별자리 위에 있었는데, 북극에서의 각거리는 116도였다. 혜성의 형태나 색갈은 어제와 같았다. 꼬리의 길이는 1척 5촌이 넘었다' 성변측후단자에 실린 3건의 혜성 관측 사료는 국가 공공기록물로서 현장의 기록을 담고 있다.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사료는 일본과 중국은 물론 서양에서도 발견된 사례가 없는 희귀한 자료로, 한국천문학회 등 관련 기관과 학계에서는 2025년을 목표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조선 천문학자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성변측후단자에서 보듯 우주 덕후이자 기록 덕후인 선조들 덕분에 당시 조선의 천문학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으며, 결코 서양에 뒤지지 않았다. 
  • ‘창덕궁 돈화문’ 2026년까지 해체 수리한다

    현존하는 궁궐 대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알려진 창덕궁 돈화문(敦化門)이 내년부터 2026년까지 보수에 들어간다. 20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문화재수리기술위원회는 최근 열린 회의에서 보물 ‘창덕궁 돈화문’의 보존과 관람객 안전을 위해 추진 중인 보수공사 안건을 심의해 가결했다. 돈화문은 창덕궁으로 향하는 정문으로 임금이 큰 덕을 베풀어 백성들을 돈독하게 교화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1412년 5월에 처음 세워진 뒤 1609년에 중수(重修·건축물의 낡고 헌 부분을 고침)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궁궐의 문이 3칸으로 된 것과 달리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된 것이 특징이다. 돈화문은 2020~22년 최근 3년간 문화유산 모니터링 결과 가장 하위 등급인 ‘E’(수리) 등급을 받으며 보수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해 국립문화재연구원의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상층 지붕의 추녀마루에서 균열과 파손이 발견됐다. 대들보 일부는 눈에 띌 정도로 처진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원은 “내외부 손상 상태로 볼 때 구조적 손상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어 상층 지붕부 해체 수리 등 조속한 조치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 역사의 숨결 살아있는 금천구 시흥행궁길로 오세요

    역사의 숨결 살아있는 금천구 시흥행궁길로 오세요

    서울 금천구는 오는 25일과 다음 달 2일 시흥행궁길 열린문화제를 개최한다. 시흥행궁은 조선 22대 왕 정조가 1795년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 참배를 위해 묵었던 임시궁궐이다. 정조는 이곳에 백성들을 불러 모아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소통 정치를 펼쳤다. 금천구는 대표적인 역사문화자원인 시흥행궁과 은행나무 보호수의 경관을 보존하고 지역 특색을 살리기 위해 도시경관 개선사업을 진행해 지난 9월 완료했다. 또 정조대왕의 애민 정신을 기리고 시흥행궁의 역사적 의미를 알리고자 은행나무로 전 구간에 명예도로명 ‘시흥행궁길’을 부여했다. 시흥행궁길 열린문화제는 이런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보고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채보미 해설사가 그림으로 설명하는 시흥행궁 역사 강의를 맡고, 시흥행궁전시관을 관람한 후 복원된 역사문화길을 걸어보는 산책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만천명월예술인가의 청년 예술인들이 해금 연주와 뮤지컬 공연도 선보인다. 유성훈 금천구청장은 “새롭게 조성한 시흥행궁길에서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보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시흥행궁을 기념하고 역사적 상징성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문화행사와 사업을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 조선의 역사를 바꾼 종로 세검정(洗劍亭)의 유래 [한ZOOM]

    조선의 역사를 바꾼 종로 세검정(洗劍亭)의 유래 [한ZOOM]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담겨있는 소중한 역사적 기록이다. 실록은 당대 임금이 서거한 후 사관(史官)이 쓴 사초(史草)를 모아 만들었다. 조선시대는 임금의 사초와 실록 열람이 엄격히 금지되었다. 이러한 원칙을 지킨 나라는 전 세계에서 조선왕조가 유일했다.  실록이 만들어지고 나면 사초의 유출을 막고, 종이를 재활용하기 위해 사초로 썼던 종이를 물에 씻었다. 이를 ‘세초’(洗草)라고 했다. 세초 장소는 지금의 서울 종로구 세검정(洗劍亭)이 있는 곳이었다.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홍제천(弘濟川) 맑은 물에 사초를 씻고, 실록의 완성을 축하하는 잔치를 열었다.  세검정은 세초 외에도 또 다른 역사적 사실을 안고 있다. 1623년 조선 15대 임금 광해군(光海君, 1575~1641)를 몰아내기 위해 ‘인조반정’(仁祖反正)을 일으킨 서인세력이 궁궐 쳐들어 가기 전에 이 곳에 모여 ‘흐르는 물에 검(劍)을 씻었던(洗) 정자(亭)’가 있던 곳’이다. 세검정(洗劍亭)의 이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가장 존경하는 조선시대 임금, 광해군? 예전 한 언론사에서 ‘한국사검정능력시험 준비생이 가장 존경하는 왕, 광해군’이라는 기사가 올라온 적이 있었다. 검정시험 전문포털 ‘리얼히스토리’가 실시한 설문조사를 인용한 이 기사에 따르면 준비생이 가장 존경하는 조선시대 왕은 광해군(32%)이며, 세종(30%), 정조(15%), 성종(7%), 태조(5%), 영조(4%)가 뒤를 이었다고 한다. 리얼히스토리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인기와 더불어, 극심한 불황과 청년실업문제 등 사회문제들이 대두되면서 개혁정치를 펼쳤던 광해군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설문조사 대상이 한국사검정능력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이었다는 점이다. 정확한 역사를 공부하는 수험생들이 폭군(暴君)으로 평가받는 광해군을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고 그를 개혁군주로 평가했다는 사실은 정말 아이러니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중에는 의병을 지휘하며 조선을 지켰고, 전쟁이 끝나고 임금이 된 후에는 명(明)과 후금(後金)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하며 조선을 사대주의 위험에서 지킨 인물이었다. 그러나 즉위 초부터 왕권강화를 명목으로 전쟁으로 소실된 궁궐 재건공사를 벌여 경제파탄을 앞당겼으며, 친형 ‘임해군’을 유배하여 죽이고, 어린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밀실에 가두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죽였다. 그리고 영창대군의 생모 인목대비를 경운궁으로 쫓아내 비참한 생황을 하게 만들었다. 물론 적장자가 아닌 광해군의 입장에서는 목숨과 왕위를 지키기 위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광해군의 ‘폐모살제’(廢母殺弟: 어머니를 유폐시키고 동생을 죽임)와 정치적 실패는 결국 인조반정의 명분이 되었다. 인조반정의 주도자, 능양군  1623년 4월 11일 밤 반정세력들은 홍제원(洪濟院)에 모였다. 그런데 대장 김류(金瑬, 1571~1648)가 나타나지 않았다. 김류는 반정이 들통났다는 소문을 듣고 집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심기원과 원두표가 김류의 집으로 찾아가 그를 데려왔다. 홍제원에 모두 모인 반정세력들은 인근 홍제천 물에 검을 씻으며 결의를 다지고 광해군이 있는 궁궐로 향했다. 조선시대 반정은 반정세력이 반정을 마무리 한 후 새로운 임금을 추대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인조반정은 달랐다. 이 반정을 통해 훗날 인조가 되는 ‘능양군’은 자신의 군사력과 친인적을 중심으로 주도적으로 반정을 일으키고 조선 제16대 국왕 인조(仁祖, 1595~1649)가 되었다. 
  • 조선 현판에 새겨진 ‘마음’을 읽다

    조선 현판에 새겨진 ‘마음’을 읽다

    조선 시대 건물에는 왕실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공간의 이름표’인 현판을 달았다. 한자로만 쓰인 나무판이 오늘날에는 생경하게만 느껴지지만 사실 현판에는 건물과 공간의 의미, 역사가 밀도 높게 깃들어 있다. 그래서 현판은 허투루 쓰인 게 없고, 시대 문화와 장소에 가장 맞춤한 이름으로 새겨졌다. 국립대구박물관은 현판에 새겨진 다채로운 이야기를 조선의 궁중 현판과 민간 현판을 통해 펼쳐 보이는 특별전 ‘나무에 새긴 마음, 조선 현판’을 내년 2월 12일까지 진행한다. 대한제국기 경운궁 현판, 대안문 현판 등 114점의 현판을 모은 전시는 4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글쓴이, 글씨체 등으로 다양한 형태와 종류의 현판에 대한 흥미를 돋운다. 2부에서는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담은 공간 등에 내걸렸던 민간의 현판들을 통해 인연의 가치를 되새겨 본다. 3부에서는 국가의 평화와 안녕을 위한 이상을 꾀했던 조선 궁중 현판들을, 4부에서는 조화를 꿈꾸던 조선인들의 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민간과 공중의 현판을 두루 볼 수 있다. 대한제국기 덕수궁의 이름이었던 경운궁(慶運宮)의 현판은 1905년 고종이 국가의 안녕과 행복을 바라며 직접 쓴 것이다. ‘경사스러운 운수가 가득한 궁궐’이라는 뜻의 현판은 금박을 입힌 글씨로 눈길을 끈다. ‘호조에 보내는 칙유’ 현판의 글씨는 조선의 21대 왕 영조(1694~1776·재위 1724~1776)의 작품이다. ‘세금을 공평하게 해 백성을 사랑하라. 씀씀이를 절약해 국력을 비축하라’는 뜻의 ‘균공애민 절용축력’(均貢愛民 節用畜力)이란 글자에 백성을 위하는 임금의 마음이 실려 있다. ‘나의 집’이라는 뜻의 ‘오헌’(吾軒)이 적힌 현판은 경북 영주 무섬마을의 반남박씨 오헌고택에서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한 것이다. ‘오헌’이라는 큰 글씨 사이에 적힌 작은 글자들은 도연명의 시를 인용한 것으로 ‘날아다니는 새들도 각기 돌아갈 집에 즐거워하듯 나 또한 편히 쉴 수 있는 나의 집을 사랑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안락한 쉼을 주는 집에 대한 옛사람의 애정이 물씬 느껴진다.
  • 나무판에 새겨진 옛사람의 마음…조선 현판 글씨가 들려줍니다

    나무판에 새겨진 옛사람의 마음…조선 현판 글씨가 들려줍니다

    조선 시대 건물에는 왕실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공간의 이름표’인 현판을 달았다. 한자로만 쓰인 나무판이 오늘날에는 생경하게만 느껴지지만 사실 현판에는 건물과 공간의 의미, 역사가 밀도 높게 깃들어 있다. 그래서 현판은 허루투 쓰인 게 없고, 시대 문화와 장소에 가장 맞춤한 이름으로 새겨졌다. 국립대구박물관은 이처럼 현판에 새겨진 다채로운 이야기를 조선의 궁중 현판과 민간 현판을 통해 펼쳐보이는 특별전 ‘나무에 새긴 마음, 조선 현판’을 내년 2월 12일까지 진행한다. 대한제국기 덕수궁의 이름이었던 경운궁 현판, 대안문 현판 등 114점의 현판을 모은 전시는 4부로 나뉜다. 1부는 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글쓴이, 글씨체 등으로 다양한 형태와 종류의 현판에 대한 흥미를 돋운다. 2부에서는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담은 공간 등에 내걸렸던 민간의 현판들을 통해 인연의 가치를 되새겨본다. 3부에서는 국가의 평화와 안녕을 위한 이상을 꾀했던 조선 궁중 현판들을, 4부에서는 조화를 꿈꾸던 조선인들의 마음을 짐작해볼 수 있는 민간과 공중의 현판을 두루 볼 수 있다.대한제국기 덕수궁의 이름이었던 경운궁(慶運宮)의 현판은 1905년 고종이 국가의 안녕과 행복을 바라며 직접 쓴 것이다. ‘경사스러운 운수가 가득한 궁궐’이라는 뜻의 현판은 금박을 입힌 글씨로 눈길을 끈다. ‘호조에 보내는 칙유’ 현판의 글씨는 조선의 21대 왕 영조(1694~1776, 재위 1724~1776)의 작품이다. ‘세금을 공평하게 하여 백성을 사랑하라. 씀씀이를 절약하여 국력을 비축하라’란 뜻의 ‘균공애민 절용축력(均貢愛民 節用畜力’이란 글자에 백성을 위하는 임금의 마음이 실려 있다.‘나의 집’이라는 뜻의 ‘오헌’(吾軒)이 적힌 현판은 경북 영주 무섬마을의 반남박씨 오헌고택에서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한 것이다. ‘오헌’이라는 큰 글씨 사이에 적힌 작은 글자들은 도연명의 시를 인용한 것으로, ‘날아다니는 새들도 각기 돌아갈 집에 즐거워하듯, 나 또한 편히 쉴 수 있는 나의 집을 사랑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안락한 쉼을 주는 집에 대한 옛사람의 애정이 물씬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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