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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책을 말한다] 참된 ‘럭셔리’에 대한 탐구

    없어도 생활에 별 불편이 없음은 물론, 그것 하나를 소유한다고 해서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도 아님을 잘 알면서 우리는 럭셔리한 물건 혹은 경험을 갈망한다. 공장에서 마구 찍어낸 물건으로 주변을 채우기엔 내가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이고 소비를 통해 개성을 표현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럭셔리’란 말을 대하던 태도 역시 예전에 비해 훨씬 너그러워졌다. 소수의 특권층이 누리는 사치와 허영이란 인식에서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즐거움으로 럭셔리에 대한 이해가 변해갔기 때문이다. 고급 소비의 대중화, 민주화가 가능케 됐다. 그렇기 때문에 럭셔리를 무조건 폄하하거나, 수많은 명품 브랜드의 이름을 소개하고 신상품을 살펴보는 것 이상의 관심이 필요하다. 그저 유행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럭셔리인지, 왜 럭셔리인지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럭셔리 is’(시공사 펴냄)는 좋은 물건과 경험에 대한 무조건적인 질시나 막연한 동경이 아닌 현실적인 의미를 전하기 위해 쓴 책이다. ‘럭셔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보석, 핸드백, 스포츠카는 물론이고 의자, 예술품, 노트, 크림, 미식 등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진짜 럭셔리의 의미와 역사, 가치를 편안하게 살펴보고 싶었다. 그저 비싼 고가품과 구분해 ‘럭셔리’를 말할 때 공통적인 요소가 몇 가지 있다. 우선은 전통이다. 요즘처럼 디자인과 기술 수준이 평준화된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차별 요소가 아닐 수 없다. 100년 넘게 이름을 걸고 꾸준히 이어온 자부심을 짧은 시간에 베낄 수는 없기에 사람들은 전통의 힘을 인정한다. 럭셔리는 또한 안목이다. 돈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럭셔리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빼어난 것을 골라내는 안목은 오랜 시간 훈련해야 가능한 것이다. 안목이 있어야 시공을 초월해 가치를 인정받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낸다. 안목이 있어야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이를 손에 넣을 줄 안다. 마지막으로 럭셔리는 생활 속 향유다. 좋은 물건을 소유했다고 장식장에 넣어둔다면 전시품에 지나지 않는다. 은행 금고에 모셔둔 다이아몬드 반지보다 손때 묻은 최고급 가죽 다이어리가 더 럭셔리한 것은 그것이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럭셔리의 의미를 이미 오래 전에 이해했다. 삼국사기는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지은 궁궐을 ‘화이불치 검이불누(華而不侈 儉而不)’라고 설명했다. 화려하지만 사치하지 않고,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것. 와인이건, 음악이건, 구두건, 사랑하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건 누구나 어떤 한 분야에서는 호사를 누릴 자격이 있다. 이를 통해 삶이 풍요롭고 즐거워진다면 그것은 사치가 아니고, 이런 즐거움을 위해 다른 데에서는 절제하고 아낀다면 그 역시 누추함은 아니다. 그저 대충 괜찮은 인생을 최고로 멋진 인생으로 만들려는 사람일수록 적극적인 럭셔리 탐구에 나선다. 요즘 그토록 자주 등장하는 ‘명품 도시’ ‘명품 국가’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내지 않을까. 1만 3000원. 김은령 칼럼니스트
  • 출생에서부터 장례까지… 조선국왕의 삶 어땠을까

    출생에서부터 장례까지… 조선국왕의 삶 어땠을까

    천하를 호령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자. 하지만 국정 수행에 바빠 ‘소의간식(宵衣 食·새벽에 옷을 입고 일을 시작해 한밤에 밥을 먹는다.)’할 수밖에 없고, 침소조차 나이 많은 상궁에 둘러싸여 한치의 사생활도 허용되지 않는 고독한 인간. 조선 국왕의 근엄한 얼굴 이면에는 이처럼 인간적 애환들이 드리워져 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다면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였던 조선 국왕에 관한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 나왔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엮은 ‘조선 국왕의 일생’(글항아리 펴냄)이다. 출생에서부터 교육, 왕비 간택과 혼례, 국정 운영, 거주와 통치공간인 궁궐, 음식, 궐 밖 행차, 연회, 사망과 장례에 이르기까지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국왕의 삶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했다. 지난해 금요시민강좌로 진행했던 내용을 수정·보완한 것으로, 이종묵 서울대 교수 등 한국학 전문가 12명이 집필했다. 왕자의 잉태는 국가적 대사여서 국왕과 왕비의 합궁 날짜를 정하는 것부터 매우 까다로웠다. 초하루, 그믐, 보름날은 피했고, 비와 천둥이 치거나 바람이 세게 부는 날도 꺼렸다. 때문에 국왕과 왕비가 만날 수 있는 길일은 한 달에 하루나 이틀 정도에 불과했다. 출산 1~3개월 전에 궁중에 산실청이 설치돼 출산 때까지 전국에서 형벌의 집행이 중지되고, 왕자가 태어나면 전국의 죄수들을 석방했다. 왕은 하늘이 내리지만 성군은 사람이 길러낸다. 문치를 지향한 조선 왕실에서 세자는 덕성과 인성, 예학을 습득하기 위한 철저한 교육을 받았다. ‘왕은 어떻게 교육받았을까’를 쓴 김문식 교수에 따르면 왕세자는 날마다 전날 배운 것을 확인하는 쪽지시험을 봤다. 매월 두 차례 중간고사에는 왕세자를 가르치는 20명의 스승이 모두 참석하고, 국왕도 참관하는 경우가 있었다. 조선 사회에서 국왕은 신성의 세계와 세속의 세계를 아우르는 절대 권력자였다. 국왕은 수시로 사직과 산천 등에 제사를 올리고, 중요한 국사를 신하들과 의논해 결정하며, 이웃 국가와 외교 문제를 처리하는 등 행정과 사법, 외교 가릴 것 없이 업무 범위가 매우 방대했다. 조선 후기, 특히 영·정조대에는 민심을 보살피기 위해 수시로 궐 밖 행차를 하는 일까지 더해졌다. 공식 일과가 끝나도 밤새워 책을 읽고, 국정에 대한 구상에 매진한 탓에 역대 성군들은 장수하지 못했다. 정호훈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는 ‘왕은 평소 어떻게 일했는가’에서 “역대 국왕 가운데 누구보다 바쁘게 국정을 챙기며 업무를 진행한 인물은 정조”라고 꼽았다. 승정원일기의 정조 6년(1782) 2월20일자 일기를 보면 정조의 일과는 아침 여덟시에 공식적으로 시작돼 밤 9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제사를 지내는 날은 하루종일 머물며 의식을 주재했다. 정조 4년(1780)1월1일에 있었던 사직단 제사의 일정표에 따르면 정조는 오전 10시 사직단으로 거둥해 다음날 새벽 3시 제사를 마친 것으로 돼있다. 궁궐의 주인은 왕이지만 궁궐 안에 왕의 사적인 장소는 없었다. 국왕의 일거수일투족은 기록의 대상이었고, 모두에게 공개된 존재였다. 때문에 이름 없는 궁녀의 처소에 군주가 갑자기 방문해 로맨스가 싹트는 일은 실제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강녕전이나 대조전 같은 침실에도 주변 방에 나이 많은 상궁이 대기하고 있었고, 심지어 임금의 똥도 버려지지 않고 의원들이 직접 맛을 볼 정도였다. 정병설 서울대 교수는 “아무리 호화롭다 해도 감옥이나 다를 바 없는 고립된 공간인 궁궐에서 태어나 살다 죽었던 것”이라며 ”감옥 같은 궁궐에 갇혀 왕은 늘 정변이 나지 않을까 걱정했고, 왕자들은 자신이 과연 왕이 될 수 있을까, 왕이 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늘 불안해했다.”고 말했다. 왕은 죽음까지도 대단히 정치적이다. ‘너무나 정치적인 사건, 왕의 죽음’에서 김기덕 건국대 교수는 “죽은 자의 무덤 하나가 생사람까지도 잡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정치적 이슈가 바로 왕릉의 입지였고, 그래서 양반들은 풍수 공부를 목숨 걸고 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책은 시민강좌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 전문서라기보다 요약본에 가깝다. 쉽게 읽히지만 다소 아쉬운 측면도 있다. 각 주제별로 보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려면 책 말미에 소개된 참고 문헌과 관련 저서들을 찾아보면 좋을 듯싶다. 1만 98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14일 TV 하이라이트]

    ●TV는 사랑을 싣고(KBS1 오후 7시30분)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명사 특집’ 첫번째 주인공은 한국인 최초 예일대 교수로 미국 텍사스 에벌린시에 ‘함신익의 날’이 정해질 정도로 큰 사랑을 받는 지휘자 함신익과 함께한다. 그의 음악적 감성은 첫사랑 그녀로 인해 깊어졌다는데…. 함신익이 평생 잊지 못할 그의 뮤즈, 김영순을 찾는다. ●스펀지 2.0(KBS2 오후 9시) 매서운 눈초리와 날카로운 이빨, 온몸을 뒤덮은 호피무늬로 바다의 호랑이라 불리는 다금바리. 육식성의 사나운 성격을 드러내듯 작은 톱니처럼 생긴 비늘에는 날카로운 가시까지 있는데, 이 다금바리의 비늘로 묵을 만들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 시원하고 부드러운 맛의 신 메뉴 다금바리 묵을 소개한다. ●희망특강 파랑새(MBC 오후 6시50분) 중졸 학력으로 당대 최고 도편수 자리에 오른 대목장 신응수. 경복궁, 창경궁, 불국사, 수원 장안문, 경주 안압지 등 궁궐과 성곽 중건은 물론 사찰과 한옥에 이르기까지 그는 전통 건축 문화를 후대에 계승한다는 자긍심으로 50년 목수 인생을 살아왔다. 그의 장인정신에서 발견한 희망 메시지를 들어본다. ●두 아내(SBS 오후 7시15분) 영민은 누워있는 지숙을 바라보는데, 지숙이 갑자기 떨리는 목소리로 가지 말라고 하자 그녀를 가만히 안아준다. 하지만 지숙의 입에서 철수라는 이름이 나오자 영민은 놀라다가 마음이 아파온다. 잠시 후 혜란에게 전화를 건 영민은 자신은 준비가 다 끝났다며 지호의 마음을 돌려놓길 빈다고 말한다. ●명의(EBS 오후 9시50분) 만약 온몸에 흐르는 혈관 중, 단 한 곳이라도 막히게 된다면? 혈관이 좁아지거나 부풀어 발생하는 혈관질환은 뇌졸중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서서히 몸속 혈관이 막히고 있다면, 그것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과 같다. 혈관외과 권태원 교수에게 혈관질환의 증상과 치료법을 알아본다. ●YTN초대석(YTN 낮 12시35분) 귀화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한국관광정책의 수장에 오른 이참. 최근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취임한 이참씨를 초대해 조직의 효율성과 관광에 대한 소명의식, 이른바 기강에 관한 첫인상과 관광공사 CEO로서 본인의 강점 그리고 올해 관광정책 목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본다.
  • [씨줄날줄] 무관 노상추/함혜리 논설위원

    경자년(정조 4년·1780년) 4월1일 맑음. “아침 일찍 악공을 불러 가묘에서 제사를 지냈다.허서방네 논을 빌려 연회석을 마련했다. 아침밥이 끝나기도 전에 누가 정자나무 아래 와 앉으며 호신(呼新·막 급제한 사람을 부르는 예)하니 정좌랑이었다.…밤늦게 연회가 끝나고 선산부사는 돌아갔지만 다른 손님들은 모두 머물렀다. 내외 손님들로 온 방이 가득차 나는 잘 곳이 없었다. 오늘 다녀간 사람이 오,륙천에 이르는 듯하다.” 안강노씨 경암공파 12대 손인 조선 후기의 무관 노상추(尙樞·1746∼1829년)가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노상추의 집안은 월파공 노이익이 영남 유학파를 대표해서 서인들의 횡포를 비난하는 상소문을 올렸다가 노론 영수였던 우암 송시열의 노여움을 사 옥사한 이후 문과 응시가 봉쇄된 상황이었다. 증조부인 노계정이 병조판서까지 지냈지만 이후 급제한 후손이 없던 차에 그가 무과시험에 합격했으니 가문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그것도 10년 도전 끝이었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노상추는 무과 급제 후 변방의 진장(鎭將)을 거쳐 국왕 경호대인 금군, 궁궐 수비 책임자인 오위장 등 오랜 무관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삭주부사 등 지방관을 거쳐 66세이던 1811년 가덕첨사까지 역임했다. 노상추는 긴 일기를 남겼다. 장남이 일찍 세상을 떠난 데 충격을 받은 아버지가 차남 노상추에게 집안의 일기를 작성하도록 한 것은 1762년이다. 그의 나이 18세였다. 이후 82세까지 쓴 일기에는 자신과 가족의 하루 일과부터 30년 넘게 봉직한 군생활의 나날들이 꼼꼼하게 적혀 있다. 조상 제사를 잘 모시지 않는 종손 종옥에 대한 섭섭함, 첫 부임지인 갑산에서 알게 된 관기 석벽(惜壁)에 대한 애틋한 심정도 담았다. 2005년 영인본 출간으로 관심을 모았던 그의 일기를 소재로 ‘68년의 나날들, 조선의 일상사’(문숙자 저·너머북스 펴냄)가 출간됐다. 노상추는 남인 계열로 서인들의 극심한 견제를 받아 큰 벼슬에 오르지 못했고 역사에 남을만한 공을 세우지도 못했다. 하지만 18세기 후반 조선 무반가의 일상을 현미경 들여다보듯이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남긴 일기 덕분이다. 어찌보면 그게 더 큰 업적일지 모른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나눔 바이러스 2009]8년새 44차례 희망 집들이

    [나눔 바이러스 2009]8년새 44차례 희망 집들이

    충북 청원군 북이면 대길리 장석연(65)씨는 요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다. 그토록 그리던 보금자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방 3칸, 거실과 주방, 화장실 등을 갖춘 83㎡(25평)의 단아한 단층주택이다. 지난 2월 화재로 집을 잃고 마을회관에 얹혀 생활하던 장씨 가족에게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집이다. 수도꼭지를 돌리면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고,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아내(65)와 암으로 엄마를 잃은 뒤 집안살림을 도맡고 있는 손녀(12)가 두 다리 쭉 펴고 잘 수 있다는 게 장씨에겐 가장 큰 기쁨이다. 장씨는 “화재로 집과 기르던 소까지 잃고 힘들었는데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게 돼 기쁘다.”며 “앞으로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오른쪽 팔 장애를 겪고 있는 청원군 남이면 산막리 윤현숙(44)씨도 지난 6월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66㎡(20)평이 안 되는 공간이지만 최근까지 세들어 살던 낡은 집에 비하면 궁궐 같다. 윤씨는 “빗물이 새는 지붕 아래에서 재래식 화장실을 쓰다가 새집에서 살게 돼 아주 좋다.”고 했다. 지체장애인 남편과 힘겹게 생활하던 윤씨에게 이 집은 희망이자 용기다. 이처럼 어려운 이웃들이 새집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청원군의 ‘러브하우스 사업’ 덕분이다. 2002년 시작된 ‘러브하우스’는 말 그대로 이웃의 사랑을 모아 집을 지어주는 것이다. 공사 기간은 두달 정도. 경량 철골구조(일명 조립식)로 66㎡(20평) 안팎의 집 한 채를 짓는 데 드는 4000여만원 가운데 2500만원을 청원군이 부담한다. 나머지는 주민자치위원회, 새마을협의회, 라이온스, 로터리클럽 등 각종 단체와 해당 지역 기업체가 후원한다. 설계는 청원군 건축직 공무원들이 맡는다. 개인 설계사무소에서 무료로 해줄 때도 있다. 관련 업체에서 건축자재와 가전제품, 침대 등을 무상으로 공급해 주기도 한다. 청원군 공무원들로 구성된 합창단은 러브하우스 입주식 때 축하공연을 펼치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집 지을 터만 있으면 이웃들의 사랑이 모아져 러브하우스가 탄생하는 셈이다. 지금까지 8년간 총 44동의 러브하우스가 지어졌고 올해 안에 2동이 추가로 건립될 예정이다. 대상자는 읍·면에서 추천하면 청원군이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선정한다. 장애인과 기초수급자 가운데 가족이 많거나 주거환경이 열악한 경우, 자활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우선순위가 된다. 청원군 건축과 이근복(47)씨는 “여러 사람의 사랑이 모아져 집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며 “1년에 6가구 정도 짓고 있는데 집이 급하게 필요한 사람이 생기면 추가로 예산을 확보해 집을 마련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청원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어르신들이 밤길 책임집니다

    어르신들이 밤길 책임집니다

    백발의 노인들이 지역 주민들의 안전한 밤길을 책임져 화제다. 이들이 바로 ‘강서 실버순라군(巡邏軍)’이다. 30일 서울 강서구에 따르면 자원봉사를 희망하는 모범 노인 160명으로 구성된 실버순라군이 지역 우범지대를 평일 오후 8~10시 순찰한다. 동별로 2명씩 4개조를 편성, 현재 20개 동에서 운영 중이다. 실버순라군은 지난 5월부터 시작됐다. ●지역 범죄 예방에 큰 성과 김재현 구청장은 “지역의 안전지킴이를 자청한 노인들의 봉사정신으로 어린이·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밤길이 한결 안전해졌다.”며 “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노인들이 부담없이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다양한 사회참여 프로그램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구는 이외에도 노인 일자리 찾아주기 사업, 고령자 취업알선센터 운영 등을 통해 노인의 사회활동을 적극 확대하고 있다. 또 독거노인 생활지도사와 노인돌보미, 바우처 등을 통해 노인 복지에 힘쓰고 있다. 30일 오후 9시 주황색 나트륨 가로등이 어둠을 밝히는 강서구 화곡동 한 아파트 단지. ‘딱, 딱, 딱~.’ 막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멀리서 조선시대 포졸 모습이 나타났다. 검은 색칠을 한 패랭이(챙 넓은 포졸 모자)에 하얀 저고리를 입고, 붉은 두루마기 위에 야광 허리띠를 맸다. 손에는 번쩍번쩍 불이 들어오는 경광봉(警光棒)을 들고 목에는 은색 호루라기를 걸었다. 밤 늦은 시간에 놀이터에 앉아 학생들에게 다가간다. “어디에 사니?”라고 실버순라군 조종수(73)씨가 묻는다. 학생들은 손가락을 한쪽으로 가리키며 “밑에 아파트에 살아요.”라고 대답한다. 조씨가 “늦은 시간에 놀이터에 있으면 혹시 나쁜 형들이 올지도 몰라. 빨리 집으로 들어가라.”고 타이르자 학생들은 인사를 꾸벅하고 집으로 간다. 바로 ‘강서 실버 순라군’은 이런 복장을 하고 지역 놀이터나 어두운 뒷골목을 돌며 지역 안전과 좀도둑을 책임지고 있다. ‘순라군’이란 조선시대에 도둑과 화재를 경계하기 위하여 야간에 궁궐과 도성 안팎을 순찰하던 군인을 일컫는 말이다. 구는 이러한 순라군의 활동을 재현해 우리 조상들의 전통을 계승, 안전하고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기 위해 어르신 자원봉사대인 ‘강서 실버순라군’을 창설했다. ●초고령 사회 대비한 복지모델 순찰을 하던 조귀암(75)씨는 “집에서 자식들이 위험하다고 많이 말렸다.”면서 “저녁에 건강을 위한 운동도 할 겸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도 되고 해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조종수씨는 “그냥 평상복을 입었으면 학생들이 우리 말을 듣지도 않지만 순라군 복장과 경광봉, 호루라기 등을 갖추니까 무시하지 못해.”라면서 “처음 순찰을 돌 때 놀이터 이나 후미진 골목에서 담배 피우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이제 나무 딱따기 소리만 나면 어디론가 없어져.”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또 이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강서경찰서 화곡지구대’ 전화번호가 입력된 휴대전화를 들고 다닌다. 위험상황에 휴대전화 발신 버튼만 누르면, 인근지역을 순찰하던 경찰이 나타난다. 고상덕 가정복지과장은 “초고령 사회에는 노인들의 사회참여를 유도하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절실하다.”면서 “구는 앞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집에 있는 노인들을 사회로 끌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선덕여왕’ 두 어머니 눈물…시청자도 함께 울었다

    ‘선덕여왕’ 두 어머니 눈물…시청자도 함께 울었다

    덕만의 두 어머니 마야부인과 소화가 딸을 찾은 기쁨과 미안함의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지난 27일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 19회에서 드디어 덕만(이요원 분)의 신분이 밝혀졌다. 마야부인(윤유선 분)은 소화(서영희 분)를 만나 “미안하다, 미안하다”말하며 하염없이 눈물 흘린다. 버려진 아이가 계림에 생존해 있음을 확인한 두 어머니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딸을 애타게 찾는다. 방송이 나간 후 시청자 게시판에 ‘소화의 눈물 연기에 가슴이 뭉클했다’, ‘윤유선씨가 울 때 함께 펑펑 울었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한편 유신랑(엄태웅 분)은 덕만이 천명공주(박예진 분)의 쌍둥이 여동생임을 확인하고 덕만을 궁궐 밖으로 내보내 중악산에 숨기려 한다. 이에 궁 밖으로 나가기를 거부하던 덕만은 자신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소엽도를 마야부인(윤유선 분)이 발견하도록 수를 쓴다. 한편 ‘선덕여왕’ 19회 엔딩에서 아직 ‘모녀’임을 모르는 마야부인과 덕만이 몰래 만나게 되면서 그 출생의 비밀을 풀 수 있을지 시청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제공 = MBC ‘선덕여왕’ 캡처 서울신문NTN 우혜영 기자 w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살아있는 전설의 춤사위 다시 본다

    살아있는 전설의 춤사위 다시 본다

    전북 남원 살풀이춤의 살아 있는 전설, 조갑녀(86) 명인의 섬세하면서도 웅장한 춤사위를 만나는 무대가 열린다. 공연기획사 축제의땅은 오는 26일 오후 5시 서울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우리시대 최고의 명인을 소개하는 ‘노름마치뎐’ 세번째 공연으로 ‘춤! 조갑녀’를 올린다. 1920년대 후반부터 10년간 짧지만 인상적인 예인(藝人)의 전설을 만들어낸 조갑녀 명인을 위한 헌정공연이다. ●2007년 세계무용축제 무대에 올라 조 명인은 6살에 장단을 가르치던 아버지를 따라 자연스레 남원 권번(기생을 교육하고 관리하던 곳)에 들어가며 춤을 배웠다. 이때 가르친 이가 이장선(1866~1939년) 명인. 이 명인은 궁궐에서 춤을 가르쳤고, 임금 앞에서 직접 춤을 췄던 명무였다. 이 명인에게 개인교습을 받은 조 명인은 승무, 살풀이춤 등을 배우며 ‘소녀 명무’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1931년 처음 열린 춘향제에 8살의 나이로 참가했고, 11회 대회까지 승무, 검무, 살풀이춤을 추면서 소녀 명무는 ‘남원 명무’, ‘춤은 조갑녀’라는 찬사를 받았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환갑잔치, 화전놀음, 단풍놀이 등에서 춤을 도맡은 당대 최고의 예인이었다. 시대를 풍미한 조 명인은 1941년 가족을 돌보기 위해 결혼을 하며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후 1971년, 1976년 춘향제에서 잠시 모습을 비췄을 뿐 무대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오랜 숨바꼭질 끝에 조 명인은 84세인 2007년 제10회 서울세계무용축제 무대에 올랐다. 그러자마자 ‘조갑녀류 민살풀이춤’이라는 말을 만들 정도로 명인은 건재했다. ●“조선말의 춤사위 고스란히 간직” 공연기획자 진옥섭은 “이 무대에서 존재조차 희미했던 거대한 춤의 존재가 다시 드러났다.”면서 “세상과 떨어져 있었기에 몸짓은 마치 타임캡슐에 묻혀 있듯 조선시대 말부터 일제 초기의 춤사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공연에서 조 명인은 단 5분간 ‘민살풀이춤’을 선보인다. 수건 없이 추는 살풀이춤이라 ‘민살풀이춤’이다. 조 명인이 선보이는 즉흥춤의 진수는 김청만(장구), 박종선(아쟁), 원장현(대금), 김무길(거문고), 한세현(피리), 김성아(해금) 등이 연주하는 ‘시나위’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이 공연을 위해 후배 춤꾼들이 나서 판을 만든다. 강성민이 이매방류의 ‘승무’로 첫 판을 열고, 진주의 예기(藝妓) 김수악의 춤을 이어받은 박경랑이 ‘교방춤’을 춘다. 권명화의 박지홍류 ‘살풀이춤’, 이현자의 강선영류 ‘태평무’, 백경우의 ‘사풍정감’, 이정희의 ‘도살풀이춤’, 김운태의 ‘채상소고춤’이 이어진다. 놀음을 마무리하는 고수 중의 고수를 일컫는 ‘노름마치’는 당연히 조 명인이다. (02)3216-1185.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열린세상] 잘못 생각할 수 있는 권리/차형근 변호사

    [열린세상] 잘못 생각할 수 있는 권리/차형근 변호사

    필자가 법대에 처음 들어갔을 때 법 중의 법인 헌법이란 무엇인가를 배웠다. 헌법은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이 향후 어떻게 하겠다는 결단을 표시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른바 슈미트의 결단론이다. 혁명이나 독립 등으로 헌법이 제정되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일리가 있는 주장이고 당시 유신상황에도 부합되는 것 같았다. 졸업 즈음에 슈미트의 결단론과는 다른 스멘트의 동화적 통합이론(同化的 統合理論)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헌법이란 서로 견해를 달리하는 집단이 더불어 하나 되겠다는 과정에 합의한 바를 표시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서로 견해를 달리하는 집단을 인정하는 것이나 더불어 하나되자는 목적이 유신시절의 종말 후 서울의 봄을 맞아 대단한 호소력을 가졌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더불어 하나가 될 수 있는지, 즉 동화적 통합이 되는 방법이 무엇인지이다. 스멘트는 표현의 자유를 국민이 천부적으로 가지는 권리일 뿐더러 동화적 통합을 이루기 위한 필수적 수단인 것으로 추론하였다. 서로가 견해를 겨루어 더 나은 생각에 이르기 위하여는, 즉 의사소통을 위하여는 표현의 자유가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당시 표현의 자유는 국가 위기 상황이라는 명분 하에 정부로부터 상당한 제약을 받았었고 그래서 그런지 결국 서울의 봄은 짧았다. 결국 대립되는 세력 상호간에 요즈음 말로 하면 의사소통이 안 되었다는 문제를 남기고 세월은 지나갔다. 그 뒤 퇴계 이황 선생이 홍문관 관리시절에 중종에게 올렸던 ‘일강구목소(一綱九目疎)’라는 상소문을 접하게 되었다. 국가가 잘되기 위해서는 군왕이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를 정리한 것이다. 원칙 즉 ‘일강’에 해당되는 것으로 치중화(致中和)를 거론하였는데 풀어 해석하면 동화적 통합이론과 다를 바가 없다. 구체적인 방법에 해당되는 것이 ‘구목’인데 이를 보면 언제 어디에서나 주장할 수 있는 것이어서 쉽게 잊었었는데 요즈음 세태를 보면서 새삼 찾아보았다. 구목의 첫째는 궁궐 내의 기강을 엄격히 하라는 것으로 최근의 청와대 자체 사정을 상기시킨다. 제사를 격식에 맞추어 제대로 거행하라는 대목은 연평해전 후 10여년 만에 국가차원에서 기념식을 가진 것을 떠오르게 한다. 백성을 일깨우고 곤궁함을 구제하라는 대목에 이르면 대통령이 최근에 강조하는 내용이나 한나라당과 정부의 발표가 왜 나왔는지를 알 것 같다. 그런데 구목 중에 실천되지 않는 항목이 있는 것 같다. 최근 국가인권위원장이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고 사의를 표시하였는데 그 이유 중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청와대에 어떤 보고를 하면 일주일이 지나도 회신이 없다는 부분이 있다. 이황 선생은 구목의 마지막으로 신하들이 간하는 의견을 받아들이라는 것도 언급하였는데, 이는 먼 백성의 이야기도 이야기거니와 가까운 신료들의 의견도 깊이 새겨들으라는 취지다. 가까운 곳과의 소통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되는데 어찌하여 국가인권위원장의 위와 같은 한탄이 나왔을까? 혹자는 지금의 정권과 다른 입장에 서 있던 정권이 만든 기관이 국가 인권위원회인데 그 수장이 하는 이야기는 뻔한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하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는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이미 대답을 하였다. 만약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이 옳은 경우라면 정부가 진실에 반하는 자신의 견해를 고칠 기회를 상실한 것이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이 틀린 것이라면 진실에 부합하는 정부의 견해가 좀더 확실한 인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밀은 잘못 생각할 수 있는 권리도 민주주의를 위하여, 더 나아가 동화적 통합을 위하여 유용한 권리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과연 밀의 자유론이 출간된 지 150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의 정부는 잘못 생각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할 것인가? 차형근 변호사
  • [주말 데이트]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일등공신 이창환 상지영서대 교수

    [주말 데이트]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일등공신 이창환 상지영서대 교수

    “태릉, 홍릉, 수원 건릉 등 왕릉 주변에 보면 갈비를 파는 식당들이 많죠. 왜 그럴까요?” 지난 7일 만난 상지영서대 조경학과 이창환 교수가 대뜸 물었다. “네? 글쎄요….” 이 교수가 싱글거리며 대답한다. “조선왕실의 베품 문화가 남아 있는 까닭입니다. 당시 왕릉에서 소, 돼지를 잡아 제례를 올린 뒤 남은 고기들을 인근 백성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제례에 올리는 고기도 조리하지 않고 생고기로 올렸죠. 소, 돼지를 잡아먹기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그렇게 갈비를 굽고, 갈비탕을 해먹기 시작했죠.” ●처음으로 조선왕릉 40기 도면 만들어 지난달 말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한꺼번에 등재됐다. 이제 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관광의 아이콘으로 조선의 왕릉이 주목받게 됐다. 이러한 쾌거의 숨은 주역이자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이 교수는 ‘왕릉 전도사’답게 만나자마자 왕릉이 갖고 있는 무궁한 매력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이 교수의 얘기를 듣다보니 ‘왕릉은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교수는 20년 가까이 왕릉에 대해 연구해온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왕릉 박사’다. 실제 전공은 녹지사(역사 경관)이고, 대학에서도 조경학 강의를 하고 있지만 처음으로 조선왕릉 40기를 모두 둘러보고 측량해 도면을 만들었을 정도로 왕릉에 푹 빠졌다. 그의 관심은 국내의 왕릉에 그치지 않았다. 한국의 왕릉과 비교하기 위해 중국에 가서 2년 동안 중국의 왕릉에 대해 연구했다. 그 결과 한국과 중국의 왕릉이 갖고 있는 서로 다른 철학적 기반, 현재적 의미에도 정통해질 수밖에 없었다. 문화재청 입장에서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위해서는 조선 왕릉 40기의 도면이 반드시 필요했었고,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등에 중국, 베트남 등 왕릉과 비교해 문화적 특장, 매력을 설명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세계문화유산 일괄 등재 추진은 이 교수를 빼고서는 도저히 진척될 수 없는 작업이었다. 지난해 9월 유네스코의 파견 실사단장으로 온 왕리쥔(王力軍)에게 조선 왕릉이 갖고 있는 역사적 가치, 철학적 가치, 문화적 가치를 풍성한 사례와 함께 설명한 사람도 당연히 이 교수였다. ●죽은 사람·산 사람 모두에게 편안한 공간 그는 “우리 왕릉은 으리으리하게 지어진 중국 등 아시아 왕릉과 달리 대부분 10평 남짓의 공간만 차지하고 있다.”면서 “대신 울창한 수목과 넓은 잔디 등을 조성해 죽은 사람에게도 산 사람에게도 편안한 휴식의 공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3년상을 치를 때까지만 해도 무덤은 흉례의 공간이지만 이후에는 길례의 공간으로 바뀌어 쉬고, 놀고, 즐기게 된다.”고 덧붙였다. 시대가 바뀐 덕분에 수도권 주변의 유치원, 초등학교의 단골 소풍장소로 왕릉이 손꼽혔던 것을 떠올리자, 이 교수의 설명에 더 쉽게 이해되는 듯했다. 그는 “조선 왕릉은 왕의 무덤이면서 그 시대의 종합예술”이라면서 “왕릉 40기 모두 둘러보고 나면 조선 역사와 예술, 건축, 조경 등의 박사가 돼있을 것이고 숲과 자연 속에서 얻게 될 마음의 안식은 덤”이라고 말했다. ●원형 그대로 남아 문화예술 변천 한눈에 이 교수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조선 궁궐은 대부분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에 따른 것인 데 반해 왕릉은 건립 당시 원형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어 조선왕조 문화예술 등의 변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이 왕릉을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왕릉을 찾아가실 때 친구들, 혹은 가족들과 당시 임금의 생애·업적, 조각예술, 숲 조경 등으로 분야를 나눠서 공부하고 가보세요. 그리고 함께 둘러본 뒤 밥 먹고, 술 한 잔 하면서 자그마한 세미나를 갖는 것입니다. 왕릉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실 겁니다.” 왕릉은 거의 대부분(단종의 영월 장릉 제외)은 서울 수도권 안에 있다. 이 교수의 말을 따라 인터넷을 뒤적이며 공부한 뒤 아이 손잡고 주말에 훌쩍 나들이 다녀오면 어떨까. 글ㆍ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이창환 교수는 1956년 출생. 강원 원주고-강원대 조경학과-성균관대 박사(조경史)-북경임업대학 원림건축학 박사후과정. 한국전통조경학회 부회장, 문화재청 전 전문위원, 현재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한국위원, 상지영서대 조경학과 교수.
  • 창경궁서 주말 국악 한마당

    고즈넉한 고궁에서 품격있는 아침음악회로 하루를 여는 것은 어떨까. 국립국악원은 11일부터 새달 29일까지(8월15일 제외) 매주 토요일 오전 7시30분에 창경궁 명정전 뒤뜰에서 ‘창경궁의 아침-국악의 아침을 거닐다’를 진행한다. 이 공연은 지난해 ‘궁궐공연문화 시리즈’의 하나로 시작됐다. 이번 공연에는 한국의 시조 2수, 샛노란 꾀꼬리(춘앵)의 아름다움 자태와 소리를 독무(獨舞)로 표현한 19세기 초의 궁중무용인 춘앵전, 전통 성악곡인 가곡을 연주하는 대금·단소 독주 등을 1시간 동안 연주한다. 국립국악원 정악단·무용단 단원 20여명이 음악과 무용을 선사하며, 숙명여대 송혜진 교수가 해설을 곁들여 이해를 도울 예정이다. 궁궐 입장료와 공연 관람은 무료이다. 관람을 위해서는 국립국악원 홈페이지(www.gugak.go.kr)에서 미리 신청을 해야 한다. (02)580-3300.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드라마 ‘선덕여왕’ 열기…게임으로 확산

    드라마 ‘선덕여왕’ 열기…게임으로 확산

    드라마 ‘선덕여왕’을 게임으로 만들면? MBC TV 월화드라마 ‘선덕여왕’이 인기다. 최근 30%에 육박하는 시청률과 함께 월화 안방극장을 장악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일부 네티즌들이 드라마 ‘선덕여왕’을 게임과 접목시켜 재미를 더하고 있다. 한 네티즌은 최근 유명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인 ‘삼국지10 파워업키트’에 드라마 ‘선덕여왕’의 장수들을 대입시킨 이미지를 인터넷 블로그에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이미지를 살펴보면 김유신(엄태웅 분)은 주어진 임무를 충성스럽게 수행하려고 하지만 미실(고현정 분)은 까칠한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 드라마의 재미를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무대가 되는 궁궐 부근의 모습을 일종의 게임 맵으로 재구성한 이미지도 화제다. 특히 미실은 이 이미지 속에서도 “네 아드님. 그 한심한 일을 하고 있는 곳이 어딥니까?”라고 말하는 등 팜므파탈의 모습을 뽐내 보는 이의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이밖에 ‘드라마 선덕여왕을 RPG(모험성장게임)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밝힌 네티즌의 의견 역시 관심을 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게임으로 기대치를 높이고 있는 것과 관련, 주인공 덕만공주(이요원 분)가 온갖 시련을 거쳐 여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겪는 일들이 게임의 일반적인 진행방식과 동일하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고 시대의 주인이 된다’는 드라마 ‘선덕여왕’의 화두처럼 대다수 게임들이 주변의 협력을 얻어 주어진 목적을 완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드라마 ‘선덕여왕’은 지난달 말 무렵부터 이요원, 엄태웅, 박예진 등 성인 연기자들의 본격 출연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더하고 있다. 사진제공 = DC인사이드 ‘선덕여왕’ 갤러리 캡쳐 서울신문NTN 최승진 기자 shai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주말 데이트] 30년간 주말마다 박물관 찾는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

    [주말 데이트] 30년간 주말마다 박물관 찾는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

    친근한 모습이다. 국내 최대인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라고 하기엔 그의 웃음이 참 소탈했다. 성품 역시 소탈해 사무동 6층 꼭대기 집무실에 앉아 있기보다 수시로 전시실로 내려오길 좋아한다. 손수 관람객들에게 역사수업을 하고 기념촬영도 곧잘 한다. 반면 그의 열정은 흉내내기 어려울 정도로 뜨겁다. 한국박물관 100주년을 맞아 올해 각종 기념사업을 펴고 있는 최광식(56) 국립 중앙박물관장을 1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1909년 순종이 만든 ‘제실 박물관’이 시초 “100주년은 아무나 거쳐갈 수 없는 특별한 해입니다. 그 사명감에 다들 신나게 아이디어를 쏟아 내고 있습니다.” 바쁜 시기에 관장을 맡은 것이 부담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에 오히려 신나게 박물관 자랑을 늘어 놓는 것으로 대신한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100주년’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최 관장은 “우리 정부도 없던 미군정 때나 일제총독부 시기의 박물관을 우리박물관 시초로 볼 수는 없다.”면서 1909년 11월1일 순종이 열었던 ‘제실 박물관’부터 시작된 한국박물관의 100년사를 줄줄이 늘어놓는다. “그때 박물관은 백성들이 궁궐로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었다는 의미가 더 큽니다. 한국의 박물관은 왕실이 시민사회를 받아들이며 시작된 거죠.” 국내 첫 박물관은 ‘왕실과 시민사회의 소통’이었다. 그러다가 일제와 6·25전쟁을 지나며 박물관은 조상들의 유물이 얼마나 있느냐를 따져 ‘국가정통성’을 보장해 주는 공간이 됐다. 지금도 사실 그와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최 관장은 이를 ‘국가브랜드의 상징’이라고 고쳐 부른다. ●‘기와청자 누각’을 세계적 상징조형물로 올해 100주년 사업도 ‘대한민국의 상징’으로 ‘뮤지엄 콤플렉스’를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현재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중심으로 어린이박물관도 함께 두고, 또 바로 건너 미군기지가 이전하면 공원까지 더해 복합적인 생태·문화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그는 “조상의 기술대로 ‘기와 청자 누각’을 복원해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 같은 세계적인 상징조형물을 만들고 싶다.”고 꿈을 밝힌다. 국가브랜드 말고도 “박물관은 문화콘텐츠의 보고”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유물을 둘러싼 원초적인 콘텐츠는 많은데 그걸 활용하지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이뿐만 아니다. 최근 들어 관람객들의 발길이 늘긴 했지만 박물관 문턱을 무슨 ‘숙제’처럼 여겨 한번 갔다오면 다시 찾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사실도 그렇다. 그는 “달마다 계절마다 박물관은 변하고 있다.”면서 “수학여행 같은 기회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박물관을 가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달마다 계절마다 박물관은 변합니다” 그 역시 첫 박물관 방문은 학창시절 수학여행때였지만 이후 재미를 붙여 지난 30년 동안 주말마다 박물관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박물관은 가족·동료·친구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작품을 보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니 짧은 시간에 서로 인생관도 알 수 있어 ‘데이트코스’로도 그만이라는 것. 그는 “지금의 아내와도 주로 박물관에서 데이트를 했는데, 사학(고려대 한국고대사)을 전공한 내가 조금 더 유리한 위치에서 말을 이어 나갔다.”며 웃는다. 외국인들이 유물을 직접 보고 한국만의 독특한 역사문화를 알게 됐다고 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지금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박물관을 찾아 스스로 불편사항을 점검한다. 집무실로 향하는 게 아니다. 관장이 아닌 관람자의 입장에서 전시실을 거니는 것이다. 30년된 버릇처럼. 글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서울광장] 외로운 섬, 청와대/이목희 수석논설위원

    [서울광장] 외로운 섬, 청와대/이목희 수석논설위원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지난 대선때 이명박 캠프의 메시지 담당이었다. 아침마다 이명박 후보의 집으로 가서 깊은 얘기를 나누곤 했다. 당시 신 차관이 기자들을 향해 안타깝다는 식의 언급을 했다. “이 후보가 왜 안국동에 선거캠프를 차리는지 아느냐. 탈(脫)여의도가 이 후보의 핵심 컨셉트인데 기자들이 간과하고 있다.” 필자도 그때는 “기업인 출신이니까 그러겠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다소간 캠페인성이니 신문 해설 한 줄 정도면 될 거라고 쉽게 넘겼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 대통령의 참모들도, 언론들도 잘못 대처한 듯싶다. “대통령이 정치를 멀리하려고 한다.”는 것은 국가운영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좀더 천착해서 분석하고, 대안을 내놓았어야 했다. 청와대는 구중궁궐이다. 대통령이 집무하는 본관에 가려면 수석비서관들도 자동차를 타고 간다. 최근 들어 이 대통령이 서민 행보를 강조하고 있다. 재래시장을 찾고, 전문가들을 청와대로 불러 의견을 나누고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동선은 단조롭고 딱딱하다. 본관의 일과가 끝나면 자동차를 타고 관저로 퇴근한다. 대통령 관저를 가본 적이 있는데 천장이 높고, 위용이 대단하긴 하지만 적막강산이다. 대통령의 고뇌를 알리는 대표적인 사진이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본관 집무실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는 사진이다. 당시 언론들은 ‘고뇌하는 대통령’이라는 설명을 달았다. 박진 한나라당 의원은 그때 김 전 대통령 곁을 지킨 핵심비서관이었다. 박 의원은 “그 사진은 고뇌하는 사진이 아니라 외로워하는 사진”이라고 했다. “너무 외롭데이….”였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무 분야에서 취약하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청와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수석비서관회의를 월요일로 옮겨 주간 단위로 정무적 판단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될까. 이 대통령 스스로 노력해도 기본 성정은 바뀌지 않는다고 본다. 특히 청와대의 구조가 ‘외로운 섬‘으로 남아 있는 한 현실 정치와 가까워지기 어렵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 밖으로 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 집무실을 꾸며 놓고 관리들과 정치인들을 수시로 만났으면 한다. 경호상 청와대 본관을 몽땅 옮기기 어려우면 제2, 제3의 집무실이라도 만들면 어떨까. 중앙청사, 과천청사, 여의도 국회의사당 등이 대상이 될 수 있다. 과거 여당은 대통령이 총재였고, 당사에 총재집무실이 있었다. 좀더 획기적인 발상을 하자면 국회의사당을 옮기는 방안이 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도 밤이면 적막강산이다. 한강으로 둘러싸인 채, 국민과 유리된 ‘외로운 섬’이다. 요즘 청와대와 정당·국회가 따로 노는 것을 보면 한강을 넘는 길이 이렇듯 멀고 먼가라는 한탄이 나온다. 국회의사당을 세종문화회관과 맞바꾸면 어떨까.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도심 한복판에 국회의사당이 있다. 국민들에게 친숙하고 대통령, 그 측근들과의 정치적인 교류가 쉽다. 여의도를 밤마다 문화가 꽃피는 한마당으로 만드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맹형규 정무수석 등 청와대 관계자를 만나보면 나름대로 정치권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무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럴 때 형식을 과감히 바꾸면 출구가 보인다. 대통령이 정부 청사에, 국회의사당에 자주 나타나면 비서와 측근들의 발걸음은 더욱 잦아질 수밖에 없다. 이목희 수석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이요원 “20일치 비상식량 챙겨 다녀”

    이요원 “20일치 비상식량 챙겨 다녀”

    32%의 대박 시청률을 기록 중인 화제의 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덕만 역을 맡은 배우 이요원이 촬영 강행군을 견뎌내고 있다.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극본 김영현 박상연ㆍ연출 박홍균 김근홍ㆍ제작 타임박스 프로덕션) 8회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성인 덕만(이요원 분)은 궁궐에서 주로 정치를 펴는 미실(고현정 분)과 달리 온갖 고난의 행군을 통해 단단해 지는 통과의례를 겪어야 한다. 이미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산하고 있는 미실에 비해 이제 막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그 힘을 키우기 위한 시작점에 서있는 덕만이다. 이요원은 첫 촬영을 백제군을 습격하는 화랑들의 매복과 전쟁 신으로 시작했다. 얼굴에 진흙 위장을 하고 머리에 풀을 꽂아 위장을 하고 숲에서 포복을 하면서 이미 손과 발에 상처가 났다. 첫날 군사훈련으로 신고식을 호되게 치른 이요원은 이후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촬영을 이어가고 있다. 더욱이 경주, 문경, 안면도 세트 등 전국을 돌면서 촬영을 하는 이요원은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결국 이요원은 매니저들과 협의해 라면, 냄비, 버너, 코펠, 즉석 밥, 바나나, 김치 등 최대 20일을 버틸 수 있는 비상식량을 차에 비축하게 됐다. 이요원은 “평소 씩씩한 구석이 많은데 그동안 여성적인 느낌이 강한 역할을 많이 해왔다.”면서 “실제 내 모습과 가장 많이 닮은 캐릭터인 덕만이가 참 편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요원은 현장에서 이문식 류담 등에게 ‘형~’이라며 남자 선후배 같은 털털함으로 금세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고. 또 폭염 속에서 진행되는 촬영에서 이요원은 화랑 전투복을 껴입어 숨쉬기도 힘든 상황에서 아이스크림을 스태프들과 나눠 먹으며 전우애를 나누고 있다는 후문이다. (사진제공=MBC)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국보 보러 동아대박물관 오세요”

    동아대 박물관이 19일 부산시 서구 부민동 부민캠퍼스에 재개관했다.‘동궐도(東闕圖·국보 제249호)’ 등 국보 2점,보물 11점, 부산시지정문화재 11점 등 3만여점을 소장한 동아대 박물관은 국내 대학 박물관 중 가장 많은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가로 576cm, 세로 273cm 크기의 동궐도는 옛 구덕캠퍼스 시절에는 공간부족으로 접힌 채 보관됐는데 새 전시실에서 웅장한 모습을 마음껏 관람객들에게 보여 줄 수 있게 됐다. 동궐도는 조선 순조때 도화서 화원들이 동쪽 궁궐인 창덕궁과 창경궁의 전각 및 궁궐전을 마치 항공촬영을 한 듯 조감도식으로 그린 궁궐배치도로, 오늘날 궁궐복원의 가장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되고 있다.박물관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르네상스양식의 3층 붉은 벽돌로 지어져 경남도청사로 사용됐다. 6·25전쟁 땐 임시수도정부청사로, 그 후 법원과 검찰청사 등으로 쓰였다. 2002년 초 동아대가 샀으며, 그해 9월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됐다. 동아대는 2004년 12월 80억원을 투입해 건물 리모델링 공사를 벌여 지난 3월 완공했다.동아대박물관은 외국인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영어·일어·중국어 등 4개 국어로 번역되는 음성안내기를 설치해 놓았다. 박물관 개관은 월~토요일 오전9시30분~오후5시이다. 동아대박물관 류종목 관장은 “동아대박물관은 지하철역과 접근성이 좋아 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한편 박물관측은 재개관을 기념해 전시될 유물 800여점 중 ‘명품 100선’을 선정, 도록을 발간했다. 100선에 선정된 유물에는 동궐도 외에 태조 6년(1397) 10월 공신도감에서 왕명을 받아 개국원종공신인 심지백에게 내린 국보 제69호인 ‘개국원종공신녹권’(開國原從功臣券)과 다음달 발행 예정인 5만원권 지폐의 도안으로 들어갈 신사임당 작품 ‘초충도수병’(草蟲圖繡屛·보물 제595호)들이 포함됐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계룡산 ‘신도안’ 명칭 되찾는다

    무속신앙의 메카 계룡산 ‘신도안’이 25년 만에 이름을 되찾는다. 18일 충남 계룡시에 따르면 21일부터 남선면이 신도안면으로 변경된다. 시는 지난해 말 주민 설문조사에서 98.1%가 “역사성 있어 신도안이란 이름이 좋다.”고 찬성하자 조례를 개정, 이같이 변경을 추진했다. 이곳에는 당초 논산시 두마면 신도내(안)출장소가 있었으나 1984년 계룡대(3군본부) 조성을 위한 ‘620사업’으로 폐지됐다 89년 남선출장소로 부활했다. 이어 1990년 충남도 산하 계룡출장소 남선지소로 변경됐고, 2003년 계룡시로 승격되면서 면사무소로 확대됐다. 계룡산 남동쪽 기슭에 위치한 신도안은 ‘때가 되면 진인이 계룡산에 도읍한다.’는 정감록의 영향을 받은 신흥 종교인이 몰려와 유토피아를 꿈꾸던 곳이다. 한국전쟁 등 국난을 거치면서 더 활기를 띠었다. 1975년만 해도 상제교·태을교·일심교 등 104개 신흥종교와 기독교계 교단시설이 자리잡고 있었다. 신도안은 ‘새로운 도읍’이란 뜻으로 태조 이성계가 조선 초에 도읍을 건설하려고 한 데서 유래됐다. 지금도 군부대 안에는 당시 궁궐을 건설하기 위해 놓았던 주춧돌 등이 남아 있다. 현재 이면지역 주민은 2297가구 8318명으로 대부분 계룡대 군인 가족이다. 계룡시 관계자는 “국민에게 오랜 세월 각인된 이름을 잊혀지기 전에 되찾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계룡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침실 어떤 그림 걸어 놓고 즐겼나

    조선시대 구중심처인 왕실, 그중에서도 내밀(內密)하기만 했던 침실에서 왕과 왕비들은 어떤 그림을 벽에 걸어놓고 즐겼을까. 국립고궁박물관은 12일 기획전시실에서 ‘궁궐의 장식그림’ 특별전을 시작했다.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도(十長生圖)로 꾸민 창호 그림 19건 58점을 비롯해 실내 벽면에 붙였던 부벽화(付壁畵) 2건 2점 등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창호 그림과 벽그림을 조명하는 자리다. 또한 창덕궁 희정당을 비롯한 대조전, 경훈각 등 침전 내의 벽그림 6건 6점은 실물을 옮길 수 없어 영상 자료 형태로 공개됐다. 특별전은 오는 7월5일까지 열린다. 특히 이번에 공개되는 창호 그림은 창덕궁에서 전해진 것으로, 창호가 어느 전각에 설치돼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이 소장한 봉황도와 공작도 쌍폭 그림도 공개됐다. 이 그림들은 소재나 품격으로 보아 조선 왕실 침전 내부에 부착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국외 한국문화재 보존처리 지원사업’ 일환으로 들여와 직접 보존수리를 완료한 뒤 국내 무대에 처음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고궁박물관 정종수 관장은 “실내 공간 구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전통 창호와 장지(방과 방 사이나 마루 사이에 칸을 막아 끼우는 문)의 다양한 쓰임새도 조명하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기간 중 특별 강연회가 21일, 다음달 18일 박물관 강당에서 열린다. 또한 다음달 11, 25일에는 궁궐 장식그림을 직접 찾아 해설을 듣는 창덕궁 현장 답사 행사도 열 예정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강전도’ 김학수 화백 별세

    국내 최장 ‘한강전도’로 유명한 역사풍속화가 혜촌(惠村) 김학수 화백이 6일 오전 2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91세. 고인은 이당 김은호와 소정 변관식을 사사했으며 고증을 통해 ‘삼강행실도’, ‘궁궐도’ 등 민족의 생활상이 담긴 역사 풍속화와 세종대왕 일대기 등 위인화, 기독교 성화 등을 주로 그려 왔다. 1964년 단양과 양평 일대의 한강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2006년까지 40여년간 현지답사를 거쳐 한강 1300리를 폭 48㎝, 길이 20m가량의 두루마리 화선지 26권(총길이 350m)에 담아낸 대작 ‘한강전도’로 유명하다. 경기도 의정부 경민대 ‘혜촌선생기념관’에서는 그의 그림을 상설 전시 중이며 김해 인제대에서도 그의 이름을 딴 ‘김학수기념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빈소는 서울 중구 백병원. 발인은 8일 오전 7시. 011-717-9406.
  • [문화행사 알림방] 펜으로 그린 전통 건축물전

    ●국립청주박물관 5월1~24일 ‘펜화로 만나는 한국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 특별전’을 개최한다. 김영택 화백이 한국의 전통 사찰과 궁궐, 정자 등을 펜으로 그린 60여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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