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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날 버렸나요” 비닐에 버려진 유기견 결국…

    “왜 날 버렸나요” 비닐에 버려진 유기견 결국…

    “나를 왜 버리셨나요?” 굶주림과 감염성 질환으로 괴로워하던 7개월 된 강아지 한 마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미러닷컴에 따르면, 최근 영국 햄프셔 토튼에 있는 한 놀이터에 유기된 생후 7개월 된 강아지 닐라(Narla)는 더는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뒤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안락사되고 말았다. 암컷 스태퍼드셔 불테리어 잡종인 날라는 종이 상자 안에서 검은색 비닐봉지에 감싸진 채 발견됐다. 당시 개와 산책하던 한 사람은 어디선가 애처로운 신음을 듣고 주변을 살피던 중 흙 속에서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고 전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상자를 열어봤을 때 대소변으로 인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다고 한다. 발견자들의 말로는 당시 날라는 심하게 굶주려 머리를 제대로 가눌 수도 없었고 두 눈을 뜨지도 못했다. 날라는 곧바로 인근 동물병원으로 이송됐다. 수의사들은 날라가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로 4~8주 동안 굶주렸다고 추정했다. 수의사들은 날라가 여러 감염성 질환에 걸려 더는 손쓸 수 없는 상태로 진단했다. 그들은 날라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려면 안락사하는 게 최선이었다고 설명했다. 생후 7개월 만에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날라의 몸에는 마이크로칩이 남아있어 그녀를 유기한 주인이 미셸 브라운이라는 28세 여성임을 알아냈다고 영국동물보호협회(RSPCA)는 밝혔다. 이후 미셸은 동물 유기 혐의로 사우스햄튼 치안법정에 서게 됐다. 그녀는 자신이 날라를 유기했음을 인정했지만 개가 죽었다고 생각해 상자에 담아 야외에 묻었다고 밝혔다. 미셸의 변호인은 그녀가 세 아이의 엄마로 뇌성마비인 남편을 돌보고 있으며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어 그런 행동을 벌이게 됐다고 해명했다. 레이몬드 탄 변호사는 “브라운 양은 자신이 개를 유기한 것을 인정했다”면서도 “그녀는 너무 많은 일에 처해 있었다”고 말했다. 미셸 브라운은 이번 재판에서 집행유예 3개월형과 벌금형 630파운드(약 115만원)와 함께 동물 소유 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번 사건에 대해 패니 베이커 RSPCA 조사관은 “심각한 유기 사례 가운데 하나다”면서 “우리는 이번 사례가 사람들에게 이런 종류의 학대는 절대 용납되지 않을 뿐더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길 원한다”고 밝혔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날 왜 키웠나요” 굶주림과 질병에 괴로워하던 유기견 결국…

    “날 왜 키웠나요” 굶주림과 질병에 괴로워하던 유기견 결국…

    “보살필 능력도 없으면서 나를 왜 키웠나요?” 굶주림과 감염성 질환으로 괴로워하던 강아지 한 마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미러닷컴에 따르면, 최근 영국 햄프셔 토튼에 있는 한 놀이터에 유기된 생후 7개월 된 강아지 닐라(Narla)는 더는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뒤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안락사되고 말았다. 암컷 스태퍼드셔 불테리어 잡종인 날라는 종이 상자 안에서 검은색 비닐봉지에 감싸진 채 발견됐다. 당시 개와 산책하던 한 사람은 어디선가 애처로운 신음을 듣고 주변을 살피던 중 흙 속에서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고 전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상자를 열어봤을 때 대소변으로 인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다고 한다. 발견자들의 말로는 당시 날라는 심하게 굶주려 머리를 제대로 가눌 수도 없었고 두 눈을 뜨지도 못했다. 날라는 곧바로 인근 동물병원으로 이송됐다. 수의사들은 날라가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로 4~8주 동안 굶주렸다고 추정했다. 수의사들은 날라가 여러 감염성 질환에 걸려 더는 손쓸 수 없는 상태로 진단했다. 그들은 날라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려면 안락사하는 게 최선이었다고 설명했다. 생후 7개월 만에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날라의 몸에는 마이크로칩이 남아있어 그녀를 유기한 주인이 미셸 브라운이라는 28세 여성임을 알아냈다고 영국동물보호협회(RSPCA)는 밝혔다. 이후 미셸은 동물 유기 혐의로 사우스햄튼 치안법정에 서게 됐다. 그녀는 자신이 날라를 유기했음을 인정했지만 개가 죽었다고 생각해 상자에 담아 야외에 묻었다고 밝혔다. 미셸의 변호인은 그녀가 세 아이의 엄마로 뇌성마비인 남편을 돌보고 있으며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어 그런 행동을 벌이게 됐다고 해명했다. 레이몬드 탄 변호사는 “브라운 양은 자신이 개를 유기한 것을 인정했다”면서도 “그녀는 너무 많은 일에 처해 있었다”고 말했다. 미셸 브라운은 이번 재판에서 집행유예 3개월형과 벌금형 630파운드(약 115만원)와 함께 동물 소유 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번 사건에 대해 패니 베이커 RSPCA 조사관은 “심각한 유기 사례 가운데 하나다”면서 “우리는 이번 사례가 사람들에게 이런 종류의 학대는 절대 용납되지 않을 뿐더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길 원한다”고 밝혔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의 형제들...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의 형제들...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6월 14일(현지시간) 전쟁과 굶주림에서 벗어나려는 시리아인들이 불법적으로 터키 국경에 설치된 철조망 담장을 넘고 있다. 이른바 난민이다.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 이전의 사진이지만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AFP 카메라 기자 블렌트 킬리치(Bulent Kilic)는 5일 터키 국경을 넘는 난민들의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촬영, 국제포토저널리즘 페스티벌인 ‘비자 뿌르 리마주(Visa Pour L’Image)에서 뉴스 부문 ‘비자 도르(the Visa d’Or for News) 상을 수상했다. ⓒ AFPBBNews=News1/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동족상잔의 아픔… 잊지 않겠습니다

    동족상잔의 아픔… 잊지 않겠습니다

    “엄마, 무슨 떡이 저렇게 못생겼어요?” “저건 말이야, 보리개떡이라는 음식이야. 6·25전쟁 알지? 그때 쌀을 구하기 어려워서 보릿가루를 뭉쳐서 만든 거야. 사실 엄마도 처음 먹어 봐. 그래도 맛있지?” 19일 동대문구청 앞 광장에서 ‘6·25전쟁 음식 체험전 및 사진전’이 열렸다. 한국자유총연맹 서울동대문구지회가 주최하고 동대문구가 후원한 이번 행사는 사진전과 전쟁 음식 체험으로 꾸며졌다. 먼저 구청 앞 광장에 6·25전쟁의 실체를 알리는 사진 22점이 전시됐다. 또 다른 부스에서는 꽁보리밥과 보리개떡, 감자, 옥수수, 쑥개떡, 건빵 등을 직접 만들고 나눠 먹었다. 참가자들은 보리주먹밥과 보리개떡을 먹으며 6·25전쟁 당시 힘들었던 상황을 간접 체험했다. 지금의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자녀 세대가 경험해 보지 못한 피란 시절 굶주림과 가난으로 어려웠던 시절을 느끼게 했고, 6·25세대에게는 어려웠던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시간이었다. 또 근검절약의 의미와 자유 및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는 좋은 행사였다. 한정훈(용두초 3학년)군은 “전쟁이 나서는 정말 안 되겠다. 이유는 저렇게 거친 꽁보리밥만 먹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구 관계자는 “주먹밥과 보리개떡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전쟁의 비참함과 나라의 소중함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면서 “앞으로도 다양한 이벤트로 나라 사랑 운동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여성에 사랑 고백 하려면 ‘식사 후’가 효과적” - 美 연구

    “여성에 사랑 고백 하려면 ‘식사 후’가 효과적” - 美 연구

    사랑 고백 등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 생각이 있는 남성이라면 우선 여성을 굶기지 말아야 할 듯하다. 우선 식욕이 충족돼야만 낭만적인 생각을 할 여력이 된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미국 드렉셀대와 펜실베이니아대 공동 연구진이 여성 20명을 대상으로 배가 고프거나 부른 상태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실험에서는 먼저 참가자들에게 8시간 동안 금식하게 한 뒤 뇌 스캔을 시행했다. 이때 남녀가 손을 잡고 있는 등 로맨틱한 사진이나 볼링공과 같은 감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 중립적인 사진을 보여줬다. 그 결과, 각각의 사진을 봤을 때 뇌에 나타난 반응의 정도는 거의 같았다. 하지만 참가자들에게 500칼로리짜리 초콜릿맛 음료를 마시게 해 굶주림을 진정시킨 뒤 다시 사진을 보여줬더니 남녀가 손을 잡고 있는 사진을 봤을 때 뇌가 크게 반응했다. 연구를 이끈 앨리스 일리 박사는 “식욕을 만족하면 연애 감정과 같은 다른 본능이 활성화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사랑 고백이나 프러포즈와 같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남성이라면 여성이 배가 고프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것이 성공률을 높이는 데 기여할 듯싶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애피타이트’(Appetite) 최신호에 실렸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아베 담화 전문

    아베 담화 전문

    종전 70년을 맞아 전쟁에 이른 길, 전후의 발자취, 20세기라는 시대를 우리는 조용히 되돌아보고 그 역사의 교훈 속에서 미래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0년 전 세계는 서양 제국을 중심으로 각국의 광대한 식민지가 커지고 있었습니다. 압도적인 기술 우위를 배경으로 식민지 지배의 물결은 19세기 아시아에도 밀려들었습니다. 그 위기감이 일본 근대화의 원동력이 됐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입헌정치를 시작하고 독립을 지켜 왔습니다. 러일전쟁은 식민 지배하에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민족자결의 움직임이 커지면서 식민지화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이 전쟁은 1000만명의 전사자를 낸 비참한 전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평화’를 강하게 원하고 국제연맹을 창설해 부전(不戰) 조약을 탄생시켰습니다. 전쟁 자체를 위법화하는, 새로운 국제사회의 조류가 생겼습니다. 당초 일본도 발걸음을 같이했습니다. 그러나 세계공황이 발생하고 구미제국이 식민지 경제를 끌어들여 경제의 블록화를 진행하자 일본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일본은 고립감이 깊어져 외교적, 경제적으로 한계에 부딪히자 힘의 행사로 해결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국내의 정치 시스템은 그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일본은 세계의 대세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만주사변, 그리고 국제연맹으로부터의 탈퇴. 일본은 점차 국제사회가 엄청난 희생 위에 쌓으려 한 ‘새로운 국제 질서’에 대한 도전자가 돼 갔습니다. 나아갈 진로를 잘못 잡아 전쟁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70년 전, 일본은 패전했습니다. 전후 70년을 맞아 국내외에서 돌아가신 모든 사람들의 목숨 앞에 깊이 고개를 숙이고 통석의 마음을 표시하고 영겁의 애도를 바칩니다. 과거 전쟁에서 300만 동포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조국의 장래를 걱정하고 가족의 행복을 바라며 싸움터에서 돌아가신 분들. 종전 후, 극한(極寒)의 또는 작열하는 머나먼 타향에서 굶주림과 병에 시달리다 돌아가신 분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도쿄를 비롯한 각 도시에서의 폭격, 오키나와 지상전 등으로 많은 시민이 무참히 희생됐습니다. 전쟁이 벌어진 나라에서도 젊은이들의 목숨이 수없이 사라졌습니다. 중국, 동남아, 태평양 섬 등 전장이 된 지역에서는 전투뿐 아니라 식량난 등으로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고난에 빠지고 희생됐습니다. 전쟁터의 그늘에서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있었던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일본이 아무런 죄 없는 사람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손해와 고통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역사란 실은 돌이킬 수 없는, 가혹한 것입니다. 개개인에게 각자의 인생이 있고 꿈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되새기면서 지금 다시 할 말을 잃고 단장(斷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런 희생 위에 현재의 평화가 있습니다. 이것이 전후 일본의 원점입니다. 두 번 다시 전쟁의 참화를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사변, 침략, 전쟁, 어떠한 무력의 위협과 행사도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두 번 다시 써서는 안 됩니다. 식민지 지배와 영원히 결별하고 모든 민족의 자결권이 존중되는 세계가 돼야 합니다. 전쟁에 대한 깊은 회오(悔悟)의 마음과 함께 일본은 그렇게 맹세했습니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나라를 만들어 법의 지배를 중시하고 오로지 부전의 맹세를 견지해 왔습니다. 70년에 걸친 평화국가로서의 행보에 우리는 조용한 자부심을 가지면서 이런 변하지 않는 방침을 앞으로 관철해 가겠습니다. 일본은 지난 전쟁에서의 행동에 대해 거듭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해 왔습니다. 그런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동남아 국가, 대만, 한국, 중국 등 이웃 사람들이 걸어온 고난의 역사를 가슴에 새기고 전후 일관되게 평화와 번영을 위해 힘을 다해 왔습니다. 이러한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어떤 노력을 다하더라도 가족을 잃은 분들의 슬픔, 전화로 도탄의 고통을 맛본 사람들의 아픈 기억은 앞으로도 절대 아물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전후 600만명이 넘는 일본인이 아시아 각지에서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고 일본 재건의 원동력이 된 사실을. 중국에 두고 온 3000명 가까운 일본 어린이들이 무사히 성장하고 다시 조국 땅을 밟게 된 사실을. 미국, 영국, 네덜란드, 호주 등에 있던 포로들이 일본을 찾아 전사자들을 위한 위령을 계속해 주고 있는 사실을. 전쟁의 고통을 겪은 중국인 여러분과 일본군에 의해 참기 어려운 고통을 받은 전쟁 포로들이 그토록 관대하려면 얼마만큼 갈등하고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했는지. 그러한 것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관용의 마음으로 일본은 전후 국제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전후 70년을 계기로 일본은 화해를 위해 힘을 써 준 모든 나라,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일본에서는 전후 세대가 인구의 80%를 넘었습니다. 전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의 아들과 손자 등 미래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 일본인들은 세대를 넘어, 과거의 역사와 정면으로 마주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과거를 이어받아 미래에 물려줄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 또 그 부모 세대는 전후의 폐허, 가난의 밑바닥에서 생명을 이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 세대, 나아가 다음 세대들로 미래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조의 꾸준한 노력과 함께 적으로 치열하게 싸운 미국, 호주, 유럽 각국을 비롯한 정말 많은 나라로부터 원한을 초월한 선의와 지원의 손길이 뻗친 덕분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미래에 계속 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의 교훈을 깊이 가슴에 새기고 더 나은 미래를 열어 가면서 아시아, 그리고 세계 평화와 번영에 힘을 다한다는 큰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한계를 힘으로 타개하려 했던 과거를 가슴에 계속 새기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나라는 어떤 분쟁에서도 법의 지배를 존중하고 힘의 행사가 아니라 평화적,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이 원칙을 앞으로도 굳건히 지키면서 세계 각국에도 호소하겠습니다. 유일한 원폭 피해국으로 핵무기 비확산과 궁극적인 폐기를 목표로 국제사회에서 그 책임을 다해 나가겠습니다. 우리는 20세기 전쟁 중 많은 여성의 존엄과 명예가 크게 상처받은 과거를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일본은 그런 여성들의 마음에 다가가는 나라가 되고 싶습니다. 21세기야말로 여성의 인권이 상처받는 일이 없는 시대로 만들기 위해 세계를 이끌어 가겠습니다. 우리는 경제의 블록화가 분쟁의 싹을 키운 과거를 이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일본은 어떤 나라에도 함부로 좌우되지 않고 자유롭고 공정하고 열린 국제 경제 시스템을 발전시키고 개발도상국 지원을 강화해 세계의 번영을 견인하겠습니다. 번영이 평화의 초석입니다. 폭력의 온상이 되는 빈곤에 맞서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의료와 교육, 자립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더욱 힘을 쓰겠습니다. 우리는 국제 질서에 대한 도전자가 돼 버린 과거를 이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인권과 같은 기본적 가치를 확고하게 견지하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손잡고 ‘적극적 평화주의’의 기치를 높이 들어 세계 평화와 번영에 지금 이상으로 공헌하겠습니다. 종전 80년, 90년, 나아가 100년을 향해서, 그런 일본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가겠다는 결심입니다. 2015년 8월 14일 총리 아베 신조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11]=항생제의 두 얼굴-2

     [지난 주에 게재된 ‘항생제의 두 얼굴-1’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는 ‘세균전쟁’의 끝  병원성 세균들이 내성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현상입니다. 사실, 항생제와 세균은 마치 핑퐁게임을 하듯 공격과 방어를 반복적으로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세균이 있으니 약이 개발되었고, 그 약에 괴멸되지 않은 세균은 이미 약 맛을 본 터라 더 강력한 힘으로 무장하게 되고, 여기에 맞서 또다른 약이 만들어지는 시소게임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지요. 인류의 운명을 건 이 전쟁이 쉽게 끝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최근에 자주 거론되는 슈퍼 박테리아가 바로 약의 독성에 맞설 힘을 가진 세균을 뜻한다는 건 다 아는 사실입니다. 병원성 세균이 내성을 갖는 과정을 보면 그들의 영특한 환경 적응력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예컨대, 항결핵 제제를 복용하던 폐결핵 환자가 약을 복용하면서 증상이 완화되자 병이 나은 것으로 착각해 약을 끊으면 그 동안 약에 의해 데미지를 입은 세균들이 ‘죽다가 살아나’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 세균들은 한번 항생제의 위력에 데인 경험이 있어 그 항생제의 특정 효력을 무력화하는 힘(내성)을 비장의 무기로 장착한 채 전선에 재차 투입됩니다. 그러면 아무리 약을 먹어도 병이 나아지기는 커녕 더 악화되는 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지요.  이런 상태에서는 원래 힘이 2∼3 정도인 세균을 퇴치하기 위해 2∼3 정도의 힘을 가진 항생제를 쓰면 될 일을 3∼4나 4∼5 정도의 힘을 가진 항생제를 써야 하고, 이 시소게임으로 항생제와 세균의 위력이 커질수록 항생제와 세균의 전쟁터인 인간의 몸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만약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앞으로 내성이라는 갑옷을 입은 병원성 세균에 감염된 사람은 세균이 아니라 항생제 때문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빈대 잡으려다가 집을 태우는 꼴이지요.  내성은 세균이 가진 가공할 능력입니다. 인간이 만든 어떤 처방이나 대책도 무력화 시키니까요. 문명학자나 세균 전문가들이 “만약 인류가 멸망한다면 전쟁이나 굶주림이 아니라 세균 때문일 것”이라고 예측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만약, 어떤 조건에서도 세균이 원형을 바꾸지 않는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번 약을 경험한 세균들은 스스로 내성균으로 진화하는데, 이 세균들은 옆에 있는 다른 세균에도 내성을 전이시켜 개체를 늘리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더 강한 항생제, 좀 더 강한 항생제를 구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이처럼 같은 세균이 갈수록 강해져 1차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면 일제내성, 2차로 투여한 항생제에도 내성을 가지면 이제내성이라고 하는데, 이런 다제내성균이 벌써 우리 주변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의료계에서는 만약, 세균의 내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인류를 구원한 항생제가 거꾸로 인류를 파멸시킬지도 모르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남을 마지막 저지선 혹은 대안  과학을 너무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과학은 인간이 주도하는 탓에 한계가 분명할 뿐더러 인간처럼 미래를 고려해 작동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는 항상 많은 불안 요인과 직면하거나 불편을 감수하는 까닭에 은연 중에 과학을 믿고 싶어 하지만, 인류는 매일 바라보는 달의 전모조차 모르고 있으며, 암은 커녕 무좀균 하나 어쩌지 못하는 현실적인 한계도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점을 아신다면 “어떻게 되겠지”라거나 “지금까지도 잘 됐잖아”, “설마 나에게…”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일상으로 깊이 들어와 있는 항생제의 두 얼굴을 바로 봐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확실히 항생제는 좋은 약이지만, 좋기만 한 약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항생제의 기능이 좋게 작용하는 선이 어디까지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애매한 문제이지요.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답은 명료해집니다. 우리가 항생제로 밥을 해먹는 것도 아닌데, 그것과 적절히 거리를 둔다는 게 뭐 그리 어려운 문제이겠습니까.  가장 중요하면서도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과제는, 과감히 항생제 의존증을 버리는 것입니다. 왜 감기로 동네 병원엘 가면 “감기 똑 떨어지게 약 좀 세게 지어달라”고 말하거나, 항생제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있어 가능하면 그걸 빼고 처방하려는 의사를 향해 “저 의사는 병 잘 못 고쳐”라고 하는 사람들 드물지 않습니다.  그 말을 뒤집어 보면 “왜 항생제 좀 듬뿍 넣어서 처방하지 않느냐”는 항변이지요. 항생제의 문제를 바로 본 사람이라면 “왜 항생제를 넣었느냐”고 항의해도 부족한 마당에 병원이나 약국에서 항생제를 넣어달라고 떼를 쓰는 형편이니, 그러다가 OECD 국가 중에 항생제 처방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됐고, 급기야 뒷북 잘 치는 정부가 큰 일 나겠다 싶어 항생제 처방률이라는 걸 조사해 남용을 억제한다고 설치고 있지 않습니까.  의사들도 생각 좀 하고 처방해야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의사들은 항생제의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경계하지만, 문제가 있는 의사도 적지 않습니다. 증상이 어느 정도인지, 환자의 신체조건은 어떻며, 어떤 병력이나 일을 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항생제부터 듬뿍 넣고 보자는 식이니, 속 모르는 사람들은 “그 병원 치료 잘 하더라”고 말하기도 하겠지만, 그런 의사들 깊은 반성과 성찰이 필요합니다. 약사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의약분업 이후 약사들은 처방의 책임에서 벗어났다지만, 그렇다고 항생제 문제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요. 일반의약품으로 판매하는 소염진통제 등 항생제류의 약들을 사람들이 너무 쉽게 구해 사용합니다.  정부도 항생제가 위험하다는 생각만 하지 말고, 또 의약 집단이나 제약사들의 볼멘 소리에만 귀기울이지 말고, 당장 항생제 처방 기준을 강화하고, 항생제 조제 심사를 더 꼼꼼하게 해야 합니다. 아무리 ‘국민 건강’을 입에 달고 살면 뭐합니까. 정책 곳곳에 숭숭 구멍이 뚫려 국민 건강을 해칠 독소들이 즐비한데요.  ●지금, 내게 항생제가 필요한지 꼭 물으세요  항생제는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심각한 부작용이 예고됐습니다. 가장 흔한 혈액 부작용을 볼까요. 세부적으로는 백혈구 및 혈소판 감소, 빈혈 등인데, 이런 부작용은 인체의 면역력을 떨어뜨려 다른 질병의 침탈 기회를 늘리는 불이익을 줍니다. 위장관 손상도 빠뜨릴 수 없는 부작용으로 꼽힙니다. 또 과민성 부작용도 종종 나타납니다. 약을 사용한 후에 나타나는 열이나 발진 등이 여기에 해당되며, 드물게 신경계나 심장에 나쁜 영향을 끼치기도 하지요. 물론, 이런 부작용은 항생제 사용을 중단하면 대부분 사라지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병 때문에 장기적으로 항생제를 복용하는 환자를 가만히 살펴 보면, 그 사람의 병태가 지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약제 부작용 때문인 경우도 흔합니다.  약도 건강하려고 사용하는 것인데, 약 때문에 건강을 해친다면 이보다 더 황당한 일도 없겠지요. 모든 약은 독성과 약성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남용하지 않고 충실하게 복약지침에 따를 때는 약이지만, 그 정도를 넘어서면 독이 된다는 뜻입니다. 특히나 항생제는 함부로 사용할 경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전이시키는 무서운 후폭풍을 발휘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병원에 가시거든 이 말을 꼭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게 이 항생제가 꼭 필요합니까? 이걸 빼거나 다른 약으로 대체할 수는 없습니까?”  jeshim@seoul.co.kr
  • [기고] 통일의 꿈, 바로 지금 여기서 시작을/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기고] 통일의 꿈, 바로 지금 여기서 시작을/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년이다. 우리는 정말 앞만 보고 달려왔다. 뒤돌아보면 이뤄 낸 성과가 숱하다. 우선 농촌 혁명과 산업화로 대한민국은 천지개벽했다. 굶주림의 대명사였던 보릿고개는 옛이야기다. 우리 손으로 만든 고품격 제품이 세계에 날개 돋친 듯 팔린다. 한류를 중심으로 한 한국 문화에 세계인이 열광한다. 더욱이 민주주의를 이루고, 경제가 어느덧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 기쁘고 즐거운 일, 슬프고 힘든 일을 숱하게 겪으며 참 장하게 그 세월을 보냈다. 제국주의 일본에 빼앗겼던 나라를 찾아 준 선조들에게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지난 70년 성공의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이뤄야 한다.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통일 대한민국을 실현해 미래 세대에 물려주어야 한다. 통일 실천은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요 역사적 명령이다. 통일은 먼 꿈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시작한다는 실천적 신념으로 추진해야 한다. 분단의 상징 비무장지대(DMZ)의 긴장을 평화로 바꾸고,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해 동북아시아 번영의 기반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반도의 통일은 역사적 필연이라는 확신으로 단단한 디딤돌을 놓아야 한다. 이를 위해 행정자치부는 대성동 마을에서, 휴전선 접경 지역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천 중이다. DMZ에는 남쪽 유일한 민간 거주 지역인 대성동 마을이 있다. 북한 기정동 마을과 1.8㎞ 지척이다. 주민들은 벼농사를 하고 한 학년 4~5명의 아이들이 아담한 학교에서 공부한다. 행정자치부는 이곳을 ‘통일맞이 첫 마을’로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국민들이 직접 마을 구석구석 미래 모습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통일이 되는 날 대성동 주민들은 제일 먼저 강 건너 기정동을 찾아갈 것이다. 휴전선 인근 ‘평화누리길’에도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이 담겼다. 접경 지역의 명소와 자연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트레킹 코스다. 우리를 하나로 잇고자 하는 소망의 길이다. 평화누리길을 걸으면 끊긴 허리를 하루빨리 이어 아름다운 통일 산하를 달리고 싶어진다. 백마고지역과 도라산역까지 이어지는 ‘DMZ 트레인’에 오르면 마음은 이미 압록강까지 달리고 있다. 5월 ‘통일 염원 DMZ 자전거 퍼레이드’에서는 행자부, 경기도, 강원도가 손잡고 경기도 연천에서 강원도 철원까지 가로질렀다. 7월에는 ‘대학생과 함께하는 DMZ 통일열차’를 타고 기차 안에서 젊은이들과 통일의 희망을 이야기했다. 이달 말엔 철원에서 ‘평화누리길 걷기 여행’도 열린다. 통일을 향한 우리의 걸음은 ‘동행’이어야 한다. 시민들도 동참하기로 했다. 정보기술(IT), 금융, 예술 등 각 분야 활동가들이 접경 지역 학생들의 멘토로 나선다. 이들은 대성동 마을을 비롯해 백령도, 대청도, 연평도 등 서해 5도에서 재능 기부를 하고 멘토로서 학생들과 통일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70년의 꿈을 실현해 가야 한다. 남과 북이 하나 되어 살아가는 통일 대한민국이다. 남과 북을 갈라놓은 DMZ의 철조망을 걷는 그날까지 행자부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과 함께 나아갈 것이다.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11]=항생제의 두 얼굴(1)

     만약에 항생제가 없었다면 아마 인류는 멸종했거나, 지금처럼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배적인 위상을 갖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롭고, 강인하다 해도 주변에 너무나 많이 있으면서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냄새가 나거나 소리를 내지도 않는 유령같은 침략자들을 감당할 길이 없으니까요. 우리에게 익숙한 항생제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 바로 세균(germ)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비교적 가까운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콜레라가 한번 창궐하면 전국에서 한꺼번에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멸종’을 떠올릴만큼 전율을 느끼게 하지 않습니까. 멀쩡하던 사람이 픽픽 자빠져 나가는데, 대책은 없으니 엉뚱하게도 무당을 불러 굿을 하거나 부적을 만들어 위기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렇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요.  ‘도성 한양에는 괴질로 죽은 사람의 시체가 도성 성벽보다 높게 쌓였으며,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은 굶주림에 내몰려 아버지가 아들을 죽여서 그 살을 먹고, 아들이 늙은 부모를 잡아먹고 연명을 했다’는 기록이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도 전하거니와 이를 어찌 전쟁의 참화에 비기겠습니까.   ●세균이 왜 무섭나고요?  카이스트 한국과학문명사연구소 신동원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조선 영조 연간인 1730년에 수도 한양 일대에 역병이 퍼져 무려 1만 명이나 사망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당시 한양 인구가 20여만 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스무 명 중 한 명은 숨진 셈이지요. 이 역병은 홍역으로 추정되는데, 홍역이야 바이러스가 원인이니 그렇다 치고, 일반적인 세균에 의한 대표적 질병인 콜레라는 어땠을까요.  역시 신동원 박사의 저서인 ‘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에 따르면, 콜레라(세균 모양은 사진 참조)가 처음 조선에서 유행한 것은 1821∼1822년으로, 사서에는 ‘신사년 괴질’로 기록돼 있습니다. 1821년(순조 21년) 8월 13일 평안도에서 올라온 장계에 따르면, “설사와 구토를 한 후 비틀리면서 순식간에 죽어버렸고, 열흘 안에 1000여 명이 죽었는데, 병에 걸린 10명 중 한둘을 빼고는 모두 죽었다.”고 했습니다. 이 괴질의 특징은 ‘심한 설사와 탈수로 인한 쇼크’였답니다. 또 “전염되는 속도가 불이 번지는 것과 같다”고도 했습니다. 심노숭의 ‘자저실기’에는 그 전파 속도를 “바람처럼 일어나 조수처럼 퍼져 항우의 군대가 휩쓸고 지나가는 것보다 더 빨랐다”고 표현하고 있지요. 이 콜레라 유행으로 수십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콜레라는 그 후에도 몇 차례 더 유행을 했는데, 1858년 유행 때는 50여만 명이 죽었고, 1886년, 1895년에도 수만 명의 희생자를 냈습니다.  다산 정양용은 이 신사년 괴질에 관한 기록을 ‘목민심서’에 남겼는데 “도광 원년 신사년 가을에 이 병이 유행했다. 10일 이내에 평양에서 죽은 자가 수만 명이요, 서울 성중의 오부에서 죽은 자가 13만 명이었다. 증상은 혹 교장사(攪腸沙) 같기도 하고 전근곽란 같기도 한데, 치료법을 알 수 없었다.”라고 적었습니다. 이 정도면 ‘시체가 도성 성벽보다 높게 쌓였다’는 기록을 의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콜레라가 어찌 그 때에서야 처음 나타났을까만, 남아있는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괴질 정도로만 기록된 것도 있어 정확한 병명은 추정할 뿐인 사료도 있고, 잃어버린 자료도 무척 많으니까요. ●도대체 얼마나 죽었길래…  우리나라에서 콜레라는 1660년 이후 집중적으로 발생합니다. 위력이 어느 정도였냐 하면 국가 인구통계를 바꿀 정도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79차례의 역병 기록이 전하는데, 이 중에서 한번에 10만명 이상 죽어나간 경우도 여섯 차례나 됩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2005, 청년사)에 따르면, 어떤 해에는 전국에서 50만명 이상이 사망했는데 이는 전체 인구의 7∼8%나 되는 규모였습니다. 요즘 인구로 치자면 350만∼400만명쯤 되는 수치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감염병으로 나자빠지니 인구 동향에 영향을 안 미칠 수가 없지요. 1807년 조신 인구는 756만 1463명으로 집계됐는데, 이후 역병이 집중적으로 돌아 28년 뒤인 1835년에는 661만 5407명으로 잡힙니다. 약 100만명 정도가 줄었는데, 이 기간에 큰 전화가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역병과 이에 따른 기근이 원인임을 쉽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정도의 인구 감소는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보다 큰 규모이지요. 조선왕조실록은 “구할 방도가 없다”는 기막힌 기록으로 그 때의 참상을 전하고 있습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은 많은 사람이 ‘인류 최대의 재앙’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프랑스에 주둔 중이던 미군 병영에서 시작된 독감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요. 이 바이러스가 제 1차 세계대전 참전병들이 귀환할 때 옮겨져 이후 한 달만에 미군 2만 4000명을 포함해 미국에서만 50만명이 죽어나갔으며, 이듬해에는 영국에서만 15만명이 죽는 등 이후 2년 동안 전 세계에서 최대 5000만명이 죽었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740만명이 감염돼 이 중 14만명 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때 유행한 바이러스가 요즘 자주 듣는 ‘H1N1’형인데,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항생제의 발견이 인류 문명에서 얼마나 위대한 업적인지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세균이 있는 곳에 항생제가 있다  아무튼, 파스퇴르가 세균의 실체를 알아내 현대 의학의 기틀을 다진 이후 인류는 귀신이나 마귀의 장난이라고 여겼던 이전의 무지몽매한 전염병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지만, 파스퇴르가 이룬 과학적 업적이 우리나라로 전파돼 괴질이 귀신의 장난이 아니라 세균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기까지 한 세기가 넘는 세월이 지나야 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특정 질병의 예방책으로 활용하는 백신(vaccine)이라는 말은 파스퇴르가 예방용 접종을 위해 세균으로 만든 약을 뜻하며, 예방접종을 ‘vaccination’이라고 말하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합니다. 물론, 그 전에 제너가 종두법을 개발해 인류를 천연두의 공포에서 구했지만, 임팩트가 파스퇴르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이후 수많은 세균들이 속속 실체를 드러냈고, 인류는 이런 세균들을 제압할 약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인류 역사를 통해 가장 많이 처방되고 사용된다는 항생제입니다. 어떻게 해서 ‘생명체에 맞선다’는 뜻의 항생제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국의 알렉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린이라는 이름의 항생제를 만들어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부상을 당한 군인들을 치료하기 시작한 이후 ‘항생제의 역사’가 곧 ‘문명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이런 항생제가 본격적으로 질병 치료에 사용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전쟁은 인명 살상 뿐 아니라 각종 세균을 전파하는 매개가 되기도 했으니까요.  이후, 항생제는 그 위력만큼 엄청난 속도로 진화를 거듭합니다. 세균이 세포분열을 할 때 세포벽을 만들지 못하게 함으로써 항균작용을 하는 페니실린류에서 시작해 세팔로스포린류,병원균의 단백질 합성을 억제하도록 만들어진 아미노글리코사이드류와 테트라사이클린류, 세균의 DNA에 작용하는 약제로 오늘날에도 흔히 사용되는 퀴놀론류 등 병원성 세균의 특성에 맞춘 다양한 항생제가 속속 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런 항생제들은 매독을 비롯해 디프테리아, 결핵, 콜레라와 장티푸스 등 수많은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지켜왔지만, 문제가 없지 않았습니다. 바로 내성균의 출현입니다.  [다음 주에 게재될 ‘항생제의 반란-2’에서 계속됩니다.]  jeshim@seoul.co.kr
  • 한국판 아우슈비츠…아픔을 그리다, 진실과 마주하다

    한국판 아우슈비츠…아픔을 그리다, 진실과 마주하다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건인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 생존자 한종선(39)씨가 자신의 끔찍했던 경험을 화폭에 담았다. 23일 서울 용산구 ‘공간해방’에서 그의 그림전이 문을 열었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6년까지 부산시 사상구 주례동에서 운영된 사회복지시설로 당시 3164명을 수용했고, 이곳에서 납치·감금·강제 노역·학대·성폭력 등의 무수한 인권 유린이 자행됐다. 확인된 사망자 수만 513명으로 집계됐다. 서울 용산구 해방촌 언덕에 자리잡은 문화공간인 ‘공간해방’. 10평(33㎡) 남짓의 실내에는 20여점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까만색 바탕의 대형 걸개그림에는 새장 속에 갇히고, 족쇄가 채워진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각자 마주하는 장애물들을 그려봤어요. 철조망, 벽돌, 족쇄, 그리고 지하로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등은 제게 있어 ‘세상의 벽’, 즉 저를 향한 사회의 편견, 멸시를 뜻해요.” 그는 1984년 8살에 누나와 함께 형제복지원에 끌려간 뒤 3년동안 강제 노역과 구타, 고문 및 굶주림 등에 시달렸다. 한씨의 그림은 욕설과 마구잡이식 구타 속에 용변도 제대로 못 보고, 성추행을 당하고, 가혹행위를 당한 모든 기억들을 담았다. 그가 그린 그림 속에 등장하는 몽둥이에는 새빨간 피가 묻어 있다. 30여년 전의 기억이지만 그의 과거는 ‘오늘의 고통’으로 남아 있다. 한씨는 “10살 때 한겨울에 손과 발이 묶인 채 세면장에서 차가운 물로 물고문을 당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도 한여름에 찬물로 샤워를 못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2012년 5월~2013년 2월 국회 앞에서 진상 규명을 위한 1인 시위를 하고, 2012년 11월 책 ‘살아남은 아이’에 이어 그림으로 또한번 끔찍했던 기억을 상기시켰다. 한씨는 “고통스럽지만 피해 당사자들이 피해 사실을 기억하지 않고, 알리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면서 “누군가는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시회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아직도 진상이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현재진행형 과거’다. 정부가 현재까지도 진상 조사를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공권력에 의해 개 끌려가듯 형제복지원에 갔던 사람들입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1987년 처음 알려졌을 때 아무런 진상규명 없이 원생들은 사회로 버려졌습니다. 입소자료마저 모두 폐기처분돼 증언조차 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한씨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실을 가리는 ‘보이지 않는 세상의 벽’이 높아 보이지만, 포기하기보다는 느리지만 한 걸음이라도 계속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한씨의 그림전은 다음달 1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글 사진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굶주림 처한 라이베리아 ‘혹성탈출’ 침팬지들

    굶주림 처한 라이베리아 ‘혹성탈출’ 침팬지들

    라이베리아 ‘원숭이섬’(Monkey Island)의 침팬지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12일 AFP통신에 따르면,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의 수도 먼로비아에서 남쪽으로 65km 떨어진 정글에는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이라는 별칭을 가진 6개의 ‘원숭이섬’이 있다. 미국 뉴욕혈액센터(The New York Blood Center)는 이 섬에 서식하는 라이베리아 정부 소유의 침팬지 66마리를 지난 30여 년간 주로 간염 바이러스 연구자료로 이용해왔는데, 이 과정에서 침팬지들의 먹이와 사육도 지원했다. 그러나 2005년 뉴욕혈액센터가 이 연구를 중단하고, 지난 3월 뉴욕혈액은행(New York-based blood bank)이 침팬지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기로 발표하면서 침팬지의 미래는 불투명해졌다. 이에 대해 세계적인 침팬지 전문가 ‘제인 구달’(Jane Goodall)은 지난 5월 뉴욕혈액센터에 “침팬지를 버리고, 심지어 기본적으로 필요한 지원까지 중지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침팬지를 계속해서 돌보는 것이 도덕적 책무”라는 공개 항의서를 전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원숭이 섬’에는 깨끗한 물과 음식이 충분치 않아 침팬지들의 생존 여부가 사람의 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점이다. 다행히 현재는 동물보호단체 미국 휴먼소사이어티(The Humane Society of the United States)가 침팬지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매달 3만 달러(한화 약 3393만 원)의 비용이 들어가 이 또한 후원금 모금이 필요한 형국이라고 AFP는 전했다. 사진=ⓒ AFPBBNews=News1, 영상=Motherboard(2014년 제작된 다큐멘터리)/유튜브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아프리카에도 행복 있어요” SNS 알리기 확산

    “아프리카에도 행복 있어요” SNS 알리기 확산

    아프리카라고 하면 전쟁과 질병, 기근을 떠올리게 된다. 이는 미디어가 모금과 지지 등을 유도하기 위해 이런 점을 자극적으로 묘사해 고정관념이 생기게 했기 때문. 지금까지 미디어를 통해 공개된 사진을 보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어린아이가 굶주림에 울고 있고 주위에는 파리만 들끓는 장면이나 이들의 부모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돈이 될 물건을 찾는 모습이 많았다. 이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아프리카에 동정심을 갖도록 한 것. 이런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아프리카의 젊은이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위터에 특별한 해쉬태그(#TheAfricaTheMediaNeverShowsYou)를 만들어 아프리카를 바로 알리기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메트로 등 외신이 보도했다. 이들은 현재 아프리카가 고통받고 있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 대륙에도 행복과 번영, 활기찬 문화, 그리고 자연미가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관련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이 운동을 처음 시작한 다이애나 살라는 “아프리카를 황량하게 보여주는 부정적인 사진이 내가 내 조국을 부끄럽게 느끼고 자라게 했기에 이런 운동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주요 미디어가 보여주지 않는 아프리카의 아름답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소셜미디어가 최적의 창구였다”고 말했다. 사진=트위터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사설] 北, 인권사무소 적대감 걷고 인권경시 자성해야

    북한이 서울에 유엔 북한인권사무소가 개설된 데 대해 연일 극도의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다. 사무소가 정식으로 문을 연 그제는 보복 조치로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 2명에 대해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는가 하면,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반(反)공화국 인권 모략 책동’으로 규정하고 “철저히 짓뭉개버릴 것”이라고 위협했다. 어제도 강력한 비난 논평을 냈다. 앞서 북한은 선수단을 파견하기로 했던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에도 지난 19일 불참을 통보하면서 북한인권사무소의 서울 개설을 이유로 들었다. 예상했던 반발이긴 하지만 초강경 대응이어서 자못 걱정스럽다. 김정은 정권의 예측불가능성을 감안하면 북한이 자칫 이를 핑계로 도발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북한의 동태를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북한에 왜 그렇게 분노하는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인권사무소 개설은 사실상 북한이 자초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여러 차례 표명해 왔다. 수백만명의 주민이 사실상 자유를 억압당하고 있으며 공개처형 등으로 정권 차원에서 반인도적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숱한 탈북민들의 증언이 뒷받침한다. 이번 사무소 개설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1년여간의 철저한 조사와 검증을 통해 북한 내 반인도적 범죄의 실체를 확인하고 그 책임을 추궁할 조직 설치를 제안한 데 따른 것이다. 국제 사회의 충고를 귓등으로 흘려 사무소 개설의 단초를 제공해 놓고 적반하장 격으로 오히려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은 명백히 잘못됐다. 지금 북한이 해야 할 일은 사무소 개설에 반발하기보다는 왜 국제사회의 비판이 쏟아지는지 내부의 인권경시 정책 등을 살펴보고 시정하는 일이다. 사무소는 앞으로 북한의 인권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그 실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책임 추궁의 역할도 맡게 될 것이다. 북한 코밑인 서울에 개설된 것은 북한에 대한 강한 압박이 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으로선 거북살스러운 사무소 활동이 되겠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길 바란다. 김정은 ‘최고 존엄’의 자존심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라도 주민들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북한 주민들도 굶주림과 고문, 강제 이주 등으로부터 벗어날 권리가 있다.
  • [송혜민의 월드why] 그들은 왜 ‘어린 전사’를 키울까?

    [송혜민의 월드why] 그들은 왜 ‘어린 전사’를 키울까?

    이슬람 극단주의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최근 새로운 선전용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은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얼굴에 복면을 쓴 채 복싱 경기장과 비슷한 커다란 링 안에서 훈련을 받는 모습을 담고 있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링 안에는 키가 작은 아이들이 지휘관으로 보이는 성인 남성으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고 있고, 또 다른 아이들은 유격훈련이 실시되는 외부로 이동되기도 한다. 아이들을 훈련시키는 성인 남성은 바닥에 누운 아이들의 배 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다니고, 아이들은 겁도 없이 머리로 벽돌을 부수는 등 아찔한 훈련을 이어간다. IS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을 현혹하고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어린아이들을 이용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아이들을 납치해 자살폭탄테러에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 왜 IS는 힘없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런 교육과 훈련을 강행하는 것일까. ▲극단적인 종교집단‧사상주의 국가‧군대가 필요한 이들이 선택한 아이들 IS의 ‘차일드 웨폰’(Child Weapon)과 비슷한 사례는 전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종교‧국가를 막론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세뇌교육을 통해 원하는 사상과 관념을 각인시키려 애쓴다. 강력한 공산주의 사상을 강조하는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북한은 교과서를 통해 북한 학생들에게 “김정은은 3살 때 자동차 운전을 했다”라는 내용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세뇌교육을 통한 김정은 우상화의 한 단계다. 2012년 홍콩에서는 친중국 ‘홍색 세뇌 교육’에 반대한 반대 여론이 확산됐다. 홍콩 정부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가 정체성을 고취하기 위한 ‘도덕‧국민교육’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직후였다. 당시 친중국계의 렁춘잉 행정장관은 국민교육이 중국의 현재와 역사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학부모와 교사 단체들은 아이들에게 중국 공산당의 가치관을 주입하는 세뇌교육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소말리아 아이들은 굶주림 속에서 강한 세뇌를 받고 총대를 멨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소말리아 정부는 수백 명의 아이들을 전선에 배치시켰다. 이 아이들은 자신의 키를 훌쩍 넘어서는 장총을 어깨에 짊어지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총알을 장전하며 어른들 사이에 섰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살길이 막막한 아이들에게 전쟁터는 집과 다름없었다. 정부군‧반군 할 것 없이 아이들을 세뇌해 전쟁의 정당함을 강조했다. 위의 사례들은 수많은 아이들이 누구보다도 쉽게 세뇌될 수 있으며, 이러한 특징을 이용한 일부 단체와 국가, 어른들이 각기 다른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아이들을 동원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문제는 어떤 아이들에게 있어서 세뇌는 그저 ‘비폭력적인 교육’에 불과하지만, 일부 아이들에게는 이것이 타인의 목숨까지 좌우하는 강력한 ‘무기’로 변모한다는 사실이다. ▲“어린아이들일수록 피암시성 높아 쉽게 세뇌당해” IS같은 극단적인 무장단체가 작고 힘없는 아이들을 동원하고, 선전용 영상까지 만들어가며 더 많은 아이들을 끌어들이려 하는 것은 이들의 관념과 사상을 조종하는 것이 비교적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피암시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피암시성이란 타인의 암시에 빠지는 성질을 뜻한다. 타인의 암시를 받아들여 자신의 의견이나 태도에 반영하는 성질이다. 예컨대 점을 보러 무당을 찾았을 때 무당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쉽게 동조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피암시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배지수 정신과 전문의는 “피암시성은 문화적 또는 개인의 차이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나이가 어릴수록, 권위의 차이가 클수록 피암시성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어른이 아이에게, 혹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특정 관념을 주입하려할 때 피암시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비판적인 사고(思考) 시스템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분석할 능력이 없다. 특히 폭력적이고 상하관계가 명확한 상황이라면 아이들이 현혹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사람을 죽이는 잔혹한 행위에 대한 정당성 역시 쉽게 받아들여질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리고 작은 손과 날카로운 총‧칼은 어울리지 않는다. 종교와 사상, 문화적 차이를 떠나, 모든 아이들이 아이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길 희망한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서울&평양 경제 리포트] “3년내 1억 벌자”… 북한 新부유층 급부상

    [서울&평양 경제 리포트] “3년내 1억 벌자”… 북한 新부유층 급부상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달 27일 ‘2015 세계의 식량 불안정 상황 보고서’를 통해 “2014년부터 2016년 사이 영양 부족 상태인 북한 주민이 1050만명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 인구의 41.6%에 해당된다. FAO는 지난 3월에는 북한에 필요한 곡물량이 40만 7000t으로 올 10월까지 부족분을 충당해야 주민들이 굶주림을 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우려와는 대조적으로 북한 내부에서 일반 주민이 상상하기 어려운 사치생활을 즐기는 계층도 늘고 있다. 2400만 북한 주민 가운데 수도 평양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는 사람들은 약 20만~30만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평양 주민이 300만명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가운데 약 10분의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부유층’을 형성한 셈이다. 지난 4월 평양을 다녀온 재미교포출신 대북사업가는 5일 “공화국이 돈만 있으면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사회로 변한 지는 오래됐지만 요즘처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심하게 나타난 적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외화벌이 종사자들과 이들로부터 달러를 상납받고 있는 간부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돈주’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돈주들은 기본적으로 당 간부들과 담합관계를 유지해왔다. ●평양 5억~11억 부자 급증… 20만~30만명 추정 1990년대 이전 배급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는 임금과 배급으로 생활을 영위했기 때문에 고위간부들을 제외하고는 일반 주민들 사이의 빈부격차가 심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 경제위기로 배급체계가 붕괴되고 시장경제가 확산되면서 구매력을 갖춘 이른바 ‘부자’가 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평범한 계층 출신으로 장사나 사채업 등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당이나 기업소 간부 등 전통적인 상류층보다 더 많은 재산을 모아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들이 수년간 하나의 사회 계층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들을 전통적인 상류층과 구분해 북한 사회의 ‘신(新)부유층’으로 분류하고 있다. 중국이나 중동 등 해외로 파견돼 외화를 벌어온 노동자들도 구매력을 갖춘 부유층으로 분류된다. 특히 중동지역으로 파견된 북한 의사나 기술자의 대다수는 수년 전부터 ‘3년 동안 10만 달러(약 1억 1000만원) 벌기’를 목표로 삼을 만큼 많은 돈을 모은 사실은 북한 사회에선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외화벌이 의사 등 가세… 1인 5만원 음식점 북적 현재 평양 부유층의 재산은 평균 10만 달러 수준이며 50만∼100만 달러(약 5억 5000만~11억원) 수준의 재력을 지난 부자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부유층이 늘면서 이들을 겨냥한 고가 업소들도 등장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8월 평양 르포기사에서 북한 매체가 ‘인민의 낙원’이라고 선전하는 문수 물놀이장을 소개하며 입장료는 북한 돈 2만원(약 10달러), 이곳에서 판매하는 햄버거(북한 말로는 ‘고기겹빵’) 가격은 1만원(약 5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물놀이장에는 안마실·자외선치료실 등 각종 편의시설과 서양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고급식당도 들어섰다. FT는 평양 시내 곳곳에서 아우디·폴크스바겐·BMW·벤츠 등 고급 외제차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북한이 자랑하는 평양의 최신식 주민편의시설 ‘해당화관’은 한 끼에 1인당 50달러를 넘는 비싼 음식 가격에도 사람들이 붐벼 발 디딜 틈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의 경우 구찌, 발리, 프라다, 폴로, 아디다스, 나이키, 뉴발란스 등 해외 유명 브랜드 소비도 크게 늘고 있다. 아파트를 고급 인테리어와 가구로 꾸미며 부유한 생활을 과시하는 주민들도 증가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일부 지방 부호 평양 구경 와 외제 명품사냥 신의주, 평성, 원산, 남포 등 지방의 부자들은 자체 구입한 버스로 평양 구경에 나서기도 한다. 비싼 돈을 내고 평양의 고급 호텔에 묵으면서 문화오락시설을 즐기고 호텔과 외화상점에서만 파는 명품들을 대량 구입해 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서양음식은 적어도 부유층에게는 더이상 낯선 음식이 아니다. 2008년에는 평양에 스파게티와 피자를 파는 정통 이탈리아 요리 전문식당이 등장했다. 한때 당 간부들의 특권으로 여겨졌던 서양 요리가 최근에는 돈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게 됐다. 북한에서는 여전히 외부세계와의 인터넷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북한 내부에서 통용되는 자체 인트라넷을 활용하는 태블릿PC와 스마트폰이 꾸준히 출시되고 휴대전화 보급도 지난해 5월 기준으로 200만명을 돌파하는 등 정보통신에 대한 주민들의 욕구도 높아지고 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 중산층은 오랜 기간 꾸준히 부를 축적해왔지만 김정은 체제 이후 북한 당국이 부의 출처를 캐내기보다는 이들의 소비를 유도하는 정책을 펴면서 최근 부상한 것”이라며 “다른 개발도상국과 마찬가지로 빈부격차 문제를 피할 수 없겠지만 이들 중산층은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중심 계층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흥 부유층의 등장에도 고질적 빈곤과 인권문제는 여전하다. 무엇보다 무역이 활발한 중국 접경지역이나 평양에 부가 집중되면서 오히려 지역·계층 간 격차는 날로 심화하는 추세다. 북한 내 고질적 빈부격차에 대해서는 여러 증언이 있지만 소위 중산층 이상이라고 볼 수 있는 대중 무역종사자들 사이에서도 이를 인정하는 기류다. 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박정란 카자흐스탄 유라시아국립대 한국학과 교수가 3월 발표한 연구 보고서 ‘김정은 시대 북한사회 변화 실태’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5월까지 중국에 체류한 북한 주민 100명 가운데 98명이 ‘빈부격차가 크다’고 답변했다. 지역 간·계층 간 빈부격차는 또 다른 사회문제로 확산된다. 계층 간 갈등이 ‘증오 범죄’로 이어지는 셈이다. 2008년 탈북한 강모씨는 함경북도 청진에서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은 당 간부 한 명이 이웃에게 ‘갑(甲)질’을 하다가 칼에 찔려 사망하는 등 빈부격차와 지위고하로 인해 발생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고 증언했다. ●‘꽃제비’ 문제 여전… 인신매매 희생 여성 늘어 이와 함께 ‘꽃제비’로 불리는 고아들도 여전히 지방을 전전하며 인간 이하의 삶을 살지만 국가로부터의 보호는 꿈도 꿀 수 없다. 일부 북·중 국경지역에서는 고아들에게 돈을 주면서 마약밀매에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중국 공안 당국에 적발돼도 북한 당국이 방치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북한여성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도 문제로 지적된다.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자유아시아방송은 지난 4월 “김정은 체제 들어서도 탈북여성에 대한 인신매매 행위가 암암리에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중국 지린성 지방에서 탈북자 구출활동을 하고 있는 정모씨는 “중국 인신매매단이 북한 군인들과 짜고 어린 북한여성들을 중국으로 도강시키고 있다”면서 “나이 먹은 여성은 1만 위안(약 2000달러 수준), 나이 어린 20대 여성들은 2만~3만 위안(약 4000~6000달러 수준) 정도”라고 증언했다. 중국 노총각들에게 팔려간 북한 여성들은 현재 중국 허베이성과 헤이룽장성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이들이 낳은 아이들의 신분이나 국적 문제가 중국 내 또 다른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기도 한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에볼라 고아들, 굶주림에 죽음·성매매 내몰려

    에볼라 고아들, 굶주림에 죽음·성매매 내몰려

    에볼라 바이러스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일부는 음식을 얻기 위해 성매매, 조혼 등에 내몰리고 있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 자선단체 ‘스트리트 차일드’ 조사팀이 시에라리온에서 이달 말쯤 우기가 찾아오기 전에 작물을 재배하도록 파종하지 못한다면 기근 상황은 악화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 단체는 이미 보고서를 통해 에볼라 바이러스 발병국인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로 부모를 잃고 자신의 힘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고아가 1만 2000명에 달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특히 이들 고아는 에볼라에 걸린 것으로 낙인 찍혀 지인들로부터 거부됐으며, 굶주림 끝에 자살이나 성매매로 내몰리고 있다고 한다. 조사팀을 이끈 존 프라이어는 “많은 농촌 지역 사회가 에볼라 바이러스 때문에 격리돼 농장을 잃었고 이들은 진정으로 고통받고 있다”면서 “그 결과 이들은 전통적인 기근 시기인 우기 이전에 심을 것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고아를 비롯한 많은 취약층은 심지어 우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굶주렸다”며 “여기에 더해 앞으로 수확할 것이 없는 그런 잠재적 결과는 끔찍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만일 수확을 하지 못한다면 가장 취약한 계층은 굶주리게 될 것이다. 이는 포트 로코 지역의 키그발에 살았던 이브라힘(13)과 아미나타(10)라는 이름의 두 남매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두 남매는 모두 에볼라 때문에 부모를 잃었고 21일간 격리돼 있었다. 삼촌 모하메드 라민은 격리 기간 농장을 잃었고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라민은 “격리 기간 농장을 잃어 그들에게 많은 음식을 줄 수 없었다”며 “음식을 내 세 자녀와 나눠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굶주린 시간이 길어지자 두 소녀는 눈에 띄게 말랐고 결국 지난 2월 이브라힘이 먼저 목숨을 잃었고 한 주 뒤 아미나타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두 남매의 어린 동생들인 제인(8)과 파타마타(3)는 다른 마을에 격리돼 있었고 몇 주 뒤 언니를 잃은 키그발로 돌아왔다. 라민은 농장을 잃었기에 벌목업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번 돈으로 가족 모두 하루에 겨우 한 끼를 먹으며 살고 있다. 아이들은 모두 영양실조를 겪고 있다. 제인은 “난 내 오빠언니가 굶주려 죽은 사실을 알고 있어 두렵다”며 “난 음식과 옷이 필요하지만 삼촌은 가진 것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또한 많은 아이가 기존 가족을 대신해 줄 다른 가족을 찾기 위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택하고 있으며, 일부는 굶주림에 성매매에 내몰리고 있다. 아버지를 잃은 16세 소녀 마리아투는 가족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성매매에 나서 임신하기에 이르렀고, 부모를 모두 잃은 17세 마사 세새이는 격리된 자신의 집을 지키고 있던 군인 중 1명에게 성폭행을 당할 위기에 처하는 등 매우 취약한 상황에 노출돼 있다. 스트리트 차일드의 톰 대나트와 켈파 카르그보 공동 대표는 성명을 통해 “이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이미 늦었지만 너무 늦은 상황은 아니다”면서 “시에라리온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나우! 지구촌] “돌아봐주세요” 에볼라가 남긴 고아들, 굶주림에 죽음·성매매

    [나우! 지구촌] “돌아봐주세요” 에볼라가 남긴 고아들, 굶주림에 죽음·성매매

    에볼라 바이러스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일부는 음식을 얻기 위해 성매매, 조혼 등에 내몰리고 있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 자선단체 ‘스트리트 차일드’ 조사팀이 시에라리온에서 이달 말쯤 우기가 찾아오기 전에 작물을 재배하도록 파종하지 못한다면 기근 상황은 악화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 단체는 이미 보고서를 통해 에볼라 바이러스 발병국인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로 부모를 잃고 자신의 힘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고아가 1만 2000명에 달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특히 이들 고아는 에볼라에 걸린 것으로 낙인 찍혀 지인들로부터 거부됐으며, 굶주림 끝에 자살이나 성매매로 내몰리고 있다고 한다. 조사팀을 이끈 존 프라이어는 “많은 농촌 지역 사회가 에볼라 바이러스 때문에 격리돼 농장을 잃었고 이들은 진정으로 고통받고 있다”면서 “그 결과 이들은 전통적인 기근 시기인 우기 이전에 심을 것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고아를 비롯한 많은 취약층은 심지어 우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굶주렸다”며 “여기에 더해 앞으로 수확할 것이 없는 그런 잠재적 결과는 끔찍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만일 수확을 하지 못한다면 가장 취약한 계층은 굶주리게 될 것이다. 이는 포트 로코 지역의 키그발에 살았던 이브라힘(13)과 아미나타(10)라는 이름의 두 남매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두 남매는 모두 에볼라 때문에 부모를 잃었고 21일간 격리돼 있었다. 삼촌 모하메드 라민은 격리 기간 농장을 잃었고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라민은 “격리 기간 농장을 잃어 그들에게 많은 음식을 줄 수 없었다”며 “음식을 내 세 자녀와 나눠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굶주린 시간이 길어지자 두 소녀는 눈에 띄게 말랐고 결국 지난 2월 이브라힘이 먼저 목숨을 잃었고 한 주 뒤 아미나타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두 남매의 어린 동생들인 제인(8)과 파타마타(3)는 다른 마을에 격리돼 있었고 몇 주 뒤 언니를 잃은 키그발로 돌아왔다. 라민은 농장을 잃었기에 벌목업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번 돈으로 가족 모두 하루에 겨우 한 끼를 먹으며 살고 있다. 아이들은 모두 영양실조를 겪고 있다. 제인은 “난 내 오빠언니가 굶주려 죽은 사실을 알고 있어 두렵다”며 “난 음식과 옷이 필요하지만 삼촌은 가진 것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또한 많은 아이가 기존 가족을 대신해 줄 다른 가족을 찾기 위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택하고 있으며, 일부는 굶주림에 성매매에 내몰리고 있다. 아버지를 잃은 16세 소녀 마리아투는 가족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성매매에 나서 임신하기에 이르렀고, 부모를 모두 잃은 17세 마사 세새이는 격리된 자신의 집을 지키고 있던 군인 중 1명에게 성폭행을 당할 위기에 처하는 등 매우 취약한 상황에 노출돼 있다. 스트리트 차일드의 톰 대나트와 켈파 카르그보 공동 대표는 성명을 통해 “이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이미 늦었지만 너무 늦은 상황은 아니다”면서 “시에라리온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수십번 담금질마다 서린 장인 손끝 ‘세월의 온기’

    [명인·명물을 찾아서] 수십번 담금질마다 서린 장인 손끝 ‘세월의 온기’

    우리 선조들의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대장간이 겨우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읍·면마다 한곳 이상 있었으나 1980년대 들어 기계화 영농이 보편화되면서 하나둘 사라져 가고 있다. 한강·임진강·한탄강 등이 흘러 비옥한 농토가 산재한 한수 이북(경기 북부)에도 풀무질을 해가며 직접 손으로 두드려 낫·호미를 만드는 대장간이 고을마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근수(70)씨의 ‘파주대장간’이 유일하다. 파주 광탄시장 부근에 있다. 대장간 안은 매우 좁다. 겨우 38㎡(약 12평) 한쪽에 화덕이 있고 그 옆으로 모루와 각종 집게 등 작업도구들이 걸려 있다. 호미·낫·쇠스랑 등도 시렁에 쭉 걸려 있다. 마치 옛 농기구 박물관 같은 느낌이다. 한씨는 평생 해온 대장장이 일을 천직으로 생각한다. 대장장이 길로 들어서게 한 ‘곽산대장간’ 시절을 잊지 못한다. 요즘 만드는 물건에도 곽산대장간을 의미하는 ‘山’(산)자를 새겨 그 정신과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옛날 대장간의 모습과 지금 대장간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예전에는 낫 한 자루를 만들려면 철근을 잘라 화덕에 수십 번 담금질하고 모루에 대고 망치로 두들겨 모양을 잡아가는 과정을 거쳤지만, 지금은 기계가 두들김질을 대신하죠.” 이로 인해 낫 한 자루를 만드는 데 30분 정도가 걸린다. 화덕에 담금질을 12번 정도 하고 마지막에 물에 담가 강도를 높이면 완성된다. 한수 이북 마지막 대장간의 문을 차마 닫지 못하고 야장(冶匠)의 맥을 지키는 한씨는 1945년 파주 장단의 진동면 초리에서 태어났다. 6세 때 한국전쟁이 일어나 폭격으로 부모를 잃고 1·4 후퇴 때 누이, 남동생, 여동생 등 4남매와 정든 고향을 떠나 금촌 수용소 마을(현 금촌초등학교 근처)에 정착했다. 그러나 젖먹이였던 남동생이 죽고 뒤를 이어 여동생마저 굶주림으로 숨지고 말았다. 그는 금촌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서울 문래동에 사는 큰 아버지 댁으로 들어가게 된다. 큰아버지의 소개로 인근 영일동 곽산대장간에서 일을 배우게 됐다. 당시 14살의 어린 나이었지만 평생을 ‘업’으로 여기며 살게 된 대장장이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건축자재를 전문으로 생산하던 곽산대장간은 주로 건축에 필요한 꺾쇠 등을 만들었다. 20여명의 직원들 속에서 가장 어렸던 한씨에게 주어진 일은 풍구질. 화덕에 불을 지피며 눈치껏 다른 일들을 배워 나갔다. “한 10년 하니까, 대장장이가 갖춰야 할 웬만한 기술은 다 할 수 있겠더라고요.” 당시 곽산대장간 주인 김지명씨는 고향인 평안도 곽산을 대장간 이름으로 썼다. 곽산대장간에서 만든 물건에는 모두 ‘山’을 새겼는데 당시 서울에서는 꽤 소문나 있었다. 한씨의 대장장이 기술은 김지명씨로부터 전수받았다. 이 때문에 한씨는 지금도 ‘山’이란 로고를 쓰고 있다. 한씨는 유일한 피붙이인 누이가 혼인해 파주 용주골에 정착하자 1970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파주 법원리에 있는 ‘법원리대장간’으로 일터를 옮겼다. 당시 25살 청년의 눈에 비친 법원리대장간은 서울의 곽산대장간 분위기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시골이라 농기구 만드는 일이 주된 일이었다. 손에 익숙지 않은 일들이었으나 눈치껏 일을 배워 나갔다. 첫 월급은 22㎏짜리 밀가루 4포를 살 수 있는 3000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씨의 눈에 동료들이 낫자루 끝을 마무리하는 낫 당개미(나무로 된 낫 손잡이가 쪼개지지 않도록 자루 끝에 끼우는 고리 모양의 쇠붙이)를 몹시 어렵게 많은 시간을 허비해가며 만드는 것을 보게 됐다. 한씨는 당개미의 재료인 두꺼운 쇠판을 오릴 수 있는 가위를 만들면 작업 속도가 매우 빨라질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주인의 허락을 받아 낫 당개미 전용 가위를 만들자 작업이 한결 수월해지고 낫을 생산하는 속도 역시 매우 빨라졌다. 대장간 주인은 월급을 1만 5000원으로 5배 올려줬다. 그로부터 5년 후 한씨는 인접 마을인 광탄면 신산리 ‘파주대장간’으로 자리를 옮겼고, 3년이 지나자 이곳의 주인이 됐다. 1970년대 중반 당시 파주에도 새마을운동 바람이 거셌다. 농사일에 필요한 농기구 수요 역시 급증했다. 닷새마다 열리는 광탄 장날은 대목 중 대목이었다. 장날 하루에만 호미를 2만개나 팔았다. 혼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직원 5명을 두고 일을 했지만 물량을 맞출 수 없어 다른 곳에서 구입하다 팔기까지 했다. 낫도 연간 1만개가량 팔려나갔으며 당시 인근 군부대에 도끼를 비롯한 여러 도구를 납품하기도 했다. “그때가 가장 호황을 누렸지요. 자녀 다섯을 대장간에서 번 돈으로 공부시켰으니까.” 그러나 호황도 잠시. 1980년대 들어서면서 기계화 영농이 시작되고 농약(제초제)이 보급되면서 호미·낫을 비롯한 농기구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더욱이 큰 기업들이 기계로 찍어 내더니 5년여 전부터는 값싼 중국산까지 밀려들어 오면서 8000원짜리 호미는 연간 20개, 1만 5000원 하는 낫은 200개 정도만이 팔리고 있다. “중국산 호미가 3000원, 낫이 5000~7000원 합니다. 어쩌다 한 번 사용하는 호미와 낫을 5배, 2배씩 더 주고 사겠어요? 그렇다고 가격을 내릴 수도 없죠.” 요즘도 대장간을 찾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예전에 문전성시를 이뤘던 30~40년 전과 달리 한가롭기만 하다. 워낙 수입이 없어 기계로 만든 다른 철물들도 구색을 갖춰놓고 팔고는 있으나 한 달 수입이 고작 100만원도 안된다. 현실은 이래도 한씨는 한 번도 대장간 문을 닫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매일 같이 불을 지폈던 화덕은 이제 주문이 있거나 광탄 장날에만 가끔 불을 지피곤 한다. “나까지 돈 안된다고 문을 닫으면 한수 이북에 대장간은 아예 씨가 마르게 되는 거예요.” 글 사진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사설] 오바마·카스트로 세기적 만남, 김정은은 봤는가

    우리 시간으로 어제 새벽 파나마에서 세기의 만남이 이뤄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파나마 수도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화해의 손을 맞잡은 것이다. 라울의 친형 피델 카스트로가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킨 1956년 이후 60년간 계속돼 온 양국의 적대 관계에 마침표를 찍는 역사적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와 더불어 지구촌에 남은 냉전체제의 낡은 상흔 두 가지 가운데 하나가 마침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 사건인 것이다. 두 정상의 회담이 양국 관계 정상화로 이어지기까지 걸림돌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당장 쿠바에 대한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문제가 쉽사리 풀리지 않고 있다. 어제 회동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당장 해제하겠노라고 답하지 못했다. 북한·시리아 등과 연결된 쿠바의 무기 거래가 여전히 투명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장애 요소에도 불구하고 화해·협력의 길로 들어선 양국 관계의 커다란 물줄기가 다시 역류할 것으로 볼 수 없음은 분명해 보인다. 돌아보면 올 들어 지구촌은 국제 안보질서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를 맞고 있다. 이란과 서방세계의 핵 협상 타결이 대표적이다. 미국 등 6개 주요 서방국들이 이란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대신 이란은 진행 중인 핵 개발을 전면 중단하기로 합의하면서 1979년 이란 혁명과 함께 시작된 미국과 이란의 적대 관계 또한 상호협력을 모색하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악의 축’ 세 나라의 하나로 지목한 이란과 반세기 넘도록 중남미 반미(反美) 전선의 맏형으로 군림해 온 쿠바가 역사의 우연이라 할 만큼 거의 동시에 미국을 향해 화해의 깃발을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리비아와 베트남, 미얀마 그리고 지금 이란과 쿠바에 이르기까지 지난 몇 년간 서방세계와 화해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선 나라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피폐한 국민들의 삶을 더는 이대로 놔둘 수 없다는 국가 지도자의 결단이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완력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국민들의 굶주림을 더는 방치할 수 없기에 그들은 화해와 개방을 택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위해 그 권좌에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 부둥켜안은 핵으로는 결코 주민을 먹여 살리지 못한다. 자신의 체제를 보장받을 수 없음 또한 물론이다.
  • ‘아이컨택’ 하는 새끼 오랑우탄들… “반가워, 친구”

    ‘아이컨택’ 하는 새끼 오랑우탄들… “반가워, 친구”

    난생 처음 ‘친구’를 만난 새끼 오랑우탄들의 귀여운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새끼 오랑우탄인 ‘부디’(Budi)는 태어나자마자 동남아시아 말레이제도에 있는 보르네오 섬의 좁은 닭장에 갖혀 학대를 당하던 중, 지난 해 12월 영국 동물보호단체의 도움을 받아 자연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당시 생후 12개월이 갓 넘은 부디는 오랜 기간의 학대와 굶주림으로 건강상태가 매우 악화돼 있었지만, 동물보호가들의 정성어린 보살핌 끝에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화제가 된 사진은 부디가 역시 버림받았다가 구조된 또 다른 새끼 오랑우탄인 ‘제미’(Jemmy)를 처음 만난 뒤, 두 오랑우탄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감동스러운 장면을 담고 있다. 현재 국제동물보호단체(International Animal Rescue)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는 새끼 오랑우탄 들은 눈을 마주치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난을 치며 노는 등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부디와 제미의 사진을 공개한 국제동물보호단체 측은 “오랜 학대를 받아 온 부디는 새 친구를 보고서도 매우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다가가서 스킨십을 시도했고 이내 즐거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전했다. 이어 “적응기가 지나면 점차 ‘인간 보모’의 손길을 줄여나갈 예정”이라면서 “생후 8개월 된 제미와 함께 두 오랑우탄을 야생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제동물보호단체는 여전히 학대당하고 있는 오랑우탄이 많다면서, 이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구조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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