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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근해·원양어업 실태와 문제점

    ◎수산업/어족고갈·인력난·노후선박 “3중고”/어획량 줄어 출어 포기… 양식장도 적자로/90년이후 각국 규제강화… 원양어업 위기/어가소득 농가의 85% 수준… 해양오연도 날로 심각 13일 상오 청정해역으로 이름난 경남 남해군 설천면 감암리마을.한달전 광양만에서의 선박사고로 어떤 재난보다 더 무서운 「기름띠」가 할퀴고 지나간 이곳은 그때의 악몽이 채 가시지 않은 듯 67가구의 주민들이 깊은 시름에 빠져 있었다.해안과 선착장 등에는 검은기름이 남아 있었고 만선의 깃발을 휘날리던 고깃배들이 출어를 포기한채 닻을 내리고 있었다.굴·바지락의 공동양식장은 아예 「폐허」로 변해버렸다.「총체적위기」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수산업의 현장은 어딜가나 이와 크게 다를바가 없다. 치어까지 훑어낸 결과인 어자원고갈,청정해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극심해진 바다오염은 물론 세계의 자국어장 보호정책으로 수산인들은 안팎으로 가혹한 어업전쟁을 치르고 있다.벼랑끝에 서 있는 우리 수산업계의 실태와 문제점을 긴급점검해 본다. ▷어업현황◁ 우리나라 수산업은 91년 기준 생산량 세계 10위,수출규모 6위의 수산대국이다.그러나 86년 3백65만t인 많은어획의 생산량을 기록하는 등 꾸준히 양적·질적으로 발전해오던 수산업은 지난91년 2백98만t을 생산,생산량과 수출이 모두 하향추세로 돌아섰다. ○생산·수출 하향세 전국 연근해 어획물량의 30%를 취급하고 있는 부산 공동어시장의 경우 90년 33만7천t이던 위탁판매 실적이 92년 27만t으로 뚝 떨어졌다.고기잡이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 성산포수협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11만8천㎏을 기록한 옥돔 어획량이 올해 같은 기간에는 무려 40%정도 감소한 7만㎏에 불과해 어민들이 한숨만 내쉬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 동해의 명태잡이도 마찬가지.지난 86년 3만6천여t이던 명태 생산량은 해마다 감소,92년에는 12%선인 4천5백t으로 격감했다. 이 때문에 명태잡이로 생계를 꾸리던 거진·속초 등지의 어민들이 도시로 떠나 86년 5만3백41명이던 강원도내 어민이 92년 3만6천5백23명으로 줄었다. 따라서 70년대 다른산업부문과 비슷한 수준을 나타내던 어가소득도 80년 이후 농가나 도시가계 소득에 비해 낮아져 92년말 어가소득은 평균 1천2백37만1천원으로 농가의 85%,도시근로자의 75% 수준으로 떨어졌다. ○어장 황폐화 확산 어촌의 이어현상은 산업화와 어업의 규모화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으나 우리의 경우 「고기가 없으니 바다를 떠난다」는 이유도 크다는 현실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연근해 어업자원 고갈◁ 60년대 20만㎦이던 어로가능 해역이 어로장비의 과학화와 어로기술의 개발,어선규모의 증대로 최근들어 85만㎦남짓으로 4배이상 넓어졌다. 국립수산진흥원 증식부 박병하부장(57)은 『어장은 넓어졌으나 70년대 중반 3.59Mt/㎦이던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최근에는 2Mt/㎦이하로 감소했다』고 걱정했다. 우리나라 주변 수역에는 우리나라를 비롯,일본·중국·북한·대만의 어선들도 출어하는데 이들 나라에서 잡는 어획량이 한해 9백만t을 웃돈다고 볼때 전세계 해면어획량 8천4백56만t의 11%정도에 달한다. 좁은 어장에서의 남획으로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은 물론 수산자원의 재생산마저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이에 따라 갖가지 수산물이 분포해있는 서해안의 경우 어획물에 대한 종류별 조성비율은 지난 65년 고기류가 80%이상을 차지했으나 최근 50%이하로 감소한 반면 10%미만에 불과하던 새우·게류는 최근 어획물량의 20%이상을 차지하는 등 생태계 변화가 물밑에서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원양어업 실태◁ 국내 원양어업은 70년말까지만 해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비유될만큼 호황을 누렸으나 ▲선원부족과 자금난 ▲연안국들의 어업규제강화 ▲해양환경보호 강화추세로 조업에 어려움을 겪는 등 날로 상황이 악화되고있다. 77년 미·소 양대국이 2백해리 경제수역을 선포,자국의 수자원보호에 나선 이후 92년말 현재 세계 1백44개 연안국 가운데 1백13개국이 앞다투어 바다의 빗장을 꼭꼭 잠그고 있다.이들 연안국은 수산자원보호와 함께 자국의 연근해 어업의 생산성 증대를 꾀하는 이른바 「길러서 잡는 어업」의 시대로 발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국내소비는 늘어 지난해말 현재 5대양에 나가있는 우리나라 원양어선은 모두 7백59척으로 한해 98만4천t의 각종 수산물을 잡아들였다.이는 국내 소비량의 31%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지금까지 원양어업은 초창기인 60년대 어획량이 한해평균 10만t 수준에 머물렀으나 80년대부터 정부의 집중적인 투자 등 국내외의 호조건에 힘입어 93만여t까지 증가하다 90년대들어 어획량이 줄어들고 있다. 황금어장으로 각광을 받아오던 알래스카·베링해 등 북태평양의 어장에서의 어자원고갈과 함께 대폭적인 입어조건 강화로 우리 원양업계는 러시아 캄차카수역과 남미의 페루·아르헨티나 수역등지에 새 어장을 확보하는데 총력을 쏟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우 쿼터량의 40%에 달하는 막대한 입어료를 선불로 요구하는 등 연안국들의 까다로운 규제가 일반화되고 있는 추세다. 페루어장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 총 9백만달러의 입어료를 지불하고 허가만기일인 지난 2월17일까지 이곳에 출어한 원양어선 18척이 척당 1천3백t∼1천6백t밖에 잡지못해 3백만달러의 막대한 외화손실을보기도 했다. ▷문제점◁ 식생활 패턴이 바뀌면서 지난 80년 1인당 27㎏이던 수산물소비량이 지난해 40.5㎏으로 급증하고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의 58%를 차지할 만큼 수산물의 비중은 커지고 있다.따라서 수산업의 위기는 수산분야 종사자의 문제만이 아닌 식량수급 차원에서 중대한 현안이 되고 있다.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인력 및 장비부족.「3D기피현상」에 따른 선원부족과 70%이상이 노후화된 선박은 무엇보다 가장 시급히 해결돼야 할 과제로 꼽히고 있다. 이와 함께 ▲간척·매립 및 공장폐수등에 따른 근해연안의 오염과 ▲빈번한 선박사고와 기름유출 ▲남해안의 부영양화 현상에 따른 적조 등도 고기가 살기에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있다. 경남도의 경우 적조로 인한 피해는 지난 90년 42회 발생에 3억6천여만원,92년 21회 발생에 1백94억원의 막대한 손해를 보았다. 경남 통영군 산양면 학림어촌계 이용균씨(54)는 『갈수록 고기가 잡히지않는다』면서『올해의 경우 이상기온으로 수온까지 안맞아 어촌계 공동으로 운영하는 양식장의 고기도 제대로 자라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어획고 절반 감소 특히 경기·인천지역의 경우 최근 해마다 어획량이 20%이상 감소하고 있다.지난해 통(2척)당 2억5천만∼3억원의 어획고를 올렸으나 올해는 절반수준인 1억2천만원∼1억5천만원에 불과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면서 어민들의 상당수가 폐업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오폐물에 의한 바다오염도 심각하다.부산 남항의 경우 86년 오물·폐유·분뇨 등 오폐물 2천6백17t을 수거했는데 지난해에는 4배 가까운 8천5백여t을 수거했다. 부산시에서 18명의 인력과 청소선 3척·오물운반선 2척을 동원,깨끗한 바다관리에 힘쓰고 있으나 해마다 늘어나는 오폐물을 완전히 제거하는데는 역부족이었다. ◎전문가 의견/「기르는 어업」으로 전환을/수산외교 강화… 원양업 지원해야/김용문 국립수산진흥원 연근해어 자원과장 『수산업의 불황타개를 위해서는 정부당국 어업관계자 등이 혼연일체를 이뤄 수산발전을 도모해나가야 합니다』 국립수산진흥원 연근해어자원과 김용문과장(55·연구관)은 최근 위기에 처한 수산업의 회생을 위해서는 정부·어민·소비자 모두가 「바다는 나의 것」이라는 공동체의식을 갖고 수산자원을 지키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로기술발달·시설현대화·첨단기기개발 등에 힘입어 수산물 총생산량은 해마다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에 있지만 인건비 등 부대비용의 상승으로 단위노력당 생산량은 오히려 감소,채산성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수산업계의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또한 지난 70년대만 하더라도 어민소득이 다른 산업부문과 비슷한 수준을 보여왔으나 80년대 들어서는 농가나 도시근로자 가계소득에 비해 훨씬 떨어져 어업종사자들이 크게 줄어들고 있는 점도 수산업침체와 무관하지 않다고 덧붙혔다. 따라서 어민들의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당국의 정책적인 뒷받침이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수산자원보호를 위해 『치어남획금지 및 해양환경보호대책 수립 등 어업관계자들의 인식전환이 시급하다』면서 『현재 전체 생산량의 20%남짓을 차지하고 있는 양식어업의 확충도 수산업의 불황타개에 커다란 도움이 될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정부의 지원을 촉구했다. 이와함께 선박들의 기름유출사고에 따른 해양오염,무분별한 간척·매립,불법어로 등도 수산자원을 고갈시키는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이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단속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원양업계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차원의 수산외교를 강화하는 한편 업계의 신상품 개발을 통한 수출 촉진 및 경영다각화 등 자구책 모색도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과장은 『현재 1차산업수준에 머물러있는 수산업을 미래산업으로 육성하기위한 학계의 연구활동과 이를 뒷받침하는 자금지원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초겨울 영양식 돼지고기 별미요리

    ◎양돈협·식생활개발연,요리강습회서 20여가지 선보여/채소밥/채썰어 야채와 볶은후 육수붓고 가열/편육쌈냉채/얇게다져 구운 고기로 재료 돌돌 말아/굴소스볶음/높은 온도에서 튀겨 양념넣고 볶아내 돼지고기는 우리몸에 꼭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과 지방산이 듬뿍 들어 있으며 당질대사에 없어서는 안될 비타민B¹이 쇠고기의 10배나 들어있는 영양식품이다.특히 광산노동자들의 진폐증을 예방해주고 차량 매연등 각종 공해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겐 해독작용을 해주는 건강 식품으로 우리나라 총육류 소비량의 60%를 차지한다. 초겨울 영양식으로 손꼽히는 돼지고기 요리강습 및 시식회가 대한양돈협회 주최,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 주관으로 12일 서울 63빌딩 코스모스홀에서 열렸다. 돼지고기는 한약복용시 금기식품으로 알려져 있는 동시에 여름같은때는 「잘먹어야 본전」이란 말도 있는데 주최측은 그것이 돼지고기에 대한 편견에서 나온 얘기로 돼지의 내장 염통 간 쓸개 지라 족발등이 한약재의 중요한 원료로 사용 되고 있는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밝혔다.또 여름철 돼지고기 문제는 냉장고가 없던 옛날 돼지고기가 상하기 쉬운 식품이었던데서 나온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이날 돼지고기 요리 강습 및 시식회에서는 돼지고기를 이용한 채소밥,꼬치볶음밥,김치만두등의 주식류를 비롯해 김치전골 감자탕 장산적 모듬튀김등 20여종의 요리가 선을 보였다. ▷돼지고기채소밥◁ 불린쌀 4컵·돼지고기 1백50g·표고버섯 6장·양송이 8개·당근 반개·양파 1개·우엉 1백g·완두 4분의1컵·육수 4컵·청주 2큰술·간장 1큰술·콩기름 2큰술·후추·양념장.쌀은 씻어 불려 놓고 돼지고기는 4㎝길이로 채썰어 놓는다.표고도 불려 줄기를 뗀후 채썰고 양송이는 엷은 소금물에 씻어 껍질은 벗기고 모양을 살려 썬다.당근은 3㎝길이 7㎜폭에 3㎜두께로 썰고 양파도 같게 썬다.우엉도 똑같이 썰어 물에 여러번 씻어 건지고 냄비에 콩기름을 두르고 뜨거워지면 썰은 돼지고기를 볶다가 나머지 야채를 넣어 볶으면서 간장 청주 후추로 간을 한다.여기에 쌀과 완두를 넣고 육수로 밥물을 부어 끓으면 불을 줄이고 뜸을들여 밥을 지은후 양념장에 비벼먹게 한다. ▷돼지고기 편육쌈냉채◁ 돼지고기 3백g·쑥갓 50g·배 오이 당근 각 반개씩·무순 40g·대파·콩기름·고기양념·겨자즙.돼지고기는 5㎝폭에 10㎝길이로 얇게 썰어 칼등으로 두들겨 놓았다 고기양념을 하여 재워둔다.팬에 콩기름을 두르고 뜨거워지면 고기를 한장 한장 굽는다.쑥갓은 짧게 잘라 두고 배 오이 당근은 5㎝길이에 젓가락 굵기로 썰며 배는 설탕물에 담궜다가 건진다.대파는 채썰고 무순은 씻어 건진다.구워진 고기에 쑥갓을 비롯한 배 오이 당근 대파의 재료를 조금씩 놓고 말아서 접시에 돌려 담고 가운데 겨자즙을 놓는다. ▷돼지고기 굴소스볶음◁ 돼지고기 2백g·마늘 3쪽·모란채와 꽃양배추는 60g씩·붉은고추 1개·굴소스 3큰술·콩기름·녹말·고기양념.돼지고기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고기양념을 넣고 무쳐 간이 배면 녹말을 뿌려 촉촉하게 스며들게 한후 섭씨 1백70도로 끓는 콩기름에서 노릇하게 튀겨 낸다.마늘은 편으로 썰고 모란채 꽃양배추는 쪽을 떼어먹기 좋은 크기로 갈라 놓는다.붉은 고추는 길이로 잘라 씨를 털고 큼직하게 썬다.프라이팬에 콩기름을 두르고 마늘을 넣어 지글지글 끓여 향이 우러나면 모란채 꽃양배추 붉은고추를 넣고 볶다가 돼지고기를 넣어 볶는다.여기에 굴소스를 넣고 간하여 볶으면서 녹말물(녹말 1큰술,물 1큰술을 섞는다)을 부어 빨리 볶아 그릇에 담아낸다.
  • 특별상 박정원씨/13회 농어촌 청소년 대상

    ◎굴·돌김 채묘법 개발 보급… 과학영어 선도 『무엇보다 뿌린대로 거두게 해 준 바다의 정직성이 고마울 뿐입니다』 김과 미역품종 개량 및 전복 육상수조양식 성공등 획기적인 과학영어를 이끌어 특별상(서울신문사 사장상)을 받게된 박정원씨(33·전남 진도군 의신면 만길리)는 『모든 것이 불가능을 가능하도록 만들어준 넉넉한 바다 덕택』이라며 모처럼 밝게 웃었다. 박씨의 이번 수상은 재래적인 어업방식에 메달려온 영세어가들에게 구습을 깨고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는 다각적인 영어방법을 새롭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되고 있다. 김·미역시설 1백책에 한해 소득 5천2백만원,전남 서남부지역 굴 자연채묘 최초 성공,전복육상수조양식 2백50평에 올 2억4천만원 소득 예상 등등.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고 고향을 등진 박씨가 귀향을 서두른 것은 지난 86년. 허름한 목선 한척에 인생을 건 그는 이듬해인 87년 정부로부터 6백만원의 후계자지원자금을 받아 곧바로 김과 미역양식에 들어갔다. 몇해 경험으로 만족할만한 소득을 올리지 못한 박씨는 김품종 전환과 미역시설방법 개선이 시급함을 깨달았다. 당시 자연채취되던 희귀한 돌김을 채묘,대량양식에 들어가는 한편 미역종묘개량으로 품종차별화를 통해 5천여만원의 고소득을 올리는데 성공했다. 특히 이 지역 어민들이 경남지역 등에 의존해 오던 김 종묘를 수차례의 현지견학과 연구를 거듭한끝에 직접 생산해 내는데 성공했다. 그는 요즘 전복수조양식과 어민후계자 자생조직을 결성해 기술보급에 한창 바쁘지만 늘 책을 가까이 하는 연구자세엔 변함이 없다.
  • 해산물 요리 전문 서초동 「왕돌짬 해물탕」(맛을 찾아)

    ◎홍게·소라·문어 해물탕 얼큰하고 개운/물가자미회·삶은 대하는 “해물의 참맛” 서울 서초동 뱅뱅사거리에 있는 해물요리 전문집 「왕돌짬 해물탕」에 들어서면 바다냄새가 나는 듯하다. 스킨 스쿠버 경력 14년의 주인 최석도씨(36)가 해산물의 진가를 서울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지난 4월 문을 열었다는 이집은 비록 지하에 위치했지만 사방 벽에 그려진 바다그림의 낭만적인 분위기와 맛,주인의 친절,그리고 강남지역에 어울리지 않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음식으로 벌써부터 유명세를 타고 있다. 「왕돌짬」은 속초에서 포항바다사이에 있는 수중 돌바위산중 울진군 후포항에서 울릉도 사이에 있는 거대한 바다산을 후포항 주민들이 일컫는말.해산물의 집단 청정 서식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후포가 고향인 최씨가 깨끗하고 맛있는 해산물을 공급한다는 뜻으로 상호를 왕돌짬으로 지었다고 한다. 후포항을 비롯,동해안의 항구에서 배가 들어오는 즉시 수송업을 하는 최씨의 매형이 해산물을 싣고온다.이것이 신선도를 유지하고 싼 가격으로 음식을 낼수있는 비결이라고. 이집에서 유명한 음식은 물론,홍게를 삶아낸 맛국물에 대합 홍게 소라 돌문어등을 넣고 끓이는 해물탕(2∼3인분 중간냄비 1만8천원,큰냄비 3만원).얼큰하고 시원한 맛을 즐긴뒤 손님이 원하면 공기당 5백원을 받고 남은 국물에 야채와 참기름등을 첨가,볶아 주기도 한다.이외에 게장비빔밥(5천원)과 물가자미등 30여종의 회(1접시 1만원),해물국수(2천원)등도 빼놓을 수없는 자랑거리다. 게장비빔밥은 삶은 홍게 등껍질의 게장에 밥을 비벼,남은 몸통으로 끓여내는 탕과 다리살을 곁들여 먹는 맛이 일품. 생돌미역을 곁들여 초장에 찍어먹는 물가자미회와 각종 모듬회,5∼6마리 2만원의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있는 대하의 깔끔한 맛도 좋다. 11월 초쯤엔 울진군의 제1종 공동어장과 계약,자연산 홍합과 굴을 선보일 예정으로 있다는 주인 최씨는 음식궁합에 대한 공부도 계속해 해산물이 갖고 있는 보약성분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요리에 반영하겠다고 한다.음식을 먹는 이외에 스킨스쿠버에 대한 상담까지 할 수있는 이색적인 집이다.상오 11시부터 자정까지 영업하며 연중 무휴.02­569­63 93.
  • 남해안 양식장 4천㏊ 황폐화/광양만 기름 유출 사고

    ◎광어·돔 등 죽은채 떠올라/해안엔 기름범벅,갯벌 30㎝까지 스며 【여수·남해=남기창·강원식기자】 전남 광양만 해상 선박충돌사고로 흘러내린 기름은 사고발생 7일째인 3일 해상의 기름덩어리는 대부분 제거됐으나 양식장 및 어장 4천여㏊가 거의 황폐화돼 피해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광양만 유류유출사고 대책위」(위원장 이균범전남지사)」는 이날 해경방제선·경비정 등 1천5백여척의 선박과 1만2천여명을 동원,이 일대 해상에 남아 있던 7백여t의 부유기름을 대부분 수거했다. 그러나 해안가 암벽과 방파제 등에는 조류에 밀려온 기름찌꺼기가 깊숙이 붙어있어 제거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책위 관계자는 『해안가에 엉겨붙은 벙커C유가 점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를 완전히 제거하는데는 최소한 2∼3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고로 남해안 일대 굴·고막·바지락·새조개 등 양식장이 거의 폐사위기에 놓여 있어 피해액은 수백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양식장뿐 아니라 고기잡이 어선들의 피해도 심각해 경남 남해군10개 어촌계 마을 앞에는 7백80여척의 각종 어선들이 아예 출항을 포기한채 정박해 있다. 여천시 묘도동 온동마을의 어촌계장 정종권씨(45)는 『공동어장에서 자라고 있는 자연산 새조개·피조개·굴·바지락 등이 폐사직전에 놓여 있으며 물속에서 자라고 있는 미역·톳·우무·청각 등 해조류도 폐사할 것이 뻔하다』면서 『갯벌속으로 30㎝까지 기름이 스며들어 앞으로 최소한 3년간은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해역인 여수시 만흥동과 오천동 일대 새고막 양식장 1백15㏊와 바지락 정치망 가두리 양식장 5㏊등 20여㏊도 시커멓게 변해가고 있다. 경남 고현면 화전마을의 경우 일본수출로 연간 4억원의 수입을 올렸으나 기름유출로 굴·피조개 양식장 1백20여㏊가 완전히 쓸모없게 됐다. 이밖에 경남 하동군 금남면,금성면,진교면 가두리양식장에서는 양식하던 농어·광어·돔 등이 죽은채 떠오르고 있어 어민들을 실의에 빠뜨리고 있다. 한편 대책위는 피해지역을 직접 확인해 정확한 피해액을 산출하는 한편 사고선박의보험사직원과 해상오염 전문가,관계어민들과 함께 보상협의에 들어갔다.
  • 남해안 기름오염 확산/광양만 선박충돌/경남 앞바다까지 번져

    【여수=남기창기자】 전남 광양만 앞바다에서 화물선과 충돌한 유조선으로부터 유출된 벙커C유가 28일 사고해역에서 전남 여천을 비롯,경남 남해안 앞바다까지 확산돼 남해안일대를 크게 오염시켰다. 사고 유조선 제5금동호(5백32t·선장 김박남)의 4개 벙커C유 저장탱크 가운데 3번과 4번 탱크가 파손돼 이날까지 1천여t의 기름이 바다에 유출됐다. 여수해양경찰서는 벙커C유로 인한 바다 오염을 막기위해 방제정 4척과 어선등 모두 45척의 선박과 2백80여명의 병력을 동원,오일펜스를 설치하는 한편 기름이 유출된 해역에 기름 흡착제등을 뿌리며 기름제거 작업을 벌였다. 또 유출된 기름띠가 경남 남해안 해안까지 밀려오자 충무 해양 경비대도 방제정과 경비정 10여척을 동원,오염지역 확산방지에 나섰다. 해경은 기름 오염해역이 워낙 넓어 유출된 기름을 제거하는데 4∼5일 이상이 걸리고 파손된 탱크에서 기름이 계속 유출되고 있어 기름제거및 기름띠 확산방지에 어려움을 겪었다. 해양경찰은 이날 날이 어두워지면서 기름제거및 확산방지활동을 중단하고 29일 상오 재개키로 했으나 유출된 벙커C유를 완전히 제거하는 데는 앞으로도 20여일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이번 기름 유출사고로 경남 남해일대 굴·바지락·김양식장 1백18㏊,공동어장 7백98㏊,정치망어장 12㏊등 1천여㏊와 전남 광양만의 피조개 바지락등 패류 양식장등이 기름오염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 김일성 정권수립 45돌행사 불참(북한 이모저모)

    ◎흥남비료공장 생산공정 현대화 ○각종행사 규모 대폭 축소 ○…북한은 정권수립 45주년(9월9일)과 관련해 올해가 소위 「꺾어지는 해」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행사규모나 내용면에 있어 지난 88년 40주년과 비교해 대폭 축소,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정권수립 기념일 하루전에 거행된 경축보고대회의 경우를 보면 지난 88년 40주년때에는 김일성이 직접 참석,「주체의 혁명적 기치를 높이들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자」는 제하의 보고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고수를 위한 총력경주를 강조했으나 올해 45주년에는 김일성은 불참하고 총리 강성산의 보고로 대신했다. 또한 행사의 규모나 내용면에 있어서도 40주년때에는 각종 기념전시회·전람회는 물론 「9·9절」 직전 3일간에 걸쳐 평양서 「전국영웅대회」(9월2∼4일)를 개최했으며 그해 2월부터 전개한 「2백일 전투」를 통해 거의 1년내내 정권수립 40주년을 대대적으로 맞이하자는 분위기를 고조시켰었으나 올해는 영화상영주간·이동미술전시회·청년학생들의 웅변 및 연단대회 등이고작이다. 해외사절단의 경우도 88년 40주년때에는 중국 국가주석 양상곤,당시 소련 KGB의장 체브리코프,후사크 체코대통령,마다가스카르 대통령 등 10여명의 국가수반급을 포함,1백30여개국 3백60여 대표단을 평양에 초청했으나 올해의 경우 「국제김일성상」위원회 관계자들과 조총련 방북단 등을 제외하고는 「9·9절」사절단은 전무하다. ○풍서호등에 여객선 운항 ○…북한은 지난 정권수립 45주년(9월9일)를 맞아 양강도내 풍서호 및 초도섬 주민들이 교통난 해소를 위해 여객선 「은정 18­2호」,화물선 「은정 18­2호」,화객선 「사양산호」등의 운항을 시작했다고 평양방송이 9일 보도했다. 김정일 명의로 하사된 이들 선박들 가운데 「은정 18­1호」와 「은정 18­2」는 대규모 댐건설로 수위가 높아진 풍서호수 상류의 문조리·임서리·노흥리(이상 풍서군)주민들과 풍서임산사업소산하 8개 벌목작업소 사람들,광산촌 사람들의 교통난을 해소,과거 풍서읍으로 가기 위해 1백40여개의 굴을 통과해야만 하던 것을 80리 뱃길을 이용,30분이면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또한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의 사적지가 있는 사양산의 이름을 단 화객선 「사양산호」의 경우는 4백㎦ 규모의 초도섬 주민들의 교통편의를 위해 마련됐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선진 질소정류 설비 갖춰 ○…북한 최대규모의 흥남비료연합기업소(함흥소재)변류직장 현대화공정이 완료되어 7일 조업식을 진행했다고 중앙방송이 8일 보도했다. 북한은 이날 변류직장 현대화 공정 조업과 관련,노동당중앙위 명의의 축하문을 전달했는데 변류직장 현대화 공사는 『새로운 선진적인 질소정류설비를 설치해 이전의 공정을 현대화한 거창한 공사』라고 밝히고 오는 「10월5일 자동화종합공장」에서 설계를 맡아 조작이 편리하고 효율이 높은 수십대의 현대적인 전해형 규소정류기를 만들고 이를 직접 조립하는 한편 수천점의 낡은 설비를 해체,새로운 설비를 설치하고 변압기를 개조해 능률을 높이는 공사를 진행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흥남비료공장의 변류직장이 현대화됨으로써 ▲위생적이고 문화적인 작업환경을 보장해 주고▲전력과 경영용 자재를절약하며▲비료생산을 증대시킬 수 있게 되었다면서 전체 비료공장 종사자들에게 생산공정의 현대화에 주력할 것과 자체의 기술·기능수준을 높이고 표준조작법을 제대로 지켜 비료생산을 정상화할 것을 촉구했다.
  • 싱가포르 첫 민선대통령 옹텅청(뉴스인물)

    ◎화교학교 출신… 중국계의 얼굴 29일 싱가포르 사상 최초의 민선대통령으로 뽑힌 옹텅청 당선자(57)는 건축가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뒤 전국노조평의회(NTUC)의장,부총리,집권 인민행동당(PAP)당수등을 역임한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 싱가포르의 중국계 고등학교에서 수학한 옹 당선자는 호주의 애들레이드 대학을 졸업한뒤 영국의 리버풀 대학에서 도시설계를 전공,석사학위를 취득했다.그의 첫번째 직업은 건축가였으나 72년 정계에 투신하기 전까지 정부의 도시설계 건축가로서 공직에 몸을 담았다.75년 이후엔 통신·노동·문화부장관을 두루 거친뒤 85년에 부총리에 임명됐다. 옹 당선자는 특히 화교학교 출신이라는 배경과 함께 중국 문화및 언어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는 점 때문에 주로 외국에서 수학한 지도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싱가포르에서 중국계 지역사회를 대표할 인물로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꿈나무 장학기금 진돗개가 키운다/소년탐험대 소속 4살박이 「해진」

    ◎5차례 새끼분양… 280만원 조성/국토탐험 참가,어린이도 보살펴 진도개 한마리를 재원으로 어린이장학회가 운영돼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소년탐험대(대장 강원규)는 지난 91년6월 어진옥장학회를 설립,불우어린이 장학사업 기금을 모으고 있는데 이는 한 진도개가 5차례에 걸쳐 낳은 새끼 26마리를 가정에 분양하고 얻은 사례금을 토대로 한 것 이다.지금까지 모은 돈은 2백80여만원으로 앞으로 5백만원이 모아지면 본격적인 장학사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자신의 새끼들을 이용, 어린이장학사업에 앞장서고 있는 이 화제의 개는 4살배기 암 진도개 「해진」이.89년 해남 땅끝 토말에 어린이국토종단탐험 기초답사를 갔던 강대장이 진도에 들렀다 한 농가에서 얻은 것으로 「해남과 진도」에서 한자씩 이름을 따서 해진이라 이름 지었다. 해진이는 91년 우수진도견선발대회에 나가 5위에 입상할 정도의 명견.어린이들을 매우 좋아해 어린이들과 뒹굴며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고 아무리 짓궂게 굴어도 어린이는 절대 물지 않는다. 또한 발바닥에 피가 나면서도한국소년탐험대에서 실시하는 3회에 걸친 어린이국토도보횡단탐험과 종단탐험등에 참가,어린이들을 보살폈다.일행을 안전한 길로 인도하고 짐을 지키며 낯선 사람들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해진이의 주임무. 이같은 해진이의 충절과 선행이 알려지면서 해진이는 탐험대본부가 있는 서울 옥수동일대의 명물로 떠올랐다.해진이의 「장학사업」을 아는 근처 식당아주머니들은 해진이가 들르면 사람들조차 먹어보기 힘든 좋은 부위의 고깃덩이만을 줄 정도다. 특히 검소하게 생활을 꾸려가는 서민이 대부분인 이 마을사람들은 장학사업에 동조,성의껏 돈을 갹출해서 장학기금을 불려주었다.어진옥장학회(02­297­5577)라는 명칭도 어린이·진도개·옥수동에서 한자씩 따온 것.
  • 「이반」의 삶/이성은 원불교 기획실장(굄돌)

    톨스토이(1828∼1910년)는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 문호이자 19세기의 탁월한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그는 「전쟁과 평화」 「안나카레니나」와 같은 명작 뿐만 아니라 교훈적인 민화도 많이 남겼다. 동화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바보 이반의 이야기」는 자신이 바라는 삶의 자세를 표현한 것으로 보여진다.하지만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반이 열심히 일해서 어느 정도의 재산을 모아놓자 악마가 끼어든다.악마는 먼저 이반 형제들에게 재산 분쟁을 일으키도록 한다.이반을 바보라고 얕보는 형제들의 재산 싸움은 이반이 정말 바보스러울 정도로 끝없이 양보함으로써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악마들은 지속적으로 이반의 형제들을 못살게 굴지만 이반의 도움으로 형제들은 재기하곤 한다. 형제들을 파멸시키기에 실패한 악마들은 이반을 집중적으로 괴롭힌다.그러나 이반의 우직스러울 정도의 정공과 사랑의 힘에 의하여 악마들은 힘을 잃고 만다.이반을 중심으로 하여 이반의 집안에는 부와 행복이 가득해진다. 이반은말한다.『손에 못이 박힌 사람은 따뜻한 밥을 먹어도 되지만 못이 박히지 않은 사람은 먹다 남은 찌꺼기만을 먹어야 한다』고. 최근 자기 몫에 대한 목소리가 너무 높다고 우려하는 소리가 들린다.지역이기주의등 집단이기주의가 염려된다고 한다. 도로를 개설하려 해도 민원,쓰레기 매립장을 만들려 해도 집단거부,심지어는 전신주 하나 옮기려 해도 민원에 부딪치게 된다고 한다.공장 설립도 그렇다.온갖 노력으로 유치하면 지역 땅값이 솟는다.그래서 좋은 조건을 찾아 기회만 있으면 외국에 공장을 세우려고 한다.국내 고용효과가 감소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는 것이 곧 오는 것이 되고 오는 것이 곧 가는 것이 되며,주는 사람이 곧 받는 사람이 되고 받는 사람이 곧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만고의 변함없는 상도』(대종경 인과품 1장)라는 말씀을 음미하면서 이반의 삶을 그려본다.
  • “무지개는 당간부 정부” 성문란 풍자은어 유행(북한 이모저모)

    ◎동명왕릉 복원하다 고구려 수차 최초로 발굴 ○물자 구입위해 몸팔기도 ○…북한사회내 성문란과 관련,각계층별로 이를 풍자하는 신종 유행어가 등장하여 주민들사이에 널리 확산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북한사회에 성을 풍자한 유행어가 널리 유포되고 있는 것은 최근들어 당고위층 간부로부터 일반주민,심지어 고등중학생에 이르기까지 『못하는게 머저리다』라는 식으로 성에 대한 도덕의식이 엷어진데다 경제사정 악화로 식량·생필품·의류등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 몸을 파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월남한 귀순자가 밝힌바에 따르면 일반주민들 사이에서는 『북조선에서 숫처녀를 찾으려면 탁아소에나 가봐라』·『당간부가 여비서 두번만 부르면 벌써 일난 것이다』등의 조소어린 성풍자어가 널리 유행하고 있고,당정고위간부들 사이에서는 『모부장은 7∼8색 무지개를,모부부장은 5색 무지개를 보유하고 있다』는 등의 유행어가 구전되고 있다고 한다. 무지개란 당정고위 간부들의 정부를 일컫는 은어인데 최근 북한의 당정고위 간부들 사이에서는 축첩현상이 일반화 돼있다고 한다. ○옥수수 수술자르기 주력 ○…옥수수가 주민들의 식량수급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북한은 최근 옥수수의 소출을 높이기 위해 「옥수수 수술자르기」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속칭 「개꼬리뽑기」로 불리는 이 작업은 일반적으로 종자개량을 위해 열등종의 수술(개꼬리)을 제거,우등종의 수정을 돕는 것이데 북한의 경우엔 일반재배농장에서 영양부족으로 인한 생육저하를 막아 소출을 늘리기 위해 이같은 작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관련,북한은 해당 지도·감독기관을 내세워 각지 농장들의 작업시기 등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노력을 집중시켜 개꼬리뽑기를 섬멸전의 방법으로 해제끼게 하고 있다』고 정부기관지 민주조선 최근호가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개꼬리뽑기」는 작업시기를 잘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일선 지도간부들이 직접 일선농장에 나가 작업을 독려할 것을 강조했다. ○날개 8개 달린 8각형 ○…북한은 동명왕릉 복원작업 진행중에 처음으로 고구려시대 수차를 발굴한 것으로 조총련기관지 조선신보 최근호가 보도했다. 이 신문에 의하면 김일성대학 발굴조사단은 이번 동명왕릉 복원작업에서 정릉사우물과 각종 철제품·목각제품·토기등 1천여점의 유물을 발굴했는데 이들중 8개의 「살」(날개)에 나무바가지를 단 8각형의 수차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와관련,북한 역사학계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수차사용시기가 고려말∼조선초기로 알려져 왔으나 이 수차발굴로 고구려시대부터 수차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새로이 밝혀지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 나의 집(외언내언)

    세계가 아무리 넓다해도 제집처럼 편안하고 아늑한 곳은 없다.슬플때도 기쁠때도 나의 집이 제일이다.하루종일 업무와 노동에 시달려도 집에 돌아오면 모든 시름과 피곤이 눈녹듯 사라진다.집은 휴식이고 마음의 평화다.또 집은 그 자체가 가정이다.작아도 커도 그것이 내집일 때의 안심과 위로는 집을 가진 사람만의 특별한 감정이다. 고래등같이 큰집도 좋지만 바라크같은 우거라도 무슨 상관이랴.「학문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비록 오막살이라도 부끄럽지 않다」는 옛말이 있다.그곳에 담긴 향기로운 지식은 눈부신 치장에 비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그위에 가족의 웃음소리,따뜻한 차한잔,편안한 잠자리가 있다면 더 바랄게 없을 게다. 남산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서울시내 사면팔방 모두가 집이다.성경에 따르면 「여우도 굴이 있고 새들도 거처」가 있다.눈에 밟히는 것마다 집이건만 나의 집은 없다.이것이 집없는 사람의 설움이다. 원로 영문학자이며 주옥같은 수필을 쓰는 금예 피천득씨는 『술 담배도 손에 대지않고 반찬가게에 외상진 일도 없으며 월급을미리 당겨쓴 일도 없지만 의식주 셋중에서 「주택」때문에 가난을 느낀 때가 있다』고 쓴적이 있다.아무리 좋은 음식 값진 옷을 입어도 만약 집이 없다면 뿌리없는 나무와 같으리라. 주택은행이 전국23개도시 4천여가구를 대상으로 한 「주택금융수요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도시인구는 평균 8.8년만에 내집을 마련하는 것으로 응답하고 있다.주택규모는 18.3평.그러나 38.5%가 34.4평이상의 주택규모를 원하고 있다.신경제5개년계획 주택난해결부문에 보면 현재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은 76%.70년대에 이미 100%를 넘은 미국 일본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 상태다. 집의 크고 작기에 앞서 10년안에 집을 가질 수 있다는건 행운이라 할 수 있다.최근 2년동안 집값이 하락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집없는 사람이 많다.집이 아무리 커도 그곳에 「화목」과 「인정」이 없으면 집으로서 의미가 없음을 기억하고 있어야겠다.
  • 강원 탄광지역/레포츠·관광단지로 개발

    ◎정부/폐광따른 지역경제 공동화 막게/특정지역 지정… 민자 적극유치/연탄값 현실화·정부 지속 지원/동해에 화전건설,석탄수요 유지 정부는 태백·정선 등 강원도내 탄광지역을 국토건설종합계획법상의 「특정개발지역」으로 지정,각종 세제와 금융지원 등을 통해 이들지역에 스키장 등 스포츠·레저및 관광시설을 적극 유치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13일 상공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석탄산업합리화조치로 인한 비경제탄광의 정비로 일부 탄광지대의 지역경제 공동화현상이 심화됨에 따라 탄광촌의 개발과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해 탄광지역을 민자유치개발이 가능한 특정개발지역으로 고시하는 방안을 건설부와 협의하고 있다.지역개발촉진을 위해 강원도 남부를 관통하는 국도의 확장과 포장사업도 가능한 빠른 시일내에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들지역을 국토종합계획법상 특정개발지역으로 지정할 경우 「특정지역개발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이곳에 투자하는 민간기업에 각종 세제와 금융상의 지원을 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상공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강원도내 탄광지역의 경우 지리적 여건 때문에 공단유치가 쉽지 않아 스포츠나 레저시설의 유치를 통한 지역개발이 바람직하다』며 『이같은 사업추진을 위해서는 민자유치가 절대적인만큼 이곳에 투자하는 민간기업에 금융·세제상의 혜택을 부여할 수 있도록 정책지원이 강구돼야 한다』고 말했다.특정개발지역에 따른 개발촉진지구로 지정되면 개발사업자에게는 취득세나 등록세 등이 면제되며 국고보조와 사업자금지원의 혜택이 주어진다. 정부는 이와 함께 석유사업기금과 재정의 지원을 통해 동결하고 있는 연탄가격을 내년이후부터는 단계적으로 현실화하되 적정수준에서 정부지원은 지속하기로 했다. 올해 마무리하게 돼 있는 비경제탄광의 폐광사업도 계속 추진,올해부터 97년까지 7백50만∼9백만t을 줄여나가는 반면 경제탄광을 육성,97년까지 생산성을 현재 1인당 1.75t에서 3.2t으로 끌어올리도록 채탄기계와 운반장비를 현대화하기로 했다.이를 통해 기계화율을 올해 68%에서 97년까지 82%로 높이는 한편 석탄의 수요유지를 위해 강원도 동해시에 98년 준공을 목표로 20만㎾급 무연탄발전소 1기를 건설할 예정이다. 이밖에 올해부터 97년까지 태백시,정선·영월·삼척군 등 4개 시군을 대상으로 시가지도로정비 등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관광권개발과 광공단지조성도 지속 추진하기로 했다.광공단지는 최근 마련한 신경제5개년계획에 따라 태백 화전·정선 신동·삼척 도계·정선 한골 등 4개지역(단지당 1만5천∼3만평,단지당 사업비 30억원)을 추가조성하고 내년부터 1백억원을 투자,정선 화암종류굴과 삼척 대이리의 종류굴을 개발하기로 했다.
  • 일,돈황유적 복원 앞장/막고굴 벽화 복제품 전시센터 완공 눈앞에

    자기나라 땅도 아닌 중국의 서역 돈황유적보존에 나선 부국 일본의 노력이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중국의 머나먼 서쪽 변경에 자리한 돈황은 지중해까지 이르는 옛 실크로드의 관문.그 옛날 중앙아시아는 물론 인도·아르메니아·그리스·이탈리아 출신의 담대한 상인 캐러밴들은 끝없는 사막길을 헤치면서 실크로드 곳곳에 점재한 시장들을 섭렵한 뒤 비단길행정을 마감하고 또 새로 시작하곤 했었다. 사막 한가운데에 펼쳐진 돈황문화의 찬란한 보물섬은 시남동쪽 20㎞ 지점에 자리한 막고굴유적이다.무려 4백92개에 달하는 인조석굴군들을 총칭하는 막고굴은 동굴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품덩어리라 할 수 있다. 4세기부터 1천년간의 장구한 세월에 걸쳐 다듬어지고 가꾸어진 막고굴에는 2천점이 넘는 불상과 연면적 1만4천평의 벽화가 전해 내려온다.그러나 영상 44도에서 영하 28도 사이를 간단없이 오르내리는 사막기후로 석굴의 벽들은 침식당하고 3만명의 외국여행객을 포함한 연 13만명의 관람객이 내뿜은 호흡의 습기로 천년역사의 벽화는 부식,훼손돼갔다.이때 일본이 등장한 것. 막고굴의 보존을 위해 중국정부가 간간이 손을 쓴 건 당연한 노릇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일본이 외국의 문화재보존에 단순한 관심이상의 실제적 지원에 나선 사실은 의외의 선행이라 할 수 있었다. 지난 88년 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당시 일본총리가 중국정부와 협력,돈황유적및 문화재보존에 적극 나서겠다고 선언한 바 있는데 이 선언은 중국정부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 일본 지식인의 열성어린 캠페인이 빚어낸 「작품」이었다. 일본 도쿄대학 미술대의 하라야마 이쿠오교수는 83년부터 줄기차게 일본의 돈황유적보존지원을 역설,마침내 이를 정부가 받아들이기에 이르른 것이다.이에따라 일본 해외협력처는 91년 중국의 돈황연구센터와 손을 잡고 「돈황 석굴문화재보존및 전시센터」건립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 센터의 핵심시설은 막고굴의 4개 석굴벽에 그려진 벽화를 실물크기로 복사한 현대재현품 전시실인데 복제작품은 2명의 중국전문가가 4년동안 각고의 노력으로 완성시켰다.또 센터는 막고굴의 현상태를 모두 비디오 테이프에 담아 이를 통한 연구가 가능토록 할 계획이다. 이 센터건립에 드는 돈은 물론 일본이 전액부담한다.내년 3월 완공예정인 센터의 건축은 현재 일본의 유명한 세케이 니켄사가 주관하고 있는데 회사 건축가들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예술품」적 문화센터를 막고굴에 선사할 생각이다.
  •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 고취 군가 대량보급(북한 이모저모)

    ◎평양서 「방위관측기」 등 2000년전 유물 발굴 ○콘크리트 급결제 개발 ○…북한은 광산의 폐수를 이용,콘크리트의 응고시간과 강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새로운 촉매제를 개발했다고 정부기관지 민주조선 최근호가 보도했다. 양강도 건설건재총국 건재시험소가 연구·완성했다는 이 「콘크리트급결제」는 콘크리트혼합물의 응고시간을 종전방식 보다 절반이상 줄임으로써 겨울철이 길어 건설공기에 제한을 받고 있는 양강도를 비롯한 북한지역의 건설사업에서 『대단히 크고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게 됐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사상무장 주제 27곡 ○…북한은 군의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 제고 및 사회주의 고수를 위한 사상무장을 주제로한 군가를 대량으로 창작·보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군협주단 창작가들은 지난해 김정일이 이들을 만나(5·22) 『전군의 주체사상화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군인들을 교양할 혁명적·전투적 작품들을 더 많이 창작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지난 1년간 「최고사령관동지를 위하여 복무함」등 27편의 대표적인 군가요를 창작했다고 중앙방송이 23일 보도했다. 이 군가들을 주제별로 보면 ▲김일성의 「군영도업적」을 노래한 「수령님 최전선에 오신 그날에」「인민행 열차를 타고 가시네」등과 함께 ▲김정일을 군최고사령관으로 받드는 「긍지」를 강조하는 「김정일동지는 우리의 최고사령관」「김정일 그이는 우리의 운명」「내나라에 대통운이 텃구나」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김정일장군 위해 목숨바쳐 싸우리」「결사옹위하자 김정일장군」「천세만세 모시리」등이 있다. ○나무곽 무덤서 출토 ○…북한은 최근 평양 통일거리 건설현장에서 2천년전 천체의 별자리를 통해 방위를 판단하던 최초의 「방위관측기」를 발굴했다고 중앙방송이 지난 11일 보도했다. 북한의 사회과학원은 최근 문화예술부 문화보존총국,평양시문화보존소,김일성대학,건설건재대학 등과 공동으로 통일거리건설현장에 대한 유물·유적발굴사업을 진행한 결과 5백여기의 무덤과 10여개의 건축지·시설물을 발견하고 5천여점의 유물을 수집했는데 특히 2천여년전의 「나무곽무덤」에서출토된 이 방위관측기가 전문가들의 관심을 모았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이번에 발굴된 방위관측기는 가운데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고 둘레에 12개월과 28개의 별자리를 표기한 원형판을 방형판위에 올려 이를 회전시키도록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천체의 별자리를 통해 방위를 판단하던 것으로 분석됐다는 것이다. ○상목 신재배법 개발 ○…북한은 최근 심한 경사지나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면서 생산성이 높은 새로운 뽕나무 재배법을 연구,개발했다고 정부기관지 민주조선 최근호가 보도했다. 자강도 강계농업과학연구소에서 개발했다는 새 뽕나무 재배방법을 도입할 경우 우선 밀식재배가 가능해 종전보다 단위당 면적에 더 많은 뽕나무를 심을 수 있으며 가지뽕 수확을 엇바꾸어 진행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 어패류 생식 “위험”/비브리오패혈증 발생 경고

    보사부는 14일 여름철을 맞아 비브리오 패혈증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패혈증 예방대책을 전국 각 시·도와 검역소에 시달했다. 보사부는 간질환이나 당뇨병환자,술을 자주 마시거나 과음한 사람,건강이 좋지 않아 면역기능이 낮아진 사람은 6월부터 9월까지 고막,굴,바지락,조개,피조개,새우,낙지,문어,멍게,가오리,홍어등 어패류를 날것으로 먹지 말라고 경고했다.
  • 소설가 이제하씨(이세기의 인물탐구:27)

    ◎“글을 그림처럼”… 절제된 언어의 마술사/「환상 리얼리즘」기법 구축,무의식세계 조파/사회 선입감·통념 거부… 쓰고싶은 글만 고집/「나그네는…」 이상문학상 수상… 시인·화가로서도 경지에 꾸부정하게 걷는 비뚤어진 걸음걸이,구겨진 청회색 점퍼에 벙거지를 눌러쓴 이제하의 모습은 카뮈의 뫼르소나 사르트르의 로캉뎅 일수도 있다.그가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실 때도 마찬가지다.무심한듯 생각에 잠긴 묵연은 그대로가 시적 회화적 분위기를 연출시킨다. 만사에 서툴고 세련된 티를 보이지 않는것도 이 예술가의 독특한 특징일 것이다.그러나 말 하기가 싫어 억지로 하는처럼 어눌하게 굴다가도 자신의 의지와 소신을 펼때는 드물게 치열함을 드러낸다.메마른듯한 그의 가슴에 정열과 온기가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이때 뿐일것 같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는 단순한 소설가만은 아니다.시인이자 화가이며 화가이자 소설가다.그리고 타고난 다방면의 재능을 한 수준으로 고루 이끌어 자연스러운 자신의 경지를 이루고 있다. ○1회 학원문학상수상 그가 문단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세때인 57년 여름,정식 데뷔보다도 훨씬 이전의 일이다.52년 마산동중시절 이미 「학원」지에 투고하여 그의 달콤하고 아름다운 서정시는 전국의 문학소년소녀들에게 널리 애송되고 있었다.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서울 친구의 편지를 읽는다/보라빛 노을을 가슴에/안았다고 해도 좋다/…아아 밀물처럼 온몸에 스며 흐르는/노곤한 그리움이여/로 전개되는 「청솔 그늘에 앉아」는 박목월 조지훈씨의 심사로 제1회 학원문학상 수상과 함께 60년대까지 중3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그의 지난 시절의 이야기에서 또하나 빼놓을수 없는 것은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선생님께 내 이름을 불렸을때의 그 가슴의 고동을 잊지 못한다』는 감격과 홍대 조각과에 진학하여 『대학 2학년이 될때까지 학점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것을 들수 있다. 너무나 순진한 나머지 그는 대학이란 강의시간이나 학점에 관계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는 장소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그의 단순함은 문학쪽에서도 언뜻언뜻 엿보인다. 「현대문학」지의 시추천 완료후 그는 다시 신문의 신춘문예와 월간지를 통해 소설데뷔 관문을 거쳤고 당시 발표한 「유원지의 거울」「흰제비의 여름」또 속물과 진정한 예술가의 대립을 그린 「유자략전」등으로 「표현수법에 있어 속도감을 느끼게 하는 뛰어난 압축미」「소설로 쓰여진 한편의 예술사회학」이란 호평속에서 문단의 시선을 한몸에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독자들의 무한한 무의식을 자극하기 위한 그의 「초현실」이나 「잠재의식」등의 기법상의 탐구는 「쉬르계열의 그림을 느끼게하는 난해성」으로 지적되자 그는 자신의 작품을 「환상리얼리즘」으로 표현,이를 설명하기도 전에 한 평자가 작품과는 상관없는 지연(지연),학연을 거론하면서 「환상과 현실이라는 두 대칭이 어떻게 한 이름으로 공존할수 있는가」란 의문을 제기하여 그는 한순간 환멸감과 모멸에 빠지는듯 했다. 그는 후에 「신뢰할수 없는 이런 사람들이 필요없는 리더의식과 옹졸한 콤플렉스로 지연·학연·인정주의 따위로 섹트를 조성하고 60년대식,70년대식으로 작가를 구분하려 든다」고 통탄해 마지 않았다.「환상리얼리즘」이란 한낱 조어가 아닌 기왕에 있어온 미술상의 한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를 잠시 소설에 차용한 것이지만 그는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의 소설은 외형적 사회의식보다 개인의 무의식세계,그들의 꿈과 악몽을 다루기 위해선 초현실주의 기법을 취할수 밖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는 자기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지만 옳지않은 것,속된것,뻔뻔스러움과 적당주의는 그와는 맞지 않음을 명료하게 구분짓는다. 74년 채식주의를 테마로한 「초식」발표와 함께 현대문학상이 주어졌을 때도 그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여 문단에 파문과 충격을 던졌다.모든 문학상이 일반적으로 너무 무난히 주어지며 과열된 문협선거에 얽힌 문단정치에 혐오감을 느꼈다는게 수상거부의 이유였다. 작가의 시대적 책임이니 사명이니 하는 명제란 무엇인가. 그는 「작가가 가장 경계해야 할것은 당대가 직접 간접으로 요구하는 유형무형의 온갖 윤리감각」이라고 말한다.예의 「모든 사람들이 물을 원할때는 불을 이야기함으로써 물에 대한 감각을 없애주는 것이○수상 거부로 큰 파문 작가의 사명이며 책임일 뿐」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한다고해서 작가마저 부화뢰동하고 나서면 작가 본래의 본성이 와해되고 작품은 몰개성화로 타락한다는 것이다. 과연 『쓰고싶은 것을 써서 생존이 가능한 작가는 몇사람이나 되겠는가?』를 자문하고 『작가는 자신의 고독을 이야기로 팔아 연명하는 하릴없는 날품팔이』라는것과 이에따른 자책지심을 문단에 촉구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자세는 문단초기인 신촌시절에서 동숭동 팔판동 지금의 평창동에 이르기까지 시종여일 변함없는 소신을 지키는듯 하다. 신촌시절에는 그의 부인(고행자씨)이 삐에로 의상실을 경영,화곡동에 집을 산적도 있으나 부인의 사업실패로 난생처음 가져본 집을 빚잔치로 없앴고 이 때의 고생을 바탕삼아 장편 「광화사」와 중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를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이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을때도 여전히 『물리적인 힘에 물리적인 힘으로맞서는 것은 문학이라고 생각지 않으며 문학은 대결로서 당장 결판을 보는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을 견디고 스며들고 녹이는 작업』임을 상기시킨 저 유명한 수상연설을 남기고 있다. 『문학에서의 가장 큰 고함소리는 침묵입니다.좋은 작품을 읽고 났을때의 그 멍청히 강요당하는 침묵­』 그리고 그의 소설은 회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림에서의 구성 색채 주제의 형상화 과정이 그 형식만 다르게 나타날 뿐 글쓰기와 많이 닮아있음을 강조했다.이는 일찍이 시인 김춘수씨가 그의 소설 「황색강아지」를 보고 「영화적 기법을 사용한 소설」이라는 지적과도 상통한다. 군제대후 조각과를 4학년 1학기에서 그만두고 서양화과 3학년에 편입,그는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델보를 비롯,뭉크와 스텡 프란시스 베이컨에 빠져있었고 영화에 대해서는 한때 소형영화클럽을 만들만큼 영화광,요즘도 시간이 날때마다 청계천에 들러 레이저디스크를 복사해온다.비디오테이프만 8백여개.좋아하는 작품은 소련의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탤지어」를 꼽고 있다.그는 한때 까마귀를 비둘기처럼 뱃심좋게 훈련시켜 돈심부름을 시켜봤으면 바란적도 있고 팔판동에 살때는 밤 10시가 넘어 총리공관이 있는 행길까지 내려가 장난감 비행기를 날리며 딸아이와 뛰어놀기도 했다. 한번은 딸아이(슬·고2)가 좋아하는 빵을 사기위해 호텔 지하에 위치한 제과점에 가려다가 호텔 직원에게 제지당한 적이 있었다.꺼부정한,초라한 행색이 사뭇 못마땅한듯 한참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그의 가방을 가리키며 「그 안에 뭐가 들었느냐?」고 묻자 그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그 사람의 두눈을 똑바로 마주한채 「총」이라고 대답하여 혼비백산시킨적도 있다.이 사회의 선입감,오래묵은 관념에 대한 특유의 냉소가 또하나 이제하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시나리오 작업이후 일간신문을 비롯,월간지등에 「이제하 영화칼럼」을 쓰고 있다.좋아하는 영화를 마음껏 보고 마음껏 평을 쓴다.물론 본격적인 평이라기 보다 객석에서의 느낌을 좀더 심층있고 사려깊게 쓰는 식이다. ○노래엔 기품 가득 그리고 때때로 젊은 시인 가수들과 어울려 그가 작사·작곡한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한다.평소 대화때는 꺼들꺼들 쇠된 목소리를 내지만 노래할 때의 음성은 청량한 기품이 일품이다. 그는 이제 우리문단의 중진의 위치다.그의 말대로 그가 책임질 수 있는 예술을 성취해 가고 싶어한다.그래서인지 그에게선 느슨한 기는 찾아볼 수 없다.긴장을 푼듯 방심하고 무심한 속에서 오히려 감수성의 현을 전보다 더한층 팽팽하게 당기는 자세다. 그런중에도 친구들과 다양하게 교분을 트고 있고 그래서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간혹 그가 괴벽이나 기인기질을 지닌 것이나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누구보다 반듯하다.선배나 후배들에게도 따뜻하고 정중하다.어느날 갑자기 그의 달라진 환경과 연륜과 함께 갑자기 표현하는듯한 속된 구석은 근원적으로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그럼에도 그가 지닌 예술성과 인간미는 이 시대에선 몇사람 되지않는 「비범임에는 틀림없다.그래서 그의 예술추구는 정련되지 않은 생금에도 비유된다. 그 옛날 그가 시추천을 받을 무렵 미당이그의 시를 향해 「신시쩍 나무」라고 한것처럼 도무지 「가뭄」을 타지않을 뿐만 아니라 「정신도 「정」,「우리의 공명선에 잘 직통하는 그의 특수어법」은 바로 그림으로 그려진 소설,소설로 그리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연보 ▲1937년 5월20일(음)경남 밀양출생.이해동씨와 김일선여사의 3남매중 독자 ▲1946년 마산으로 이주 ▲1953년 마산 고1 시「청솔그늘에 앉아」로 제1회 학원문학상 ▲1956년 마산고졸「새벗」잡지에 동화「수정구슬」당선 홍대조각과 입학 ▲1957년 「현대문학」에 시「노을」「설야」「바다」서정주추천 신태양사 「황색강아지」당선 ▲1958년 「소설계」중편 「나팔산조」 준당선 ▲1961년 군제대후 홍대조각과 4년에서 서양화가 3년으로 편입,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손(수)」입선 ▲1964년 육십년대 사화집동인(성찬경·박재삼·박회진등) ▲1966년 연작동화 「노래하는 돌」(신아일보연재) ▲1969년 동화 「느림보의 다섯가지 수수께끼」(대한일보연재) ▲〃 문제작 「유자략전」발표로 화제 ▲1973년 첫 창작집「초식」(민음사간) ▲1974년 「초식」으로 현대문학상 수상했으나 수상거부 ▲1977년 꽁트 스케치집「새」(수문서관간)「소설문예」 창간 편집위원 ▲1978년 창작집 「기차,기선,바다,하늘」(홍성사간)월간「수상」(월간 에세이 전신)주간 ▲1979년 화랑협회 계간지「미술춘추」주간 ▲1982년 첫 개인전,개전기념시집「저어둠속 등빛들이 느끼듯이」(청하간) ▲1983년 일러스트집「사라의 눈물」(우석사간) ▲1984년 서양화 10인 소품전·문학선집 「밤의 수첩」(나남간) ▲1985년 중편「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발표(이장호감독으로 영화화) ▲1986년 동화집「노래하는 돌」(샘터간)장편「광화사」(한국일보연재) ▲1987년 장편「광화사」1·2부(문학사상간)「소녀유자」(문학사상 연재) ▲1988년 장편「소녀유자」(고려원간)장편「시습의 아내」(경남매일연재)수필집「길떠나는 사람에게」(동아간)이상문학상수상전집「임금님의 귀」(문학사상간) ▲1990년 장편「진눈깨비의 결혼」(청맥간)문학선집「포말위의 식사」(강천간) ▲91­현재 창작집 「기차 기선 바다 하늘」외 창작들 재간.영화칼럼집「시네마천국」(우리문학사간) 이상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 수상.
  • 파키스탄/최대규모연정 출범/부토파포함 각료 58명… 7월총선 관장

    【이슬라마바드 AFP 연합】 파키스탄 과도 정부의 발크 셰르 마자르 총리는 이 나라 사상 최대 규모인 58인 연립내각을 새로 구성했다고 정부 관리들이 30일 말했다. 이들 관리는 새 내각이 중앙 정부 각료 34명,지방 정부 각료 10명 및 각료급보좌관 14명 등 모두 58명으로 구성됐다면서 오는 7월 실시될 총선을 관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부 대변인은 새 내각이 베나지르 부토 여사가 이끄는 야당인 파키스탄인민당(PPP)의 지지를 계속 확보하고 주요 현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이같이 대단위로 구성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 내각에는 PPP를 중심으로 샤리프 전총리의 파키스탄회교연맹(PML)과 중도파 및 회교 원리주의 정당 등 제정파가 골고루 포함돼 있다. 굴람 이샤크 칸 파키스탄 대통령은 지난 18일 나와즈 샤리프 총리룰 해임하고 의회를 해산한 후 마자르 총리를 3개월간 지속될 과도정부 총리로 임명했다.
  • 서해안개발 본격화 영향/환경 피해분쟁 늘어/2∼3월 조정신청 3건

    서해안개발이 본격화 되면서 이지역의 환경오염피해분쟁이 늘고있다.분쟁조정위원회가 생긴 91년부터 지난해까지만 해도 서해안지역은 물론이고 해양오염피해와 관련한 분쟁조정신청이 한건도 없었으나 올들어서는 2월과 3월 2달사이에 3건의 해양오염관련 조정신청이 들어왔고 이모두가 서해안 지역이었다. 지난 3월2일에는 충남 당진군 난지도리 어촌계가 대산공단내 현대석유화학 삼성종합화학 극동정유를 상대로 이들 회사가 가동되면서 이일대가 오염되기 시작,김·굴·바지라기등이 썩어 없어진다며 31억5천만원을 보상해달라고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 이달의 독립운동가 노백린선생(다시 새기는 그 충절)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항일구국” 기개 편 한말 마지막 무인/정미년 군대해산뒤 독립운동 투신/미서 비행단 조직 조종사 40명 양성/“말타고 남대문 입성” 한남기고 상해서 숨져 을사오조약이 강제로 체결된 1905년. 강제로 조약을 체결한 이등박문은 통감부를 서울에 설치하고 한국측 고관들을 초청,큰 연회를 주최했다. 연회장에는 「을사오적」 이완용 송병준등도 참석해 일제 앞잡이들과 잔을 부딪치며 간신의 비굴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때 연회장의 잔잔한 연주를 깨뜨리는 커다란 목소리가 참석자들을 긴장시켰다. 『워리! 워리!』 이완용등 역신들 바로 코 앞에서 나는 소리였다.그들 앞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6척 장신에 기골도 장대한 사나이가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을사오적 등 능멸 오적들은 물론 이등박문등도 개 꼬리 감추듯 숨을 죽이고,상황 전개에 눈치를 살폈다. 자신들을 「나라를 빼앗고 팔아먹은 개같은 놈들」로 매도하는데도,안절부절 못하는 형국이었다. 「개들」이 모인 연회장은 「개판」이 된 채 끝나고말았다. 일제와 그 주구들의 모임을 이렇게 휘저은 사나이는 음식상에 침을 탁! 뱉은 뒤 뚜벅뚜벅 연회장을 빠져 나갔다. 우리가 지금 얘기하는 4월의 독립운동가­이 당찬 사나이는 누구인가. 노백린선생은 1875년 1월 10일 황해도 송화군 풍해면 성하리에서 시골선비 노병균의 3형제중 막내로 태어났다.어릴 때부터 남달리 키가 크고 얼굴이 커 성격이 호탕했으나 마음은 침착했다. 부친은 아들 백린이 장차 무인이 될 것으로 예견하며 내심 그럴 바에야 지장이 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학문연마에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았다. ○황해 송화서 출생 웅지를 품고 서울에 온 선생은 당시 내무대신 박영효의 주창에 따라 세워진 대한제국정부 관비생으로 뽑혀 각도 수재 1백20명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 간다. 도쿄 경응의숙­성성학교를 거친뒤 일육사 11기생으로 입학한 것이 독립운동가로 일생을 마친 선생의 이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25세 열혈청년으로 귀국한 선생은 당시 원솔부 회계국총장인 민영환의 주선으로 육군참위에 임명된 이후 한국무관학교 교관­노일전쟁 참관­육군무관학교장­헌병대장­육군연성학교장등을 거친다. 무인으로서의 기백과 대쪽 같은 성품으로 나라가 쇠퇴하는 과정에서,선생이 앞서 소개한 일화처럼 울분을 터뜨린 것은 이 무렵인 것으로 추정된다.(독립유공자 고 한철수선생 회고담) 을사오조약이 체결된 2년후인 1907년 8월1일 한국군대는 해산이라는 비운을 맞게 된다.최후의 무인 노백린도 군복을 벗었다. 선생이 독립운동가로 변신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신민회 활동 틈새에 선생은 고향으로 내려가 광무학당을 설립,교사가 되어 후진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1908년에는 김구 최명식 김홍량등과 해서교육총회를 만들어 독립정신 고취에 앞장섰다. 선각자들의 이같은 운동이 활발해지자 일제는 목조르기를 시작했다. 다른 독립운동가들처럼 선생도 변장을 했다.「황금에 미친 놈」처럼 금광사업에 손을 대는 척도 하고,서울에선 피혁상회·양화점등을 경영하며 등신처럼 굴었다. 『내가 진정한 무인이라면 왜놈들과의 일전을 불사해야 하는데…』 선생의 슬픔과 안타까움은차라리 고통이었다.그만은 유독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1915년 선생은 미국 망명길을 택한다.이후 8년여동안 미국에서의 활동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전투조종사 양성과 항일비행전단의 조직에 전념한 것이었다. 당시 해외에서 조종사를 양성한다는 것은 엉뚱하기까지 했으나,평소 『도쿄를 쑥대밭으로 만들자!』고 호언한 선생은 그같은 불가능한 과업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어려운 재정여건 아래서도 5대의 값비싼 연습비행기를 확보하고 40여명의 조종사를 배출시킨 것은,당시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의 군사상 길이 빛날 일이라 하겠다. 노백린의 말년은 그러나 실의와 좌절로 얼룩져 갔다. 그것은 1919년 4월23일 서울에서 치러진 국민대회와,이어 조직된 한성임시정부에의 참여에서 비롯됐다. ○동경 공습이 목표 상해임정까지 이어진 한성임정의 법통 속에서 우리는 독립운동사의 부끄러운 단면을 발견하게 된다. 그 장본인은 여러 독립지사들과 갈등을 빚은 이승만의 등장이다. 대통령 이승만 임정하에서 군무부총장이라는 각료직을 맡은노백린은 자주 의견충돌을 했다. 그때마다 노백린은 『나는 이승만의 군무총장이 아니고 한성정부의 군무총장이다』는 강경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정쟁이 계속되자 선생은 말술을 마시며 『육군정복에 말타고 남대문에 입성하면 여한이 없겠다』고 말했다. 선생은 상해시내에서 교통사고를 입은뒤 1926년 1월22일 망국의 한을 품은 채 숨을 거두었다. 정부는 지난 62년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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