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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라크 수렁’에 빠진 美

    이라크에서 폭탄 테러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미국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특히 27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에 대한 폭탄테러로 미국은 헤어나기 힘든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지난 8월 바그다드 유엔사무소 폭탄 테러 이전까지만 해도 테러공격은 미군 관련시설에 집중됐다.하지만 이제 인도적 국제구호기관과 각국 대사관 등으로 테러가 확산중이다.이라크내 저항세력의 테러가 광범위한 반(反)외세 성격의 게릴라전으로 번져가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이에 따라 ICRC는 이라크에 배치된 외국인 직원 30∼40명과 이라크인 직원 800여명의 감축 여부를 조만간 결정할 방침이다.이라크에 파병한 네덜란드 외무부도 바그다드 주재 대사관 직원을 요르단으로 철수시켰다. ●BBC방송,“얼굴 없는 테러” 바그다드에서 27일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테러공격은 본격적 게릴라전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을 낳고 있다.군사전문 월간지인 ‘디펜스 어낼러시스’의 프란시스 투사 발행인은 “이번 공격은 아무렇게나 감행한 공격이 아니다.”며 조직적 게릴라전의징후를 강력히 경고했다. 더욱이 테러의 확실한 배후가 드러나지 않은 채 이라크인 중 피아조차 식별하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은 커진다.영국 BBC방송은 27일 “점령세력은 저항의 배후가 누구인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대책조차 세우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꼬집었다. ●매케인 의원,“제2의 베트남전”경고 이라크 사태가 소모전 양상을 띠자 일부 전문가들은 베트남전과 닮은 꼴이 돼가고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한다.존 매케인 미 상원의원은 지난 26일 이라크 상황이 베트남전 당시와 흡사하다고 경고했다. 반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7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바그다드 동시다발 자폭테러와 관련,이라크에서 미국이 진전을 이루고 있는 것이 폭도들을 절망케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그러나 부시 행정부도 내심 이번 연쇄 테러의 심각성을 십분 인식하는 분위기다.연쇄 테러 직후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이라크 군정 책임자인 폴 브리머 최고행정관,리차드 마이어스 함참의장 등의 비밀회동을 가졌다고 워싱턴포스트 등 미 언론이 보도했다. ●국제사회,이라크파병에 시큰둥 미국의 지원요청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도 시큰둥하다.중국 정부는 28일 이라크에 병력을 파병할 계획이 없다고 못박았다.장치웨(章啓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중국은 과거 유엔 평화유지 활동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다른 국제 군사활동에는 동참한 적이 없다.”며 파병계획이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조르제 삼파이우 포르투갈 대통령도 이날 포르투갈군의 11월 파병 가능성이 희박함을 내비쳤다.압둘라 굴 터키 외무장관 역시 터키에게 이라크파병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방식이 적절하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등 미국의 계획은 이래저래 꼬이게 됐다. 구본영기자 kby7@
  • 도락산 /도도한 고사목 낙락장송 우거진 바위산을 찾아가다

    ●충북 단양으로 떠나는 가을산행 ‘바위와 소나무,그리고 고사목’.만약 도락산의 멋을 3가지만 꼽으라면 이렇게 대답해야 할 것 같다.기교에 빠지지 않은 석수장이가 깎아놓은 듯한 암릉,바위틈에 흘러든 씨앗이 싹을 틔워 수백년간 자라며 바위를 뚫고 올라온 소나무들,수명을 다했으나 그 고고한 자태를 잃지 않은 고사목들.조선의 유학자 우암 송시열은 ‘깨달음을 얻는 데는 길이 있어야 하고,거기엔 필수적으로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道樂山’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도락산 산행길은 우암의 깊은 뜻이 담긴 이같은 이름이 결코 허명(虛名)이 아님을 깨닫는 짧은 여정이라고 할 만하다. 웬만한 큰 산은 단풍 구경객들로 북적거리는 이때,한적하면서도 그 빼어난 멋이 가을 산행지로 부족함이 없는 충북 단양의 도락산을 찾았다. 도락산은 해발 964m로 제법 높지만 산행 기점인 상선암 휴게소가 해발 280m에 있어 실제 산행길은 그리 길지 않다.하지만 거친 암릉길이 계속되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코스.바위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등산화착용은 필수다. 몇가지 코스가 있지만 상선암 휴게소에서 출발해 상선암(암자)∼제봉∼형봉∼신선봉을 거쳐 정상에 오른 뒤 형봉까지 내려와 길을 바꿔 채운봉,검봉,시민골을 지나 상선암 휴게소로 내려오는 코스가 일반적이다.거꾸로 시민골을 지나 올라가 형봉,제봉을 거쳐 내려와도 된다.또 정상을 기준으로 상선암 반대편의 광덕암,또는 정상 북쪽의 궁터골로 이어지는 코스도 있다. 산자락 아래에 자리잡은 상선암 옆으로 난 등산로에 들어섰다.가파르게 이어지는 거친 길을 오르다보니 10여분도 안돼 숨이 헐떡거린다.30여분 정도 가파른 흙길이 이어지다가 이후부터는 암릉길이다. ●발 아래 절경에 힘든 줄도 모르고 암릉길은 거칠다.하지만 잠깐잠깐 바위에 걸터앉아 이마의 땀방울을 씻어내고,발 아래 펼쳐진 연봉들을 감상하다보면 크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철계단이나 손잡이 등이 곳곳에 설치돼 있어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이면 부모들과 함께 오를 만하다. 기암을 자랑하는 대부분의 산들이 뾰족하고 다양한 모양을 내세운다면,도락산의 바위들은 대체로 둥글고 넉넉한 품새를 지니고 있다.수십척 키의 바위가 앞을 가로막아 갈 길이 끊겼다 싶으면 어김없이 바위 다른 한쪽 편은 편편한 경사를 이루며 산행객들에게 길을 내준다. 도락산의 바위들은 소나무 또는 고사목과 어우러짐으로써 그 진면목을 드러낸다.바위 틈을 뚫고 나와 자란 수많은 소나무들.마치 바위굴에서 기어나오다가 굳어버린 구렁이처럼 소나무들은 구부러진 채 머리를 세우고 있다. 커다란 소나무가 수백년동안 바위틈을 비집고 자라는 동안,단단한 바위들은 갈라지며 자리를 내준다.어떤 바위는 뿌리의 힘에 못이겨 살점을 떼낸 것처럼 바위 주변에 낙석이 수북하다.흙 한줌 찾기 어려운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는 강인한 생명력,끝내 바위를 쪼개면서까지 자리를 잡고 자라는 은근과 끈기의 힘 앞에서 부박한 인간은 그저 초라해질 따름이다. 도락산 암릉길 주변엔 마치 큼직큼직한 분재를 전시해놓은 듯한 고사목(枯死木)들이 산행객들의 넋을 뺀다.고사목들은 이파리만 없을 뿐 대부분 바위에 뿌리를 박고,그 형태를 온전히 갖추고있다. ●바위틈 소나무앞 한없이 초라한 나 다가가서 손으로 만져보니 거친 껍질은 이미 떨어져 나가 없고,속살은 수십,수백년간 비바람을 견디며 굳어져 반들반들 윤기가 난다.수백년간 바위 속에서 고통을 감내한 뒤 죽어서까지 고고한 자태를 잃지 않는 모습에서 가히 신선의 기운이 느껴진다. 1시간 이상 올라가면서부터 815봉,제봉과 형봉이 차례로 이어진다.작은 봉우리에 이르렀다 싶으면 앞에 또다른 바위 봉우리가 앞을 가로막기를 서너번 반복한 끝에 다다른 곳이 신선봉.도락산에서 가장 전망이 뛰어난 곳이다. 100여명은 족히 앉아 쉴 만한 너럭바위 아래로 수많은 능선과 봉우리들이 펼쳐져 있다.남쪽으로 월악,금수산이,동쪽은 황정산·수리봉이,북쪽으로는 덕절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신선봉 너럭바위의 한 편에 직경 1m 정도의 웅덩이가 파여 있다.한동안 비 온 기억이 없는데도 웅덩이엔 물이 반쯤 차 있다.이 웅덩이는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하는데,숫처녀가 물을 퍼낼 경우 금방 소나기가 쏟아져 물을 채운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온다.신선봉에서 정상까지는 15분 정도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하지만 정상 자체는 그럴듯한 바위도,운치 있는 소나무도 별로 없이 그저 평범하다.밋밋하게 자란 소나무들에 가려 전망도 시원치 않은데,누군가 조망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의 소나무들을 모두 허리 높이로 잘라낸게 오히려 분위기만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사인암 청정한 운치… 신선도 안 부러워 길을 되짚어 내려오다가 형봉에서 채운봉쪽으로 길을 꺾었다.채운봉,검봉을 넘어서 하산하는 길은 높낮이가 더 심하다.이곳에선 능선 오른쪽으로 보이는 형봉 쪽의 바위 산자락이 볼 만하다.마침 서산에 걸린 해에 반사돼 수많은 바위들이 반짝이는 통에 눈이 부시다. 산행시간은 5시간 정도면 넉넉하다.도락산에 왔다가 지나칠 수 없는게 있으니,바로 단양8경중 도락산이 품고 있는 4경,즉 상·중·하선암 및 사인암이다.상·중·하선암은 도락산을 끼고 흐르는 선암계곡을 따라 차례로 자리잡고 있다.청정계곡을 가득 채운 너럭바위들이 볼 만하다.계곡을 따라 차를 몰고가다가 표지판을 보고 차를 세우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사인암은 도락산 남동쪽 끝자락 아래 맑은 계곡 위로 우뚝 솟은 기암절벽이다.사인암 옆에 자리잡은 암자 뒷문을 통해 내려가 절벽 밑의 반석 위에 앉으면 시원하고 청정한 운치가 신선 부러울게 없다. 단양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식후경 상금교를 건너 도락산 등산로 입구로 올라가다 보면 토종닭 백숙이나 손두부 음식을 내는 집들이 죽 늘어서 있다.그중 중간쯤에 있는 손두부 전문집 ‘약수터가든’(043-421-5300)의 음식 맛이 좋은 편이다. 인근 마을에서 나는 콩을 도락산 계곡의 약수에 불려 갈아 만든 두부맛이 담백하다.두부를 먹기 좋게 썰어 양념간장 또는 볶은 김치를 얹어 먹는데(사진),두부전골로 식사를 시켜놓고 기다리는 동안 두 명이 한 두 접시는 금방 해치울 만큼 생두부 맛이 뛰어나다. 몇 가지 야채와 양념을 넣어 끓이는 두부전골은 얼큰하면서 시원한 맛이 특징.입에 넣자마자 부드럽게 넘어가는 두부 맛이 일품이다.생두부 1접시 4000원,두부전골 1인분 5000원. 토종닭 백숙은 등산로 초입의‘선암가든민박’(043-422-1447)이 잘하기로 소문나 있다.한 마리 2만 5000∼2만 8000원.3∼4명이 먹을 만하다. 가이드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단양IC에서 빠지자 마자 우회전해 5번 국도를 타고 1㎞쯤 가면 네거리가 나온다.이곳에서 사인암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해 계속 직진하면 오른쪽으로 사인암으로 빠지는 길이 나온다.사인암을 지나 왼쪽으로 선암계곡을 끼고 올라가면 중선암이 나오고,상선암 못미쳐 왼쪽으로 난 상금교를 건너면 도락산 입구다.단양IC에서 15분쯤 걸린다. 대중교통은 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거나,청량리역에서 열차를 이용하면 된다.단양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루 10여회 운행되는 벌천리행 시내버스를 타면 상선암 휴게소 앞에서 내릴 수 있다.단양읍에서 택시를 타면 미터요금으로 1만 5000원 정도 나오므로,일행이 여럿이면 이용해볼 만하다.단양시외버스터미널(043-422-2239),시내버스터미널(043-422-2866),단양역(043-422-7788). ●숙박 도락산 인근 가산리에 ‘구름다리 휴게소’(043-422-1451),사인암 앞에 ‘느티나무휴게소’(043-422-0337) 등 민박집이 많이 있다. 좀더 운치있는 곳을 원한다면 도락산 입구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대강면 올산리의 ‘소백산 관광목장’(043-422-9270)에서 묵어보자.소백산과 월악산 중간 해발 850m에 자리잡은 이곳엔 소떼들과 함께 하는 산책로가 있다.콘도식 통나무 방갈로(5인1실,8만원)와 여관(2인1실 3만원)에서 묵을 수 있다. ●제2 단양팔경 널리 알려진 단양팔경 못지 않은 절경을 갖추고 있는 제2 단양팔경 구경길에도 나서 보자. 팔경중 영춘면 북쪽 남한강가에 깎아지른 듯 병풍을 두르고 있는 ‘북벽’,30척 높이의 대석 위에 70척 높이의 바위 일곱개가 세워져 있는 대흥사 절터 위 원통골의 ‘칠성암’,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다하여 퇴계 이황 선생이 이름을 지었다는 ‘금수산’,소백산에서 발원한 벽계수가 죽령 계곡을 돌아 떨어지는 ‘죽령폭포’의 경치가 특히 뛰어나다.단양관광안내소(043-422-1146).
  • [열린세상] 20세기 가장 아름다운 여성

    그해 1997년에도 필자는 로마에 있었다.근무하던 대학교에서 안식년을 주어 로마에서 연구생활을 하던 중이었다.그해 8월31일과 9월5일 거의 일주일 상거로 레이디 다이애나와 마더 테레사가 세상을 떠났을 적에,인류는 신의 창조의 최후 걸작인 여인(女人)을 두고 그 가장 ‘아름다운’ 면모에 깊은 경탄을 느꼈다.그것은 숙녀(Lady Diana)와 어머니(Mother Theresa)라는 두 얼굴이었다.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동자와 눈부신 미소를 간직한 레이디 다이애나,영국 왕비라는 세계 정상의 영예를 포기하면서까지 왕세자 남편의 부정을 묵인하지 않고 이혼할 용기가 있었고,자유스럽게 사랑을 찾아나서는 결단을 보이던 여인이었다. 그 며칠 전까지도 윈저성과 승마 교사의 침실,백만장자 도디의 별장으로 그녀를 추적하면서 줄곧 늘씬한 허벅다리와 요트선상의 누드와 가장 비싸고 우아한 패션을 퍼뜨리던 영국 언론들이,그녀가 심야에 정부와 더불어 파리를 질주하다가 교통사고로 죽자마자 성녀(聖女)로 시성(諡聖)하고는 버킹엄궁과 세인트폴 교회,영국 왕실을세트로 한 세기적 매스컴 쇼를 연출했다. 이듬해 ‘한겨레 21’ 신년호에는 “97년 가을,20세기는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잃었다”는 제하의 인물평을 실었다.그런데 독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그 글에서 기리던 여성은 영국의 전 왕세자비가 아니라 인도 콜카타의 빈민굴에서 세상을 떠난 마더 테레사였다.그해 이탈리아 언론 기관들이 합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그해의 가장 위대한 여성으로 다이애나를 꼽은 이탈리아 국민은 25%였고 60%는 마더 테레사를 꼽았던 기억이 난다. 외모로 말하자면 다이애나의 허리에도 찰까 말까 한 작은 키에다 쭈글쭈글 주름투성이의 87세 할머니,그 팔에서 죽어가는 빈민들 때문에 옷자락에서는 늘 송장 냄새가 나던 수녀,그녀에게서 인류는 무엇을 보았기에 ‘20세기의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고 불렀을까? 인도 정부가 그녀에게 바친 국장(國葬)은 영국 지상최대의 쇼와는 달리 너무도 경건했다. 19일 필자가 한국대사로 파견돼 있는 바티칸의 대성당 광장에서 마더 테레사가 복자(福者)로 선언됐다.그녀에 대해서는 누가죽으면 5년 이내에는 그 인물에 대한 공공연한 평가를 아예 금지하는 가톨릭 교회법도 예외를 허락했고,2001년에는 그녀의 행적과 덕성을 샅샅이 조사한 3만 페이지 분량의 기록이 바티칸으로 제출됐다.추측건대 마더 테레사는 아마도 최단 기간에 성인의 품에 오른 인물이 될지도 모른다. 모두에게 버림받고 병들고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그녀의 연민은 종교적인 것이었다.피고름을 흘리며 죽어가는 부랑인들을 가슴에 안고 단말마의 식은땀을 훔쳐주면서 “하느님이 당신을 사랑하시고 당신을 찾고 계시고 당신을 보고 싶어 하신다고요.”하고 속삭여 주었고 눈을 감겨주었다. 1979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으면서도 “나는 자선사업에 성공하기를 바라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충실하고 싶다.”고 다짐하던 사람이었다.지난 16일 재위 25주년을 맞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표현을 빌리자면,마더 테레사의 이런 태도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고 일컫는다. 마더 테레사가 우리나라에 두어 차례 다녀갔을 적에 텔레비전에 확대되던 주름투성이의 미소에 경외감을 품으면서도 막상 우리 동네에 양로원이나 장애인 시설이 오면 어린애들까지 앞장세우며 결사반대를 외치는 주부들의 모습이라든가,전세계인의 동정을 끌고 있는 북한의 기아 문제에 무관심 일변도를 넘어서서 북한에 대한 식량원조나 남북화해 노력 자체를 성토하는 수구적인 종교인들의 집회는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든다. 우리나라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든 내년의 국회의원 선거든 지역감정이라는 이기심과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까닭없는 증오심 대신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 투표의 기준이 된다면 우리도 마더 테레사 앞에서 얼마나 떳떳할까? 괴테의 혜안대로라면 “오로지 여성적인 것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데 말이다. 성 염 주교황청 한국대사 서강대 교수
  • 전남 여수 금오산·사도/서글픈 푸른빛에 처마끝 풍경도 소리를 잊고

    전남 여수 돌산도 남단에 자리잡은 금오산(金鰲山).동쪽 바다를 향해 엎드린 금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어 이같은 이름이 붙은 이 산은 마치 거북 등껍질처럼 주름진 바위로 뒤덮여 있다. 많은 사람들은 금오산이란 이름엔 생소하다는 반응을 보이다가도 산 서쪽 중턱에 자리잡은 향일암을 말하면 ‘아 그 산’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마련이다.대부분 향일암까지만 올라갔다가,발길을 돌려 내려와 산 자체의 진면목을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향일암은 우리나라에서 일출이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금오산 산행길의 진수는 향일암을 지나서부터다.해발 323m로,향일암에서 정상까지 불과 30여분의 짧은 산행길이지만,완급의 조화를 이룬 바위길과 시원한 남해 풍광,정상에서 바라보는 황홀한 일몰과 월출이 산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준다. ●월출이 아름다운 ‘향일암' 여수반도 서쪽에 위치한 작은 섬 사도 또한 오동도나 향일암,거문도 등 여수의 큼직한 관광 명소들에 가려 지나치기 쉬운 곳.그러나 한나절쯤 시간을 쪼개면,다양한 기암괴석과 수백개의 공룡 발자국,신비의 물 갈라짐 현상 등 색다른 볼거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사도다.남도의 미항 여수 여행에서 빼놓기 쉬운 금오산 정상 산행과 사도 답사에 나섰다. 금오산 오르는 길은 두가지.산행 기점인 임포마을에서 새로 난 향일암 가는 길을 따라 가다가 암자 못미쳐 정상으로 가는 길로 빠지거나,향일암 가는 옛길로 처음부터 올라가면 된다. 새 길을 선택했다.향일암까지는 네댓 사람이 나란히 손을 잡고 걸어도 될 만큼 길이 널찍하게 닦여 있다.길이 넓다보니 돌산의 아기자기함을 체험할 수 없다는 게 아쉬움.새해를 맞을 때마다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이들을 위해서라고 하지만,바위산을 가르는 포장된 큰 길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향일암을 지나고,가파른 철계단과 아슬아슬한 바위길이 이어지면서부터 이같은 불만은 탄성으로 바뀐다.바위길을 한 굽이 돌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너럭바위.이마에 흐르는 땀을 잠시 식히면서 시원한 바다 풍광을 감상하기에 그만이다.너럭바위 하나하나는 곧 바다 전망대다.동남쪽으로 구불구불 이어진 해안을 따라 펼쳐진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자태가 그림같다. 등산로변엔 군데군데 계절을 잊은 듯 바위 틈새로 자란 벚나무가 꽃을 피워 이색적인 분위기를 띄운다. 커다란 바위들로 이루어진 정상에서의 조망은 그야말로 사통팔달이다.서쪽은 이미 붉은 물이 들기 시작했다.마치 광활한 호수를 연상케 하는 가막만 뒤로 펼쳐진 수많은 섬 너머로 만추의 홍시 같은 해가 진다.자그마한 한 섬 위에 걸리는 듯하던 해는 불과 2∼3분 만에 뚝 떨어지고 만다. ●일몰과 월출을 한자리서 누군가 고개를 돌려보라고 재촉한다.동쪽 바다 수평선 위로,정말 쟁반 같은 보름달이 둥실 떠오르고 있다.한 자리에 앉아 일몰 감상 직후의 월출 구경이라니! 저마다 탄성을 토해낸다. 내려갈 때는 향일암에 들렀다.일출이 유명한 곳의 달구경은 어떨까 궁금했기 때문.어둠이 깔린 암자는 적막하기만 하다.사방이 어두워서인가,아니면 청정지역이어서인가.암자에서 보는 달은 푸른빛이 선연하기 그지없다.종루 처마에 달린 풍경(風磬) 너머 걸린 달은 서늘하다 못해 시리게가슴 속을 파고든다.임포마을에서 정상,정상에서 향일암을 거쳐 마을까지 내려오는 데는 3시간이면 넉넉하다. 여수 서쪽 27㎞ 지점에 위치한 사도는 증도·추도·사도·장사도·나끝·연목·중도 등 7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여수항에서 여객선으로 1시간20분 정도 가야 한다. ●공룡 발자국 보며 고생대 체험도 7개의 섬에 사는 주민이라야 수십가구에 불과해서인지,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하지만 선착장은 깔끔하고 큼직하다.세계 최장의 보행렬(84m)을 포함해 400여개의 공룡 발자국이 발견된 이후 고생태 체험학습을 위한 학생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최근 조성했다. 마침 만조 때라서 수중에 감춰진 공룡 발자국을 볼 수 없단다.미리 시간을 확인해보고 오지 않은 것이 영 후회스럽다.하지만 선착장에서 조금만 가면 공룡 발자국과 서식 흔적을 재현하고 설명해놓은 공원이 있어 그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사도는 물 갈라짐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음력 정월 대보름,2월 보름 등 연간 5차례 정도 이같은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한다.약 2∼3일간 물이 갈라지는 이때는 7개의 섬이 ‘ㄷ’자로 이어지는 장관을 연출한다.이때 시간을 맞춰가면 마을사람들과 함께 바닷길에 들어가 지천으로 널린 고둥과 개불,해삼 등을 주울 수 있다. 사도엔 다양한 전설이 어린 기암이 많다.이순신 장군이 나랏일을 근심하며 앉아 있었다는 장군바위,거북 모양의 거북바위,예부터 사도의 여인들이 출산 후 젖이 부족할 때 치성을 드리면 맑은 물이 솟아났다는 젖샘바위,제주 용두암의 꼬리라는 용미바위 등이 볼 만하다. 여수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가이드 ●가는 길 서울,수도권에서 여수까지는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경부∼천안·논산∼호남∼남해고속도로 순천IC 코스가 가장 빠르다.순천IC에서 17번 국도를 타면 여수 돌산도까지 곧바로 갈 수 있다.항공편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매일 5차례 김포와 여수를 왕복 운항한다.여수행 버스는 서울에서 하루 16회,광주에서 40회 있다. 금오산은 17번 국도를 타고 돌산대교를 건너 시덕리에 이른 뒤,1번 지방도를 타면 산 입구에 닿는다.여수항에서 사도로 가는 배편은 하루 두 차례 있다.1시간20분 소요.배삯은 어른 7500원,어린이 3800원.문의 여수시외버스터미널(061-652-6877),여수역(1544-1788),㈜한려수도(061-644-6255). ●숙박 호텔은 여수시내의 여수비치관광호텔(061-662-3131),오동도 인근의 노블레스관광호텔(061-691-1966)이 묵을 만하다.금오산 인근엔 종점모텔(061-644-4737),한솔모텔(061-644-5089) 등 10여개의 여관이 있다.사도에선 사도식당횟집,장석례씨집(061-665-9203) 등 몇몇 식당과 민가에서 민박을 운영한다. ●해넘이 해안 드라이브 돌산도 서쪽 금천에서 항대,모장,평사에 이르는 해안길은 해넘이 드라이브 코스.오른쪽엔 산과 들녘이,왼쪽엔 수많은 섬들이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이 구간엔 굴 양식장이 늘어서 있는데,굴이 주렁주렁 달린 모양이 이색적이다.아직은 좀 이르지만 11월에 들어서면 해가 넘어갈 무렵,차를 세우고 굴구이집에 들어가 고소한 굴을 맛보는 재미가 쏠쏠하다.여수시 문화관광과(061-690-2225). 식후경 여수는 남도 먹거리 1번지로 통할 만큼 음식이다채롭다.그래서 식도락가들이 여수에 가면 특유의 한정식을 한번쯤은 맛본다. 오동도 입구의 ‘동백회관’은 맛과 다양함을 함께 갖춘 곳으로 평가받는 해물 한정식집.음식값은 2인상 4만원,3인 이상은 1인당 1만 5000원이다.음식은 3차례로 나뉘어 나온다.먼저 도미·우럭·전어 등 회와 함께 떡가재 찜,낙지 무침,회초밥,생 피조개 등 30여가지의 찬음식으로 상을 차려낸다.이 음식을 거반 먹을 즈음해서 복어 중심의 뜨거운 요리가 나온다.복 조림,복 튀김,복죽,송이 조림 등이 주된 요리.이 음식을 대충 비우면 그제서야 밥이 나온다.대나무통에 쌀을 넣고 찐 대통밥과 함께 몇가지 나물,젓갈,매운탕이 상에 오른다.이렇게 총 60여가지의 음식이 나온다. 여수 인근 바다에서 나는 재료를 쓰다보니 음식 맛도 일품 요릿집 못지않다.(061)664-1487. 사도에선 선착장 앞의 사도식당횟집에 들러보자.도미,농어 등 자연산 회가 너무 싸다.마리 단위로 회를 쳐주는데,1.5㎏짜리 감성돔 한 마리를 3만원에 먹을 수 있다.쫄깃하면서도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감성돔 회맛이 일품이다.(051)666-9199.
  • 태풍피해 한달 /(上)경남·전남 복구현장 르포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강타한 지 한 달이 넘었다.태풍은 사망·실종 131명이라는 인명피해와 4조 2225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재산피해를 남겼다.정부는 수해지역을 특별재해지구로 지정,위로금과 사유시설 복구비를 지급하는 등 태풍의 잔해를 씻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피해현장에서는 지원의 손길이 모자라 아우성이다.복구의 현장과 농작물 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을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이번 태풍은 강한 해일을 몰고와 해안의 피해가 컸다.일부 섬지역은 선착장이 파손돼 여객선이 접안할 수 없어 전마선으로 승객을 태워 나른다. 경남 통영시 한산면 비진도는 선착장과 마을을 잇는 도로가 유실돼 사람만 겨우 다니고 있다. 통영시 산양읍 일대 해안은 스티로폼과 목재 등으로 뒤덮여 있고,바다 속에는 그물과 양식장 관리동으로 쓰였던 컨테이너,사료저장시설 등이 가라앉아 있다.모두 수십만t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인력과 장비가 부족해 그대로 방치돼 있다.정부가 지급한 수거비 76억원은 금고 속에서 잠자고 있다. 남해안의 가두리양식장 400여㏊ 중 80%,굴 양식장의 46%가 파손됐으나 어민들은 치어 및 종패부족 등으로 복구할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정부의 양식어업 구조조정 방침도 조기복구의 걸림돌이다.이곳 어민들은 아예 복구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정부의 보상이 적당하면 가두리양식 면허를 아예 반납하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전남 여수지역도 수산 증·양식시설과 입식어류 등 1187억원의 피해를 입었지만 복구는 엄두도 못내는 형편이다.여수시 남면 화태도 독정리 어촌계장 김정배(52)씨는 “가두리양식장 긴급복구에 나서 겨우 10%쯤 복구했지만 치어를 입식할 형편이 안돼 한숨만 쉬고 있다.”고 전했다. 최권이 통영시 어업생산과장은 “이번 태풍으로 남해안 어업생산기반이 완전히 무너졌다.”면서 복구하기까지는 최소 3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남 창녕군 유어면 대대리 일대 논 200여㏊에는 진흙을 뒤집어 쓴 채 말라죽은 벼가 쓰러져 있다.제방 유실로 쌀 한 톨 건지지 못한 주민들은 논갈이를 위해 수작업으로 벼를 걷어내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벼가 기계에 감겨 낫으로 베어내고 있지만 인력이 턱없이 모자란다.군 관계자는 “농민들에게 의타심을 키워줄 우려가 있어 인력지원을 안한다.”고 변명했다. 경남 의령군 정곡면 월현제방은 응급복구조차 안됐다.농경지 침수로 실농한 주민들이 원인규명을 위해 현장을 보존하는 것이다. 상습 침수지역 및 산사태 위험지역의 집단이주도 주민들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하영제 남해군수는 “해변의 횟집 등 상가는 피해를 각오하면서 이전을 반대하며,노인들이 사는 주택은 자녀들이 건축비를 부담하지 않으려 한다.”고 고충을 털어놨다.경남도내서는 산청군 생비량면 송계마을과 창원시 동읍 수석마을,거제시 일운면 와현리 등 3개 마을이 이주된다. 창원 이정규·여수 남기창기자 jeong@ ■‘쭉정이 들녘' 한숨소리만… “하늘도 무심하지….거둘 곡식이 없어 빚만 늘었습니다.” 농촌 들녘에 시름이 그득하다.잦은 비와 냉해로 가뜩이나 수확량이 감소했는데 태풍까지 덮쳐 한해 농사를 망친 농가들이 많기 때문이다.애써 지은 논농사를 반타작도 못한전북 순창군 복흥면 서마리 한석주(44)씨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땅이 꺼져라 한숨만 내쉬었다.한씨는 올해 6000평의 논에 벼를 심었지만 조생종 3600평이 냉해를 입었다.벼의 목이 나오는 8월 한달 동안 기온이 15도 이하로 떨어지는 저온현상이 보름 이상 계속돼 수정되지 않는 불임피해가 발생했다. ●벼 수확량 작년의 절반도 안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9월에도 장마가 그치지 않았고 태풍이 휩쓸고 갔다.쭉정이만 남은 들판을 실망스럽게 바라보던 한씨는 수확을 아예 포기했다.농기계 사용료도 건지기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2000평의 논을 갈아엎었다. 순창군의회 마화룡(47·복흥면) 의원은 “복흥면에서 심은 조생종벼 640㏊ 가운데 67%인 426㏊가 냉해를 입었지만 정부에서 특별재해지역으로 지정해 주지 않아 농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면적 비례 보상 바라 자신도 농사를 짓고 있다는 한 의원은 “정부의 전업농 권장으로 임대까지 해 농사를 지은 대농들이 오히려 큰 피해를 입었는데 보상금은 면적비례로 주지않고 농가당 모두 같은 금액을 주기 때문에 불합리하다.”며 정부 차원의 대책을 요구했다. 전국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전북 임실군 관촌면 고추주산단지 농민들도 시름을 앓고 있다.신전리 장평마을 김평수(30)씨는 2500평에 고추를 재배했지만 겨우 210만원을 건졌다.예년 같으면 2000만원은 족히 벌어들일 수 있는데 잦은 비로 역병이 번져 90%는 수확을 포기했다. 김씨는 “신전리 일대 고추재배 농가들이 대부분 올 농사를 망쳤다.”며 “영농자금 상환이 걱정”이라고 한탄했다. ●영농자금 상환 엄두못내 사과주산지인 경북 의성군 구천면 내산리 40여 농가도 태풍으로 둑이 터져 사과밭 전체가 침수되는 바람에 문전옥답이 하루아침에 쑥대밭으로 변했다. 내산리에서 3600평의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조우현(72)씨는 썩어가는 사과를 바라보며 연신 한숨만 내뱉었다.높이 2m 남짓한 사과나무 전체가 물에 잠겨 역병이 돈 이 지역은 온통 사과 썩는 냄새가 진동해 파리떼만 득실거리고 있다. 밤 주산지인 전남 광양시 밤주산지도 태풍에 직격탄을 맞았다.광양 밤나무밭 6753㏊ 가운데 70%인 4717㏊가 낙과피해를 입었다.올 수확량은 태풍 루사로 피해를 입은 지난해 3200t보다도 적은 2500t으로 추정된다. 전주 임송학·광양 남기창·의성 김상화기자 shlim@ ■‘쑥대밭 학교' 언제 다시 짓나요 경남 통영시 한산면 용초도 용호분교 전교생 7명(1·4·6학년 2명씩,2학년 1명)은 태풍때 학교를 잃어 한달째 인근 한산도 하소분교까지 배를 타고 다닌다. 용호분교는 영화배경이 됐을 정도로 아름다운 학교로 1940년 개교해 80년대 초 전교생이 300여명에 이르기도 했다.6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 학교가 태풍으로 한순간에 폐허가 됐다.운동장과 사택은 돌밭으로 변했다.1층 교실 안까지 자갈이 밀려들어 학교 건물은 붕괴 직전이다.컴퓨터와 전자오르간,도서 등은 모두 바닷물에 젖어 못쓰게 됐다.할 수 없이 아이들은 통학선을 타고 맞은 편 한산도에 있는 하소분교까지 오가며 공부하고 있다. “용호분교를 다닐 때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는데….” 가장 어린 1학년 은희는 한 시간씩 배를 타고 오가는 게 얼마나힘든지 금세 눈망울에 이슬이 맺힌다.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용호·하소분교는 직선거리 1㎞ 남짓.하지만 통학선이 섬을 돌며 학생들을 태워 용초도에서 한산도 진두부두에 도착하기까지는 1시간쯤 걸린다.마을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하는 통학선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6시쯤 일어나야 한다. 용호분교는 건물을 헐고 다시 지을지,폐교하고 하소분교와 합칠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통영시교육청은 교실 4칸과 급식소 1칸,사택 3동 등을 포함해 학교를 다시 짓는 데 7억여원쯤 예산이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통영 강원식기자 kws@
  • “시화호는 선사시대 보물창고”/시화호 지킴이 15년 최종인씨

    “1억년 전에도 시화호는 호수였습니다.시화호 주변엔 공룡알의 화석을 비롯,바가지만큼 큰 굴 껍데기,돌칼 등도 발견되고 있습니다.역사적으로 가치있는 보물창고인 만큼 우리가 잘 보전해야 합니다.” 15년째 ‘시화호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는 최종인(崔鍾仁·50·안산시청 조수보호 감시원)씨를 찾았을 때 그는 생태학습에 나선 중학생 50명을 대상으로 시화호의 ‘모든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작고 깡마른 체구에서 ‘시화호 예찬론’은 끊임없이 이어졌다.시화호에 얽힌 역사와 주변 자연환경까지 꿰뚫고 있는 최씨의 감칠맛 나는 현장수업에 학생들의 표정은 진지했고 뭔가에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97년부터 직장 그만두고 시화호 출퇴근 시화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학생들은 물론 공무원과 일반인들의 현장학습 신청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덩달아 최씨의 일과도 한층 바빠졌다.지금까지 최씨의 안내를 받은 인원만 해도 10만명은 족히 될 것이라고 한다. 그가 시화호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89년.정보화시스템 사업체에 근무하던 그의 근무처가 경기도 안산시로 바뀌면서 이사를 한 것이 계기가 됐다.시화호에서 낚시도 하고 조깅도 하던 그는 바지락 등 생명체들이 죽어 나뒹구는 것을 보고 ‘왜 그럴까.’하는 의문이 들었다.이때부터 틈만 나면 시화호로 달려갔다.결국 1997년 잘 다니던 직장마저 그만두고 퇴직금을 털어 서적과 각종 장비들을 사들였다.동영상 촬영을 위한 비디오 카메라와 수중촬영기구 등 첨단장비도 장만했다. 이런 최씨의 행동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환경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직장까지 팽개치느냐.” “환경운동은 정부나 시민단체에서 하는 것이지 개인이 나서서 될 일이 아니다.” “미친짓 그만해라.”는 비아냥과 비난이 쏟아졌다.하지만 그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그는 매일 시화호로 나가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사람들과 밀렵꾼들을 감시하고 주변에 서식하는 야생 동·식물들에 대해 연구했다. ●희귀 동식물사진 20만장 보유 산업쓰레기를 버리는 현장을 적발하고 밀렵을 하기 위해 시화호로 숨어 든 사람들을 찾아내설득하는 과정에서 멱살잡이는 예사였고, 갖은 욕설과 협박은 차라리 일과였다. 이같은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시화호하면 그의 이름을 떠올릴 정도로 유명해졌다.‘시화호지킴이’란 별명도 붙었다. 최씨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시청 인근의 옛 보건소 창고를 개조한 여섯 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희귀조류 사진과 시화호 지도를 비롯,각종 자료서적들이 즐비하다.시화호의 오염현장을 고발한 사진과 슬라이드,3000년 전에 살았다는 대형 굴껍질은 물론,역사교과서에서나 보았던 빗살무늬 토기도 눈에 띈다. 시화호의 각종 철새와 야생 동·식물을 담은 사진만 20만장이 넘는다.공룡알 화석 등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물건들은 안산시청 홍보관에 기증했다. 그는 “돈벌이도 못하는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는 한없이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떳떳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만으로도 족하다.”면서 “한때 죽어가던 시화호가 나날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힘이 솟고 여기서 그만둘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선지 그가 갖고 있는보람과 긍지도 대단하다. 지난 97년에는 철새들을 촬영하다 공룡발자국과 공룡알 화석을 발견,이 지역 480만평이 천연기념물 414호로 지정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또 시화호에서 검은머리 갈매기의 둥지를 국내 처음으로 확인하는 성과도 올렸다. ●안산시청 공적 인정 일용직 채용 안산시청은 그의 노력과 공적을 인정해 일용직인 조수보호 감시원이라는 직책을 주고 월 100만원 가량의 보수를 지급하고 있다.사무실도 안산시청에서 마련해준 것이다. 아직도 시화호를 ‘썩은 호수’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그러나 정부가 시화호 담수계획을 포기한 뒤 수질이 3급수를 유지하고 갯벌이 살아나면서 많은 철새들이 날아들고 있다. 특히 국제보호 조류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희귀새 등 20여종 10만 마리의 철새가 이곳을 찾는다.주변의 갈대밭에는 각종 야생동물들도 무리지어 살고 있다.시화호가 살아나면서 주변 생태계가 복원되고 있다는 증거다. “갯벌과 철새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갯벌이 사라지면 철새도 찾아들지 않습니다.눈 앞의 이익만을생각해서 자연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우(愚)를 더이상 저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최씨는 시화호가 언제 다시 파괴될지 모를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또 개발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사전에 신중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간척지를 개발하기에 앞서 농사법을 개량한다든지 휴경농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찾는 등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새만금 간척사업도 시화호를 교훈삼으면 된다고 지적한다.푸른 물이 넘실대고 철새들이 다시 찾아드는 시화호.그가 있는 한 시화호는 더욱 건강해질 것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유진상기자 jsr@
  • “개정판 만드느라 새벽까지 잠 못자요”/‘한국민법학 태두’ 곽윤직 前서울법대 교수

    ‘한국민법학의 태두’에서 ‘곽서(郭書)’까지. 후암(厚巖) 곽윤직(郭潤直·78) 전 서울법대 교수를 부르는 호칭은 다양하다.그러나 이유는 단 하나.바로 60년대 중반부터 잇따라 내놓은 ‘민법총칙’,‘물권법’,‘채권총론’,‘채권각론’ 등 민법강의 시리즈의 탁월함이다.사법시험 준비생들 사이에 ‘바이블’로 통하다 요즘에는 간단히 ‘곽서’로 불린다. ●저서 ‘민법시리즈' 사시준비생 바이블 서울 용산구 후암동 자택으로 찾아갔다.현관에서는 커다란 시베리안 허스키 3마리가 먼저 반긴다.뒤따라 나온 곽 전 교수는 “저렇게 클 줄 몰랐는데…”라며 웃는다.자녀들이 다 분가해 적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5년 전쯤 종자도 잘 모르고 새끼를 받아왔다고 한다.집안의 첫 느낌은 낡았다는 것이다.겸연쩍게 말을 붙이자 별일 아니라는 듯 40년된 집이란다.체면도 생각해서 널찍한 아파트로 옮기라는 말도 수없이 들었다.“살다보니 무슨 책이 어디에 있는지 손에 익었어요.이사가면 흐트러지는 게 귀찮더라고요.” 그래도 명절 때 잊지 않고 찾아주는 제자들덕에 적적하지는 않다고 한다.자주 찾아오는 제자들 이름을 물어보니 서성 전 대법관,윤재식 대법관,손지열 대법관 등 기라성 같은 법조인 이름이 쏟아져 나온다. 주말에는 손자 7명이 찾아와 시끌벅적해진다.이제 중학생이 돼서 많이 점잖아졌다고 자랑하는 얼굴은 영락없이 이웃집 할아버지다. 2층 서재를 둘러봤다.독일·스위스 민법 전집을 비롯해 판례공보 등 각종 잡지들이 빼곡히 차 있다.깔끔하게 정리된 가운데서도 고서점 같은 묵은 책 냄새가 물씬 풍긴다.책장을 보니 외국서적은 개정판마다 구입한 책도 여러 권 된다.“꼭 필요한데 웬만한 대학도서관에도 없어요.개정판이 나오면 호기심은 생기는데….” ●이공계 원했지만 낙방후 법학공부 1층 응접실로 내려와 근황을 물었다.곽 전 교수는 요즘도 ‘곽서’를 개정하느라 바쁘다.개정판을 11월까지는 마무리하려고 강행군 중이다.전날 상속법 부분을 연구하느라 새벽 4시까지 책을 뒤적였다.현역시절처럼 새벽에 책을 보는 것이 가장 편안하단다.밤늦게 책을 보다 보니 오전 11시쯤 늦게 일어난다.식사는 오후 1시쯤,밤 10시쯤 두번이다.이런 습관 때문에 담배도 여전히 하루 1갑이다.“줄인다고 줄인 게 1갑이에요.나 같은 사람에게 담배는 밤의 벗이지.” 건강 문제로 화제를 돌렸다.사실 인터뷰 약속을 잡으면서 약간 불안한 느낌을 받았다.전화상으로 발음이 부정확한 듯 했기 때문이다.“그때는 저녁시간이어서 의치를 빼고 있어서 그랬어요.”라며 환하게 웃는다.건강을 위해 별달리 관리하는 것도 없고 불편한 것도 없다고 한다.육류를 피하고 된장 같은 우리 음식이나 야채,생선을 즐긴다.암으로 오진받아 위절제 수술받은 것 빼고는 병원에 간 일도 별로 없다.한때 골프와 바둑을 즐겨 했다.그러나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골프는 소풍가는 기분으로 다녔고 바둑은 흥이 나는 대로 뒀다.승부에 집착하면 오락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 스스로도 재미없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다시 태어나면 법학자는 안 되겠단다.“물건을 만들거나 건물을 짓거나 직접적으로 이익을 줄 수 있는,그런 일을 해보고 싶어요.추상적인 이론과 논리는 골치가 아파서….” 이 때문인지 자녀 가운데 법과 인연을 맺은 사람이 없다.1남3녀를 뒀는데 모두 평범한 직장인이다. 곽 전 교수와 민법학의 인연은 몇차례 고비가 있었다.일제 때 강제징집을 피하기 위해 이공계 공부를 하려 했다.결과는 색맹 때문에 낙방.어쩔 수 없이 법학을 공부하면서도 형법 쪽에 관심이 많았다.그러나 공부하면서 민법의 중요성을 깨달아 관심을 돌렸다. 강단에 선 것도 군 제대 뒤 주변사람의 권유 때문이었다.군복무 직후 고등고시 시험이 있었는데 사법과가 두달,행정과는 석달 남았더란다.그래도 행정과가 여유있다는 생각에 시험을 봤는데 2등으로 덜컥 붙어버렸다.외교관을 권유받았지만 강의나 하겠다며 학교로 되돌아 왔다.“그때 여유가 있어 사법과를 보거나 권유를 받아들였다면 지금과는 다르겠죠.” 강의는 ‘악명’높았다.학생들은 넘쳤지만 앞자리는 항상 텅 비었다.안 들을 수는 없고 듣자니 눈초리가 매서웠기 때문이다.학점도 박했다.“일부러 아주 못되게 굴었지요.어려운 질문만 골라서 하고 학생이 질문하면 질문수준이그것 밖에 안 되느냐고 야단치고….미워했던 학생들 많았을 겁니다.” ●“학점 짜게줘 미워하는 학생들 많았죠” 곽 전 교수가 스승으로 모시는 사람은 고 김증한 교수가 유일하다.김 교수 밑에서 배운 독일어와 독일법은 두고두고 밑천이었다.혹독했던 김 교수의 강의 밑에서 살아남은 학생은 그와 그의 친구 단 2명뿐이었다.그가 ‘곽서’에 매달리게 된 것도 같은 이유다.공부할 때는 일제가 30년대 들여놓은 법전을 봤고,강의할 때는 일본학자들 책 번역서 몇 가지가 전부인 현실이 못마땅했다.우리 손으로 책을 만들어 보자는 오기가 일었다.또 우리 실정에 맞는 판례연구를 해보자는 생각에 1977년 우리나라 최초 법학학회인 ‘민사판례연구회’를 조직했다.이 모임은 지금도 연구성과를 모아 1년에 책 한권씩 내고 있다. 문제는 교수양성체계의 부실함으로 모아졌다.“일본만 해도 대학 졸업 뒤 3년간 조수로 공부하고 나면 15년간 조교수 생활을 거칩니다.이 과정을 끝내야 교수가 되어서 강의를 맡고 학생을 지도합니다.적어도 18년간의 수련과정이 있다는 거지요.” 예전에는 책을 쓰면 내용을 하나라도 더 집어넣으려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스위스식 교재가 우리에게 적합해요.학생들을 위한 개괄적인 책과 실무자·전문가를 위한 세부적인 책,이 두 종류면 됩니다.”그래도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 싶은 욕심은 여전한가보다.“요즘 사람들 두껍거나 한자가 많이 들어간 책을 너무 싫어해요.” ●“대법관 인원 더 늘려야 합니다” 논란이 됐던 대법관 제청파문과 사법개혁에 대해 물었다.전혀 다른 개혁을 얘기했다.“대법관 수를 더 늘려야 합니다.독일만 해도 대법관격인 최고재판소 판사가 150명입니다.각기 전문분야별로 재판부를 구성해 사건심리를 하고 있습니다.” “합의부 배석판사 제도를 폐지하고 판사로서의 수련을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법관의 전문성을 키워줘야 한다는 뜻이다.대법원 구성에 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전국 법관이래야 2000명 안팎입니다.10년차 이상이라면 이미 개개인에 대한 평가가 있다고봐야 합니다.오히려 지금 같은 시스템이 철저한 능력에 의한 인사입니다.” 부인과 만나려 했으나 끝내 보이지 않았다.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자 곽 전 교수는 “늙은이 얘기 너무 쓰지 말라.”며 다시 2층 서재로 발길을 돌렸다. 조태성기자 cho1904@
  • 메트로 플러스 / 남산1·3호터널등 야간통행 일부제한

    서울시는 터널청소 작업으로 인해 29일부터 다음 달 9일까지 남산1·3호터널과 금화터널·월드컵터널,증산지하차도 등의 야간통행을 일부 제한한다.제한시간은 당일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남산1호터널은 29∼30일과 30일∼10월1일 ▲남산3호터널은 10월2∼3일과 3∼4일 ▲금화터널은 10월5∼6일 2개 굴 가운데 1개가 전면통제된다.▲월드컵터널은 10월6∼7일 ▲증산지하차도는 10월8∼9일 왕복 6개 차로 중 3개 차로가 통제된다.
  • 이런 책 어때요 / 천재의 방식 스프레차투라

    피터 데피로 등 지음 / 이혜정 옮김 서해문집 펴냄 이탈리아말인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의 원뜻은 ‘경멸하다’‘거만하게 굴다’이다.이것이 르네상스기를 거치면서 ‘힘든 일을 쉽고 세련되게’하는 ‘천재의 방식’을 지칭하는 말로 진화했다.이 책은 이탈리아가 배출한 천재들의 이야기이다.천재들의 스프레차투라 이면에 감춰진 각고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신화와 우화의 보고 오비디우스,서방 수도전통의 아버지 성 베네딕도,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 보카치오,인간예술의 축도 미켈란젤로,유럽 최고의 염세주의 시인 자코모 레오파르디,근대 형벌학 창시자 체사레 베카리아 등이 소개된다.1만8900원.
  • 메트로 플러스 / 굴 빨리까기등 다양한 행사

    인천 연안부두 축제가 27일 인천항 연안부두 일대에서 열린다.굴 빨리까기,장어 이어달리기,얼음밟고 오래 버티기,해산물 요리왕선발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032)888-4241.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9)현기영-남북한 민주주의와 통일의 현단계

    지금이야말로 탈중심의 변방 정신이 필요한 때다.지구를 파괴하고 인류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자본의 무한 질주에 제동을 걸려면 거부와 저항의 변방 정신이 아니고는 안 된다.왜냐하면 자본운동은 질주의 관성만 있고,자신을 멈출 이성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진흥원 원장실에서 만난 선생은 여전히 흰 턱수염이 두덕두덕,면도한 지 이틀은 되었음직한 얼굴이시다.응접 세트며 책상이며 모두 길이 안든 물건이라 그런지 썩 편치 않게 보이는데 실은 그게 선생의 매력이다.어느 공식석상에서도 작가다운 모습. “문예진흥원 일은 어떠세요?힘든 일이 많으시지요?” “글쎄,꼭 내 일인가 고민하다 하게 되었어요.예술 활성화와 사회에 창조적 의욕이 확산될 수 있도록 일한다는 의미가 있으니까.기금 배분의 어려움은 있지만 시민들이 순수문화와 예술을 널리 향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지방이 문화적으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일도 하고 있고.” ●민주주의엔 ‘무제한의 자유' 함정 도사려 “직무를 수행하면서 생각하게 되는 일이 많으실 텐데요.” “예전에도 열심히 해왔습니다만 진흥원 활동을 조금 더 활기차고 적극적인 쪽으로 바꾸고 싶습니다.무엇보다 예술 자체가 몸을 비틀면서 굉장한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미술·음악 등 고전적 의미의 장르 틀 속에 갇힐 수 없는 것이죠.문학과 미술이 만나기도 하고 미술이 평면에서 입체로 가기도 하고,비디오 영상과 음악·무용이 결합하고 있기도 해요.이러한 변화에 문예진흥원 같은 국민의 기관이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에 걸맞은 계획을 세우려 합니다.” “작가로서 공인에 더 가까워지셨는데요.저는 한국과 북한의 민주주의에 관해 묻고 통일 문제에 관해서도 여쭈어 보려고 합니다.요즘 한국은 정치적으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일까요.” “아직도 한국사회는 다양한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이 서로 상충하고 갈등하고 있어요.민주주의라면 우선 자유 아니겠습니까,자유.그전에는 독재정권 파시즘 속에서 개인 자유가 희생되고 억압되었습니다.지금은 정치적인 자유는 많이 확보되었죠.그러나 그 자유를 무제한,무책임의 자유처럼 생각하는 경향도 생겨났어요.무제한의 자유를 갈구하다 보니까 풍속도 문란해지고 개인도 도덕적인 해이를 보이는 면이 있지요.민주주의는 책임이 따르는 것이죠.무제한의 자유에 자기 몸을 싣다 보면 일탈로 가게 되죠.그리고 일탈은 중독을 낳습니다.인터넷 게임,사이버 섹스,알코올,마약….그러니까 민주주의에는 무제한의 자유라는 함정이 있는 셈입니다.공동체도 개인도,책임과 셀프 거번먼트(self government),자신을 다스리는 자치 말이지요.이게 있어야 합니다.인내가 필요합니다.” 나는 평소에 가깝게 뵌 분께 이렇게 딱딱한 질문을 드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문학인이나 문화인이 나라와 민족의 문제를 도외시한다면 그것 또한 일종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한국사회가 당면한 과제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한국사회가 이제까지 성장을 꾀했으니까 지금부터는 부의 재분배를 통해서 소외된 사람들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지나친 성장위주는 곤란하다는 거지요.성장을 꾀하면서도 공동체의 삶의 질을 생각해야합니다.성장이라는 게 인간 크기의 성장이어야지 인간을 훨씬 능가해 버리는 성장은 오히려 인간을 잡아먹게 됩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유례없는 사회적 갈등의 표현을 맛보고 있습니다.그러다 보니까 파시즘이 새롭게 등장해야 한다는 견해까지 부상하잖아요.기업가도 노동자도 오늘의 상태를 차분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한국사회를 진단해 주시지요.” “이제 외형상 민주주의는 확보된 것 같습니다.이제는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심성이 구체적으로 민주화되어야 합니다.정치적 파시즘이 없어졌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확립되는 것은 아니죠.파시즘 정권은 사라졌어요.민중은 많은 자유를 갖고 있어요.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완전한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건 아니에요.많은 국민이 지역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하나의 예죠.지역감정에 사로잡혀서 그것에 골몰하면 그 지역감정을 동력으로 삼아 파시즘으로 회귀할 수도 있는 거죠.보다 나은 민주주의를 구현하려면 개인의 내면이 민주화되어야 합니다.지역과 지역이 어떤 표결 없이 바라볼 수 있고 노동자와 자본가가 대결 없이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정교한 외교로 대등한 한·미관계를 내친 걸음이다.나는 4·3의 작가에게 미국이라는 오늘의 화두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기로 한다. “미국이라는 존재도 한국의 민주주의와 뗄 수 없는 문제 같은데요.” “한반도 문제는 미국에도 중요한 책임이 있습니다.내면의 민주화는 외부로부터 지배받지 않는 것,부당한 지배를 받지 않는 것이죠.미국이라는 강대국이 세계 민주주의에 어떤 저해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한국은 미국과 대등한 관계로 가야 되는데,방법은 강대국과 약소국 일이기 때문에 정교한 외교로 대처해야지 피맺힌 절규로 해결될 수 있는 일만은 아닙니다.” “미국은 지금 세계경찰 역할을 자임하고 있어 우려되는 점이 많습니다.” “미국이 세계 경찰을 자임한다는 것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유일한 강대국이 되었다는 것인데,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사태만 봤을 때 미국이 참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나중에 어떤 사고의 전환이 올지는 모르지만계속 그런 사고와 행동을 밀고 나간다면 미국이 강대국이기 때문에 지구가 파멸까지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테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하지만 전쟁이 있고 나면 반드시 테러가 뒤따르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마련입니다.이것이 점점 규모가 커지고 테러나 전쟁의 규모가 커지면서 인류의 재난이 온다고 생각해요.미국의 사고 전환이 중요합니다.미국 시민의 애국주의도 잘못된 편견의 소산입니다.수정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미국 국민들이 사실은 엄청난 두려움에 떨고 있거든요.그 두려움을 방어적·공격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거지요.문제는 그게 옳은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죠.두려움은 공격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지금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는 다원주의가 굉장히 큰 미덕이죠.남을 이해하고 남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기독교 국가인 미국과 이슬람 국가가 서로를 이해하고 공경할 수 있는 큰 사고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지금이 중세 십자군 시대하고 뭐가 다릅니까.” 이제 마지막 관문이다.나는 평소에 북한체제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으로서도 화해 정책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는 딜레마를 겪고 있던 참이다. “북한에 대해 햇볕정책이 유효하고 유일한 방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반면 북한체제 문제를 지적하면서 새로운 대응방법이 요구된다고 보는 사람들도 뚜렷한 집단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햇볕정책이 유효하고 그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어떤 포스터를 보고 느낀 건데,아마 중동의 팔레스타인 소년 이야기일 거예요.소년인 형이 아우를 등에 업고 있어요.그래서 ‘무겁지 않으냐,내려놓지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제 아우인데요.’라고 반문했단 말이에요.북한은,남한인 우리가 형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짊어져야 할 짐이에요.그러니까 짐스럽게 느끼면 안 되죠.아우가 힘들고 빈사상태에 빠져있는데 업고 있어야지요.” “북한 인민과 체제로서의 김정일 정부는 또 다르지 않습니까.” “그렇지요.사회주의 정권에서 중국은 많이 변모하고 있습니다.그게 모델이 되어서 북한사회도 그런 쪽으로 변모하면 되리라생각합니다.또 그렇게 수정되지 않으면 안됩니다.그러려면 지금 당면한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것이 선결되어야 합니다.” ●北, 중국 모델 따라가도록 시간 줘야 “김정일 체제에 대해서,체제만 살찌게 하는 건 아니냐 하는 견해가 있지 않습니까?” “예컨대 이슬람 국가들의 증오와 분노와 절망은 강요된 것이지요.북한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요.봉쇄정책을 쓰면 그것은 북한의 집행부,지배 집단,김정일만이 아니라 북한사회 전체를 압박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절망이 깊숙하게 자리하면 증오에 의해 어떠한 범죄도 일어날 수 있어요.9·11테러는 깊은 절망에서 일어난 거예요.남북이 대치해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절망과 분노로 내달리지 않도록 하면서 평화와 미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화해정책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북한사회는 점진적으로 변모해 가고 있으니 중국 모델을 따라가도록,시간을 두고 북돋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통일은 궁극적인 목표죠.1국가 2체제든 1국가 1체제든.1국가 2체제는 먼 이정표일 뿐이고 지금은 화해와 교류가중요합니다.” “‘통일전망대’ 같은 TV 프로에 나오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보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금강산에도 다녀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북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좀 낯설지만 그것이 우리 이전 모습이에요.1950년대,60년대의 남한 국민들의 표정과 심성 같은 거지요.정치적 이데올로기와는 다른 차원에서 사람들은 순박하고 타락하지 않은 심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얼마 전에 교보문고에 나갔다가 선생님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을 보았습니다.‘느낌표’라는 TV 프로그램 영향도 크겠지만 세상 많이 변했더군요.” “뭐,하도 안 팔려서 베스트셀러는 예술작품이 아니구나 생각했었거든요.(웃음) 그런데 베스트셀러가 되다 보니 내 소설이 예술작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나는 내 문학이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많은 독자를 만나게 된 걸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남북한 관계를 위해서 문화 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문화예술에는그 민족의 고유한 형식과 정서가 들어있고 정서에 호소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담론보다는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문화예술을 공유해야 합니다.앞으로 남북 화해나 통일을 생각할 때 문화와 예술의 교류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자 선생은 내방객들을 저녁식사 자리로 데려간다.딱딱한 인터뷰에 무척 지친 듯한데도 그 인자한 눈빛을 바꾸는 법이 없다.나는 그런 선생에게서 인(仁)을 느낀다.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방교수가 본 작가 현기영 현기영 선생은 나와 같은 마포 주민이다.선생은 망원동 사람이고 나는 합정동 사람으로 상암동 경기장으로 가는 길이 넓혀지는 바람에 내가 서교동으로 이사를 가기 전까지 한두 달에 한번씩은 꼭 합정동 로터리 근처나 망원동 근처에서 합석을 해서는 문학 이야기며 세상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낯선 공간서 만난 낯익은 얼굴 선생은 귀가 크고 길어서 후덕하게도 생기셨지만 무엇보다 미덕은 젊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부족한 점까지 너그럽게 포용하면서 문학과 인생의 길을 함께고민할 줄 아는 소인(素人)의 성품이 있으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선생이 언제까지나 마포구 망원동 주민으로서 나와 같은 문학도나 상대하면서 요즘 같은 세상에는 문제를 더 근본적으로 아웃사이더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시고 잘 안 들리는 귀에 손바닥을 대고는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실 줄 알았다. 그런데,이게 웬걸.선생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실에서 만나뵙게 될 줄이야.그런데 원장실에서 만난 선생은 앞으로 몇 년 지나면 어떨지 몰라도 옛날 그 자리에 있던 바로 그분이시다.자리가 달라지면 안색도 따라서 달라지는 소인(小人)이 아니라 언제나 희고 소탈한 소인(素人).그가 바로 현기영 선생이다. ●제주로 빚은 선굵은 문학세계 작가 현기영 선생은 1941년 제주 출생이다.제주가 낳은 많지 않은 소설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선생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주를 무대로,4·3 문제를 화두로,인간과 역사와 자연을 대주제로 삼은 선 굵은 문학세계를 일구어 왔다. 서울대사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선생은 작가로서는 드물게 해병대 출신으로 사석에서 부르는 해병대가를 패러디한 노래는 이어도 노래와 함께 단연 일품이다.1975년에서야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니 이른바 늦깎이인 셈인데,학교 선생도 그만두고 문학에 매진하되 상업성과 허명을 멀리하고 역사와 인간에 대한 물음을 놓치지 않았다. ‘순이삼촌’‘마지막 테우리’‘변방에 우짖는 새’‘바람 타는 섬’,그리고 ‘지상에 숟가락 하나’로 대변되는 현기영 문학은 한국문학사에서 단연 이채를 발하는 제주의 문학,‘변방’의 문학이자 새로운 탈중심의 문학이다.
  • 태풍피해 강원·경남 르포 / 빈사상태 빠진 어민들

    태풍 ‘매미’가 남해안 어업생산 기반을 송두리째 삼켰다.강풍에 휩쓸린 가두리양식장은 흔적만 남았고,수하(垂下)식 양식장도 양식줄이 뒤엉켜 못쓰게 됐다.방파제도 파도에 무너지고,어선은 침몰하거나 파손됐다. 얼마 전까지 적조와 씨름하던 어민들은 망연자실 희망을 잃었지만 쥐꼬리 같은 정부의 지원도 ‘선 복구 후 지원’이어서 실의에 빠져있다. ●붕괴된 어업생산 기반 17일 경남도에 따르면 이번 태풍으로 인한 수산피해는 이날 현재 3600여억원.가두리 등 양식장이 2544억원의 피해를 입었고,각종 어선 2000여척이 침몰 또는 파손됐으며,어항시설 등 관련 시설 230곳이 파손됐다. 특히 피해가 심한 가두리양식장의 경우 허가된 169건 중 137건이 피해를 입어 양식어류 1억 1500여만마리가 달아났거나 폐사했다. 양식시설이 밀집한 경남 통영시 산양읍일대 해역은 태풍 매미의 날갯짓에 초토화됐다.중화어촌계 정경림(76)씨는 “5㏊에 이르는 양식장 80% 이상이 파손됐다.”면서 “그물이 찢어지는 바람에 물고기는 대부분 유실됐고,남아있는 고기도 지느러미 등이 손상돼 곧 폐사할 것”이라고 말했다.이 어촌계는 내년 5월쯤 출하할 참돔 5만여마리를 잃었다. 해수어류 양식수협은 이번 태풍으로 통영연안의 가두리양식장 9600조(1조(組)는 가로·세로 5m) 가운데 80%인 7700여조가 파손됐고,양식장에서 키우던 어류 1억 1000여만마리 가운데 8000만마리가 유실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굴·우렁쉥이·미더덕 등 수하식양식장도 쑥대밭으로 변해 648억여원의 피해를 입었다.굴양식업계는 어장 2만 8600여대(1대는 양식줄 100m) 중 50%가,멍게는 8680대 중 60%가 파손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권이(52) 통영시 어업생산과장은 “2∼3년 전부터 어려움을 겪어오던 수산업계가 이번 태풍으로 빈사상태에 빠졌다.”며 “정상으로 회복하려면 5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전남지역도 1503억원의 수산피해를 입었다.어선 110척이 침몰되거나 파손됐고,증·양식시설 8500여개가 강풍에 날아갔다.전남 여수시 화정면 김현철(30) 어촌계장은 “마을 전체 50가구에서 기르던 가두리양식장이 모두 망가져 자식처럼 길렀던 우럭이나 돔 등이 모두 죽거나 사라져 버렸다.”고 하소연했다. ●눈덩이 피해에 지원은 쥐꼬리 자연재해대책법은 시설복구비의 경우 중·소규모 양식장은 국비 40∼25%,지방비 10%,융자 30∼55%이고 나머지는 자부담이다. 대규모는 국비와 지방비 지원은 없고,70% 융자가 고작이다.어류에 대한 지원은 더 형편없다. 보상차원이 아니고 생계기반을 마련해 준다는 취지로 치어 입식비 정도만 지원한다.어종과 크기에 따라 마리당 400∼4200원씩 지원된다.남해안의 주 양식어종인 우럭의 경우 크기가 7㎝ 미만은 마리당 600원이고,큰 고기는 1760원이다.출하시 가격이 ㎏당 7000원인 것을 감안하면 지원액이 너무 적다는 지적이다.이마저도 지급시기는 복구계획 수립 후 1개월이 지나야 되고 ‘선 복구 후 지원’이다.자력으로 복구해야 지원토록 규정돼 있어 어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이에 따라 경남도는 보조금의 70%를 선급금으로 지원하고,이를 180일간 활용토록 제도개선을 건의했다. 통영 이정규·여수 남기창기자 jeong@
  • 이런 책 어때요 / 상하이인 홍콩인 베이징인

    공건 지음 / 안수경 옮김 사과나무 펴냄 중국인이 몇명 모이면 화제는 곧 출신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그만큼 지연이나 혈연을 소중히 여긴다.동향인이라 해도 출신지에 따라 기질이 다르다.중국에서는 출신지와 성민성(省民性)에 따라 정치와 경제를 달리 해야 한다는 말까지 있다.저자(중국공자문화대학 교수)에 따르면 상하이인은 계산적이며 ‘그룹’을 형성하는 배타적인 면이 강하고,베이징인은 정치엔 소질이 있으나 장사 솜씨는 형편없으며 무슨 일에든 거만하게 굴고 존경받고 싶어한다.또 홍콩인은 쉽게 뜨거워지고 쉽게 식으며 대륙인에 비해 세련되고 자의식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1만 1000원.
  • [임영숙 칼럼] 영암에서 온 편지

    남도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월출산 자락 아래 영암에서 편지가 왔다.영암도기문화센터 소장이 ‘비 내리는 영암에서’란 제목으로 보낸 이메일이었다. (그간 별고 없으셨는지요? 하루 걸러 장맛비가 내리고 있습니다.비가 내리면 도자기 건조가 지체되어 약간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다.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영암 쌀 얘기를 몇자 적어 올립니다.저희 영암은 국립공원인 월출산의 맥반석과 넓다란 구릉지대의 황토가 억겁의 세월동안 풍우에 흘러 내려 형성된 양질의 개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영암 펄은 물고기가 누운 자리에서 펄만 떠다가 국을 끓여도 맛이 있다.”고 하였답니다.그 펄에 낙지 숭어 장어 짱뚱이 운저리 굴 꼬막 대갱이 농어 맛 서대 미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는데 정부의 식량자급 정책으로 개펄이 기름진 논으로 바뀌었지요.밥맛이 좋다고 소문이 나고 상인들이 몰려 들더니 최근엔 영암 펄땅쌀이 경기미로 둔갑하여 고가로 유통되고 있습니다.…) ‘계미년 우중하일’에 썼다는 이 편지의 결론은 “어려운 농촌 현실을 감안하시어 영암 펄땅쌀을구입해 주십사.” 하는 것이었다.중간상인들의 농간을 막아 그 이익이 소비자와 생산자에게 돌아가도록 하겠다며 “주문하시면 미질도 책임지고 택배비도 제가 부담하여 보내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영암도기문화센터 소장을 만난 것은 지난 5월 ‘월출산의 달빛 맞이’행사 때였다.이화여대 박물관과 영암군이 지난 2002년부터 매월 보름 전야에 열고 있는 이 행사는 수려한 월출산의 맑은 달빛이 도갑사 대웅전에 비낄 때 맑은 산 기운속에서 우리춤과 음률을 만나는 자리다.5월의 달빛 맞이는 ‘찻잔에 뜬 달’이라는 제목으로 햇차 시음회도 곁들여졌으나 비가 내린 탓에 달을 볼 수는 없었다.그 아쉬움을 달래고자 찾아간 도기문화센터에서 ‘월출산 야생화 그리고 도기’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통일신라시대에 시작된 한국 최초의 시유도기 생산지이자 왕인박사 유적지가 있는 구림마을에 자리잡은 도기문화센터는 전통 도기공방과 전시 및 판매장을 갖추고 있다.소장은 영암군청에서 파견된 공무원이다. 도자기를 굽기 어려운 비오는 날,영암군 농민들이생산한 쌀이 전국적으로 알려져 제값어치를 할 수 있도록 편지를 쓰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의 모습에 감동해 펄땅쌀을 사겠노라는 답장을 보내고 구체적인 구입절차와 가격을 알아 보았다.영암군청 홈페이지에는 영암 쌀 판매관리 웹사이트(www.yeongamssal.co.kr)까지 마련돼 있고 영암군은 영암쌀 평생고객 확보사업을 벌이고 있었다.펄땅쌀의 종류는 ‘달마지쌀’‘달빛미소’‘농부의 선물’‘하늘아래 한쌀’‘매란국죽’등 5가지로 인터넷과 전화주문을 받아 소비자가 원하는 시기에 도정해 택배로 보낸다. 영암도기문화센터에서 이제 군청으로 자리를 옮긴 그 공무원은 읍,면 사업소 등에 근무하는 650여명의 공직자가 “농촌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모두 함께하고 있는 일이니 자신의 이름을 앞세우지 말아달라면서 이렇게 말했다.“이렇게 한다고 농촌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그러나 먼 미래를 내다 보고 영암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시골을 찾은 도시인들은 농촌의 아름다움만 보고 가는데 그 아름다움 속에 얼마나 비참함이 숨겨져 있는지 모릅니다.” 최근 영암을 찾은 고은 시인이 그곳의 시적인 분위기에 반해 “나 낼부터 시 안 쓸란다.”했다는데 삶이 시가 되는 것이 섬진강의 김용택 시인의 경우만은 아닌 듯하다.이 거칠고 황폐한 시대에 존재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준 영암을 다시 한번 찾고 싶다.“처서가 지나면 바람이 하늘에서 돌아요.백로가 달밤에 군무를 추는 옛 그림이 사실임을 알 수 있지요.가을 바람에 묻어서 영암에 다시 한번 오십시오.” 그 공무원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주필ysi@
  • [열린세상] 우울을 권하는 사회

    두 꼬마가 소꿉장난을 하고 있다.여자 아이가 남자 아이를 타박한다.“너,그렇게 멍청하게 굴면 결혼도 못해.” “난 결혼 안 할거야.” “그럼 어떻게 살 건데?” 남자아이의 대답이 어처구니없다.“노후연금 받아서 살지 뭐.” 일본 만화의 한 장면이다.하지만 물 건너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일본의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연금 정책마저 제대로 정착되어 있지 않다.노후연금으로 살아갈 희망조차 없는 셈이다.미래가 갈라진 상처처럼 버티고 있는 마당에 미래를 살아갈 젊은이들이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주부 우울증’이 심각한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어머니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삶을 감내하고 대신 자녀들의 희망찬 미래에서 보람을 찾으려 한다.그러나 인간심리는 묘해서,희생에 따른 보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희생에 따른 상실감도 있는 것이다.사회생활을 하는 남편과 자녀들은 능력을 갖고 독자적인 생활을 영위한다.반면,주부들은 집을 벗어나면 무능해진 자신과 대면하게 된다.사회는도저히 따라잡지 못할 속도로 발전한다.집안에만 머물렀던 주부들은 아찔한 속도전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그러다가 자신에게 의존했던 자녀들마저 떠나게 되면,그녀들은 빈 껍데기만 남은 공허한 자기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이것이 ‘빈 둥지 증후군’이며,주부 우울증의 한 원인이었다. 10년 전과 달리 요즘은 젊은이들의 우울증이 사회적 현상이 되고 있다.얼마 전에 방영된 드라마에 중에 ‘옥탑방 고양이’가 있었다.이 드라마를 보면서 젊은 세대의 사랑 이야기가 주는 신선한 재미보다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옥탑방 하나 마련하는 것이 저처럼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앞섰다.옥탑방이 뭔지도 모르는 대선 후보도 있었다지만, 30년 가까이 교육을 받아도 옥탑방 하나 구하기 힘든 것이 요즘의 젊은 세대들이다.‘대학만 졸업시켜 놓으면 자기 앞가림은 하겠지.’라는 어머니들의 기대마저 무너지고 있다. 우울증은 상실감에서 비롯한다.90년대 초반의 주부 우울증이 삶의 빈 둥지 증후군에서 비롯했다면,요즘 젊은이들의 우울증은 상실할 둥지 하나 갖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실감에서 비롯된다.속도 전쟁의 시대에 인적 자원으로서의 인간의 효용가치는 짧아지기 마련이다.30년 가까이 교육받지만,그것의 활용기간은 고작 10년 정도이다.이런 속도전 앞에서 안정된 고용은 기대할 수가 없다. 한때 노동운동은 정치운동이라는 이유로 비판받았다.노조가 자신들의 이해관계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독재타도는 왜 들먹이는가? 노동자들이 노조 지도부의 정치운동에 동원되고 있다는 것이 보수세력의 비판이었다.그런데 요즘은 거꾸로 노동운동이 비정치적인 조합이기주의에 함몰되었다고 비판한다.비정규직 노동 등으로 불안한 신분을 조직적으로 이용하는 사회에서 노동운동은 정치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것이다.사회가 노동운동에 일종의 정치적 부담을 지우는 형편에 이르렀다. 성격상 노동조합을 구성할 수도 없는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포함시킬 때라야만 노동운동은 ‘진정한’ 운동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오랜 투쟁의 결과 부모 세대가 안정적인 ‘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었다면,그들의 자녀 세대들은 ‘정규직’도 되지 못한 채 비정규직으로 떠돌고 있다.우울증에 사로잡힌 젊은 세대들이 노동운동의 수혜만을 무기력하게 기다려서도 안되겠지만,노동운동 역시 미래세대를 저당잡는 방식으로 전개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요즘 어머니들은 우울할 겨를이 없다.한때는 빈 둥지 증후군으로 우울했지만,이제는 ‘빈 둥지라도 좋다.제발 너희들 앞가림만 해다오.’라고 자녀들에게 부탁할 형편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임 옥 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공동대표
  • 말 안듣는 아이 매 약인가 독인가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때때로 매를 든다.아이들을 학대하는 몹쓸 부모가 아니라도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폭력은 그리 멀지 않다. 그러나 부모들은 알고 있다.‘사랑의 매’라고 아무리 변명해도 사실은 순간적으로 감정이 끓어올랐을 뿐,아이의 버릇이나 미래를 생각한 ‘교육적 처신이 아니었음을.그리고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니다.”는 자책에 괴로움을 겪기도 한다. 아이에게 매를 들어야하나,말아야하나.이것은 부모들의 공통된 고민 중 하나다. ●잘못된 버릇 어떻게 해야 하나 독자 김영선(39·서울 양천구 목동)씨가 메일로 취재를 요청했다. “아이가 커가면서 가장 큰 고민은 잘못된 버릇을 어떻게 고쳐나가느냐는 문제입니다.처음에는 좋은 말로 시작하지만 때때로 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기도 합니다.오늘도 수학문제를 가르치다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말았습니다.제가 성격이 유난한 편도 아닌데 아이에게만은 이런 식의 ‘저급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속상합니다.‘사랑의 매’라고 말하진 않겠습니다.솔직히 감정적으로 행동한 것이니까요.매를 들지않고 아이를 키울 수는 없을까요?그리고 남들도 저처럼 아이를 때리면서 키우는지 알고 싶습니다.” 독자 김씨의 고민은 ‘아이 키우기’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욱이 가정과 사회적인 분위기가 자유스러워지면서 “아이들의 버릇이 나빠졌다.”는 말에 대부분의 기성 세대는 공감한다.그러나 이전 세대와 달리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고 배운 부모들로서는 지난 세대의 엄격한 가정교육과 다른 새로운 자녀교육을 원한다.과도기적인 어려움은 가정교육에도 고스란히 투영돼 이 시대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이전 세대보다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12,10살난 두 아이의 어머니 성혜란(37·서울 동작구 사당동)씨는 매를 드는 이유를 “이대로 뒀다가는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지 않을 것같다는 조바심 때문에 화를 내게되고,때리기도 하는 것같다.”고 ‘부모의 욕심’이라고 때리는 이유를 분석했다.“솔직히,아이들은 맞으면 당장 조용해지고,말도 잘 듣기 때문에 매를 든다.남편은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접하라고 하지만,하루종일 아이들과 씨름하면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도리어 화가 난다.” 회사원 정석준(42·경기 고양시 일산구 마두동)씨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회초리를 걸어두고 키웠다.“실제로 아이를 때릴 기회는 많지 않았다.하지만 아이가 떼를 쓰거나,버릇없이 굴 때는 회초리는 상징적인 효과를 발휘했다.‘매를 아끼면 아이를 버린다.’고 믿는 부모님 아래서 자랐고,가끔 형제들이 싸우면 벌을 서기도 했다.매를 들지는 않더라도 부모가 통제할 방법을 모르면 문제가 커진다.”고 ‘가정교육 부재의 시대’를 염려하면서,그럴수록 ‘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매,필요악인가 대부분의 부모들은 ‘매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봐도 매를 맞고난 후,‘정신을 차려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잖았다.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에 난색을 표한다. 동덕여대 우남희교수는 “매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자녀를 부모의 예속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또한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때려서라도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부모가 이성적인 준비 혹은 훈련이 되지않은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버릇은 무서운 것이라 한다.‘사랑의 매’든 ‘교육적인 매’든 결국 매를 맞고,버릇을 가르쳤다면 다음 버릇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더 많이 때려야한다는 것이다.어린 아이에게 매는 단기적으로 ‘착한 아이’를 만들 수 있으나 그런 식의 통제만능 가정교육은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를 결국 어긋나게하는 단초가 된다.즉 부모들은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통제력의 부족’이라고 생각하면서 더욱 철저하게 통제하게 되고 친구에게 전화하는 것부터 공부하는 시간 체크까지 감시의 눈길을 번득이며 통제하게 마련이다.그러나 통제는 결국 부모가 바라는 바와는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지고,부모와 자녀간의 갈등만 커지게 된다. 때때로 아이들은 힘든 일과 매,두 개의 선택 중 “맞고 말지.”라는 식으로 부모가 기대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직장인 유현진(35·경기 성남시 분당구효자동)씨는 요즘 자녀교육에 자신감을 잃었다.초등학교 2학년 딸이 어렵더라도 혼자 일기를 써보라는 할머니의 충고에 “엄마는 잠깐 화내고 나면,금방 내 뜻대로 해준다.”며 “한 대 맞으면 된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직장일로 바빠 늘 시간이 없으니 아이가 스스로 해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걱정이 많지요.그래서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기보다는 ‘본론’위주로 이야기하게 되고,가끔 때리기도 했어요.물론 그렇게 심한 폭력은 아니었지만,야단을 치고 아이의 자존심을 짓밟았어요.후딱 제가 숙제를 해주는데 아이는 제 속을 훤히 꿰뚫어보고 있었다니…” 또한 아이는 너무 아프거나,무서우면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할 겨를도 없이 매를 맞아서 아프고,기분이 나쁘며 부모가 무섭다는 기억밖에 하지 않게 된다. 아이들에게 절대로 매를 들지않는다는 김성락(44·서울 강서구 가양동)씨.“실제로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타당한 이유없이 그냥 맞았던 기억,부모님이든 선생님에게서든 맞았던 기억은 섭섭함과 불쾌함,상처로 남아있어요.아직도 억울해요.” 그는 매의 ‘무용론’을 강조했다. ●폭력은 학습된다 연세대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아동학대라 불리는 극단적인 경우가 아닌 보통가정에서 가끔 일어나는 ‘매’도 폭력의 범주에 넣어야하고,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깊이 생각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폭력이 폭력을 부른다는 ‘폭력의 순환(cycle of violence)’은 이미 증명된 명제임을 부모들이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우리는 “3살 전에 버릇을 들이지않으면 아이 키우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만연해있고,최근에는 조기교육까지 극성이라 서너살 때부터 강압적으로 양육하는 부모가 늘고 있다.그러나 일찍 폭력에 노출된 아이는 자율성이 없어지고,자아상이 나빠져서 결국 자신감도 잃게된다는 것이다.부모가 자꾸 아이를 야단치면서 했던 말로 인해 아이들은 ‘나는 나쁜 애니까 어차피 좋아질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초등학교 4학년 양성호(가명)군은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를 찾았다.착하던 아이가 갑자기 화가 나면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가 하면 도벽까지 생겼기 때문이다.풍족한 가정환경이지만 성호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사내가 약하다.”며 아이를 때려서 키웠고 화가 나면 아이를 던지기까지 했다.심리검사에서 어떤 그림을 봐도 성호는 모든 사물을 무섭게 받아들였고,적개심에 가득차 있었다.성호의 어머니는 “사내아이가 약하다고 남편은 아이가 파랗게 질리도록 야단치고 때리기도 했다.얼마전 일기에 ‘언젠가는 아버지를 죽여버리겠다.’는 말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맞고 자란 아이는 학교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위험이 크다고 중·고등학교 교사들은 말한다.가정에서의 매가 결국 사회적인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김성훈(가명·13)군은 동생 성호(가명·12)군을 때려서 결국 크게 다치게 했다.문제는 가정폭력의 가해자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에 폭력에 노출됐던 아이는 폭력에 대한 도덕성을 갖지 못했고,또한 분노를 조절할 줄 모르는 아이로 자랐다.“얌전한 아이인데,왜 동생에게만은 그렇게 폭력적인지 모르겠다.”고 어머니는 말하지만 폭력의 순환고리는 이렇게 때로는 가해자로,때로는 피해자로 이중의 고통을 안겨줄 만큼 치명적인 것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형제가 싸우고,서로 폭력을 휘두른다면 그 문제는 형제가 아닌 부모와 자녀간의 문제에서 풀어야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부모들의 의식이 달라지지 않는 한 매 맞는 아이와 학교폭력,사회적인 폭력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전 세대들이 모두 폭력을 옹호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한학자 노재욱씨는 ‘이제는 아버지가 회초리를 맞을 때다’라는 자녀교육서에서 “예의범절이나 버릇을 가르치려고 아이에게 매를 때리는 것은 선현들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선현들이 자녀를 때리라고 가르치지는 않았다.오히려 자녀는 부모를 보고 배우는만큼 부모의 행동가짐을 올바르게 할 것을 강조했다.자신들은 예의는 물론 질서와 도덕을 무시하면서 아이에게만 잔소리하고,매를 든다면 결코 진정한 예의를 가르칠수 없을 것”이라며 이 시대 부모들의 이중적인 가정교육을 우려했다. ●매는 절대로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매는 절대로 안된다.”고말하지는 않는다.‘때에 따라서’는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남희 교수는 “부모들이 이를 잘못 이해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아이의 성격에 따라서 결정하라.”고 말했다.논리적으로 따지고 드는 아이에게 매는 금물,반면 감정적이고 행동이 부잡스러운 아이들에게는 “신체적인 가해가 때로는 효과적일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진정 아이를 위한,감정적인 분노표출이 아닌 ‘교육적’인 매는 어떤 것일까. 우선 △부모가 화를 가라앉히고 난 뒤에도 때릴 이유가 분명히 있다면 그렇게 하라.△“다음에 또 이렇게 행동하면 3대 때린다.”는 식으로 미리 경고하고,똑같은 행동을 했을 때에는 벌할 수 있다.단 가급적 같은 장소에서 체벌을 하나 정해두고 벌한다면 계획성없이 손으로 때리는 그런 폭력의 문제점은 해결할 수 있다.△아이를 때리고 나서는 반드시 달래줘야 한다.또 아이에게 맞고나서의 느낌이나 생각을 묻고,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그래야 아이가 매에 대해 이해하고,상처로 남지않기 때문이다. 결국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대화하는 부모의 자세가 매보다는 효과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허남주기자 hhj@
  • “신도9명 살해 암매장”종교단체지도자등 3명 체포 시신1구 발굴… 추가 수색

    모 종교단체 일부 신도가 살해된 후 암매장된 것으로 드러나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수사 수원지검 강력부(부장 이경재)는 14일 “모 종교단체 전 신도 김모(66)씨를 살인혐의로 긴급체포해 조사한 결과,다른 신도 지모(90년 8월 실종·당시 35세)씨와 전모(92년 실종·당시 50세 추정)씨 등 2명을 살해해 야산에 묻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면서 “안성시 금광면 금광저수지 주변 야산에 암매장한 1명의 사체 유골을 발굴한데 이어 또 다른 1명의 사체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살인혐의로 체포된 김씨가 이들을 포함,지난 84∼92년 신도 9명을 살해한 뒤 경기와 호남·영남지역 등 전국 여러 곳에 묻었다고 진술해 피살된 정확한 인원 및 살해경위 등에 관해 집중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또 이 종교단체 지도자 조모(72)씨를 14일 김포공항에서 살인교사혐의로 긴급체포했으며,전 신도 정모(44)씨도 폭행혐의로 긴급체포,사건 관여 여부를 캐고 있다.검찰 관계자는 “교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씨 등을 목조르거나 때려 죽였다고 한 신도가 제보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사체 발굴현장에 나온 전씨의 부인 박모(58)씨도 “방송국에 종교단체의 비리를 고발하기도 했던 남편이 실종되기 한달 전부터 종교단체로부터 협박을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유골 발굴 검찰은 14일 오후 4시쯤 저수지 낚시터 인근 야산에서 1.5m 정도를 파내려가 지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찾았다.150여m 떨어진 지점에 전씨가 암매장됐다는 진술에 따라 발굴작업을 벌이고 있다.검찰은 지씨와 전씨가 실종된 해에 살해돼 매장됐으며,나머지 암매장된 것으로 진술된 7명 가운데 3∼4명이 살인죄 공소시효(98년) 이후에 암매장된 것을 확인,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발굴작업을 벌이기로 했다. ●종교 단체 종교단체측은 “체포된 김씨 등은 이미 10여년 전에 교단에서 탈퇴한 신도”라며 직접 관련설을 부인하고 있다.신도들 사이에서는 “초창기 교세를 무리하게 확장하던 시절의 악몽이 되살아났다.”며 긴장하는 분위기다. ‘영원한 삶’을 교리로 삼은 이 종교단체는 지난 94년 신도 사체를 암매장한 혐의로 경기도 시흥시 계수동에 있는 기도원(일명 ‘밀실’)에서 검·경에 의해 발굴작업이 이뤄지기도 했다.이곳에는 아직도 나이든 신도 10명이 집단생활을 하고 있다.경기도 부천의 본부에는 매일 500여명이 찾아와 예배를 보고 있다. 수원 김병철·인천 김학준기자 kbchul@
  • [열린세상] 복개가 아닌 복원을

    “경작이 뭐예요,엄마?” 놀기만 하던 아이가 한자시험을 본다며 한 질문이다.기회다 싶었다.경작이란 밭을 갈아서 일구는 것이다.마음의 밭을 일구는 것이 교양이고 문화다.그러니 놀지만 말고 마음의 밭 하나 경작해보는 건 어때? 아이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난 녹지 보존을 선택할래.” 오랫동안 우리 사회는 녹지개발이야말로 생산 증대와 풍요를 보장하는 보증수표라고 생각했다.청계천을 복개하고 그 위에 시멘트 고가도로를 건설한 것도 그런 믿음 때문이었다.그런데 이제는 복개했던 청계천을 복원하겠다고 난리다.‘미래는 먼 과거에 있다.’는 말이 실감난다. 박태원의 ‘천변풍경’(1938년)을 보면 청계천 빨래터에는 주인이 있었다.무슨 소리냐고? ‘주인’은 천변에 솥을 걸고 빨랫줄을 친다.그러고는 빨래하는 아낙들에게 자릿세를 받는다.경성부청에서 따낸 당당한 허가증으로 편의시설을 갖춰 놓고 사용료를 거둬들인 셈이다. 한 여자가 빨래를 하고 그냥 자리를 뜨려 한다.그러자 다른 아낙들이 자릿세도 모르는 걸 보면 시골서 갓 올라온 모양이라고 쑥덕거린다.그 시절 빨래터 주인에게 청계천은 돈줄이었다. 청계천이 복개된 것은 지난 1970년대의 일이다.빨래하던 아낙들의 수다와 시름은 복개천 아래 잠겼다.때 늦게 부청의 허가를 얻어 막차를 탄 빨래터 주인의 꿈과 좌절도 그 아래에 묻혔다.매몰돼 버린 꿈과 좌절은 복계천 위의 빽빽한 피복공장으로 되살아난다. 살아 생전 전태일은 피복공장에서 하루 16시간씩 일하는 어린 견습공(시다)들을 보면서 가슴 아파했다고 한다.그들의 고달픈 노동이 없었다면 동대문 의류상가가 지금처럼 발전했을까? 청계고가 위로 신나게 달리는 승용차들을 바라보던 ‘시다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다림질의 열기 속에서 여름이면 멱감던 고향 마을 시냇가를 떠올렸을까? 힘겨운 노동에서 벗어나 남들처럼 고가 위를 시원하게 달려볼 날을 고대했을까? 고가 위를 달리고 싶던 그들의 꿈이 실현된 이 마당에,청계고가는 마침내 헐리기 시작했다.청계천 주변 상인들의 깊은 한숨을 제외하면,맑은 물길이 도심을 흘러간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그런데 ‘청계천 복원’을 내걸고 또 다른 ‘청계천 복개’를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들린다.청계천복원추진본부는 청계천을 옛 모습대로 복원해서 녹지와 자연을 서울 시민들에게 되돌려주는 데 관심이 있다기보다,세운상가를 중심으로 한 도심 낙후 지역의 대대적인 재개발에 관심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청계천이 번쩍거리는 상가와 요란스러운 테마공원으로 도배될까 무섭다.경성부청이 아니라 서울시청이 자릿세를 거두기 위해 기왕의 허름한 삶을 몰아내고 견고한 인공도시를 세울 것 같아 두렵다. 도시가 견고해 보이는 까닭은 인간의 생물학적인 조건을 은폐했기 때문이다. 잿빛 시멘트 철골 구조물과 매연을 내뿜는 차량 홍수 속에서는 생명체가 숨쉬기 어렵다. 치명적으로 오염된 물과 공기로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게다가 무릇 태어난 모든 것은 사라진다.견고하기 이를 데 없던 청계고가도,그것을 건설한 사람도 모두 사라졌다. 인도의 황량한 고원 지대에서 자연 친화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라다크 사람들은 땅을 하루치,이틀치로 헤아린다고 한다.땅 넓이는 일굴 수 있는 시간 단위로 측정된다.그들에게 땅은 시간처럼 흘러가는 것이다.그들은 땅을 필요 이상으로 경작하여 착취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이제 개발이 아니라 보존이 화두인 시대다.개발이 아니라 제대로 복원된 청계천이 도시 생활의 즐거운 물길 하나를 열 수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양적 생산성에 비길 수 있겠는가. 임 옥 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공동대표
  • 클로즈업/MBC 2부작 ‘미샤와 마샤’

    MBC가 2부작 스페셜 ‘미샤와 마샤’의 두번째 이야기로 ‘미샤남매의 첫 겨울나기,그리고 마지막 이별’을 오후 11시30분 방송한다.가을은 반달가슴곰이 동면 준비를 하는 시기이다.아기 반달가슴곰이 맞는 첫 동면은 아주 중요하기에 제작진은 특별히 곰들이 동면했던 나무에 집을 만들어 미샤 남매를 머무르게 했다. 2002년 12월 동면에 들어간 미샤와 마샤가 90여일만에 집밖에 나온 뒤 다시 인근 자연보호구역으로 돌려보내지기까지의 생활을 카메라에 담았다.생명의 소중함과 멸종되어 가는 야생동물 보호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준다.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 반달가슴곰이 굴에서 동면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고목나무 등걸 속에서 겨울을 보낸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려준다.자연생태 전문 촬영가인 최기순씨 부부가 2년 동안 반달가슴곰 남매와 함께하면서 찍었다. 이순녀기자 coral@
  • 제3회 광주국제영화제 임재철 프로그래머

    ‘영화에 미친 사람들이 제대로 대접받는 잔치’. 제3회 광주국제영화제가 22일부터 열흘 동안 빛고을 광주를 달군다.그 모습은 도심에 자리잡은 무등산 같다.겉으론 무덤덤해 보이지만 그 속엔 열기가 가득하다. 광주영화제는 전국 시네필(영화 애호가)의 잔치다.1회부터 토대를 다져온 임재철(42) 프로그래머를 만나 ‘시네필 잔치’의 모든 것을 들어보았다. 영화제 특성이 애매하다는 지적이 있다고 가시돋친 질문을 던져보았다.“특성이 없다고요? 잘 몰라서 하는 소리죠.영화 마니아까지는 아니더라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잔치죠.1년에 영화 한편도 보지 않는 사람들과 자기 돈으로 40∼50편 보는 그룹은 다릅니다.광주 영화제는 후자에 비중을 두는 거죠.” 이런 임씨의 철학은 2년 전 프로그래머 제의를 받은 이후 지금까지 해온 영화제에 그대로 녹아 있다.그는 “다른 도시처럼 재미있는 행사로 만들자는 소리도 있었지만,굳이 돈을 많이 들여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예향이면 예향답게 하자고 설득했다.”고 말한다. ‘영화다운 영화’에 대한 임씨의 애정은,이후 대중성에 비중을 두자는 소리가 높아지고 그런 요구가 그의 원칙과 접점이 없을 경우 “언제라도 그만둘 계획”이라고 말할 정도로 확고하다. 마니아 영화제를 고수하려는 이유는 또 있다.임씨가 진단컨대 부산영화제처럼 갈 경우 ‘황새 따라간 뱁새’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 “부산영화제의 성공요인중 하나는 구미의 아시아영화에 대한 관심 고조와 맞물려 있습니다.그러나 한국 영화의 규모를 보면 이젠 그런 형태의 영화제로 가는 문은 닫혀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보통 이상의 관심을 가진 사람을 타깃으로 한 컨셉트는 1,2회에 오롯이 반영됐다.‘될성 부른 나무’인 신예 감독들을 조명하는 ‘영 시네마’와 ‘월드 시네마 베스트’,거장들의 회고전에 무게가 실렸다.이에 대해 임씨는 “영화인의 교양을 넓히고 토대를 다지는 작업인데,결국 영화를 살찌게 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두터운 마니아층’에 대한 임씨의 철학은 오래 전에 형성됐다.“영화를 보면 그저 편하다.”는 그는 94년 넘치는 애정을 주체하지 못해 6년 동안의 중앙 일간지 기자생활을 접고 미국 유학의 길에 올랐다.뉴욕시립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귀국한 뒤 마니아 잡지를 만들기도 했고 전국을 순회하는 시네마테크에서 거장들의 회고전을 기획했다.임씨의 영화 사랑은 끝없이 이어져 “영화제가 좋은 문화행사니까 지원한다는 인식은 예산 배정에만 신경쓰는 문제를 낳는다.”는 지적까지 잊지 않는다.그의 안내를 바탕으로 영화제 밑그림을 그려보았다. 이종수기자 vielee@ 사진 이언탁 기자 utl@ 주요작품 ●광주국제영화제 세번째 얼굴 ‘시네필,부활을 외쳐라’를 모토로,장편 100여편을 상영.개막작은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고 폐막작은 칠레 출신 라울 루이즈 감독의 ‘그날’이다. 1,2회에서 반응이 좋았던 ‘영 시네마 섹션’은 제3세계 감독들을 많이 소개하는 게 특징.또 근래 만들어진 작품중 걸작을 소개하는 ‘월드 시네마 베스트’에서는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의 신작 ‘팜므 파탈’,장 피에르 미로뱅의 ‘노보’ 등이 기다린다.거장 회고전 코너는 ‘서부영화의 역사’ 존 포드 감독에게 눈길을 돌렸다. 관심이 가는 섹션은 올 처음 기획한 ‘논픽션 시네마’.극영화가 아닌 실험영화나 다큐 등을 소개하는데,임 프로그래머는 실험영화의 대가 마이클 스노의 신작 ‘코퍼스 칼로섬’과 안드레 헬러의 ‘히틀러의 여비서’를 특별히 권한다.또 60∼70년대 일본 액션영화 대표작을 돌아보는 ‘일본 영화 걸작선’코너도 놓치기 아까워 보인다.자세한 작품과 일정은 홈페이지(www.giff.or.kr)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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