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026-01-31
    검색기록 지우기
  • 역전
    2026-01-31
    검색기록 지우기
  • 노력
    2026-01-31
    검색기록 지우기
  • 운명
    2026-01-31
    검색기록 지우기
  • 유나
    2026-01-3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134
  • 儒林(106)-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조광조를 동방사현이라고 불렀던 이율곡은 평생 조광조를 존경하여 자신이 세운 은병정사내의 주자사(朱子祠)에 조광조의 석상을 세워놓았을 정도였다.그는 또한 조광조의 묘지명을 직접 썼으며 그 묘지명에서 이율곡은 ‘저 울창한 용인땅 산 서리고,물굽이 긴대,빛나는 그 덕업 영원토록 잊지 못하리’라는 감탄사로 조광조를 기리고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선조 원년에는 당시 백인걸을 비롯하여 태학생 홍인헌 등은 조광조를 문묘에 배향할 것을,부제학이던 박대립은 관작을 증수하고 시호를 내릴 것을 주장하자,선조는 경연에서 퇴계 이황에게 조광조의 학문과 행적에 관해 물었다.이에 이황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는 성품이 빼어났으며 일찍 학문에 뜻을 두어 집에서는 효도와 우애를 조정에서는 충직을 다하였으며,동시 여러 사람과 협력하고 옳은 정치를 다하였습니다만 그를 둘러싼 젊은 사람들이 너무 과격하여 남곤·심정 등을 모함하고 구신들을 물리치려함으로써 화를 입게 된 것입니다.” 조광조에 대한 수많은 평가 중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사상가인 이퇴계가 내린 조광조에 대한 평가야말로 단연 최고봉일 것이다.이퇴계는 자신이 직접 조광조의 행장기(行狀記)를 썼으며,이 행장기에서도 이퇴계는 조광조의 실수를 다음과 같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러나 공의 뜻이 너무 속히 하고자 하는 데에 잘못됨을 면치 못하여 무릇 건의하고 시행하는데 조급하게 굴어서 장황하고 과격하며 또는 나아가 젊고 이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유행에 뜻이 맞아 함부로 날뛰는 자가 그 사이에 많이 끼어 있었고,늙은 신하들이 새 시의(時議)에 배척당하여 이에 따라 공박(攻駁)을 당한 자의 원망이 골수에 사무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퇴계는 자신이 조광조의 행장기를 짓는 이유를 ‘황(滉)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비록 선생의 문하에 공경히 배우지는 못하였으나 선생으로부터 받은 것이 적지 않게 많은데,이미 비명(碑銘)을 사양한 데다가 또 행장마저 짓지 않으면 더 어찌 정(情)이 지극하니 일(事)이 따른다고 하겠는가.’라고 표현함으로써 자신이 조광조에게 학문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천천히 조광조의 무덤 쪽으로 걸어갔다.원래는 깊은 심산유곡이었는데 산기슭까지 아파트 단지들이 건설되고 중턱으로는 도시고속도로가 건설되어 묘역은 야산으로 변해있었다. 묘역으로 들어간 산자락에는 소나무와 잡목으로 이루어진 숲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그 나뭇가지에도 용인 땅의 수원편입을 결사반대한다는 붉은 페인트로 칠해진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언덕으로 오르는 가장자리에는 거대한 표석이 세워져 있었다.그 곳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漢陽趙公靜菴趙光祖先生墓域” 그 표석을 보자 나는 마침내 조광조의 무덤를 찾아왔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악의 꽃’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던가. “이승은 짧다.무덤은 기다린다.무덤은 배고프다.” 배고픈 무덤.보들레르의 절창처럼 누군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배고픈 조광조의 무덤.옛말에 무덤을 ‘백골청태(白骨靑苔)’라 하였다.죽은 후 500년이 흘렀으므로 이미 흰 뼈와 푸른 이끼로만 남아서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어지러운 난세를 살고 있는 우리를 기다리는 조광조의 무덤을 마침내 오늘 내가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 儒林(106)-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儒林(106)-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조광조를 동방사현이라고 불렀던 이율곡은 평생 조광조를 존경하여 자신이 세운 은병정사내의 주자사(朱子祠)에 조광조의 석상을 세워놓았을 정도였다.그는 또한 조광조의 묘지명을 직접 썼으며 그 묘지명에서 이율곡은 ‘저 울창한 용인땅 산 서리고,물굽이 긴대,빛나는 그 덕업 영원토록 잊지 못하리’라는 감탄사로 조광조를 기리고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선조 원년에는 당시 백인걸을 비롯하여 태학생 홍인헌 등은 조광조를 문묘에 배향할 것을,부제학이던 박대립은 관작을 증수하고 시호를 내릴 것을 주장하자,선조는 경연에서 퇴계 이황에게 조광조의 학문과 행적에 관해 물었다.이에 이황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는 성품이 빼어났으며 일찍 학문에 뜻을 두어 집에서는 효도와 우애를 조정에서는 충직을 다하였으며,동시 여러 사람과 협력하고 옳은 정치를 다하였습니다만 그를 둘러싼 젊은 사람들이 너무 과격하여 남곤·심정 등을 모함하고 구신들을 물리치려함으로써 화를 입게 된 것입니다.” 조광조에 대한 수많은 평가 중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사상가인 이퇴계가 내린 조광조에 대한 평가야말로 단연 최고봉일 것이다.이퇴계는 자신이 직접 조광조의 행장기(行狀記)를 썼으며,이 행장기에서도 이퇴계는 조광조의 실수를 다음과 같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러나 공의 뜻이 너무 속히 하고자 하는 데에 잘못됨을 면치 못하여 무릇 건의하고 시행하는데 조급하게 굴어서 장황하고 과격하며 또는 나아가 젊고 이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유행에 뜻이 맞아 함부로 날뛰는 자가 그 사이에 많이 끼어 있었고,늙은 신하들이 새 시의(時議)에 배척당하여 이에 따라 공박(攻駁)을 당한 자의 원망이 골수에 사무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퇴계는 자신이 조광조의 행장기를 짓는 이유를 ‘황(滉)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비록 선생의 문하에 공경히 배우지는 못하였으나 선생으로부터 받은 것이 적지 않게 많은데,이미 비명(碑銘)을 사양한 데다가 또 행장마저 짓지 않으면 더 어찌 정(情)이 지극하니 일(事)이 따른다고 하겠는가.’라고 표현함으로써 자신이 조광조에게 학문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천천히 조광조의 무덤 쪽으로 걸어갔다.원래는 깊은 심산유곡이었는데 산기슭까지 아파트 단지들이 건설되고 중턱으로는 도시고속도로가 건설되어 묘역은 야산으로 변해있었다. 묘역으로 들어간 산자락에는 소나무와 잡목으로 이루어진 숲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그 나뭇가지에도 용인 땅의 수원편입을 결사반대한다는 붉은 페인트로 칠해진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언덕으로 오르는 가장자리에는 거대한 표석이 세워져 있었다.그 곳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漢陽趙公靜菴趙光祖先生墓域” 그 표석을 보자 나는 마침내 조광조의 무덤를 찾아왔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악의 꽃’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던가. “이승은 짧다.무덤은 기다린다.무덤은 배고프다.” 배고픈 무덤.보들레르의 절창처럼 누군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배고픈 조광조의 무덤.옛말에 무덤을 ‘백골청태(白骨靑苔)’라 하였다.죽은 후 500년이 흘렀으므로 이미 흰 뼈와 푸른 이끼로만 남아서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어지러운 난세를 살고 있는 우리를 기다리는 조광조의 무덤을 마침내 오늘 내가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 [어른을 위한 동화] 말과 말

    아마 넌 모를 걸? 말(馬)이,히이잉하는 울음소리를 내고,따그락 따그락 발굽소리를 내며 바람처럼 달리는 말(馬)이,한때는 멋진 날개와 꽤 괜찮은 쓸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새도 아니고,곤충도 아니고,용도 아니고 선녀도 아닌 것 중에서 날개를 가진 것,그래서 공중을 날 수 있는 것은 말(馬),오로지 그 동물뿐이었던 아스라한 시절에는 말(馬)도 우리처럼 말(言)을 했단다. 뽀얀 새벽 안개를 헤치며 말(馬) 한 마리가 바삐 날고 있었어. 정신없이 날아간 말(馬)은,아직 잠이 덜 깬 채 이제 겨우 눈을 끔벅이고 있는 여우에게 숨가쁘게 속살거렸어. “아,글쎄 지난 밤에,고슴도치 부부가 싸움을 했는데….” ‘싸움이라고? 고슴도치 부부가?’ 여우는 입을 쫙 벌리고 하품을 한번 늘어지게 한 다음,느릿느릿 물었어.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야,아침부터? 곰이 달밤에 재주를 피우든 말든,고슴도치들이 어쩌든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아,아니 뭐 그냥 그렇다는 거지.별일은 아니고….” 조금도 흥미를 나타내지 않는 여우를 보자,어색해진 말(馬)이 말(言)꼬리를 흐리며 멈칫멈칫 날아올랐지. “원,별 싱거운 꼴을 다 보겠네!” 멀어져가는 말(馬)을 바라보면서 여우는 픽 웃었어.그러고는 곧 잊어버렸지. 얼마 후에,먹이를 찾기 위해 어슬렁거리던 여우는 우물우물 되새김질을 하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말(馬)과 우연히 마주쳤지. ‘뭘 저렇게 입안에 가득 넣고 돌아다닌담?’ 여우는 혼자 중얼거렸어. 그런데 여우가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말(馬)이 아직도 뭔가를 우물거리고 있는 거야. “밥 먹을 시간도 없다니까!” 갑자기 머쓱해진 것일까? 여우와 눈이 마주치자 말(馬)이 변명하듯 씨익 웃었지.여우는 또 픽,웃음이 났어. “도대체 왜 밥 먹을 시간이 없는데?” “으응… 바빠서.그래서 그렇지 뭐.” “바빠서?” 여우가 되물었어. “그래서 식사하실 짬도 없으시다?” “으응… 그,그런 셈이지 뭐.” 말(馬)은 말(言)을 더듬었지. “뭘 하시는데? 대체 하루 종일 뭘 하시는데,식사하실 시간도 없이?” 말(馬)은 아무 말도 못하고 우물쭈물 자리를 피해 버렸어. “정신없는 친구.밥 먹을 시간도 없이 싸다니면서 대체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는 거야?” 여우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지. 또 얼마가 지났어.여우는 굴 앞에 엎드려 한가롭게 햇볕을 쬐고 있었지.그때 갑자기 땅이 쿵쿵 울리는 거야.무슨 일인가 알아보려고 막 일어서던 여우가 미처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굵다란 팔 하나가 여우의 앞섶을 잡고 흔들어댔지. “이 나쁜 놈! 너지? 네가 그랬지?” 화가 잔뜩 난 곰의 목소리가 우렁우렁 온 산에 울렸어. “캑,캑,아,아니,왜 이래?” 곰이 목을 너무 꽉 조였기 때문에 여우는 숨을 쉴 수가 없었어.하지만 곰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 “내가 정신 나간 것처럼 달밤에 혼자서 체조를 한다고 했다면서? 네가 그런 말(言)을 퍼트렸다며?” 여우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어.가까스로 곰을 달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말(馬)이 그런 말(言)을 했다는 거야. “그래서 숲속 친구들이 나만 보면 킥킥거린다니까!” 이번에는 여우가 화낼 차례였지.여우는 단숨에 말(馬)에게 쫓아가서 소리질렀어. “쓸개 빠진 녀석 같으니라고! 보자보자하니까 나중엔 원 별꼴을 다 보겠네! 날개 달고 바삐 날아다니면서,밥도 제대로 못 먹어가면서,기껏 한다는 짓이 말(言)이나 옮기고,싸움이나 붙이는 거냐? 더구나 없는 말(言)까지 지어내고 키워가며?” 그러데 알고 보니 이렇게 말(馬)에게 당한 친구들이 하나둘이 아닌 거야.다람쥐,호랑이,오소리…. 이 동물들이 모두 소리쳤지. “말(馬)이 말(言)에 살을 붙여 부풀리는 통에 못살겠어요!” 이 정도 되면 너도 알지? 이쯤에서 누가 등장한다는 것을.그래,맞아.짐작대로 우리의 해결사 하느님이 나타나는 거야.그래서 예상대로 이렇게 호통을 치시지. “변변치 못한 녀석! 하는 짓이 줏대가 없고,사리에 온당치 못하니,말(言) 그대로 쓸개가 빠진 녀석이구먼! 네 녀석에게 쓸개가,더구나 날개가 가당키나 하겠느냐?” 예나 지금이나 그분의 말씀은 곧바로 실행되곤 한단다.이번 사건의 경우도 예외일 수는 없었지.그래서 말(馬)은 말(言)을 잘못 일군 죄로 날개와 쓸개를 잃었어.영원히.그리고 아주 모욕적인 이런 욕이 생겨난 거란다. ‘쓸개 빠진 녀석 같으니라고!’ 글 이윤희 그림 길종만 ●작가의 말 말은 정말 쓸개가 없답니다.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자기 일이나 잘 합시다,우리! ˝
  • [We 동화] 너구리 죽이기

    해가 완전히 지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하늘 한편에 초생달이 떠올랐단다.바람의 결에는 향기로운 수수꽃다리의 체취가 슬쩍 얹혀져 있고 멀리서 뻐꾸기가 간간이 울었지. “아함!” 너구리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해댔어.종일 뚝 떨어져서 정신없이 잤는데도 몸이 개운치가 않았지.지난밤에는 정말 너무 많이 놀랐거든. 어제는 처음으로 굴에서 꽤 떨어진 못가엘 한번 가보았는데 그게 잘못이었던 모양이야.걱실걱실 돋은 물풀을 헤치며 가재나 개구리,생쥐가 어디 없나하고 눈을 땅바닥에 붙이다시피하고 돌아다니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더니 아,바로 코앞에 살쾡이가 한 마리 딱 버티고 서있는 것이 아니겠어? “껄껄.오늘은 내 저녁밥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왔는 걸!” 살쾡이는 여유있게 느물거렸지. ‘간이 떨어진다.’라는 말은 바로 이런 때를 두고 한 말일 거야.너구리는 너무나 놀라서 발끝조차 움직일 수가 없었지.맥이 탁 풀리면서 온몸의 기운이 거짓말처럼 스르르 빠져나갔어. “꼼짝마라! 내 저녁밥아.넌 도망칠 곳이 없어.” 살쾡이는 한발짝 다가서며 입맛을 다셨지. 물론 살아남으려면 번개처럼,바람처럼 도망쳐야했어.더 바람직한 것은 꼿꼿하게 서서 멋지게 한판승을 따내는 것이었고.그렇지만 ‘살쾡이의 저녁밥’은 아무 짓도 할 수가 없었어.숨만 쌕쌕 내쉬다가 다음 순간 그 자리에 픽,쓰러져버리고 만 것이야. ‘갑자기 무슨 일이야? 난 손끝 하나 대지 않았는데?’ 어리둥절해진 살쾡이는 좀더 가까이 다가가서 너구리의 요모조모를 자세히 살폈지. ‘죽어버렸나?’ 살쾡이는 앞발로 너구리의 몸을 아무렇게나 들썩여보았지.너구리는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버리는 느낌이었어.그 자리에서 간이 녹아버릴 것만 같았지.살쾡이의 날카로운 발톱이 몸 여기저기를 툭툭 건드릴 때마다 질금질금 오줌이 나올 지경이었는 걸 뭐. ‘아니,이게 정말로 죽어버렸나?’ 살쾡이는 아무래도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어.쉽게 포기하기에는 너구리의 죽음이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믿기지 않았거든.‘저녁밥’이 너무 아까웠지. 그렇지만 너구리도 쉽게 단념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어.아니,살쾡이보다 오히려 더 심했지.살쾡이는 한 끼 저녁밥을 놓치는 정도였지만 너구리는 목숨을 잃는 것이었으니까. 한참동안 여기저기를 뜯어본 후에 살쾡이는 하는 수 없이 너구리에게서 떨어졌어.살쾡이는 죽은 고기를 먹지는 않았거든. “참나,새로 사냥을 해야겠네!” 살쾡이는 입맛을 쩍 다시며 중얼거렸지.그리고는 쓰러져 있는 너구리를 훌쩍 뛰어넘어 사라져 버렸던 거야. 살쾡이가 사라진 한참 후에야 정신을 수습한 너구리는 기다시피해서 간신히 굴로 되돌아왔지.그리고는 정신없이 잠을 잔 거야.그렇게 십년 감수를 한 다음에 자는 잠이니 자도 자도 모자란 기분이 들 수밖에. 그런데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보니 마음이 또 달라졌지.아주 여유있게 어제 일을 돌아볼 수 있게 된 거야.스스로 생각해도 아주 현명하게 굴었다는 생각도 들고,살쾡이가 아주 바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한동안 그렇게 미친 듯이 웃어대던 너구리는 천천히 웃음을 거두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어. ‘그래.그렇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었어.어려울 때에는 잠시 죽은 척하고 있기도 하는 거야.’ 별다른 무기도 없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힘겹게 느껴지던 너구리는 무릎을 쳤지. 처음 시작이 어려운 것이었어.한 번 그렇게 위기를 넘기고 나니 당당하게 적과 맞서 싸운다든가 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게 되었지. ‘위험하다 싶으면 꼼짝하지 말아라.이미 죽어버린 동물은 대개 건드리지 않아.그럴 가치가 없거든.뭐 어떠냐? 살기 위해서 잠깐 동안만 죽은 척하고 있는 것이?’ 너구리는 다른 동물들에게 이렇게 충고를 할 정도가 되었지. 그러던 어느날 너구리는 커다란 반달곰을 만났어.너구리는 버릇대로 재빨리 쓰러져 죽은 척했지.너구리의 연기는 이제 아주 완숙해져 있었어.그렇지만 곰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지.한참을 너구리의 몸에 코를 들이박고 킁킁거리던 반달곰이 너구리의 귀에다 대고 이렇게 속삭였어. “야,이 비겁한 친구야! 일어나서 덤벼들 배포가 없으면 차라리 도망을 치지,그 자리에 벌렁 누워 죽은 척하는 것은 또 어디 식이냐,치사하게시리!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안 살고 말겠다.” 곰은 너구리가 쓰러져 누운 바로 옆에 퉤,하고 침을 뱉었어.그리고는 성큼성큼 가던 길을 갔지. 그말을 들은 너구리는 너무나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한 나머지 그만 죽고 말았어.이번에는 진짜로 죽은 거야.쓸개가 터졌는지,혈압이 폭발했는지 분명하게 알 수는 없지만 너구리는 정말로 죽었다니까! 참나,정말이야.정말로 죽어버렸다고! 글 이윤희 그림 길종만 ●작가의 말 살아남기 위해 죽은 척을 하곤 한다는 너구리의 생존방식에서 슬픈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스무살 성년이 되던 20여년 전에는,적어도 그렇게는 살지 않겠노라 내심 장담했는데….성년이 된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축하와 격려를 보냅니다. ˝
  • ‘웰빙푸드’ 두부의 화려한 변신

    두부.‘밭에서 나는 쇠고기.’ 콩의 가장 화려한 변신이다.콩이 두부로 거듭나는 과정이 사뭇 숙연하다.물에 불린 후 맷돌에서 갈고,가마솥에서 펄펄 끓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그리곤 육중한 돌덩어리 밑에서 눌려 속이 단단하게 굳는다.제조 과정이 어떤 식품 못지않게 복잡하고,정성이 필요한 대표적인 슬로푸드다. ■ 먹자먹자 웰빙푸드 두부 최근 두부가 각광받고 있다.주로 산기슭에 많이 있던 두부 음식점들이 시내 한복판으로 진출해 성업중이다.잘 먹고 잘 살자는 요즘의 음식 코드인 ‘웰빙’과 맞물리면서 두부를 찾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 까닭이다.집에서도 직접 두부를 만들어 먹는 사람도 많아졌다. 두부는 세계 최장수국 일본의 장수마을 오키나와 사람들이 즐기는 다시마·돼지고기와 함께 3대 식품 가운데 하나다.이들은 하루 2끼 두부를 먹는다.오키나와의 대표적인 음식 ‘참푸르’는 두부를 돼지고기와 숙주나물·파를 넣고 볶은 것이다.두부의 영양이 높게 평가되면서 미국·캐나다와 유럽에서도 두부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우리는 고려시대부터 두부를 먹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고기를 먹지 않는 스님들이 단백질 공급원으로 삼았다 한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두부를 먹는 방법이 그렇게 다양하지 못하다.기름에 지지거나 찌개와 순두부로 먹는 것이 고작이다.두부 요리 전문 책을 낸 김수인(32) 전남도립남도대학 교수는 신세대의 취향에 맞는 두부크림치즈를 제안했다.두부와 크림치즈를 2대1의 비율로 섞은 다음 레몬즙을 1작은술 정도 넣어 섞으면 된다.그는 “두부크림치즈를 베이글이나 호밀빵에 버터 대신 발라 먹으면 아주 좋다.”고 설명했다. 또 김 교수는 젊은이의 취향에 맞는 두부 샌드위치와 두부 쿠키 등 5가지 요리를 만들었다.“두부는 소화 흡수율은 높고 열량은 낮아 다이어트에 좋은 식품”이라고 말했다. 두부 가운데 가장 맛있는 것은 얼린두부로 알려져 있다.중국에서 한 스님이 두부를 겨울철에 바깥에 두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딱딱하게 굳어있었던 것.이를 버릴 수 없어 국에 넣고 끓여 먹었는데 맛이 너무 좋아 그후에는 아예 얼려먹었다 한다.콩 단백질이 동결 건조된 두부에는 수분은 빠져 나갔지만 영양가의 손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김 교수는 “두부를 물에 담아 냉장 보관하면서 물을 자주 갈아주면 비교적 오래 보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하지만 두부를 신선하게 먹는 가장 좋은 방법은 프랑스 파리 주부들이 빵을 묵히지 않듯이,두부도 묵히지 않고 그날 다 먹어치우는 것이란 설명이다.그러면 언제 두부가 가장 맛있을까?“두부의 담백한 맛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이 감미롭다.”고 표현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정사를 나눈 후에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몹시 난처하다. ■ 장소 강남수도쿠킹아카데미(555-2884) ■ 하자하자 두부 만들기 주말 집에서도 두부를 만들어 보자.생각만큼 어렵거나 번거롭지 않다.대두(5컵)와 응고제(20㏄),물만 있으면 준비 끝.만드는 법 (1)콩을 깨끗이 씻어 3시간 정도 불린다.(2)콩의 4∼5배 정도의 물을 준비해 물을 조금씩 넣으면서 믹서기에 간다.(3)커다란 그릇에 베보자기를 깐 다음 (2)를 부어 두유와 콩비지를 분리한다.(4)두유를 냄비에 붓고 눋지 않도록 저어가면서 끓이면서 응고제를 3∼4차례 나누어 넣는다.거품이 많이 생기면 식용유를 몇방울 넣어주면 가라앉는다.(5)두부가 몽글몽글하게 엉길때 주걱으로 천천히 저어준다.빨리 저으면 엉긴 두부가 분리되므로 주의한다.(6)물이 빠지는 네모난 틀에 면보를 깔고 (5)를 부은 다음 무거운 것을 올려 굳힌다.두부가 굳으면 30분 가량 물에 담가둔다. ■ 김수인의 두부 요리조리 ●두부 샌드위치 재료 두부 ½모,식빵 8장,삶은 계란 2개,당근 ¼개,오이피클 ⅓개,양파 ½개,마요네즈 2큰술,레몬즙 1작은술,소금,후추 만드는 법 (1)식빵은 프라이팬에 살짝 구워 놓는다.(2)두부는 체에 2∼3번 걸러서 준비하고 여기에 마요네즈와 소금,후추,레몬즙을 넣는다.(3)삶은 계란과 오이피클,당근은 잘게 잘라준다.양파는 가늘게 채썰어 식초물에 20분 정도 담근 다음 잘게 잘라 주고 준비한 내용물을 (2)에 넣고 버무린다.(4)식빵위에 상추를 깔고 (3)을 얹고 다시 식빵을 올린다.기호에 따라 마요네즈 대신 머스터드를 이용해도 좋다. 사진 강성남기자 snk@ ●두부 소고기 덮밥 재료두부 1모,소고기 300g,달걀 3개,붉은 피망 ½개,다시마 국물 적당량,양파·팽이버섯·생강·마늘·후추·소금·설탕·간장·청주·맛술·브로콜리 약간씩 만드는 법 (1)두부는 사방 3㎝ 크기로 잘라 준비한다.(2)닭가슴살은 후추와 생강즙을 뿌려 냄새를 제거한 다음 두부와 같은 크기로 잘라 준비한다.(3)프라이 팬에 기름을 두르고 마늘과 양파를 볶은 다음 (2)를 넣고 같이 볶는다.(4)닭고기의 겉표면이 익으면 다시국물을 넣고 끓으면 두부를 넣고 양념을 넣은 후 자작자작하게 끓으면 풀어 놓은 달걀을 위에 넓게 뿌려주고 팽이버섯과 대파를 얹는다.달걀이 너무 익지 않게 해야 맛이 좋다.(5)국물이 너무 졸아들지 않게 준비한 (4)를 밥위에 끼얹어 내놓는다. ●튀긴두부 샐러드(4인) 재료 두부 1모,땅콩 ½컵,비트 ¼개,양상추 4장,깻잎 4장,크레송 2줄기,녹말가루 약간,소스(간장 2큰술,화이트 와인 1작은술,다시마 국물 2큰술,올리브유 2작은술,레몬즙 조금) 만드는 법 (1)두부는 물기를 충분히 제거한 다음 깍둑썰기하고 녹말가루를 묻혀서 중간 온도에서 튀긴다.(2)비트는 가늘게 채썰고,양상추와 깻잎,크레송은 먹기 좋은 크기로 뜯어 놓는다.(3)만들어둔 소스에 튀긴 두부와 땅콩을 함께 섞어 내놓는다. ●두부 쿠키 재료 밀가루 200g,설탕 80g,소금,베이킹파우더 10g,버터 170g,두부 120g,우유 20g,계란 1개 만드는 법 (1)두부는 물기를 제거한 다음 부드럽게 으깬다.(2)밀가루와 설탕,소금,베이킹파우더,버터를 넣고 섞어서 우유와 계란,두부를 넣고 다시 한번 섞어서 반죽을 만든다.(3)준비된 반죽은 30분 정도 냉동보관한 다음 잘 치대어 모양을 만들어 낸다.(4)160℃의 오븐에 25분간 구워 낸다. ●두부볼 프라이 재료 두부 1모,검은깨 2큰술,그린피스 2큰술,당근 ¼개,표고버섯 5장,소금·설탕 조금씩 만드는 법 (1)두부는 물기를 제거해 체에 곱게 걸러둔다.(2)표고버섯과 당근은 가늘게 채썰어 준비한 다음 (1)과 검은깨·그린피스를 넣고,소금과 설탕을 넣고 섞어준다.(3)둥글게 모양을 만든 다음 녹말가루를 조금 묻혀 튀겨준다.기호에 따라 다시국물에 물녹말을 풀어 끼얹어 먹어도 좋다. ■ 두루 맛보세요 두부 맛집 두부 마니아들은 가장 대표적인 두부 음식점으로 서울 공릉동 북부지원 뒷길의 제일콩집(02-972-7016)을 꼽는다.23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장 유병규(60)씨가 매일 새벽 직접 맷돌로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든다.콩을 갈아 비지처럼 만들어 끓이는 콩탕·두부찌개·청국장·순두부가 5000원씩.두부에 각종 야채와 돼지고기를 넣어 끓이는 두부고기 전골은 2만원(대)·1만 5000원(소)이다.날이 더워지면서 내기 시작한 콩국수(5000원)도 고소하면서도 걸쭉한 국물 맛이 별미다. 두부 전문점들이 산기슭에 주로 있는 반면 예성(02-755-1900)은 시내 한복판 명동에서 성가를 누리고 있다.롯데백화점 맞은편 국민은행과 하나은행 사이의 골목에 있는 이 집의 1층 주방이 홀보다 넓어 보인다.매일 두 가마니의 콩을 갈아 두부를 직접 만들어 쓰기 때문이다.점심 시간대에 가장 불티나게 팔리는 순두부의 종류가 9가지에 이른다.순두부를 만들땐 물을 많이 섞지 않는 것이 특징.그래서 순두부가 무르지 않고 고소한 맛이 살아있다.순두부정식,소고기·돼지고기·김치·양념·굴·버섯순두부가 각 6000원이고,해물순두부가 6500원.돌솥밥과 함께 계란이 나온다.또 손두부(1만원)를 주문하면 컬러 두부가 나온다.흰색 두부와 함께 검은 콩으로 만든 검은 두부,두부를 만들때 붉은색 파프리카를 넣어 만든 핑크빛 두부가 나와 식욕을 돋운다.또 저녁에 코스 요리를 주문하면 두부완자와 두부꼬치도 나온다.콩요리로는 콩돈가스,콩갈비,콩스테이크,콩양념치킨,콩불고기 등 콩으로 만든 고기류가 1만 4000∼1만 9000원이다.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 못미쳐 우리은행옆의 콩두(02-722-0272)는 프랑스식 식단에 두부와 콩요리를 결합시킨 퓨전 음식점이다.실내가 동양적이며 세련돼 로맨틱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두유와 콩국수 등이 나오는 점심 세트 메뉴는 1만 5000원,두부 스테이크는 2만 4000원이다.한때 거스 히딩크 축구감독이 즐겨 찾아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기철기자˝
  • 한류스타 꿈꾸는 ‘북경 내사랑’ 주인공 김재원

    ‘폭탄 맞은’ 머리를 하고 나타난 김재원(23).“날라리 같은 캐릭터를 만들려고 했던 건데….중국에서 오랫동안 촬영하다보니 머리를 신경쓸 수 없어서 이렇게 됐어요.” 10일 첫 전파를 탄 국내 최초의 한·중 합작드라마 ‘북경 내사랑(北京我的愛·극본 김균태,연출 이교욱)’의 주인공을 맡은 그는 ‘살인 미소’라는 별명처럼 장난기 어린 환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았다. 오랜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하면서 맡게된 역은 국내 굴지 전자회사의 후계자인 민국 역.허랑방탕 인생을 낭비하는 것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낯선 중국땅에 그를 내려놓고,그때부터 그의 좌충우돌 중국 체험기가 펼쳐진다.결국 민국은 제 손으로 성공을 일궈내고 사랑까지 찾게 된다는 이야기다. 천방지축이지만 귀엽기만 한 김재원의 캐릭터는 바로 직전에 출연한 영화 ‘내사랑 싸가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물론 한국 팬들은 또 비슷한 캐릭터를 하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하지만 제 목표는 중국입니다.중국에서는 이런 제 모습이 처음일테니까요.” 그의 말대로 ‘북경 내사랑’은 중국 관영 CCTV를 통해 오는 6월 중국 전역에 방송된다.새 한류 스타로의 도약을 꿈꾸며 중국에서 보낸 기간만 6개월.낯선 중국땅에서 헤매는 역할처럼 실제로도 힘든 나날이었단다.“공안이 출동해서 찍다가 달아날 때도 많았어요.한 컷 찍고 한참 뒤에 다시 찍다 보니 연결이 잘 안 되기도 했고요.극기훈련한 기분이에요.” 그의 상대역은 중국의 신예스타 쑨 페이페이.영화 ‘와호장룡’의 장즈이를 배출한 베이징 무용학원 출신이다.말이 안 통하는 배우와의 호흡이 어렵기도 했지만 “상황 파악이 빠른 똑똑한 연기자”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이번 드라마는 갈수록 재밌어지네요.끝까지 지켜봐주세요.”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 기분 좋은 날

    지난주 양구에 있는 박수근 미술관을 다녀왔다.준공할 무렵 처음 가보았고 연전에는 우연히 그 근처를 지나다가 아주 잘 돼 있는 표지판 때문에 잠시 들러본 적이 있다.이번이 세 번째이기 때문에 표지판이 나타나자 일행에게 내가 뭘 좀 아는 것처럼 굴고 싶었나보다.차가 진입로로 들어서기도 전에 저어기 보이는 저 건물이 바로 미술관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아무도 알아보는 것 같지 않았다.그렇게 되니까 나도 여기던가,저기던가 긴가민가해지고 말았다.그 정도로 그 미술관은 기념관이나 미술관 건물쯤 되면 규모나 외관이 어느 정도 높다랗고 번들대야 된다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고 마치 들판의 일부처럼,평범한 농가의 돌담처럼 눈에 안 띄게 다소곳이 엎드려 있다. 그러나 가만히 눈여겨보면 보통 안목으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는 걸 알 수가 있다.그 곳 자연뿐 아니라 박수근이라는 화가의 인품이나 작품세계와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속기(俗氣)도,자기 과시의 욕망도 찾아지지 않는다.들어가는 길도 마치 대문 열어놓고 사는 인심 좋은 집처럼 마음 놓고 빨려들게 된다.그러나 들어가 보면 이게 웬 떡이냐 싶게 눈이 휘둥그레진다.실상 그 전까지는 정말이지 잘 지었다싶은 건물에 비해서는 소장품의 양이 빈약했었다. 박수근의 정물화 ‘굴비’를 비롯해서 갤러리 현대의 박명자 관장이 기증한,박수근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화가들의 작품 52점은 하나같이 보석처럼 빛나는 작품인지라 그걸 여태까지 소장한 그의 안목도 안목이지만 세상에,저 좋은 걸 아까워서 어떻게 내놓았을까,한 개인의 용기 있는 결단이 던진 충격은 우리나라도 앞으로 예술을 향유하는 태도에 획기적인 변화가 올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기대감까지 품게 한다.‘굴비’는 도록 같은 데서 여러 번 접한 작품인데도 실물을 보니까 어머,저건 알배기 영광굴비 아냐?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만큼 사실적이었다.전시된 작품은 다 소품이었고 태반이 살기 힘든,더군다나 그림으로 먹고 살기는 더 힘든 시대의 작품이건만 훗날 그 대가들이 그린 대작 못지않게 아름답고 밀도 높아 그 시대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마저 불러일으켰다. 미술관을 나오면 박수근의 동상이 미술관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동상을 정면으로 볼 때는 너무 젊고 너무 잘 생긴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나중에 미술관과 그의 모습을 멀리서 옆으로 잡은 사진을 보니 마치 오랜 방랑 끝에 고향에 돌아온 나그네가 언덕에 앉아 감개무량한 듯,또는 지친 듯 우두커니 고향집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그는 마침내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이번 전시회가 열리기 며칠 전 그의 유해는 타향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미술관을 바라보는 언덕 위에 안장됐다.유족과 친지들,미술관 관계자들이 오랫동안 벼르던 걸 윤달 든 해를 기해 단행한 듯했다.이번 전시회는 마침내 묻힐 자리에 묻히게 된 그의 이장을 기념하는 뜻도 있었을 것 같다. 이렇게 모든 것이 갖춰지기 전 평일 날에도 하루 평균 2백명 가까운 관람객이 이 미술관을 찾는다고 유홍준 명예관장은 자랑스러워했다.산골 중의 산골,교통도 불편하고 볼거리도 없는 오지 중의 오지에 그만한 방문객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관장은 그 공을 양구군수에게 돌렸다.군수는 건축에 관한 모든 일을 전문가에게 일임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것 외엔 어떤 간섭도 안 했다는 것이다.개막 테이프를 끊을 때도 그는 말석에 있으려고만 했고 축사도 사양하고 있는 둥 없는 둥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그게 조금도 꾸밈없이 자연스러워서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났다.지나침으로 고인을 욕되게 하지 않을 줄 아는 그의 겸손이 마침내 박수근이라는 탁월한 문화상품을 그의 고장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그게 양구의 복이라면,6·25전엔 38선 이북이었던 양구가 휴전 후 휴전선 이남 땅이 된 것은 우리 모두의 복이자 박수근의 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사후에 복 많은 분이라는 소리를 할 수 있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듣는 고인도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 [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 기분 좋은 날

    지난주 양구에 있는 박수근 미술관을 다녀왔다.준공할 무렵 처음 가보았고 연전에는 우연히 그 근처를 지나다가 아주 잘 돼 있는 표지판 때문에 잠시 들러본 적이 있다.이번이 세 번째이기 때문에 표지판이 나타나자 일행에게 내가 뭘 좀 아는 것처럼 굴고 싶었나보다.차가 진입로로 들어서기도 전에 저어기 보이는 저 건물이 바로 미술관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아무도 알아보는 것 같지 않았다.그렇게 되니까 나도 여기던가,저기던가 긴가민가해지고 말았다.그 정도로 그 미술관은 기념관이나 미술관 건물쯤 되면 규모나 외관이 어느 정도 높다랗고 번들대야 된다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고 마치 들판의 일부처럼,평범한 농가의 돌담처럼 눈에 안 띄게 다소곳이 엎드려 있다. 그러나 가만히 눈여겨보면 보통 안목으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는 걸 알 수가 있다.그 곳 자연뿐 아니라 박수근이라는 화가의 인품이나 작품세계와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속기(俗氣)도,자기 과시의 욕망도 찾아지지 않는다.들어가는 길도 마치 대문 열어놓고 사는 인심 좋은 집처럼 마음 놓고 빨려들게 된다.그러나 들어가 보면 이게 웬 떡이냐 싶게 눈이 휘둥그레진다.실상 그 전까지는 정말이지 잘 지었다싶은 건물에 비해서는 소장품의 양이 빈약했었다. 박수근의 정물화 ‘굴비’를 비롯해서 갤러리 현대의 박명자 관장이 기증한,박수근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화가들의 작품 52점은 하나같이 보석처럼 빛나는 작품인지라 그걸 여태까지 소장한 그의 안목도 안목이지만 세상에,저 좋은 걸 아까워서 어떻게 내놓았을까,한 개인의 용기 있는 결단이 던진 충격은 우리나라도 앞으로 예술을 향유하는 태도에 획기적인 변화가 올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기대감까지 품게 한다.‘굴비’는 도록 같은 데서 여러 번 접한 작품인데도 실물을 보니까 어머,저건 알배기 영광굴비 아냐?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만큼 사실적이었다.전시된 작품은 다 소품이었고 태반이 살기 힘든,더군다나 그림으로 먹고 살기는 더 힘든 시대의 작품이건만 훗날 그 대가들이 그린 대작 못지않게 아름답고 밀도 높아 그 시대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마저 불러일으켰다. 미술관을 나오면 박수근의 동상이 미술관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동상을 정면으로 볼 때는 너무 젊고 너무 잘 생긴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나중에 미술관과 그의 모습을 멀리서 옆으로 잡은 사진을 보니 마치 오랜 방랑 끝에 고향에 돌아온 나그네가 언덕에 앉아 감개무량한 듯,또는 지친 듯 우두커니 고향집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그는 마침내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이번 전시회가 열리기 며칠 전 그의 유해는 타향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미술관을 바라보는 언덕 위에 안장됐다.유족과 친지들,미술관 관계자들이 오랫동안 벼르던 걸 윤달 든 해를 기해 단행한 듯했다.이번 전시회는 마침내 묻힐 자리에 묻히게 된 그의 이장을 기념하는 뜻도 있었을 것 같다. 이렇게 모든 것이 갖춰지기 전 평일 날에도 하루 평균 2백명 가까운 관람객이 이 미술관을 찾는다고 유홍준 명예관장은 자랑스러워했다.산골 중의 산골,교통도 불편하고 볼거리도 없는 오지 중의 오지에 그만한 방문객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관장은 그 공을 양구군수에게 돌렸다.군수는 건축에 관한 모든 일을 전문가에게 일임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것 외엔 어떤 간섭도 안 했다는 것이다.개막 테이프를 끊을 때도 그는 말석에 있으려고만 했고 축사도 사양하고 있는 둥 없는 둥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그게 조금도 꾸밈없이 자연스러워서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났다.지나침으로 고인을 욕되게 하지 않을 줄 아는 그의 겸손이 마침내 박수근이라는 탁월한 문화상품을 그의 고장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그게 양구의 복이라면,6·25전엔 38선 이북이었던 양구가 휴전 후 휴전선 이남 땅이 된 것은 우리 모두의 복이자 박수근의 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사후에 복 많은 분이라는 소리를 할 수 있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듣는 고인도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 韓·日 공주 횡혈묘 ‘주목’

    ‘태풍 전야의 고요’ 최근 충남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국도 32호선 도로확장 포장공사 구간의 성재산 경사면에서 확인된 횡혈묘(橫穴墓)에 대한 한·일 양국 학계의 시각과 움직임을 표현할 때 가장 적절한 말일 것이다. 지난 26일 공주 발굴현장에서 고고학자와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1차 지도위원회에서 묘의 주인공과 조성시기를 명쾌하게 단정하지는 못했다.그러나 지도위원회가 현장보존과 함께 5월 말 문화재위원회에서 집중 논의할 것을 결정함에 따라 이 횡혈묘가 국내는 물론,동북아 역사학계의 첨예한 사안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횡혈묘란 비탈진 산 언덕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굴과 같은 현실(玄室·무덤방)을 만들어 시신을 안치한 뒤 입구를 판석(板石)으로 막는 무덤 형태.학계에서는 이 묘제가 5세기 말∼6세기 전반 일본 규슈(九州)지방에서 시작해 8세기까지 일본 전역에서 유행해 지금까지 수만 기가 발굴된,일본 고대의 묘제로 보고돼 있다 국내 학계가 주목하고 나선 것은 일본에서만 확인됐던 이 묘가 완전한 형태로,그것도 15기나 무더기로 한반도에서 발견됐다는 점이다.따라서 지난 26일 공주 현장지도위원회에 참석한 학자들은 당연히 공주의 묘가 일본보다 앞선 것인지의 여부와 누구를 위한 묘인지에 관심을 모았다. 학자들 사이에는 묘의 조성 연대를 백제 동성왕(재위기간 479∼500년)부터 무령왕(501∼523년)무렵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와,아무리 빨라도 6세기 중반 전으로 보기 어렵다는 측이 팽팽하다.그러나 발굴단장인 충청문화재연구원 박순발 원장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가장 빠른 시기의 일본 횡혈묘와 비슷하거나 조금 빠르다.”는 입장을 펴고 있다.함께 발굴된 접시,토기 등에 정확한 시기를 알리는 명문이 없는 만큼 연대측정을 통해 밝혀야 하며 문화재위원회의 추후 작업에 따라 확인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묘의 주인공에 관해선 일단 공주 지역에 한정해 나타난 만큼 백제인을 위한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현장 지도위원회에 참석한 일본 가시하라고고연구소 기노시타 와타루(木下亘·48) 총괄연구원도 “토기 제작기법에서 일본토기 스에키(須惠器)와 맞물리는 점이 있지만 현지에서 만든 백제토기로 보아야 한다.”고 말해 이같은 시각을 뒷받침한다.충청문화재연구소는 “횡혈묘가 일본에서 폭넓게 유행했던 무덤 양식인 만큼 이번 발굴작업이 고대 한·일 지배세력의 교류를 비롯해 한·일 고대사의 가려졌던 부분을 메울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공주서 日고대묘제 무더기 발굴

    비탈진 산 언덕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굴과 같은 무덤방(현실·玄室)을 만들어 시신을 안치하는 일본 고대무덤 형태인 횡혈묘(橫穴墓)가 무더기로 발굴됐다. 충청문화재연구원(단장 박순발)은 신풍-우성간 고속도로건설 구간에 위치한 충남 공주군 우성면 단지리(丹芝里)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여 이같은 횡혈묘 15기가 군집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23일 밝혔다.이 횡혈묘는 6세기 무렵 일본 규슈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등장해 확산된 일본열도 묘제로 백제와 일본열도간 교류와 관련해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성호기자 kimus@
  • 춘곤증을 확 깨워줄 색다른 영화 2편

    춘곤증을 확 깨워줄 색다른 드라마 2편을 소개한다.30일 나란히 개봉하는 일본 거장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의 2001년작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과,스페인에서 날아온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두 작품은 이래저래 공통분모를 갖는다.인간내면에 숨겨진 내밀하고 기발한 욕망을 섹스코드를 빌려 경쾌한 어조로 풀어낸,아주 독특한 연애담들이라는 점.소규모 배급망 탓에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 채 막내릴 여지도 크다는 점.끝으로 하나 더.일단 보기만 하면 틀림없이 산뜻한 기분으로 극장문을 나설 것이란 사실이다. ●동성애 다룬 스페인 영화 ‘엄마는‘ 유럽영화를 지루하고 어려운 관념의 이미지틀에 가둬놓고 있었다면 이 영화를 계기로 그만 해방돼도 될 듯싶다.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화제작 ‘그녀에게’에서 발레리나로 나왔던 레오노르 와틀링이 상큼한 이미지로 코믹드라마의 분위기를 화사하게 띄워 올린다. 제목에는 사실과 오해가 반반씩 들어 있다.엄마가 여자를 좋아하는 동성애자란 암시는 ‘사실’.어감으로는 왠지 페미니즘 영화 냄새를 풍기지만 그렇진 않다.엄마의 동성애 때문에 세 딸이 빚는 해프닝을 그렸으되 성에 대한 편견을 노골적으로 공박하지는 않는다. 아빠와 이혼하고 혼자 사는 엄마 소피아(로사 마리아 사르다)가 생일파티에서 폭탄고백을 한다.스무살이나 어린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짐짓 태연한 척하면서도 속으론 경악한 세 딸들이 엄마의 여자애인을 떼놓기 위해 별의별 아이디어를 다 짜낸다. 영화는 소심한 둘째딸 엘비라(레오노르 와틀링)에게 무게중심을 옮겨,엄마의 동성애가 빚은 가족간의 갈등과 개개인의 혼돈을 여러 각도에서 투영해낸다.물론 전체 분위기는 코미디다.출판사에 다니는 엘비라는 인기작가 미구엘과 사이가 점점 좋아진다.하지만 스스로의 성적 정체성을 확신하지 못해 갈팡질팡한다.사랑의 취향이 유전될 수 있다는 정신과 의사의 말에 자신 속에도 있을지 모를 동성애 기질을 애써 찾고 또 부정하기를 거듭한다.세 자매들 중에서도 유독 소극적인 엘비라를 이야기의 축으로 세운 건 감독의 의도가 아닐까.매사에 주눅들어 살던 엘비라가 뜻밖에 마주친 갈등을 딛는 과정에서 보기에 따라 다양한 메시지를 잡아낼 수 있다.여주인공의 초라한 내면세계를 유쾌한 시선으로 이끌어낸 점에서는 심리드라마 같기도 하다.또 보수이미지를 대변하는 캐릭터인 엄마가 오랜 사회금기인 동성애에 빠진다는 설정은 성(性)을 단순한 코미디 소재로만 끌어들이지 않았음을 암시한다.농담 속에 알쏭달쏭 진담이 섞인,독특한 질감의 유럽산 코믹드라마다. 스페인 출신인 와틀링은 이 영화로 최근 프랑스 로맨틱 코미디에서 깜찍한 외모로 사랑받는 오드리 토투의 국내팬층을 앗아갈 것 같다.이네스 파리스,다니엘라 페허만 등 스페인의 두 여성감독이 공동연출했다. 황수정기자 sjh@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붉은 다리‘ ‘나라야마 부시코’(1983)와 ‘우나기’(1997)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나 거머쥔 일본의 이마무라 쇼헤이(78) 감독의 2001년 작품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이 30일 개봉된다. 팔순을 눈앞에 두고도 영원한 현역 정신을 자랑하는 거장의 이번 작품은 ‘포르노적인 상상력’에 팬터지라는 옷을 입힌,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실업수당으로 근근이 버티는 40대 가장 요스케(야쿠쇼 고지)는 자신이 묻어둔 금부처를 찾아서 가지라는 ‘거리의 철학자’ 다로(기타무라 가주오)의 유언에 따라 교토의 바닷가 마을로 내려간다.그가 붉은 다리 옆에 있는,보물을 숨겨뒀다는 2층집에 사는 이상한 여인 사에코(시미즈 미사)를 만난 뒤 다양한 일을 겪으면서 영화는 팬터지와 우화의 세계로 접어든다. 이따금 몸에 물이 차오르고 그 때마다 성욕이 발동하는 병에 걸린 그녀는 누구에게도 말을 못하는 이 고통을 절도행각으로 누르고 있다.이를 알게 된 요스케는 임시 선원으로 일하며 그녀가 사인을 보낼 때마다 달리기선수보다 더 빨리 달려가 섹스로 달래준다.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달래주고 서로에게 위안을 받는다. 정사 도중 사에코의 몸에서 분수처럼 뿜어나오는 장면이나,그 물이 계단을 지나 수로를 타고 강으로 흘러들면 물고기떼들이 몰려오는 기상천외의 상상력에서 이마무라 쇼헤이만의 저력이 느껴진다.조금 황당해보이는 기발한 상황 설정 속에는 ‘성장 신화’를 향해 질주하느라 메말라버린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일상을 풍자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가 담겨 있다. “21세기는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별로 없어요.”(사에코)나 “자본주의 사회는 감옥과 같아.말없이 일만하는 바보를 원해.”(요스케) 등의 대사에 현실을 향한 감독의 시선이 녹아 있다.실직 뒤의 구직난,아내의 생활난 불평, 구직 독촉에 시달리는 요스케는 일상에 억압받는 현대인들을 상징한다.감독은 그 탈출 방법으로 ‘욕망의 힘’을 강조한다.“욕망에 충실하는게 진짜 삶이야.”라거나 “요즘 인간은 다 병자야.진정한 욕망을 외면한다.”“쫀쫀하게 굴지 말고 욕망에 충실해.” 등의 대사가 곳곳에 포진하면서 원초적인 에너지를 회복할 것을 강조한다.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웃음을 더하는 것도 이마무라 쇼헤이의 연륜이 빛나는 대목이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이집이 맛있대]서울 대치동 ‘부뚜막 손두부’

    콩으로 만든 제품 중 가장 대중적인 게 두부.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해 영양 만점에 항암 효과까지 있어 누구에게나 사랑받는다.콩을 갈아 가마솥에 푹푹 끓여 만드는 모습에는 아련한 향수도 느껴져 두부는 심신(心身)에 유익하다는 말을 듣는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부뚜막 손두부’는 이처럼 건강에 좋은 두부를 직접 만들어 다양한 요리를 선보인다.매일 점심시간 즈음이면 주방에 있는 커다란 가마솥에서 강원도 횡성과 홍천에서 공수해온 국산 최상품 콩과 천연 간수,생수를 사용해 옛날 방식으로 두부를 만든다. 대표 음식은 부드럽고 하얀 순두부의 고소한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순두부’.보통은 순두부에 양념간장을 얹어 내지만 이집에선 조개와 굴로 만든 육수에 순두부를 담아 낸다.경기도 이천에서 20년 가까이 손두부를 만들어온 ‘전문가’에게 전수받은 방법. “많은 분들이 맵고 짜게 간을 한 순두부 맛에 길들여져 처음에는 양념장을 찾곤 해요.두 세번 드시고 나서야 순두부의 참맛을 알겠다고 하시죠.” 손님이 원할 땐 양념을 한 순두부를 내놓기도 한다는 이영옥(44) 사장은 그래도 역시 맑은 순두부를 추천하고 싶다고 한다. 비타민B군이 풍부한 삶은 돼지고기와 두부·김치를 조화시킨 ‘두부보쌈’,적당히 발효시킨 비지로 만든 ‘비지찌개’,버섯 미나리 등 각종 야채를 넣고 얼큰하게 끓여 올리는 ‘두부전골’,새우·낙지·조개 등을 넣어 바글바글 끓이는 ‘두부해물전골’도 이집의 추천 요리. 최여경기자 kid@˝
  • [We 동화] 오소리의 유언

    말갛게 익은 홍시빛 노을이 번져가는 저녁,굴 안에 웅크린 오소리는 아직 꽃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어. ‘일어나야 할 텐데….’ 머릿속에서는 그런 생각이 뱅뱅 돌았지만 온몸이 녹작지근해서 발끝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지.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굴 안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오소리를 부르는 게 아니겠어? “여보게 오소리! 자네,거기 있나?” 오소리는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았지.초대하지도 않은 손님이? “허허,날세 나야! 자네 친구 너구리라고!” 오소리는 어이가 없었어.인연이라고는 언젠가 한 번 스쳐지나간 것밖에 없는데,친구라니.더구나 이런 시간에! “그,그런데 웬일인가,여기까지?” 애써 속마음을 숨기려다 보니 말까지 더듬게 됐어.오소리는 엉거주춤하게 선 채로 너구리를 바라보았지. “웬일이라니! 아,자네가 이렇게 훌륭한 보금자리를 꾸며 놓았는데 얼굴 한 번 안 비친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축하도 하고 집 구경도 하고 뭐,겸사겸사 이렇게 왔네.자,어서 안내하게.친구를 언제까지 이렇게 문 앞에 세워둘 건가?” 너구리의 너스레는 보통을 넘었어.오소리의 어깨를 툭툭 쳐가며 마치 제 집인 듯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거든. 거절하고 어쩌고 할 틈도 없었지.쭐레쭐레 너구리를 뒤따라 걸으면서 오소리는 기가 막혔어.집 구경이라니! 도대체 누가 자기 굴을 보여준다는 거야? 어느 정신 빠진 오소리가? 웃는 낯에 침 뱉기가 뭐해서 가까스로 울화를 참고 있는 오소리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너구리는 한술 더 떴어.자기도 이 굴에서 함께 살면 안되겠느냐고 아주 공손하게 부탁을 한 거야. ‘물론 안 되지.안 되고 말고.’ 오소리가 막 그 생각을 소리내어 말하려고 하는데 너구리가 덧붙였지. “나는 괜찮은데 새끼들이 딱해서…자네도 혼자몸이 아니니 긴말할 필요도 없겠네만…부모 맘이란 다 같은 게 아니겠나?” 딱 잘라서 거절하려던 오소리는 갑자기 마음이 약해졌지.다른 것도 아니고 새끼 때문이라니….그 틈을 놓칠 리가 없지.너구리는 재빨리 호들갑을 떨었어. “아,고맙네.정말 고마워.자네 덕분에 우리 온가족이 비바람을 피할 수 있게 됐네.고맙네.정말 고마워! 절대로 폐는 끼치지 않겠네.내,약속하지.” 오소리는 ‘당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그러나 어쩌겠어? 이야기는 이미 끝났는데. 그날 이후 너구리와 오소리는 함께 살게 되었지.한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굴속은 평화로웠고,굴 밖 또한 조용했지.그러나 얼마 뒤,오소리는 집 근처에서 아주 불쾌한 냄새를 맡았어.너구리의 똥더미에서 나는 냄새.오소리는 또 한번 기가 막혔어.더럽다거나 냄새가 난다거나 하는 것은 둘째였어.문제는 누군가가 그 똥더미를 보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굴의 입구를 찾아낼 수도 있다는 것이었지.그리고 그것은 모두의 생명과 관계되는 중요한 일이었고. ‘가만 두나 봐라!’ 오소리는 한달음에 너구리에게 달려가 따졌어.하지만 너구리는 느물느물 웃었지. “뭐 그만한 일로 목소리를 높이나? 알았네 알았어.아,곧 치우겠대도!” 그러고는 도토리 몇 알을 내밀었지. “미안하게 됐네.그렇지만 이제 알아들었으니 그만해 두게.그만하고,이것 맛 좀 보게.자네 주려고 따왔네.아직 철이 좀 이르긴 하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할 걸세.” 결국 오소리는 우물쭈물 너구리의 눈치만 보았지.마음 같아서는 혼자라도 후다닥 치워버리면 속이 편할 것 같았지만 차마 그러지도 못하고.불안하고 개운치 않아서 바짝바짝 속이 탔지.그렇게 며칠을 더 보낸 후,마침내 오소리는 사냥을 나서며 결심을 했지. ‘내가 돌아오는 내일 아침까지,그때까지도 이 똥더미를 안 치워놓는다면 이젠 정말 말해야지.너구리,너와 친구 하지 않겠다고.아니 내 집에서 나가라고 딱부러지게 말해야겠어.’ 그러나 다음날 아침,집으로 돌아오던 오소리가 발견한 것은 굴 앞에 웅크리고 있는 스라소니였어.누구든 굴속에서 나오기만 하면 언제든 덤벼들 준비를 한 채 기다리고 있는 사나운 육식 동물…. 조금만 더 있으면 어미를 기다리다 지친 새끼들이 아무 것도 모른 채 굴 밖으로 나올 텐데.오소리의 온 몸이 와들와들 떨렸어.아,아,그렇게 되면….간이 오그라 붙는 것 같아서 더 이상 숨을 쉴 수가 없었지.오소리는 정신을 차리려고 흡,흡 심호흡을 했어.그러고는 소리쳤지. “얘들아,나오지 마라.나오지 마! 절대로 나오면 안 돼! 굴 밖에 스라소니가 있어! 스라소니가….” 미처 말꼬리를 맺지도 못한 채,오소리는 새끼들이 있는 굴과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어.그것은 오소리가 지상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 되었지. 파랑새어린이의 ‘우물쭈물 오소리 우화’에서 글 이윤희 그림 배혜영 ●작가의 말 부드럽게,웃으면서,거절하는 요령이 정말 필요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순간적으로 거절할 타이밍을 놓쳐서 큰 곤욕을 당하는 실례들을 보면서 오소리의 절망감과 가슴 치는 후회를 생각합니다.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건 뒤의 너구리입니다.너구리는 정말 뼈아프게 반성할까요? 정말 미안해할까요? ˝
  • [We 동화] 별꼴 사슴 뿔

    “늑대다!” 누군가의 고함소리에,여름 숲속은 도망치는 발소리들로 어지러웠지.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지.늑대는 가장 느린 어린 꽃사슴을 물고 천천히 사라져 버렸어. “휴,이번에도 겨우겨우 살아 남았군!” 늑대가 자취를 감추자,검은꼬리사슴이 벌렁거리는 가슴을 자신의 앞발로 감싸안으며 숨을 몰아쉬었지.그때 토끼가 불쑥 나섰어. “그런데…너희는 왜 도망가니?”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맞닥뜨린 토끼의 물음에 사슴들은 얼굴을 마주보았어. “왜 도망가느냐고?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왜 도망가느냐니?” “야,내 말은 말이야,그러니까….” 토끼는 답답하다는 듯 앞발을 마주 비벼댔지. “아,물론 당연히 도망을 가야지.우리같이 아무것도 없는 동물들은.그렇지만….” 토끼는 부러운 듯 사슴의 뿔을 바라보았어. “너희는 뿔이 있잖아! 아주 크고 멋진 그 뿔! 그런데 어째서 도망만 다니느냐고?” 사슴들은 또다시 얼굴을 마주보았어.그러고는 천천히 합창하듯 말했지. “우린 말야,이 뿔을 남을 해치는 데는 쓰지 않아.” “뭐라고?”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토끼가 물었지. “그렇지만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도?” 토끼는 정말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 “내가 알기에 너희처럼 매년 새 뿔이 돋아나는 경우는 다른 동물들에게는 없는 것 같은데.그러니 뿔이 상할 것을 걱정해서 그러는 것도 아닐 테고….” 대답 없는 사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토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발길을 돌렸지. “참 이상하구나,너희들은.다른 동물들처럼,약하고 어린 사슴들을 가운데에 모아 놓고,뿔이 튼튼한 사슴들이 빙 둘러서서 맞선다면,웬만한 동물들은 덤벼들지 못할 텐데.그럼 조금 아까 같은 희생도 줄어들 테고….” 토끼는 자신의 굴을 향해 뛰어가면서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중얼거렸지. “정말 이상해! 그런 뿔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데.정말 알 수 없다니까.” 가을이 되었어.숲은 누렇게,더러는 붉게 단풍이 들기 시작했지.어디선가 들국화 향기가 바람에 슬쩍 얹혀 오기도 했고. “탁!” “탁!” 이른 아침부터 뭔가 단단한 것들이 세게 부딪치는 소리에 숲 속 동물들은 아침잠을 설치고 밖으로 나왔어. “아,저쪽 덤불 뒤에서 나는 소린데?” “조심해! 조용조용히.어쩌면 위험한 일이 생겼는지도 몰라.” 청설모는 꼬리를 달싹이며 살금살금 가시덤불을 향해 앞장을 섰어. “아니,저게 누구야?” 가시덤불을 헤치던 청설모가 외마디 소리를 냈어. “뭔데? 누군데 그래?” 청설모를 밀어내다시피 하고,토끼가 가시덤불 틈에 눈을 바짝 갖다 댔지.그랬더니…사슴 여러 마리가 있었어.그런데,사슴들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 싸움을 하고 있었어.그것도 사슴,자기들끼리. 가장 몸집이 큰 사슴 한 마리와 약간 작은 사슴 한 마리가 서로 뿔을 맞대고 끙끙거리고 있었지.한참 동안 힘을 겨루다가 꽝,소리를 내며 뿔을 부딪치고 또다시 부딪치고….금세 작은 꽃사슴의 오른쪽 뿔의 가지 끝이 부러져 버렸지. 토끼의 눈이 저절로 휘둥그레졌어. “저 친구들은 남을 해치는 데는 뿔을 휘두르지 않는다던데….” “그래,물론 그렇지.” 굴 속에서 고개를 내민 들쥐가,딱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어. “하지만 저 친구들이 지금 남과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니잖아? 지금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잖아.남을,다른 동물들을 해치는 게 아니라고!”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토끼와 청설모는 거의 동시에 소리쳤어.그들은 들쥐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가 없었던 거야. “무슨 소리는 무슨 소리? 아,아직도 몰라? 이 잘난 사슴 족속들은 정말 필요할 때,위기에 처했을 때는 냅다 도망쳐요.그리고….” 들쥐의 말을 토끼가 잘랐어. “그리고 그 대단한 뿔을 자기들끼리 싸울 때,그때 사용한다는 말이야,지금?” “그래.그렇다니까.이제야 내 말을 알아듣는군.” 들쥐가 고개를 끄덕였지. 부러움과 안타까움 등의 여러 가지 감정들이 복잡하게 뒤섞여서,지독하게 입안이 썼지.토끼는 씹어 뱉듯 말했어. “쓸개빠진 녀석들! 자기들끼리 엉겨붙어 싸울 때만 뿔을 쓴다고,다른 땐 꽁지가 빠지게 도망을 치고?” ●작가의 말 사슴은 정말 쓸개가 없답니다.그리고 뿔은 자기 방어용이라기보다는 다른 용도,예를 들자면 짝짓기를 위한 결투용 같은 경우에 더 많이 쓰인다고 합니다.사슴은 참 재미있는 동물이지요? 우리 인간들만큼이나 말이에요.˝
  • 儒林(68)-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스승 한훤당이 조광조에게 유훈으로 내려준 ‘선비가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에 대한 설법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선비는 세상이 잘 다스려진다고 해서 가벼이 행동하지 않으며,세상이 어지럽다고 해서 자기 뜻을 잃지 않습니다.자기와 같은 부류라 해서 무조건 친하지 않고,자기와 다른 부류라 해서 무조건 배척하지 않습니다.그들이 뛰어나게 홀로 바른 행실을 지킴이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위로는 덮어놓고 천자의 신하가 되지 않고,아래로는 덮어놓고 제후들을 섬기지 않습니다.신중하고 냉정하며 관대함을 숭상하고,강직하고 꿋꿋한 자세로 사람들과 어울립니다.박학(博學)하면서도 옛 현인(賢人)을 따를 줄 알고,문장을 가까이하고 익히며 행실을 닦아 염치(廉恥)를 압니다.비록 나라의 땅을 쪼개어 준다 하더라도 그것을 가벼이 여기며,외국 신하가 되지 않고 함부로 벼슬하지 않습니다.그들의 법도를 따름이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지키는 법도가 같은 사람과 뜻을 합치고,닦는 법술(法術)이 같은 사람과 도를 함께 추구합니다.친구와 같은 지위에 나란히 있게 됨을 즐기고,서로 남의 아랫자리에 있는 것을 싫어하지 않습니다.오래 만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친구에 관한 뜬소문은 믿지 않습니다.그들의 행위는 반드시 올바른 법도에 근본을 두고 있고 의로움에 입각(立脚)해 있으며,그와 뜻이 같은 친구면 나아가 협력하고 그와 뜻이 같지 않은 친구로부터는 물러섭니다.그들이 친구를 사귀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온화하고 선량한 것은 인(仁)의 근본이며,공경스럽고 신중한 것은 인의 기반이며,관대하고 너그러운 것은 인의 작용이며,겸손하게 사물을 대하는 것은 인의 효능이며,예의와 절조는 인의 외모이며,말과 이론은 인의 장식이며,노래와 음악은 인의 조화(調和)이며,재물을 나누어 주는 것은 인의 베풂입니다. 선비는 모두 이런 것을 아울러 지니고 있으면서도 아직 감히 스스로 인(仁)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그들의 공경하고 사양함이 이와 같습니다.선비는 빈천하다고 해서 구차하게 굴지 아니하며,부귀를 누린다고 해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임금의 권세에 눌려 욕을 보지 않으며,높은 자리의 사람들 위세에 눌려 끌려 다니지 않고,관권(官權)에 눌려 그릇된 짓을 하지 않습니다.그래서 그들을 선비(儒)라 부르는 것입니다.” 노나라의 애공이 공자에게 ‘유가의 선비로서 행동은 어떠해야 하는 것입니까.’하고 물었을 때 답변한 공자의 설법은 예기(禮記) 유행(儒行)편에 기록되어 있다.공자의 가르침이 다른 부분은 되도록 짧고 간결함에 비해 유독 이 부분에서만큼은 길고 상세한데,이는 공자가 선비를 도의 구현자(具現者)로 본 때문이었을 것이다.따라서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고 올바른 사회를 이끌어 나가야 할 사명감이야말로 선비가 반드시 가져야 할 엘리트정신임을 강조하기 위함 때문이었던 것이다. 조광조도 스승으로부터 전해 들었던 이 유훈을 평생 동안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하였음일까. 능주로 가는 멀고 먼 유배 길에서 묵묵히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보는 동안 조광조는 자신에 대해 참담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과연 그러하였음일까. 공자의 말처럼 임금이 알아주지 않고 소원히 대하더라도 은근히 깨우쳐 드리되 서두르는 법이 없었음일까.나는 과격하여 성급하게 지치(至治)를 이루려 하지 않았던가.스승 한훤당의 가르침처럼 온화하고 선량한 것이 인(仁)의 근본이고,관대하고 너그러운 것이 인의 작용이었는데,나는 과연 관대하고 너그러웠던 것이었을까. 나는 나 자신만이 옳다고 독선적(獨善的)인 행동을 하지 않았던가.˝
  • 儒林(68)-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68)-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스승 한훤당이 조광조에게 유훈으로 내려준 ‘선비가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에 대한 설법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선비는 세상이 잘 다스려진다고 해서 가벼이 행동하지 않으며,세상이 어지럽다고 해서 자기 뜻을 잃지 않습니다.자기와 같은 부류라 해서 무조건 친하지 않고,자기와 다른 부류라 해서 무조건 배척하지 않습니다.그들이 뛰어나게 홀로 바른 행실을 지킴이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위로는 덮어놓고 천자의 신하가 되지 않고,아래로는 덮어놓고 제후들을 섬기지 않습니다.신중하고 냉정하며 관대함을 숭상하고,강직하고 꿋꿋한 자세로 사람들과 어울립니다.박학(博學)하면서도 옛 현인(賢人)을 따를 줄 알고,문장을 가까이하고 익히며 행실을 닦아 염치(廉恥)를 압니다.비록 나라의 땅을 쪼개어 준다 하더라도 그것을 가벼이 여기며,외국 신하가 되지 않고 함부로 벼슬하지 않습니다.그들의 법도를 따름이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지키는 법도가 같은 사람과 뜻을 합치고,닦는 법술(法術)이 같은 사람과 도를 함께 추구합니다.친구와 같은 지위에 나란히 있게 됨을 즐기고,서로 남의 아랫자리에 있는 것을 싫어하지 않습니다.오래 만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친구에 관한 뜬소문은 믿지 않습니다.그들의 행위는 반드시 올바른 법도에 근본을 두고 있고 의로움에 입각(立脚)해 있으며,그와 뜻이 같은 친구면 나아가 협력하고 그와 뜻이 같지 않은 친구로부터는 물러섭니다.그들이 친구를 사귀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온화하고 선량한 것은 인(仁)의 근본이며,공경스럽고 신중한 것은 인의 기반이며,관대하고 너그러운 것은 인의 작용이며,겸손하게 사물을 대하는 것은 인의 효능이며,예의와 절조는 인의 외모이며,말과 이론은 인의 장식이며,노래와 음악은 인의 조화(調和)이며,재물을 나누어 주는 것은 인의 베풂입니다. 선비는 모두 이런 것을 아울러 지니고 있으면서도 아직 감히 스스로 인(仁)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그들의 공경하고 사양함이 이와 같습니다.선비는 빈천하다고 해서 구차하게 굴지 아니하며,부귀를 누린다고 해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임금의 권세에 눌려 욕을 보지 않으며,높은 자리의 사람들 위세에 눌려 끌려 다니지 않고,관권(官權)에 눌려 그릇된 짓을 하지 않습니다.그래서 그들을 선비(儒)라 부르는 것입니다.” 노나라의 애공이 공자에게 ‘유가의 선비로서 행동은 어떠해야 하는 것입니까.’하고 물었을 때 답변한 공자의 설법은 예기(禮記) 유행(儒行)편에 기록되어 있다.공자의 가르침이 다른 부분은 되도록 짧고 간결함에 비해 유독 이 부분에서만큼은 길고 상세한데,이는 공자가 선비를 도의 구현자(具現者)로 본 때문이었을 것이다.따라서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고 올바른 사회를 이끌어 나가야 할 사명감이야말로 선비가 반드시 가져야 할 엘리트정신임을 강조하기 위함 때문이었던 것이다. 조광조도 스승으로부터 전해 들었던 이 유훈을 평생 동안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하였음일까. 능주로 가는 멀고 먼 유배 길에서 묵묵히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보는 동안 조광조는 자신에 대해 참담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과연 그러하였음일까. 공자의 말처럼 임금이 알아주지 않고 소원히 대하더라도 은근히 깨우쳐 드리되 서두르는 법이 없었음일까.나는 과격하여 성급하게 지치(至治)를 이루려 하지 않았던가.스승 한훤당의 가르침처럼 온화하고 선량한 것이 인(仁)의 근본이고,관대하고 너그러운 것이 인의 작용이었는데,나는 과연 관대하고 너그러웠던 것이었을까. 나는 나 자신만이 옳다고 독선적(獨善的)인 행동을 하지 않았던가.
  • 동백~죽전 도로 구미동연결 NO

    경기도 용인시와 한국토지공사가 동백∼죽전간 도로를 개설하면서 성남시의 동의없이 일방적으로 분당구 구미동 접속도로개설 계획을 수립,토끼굴에 이은 ‘제2 길분쟁’이 예상된다.토지공사측이 아직 구미동 도로접속지점을 공식 발표하진 않지만 성남시는 연결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눈엣가시다. 6일 용인시에 따르면 토공은 지난해 동백지구를 포함한 용인시 일대 교통난 해소를 위해 동백∼서울 신림 간 광역도로의 분당 통과를 추진했으나 성남시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러나 토공과 용인시는 성남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이 도로의 연결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지난해 12월말부터 동백∼서울간 광역도로의 일부 구간인 동백∼죽전동 구간(4차로)의 개설공사를 추진하면서 성남시에 도로개설허가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성남시는 연결을 불허했음에도 불구하고 시 경계지역까지 공사를 벌이며 간접적으로 허가를 종용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성남시 관계자는 “분당 구미동의 교통량이 이미 한계에 부딪쳐 추가 도로연결이 불가능한 상태로,영덕∼양재간 고속화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도로접속을 허가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용인시는 “최근 죽전지역 입주가 시작되면서 용인시내 도로는 유례없는 지옥 체증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영덕∼양재간 도로 완공시점인 2008년 이후까지 기다릴 수 없는 입장”이라고 말해 마찰이 예상된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
  • [일요영화]

    ●행복한 장의사(SBS 밤 11시45분) 죽음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장의사란 직업의 일상을 통해 삶의 의미를 그린 작품.김창완·임창정·오현경 주연. 장판돌 노인은 마을에서 하는 것 없이 빈둥거리는 재현·철구·대식 세 젊은이에게 장의 일을 가르치려 하지만 일거리가 마땅치 않다.마을에서 10년째 아무도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한밤중에 장의사로 전화가 걸려온다.공동묘지 옆 성성리에 혼자 살던 거구의 과부가 가슴에 칼을 꽂고 자살했다고 한다.장의를 처음 해보는 세 사람은 모두 실수를 연발하는데…. ●7번째 사진(KBS1 오후 11시35분) 주인공이 우연히 발견한 필름에 담겨진 비밀을 추적해 가는 영화.1968년 체코 ‘프라하의 봄’을 소재로 했다. 레니는 오래된 카메라를 발견하고 필름을 현상한다.사진에는 러시아 전차들이 1968년 프라하에 진입하는 모습과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여인에게 매료된 레니는 여인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사진을 프라하의 신문에 싣는다.며칠 뒤 레니의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여인의 딸과 함께 사건 추적에 나선 레니.둘은 점차 밝혀져서는 안될 진실을 파헤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밀드레드 피어스(EBS 오후 2시) ‘카사블랑카’를 만든 마이클 커티스 감독의 1945년작.어머니로,아내로 여성이 겪는 비극적 인생 유전을 잘 표현해 낸 여주인공 조앤 크로퍼드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시종일관 어두컴컴한 화면이 비극의 맛을 더한다. 영화는 난봉꾼이었던 몬테 베라곤이 총을 맞는 장면으로 시작된다.몬테는 아내인 밀드레드를 외치며 죽는다.경찰의 조사를 받게 된 밀드레드.전형적인 누아르 필름의 한 장면처럼 시작한 영화는 여기서부터 멜로 드라마로 진행된다.전 남편 버트의 불륜으로 이혼한 밀드레드는 오로지 두 딸의 행복만을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레스토랑 사업으로 크게 성공하지만 큰딸 케이가 병으로 죽고 밀드레드는 베다에게 최고의 생활환경을 만들어주고자 정성을 다한다. 그러나 베다는 버릇없고 못되게 굴뿐이다.베다를 위해 몬테와 결혼하지만 그는 오히려 횡령으로 식당을 망하게 하고 베다에게까지 추근거린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 파릇한 봄내음 ‘파래’

    바다의 푸른 기운을 머금은 파래.아싹거리며 씹히는 맛과 청량감도 일품인 해조류이지요.김을 해태(海苔)로 부른 것처럼 파래를 청태(靑苔)로 불렀다지요.김과 같은 대우를 받았지요.반면 유럽에선 파래를 더 쳐준답니다.김은 먹지 않지만 파래는 즐겨 먹거든요.또 파래는 위와 십이지장의 궤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물질이 들어있고,담배의 니코틴을 중화하는 데 탁월하다지요.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파래,더욱 맛있어 보이죠? ■파릇파릇 봄내음 몸에도 왔다래 부산 가덕도와 경남 진해 사이의 바다.바다엔 하얀색 스티로폼이 두줄로 쭉쭉 늘어서 끝이 안 보인다.어민들의 텃밭인 파래 양식장의 부표다. “파래로 찌짐(부침개)을 부쳐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요.파래로 못해 먹는 게 없어요.”0.8t급의 FRP(특수 강화 플라스틱) 배인 지원호에서 파래를 뜯는 장채원(64·부산 강서구 천가동),박정남(60)씨 부부의 설명이다.“가덕도 파래는 특유의 향과 담백하면서도 단맛이 최곱니다.”남편 장씨는 파래 자랑을 늘어놨다. 인근에서 파래 발에 붙은 잡초격인 짙은 갈색의 ‘고르메’를 떼어내던 나경호 선장 오영호(41)씨는 “요샌 청둥오리떼가 파래를 뜯어먹어서 물에 가라앉혀두고 있지요.”라고 말했다. 막 건져올린 파래의 물기를 꼭 짜 입안에 넣어보니 미끌거리듯 보드라웠다.천천히 씹어보자 아짝아짝 씹히는 맛이 좋았다.향긋한 향이 느껴지면서 깨끗한 바다 냄새가 나는 듯했다.입안에 달라붙지도 않고 단맛이 약간 나며 개운해졌다.바닷물이 덜 빠진 탓에 물론 짰다.김춘생(67)할머니는 “파래를 깨끗이 씻어 꼭 짜면 소금기가 잘 빠진다.”고 말했다. 가덕도 파래는 자연산이다.갯가의 바위에 붙은 돌파래는 요즘 더 이상 작업하지 않는다.깨끗이 다듬고 손질해도 파래 속에 작은 돌맹이가 끼어있기 때문이다.대신 바다 가운데의 파래 발에서 딴다. 가덕도 파래는 발에 포자를 인공적으로 붙이지 않는다.바다에 떠다니던 포자를 채집하는 방식이다.폭 1m에 길이 70∼90m가량의 그물발에 저절로 붙게 한다.그래서 가격도 잘 받는 편이다.매일 낮 12시 경남 진해시 용원동 의창수협에서 경매한다.35㎏들이 한상자에 요즘 4만원선이다.가격이 잘 나갈 땐 8만원대였다. 15년째 파래 작업을 한다는 선창호 선장 김두현(52)씨는 “가덕도 파래는 비단처럼 보드랍고,검은 빛이 날 정도로 푸르다.”며 “광택이 있어야 좋은 파래”라고 설명했다.파래는 물살이 세지 않으면서도 잘 흘러야 잘 산다.깨끗한 민물도 들어와야 한다.이런 곳으로 가덕도와 진해만 사이가 적격이란 게 어민들의 주장이다. 가덕도에선 파래로 요리하는 것이 많다.기본적으로 무를 채썰어 파래와 같이 무치는 파래 무침,조개와 굴 등의 해물과 파래를 넣어 지져내는 파래 부침개,파래를 간장과 물엿에 재운 파래 짠지,파래를 깎두기처럼 담그는 파래 김치,된장국에 넣는 파래 된장국 등이다.파래(300g)에 달래(100g),배 반개를 섞어 무쳐내도 좋다.양념장으로 진간장과 멸치 액젓을 1큰술씩,다진 파·다진 마늘·참기름·깨소금을 1작은술씩 넣어 손으로 조물조물 섞으면 된다. 박초로 세종호텔 이탈리안식당 피렌체 조리장은 “파래는 유럽에서도 ‘바다에서 나는 양상추’라 하여 즐겨 먹었다.”며 파래 샐러드를 추천했다. “우리 동네에선 속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없어요.다 파래를 먹고 건강한 거지.”30여년째 파래를 한다는 윤유환(50)씨의 파래 예찬이다. 이런 자랑에 근거가 전혀 없는 것만은 아니다.파래에는 비타민U라는 항궤양성 물질이 많이 함유돼 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기 때문이다.위장약으로 쓰이는 비타민U는 궤양을 예방하고 위를 튼튼하게 하는 작용이 있다. 이두석 국립수산과학원 수산연구관은 “파래의 메틸티오닌 성분은 김에 들어있는 성분과는 달리,담배의 니코틴 성분을 해독시킨다.”고 말했다.아무리해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의 밥상에 파래 반찬을 자주 올리는 것이 건강에는 좋은 방법이다. 경남 진해시 용원동 의창수협 주변의 식당가에선 요즘 파래가 밑반찬으로 빠지지 않는다. 남해안에서 나는 새우인 오도리 전문점인 용궁횟집(055-552-0454)은 어떤 음식을 주문해도 밑반찬으로 파래 무침이 맛깔스럽게 나온다.안주인 박정임씨는 경매인을 통해 파래를 매일 조금씩 갖고 온단다.연해산 생선 회 전문점인 김해횟집(055-552-2123)도 괜찮다.아귀와 복 수육 전문점인 먹거리식당(055-552-2672)은 졸복이 아주 괜찮다.1인분(1만 2000원)에 손가락 2개 굵기의 졸복 여남은 마리가 들어가 아주 시원하다.파래와 톳나물 등의 해산물이 밑반찬으로 나와 입맛을 돋운다. ■ 도움말 의창수협(055-552-3093) 글 용원(진해) 이기철기자 chuli@ 사진 오정식기자 oosing@ 사진 용원 왕상관기자 skwang@ ●톳 무침 재료 톳(말린 것 100g) 200g,두부 ¼모,다진 마늘 ½큰술,다진 파·깨소금·참기름 1큰술씩,맛소금 1작은술 만드는 법 (1) 톳은 신선한 것을 선택하여 깨끗이 씻어 준비한다.말린 톳은 물에 담가 20분간 불리면 된다.(2) 끓는 물에 (1)의 톳을 잠깐 넣었다가 냉수에 헹궈 물기를 뺀 다음 줄기에서부터 훑어준다.(3) 두부는 끓는물에 넣고 삶아 건져 면보에 싸서 물기를 꼭 짠 다음 체에 내려 보슬보슬하게 한다.(4) 그릇에 톳과 두부를 담고 마늘·파·깨소금·맛소금·참기름을 넣어 무친다. ●파래 해물전 재료 파래(또는 톳) 100g,작은 새우(또는 조갯살,홍합,굴) 100g,홍고추·풋고추 1개씩,실파 30g,식용유 적당량,반죽(밀가루 1컵,달걀 1개,녹말 2큰술,물 ¾컵,소금 ½작은술),초간장(간장 3큰술,식초 1큰술,설탕 ½작은술) 만드는 법 (1) 파래는 물에 20분간 담가 불려 씻은 후 건져 줄기에서 훑어준다.(2) 작은 새우는 껍질을 벗긴 다음 등쪽의 내장을 제거하고 굵게 썰어 놓는다.(3) 홍고추·풋고추는 길이로 반을 갈라 씨를 털어 짧은 채를 썰고 실파는 송송 썰어 놓는다.(4) 넓은 그릇에 달걀·물·소금을 넣어 푼 다음 밀가루와 녹말을 넣고 반죽하여 파래·새우·고추·파를 섞어 놓는다.(5)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뜨거워지면 (4)를 1큰술씩 떠 놓아 둥글 넓적하게 부쳐 낸다. ●파래 별미밥 재료 불린 쌀 3컵,물(육수) 3컵,파래 120g,조개 20개,청주 1큰술,간장 1큰술,양념 간장(간장 3큰술,고춧가루·다진 마늘·깨소금·참기름 1작은술씩,다진 파·청주 1큰술씩) 만드는 법 (1) 쌀은 불려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2) 파래는 깨끗이 씻어 물기를 꼭 짜 대강 썰어 놓는다.(3) 조개는 신선한 것으로 준비하여 씻어 엷은 소금물에 담가 해감을 시킨 다음 물 4컵과 함께 냄비에 담아 끓여 조개가 벌어지면 건지고 면보에 밭쳐 밥물로 사용한다.(4) 냄비에 쌀·조개 국물·조개·청주·간장을 넣고 끓여 뜸이 들 무렵에 썰어 놓은 파래를 섞어 뜸들여 밥을 짓는다.(5) 양념간장을 만들어 밥을 비벼 먹으면 별미다. ●김 강정 재료 김 10장,대추 2개,실백(또는 잣) ½큰술,강정 양념(국간장·다진 마늘·참기름·통깨·분말 육수·겨자 1작은술씩,물엿 1큰술) 만드는 법 (1) 김은 티를 골라내고 구워 비닐봉지에 담아 비벼 곱게 부수어 놓는다.아주 곱게 부수어야 잘 만들어진다.(2) 냄비에 강정 양념 재료를 담아 불 위에 얹었다가 따끈해지면 불을 끄고 김을 넣어 가볍게 섞는다.(3) 대추는 돌려 깎기하여 돌돌 말아 얇게 썰어 놓는다.잣은 길이로 반을 갈라 놓는다.(4) 도마 위에 은박지를 깔고 (2)의 김강정을 펴서 0.5㎝ 두께로 밀어 2㎝ 네모로 썬다.그 위에 (3)의 대추와 잣을 놓아 예쁘게 담아낸다. ●파래 샐러드 재료 파래 20g,양파·오렌지·노랑 피망·빨강 피망⅓개씩,토마토 2쪽,적채 5g,양상추 10g양념키위 2개,링 파인애플 2조각,마요네즈 3큰술,식초·레몬 주스 1큰술씩,다진 마늘 1작은술,소금·후춧가루·설탕 약간씩 만드는 법 (1) 파래는 설탕과 식초를 섞은 물에 10분간 담가 두었다가 꼭 짜 물을 제거한다.(2) 야채 재료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준비해 둔다.(3) 과일을 갈아서 마요네즈 및 모든 양념 재료와 함께 골고루 섞어 드레싱을 준비한다.(4) 원형 틀에 야채를 예쁘게 색깔 순서대로 올리고 사이사이 (1)의 파래를 넣어준다.(5) 접시에 담아 틀을 살짝 빼고 오렌지 껍질을 고명으로 얹어 모양을 낸 다음 그 위에 과일 드레싱을 솔솔 뿌리면 끝. 안승춘 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장은 68년 조리업계에 뛰어들어 36년 동안 음식을 개발하고 연구했다.한·양·중·일식을 두루 통달해 ‘생활요리의 대가’로 불린다.한국조리직업전문학교(02-833-1623) 이사장도 겸하고 있다. 사진 이종원기자 jongwon@˝
  • [서울광장] ‘톱다운’ 예산제와 정부조직/이상일 논설위원

    톱 다운 방식의 예산을 시행하면 그동안 매년 각 부처가 깎일 것을 염두에 두고 필요예산을 수십% 부풀린 다음 국회나 예산처와 흥정하는 작태를 고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정부 관료들의 속성 중 하나는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면 그것이야말로 ‘최고’라는 식으로 태도가 돌변하는 것이라고 한 일본 관리가 지적한 바 있다.오랫동안 별말 없이 낡은 정책을 틀어쥐고 있다가 새 정책이 확정되자마자 장점만 내세운다는 것이다. 매년 세법 개정의 배경을 들어보면 단적으로 관료들의 태도 표변을 실감할 수 있다.그들의 말에는 모두 그럴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그러면 그동안 불합리한 부분이 있었는데도 관료들이 이를 모르고 있었거나 아니면 알고서도 뭉갰다는 이야기가 된다.결과적으로 이런 경우 직무유기가 아닌가? 이런 생각에 관료들이 새 정책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게 왠지 탐탁지 않아 보인다. 정부가 최근 재정개혁 3대 과제의 하나로 밝힌 예산의 ‘사전 재원배분(톱 다운:Top-down)제’를 보면서도 이런 선입관이 묘하게 작용한다.기획예산처는 올해부터 5개년간 국가 발전전략을 세우고 여기에 따라 예컨대 사회간접자본(SOC),농어촌,교육 등 16개 분야별 예산 지출한도를 정할 방침이라고 한다.국무위원들이 토론을 통해 지출한도를 정하고 부처별로 예산을 짜서 예산처가 점검 보완하는 식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런 톱 다운 방식의 예산을 시행하면 그동안 매년 각 부처가 깎일 것을 염두에 두고 필요예산을 수십% 부풀린 다음 국회나 예산처와 흥정하는 작태를 고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예산편성도 1년에서 중·장기적으로 흐름이 길어지고 국가적인 우선순위에 따라 재원을 분배하는 장점도 거둘 수 있다.또 성과 평가가 예산편성의 잣대로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예산제도의 문제점을 고쳐 재정을 합리화하자는 계획을 보고 그동안 뭐했느냐고 질타할 생각은 없다.기존 사업에 점수를 매기고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국민의 세금을 쓰겠다는 취지야 좋다.다만 우선 떠오르는 의구심은 사업 평가작업이 쉽겠느냐는 것이다. 관료들은 탁상에 앉아서 걸핏하면 평가를 지고(至高)의 선(善)처럼 들먹이지만 행정서비스의 점수를 매기는 것은 쉽지 않다.이는 막대한 인력과 예산이 투입되는 비싼 작업이다.설혹 그렇게 평가한들 말 많은 사회에서 누가 선선히 수긍할 것인가.복잡한 평가보다 강력한 감사와 지속적인 사정(司正)이 부패와 낭비를 줄이는 데 더 효과적일 것이다.과거 예산 편성 제도가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예산처가 시어머니 노릇 해가며 깐깐하게 굴어 부처가 허튼 수작을 못했다.견제 없는 정부 부처 조직의 부작용을 과거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합친 재정경제원에서 국민들은 절감했다.둘이 서로 싸우니까 합쳤는데 공룡조직의 행정 마비 현상이 나타났다.예산자율성은 의도와 달리 악용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재정개혁에서 예산자율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 조직과 인력의 경직성을 줄여주는 일이다.어느 부처나 10년전보다 인력이 늘면 늘었지 줄어들었다는 말을 들어볼 수 없다.한 전직 재정경제부 장관은 자신이 좀 더 재임했으면 몇개 자리를 없앴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그가 떠난 후 그런 비슷한 자리가 오히려 더 늘었다.갈수록 기구가 방대해지는 것은 고질적인 정부의 문제다. 한 관리는 “부처 조직기구를 법령으로 묶다 보니 새로운 행정 수요가 늘어나면 법망을 피해 변방 조직이 자꾸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심지어 어느 부처는 규제완화를 담당하는 부서까지 최근 신설했을 정도다. 물론 장관이나 기관장에게 예산의 자율성을 주는 것은 옳다.그러나 기업들이 10여년동안 팀제 등으로 조직의 유연성을 시험해보는 동안 정부 조직의 틀은 경직되어 있었다.필요하면 조직을 만들고 용도가 폐기되면 없애는 기동성이 정부내에 과감하게 도입되어야 한다.그런 신축성과 융통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예산 편성의 자율성만을 허용해봤자 정부 재정개혁의 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