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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키軍, 이라크 북부 기습 월경

    터키군이 6일(현지시간) 쿠르드노동자당(PKK) 반군 추격을 위해 이라크 북부지대로 진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라크 북부는 쿠르드 자치정부가 통치하는 유전지대로 수도 아르빌에는 현재 한국군 자이툰부대 병력 1200명이 주둔하고 있다. 미국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가 이날 잇따라 터키의 이라크 침공을 부인한 가운데 이번 사태가 터키군의 ‘제한적 군사작전’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라크 유전지대가 무대가 되면서 국제 유가는 크게 출렁였다. AP통신은 터키군 600여명이 PKK 반군을 추격, 이라크 북부지대로 진격했다고 전했다.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 보안군은 터키군 150명이 샨지난 지역을 수시간 동안 점령한 후 철수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200명이 국경지대에서 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터키 보안군 관계자는 PKK 반군 소탕을 위한 ‘추격전’으로 소규모 군사작전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관련 정부들은 침공을 공식 부인했다. 백악관은 “어떤 새로운 행위도 없다.”고 발표했고,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이라크) 국경지대를 감시하고 있지만 어떤 징후도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호시야르 제바리 이라크 외무장관과 압둘라 굴 터키 외무장관 역시 보도를 부인했다. 미국이 두 동맹국인 터키와 쿠르드 자치정부를 상대로 강력한 중재를 벌이고 있는 상황 때문으로 풀이된다. 쿠르드족은 이라크 통치의 큰 축을 이루고 있고 터키는 세계적인 반테러 전략에서 핵심전략 동맹인 터라 미국은 곤혹에 빠져 있다. 터키는 1997년에도 5만명의 병력을 앞세워 이라크 북부를 침공했었다. 최근 야사르 부유카니트 터키군 총사령관이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최후 통첩을 하는 등 330㎞에 걸친 이라크 국경선에는 대규모 병력이 증강되고 있었다. 문제는 터키와 쿠르드의 갈등이 역사적으로 잠복된 ‘뇌관’이라는 점이다.1984년부터 시작된 PKK의 독립 투쟁으로 지금까지 3만명 이상이 숨졌다. 테러와 소규모 교전도 지속되고 있다. 터키는 올해 말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가 독립을 선포하는 걸 크게 경계하고 있다. 이 경우 터키에 사는 1600만명의 쿠르드족에서도 분리독립 운동이 촉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터키와 쿠르드 자치정부의 갈등이 ‘중동의 화약고’로 언제든 확대될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날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7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 중질유(WTI)는 전날 종가보다 35센트 상승한 배럴당 65.96달러, 런던 국제석유거래소(ICE)의 브렌트유 선물도 57센트 오른 71.02달러로 마감됐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암컷은 보호능력 갖춘 수컷을 좋아해”

    ‘암컷은 보호능력을 갖춘 수컷을 선호한다.’ 4일 이화여대에 따르면 에코과학부 김태원(33) 박사와 최재천(53) 석좌교수팀은 최근 파나마 스미스소니언 열대연구소의 존 크리스티 박사와 함께 갯벌에 사는 농게의 행동을 연구, 기존 학설과는 전혀 다른 이 같은 ‘사랑방정식’을 찾아냈다. 지금까지 동물 암컷들은 몸집 크기나 화려함, 사냥 능력 등이 수컷 선택의 징표로 꼽혀왔다. 연구 결과는 온라인 과학저널 ‘PLoS(공공과학도서관)’ 최근호인 5월호에 게재됐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험에서 수컷 농게가 자신의 굴 입구에 모래성을 쌓느냐 쌓지 않느냐가 암컷에게 선택받느냐의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선택받는 정도는 주변 환경의 위험도에 따라 달라졌다. 천적인 새들이 많지 않아 위험도가 낮은 상황에서는 암컷 10마리 중 7마리 정도가 모래성을 쌓은 수컷을 찾아갔으나, 새들이 증가하면서 위험도가 높아지자 모래성을 쌓은 수컷을 찾아가는 암컷이 10마리 중 9마리꼴로 늘어났다.최 교수는 “암컷들이 자신들에게 ‘안전’이라는 실질적인 이득을 주는 수컷을 선택한다는 사실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발견.”이라고 말했다.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서해 대표어종 ‘물갈이’

    서해 대표어종 ‘물갈이’

    ‘조기와 꽃게에서 멸치와 오징어로….’ 서해안에 최근 10년 사이 난류성 어족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바다 온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28일 충남도에 따르면 지난해 도내 서해안 어획량은 3만 847t으로 이 중에 멸치가 1만 1474t을 기록해 전체의 37%를 차지, 가장 많이 잡혔다. ●수온상승 등 영향… 난류성 어종 크게 늘어 멸치는 1996년 2458t이 잡히는 데 그쳤다.10년 사이에 무려 466%가 늘어난 것으로 어획량의 순위도 4위에서 1위로 뛰어 올랐다. 당시 1위를 고수하던 굴은 멸치 때문에 2위로 주저앉았다. 지난해 생산된 굴은 1만 650t에 이르고 있다. 인천에 있는 해양수산부 산하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의 황학진 박사는 “한가지를 꼭 집어 얘기할 수 없지만 과도한 어획, 수온 상승, 해양생태계변화 등이 이 같은 양적인 어종 변화를 불러오는 원인이 되는 것같다.”고 밝혔다. 이어 3위는 8156t이 잡힌 오징어.10년 전에는 292t에 불과해 열손가락 안에도 들지 못했다. 동해안만의 특산물로만 여겨지던 게 최근들어 서해안의 주된 먹거리로 급부상한 것이다. 날씨가 더워지면 난류성 어족인 오징어가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조개류인 동죽이 4위를 차지한 데 이어 1996년에 많이 잡히지 않던 대구, 가자미, 키조개가 각각 5,6,7위를 기록했다. 생산량은 대구 3726t, 가자미 3417t, 키조개 3391t이다. 충남도 관계자는 “중국과의 협상으로 서해 가운데 한류가 형성되는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조업이 가능해져 동해안이나 남해에서 많이 나던 대구가 서해안에서도 많이 잡히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10년 전 5066t으로 2위를 차지했던 뱅어는 지난해 집계가 어려울 정도로 생산량이 급감했다. 민어와 강달이도 거의 잡히지 않고 있다. 1970∼80년대까지 서해안의 대표적 수산물이었던 조기, 꽃게 및 갈치도 급격하게 어획량이 줄어 들었다. ●생태계 지각변동 지난해 조기 어획량은 35t에 불과하다.10년 전에 잡혔던 356t보다 10분의 1로 크게 줄어든 상태다. 96년 각각 5,6위를 기록하며 서해안의 대표 어종을 상징하던 밴댕이와 낙지도 순위에서 밀린 실정이다. 한편 한국해양연구원은 이날 “동해의 수온이 1985년 이후 연평균 0.06도씩 상승, 난류성 어종은 늘고 명태, 꽁치, 정어리 등 한류성 어종이 줄어들고 있다.”면서 “동해보다 서해가 수온에 더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서해에 대한 분석후 어업지역 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서울광장] 어제의 뼛조각, 오늘의 통뼈/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어제의 뼛조각, 오늘의 통뼈/육철수 논설위원

    우연한 기회에 미국산 쇠고기에 얽힌 뒷얘기를 들었다. 농림부의 어느 공무원이 털어놓은 쇠고기 수입정책의 난맥상은 솔깃했다. 지난해 1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합의문구의 번역을 엉터리로 하는 바람에 국민을 광우병 공포로 몰아넣고, 미국과 쓸데없이 통상마찰을 가중시켰다고 했다. 내용인 즉, 합의문에서는 ‘deboned skeletal muscle meat’를 교역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이는 글자 그대로 큰 뼈를 어느 정도 발라낸 쇠고기다. 뼈가 포함되어도 갈비처럼 ‘통뼈’가 없는 것은 괜찮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표현을 ‘boneless’로 고집하는 바람에 살코기만 들여와야 한다는 ‘헛소리’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하기야 ‘deboned’는 웬만한 영한사전에는 나오지도 않는 신종 용어인지라, 헷갈릴 만도 했을 것이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과 농림부가 이 단어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일 정도였다니까. 실무자들은 뒤늦게 실수를 인정했으나, 전·후임 담당국장은 서로 언성을 높이며 책임회피에 급급했다고 한다. 경위야 어찌됐든,‘미국 쇠고기는 뼛조각도 위험하다.’는 낭설이 한국에서는 진실로 변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국민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쇠고기를 먹게 된 것이고….200만 미국교민과 3억 미국인들은 잘만 먹고 있는데, 그러면 그들은 안전불감증에 걸린 것인가. 하여튼 농정의 희한한 실수작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한 쪽 얘기만 듣기가 뭐해서 농림부에 확인해 봤다. 역시 분위기가 좀 달랐다. 협상에 참여했던 어느 실무자는 “당시에는 국민이 광우병에 워낙 민감해서 미국산 살코기조차 반대 여론이 많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농림부에서는 뼛조각의 위험성에 대해 한마디도 한 적이 없고, 시민단체들의 드센 기세에 눌려 “뼛조각은 괜찮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는 거였다. 그는 “미국도 한국의 조치에 대해 ‘죽어도 안 된다.’는 입장은 아니었다.”면서 “왜 우리 스스로 잘못된 것처럼 얘기하느냐.”고 불만이 대단했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은 며칠전 미국을 ‘광우병 위험 통제국’으로 판정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뼈있는 미국 쇠고기’의 수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농림부는 그동안 뼛조각도 안 된다고 했는데, 이제 통뼈까지 들어오게 생긴 것이다. 더구나 콩알만 한 뼛조각만 나와도 수입 쇠고기 전량을 반송시켰던 농림부다. 그런 농림부가 OIE 회의에서 슬그머니 미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어제의 뼛조각은 위험하고, 오늘의 통뼈는 안전하다는 건지…. 농림부가 궁색해진 것은 지나치게 여론의 눈치를 살피다가 줏대를 잃은 탓이다. 물론 국민건강이 중요하고, 수입국으로서 까다롭게 굴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광우병 위험이 높은 소머리에다 뼈·꼬리·내장까지 소비하는 우리 식문화를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 문제다. 농림부는 국제무역의 관행과 과학적 근거를 싹 무시하고 시민단체 등의 반미감정에 편승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정부는 과학적·국제적 기준에 따라 쇠고기를 수입하고, 원산지 관리를 철저히 해주면 된다. 수입 쇠고기를 먹고 안 먹고는 소비자가 선택할 일이다. 결국 이렇게 미국에 내줄 것 다 내주게 됐으니, 광우병 무서워서 그 값싸다는 미국 쇠고기 한 번 못 먹어본 국민에게 뭐라고 설득할 텐가.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고액 개인 과외가 더 큰 문제”

    학원 강사로 10년째 일하고 있는 김모(38)씨. 친구들과의 만남을 끊은 지 몇년 됐다.2000년 들어서 사교육비가 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만나기만 하면 친구들이 각종 비용을 자기가 내야 하는 것처럼 굴었다. 소규모(5인 이하) 그룹과외로 개인별 맞춤 지도를 해줘야 하고 교재연구 등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데도 잡다한 일은 늘 자기 몫이다. 행여 ‘못 가르친다.’,‘애들한테 잘 못한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학생들이 뚝뚝 떨어지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심하다. 소득세도 매년 꼬박꼬박 내는데 세금 한푼 안 낸다고들 할 때는 설명하기도 귀찮다. 강사들은 연소득이 2500만원 이상인 경우 총급여의 3.3%를 세금으로 낸다. 서울보습학원연합회 최해윤 사무국장은 “더 큰 문제는 고액 개인 과외”라고 지적했다. 개인 과외는 수강료는 물론 강사 자격에 대한 규정도 적용받지 않는다. 학원 강사 기준은 2003년 규제개혁위원회에 의해 종합대학(4년제) 졸업자에서 초급대학(2년제) 졸업자로 낮춰졌다. 최 국장은 오는 9월23일 수강료 표시제를 도입하기 전에 수강료가 현실화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3월 사교육대책을 발표하면서 수강료 표시제, 과다 인상의 경우 조정명령 시행 등을 도입키로 했다. 서울 목동, 대치동 등 학원밀집지역은 임대료가 상승, 학원 매출액의 반을 임대료로 내는 경우도 있다. 외환위기 직후 3∼4년간 수강료가 동결됐기 때문에 교육청이 고시한 수강료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수업료가 싸면 개개인에 대한 고려는 하기 힘든데 이를 학원가에서는 ‘막단과’라 부른다. 학부모들은 수강료를 더 내더라도 소그룹 과외를 원한다. 소그룹 과외가 선호되다 보니 강사 수요도 급증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학원강사를 20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헐크 이만수의 고객감동 서비스

    [스포츠 라운지] 헐크 이만수의 고객감동 서비스

    “내 한 몸 망가져 한국야구가 살아난다면….” 프로야구 SK의 수석코치인 ‘헐크’ 이만수(49)는 현역 시절 못지않게 몸을 던지는 투혼(?)과 쇼맨십으로 화제를 뿌린다. 요즘은 ‘팬티 소동’을 일으켰다. 지난달 29일 문학에서 훈련 중 선수들 앞에서 “10경기 안에 문학구장이 만원이 되면 팬티만 입고 그라운드를 돌겠다.”고 선언했다.“팀이 1위인데도 수천명의 팬만 찾는 것은 너희들이 야구를 잘못했기 때문”이라며 호통치다 나온 농담성 발언이었다. 그러나 언론에 소개되면서 큰 반향을 얻었다. 팬티 선물을 건네는 팬들이 있는가 하면 구단 홈페이지에 ‘이만수 속옷 보러가기’운동이 벌어지는 등 문학을 찾는 팬들이 늘고 있다. ●문학구장 만원이면 야한 속옷 입고 뛰겠다 데드라인인 26일 KIA전에는 3만명 정원이 찰 것으로 예상된다.24일 현재 1만 7000장의 표가 예매됐다. 그는 “이왕 이렇게 된 것, 팬이 직접 만들어 보내준 야한 팬티를 입고 뛸 생각”이라고 털어놨다. 꾸준히 코치생활하면서 관리해온 몸매(?)에 자신있다고. 지난달 29일 LG전에 앞서 펼쳐진 공연에서는 긴 가발을 쓰고 춤을 추며 흥까지 돋웠다. 이런 소동에 가족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내가 그런다고 이만수가 똥만수가 되느냐.”라며 간신히 설득했다고 한다. 반신반의하던 가족들은 10년 만에 찾은 22일 대구구장에서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했다. 이 코치가 오페라 프리마돈나처럼 팬들에게 장미 세례를 받은 것. 큰아들 하종(24)씨는 눈물까지 흘렸다. 프로에서 팬의 중요성을 깨달은 순간이다. 그는 “야구가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로 자리잡은 것은 선수와 팬, 구단, 언론 네 박자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메이저리거들은 팬들에게 웃으며 다가가 함께 사진찍고 사인을 해주는 팬서비스에 최선을 다한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한국 야구의 가장 큰 차이점이 ‘프로의식 부족’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팬들에게 손 흔들고 다정하게 굴면 혼나는 시절이 있었으니까….”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만수 코치의 기행과 SK가 내놓은 ‘스포테인먼트(스포츠+엔터테인먼트)’ 전략이 맞아떨어지며 문학은 이날 현재 지난해보다 25% 늘어난 17만 3046명이 찾았다. 팀이 1위를 달리는 점도 있지만 ‘이만수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내 꿈은 우리팀 우승과 한국야구 중흥 이만수는 야구가 낳은 최고의 스타 가운데 하나. 프로가 시작된 1982년부터 97년까지 삼성에서만 뛰며 통산 1449경기에 나와 타율 .296,252홈런,861타점을 기록했다.1984년에는 최초의 타격 3관왕을 이뤘고, 공격형 포수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삼성과 마찰을 빚으면서 은퇴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98년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다. 말도 안 통하고, 음식도 안 맞는데다 ‘이만수가 누구냐.’는 냉대 속에 눈물 젖은 빵을 씹으면서 ‘인간 이만수’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한국에선 최고였기 때문에 경기가 안 풀리면 가족에게 짜증내고 막 대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화합하는 데 3년이 걸렸다.”고 회상했다. 낮은 곳에 있으면서 내 자신을 다시 돌아봤다. 나이 40줄에 새로 생긴 취미가 ‘가족여행’이다. ‘인간 이만수’는 2000년 한국인 최초로 미프로야구 불펜코치를 맡아 2005년 월드시리즈 우승에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 코치를 맡았다.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지 6개월. 이만수는 ‘헐크’처럼 변신했다. 현역 15년 동안 삼성의 푸른 유니폼만 입어 “내 몸에 푸른 피가 흐른다.”고 했지만 지금은 SK의 상징색인 붉은 피로 바꿨다. 그는 “김성근 감독과 함께 한 번도 한국시리즈 정상에 서지 못한 팀을 우승시키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준비된 차세대 지도자다. 생김새와는 달리 대구상고 1학년 때부터 경기 기록을 꼬박꼬박 써오며 문제점을 분석했다. 올시즌 경기 기록도 벌써 A4용지 260쪽이 넘는다. 팬들은 스타 코치 이만수의 행보에 또다른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글 사진 대구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프로필 ▲출생 1958년 9월9일 대구생 ▲학력 대구중-대구상고-한양대 ▲취미 가족여행, 일기쓰기 ▲가족 아내 이신화(49)씨와 두 아들 ▲경력 국가대표(1978∼81년) 프로야구 삼성(82∼97년) 미프로야구 클리블랜드(마이너리그 싱글A팀) 코치연수(98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첫 한국인 불펜코치(2000∼06년)
  • [中 안후이성을 가다] (중) 산학협동 단지 탈바꿈하는 ‘안후이’

    [中 안후이성을 가다] (중) 산학협동 단지 탈바꿈하는 ‘안후이’

    |허페이(合肥·중국 안후이성) 이지운특파원|‘휘상(徽商) 정신을 드높여 안후이를 일으키자….’지난 18일 안후이(安徽)성 성도 허페이(合肥)시의 국제전람관. 이른 아침부터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세번째로 열리는 ‘세계 휘상대회’. 안후이성은 선조들의 옛 명성으로라도 지역 발전을 이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안후이성은 이번 대회에서 자본 유치 등을 위해 안후이성 출신 화교 등 해외에서 2000여명의 손님을 끌어들였다.‘휘상’의 고향을 선전하기 위해 외교부와 함께 베이징에 주재하고 있는 외신 기자 취재 프로그램까지 고안해 냈다. 과연 안후이성은 ‘굴기(起·일어섬)’에 얼마만큼의 속도를 내고 있는가. 산시(山西)·허난(河南)·후베이(湖北)·후난(湖南)·안후이·장시(江西)성 등 낙후된 중부 6개성을 지원, 경제건설을 유도하는 ‘중부굴기(中部起)가 시작된 지 몇 해. 안후이성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안후이성의 성도 허페이시로 가는 길. 기자단의 버스가 허페이시 톨게이트를 들어선 지 얼마 안돼 옆자리의 한 중국기자가 “역시 많이 낙후됐군….”이라고 혼잣말로 중얼댄다.“지방의 많은 도시를 다녀봤지만, 낙후된 중부 지방 도시 가운데서도 뒤떨어진다.”는 얘기다. 확실히 그랬다. 허페이는 성의 성도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전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타워 크레인’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만 해도 이미 몇해전부터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진행중이다. 지난해 찾았을 때 도심 복판 곳곳에 공사가 한창이었다. 안후이성은 여전히 ‘농업대성(農業大省)’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 줬다.5월 중순 고속도로 주변으로 이미 유채꽃 재배를 끝내고 나락들이 쌓인 밭들은 이 곳이 화중(華中)의 중요한 농업지대로 2모작이 가능한 곳임을 새삼 일깨워 줬다. 인구의 90%가 농업에 종사하며, 남부 양쯔강 남쪽의 평야에서는 쌀·보리 2모작이 이뤄지고 있다. 북부 화이허(淮河)강 유역에서는 밀·참깨·수수·옥수수 등 밭작물과 쌀을 교대로 심는다. 안후이성의 실상은 ‘호적인구 6593만명에 상주인구 6110만명’이라는 수치 속에 1차적으로 잘 드러난다. 산술적으로도 500만명에 가까운 인구가 타지로 나가 ‘농민공(農民工)’ 노릇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광저우 등 인근의 잘 사는 성은 상주인구가 호적 인구를 크게 웃돈다. 왕진산(王金山) 안후이성 성장도 “안후이성의 노동 인력은 1040만명이지만, 성(省) 밖에 600만명이 있다.”고 말했다. 안후이성은 근처 창장(長江) 삼각주와 주장(珠江) 삼각주의 주된 인력 공급 기지다. 안후이성도 이를 장려하는 편이다. 농민공들이 고향으로 부쳐 오는 수입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성 정부는 ‘양광(陽光)행동’ ‘우로(雨露)계획’ ‘춘풍(春風)행동’ 등 농민공에 대한 기술훈련 등을 실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안후이성의 굴기는 요원한 일인가. 안후이성에도 ‘비장의 카드’는 있다. 바로 인재(人才)다. 인공태양을 만들고 있는 물질과학연구원 등 중국 과학을 대표하는 중국과학원 5개 산하 연구소가 성도(省都) 허페이에 있다. 중국 과학기술대학 등 안후이 성에는 91개의 대학이 있다. 특히 기술 관련 대학들이 몰려 있는 점이 산학 협동의 최대 장점이다. 국가 브랜드라 할 수 있는 치루이(奇瑞) 자동차가 허페이에 자리한 것도 이런 이점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과학원과 중국과학기술대학의 전면적인 협력 추진은, 기업 유인의 원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과학기술대학은 현재 중국과학원 산하 수학 및 시스템 과학연구원, 상하이(上海) 생명과학 연구원, 중국과학원 난징(南京)분원 및 상하이분원 등 13개 연구기관과 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인재 육성, 과학 연구 등 분야서 전면적인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안후이성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과학적 발전관’에 대한 시금석으로 간주될 여지가 많다. 왕진산 성장은 “안후이에는 200여개의 성급 이상 과학연구소가 있으며 과학에 종사하는 연구인력은 무려 114만명”이라면서 “허페이는 실험도시이며, 이런 것들이 안후이성을 일으키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jj@seoul.co.kr 용어클릭 ●중부굴기(中部起) 산시(山西)·허난(河南)·후베이(湖北)·후난(湖南)·안후이·장시(江西)성 등 낙후된 중부 6개성의 경제건설을 유도하는 프로젝트.‘서부대개발’이나 ‘동북진흥’과 같은 추동력을 갖추지 못해 정치적 목적에 의해 선정된 개발 공정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그러나 보시라이(薄熙來) 상무부장이 실질적인 책임을 맡고 있고, 지도층의 관심이 높아지는 데 힘입어 점점 구체적인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 대륙 문명의 중심 ‘안후이’ |허페이 이지운특파원|현 시점에서 안후이성을 대표하는 것을 꼽는다면 ‘후진타오(胡錦濤)와 치루이(奇瑞)’를 꼽을 수 있겠다. 후진타오는 두말 할 것 없이 중국 국가서열 1위의 지도자다. 치루이는 안휘성의 ‘명함’인 동시에 ‘국가 브랜드’이다. 그러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안후이성은 더욱 뛰어난 ‘산물’이 많다. 우선 안후이성은 철학의 산지(産地)이다. 노장(老莊) 사상의 노자(老子)와 장자(莊子)가, 주자학의 주희(朱熹)가 이 곳 출신이다. 나아가 역사의 고장이다.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관중(管仲), 명의(名醫) 화타(華), 삼국지의 조조(曹操)의 고향이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朱元璋), 명대 중국의 대수학가 청다웨이(程大位)도 여기서 태어났다. 청말의 정치가 리훙장(李鴻章)이나 근대의 대문호이자 사상가인 후스(胡適)와 천두슈(陳獨秀), 중국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양전닝(楊振寧)도 안후이에서 태어났다. 현재로도 후진타오 주석 외에 국가서열 2위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무위원장도 안후이성이 고향이며 서열 5위 쩡칭훙(曾慶紅)도 안후이성 출생으로 돼있다. 차세대 선두주자 리커창(李克强)도 여기 사람이다. 또 하나는 휘상(徽商)이다. 전성기에는 “휘상이 없으면 장사가 되지 않는다(無徽不成商)이라 할 정도로 그 위세를 자랑했다. 후진타오의 증조부 후수밍(胡樹銘)도 상하이에 진출한 ‘휘방(徽幇)’ 상인의 한 명이다. 중국인이 동경하는 황산(黃山)도 있다.‘5악(岳)을 보고 돌아왔으면 더이상 산을 볼 필요가 없고, 황산을 보았으면 다른 5악을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안후이성 사람들로 하여금 무한한 자부심을 갖도록 만든다. 이같은 과거의 명성에 후진타오와 치루이를 더한 안후이성은, 지금 ‘낙후’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하고 있다. jj@seoul.co.kr ■ 왕진산 안후이 성장 “화이난에 한국공업원 운영…협력 확대 기대” |허페이 이지운특파원|왕진산(王金山) 안후이 성장은 “안후이성은 중국 국내 용어로 하면 ‘미발달 지구’이지만, 일정한 지위와 영향력을 지닌 성”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있는데 안후이성은 인재 배출의 고향”이라면서 “역대로 정치·경제·문화·과학기술에 탁월한 인물이 배출됐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안후이성 지시(績溪)현 출신인데 특별한 혜택은 없나? -후 주석은 당 전체의 총서기이고 국가 전체의 주석이다. 성마다 모두 똑같은 태도로 대해야 할 것이고, 안후이성도 하나의 성으로서 똑같은 정책을 받고 있다. ▶안후이성의 GDP는 전국 평균보다 훨씬 낮다. 원인은 무엇인가. -객관적으로 얘기하자면 우선 역사적 원인이 있다. 연해는 대개방됐고 서부는 대개발됐으며, 동북노후공업기지는 크게 진흥됐지만, 중부에 대한 특혜정책은 뒤늦게 설립됐다. 그리고 논과 산이 많은 자연적인 원인도 있고, 우리의 역량 부족도 분명한 이유다. ▶한국 기업 진출은? -한국과의 협력관계는 현재 비교적 기초 단계다. 진전이 빠르지 않다. 투자금액이 3억달러 남짓이다. 화이난(淮南)에 한국공업원이 있다. 협력을 더 빨리 해서 좋은 성적을 올리길 바라고 있다. ▶치루이자동차의 지명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배경은 뭘로 보나. 특별한 지원이 있나? -치루이 자동차는 안후이성의 아름답고 밝은 ‘명함’이다. 치루이 발전의 주요 원동력은 인재다. 허페이공업대학의 자동차학과 출신은 치루이뿐 아니라 전체 자동차 업계에 포진, 자동차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성으로서도 중국의 대표 브랜드로 성장하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jj@seoul.co.kr
  • [Let’s Go] 베일벗는 삼척 ‘대금굴’

    [Let’s Go] 베일벗는 삼척 ‘대금굴’

    열대지방 심해(深海) 산호초 지대에 한 위대한 예술가가 살고 있었다.5억 3000만년 전 어느날. 그가 살던 지역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면서 느닷없이 지표면 밖으로 뛰쳐나왔다. 상전벽해. 천연기념물 제 178호로 지정된 강원도 삼척시 대이리 동굴지대가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뭍으로 나온 예술가는 대이리 덕항산 자락에 황금빛 지하궁전을 짓기로 했다. 그는 탄산가스가 섞인 물과 석회암만으로 내부를 장식할 조각품들을 빚기 시작했다. 억겁의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그는 비밀의 문을 열고 세상에 자신의 걸작을 내보였다. 사람들은 황금빛 도는 그곳을 대금굴이라 불렀다. 외부인의 방문을 허락한 길이는 1356m. 총길이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동굴전문가들은 당대에 보기 힘든 최고의 석회암 동굴이라 입을 모았다. 6월5일 공개를 앞둔 대금굴을 다녀왔다. ● 황금빛 지하궁전 대금굴 관광센터를 출발한 42인승 모노레일이 선로를 따라 부드럽게 나아갔다. 최고속도는 분속 120m. 큼직한 차창에 아름다운 덕항산 자락의 풍경들이 가득 찼다. 이렇게 멋진 겉옷을 입고 있는 대금굴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600m쯤 달려간 모노레일이 대금역 광장에 승객들을 내려놓았다. 맨처음 만난 것은 비룡폭포. 갈수기와 우기때 높이와 수량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비룡폭포는 종유석과 암반사이를 꿰뚫고 시원한 동굴수를 연신 쏟아내고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들이 그러하듯, 대금굴은 초반부터 강렬한 인상으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꽁꽁 붙들어 매기 시작했다. ● 시간이 만들어 놓은 걸작품 가득 대금굴의 특징 중 하나가 다양한 동굴 생성물들을 볼 수 있는 ‘동굴 전시장’이란 것이다. 중력의 법칙을 거부하고 제멋대로 자라난 곡석, 동굴수가 벽면을 타고 흐르다 삼겹살 형태로 만들어진 베이컨 시트, 기압차와 물흐름의 변화에 따라 생성된 기형 종유석 등이 관람로 계단을 오를 때마다 눈길을 끌었다. 하나같이 수억년의 시간이 만들어 놓은 결정체들이다. 특히 노란 황금빛 커튼형 종유석은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형태. 비경은 만물상 지역에서 절정에 달했다. 높이 3.5m, 직경 3∼4㎝의 국내 최대 막대형 석순 ‘여의봉’, 동굴방패, 뚱딴지형 종유석 등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가득차 있었다. ●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활굴 대금굴은 현재도 살아 있다. 박용익 삼척시청 동굴담당 계장은 “대금굴처럼 동굴하천이 흐르는 경우는 아직 학계에 보고된 적이 없다.”며 “근원을 알 수 없는 많은 양의 동굴수가 있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눈에 띄지 않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에서 갖가지 동굴생성물들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세상에 공개됐을 때, 그만큼 사람들의 손에 시달릴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이동굴사업소 관계자는 “하루 관람인원을 720명으로 제한하는 등 동굴보호에 각별히 신경쓸 것”이라고 밝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관람객의 몫. 눈으로만 감상하고 무언의 찬사를 보내는 것이 영겁의 시간에 대한, 걸작을 창조해 낸 예술가에 대한 최대의 경의표시란 생각이다. 글 사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이곳ㆍ이것만은 꼭 챙기세요 ● 이용안내 철저히 시간대별 예약제로 운영된다. 예약시스템은 25일쯤 삼척시 홈페이지(www.samcheok.go.kr)에 공개될 예정. 관람료는 어른 1만 2000원, 청소년·군인 8500원, 어린이 6000원. 국가유공자와 배우자,6세이하 어린이는 무료.65세이상 어르신과 장애우는 50% 할인. 관람 소요시간은 약 1시간30분정도. 대금굴 입장권이 있으면 환선굴 관람은 무료다. 삼척시 동굴관리기획단 (033)570-3847). ●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강릉나들목→동해고속도로→동해나들목→7번 국도 삼척 방향→38번국도 태백방향→20㎞ 직진→신기→우회전→7㎞ 직진→환선굴 매표소→대금굴관광센터.
  • [산이 좋아 산으로] 전남 영암 월출산

    [산이 좋아 산으로] 전남 영암 월출산

    평지의 저편에서 바라보는 월출산은 더할 나위 없이 강파르다. 인내나 포용 따위와는 함께 할 수 없음을, 산은 제왕의 권좌처럼 거칠 것 없이 솟아오른 능선으로 말한다. 낮게 깔려 있는 평야의 중앙, 산은 하늘을 향해 비수라도 들이대듯이 홀로 솟구쳐 있다. 그러나 산은 그렇게 생뚱맞게 홀로 솟구친 것이 아니다. 넓은 평야가 땅 밑으로 힘을 모아 이곳에 이르러 하늘을 향해 힘차게 치받아 오른 것. 이 땅의 지심(地心)이 월출산을 만들었다. 달뜨는 산 월출산의 원래 이름은 ‘달나산’. 달을 낳는 산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라 때는 월내악, 고려 때는 월생산(月生山)이라 했다. 이 산의 북쪽과 서쪽 발치에 사는 영암 사람들에게 달은 언제나 사자봉, 매봉, 천황봉, 구정봉, 향로봉이 불꽃처럼 솟아오른 ‘달나산’ 위로 떠오른다. 1988년 스무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월출산은 전라남도 영암군과 강진군에 접해 있다.812.8m의 낮은 높이에도 불구하고 영암벌 들판 한가운데 웅장하게 솟구쳐 있는 모습 때문에 예로부터 신령한 산으로 추앙받았다. 국립공원 가운데 가장 적은 면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설악산, 금강산, 북한산, 속리산 등 여러 명산의 절경을 한데 모아 놓은 것 같은 다양한 풍광을 간직하고 있다. 국보 13호 극락보전이 있는 무위사, 국보 50호 해탈문이 있는 도갑사, 구정봉 밑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애여래좌상(국보 144호) 등의 문화재도 월출산의 자랑이다. 봄에는 도갑사 입구의 벚꽃길이 아름답고, 여름철에는 금릉경포대 쪽으로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는다. 특히 가을 월출산은 호남의 금강산이란 별명처럼 기암괴석과 단풍이 어우러져 사랑을 받는다. 미왕재 주변 억새밭과 겨울철 상고대 핀 산도 빼놓을 수 없는 비경이다.‘천황사∼구름다리∼천황봉∼바람재∼구정봉∼억새밭∼도갑사’ 코스는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월출산의 주능선을 밟는 대표적인 종주 코스다. 천황사에서 도갑사 쪽으로 가는 방향이 조망도 뛰어나고, 문화재관람료도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곳으로 산을 오른다. 천황사에서 구름다리까지는 오름길이 가파르다. 그리고 가파른 오름 길마다 급경사의 쇠사다리가 놓여 있다. 통천문을 통과해 오르는 천황봉 정상은 넓은 암반으로 되어 있고 조망이 좋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쉰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정상부는 어느 산이나 빨리 지나가는 게 예의다. 천황봉에서 내려가는 길 곳곳에 전망 좋은 바위 쉼터가 있으므로 좀 더 다리품을 판 뒤에 쉬는 것이 좋다. 통천문 오르기 직전과 천황봉 아래 남근바위 지나 있는 바람재에서 금릉 경포대 계곡으로 내려갈 수 있다. 바람재를 지나면 베틀굴을 가기 직전에 구정봉으로 올라가는 길과 곧장 향로봉 쪽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뉜다. 오랜 시간 오르내리기를 반복해 힘이 빠질 즈음이지만 월출산에서 베틀굴과 구정봉을 보지 않는 것은 후회할 일이다. 구정봉 아래 마애여래 좌상을 보려면 500m 정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한다. 억새밭이 아름다운 미왕재까지는 편안한 내리막길이다. 이곳에서 도갑사까지는 계곡을 따라 걸어 내려간다. 총 산행시간은 7시간 정도 걸린다. 글 이영준 김도훈(월간 MOUNTAIN기자) # 여행정보 영암의 유명한 음식으로는 갈낙탕을 들 수 있다. 전라도 한우와 개펄에서 잡은 낙지로 만든 탕인데, 영암의 별미로 꼽힌다. 영양탕을 대신할 만큼 건강식으로까지 평가받고 있으며 맛이 진하다. 학산면 독천리에 갈낙탕과 세발낙지 음식점이 많으며 영암군은 앞으로 이 지역을 낙지거리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갈낙탕으로 유명한 집은 독천식당 064)472-4222, 영명식당 472-4027 등이 있다. 하눌타리가든에서는 생오리 소금구이와 토종닭 양념불고기와 닭육회를 맛볼 수 있으며 식사 후 나오는 흑임자죽 맛이 일품이다.
  • [산이 좋아 산으로] 전남 영암 월출산

    [산이 좋아 산으로] 전남 영암 월출산

    평지의 저편에서 바라보는 월출산은 더할 나위 없이 강파르다. 인내나 포용 따위와는 함께 할 수 없음을, 산은 제왕의 권좌처럼 거칠 것 없이 솟아오른 능선으로 말한다. 낮게 깔려 있는 평야의 중앙, 산은 하늘을 향해 비수라도 들이대듯이 홀로 솟구쳐 있다. 그러나 산은 그렇게 생뚱맞게 홀로 솟구친 것이 아니다. 넓은 평야가 땅 밑으로 힘을 모아 이곳에 이르러 하늘을 향해 힘차게 치받아 오른 것. 이 땅의 지심(地心)이 월출산을 만들었다. 달뜨는 산 월출산의 원래 이름은 ‘달나산’. 달을 낳는 산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라 때는 월내악, 고려 때는 월생산(月生山)이라 했다. 이 산의 북쪽과 서쪽 발치에 사는 영암 사람들에게 달은 언제나 사자봉, 매봉, 천황봉, 구정봉, 향로봉이 불꽃처럼 솟아오른 ‘달나산’ 위로 떠오른다. 1988년 스무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월출산은 전라남도 영암군과 강진군에 접해 있다.812.8m의 낮은 높이에도 불구하고 영암벌 들판 한가운데 웅장하게 솟구쳐 있는 모습 때문에 예로부터 신령한 산으로 추앙받았다. 국립공원 가운데 가장 적은 면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설악산, 금강산, 북한산, 속리산 등 여러 명산의 절경을 한데 모아 놓은 것 같은 다양한 풍광을 간직하고 있다. 국보 13호 극락보전이 있는 무위사, 국보 50호 해탈문이 있는 도갑사, 구정봉 밑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애여래좌상(국보 144호) 등의 문화재도 월출산의 자랑이다. 봄에는 도갑사 입구의 벚꽃길이 아름답고, 여름철에는 금릉경포대 쪽으로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는다. 특히 가을 월출산은 호남의 금강산이란 별명처럼 기암괴석과 단풍이 어우러져 사랑을 받는다. 미왕재 주변 억새밭과 겨울철 상고대 핀 산도 빼놓을 수 없는 비경이다.‘천황사∼구름다리∼천황봉∼바람재∼구정봉∼억새밭∼도갑사’ 코스는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월출산의 주능선을 밟는 대표적인 종주 코스다. 천황사에서 도갑사 쪽으로 가는 방향이 조망도 뛰어나고, 문화재관람료도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곳으로 산을 오른다. 천황사에서 구름다리까지는 오름길이 가파르다. 그리고 가파른 오름 길마다 급경사의 쇠사다리가 놓여 있다. 통천문을 통과해 오르는 천황봉 정상은 넓은 암반으로 되어 있고 조망이 좋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쉰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정상부는 어느 산이나 빨리 지나가는 게 예의다. 천황봉에서 내려가는 길 곳곳에 전망 좋은 바위 쉼터가 있으므로 좀 더 다리품을 판 뒤에 쉬는 것이 좋다. 통천문 오르기 직전과 천황봉 아래 남근바위 지나 있는 바람재에서 금릉 경포대 계곡으로 내려갈 수 있다. 바람재를 지나면 베틀굴을 가기 직전에 구정봉으로 올라가는 길과 곧장 향로봉 쪽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뉜다. 오랜 시간 오르내리기를 반복해 힘이 빠질 즈음이지만 월출산에서 베틀굴과 구정봉을 보지 않는 것은 후회할 일이다. 구정봉 아래 마애여래 좌상을 보려면 500m 정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한다. 억새밭이 아름다운 미왕재까지는 편안한 내리막길이다. 이곳에서 도갑사까지는 계곡을 따라 걸어 내려간다. 총 산행시간은 7시간 정도 걸린다. 글 이영준 사진 김도훈(월간 MOUNTAIN기자) # 여행정보 영암의 유명한 음식으로는 갈낙탕을 들 수 있다. 전라도 한우와 개펄에서 잡은 낙지로 만든 탕인데, 영암의 별미로 꼽힌다. 영양탕을 대신할 만큼 건강식으로까지 평가받고 있으며 맛이 진하다. 학산면 독천리에 갈낙탕과 세발낙지 음식점이 많으며 영암군은 앞으로 이 지역을 낙지거리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갈낙탕으로 유명한 집은 독천식당 064)472-4222, 영명식당 472-4027 등이 있다. 하눌타리가든에서는 생오리 소금구이와 토종닭 양념불고기와 닭육회를 맛볼 수 있으며 식사 후 나오는 흑임자죽 맛이 일품이다.
  • 그리운 얼굴, 그리운 사람들

    그리운 얼굴, 그리운 사람들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곤 하던 ‘얼굴’” 글·사진 고은별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무지개 따라 올라갔던 오색 빛 하늘 나래 구름 속에 나비처럼 날으던 지난 날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곤 하던 얼굴 우리들의 마음속엔 언제까지나 잊히지 않는 그리운 사람의 얼굴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일까요? 할머니, 아버지, 선생님, 누나, 언니, 오빠, 동생, 어릴 적 친구…. 아아, 어머니. 첫눈처럼 아련하게 떠오르는 하얀 얼굴. 피아노를 치면서 <얼굴> 노래를 불러봅니다. 부르면 부를수록 더욱 애절하게 다가오는 노랫말과 아름다운 멜로디. 이렇게 가슴 아리게 아름다운 시와 노래를 누가 만들었을까요? 우리가 사랑하는 <얼굴>의 실제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작곡가 신귀복 선생님과 작사가 심봉석 선생님을 만나 <얼굴> 노래가 어떻게 이 세상에 울려 퍼지게 되었는지 그 사연을 들어보았습니다. 고은별 _ 시가 좋고 멜로디가 아름답습니다. 신귀복 _ 작사자가 애인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그리면서 쓴 시입니다. 1967년 교사로 재직하고 있던 동도 중공업고등학교 교무실에서 같은 학교 생물 교사였던 심봉석 선생이 시를 쓰고 제가 작곡했습니다. 곡을 만들고 피아노로 연주하니까 선생님들이 참 좋아하셨어요. 그 당시 제가 KBS 라디오의 ‘노래 고개 세 고개’에서 노래 심사위원으로 있었는데 오용한 프로듀서에게 악보를 주었습니다. 성악가들이 노래를 불러서 녹음을 했는데 방송에 나가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고 3000 통에 가까운 편지를 받았습니다. 고은별 _ 그렇게 많은 편지를 받으셨나요? 신귀복 _ 네, 답장도 일일이 다 써서 보냈습니다. 감정이 없는 노래는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요. 노래는 불러서 좋고 들어서 좋은 노래를 만들어야 합니다. 노래라는 것이 만들어서 부르라고 있는 것인데 클래식 음악을 하는 많은 음악가들이 한없이 수준을 높게 만들어서 저 산꼭대기에서 대중들에게 올라 오라 하는데 올라갈 수가 없잖아요. 나는 내가 내려가서 데리고 올라간다, 같이 올라가자 하는 마음으로 곡을 써 왔습니다. 고은별 _ 음악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신귀복 _ 제가 어려서 안성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 있는 풍금을 그냥 쳐보고 싶었어요. 손으로 눌러보니까 소리가 나지 않더라고요. 앉아서 발판을 누르면서 쳐보니까 그때 소리가 났어요. 그렇게 하나하나 눌러보다가 <아리랑>을 치게 되었고 <도라지>를 치게 되고….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혼자 그렇게 풍금을 치면서 조금씩 화음의 원리를 깨닫게 되었고 누가 노래를 부르면 그 자리에서 반주를 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은별 _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신 경험이 많으시죠? 신귀복 _ 밴드 부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교사자격증을 따기 위해서지요. 혼자 독학을 해서 열아홉 살에 자격증을 받았습니다. 저는 교육이라는 것이 나이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어린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지요. “ 배우는 것 자체가 교육이 아니라 행하지 못하는 것을 행하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고 정의한 존 러스킨의 말에 동감합니다. 음악 교육의 목적은 음악의 체험을 통해 아름다운 정서와 인격을 갖추고 교양을 높이는 데 있다고 가르치지만 무엇보다 음악은 쉽고 재미있는 것입니다. 고은별 _ 젊은 나이에 교사자격증을 취득하셨어요. 신귀복 _ 자격증을 받고 나서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공군군악대에 들어갔을 때 제가 존경하는 홍난파 선생님의 생가를 방문했는데 그때 나도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얻었습니다. 고은별 _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십니까? 신귀복 _ 아내와 세 딸이 있는데 첫째는 피아노를 하고 둘째는 그림을 그리고 막내는 클라리넷을 전공했습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성당 성가대에서 부르는 합창곡도 작곡을 했는데 <풍악을 울려라>라는 곡입니다. 고은별 _ 노래를 듣고 있으면 시가 자연스럽게 노래가 된 것 같아요. 심봉석 _ 노랫말과 음악이 서로 잘 어우러져야 합니다. 노래라는 것이 부르면서 들으면서 생각을 하고 넘어가는 것인데 어려운 말을 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고 순수한 우리말을 쓰는 것이 좋지요. 시작하는 단어들이 노래를 이끌고 가는 계기를 줄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고은별 _ <얼굴> 노래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심봉석 _ 교육위원회에서 감사가 나와서 그것에 대비해 교무회의를 하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을 정말 오래 하셨습니다. 하신 말씀 또 하시고 해서 굉장히 지루했어요. 그래서 신귀복 선생님께 제가 “노래를 하나 만들어 보시지요” 라고 말했고, “그럼 자네는 시를 쓰게” 해서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분은 그분대로 악상이 떠오른 것을 쓰시고 저는 저대로 생각나는 것을 몇 가지를 정리하다가 쓰게 되었어요. 첫 소절은 거의 서로 상관없이 쓰게 된 것 같아요. 뒷부분은 나중에 고쳤지만요. 교무회의가 끝나자마자 신귀복 선생님과 함께 음악실에 가서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곡은 그때 거의 완성이 되었는데 가사를 완성시키는 데 보름 정도 걸렸어요. ‘가화(嘉禾)’라고 하는 클래식 음악다방에서 2절의 마지막 소절을 완성했습니다. 고은별 _ 처음에 이 노래가 만들어졌을 때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게 될 줄 예감하셨나요? 심봉석 _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 당시 저는 무명이었고 두 사람이 우연히 합작을 해서 노래를 하나 만든 것이지요. 라디오에서 방송해 준 것만도 너무 고마운 일이었는데 방송이 나가자마자 많은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왔고 악보를 보내달라는 부탁의 편지가 많이 왔습니다. 고은별 _ <얼굴>의 주인공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부인이신가요? 심봉석 _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고은별 _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심봉석 _ 김말순입니다. 저하고 대학 동기동창이에요. 덕수중학교에서 교장으로 있다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과만 다른데 서클에서 만났어요. 경상도가 고향이죠. 사귀다가 사소한 일로 틀어져서 서로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낼 때 다른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상하게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찾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 같고. <얼굴>을 작사할 당시는 그녀와 헤어져 있었던 시기였고 노랫말을 지을 때 그런 기분이 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났고 그때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제 첫사랑인 셈이고 만난 지 9년 만에 결혼하게 되었어요. <얼굴>은 가곡이지만 대중가수들도 많이 불렀습니다. ‘윤연선’이라고 하는 가수가 이 노래를 불러 유명해졌지요. 대학 다닐 때 사랑하는 애인이 있었는데 남자 쪽 부모님의 반대로 결혼을 하지 못했대요.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고 윤연선 씨는 첫사랑을 잊지 못해 혼자 지냈다고 합니다. 남자친구의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 다시 만나 결혼을 했는데 첫사랑 남자의 딸이 아버지와 윤연선 씨의 애틋한 사연을 알게 되어 중매를 서서 결혼하게 된 것입니다. <얼굴>이라는 아름다운 시와 노래가 잃어버렸던 첫사랑을 찾아준 것일까요? 작곡가와 작사가 두 분을 따로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노래에 얽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사랑하던 이를 미워하며 헤어지면서 서로 자신들이 잘못한 것이 없다며 상대를 헐뜯는 사람들이 있어 몹시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인지 비록 떠나간 사람이지만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행복을 빌어주며 사랑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살았던 어느 여가수가 오랜 세월을 기다려 잃었던 사랑을 되찾은 이야기는 제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감동을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노래를 부르는 마음. 우리 모두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조용히 노래를 불러봅니다.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도는 얼굴이 있습니다. 아아, 어머니…. ‘박선봉’ 이름 석 자 남기고 돌아가신 그리운 나의 어머니. ※ 작곡가 신귀복 선생님과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신 최현순(전 숲속음악원 원장, 피아노 개인교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월간 <삶과꿈> 2007.03 구독문의:02-319-3791
  • [의사 한송이의 요리짱건강짱] 제철 만난 멸치… ‘군침도는 유혹’

    [의사 한송이의 요리짱건강짱] 제철 만난 멸치… ‘군침도는 유혹’

    멸치가 맛있는 계절이다. 멸치는 사계절 잡히는 생선이지만, 특히 3월부터 5월까지가 가장 맛과 영양이 좋다. 올해도 봄 멸치잡이가 풍어를 맞으면서 미식가들의 입맛을 돋게 하고 있다. 봄 멸치는 표면이 푸르스름하고 투명하며 손가락 굵기 정도여서 젓갈로 담그기도 하지만 잡자마자 회를 뜨거나 구워 먹어도 맛있다. 통영과 거제도 등 남해의 유명 멸치 어항에서는 멸치쌈, 멸치회, 생멸치튀김, 멸치 코스 요리 등 그야말로 제철 멸치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멸치는 크기와 잡히는 곳에 따라 이름이 다양한데, 큰 것은 ‘순봉이’, 작은 것은 ‘잔사리’, 다섯치 정도는 ‘앵메리’라고 한다. 제주도서는 행어, 멜이라고 부른다. ●비타민D 풍부한 밤·무말랭이 등과 함께 먹어야 뼈째 먹을 수 있는 멸치는 칼슘의 보고이다. 큰 멸치 1마리를 먹었을 때의 칼슘 흡수량은 27㎎, 말린 것 5마리는 110㎎이나 되며, 칼슘의 흡수를 촉진하는 비타민D도 들어 있다. 칼슘의 양으로만 치면 멸치를 따라올 식품이 없지만, 아쉽게도 멸치에 들어 있는 칼슘은 체내 흡수력이 우유에 비해 떨어진다. 우유와 유제품의 흡수율이 약 50%인 반면 멸치는 30% 정도이다. 그래서 멸치의 칼슘을 조금이라도 더 섭취하고 싶다면 칼슘 흡수력을 높여주는 연어, 밤, 말린 표고버섯, 무말랭이, 요구르트, 달걀 노른자 등 비타민D가 듬뿍 들어 있는 재료와 함께 먹으면 좋다. 그러나 칼슘의 흡수를 방해하는 식품이 있으므로 주의해서 섭취해야 하는데 소시지나 햄 같은 가공식품에 들어 있는 다량의 인이 그들이다. 지나치게 가공식품에만 편중하는 식생활은 인의 섭취가 과다하게 되어 모처럼 섭취한 칼슘이 몸 밖으로 배설되고 만다. 말린 멸치는 염분이 많으므로 너무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트륨의 배출을 촉진하는 칼륨이 많은 식품과 함께 섭취하는 것이 좋다. 칼륨은 채소, 감자, 과일, 해초에 많이 들어 있다. 소금기가 강한 것은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수분을 빼면 염분이 빠지고 살균도 된다. 칼슘 덩어리인 만큼 멸치는 어린이들의 성장 발육에 필수적이고, 갱년기 여성들의 골다공증 예방, 태아의 뼈 형성과 산모의 뼈 성분 보충에 탁월한 식품으로 꼽힌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의 지능 발달에도 효과가 있는 고도 불포화 지방산인 EPA와 DHA가 함유되어 있다. 감칠맛을 내는 글루타민을 비롯해 각종 성인병 예방에 좋은 불포화 지방이 들어있으며 단백질과 베타카로틴, 비타민B1,B2, 무기질 등이 풍부하다.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효능을 지닌 멸치는 5마리만 먹으면 하루에 필요한 칼슘을 보충할 수 있다고 한다. 흡수율까지 고려했을 때 성인을 기준으로 칼슘의 1일 권장량은 700㎎. 영양과잉인 현대인들도 칼슘 섭취는 권장량의 80% 정도에 불과하다. 멸치는 외관이 좋아야 하며 짠맛이 많이 안 나는 것이 좋다. 주로 볶을 때 사용하는 잔멸치는 흰색이나 파란색이 돌면서 투명한 것이 좋고, 졸여 먹거나 고추장에 찍어 술안주로 먹는 중간멸치는 은회색이 도는 맑은 멸치가 좋다. 맛국물용 큰 멸치는 연한 황금빛, 넓적하며 약간 구부러진 것이 좋다. ●통영서 직송한 멸치로 새콤달콤 회무침 서울 강남구 압구정역 근처의 ‘충무상회’는 제철을 만난 신선한 멸치회를 맛볼 수 있는 통영 향토음식점이다. 통영에서 직송한 멸치를 회나 새콤달콤한 회무침으로 당일 분량만큼만 판매하는데, 선도가 매우 훌륭해서 항구에서 갓 잡은 것을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통영에서 직송한 제철 해산물로 세꼬시, 잡어회, 회무침, 생선구이 등을 내는데 모두 최고의 선도와 맛을 자랑할 뿐 아니라 곁들여 나오는 심심한 무나물, 아삭한 콩나물, 짭짤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인 애호박나물, 굴과 무로 담근 톡쏘는 굴김치 등 철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반찬이 나온다. 서더리를 미역과 함께 푹 고아 끓여낸 뽀얀 미역국은 깔끔하면서 부드러운 맛이 최고의 별미이다. 전화 02)515-6395. 멸치회, 회무침 3만원, 도다리 세꼬시 1인분 4만원, 잡어 세꼬시는 3만 5000원(2인분 이상). 여성전문병원 유비여성클리닉 원장
  • 터키 헌재 “대선 1차투표 무효” 조기총선 가닥… 정국 진정국면

    터키 헌재 “대선 1차투표 무효” 조기총선 가닥… 정국 진정국면

    |파리 이종수특파원|터키 헌법재판소는 1일(이하 현지시간) ‘의회가 지난달 27일 실시한 대통령선거 1차 투표는 정족수 미달로 무효’라고 판결했다. 또 레젭 타입 에르도안 총리는 이날 “오는 6월24일 혹은 7월1일쯤 조기 총선 실시를 추진하겠다.”며 “대통령 선출 방식도 의회투표에서 직접 선거로 바꾸고, 국회의원 임기도 5년에서 1년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는 이슬람 성향의 대통령 선출에 반대해온 군부·야당·세속주의자들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다. 따라서 혼미를 거듭하던 터기 정국이 일단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야당 요구 일부 수용 터키 헌재는 이날 대선 1차투표의 무효 판결 이유로 “전체 의원 550명 가운데 361명이 투표에 참석, 재적의원 3분의2에 미달했다.”고 밝혔다. 여당인 집권정의당의 단독 후보로 출마한 압둘라 굴 외무장관은 1차 투표에서 재적의원 3분의2의 찬성을 얻지 못해 2일 2차투표에 이어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이 필요한 3,4차 투표를 남겨둔 상태다. 앞서 군부와 야당, 세속주의자 유권자들은 “이슬람 세력이 의회·정부에 이어 대통령직마저 차지하려고 한다.”며 강력 반발했다. 지난 27일 군부의 반대성명에 이어 29일 100만여명이 이스탄불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또 굴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헌재에 1차 투표 무효심판을 청구했다. 이에 정부는 “야당이 헌법상의 명확한 정족수 규정 미비를 이용했다.”며 “의회의 대선 투표 유효 정족수도 일반 개회 정족수와 같은 재적의원의 3분의1”이라고 맞섰다. 특히 헌재 판결 뒤에도 “예정보다 하루 늦춰 3일 2차투표를 강행하겠다.”고 밝혀 혼란이 가속되는 듯했다. 그러나 에르도안 총리가 집권당의 의견을 모아 1일 조기총선 실시 추진과 직선제 대선 등 광범위한 개혁 청사진을 내놓으면서 국면 봉합에 나섰다. 군부와 야당의 주장을 수용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혼란 재연 가능성도 정부의 이 같은 결정은 헌재의 1차 투표 무효 판결에다 당초 일정대로 대선을 강행하더라도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 의원들이 투표에 불참한다는 입장이어서 여당 단독으로 정족수를 채우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서 비롯됐다. 게다가 세속주의를 천명하는 군부가 정치개입 움직임을 보인 것도 큰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시각도 많다. 우선 현 정부가 전폭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굴 외무장관이 2차 투표에서 정족수 확보에 실패한 뒤 조기 총선에 나서더라도 집권당의 승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에르도안 총리는 집권 뒤 연 평균 7.3%의 경제 성장률을 이룩하고 1인당 국민소득을 이전의 2배 가까운 5477달러로 끌어 올리면서 서민층과 이슬람 근본세력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조기 총선과 직선제 대선을 통해 이슬람 성향의 대통령 선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군부, 야당과의 마찰도 예상된다. 그럴 경우 터키 정국은 다시 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vielee@seoul.co.kr
  • [한·미 FTA 효과 분석] 소비자 이익 10년간 20조원+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되자 돼지고기 값이 소비자 가격 기준으로 10∼15% 떨어졌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과 농촌경제연구원 등은 30일 FTA 체결 때 소비자들의 후생이 10년간 20조원 증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관세 인하로 쇠고기를 비롯한 농축산물과 자동차 등 공산품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후생 증대액 20조원에는 개방으로 인한 국내 농축산물의 가격 하락이 포함되지 않아 소비자 혜택은 더 늘어날 수 있다. 국내 쇠고기 값은 15∼25% 정도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회선과 인터넷 전화 등의 통신요금은 0.35%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통신사업자에 대한 외국인의 간접투자가 허용됨에 따라 해저케이블을 갖고 있거나 국내 인터넷 전화업체를 인수할 수 있는 외국 기업의 국내 진출이 예상된다. 경쟁이 심화되면 요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수산업에서는 미국산이 국내산을 대체, 생산이 연평균 281억원 감소하겠지만 소비자들은 비싼 민어회와 국내에서 잡히지 않는 바다가재를 값싸게 먹을 수 있게 된다. 민어의 경우 연평균 251억원, 소비자 1인당 520원의 혜택을 볼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수산물 가운데 다랑어와 밀폐용기에 넣은 굴은 미국 수출이 가능해 해마다 8억원어치를 팔 수 있을 전망이다. 반면 지적재산권 보호기간이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됨에 따라 1930년대 이후 미국에서 만들어진 캐릭터나 출판·음악 등의 저작물 관련 로열티를 연평균 71억원씩 더 내야 한다.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디즈니 관련 캐릭터 제품이나 50년대 팝송 음반 등을 사려면 소비자들은 그만큼 더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법률 서비스 시장에서는 구조조정이 진행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는 국내 변호사도 늘어날 전망이다.FTA 협상 결과 미국 변호사·회계사는 국내에서 국제법 관련 자문을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우수한 외국 로펌들이 우수한 국내 변호사를 스카우트하려 할 것이다.자본력이 부족한 국내 로펌과 능력이 떨어지는 국내 변호사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현재 국내 로펌 소속 변호사 가운데 국내외 변호사 자격을 모두 갖고 있는 비중은 20∼40%에 이른다. 생활용품은 연평균 246억원의 생산이 늘 것으로 보이지만 영세하고 가공기술이 떨어지는 귀금속과 보석 산업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신발이나 악기처럼 미국에서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는 품목은 관세 철폐를 반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카바레/리사 아파냐네시 지음

    우리 이미지 속의 카바레는 중년의 남녀가 색소폰 소리에 맞추어 엉켜 돌아가는, 퇴폐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교장이다. 폴란드에서 태어나 프랑스와 캐나다에서 공부한 작가 리사 아파냐네시의 ‘카바레’(강수정 옮김·에코 리브르 펴냄)를 보면 ‘원산지’의 사정도 최근에는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런던에서 살고 있는 리사도 요즘의 유럽 카바레에서 ‘눅눅한 뒷골목의 싸구려 술집, 엉성한 쇼를 보여준답시고 칵테일에 터무니없는 값을 매기는’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다. 하지만 짐작처럼,1881년 파리에서 태어난 카바레는 시인과 작가·음악가·미술가·연극인 등 시대를 이끌어간 도전적 예술인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과거의 카바레가 반골기질과 사회적·성적 저항을 본질로 서구 근세사의 핵심적인 순간마다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면, 요즘의 카바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저항이나 풍자가 아닌 유희만 남은 공간으로 변모해버린 셈이다. 리사는 카바레의 발생에서부터 최근 런던이나 미국 뉴욕의 손바닥 만한 힙합클럽에 이르기까지 ‘카바레적인 공간’의 변천사를 담아놓았다. 카바레라는 말은 포도주 창고 또는 선술집을 뜻하는 프랑스어이다. 카바레 탄생의 도화선 역할을 한 것은 이드로파트(Hydropathes)라는 파리의 문인집단. 젊은 시인 에밀 구도가 결성한 이드로파트는 매주 작품을 선보이고 시와 노래, 일인극을 공연하기도 했다. 당대 사회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샹송이 카페에서 즐기는 대표적인 오락으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실험과 풍자를 마음껏 펼칠 새로운 문화공간이 절실해진 것이다. 그 결과 화가이자 시인인 로돌프 살리가 몽마르트르에서 문을 연 것이 최초의 카바레인 ‘검은 고양이(Chat Noir·샤 누아르)’이다. 카바레의 역사는 이후 피카소가 메뉴판 그림을 그린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네마리 고양이’와 아방가르드의 집결지였던 런던의 ‘금송아지 굴’, 보헤미안의 지휘본부 같았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길잃은 개’, 공산주의 치하에서도 명맥을 유지한 폴란드 크라쿠프의 ‘양머리 아래 지하실’로 이어진다.1만 8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0) 인천 옹진군 덕적면 울도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0) 인천 옹진군 덕적면 울도

    서해안 먼바다 깊고 깊은 곳, 섬은 그대로인데 마을은 영광의 시대를 뒤로 하고 명맥만 유지한 채 나날이 쇠잔해가고 있다. 인천에서 배편으로 덕적도까지 간 뒤 다시 배를 갈아 타고 두 시간 남짓 더 가야 하는 섬. 행정명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울도리. 험한 파도를 헤치고 문갑도와 굴업도, 백아도를 거쳐 울도항에 배가 도착하자 오랜만에 들어오는 생필품을 기다리던 주민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작은마을과 큰마을로 형성된 울도엔 모두 16가구 3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해질녘 작은 어선에서 어망을 내려 생선을 털어내자 양동이에선 주먹만한 우럭과 놀래미들이 팔딱거린다. 황량하고 바람부는 부두에는 아낙 홀로 길고긴 어망을 수선하고 있어 보는 이의 가슴을 쓸쓸하게 한다. 비탈진 곳에 위치한 어민의 작은 집 마당에는 한 노인이 금방 앞바다에서 채취한 홍합을 손질하고 있다. 갯벌에 뿌리박은 그물닻에는 굴딱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주인 잃은 폐선은 흉물스러운 몰골을 드러내고 있다. 섬은 196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민어·조기·새우잡이가 한창이었고 호황일 때는 파시(波市)가 열렸다. 외지인들이 수백명씩 들어와서 작은마을에는 객주점(客酒店)이 즐비할 만큼 흥청거렸다. 이후 꽃게잡이가 번성할 때는 주민들도 20여척의 꽃게잡이배를 부리며 남부럽지않게 돈도 만졌다. 근해에서 조업하는 꽃게잡이배들도 섬으로 몰려들어 아낙들도 어구손질만으로 한 해 천만원씩 소득을 올렸다. 40명이 넘는 아이들이 10년전 폐교된 덕적초등학교 울도분교를 웃음소리로 가득 메웠고, 마을은 선주들이 고용한 외지 어민들의 가족들로 북적거렸다. 어부들은 너나없이 인천에 별도의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평생동안 바닷속만 들여다 보고 살았다는 한 늙은 어민은 기자에게 그 옛날의 영광을 들려주었다. 지금 섬에는 바람과 파도를 피해 들어온 몇척의 배와 어구 적치장을 가득 메운 어망만이 주인인양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대로 이 섬에 살았다는 정광성(72) 할아버지는 “한때 2척의 꽃게잡이배를 가지고 5가구나 고용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회상하면서 “어선들이 대형화되고 물고기를 남획하면서 5년전부터 게가 잡히지 않아 지금은 마을주민이 소유한 꽃게잡이배가 단 1척에 불과하며 그나마 꽃게잡이하는 주민도 거의 없다.”고 아쉬워했다. 부인과 함께 울도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정병우(40·전도사)씨는 “본적과 주소지를 아예 울도로 옮겼다.”면서 “바깥 세상과 거의 단절된 채 살아가는 주민들이 너무나 순하고 착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응급환자가 발생하거나 아플 때는 대책이 없어 불편하다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현재는 갯벌에서 간간이 채취하는 고둥이나 홍합 굴에다, 소형 배를 이용한 낚시잡이 외에는 어족자원이 고갈되어 뾰족한 소득원이 없지만 주민들은 그래도 희망에 부풀어 있다.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되면서 섬을 찾겠다는 문의전화가 잦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사중인 준설작업과 항만공사가 끝나고, 인천에서 갈아타지 않고 올 수 있는 객선이 취항을 하면 관광객들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게다가 종패를 뿌려 놓은 바지락과 굴 양식장이 수확을 시작하는 2년 뒤쯤이면 섬은 점차 활기를 찾게 된다며 들떠 있다. 뭍에서 멀어서 울면서 들어가고, 나올 때는 훈훈한 인심에 떠나기 섭섭해서 울고 간다는 울도, 살기가 어려워 섬 주민치고 울지 않는 사람이 없어서 울도라는 유래가 생겼다는 섬. 바람과 안개에 며칠째 발이 묶였던 이방인은 주민들의 소망이 이루어져 새로운 영광의 시대를 맞게 되기를 기대하며 섬 울도를 떠났다. 사진 글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女談餘談]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정은주 지방자치부 기자

    #1.“극성 엄마가 되는 게 무서워서요.” 결혼 8년차인 A(38)씨는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캠퍼스 커플인 A씨 부부는 만난 지 10년만에 결혼했다. 그들은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서 일하며 집도 마련하고, 고급 승용차도 구입했다. 친구처럼, 연인처럼 부부관계도 돈독하다. 다만 아이가 없을 뿐이다. “친구들이 하나둘 ‘극성 엄마’로 변하는 걸 목격했어요. 아이를 옭아매 경쟁에서 이기는 법만 가르치더군요. 순간 무서워졌습니다. 미래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남편도 아내의 고민을 이해했다. 오랜 대화 끝에 부부는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다. 부모님도 ‘늙어서 우리 원망하지 말라.’며 끝내 손을 들었다. “잘한 결정일까 걱정되지만 제가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칠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요.” #2.“남편이 아이를 싫어해요.” 국문학 박사로 대학 시간강사인 B(38)씨는 남편 때문에 아이를 포기했다. 그녀의 남편은 10년째 집에서 글을 쓰는 무명 작가다. 책을 냈지만 몇 권 팔리지 않아 생계가 힘들다.B씨가 중·고등학생을 가르쳐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나 아이를 포기한 건 돈 때문이 아니다.“남편이 아이들을 증오해요. 글을 쓸 때 동네 아이들이 밖에서 시끄럽게 굴면 당장 나가서 마구 혼냅니다. 이웃집과 아이 때문에 얼마나 싸우는지…. 이사도 여러번 했어요.” 가족들은 “그래도 제 자식은 귀여워할 것”이라며 아이를 낳으라고 권했다. 그러나 B씨는 아이를 두고 모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남편이 아이를 싫어할 가능성이 높은데 아이를 갖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아빠를 증오하면 누가 책임질 건가요?” ‘황금돼지해’를 맞아 출산 붐이 일고 있는데 나는 공교롭게도 ‘무자녀’를 결심한 여성들을 잇따라 만났다. 결혼 4년차에 30대 중반으로 향하는 나이 때문일까. 그들의 고민이 칼날처럼 가슴에 박혔다. 사랑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있듯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일까. 정은주 지방자치부 기자 ejung@seoul.co.kr
  • [공정위-대한상의 ‘날세운 설전’] “재계는 공정위 ‘경쟁정책’ 오해 말라”

    김병배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17일 재계에 ‘쓴소리’를 했다. 공정위의 경쟁 정책이 잘못됐다는 재계의 불만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것도 대한상공회의소가 초청한 조찬 강연에서다. 호랑이 굴에서 호랑이를 호통친 셈이다. 특히 현대자동차의 독점으로 소비자 후생이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김 부위원장은 재계의 불만은 오해라고 설명했다. 우선 글로벌 기업에 대항할 수 있는 국내 대표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내셔널 챔피언론’에 일침을 가했다. 그는 “현대·기아차의 점유율이 70%를 넘어 사실상 독점”이라면서 “현대·기아차가 분리됐을 때는 무이자 대출도 많았지만 합쳐진 뒤로는 혜택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내셔널 챔피언론은 시장에 의한 승자 결정 원칙에 위배된다.”면서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국내에서의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세계 시장을 석권한 반면 국내 자동차 산업은 경쟁이 크지 않아 소비자 후생이 감소했고 최근에는 수입자동차의 점유율도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또한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같은 재벌정책으로 국내기업이 역차별을 당했다는 주장에는 “계열사 출자 가운데 투자를 의미하는 신규회사 지분 증가분은 8%에 불과하다.”면서 “출총제 때문에 투자를 못했다는 기업은 만나보지도 못했다.”고 일축했다. 게다가 출총제는 국내외 모든 기업에 적용되고 총수 중심의 재벌 구조는 한국에만 있는 것으로 역차별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과당경쟁은 이익감소와 경영악화를 초래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재계의 논리에도 그는 “소비자나 수요자의 사고가 아니라 생산자와 공급자 중심의 사고”라고 평가했다.김 부위원장은 이어 “경쟁은 치열할수록 소비자와 수요자에게 좋으며 기업이 담합규제 등 쉬운 길만 모색한다면 개방 시대에 경쟁력을 잃고 구조조정을 지연하는 결과만 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봄철 조개 ‘독’ 조심하세요

    봄철 조개 ‘독’ 조심하세요

    식품의약품안전청은 12일 봄철에 주로 발생하는 마비성 패독을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식약청은 패독 피해를 줄이기 위해 조개 독에 대한 정보를 담은 팸플릿을 만들어 일선 보건소 등에 배포할 계획이다. 패독이란 유독성 플랑크톤을 잡아먹은 조개나 굴 등을 섭취했을 때 중독을 일으키는 물질로 마비성 패독, 기억상실성 패독, 설사성 패독, 신경성 패독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마비성 패독 독성이 가장 크다. 마비성 패독은 우리나라에선 주로 남해안에서 매년 2∼3월에 발생해 4월 말에서 5월 초에 최고치에 이르렀다가 5월 말에서 6월 초에 자연 소멸한다. 독이 있는 조개 등을 먹은 뒤 30분쯤 지나면 발병한다. 입술, 혀, 안면마비 등에 이어 목과 팔 등 전신마비 등의 증세를 보인다. 냉동, 냉장하거나 끓인 음식물에서도 파괴되지 않는다. 식약청 관계자는 “마비성 패독은 심한 경우, 호흡 마비로 사망할 수 있다.”면서 “패류 채취가 금지된 지역에서는 아예 조개를 잡거나 섭취하지 않는 게 최고의 방지책”이라고 설명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14) 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14) 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Ⅰ

    누르하치를 치는 데 동참하라는 격문을 받았을 때 광해군(光海君)이 보인 반응은 신중했다. 아니 냉정했다. 그는 누르하치가 ‘천하의 강적’이기 때문에 미약한 조선군의 힘으로는 당해낼 수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왕가수가 격문을 보낸 것은 조선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명의 요구를 호락호락하게 받아들일 생각이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비변사(備邊司) 신료들의 주장은 달랐다. 그들은 격문에서 대의(大義)를 내세워 ‘재조지은(再造之恩)’에 보답하라고 했던 사실을 상기시키고 적어도 7000명 정도의 병력은 보내야 한다고 맞섰다. 그러자 광해군이 일갈했다.‘곧 장마철이 다가오는데 대병을 동원하여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모험을 벌이려는 명군 지휘부의 수준을 알 만하다.’는 것이었다. 파병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광해군 정권의 존폐, 나아가 조선의 운명에 영향을 줄 만큼 격심한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한반도에 강대국 입김 커질때마다 ‘부활´ 몇해 전, 모 방송사에서 고등학교 역사 교사들을 대상으로 우리 역사에서 다시 평가해야 할 인물들을 꼽아보라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교사들은 ‘다시 평가해야 할 대상’으로 광해군을 가장 많이 거론했다. 광해군이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폐위된 뒤 ‘폭군(暴君·포악한 군주)’ ‘혼군(昏君·어리석은 군주)’ 이라는 낙인이 찍혔던 것을 고려하면 뜻밖의 일이었다. 광해군(1575∼1641)은 16세기 말엽과 17세기 초반을 살다간 인물이지만 오늘날 그는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강대국 사이에 끼여 있는 지정학적 조건에서 외교문제와 관련된 현안들이 불거질 적마다 그는 ‘부활’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이라크에 파병하는 여부를 놓고 국론이 분열되었을 때도 반대론자들은 그를 불러낸 바 있다. 한반도에 미치는 강대국의 입김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에 대한 관심 또한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다. 광해군은 선조의 둘째 아들이었다. 선조는 정비(正妃) 의인왕후(懿仁王后) 박씨와의 사이에 아들이 없었다. 대신 후궁들과의 사이에 13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공빈(恭嬪) 김씨와의 사이에서 얻은 왕자가 임해군(臨海君)과 광해군이다. 선조는 54세 때인 1606년, 늘그막에 새로 맞이한 정비 인목왕후(仁穆王后)에게서 다시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얻었다. 하지만 선조가 죽은 뒤, 그의 아들들 가운데는 비명횡사하는 왕자들이 속출한다. 광해군이 즉위한 뒤 임해군과 영창대군이 역모 혐의를 받아 죽었다. 광해군은 인빈(仁嬪) 김씨의 손자인 능양군(綾陽君-정원군의 아들, 인조)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났다. 인조대에는 인성군(仁城君)이 역모죄에 걸려 죽었고, 이괄(李适)에 의해 국왕으로 추대되었던 흥안군(興安君)도 반란 실패후 비명횡사했다. 선조는 과연 이같은 상황을 예측했을까? 여하튼 첩자(妾子)이자 차자(次子)인 광해군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왕은 물론 왕세자가 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얼마 되지 않는 사료들 가운데는 ‘광해군이 총명하고 학문에 힘쓴다.’고 유년 시절의 그를 칭찬하는 내용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총명’과 ‘면학’ 만으로 적자(嫡子)도 장자(長子)도 아닌 그의 태생적인 한계가 극복될 수는 없었다. ●“총명하고 학문 좋아해 세자 책봉” 광해군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은 임진왜란이었다.1592년 4월28일, 충주에서 배수진을 치고 일본군과 맞섰던 신립(申砬) 휘하의 조선군이 참패했다는 소식이 서울로 날아들었다. 일본군이 곧 들이닥칠 것이란 소문에 도성의 분위기는 공황 상태에 빠졌고, 조정 신료들은 선조에게 파천(播遷)할 것을 건의했다. 뾰족한 대책이 없었던 선조는 건의를 받아들였다. 파천하기로 결정한 직후 우부승지 신잡(申)은 선조에게 빨리 왕세자를 책봉하여 민심을 수습하라고 건의했다. 그는 충주에서 전사한 신립의 형이었다. 선조는 대신들을 선정전(宣政殿)으로 불러모았다. 선조가 ‘왕세자로 누가 좋겠냐?’고 물었을 때 대신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그것은 전하께서 스스로 결정하실 문제입니다.” 선조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대신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신하된 처지에 ‘미래의 주군(主君)’을 선택하거나 추천하는 것은 엄청난 불충(不忠)이기 때문이다. 선조의 고민과 대신들의 침묵은 낮부터 한밤까지 이어졌다. 영의정 이산해(李山海)가 지쳤는지 자리를 피하려 하자, 신잡이 ‘오늘 끝장을 봐야 한다.’고 잡아끌었다. “광해군이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니 세자로 삼고 싶은 데 경들의 뜻은 어떠한가?” 선조의 이 한마디에 대신들은 “종묘 사직과 생민들의 복입니다.”라고 외쳤다. 광해군이 엉겁결에 왕세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4월30일, 선조와 광해군은 북으로 파천 길에 올랐다. 이윽고 조정이 평양에 머물고 있던 5월, 선조는 광해군에게 분조(分朝)를 맡아 함경도로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본군의 북상을 막아낼 전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선조는 최악의 경우, 의주(義州)를 거쳐 명나라로 귀순할 것을 고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압록강을 건너는 순간, 선조는 더 이상 ‘조선의 왕’일 수 없었다. 분조란 바로 그같은 상황에 대비,‘조정을 쪼개’ 광해군에게 넘기는 것이었다. 광해군은 왕세자가 되자마자 ‘나눠진 조정’을 이끄는 왕이 되었다. 그에게는 전쟁으로 지친 민심을 위무(慰撫)하고, 근왕병을 모집하여 전란을 수습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조명연합군 승리뒤 明의 힘 통감 광해군의 분조 활동은 1592년 6월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12월까지 평안도·함경도·강원도·황해도 등지를 옮겨다니며 민심을 수습하고, 일본군에 대한 항전을 독려했다. 그가 순행(巡行)했던 지역의 주변에는 곳곳에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어 경호 문제가 심각했다. 때로는 험준한 산악과 고개를 넘거나 노숙을 하는 것도 피하지 않았다. 광해군의 분조 활동이 남긴 성과는 컸다. 국왕 선조가 궁벽한 국경 도시 의주에 머무는 한, 황해도 이남의 사서(士庶)들에게 조정의 존재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제 당시 의주의 조정은 강화도를 매개로 서해(西海)를 통해 삼남지방과 겨우 연결되고 있었다. 따라서 일본군이 할퀴고 간 내륙지역의 백성들 가운데는 나라가 이미 망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바로 그때 광해군이 분조를 이끌고 나타나 조정이 건재하고 있음을 알렸다. 광해군의 출현은 백성들에게 ‘충성을 바칠 대상’이 아직 살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592년 12월, 이여송이 이끄는 명의 원군이 들어오고 이듬해 1월, 평양전투에서 조·명연합군은 승리를 거두었다. 전세가 역전되고 일본군이 후퇴하자 전쟁이 곧 끝날 것이란 기대가 넘쳐났다. 하지만 명군이 벽제(碧蹄) 전투에서 일본군에 참패하면서 상황은 다시 꼬이기 시작했다. 패전 이후 명군 지휘부는 입장을 바꾸었다. 일본군과 협상을 통해 전쟁을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더 이상 조선을 위해 피를 흘릴 수는 없다고 했다. 지루한 강화(講和)협상이 시작되었다. 협상 시작 이후 명군 지휘부는 조선 조정에 대해 일본군을 공격하지 말라고 강요했다. 일본군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명군 지휘부는 자신들의 명령을 어기고 일본군을 공격한 조선군 장수들을 잡아다가 매질을 하기도 했다. 조선군의 작전통제권은 명군 지휘부에 의해 박탈되었다. 선조가 명군 지휘부의 방침에 격렬히 반발하자, 명나라 조정에서는 국왕을 교체하겠다는 협박이 흘러나왔다. ‘무능한 선조를 퇴위시키고 유능한 광해군을 즉위시킨다.’는 것이다.‘광해군 카드’로써 선조를 길들여 자신들의 강화 방침을 관철시키겠다는 심산이었다. 이에 선조는 ‘광해군에게 양위(讓位)하겠다.’고 맞불을 놓았다. 광해군의 위기가 시작되었다. 그는 임진왜란을 통해 명나라의 실체와 권력의 속성을 뼈저리게 체험하게 되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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