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동서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포천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만료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법원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132
  • 곰 겨울잠 신비… 체온 30도 유지·심박수 14회로 ‘뚝’

    곰이 겨울잠을 자는 동안 신진 대사율은 크게 떨어지면서도 비교적 높은 체온을 유지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 알래스카주립대 북극생물학연구소는 17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과학진흥협회(AAA) 연례 회의에서 동면 중 곰의 대사율은 평상시의 25% 수준으로 크게 떨어지지만, 체온은 동면 전 섭취한 먹이 양에 따라 차이가 있고 아무리 떨어져도 정상치보다 섭씨 5~6도 낮은 30도 이상을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주택가에서 붙잡힌 흑곰 5마리에게 각종 감지기를 부착한 뒤 대학 내 ‘인공 굴’에서 동면 과정을 24시간 촬영하는 등의 전례 없는 밀착 연구를 3년 넘게 진행한 결과다. 또 곰은 상대적으로 높은 체온을 유지하면서도 근육과 뼈가 거의 약해지지 않았다. 이에 연구진은 이 같은 동면 비결을 밝혀내면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 하는 외상 환자나 오랫동안 우주에서 연구를 진행해야 하는 우주인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연구진을 한번 더 놀라게 한 것은 심장 박동수가 평상시 분당 55회에서 14회로 떨어진 것뿐만이 아니었다. 심장 박동이 10초, 15초, 20초씩 완전히 멈출 때도 있었다. 이에 대해 연구 책임자인 브라이언 반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1분 정도 숨을 참았다가 다시 공기를 들이마실 때만 심장이 뛰었다.”면서 “에너지를 아끼는 방법이긴 하지만 사람도 가능할지는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다람쥐 등이 동면 후 곧바로 활발히 활동하는 것과 달리 곰은 4월쯤 깨어난 뒤 2~3주가량은 빈둥거리고 낮잠을 잤다. 이는 체온은 곧바로 정상 수준인 38도로 회복되지만 대사율이 높아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서울서 ‘대장장이 45년’ 류상준·상남 형제

    [김문이 만난사람] 서울서 ‘대장장이 45년’ 류상준·상남 형제

    단조(鍛造)의 예술이다. 아무리 딱딱한 쇳덩이라도 필요한 생활 도구로 척척 만들어 내니 말이다. 역사를 거슬러 천년의 기술도 뚝딱 재현해 낸다. 인기 TV드라마 ‘서동요’ ‘대장금’ ‘주몽’ ‘태왕사신기’ 등에서 봤던 소품 도구도 그러한 단조의 예술로 빚어냈다. 하여 어떤 시인은 신화창조의 영웅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류상준(58)·상남(55)형제. 요즘 같은 ‘현대문명’이란 이름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45년째 대장장이로 살아가고 있다. 그것도 형제끼리 아름다운 동행의 길을 걷고 있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대장장이로 열심히 땀을 흘리며 집도 사고, 자식들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행복하게 산다. 이쯤 되면 실업난이라는 이유로, ‘눈높이’라는 핑계로 탱자탱자 노는 이들에겐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보게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수색역 바로 옆 ‘형제 대장간’. 10평밖에 안 되는 공간이다. 두 형제는 뜨거운 화덕 앞에서 쉴 새 없이 메질을 하며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두들기고 다지고, 벌겋게 달궈진 고철덩이들은 형제의 손기술에 의해 새로운 모양으로 태어났다. 낯선 손님이 왔음에도 “잠깐만 기다리쇼.”라는 말만 던지고는 바삐 일만 한다. 그렇게 20여분.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인터뷰에 응했다. 시간을 뺏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대장간 안에는 낫, 도끼, 지렛대, 이북호미, 경기호미, 낙지호미, 굴 까는 조새 등 생활 주변에서 사용되는 각종 도구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앉을 의자 하나 놓을 공간도 없어 서서 얘기를 주고받았다. 인기척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형제에게 뭣부터 물어볼까 찬찬히 생각하다가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인사했다. 형 상준씨가 “천직인데요, 뭘.”이라면서 피식 웃는다. 천직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들린다. 말 그대로 타고난 직업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람을 느끼고 한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는 뜻이겠다. 다음 궁금증이 ‘얼마나 벌까’였다. 이번에는 동생 상남씨가 “신문에 쓸 건 아니겠지요.”라면서 “(한달) 천만원 정도 벌어요.”라고 답한다. 이어 “나는 월급을 받고 형은 사장님이다.”라면서 웃는다. 또 생긴 궁금증, 과연 자녀분들은? 형 상준씨는 “우리는 딸만 둘인데 지금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생 상남씨는 “우리집 아들은 대학에서 세무회계를 전공하고 얼마 전에 대기업에 취직했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일화 하나. 상남씨의 아들이 취직면접 때였다. 면접관이 아버지 직업을 묻자 아들은 “수색에서 형님과 함께 대장장이로 일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면접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사는 집안이구나’라고 느꼈던지 다음 질문을 안 하고 그냥 통과시키더라는 것. 형 상준씨도 한마디 거든다. “우리집 딸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아버지가 대장장이라고 자랑을 해 학교 어린이들이 단체로 대장간 체험을 하러 오기도 했지요.” 잠시 선입견을 가졌던 것이 미안해진다. 그래서 얼른 화제를 바꿨다. 훌륭하게 살아온 대장장이의 내력을 얘기해 달라고 했다. 형 상준씨가 말한다. 서울 모래내(남가좌동)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동네 대장간을 보면서 신기함에 빠졌다. 쓸모없는 쇳덩어리들이 생활 도구, 농기구 등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졌다. “저는 원래 공부에 취미가 영 없었어요. 공부가 싫더라고요.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한테 ‘중학교 진학을 안 하겠다.’고 말씀드렸지요. 어떤 부모도 그런 자식을 좋아할 리 없지요. 아버지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그렇다면 기술을 배우라. 밥은 안 굶을 것이다’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동네 대장간으로 달려가 일을 배우기 시작했지요. 그때 대장장이는 전국적으로 소문난 박용신(4년전 작고) 스승님이었지요. 풀무질부터 차근차근 배웠습니다.” 1966년 당시 대장간에서 받은 첫 봉급은 1000원이었다. 그때 호미 한 자루 가격이 50원. 일당으로 따지면 비록 호미 한 자루 값만도 못했지만 그는 군소리 없이 열심히 일을 했다. 자고 일어나면 쇠망치를 잡는 단순한 일이었으나 천직으로 여기고 열심히 대장장이의 길을 닦았다. 또한 당시 아버지는 편자 박는 일을 했는데 틈틈이 시간나는 대로 아버지한테 그 일을 배우기도 했다. 성격이 워낙 꼼꼼해 물건 하나라도 제대로 만들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그런 점이 스승한테 인정을 받으면서 10년동안 모래내에서 대장장이 기술을 익힌 뒤 1976년 서울 암사동으로 가서 대장간을 차렸다. 그의 정성스러운 솜씨로 젊은 나이에 단골손님들도 많이 생겼다. 6년 뒤인 1982년, 상준씨는 다시 모래내에서 대장간을 차렸고 1997년 수색으로 옮기면서 동생이 함께 하기 시작했다. 이 대목에 이르자 동생 상남씨가 얘기한다. “형님은 일찍 대장장이 일을 시작했고 저는 원래 장사를 했어요. 떡집, 야채장사, 치킨집,옷장사 등 안 해 본 게 거의 없어요. 그러다가 거덜나서 길거리에 나앉을 정도가 됐지요. 친구집에서 전전하기도 했고…. 그런 저를 보고 형님이 대장장이 일을 같이 하자고 그러더라고요. 흔쾌히 받아들였지요. 같이 한 지 15년 됐는데 그 사이에 빚도 갚고 집고 사고 자식들 대학 보내고 다 했습니다.” 그는 또 “형님도 월세 살다가 6년전에 집을 장만했고 외환위기(IMF) 당시 은행에서 빌린 3000만원도 열심히 일해서 다 갚았다.”면서 “대장일을 하다 보니 땀 흘린 만큼 돈도 벌고 보람도 느낀다.”고 말했다. “원래 1년만 해야지 하고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오게 됐다. 이제는 천직으로 여긴다.”고 털어놓았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형제는 주로 농기구를 제작했다. 지금은 공사장이나 건축을 위한 도구를 만든다. 얼마 전에는 북한의 개성공단 건설에 필요한 도구를 2000여개나 주문받아 납품했다. 최근에는 방송국에서 자주 찾아온다. 역사드라마에 사용할 소품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 쇄도한다. 역사속의 병장기는 물론이고 드라마 ‘식객’에서 사용된 ‘서울식 전통 칼’도 제작해 화제가 됐다. 이래저래 형 상준씨는 TV에도 여러번 출연했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쇳덩이로 예쁜 장미꽃을 만들었고 EBS 특집 ‘극한직업’의 주인공으로도 등장했다. 최근에는 금나라 병장기를 재현하고 있다. 칼과 창, 방패 등 금나라 당시의 역사를 연구하는 대학교수의 부탁을 받아 만들고 있다. 이렇게 전국에서 주문 오는 경우가 많다. 한번은 외국인 교수가 소문을 듣고 찾아와 “영국에서 매년 대장장이 국제대회를 여는데 한번 참가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받기도 했다. 문화재청에서는 인간문화재급에 해당하는 명장 신청을 하라는 연락이 왔지만 형 상준씨는 “초등학교밖에 안 나와 글도 잘 모르니 싫다.”면서 뿌리쳤다. 가끔 칼을 잘 만드는 명장도 찾아와 한수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형 상준씨한테 지나온 대장장이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한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스승이 만든 물건을 가지고 와서 수리해 달라고 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희 스승한테 야단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홀로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 애들도 다 잘 커 주고 그러니 걱정이 없어요. 지금 생각해도 직업을 잘 택한 것 같아요.” 그는 똑같는 김장 김치라도 써는 칼의 종류에 따라 맛이 다르듯 정성을 쏟는 만큼 물건의 질이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다. “전통 대장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서울에만 해도 현재 10개 미만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제품도 많이 들어오고…. 특히 대장장이 일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요. 몇년 후면 아마 서울에서 대장간이 사라지고 말걸요.” 형제의 꿈은 무엇일까. 동생 상남씨가 말한다. “그동안 만든 작품들이 많습니다. 고구려 시대의 병장기라든가, 삼국시대의 농기구 등 역사 속의 우리 것을 재현하는 전시관을 만들 생각입니다. 또한 대장간 체험장을 만들어 아이들이 견학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생각입니다. 60대 후반에는 꼭 성사시킬 것입니다.” 형제는 뜨거운 화덕 앞에서 다시 망치를 들고 뜨겁게 달궈진 쇳덩이를 두들긴다. 남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온 45년 세월만큼이나 단단해진 그들의 인생이 아름다워 보인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류상준·상남 형제는 “국내 첫 鍛造 예술전시관 만들겁니다” 형 상준씨는 1954년 서울 모래내(남가좌동)에서 8남매 중 2남으로 태어났다. 1966년 수색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모래내 대장간에서 스승 박용신(4년전 작고)씨한테 대장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10년동안 모래내에서 기술을 익힌 뒤 1977년 서울 암사동으로 옮겨 대장간을 열었다. 지금의 수색역 근처에서 대장간을 차린 것은 1997년. 이때부터 동생과 함께 ‘형제 대장간’을 시작했다. 그의 딸 둘은 중앙대와 추계예술대에서 국악을 전공하고 있다. 동생 상남씨는 1957년 모래내에서 태어나 수색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장사꾼으로 나섰다. 떡집, 치킨집, 옷장사, 야채장사를 하다가 망해 15년 전부터 형과 함께 대장장이 일에 동참했다. 상남씨의 아들은 대학에서 세무회계를 전공하고 현재 KCC그룹에 다니고 있다. 형제의 꿈은 국내 최초 단조예술 전시관을 만드는 것이다.
  • 같은 대학서 父子는 박사모, 딸은 석사모

    같은 대학서 父子는 박사모, 딸은 석사모

    ‘아버지와 아들은 박사학위를, 딸은 석사모를.’ 경남 진주 경상대학교는 14일 경상대학교 대학원 해양식품공학과에 다닌 공청식(59·통영시)씨와 수학과에 다닌 아들 재훈(31·진주시)씨가 오는 25일 열리는 2010학년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공학박사와 이학박사학위를 각각 받는다고 밝혔다. 또 미술교육과 석사과정을 마친 공씨의 딸 수빈(29·통영시)씨는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는다. 공씨는 ‘굴 통조림의 상업적 살균조건 설정 및 죽염 굴 보일드 통조림의 품질 특성’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재훈씨는 ‘유리속력 곡선을 사용한 에르미트 보간의 방법론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학위를 받게 됐다. 1974년 통영수산고등전문학교 수산가공학과를 졸업한 공씨는 굴 수출업체(미국 FDA 등록 공장)에 입사했다. 2000년에는 직접 수출업체를 설립하고 9월 경상대 해양과학대학 수산가공학과 3학년에 편입학해 2004년 석사학위에 이어 올해 박사과정을 마쳤다. 같은 대학 수학과를 2002년 졸업한 재훈씨도 같은 해에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학위 과정에 입학했다. 학부 시절 장학금으로 등록금을 마련하고 아르바이트를 해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재훈씨는 2005년 회사를 청산하며 어려움을 겪었던 아버지의 등록금을 대주기도 했다. 대학교수가 꿈인 재훈씨는 경상대학 과학체험 및 영재교육 조교를 거쳐 현재 수학과 시간강사로 근무하고 있다. 딸 수빈씨는 통영과 진주에서 미술학원 강사를 하다 3월 2일 미술학원을 개원한다. 공씨는 1996년 위암 수술 등으로 현재 몸무게가 38㎏에 불과하다. 진주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한파로 남해안 굴값 ‘高高’

    남해안 굴 가격이 이상 한파 덕(?)에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경남 통영 굴수협에 따르면 남해안 생굴은 6일 현재 시장에서 10㎏당 품질에 따라 8만~1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생굴 가격은 보통 10월 초순 이후 서서히 오르다 수도권 김장철을 전후해 급등한 뒤 이듬해 1월 중순쯤부터 내림세를 타지만, 올해는 좀처럼 가격이 내리지 않고 평소보다 2만~3만원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이에 대해 수협 측은 “예년보다 추위가 오래 이어진 것이 가격 상승에 큰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고 밝혔다. 수협 관계자는 “굴의 경쟁음식인 바지락 등은 바다에서 직접 캐와야 하기 때문에 추위가 심할 때는 많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굴은 미리 따온 뒤 실내 공장에서 까서 공급하기 때문에 추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서 “추운 날씨가 굴의 주가를 높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굴이 ‘대표적인 겨울 보양식’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추위가 심한 이번 겨울 굴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 통영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어산지, 할머니로 분장해 피신…출생 비밀…37개 학교 전학”

    “어산지, 할머니로 분장해 피신…출생 비밀…37개 학교 전학”

    위키리크스 창립자인 줄리언 어산지가 폭로의 ‘주인공’에서 폭로의 ‘대상’으로 전락, 전 세계 유력지들로부터 낱낱이 까발려지기 시작했다. 지난주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빌 켈러 편집장과 기자들이 ‘공개된 비밀: 위키리크스, 전쟁과 미국외교’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위키리크스와의 관계와 어산지에 대한 개인적 평가를 가감없이 밝힌 데 이어 영국 가디언까지 그의 사생활을 폭로(?)하고 나섰다. 가디언 기자인 데이비드 리와 루크 하딩이 31일(현지시간) 펴낸 어산지의 새 전기 ‘위키리크스: 줄리언 어산지의 비밀과의 전쟁 속으로’에 따르면 영국에 살고 있는 어산지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자신을 추적한다고 생각해 할머니로 분장을 하고 다녔다. 그의 백금색 머리칼은 가발에 감춰져 있었지만, 키가 180㎝를 훌쩍 넘는 만큼 여자라고 설득하기엔 어려운 외모였다는 후문이다. 위키리크스의 일원인 제임스 볼은 저자들에게 “그게 얼마나 웃겼는지 상상도 못 할 것”이라면서 “그는 두 시간도 넘게 할머니로 차려 입곤 했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그러면서 “(CIA가 어산지를) 추적한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렇게 공을 들여 미국 정보당국의 감시망을 피했다며 어산지의 과도한 경계심을 조롱하기도 했다. 전기에는 어산지의 평범하지 않은 어린 시절과 복잡한 부모와의 관계도 노출됐다. “그는 27살이 되도록 생부(生父)가 누구인지 몰랐고, 생부인 존 십톤에 대한 기록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책은 밝혔다. 또 그의 어머니 크리스틴이 17살에 가출해 그의 아버지와 사랑에 빠졌으며, 십톤은 1970년 베트남전 반대 시위에 나선 반항적인 기질의 젊은이였다는 설명도 나와 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가 끝나면서 어산지의 삶에 아버지의 역할은 없었다. 어산지가 25살이 되던 해까지 아버지와 아무런 접촉도 없다가 나중에 부자가 만났을 때 어산지는 자신의 논리적이고 냉철한 지성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산지의 친구는 그의 아버지를 가리켜 ‘어산지의 뒤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위키리크스 도메인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등록한 것이다. 학창 시절에 어산지는 37개의 다른 학교를 옮겨 다녀야 했다. 어산지는 훗날 “사람들이 ‘가엾은 것’이라며 끔찍하게 굴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그 시절을 진심으로 즐겼다.”고 회고했다. 1991년쯤 그는 호주에서 가장 성공한 해커였지만, 처음 법정에 선 것은 1994년이었다. 미국의 군사용 기밀 네트워크인 밀넷을 포함, 24건의 해킹 혐의를 받고 있던 그에게 담당 판사는 ‘지적인 호기심이 많아 일으킨 행동’이라며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김일성 생일 만찬 만든 리만카이 요리사의 홍콩 설 음식

    김일성 생일 만찬 만든 리만카이 요리사의 홍콩 설 음식

    “궁혜이파초이! 궁혜이파초이!(恭喜發財·홍콩 광둥어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뜻)” 홍콩의 설은 우리보다 훨씬 시끌벅적하다. 홍콩 거리 어디에서나 ‘궁혜이파초이’를 외치는 사람들과 함께 악귀를 쫓는다는 사자 탈춤을 볼 수 있고 폭죽놀이도 곳곳에서 벌어진다. 한국의 설 음식은 떡국을 대표로 강정, 전 등이 있지만 홍콩을 대표하는 요리인 딤섬(點心)은 종류가 더 다양하다. 설을 앞두고 홍콩의 세계적인 요리사 리만카이가 서울 역삼동 리츠칼튼 호텔을 찾아 딤섬 요리의 진수를 알려주고 갔다. 리는 1988년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의 생일에 초청되어 전세기를 타고 평양으로 가 40일 동안 요리를 한 적이 있다. 그는 21일 “북한 당국이 모든 재료가 신선해야 된다고 요구해 살아 있는 닭과 생선을 가져갔다. 하지만 직항편이 없어 중국 베이징에 들렀다 갔더니 시간이 너무 지나 모두 죽어버렸다.”며 당시 일화를 회고했다. 평양에 머무는 동안에는 자정에도 불려 나가 요리를 했을 정도로 “감옥에 머물며 요리만 하다 풀려난 기분”이라고 기억했다. 리는 한국의 설을 위해 모두 다섯 가지의 딤섬 요리를 소개했다. 가장 대표적인 설 딤섬은 ‘② 화개부귀’(花開富貴)와 ‘③ 복주머니’. ‘화개부귀’는 미니 양배추에 십자로 칼집을 넣은 다음 다진 돼지고기를 그 안에 넣고 다진 홍피망으로 장식해서 찌면 된다. 찐 양배추는 마치 꽃이 피는 것처럼 살짝 벌어져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다. 그는 “돼지고기는 칼로 다져서 손으로 치대면 된다. 믹서나 도깨비 방망이로 갈면 고기가 뻑뻑하고 맛이 떨어진다. 삼겹살 부위를 다져 넣으면 씹는 맛이 더 좋다.”고 설명했다. 고기 양념은 기본인 소금, 후추를 입맛에 따라 하면 되지만 이금기 굴소스나 치킨 파우더를 넣으면 훨씬 홍콩 특유의 딤섬 맛이 살아난다. ‘복주머니’는 부를 상징하는 게, 건강을 뜻하는 생선, 가족을 의미하는 새우를 넣고 계란 흰자 피로 싼 것이다. 속 재료를 넣고 물에 한번 데친 파로 묶어주면 그 모양이 마치 복주머니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계란 흰자 피는 옥수수 전분을 조금 섞어주면 잘 찢어지지 않는다. 흰자에 옥수수 전분을 섞어 약한 불에 숟가락으로 적당량을 동그랗게 프라이팬 위에 두른다. 팬케이크를 만들 때처럼 거품이 살짝 생기면 뒤집지 말고 이쑤시개로 걷어내면 피가 완성된다. 집에서도 쉽게 할 수 있는 딤섬으로는 ‘⑤ 버섯+소고기’가 있다. 말린 표고버섯은 한 번 삶은 뒤 다진 소고기를 얹어서 쪄내기만 하면 된다. 소고기를 다지고 양념하는 법은 돼지고기와 같다. 여기에 고수와 말린 귤 껍질을 넣으면 향이 더해진다. 귤 껍질은 중국에서는 진피라 하여 시장에서 팔지만 가정에서 말렸다가 물에 불려서 써도 된다. 다진 새우와 돼지고기를 넣어서 만든 만두인 ‘① 쇼마이’도 위에 귤 껍질로 장식하면 훨씬 모양이 예쁘다. 그가 소개한 딤섬 가운데 가장 손쉬운 것은 ‘④ 배추잎으로 싼 오리고기’다. 마트에서 파는 훈제 오리고기를 한번 삶은 배추잎으로 싼 다음 살짝 쪄내기만 하면 끝이다. 홍콩관광청의 정세영씨는 “홍콩 음식은 감칠맛이 나고 중독성이 있다.”고 소개했다. 게다가 설에 먹는 음식에는 좋은 일(好事·호우씨)과 발음이 같은 ‘말린 굴’로 만든 수프 등 발음, 모양, 색깔 등에 모두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오는 설에는 재미있는 모양의 만두(딤섬)를 만들며 승진과 부를 기원해 보는 것은 어떨까.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설선물 가이드] 롯데百-울릉도 토종한우 ‘칡소’ 단독입수

    [설선물 가이드] 롯데百-울릉도 토종한우 ‘칡소’ 단독입수

    롯데백화점은 차별화된 설 선물 상품 전략과 마케팅을 내놓았다. 인기 선물세트인 한우, 청과, 굴비 등 우수한 품질의 상품을 확보했다. 한우세트는 구제역이 발생한 강원 횡성과 경북 지역 공급량을 줄이는 대신 전북 김제·장수·정읍 등에서 키운 소로 마련했다. 김제에서 친환경 축산으로 생산된 ‘총체보리 한우’를 준비했다. 울릉도 토종 한우 ‘칡소’도 단독으로 확보했다. 입고 단계부터 한우 DNA 검사를 통과한 한우만을 선물 세트로 제작하기 때문에 품질을 믿고 구매할 수 있다. 굴비와 선어는 20만~30만원대 세트를 중심으로 물량을 10~15% 정도 확대했다. 명품 굴비의 본고장 전남 영광에서 만든 법성포 참굴비를 비롯해 최상품 굴비와 선어, 전복류 등 상품이 다양하다. 굴비세트는 업계 최초로 수산물 이력제를 채택해 시행하고 있어 안심하고 구입해도 된다. 10만원대 후반~20만원대 청과 농산물 선물세트도 있다. 기존 선물 세트에서 찾기 어려웠던 딸기, 멜론 등 상품의 구성을 다양화했다. 잣과 호두 등 건과류 선물세트도 추천할 만하다. 5만~8만원의 저가 와인 세트도 준비했다. 정관장 등 건강 상품도 갖춰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혔다. (02)726-4258.
  • ‘파릇파릇’ 겨울 속 초록 ‘제주’

    ‘파릇파릇’ 겨울 속 초록 ‘제주’

    ‘일시적 빙하기’라지요? 한 달 가까이 혹독한 추위가 이어졌습니다. 동장군이 휘두른 날선 칼날은 도시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벨 기세였습니다. 이 엄혹한 도시에서 ‘따뜻한 남쪽나라’가 떠오른 것은 당연했지요. 인공위성에서 본 대한민국이 온통 흰눈과 얼음으로 덧칠돼 있을 때, 동장군의 서슬을 뚫고 초록으로 빛나는 곳은 제주가 유일했습니다. 제주에서라면, 따스한 바람과 도처에서 만나는 초록만으로도 충분히 위안을 얻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한겨울 속 초록 풍경을 좇아 제주로 ‘철 없는’ 봄마중을 떠났습니다. ●‘쑥대낭’(쑥쑥 자라는 나무) 늘어선 사려니숲길 겨울 숲에는 색다른 매력이 있다. 이파리가 무성할 때는 보이지 않던 숲의 내밀한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수없이 겹쳐진 나무 둥치며, 사이사이 빼곡히 들어찬 흰 눈은 겨울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제주가 자랑하는 숲은 여럿이다. 그 중 겨울 제주 특유의 그림을 만들고 있는 곳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사려니숲길에 한 표를 던지겠다. 사려니숲길은 진초록빛 삼나무와 난대림의 활엽수들이 어우러져 있는 공간이다. 물찻오름 등 오가며 만나는 오름들은 풍경의 덤. 지난해 15만명이 다녀갈 만큼 여행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최근엔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주원(현빈)이 라임(하지원)을 두고 오스카(윤상현)와 자전거 하이킹 내기를 펼친 곳으로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들머리는 제주시 봉개동 절물휴양림 인근 1112번 도로다. 예전엔 대부분 그냥 지나쳤지만, 물찻오름 등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평일에도 수십대의 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사려니숲길은 4개 코스로 나뉜다. 물찻오름 쪽을 기준 삼을 경우, 성판악휴게소로 내려가는 코스(9㎞)와 붉은 오름을 돌아 내려가는 코스(10㎞), 그리고 사려니오름 방향으로 가다 월둔삼거리에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14㎞) 등 세개다. 여기에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쓰레기매립장 옆에서 출발해 삼나무 전시림, 사려니오름 등을 돌아 오는 6.5㎞ 순환코스가 더해진다. 이중 대다수 외지인들이 선택하는 길은 원점회귀 코스다. ‘참꽃나무 숲’ ‘치유와 명상의 숲’ 등 볼거리들이 어어져 있다. 원래 사려니숲길은 1112번 도로에서 물찻오름, 월둔삼거리 등을 거쳐 사려니오름에 이르는 15.5㎞ 구간을 일컫는다. 하지만 월둔삼거리에서 1.5㎞쯤 지난 곳에서 사려니오름으로 가는 길이 끊겼다. 보호지역이어서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되돌아오거나, 붉은 오름을 거쳐 내려와야 한다. 삼나무가 펼쳐내는 올곧은 수직세상과 만나려면 남원읍 한남쓰레기매립장 쪽에서 올라야 한다. 가장 덜 알려진 코스이되, 가장 추천하고 싶은 코스다. 들머리 옆이 쓰레기매립장이어서 첫인상은 꺼림칙하지만, 일단 능선을 밟고 서면 색다른 제주의 풍경과 만날 수 있다. 이 코스의 자랑은 삼나무 전시림이다. 제주 사람들은 삼나무를 쑥쑥 자란다는 뜻에서 ‘쑥대낭’이라 부른다. 널리 알려진 봉개동 숲터널의 수령 30~40년 된 삼나무보다 곱절은 오래된, 나이 80세 이상의 ‘쑥대낭’들이 빼곡하게 차 있다. 총 1850그루. 숲길 가운데 970m의 목재 데크를 깔아 관람 편의를 더했다. 사려니오름(513m) 정상에서 마주하는 제주 풍경도 각별하다. 제주의 4분의1에 해당하는 지역이 한눈에 잡힌다. 들머리에서 삼나무 전시림과 사려니오름을 돌아오는 데 6.5㎞, 3시간 정도면 넉넉하다. 들머리에 차량 20여대를 동시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이 코스는 인터넷 예약제로 운영된다. 입장객은 평일 100명, 주말 200명으로 제한된다. jejuforest.kfri.go.kr, 혹은 ‘제주시험림 탐방예약시스템’을 통해 예약할 수 있다. 매주 월, 화요일은 쉰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산림연구소 (064)732-8222. ●늘푸른 곶자왈 아래 거대한 용암동굴 제주의 이색적인 숲 가운데 하나가 곶자왈이다. 척박한 탓에 농토로 쓰이지 못하고, 가축을 방목해도 효율성이 떨어져 사실상 버려졌던, 불모의 땅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덕에 태곳적 모습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고, 최근엔 ‘제주의 허파’란 상찬 속에 생태적 가치를 재평가받고 있다. 곶자왈은 ‘화산 활동으로 분출된 용암류(熔岩流)가 분포한 지대에 형성된 숲’이다. 쉽게 말해 굳은 용암 위에 형성된 숲이다. 제주의 여러 곶자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 선흘리 곶자왈이다.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동산이라고도 불린다. 곶자왈에 들면 아늑하다. 간간이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을 뿐, 초록빛 일색이다. 현원학 제주생태교육연구소장은 “곶자왈이 포근한 것은 지하에서 더운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이라며 “노루 등 동물들이 동백동산 내 26개에 달하는 동굴(숨골) 주변에서 겨울을 난다.”고 전했다. 곶자왈 안에 수많은 양치식물과 나무들이 푸르름을 자랑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반면 여름엔 표층보다 찬바람이 분다. 곶자왈은 요철 형태의 지형이 반복적으로 이어져 있다. 이곳이 저곳 같고, 저곳이 이곳 같다. 뱀과 오소리 등도 많이 서식한다. 산책로 이외의 지역을 들여다보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란 얘기다. 습지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를 돌아보는 데 2시간 남짓 걸린다. 용암 위가 곶자왈이라면, 아래는 거대한 용암동굴군(群)이다. 선흘리 곶자왈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제주가 세계에 자랑하는 용천동굴이 있다. 2005년 구좌읍 월정리 인근 전신주 교체공사 도중 우연히 발견됐다. 이듬해 천연기념물 제466호로 지정된 데 이어, 2007년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길이는 약 3.6㎞. 제주도 세계자연유산관리본부의 전용문 지질학 박사는 “용천동굴은 20만~30만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용암종유, 용암석순 등 용암에 의해 형성된 생성물은 물론, 동굴진주 등 석회동굴에서만 볼 수 있는 석회 생성물들도 가득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희귀한 동굴”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13일 제주·세계7대자연경관선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선포식 이후 관계 당국의 협조를 얻어 용천동굴 일부를 둘러봤다. 용암이 흐르며 만든 거대한 동굴 속에 각종 생성물들이 빼곡하다. 기이하고 아름다운 세계다. 숨 한 모금 내뱉기도, 발걸음 한발 내딛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겨우 100m쯤 돌아봤는데도 동굴의 존재감은 방문객을 무겁게 압박했다. 아쉽게 용천동굴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다. 겨우 사람 한명 들어갈 정도의 입구만 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자신이 딛고 선 발 아래 수십만년 전의 기이한 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스럽다. ●녹차밭과 눈 덮인 한라산이 어우러진 풍경 초록의 겨울 풍경이라면 차밭도 빼놓을 수 없겠다. 초록빛 녹차밭과 눈 덮인 한라산이 멋들어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 서귀포 도순동의 도순다원이다. 규모로는 오설록녹차박물관을 품은 서광다원이 앞서지만, 서정적인 풍경이라면 도순다원에 한 수 양보해야 한다. 차밭 사이 고샅길에 서서 팔을 뻗으면 한라산 부악이 한 손에 잡힐 듯하다. 멀리 발 아래로는 물비늘 반짝이는 서귀포 앞바다가 두 눈에 가득 찬다. 초록 계단엔 녹차잎들이 줄지어 섰다. 그 고운 자태에 가슴에서 날 선 긴장이 가뭇없이 사라진다. 입 끝엔 잔잔한 미소가 걸린다. 초록이 주는 위안이다. 도순다원은 긴 ‘겨울방학’을 끝내고 새달 14일 다시 문을 연다. 글 사진 제주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4) →가는 길 사려니숲길은 1131번 도로 교래입구삼거리에서 절물휴양림으로 들어가기 전 1112번 비자림로 삼나무 숲길 중간쯤에 있다. 숲에 편의시설은 없다. 물과 도시락 등은 지참해야 한다. 선흘리 곶자왈은 1136번 도로에서 태왕사신기세트장 쪽에 있다. 제주관광공사 740-6000. 도순다원(739-0419)은 16번 국도를 타고 서귀포시 도순동까지 간 뒤, 도순2교에서 한라산 쪽으로 1.5㎞쯤 오르면 나온다. →맛집 서귀포 색달동의 기원뚝배기(738-7722)는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집. 오분자기 뚝배기가 주종목이다. 한림읍사무소 앞 이가네흙도야지가든(796-4705)은 흑돼지 요리 전문집. 모자반으로 만든 향토 몸국도 별미다. →잘 곳 표선면 해비치호텔은 시승차 패키지를 운영하고 있다. 슈페리어 1박과 조식권(2인)에 실내수영장, 헬스클럽 무료 이용 등을 묶었다. 차종은 K5, K7, 제네시스 등이다. 당일 상황에 맞춰 배차된다. 24시간 쓸 수 있어 제법 알차다. 주중 27만원, 주말 33만원. 780-8000.
  • [오늘 美·中 정상회담] 후, 10년 리더수업 절제형 vs 오바마, 킹목사 이후 ‘달변 킹’

    18일(현지시간) 시작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만남은 주요 2개국(G2) 정상 간 회담이라는 의미 못지않게 ‘화법(話法)의 달인’ 간 대결이라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후 주석은 모호하고 비유적인 화술을 구사하면서도 실리 앞에서는 직설화법을 마다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답게 알기 쉽게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득하면서 때로는 단문의 강력한 메시지로 상황을 타개해 나간다. ●후, 모호하고 비유적 화술 미국인은 후 주석의 화법을 경험한 바 있다. 2006년 4월 그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다. 이번의 국빈방문보다는 격이 낮은 공식방문의 형식이었다. 당시 후 주석은 고전과 한시를 구사하며 자신의 의중을 비유적으로 표현해 미국인에게 큰 인상을 심었다. 묵자(墨子)의 구절을 빌려 ‘강자가 약자를 못살게 굴지 않고(强不執弱)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다.(富不侮貧)’며 ‘슈퍼 파워’ 미국의 행태를 준엄하게 꾸짖었다. ‘군자는 쉼 없이 스스로를 다듬는다.(君子以自强不息)’는 역경(易經)의 경구를 들어 중국의 분발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조지 W 부시 대통령 주최 오찬에서는 당나라 시성 두보(杜甫)의 시 망악(望嶽)에 나오는 ‘언젠간 산 정상에 올라 발 아래 뭇 산을 내려다보리라.’라는 구절을 읊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슈퍼파워’로 발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당시 후 주석의 표현들에는 도광양회(韜光養晦·참고 기다림)를 거쳐 대국굴기(大國崛起·우뚝 일어섬)의 시대로 나아가겠다는 중국의 의지가 우회적으로 녹아 있었다.  이 같은 후 주석의 화법은 권좌에 앉기 전까지 10년간의 ‘지도자 수업’을 통해 익힌 절제와 외유내강형 리더십에 따른 것으로, 중국 역대 지도자가 구사한 전통적인 화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바마, 논리적으로 상대 설득  오바마 대통령의 화술은 논리적이고 겸손하다. 2008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빛을 본 그의 화법은 우리나라에도 ‘기적의 스피치’로 널리 소개될 만큼 상대방이나 군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이후 최고의 달변가로 꼽힌다.  그는 대통령 취임 이후 주요 양자 또는 다자회담에서 상대방의 주장을 주의 깊게 들은 뒤 자신의 입장을 조목조목 제시하며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풍부한 내용과 재료를 쉬운 말로 전달하며, 때로는 예의를 다해 간절하게 호소하기도 한다. 장황하지도 않고, 미사여구도 거의 없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강조하고자 하는 대목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상대방이 명확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깔끔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제시한다. 대선 당시 ‘Yes, we can.’이라는 한마디는 ‘오바마 화법’의 절정으로 평가된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서는 ‘단호할 때는 매우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다. 일례로 지난해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6월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중국의 태도를 공개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지난해 9월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는 원자바오 중국 총리에게 위안화 추가 절상 문제를 직설적으로 거론한 바 있다.  워싱턴 김균미·베이징 박홍환특파원 kmkim@seoul.co.kr
  • ‘드림하이’ 수지-수현, 러브라인 본격화?

    ‘드림하이’ 수지-수현, 러브라인 본격화?

    KBS2 월화드라마 ‘드림하이’에서 혜미(배수지)와 삼동(김수현)의 러브라인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18일 오후 9시 55분 방송되는 6부에서는 지난 방송분에서 혜미를 구하기 위해 위에서 떨어지는 화분까지 대신 맞은 ‘혜미앓이’ 삼동의 진심이 혜미에게 전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혜미에게 첫 눈에 반해 서울로 상경해 기린예고 입학까지 감행했던 삼동의 한결같은 사랑은 그간 시청자들의 관심사였다. 반면 혜미는 그런 삼동의 진심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무심하게 굴었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혜미의 심경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또한 수지, 수현 그리고 택연까지 그들의 풋풋한 삼각러브라인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 방송 직후 ‘드림하이’ 홈페이지에는 “삼동이랑 혜미랑 이어졌으면”, “삼동, 혜미 정말 애틋한 사랑” 등이나 “혜미와 진국 사랑하게됐으면 좋겠다.”, “이 나이에 가슴 두근대게 만든 진국 혜미” 등의 각각 자신이 원하는 커플의 연결을 바라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연이어 올라와 ‘드림하이’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한편 ‘드림하이’는 각기 처한 상황이 다른 아이들이 스타 사관학교인 기린예고에 입학해 최고의 스타를 꿈꾸며 열정과 경쟁 그리고 엇갈린 사랑 속에서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사진=KBS2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11세 소년 굴요리서 진주 발견…”2만5000분의 1 횡재”

    11세 소년 굴요리서 진주 발견…”2만5000분의 1 횡재”

    미국의 11세 소년이 굴 요리를 먹다가 자연산 진주를 발견하는 횡재를 해 일약 스타가 됐다. 미국 필라델피아 리고니어에 사는 초등학생 브라이스 호자(11)는 지난주 할머니와 시내에 있는 이탈리아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엄지손톱 정도로 꽤 큰 진주를 찾아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 진주가 실제로 보석으로서의 가치가 있는지 얼마에 거래될 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굴요리에서 진주를 발견할 확률은 2만 5000분의 1로 극히 드물다고 설명했다. ”밥먹다가 진주를 찾은 운좋은 소년”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해진 호자는 최근 TV에도 출연했다. 채널5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소년은 “사실 스파게티를 먹으려고 했는데 점원 누나가 굴요리를 추천해줬다.”, “돌인지 알고 씹다가 이가 부러질 뻔 했다.” 등 솔직하고 유쾌한 답변을 내놔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소년이 횡재를 한 식당의 주인 역시 “굴요리를 수십년 동안 만들었지만 손님이 식사 도중 진주를 발견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운이 좋은 손님 덕분에 레스토랑까지 유명해져서 기분이 좋다.”고 기뻐했다. 소년은 이 진주를 팔지 않을 것이며, 반지로 만들어 할머니에게 선물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채널 4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키스 요구하는 택시기사 혀 깨물은 20대女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봉변을 당할 뻔한 한 여성이 극도의 침착함을 발휘해 위기를 모면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중국 헤이룽장성 위성TV가 10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6일 20대 여성 팅팅은 하얼빈 시내에서 택시를 탔다가 유독 친절한 젊은 택시기사를 만나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목적지로 향했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한 뒤 돈을 지불하고 내리려는 팅팅에게 택시기사는 황당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손을 꽉 잡으며 “당신을 좋아한다.”고 말한 뒤 몸을 더듬는 등 성추행을 하기 시작한 것. 이에 팅팅이 강하게 거부하며 차에서 내리려 하자 기사는 문을 모두 잠그고 못나가게 한 뒤, “내리고 싶다면 입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강요했다. 성폭행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순간에 그녀는 한 가지 방도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그에게 “요구에 따르겠다.”고 이야기 하고 입을 맞춘 뒤 그의 혀를 이로 꽉 물고 도리어 그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차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혀를 잘라버리겠다고 위협하는 그녀를 이기지 못한 기사는 결국 그녀를 풀어주고 달아나버렸다. 팅팅은 “‘급중생지’(急中生智·다급한 가운데 좋은 생각이 떠오르다)로 그를 물리칠 방도가 갑자기 떠올랐다.”면서 “끔찍한 순간이었지만 침착하게 생각한 덕분에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의 택시기사에 대해서는 어떤 정보도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네티즌들은 “호랑이굴에서도 침착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유독 친절한 택시기사를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며 사건에 큰 관심을 보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열린세상] 현빈에 빠지다/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열린세상] 현빈에 빠지다/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토끼를 따라 굴로 들어간 앨리스처럼, 아내는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빠져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 까칠한 도시남자 현빈을 따라 토끼 굴에 들어가 꿈꾸고 있는 거다. 아내와 마찬가지로 나이가 많든 적든 관계없이 ‘현빈앓이’를 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시크릿 가든’이 시작하면, 아내는 나에게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 아들을 재우라고 재촉한다. 혼자 몰입해서 ‘시크릿 가든’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다. 나는 조용히 둘째 아들 녀석을 데리고 안방으로 간다. 차가운 도시 남자를 뜻하는 ‘차도남’과 비슷하게 까칠한 도시 남자인 ‘까도남’이 떠오르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사회에서 섹슈얼리티를 바라보는 시선은 변화되어 왔다. 그동안 바라보는 대상이던 여성이 이제는 바라보는 주체가 된 것이다. 여성은 남성을 바라봄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까도남(혹은 차도남)은 그동안 유행했던 메트로섹슈얼, 위버섹슈얼, 나쁜 남자와 연속성을 지닌다. 한때 메트로섹슈얼은 드라마나 광고에서 인기를 끌었다. 메트로섹슈얼은 도시에 사는 남자이면서 예민한 예술적 감수성을 가지고, 자신의 외모와 스타일에 관심이 많은 남자다.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이나 조인성이 상징이었다. 이후 위버섹슈얼도 등장했다. ‘위버’는 독일어로 ‘초월한’ 혹은 ‘위에’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위버섹슈얼은 자신감, 정열, 지도력 같은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는 남성으로 조지 클루니가 대표적이다. 위버섹슈얼은 자신감으로 가득한 남성적 매력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나쁜 남자 신드롬이 불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나쁜 남자’는 차가우면서 자기주도적인 성격을 지니는데 김남길을 예로 들 수 있다. ‘시크릿 가든’에 등장하는 까도남 현빈은 여성이 매력적으로 느끼는 모든 면모를 지니고 있다. 메트로섹슈얼의 도시적이면서 세련된 외모, 위버섹슈얼에서 보이는 자신감 있는 태도, 나쁜 남자에서 나타나는 자기 주도적이면서 차가운 듯한 성격까지. 현빈은 이제 까도남 혹은 차도남의 아이콘이 되었다. “나, 여자 하나 때문에 내가 가진 것을 잃기엔 너무 많은 것을 가졌거든! 그래서 말인데 한번만 안아 보자.”, “신은 분명 여자다. 그러니까 날 만들었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라는 질환이 있어. 매일매일 동화 속을 보게 되는 신기하고도 슬픈 질환이야. 내가 그 증후군에 걸린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아무것도 아닌 저 여자와 있는 모든 순간이 왜 동화가 되는 걸까?” 그가 툭툭 던지는 대사들은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으면서도 여성의 마음을 파고든다. 더욱이 그는 스무 살 때 엘리베이터 사고로 인해 슬픈 병을 앓고 있는 재벌의 상속남이자 백화점 CEO 아닌가. 우디 앨런 감독이 만든 ‘카이로의 붉은 장미’라는 영화가 있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이 배경이다. 일상에 지친 여주인공 미아 페로는 매일 극장에 가서 영화 주인공을 만나는 환상을 꿈꾼다. 어느 날 영화 속 멋진 남자 주인공이 현실 세계로 나와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은 다시 영화 속으로 들어가고 그녀는 현실 안에 혼자 남는다. 아마도 우디 앨런은 현실도 환상도 결국은 삶의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내에게 필요한 것은 ‘시크릿 가든’의 환상이다. 이제는 아랫배가 나오고, 가끔 반찬투정이나 하고 별것 아닌 일에 짜증내는 남편만 바라보다가 까칠한 도시 남자 현빈을 보니 어찌 ‘카이로의 붉은 장미’에 나오는 미아 페로처럼 환상을 꿈꾸지 않겠는가. 적어도 나는 환상을 꿈꿀 아내의 자유마저 빼앗고 싶지는 않다. ‘시크릿 가든’이 시작되자, 아내는 또다시 둘째 아들을 데리고 침대로 가라고 한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안방으로 가면서 혼잣말로 주절거린다. 이번 주면 ‘시크릿 가든’이 끝난다. 그래서 현빈도 없다. 물론 얼마 지나면 또다시 어느 까도남인지 까도‘놈’인지가 나오겠지만.
  • 민통선 도라전망대 관광 재개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민간인 출입이 통제됐던 경기 북부 민간인 통제구역의 안보 관광이 재개된다. 9일 파주시와 군 당국은 “지난해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전면 통제됐던 경기 북부 민통선 내 안보관광을 10일 전면 허용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두달 넘게 중단됐던 임진각과 도라산역, 도라산전망대, 제3땅굴을 잇는 임진각 안보관광이 다시 시작된다. 또 연천 ‘상승OP’와 ‘1·21 침투로’도 이번 재개 대상에 포함됐다. 임진각 관광은 도라산전망대를 제외한 코스로 단축됐다가 이번에 전체 코스 관람이 가능하게 됐다. 이에 앞서 군은 오두산전망대, 열쇠전망대, 태풍전망대 등을 차례로 허용했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연평도 주민의 새해 맞이

    연평도 주민의 새해 맞이

    <“빨리 돌아가 굴 따야 하는데…” 김포 LH아파트 피란 김영길씨> 연평도 포격 이후 경기 김포에서 피란생활을 하고 있는 김영길(48)씨 가족은 시름 속에 새해를 맞았다. 지난달 19일 인천 찜질방에서 김포 LH아파트로 주거지를 옮겼지만 생활은 달라진 게 없다. “먹고사는 게 제일 큰 걱정이죠. 타지에서 새해를 맞는 게 좋을 일이 뭐가 있겠어요.” 매년 텔레비전으로 챙겨 보던 보신각 타종 행사도 올해는 생략했다. 떡국도 먹지 않았다. 이웃과 함께 떡국을 나눠 먹고, 아이들 손잡고 동네 어르신들 찾아 세배를 했던 지난해를 그리워하며 새해를 맞았다. 피란 생활이 길어질수록 김씨의 주름살도 깊어지고 있다. 연평도에는 언제 돌아갈 수 있는지, 보상은 어떻게 되는 건지 누구도 답변을 해주지 않아 답답할 뿐이다. 김씨는 “연평도 관련 뉴스가 나올까봐 매일 텔레비전 뉴스만 본다.”면서 “미래를 알 수 없으니 막막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김씨의 유일한 희망은 두 자녀다. 찜질방에서 생활할 때 무척 우울해하던 아이들이 김포로 옮긴 뒤부터 차차 안정된 모습을 보여 그나마 위안이 된다. 김씨는 “어른들 눈치 보지 않고 신나게 놀 수 있어서인지 아이들의 표정은 밝아졌다.”면서 “형편이 넉넉지 않아 맛있는 걸 사줄 수 없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김씨는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딱히 하는 일 없이 텔레비전을 보며 지내고 있는 김씨는 “연평도로 언제 돌아갈지 모르니 일자리가 가장 걱정”이라면서 “정부가 일자리를 마련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들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새해를 맞았어도 차분하게 가라앉은 모습들이다. 김씨의 유일한 새해 소망은 연평도로 하루 빨리 돌아가는 것. 네식구의 가장인 김씨는 “유일하게 바라는 건 연평도 집으로 돌아가 두발 쭉 뻗고 잠 한번 자는 것”이라면서 “예전에 하던 굴·조개잡이도 하고, 뭐든 다 할 것이다. 돌아가서 일을 해 돈을 벌어야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다. 소원은 오직 그것뿐이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민영·김소라기자 min@seoul.co.kr <“평화로운 섬 되게 해달라 기도” 섬 잔류 박미경씨> “새해에는 평온한 가운데 떠났던 주민들이 모두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제 아이들도 또래 친구들과 즐겁게 학교 다녔으면 좋겠고요.” 인천 옹진군 연평도 주민 박미경(42·여)씨는 2일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달 넘게 가슴 속에 묻어뒀던 작은 소망을 털어놨다. 그는 새해가 찾아왔지만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열지 않아 아이들에게 맛난 음식조차 장만해 주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전하는 말에서는 여유와 푸근함이 물씬 배어났다. 연평장로교회 목사인 남편과 두 아들 등 단란한 네 가족은 새해 첫날, 이웃 주민들이 가져다 준 굴로 음식을 만들고 떡국을 끓여 먹으며 한마음으로 “연평도가 앞으로 살기 좋은 섬이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박씨는 “지난해에는 북한의 추가 포격이 있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는데 이제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면서 “새 학기에는 둘째 아들의 건강이 좋아져 어린이집에 들어가고, 첫째도 초등학교에 입학해 학교 생활을 잘할 수 있다면 더 큰 바람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몰아친 강추위와 폭설 때문에 지연된 마을 복구공사가 빨리 마무리되도록 정부가 힘을 더 실어달라고 부탁했다. 박씨에 따르면 연평도는 갈수록 굴 따는 주민들이 늘어나는 등 점차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다. 꽃게철은 지났지만 230여명의 주민이 섬으로 돌아오면서 깨진 창문을 갈아끼우고 대문을 고치는 등 복구작업도 한창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웃 분들이 ‘집에 돌아오니 편안하다’ ‘웬만하면 나가지 않고 살겠다’고 하셔서 마음은 편하다.”고 밝은 목소리로 전했다. 그는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연평도를 만들어 달라.”는 바람을 전했다. 박씨는 “국가에서는 서해 5도를 요새화한다고 말하지만 거창한 것보다 주민들이 ‘이제 안심하고 살아도 되겠다’라고 하는 신뢰감부터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현용·최두희기자 dh0226@seoul.co.kr
  • “주식 분할매수라면 지금도 안 늦었다”

    “주식 분할매수라면 지금도 안 늦었다”

    신묘년(辛卯年) 새해가 밝았다. 2011년의 동물인 토끼는 ‘교토삼굴’((狡兎三窟·영리한 토끼는 위기에 대비해 도망칠 굴 3개를 준비한다는 뜻)이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정도로 약삭빠르다. 영리한 토끼처럼 올해 재테크 시장에서 개미들이 발빠르게 움직여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을까. 31일 서울신문이 시중은행 프라이빗뱅커(PB)와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상대로 올해 재테크 시장 흐름을 전망한 결과, 주식과 원자재 시장이 상대적으로 유망한 것으로 평가됐다. 반면 부동산과 정기예금에서는 그다지 높은 이익을 보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전문가들 대부분이 내년 주식시장을 장밋빛으로 평가했다. 이관석 신한은행 WM사업부 재테크팀장은 “코스피지수가 최대 2400까지는 오를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 경기침체·중국 긴축·유럽 재정위기 등 기존 악재가 호전될 것으로 보여 올해보다 안정적인 시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주식시장이 너무 달아올라 투자하기 꺼려진다는 것이 개미 투자자들의 최근 고민이다. 이에 대해 이 팀장은 “올해 상반기 조정장이 있을 수 있지만 무게는 대세 상승에 있으니 분할 매수를 해서라도 투자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구체적인 투자 방법으로 전문가들은 국내 주식형 펀드에 무게를 두고 실물경기회복과 관련된 원자재 펀드 등을 추천했다. 조완제 삼성증권 펀드 애널리스트는 “경기회복 국면에 따라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경향이 높아지겠지만 아무래도 국내 주식형 펀드가 유망자산”이라면서 “랩어카운트는 올해 규모가 더 커질 것이고 글로벌채권·신수종펀드·원자재 관련 상품 등 틈새를 공략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주목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추가 상승 여력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는 원자재 시장도 전문가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화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경기가 회복되면서 신흥국가 사이에서 원유·비철금속 등 수요가 달려 원자재 가격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면서 “2012년부터 공급이 수요 증가를 따라잡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추가 상승 여력을 시사했다. 김정훈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도 “지난해 하반기에 원자재 관련주가 강세를 보였는데 올해 1분기에도 현대중공업·SK에너지 등 원자재 관련 업체들에 대한 기관들의 선호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안정적인 재테크 방법으로 손꼽히는 정기예금과 부동산 시장의 수익성 전망이 그리 밝지 않은 것으로 전망됐다. 정기예금의 경우 올해에도 저금리 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관석 팀장은 “올해 기준금리가 2~3차례 오를 것으로 보이는데 정기예금은 4% 안팎일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금리는 여전히 1%를 넘지 못하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도 최근 회복 국면을 보이고 있다지만 완연한 상승세를 타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소장은 “소득 수준 대비 집값이 높다는 인식이 퍼져 올해 대세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 “오히려 금리나 수급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다시 침체기에 접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김민희·오달란기자 haru@seoul.co.kr
  • [신년사설] 신묘년엔 따뜻한 대한민국을 만들자

    신묘년의 첫 아침을 맞는 마음이 새롭다. 지난해 피원조국에서 원조수여국으로 국격 상승, G20 서울 회의의 성공적 개최 등 많은 성과를 거뒀다. 반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태 등 어려움도 극심했기에 감회가 남다르다. 비록 올해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럴수록 희망을 일구는 자세가 긴요함을 새삼 느낀다. 올해 우리는 지난 세월을 다시 한번 돌아볼 계기를 맞았다. 1962년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50년 전인 1961년쯤 사실상 확정됐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의 여건은 열악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1960년 국내총생산(GDP)은 20억 달러로 1인당 GNI는 고작 79달러였다. 초근목피의 시절은 상전벽해로 달라졌다. 1차 경제개발이 끝난 1966년에는 36억 달러에 125달러로 그해 성장률은 무려 12.2%에 이르렀다. 1980년 -1.5%, 98년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때 -9.8%의 역성장을 기록한 것 외에 줄기차게 성장가도를 달렸다. IMF에서 올해 말 한국의 국내총생산이 꿈의 1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볼 정도가 됐다. 50년 전에 비해 경제규모는 무려 450배, 1인당 소득은 250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그럼에도 우리를 위협하는 요인은 한층 많아지고 있다. 주변국인 중국은 지난해 4조 9847억 달러의 국내총생산(IMF 자료)을 기록했다. 200년 만에 세계 중심으로 위치를 되찾고 있다. 도광양회의 시대를 접고 사실상 팍스 차이나를 선언, 돌돌핍인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100년 전부터 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일본은 경제규모가 2008년 4조 3000억달러(OECD 자료)에 이른다. 중국과 한국을 비교하면 1995년 중국 경제는 한국보다 1.5배가 컸으나 15년 만에 6배로 격차를 벌렸다. 일본은 1968년 독일을 제친 이후 40년가량 세계 2위 경제대국 자리를 지켰으나 중국에 근소한 차로 밀려났다. 지역에서 한 국가세력의 굴기는 필연적으로 불안정성을 초래한다. 한국이 안주해서는 안 될 이유를 경제규모의 변모상이 알려준다. 한국은 과연 새롭게 제기되는 도전에 대처할 준비가 돼 있는가. 걱정스럽다. 경제당국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재정의 상반기 조기집행 방침을 천명했다. 경제 여건이 녹록지 않음을 시사한다. 특히 무상급식 등 이념색채가 짙은 정책이 백화제방해 세대 간, 지역 간, 계층 간 갈등의 수위가 한층 높아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진영 간 대치상태가 더욱 첨예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폭력 등으로 세계적으로 망신을 산 국회이지만 상태가 개선될 조짐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의 폐해 역시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현실이 힘들다고 소 닭보듯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결코 없다. 우리는 저력을 되살리고 불살라야 한다. 위험이 닥칠수록, 어려움에 직면할수록 힘을 내고 에너지를 모아 새로운 국가발전의 장을 열었던 저력을 발휘할 시점이다. 먼저 국민 개개인이 상호 이해에 바탕을 둔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지난해 하반기 박칼린의 조율을 통한 리더십에 쏟아진 관심을 보면 국민들이 원하는 리더십의 형태를 가늠할 수 있다. 1인의 상의하달 방식에서 벗어나 구성원이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며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리더십을 국민은 바란다. 이런 리더십을 바탕으로 서민을 따뜻이 보듬되, 공정한 원칙을 세워 적절하게 경쟁할 때 국가적 에너지가 재충전될 것이다. 특히 복지의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국가의 복지정책은 모든 국민들에게 예산을 골고루 나눠주는 게 능사는 아닐 것이다. 국가 공동체의 건강성을 확보하고 실패와 좌절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는 복지여야 한다. 복지를 무차별로 늘리면 그 짐은 전부 우리들의 자식들이 짊어진다. 나중에 원망 듣는 부모가 되려는가. 그리고 모처럼 전국적 규모의 선거가 없는 올해는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기회가 돼야 한다. 내년 총선·대선 등 선거의 전초전으로 소용돌이가 일지 않도록 각 정치적 주체의 절제가 필요하다. 미구에 닥칠 숱한 도전을 극복하고 새로운 발전의 장을 열기 위해 서울신문은 좀 더 따뜻한 나라, 서로를 아끼는 사회를 신년 화두로 던진다. 지난해 높아진 국제적 위상을 현실적인 국력상승으로 이끌어야 한다. 4강의 틈바구니에서 국가의 생존을 담보하기 위해 국력이 한 단계 신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의 단합이 절실하다. 온기를 나눠 상생과 도약을 이룸으로써 2011년을 후대에 희망을 복원한 한해로 기록되게 하자.
  • ‘일몰 일번지’ 경남 사천 비토섬

    ‘일몰 일번지’ 경남 사천 비토섬

    오래전 남해안 어딘가 ‘별주부전의 고향’이라고 주장하는 섬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귓전으로 기껏해야 섬 몇 곳에 이런저런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이려니 여기며 들었습니다. 경남 사천의 비토섬입니다. 토끼가 나는 형상의 섬이라지요. 1992년에 연륙교가 놓였으니 뭍과 다름없이 된 게 제법 오래지만, 풍경과 습속은 여전히 섬 그대로입니다. 꼭 새해가 토끼해여서 발걸음하시라 권하는 건 아닙니다. 비토섬에 얽힌 이야기도 재밌지만, 자체로도 빼어난 아름다움을 갖고 있습니다. 비토섬 오가는 길에 만나는 풍경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다솔사 들어가는 솔숲길과 야생 차밭, 그리고 비봉내마을 대나무산림욕장에서 늘 푸른 기상과 마주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게다가 사천에서 남해로 이어지는 다섯 개의 다리는 ‘교량 전시장’이라 불릴 만큼 개성 넘치는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지요. 해마다 해넘이, 해맞이 행사가 벌어질 만큼 풍경도 빼어납니다. 이만하면 일출일몰 여행지로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겠습니다. ●사천의 숨은 보석 비토(飛兎)섬에 가기 위해서는 ‘삼천포로 빠져야’ 한다. 한때 삼천포시였으나 1995년 사천군과 통합, 사천시가 됐다. 사천시 끝자락의 비토섬은 조선시대 작자 미상의 한글소설인 ‘별주부전’의 무대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를 두고 충남 태안의 원청리 해변과 ‘원조’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천시 측은 2003년 진주 한국국제대에 비토섬 전설에 대한 용역을 의뢰해 비토섬 일대가 별주부전의 배경과 일치한다고 결론을 내렸고, 2013년까지 이 일대를 관광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사천만을 가로지르는 사천대교를 지나면 곧 서포면이다. 비토섬은 서포면 선전리와 연륙교로 이어져 있다. 비토섬의 관문인 비토교는 아치형의 작은 다리. 하지만 마주하는 풍경만큼은 참으로 크다. 바닷물이 물돌이동처럼 비토섬을 돌아나가고, 썰물 때면 거대한 갯벌이 펼쳐진다. 이 풍요로운 갯벌에서 주민들은 한창 푸른 빛이 오른 감태와 자연산 굴(석화) 등 갯것들을 수확하며 한겨울을 보낸다. 비토교를 건너면 길은 곧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비토섬이 자랑하는 해안도로다. 점점이 떠 있는 섬과 김 양식장, 그리고 고즈넉한 섬마을이 어우러지는 빼어난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비토섬 동쪽 끝에 서면 월등도와 거북섬이 보인다. 썰물 때는 길이 열려, 차로 오갈 수 있다. 그 뒤편에는 토끼섬과 목섬이 있다. 토끼와 자라, 용왕이 등장하는 ‘별주부전’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별주부전이야 삼척동자도 알 내용이다. 간을 구해 오라는 용왕의 명을 받은 별주부(자라)가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려간다. 삶과 죽음이 백척간두에 선 순간, 토끼가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는 기상천외한 묘계를 내 다시 살아 돌아왔다는 얘기. 비토섬의 전설은 그 이후와 연관이 깊다. 내용상으로는 ‘포스트 별주부전’쯤 되겠으나, ‘원작’과 달리 해피 엔딩이 아니다. 자라의 등을 타고 육지로 돌아오던 토끼는 월등도(돌당섬) 부근에 이르러 바다에 비친 섬을 고향으로 착각하고, 급한 마음에 서둘러 뛰어내렸다가 물에 빠져 죽어 토끼섬이 되었다. 토끼를 놓친 자라 또한 용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섬이 되었으니, 토끼섬 옆의 거북섬이다. 남편을 용궁으로 떠나 보낸 아내 토끼는 바다를 바라보며 목이 빠지게 남편을 기다리다 바위 끝에서 떨어져 목섬이 되었다나. 한자 이름 날 비(飛), 토끼 토(兎)자에 담긴 사연이다. 비토섬은 썰물 때 찾아야 한다. 연륙교가 놓인 비토섬은 아무때고 찾을 수 있지만, 이어진 월등도와 토끼섬, 거북섬 등은 썰물 때라야 비로소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월등도에 놓여진 나무데크를 따라 섬 주변을 자박자박 걷는 맛이 제법 각별하다. 해넘이 풍경은 비토섬 어디서 봐도 근사하지만, 굳이 최고의 낙조 감상포인트를 꼽자면 비토교를 지나 선전리 서포사랑골횟집 앞마당이다. 비토섬을 굽돌아가는 바다와 선전리 선착장, 그리고 너른 갯벌이 온통 붉게 물드는 장관과 마주할 수 있다. 서포사랑골횟집 853(4)-3737. ●다향, 솔향 그윽한 절집 다솔사는 야생차로 이름난 절집이다. 비토섬에서 차로 20분쯤 걸린다. 지난 2001년 대양루 큰북에 전설 속의 꽃 우담바라가 피었다고 해서 세인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다솔사 야생차밭은 적멸보궁 뒤편에 있다. 200~300년 묵었다는 차나무들이 곧추 선 편백나무 아래 오종종 모여 있다. 전남 보성의 차밭처럼 나란한 모습은 기대하지 말길. 제멋대로 자란 야생 차나무와 1960년대 다솔사 주지 효당 스님이 새로 심은 차나무들이 얼기설기 이어져 있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다향 그윽한 절집이었던 덕에 내나라 안에서 ‘차 좀 마셔 봤다.’는 사람들이 순례 삼아 다솔사에 들르곤 한다. 절집을 거쳐간 인물들의 면면도 예사롭지 않다. 만해 한용운은 1930년대 이곳에 은거하며 항일비밀결사 ‘만당’을 조직했다. 만해는 효당 스님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가 머문 곳은 ‘안심료’(安心寮)란 요사채. 건물 앞에 세 그루의 측백나무가 서 있는데, 회갑을 맞은 만해가 지인들과 함께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소설가 김동리도 요사채에 머물며 ‘황토기’ ‘역마’ 등의 소설을 썼다. 당시 문학청년이었던 김동리는 1934년 효당 스님이 다솔사 아랫마을에 ‘광명학원’이란 야학을 세우자 야학교사로 부임하며 인연을 맺었다. 이후 만해로부터 중국의 한 살인자가 속죄를 위해 분신 공양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20년 뒤 그 이야기를 대표작 ‘등신불’에 담아 세상에 선물했다. 풍경으로만 보자면 절집 초입의 솔숲길을 가장 앞세울 만하다. 사찰 입구 다솔휴게소에서부터 시작된 솔숲이 절집 앞마당까지 이어져 있다. 높다랗게 자란 소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솔향과 고즈넉한 주변 풍경이 잘 어우러져 있다. ●늘 푸른 세상과 만나다 한겨울 추위에도 대나무숲은 푸르다. 하늘 향해 곧추 선 대숲의 수직 세상에 들면 한 TV 광고에서처럼 휴대전화를 꺼두고 싶은 생각이 불연듯 든다. 다솔사에서 5분 거리인 비봉내마을은 요즘 전국 각지에서 부쩍 늘고 있는 체험마을 중 하나다. ‘대나무 산림욕장’이 주요 테마. 마을 뒤편에 1만여 평에 달하는 대숲이 펼쳐져 있다. 숲 사이로 난 산책길은 1.2㎞에 이른다. 비봉내 대숲의 주종은 맹종죽이다. 다른 수종에 견줘 성장속도가 매우 빠른 편. 1965년에 세 그루를 심었는데, ‘우후죽순’처럼 자라나 벌써 5만여 그루가 됐다. 이밖에도 검은 오죽, 거북이 등껍질처럼 생긴 구갑죽 등 숲이 거의 대나무로만 이뤄졌다. 숲해설가와 함께하는 대나무숲 산책 프로그램이 유독 눈에 띈다. 대숲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거닐며 대나무와 관련된 생태체험을 할 수 있다. 비닐하우스 딸기 수확 체험, 굴 구워먹기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됐다. 체험일정은 당일부터 2박 3일까지 다양하다. 글 사진 사천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남해고속도로 곤양 나들목으로 나와 곤명면(다솔사) 방향으로 1㎞ 가면 왼쪽에 비봉내마을(beebong.co.kr) 체험장 간판이 나온다. 852-7055. 다솔사는 비봉내마을에서 곤명면 방향으로 5분 거리다. 853-0283. 비토섬은 다솔사에서 되짚어 나와 서포면 방향으로 20여분쯤 가면 나온다. ▲둘러볼 곳 곤양면 흥사리 흥곡마을 묵곡천변에 고려 말에 세운 매향비가 있다. 왜구와 관료들의 학정에 시달리던 민초들이 미륵을 기다리며 갯벌에 향나무를 묻고 의식을 치렀던 곳이다. 곤명면 은사리에는 세종대왕과 단종의 태실지가 있다. 태실은 왕가 자손의 태를 봉안한 뒤 표석을 세운 곳이다. 낙조로 유명한 실안해안도로와 남일대 해수욕장의 코끼리바위는 사천의 대표 테마. 사천 대방과 남해 창선을 연결하는 5개 연륙교도 반드시 돌아봐야 한다. 일출, 일몰, 야경 등 어느 하나 빠질 것 없는 풍경을 내어준다. ▲맛집 싸고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려면 삼천포어시장과 선진횟집단지를 찾는 게 좋다. 쥐치로 포를 뜬 ‘쥐포’도 삼천포 특산물. 여러 마리를 붙여 만든 여느 쥐치포와 달리 ‘한 마리 한 장’이 특징이다. 800g 10마리에 1만 7000~2만원. 비토섬은 전국 최대 자연산 굴(石花) 생산지다. 비토초등학교 앞에 비토 갯벌에서 갓잡은 굴을 파는 할머니들이 몰려 있다. 1접시 1만 5000~2만원. ▲잘 곳 삼천포해상관광호텔(832-3004)은 삼천포대교 아래에 있어 ‘실안낙조’를 만끽할 수 있다. 삼천포항 인근 노산공원 쪽의 팔포매립지에 모텔들이 바다를 끼고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4만~5만원.
  • “총 주면 싸우고 싶은 심정 죽어서야 나갈 우리 고향”

    코끝이 찡했다. 포연이 쓸고 간 연평도의 마을에는 매캐하게 번지는 연기 속에 발이 묶인 그날의 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주인 없이 버려진 노부부의 점심상에는 당시의 놀라고 다급한 상황이 마치 그릇에 담긴 반찬들처럼 식은 채 놓여 있었다. 맛국물을 채 붓지 않은 삶은 소면은 고명조차 흐트러지지 않은 채 그릇 안에 살포시 담겨 있었고, 김치 등속 찬들은 그새 말라붙어 있었다. 폭격의 충격으로 창문만 깨지지 않았다면 곧 식사가 시작될 것만 같다. 정진섭(87)·최경희(81)씨 부부의 거실에는 이렇게 시간이 멈춰 있었다. ●버려진 점심상 당시 위급함 증언 지난달 25일 오후 3시 연평도. 포격이 있고 이틀이 지난 뒤였지만 곳곳에 ‘23일의 충격’이 남아 있었다. 북한군의 포격을 맞은 연평도는 주택 수십 채가 불타 황량한 전쟁터였지만 애착과 희망이 교차하는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연평초등학교 안에 있는 어린이집도 마찬가지였다. 종이꽃을 붙여 날짜를 확인하는 달력에는 23일 다음 날부터 빈 칸으로 남아 있었다. 24일, 25일…, 한칸 한칸 시선을 옮기다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생트집이야. 우리 바다에서 우리가 훈련한다는데 왜 남들이 하고, 말고를 결정하겠다는 거야.” 지난 18일 정창권(56)씨는 저녁식사를 하면서 TV를 보다가 분통을 터트렸다. 마침 TV에서는 러시아가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 우리 군의 사격훈련실시 여부를 논의한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정씨는 “주민들도 대피소 들어가면 되니까 훈련하라고 하는데 왜 자기들이 나서냐.”면서 “사격훈련을 해도 북한이 꼼짝 못한다는 게 증명돼야 주민들도 안심하고 돌아올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얼핏 덤덤해 보였다. 그러나 말을 붙여 보면 속이 들끓고 있음을 이내 알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아예 독기를 품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북한군의 포탄이 쏟아져 무간지옥의 혼란과 불안을 겪은 탓일까. ‘전쟁. 할 테면 하자.’는, 어쩌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말들이 거침없이 터져 나왔다. ‘연평도의 진짜배기 주인’으로 살아가는 주민들은 그렇게 불안과 공포를 견뎌내고 있었다. ●“전쟁, 할 테면 하자” 분노의 소리 포격을 당한 지 한달 만인 21일, 모처럼 굴을 캐러 갯가로 나갔던 주민 이기옥(49·여)씨는 “북한이 원하는 게 주민들 다 떠나고 연평도가 빈 섬이 되는 것인데, 우리가 그런 의도에 따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내 가족이 사는 고향을 내가 지키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 총을 준다면 들고 싸우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북한 포격에 납득할 만한 대응조차 못해 국민들을 답답하게 하고, 강대국 눈치 보느라 떳떳하게 주권 행사도 못한 군과 정부의 태도를 이들이 마뜩잖게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우리가 인정을 하든 않든 북한의 의도대로 연평도 및 서해 5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버린 우리 정부의 미적거리는 모습이 안타깝다는 그들이었다. 왜 그렇게 연평도에 연연하느냐고 묻자 그들은 무슨 소리냐는 듯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서 태어나 여기에서 뼈가 굵은 사람은 그런 말 못 한다. 연평도는 죽어서야 나갈 우리 고향이다.” 연평도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연평도사태 한 달] 추곡수매·굴채취… 일상 찾아가는 연평도

    [연평도사태 한 달] 추곡수매·굴채취… 일상 찾아가는 연평도

    21일 오전 9시 연평도 연평로. “텅텅텅텅….” 경운기가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며 도로를 달렸다. 한달간 적막했던 섬을 깨우는 소리다.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 연평도에 피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새마을리 방향에서 경계근무를 서던 해병 두 명이 이강희(57)씨의 경운기를 가로막았지만 간단한 주민 확인절차를 거쳐 통과했다. 이씨는 “짐승들 먹이려고 오랜만에 군부대에 ‘짬밥’을 가지러 간다.”고 말했다. 그 옆으로 한 50대 주민이 지나갔다. 빨간 장화를 신은 이 주민은 하얀색 플라스틱 양동이를 오른손에 들고 새마을리 쪽 개펄로 걸어가고 있었다. 양동이 안에는 굴 까는 도구인 ‘구재’가 들어 있었다. 그는 “지난달 23일 북한군의 포격 이후 처음 굴 채취를 하러 간다. 사격훈련도 끝나고 북한도 아무 짓 못하니 이제 좀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낮 12시 중부리 연평중앙로. 주민 김진영(62)씨가 완전히 탄 채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는 이웃집 앞을 느릿느릿 지났다. 김씨는 “지난주에 섬으로 돌아왔는데 자전거가 없어져서 찾고 있다.”면서 “포격 훈련도 끝나니 자전거 찾을 여유도 생기네.”라며 밝게 웃었다. 오후 2시 30분 연평면사무소 뒤편. 쌀가마가 야적돼 있었다. 추곡수매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염훈권(62)씨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인천에서 건너온 검사원들을 바라봤다. 염씨는 “올해 수확도 70가마 정도 줄었는데 습도도 높아서 등급이 낮게 책정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염씨의 쌀 130가마는 일등급을 받았고 그의 표정도 금세 환해졌다. 우리 군의 사격훈련이 끝나고 전날 밤늦게까지 연평도를 감쌌던 안개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날씨처럼 연평도도 안정을 되찾아 갔다. 주민들은 대피소에서 포성을 들었던 전날의 긴장감을 털어내며 속속 일상으로 돌아갔다. 주민 수도 늘어났다. 이날 연평도에 들어온 주민은 58명, 나간 주민은 12명으로 전체 주민 수는 전날보다 46명 늘어난 146명이다. 이날 오후 2시 연평도로 돌아온 박노옥(73)씨는 “고향에 오니까 좋지. 마음도 편하고.”라면서 “저 놈(북한군)들이 또 못 쏘겠지만 쏘면 내가 죽더라도 고향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안기환(56)씨도 “훈련이 끝나니 후련하다. 훨씬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불안감을 털지 못하고 연평도를 떠나는 주민들도 있었다. 박동익(73)씨는 “여기서 불안해서 어떻게 사나. 살러 나가는 것”이라면서도 “완전히 떠나지는 못하지. 생활 터전이 여기니까.”라고 말했다. 사격훈련이 끝나자 관공서도 바빠졌다. 이날 연평면사무소는 14농가 1470가마에 대한 추곡수매를 했고, 소방방재청과 전국재해구호협회는 지난달 포격으로 파손된 주택을 대신할 임시거주용 주택 24동도 추가로 연평도로 들여왔다. 전날 잠시 쉬었던 깨진 창·창틀 교체작업도 속도를 냈다. 전날 25% 정도 진행률을 보이던 작업이 이날 35%까지 높아졌다. 그동안 군 통제구역이라 제대로 집계하지 못했던 산림피해 조사도 조만간 이뤄진다. 연평면 관계자는 “당초 35만㏊였던 산림피해 구역이 50만㏊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연평도 김양진·최두희기자 ky0295@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