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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인 꼴이 되었다. 육허기는 채우게 되었으나 구월이와 초례청을 차리지 않으면 큰 소동이 벌어질 것이 뻔한데 난데없는 만기가 그 길을 가로막고 있었고, 만기가 멀쩡하게 살아 있는 한 월천댁에게 무릎을 꿇고 빈다 해도 혼인을 쉽사리 허락할 리 없었다. 이튿날 새벽 말래로 발행하는 배고령의 발걸음은 그래서 천근같이 무거웠다. 세상에는 예상에 없었던 변고와 재난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사람의 일도 당장 내일조차 예측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사뭇 뒤통수를 쳤다. 그처럼 울적한 감회로 말미암아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해 오랜만에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말래 접소에 당도했으나 벌써 상대는 다시 행장을 꾸리며 내성 발행을 서둘렀다. 말래에서 해물 저자인 흥부장까지는 보통 걸음으로는 한식경이지만, 소금 짐을 진다면 내왕 행보에 꼬박 하루가 걸렸다. 뒤늦게 당도한 배고령이 상대의 걸음을 뒤따라잡기는 어려웠다. 할 수 없이 접소에서 3, 4일은 양류밥을 먹으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었다. 접소에 남아 있기로 작정한 사람 중에는 정한조도 있었다. 길세만을 찾지 못했다는 말에 정한조는 예상했던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붙잡히면 장문을 당할 게 뻔한데, 임자하고는 막역한 사이라 할지라도 나 여기 있네 하고 쉽사리 낯짝을 내밀 것 같은가.” “허물없이 지낸 지 오래된 사이라 시생이 나서면, 필경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나도 사정은 알고 있었네. 하지만 이번의 일로 내성 저잣거리며 색주가의 속사정을 소상하게 기찰하지 않았나. 나중 가면 그것도 적지 않은 소득이 될 것이야.” “그럼 당분간 도감 어른을 수행해야 하겠군요.” “운수납자로 가장했다는 천봉삼 내외를 다른 숫막에 거처를 정해주고 바라보는 참일세. 근본이 원상이었으니, 나로선 설분만 할 수 없는 형편일세. 게다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일호의 속임도 없이 실토정을 하고 처분만을 기다리는 처지라, 거칠게 대접할 수 없고 그 내자 되는 아낙네는 국량이 깊은 여인네라 언사가 순박하여 본데없이 굴지 않으니, 두고 보았다가 도타할 징조만 보이지 않는다면 백방하려는데 임자 생각은 어떤가?” “도감 어른 어취를 듣자하니 진작에 놓아줄 생각을 가졌네요. 시생도 같은 염의를 갖고 있습니다만, 그냥 놓아주는 것보다, 우리가 놓쳐버린 그 두령이란 놈을 찾으라는 분부를 내려서 놓아주면 어떻겠습니까. 궐놈의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천봉삼 아니겠습니까.” “그럴싸한 생각일세. 천봉삼이란 자가 이태 동안이나 풍상을 겪었으나 적굴놈들을 비롯해서 무뢰배들과 동고동락으로 지냈다면 그 패거리의 속사정에도 밝을 테니 추쇄를 시켜보면 두령의 행방뿐만 아니라, 어쩌면 길세만의 거처까지 밝혀낼지도 모르겠군.” “설마… 길세만이가 적굴 놈들과 결탁을 했을까요.” “그야 모르지,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목숨을 부지하자면 무뢰배들과 어울려 지내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을 고쳐먹을 수도 있지 않겠나.” “내성에서 오동나무골 생달에 정처를 정하고 산다는 상단을 만나 몇 마디 나누었는데, 곧은재 아래에 있는 검은돌 마을에 그곳 붙박이 떨거지들이 진을 치고 있다가 태백이나 영월의 험구들을 넘어온 상단을 등쳐먹는다 합니다. 숫막에 앉아 술과 고기를 실컷 시켜 배를 불리고 수월찮은 식대를 상단에게 떠넘기는 것을 예사로 저지른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세가 불리한 상단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들을 접대하고 있답니다.” “우리 소금 상단은 모르는 일이 아닌가?” “우리 상단에게는 감히 덧들이지 못했겠지요.” “횡행하는 무뢰배들과도 한통속이겠구만.”
  • 토종 한국인, 美 미래 혁신기술 발굴 중심에 서다

    토종 한국인, 美 미래 혁신기술 발굴 중심에 서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집권 2기 정부운영 어젠다를 설명하는 회견이 열린 지난 8일. 회견의 초점은 단연 ‘대통령 혁신 펠로’(PIF)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룸에서 PIF에 선발된 이들을 “국가를 위해 자신의 전문 기술로 봉사하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지난달 선발된 43명의 PIF 2기 전문가 가운데 한국계 미국인이 있어 화제다.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유학길에 오른 이석우(43) 박사는 미국으로 건너간 지 18년 만에 미국 내 유수한 전문가들을 제치고 백악관에 입성했다. 200대1에 가까운 경쟁률을 뚫었다. 그는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에는 보스턴에서 무선 네트워킹 관련 벤처기업을 세웠다. 이 박사는 18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래 혁신산업으로 꼽히는 ‘사이버-물리 시스템’의 체계를 정립하는 역할을 맡았다” 면서 “아직 구체적인 개념 정립조차 안 된 신산업 분야인 만큼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PIF 프로그램은 ‘미국인의 삶을 향상시키고, 세금을 절약하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정부 혁신 방안과 신산업 분야의 기술개발 프로젝트다. 각 분야에서 선발된 민간 전문가들이 정부 부처와 연구소에 파견돼 1년간 정책을 만들고 기술을 개발한다. 이 박사는 “PIF의 컨트롤타워는 백악관이며, 미국 정부는 9개 프로젝트 가운데 사이버-물리 시스템을 미래의 미국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분야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박사는 지난달 선발된 PIF 43명 가운데 유일한 동양인이다. 그는 2011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한국에서 마친 ‘토종 한국인’이다. 2009년 한국계 이민 2세 고홍주·경주 형제가 나란히 미국 국무부 법률고문과 보건부 차관보에 임명된 사례가 있었지만 한국에서 성장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고위 공직자가 된 사례는 고(故) 강영우 전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 이후 처음이다. 이 박사는 차관보급 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버-물리 시스템은 공장의 로봇, 기계들을 따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룹으로 컨트롤해 결과물을 향상시키는 시스템이다. 로봇, 지능형 빌딩, 차세대 의료 장비, 자동차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적용되는 것으로 미국 정부는 이 분야를 성장 잠재력이 큰 미래의 혁신 기술로 보고 있다고 이 박사는 전했다. 이 박사는 “내가 맡은 역할은 이 분야의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라면서 “이 분야에 미국 정부가 나서서 집중 연구하고 투자하는 것은 그만큼 미래 먹거리가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사이버-물리 시스템은 한국 입장에서 볼 때도 자동차와 공장, 조선 등 전통 제조업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일주일에 3~4일 메릴랜드주 게이더스버그에 자리 잡은 미국 표준기술연구소(NIST)로 출근해 연구진과 함께 사이버-물리 시스템의 초기 체계를 정립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한국 정부도 요즘 공공데이터를 오픈하는 것이 화두인 것 같다”면서 “한국 정부도 기업에만 혁신하라고 하거나 돈을 푸는 역할만 할 것이 아니라 산업계의 전문가들과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박사는 글로벌 무대를 꿈꾸는 한국 청년들에게 “진부한 말이지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듯이 일단 나와서 부딪치며 이곳의 생태계를 깨우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이녁이 정말 보고 싶었어요….” “난들 보고 싶지 않았겠나.” “더요… 더 껴안아줘요.” “잔등이 부러지겠네….” 육허기가 명치끝까지 차올랐던 남정네와 천성이 색골로 태어난 편발 처자가 누운 채로 북합(北合)을 벌이며 엎어지고 자빠지는 가죽방아를 거침없이 찧어댔으니, 사내보다는 계집이 벌이는 행방의 도리가 제법이라 할 만하였다. 마침내 절정에 도달한 구월이가 한 손으로는 사내의 댕기 머리를 비틀어 잡아당기며 다른 한 손으로는 잔허리를 부러져라 껴안고 뒹굴었다. 그러면서도 아득하게 중얼거렸다. “조용… 조용하세요.” “알았으니 제발 그만 종알거리게….” 구월이는 뱃구레 저 아래쪽으로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정욕의 덩어리가 목구멍 가득히 치밀어 올라 밖으로 내닫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토하듯 크게 한 번 소리를 질렀다. 몸부림치던 배고령도 어느덧 턱을 궐녀의 젖무덤에 박고 엎드렸다. 목젖까지 차올랐던 육허기를 채우고 나자, 만리행역이 싹 가시는 듯하면서도 뼛골이 녹아난 듯하고 몸뚱이가 나른하였다. 한동안 미동도 없이 누워 있던 구월이가 벗어 두었던 고쟁이를 끌어당겨 몸을 덮으면서 말했다. “얼마 전에 엄니가 도감 어른더러 중신아비가 되어달라고 조르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도 금시초문인걸.” “소금 상단 중에 한 총각을 눈여겨보았다가 초례청을 차릴 작심으로 도감 어른께 청을 넣은 것 같았지요.” “그게 누군데?” “행중에 송만기라는 엄지머리가 있지 않습니까.” “엄니가 만기를 겨냥하여 데릴사위라도 들일 작정이었나?” “나한테도 각오하고 있으라고 으름장을 놓았으니 틀림없지요. 그러니 이녁도 맘 단단히 먹고 계세요. 미천한 계집 일생을 그르칠 일이 없도록 잡도리하세요. 만약 그렇지 못하면 나는 자문하고 말 테요.” “계집편성이라더니… 말이 씨가 된다는 소리 못 들었나? 걸핏하면 자문하겠다는 얘기는 왜 자꾸 하나. 구월이는 내게 과람한 사람일세. 시일을 두고 궁리를 터봐야 할 것이야.” 그때 구월이는 배고령의 얼굴을 할끔하고 나서, “지난해 봄에 날 밖으로 불러내어 곁을 달라고 성가시게 굴 때는 내일 당장 초례를 치르자고 큰소리치더니…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약조를 지키지 못하고 비위짱 좋게 견디고 있네요….” “어허… 아비 무덤 앞에서 염치없이 눈물 쏟는 게 아닐세. 진정하시게. 설마 내가 임자를 배신할까. 그런 일은 없을 게야.” “여의치 못하면 우리 먼 대처로 도망합시다. 살림이 옹색하게 되면 제가 달비 머리를 끊어 팔아서라도 가계를 이어갈 것입니다.” “어디서 많이 주워들은 얘기가 구월이 입에서도 나오네그려. 남녀가 정분나면 도망하자는 소리는 꼭 계집이 먼저 한다더군.” “남정네들이란 이녁처럼 칠칠치 못해서 그렇지요.” “그나저나 구월이 엄니가 만기를 겨냥하여 데릴사위 삼자 하고 옹고집을 부린다면, 그런 낭패가 없겠는걸. 만기는 나이도 나보다 팔팔한 손아래일 뿐 아니라, 사내치고는 계집처럼 미색이어서 나같이 삼촌뻘 되는 사람과 혼인했다는 창피한 소리는 듣지 않을 것 아닌가.” “그러니까 차제에 눈 딱 감고 엄니한테 이실직고해서 죽든 살든 양단간 아퀴를 지으세요.” “양단간에 아퀴를 지으라고 엄포를 놓는 걸 보니, 구월이 엄니 속내가 만기 쪽으로 기울어 요지부동이면 구월이 그리로 혼인할 속셈도 있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질정찮은 소리로 안채우지 마세요. 내가 길거리에 나와 앉은 허튼 계집인가요.” “우리끼리 거두어온 정리가 그토록 돈독한 터에 구월이가 까막과부되었다고 숙덕거릴 때까지 내버려둘까. 조급하게 굴지 말게나.” 구월이는 그 말을 신둥머리지게 되받아치며 성깔을 부렸다. “비위짱도 좋지. 썩은 달걀에서 꼬끼오 소리 나거든? 꽃 피자 해 지고 말았다는 얘기를 예사로 하네…. 그래도 이녁의 말을 믿어야겠지.” “구월이가 내 말을 못 믿으면 이 세상 어디 가서 믿을 사람을 찾겠나….” “언죽번죽 말은 청산유수네….” “야기가 매우 차군, 어서 옷 챙겨 입게나.”
  • [창간 특별기획] 미·중 신대국 시대 한반도 미래를 묻다

    [창간 특별기획] 미·중 신대국 시대 한반도 미래를 묻다

    지구촌의 양대 패권 경쟁국(G2)으로 등장한 미국과 중국은 남북한 관계 등 한반도에 새로운 정치·경제 전략적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제질서 속에 더 이상 이데올로기적 진영은 의미가 없게 된 셈이다. 미·중 신대국 시대의 향후 전망과 양국 사이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바람직한 자세와 역할에 대해 미국과 중국 전문가를 통해 들어본다. ■ 북한부터 에너지 안보까지 광범위한 미·중 협력 냉전 시절 미·소와는 달라 앨런 롬버그 美 스팀슨센터 동아시아 국장 앨런 롬버그 미국 스팀슨센터 동아시아 국장은 15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향후 미국과 중국은 큰 틀에서 협력적 관계를 추구할 것으로 전망했다. 스팀슨센터는 미국의 안보 문제 전문 민간 연구기관이다. →최근 중국이 신형대국 관계를 주창한 의도가 무엇이라고 보나. -중국 자신이 강대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기존 강대국인 미국과의 사이에 빚어지는 긴장과 대결적 구도를 피하려는 것이다. 세계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성장세에 있는 중국이 미국과 갈등을 빚는 것은 중국 입장에서 좋은 일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지금 세계는 아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미국과 중국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두 나라는 협력이 가능한 이슈에 대해서는 힘을 모으고 이해관계가 다른 이슈에 대해서는 차이점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서로에게 중요하다. 북한 문제와 같은 지정학적 이슈와 함께 기후변화, 에너지안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글로벌 이슈에 있어 두 나라가 협력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아주 어려운 시대가 됐다. →현재의 미·중관계를 냉전시기 미·소관계와 비교한다면.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분명 중국이 남중국해 등 아시아 지역에서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걱정한다. 그렇지만 과거 미·소관계만큼 심각한 정도는 아니다. 소련은 전형적인 팽창주의적 제국이었다. 소련은 동유럽 등으로 세력을 넓혔고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그것을 매우 걱정했다. 그래서 미국의 대(對)소련 정책은 기본적으로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고 봉쇄하는 것이었다. 반면 미·중관계는 그보다는 협력적 관계라 볼 수 있다. →지난 2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방미했을 때 미·일 간 새로운 밀월관계를 열어가면서 중국을 소외시키리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초 캘리포니아에서 파격적 정상회담을 갖는 등 예상보다 우호적 관계가 연출되고 있다. -세계 평화와 안정, 발전을 위해 미국과 중국은 협력해야 한다. 미국은 중국, 일본 모두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중·일 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등이 격화되는 것을 미국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북한을 제외하고는 동북아의 모든 나라와 협력하길 원한다. 북한의 경우 비핵화에 대한 진정한 태도 변화가 있기 전까지는 협력이 어렵다. →미·중관계의 걸림돌은. -구체적 이슈로는 사이버 해킹과 경제 이슈 등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하지만 두 나라는 지난달 캘리포니아 정상회담에서 북한 등 많은 이슈에 대해 좋은 협력 모델을 보여줬다. 두 나라는 정치제도와 이해관계가 다르지만 협력을 최대화하고 분쟁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북한에 대한 미·중 간 협력은 잘되고 있는 건가. -현 시점에서는 잘되고 있다고 본다. 최근 중국은 북한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북한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제재에 있어 중국은 미국, 유엔 등과 기꺼이 보조를 맞추고 있다. 전반적으로 중국은 북한발 안보적 위험을 진지하게 인식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행동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미·중의 대북 시각은 같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고 미국이 더욱 가혹한 제재를 가하려 할 경우 미·중이 다시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의 대북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인가. -중국은 북한의 안정을 해치는 위험부담까지는 안으려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중국이 최근 방중한 박근혜 대통령을 환대한 이유는. -한·중 관계는 서로에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은 북핵에 분명히 반대하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 이런 공동보조를 통해 평양에 분명한 메시지를 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박 대통령 환대를 보고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초조해할까. -초조해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목할 것이다. 최룡해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방중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방중하는 등 북한은 지금 베이징에 연달아 유화공세를 펴고 있다. 이 추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한국이 중국 신뢰하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낸다면 중·미 교량 역할 가능 롼쭝쩌 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부소장 “한국이 신형 대국관계 속에서 중국과 미국 두 나라에 모두 영향력을 가지려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롼쭝쩌(阮宗澤) 부소장은 “한국은 미국과도 친하고 중국과도 친하기 때문에 중·미 간 신형 대국관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확대할 수 있다”며 이같이 제안했다. 롼 부소장은 중국런민(人民)대 국제관계학원 박사를 지낸 국내파로 중·미관계, 중국과 한반도 문제 등을 연구하고 있다. →신형 대국관계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지난 2012년 2월 15일 부주석 신분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처음 공식화한 개념이다. 국제사회는 ‘중국 굴기’에 대해 우려의 눈길로 보고 있다. 중국은 이를 감안해 신형대국관계란 개념을 통해 세계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천명한 것이다. →신형 대국관계의 핵심은. -호혜(互惠), 협력, 갈등 통제다. 누군가가 이기면 누군가는 반드시 져야 하는 제로섬 사고방식을 버리고 서로 협력 면을 넓히면서 갈등을 관리하자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중국이 제안한 신형대국관계 개념을 인정했다. →신형 대국관계의 협력이 한반도 문제에도 적용되나. -한반도 문제는 중·미 두 나라의 협력 영역이다. 한반도에서 충돌이 발생하면 미국에도 해롭다. 중·미가 협력해 이 지역의 갈등을 관리하고 이를 통해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평화와 안정을 수호해야 한다. →중국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 개념은 한·미가 말하는 것과 다른가.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는 한·미가 말하는 것보다 범위가 넓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려는 것은 안보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북한에 일방적으로 핵을 포기하라고 요구하기보다 핵개발 포기에 상응하는 안전 보장을 해줘야 한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논의할 때 북핵 폐기는 물론 핵우산 포기까지 모든 문제를 포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반도 핵 위협이란 북핵을 말하는 것인데. -한국은 북핵 개발도 싫고 자신들의 핵우산 포기도 싫어한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동맹과 군사협력을 강화한다. 동맹을 강화할수록 북한의 위협은 커진다. 한국의 방어는 북한에서 볼 때 자신들에 대한 공격이다. 그래서 북한은 핵개발을 강화한다. 이 같은 악순환을 깨뜨려야 한다. →신형 대국관계 속에서 중국이 한국에 기대하는 것은. -한국은 미국과도 친하고 중국과도 친하기 때문에 양국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가져야 한다. 자신만의 목소리가 있어야 중·미 사이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 항상 미국과 같은 목소리를 낸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과 마찬가지로 중국은 한국과 소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중국이 한국을 친구로 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 곤란하다. 우리는 한국이 노력을 통해 신뢰를 구축해야 할 대상으로 중국을 바라보기 바란다. →양국이 어떻게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하나. -중국은 오랜 기간 북한과 관계를 맺어 왔고, 한·미 간 동맹도 그만큼 오래됐다. 중·한 간 특정 사안을 두고 의견 차가 있을 수 있다. 그때마다 ‘역시 중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단정짓는 것은 신뢰 관계 구축에 도움이 안 된다. 양국이 이성적인 대화를 자주 하고 감정적인 부분은 배제하면서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 →중국이 신형대국관계 속에서 한국에 기대를 거는 까닭은. -중국은 경제 발전을 위해선 평화로운 주변 환경을 조성할 필요성이 있고 이를 위해 한국의 협조가 절실하다. →중·북 간 정상회담설이 나오는데. -시기상조다. 최고위급 대화를 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현재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현안이다. 북한이 핵사찰을 허용해야 한다. 한·미가 대화를 추진하기 위해 요구하는 최소한의 비핵화를 북한이 바로 이행해야 한다. →중국에서 김정은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데. -중·북은 중조우호조약을 체결한 국가로 동맹이자 형제 관계다. 우리는 김정은이 경제개혁과 민생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힘써 주기 바랄 뿐이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경제 블로그] 오토바이·가발… 별것 다 파는 캐피털

    [경제 블로그] 오토바이·가발… 별것 다 파는 캐피털

    에어컨, 여행, 주식, 오토바이, 가발, 임플란트…. 각기 다른 상품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캐피털(Capital) 업체에서 파는 할부금융 상품이라는 점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필요한 돈을 빌려 주는 거죠. ‘캐피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자동차 할부입니다. 현대·기아차와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는 현대캐피탈처럼 대부분 업체가 자동차 할부금융 상품을 판매합니다. 그런데 요즘엔 은행, 저축은행, 카드사 할 것 없이 자동차 할부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이 무척 치열하답니다. 그렇다 보니 캐피털 업체들은 자구책으로 새로운 시장을 찾아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파이낸셜은 최근에 가발 할부 상품을 출시했습니다. 인모(人毛)로 만든 가발이 비싼 거 다들 아시죠? 300만~400만원에 이르는 가발을 최장 36개월 할부로 구매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우리파이낸셜은 오토바이, 갤럭시노트 10.1 등 다양한 상품을 대상으로 할부금융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앞서 CJ홈쇼핑과 제휴해 냉장고, 스마트TV, 식기세척기, 에어컨 등 가전제품을 대상으로 무이자 할부 상품을 내놨습니다. 신용카드사 무이자 할부 서비스가 사라진 틈을 노린 거죠. 이런 구성이 인기를 끌자 아주캐피탈, 효성캐피탈 등도 비슷한 상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우리파이낸셜 관계자는 “캐피털 업체들이 내구재 시장에 진출하는 일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굴착기, 크레인 등 고가 건설기계나 의료기기는 상당수 캐피털 업체가 이미 취급하고 있습니다. 직접 구매하지 않고도 이용할 수 있는 ‘리스’(장기간 임대) 상품도 있습니다. 효성캐피탈은 주식 매입 자금을 대출해 주기도 합니다. 코스모캐피탈과 하나캐피탈은 PC방 창업 자금이나 운영자금을 빌려 주고요. 에코캐피탈은 농장 시설자금을, BS캐피탈은 임플란트 비용을 대출해 줍니다. 앞으로는 유학·여행 비용도 캐피털 업체에서 빌려 주는 상품이 나올 거라고 하네요. 그리고 하나. ‘Capital’의 올바른 로마자 한글 표기는 ‘캐피털’이지만 대부분 업체들은 상호를 ‘캐피탈’로 쓰고 있습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현재진행형 비극 (상)민간인 학살 경산코발트광산 르포

    [정전협정 60년] 현재진행형 비극 (상)민간인 학살 경산코발트광산 르포

    장맛비가 퍼붓던 지난 4일, 경북 경산시 평산동의 폐(廢)코발트광산. 일제가 군사용 코발트를 확보하려고 1930년대 채광을 시작해 1942년 폐광된 동굴 입구는 냉동 창고 문이라도 열어 놓은 듯 한기를 쏟아냈다. 안전모를 쓴 채 몸을 잔뜩 웅크리고 들어선 갱도 바닥에는 광산 내부에서 흘러나온 물이 고여 있었다. 조심스럽게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고 침침한 전구 불빛에 언뜻언뜻 드러나는 붉은색의 갱도 옆 벽면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꼭 온도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100여m를 더 들어가자 수직으로 뚫린 또 하나의 굴과 연결됐다. 동행한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 박의원 대표가 말문을 열었다. “수직 동굴 저 위쪽에서 6·25전쟁 당시 군인과 경찰들이 사람들을 줄줄이 묶은 채 총으로 쏴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수직 동굴 높이가 50m 정도인데 시체로 가득 차 더는 못 떨어뜨리게 되니까 나중에는 골짜기 이곳저곳에 시체들을 묻었다고 해요. 동굴에서 기관총 탄피나 수류탄 흔적도 발견됐어요. 산 채로 떨어진 사람들을 확실하게 처리했던 모양이에요.” 1950년 7~8월, 이곳에서 민간인 3500명이 군경에 의해 집단 사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자들은 경산, 청도 등지의 국민보도연맹원 1000여명, 대구형무소 수감자 2500여명 등이다. 앞서 1949년 이승만 정부는 좌익에 전향 기회를 주겠다는 명분으로 보도연맹을 만들었다. 1년 만에 보도연맹원 숫자는 30만명을 웃돌았다. 지역 할당제가 떨어지자 빨치산의 짐을 날라 주고 밥을 해 주고 심부름을 해 줬던 이들까지 보도연맹원으로 엮어 넣은 탓이다. 하지만 전쟁이 터지자 이승만 정부는 보도연맹원이 인민군과 동조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동시다발적으로 집단 학살에 나섰다. 1950년 여름, 남한 전역 수십여 곳에서 벌어진 학살 중 대전 산내 골령골과 더불어 가장 희생자가 많은 곳이 바로 경산이다. 1990년대부터 경산코발트광산 사건 규명에 천착해 온 최승호 경산신문 대표는 “정말 논매고 밭매다 붙들려 간 억울한 분들도 있겠지만 희생자 대부분이 보도연맹원인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살아남으려고 어쩔 수 없이 단순 부역을 했던 분들이다. 전쟁 중이라고 해도 법적 근거 없이 죽임을 당할 죄는 결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1960년 4·19혁명 이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회는 진상 규명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듬해 5·16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유족들은 군사정권의 서슬에 ‘빨갱이’로 몰릴까 봐 숨을 죽였다. 2000년대 들어 유족회와 시민단체 등이 유해 발굴에 나섰지만 정부와 경산시는 뒷짐만 졌다. 2005년 비로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이 제정되면서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발굴에 나서 420여구를 수습했다. 이전까지 유족회가 발굴한 유골이 80여구다. 그동안 이곳에는 골프장과 노인요양병원이 들어섰다. 하지만 수십~수백m 떨어진 폐광과 골짜기에는 여전히 3000여구의 유골이 방치된 상황이다. 2010년 특별법 종료와 함께 발굴은 중단됐고, 그나마 유족들이 발굴한 80여구마저 임시 컨테이너에서 조금씩 부식되고 있다. 2010년 진실화해위 보고서는 ‘5·16 이후 유족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받으며 현재까지 사회적 약자로 살아오고 있으며, 특히 연좌제로 인한 사회적 차별로 정상적인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유가족 300여명은 지난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121억여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국가의 항소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남편을 잃은 10여명의 부인들을 비롯한 유족들은 정전 6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의 비극을 겪고 있다. 나정태 유족회 부회장은 “3000여구의 유골도 수습해야겠지만 시급한 건 컨테이너에 보관된 탓에 빠르게 훼손되고 있는 80여구를 처리하는 문제”라면서 “충북대에 보관 중인 420여구도 내년까진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군 유해 발굴 사업처럼 하기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우리도 똑같은 국민”이라면서 “유골을 모아 합동 화장을 하고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장소와 작은 기념관 정도는 세울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 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경산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아이비, 아시아나 사고 막말 논란

    아이비, 아시아나 사고 막말 논란

    신곡 ‘아이 댄스’(I Dance)로 활동하고 있는 가수 아이비가 아시아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한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와 관련한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아이비는 7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 계정에 “마지막 방송 기념 스태프들의 선물. 아시아나 비행기 사고로 ‘인기가요’ 12분 줄어서 내가 잘릴 확률 99%”라는 글을 올렸다. 이날 SBS가 오전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한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관련 뉴스 특보를 위해 ‘인기가요’ 방송 시간이 줄이자 이런 글을 남긴 것이다. 글을 본 네티즌들은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을 놓고 경솔한 발언을 남겼다고 아이비에게 비난을 쏟아냈다. 결국 아이비는 이 글을 삭제한 뒤 “유가족분들과 안타까운 사건에 마음아파하는 모습 없이 바보처럼 굴었다”면서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무롛고 정말 해서는 안되는 말을 해버렸다”고 사과했다. 이어 “평소 너무 장난스러운 말투를 많이하다보니 (실수를 했다)”면서 “늘 신중히 하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겠다”고 거듭 사과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천 저물녘 민낯의 산정호수… 은밀한 속삭임 구라이협곡

    포천 저물녘 민낯의 산정호수… 은밀한 속삭임 구라이협곡

    경기도 포천이라면 응당 현무암들이 이룬 풍경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겁니다. 북한땅에서 분출된 용암이 흘러내리며 조탁한 풍경들은 강원도 철원을 휘휘 돌아 경기도 연천과 포천 등에까지 이어집니다. 용암이 만든 풍경들만 모아 포천에선 따로 ‘한탄 8경’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제7경이 구라이골입니다. 1㎞ 남짓한 현무암 협곡인데, 접근이 어려워 여태 베일에 가려져 있었지요. 어렵사리 구라이골을 돌아봤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협곡이지만 이채로운 볼거리들이 가득했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곳이라 한결 신비감이 더했지요. 이에 견줘 산정호수는 듣고도 안 본 곳에 속할 겁니다. 고백하자면 ‘쌍팔년도’에 명자깨나 날렸던 낡은 여행지로 여겨 엿볼 생각조차 안 했던 게 사실입니다. 한데 직접 호수를 보고 나니 이런 선입견이 싹 사라졌습니다. 명성산 등의 우람한 암릉들에 둘러싸인 호수의 자태는 실로 눈부셨습니다. 포천의 자랑 ‘영평 8경’이나 ‘한탄 8경’ 중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신세지만, 이만한 자태라면 국내 어느 호수에도 뒤지지 않겠습니다. 글 사진 포천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포천시에서 자랑스레 내세우는 게 있다. 포천 관내를 흐르는 한탄강이 단일 지역 단일 하천으로는 국내 최다의 국가문화재 보유지역이라는 것이다. 국내 유일의 현무암 협곡 하천인 한탄강은 전체 길이가 136㎞에 이른다. 그 가운데 포천 지역을 흐르는 강줄기는 40㎞ 정도다. 그 안에 천연기념물 3곳, 명승 2곳 등 국가문화재가 다섯 곳이나 포함돼 있다. 포천시는 여기에 교동 가마소와 샘소, 구라이골 등의 명소를 더해 ‘한탄 8경’으로 지정했다. 그런데 한탄 8경에 포함돼 있으면서도 ‘문화재 축’에 끼지 못한 명소들에 대한 대접이 영 말이 아니다. 특히 제7경인 구라이골이 그렇다. 편의시설은커녕 이정표 하나 없다. 동네 주민들조차 찾아가기 힘들다며 손사래를 칠 정도다. 지난달 27일에도 관광객 몇 명이 구라이골을 찾았다가 진입로가 없어 주변만 빙빙 돌다 되돌아갔다. 사실 포천의 대표적 관광 아이콘인 비둘기낭<서울신문 2010년 4월 8일자 16면>에 대한 대접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삐까뻔쩍’하게 바뀌긴 했으나, 비둘기낭 취재 당시만 해도 폭포까지 오르내리는 계단이 부실해 꽤 애를 먹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을 때 부랴부랴 편의시설을 갖춰 놓기보다, 먼저 갖춰 놓고 사람을 오라 하는 게 순서 아닐까. 구라이골은 매우 독특한 세계다. 창수면을 흐르는 운산천이 한탄강과 몸을 섞는 끝자락에 형성된 현무암 협곡이다. 찾아가는 과정부터 ‘이색적’이다. 어른 키보다 웃자란 개망초를 무수히 헤치며 가야 한다. 그러다 개골창 같은 냇가 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협곡 초입이 있다. 도무지 협곡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 곳에 기이한 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점에서 비둘기낭과 빼닮았다. 구라이골은 둥근 공동(空洞)의 형태다. 평지 아래로 용암이 흐르며 파놓은 흔적이다. 협곡의 위는 나무들이 울울창창하다. 그러니 평지에서 보면 아래쪽에 협곡이 있다는 걸 눈치채기 어렵다. 인근 주민들은 햇볕 한 줌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과장이 보태지긴 했지만, 푹 파여 볕 보기 힘든 건 사실이다. 실제 6·25전쟁 때는 주민들이 협곡 곳곳에 생성된 굴에서 피란 생활을 하기도 했단다. 협곡에 발을 딛고 서면 탄성부터 터져 나온다. 작은 냇가에서 느닷없이 협곡으로 ‘환골탈태’하니 말이다. 협곡 안엔 딱 두 가지 색만 있다. 현무암 절리들이 내뿜는 섬뜩한 검은빛과 숲의 나무들이 선사하는 싱싱한 푸른빛이다. 둘은 어느 한쪽 치우침 없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공상과학영화를 많이 봐선가. 검은 굴에서 시조새가 뛰쳐 나오고, 1m 넘는 지네가 암벽을 타고 걸어다닐 것만 같다. 이런 풍경이 1㎞ 남짓 이어진다. 주민들은 협곡을 구라이냇가라 부른다. 물길을 따라 자박자박 걷다 보면 수직폭포나 새털 형태의 주상절리, 바위굴 등과 만난다. 협곡 안엔 큰 가마소와 작은 가마소 등 두 개의 폭포가 형성돼 있다. 주상절리를 날개처럼 두른 형태가 영락없는 비둘기낭의 축소판이다. 협곡의 끝자락, 그러니까 한탄강과 인접한 작은 가마소는 다른 루트로 진입해야 볼 수 있다. 역시 진입로가 수풀 속에 감춰져 있어 주민들의 도움 없이는 찾기 힘들다. 물을 담고 있다는 이름에서 보듯 포천(抱川)은 물이 많은 곳이다. 현무암 협곡들을 제외하고도 도시 안팎에 빼어난 호수와 계곡들이 늘어서 있다. 그중 첫손 꼽히는 곳이 산정호수다. 1980년대 아베크족들의 성지였던 곳. 그 탓에 낡은 여행지로 평가절하되기 일쑤지만, 직접 호수를 보고 나면 열에 아홉은 생각이 바뀔 게 틀림없다. 호수는 명성산(923m)과 금학산(947m) 사이에 안겨 있다. 명성산의 책바위 암릉, 망봉산의 기암절벽 등과 어우러진 풍경이 장쾌하다. 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 망봉산 뒤편의 무명고지(380m)다. 호수 바로 앞의 망봉산에서 굽어보는 전망보다 외려 낫다는 이들이 많다. 등산로가 조성돼 있지 않지만, 찾아가기는 어렵지 않다. 산정호수 주차장 초입의 ‘평강식물원’ 이정표 선 곳에서 산 쪽으로 난 길을 따라 400여m 곧장 가면 된다. 산정호수 쪽으로 돌출된 암반지대여서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 호수는 낮보다 이른 아침이나 저물녘에 돌아보는 게 낫다. 새벽녘엔 하얀 물안개가 호수를 감싸고, 저녁 무렵엔 교교한 달빛이 수면 위로 쏟아져 내린다. 호수 주변에 목재 데크가 조성돼 있어 자박자박 걷기 좋다. 명성산 비선폭포와 등룡폭포 등의 경관도 볼 만하다. 등룡폭포까지 1시간 30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다. ■잘 곳 : ‘한화리조트 산정호수 안시’가 최근 리모델링을 끝내고 재개관했다. 프랑스의 휴양도시 ‘안시’에서 이름을 따왔다. 리조트는 총 213개의 객실을 갖췄다. 외형상 가장 도드라진 변화는 워크숍과 MT 등 단체 행사에 적합한 공간을 대폭 늘렸다는 것. 기존의 수영장을 없애고 그 자리를 다양한 부대시설로 채웠다. 특히 다목적홀의 경우 농구와 각종 운동회 등을 개최할 수 있을 정도로 너른 실내 공간을 확보했다. 온천수를 이용한 사우나는 반드시 들르는 게 좋겠다. 시설은 소박하지만 수질은 ‘럭셔리’하다. www.ehanwharesort.co.kr, 534-5500(이하 지역번호 031). ■맛집 : 관인면 냉정리 샘물매운탕은 메기매운탕만 판다.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기 때문에 저녁에는 맛보기 힘들다. 533-6880. 한화리조트 야외바비큐장에서 포천의 명물 이동갈비를 직접 구워 판다. 주말엔 사람이 많아 예약하는 게 좋다. 명성산 산행을 위해 간단한 음식을 준비한다면 산정호수 주차장 끝자락의 뉴욕핫도그(589-3328)를 권한다. ‘요리’ 수준의 맛도 일품이고, 명성산 등 산행 정보를 가게 주인장이 꿰고 있어 귀동냥하기 좋다.
  • 히틀러 음식 검시관 “英 독살시도 알고 시식가 고용”

    히틀러 음식 검시관 “英 독살시도 알고 시식가 고용”

    세계 제2차대전 중 독일인 마르곳 뵐크(96)는 몇 년이나 고급 식사를 즐겼지만 항상 죽음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나치 독일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가 먹을 음식에 독극물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고용된 시식담당자였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2일 뵐크와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다. 뵐크는 히틀러가 1945년 자살하기까지 2년 반 동안 매일 오전 11시에서 정오 사이에 음식을 먹어야 했다. 별 탈이 없으면 음식은 당시 ‘늑대굴’로 불리던 폴란드 북부의 야전지휘본부로 보내졌다. “히틀러는 채식주의자였다. 음식은 흰 아스파라거스와 최상품 과일, 꽃양배추 같은 훌륭한 것들이었다”고 뵐크는 회고했다. 다른 여성 14명과 함께 일했던 뵐크는 “시식담당이 따로 있었던 이유는 히틀러가 첩보를 통해 영국의 독살 시도를 알았기 때문”이라면서 “매끼 시식했던 우리는 서로 껴안고 울었고 ‘내일 살아있을까’ 하는 말을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뵐크는 목숨을 걸고 히틀러를 위해 일했지만 그를 직접 만난 적은 없고 애견을 보는 데 그쳤다고 전했다. 뵐크는 히틀러를 암살하려던 일부 군 간부들이 늑대굴에 설치한 폭탄이 터진 1944년 7월 20일도 기억한다. 당시 뵐크는 군인들과 함께 근처 막사에서 영화를 보던 중이었다. “갑자기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나고 우리는 나무 벤치에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누군가 ‘히틀러가 죽었다’고 소리쳤지만 알고보니 그는 손을 조금 다쳤을 뿐이었다”고 뵐크는 전했다. 이 사건 이후 뵐크는 감시를 받는 숙소로 옮겨져 죄수 같은 생활을 해야했다. 뵐크는 히틀러 자살 후 베를린으로 도주해 은신했다. 소련군은 베를린을 포위하고 조여왔으며 방공호에서 공습을 피하던 뵐크는 소련군에게 붙들려 2주 동안 성폭행을 당했다. 뵐크와 함께 일하던 다른 14명의 시식자들은 야전지휘본부에에 남아 있다 모두 처형됐다. 전쟁이 끝나고 연금보험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뵐크는 소련군에게 붙잡혀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도 만났다. 뵐크는 전쟁 전 살았던 집에 되돌아와 여생을 보내고 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화난 고릴라, 아이들에게 “조용히 해!”

    화난 고릴라, 아이들에게 “조용히 해!”

    동물원에서 시끄럽게 구는 아이들에게 고릴라가 ‘경고’를 날렸다. 영국 일간지 메트로는 26일(현지시간) 한 동물원에서 고릴라가 시끄러운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듯 유리벽을 쾅 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튜브에서 약 5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한 이 영상은 미국 텍사스주(州)의 달라스 동물원에서 촬영됐다.   동물원에 구경 온 아이들은 보호유리로 된 우리 안에 있는 고릴라를 보며 소리를 지르고 가슴을 두드리는 등 시끄럽게 굴었다. 고릴라는 짜증이 나는 듯 한참 아이들을 바라보더니 자신에게 손가락질하는 아이를 향해 두 팔을 들어 올려 갑자기 유리창을 쾅 내리쳤다. 이 동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고릴라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한 것 같다”, “아이들이 너무 시끄러웠다”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유튜브 정선미 인턴기자 j2629@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정한조는 대답이 없었고, 일행 두 사람은 말도 없이 메줏덩이만 한 주먹으로 윤기호를 태질해서 흙바닥에 주질러 앉히었다. 다짜고짜 윤기호부터 잡아 엎치는 일은 모험이었다. 그들이 가졌던 속내대로 자복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십이령 소금 상단의 장래는 장담할 수 없었다. 단골 거래처를 잃으면 상단으로서는 치명적인 손실을 입게 될 것이었다. 척후로 풀었던 일행을 만나 보기도 전에 일을 벌이게 된 것에는 그들이 처음 약조했던 날짜를 어기고 게으름을 피웠기 때문에 믿을 수 없고, 그와 함께 오늘 밤 윤기호를 다스리지 못하면 실기해서 오히려 저들에게 상단을 덮칠 기회만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말래를 발행하여 내성까지 당도할 동안 많은 내왕길에 만난 길손들이 상단이 이동하는 경로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들 길손들 중에는 필경 적굴과 내통하는 위인도 있었을 것이다. 정한조는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 윤기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패랭이에 꽂아둔 곰방대를 뽑아 살담배를 힘주어 꾹꾹 다져넣고 부싯깃에 불을 댕겼다.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 밤빛은 음산하고 축축했다. “비가 오려나….” 일행 중에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색주가 술청거리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은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명료하게 들려왔다. 정한조가 담배만 피울 뿐, 오랫동안 굽도 떼지 않을 뿐 아니라 말문조차 열지 않자, 조바심이 난 윤기호가 얼굴을 되들고 야무진 말소리로 물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내가 누군 줄 알고 야심한 터에 자는 사람을 끌고 와서 찍자를 부리시오. 행수와 시생은 십 년 지기로 쌓아온 정리가 돈독하지 않았소. 시생이 그동안 행수를 상종함에 사리에 그름이라도 있었소?” 제법 뇌까리는 윤기호의 말은 들은 척도 않던 정한조가, “죄는 청승개비가 짓고 벼락은 고목나무가 맞는다는 얘기군… 제 분수에 넘치는 짓을 대중없이 저지르면 나중 가서 이런 앙화를 입게 마련이오.” 밸이 뒤틀린 윤기호가 곡경 치르게 된 것은 예상 못 하고 시종 깐깐하게 굴었다. “앙화를 입어? 내가 얼뜨기인 줄 아시오? 그런 억탁으로 생사람 잡지 마시오.” “빼죽거리지 말고 직토하시지 그러시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하였소. 내게 무슨 허물이 있다고 가당찮은 엄포를 놓으시오.” “근자에 우리 행중 사람을 풀어 포주인의 동정을 소상하게 염탐시켜 보았소. 그랬던 것은 포주인 명색이 우리 상단과 거래할 적에는 입에 넣은 것도 꺼내줄 것처럼 막역하게 상종하지 않았소. 그런가 하면 등 뒤로는 적굴 놈들과 은밀히 내통하면서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 우리 상단의 동정을 낱낱이 밀고하여 저들이 상인해물(傷人害物)하는 데 구애가 없도록 도왔소. 비보라에 부대끼며 보잘것없는 이문이나 바라는 상단을 덮쳐 봇짐을 탈취하고 심지어 우리 상단 사람을 멸구까지 시키도록 거들지 않았소. 지금까지도 우리 행중이 광대나 풍각쟁이나 약초꾼으로 가장하고 화적의 소굴을 염탐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소?” “수하 행중을 풀어서 시생의 동정을 염탐했다면… 장시에 원진을 친 무뢰배들이 도가를 무상출입하면서 행하를 뜯어가거나 그것도 성에 차지 않으면 박을 깨트려 저승 구경을 시키겠다고 행패를 부린다는 것도 아시겠구려. 굳이 세작을 놓지 않더라도 행수께서 몸소 목도한 일까지 있지 않습니까. 그들의 행패가 어디 어제오늘의 일이었습니까. 콩죽은 내가 먹는데 배는 행수가 앓는 꼴이외다.”
  • 여성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20가지’

    ‘여성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20가지’가 해외 언론을 통해 공개돼 화제다. 1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여성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여성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친구나 파트너로부터 칭찬을 들었을 때”로 나타났다. 그다음으로 “완벽하게 스타일링됐거나 새로운 머리 모양, 머리 색을 얻었을 때”, “사진에 (자신의 모습이) 아름답게 비치고 있을 때”가 근소한 차이로 뒤를 이었다. 이와 달리 여성은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을 때 가장 무력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여성 38%는 누군가 자신을 실제 나이보다 5살이나 10살 연상으로 봤을 때 기분이 나빴다고 밝혔다. 참고로 이번 설문에서 여성은 자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 평생 1만3000파운드(약 2332만원) 이상의 미용 제품을 구매하는 것으로도 밝혀졌다. 다음은 여성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20가지 순간이다.  1위. 친구나 파트너(배우자 혹은 남자친구)로부터 칭찬  2위. 완벽하게 스타일링됐거나 새로운 머리 모양, 머리 색  3위. 사진에 (자신의 모습이) 아름답게 비치고 있을 때  4위. 실크처럼 매끈한 다리  5위. 밤에 깨지 않고 푹 잤을 때  6위. (자녀, 파트너, 가족, 친구 등과) 포옹  7위. “사랑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  8위.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휴가에서 돌아왔을 때  9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의 미소  10위. 새로운 속옷  11위. 어려 보인다는 말을 들었을 때  12위. 자기 소지품을 어디서 샀느냐?고 누가 물었을 때  13위. 옷을 완벽하게 입었을 때  14위. 아이에게 “예뻐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15위. 피부트러블 없이 잠에서 깼을 때  16위. 자신 있는 신체 부위가 강조된 옷을 입었을 때  17위. 눈썹 케어를 받았을 때  18위. 데이트 신청을 받았을 때  19위. 새로운 매니큐어  20위. 완벽하게 화장한 자신의 얼굴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공공디자인, 길 위의 미술관서 배워요

    “길이 아니라 갤러리 같아요.” “어둡고 칙칙한 지하보도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졌어요.” 서울 중랑구 상봉동 지하보도인 ‘토끼굴’을 찾은 아이들이 이렇게 입을 모았다. 원래 이 굴은 어둡고 무서운 곳이었다. 중랑구는 이 굴을 2009년 공공디자인 개선 대상으로 지정해 나비 모빌을 달고 화사하게 꾸몄다. 덕분에 이 길은 출퇴근과 등하교에 요긴하게 쓰인다. 사람을 불러모아 공간의 이미지를 바꾸는 공공디자인의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중랑구는 17일 초중고교생을 상대로 공공디자인에 대한 견학 프로그램이 호응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견학 프로그램은 담장 벽화, 지하보도, 망우시계, 소통의 문 같은 공공디자인 설치 현장과 불법 간판을 재정비한 망우로 디자인서울 거리, 간판을 정비 중인 망우동 맛솜씨길 같은 곳을 찾는 것이다. 현장 견학을 통해 공공디자인이 어떻게 도시의 미관을 바꾸고, 한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교육의 장이다. 지역 초중고교생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곽개천의 분부가 떨어지기 바쁘게 쌓아두었던 삭정이에 불을 댕겼다. 마른 솔가지에서 연기가 피어올라 산기슭을 타고 올랐다. 불을 피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녕 계곡길 위쪽으로 단단한 면목을 가진 장정 여섯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보기에는 계곡 위에 있는 묵정논을 갈아엎기 위해 나타난 농투성이 두 사람이 곁불을 쬐기 위해 화톳불을 피운 것처럼 보였다. 화톳불 가까이 다가가자 비위를 자극하는 냄새에 여섯 사람은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런 첩첩산중에서는 전혀 예견할 수 없었던 육고기 굽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대처의 술청거리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광경을 산양 같은 짐승들도 가까스로 발을 붙이고 다니는 이런 조도에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그릴 수 없던 일이었다. 게다가 육고기를 굽고 있는 작자들의 행색이 겨우 삭숭이나 가린 남루한 농투성이들인지라, 자리를 비켜 달라고 다투지 않아도 되었다. 여섯 장정은 벌써부터 게걸이 들려 목젖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불을 피우던 세 사람은 익은 꽈리처럼 새빨간 얼굴로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낸 산적들을 아무런 적의가 없는 시선으로 빤히 쳐다보기만 하였다. 산적 여섯은 화톳불 앞에 당도하자마자 고기 굽던 세 사람의 옆구리를 흙 묻은 신발로 툭 차서 밀쳐내고 화톳불가로 둘러앉으며 비꼬았다. “이놈들, 인적이라곤 눈 씻고 봐도 없는 이런 막다른 무인지경에 무슨 배짱으로 푸줏간을 열었겠다? 이곳에 호환이 잦다는 걸 모르느냐?” 다가온 떨거지들은 일견해서 입성들은 꾀죄죄했으나 지난밤에 잠을 설쳤는지 부리부리한 두 눈초리들이 마뜩잖았다. 그들의 번들거리는 면목과 마주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나 마음을 다잡아 먹고 내색하지 않았다. 행중의 동무 한 사람이 우물쭈물하다가 반몸만 뒤틀고 볼멘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옆에 내려놓은 구럭*을 보면 눈치챘겠지만…, 우리는 풀뿌리나 캐 먹으며 연명하는 약초꾼들이오. 다행히 호환은 겪지 않았소만 댁들은 뉘신데…, 일삼아 구워놓은 남의 밥그릇부터 탐하시오. 찬물에도 순서가 있다 하지 않았소.” 아니나 다를까, 그중 한 놈이 괴춤 속을 뒤져 날이 시퍼런 예도 하나를 냉큼 꺼내 뉘시냐고 물었던 행중의 턱밑에 바싹 들이대고 이죽거렸다. “이놈 봐라. 좆도 모르는 놈이 탱자 보고 부랄 타령한다더니…야, 이놈아. 찬물에 아래위가 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 뜨거운 물에도 순서가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네놈이 뭔데 방정맞게 나불거리느냐.” “댁들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한시름 되더니 잘 만났소. 그렇다 하더라도 남의 좌석에 다짜고짜 비집고 들어앉아 이토록 반죽 좋게 굴면 되겠소?” 산적들은 행중의 말이 언중유골인 것은 눈치채지 못하고 대뜸 육두문자부터 들이댔다. “이 육포를 뜰 놈이 주둥이가 온전하다고 말 탄 년의 씹처럼 너부적너부적 제법 악지를 부리고 있네. 이놈아, 우리가 산채 사람이란 걸 몰라서 아득바득 파고드느냐? 이놈 조짐머리 보아하니 옆구리에 칼침이 들어가야 헤픈 주둥이를 닥치겠군.” *구럭: 망태기
  • “욕조에 알몸…” 서울시 간부 50대 민원인 성희롱 의혹

    “욕조에 알몸…” 서울시 간부 50대 민원인 성희롱 의혹

    서울시는 13일 보상 관련 민원을 제기한 50대 주부 B씨를 성희롱하고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장급 공무원 A씨에 대해 대기발령 조치를 내리고 감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B씨는 지난해 성북천 복원 사업으로 헐리게 된 상가의 대체를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하다 A씨와 알게 됐다. B씨는 A씨로부터 ‘물 받아놓은 욕조에 알몸으로 있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받았고, 직원 회식에 억지로 끌려가 불쾌한 신체 접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A씨가 지난해 유럽 출장에 나설 때 출장비 명목으로 1000유로(150만원)를 줬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A씨가 민원을 해결해 줄 것처럼 굴어서 어쩔 수 없이 당했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이에 대해 A씨는 적극 반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B씨가 공공사업에 대한 민원을 오랫동안 제기해 온 사람으로 2011년부터 알고 지내 온 사이인 것은 맞지만 사업과 민원의 성격이 뻔한 상황에서 성희롱이나 성추행, 돈 거래 따위는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서울시 감사관실 관계자는 “성추행은 친고죄인데 고소하겠느냐고 했을 때 B씨가 거부했으니 남은 것은 성희롱과 금품 수수 문제”라면서 “성희롱에 해당하는 문자메시지와 출장비에 해당하는 금품 수수 부분은 워낙 양쪽의 진술이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상황인 데다 제 식구 감싸기 논란으로 번질 우려마저 따라 경찰에 수사 의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it 트렌드&브랜드] 탄산수 제조기 ‘소다스트림’

    [it 트렌드&브랜드] 탄산수 제조기 ‘소다스트림’

    요즘 탄산이 대세다. 콜라나 사이다 등 달짝지근한 탄산음료 얘기가 아니다. 언젠가부터 물맛에도 까다롭게 굴며 고급 생수를 찾던 국내 소비자들이 이제 탄산수의 톡 쏘는 맛에 빠져들고 있다. 덕분에 국내 탄산수 시장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시장 규모는 2011년 100억원에서 지난해 약 130억원대로 성장했다. 걸음마 단계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건 ‘페리에’ 등 수입산 탄산수. 국내업체들도 경쟁제품을 내놓고 숨가쁘게 따라 붙고 있지만 아직 역부족이다. 이런 가운데 페리에를 위협할 만한 상대가 나타났다. 바로 이스라엘에서 건너온 탄산수 제조기 ‘소다스트림’. 전기도 배터리도 쓰지 않는데 버튼 하나만 누르면 5초 안에 생수를 탄산수로 탈바꿈시키는 신통방통한 기계다. 주부들의 눈도장을 받으며 홈쇼핑 인기상품으로 등극 중인 소다스트림이 국내에 소개된 건 2003년. 단맛도 없는데 탄산만 가득한 물맛에 질색하던 게 엊그제인데 이 기계가 10년 전 한국땅을 밟았다는 것이 놀랍다. 소다스트림을 독점 수입·유통하는 황의경 밀텍산업 대표는 “내내 적자를 보다가 사업 시작 8년 만인 2012년에 84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첫 흑자를 봤다”고 말했다. 독일 주방용품 ‘휘슬러’ 한국 법인을 운영하며 아이디어 번뜩이는 생활용품에 ‘눈을 밝혀온’ 황 대표는 당시 함께 일하던 독일 사업가를 통해 처음 이 제품을 알게 됐다. 이스라엘 본사에서조차도 그를 말릴 정도였다는데 무슨 생각으로 사업을 결정했을까. “때마침 독일에서 쓰레기 분기수거, 종량제 도입 등 환경정책이 강화되면서 소다스트림이 인기를 얻고 있었습니다. 한국에도 언젠가 그런 상황이 오지 않겠나 싶어 한참 망설이던 끝에 마음을 먹었죠” 황 대표는 “얼마 전 기록을 살펴보니 지난 10년간 고객 시음용으로 사용한 컵이 500만컵이었다”며 “그동안 뿌린 씨가 열매를 맺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트렌드 변화도 한몫했다. 그는 “해외여행 등이 빈번해지고 고급 커피전문점 증가 등으로 탄산수를 접할 기회가 잦아지면서 국내 소비자의 입맛도 바뀌었다”고 말했다. 소다스트림의 인기 요인은 초기 투자 비용(모델별 10만~30만원대)만 들이면 훨씬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으로 탄산수를 만들어 먹을 수 있어서다. 2만원대 탄산가스 실린더 하나로 최대 80ℓ의 탄산수를 제조할 수 있다. 할인점에서 병당 1500원 이상 판매하는 탄산수(330㎖ 기준)를 250병 가까이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전국 백화점에 22개 매장을 운영 중인데 2009년 본점 입점을 시작으로 롯데백화점 13곳에 점포를 냈다. 올해 매출 목표를 전년 대비 5배 늘어난 400억원대로 잡았을 정도로 소다스트림은 ‘날개’를 달았다. 탄산 강도를 조절해 취향에 맞게 즐길 수 있는 신제품 ‘소스’(source)가 올해의 ‘신무기’다. 여기에 더해 하반기 다양한 시럽이 들어있는 소다캡도 출시한다. 캡슐에 든 시럽을 탄산수에 섞기만 하면 시중에서 파는 탄산음료가 남부럽지 않다. 음료업체들은 긴장하겠지만 주부들은 더욱 반색할 듯하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동영상] 멸종위기 ‘긴다리 소똥구리’ 20여년 만에 발견

    [동영상] 멸종위기 ‘긴다리 소똥구리’ 20여년 만에 발견

    1970년대 이후 소 사육 방법이 달라지면서 자취를 감췄던 ‘긴다리소똥구리(사진)’가 강원도 영월에서 20여년 만에 발견됐다. 국립생물자원관은 1990년 강원도 철원과 양구에서 발견된 이후 최근까지 분포가 확인되지 않았던 긴다리소똥구리 2마리가 강원도 영월에서 서식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소똥구리는 동물의 배설물을 이용해 경단을 만드는 곤충으로 ‘파브르 곤충기’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긴다리소똥구리류는 우리나라에서 ‘말똥구리’, ‘꼬마쇠똥구리’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분포한 기록은 있지만 1990년 강원도 철원과 양구에서 확인된 이후 최근까지 구체적인 분포 내역이 확인되지 않았다. 긴다리소똥구리는 뒷다리 발목 마디가 매우 가늘고 길며 어른벌레의 몸은 둥근 알 모양에 광택이 없는 검은색이다. 5월쯤 동물의 사체나 배설물을 이용해 약 12㎜ 크기의 경단을 만들고 경단 한 개에 하나의 알을 낳는다. 대부분의 곤충은 번식을 위한 생식활동에만 수컷의 역할이 한정돼 있지만 긴다리소똥구리는 부부가 공동으로 경단을 굴려서 옮기며 땅에 굴을 파 경단을 저장하는 습성을 가졌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앞으로 우리나라 생물종의 서식 증거로 이용하는 ‘확증표본 확보사업’ 등을 통해 그간 확인되지 않았던 종들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국내 기록종의 증거용 표본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세종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
  • [동영상] 멸종위기 ‘긴다리 소똥구리’ 20여년 만에 서식 확인

    [동영상] 멸종위기 ‘긴다리 소똥구리’ 20여년 만에 서식 확인

    1970년대 이후 소 사육 방법이 달라지면서 자취를 감췄던 ‘긴다리소똥구리(사진)’가 강원도 영월에서 20여년 만에 발견됐다. 국립생물자원관은 1990년 강원도 철원과 양구에서 발견된 이후 최근까지 분포가 확인되지 않았던 긴다리소똥구리 2마리가 강원도 영월에서 서식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소똥구리는 동물의 배설물을 이용해 경단을 만드는 곤충으로 ‘파브르 곤충기’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긴다리소똥구리류는 우리나라에서 ‘말똥구리’, ‘꼬마쇠똥구리’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분포한 기록은 있지만 1990년 강원도 철원과 양구에서 확인된 이후 최근까지 구체적인 분포 내역이 확인되지 않았다. 긴다리소똥구리는 뒷다리 발목 마디가 매우 가늘고 길며 어른벌레의 몸은 둥근 알 모양에 광택이 없는 검은색이다. 5월쯤 동물의 사체나 배설물을 이용해 약 12㎜ 크기의 경단을 만들고 경단 한 개에 하나의 알을 낳는다. 대부분의 곤충은 번식을 위한 생식활동에만 수컷의 역할이 한정돼 있지만 긴다리소똥구리는 부부가 공동으로 경단을 굴려서 옮기며 땅에 굴을 파 경단을 저장하는 습성을 가졌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앞으로 우리나라 생물종의 서식 증거로 이용하는 ‘확증표본 확보사업’ 등을 통해 그간 확인되지 않았던 종들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국내 기록종의 증거용 표본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세종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반수 어른께서 수령을 찾아가 병장기를 빌려 쓰게 조처한 것은 다른 비책이 있었기 때문이야. 소문으로 퍼뜨리지 않아도 적굴에서 풀어놓은 간자들이 냉큼 눈치채고 말았을 터, 그렇게 되면 저들은 필경 몸을 사리고 몇 군데의 은신처로 둔적하여 당분간 숨죽이고 지내겠지. 반수 어른께서 대낮에 여봐란듯이 소매에 바람을 일으키며 아문을 찾아간 것은 그런 숨은 뜻이 있었네. 질청의 썩어 빠진 아전이나, 더그레 입은 수자리 들 중에는 필경 적당과 은밀히 내통하며 구린 돈을 챙겨 온 자들이 있었을 것이야. 우리가 통문을 돌리고 병장기를 빌려 적당들을 섬멸하거나 등시 색출하고 나면 육방 아전이며 군교 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병장기 빌려 준 생색을 내며 너도나도 손을 벌릴 게 뻔하지 않은가. 구린내 등천하는 그들에게 수십 냥씩 속절없이 뜯기다 보면 우리 접소에서 애면글면하며 모아 둔 돈주머니는 순식간에 거덜나고 말겠지. 거절하면 당장 죄안을 날조하여 우리를 잡아먹고 말 테지…. 그래서 지금 우리의 처지는 궤상육(机上肉)이나 다름없네. 상단의 전대를 노리는 것들이 어디 적굴 놈들뿐이겠나. 사방에 깔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게.” “그 모두가 반수 어른과 성님의 계책이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그 계책이 무엇입니까.” “귀를 좀 빌리세.” 정한조에게 귀를 빌려 준 곽개천의 표정은 자못 심각하였다. 그는 때때로 정한조에게 되물어 가면서 계책을 귀담아 듣고 난 다음 손으로 구레나룻을 쓰다듬으며, “그 계책이 그대로 들어맞기만 한다면 본때 있게 설분할 수 있겠습니다.” “설분한다는 생각이 앞선다면, 일을 그르칠 수도 있네. 십이령길을 넘나드는 길손과 원상 들이 복물을 털리거나 손명(損命)당하지 않고 고개를 넘나들고, 해안가 염호와 흥부와 내성의 원상 들이 어육지변을 당하지 않고 안녕을 지킬 수 있다는 명분을 생각하게.” “성님, 명심하겠습니다.” “우선 침착하게. 잠깐 딴전을 판다든지, 굴레 벗은 당나귀처럼 괄괄하게 굴었다간 칼 물고 뜀뛰기로 언제 저승사자에게 끌려갈지 장담할 수 없네. 내가 짐작하기로는 적굴의 두령이란 자의 식견과 술수가 남달라 나 같은 떠돌이 행상 하나쯤은 순식간에 잡아먹을 수 있는 계략과 완력을 가졌을 것이야. 천하를 호령하였다던 진시황도 속절없이 흙이 되는데, 나 같은 천출이야 흙 되는 게 두려울 것은 없지만, 적굴 놈들 소탕에 실패하고 행중 식구 한둘이라도 저승사자에게 끌려가는 신세 될까 그게 걱정일세.” “성님께서는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각성바지에 제 잘난 맛에 사는 위인들이지만 해로동혈하는 사이 아닙니까. 아무리 구차한들 성님에게 그런 수치가 돌아가지 않도록 계략을 짜겠습니다.” “계략대로 일을 진행하자면, 적굴 밖에서 삼삼오오 패거리를 지어 다니는 산적들을 찾아내어 하나하나 순식간에 제거해 나가야 하겠는데…. 그렇게 되면 어느 놈이 산적인지, 어느 놈이 왈패인지 흰죽에 콧물 빠뜨린 격이 되어서 본색을 찾아내기 힘들 것이야.” “성님 염려 붙들어 매시지요. 시생에게는 손쉬운 일입니다.”
  • [명사가 걸어온 길] (12·끝) 자수성가 정열과 집념의 여성 CEO 이길여(하)

    [명사가 걸어온 길] (12·끝) 자수성가 정열과 집념의 여성 CEO 이길여(하)

    길병원의 모태가 된 자성의원(慈聖醫院)은 ‘세상 모든 어머니의 자애로움’과 ‘태어날 생명들의 성스러움’을 떠올리면서 지은 이름이다. 이길여 회장의 집무실에는 ‘가회합례 수세인천’(嘉會合禮 壽世仁泉)이라는 글귀가 내걸려 있다. ‘참 아름다운 마음으로 바른 삶 이루게 하고 마르지 않는 생명으로 온누리 건강하게 하리로다’는 뜻이다. 55년 전 출발 당시나 지금이나 의사로서 걷는 걸음걸음에 이러한 생명존중과 박애봉사의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가 의과대학에 들어간 뒤 산부인과를 택한 것은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의식해서였다. 당시 임신부의 경우 의사가 남자라는 이유로 진찰을 거부하거나 아예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아이를 낳다가 산모가 죽는 일이 적지 않았으며 산후조리를 소홀히 해서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는 여자들도 많았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이 회장은 여성들에게 건강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그들을 돌봐주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에 산부인과를 선택했다. “요즘에야 병원을 개원하면 한동안 적자를 감수해야 하고 홍보에도 각별히 신경써야 하지만 그 시절 우리 병원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개원을 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환자들이 물밀듯 찾아오는 바람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봄 여름 가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특히 함께 개업했던 친구가 결혼을 하면서 대구로 내려가는 바람에 혼자서 진료를 하느라 끼니조차 거르는 날이 많았지요.” 이 무렵 시골에 있던 어머니가 인천으로 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틈만 나면 결혼 적령기를 넘어선 딸에게 맞선을 보라고 채근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한번도 맞선을 보지 않았다. 눈만 뜨면 환자들이 찾았고 미국 유학도 가야 하는 등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나는 환자와 결혼했다’라고 굳게 다짐했다. 1964년 미국 유학시험에 합격하고 미국 병원 10여곳으로부터 수련의 제의를 받았다. 그중에 뉴욕에 있는 메리 이머큘리트병원을 선택했다.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힌 병원 일은 후배한테 부탁하고 그해 가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당시만 하더라도 병에 걸린 사람들이 고통을 견디다 못해 찾는 곳이 병원이었지만 미국은 이미 예방의학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다. 암검사, 대사 이상검사 등 병이 생기기 전에 진료를 받는 행태가 보편화돼 있었다. 아울러 체계적인 의료시스템과 환자에 대한 의료진의 친절과 열정 등이 그랬다. 이런 분위기에서 오전 5시부터 한밤중까지 인턴과정을 겪었다. 환자에 대한 정보와 체크리스트를 달달 외우느라 밤잠을 못 이룬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잠을 자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잠을 이기는 사람은 꿈을 이룬다’는 각오로 잠과 싸우며 공부를 했다. 이듬해 인근의 퀸즈종합병원으로 옮겨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다. 5년에 걸친 미국 생활은 고달픔도 많았지만 세상을 크고 넓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 큰 소득이었다. 무슨 일이든 거침없이 실행하는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한 것도 이때였다. 소아과 인턴 시절에는 ‘주사 잘 놓는 의사’로 통했다. 정교한 손놀림으로 단번에 혈관을 찾아내 주사를 놓았기 때문이다. 또한 남자 아이들에게 의무적으로 해주는 포경수술을 5분(다른 의사들은 20분 정도)만에 끝내 놀라게 했다. 그는 미국 유학 때 직접 환자가 돼 선진 의료시스템을 경험한 적도 있다. 어느날 난소에 혹이 생긴 걸 발견하고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던 것. 이때 의사의 친절한 말 한마디가 환자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체험하게 된다. 이후 수술을 앞두고 불안해 하는 임신부의 엉덩이를 다독이며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도와줄 테니까”라는 말로 환자를 위로하는 습관이 생겼다. 5년 동안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조국에서 나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는데 기필코 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1968년 10월 케네디공항을 출발해 한국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귀국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병원 신축이었다. 자성의원 자리에 지상 9층 규모로 36개 병상을 갖춘 병원을 새로 짓고 ‘이길여 산부인과’를 개원했다. 미국에서 배운 선진 의료기술을 당당하게 펼쳐 보고 싶은 생각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었던 것이다. 병원이 다시 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환자들이 줄을 지어 찾아 왔다. 미국 유학을 갔다 온 여자 의사가 새로 병원을 지어 진료를 시작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구경 삼아 오는 손님들도 꽤 많았다. 개인 병원으로 인천에서 가장 컸던 이길여 산부인과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어 더욱 그랬다. 당시 엘리베이터는 서울 시내 일류 호텔이 아니면 보기 힘들었다. 그가 병원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것은 계단을 오르내리가 힘든 임신부들을 위해서였다. 그다음에는 유학시절에 접한 초음파 의료기기를 도입해 태아의 건강 상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임신부에게 태아의 심장 박동소리를 들려주자 남편이나 시어머니까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병원을 다시 개원하면서 ‘자궁암 무료 조기검진’을 실시했다. 환자는 더욱 늘어났다. 그는 환자들을 대할 때마다 ‘첫째도 봉사, 둘째도 봉사, 셋째도 봉사’라는 원칙을 정했다. 병원은 항상 환자가 중심이 돼야 했기 때문이다. “환자를 불편하게 하는 병원이 있다면 그것은 근본을 망각한 것이지요. 가장 좋은 위치에 병실이 있어야 하고 환자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이 가장 넓고 깨끗해야 하고 모든 시설과 장비와 서류들은 환자들이 쉽게 알아보고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돼야 한다는 것은 지난 55년 동안 지켜온 원칙이며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겁니다.” ‘이길여 산부인과’가 인기를 끈 데는 여러가지 까닭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흥미롭게도 ‘미역국’이었다. 병원 식당에서는 언제나 한 솥 가득 미역국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36개 병상에서 매일 산모들이 먹어 대는 미역국의 양은 엄청났다. 밤참까지 하루 네 끼씩 미역국을 대느라 식당은 쉴 새 없이 바빴다. 겨울철에는 굴을 넣기도 하고 때로는 소고기를 섞었다. 퇴원한 산모의 남편들까지 찾아와 미역국을 얻어갈 정도로 인천에서 ‘이길여 산부인과 미역국’의 유명세는 자자했다. 이래저래 병원은 더욱 북적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회장의 일정은 하루 한 끼만 먹고 온종일 진료에만 매달리는 바쁜 시간의 연속이었다. 의사 가운을 입은 채 진료실 구석에 자는 날이 허다했다. “의사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환자들을 진료할 때입니다. 의사에게는 세상 그 어느 것도 환자의 병을 고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란 없지요.” 바쁜 와중에도 인천 앞바다의 섬들을 정기적으로 돌며 무료 진료를 시작했다. 진료를 떠나기 전 섬 주민들에게 미리 날짜를 알려 영흥도나 이작도 등 큰 섬으로 모이도록 해 짧은 일정에도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진료했다. 아울러 섬 아주머니들에게 여성의 몸은 어떻게 생겼으며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임신과 출산에 대비하는 요령, 여성에게 생기는 질병이나 예방법 등을 가르쳤다. 그는 진료를 할 때마다 청진기를 자신의 품속에 넣어 두었다가 꺼내 사용했다. 차가운 청진기는 가뜩이나 긴장된 환자들을 더 움츠러들게 한다는 생각에서 체온으로 청진기를 데웠던 것이다. ‘가슴에 품은 청진기’는 이후 해마다 가천의대 졸업생들에게도 직접 걸어주고 있다. 그는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1975년 다시 일본 유학길에 올라 2년간 공부했다. ‘독성에 대한 토끼의 신장반응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일본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면서 귀국 후 종합병원을 세울 생각을 하게 된다. 산부인과뿐만 아니라 더 많은 환자들을 진료해주면서 인생의 목적을 이루겠다고 다짐했던 것. 또한 자신과 같은 의사를 많이 길러내기 위한 교육에 힘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의과대학을 설립하고, 종합대학을 인수한 뒤 첨단 시설을 갖춘 여러 기초학 연구소를 만드는 것이었다. 계획은 착착 진행됐다. 1978년 전 재산을 출연해 인천 중구 인현동에서 150개 병상 규모의 새 건물을 지어 ‘의료법인 인천길병원’을 개원했다. 당시 개원식에 참석한 박승함 보건사회부 차관은 “인천길병원은 여의사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의료법인화를 시도한 선도적인 병원”이라고 할 만큼 의료계에서는 큰 관심을 보였다. 아울러 개원 이후 인턴과 레지던트 교육기관으로, 또 조산 수습생 교육기관으로 잇따라 지정됐다. 의료법인 설립과 이를 통한 의료교육으로 결실을 맺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후 양평길병원, 철원길병원이 생기면서 환자를 위한 의료시설을 더욱 확장해 나갔다. 2002년부터는 외국인 노동자 무료 진료를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등 길병원의 원훈인 ‘박애, 봉사, 애국’의 정신을 꾸준히 펼쳐 나가고 있다. 여성전문센터, 심장센터, 치과센터, 암센터, 척추센터, 장기이식센터, 건강증진센터, 진료협력센터의 설립도 이 같은 취지에서 출발했다. 이후 가천의대를 세우고 경원대와 경원전문대 등을 인수하면서 가천길병원과 함께 오늘날 가천길재단의 면모를 갖추고 21세기 글로벌시대를 향한 새로운 도약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이 회장은 평소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박애, 봉사, 애국’이란 말에 손사래를 치며 촌스럽다고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가천길재단의 정신은 바로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이것은 제 인생의 목표이며, 현재진행형인 꿈입니다. 아직 마침표를 찍을 때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이 회장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받은 아이만 수십만명, 그의 병원에서 새 삶을 찾은 사람이 100만명은 족히 넘는다. 그러는 동안 박애와 봉사, 애국의 깃발을 촌스럽게 내걸고도 한 치의 실패도 없이 성공했다. 세상 사람들에게서 경영의 성공과 사회 봉사라는 큰 보람의 탑을 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애창곡은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이다.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오늘도 떠나지 않을까 싶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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