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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쇠사슬에 묶인채 다니는 11세 中 소년 ‘충격’

    쇠사슬에 묶인채 다니는 11세 中 소년 ‘충격’

    마치 동물처럼 쇠사슬에 묶여 다니는 11살 된 소년의 모습이 포착돼 충격과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중국 현지 시간으로 지난 20일, 한 네티즌은 자신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한 남성이 아이의 발못에 쇠사슬을 묶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진과 함께 “아이가 너무 불쌍해 보여서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는 글을 올렸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조사한 결과 이들은 중국 저장성에 사는 허(許)씨 부자이며, 두 사람은 친아버지와 아들 관계인 것으로 밝혀졌다. 허씨의 주장에 따르면 올해 11살 된 아들은 선천적인 정신병 때문에 집안에 묶어두면 발작을 일으키고, 풀어두면 주변 사람들을 공격하는 경향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쇠사슬로 묶고 함께 외출하는 방법을 택했다는 것. 아이의 엄마는 암으로 사망했고, 몸이 불편한 조부모 역시 아이를 통제할 힘이 없어 집에서도 쇠사슬로 아이를 묶고 이를 긴 막대에 고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의 발목은 거칠고 차가운 쇠사슬 때문에 굳은살이 박혀 있고, 신발 신기를 거부해 상처도 많이 나 있는 상황이지만,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치료받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당시 허씨는 아들의 정신병을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시내로 외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아이와 아버지 모두 불쌍하다”, “아이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아이 학대와 다름없다” 등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어민의 땀으로 완도의 꿈·보물이 된 전복

    어민의 땀으로 완도의 꿈·보물이 된 전복

    영양 만점, 맛도 만점인 전복은 ‘바다의 보물’이라 불린다. 그중에서도 전남 완도는 국내 전복 생산량의 약 80%를 생산한다. ‘완도 전복’이라고 하면 그 큼직한 크기와 맛에 군침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 완도의 어민들은 가두리 양식으로 전복을 키우고 있다. 어민들은 요즘 꼬박 3년을 기다린 출하작업에 한창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양식장의 판에 붙어있는 전복을 일일이 거둬들이는 것은 물론, 전복의 먹이인 미역과 다시마 양식장을 따로 관리해야 한다. 선별작업까지 모두 수작업을 거쳐야 하는 등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의 피땀이 스며들지 않은 작업이 없다. 태풍으로 인해 적잖은 손해를 입었음에도 어민들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13~14일 밤 10시 45분 방송되는 EBS ‘극한직업’은 최상급 전복을 얻기 위해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 전남 완도의 전복 양식장 사람들을 만난다. 어민들은 새벽부터 부푼 기대를 품고 전복 양식장을 향한다. 먼저 양식장 칸마다 들어있는 전복 집을 거둬들이고, 판에 붙은 전복을 떼낸다. 전용 칼을 판에 밀착시켜 정교하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전복을 밀어내야 하는데 여간 고된 게 아니다. 어민들의 손은 굳은살이 박혀있고 성한 곳이 없다. 전복을 모두 뗀 후에는 선별작업을 거친다. 전복 껍데기에 붙은 굴이나 홍합과 같은 부착성 패류를 기계로 떼내야 한다. 기계 소리는 굉음에 가까워 어민들의 귀를 상하게 한다. 전복 먹이인 미역, 다시마 양식장도 따로 관리하고, 거대한 크레인으로 먹이를 옮겨 전복에게 줘야 하니 고생은 두배가 된다. 태풍으로 망가진 가두리 양식장을 다시 만들고, 힘없이 죽은 전복 더미를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작업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이어지지 않는다. 수온이 올라간 탓에 전복들이 무더기로 죽어버린 것. 어민들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전복에 인생을 바친 그들이기에 실망스러운 마음은 쉽게 떨쳐내기 힘들다. 수확량이 예년보다 적지만 어민들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굳게 다잡는다. 한차례 일감이 폭풍처럼 지나간 후, 휴식의 시간이 찾아온다. 전복을 직접 썰어 먹고, 갖가지 약재를 넣은 전복죽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전복은 어민들의 꿈이자 주린 배를 채워주는 보물이기도 하다. 수확량이 많아도, 적어도 그들은 자연이 주는 선물이라 여기고 만족하면서 꿋꿋하게 작업을 이어나간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문화마당] 바이러스의 경고/김재원 KBS 아나운서

    [문화마당] 바이러스의 경고/김재원 KBS 아나운서

    숫자 제목을 달고 나온 소설책이 제법 잘 팔린다기에 그녀의 전작을 재미있게 본 터라 단순 호기심으로 책을 읽었다. 남성적 필체와 힘 있는 스토리 전개,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책에서 눈을 못 떼게 했다. 배경은 바이러스 대재앙이었다. ‘세계의 끝’과 ’더 바이러스’라는 드라마를 즐겨본 터라 재미와 충격은 두 배였다. 급기야 바이러스 대재앙이 한여름 극장가를 강타했다. 감기는 불치병이라더니,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엄청난 재앙에 심지어 애국심까지 고취시킨 영화는 행복한 결말을 보였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바이러스 열풍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하는 사소한 궁금증에 사로잡혔다. 또 다른 바이러스가 생각났다. 대한민국을 강타한 공부 바이러스는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아이들을 책상 앞에 앉혀 놓는다. 피 토하듯 폭력적인 언어를 내뱉으며, 고열이 나듯 교육열에 지치고, 붉은 점이 온 몸에 돋듯 체력 저하에 시달린다. 밥도 제대로 안 먹고 식구들에게 짜증을 쏟아내며 친구들과도 으르렁거린다. 극심한 경우 스스로 세상을 포기하기도 한다. 항체를 지닌 아이들은 극소수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바이러스를 주입하고 그들을 격리시킨다. 공부 바이러스에 의도적으로 감염시켜 학원, 도시 사방에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서 있는 군인들이 바로 아이들의 부모이다. 유능한 PD는 청소년 시절 텔레비전에 빠져들었고, 훌륭한 작가는 책 속으로 파고들었다. 괜찮은 연극배우는 학교 대신 극장에 개근했고, 정상급 연주자들은 굳은살 잡힌 손에서 악기를 놓지 않았다. “청소년기에 텔레비전을 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어른이 되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겠어요?” 예능 PD가 되겠다고 꿈꾸는 우리 집 아들의 주장이다. 자신의 TV 시청은 미래 직업을 위한 준비 작업이라나 뭐라나. 이런 얘기를 듣는 아나운서 아빠는 아이가 텔레비전 보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제 공부 바이러스에 감염된 대한민국의 미래에 이렇게 꿈과 끼로 차곡차곡 훈련된 문화예술인을 기대하기란 빙하기의 햇살이다. 아이들이 타고 있는 것은 설국열차인지도 모른다. 뜨거운 교육열을 잠재우기 위한 특단의 처방이 교육의 빙하기를 가져온 것이다. 태어나면서 받은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설국열차의 논리가 대한민국 교육계를 장악하고 있다. 한 등급이라도 올라서기 위해서는 피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춥고 차가운 현실이 두려워 설국열차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파울루 코엘류는 일찍이 인생은 기차역이 아니라 기차라고 했다. 우리 인생은 달리고 있다. 달리는 기차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타고 있는 아이들을 구해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추석 명절이 긴 탓에 극성 학부모들의 고민이 깊단다. 학원 일정 조정과 진도 맞추기가 쉽지 않고 자칫 아이들이 공부 흐름을 놓칠까봐 노심초사란다. 아마도 자녀들을 친척들로부터 격리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모양이다. 핵가족화로 친척 간 만남은 그야말로 일 년에 한 두 번이다. 사촌도 옆반 아이만큼 덤덤하다. 이제 아이들에게 긴 격리 끝에 오는 부작용이 나타날 때가 됐다. 그들이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밀려올 날이 머지않은 것 같아 걱정이다. 이번 추석만이라도 바이러스의 경고를 들어주자.
  • “유명인 신비 벗고 연기자 오기 더 채웠죠”

    “유명인 신비 벗고 연기자 오기 더 채웠죠”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판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가는 ‘내공’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데뷔 13년차. 아픈 만큼 성숙해졌다. CF 모델로 연예계에 첫발을 디딘 후 대중은 그의 출연작부터 사적인 연애까지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였다. 때론 환호했고, 질책도 했다. 지난 25일 막을 내린 SBS의 월화 사극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주인공 김태희(33) 이야기다. 올해 초 가수 ‘비’와의 교제 사실이 알려져 세간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던 그는 이번 드라마로 다시 부침을 겪었다. 데뷔 후 처음 도전한 사극에서 줄기차게 연기력 논란에 시달렸고, 드라마는 10% 안팎을 맴도는 시청률에 머물렀다. 김태희라는 ‘이름값’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지난 3개월의 대장정은 고행길이었던 셈이다. “예전에는 저에 대한 비판보다는 좋은 이야기가 훨씬 많았어요. 덕분에 상처의 굳은살이 박일 일은 없었어요. 이번에 큰 굴곡을 겪으면서 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확실히 아픈 만큼 성장한 듯했다. “배우로서 이번 같은 캐릭터(옥정)를 언제 또 해보겠냐. 그동안 부족했던 독기도 채웠다”며 전에 없던 대범한 면모를 보였다. “사람들이 날 보며 즐거워할 수도, 내 흉을 보며 즐거워할 수도 있는 거다. 그게 엔터테이너로서의 내 역할 중 하나”라고도 덧붙였다. 앞으로는 작품성 있는 영화에 도전해 보고 싶다. ‘저게 김태희야?’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센 역할을 해보고 싶단다. 사극을 또 해보고 싶다면서도 가체를 얹는 장면만은 절대 찍고 싶지 않다고 손사래를 친다. “뒷머리를 잡아당기는 듯 너무 아파서 두통약을 먹으면서 찍어야 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배우 한 명과 악기의 버무림 아주 특별한 모노드라마

    배우 한 명과 악기의 버무림 아주 특별한 모노드라마

    모노드라마는 지루하다는 선입견이 있다. 눈과 귀가 즐거운 뮤지컬과 코믹 연극을 찾는 사람들에게 배우 한 명의 독백으로 채워진 모노드라마는 그다지 끌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6월 관객들을 찾는 모노드라마 두 편은 우리에게 친숙한 배우가 수십 년에 이르는 자신의 연기 인생을 무대 위에서 오롯이 보여 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 악기와 함께하는 무대라는 점도 공통점이다. 올해로 데뷔 40년을 맞은 배우 명계남(61)의 연극 ‘콘트라베이스’는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오케스트라 무대의 맨 구석에 위치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는 손의 굳은살이 찢어져 피가 흐를 때까지 연주하지만 주목받지 못한다. 메조소프라노 가수 ‘사라’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콘트라베이스의 존재조차 모른다. 무대와 브라운관, 스크린 등을 오가며 화려한 배우의 삶을 살았지만, 무대 한 구석에서 소외된 채 묵묵히 자신의 몫을 다하며 사랑하는 것이 배우의 삶임을 명계남은 보여 준다. 그는 1995년 초연에 이어 이 작품에 세 번째로 출연한다. 14일~7월 14일 서울 동숭동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전석 4만원. (02)1666-5795. 아역 배우로 출발해 어느덧 데뷔 30년이 된 배우 이재은(33)은 연극 ‘첼로의 여자’를 통해 여성의 소외감과 섬세한 내면을 보여준다. 프랑스 극작가 기 프와시의 작품으로 남편이 실종되자 그 범인으로 몰린 아내가 첼로를 통해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한 사람들, 즉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한다. 4살 때 CF모델로 데뷔해 소녀에서 숙녀로, 한 남자의 아내로 성장한 이재은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유시어터. 2만~3만원. (02)3482-8884.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3일 TV 하이라이트]

    ■언브레이커블(KBS1 밤 12시) 필라델피아에서 열차 탈선사고가 발생한다. 승무원과 승객을 포함해 131명이 현장에서 즉사한다. 놀랍게도 한 명의 생존자가 발견되는데 그는 대학 풋볼 경기장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데이비드 던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고현장에서 그가 작은 상처도 하나 없이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KBS2 밤 8시 50분) 이정민 아나운서가 어머니와 남편을 최초 공개한다. 특히 이정민의 어머니는 뛰어난 외모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어머니는 ‘방송에서 딸 이정민의 얼굴이 예전과 달라졌다고 해서 자존심이 상했다’며 섭섭함을 토로했지만, 딸과 똑 닮은 붕어빵 미모로 이정민의 성형 의혹을 단번에 잠재운다. ■나 혼자 산다(MBC 밤 11시 20분) 홀로남들의 순탄치 못한 나 홀로 여행의 두 번째 이야기. 이성재의 반려견 에페 찾기 대소동부터 김태원의 음률 낚시 여행과 맛 기행으로 열심히 먹기만 했지만 결국 탈이 나고 만 데프콘의 화장실 투어까지. 깊어가는 나 홀로 여행에서 혼자라도 외롭지 않다는 이들의 아름다운 추억 여행을 따라가 본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5시 35분) 아기들에게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습관인 손가락 빨기로 12개월 규리의 손 피부는 심하게 짓무르고 굳은살이 생겼다. 규리의 피부과와 치과 검사의 충격적인 결과에 세 명의 전문가가 해결책을 제시한다. 한편 뉴질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지후가 한국에 온 뒤 악동으로 돌변한 사연을 소개한다. ■다문화 휴먼다큐 가족(EBS 밤 10시 45분) 전북 고창의 모림마을에는 환상의 호흡으로 소문난 짝꿍이 있다. 바로 태국 출신의 사왕사리 진다나와 촘티암 라어다. 10년 전 먼저 한국으로 온 진다나가 5살 차이의 이모에게 한국 남자를 소개해 준 이후로, 두 사람은 나란히 한국에서 결혼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청춘만화(OBS 밤 11시 5분) 어렸을 적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란 지환과 달래. 대학까지 같은 학교에 나란히 입학한 지환과 달래는 아직 서로에겐 둘도 없는 친구다. 그러던 어느 날 달래에게 만능스포츠맨 영훈이라는 남자 친구가 생기고, 지환에게도 팔등신 미녀 지민이라는 여자 친구가 생기면서 두 친구의 우정에 이상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 그의 숨결·호흡 그대로 ‘현대사 질곡’ 투영하다

    그의 숨결·호흡 그대로 ‘현대사 질곡’ 투영하다

    20대에 연좌제에 좌초돼 한국 사회를 쓸쓸하게 또는 필사적으로 떠돌아다닌 그는 소영웅주의자일까, 아웃사이더일까. 한국의 대표적인 번역자, 저자, 소설가로 살다간 이윤기(1947~2010)의 이야기다. 그는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2000년)의 저자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1986년)과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1981년)의 번역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삶은 유명세만큼이나 화려(?)하다. 그는 별스러운 사람이었다. 경북 군위 출신인 그는 대구 칠성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북중에 이어 경북고에 진학했으나 들어간 지 3개월 만에 그만뒀다. 이후 검정고시로 대학 진학 자격을 얻어 1967년 신학대학에 진학하지만 역시 도중에 그만뒀다. 그 후 유학 자격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기회를 얻었지만, 재일교포였던 그의 큰아버지가 조총련계로 재일교포 북송단 모집책이었던 탓에 연좌제에 걸려 포기해야만 했다. 연간 1만 5000장을 번역하는 고달픈 번역 노동자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던 이유이자, ‘온갖 똥폼을 다 잡는 스타일리스트’였지만 죽는 날까지 학력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이유였다. 2010년 8월 27일 심장마비로 사망한 이윤기 사후 2주기를 맞아 그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던 출판사 열린책들이 그의 첫 소설 ‘하늘의 문’을 재출간했다. 원래 3권으로 나왔던 책인데, 읽다가 졸리면 목침으로도 쓸 만한 1085쪽 두께의 한 권으로 내놨다. 1994년 펴낸 이 책은 권당 5500원으로 3권이면 액면가가 1만 6500원이지만, 중고책 시장에서 7만 5000원의 고가에 거래된다. 이번 신간은 2만 8000원이니, 더이상 중고책을 구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겠다. 이윤기의 첫 소설을 재출간하려고 애쓴 책 디자이너이자 이윤기의 경북고 3년 선배인 정병규(66)는 지난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소설처럼 윤색됐으나 그의 삶을 아는 나로서는 이 책이 소설로 읽히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삶을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한국 현대사의 묘한 얼룩이 삶에 스며든 근대인의 삶으로 이 소설이 읽힐 것이므로, 이른바 ‘한국 현대사 교양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재출간의 이유를 말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과 철저한 양반의식, 연좌제로 좌절된 유학, 베트남 파병 군인의 삶과 공사판을 전전하며 노동자로 살아간 이윤기의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이어 정병규는 “이 소설에는 사전에 안 나오는 말들이 많은데, 노동자들의 현장의 목소리, 지방의 사투리 등이 고스란히 들어 있어 한국 밑바닥의 진솔한 삶을 직접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친구이자 문학평론가였던 황현산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도 이날 “이윤기가 서사가 뛰어난 작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문장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고, 이 소설은 ‘자기 자신을 번역했다’고 할 만한 책”이라고 말했다. 이윤기는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단편 ‘하얀 헬리콥터’로 등단했지만 번역일에 휘둘리다가 이 책을 내놓고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문단 데뷔 20년 만의 ‘중고 신인작가’였던 셈이다. 정병규는 “자신의 속살을 다 드러낸 뒤에야 스스로 본격 소설가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의미들이 부여된 까닭에 재출간된 ‘하늘의 문’은 원본을 그대로 살렸다. 강무성 열린책들 편집주간은 “출판 당시의 오자만 바로잡았지,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새로 교정하거나 국문법상으로 쉼표가 올 수 없는 부분에 놓여 있는 쉼표라고 해서 없애거나 하지 않고, 이윤기의 숨결과 호흡 그대로 살려 놓았다.”고 말했다. 180㎝ 가까운 키에 터무니없이 큰 발, 그리고 큰 체구를 지닌 이윤기는 건강이 나빠진 말년에도 하루에 조니워커 레드를 2병씩 마실 정도로 술도 셌다. 심장마비를 일으키기 전에 몸이 비쩍 말라갔지만, 병원에 다니며 병명을 찾고 몸에 주삿바늘을 꼽는 것은 인위적인 삶이라며 거부한 이가 이윤기다. 정병규는 “파커 만년필의 촉이 닳아 날카로운 칼처럼 돼 수북이 꽂혀 있고,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일 것 같아 손가락 부분을 잘라낸 골프장갑을 낀 채 번역하는 그의 모습이 징그러우면서도 그립다.”면서 “문학적 감수성을 가지고 삶을 기록한 이윤기의 모습과 느낌을 ‘하늘의 문’ 표지를 통해 고스란히 살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번 책표지를 그가 디자인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2012 베스트브랜드 대상] 네이쳐앤바이오 ‘맥스클리닉’

    [2012 베스트브랜드 대상] 네이쳐앤바이오 ‘맥스클리닉’

    ‘맥스클리닉’은 전문 코슈메티컬(화장품+의료) 브랜드로 집에서 빠르고 간편하게 전문적인 피부케어를 할 수 있다. ▲모공보다 작은 0.05㎜의 부드러운 극세사로 만들어진 모공탱탱브러시 ▲마사지오일폼 ▲페이스마사지기 ▲풋케어(발 관리) 제품인 에그힐밤과 다이아몬드 에그힐 발각질제거기 등이 주력 제품이다. 특히 마사지오일폼은 마사지부터 세안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기능성 제품으로 모공 속까지 부드럽게 마사지해 준다. 흐트러진 피부의 턴오버를 정상화하고 거친 피부 결을 부드럽게 정리해 푸딩처럼 매끄럽고 깨끗한 피부를 가꾸는 데 도움을 준다. 에그힐밤은 굳은살로 뒤덮인 발을 부드럽고 매끄럽게 가꿔준다. 발각질제거기와 함께 사용하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 “발에 난 작은상처도 그냥 넘기지 마세요”

    대한당뇨병학회(이사장 차봉연)는 당뇨병 환자가 합병증 악화로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한 ‘당뇨병 환자 족부절단 예방 발견(見) 수칙’을 마련했다고 최근 밝혔다. 당뇨병 환자의 족부질환으로 인한 족부절단율은 비당뇨병 환자보다 약 12배나 더 높다. 당뇨병에 따른 혈관장애로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고, 세균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져 발에 상처가 생기면 쉽게 감염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발이나 발가락에 괴사, 궤양 등이 생기고 썩어들어 발가락이나 발목 등을 절단해야 하는 일이 빈발한다. 따라서 발등이나 발가락, 발바닥에 조그만 상처가 나거나 티눈·물집·부종·홍반 등의 변화가 발견되면 병원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저리고 화끈거리거나 무감각한 ‘당뇨병성 신경병증’이 나타나도 ‘족부절단 위험신호’로 보고 즉시 주치의를 찾아야 한다. 학회는 ‘당뇨병 환자라면, 발견(見)하세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여름 동안 ‘제2회 파란양말 캠페인’을 진행한다. 오는 23~27일을 ‘당뇨병 환자 발견주간’으로 정해 전국 11개 병원 당뇨병센터 및 내분비내과에서 ‘발견교실’도 진행한다. 교실 참석환자에게는 당뇨병성 족부질환을 조기 예방할 수 있도록 발 관찰, 관리의 생활화를 돕는 ‘파란양말 발견세트’를 나눠준다. 학회가 권고하는 ‘족부절단 예방 9가지 발견(見) 수칙’은 다음과 같다. ▲ 외출 후에는 발을 미지근한 물로 씻으며 발 상태를 살핀다. ▲발을 말릴 때 흰 수건으로 닦아 수건에 진물이 묻어나는지 살핀다. ▲거울을 이용해 발바닥까지 잘 살핀다. ▲물집·작은 상처·부종·홍반 등 발의 변화를 매일 살핀다. ▲발톱을 자를 때 발톱의 색이나 모양까지 살핀다. ▲물집·상처·티눈·굳은살 등이 발견되면 즉시 주치의와 상의한다. ▲발이 건조해 갈라지지 않도록 보습제를 바르고 관리한다. ▲발의 저림, 화끈거림, 무감각 등 당뇨병성 신경병증 통증이 나타나면 즉시 주치의와 상의한다. ▲매달 당뇨병성 신경병증 검사를 받는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박근혜 강약 없어 문재인 발음 새고 안철수는 강연용”

    “박근혜 강약 없어 문재인 발음 새고 안철수는 강연용”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대중 연설 능력은 대선을 준비하는 차기 대권주자들에게는 결정적 요소다. 정치권에서는 현장 연설로 부동층 표심의 10%가 좌지우지될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대권 주자 중에서는 누가 가장 발성이 좋을까. 발성, 발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직업인 배우 출신 문성근 민주통합당 대표 권한대행이 최근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여야 대선주자들의 발성과 어투를 조목조목 해부(?)했다. 일단 좋은 점수를 받은 대선주자는 찾기 힘들었다.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은 문 대표대행과 친한 사이지만 혹평을 받았다. 문 대표대행은 “푸근한 중저음의 문 상임고문은 발성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면서 “참여정부 시절 치아 10개를 임플란트해서 발음이 새고 잘 안 된다. 이건 잘되려야 잘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때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일하면서 속앓이로 잇몸이 많이 상했다는 것이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인 이창동 영화감독도 재임 당시 같은 이유로 임플란트 4개를 해서 발음이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문 대표대행의 임플란트는 한 개다.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나쁜 발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 대표대행은 “오래 정치 생활을 하면서 목 관리를 안 해 굳어진 듯하다. 이비인후과에 가보면 성대에 굳은살이 있을 수 있는데 치료하고도 관리하지 않으면 연설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손학규·김문수·유시민도 별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성은 “소리의 높낮이가 거의 없다. 세게 연설하면 소리가 찢어지는 경향이 있어 훈련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발성에 강약 조절을 하면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해서도 “강연에는 적합하나 ‘지르는’ 연설은 해도 안 될 발성”이라고 분석했다. 손학규 상임고문, 유시민 통합진보당 대표, 김문수 경기지사에 대해서도 “발성이 좋지 않다.”고 했다. 문 대표대행은 “유 대표는 위에서만 내는 소리인데 발성을 할 때는 발성과 관련된 배 등 모든 신체 기관을 같이 활용해서 해야 피로도가 적고 소리가 좋아진다.”고 했다. 그가 발성이 좋다고 꼽은 대권주자는 MBC 앵커 출신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과 이미 대통령을 지낸 노무현·전두환 전 대통령 정도다. 문 대표대행은 정 상임고문에 대해 “발음이 정확하고 발성 훈련이 잘돼 있다.”고 칭찬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타고난 소리꾼이다. 단순히 원고를 읽으면 그런 (높은) 어조가 안 나온다.”고 호평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발음은 다소 부정확하지만 발성에 힘이 있고 단호하게 미는 소리를 낸다.”고 밝혔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또박또박 정교한 발성을 한다.”고 분석했다. 이인제 의원에 대해서는 “지르면서도 정확히 전달되는 발성”으로 분류했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처럼 마지막 어휘를 길게 끄는 발성은 “거짓말을 하거나 원고가 자신의 생각과 다를 때 뒷말을 끈다.”며 신뢰를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타고난 노무현… 전두환 힘 있어 발성은 어떻게 하면 좋아질까. 문 대표대행은 “과거 5공 청문회를 지켜볼 때 정치인들을 데려다 발성 연습을 시켜주고 싶었다.”면서 “요점에 강약을 줄 수 있는 소리 조절이 중요하고 성악하는 사람에게 가곡을 배워서 서너달 연습하다 보면 나아진다.”고 조언했다. 목청이 타고난 정치인도, 후천적으로 나빠진 정치인도 유권자를 발성으로 설득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더 좋은 방법은 남은 8개월 동안 진정성을 갖고 민생 공약을 실천하는 태도를 유권자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후두가 보내는 경고음… 2주이상 지속땐 상담을

    겨울에는 감기가 기승인 데다 날씨까지 춥고 건조해 목소리에 이상이 생기기 쉽다. 감기에 걸리면 입으로 숨을 쉬는데, 이 때문에 목이 건조해져 쉽게 목소리가 변하며, 기침 때문에 목이 쉬기도 한다. 그러나 목소리 변성이 꼭 감기 때문만은 아니다. 순간적으로 고음을 내는 등 목을 혹사하거나 드물게는 후두암이 원인일 수도 있다. 겨울철 쉰 목소리, 섣부르게 감기 때문이라고 단정하지 말고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성대에 수분공급 위해 습도 50% 유지 쉰 목소리는 감기와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목이 붓는 인후염이 흔한 원인이지만 코막힘이나 기침 때문에 목이 쉬기도 한다. 코가 막혀 입으로 숨을 쉬면 목이 쉽게 건조해져 목소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 심한 기침도 목소리를 변하게 한다. 기침이 성대 점막의 마찰을 유발해 목소리를 쉬게 하는 것. 감기로 인한 목소리 변성을 막으려면 물을 자주 마시는 것이 좋다. 잘못된 호흡과 기침으로 건조해진 성대를 촉촉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다. 가습기 등으로 실내 습도를 50% 정도로 유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편도선염도 문제가 된다. 감기에 걸린 뒤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인후두에 염증을 일으키면 성대 점막이 부어 쉰 목소리가 난다. 이 경우 대부분 약물과 충분한 휴식으로 치료되지만 변성이 심하고 자주 재발하면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1년에 3∼4차례 이상 편도선염에 걸린다면 편도절제술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음주 후에는 심한 고성 삼가야 응원을 하거나 노래방에서 무리를 해도 목소리가 변할 수 있다. 갑자기 고성을 지르면 성대가 과도하게 마찰하면서 출혈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때의 상처나 부종을 방치하면 성대폴립(주로 후두 부위에 생기는 말미잘 모양의 부드러운 종기로, 진동이 강한 성대의 중앙부 앞쪽에 잘 생긴다)으로 발전한다. 계속 목소리가 잠겨 쉰 소리가 나거나 이물감 때문에 기침이 잦으면 성대폴립을 의심해볼 수 있다. 음주 후 큰 소리로 말을 많이 해도 목소리가 변한다. 성대는 음주만으로도 쉽게 건조해진다. 술이 목 점막의 수분을 빼앗기 때문이다. 탁하고 건조한 공간에서 술을 마시거나 고성으로 노래를 부르면 성대 점막에 굳은살이 생기는 성대결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술자리에서는 물을 많이 마셔 성대에 과도한 마찰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줘야 한다. 흡연 역시 성대를 건조하고 거칠게 하므로 피하는 게 최선이다. ●이물감 느껴지면 내시경 검사 필요 별다른 이유없이 쉰 목소리가 계속된다면 후두암, 성대결절 등 다른 원인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알려진 후두암의 주요 발병 원인은 흡연과 음주다. 특히 흡연은 가장 위험한 발암인자로, 전체 후두암 환자 중 흡연자가 90%를 차지한다. 간접흡연도 영향을 미치기는 마찬가지다. 음주도 유력한 발병인자이지만 흡연과 음주를 동시에 할 경우 발병 위험이 더 높다. 따라서 장기간 술과 담배를 해 온 50대 이상의 남성에게 2주 이상 쉰 목소리가 나오거나 목에 이물감 또는 통증이 느껴지면 반드시 후두내시경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하나이비인후과병원 두경부클리닉 주형로 박사는 “이런 증상이 없더라도 50세를 넘긴 음주·흡연자라면 매년 1회 이상 후두내시경 검사를 받아보는 게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도움말 하나이비인후과병원 두경부전문클리닉 주형로 박사
  • 겨울철 피부·건강 관리 가이드

    겨울철 피부·건강 관리 가이드

    해가 바뀌어서도 추위는 여전하다. 이런 날씨 탓에 건강에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건 없다.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차근차근 살펴가면 된다.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소소한 겨울 건강 문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추우니까 먹는다? 사람은 배가 고프면 추위를 더 탄다. 인체는 추위에 노출되면 대사율을 높여 체온을 늘리는데, 대사에 사용하는 에너지원이 음식이기 때문이다. 음식을 섭취하면 대사율이 높아져 더 많은 열이 발생하는데, 이를 특수역원작용이라 한다. 특히 단백질 음식에 이런 작용이 뚜렷하다. 또 음식을 섭취하면 혈중 포도당 농도가 높아지고, 인체는 포도당 대사를 위해 인슐린을 분비하는데, 이 인슐린이 포도당 대사를 촉진해 전신의 대사율을 높이므로 식사를 하면 체온이 약간 오르게 된다. ●안면홍조 겨울만 되면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사람이 있다. 안면홍조증이다. 피부혈관이 확장돼 혈류가 증가하면서 얼굴에 홍반과 온열감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원인은 많다. 혈관은 히스타민이 증가하거나 자율신경 이상에 의해 확장되는가 하면 고혈압 치료에 사용되는 칼슘길항제나 협심증에 사용하는 니트로글리세린 등 약물 부작용이 원인이기도 하다. 술도 원인이 된다. 술을 마시면 알코올 분해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의 혈중 농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 매운 음식을 먹을 때, 내분비질환이나 췌장·신장·부신 등에 종양이 있거나 주사비(딸기코) 등 피부질환이나 폐경기 후 에스트로겐이 감소해 안면홍조가 나타나기도 한다. ●발바닥 각질 발꿈치와 발바닥에 형성되는 굳은살은 흉할 뿐 아니라 발 냄새의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턱대고 없애려다가는 부작용을 겪기 쉽다. 각질층은 자극을 줄수록 더 두꺼워지기 때문이다. 따뜻한 물에 발을 담가 잘 불린 각질 부위에 로션이나 크림을 듬뿍 바른 뒤 랩이나 거즈 등으로 감싸고 잠자리에 들면 한결 부드러워진다. 목욕탕 바닥에 문지르거나 돌이나 칼로 긁어낼 경우 자칫 정상 조직까지 손상을 입을 수 있으며, 감염 위험도 있으므로 삼가야 한다. 정 불편하다면 부드러운 타월이나 브러시로 살짝 벗겨내거나 각질제거기를 이용하면 된다. 피부 균열이 심해 통증이 있을 때는 전문의를 찾는 게 좋다. ●언 살은 차갑게 푼다? 스키 등 겨울 스포츠를 즐기다보면 손발이 꽁꽁 얼어 빨갛게 붓거나 감각이 없어지는 등 동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때 ‘언 살은 차가운 것으로 푼다’며 찬물에 담그기도 하는데 이 경우 통증은 억제되지만 동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손으로 비비거나 마사지하는 방법도 효과가 크지 않다. 일단 증상이 나타나면 혈관을 이완시켜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세포 사이의 결빙을 풀어줘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동상 부위를 40도 정도의 물에 20∼30분간 담가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다. 몸을 덥힌다며 술을 마시는 것은 금물이다. ●겨울 사우나 겨울에 찜질방이나 사우나에서 땀을 흠뻑 흘리고, 거친 때수건으로 각질을 벗겨내고 나면 피부가 뽀송뽀송 부드러워진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일시적으로 피부가 부드러워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피부는 곧 거칠어지고 건조해진다. 온찜질이나 사우나를 반복하면 상태가 더 악화돼 나중에는 민감성 피부가 되기도 한다. 피부는 적당한 수분이 필요한데, 과도한 온찜질이나 사우나로 피부의 각질층이 파괴되고, 지질과 자연 보습인자가 소실되면서 건조하고 거칠어지는 것. 피부 건조를 막으려면 비누와 때수건 사용을 줄여야 하며, 저자극성 비누를 사용하되 피부에 비누찌꺼기가 남지 않도록 꼼꼼히 씻어내고, 보습제를 충분히 발라줘야 한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도움말 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박경희 교수
  • [런던 올림픽의 해 밝았다] 도마 신기술 ‘양1’ 창조… “금빛 세리머니 기대하세요”

    [런던 올림픽의 해 밝았다] 도마 신기술 ‘양1’ 창조… “금빛 세리머니 기대하세요”

    청년은 경기 전날 잠을 뒤척인다. 떨려서가 아니다. 설레고 들떠서다. 관중들의 환호 소리를 들으면 심장은 쿵쿵 달아오른다. 즐기듯 뽐내듯 짧은 연기를 끝내면 순위 표 맨 위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 청년은 ‘사인받으러 몇 명이나 올까?’ 생각하며 뺨이 발그레해진다. 아직은 ‘소년’이란 단어가 잘 어울리는 ‘한국 체조의 간판’ 양학선(20·한국체대) 얘기다. 양학선은 지난해 10월 도쿄세계체조선수권 남자 도마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차 시기 때 받은 16.566점은 전 종목을 통틀어 최고점이었다. “실수 없이 평소대로 하면 금메달을 딸 줄 알았어요. 사실 도마 짚으면 딱 감이 오거든요.” 다시 생각해도 좋은가 보다. 장난기 가득한 눈이 반달 모양이 된다. 양학선은 세상에 없던 신기술 ‘양1’을 선보였다. 공중 3회전, 무려 1080도를 비틀어 돌아내리는 기술이다. 여홍철(1996 애틀랜타올림픽 뜀틀 은메달·현 경희대 교수)이 선보인 ‘여2’에서 반 바퀴를 더한 기술이다. 양학선이 창조했고, 성공했고, 세계가 놀랐다. 세계체조연맹(FIG)에 신기술로 정식 등재되면서 양학선의 성을 딴 ‘YANG’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난도 점수는 무려 7.4다. 세계에서 이 난도의 기술을 구사하는 선수는 양학선이 유일하다. ‘양1’의 위력은 어느 정도일까. 양학선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실수 없이 완벽히 착지한 선수랑 두 발을 움직인 선수가 있어요. 난도 7.4면 두 발을 움직인다고 해도 완벽히 착지한 선수를 이길 수 있는 높은 수준이에요.” 거침없다. 사실 세계 체조계를 뒤흔든 ‘양1’은 ‘베스트’가 아니었다. 다친 뒤 상태가 좋지 않은 발목을 고려해 그 정도로 자제(?)해 만든 것이다. 본인 스스로도 “완성도는 70%였다.”고 했다. 더 발전할 여지가 무궁무진하다는 뜻. 양학선은 더 진화된 ‘양2, 양3’를 만들겠다고 했다. “런던올림픽에서는 기술을 더 업그레이드해서 금메달에 도전할 겁니다.” 양학선은 일찌감치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두 살 위 형을 따라 우연히 체조를 시작했는데 이내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국소년체전 이단평행봉 동메달, 이듬해 링 금메달을 따냈다. 작은 키(160㎝·51㎏) 때문에 놀림도 많이 받았다. “주변 친구들이 ‘애기야, 너 언제 클래?’ 하면서 놀렸어요. 체조하면 키가 쑥쑥 클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제는 체조가 정말 좋아요.” 양학선의 체조 사랑은 이어졌다. “체조는 잘 모르고 그냥 봐도 멋있지 않아요? 5초, 10초에 승부가 나니까 지루하지도 않고, 박진감 넘치고요.”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기구와 씨름하다 보니 양학선의 양손은 굳은살투성이다. 하지만 호랑이 코치들의 따끔한 훈련을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체조장에 들어설 때마다 목표를 정한다고. ‘오늘은 딱 세 번만 뛰겠다.’고 하면 정말 세 번 하고 끝이다. 그만큼 집중해서 고품질의 연기를 선보인다. 애늙은이(?)처럼 목표도 또렷하다. 양학선은 “일단 제가 (나이상) 나갈 수 있는 세 번의 올림픽에서 연속 금메달을 따는 게 목표예요.”라며 눈을 빛냈다. 은퇴 후에는 체조의 인기를 높이는 데 힘을 쏟고 싶단다. “재밌게 놀면서 운동하는 ‘체조클럽’을 만들고 싶고요. 그러다 보면 일본이나 중국처럼 체조가 인기 종목이 되지 않을까요?”라고 묻는다. 패기 넘치는 약속도 했다. “런던올림픽요? 금메달 따면 진짜 재밌는 세리머니를 할 거예요. 아직은 비밀이에요.” 우리를 체조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올해 런던 하늘을 태극기로 물들일 이 청년, 양학선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조은지·명희진·홍인기기자 zone4@seoul.co.kr
  • “세계인이 입을 수 있는 모시옷 만들것”

    “세계인이 입을 수 있는 모시옷 만들것”

    “국적에 상관없이 누구나 입을 수 있는 모시옷을 만들고 싶습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한산모시짜기 보유자 방연옥(66·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씨는 28일 “모시는 다른 나라에도 있지만 한산세모시의 질이 으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30여년 전부터 모시짜기를 했다는 방씨는 요즘도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 한산모시관에서 하루 5∼6시간씩 모시를 짜고 있다. 방씨는 “모시는 통풍성이 좋고 빨아 입을수록 윤기가 흘러 더 고급스러운 맵시가 난다. 가장 가느다란 세모시는 ‘잠자리 날개’같이 가볍다.”면서 모시째기를 할 때 입술이 부르트고 피나 가 밥을 못 먹던 기억을 떠올렸다. 나중에는 입술에 굳은살이 박일 정도라고 했다. 모시의 품질은 입술로 찢어 모시섬유를 만드는 ‘모시째기’ 숙련도에 따라 품질이 좌우된다. 풀의 속껍질에서 실(태모시)을 짜내는 모시는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지 않으면 실이 뚝뚝 끊어진다. 이런 어려운 과정 때문에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고 안타까워했다. 방씨는 “이제 세계인의 전통이 된 만큼 기술을 배우는 후학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내 막내 딸도 10년 전부터 ‘이수자’로 기술을 배우고 있다.”면서 “대대로 한산모시짜기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게 내 작은 소망이자 의무”라고 말했다. 서천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씨줄날줄] 킬링 필드/박홍기 논설위원

    ‘서로 죽이고 죽는 일도, 종교도 없이,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것을 꿈꿔 보세요.’ 존 레넌의 대표곡 ‘이매진’(Imagine)이 흐른다. 캄보디아 현지인 기자 디스 프란이 생활하는 태국 국경의 수용소에 미국인 기자 시드니 쉴버그가 찾아온다. 둘은 눈물의 포옹을 한다. 프란은 캄보디아가 크메르루주 정권에 넘어간 뒤 쉴버그와 헤어져 모진 고문을 겪다 ‘죽음의 들판’을 지나 탈출했다. 1984년 제작된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킬링 필드’(The Killing Fields)의 마지막 장면이다. 킬링 필드는 크메르루주가 저지른 대학살로 생긴 집단 무덤이다. 500개가 훨씬 넘는다. 때문에 영화 제목도 ‘Fields’ 복수형이다. 영화는 1980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쉴버그의 ‘디스 프란의 생과 사’를 각색,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는 우정과 인간애를 다뤘다. 그러나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이다. 크메르루주의 야만과 광기를 다 담지도, 표현할 수도 없었다. 태국과 라오스 영토를 지배했던 앙코르와트의 영광을 구현했던 크메르 제국의 후예를 자처한 크메르루주는 1975년 집권해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자급자족형 농경공산주의, 지상낙원의 건설을 기치로 내걸었다. 부르주아라고 분류될 수 있는 지식인과 전문직·기술자층은 모두 죽였다. 가운데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였으면 펜을 많이 쓴 사람이라는 이유로, 손이 깨끗하면 노동자 계급이 아니라는 이유로 잔인하게 학살했다. 얼굴이 희다고, 안경을 썼다고, 피아노를 칠 줄 안다고…. 여자든, 아이든 가리지 않고 만행의 대상이 됐다. 비명소리를 덮으려고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기도 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이라고 할 수 없었다. 1979년 베트남 침공으로 붕괴될 때까지 최소 200만명이 처형되거나 질병과 영양실조 등으로 사망했다. 전 인구의 4분의1이다. 20세기 최악의 학살극 중 하나다. 킬링 필드의 핵심 전범 4인이 어제 32년 만에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ECCC) 법정에 섰다. 정권의 서열 2위였던 누온 체아를 비롯, 이엥 사리 전 외무장관과 부인 이엥 티리트 전 내무장관, 키우 삼판 전 국가주석 등이다. 수괴 폴 포트는 1998년 사망했다. AP통신은 “독일 나치 전범들을 단죄한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가장 주목받은 재판”이라고 규정했다. 희생자들의 한을 풀어주고 ‘반인륜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단죄해야 할 역사적 당위성을 가진 세기의 재판이다. 평화를 갈구하는 존 레넌의 노래처럼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박범신 “난 강력한 표창을 든 청년 작가”

    박범신 “난 강력한 표창을 든 청년 작가”

    “작가가 늙고 안 늙고는 서사 구조가 아니라 문장의 날에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고 원한 것이 아니기에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39번째 장편소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문예중앙 펴냄)를 내놓은 작가 박범신(65)은 ‘영원한 청년 작가’임을 강조했다. 다음 달 말에 막내아들이 결혼하고, 대학 교수직도 정년을 맞아 인생의 역할 3분의2가 끝난다고 말하는 작가의 모습이 허허로웠다. 미국 시인의 시구에서 제목을 따온 ‘나의 손은’에는 자본주의의 폭력성에 대해 강력히 발언하고 싶다는 작가의 주제 의식이 담겼다. 소설이 발화된 계기는 한 재벌 회장이 사람을 패고 돈을 준 사건이었다. 작가는 “실내 야구장처럼 돈만 내면 사람을 팰 수 있는 세상 구조가 굉장히 나를 괴롭혔다.”고 말했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방화범으로 몰려 4년간 갇혔던 교도소에서 출옥하고 노숙자로 10여년을 떠돌다 고향으로 돌아온다. 개를 잡는 일을 했던 아버지와 살았던 무허가 판자촌 자리에는 원룸빌딩 ‘샹그리라’가 들어서 있다. 우연히 집주인 이사장에게 관리인으로 고용된 ‘나’는 잔혹한 자본주의의 표본과 같은 이사장의 잔인성을 볼 때마다 손바닥에 생겨난 말굽이 단단해진다. ‘나’는 폭력의 화신인 말굽이 날뛸 때마다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희대의 연쇄살인마 또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보고서로 읽힐 수도 있는 ‘나의 손은’은 여러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시골 마을에서 악의 화신이 각종 이권을 누리며 군림한다는 설정은 만화 ‘이끼’와 비슷하고, 사이비종교에 대한 묘사에서는 소설 ‘1Q84’가 생각난다. 주인공 ‘나’의 개장수 아버지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수취인불명’의 등장인물 같기도 하다. 작가는 어디선가 본 듯한 대중적인 이야기라는 의견에 “문장이 함유한 다양한 중층 이미지가 있기에 똑같은 이야기를 써도 똑같은 평가가 나오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 역시 ‘촐라체’처럼 인터넷에 연재됐다. 작가는 컴퓨터로 6개월간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손바닥에 말굽과 같은 굳은살이 생기는 느낌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60대 작가인 황석영, 최인호에 이어 박범신의 신작까지 가세하면서 한국 문학계는 최근 남성 독자의 유입으로 활기를 얻고 있다. 특히 박범신의 ‘나의 손은’은 25년간 문학 청년을 지도한 작가의 흡입력 있는 문장과 섬뜩한 하드 고어 영화 같은 분위기 등으로 ‘읽을 만한 소설이 없다’는 갈증에 시달렸던 남성 독자들을 충분히 만족시킬 만하다. 게다가 악의 화신 이사장에게 바쳐진 아기보살이 ‘소녀시대’ 춤을 추는 장면의 묘사는 노래 가사처럼 반짝반짝 눈이 부시다. 작가는 그 비결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제자들과 노래방에 가는데 모두 연예인처럼 춤을 춘다. 춤 동작에 대한 묘사를 해오라고 했더니 문학도답게 잘 해오더라.”고 털어놓았다. 1973년 등단해서 39년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온 그는 최근 1년 반 동안 ‘은교’ ‘비즈니스’ 등 세 권의 장편소설을 내는 무서운 생산성을 과시했다. 하지만 “양으로는 도스토옙스키만큼 못 썼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술을 먹어도 심심하고, 일을 해도 심심하다. 글을 쓸 때만 완벽한 구원의 느낌을 받는다.”는 박범신은 뭘 쓸지 모르겠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여름이 지나면 고향인 충남 강경에 거처를 마련해 내려갈 계획이라는 작가는 “강력한 표창을 든 청년 작가로 진군해볼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앞으로 10년간 열심히 써보려고 한다는 박범신이 있기에 한국 문학은 더 흥미진진할 것 같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내 정치를 말한다] (6)조승수 진보신당 의원

    [내 정치를 말한다] (6)조승수 진보신당 의원

    대학에서 군사독재 반대를 외치다 제적당하고, 공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구속됐던 내가 시의원과 구청장을 거쳐 진보정당 최초의 지역구 국회의원까지 됐다. 단 한순간도 편한 적 없었던 내 인생 한가운데엔 짠 바다 냄새와 메케한 화약 연기가 뒤섞였던 고향 울산이 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운동의 메카, 진보 1번지가 된 울산. 이곳에서 나는 사회과학 서점을 차리고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법 파견 철폐를 외치며 분신했던 봄날, 내 손을 잡고 “노동자는 하나.”라며 눈물을 글썽일 때 나는 다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진짜배기 진보 정치인으로 서 있겠다고. 진보정치와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렇듯 내 정치의 굳은살이 됐다. 어린 시절 난 평소에는 조용한 편이었지만 억울한 일을 당하면 앞장서 대드는 소년이었다. 그런 탓인지 동국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민주화 투쟁에 뛰어들었다. 군사독재를 반대하는 유인물을 돌렸고 1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뒤이어 인천에 있는 공장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다시 한번 징역(징역 10개월, 자격 정지 1년)형을 받게 됐다. 1988년 울산에서 인문사회과학 서점(신새벽)을 열고 당구장을 개업하면서 새 인생을 시작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민운동과 환경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고, 울산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을 만드는 데도 참가했다. 활동을 할수록 ‘이제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32살의 어린 나이에 기초의원 출마를 결정했다. 1998년 최연소 구청장, 민주노동당 창당, 2004년 총선 당선. 조금씩 조금씩 진보 정치의 희망을 일궜다. 30대와 40대를 선출직 공직자로 살아가면서 한나라당, 민주당의 양당 구도가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800만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변하지 못했다. 국회에서 에너지복지법, 하도급거래 공정화법, 사회복지세법을 만든 것은 작은 시작이다. 이제 진보정치를 향한 더 큰 꿈이 익어가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진보적 교수 단체 등과 오는 9월까지 새로운 진보 통합 정당을 창당하려 한다. 한국 정치 구도를 보수, 자유, 진보로 나누기 위한 첫 발돋움이다.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 아들과 함께 ‘등록금 촛불 집회’에 앉아 있는 이 순간에도 ‘서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챙기는 정치’, ‘밥 먹여 주는 민주주의를 챙기는 정치’를 꿈꾼다. ● “참여당 한·미 FTA 반성 안하면 공조 못한다” →왜 정치를 하나. -(비정규직 노동자 등 어려운 이웃에 대한) 부채 의식 때문이다. 진보적 의제를 하나하나 이뤄갈 것이다. →최연소 시의원과 최연소(34세) 구청장이었다. 특별한 의미가 있나. -큰 선거에만 희망을 쏟지 말고, 지방선거에도 참여해 진보정치를 확산하자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핵심 지지 기반인 현대차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에는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지역 핵심 기반과 정치 핵심 의제가 상충하는 것 아닌가. -현대차 노조의 지지는 노동자 권리와 진보정치를 지킨 데 대한 응원이 아닐까. 현대차 노조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의 산별 전환은 노동운동의 대의를 잊지 않았다는 증거다. 진보 전체의 책임을 개별 기업에 물어서는 안 된다. →진보 대통합 논의와 관련, 지난 11일 전국위원회에서 진통이 심했다. -독자파는 합의문 동의안을 상정한 뒤 기권했고, 통합파는 동의안이 성립 안 된다며 기권했다. 정치적인 의사 표현이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합의문을 왜곡한다며 조 대표를 비판했다. -결혼식 날짜 잡아 놓고 바람 피우는 것 아니냐는 표현까지 당내에서 나왔다. 부적절한 동맹에 대해 언급한 것은 부적절한 언행이다. →그럼에도 이정희 대표와 유시민 국민 참여당 대표가 거리를 좁히고 있는데. -부부가 재결합하려는데 유랑극단 3류 가수가 추파를 던져 불편하다. 유 대표가 진보정치를 소수파 전략으로 폄하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참여당이 신자유주의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성찰하지 않는 이상 동행하기 어렵다. →진보 대통합이 실패할 경우, 다음 진로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실패를 가정하고 싶지 않다. →민주당은 진보정당과 합의할 정책이 많아졌다는데.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엔 샛강이 있지만 진보정당과 민주당 사이엔 한강이 흐른다. 시간 낭비다. →분당 때 선도 탈당파였다. 지금 통합에 앞장서는 이유는. -민주당을 대안 세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국민들이 많다. 진보 정치가 도약할 수 있는 기회다. →정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최종 꿈은. -진보 진영 첫 광역단체장을 만들고 싶다(울산시장이냐고 묻자 부정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보스턴 마라톤에 도전하고, 목수가 돼서 내 집을 짓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노회찬·심상정 상임고문을 평가한다면. -노회찬 상임고문은 모든 사안을 대중적 언어로 풀어내는 능력이 있다. 심상정 상임고문은 당차고 친화력과 추진력이 뛰어나다.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를 꼽는다면. -조국 교수, 노회찬·심상정 상임고문,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 진보 인사들이 국민경선으로 단일 후보를 결정하면 얼마나 좋을까.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1962년 울산 출생 ▲동국대 생명자원경제학과, 울산대 정책대학원 행정학 석사, 동국대 북한학과 박사과정 수료 ▲울산·인천 등에서 현장 노동자 활동 ▲울산 사회과학서점 ‘신새벽’ 운영 ▲민중당·진보정당추진위원회 활동 ▲울산광역시의원, 울산참여연대(준) 공동대표 ▲울산북구청장 ▲진보정치연구소장·에너지정치센터 대표 ▲17·18대 국회의원 ▲(현) 진보신당 대표
  • 유명모델 김유리 숨진채 발견…미니홈피에 자살 암시

    유명모델 김유리 숨진채 발견…미니홈피에 자살 암시

    유명 모델 김유리가 숨진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18일 오후 6시쯤 서울 삼성동 한 원룸에서 김유리가 숨져있는 것을 친구 김모씨가 발견해 신고했다. 김씨는 경찰에서 “어제(17일) 오전까지 통화를 했는데 그 이후로 연락이 안 돼서 집에 가보니 죽어 있었다.”고 말했다.  김유리는 17일 오전 ‘잠이 안 와 신경안정제를 먹고 자려고 한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원룸에는 신경안정제와 감기약 등이 있었지만 약물을 과다 복용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20일 시신을 부검해 정확한 사인을 밝힐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발견 당시 김유리의 허벅지는 남자 발목 굵기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골반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마른 상태였다.”고 말했다.  김유리는 지난 16일 새벽 자신의 미니홈피에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김유리는 “아무리 생각해봐도…백번을 넘게 생각해보아도… 세상엔 나혼자뿐이다.”라며 외로움을 토로했다. 앞서 2005년 8월에도 미니홈피에 ‘자살’이라는 제목으로 “자살은 비겁한 자의 마지막 비겁한 행동이다. 하지만.. 비겁하지 않으면 끔찍한 일과 맞닥들이게 되는 걸”이라는 글을 올렸다.  2007년 4월에는 “너희들이 밥 한공기 먹을 때 우린 반공기 먹으면서 저녁 6시 이후론 물도 입에 대지 않았고 너희들이 레스토랑 가서 스테이크 썰고 있을 때 우린 옆에서 웨이터한테 다이어트 식단 추천을 받았고, 너희들이 의자에 앉아서 간식 먹으며 공부할 때 우린 운동장 뛰고 줄넘기하며 미친 듯이 땀 흘렸고, 너희들이 말로만 살 빼야 한다고 난리칠 때 우린 줄자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재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평소에도 하이힐 신고 연습하느라 발가락에 굳은살 물집이 터져서 여름에 샌달 신으면 테도 안 나고 워킹 못한다고 교수님, 강사님, 선배님들께 눈치받고 맨날 눈물 흘리고 어깨가 틀어졌다 골반이 삐뚤다 다리가 짧다 어깨가 좁다 등이 굽었다 별에 잔소리를 들으면서 자세 교정하는 거 너희들이 알기나 하느냐.”고 애환을 털어놓기도 했다.  김유리는 2007년 슈퍼모델 선발대회로 데뷔한 뒤 전문 패션모델로 활동했다. 2009년에는 자전거 홍보대사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서울컬렉션 등 많은 무대에 올랐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서울신문 2011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미치가 미치(이)고 싶은/차현지

    [서울신문 2011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미치가 미치(이)고 싶은/차현지

    아저씨의 아내가 임신을 했다. 아이는 5개월짜리. 5개월 전에 아저씨의 정액이 아내의 질을 파고들어 거센 산성반응에도 끝끝내 굴복하지 않고 수정란을 착상시켰다. 5개월 전이라면 아저씨와 내가 종로 3가 나이스 모텔 205호에서 새벽 내내 서로의 배꼽 속에 손을 넣었던 때다. 나와 만나기 전날이거나 혹은 다음날에 아저씨는 아내와 같이 잠자리에 들었고 기계적인 성교를 했을 것이다. 아저씨의 아내는 궁색한 가짜 신음소리 내기에 바쁜 여자니까. 아저씨는 여자의 신음소리에 민감하다. 신음소리의 진위 여부를 따지는 것에 편집증 환자처럼 집착한다. 그런 아저씨가 나를 좋아하는 까닭은 단 하나. 나는 가짜 신음소리 따윈 내지 않는다. 오로지 진심. 나는 진짜에게만 연다. 그것이 성대든 밑구멍이든 간에. 오늘 만나. 삐리릭. 교실 한구석에서 체육복을 베개 삼아 누워 있던 나는 문자를 확인하고 곧장 가방을 싼다. 든 것도 없는 가방을 메고 나는 교실 밖으로 향한다. 교문을 빠져나오는 도중에 아저씨에게 한 번 더 문자가 온다. 우리가 만나는 시간과 장소가 적힌, 매우 절약적인 문자. 럭셔리 라운지 모텔 507호. 아홉 시. 아홉 시까지, 아홉 시간이나 남았다. 그날도 여지없이 바람이 불었다. 아저씨와 만나는 날은 어쩐지 모르게 세찬 바람이 분다. 한반도가 원래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었나? 아저씨는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말했다. 그러게요. 치마 밑단이 바람에 너풀거렸다. 얘, 허벅지 다 보인다. 아저씨가 말했다. 알아요. 그냥 내버려 두는 거예요. 넌 참 미쳤구나. 그래서 이름이 미치인가 보구나. 아저씨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갔더니 장례를 다 마친 식구들이 둘러앉아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하나 둘씩 꺼내고 있었다. 넌 그새 또 어디 갔다 왔니. 그냥 잠깐. 나는 대충 둘러대고 방으로 들어갈 셈이었다. 그런데 할머니. 할머니가 안 보였다. 엄마, 할머니는? 하고 물어보려던 찰나, 내 방 문 틈새로 할머니의 굽은 등이 보였다. 굽은 등은 서서히 몸을 웅크리며 일정한 리듬에 맞춰 떨었다.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 나는 다음날도 아저씨를 만났다. 삼성동 명아장 모텔 313호. 시간은 오후 아홉 시. 나는 근처 화장실에서 교복 와이셔츠를 벗고 보라색 민무늬 원피스를 입었다. 바람이 찼다. 나는 여덟시 오십 오 분에 모텔에 도착했다. 내가 313호의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아저씨가 다 벗은 몸으로 누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이. 아저씨가 인사했다. 방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쾌적한 향내가 풍겼다. 오히려 첫 번째 갔던 곳이 적당히 촌스러우면서 마음이 편했다. 옷을 못 벗겠어요. 내가 말했다. 아저씨는 보라색 민무늬 원피스를 아래에서부터 위로 벗겨냈다. 그리고는 내 몸 이곳저곳을 꾹꾹 누르듯이 만져댔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냥 참았다. 나는 아저씨가 하라는 대로 몸을 열고 젖히고 오므리고 뒹굴었다. 두툼한 손가락처럼 두툼한 아저씨의 뱃살이 출렁거리며 내 피부에 닿았다. 남의 살을 맞대는 것이 기분이 나빴다. 아저씨의 거죽에 파묻혀 질식할 것 같았다. 물론 아저씨가 그렇게 뚱뚱하지는 않지만 그냥 남의 살결, 살 틈으로 새어나오는 냄새 같은 것이 어쩐지 두려웠다. 한 차례 사정이 끝나고 난 뒤에 아저씨는 모로 누워 담배를 피웠다. 그때까지 나는 아저씨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얘, 너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아저씨가 슬쩍 내게 말을 건넸다. 미치. 미치예요. 아아, 그래. 그래서 내가 너에게 미쳤다고 말을 했었지. 네에. 근데 전 미치진 않았어요. 그냥 미치일 뿐이에요. 음, 그래. 하지만 좀 특별한 이름이구나. 네에. 미카엘 같은 거랑 연관된 건 아니에요. 음, 그렇구나. 그렇다면 미치는 무슨 뜻이니? 미치는 그냥 미치인데요. 별 뜻은 없어요. 음, 그렇구나. 아저씨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대화를 끝내겠단 듯 자세를 고쳤다. 등 돌린 아저씨의 넓은 등짝이 우스워 보였다. 나는 아저씨의 담배를 빌려 등짝에 무어라 쓰고 싶었다. 등신이라고. 그때 아저씨 이름을 물어보면 좋았을 걸. 아직도 나는 아저씨 이름을 모른다. 장씨, 김씨, 윤씨, 최씨. 개중에 하나겠지. 여하튼 내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성씨일 거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아저씨의 두툼한 손가락과, 출렁이는 뱃살, 수염자국이 난 얼굴피부뿐이다. 정수리 근처가 조금 휑한 거나 금이빨로 된 어금니가 하나 있다는 것, 배꼽부터 무성한 털이 하반신 전체를 뒤덮고 있다는 것과 생각보다 발이 아담한 것, 그리고 오른쪽 팔뚝에 개에 물린 자국 같은 게 있다는 것까지. 아저씨의 흉터는 곧 아저씨의 이름이었다. 아저씨와는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 만났다. 만나는 장소는 서울 전역. 아저씨는 최대한 겹치지 않도록 고심하여 장소를 물색하는 것 같았다. 한 번도 같은 동네, 같은 모텔을 반복해서 간 적이 없었다. 생각보다 서울은 넓었다. 구석구석 늘어선 골목과 로터리가 답답할 정도로 복잡했다. 위로 세우고 벙커를 만들고, 한정된 공간의 쪽수를 넓히거나 한 칸짜리 공간을 좁히거나 하는 식으로 자꾸만 넓어져 가는 서울. 뚝딱뚝딱 완공이 끝나면 어디에선가 증축이 시작되고, 어딘가가 매끈해지면 다시 어딘가가 더럽혀졌다. 더럽혀진 부분을 메우는 동안 또 어딘가가 파괴되고 무너져 갔다. 할아버지는 폭설이 내리던 날, 보도블록에서 미끄러져 죽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병원으로 후송된 지 십 칠 분 만에 사망선고를 받았다. 가족들은 오래 살다 가셨으니 여한 없으시리라 판단, 호상이라 여기며 잔칫집처럼 장례를 치렀다. 여기저기서 웃고 떠들고 화투 패를 돌리고 거나하게 취해 노래를 불러대고. 삼일 중 이따금씩 곡소리가 들렸으나 그것도 매우 형식적이었다. 하하호호 웃다가 누군가 곡소릴 내면 얼마간 따라 울어주고, 딸꾹질 멈추듯 뚝 그치면 다시 하하호호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란 내가 밖으로 빠져나와 교복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 순간, 아버지가 홀연히 담배를 물며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서울에서 보는 별은 참 폼이 안 나. 아빠는 소주가 담긴 종이컵을 조심스레 한 모금씩 마셨다. 아빠의 왼손에 달린 담배가 빨간 불씨를 태우며 양복바지를 위협했다. 그거 탈 거 같은데. 내가 말했지만 아빠는 듣지 못했다. 염병할 양반. 보도블록에서 고꾸라지기는. 아빠는 색색의 벽돌이 지그재그로 놓인 보도블록을 얼마간 쳐다보다가 가래침을 뱉었다. 카악, 퉤. 아직 녹지 않은 눈에 가닿은 가래침은 희부연 노란빛을 풍겼다. 아빠는 다 태우지도 않은 담배와 함께 종이컵을 집어 던졌다. 소주가 바닥을 치고 튀었다. 아빠는 불콰해진 얼굴을 하고 다시 식장 안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아저씨에게 문자를 넣었다. 아저씨 뭐해요. 그러나 답장은 오질 않았다. 실은 한 번도 먼저 연락해 본적이 없었다. 뭐하냐고. 역시 묵묵부답. 차라리 보내지 말 걸, 두 번씩이나 씹혔다. 쪽팔리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가 도착했다. 미친이구나. 오늘 만날까? 미친이라니, 내가 분명 미치지 않았다고 했을 텐데. 미친 아저씨. 나는 눈에 젖은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곧장 아저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내가 병원 앞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서성이는 동안 아빠는 병원 건물 귀퉁이 어딘가에서 토를 하고 있었다. 아빠는 대충 토하는 것을 마치고는 보도블록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얼굴 표면이 토사물 범벅이었다. 아빠의 긴 속눈썹에 연주황색으로 변한 실파가 붙어 있었다. 더럽게시리. 나는 다시 대로변으로 눈길을 돌렸다. 택시는 쉽게 잡히지 않았고 나는 얼마간 더 병원 앞에 서 있어야 했다. 한쪽 손을 기계처럼 흔들면서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빠 말대로 별 몇 개가 우스운 크기로 떠 있었다. 저게 무슨 별이야. 그러는 사이에 택시가 잡혔다. 어디 가십니까? 하고 물어오는 택시 아저씨에게 별 보러요, 라고 말할 뻔했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삼일 내내 나는 아저씨를 만났다. 만나서 하는 일이라곤 섹스가 전부였고, 섹스가 끝나고 치르는 비릿하고 울적한 냄새들을 소멸시키는 일에 신경 쓰느라 내 가방 속에 구겨져 있을 교복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다. * 아저씨의 아내가 임신을 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손가락으로 시트자락을 빙글빙글 말았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하면서 어떻게 대꾸를 해야 될까 하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아저씨에게서 아내 얘기를 그만 들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했다. 왜 애를 가졌어요? 내가 아저씨 배꼽에 손을 집어넣고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아저씨는 간지러웠는지 실실 웃으며 좌우로 몸을 배배 꼬았다. 내가 가진 건 아니고 아내가 가진 거지. 아저씨는 말했다. 그렇지만 아저씨 꺼가 필요하잖아요. 음, 그렇긴 하지만 뭐 그거랑 그거랑 같은 일로 봐서는 좀 그렇지. 그거랑 그거랑 원래 같은 거 아니에요? 그걸 해야지 그걸 할 수 있잖아요. 에이, 하지만 언제나 그걸 하려고 그거 하는 거 아니잖아. 아아, 하긴. 우리도 그거 하려고 그거 하는 거 아닌 것처럼요? 으응, 그래 맞아. 골치가 아픈 일이지, 그거는. 우리는 너무나 많은 그거를 사용했고, 나중에 가서는 굳이 그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에서까지 그거 타령을 했다. 그러다가 대화의 종반부에서는 그거가 무엇을 뜻하는지, 어디에서부터 그거를 그거로 불렀는지, 그거가 그거가 아닌 다른 그거인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대화를 마치고 다시 등을 돌려 누웠을 때, 아저씨의 등과 내 등이 맞닿았다. 나는 차갑고 아저씨는 뜨겁다. 섹스를 하고 나면 아저씨가 차가워지고 내가 뜨거워진다. 척추를 나란히 두고 우리는 열과 냉을 반복적으로 옮겼다. 열탕과 냉탕을 번갈아 가는 기분이었다. 아저씨도 참 후졌다. 내가 말했다. 아저씨의 등줄기가 움찔했다. 글쎄 내가 만든 게 아니고 아내가 만든 거라니까. 아저씨가 발로 내 종아리를 간질였다. 굳은살이며 티눈이 박인 피부 표면이 까끌까끌했다. 어떻게 하면 애를 낳을 생각을 해요? 너무 구려. 너무 너무 구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어떤 시대기는, 잘 먹고 잘사는 시대지. 너무 구려. 태어나는 일 자체가 구린 시대예요, 지금 이 시대는. 미치. 너는 너무 어린데, 너무 많은 걸 봤어. 그러니까 지금 이러고 있잖아요. 씨발. 나는 울먹였다. 아저씨가 발로 장난치는 것을 멈추었다. 다시 몸이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그 애 낳으면 나 꼭 보게 해줘요. 음, 그래. 그럴 수 있다면 뭐, 그렇게 해보지. 아저씨는 말을 이으며 침대를 빠져나갔다. 어디가요? 똥 누러. 아저씬 왜 만날 그렇게 똥을 싸요? 모르겠어. 난 너만 보면 똥이 마려워. 아내 앞에서는요? 집이건 회사건 똥 싸는 일이 고역인데, 난 너만 보면 똥구멍이 빠져버릴 거 같아. 나는 킥킥대며 웃었다. 똥을 싸고 싶어 재빠르게 화장실로 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나만 보면 똥이 마렵다는 아저씨. 나는 또 한번 아저씨에 관한 흉터를 진하게 새겼다. 똥냄새를 풍기며 침대로 돌아온 아저씨와 뒹굴다가 말고 문득 할머니 생각이 났다. 여든 여덟의 할아버지와 함께 육십 년을 살아온 할머니. 할머니는 일흔 일곱. 열한 살 연상의 남편을 마주 대하며 겪었을 무수한 고통을 유순한 고집과 무지한 강직함으로 이겨낸 할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삼 년 전에 서울로 올라왔다. 평생 동안 밭을 일구고 소를 키우며 지냈던 고향을 저버린 것은 할머니의 류머티즘 관절염이 심해진 탓이었다. 밭을 안 일구면 되지 않냐, 그냥 일 안 하고 시골에 계속 계시면 안 되냐, 하고 심술을 툴툴 부린 내게 엄마는 꿀밤을 먹였다. 네가 시골에 가서 한 번도 살아보질 못해 이러는구나. 시골에 산다는 것 자체가 일이다. 일을 안 하고 살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곳이야. 등불이 없는 동굴 같은 곳이라고. 그렇지만 친하지도 않은 어른들과 함께 부대껴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걱정 마. 따로 모실 거니까. 따로 사는 데엔 나보다 엄마 몫이 더 컸다. 아빠는 미적지근하게 그러지 뭐, 하며 우리 집 근처에 값이 싼 아파트를 골라 전세계약을 했다. 십육 평형 아파트는 지은 지 이십 년이 넘었다. 군데군데 갈라진 틈새며 월마다 꼬박꼬박 작동 점검을 하는 엘리베이터가 기괴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것 때문에라도 할머니 집에 잘 가지 않았다. 가끔 식용유나 세제 같은 걸 사들고 가는 아빠에게 거기 귀신 나올 것처럼 음산해, 라고 말하면 아빠는 내 콧잔등을 쿡 치면서 노인네들 잠자리 뒤숭숭하게 함부로 말 놀리지 말라고 대답했다. 그깟 귀신, 어차피 동년배들 아니겠어? 속으로 나는 생각했다. 할머니 집 전세계약이 얼마 안 있어 끝날 참이었다. 재계약 여부에 대해 곰곰이 따지고 있던 엄마는 되레 계약기간 전에 죽어버린 할아버지를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또 조금 원망하기도 했다. 엄마는 짐들이 가득 들어찬 다용도실을 대충 비워내고 할머니가 덮을 이불을 마련했다. 할머니는 풀지 않은 짐짝처럼 더욱 몸을 웅크리며 집으로 들어왔다. 때때로 자정에 가까운 시간, 내가 비릿한 정액 냄새를 풍기며 집으로 들어오면 건넌방에 있던 할머니가 빠끔히 문을 열고 나를 들여다봤다. 내가 왜요? 라는 기색으로 노려보면 이내 주춤거리는가 싶게 눈을 피하다가는 언제 왔는지 모르게 다시금 내 쪽을 살폈다. 내가 한 번 더 뭘 봐요? 라는 표정으로 찌릿, 눈빛을 쏴주면 그제야 다 알겠다는 듯 체념한 얼굴로 방문을 닫았다. 기분 나빠. 내가 닫힌 방문 틈새로 들릴 만큼 크게 말했다. 그럼 방문 너머로 할머니가 쪼그라든 풍선처럼 한숨을 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별 몇 개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옹졸하게 쪼그라든 것이 언젠가는 점점 작게, 그보다 더 작게, 그래서 결코 보이지 않을 것처럼 아득해질 것만 같았던 별들. 마치 할머니의 쪼그라든 유방처럼. 너네 엄마니까 네가 알아서 해. 안방에서 언성 높이는 소리가 들렸다. 구질구질한 부부싸움이 또 시작됐다. 카악, 퉤. 아빠의 가래침 뱉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어디서 뱉어 진짜? 엄마가 이전보다 한 톤 높게 소릴 질렀다. 카악, 퉤. 카악, 퉤. 의식적으로 가래를 뱉다가 사래 걸린 아빠가 연신 밭은기침을 토했다. 조금 과장이다 싶게. 나는 방밖으로 나가볼까 하다가 귀찮아져서 그냥 침대에 누웠다. 모텔과는 다른 차원의 이불을 손끝으로 매만지다가 말고 할머니가 궁금해졌다. 엄마 아빠는 아무래도 버려진 짐짝처럼 놓인 할머니 따위는 신경 안 쓰는 것 같다. 미친 엄마 아빠. 나는 방문을 열고 건넌방에 있는 할머니를 살핀다. 방문이 미세하게 열려 있다. 아마도 할머니가 직접 살짝 문을 열어 놓았을 터. 문과 문턱이 아귀가 딱 맞게 붙어 있지 않고 약간 틈을 벌리고 있다. 그 미세한 틈처럼 할머니는 숨을 쉬고 있는지 몰랐다. 사방이 막힌 곳에서, 끝없이 유입되는 물세례에 허덕이듯이. 할머니 서럽겠다. 짝이 없으니 얼마나 비참하겠어. 네 아저씨는요? 아저씨의 귓불을 빨면서 내가 물었다. 그건 여자에게만 국한된 일이야. 남자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아예 머릿속에 그런 게 없어. 이 사람 없으면 죽겠다 싶은 그런 게. 결혼 왜 했어요? 내가 묻자 아저씨는 뜸을 들였다. 글쎄, 돈을 모아야 하니까. 그리고 어쨌든 옆에 사람이 있어야 좋지 않겠어? 남자란 게 그래. 챙겨주고 입혀줄 사람이 꼭 필요하지. 좆나 후졌네, 남자들이란. 내가 말을 마치자 아저씨가 깔깔 웃었다. 뭐가 웃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기분이 나빴다. 미친 아저씨. 뭐 이런 게 다 있지? 덜 말린 해초처럼 무성한 아저씨의 풀숲을 헤치다 말고 나는 입을 뗐다. 입술에 빳빳한 음모가 달라붙었다. 에이, 좀더 해주지 그래. 아저씨가 눈을 감은 채 말했지만 나는 그냥 일어났다. 반투명한 유리 칸막이로 된 화장실로 들어가 온몸을 빡빡 문질러대며 샤워를 했다. 아저씨가 따라 들어왔다. 에이, 미치. 섭섭하게 왜 그래. 아저씨가 내 팔뚝에 묻은 거품을 닦으면서 품에 안으려 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샤워기를 아저씨 방향으로 틀었다. 뜨거운 물줄기가 아저씨 살갗에 닿았다. 앗 뜨거워. 아저씨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오늘은 안 할래요, 피곤해요. 저리 가요. 이제 만지지 마요. 아저씨는 몸에 묻은 물기를 털고 아쉬운 표정으로 나갔다. 내가 샤워를 마치자 아저씨는 침대에 걸터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미치. 앞으로 삼주 정도 못 봐. 나는 왜냐고 물어보려다 그냥 말았다. 아내랑 여행을 갈지도 모르겠어. 아무래도 애 낳기 전에 좀 돌아다녀야 될 것 같아서. 애가 나오면 피곤해지잖아. 나는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매만지며 물기를 닦았다. 외국을 다녀올까 해. 연차랑 휴가 당겨쓰니까 삼주 정도 여유가 생기더군. 나는 대충 로션을 찍어 바르고 옷을 챙겨 입었다. 가방 속에 든 교복을 입을까 하다가 그냥 관두었다. 아내가 더블린에 가고 싶다네. 난 애초에 더블린이 어디 박혀 있는 덴지도 몰랐다니까. 그냥 동남아 일대나 둘러보고 올 것이지, 무슨. 대충 스타킹까지 신었다. 주머니를 쑤셔 담배를 찾았다. 아저씨가 담배를 건넸지만 무시했다. 삼주 뒤엔 웃으며 보자. 내가 널 좋아하는 건 명랑해서야. …… …… 삼주 동안 똥 못 싸서 어떡해요? 그러게. 그걸 생각 못 했네. 아저씨는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 픽 웃었더니 아저씨가 갑자기 나를 들어 침대 중앙으로 눕혔다. 아직 화 안 풀렸거든요? 내가 말해도 묵묵부답. 아저씨가 좋아하는 보라색 원피스가 내 몸에서 멀어졌다, 부득이하게. 아저씨는 이전보다 더 맹렬하게 내 몸 이곳저곳을 들쑤셨다. 그때 처음으로, 진짜 신음소리라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엉덩이에 푸른 멍이 흉터처럼 들어 있었다. 언제고 지워질 것이 빤한 흉터가. * 아저씨는 정말 삼주 넘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는 오랜만에 학교엘 갔다. 책상에 엎드려 잘까 하다가 그냥 수업을 들었다. 의자에 등을 펴고 앉아 있었지만 역시 좀이 쑤셨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 종이 쳤다. 삼삼오오 모여 있던 애들이 자리로 가 책상을 정돈했다. 아직 선생이 오질 않았다. 틈을 타 가방을 몰래 들고 빠져 나왔다. 이제 어디든 갈 곳을 찾아야 했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갑자기 누가 말을 걸었다. 쎄미였다. 나도 데려가. 미친년. 귀찮게시리. 우리는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탔다. 어디 갈 건데? 몰라. 뭐야, 시시하게. 그럼 나 따라와. 그러든지. 우리는 번화가 로터리에서 내렸다. 쎄미는 지하철역으로 나를 데려가더니 역사 안 물품보관함에서 옷을 꺼냈다. 초록색 미니 원피스였다. 넌 갈아입을 거 없어? 나는 가방 안에 든 보라색 민무늬 원피스를 꺼내 보였다. 우리는 쌍방울자매처럼 원피스를 맞춰 입었다. 쎄미가 아이라이너와 립스틱을 주었다. 나는 어설프게 아이라인을 그리고 립스틱을 발랐다. 우리는 피시방으로 갔다. 모니터 한 대를 앞에 두고 나는 쎄미가 게임하는 걸 지켜보다가 졸았다. 얼마 안 있어 쎄미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이제 나가자. 시계를 보니 일곱 시였다. 번화가 로터리는 반짝이고 있었다. 온갖 조명 세례에 비둘기들은 나뭇가지 위로 종적을 감췄다. 보도블록은 연이어 뱉은 껌들과 담배꽁초로 넘쳐났다. 쎄미는 로터리 변방에 있는 건물로 나를 인도했다. 색이 누런 간판에 조명도 시원찮은 것이 딱 학생들이 숨어 술 마시기 좋은 곳이었다.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자 짜리몽땅한 할머니가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손짓으로 인사를 했다. 쎄미가 샐쭉이 웃어 보이며 익숙하게 소주 두 병과 부대찌개를 시켰다. 할머니는 그제야 태연히 일어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는 가방 안에 있던 담배를 올려놓고 주변을 살폈다. 태반이 고등학생들처럼 보였다. 잘 하지도 못 하는 술을 마시며 저들끼리 신나게 놀고 있었다. 쎄미는 재떨이를 제 앞에 가져다 놓고 그새 담배를 두 대나 피웠다. 나도 라이터를 꺼내 담뱃불을 붙이려는데 어디선가 쎄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쎄미, 오랜만이다. 쎄미가 남자애 둘에게 알은 체를 하며 나를 쳐다봤다. 옳다구나, 같이 놀자는 소리로군.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키가 큰 자식이 쎄미의 옆자리로 가 앉았다. 뒤이어 눈썹이 숯덩이처럼 진한 남자애가 내 옆자리에 비집고 들어왔다. 그새 할머니가 전골냄비가 올라간 부르스타를 들고 와서는 퉁명스레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쎄미와 그 옆에 앉은 꺽다리가 계속해서 술잔을 기울였다. 취하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았다. 나는 수저를 가지런히 정리하는 숯덩이 눈썹에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담배를 피웠다. 자박한 국물에 퐁당퐁당 빠져 있는 햄 조각과 두부, 콩나물과 양파. 찌개는 어쩐지 팔팔 끓여도 맛있을 것 같진 않았다. 앞에 두 사람이 기어이 취한 척을 하며 서로 부둥켜안을 때쯤 나는 수저를 들어 국물을 맛보았다. 그랬더니 옆의 숯덩이도 냄비에 제 수저를 꽂았다. 나는 맥주에 콜라와 소주를 조금씩 섞어 숯덩이에게 주었다. 숯덩이가 고마워하며 답례로 자신도 타주겠다고 했다. 각자 서로가 타준 폭탄주를 마셨다. 어쩐지 머리가 핑 도는 기분이었다. 쎄미와 꺽다리는 팔짱은 물론 어깨동무며 심지어는 서로에게 입술까지 드밀며 야단이었다. 소주를 일곱 병쯤 마셨던가. 그 와중에도 쎄미가 자리를 뜰까봐 손을 꼭 부여잡으면서 집에 바래다주겠다는 꺽다리가 숯덩이에게 눈질을 보냈다. 무언의 암시 같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거행된 약속이 있었던 듯싶다. 쎄미는 비에 젖은 이불처럼 꺽다리의 팔뚝에 안긴 채 실려 나갔다. 이윽고 숯덩이와 나만 남았다. 숯덩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쭈뼛거렸다. 우리도 일어나지 뭐. 벌써 가게? 그럼 더 있으려고? 시간 별로 없어. 밤은 못 새. 숯덩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끔벅였다. 유치한 반응. 어디로 갈 건지는 정했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숯덩이. 아, 이래서 어린애들은 귀찮다. 다 정한 거 알고 있거든. 모텔로 갈 거 아니야? 일 치르곤 만나 해장할 거 아니었어? …… 그리곤 쎄미랑 나랑 누구 가슴이 더 컸는지 낄낄거리겠지, 뭐. 안 봐도 빤해. …… 빨리 계산하고 나와. 너구리굴처럼 피어오르는 담배연기 속을 헤집고 나와 건물 앞에서 숯덩이를 기다렸다. 숯덩이는 쭈뼛거리며 나왔지만 안절부절 갈피를 못 잡았다. 앞장 서. 내가 말했다. 그래도 돼? 어, 원래 이러려고 했잖아. 내가 인상을 쓰자 숯덩이가 이내 내 손을 잡았다. 손은 잡지 마. 숯덩이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냥 말자. 숯덩이가 말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영화관에 들어갔다. 심야시간대에 하는 할리우드 영화를 보다가 잠시 졸았다. 조는 내내 숯덩이가 내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박력 없기는. 영화를 다 보고 나와 숯덩이가 팝콘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릴 쯤에 나는 숯덩이의 팔목을 거세게 붙잡고는 그를 이끌었다. 어디 가려고? 심심한데 그냥 DVD방이나 가든지. 우리는 영화관에서 가장 가까운 DVD방으로 들어섰다. 프런트에서 계산을 하는 숯덩이 몰래 아저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숯덩이와 몸을 섞고 난 뒤에도 아저씨에게선 답문이 없었다. 정말이지 짜증나. 나는 검은 소파에 누워 말했다. 숯덩이가 휴지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말고 멈칫했다. 그리곤 내 쪽을 쳐다보며 눈을 흘긋거렸다. 화면에는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게 비쳤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러닝타임이 긴 시리즈물을 선택한 것이 후회가 됐다. 숯덩이가 슬금슬금 내 옆에 드러누웠다. 너 이만 가봐. 싫은데. 그럼 걍 닥치고 가만히 있든지. 어차피 나도 뺑이 치는 거야. 오전 아르바이트하러 가야 되거든. 학교는 안 다니니? 너야말로 학교 다니는 년이 이러고 다니냐? 등신. 너만큼 구린 애 아니거든, 나. 웃기고 있네. 됐다. 그만 말해, 입만 아파. 딱 봐도 사이즈 나와. 나는 뭐 누나들이랑 안 놀아본 줄 아냐. 뭐라고? 나는 울컥 화가 났다. 나는 대충 윗옷을 걸쳐 입고 DVD방을 나왔다. 숯덩이는 자는 건지 자는 척을 하는 건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새벽 다섯 시였다. 거리는 아직 깜깜했다. 추위 탓인지 사람은 별로 없었다. 드문드문 건물 앞 계단에 누워 토사물을 흘리며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으나 거리는 한적했다. 나는 터벅터벅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철은 아직 운행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내려진 셔터에 기대고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어쩐지 발가벗은 느낌이 들었다. 숯덩이는 내 몸 이곳저곳을 꾹꾹 눌러주던 아저씨의 손길을 느낀 것일까. 내 몸에 남겨진 아저씨의 냄새를 맡은 것일까. 쪽팔리게, 정말 후지게 자꾸만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아저씨를 만난 건 레코드 가게에서였다. 아담했지만 역사가 오래된 레코드 가게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했다. 섹션별로 잘 나눠진 음반들은 가게 주인의 손을 거쳐 가지런히 정리되었고 새로운 주인에게로 입양됐다. 주인은 내가 오면 리패키지 앨범이나 베스트 앨범, 내가 모르는 희귀 앨범을 꺼내 들려주곤 했다. 그곳에서 나는 아저씨를 보았다. 존 레넌의 사망주기 30년을 맞아 아저씨는 비틀스의 앨범을 사러 왔다고 했다. 주인은 LP로 된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을 꺼내주었다. 아저씨는 보물 다루듯 LP를 매만졌다. 그거 복사본 같은데. 내가 다가가 이 말을 전하기 전까지는. 아저씨는 내 쪽을 살피며 무슨 상관이냐는 듯 쳐다보았다. 제가 아는데요. 20년 전에 들어온 건 정식판 거의 없어요. 다 해적판이지. 그리고 진퉁이라 쳐도 몇 억 넘을 걸요? 그냥 작년에 나온 리마스터 앨범 사세요. 저 같으면 그거 안 사요. 내가 말을 마치자 아저씨는 피식 웃으며 LP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을 마친 아저씨는 앨범을 구경하고 있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이봐, 진퉁. 같이 나가지? 그리고 우리는 곧장 모텔로 향했다. 미치. 론리하츠클럽이란 밴드 아니? 비틀스 노래 제목이잖아요. 후추상사의 밴드. 물론 한국에 그 제목을 딴 인디밴드가 있단 건 알아요. 아니. 론리하츠클럽이란 밴드가 낸 책이 있어. 그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모두 비틀스의 노래 제목으로 이루어져 있지. 그 속에 든 여자주인공 이름도 역시 비틀스의 노래에서 따온 거야. 루시나 리타 같이.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이 밴드가 남아프리카 출신들이란 거야. 그래서 번역본을 구하긴 힘들어. 그 튼실한 내용의 책은 읽은 사람들마다 모두 엄지를 치켜든다고 해. 더 신기한 건 뭔 줄 아니? 소속된 밴드 팀원이 단 한 명이란 거야. 뭐야. 나머지는 다 세션이에요? 그 밴드는 공연 안 해요? 응. 그 밴드는 단 한 번도 공연을 한 적이 없어. 그 밴드의 업적이라곤 책 낸 게 끝이야. 그게 뭐가 밴드예요. 그냥 작가지. 그러게. 하지만 그 사람이 우기면 밴드겠지. 마치 네 이름이 미치가 아닌데도, 네가 줄곧 미치라고 우기는 것처럼 말이야. * 아침 7시가 다 돼서야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몰래 방 안으로 들어오려는데 어쩐지 고요했다. 방문을 열고 둘러보니 집엔 아무도 없었다. 꺼놨던 핸드폰의 전원을 켜니 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문자가 잔뜩 와 있었다. [미친년. 집에 들어오기만 해.], [네 방에 있는 CD 다 갖다 버리기로 결단 내렸다.], [평생 네 멋대로 하다가 죽어. 여한 없이 그렇게 살아라. 부럽다.], [엄마아빠 오늘 등산 가니까 네가 할머니 밥 좀 챙겨드려. 것까지 안 하면 넌 정말 죽는다.] 나는 할머니 방의 방문을 열어보았다. 할머니는 축 늘어진 미역처럼 장롱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기척도 못 느끼셨는지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큰 소리로 두어 차례 할머니를 부르자 그제야 어깨를 움찔하는 할머니. 저 왔어요. 밥 드셔야죠. 할머니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아차. 원피스를 교복으로 갈아입는다는 걸 깜빡했다. 생각해 보니 허접한 실력으로 그린 아이라인도 엄청 번져 있을 것이었다. 밥 챙겨드릴게요. 좀만 기다리세요, 하고 방문을 닫으려는데 할머니가 허공에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오라는 눈치인가 싶어 나는 대충 눈 밑에 번진 아이라인을 손으로 닦고 할머니 앞으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할머니의 주름이 징그러울 정도로 많았다. 내 어깨보다 한 뼘은 더 작아 보이는 할머니의 어깨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할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내 손을 잡았다. 할머니의 손은 사람의 피부라기엔 어색할 정도로 꺼끌꺼끌했다. 뭐 해드릴까요? 정적을 깨고자 몇 차례 여쭈어도 할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몇 달 전 백내장 수술을 한 할머니의 눈동자는 부옇게 흐려 보였다. 나는 질문하는 걸 포기했다. 할머니는 다시 장롱에 머리를 기대었다. 할머니는 조만간 부서질 박제나비 같았다. 할머니의 눈가와 손, 입술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생각보다 더 깊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계실 때도 이렇게 주름이 많으셨나. 이곳에 와 있는 것이 가뭄처럼 답답하고 숨 가쁠 할머니. 할머니는 아침마다 이렇게 장롱에 머릴 기대고 무슨 생각을 하실까. 살아 있긴 한 걸까. 살아가고 있는 걸까, 살아지고 있는 것일까. 희정아.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불렀다. 잘 지내야 된다. 단디 몸 챙기고. 매사 조심하고. 매사 감사하고. 알제. 어쩐 일인지 눈꺼풀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방으로 돌아오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도대체 왜 우는 걸까? 이해가 안 됐으나 눈물은 더 솟구쳤다. 접을 수 있다면 잠깐 시간을 접어놓고 싶다. 정말 구리고 후지다. 나는 집전화기로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가 받아도 상관없다. 어떻게든 끝을 내야 한다. 아저씨의 아내가 받는다면 나는 다 폭로할 것이다. 아저씨와 나는 비틀스를 공유한 사이라고요. 론리하츠클럽이란 밴드 아세요? 남아프리카에 있는 원맨밴드를 아시냐고요. 그런 것도 모르면서 임신은 왜 해요? 그렇게 안정적인 게 좋으면 차라리 소파랑 결혼을 하셨어야지. 아저씨는 그런 남자가 아니라고요. 신호가 계속 가는 동안 나는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아저씨가 받는다면 이제 아저씨와는 정말 끝이라고 말해야지. 아저씨의 똥배를 참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라고. 아저씨도 똑같아. 부인 앞에선 똥도 못 눈다면서 여행은 왜 같이 가요? 왜 나한텐 아저씨 이름도 안 알려줘요? 치사하게 산다. 치사 빤쓰다, 정말…… 그리고 달칵. 수화기 너머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네, 한창길입니다. 아저씨 목소리다. 한창길이라는 이름은 어색하지만 이건 분명 아저씨의 목소리다. 내가 수없이 핥았던 목에서 나는 그 소리 맞다. 허나 나는 한창길이란 이름을 모른다. 그런 이름일랑 들어본 적도 없다. 말씀하세요, 누구시죠? 그러니까. 저는. 저는요, 아저씨. 저예요, 미치…… 그러나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아저씨의 번호를 지웠다. 아마 얼마 안 있어 아저씨에게 연락이 올 것이다. 내게 시간과 장소를 문자로 보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저씨의 번호를 지웠다. 아뿔싸. 이렇게 깔끔할 수가. 잠을 자는 동안 모든 걸 지워야지. 아저씨의 배꼽이 따뜻했다는 것 정도만 남겨두고. 다른 건 다 열여덟이라는 전투의 군사기밀이라 생각하고 블랙박스에 가두어 사장시켜야지. 나는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이윽고 집전화가 요란스레 울리기 시작했다, 한참동안이나. 짜증나게. <끝〉
  • [제16회 서울광고대상] 백화점부문 최우수상 -롯데백화점 ‘박지성의 발’편

    [제16회 서울광고대상] 백화점부문 최우수상 -롯데백화점 ‘박지성의 발’편

    2010 남아공월드컵 열기로 가득하던 6월, 신문에 아주 못생긴 발이 큼지막하게 실렸습니다. 바로 박지성의 발이었습니다. 여기저기 굳은살이 박히고 삐뚤어졌지만, 축구 하나에 꿈과 열정을 다해 세계 톱 클래스 플레이어로 만든 발이었고 대한민국 축구를 세계 축구의 중심으로 올라서게 한 가장 아름다운 발이었습니다. 롯데백화점은 1979년 창립 이래 줄곧 첨단의 시설과 풍성한 상품, 고객 만족 서비스로 대한민국 대표 백화점의 자리를 지켜왔고 사회공헌 활동과 환경가치경영에도 늘 앞장서서 실천해왔습니다. 창립 31년만에 당당히 세계 유통의 중심에 자리 잡은 롯데백화점의 오늘과 박지성의 오늘에서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상징은 바로 그의 못생겼지만 아름다운 발이었습니다. 이번 광고는 낯선 구성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붙잡았고 그 발에 감춰진 감동의 스토리를 통해 그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자 했습니다. 차별화된 비주얼과 이야기로 고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것이 수상의 영광을 차지하게 된 까닭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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