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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묵비권 행사하던 고유정, 의붓아들 사건은 진술…대면조사 완료

    묵비권 행사하던 고유정, 의붓아들 사건은 진술…대면조사 완료

    다음주쯤 현 남편과 대질조사 전망…일정 조율 중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고유정(36)의 의붓아들 의문사 사건과 관련해 청주 상당경찰서가 고유정에 대한 대면조사를 마쳤다. 청주 상당서는 11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10시간 동안 제주교도소에서 고유정을 상대로 5차 대면조사를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의붓아들 사망 전후의 부부 행동, 평상시 생활 모습, 수집된 증거 확인 등 전방위적으로 조사했다”면서 “내용은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고유정에 대한 대면조사는 이를 끝으로 더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고유정과 숨진 의붓아들의 친부인 현 남편 A(37)씨 간 대질조사는 다음 주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경찰은 양측 변호사와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경찰은 5차례 대면조사에서 확보한 고유정의 진술과 고유정이 의붓아들을 죽였다고 의심하는 A씨의 주장 중 누구의 말이 신빙성이 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고유정은 전 남편 살해 혐의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했던 것과 달리 의붓아들 의문사 사건에 대해서는 진술을 거부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상당서는 제주지방경찰청에서 넘겨받은 고유정의 휴대전화 3대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2개를 디지털포렌식해 분석했다. 경찰은 그 동안 분석한 자료와 고유정 부부의 진술 내용을 토대로 의붓아들 B(4)군이 숨진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B군은 지난 3월 2일 오전 10시 10분쯤 고유정 부부의 청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B군이 사망할 당시 집에는 고유정 부부만 있었다. 현 남편 A씨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함께 잠을 잔 아들이 숨져 있었다”면서 “아내는 다른 방에서 잤다”고 진술했다. A씨는 최근 “경찰 초동 수사가 나에게만 집중돼 이해가 안 됐다”면서 고유정이 아들을 살해한 정황이 있다는 취지로 제주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제주지검은 지난 1일 고유정을 살인과 사체손괴·은닉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청주경찰, 의붓아들 사망전후 고유정 부부 행동 집중 조사

    청주경찰, 의붓아들 사망전후 고유정 부부 행동 집중 조사

    전 남편 살해 혐의 등으로 구속된 고유정(36)의 의붓아들 의문사 사건을 수사중인 청주 상당경찰서가 10일 제주교도소에서 고씨 조사를 이어갔다. 청주 경찰이 제주를 방문해 진행한 4번째 조사다. 상당서 관계자는 “아들 사망 전후 고씨와 그의 현 남편 A(37)씨 등 당시 집안에 있던 두사람 행동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와 A씨 변호인의 질의사항을 고씨에게 물어보는 방식으로 조사가 이뤄졌다”며 “11일에도 고씨 조사가 이어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A씨 변호인은 그동안 A씨가 언론을 통해 제기한 고씨의 수상한 점들을 질의해왔다”며 “고씨와 A씨 대질조사는 아직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두 사람의 변호사 일정 때문에 현재 조율중”이라고 덧붙였다.경찰은 고씨와 A씨 조사가 마무리되면 휴대폰 분석 등 그동안 수사상황을 종합해 이달 말쯤 결과를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A씨는 지난달 13일 제주지검에 고씨 살해의혹을 제기하며 고소장까지 제출했다. A씨는 아들이 숨지기 전날 밤 고씨가 준 차를 마시고 평소보다 깊이 잠이 든 점, 아들 사망 당일 고씨가 일찍 깨어있었는데 숨진 아이를 발견하지 못한 점, 고씨가 각방을 쓰자고 했던 점 등 수상한 정황이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아들과 같은 방에서 잠을 잔 A씨의 거짓말탐지기 반응이 ‘거짓’이 나온 점 등을 근거로 고씨와 A씨를 모두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A씨의 친아들이자 고씨 의붓아들인 B(4)군은 지난 3월 2일 오전 10시 10분쯤 청주시 상당구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집에는 고씨 부부뿐이었다. A씨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함께 잠을 잔 아들이 숨져 있었다. 아내는 다른 방에서 잤다”고 진술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결과 B군 사인은 질식사로 추정됐다. 외상이나 장기 손상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A씨와 아이 몸에서 졸피뎀 같은 특별한 약물을 검출되지 않았다. 제주도 할머니 집에서 지내던 B군은 부모와 살기위해 지난 2월28일 청주로 올라왔다가 이틀만에 숨졌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고유정과 현 남편 대질조사 한다

    고유정과 현 남편 대질조사 한다

    고유정(36) 의붓아들 의문사 사건을 수사중인 청주 상당경찰서는 고씨와 그의 현 남편 A(37)씨의 대질조사를 벌일 예정이라고 9일 밝혔다. 상당서 관계자는 “10일 제주교도소에서 고씨를 상대로 4번째 조사가 진행된다.”며 “이 조사가 마무리되면 곧 일정을 조율해 대질조사가 실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두 사람의 진술이 엇갈려 대질을 하는 것”이라며 “A씨는 고씨가 아들을 살해한 것 같다는 주장을 하고 있고, 고씨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경찰은 고씨와 A씨 조사가 마무리되면 휴대폰 분석 등 그동안 수사상황을 종합해 이달 말쯤 결과를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A씨는 지난달 13일 제주지검에 고씨 살해의혹을 제기하며 고소장까지 제출했다. A씨는 아들이 숨지기 전날 밤 고씨가 준 차를 마시고 평소보다 깊이 잠이 든 점, 아들 사망 당일 고씨가 일찍 깨어있었는데 숨진 아이를 발견하지 못한 점, 고씨가 각방을 쓰자고 했던 점 등 수상한 정황이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아들과 같은 방에서 잠을 잔 A씨의 거짓말탐지기 반응이 ‘거짓’이 나온 점 등을 근거로 고씨와 A씨를 모두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A씨의 친아들이자 고씨 의붓아들인 B(4)군은 지난 3월 2일 오전 10시 10분쯤 청주시 상당구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집에는 고씨 부부뿐이었다. A씨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함께 잠을 잔 아들이 숨져 있었다. 아내는 다른 방에서 잤다”고 진술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결과 B군 사인은 질식사로 추정됐다. 외상이나 장기 손상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A씨와 아이 몸에서 졸피뎀 같은 특별한 약물을 검출되지 않았다. 제주도 할머니 집에서 지내던 B군은 부모와 살기위해 지난 2월28일 청주로 올라왔다가 이틀만에 숨졌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고유정 “의붓아들 사망 나와 관련없다”

    고유정 “의붓아들 사망 나와 관련없다”

    전 남편 살해 혐의 등으로 구속된 고유정(36)이 “의붓아들 사망은 나와 관련이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5일 제주교도소에서 고유정 3차 조사를 진행한 청주상당경찰서는 “의붓아들 의문사와 관련해 고씨가 자신을 가해자로 보고 있는 여론에 대해 억울함을 피력했다”며 “다른 조사내용은 수사진행 중이라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다음주에 고씨 추가조사가 진행된다”며 “고씨의 현 남편 A(37)씨 조사도 조만간 이뤄질 예정”이라고 했다. 경찰은 고씨와 A씨 조사가 마무리되면 그동안 수사결과를 종합해 아이의 사망원인을 밝힌다는 계획이다. 앞서 경찰은 제주경찰에서 넘겨받은 고씨 휴대전화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분석했다. 분석결과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A씨는 “고씨가 아들을 살해한 것 같다”며 지난달 13일 제주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수사에 크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은 고소장에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고소 이후에도 고씨의 의심스러운 행동이 많았다며 고씨의 살해의혹을 계속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아들과 같은 방에서 잠을 잔 A씨의 거짓말탐지기 반응이 ‘거짓’이 나온 점 등을 근거로 고씨와 A씨를 모두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있다. A씨의 친아들이자 고씨 의붓아들인 B(4)군은 지난 3월 2일 오전 10시 10분쯤 청주시 상당구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집에는 고씨 부부뿐이었다. A씨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함께 잠을 잔 아들이 숨져 있었다. 아내는 다른 방에서 잤다”고 진술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결과 B군 사인은 질식사로 추정됐다. 외상이나 장기 손상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제주도 할머니 집에서 지내던 B군은 부모와 살기위해 지난 2월28일 청주로 올라왔다가 이틀만에 숨졌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의붓아들 의문사 조사에 입여는 고유정

    의붓아들 의문사 조사에 입여는 고유정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의 의붓아들 의문사 사건을 수사 중인 청주 상당경찰서가 4일 제주를 방문해 고씨를 조사했다. 지난 1일에 이어 두번째다. 이번 조사를 통해 의문 투성이인 의붓아들의 사망원인이 밝혀질지 주목된다. 상당서는 이날 오전 수사관 8명을 제주교도소로 보내 고씨 조사를 벌였다. 상당서 수사관들은 5일에도 제주에서 고씨 조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고씨는 진술을 거부하지 않고 수사에 임하고 있다”며 “조사내용 등은 수사가 진행중이라 밝힐수 없다”고 말했다.경찰은 고씨 조사가 마무리되면 그의 현 남편 A(37)씨가 주장한 내용 등을 면밀히 분석할 방침이다. 앞서 경찰은 제주경찰에서 넘겨받은 고씨 휴대전화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분석했다. 분석결과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A씨는 “고씨가 아들을 살해한 것 같다”며 지난달 13일 제주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이 고소장에 수사에 크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아들과 같은 방에서 잠을 잔 A씨의 거짓말탐지기 반응이 ‘거짓’이 나온 점 등을 근거로 고씨와 A씨를 모두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있다. A씨의 친아들이자 고씨 의붓아들인 B(4)군은 지난 3월 2일 오전 10시 10분쯤 청주시 상당구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집에는 고씨 부부뿐이었다. A씨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함께 잠을 잔 아들이 숨져 있었다. 아내는 다른 방에서 잤다”고 진술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결과 B군 사인은 질식사로 추정됐다. 외상이나 장기 손상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제주도 할머니 집에서 지내던 B군은 부모와 살기위해 지난 2월28일 청주로 올라왔다가 이틀만에 숨졌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고유정 의붓아들도 사망 전날 카레…현 남편 “똑같은 수법”

    고유정 의붓아들도 사망 전날 카레…현 남편 “똑같은 수법”

    전 남편 강모(36)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를 받는 고유정(36·구속기소)이 범행 전 수면제를 섞은 카레를 강씨에게 먹였다는 검찰 발표가 나왔다. 고유정의 현 남편 A(37)씨는 지난 3월 숨진 아들 B(4)군 역시 고유정이 만든 카레를 먹었다고 주장했다. 현 남편 A씨는 2일 국민일보에 ‘2019년 3월 1일 오후 6시 34분’에 촬영된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카레라이스를 앞에 두고 웃고 있는 B군의 모습이 담겼다. 사진이 찍힌 다음날 오전 10시 10분 B군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B군이 사망할 당시 집에는 고씨 부부뿐이었고 A씨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함께 잠을 잔 아들이 숨져 있었다”며 “아내는 다른 방에서 잤다”고 진술했다. 고유정은 아이와 다른 방에서 잤기 때문에 자신은 B군 사망과 무관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A씨는 최근 “경찰 초동 수사가 나에게만 집중돼 이해가 안 됐다”며 ‘고유정이 아들을 죽인 정황이 있다’는 취지로 제주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제주지검은 고씨를 살인과 사체손괴·은닉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A씨는 “아이가 사망 전날 카레를 먹었고, 나도 먹었다. 고유정이 카레 안에 약물을 섞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 이상하다. 수법이 똑같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그는 “아이는 카레를 먹은 뒤 2시간이 안 돼 잠들었다. 그 사이 고유정은 아이에게 병에 캐릭터가 그려진 음료를 주기도 했다. 나는 아이가 잠든 후 차 한 잔을 더 마신 뒤 바로 잠들었는데 평소보다 더 깊이 잠들었다”고 말했다. 검찰과 경찰은 고유정이 전 남편 강씨의 음식이나 음료에 수면 효과가 강한 ‘졸피뎀’을 넣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키 182㎝, 몸무게 80㎏의 건장한 체격인 강씨가 160㎝ 내외의 고유정에게 제압된 것도 졸피뎀 성분 때문으로 추정된다. 해당 졸피뎀은 고유정이 5월 17일 충북 청원군의 한 병원에서 처방받은 후 인근 약국에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유정의 의붓아들 의문사 사건을 수사 중인 충북 경찰은 오는 4일 고씨를 상대로 추가 조사를 벌인다. 경찰은 프로파일러를 포함한 수사관 7명을 제주교도소로 보내 고씨를 대면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충북경찰 오는 4일 제주서 고유정 2차조사

    충북경찰 오는 4일 제주서 고유정 2차조사

    전 남편 살해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고유정(36)의 의붓아들 의문사 사건을 수사중인 청주 상당경찰서가 오는 4일 제주도에서 고유정 2차 대면조사를 벌인다. 상당서 관계자는 2일 “추가조사 필요성이 있어 4일 고씨를 만나기위해 제주교도소를 방문할 계획”이라며 “이번 조사에는 수사관 5명이 투입될 예정이며 프로파일러는 동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당서는 지난 1일 제주에서 고씨를 상대로 10시간가량 1차조사를 벌였다.이때 고씨가 묵비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경찰이 1차조사에서 사건해결에 도움이 될만한 뭔가를 얻어낸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당시 프로파일러 등 수사관 7명이 투입됐다. 현재 고씨와 그의 현 남편 A(37)씨는 모두 참고인 신분이다. 일각에서 고씨와 A씨의 대질조사가 이뤄진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경찰은 현재 이를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고씨 진술 내용과 A씨가 주장한 내용 등을 면밀히 분석할 방침이다. 앞서 경찰은 제주경찰에서 넘겨받은 고씨 휴대전화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분석했다. 분석결과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A씨는 “고씨가 아들을 살해한 것 같다”며 지난달 13일 제주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고소장 내용 가운데 수사에 크게 도움이 될만한 것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아들과 같은 방에서 잠을 잔 A씨의 거짓말탐지기 반응이 ‘거짓’이 나온 점 등을 근거로 고씨와 A씨를 모두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있다. A씨의 친아들이자 고씨 의붓아들인 B(4)군은 지난 3월 2일 오전 10시 10분쯤 청주시 상당구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집에는 고씨 부부뿐이었다. A씨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함께 잠을 잔 아들이 숨져 있었다. 아내는 다른 방에서 잤다”고 진술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결과 B군 사인은 질식사로 추정됐다. 외상이나 장기 손상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제주도 할머니 집에서 지내던 B군은 부모와 살기위해 지난 2월28일 청주로 올라왔다가 이틀만에 숨졌다. A씨는 여전히 고씨의 살해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A씨는 고씨가 수면제를 넣은 카레를 먹이고 전 남편을 살해한 것 같다는 검찰 발표가 나오자 2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도 아들 사망 전날 카레를 먹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들 부검과 A씨 약물반응 검사에서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충북경찰, 의붓아들 의문사 풀기위해 고유정 10시간 대면조사

    충북경찰, 의붓아들 의문사 풀기위해 고유정 10시간 대면조사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의 의붓아들 의문사 사건을 수사 중인 청주 상당경찰서가 1일 제주를 방문해 고씨를 조사했다. 이번 조사를 통해 의문 투성이인 의붓아들의 사망원인이 밝혀질지 주목된다. 상당서는 이날 오전 프로파일러를 포함한 수사관 7명을 제주로 보내 고씨 대면조사를 벌였다. 상당서 수사관들은 고씨를 조사한 뒤 저녁 비행기를 타고 청주로 복귀해 추가 조사 필요성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경찰 관계자는 “고씨 조사는 10시간 정도 진행됐다”며 “묵비권 행사 여부 등 조사내용 등은 밝힐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고씨 진술 내용과 그의 현 남편 A(37)씨가 주장한 내용 등을 면밀히 분석할 방침이다. 앞서 경찰은 제주경찰에서 넘겨받은 고씨 휴대전화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분석했다. 분석결과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A씨는 “고씨가 아들을 살해한 것 같다”며 지난달 13일 제주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이 고소장에 수사에 크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아들과 같은 방에서 잠을 잔 A씨의 거짓말탐지기 반응이 ‘거짓’이 나온 점 등을 근거로 고씨와 A씨를 모두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있다. A씨의 친아들이자 고씨 의붓아들인 B(4)군은 지난 3월 2일 오전 10시 10분쯤 청주시 상당구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집에는 고씨 부부뿐이었다. A씨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함께 잠을 잔 아들이 숨져 있었다. 아내는 다른 방에서 잤다”고 진술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결과 B군 사인은 질식사로 추정됐다. 외상이나 장기 손상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제주도 할머니 집에서 지내던 B군은 부모와 살기위해 지난 2월28일 청주로 올라왔다가 이틀만에 숨졌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의붓아들 의문사’ 고유정, 프로파일러 조사받는다

    ‘의붓아들 의문사’ 고유정, 프로파일러 조사받는다

    전 남편 살해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이 지난해 의붓아들 의문사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다. 청주 상당경찰서는 다음달 1일 프로파일러를 포함한 수사관 5명을 제주지검으로 보내 고씨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27일 밝혔다. 앞서 경찰은 제주청에서 넘겨받은 고씨의 휴대전화 3대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2개를 디지털포렌식해 분석했다. 경찰은 그간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고씨를 조사해 의붓아들 A(4)군이 숨진 경위를 파악할 방침이다. A군은 지난 3월 2일 오전 10시 10분쯤 고씨 부부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씨의 현 남편 B(37)씨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함께 잠을 잔 아들이 숨져 있었다”며 “아내는 다른 방에서 잤다”고 진술했다. B씨는 최근 “경찰 초동 수사가 나에게만 집중돼 이해가 안 됐다”며 ‘고유정이 아들을 숨지게 한 정황이 있다’는 취지로 제주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충북경찰 의붓아들 의문사 다음달 1일 고유정 대질조사

    전 남편 살해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 의붓아들 사망사건을 수사 중인 청주 상당경찰서가 내달 1일 제주도에 수사관을 보내 고씨를 상대로 조사를 벌인다. 상당경찰서 관계자는 “프로파일러를 포함해 수사관 4~5명을 제주지검으로 보낼 예정”이라며 “조사 예정시간은 알려줄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경찰은 제주지방경찰청에서 넘겨받은 고씨 휴대전화와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디지털포렌식해 분석했다. 경찰은 그동안 분석한 자료 등을 토대로 고씨를 조사해 의붓아들 A(4)군의 사망경위를 파악할 방침이다. 고씨의 현 남편 B(37)씨는 “고씨가 아들을 살해한 것 같다”며 제주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그러나 경찰은 B씨가 아들과 같은 방에서 잠을 잤고, 거짓말탐지기 반응에서 ‘거짓’이 나온 점 등을 근거로 고씨와 B씨를 모두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있다. A군은 지난 3월 2일 오전 10시 10분쯤 청주시 상당구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집에는 고씨 부부뿐이었다. B씨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함께 잠을 잔 아들이 숨져 있었다. 아내는 다른 방에서 잤다”고 진술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결과 A군 사인은 질식사로 추정됐다. 외상이나 장기 손상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제주도 할머니 집에서 지내던 A군은 부모와 살기위해 지난 2월28일 청주로 올라왔다가 이틀만에 숨졌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애들이 좋아해서” 고유정, 의붓아들 숨진 날 온라인에 ‘황당’글

    “애들이 좋아해서” 고유정, 의붓아들 숨진 날 온라인에 ‘황당’글

    전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고유정(36·구속)의 의붓아들 의문사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충북 경찰이 제주경찰청으로부터 고씨의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넘겨 받아 정밀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다. 고씨는 의붓아들이 숨진 당일 자신이 사는 아파트 입주민 전용 온라인 커뮤니티에 아이들을 위한 입주 1주년 기념 행사를 열자며 댓글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댓글을 올린 지 10시간 만에 아이는 숨진 채 발견됐다. 충북 청주 상당경찰서는 16일 제주청에서 넘겨 받은 고씨의 휴대전화 3대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2대를 디지털포렌식하는 등 정밀 분석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 포렌식은 컴퓨터 등 디지털 기기에 저장된 자료를 분석해 법정에 제출할 증거를 확보하는 과학 수사기법이다. 경찰은 고씨의 의붓아들 A(4)군이 숨진 지난 3월 2일을 전후로 고씨가 주변인과 나눈 대화, 인터넷 커뮤니티 작성 글, 검색 기록 등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은 A군은 숨진 날을 기준으로 6개월 전의 자료까지 복원해 고씨가 의붓아들 죽음과 관련된 기록을 남겼는지 분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앞서 제주 경찰이 고씨의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분석했지만 이는 전 남편 살인 사건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서 “현재 충북에서는 의붓아들 살인 사건과 관련된 기록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볼 계획”이라고 말했다.고씨는 의붓아들이 숨진 날인 지난 3월 2일 새벽 자신이 거주하는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 인터넷 커뮤니티에 어린이들을 위한 행사 개최를 제안하기도 했다.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고씨는 이날 새벽 0시 5분쯤 자신이 평소 사용하는 아이디(아파트 동과 호수)로 ‘아파트 입주 1주년을 맞아 문화행사와 흡연·층간소음 관련 표어를 공모한다’는 공지 글에 댓글로 “아파트에 영유아나 학생 자녀를 둔 분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열었으면 좋겠다”면서 “풍선아트, 페이스 페인팅, 특히 솜사탕 등을 이벤트로 넣어서 입주자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즐거운 소통의 장이 됐으면 한다. 바자회도 꼭 열렸으면 한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특히 고씨는 솜사탕 이벤트에 대해 “솜사탕을 직접 만들어 주는 곳 보기 힘들더라구요. 애들이 너무 좋아해서”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고씨는 2017년 11월쯤 제주 출신의 현 남편 B(37)씨와 결혼해서 청주에서 단둘이 살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각각 전 남편과 전처 사이에서 낳은 6살·4살 아들이 있었지만 아이들은 각각 제주도에 있는 친정과 친가에서 조부모 등에 맡긴 상태였다. 고씨의 글을 접한 입주민들은 아이를 마치 아파트에서 직접 키우고 있는 듯한 내용과 공교롭게도 의붓아들이 숨진 날 쓰여진 댓글에 대해 소름이 돋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씨의 의붓아들 A군은 댓글이 올라온지 10시간 만인 당일 오전 10시 코 주변에 혈흔과 함께 의식과 호흡이 없는 상태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고씨를 고발한 현 남편 B씨는 숨진 자신의 아들과 함께 살기 위해 지난 2월 28일 제주에서 청주로 데려왔고 당시 고씨가 아들이 오기 전부터 감기를 이유로 따로 자겠다거나, 감기 증세가 심하지 않은데도 숨지기 전날 밤 아이에게 감기약을 먹인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이런 고씨의 행적이 A군의 죽음과 연관성이 있는지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고씨 현재 남편의 휴대전화 분석 자료 등을 종합해 고씨 부부를 조사할 방침이다. 고씨의 현 남편 B씨는 부인 고씨가 자신의 아들을 숨지게 한 정황이 있다며 지난 13일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고유정, 전 남편과 봉사동아리에서 만나 “결혼생활 중 흉기”

    고유정, 전 남편과 봉사동아리에서 만나 “결혼생활 중 흉기”

    고유정(36·구속)은 지난달 25일 제주시 조천읍 한 펜션에서 아들(6)을 만나러 온 전남편 강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해 최소 3곳 이상 장소에 유기한 혐의(살인 및 사체유기·손괴·은닉)로 검찰에 넘겨졌다. 고유정은 강씨 시신을 심하게 훼손해 바다와 육지, 쓰레기장 등에 나눠 버렸다. 피해자의 동생은 유족 면담 시간에 고유정의 1차 진술을 듣고 잔인한 범행 수법에 충격을 받고 실신했다. 피해자 동생은 12일 MBC ‘실화탐사대’와의 인터뷰에서 “하루에 잠을 2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없다. 형 대신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한다. 형이 더 믿음직스럽고 똑똑하고 잘났으니까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나는 편안히 갔을 텐데 그 생각을 한다”라며 오열했다. 고유정은 범행 직전 제주도 한 마트에서 흉기와 표백제 등을 샀고, 남은 물품은 환불했다. 고유정은 알리바이를 위해 피해자의 휴대폰을 사용해 자신에게 성폭행하려고 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인적이 드물고 출입문에 모형 CCTV가 달린 펜션을 택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체포 이후 꾸준하게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지만 복원된 고유정의 휴대전화에서는 니코틴 치사량을 검색한 기록이 나왔고, 피해자의 혈흔에서는 수면제의 일종인 졸피뎀이 검출됐다.피해자의 동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다에 유기됐단 소식을 듣고 통곡조차 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싶어 하는 게 잘못이냐. 왜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바다에 유기돼서 머리카락조차 찾지 못해서 장례식조차 못 치르게 하냐”라며 분노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아들을 만날 생각에 들떠 만들었던 바람개비를 공개했다. 피해자 동생은 “아들이랑 함께 있어 재미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2시간 후 휴대폰 전원이 꺼져 있었다”라고 말했다. 고유정과 피해자는 대학교 봉사동아리에서 만났다. 오랜 열애 끝에 결혼했고 3년 만에 헤어졌다. 피해자는 다음 학기 우수한 성적으로 박사과정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피해자의 대학동기는 “매우 성실한 학생이었다. 결혼 생활이 순탄하지 않았다는 건 간접적으로 알고 있었고, 아내가 아이를 안 보여줘서 힘들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라고 했다. 피해자 동생은 “매달 얼마 되지 않는 연구비와 돈이 모자라면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양육비를 꼬박꼬박 보내줬다”라며 최근 소송 끝에 피해자가 면접교섭권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고유정은 사고 당일 우발적으로 다투는 과정에서 살해했다고 했지만, 여러 정황들은 계획 범죄임을 드러내고 있다. 피해자 동생은 “면접교섭권 결정이 난 뒤에 고유정이 이상했다. 갑자기 다정한 듯한 문자가 왔었다. 이모티콘도 보내고 말투도 유하게 왔다”고 말했다.피해자 동생은 고유정이 이중적인 성격이었으며, 결혼 생활 중 흉기를 들고 폭언과 폭행을 해 이혼을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앞에서는 착한 척 잘 웃는데 집에서는 돌변했다. 형이 휴대폰으로 맞아 (피부가) 찢어진 적도 있고 (고유정이) 아이 앞에서 흉기를 들고 ‘너 죽고 나 죽자’라고 광적인 행동을 해서 (형이) 충격을 받고 결국 이혼을 선택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고유정의 동생은 “누나가 정신질환은 없었고, 재혼한 것도 이번에 알았다. 연락을 아예 안 했지만 착하고 배려심 있는 성격이라 처음에는 안 믿었다. 어떻게 이혼했는진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고유정이 살던 아파트 이웃주민들 역시 고유정에 대해 “먼저 인사하고, 평소에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했다. 고유정은 아파트 인터넷 카페에 휴대폰 케이스 사진을 첨부하고 “유용하게 쓰실 것 같아 드릴게요”라는 글을 올리거나 아이들이 책을 받은 사진을 올리며 “아이들도 책을 좋아해서 새 책보다 더 소중히 읽겠다”고 감사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의붓아들 장례식 참석 문제로 재혼한 남편과 갈등 고유정은 의문사한 의붓아들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주상당경찰서는 고씨의 재혼 남편 A(38)씨가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숨진 사건을 수사 중에 있으며 조만간 제주로 건너와 고씨를 직접 조사할 예정이라고 13일 밝혔다. 고씨의 의붓아들인 B군은 제주 친가에서 지내다가 숨지기 이틀 전인 지난 2월 28일 청주로 왔다. 고씨 부부는 B군을 함께 키우기로 합의했지만 B군은 아버지와 함께 자다 침대위에서 숨졌고 경찰은 당시 질식사로 추정했으나 타살혐의점은 찾지 못했다. B군은 사망 직후 제주에서 장례를 치렀으며 고씨는 B군의 장례와 발인에 참석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로 재혼한 남편은 고씨에게 “왜 힘들 때 곁에 있어 주지 않느냐”며 화를 냈고 주변에서도 “의붓아들이지만 너무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씨가 왜 의붓아들 장례식 때 참석하지 않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고유정 의붓아들 의문사 밝혀지나

    고유정 의붓아들 의문사 밝혀지나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의 의붓아들이 지난 3월 의문사한 사건을 살펴보고 있는 경찰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청주 상당경찰서는 고씨가 사는 청주시 상당구의 한 아파트에서 휴대전화, 컴퓨터 등을 확보해 디지털분석을 하고 있다고 12일 밝혔다. 고씨 부부의 통화 기록, SNS 대화 등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고씨는 2017년 11월 A(37)씨와 재혼했다. 지난 3월 2일 오전 이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B(4)군은 A씨가 전처 사이에서 낳은 아이다. B군은 A씨 부모가 살고 있는 제주도에서 지내다가 사망 이틀전인 2월28일 청주에 왔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원에서 ‘질식사가 추정된다’는 부검결과를 통보받았다. 그러나 B군 몸에서 외상이나 장기 손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특별한 약물이나 독극물도 검출되지 않았다. B군은 지병도 없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B군 사망 직후 이뤄진 경찰조사에서 “자고 일어났더니 아이가 숨져있었고 왜 숨졌는지 모르겠다. 고씨는 다른 방에서 자고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당경찰서는 추가 조사를 위해 제주지검과 출장 조사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로선 고씨 부부가 B군을 키우기 위해 청주로 데려온 것 같다”며 “타살, 과실, 자연사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씨는 지난달 25일 제주의 한 펜션에서 전 남편(36)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혐의로 지난 4일 구속됐다. 제주경찰청은 지난 5일 신상공개 심의위원회를 열고 고씨의 실명과 나이, 얼굴 등 신상을 공개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창군이래 모든 군복무중 사망자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에 진정하세요”

    “창군이래 모든 군복무중 사망자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에 진정하세요”

    경기 시흥시는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와 위원회 활동기간에 시흥내 유족들이 많이 진정할 수 있게 홍보하는 데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고 22일 밝혔다. 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해 9월 특별법에 따라 설립됐다. 군대에서 발생한 억울한 사망사고를 대상으로 유가족들과 목격자 등 진정을 받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진실을 규명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유가족들이 명예를 회복하고, 합당한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위원회는 사망원인이 명확지 않다고 의심되는 소위 ‘의문사’ 사건뿐만 아니라 사고사·병사·자해사망, 자살 등 군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유형의 사망사고를 다룬다. 예전에도 비슷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2006~2009년)가 있었으나, 창군 이래 모든 사망사고(1948.11~2018.9)를 다룬다는 점에서 조사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조사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군 관련 조사관은 배제한다. 검찰과 경찰·민간에서 채용한 조사관으로 구성했다는 점에서 국민 인권증진과 국민 눈높이에 맞게 변화와 혁신이 있었다. 2014년 관련법 개정으로 군 복무 중 구타·가혹행위·업무과중 등 부대적 요인으로 자해사망한 경우에도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 ‘순직’ 결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위원회 활동기간은 지난해 9월부터 2021년 9월까지 3년간이다. 진정서는 2020년 9월까지 2년동안 받는다. 진정서 신청시 위원회 홈페이지(www.truth2018.kr)에서 신청서식을 내려받아 작성한 후 위원회 주소(서울 중구 소공로 70, 포스트타워 14층)로 우편 또는 방문 접수하거나 이메일(trurh2018@korea.kr), 팩스(02-6124-7539) 등 편한 방법으로 제출하면 된다. 신청서 작성이 어려울 경우 구술로도 가능하다. 자세한 상담을 원할 경우 위원회 대표전화(02-6124-7531, 7532)를 통해 문의하면 된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軍 초동수사 잘못… 아들 의문사 21년째 못 밝히고 거짓말 계속”

    “軍 초동수사 잘못… 아들 의문사 21년째 못 밝히고 거짓말 계속”

    “이제부터 ‘제2의 김훈 중위 사건’ 시작입니다.” 두 시간 반 가까이 쉼 없이 말을 하면서도 ‘아버지’는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20년을 싸워 왔는데 아버지는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경비 초소에서 근무하다가 사망한 김훈(당시 25세·육사 52기) 중위의 아버지 김척(76·육사 21기) 예비역 중장의 이야기다. 국방부는 세 차례의 수사를 거쳐 김 중위의 죽음을 ‘권총 자살’로 결론 냈다. 유족들은 “군 수사기관이 처음부터 자살로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진상을 은폐·조작하거나 요식적인 수사를 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은 패소, 2심과 3심에서는 1차 수사의 과실만 인정해 김 중위의 부모와 동생에게 모두 1200만원을 국가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대법원은 2006년 12월 “초동 수사가 잘못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2009년 10월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론지었다.미궁에 빠진 죽음을 두고 2010년 육사총동창회와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는 ‘자살’이 아닌 ‘순직’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로부터도 몇 년이 더 흘러 김 중위는 숨진 지 19년 만인 2017년 8월 31일에서야 국방부로부터 순직을 인정받았다. 김 중위의 부모는 지난해 다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2006년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국방부가 ‘자살’로 고집하며 순직 결정을 미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 이동욱)는 지난달 27일 “진상규명 불능일 경우 순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직접적인 근거 조항이 없었다”는 이유 등으로 국방부가 순직 결정을 미룬 것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김 중위 부모는 곧바로 항소했다. 20년을 넘어선 싸움이 다시 이렇게 이어진다. 다음은 김척 예비역 중장과의 일문일답.●사건 처음부터 재조사까지 답 정해놓고 수사 -패소 판결을 받고 어떤 기분이셨나요. “정말 분노했습니다. 우리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하고 7조에는 ‘국가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번 판결은 이 본질을 무시하고 국방부에 편파적인 판단을 한 것으로 여겨져요. 우리는 (육사총동창회가 순직 변경을 요구한) 2010년부터의 국방부의 거짓을 문제 삼고 싸우려 한 건데, 법원은 2006년 판결을 근거로 삼았어요. 대법원을 비롯해 국회와 권익위 등 다른 국가기관들이 훈이의 자살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국방부만 유일하게 자살 주장을 고집했어요. 아니라고 부딪치고 싸워도 다른 국가기관의 결론을 오히려 왜곡해 가면서 우리를 ‘정신질환 자살자’의 가족으로 매도했어요. 그에 대한 사과를 받고 싶어 소송을 한 건데 우리의 아픔은 보지 않은 것 같아요.” -판결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불만스러우신가요. “대법원 판결에 이어 군의문사진상규명위에서 훈이 죽음을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했고, 2012년 8월 권익위(당시 위원장이던 김영란 전 대법관이 2006년 대법원 판결 시 주심 대법관)가 훈이를 순직 처리하라고 시정 권고했어요. 그러나 국방부는 여전히 훈이가 자살한 게 맞다고 허위주장을 했어요. 2010년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이 ‘대법원 판결에서 자살로 인정됐다’고 했고, 조정환 육군 참모차장도 ‘대법원이 ‘자살’ 내용을 그대로 확정한 것이라 번복하는 것을 육군에서 결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2010년 육사총동창회가 순직 변경을 요구하자 육군 법무계획과장은 ‘대법원은 2·3차 수사결과 자살이라고 한 결론을 긍정한 것’이라면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원고 등이) 유리한 자료들만 모아서 유리하게 주장한다는 것’이라고도 했어요. 한마디로 우리가 떼를 쓴다는 거예요. 이번 재판부는 이들의 거짓 언행이 잘못이라고 인정해 주는 듯하더니 ‘객관성과 정당성을 잃을 정도는 아니다’라며 사소한 걸로 치부했어요. ‘판결 취지를 부적절하게 해석해 발언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유족들에게 아픔을 끼친 것을 넘어서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해 위법하다고까지 보기는 어렵다’는 거예요. 국방부 장관이, 고위직이 국회와 국민을 상대로 몇 년간 허위주장을 해 왔는데(2012년 국감 및 국회의원 요구 자료에도 국방부는 자살이 인정됐다고 주장) 과연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볼 수 있는 겁니까.” -재판부에 낸 의견서에도 ‘분노’라는 단어가 유독 많던데요. “군은 애초에 훈이가 정신질환에 의해 자살한 것으로 사건을 덮기 위해 부실 수사와 조작·은폐를 일삼았어요. 훈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자살을 합리화했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2006년 대법원 판결에서도 합동조사단이 다소 무리한 추측을 했다고는 인정했다.) 사건 직후 초동 수사부터 잘못됐기 때문에 2·3차 수사도 잘못됐고 결국 지금까지도 제대로 진상을 밝히지 못했잖아요. 그에 대한 사과는커녕 거짓이 계속돼요. 훈이 오른손에 (권총 자살일 경우 나타나는) 화약흔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미군 수사 감정서를 자살이 입증된 자료라고 왜곡했고 이번 재판 과정에서도 국방부는 마치 정신질환으로 자살을 한 훈이에게 하지 않아도 되는 순직 결정의 은혜를 베풀어 준 것처럼 의견서를 냈어요. 권익위가 재심의하라고 하니 국방부는 2012년 9월 보강조사의 중점사항으로 ‘공무상 사유로 인한 정상적인 판단능력이 상당히 저하된 상태 여부’, ‘직무수행과 관련한 폭언, 가혹행위 등으로 인한 원인발생 여부’를 적시했어요. 사건 처음부터 재조사까지 훈이를 정신질환자로 몰기 위해서 답을 정해 놓고 한 거예요. 그런데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객관적 정당성을 잃은 것까지는 아니라고 했죠.”●돈 받으려는 소송 아냐… 진심 사과 땐 소 취하 -‘장군의 아들’이었던 김 중위가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의 주인공이 됐고,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네요. “제가 싸우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저와 아들이 군에 몸을 바친 게 합쳐서 40년 가까이입니다. 그나마 저는 군을 잘 알고 육사총동창회 도움도 있었기에 자료도 더 많이 얻고 여기까지 왔지만 다른 부모들은 폐쇄적인 군으로부터 객관적인 자료 하나 받기도 힘들어요. 제가 싸워서 더이상 ‘군 의문사’라는 게 없어지길 바랍니다. 객관적인 감정서를 갖고 죽음의 원인을 정확히 밝혀 달라는 겁니다. 군에서 사망사고가 나더라도 부모들에게 진실을 정확히 밝혀 준다는 믿음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훈이의 죽음이, 우리 가족의 싸움이 젊은이들을 많이 구할 수 있고 군을 발전시킬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을 세상에 태어난 제일 큰 보람이라고 생각해요. 군 의문사와 싸우지 않으면 군은 더 큰 괴물이 되는 거예요.” -언제까지 싸움을 계속하실 건가요. “소송을 냈지만 돈을 원하는 게 아니에요. 국방부에도 계속 이야기했어요. 진심으로 사과하면 소를 취하하겠다고요. 잘못했으면 사과해야죠. 남들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해요. 제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국방부에 보낸 내용증명만 47차례에요. 법을 잘 모르니 한 번 보내려면 2주를 꼬박 고생하죠. 거대한 국가기관과 20년을 싸우면서 우리 가정은 파탄이 났어요. 한 집안이 망하는 일이고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도 없어요. 그런데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으니 싸울 수밖에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겁니다. 처음엔 그런 줄 알았죠.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묻는다고 치유가 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건 바보 같은 거죠. 싸워야 합니다. 내가 싸우다가 죽어도 그게 더 행복한 거예요. 훈이를 국립묘지에 안장하니 주변에서 ‘이제는 잊고, 용서하고 편히 사세요’라고들 하더군요. 상대방이 용서를 구하지 않는데 제가 어떻게 용서를 합니까.”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JSA 의문사’ 김훈 중위 유족, ‘늑장 순직’ 국가 소송 패소…“항소할 것”

    ‘JSA 의문사’ 김훈 중위 유족, ‘늑장 순직’ 국가 소송 패소…“항소할 것”

    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의문사한 고 김훈(당시 25세) 중위 유족이 “국가가 뒤늦게 순직 처리를 하고 아직도 ‘자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 이동욱)는 27일 김훈 중위의 부친 김척(77·육사 21기·예비역 중장)씨 등 유족 2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밝혔다. 재판이 끝난 뒤 김훈 중위의 부친은 기자들과 만나 “생명처럼 키운 자식들을 국가가 나몰라라 한다면 국민이 무엇을 위해 군대를 가느냐”라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부친 김씨는 “국방부 공무원이 조작한 것에 손을 들어줬는데 어떻게 승복할 수 있겠는가”라면서 “사건을 조작한 사람들을 처벌 할 때까지, 국방부 사죄를 받을 때까지 몇 년이 걸리든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훈 중위는 1998년 2월 24일 근무 중이던 최전방GP에서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군 수사당국은 사인과 사건 경위에 대해 권총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언론 등에서 타살 가능성이 제기됐고, 국방부 특별조사단까지 편성돼 사건을 재조사했지만, 자살이라는 군 당국의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이후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2006년 대법원은 군 수사기관에 초동수사 부실로 인한 의혹 양산의 책임이 있다면서 국가가 정신적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2012년엔 국민권익위원회가 김훈 중위의 순직을 인정하라고 국방부에 권고했고, 국방부는 2017년 8월 “소대장으로서 임무 수행 중 ‘사망 형태 불명의 사망’이 인정된다”면서 그를 순직 처리했다. 권익위 권고 후 5년, 김훈 중위가 숨진 지 19년 만이었다. 이에 유족은 지난해 6월, 인권위가 순직을 권고한 지 5년이 지나서야 국방부가 순직 처리했다면서 ‘순직 처리 지연’을 이유로 국가에 5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금요칼럼] 정치란 무엇일까/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금요칼럼] 정치란 무엇일까/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5년 가까이 광화문에 자리잡고 있던 세월호 분향소의 철거 작업이 이번 주 초에 마무리됐다. 가방에 노란색 리본을 단 사람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빈도가 나날이 줄어드는 요즘, 세월호 분향소의 철거를 계기로 지난 시간을 다시금 반추해 본다. 구조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어이가 없는데, 진상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당시의 국가권력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리고 나도 모르게 주먹을 힘껏 쥐게 된다. 냉전시대 반독재민주화 투쟁 때에도 정치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양하게 고민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민주화 경험을 쌓았다고 믿던 21세기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또 다른 층위에서 정치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정작 답하기는 쉽지 않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역사학자들이 주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학문적으로 설명하려면 단행본 여러 권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묵직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제 세월호를 마음에 묻으며, 나는 거창한 질문이 아니라 매일 내 피부에 닿으며 나와 함께 일상을 보내는 가벼운 의미로 정치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비유하자면,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간략하면서도 설득력 강한 답을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누군가 정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억울한 사람들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억울한 사람이 전혀 없게 하기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국가권력이라면 억울함을 최대한 풀어 주는 정치행위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는 것을 나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강하게 체감하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후 두 달 만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해 닷새 동안 머물렀는데, 나는 그때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교황에게 읍소했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도 교황에게 호소했다. 왜 그랬을까. 필설로 표현하기 힘들 지경의 피맺힌 억울함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당시 국가권력은 그들을 의도적으로 소외시켰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비난하는 데 혈안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가권력이 상식적으로만 움직였어도, 그들이 굳이 교황까지 만날 필요는 없었다. 한국 내에서는 말(상식)이 제대로 통하지 않으니,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더 상위의 ‘보편적 존재’에게 호소한 것이다.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로 어떤 억울함을 당했다면 그나마 덜 억울할 것이다. 그런데 주변의 권력구조 때문에 당한 절대적 억울함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 많다. 1980년 5월 광주학살의 억울한 피해들을 조롱하고 왜곡하는 자들이 여전히 여의도에서 큰소리치며 2차, 3차 가해를 서슴지 않는 현실. 재판을 조직적으로 지연시키거나 왜곡해 억울한 사람을 오히려 양산한 일그러진 검경과 사법부. 허다한 군 의문사는 이를 나위도 없고, 전쟁도 안 하는 현재조차 군 내부에서 매년 100명가량이 생을 마감하는 현실. 조직적 성폭력을 당하고도 사악한 권력의 벽에 막혀 차라리 자신을 소멸시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여성 피해자들. 진상조사조차 저인망식으로 촘촘하게 방해하는 권력 카르텔. 요즘 한국사회의 억울한 사례들은 몇 밤을 꼬박 새우고도 열거하기에 턱없이 부족할 정도로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곧 남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상이라는 의미다. 국민청원에 답해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악의 근원을 밝히라는 취지의 대통령 지시가 이번 주에 나왔다. 늦었지만 환영하며, 진상조사를 방해하는 세력도 함께 백일하에 드러내고 척결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후대 사람들은 2019년 이 땅에 ‘정치가 있었다’고 기억할 것이다.
  • “軍 사망사고 유가족에게 진실 알려드리는 것이 목표”

    “軍 사망사고 유가족에게 진실 알려드리는 것이 목표”

    “참여정부 때와 달리 모든 군 사망 조사 신뢰 위해 헌병 조사관 등 군 출신 배제 순직 결정 안 된 채 남은 3만 9000여명 은폐 의혹 사건에 관련자 적극 협조를”“오랫동안 국가가 국가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던 측면이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국가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유가족이 원하는 진실을 알려 드리는 게 저희의 목표입니다.” 김광진(38)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은 20일 서울 중구 명동 진상규명위 사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진상규명위의 출범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진상규명위는 지난해 9월 ‘군 사망사고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출범한 대통령소속 기구다. 과거 군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대해 사실을 조사하고 고인과 유가족의 명예를 되찾아 주기 위해 설립됐다. 참여정부 때인 2006년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됐지만 2009년 예산을 이유로 해산됐다. 때문에 그동안 군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대한 진상 규명에 공백이 있었다. 이에 유가족들은 진실을 조사할 기구 설치를 요구해 왔고 문재인 대통령 공약에 따라 위원회가 출범했다. 이번 위원회가 지난 위원회와 다른 점은 군에서 발생한 모든 사망사건을 조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수사과정과 결과에 대한 공정성·신뢰성 담보를 위해 지난 위원회와는 달리 이번 위원회에서는 헌병 조사관 등 군 출신 인사를 배제했다. 김 사무국장은 “과거 의문사위원회는 1993년도 이후에 발생한 사건부터 조사할 수 있었지만 이번 위원회에서는 1948년 창군 이래 모든 사망 사건에 대한 조사가 가능하다”면서 “이번 특별법에는 진상규명위가 사고 조사 결과, 순직 결정을 내리면 국방부가 이에 대해 재조사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고 설명했다. 오래된 사건을 조사하다 보니 어려움도 따른다. 1980년 이전의 사망 사건의 경우 기록이나 문서 등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당사자의 적극 협조가 중요한 이유다. 김 사무국장은 “본인이 가해에 가담했던 경우에도 진실을 진술하면 일정 정도의 처벌 유예나 선처를 권고하는 권한도 특별법에 포함돼 있다”며 “사건 관련자가 늦게라도 진실을 말해 준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출범 이후 진상규명위에 접수된 사건은 250여건이다. 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1년여의 시간이 소요된다. 특별법상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 기한은 3년이다. 촉박한 시간에 되도록 많은 조사가 진행돼야 한다. 김 사무국장은 “군 사망자 중 아직 3만 9000여 분 정도가 순직 결정이 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며 “기본적으로 유가족이나 사건을 알고 있는 분이 은폐 의혹이 있을 만한 사건에 대해 진정서를 많이 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하자… 임정, 마침내 日에 선전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하자… 임정, 마침내 日에 선전포고

    4부. 광복의 여명 : 충칭 시기 ② 일본의 패망1910년 한반도를 차지한 일본은 1931년 중국 만주를, 1937년 중국 대륙을 침략하며 제국주의 팽창 야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까지 점령한 뒤 “독일과 중동에서 만나겠다”며 버마(현 미얀마)·인도 전선까지 세력을 확대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마지막 정착지인 중국 충칭에서 당·정·군 체제를 갖춘 뒤 ‘전쟁 괴물’이 된 일본의 패망을 기다렸다. 해방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찾아왔다.●임정, 1945년 2월 28일 독일에도 선전포고 1937년 7월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자 영국과 미국은 자신들이 선점한 중국 내 이권을 빼앗길 것을 우려했다. 일본에 석유 수출을 금지했다. 이후 일본은 제조업 가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1941년 12월 미국의 해군기지인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석유금수 조치를 풀어 보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당시 두 나라 간 군사력 차이를 감안할 때 진주만 공습은 무모한 결정이었다. 미국은 즉각 일본과의 전면전을 선언하며 ‘태평양전쟁’(1941~1945)에 나섰다. 이 전쟁은 임정이 바라던 일이기도 했다. 광복군을 양성해 뒀다가 일본이 중국, 미국과의 전쟁에 나서면 이들을 도와 독립을 쟁취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임정은 일제가 진주만을 공격한 직후 주석 김구(1876~1949)와 외무부장 조소앙(1887~1958) 명의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일선전성명서’를 발표했다. “우리가 3000만 한인과 정부를 대표해 중국과 영국, 미국 등 여러 나라와 함께 일본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일본을 격패시키고 동아시아를 재건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기에 민주진영의 최후 승리를 미리 축하한다.” 임정은 독일에 대해서도 선전포고했다. 1945년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연합국 회의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이 회의에 참가하려면 3월 1일 이전에 독일에 선전포고를 해야 해 하루 전인 2월 28일 발표했다.●中 통제받은 광복군, 9개 조항 행동준승 논란 1940년 9월 태어난 광복군은 중국 국민당 정부의 도움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이 지원하던 또 다른 한인 부대였던 조선의용대 대원 상당수가 1941년 3~5월 본진을 이탈해 화베이 지역으로 떠나자 국민당 정부는 당황했다. 같은 해 11월 중국은 광복군에 대한 지원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한국광복군 행동준승’이라는 9개 조항을 전달했다. 중국 중앙군 참모총장의 명령과 통제를 받아 광복군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었다. 독립운동사 전문가인 이현희(1937~2010) 전 성신여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이 준승은 광복군이 사실상 중국의 고용군이 된다는 것으로 매우 굴욕적인 군사협정이었다. 중국이 임정을 어떤 존재로 여겼는지 의심스럽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자국 영토에서 활동하는 외국 군대를 통제하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당시 한인 독립운동 세력이 중국으로부터 충분히 신뢰를 얻을 만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기에 어느 정도 간섭이 불가피했다는 반론도 있다. 임정은 중국의 준승 명령에 분개해 청사를 중국에서 미국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자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 이승만(1875~1965)과 협의하기도 했다. 결국 중국은 우리 측의 지속적인 요구로 1944년 8월 광복군 통제권을 임시정부에 돌려줬다.●광복군, 한지성·문응국 등 임팔전투 투입 일본은 1942년 1월 영국의 식민지 버마를 침공했다. 인도에 주둔해 있는 영국군이 즉각 대응에 나섰는데, 이를 버마 전투(1942~1945)라고 한다. 영국군은 영어와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했다. 광복군은 영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인면전구공작대’를 꾸렸다. 인도와 버마 전선에서 활동하는 공작부대라는 뜻이다. 이들은 1943년 8월 영국군 총사령부가 있던 인도 캘커타에 도착했다. 한지성(1913~?)과 문응국(1921~1996) 등 9명이었다. 공작대는 영국군에게서 심리전 교육 등을 받고 1944년 초 임팔전선에 투입됐다. 임팔은 인도와 버마의 접경지역으로 열대밀림 산악 지대다. 광복군은 1945년 7월 일본군이 버마에서 완전히 패해 철수할 때까지 1년 넘게 영국군을 도왔다. 1945년 9월 이들은 충칭의 광복군 총사령부로 무사히 복귀했다. 한지성의 증언이다. “우리 공작대는 언제고 전투할 수 있도록 무장한 뒤 적(일본군)과 가장 가까운 진지에서 일본어로 방송을 했다. 선전문을 제작해 살포하고 일본군 문건을 번역하며 포로를 심문했다.”광복군은 미군과 함께 한반도 진공 작전도 추진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전략사무국(OSS·1942~1945)과 함께 한반도와 일본 본토에서 지하공작에 나서는 것이었다. OSS 특수훈련을 받은 광복군 대원을 국내에 잠입시켜 여러 활동에 나서기로 했는데, 이를 ‘독수리 작전’이라고 불렀다. 1945년 4월 OSS 요인들이 충칭의 임정 청사로 찾아와 작전 내용을 상세히 설명했고 김구는 이를 승인했다. 영화 ‘군함도’(2017)에서 독립운동 인사를 구출하고자 일본 나가사키현 하시마섬(군함도)에 잠입한 박무영(송중기 분)이 광복군 소속 OSS 요원이다.OSS는 같은 해 5월부터 광복군 내 엘리트들을 차출해 군사훈련을 시켰다. 대표적인 이들이 훗날 고려대 총장을 지낸 김준엽(1920~ 2011)과 사회운동가로 활약한 장준하(1918~1975)다. 이들은 일본군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영해 광복군에 합류했다. 김준엽은 1987년 개헌 당시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조문을 삽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장준하는 박정희(1917~1979)의 독재에 반대하다가 1975년 의문사했다. ●승전국 지위 확보·강대국 간섭없이 독립 목표 임정은 미군의 지시로 국내에 진격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8월이 되자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히로시마(6일)와 나가사키(9일)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8일에는 소련이 선전포고를 하며 만주국을 점령했다. 당시 일본 측 기록을 보면 일본군은 나가사키 원폭 투하보다 소련 참전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주변의 모든 나라가 적이 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일본은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광복군의 국내 진공 작전도 결국 무산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에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당시 임정은 한반도에 잠입해 2차 세계대전 승전국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면 강대국의 간섭 없이 한반도 독립을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봤다”며 “일본이 일주일만 늦게 항복해 광복군이 한반도에 참전했다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일부 학계에서는 광복군이 미군과 공동 작전에 참가했더라도 그 수가 워낙 적어 승전국 지위를 확보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본다. 그래도 임정이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 일본과의 전쟁에 나섰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외세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고자 노력했다. 광복군의 국내 진공 작전을 무의미하다고 평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의 패망이 다가오던 1944년. 임정은 좀더 정교하고 구체적으로 새 나라의 밑그림을 그려야 했다. 1943년 ‘카이로선언’(미·영·중이 일본 문제 논의)으로 조선 독립을 보장받은 시기였기에 이를 반영해 헌법을 개정했다. 주석(대통령) 중심제를 기본으로 하되 의원내각제를 가미해 절충적 정부를 구성했다. 교육과 직장, 노약자 부양을 요구할 권리를 보장하고 파업권도 명시했다. 사회민주주의 형태의 국가다. 이는 1941년 임정이 조선민족혁명당과의 합작을 앞두고 좌우를 아우르기 위해 내놓은 ‘건국강령’의 영향이 컸다. 건국강령을 지은 이가 ‘사민주의자’ 조소앙(1887~1958)이다.●조소앙의 삼균주의, 건국 이념 기초로 작용 일본 메이지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1919년 3·1운동 뒤 중국으로 망명해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다. 1919년 스위스 루체른에서 열린 만국사회당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 임정을 정식 국가로 승인해 줄 것을 호소했다. 1930년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다. 한독당은 1940년 5월 우파 통합정당의 이름으로 계승돼 임정의 여당이 됐다. 그는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가 모두 균등해지려면 정치와 경제, 교육의 세 가지 조건이 동등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것이 삼균주의인데, 훗날 건국강령의 이론적 기반이 됐다.●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 한국전쟁 때 납북 해방 뒤 김구와 함께 한독당을 이끌었고, 1948년 12월 우리나라 최초의 좌파 정당인 사회당을 창당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전국 최고득표율로 당선됐지만 6·25전쟁 때 납북됐다. 만약 임정의 ‘1944년 헌법’대로 해방 정부가 꾸려졌다면 지금쯤 우리는 독일이나 스웨덴을 모델로 한 사민주의 국가에 살고 있을 것이다. 조석곤 상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1948년 제헌헌법은 건국강령의 경제조항을 계승하고 있다. 그것은 장기간에 걸쳐 이룬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충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의문사’ 김영민 소위 36년 만에 순직 인정

    1982년 최전방 철책선 경계 근무 중 의문사한 고(故) 김영민 소위(사망 당시 23세)가 숨진 지 36년 만에 순직을 인정받았다. 23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국방부는 지난달 전공사상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자살자’로 분류했던 김 소위를 ‘경계 등 직무수행 중 사망한 사람’으로 판단해 순직자로 인정하고 이번 주 중 유족에게 통지하기로 했다. 김 소위는 대학 학군단(ROTC)을 거쳐 1982년 3월 소위로 임관한 뒤 최전방 부대인 21사단 일반전초기지(GOP) 중화기중대 소대장으로 배치됐다. 그러나 불과 3개월 만인 1982년 9월 22일 새벽 초소에서 이마에 M16 소총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소위의 형은 동생 왼쪽 다리 정강이에서 군화로 채여 움푹 파인 일명 ‘조인트 자국’과 얼굴 상처 등을 발견하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군 당국은 더 조사하지 않고 단순 자살로 결론 내렸다. 지난해 7월 김 소위 형의 탄원서를 접수한 권익위는 1년여 조사를 거치 뒤 국방부에 “순직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김 소위가 사망 이틀 전에 쓴 마지막 일기에는 ‘나도 침묵을 지키면 동조자가 된다. 말해야 한다. 그에게 말했다. 최후통첩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에 권익위는 김 소위의 죽음이 병영 내 군 생활과 깊게 연관돼 있다고 봤다. 권익위는 김 소위가 책임감이 강하고 평소 부하를 아끼는 소대장이었다는 점, 사망 전 부대 상관과 갈등이 있었다는 증언 등을 고려해 단순 자살로 특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편 김 소위가 다녔던 서강대 합창반 ‘에밀레’가 불러 1983년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은 ‘그대 떠난 빈들에 서서’는 의문사한 김 소위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는 곡으로 알려져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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