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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軍 의문사’ 모두 20여건/사례와 문제점

    ◎유족들 재수사 요구해도 묵살 예사/지금까지 대부분 자살·사고사 처리 자살 타살의 여부가 분명하지 않으면서 사인에 관한 진실이 은폐되거나 조작되었다는 의혹이 있는 죽음인 의문사는 특히 군부대 내에서 많이 발생해왔다. 군의 본질인 구성원간의 수직적 관계가 잘못되어 ‘석연치 않은 죽음’을 싹틔운 토양으로 변질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독재 정권 시기일수록 이 토양은 비옥해져 의문사가 많았다. 전국 민족민주 유가족협의회(유가협) 등에 따르면 의문사는 총 40여건에 달하며 이중 군부대 의문사가 20여건으로 절반이 된다. 특히 유가협은 군사독재정권인 5공과 6공 초기인 80년부터 88년 사이에 무려 18건의 군 의문사가 있었다고 밝혔다. 국정감사가 부활된 지난 88년 10월 국방부는 이제까지 군대에서 안전사고로 3,723명이,군기사고로 2,670명이 사망했으며 군기사고중 2,254명이 자살,나머지는 폭행으로 죽었다고 공식 발표했었다. 유가협이 제기한 군 의문사는 모두 성격결함,환경비관 등의 염세성 자살이거나 사고사인 것으로 처리되었다. 즉군에는 한건의 의문사도 없음을 천명한 것이다. 군 의문사 관련 가족들은 군부대가 자식들의 죽음을 연락하는 데는 크게 지체하지 않았지만 부대에 도착해도 상황을 설득력있게 설명해주기는 커녕 돌연사태에 경황이 없는 틈을 타 화장동의서를 받는 데 급급했다고 불평하고 있다. 유가협이 제기하고 있는 군 의문사는 5공 초기 시국관련 문제 대학생들을 강제징집하고 강제순화 교육을 실시한 ‘녹화사업’에서 처음 발생했다. 강제징집된 6명의 학생들이 프락치 역을 강요받으며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소문이 83년말부터 학원가에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5공은 국방장관의 국회보고를 통해 이들의 죽음이 모두 염세성 자살이거나 군기사고라며 의문사 의혹을 부인했다. 84년에 사망한 허원근의 경우 아버지가 앞가슴에서 어깨뼈를 관통하여 갈비뼈가 어깨 등뼈를 뚫고 나왔는데 어떻게 팔을 움직여 다시 총을 잡아 제 2, 제3의 총알을 쏠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하자 부검의로 나온 군의는 “총을 일곱발이나 맞고도 살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87년에 사망한 이이동의 경우 아버지가 지문채취와 부검 미실시,사체검안 및 현장검증 등에서의 의문사항을 들며 재수사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또 87년 박상구의 의문사에서는 농약을 먹고 병원에서 죽었다는 군부대의 설명과 달리 부대내에서 타살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우측 목 부근에 칼 자국이 있어 어머니가 손가락을 넣어보니 끝이 닿지 않았으며 목이 졸린 흔적이 역력했다.
  • 이제 내 아들 죽음 진실 밝혀져야/金 중위 아버지 金拓씨 인터뷰

    “피와 눈물로 보낸 세월이었습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근무하다 지난 2월24일 의문사한 金勳 중위(25·육사 52기)의 아버지 金拓씨(55)는 9일 “이번 사건이 모든 의문사를 뿌리뽑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金씨는 사고 이후 아들을 잊지 못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집밖에서 통곡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잠도 서너시간밖에 자지 못했고 밥도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꼭 풀어야겠다는 일념으로 가족들은 힘을 모았다. 아들의 죽음을 타살로 의심하게 된 것은 영결식 때였다. 영결식 도중 미군 수사기관 사람들이 와서 아들의 지문을 채취해 갔기 때문. 군의 초동수사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金씨는 스스로 증거 확보에 나섰다. 아내,처제와 함께 부대 근처에 살다시피하며 몇시간씩 눈물을 흘리며 병사들을 만나 사정하기도 했다. 갖은 고생끝에 아들이 자살할 때 사용했던 총에 지문이 없다는 점,머리 위쪽에 피멍이 있었으며 반항한 흔적이 있는 점 등 타살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아냈다. 그러나 군당국으로부터 번번이 묵살당했다. 육사 21기로 군단장을 거쳐 중장으로 전역한 예비역 장성인 金씨는 평생을 몸담은 군당국의 무성의한 태도와 싸우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나는 36년,아들은 6년의 군생활을 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군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면서 “군당국이 사실대로 수사해 진실을 밝혀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 경비병 北 접촉 10개월 방치/나사 풀린 民·軍 수사기관

    ◎귀순자 통해 2월에 ‘40명 포섭’ 알아/“과장 진술”“구체적 혐의 없다” 무시/관련자 소환 등 조사않고 미온 대처 민·군 수사기관들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 경비병들이 북한 대남심리전 특수요원들과 접촉한다는 귀순자의 진술에도 불구하고 10개월이 지나도록 본격적으로 수사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9일 국방부에 따르면 전 북한군 상위 변용관씨가 지난 2월3일 귀순한 뒤 JSA내 우리측 경비병 40여명과 접촉해 포섭공작을 했다고 진술했다.하지만 안기부 국방부 경찰청 기무사 정보사 등 5개 기관은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하는 등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변씨는 2월3일부터 9일까지의 5개기관 합동신문에서 “북한 공작원들이 판문점내 2초소와 북측 4초소 부근 군사분계선상에서 남한경비병들을 몰래 만나 선물을 교환하는 등 포섭활동을 펴고 있다”고 밝혔다.이어 “한국군 경비중대 4개소대 152명이 북한 공작조의 포섭대상이며 개인적으로 A일병,B일병,C일병과 직접 접촉했다.98년 2월 현재 한국군으로 북측 공작요원과 접촉하고 있다.2소대 김모상병과 친숙하게 만나 공작했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그러나 합동신문조는 ‘변용관이 한국군과 접촉,대화만 했음에도 실적을 인정받기 위해 포섭된 자라고 과장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변씨의 진술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군 기무사도 2월12일 변씨를 독자적으로 조사,‘한국군 경비병 3명을 직접 만났으며 또다른 4명을 포섭했다는 동료 특공조원의 보고서를 봤다’는 내용과 함께 이들의 이름까지 진술받았으나 ‘아직 포섭단계에까지 이르지 않았다’는 판단 아래 관련자들을 조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무사 관계자는 “변용관이 우리측 경비병 3명을 1∼2회 만났지만 그 이상 접촉하려 하면 피했다고만 말할 뿐 구체적인 혐의 내용을 제시하지 못해 특이 사항이 없는 것으로 보고 적극 수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JSA내 우리측 경비병들의 대공 근무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지난 2월18일 유엔사측에 기무사 요원이 상주해 활동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공문을 보냈으나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무사는 또 지난 6월부터 金勳 중위 사망사건에 대한 정밀 재수사를 실시한 육군 검찰부로부터 수사협조나 협의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해 군 검찰의 수사가 허술하게 진행됐음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군 수사당국은 JSA에서 근무하다 전역한 병사들은 수사대상이 아닌 데다 구체적인 혐의나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수사에 나설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군 수사 관계자는 “이번에 구속된 당시 부소대장 金모중사는 변용관도 전혀 거론하지 않아 조사하지 않았으며 지난 6월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미18의 무사 행정관으로 자리를 옮기도록 했다”고 말해 金중위 사망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 극히 미온적이었음을 시인했다. ◎김훈 중위 의문사 일지 ●2월3일=판문점 대표부 소속 북한군 변용관 상위 귀순. ●2월24일=金勳 중위(JSA 소대장) 권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 ●2월25일=金중위 부대 공동경비구역에서 후방으로 빠지는 날. ●4월∼11월=金중위 아버지 金拓 예비역 중장,군 수사당국의 자살발표에 의혹 제기,국회 국방위에 탄원서 제출 등 진상규명 활동. ●10월26일=국회 국방위,金중위 사망사건 진상파악 소위원회 구성. ●11월27일=육군본부 고등검찰부 金중위 사망사건 최종수사 결과 발표.자신의 권총으로 자살 결론. ●12월3일=국방위 소위,JSA 소속 金영훈 중사(28)가 북한군과 자주 접촉했다는 참고인 진술 확보. ●12월4일=기무사령부,金중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12월9일=국방부,金중위 사건 전면 재조사 착수.
  • 金 중위 의문사 재수사 전말

    ◎유족 등 잇단 타살 의혹 제기에 ‘총격 자살’ 사건 원점서 재조사 金勳 중위 의문사 사건이 재수사에 이르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지난 2월24일 金중위는 권총에 맞아 숨진 채로 발견됐고 군 수사당국은 金중위가 자살했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었다.그러나 유족들은 金중위가 타살됐다는 확신 아래 국회 국방위에 탄원서를 내는 등 진상규명에 나섰다. 金중위가 타살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는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제기됐다.지난 9월 미국 뉴욕 주정부의 법의학자 루이스 에스 노 박사(한국 이름 노여수)는 金중위의 사망이 ‘자살로 교묘하게 위장된 타살의 전형’이라는 소견을 밝혔다.권총을 오른손으로 잡고 자살했으면 신체 구조상 탄환은 왼쪽 머리 위쪽으로 나와야 하는데 金중위의 경우는 아래쪽으로 나왔다는 것이다.모 주간지는 사망 현장에 있던 권총번호가 金중위의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보도하며 타살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같은 의혹 제기에 따라 결국 육본 고등검찰부는 약 5개월 동안 사건을 재수사한 결과,지난달 27일 사망원인을 ‘격무와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로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 10월 구성된 국회 국방위 ‘金勳중위 사망사건 진상파악 소위원회’ 비공개회의가 처음으로 열린 지난 3일 밤 金중위 소대의 부소대장인 金영훈 중사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군기무사에 체포되면서 국면은 바뀌기 시작했다.국방위 소위의 조사와 유족들의 노력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金중위의 아버지 金拓씨가 그동안 확보한 전역 병사들의 증언도 타살 가능성을 내비쳤다.증언을 종합하면 金중위의 사망 시간에 있어서도 군 당국의 발표와 실제 상황에서는 차이가 났다.이들은 金중위의 사망 시간이 아침 10시35분에서 11시 사이라고 증언했다.하지만 군 당국은 오전 11시50분에서 12시20분 사이라고 발표해 1시간 가량 차이가 났다. 사건이 일어난 지 한달 후 조사차 방문한 1군단 헌병대 수사팀은 소대원을 한자리에 불러 놓고 서로 상의하면서 그 날의 행적을 쓰게 했다.중대장 金모 대위도 ‘이미 자살로 결론이 난 사건이니 상의해서 작성하라’고 지시했다.이 때 金중사는 ‘내가 사고 현장에도착해 시계를 보니 12시29분이었다’고 강조,소대원들은 이를 기준으로 진술토록 유도했다.그러나 金중사의 증언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결국 金중사의 구속,전역병들의 증언,국방위 소위의 조사 등과 유족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사건은 9개월 만에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 ‘판문점 병사 내통’이라니(사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근무하는 우리 병사들의 북한군 접촉사실은 국민들에게 또한번 충격을 주고 있다. 미사일 오발에다 불발포탄 폭발,조명탄 사고에 이어 최전선 병사들의 ‘적과의 내통’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최근 잇달아 일어나고 있는 군관련 사고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도 군기(軍紀) 해이가 어느 정도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걱정한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근무하는 장병들에게는 투철한 군인정신과 보안의식이 필수적이다. 이들이 북한군과 수시로 접촉하며 값비싼 손목시계를 선물로 받는가 하면 몰래 북쪽으로 넘어가 술까지 마셨다니 우리 군의 기강이 얼마나 흐트러져 있는지 짐작할 만한 일이다. 더욱이 북한 경비병들은 심리전의 특수훈련을 받은 ‘적공조’요원들로 알려져 있다. 우리 병사들이 이들과 접촉하면서 어떤 중대한 정보를 얼마나 주었는지 걱정스럽다. 군 관계자들은 공동경비구역 장병들이 북한 경비병들과 접촉하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로 그리 놀라워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언제 어떤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동경비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얼굴을 익히고 지내는 것이 긴장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상사의 엄격한 통제아래 이루어져야 하며 결과는 반드시 지휘계통에 보고되어야 한다. 병사들이 멋대로 북쪽을 오가며 적과 만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마디로 지휘체계나 안보의식이 엉망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우리 군의 보안체제이다. 구속된 김모중사의 경우 지난해 7월부터 북쪽을 들락거렸고 부대 안에서도 몇차례 문제가 됐었는데도 보안계통에 전혀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지난 2월 귀순한 북한군 상위가 우리 병사들의 북한군 접촉사실을 진술했는데도 이에 대한 조치가 없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군 당국이 알고도 방치하거나 은폐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게 한다. 이 사건이 판문점에 근무하던 한 소대장의 의문사와 관련됐다는 의혹도 주목된다. 군 당국이 스트레스로 인한권총자살이라고 발표한 소대장의 죽음이 유가족들의 주장대로 북한 접촉사실을 숨기기 위한 타살이라면 여간 큰 문제가 아니다. 철저한 재조사로 정확한 사망원인을 밝혀야 할 것이다. 군의 생명은 군기이다. 군의 기강이 이처럼 흐트러져서는 튼튼한 국방이나 안보는 기대할 수 없다. 특단의 대책을 거듭 촉구한다.
  • 어머니의 한/한충목 열사범추위 집행위원장(굄돌)

    20년전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절규하며 산화한 청년 전태일이 있었습니다. 87년,‘독재 타도,호헌 철폐’를 외치며 거리로 나선 이한열 군이 직격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이렇게 죽어간 꽃다운 청춘이 430명. 자기 한 몸의 안락보다도 모두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꿈꾸다가 지금 우리와 함께 할 수 없게 된 이들을 우리는 열사라 부릅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러 98년 스산한 초겨울,여의도 국민회의 당사앞에선 먼저 간 아들·딸보다 더 오래동안 싸우고 있는 어머님·아버님들이 ‘민족민주유공자 명예회복과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 특별법’제정을 촉구하는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하셨습니다. “살아 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올해 안엔 특별법 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국민의 정부’의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유가족회장단을 초청한 자리에서 특별법이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도록 정부와 여당에 적극 협력할 것을 지시하겠다고 굳게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법안이 아직 국회 법사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유가족의 가슴은 한번 더 무너져내립니다. 김대통령은 지금 제2의건국 즉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에 모든 국민이 함께 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나라가 바로서려면 민주화를 외치며 스러져간 분들에의 올바른 역사적 평가,의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 그리고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분들 가슴에 맺힌 한과 억울함이 법제정으로 씻기리라고 여기지는 않지만, 특별법 제정은 우리 역사와 나라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 될 것이며 죽은 자식과 살아 있는 어버이들의 한맺힘을 푸는 소중한 시작이 될 것입니다.
  • 민주열사 열전:12/‘녹화사업’ 의문사:하(정직한 역사 되찾기)

    ◎‘염세 자살’로 매도된 의문의 죽음들/이윤성­신검없이 징집… 제대 8일 앞두고 죽어/김두황­운동권 리더… ‘애인변심 자살’ 軍 강변/한영현­늑막염 앓아 軍면제 판정 불구 끌려가/최온순­가족 항의로 재수사해 자살 오명 벗어/한희철­새벽 4시 사망… 녹화사업중 고문 의혹 대학생들의 강제징집과 이들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었던 녹화사업은 80년대초 연세대생 정성희를 비롯한 여섯명의 죽음과 결부되어 계속 거론되고 있다.대부분 염세 자살이라는 군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인권단체들과 가족들은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의 강제순화·관제프락치 공작활동이 이들 의문사의 직간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다섯명의 의문사를 차례로 알아본다.(정성희는 10월15일자 녹화사업 첫회에 보도) ▷이윤성◁ 81년 성균관대 역사철학 계열에 입학한 이윤성은 유복한 가정환경이었지만 사회·역사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었다고 한다.2학년 때 인문과학연구회라는 동아리의 회장직을 맡았다.82년 11월3일 학생의 날 가두시위에 참가, 여러 학생들과 함께 경찰서로 연행됐다.조사 과정에서 동아리 회장이란 것이 밝혀져 11월7일 새벽 신체검사도 없이 군에 끌려갔다. 그는 부친이 60세가 넘은 고령인 3대 독자인데다 시력마저 나빠 상식대로 하자면 현역입대가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83년 1월10일쯤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면회갔을 때 이윤성은 건강한 모습으로 “내가 여기서 짬밥을 제일 잘 먹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하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뒤늦게 가정환경이 참작돼 5월말 의가사 제대가 결정되었다.제대가 8일밖에 남지 않은 5월4일 이윤성 부모는 아들이 이날 새벽 자살했다는 군당국의 통보를 받았다. 국방부는 88년 국정감사 자료에서 ‘이윤성은 군 수사기관의 조사기간 중에 사망했으나 이 조사는 학원소요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국감 자료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이윤성은 83년 4월19일 소속대 인근에서 북괴가 살포한 월북용 안전보장증 등 불온전단 2매를 습득,본인의 철학개론 책자 속에 보관하다가 4월30일 소속대대 보안담당관 중사에 의해 관물함에서 적발됐다.5월3일 당시 지역 보안부대 대공계장 상사가 월북 용의성 및 전단휴대 경위 등을 조사하고 취침에 들도록 했으나 4일 새벽 2시 반경 용변본다고 밖으로 나가 부대 정구장 심판대에 군화끈 및 요대를 사용해 목매 자살했다.가족 입회 아래 부검을 실시했으며 구타 등의 타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들은 지금도 그의 죽음에 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84년 국방장관의 국회보고와 마찬가지로 이 국감 자료도 이윤성이 자살할 당시 제대가 8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김두황◁ 80년 고려대에 입학해 경제학과 과대표와 경제학 동아리 회장을 맡은 김두황은 학내활동의 활성화와 민주화를 주도한 고대 운동권 리더의 한명으로 알려졌다.4학년이 된 83년 3월초 학내 학회,동아리 회장들과 호국단 선거,4·19행사 등을 논의하던 중 성북경찰서에 연행됐다.1주일간 조사를 받고 석방되었으나 곧 부모와 함께 다시 경찰서로 불려온 뒤 어쩔 수 없이 자원입대서에 서명했으며 즉시 군대로 끌려갔다. 3월18일 입대한 김두황은 3개월 뒤인 6월18일 밤11시 30분 자살했다고 가족들에게 통보됐다.그간 외출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군생활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나 훈련 성적이 우수해 사단장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시신은 두부가 없어진 참혹한 모습이었다고 한다.군 당국은 가족들에게 “동료 2명과 경계 근무를 서던 중 ‘소변보러 간다’고 한 후 잠시 있다가 총성과 함께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군은 가족들에게 사인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와 화장동의서를 받아낸 뒤 부검은 실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84년 국회에 보고할 때 국방부는 김두황의 사망 원인에 대해 ‘내성적인 성격으로 전방부대에 배치된 것에 불만을 표시하고 내무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군복무에 염증을 느껴왔으며 애인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고심하다가 자신의 소총으로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그의 고대 학우들은 김두황의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 등과는 전연 어울리지 않는 ‘관제’ 사망원인이라고 반박해 왔다. 같이 강제징집된 뒤 죽음의 공포감이 엄습하는 녹화사업을 겪었던 친구 양창욱씨는 “두황이가 고대 운동권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생각하면 나보다 훨씬 심한 녹화사업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영현◁ 81년 한양대 기계과에 입학한 한영현은 민속문화연구 동아리와 야학활동에 참가하던 중 83년 1월 부천 야학선배의 경찰조사 과정에서 이름이 나와 성동경찰서로 연행됐다.경찰서 조사후 4월1일 수원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늑막염으로 병종 판결,군대에 갈 수 없는 처지였다.그러나 이튿날 경찰서 출두명령을 받고 나간 뒤 행방불명되었으며 보름 후 그의 옷이 집으로 우송되자 가족들은 비로소 강제로 군에 끌려간 것을 알았다. 그는 입대후 훈련소에 가지 않고 4월10일부터 18일까지 군 수사기관에서 그간의 활동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고 뒤에 말했다.6월18일 포상휴가를 나왔는데 그의 팔에 철사로 심하게 맞은 듯한 피멍이 선명했다고 한다.휴가중 그는 “정신력으로 모든 환경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되나 자신이 없다” “기관의 어느 사람을 만나면 의가사로 10월이면 제대가 가능할 수 있지만 죄책감이 너무 크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전한다. 귀대한 지 얼마 안되는 7월2일 부대로부터 전보로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불침번 근무중에 분대장의 탄입대에서 실탄 1발을 절취한 뒤 2일 아침 9시 경계근무를 서다 M16 소총으로 자살했다”는 것이다.국방부는 84년,88년 관련보고에서 모두 한영현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강조했다.‘한영현은 모친이 부동산투기로 가산을 탕진하여 부친이 사우디 취업중 귀국해 불화 끝에 모친을 토막살해한 죄로 무기형 복역중이고 형도 소아마비인 것을 고민해 세상을 비관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마치 그의 아버지 사건이 당시에 일어난 것처럼 발표했지만 실은 3년 전인 고3 때의 일이며 한영현은 이 와중에서도 한대 기계과 장학생으로 입학했다.대학 학우들도 그의 학교생활이 아주 건강했다고 말한다. ▷최온순◁ 83년 동국대 사대 수학교육과 3학년이던 최온순은 시위예비 음모 혐의로 5명의 학우와 함께 경찰에 연행돼 1주일 간 조사를 받은 후 3월29일 강제징집 되었다. 4개월이 조금 지난 8월14일 군에서 급위독이라는 전보를 보내와 가족들이 급히 부대로 가보니 그는 벌써 새벽 4시경 숨을 거둔 뒤였다.헌병대에서 나온 사람이 자살이라고 통보했으나 가족들이 자살할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갖고 강력히 항의하고 영안실의 사체를 며칠간 지키면서 재수사 및 진상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이에 군 수사대가 재수사를 하여 그 결과 고참병과 말다툼 끝에 피살되었다는 수정 통보를 얻어내 최온순은 자살이라는 오명을 벗고 대전 국군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공식 군 수사기록은 가족의 항의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가운데 철책선에서 같이 복초를 서던 고참 상병이 ‘최온순의 자살을 주장했으나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추궁하자 그의 우발적 살인 범행을 자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84년 국회 보고서는 ‘최온순은 복초근무중 잠을 자다가 고참인 상병이 주의를 주자 이에 반항해 소총으로 가해하려다 상병이 소총으로 위협한다는 것이 잘못돼 오발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강제징집된 뒤 최온순과 함께 훈련받았던같은 대학의 최석민씨는 “한대 때렸다고 해서 고참에게 총을 겨누기엔 그는 너무 밝은 성격이었다”고 아직도 못믿어 한다. ▷한희철◁ 빈한한 가정에서 79년 철도청 장학생으로 서울대 공대 기계설계학과에 입학했으며 4학년말인 82년 12월1일 군에 자진입대했다.서울대 가톨릭학생회와 성남 대학생연합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등 운동권 성향을 보이자 지도교수가 장학금을 주지 않겠다고 해 일단 휴학을 했다는 것이 가족들의 설명이다. 군 생활에 잘 적응해 포상휴가를 두번이나 받았고 83년 10월14일 보름간의 첫 정기휴가를 나왔다.친구들에게 “늦어도 한달 후에는 의가사 제대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귀대한 지 한달 쯤 지난 12월11일 자살했다는 연락이 왔다.84년 국방부 사망원인에 따르면 ‘평소 가정빈곤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음을 비관했고 입대전 의식화 동아리에 가입했으며 정기휴가 때 학원소요와 관련해 도피중인 친구의 주민등록 갱신을 위해 방위병인 다른 친구에게 용지를 훔칠 것을 부탁한 사실이 적발돼 조사를 받고 훈방된후 평소 불만과 주민등록증 절취모의 탄로로 고민하다 자살했다’는 것이다. 사망 당시 군 당국의 설명에 의혹을 떨구지 못한 부친 한상훈씨가 끈질기게 알아본 결과 한희철은 12월6일 당시 보안사령부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10일 귀대한 것으로 드러났다.부친은 이때 전기고문이 가해졌고 주민등록증 용지 건뿐 아니라 심한 녹화사업 취조가 행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그의 11일 새벽4시 사망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 “의문사 진상규명 최선”/金 대통령 유가협인사 청와대 초청 오찬

    ◎“이번 국회서 명예회복 등 적극 추진”/박종철·이한열군 부모 등 8명 참석 金大中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취임후 처음으로 ‘전국 민족민주운동 유가족협의회’인사들과 오찬을 함께 했다.민주화 운동과정에서 자녀를 잃었음에도,‘천덕꾸러기’ 비슷하게 취급당해온 인사들이 대통령의 초청을 받은 것이다.이번 정기국회에서 ‘의문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제정을 건의하기 위해 이들이 요청해 이뤄진 것이지만,만남 자체가 의미있는 행사였다는 게 朴仙淑 청와대부대변인의 설명이다. 오찬에는 8명이 참석했다.李韓烈군의 어머니 裵恩心씨를 비롯,朴鍾哲군의 아버지 朴正基씨,姜慶大군의 아버지 姜珉祚씨,全泰壹군의 어머니 李小仙씨와 李海東 목사,李昌馥 전국연합 상임의장 등이다.이들은 감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고 강민호군의 어머니 金惠洙씨와 李小仙씨의 경우는 金대통령과 인사를 나누자마자 연신 눈시울을 훔쳤다. 金대통령은 “나도 어려움을 겪었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생명을 바치고 박해를 당한 여러분들의 거룩한 희생이 없었더라면 민주주의가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픔을 토로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그러면서 “의문사 진상규명 등으로 고귀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이들을 위로했다.또 “우리 국민들이 민주화를 위해 숨진 희생자의 거룩한 정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며 “여러분들도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데 협력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裵恩心씨와 朴正基씨,李昌馥씨의 건의가 이어졌고 金대통령은 의문사(42명)와 유가협회원(400명)현황을 물었다.이들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특별법을 제정해 줄 것과 현재 광주묘역이 50기로 비좁아 제2의 묘역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金대통령은 “할 수 있는 일을 다할 것”이라며 “국회에서 명예회복이 될 수 있도록 청와대와 여당이 협력해서 추진하겠다”면서 배석한 李康來 정무수석에게 적극 검토를 지시했다.
  • 민주열사 열전:11/‘녹화사업’ 의문사:상(정직한 역사 되찾기)

    ◎강제순화·프락치 강요에 ‘비극적 저항’/정 烈士 시위현장서 곧바로 징집… 의문의 죽음/5공 군당국 부모에 ‘이의제기 포기’ 각서 간청 광주학살 등 폭력을 자행한 5공화국의 全斗煥정권은 80년대 초 국민을 혹독하게 탄압하면서 독재정권의 기반을 다졌다.공포의 경찰국가 같은 상황이었지만 대학의 ‘반독재 반군사정권’ 시위와 함성을 막을 수는 없었다.5공 정권은 대학 시위를 막기 위한 특별조치를 강구하기에 이른다.그중 하나가 대학생 강제징집과 ‘녹화(綠化)사업’이다. ○대학생 477명 강제징집 녹화사업은 강제징집된 대학생들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라고 국방부는 밝혔으나 그 과정에서 여섯명의 의문사(死)가 나왔다.본래 군대갈 나이가 됐더라도 대학에 다니고 있으면 퇴학·휴학 등의 학적변동이 없는 한 신체검사와 입영이 연기된다.아울러 신검과 입영은 각각 20일,30일 전에 통지서와 영장이 송달된 뒤에 이뤄지도록 되어 있다.그러나 5공정권은 81년 11월부터 시위저지책의 하나로 학생들을 강제징집하기 시작했다. 당시 버젓이 대학내에 상주해온 정보요원에 의해 문제학생으로 지목됐으나 법으로 걸 만한 뚜렷한 혐의가 없던 학생,시위현장에서 붙잡힌 단순가담 학생들을 경찰서로 끌고와 구타와 함께 조사한 다음 집으로 돌려보내는 대신 곧바로 군부대로 끌고 갔다.병역법상의 사전통지 조항을 정면으로 무시했고 대학생 입영의 필수요건인 학적변동도 대부분 사후에 이뤄졌다. 6공이 들어선 88년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뒤늦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5공정권은 83년 말까지 2년 동안 이같은 강제징집으로 447명의 대학생을 억지로 군대에 보냈다.자진 휴학 등 정상적으로 학적이 변동되어 입대하는 경우와는 다른 이 ‘특수 학적변동’ 입대자들 가운데는 정상적인 신검을 받았을 경우 입대할 수 없는 신체상 결격사유나 가정환경의 학생들이 상당수 포함됐다.연령 미달자도 있었고 소아마비로 신체가 불편한 사람과 3대독자도 끌려갔다. ○장애자·3대 독자도 끌어가 강제징집은 강제징집으로 끝나지 않았다.당시 군 보안사령부가 입안한 ‘녹화사업’이 기다리고 있었다.‘녹화사업은 병역법에 의거,학원소요 관련 학사징계로 83년 11월까지 입대조치된 자 447명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라고 국방부는 88년 국정감사에서 밝혔다.문제학생들의 급격한 입대 증가 추세로 좌경의식의 군내 유입이 우려돼 보안사에서 이 ‘녹화사업’ 계획을 수립,많은 의식화 오염자들에게 올바른 시각을 갖게 했다고 이때 국방부는 덧붙였다. 그러나 강제징집되어 군에서 녹화사업에 동원된 학생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그들은 학생운동에 관한 정보를 빼내고 이를 탄압하기 위해 보안사가 펼친 강제순화 및 관제프락치 공작활동이라고 주장해 왔다.녹화사업은 정신적인 성장 과정에 초점을 맞춘 방대한 분량의 자술서 작성으로 시작된다.의식 상태를 면밀히 심사하고 체제를 긍정하도록 하는 의식 개조작업이 뒤따른다.소속 군부대 및 서울 보안사 분실에서 행해진 운동권학생들의 ‘빨간 물을 빼고 푸른 물을 들이는’ 순화작업은 보름에서 두달간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녹화사업은 그러나 ‘순화됐다’는 맹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순화’된 학생에게 이를 입증할 관제프락치의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다.대개 휴가 형식으로 사회에 내보낸 뒤 대학 선후배 등을 만나 활동상황,특이 동향의 정보를 수집,보안대에 보고하도록 강요한다.갑자기 군에 끌려온 학생들은 이같은 녹화사업으로 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다. 84년 초 강제징집된 6명의 대학생이 보안사 녹화사업 과정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소문이 학원가에 돌았고 곧 정치·사회문제화됐다.84년 6월 당시 尹誠敏 국방장관은 국회에 나와 ‘학적 변경과 관련한 입대자 중 81년이후 군에서 사망한 인원은 자살 4명(정성희 이윤성 김두황 한영현),군기사고 1명(최온순) 등 5명이며 자진휴학 지원입대해 자살한 1명(한희철)을 포함하면 모두 6명’이라고 밝혔다. ○선후배 활동상황 보고 강요 尹관은 이같은 인명 손실은 학원사태 관련 군입영자에 대한 차별대우로 야기된 결과가 아니라고 강조했다.물론 ‘강제징집’ ‘녹화사업’이란 말도 쓰지 않았다. 녹화사업이 82년 9월부터 84년 11월까지 265명에 실시됐다고 밝힌 88년 국감 때도 국방부는 의문사에 대해 같은 입장을 견지했다.다만 녹화사업이 정치문제화함에 따라 84년도에 녹화사업 업무를 중단하고 보안사 전담부서를 폐지했다고 밝혔다.관련 자료도 3년 보존기간이 지나 폐기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권단체와 가족이 제기하는 녹화사업 의문사는 심증만 있을 뿐 진상을 알기가 극히 난망한 실정이다.여섯명의 의문사 중 ‘강제징집 사망1호’인 정성희씨의 경우를 먼저 살펴본다.(나머지 5명은 다음 회에서 보도할 예정이다) 81년 연세대 영독불문학 계열에 입학했던 정성희는 대학생활 8개월 만인 11월25일 교내시위 현장에서 20여명의 교우와 함께 연행됐다.이중 15명이 강제징집당했다.연행 3일 후 가족에게 알리지도 못한 채 군에 강제로 입대한 그는 82년 6월8일 첫 휴가를 나와 친구,가족들에게 보안대의 감시 등을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귀대한 지 달포 후인 7월23일 아침 갑자기 사망통보가와 가족이 전방으로 달려가자 이날 새벽 0시10분 철책근무 중 목에 M16소총 4발을 발사해 자살했다는 설명이었다. ○사망현장 답사요구 묵살 군당국은사고현장이 민간인 통제구역의 최전방이므로 현지답사가 불가능하다며 간단한 도면설명과 함께 자살임을 믿어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부모로부터 부검포기서와 화장동의서,그리고 사망사인에 이의없고 이후 법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고 사체를 처리했다.유서는 없고 ‘백양로를 한번 더 걸어보고 싶다.죽음 앞에서 내가 이렇게 담담하다니’ 등 8줄 정도의 낙서만 보여주었다고 한다. 84년 국방부가 국회에 보고한 사망원인에 따르면 입대해 평소 사회제도에 불만을 토로했으며 사고 당일 전방교육 실습차 입소한 대학생 1명과 복초근무를 하면서 “순수한 철학도의 소원을 이루지 못해 안타깝기만 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했다는 것이다.88년 국감자료는 보안사 정훈교육 이전 사망자로 염세 자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그러나 정성희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다.정성희와 다른 5명의 의문사는 민주화를 열망했던 학생들의 독재정권에 대한 비극적 저항이었다. □정성희 열사 연보 ▲1962년 인천 출생 ▲81년 부평고 졸업 연세대 영독불계열 입학 ▲81년 11월25일 학생시위로 연행 ▲81년 11월28일 강제징집 ▲82년 7월23일 사망 ◎당시 고려대생 양창욱씨 ‘녹화사업’ 회고/1주일간 심한 구타뒤 ‘감옥’‘군입대’ 택일 강요/보안대 조사땐 ‘감쪽같이 죽을수도’ 공포 엄습 현재 부천에서 ‘어린이 과학실험교실’을 내고 있는 양창욱(38)씨는 고려대 4학년 때인 83년 3월 문과대 시위주동자로서 성북경찰서에 연행됐다.다음은 그의 녹화사업 회고. 경찰서에서 1주일간 심하게 두들겨맞은 뒤인 3월7일 갑자기 부모를 불러오더니 ‘감옥에 보내겠느냐,군대에 보내겠느냐’며 양자택일을 강요했다.부모들이 군입대 각서에 서명한 직후 춘천 보충대로 가서 요식적인 신검을 치렀다.불러주는 대로 받아적는 서류작성에 불과했다. 동해에 있는 훈련단에 보내져 6주 훈련에 들어갔다.보름 만에 부친상을 당해 휴가를 나왔는데 서울에 도착하는 순간 슬픔도 슬픔이지만 해방감에 당황할 정도였다. 3개월쯤 지난 뒤인 6월 초 배치된 철책 초소에서 강릉 사단사령부 보안부대로 소환됐다.하룻밤을 묵으면서 행정고시 출신이라는 모 중위로부터 친구,학내 동향과 관련해 심문을 받았다.구타는 없었다.얼마 후 같이 강제징집된 친구 김두황의 죽음을 우연히 전해들었다. 10월 사단 보안대의 그 중위와 함께 서울 세운상가 뒤 아파트로 이동,녹화사업을 받았다.아파트 안은 오직 책상 하나와 백열등뿐이었고 매일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조사가 진행됐다.1주일간 이곳에 혼자 갇혀 있으면서 16절지 300장에 달하는 자서전을 작성했다.옆 방에서 고문당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구타나 고문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서 쥐도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순화교육이 끝났다는 표시로 태극기 아래서 사진을 찍더니 8일간의 휴가를 주면서 학교,서클과 관련해 몇몇 정보를 얻어 아파트로 다시 라는 프락치 임무가 주어졌다.큰 가치가 없어 보이는 정보 몇개를 가지고 갔더니 미진하다며 3일간의 추가 ‘프락치 휴가’를 주었다. 사흘 후 다시 가자 정보를 더 물어오라고 하지는 않았으나 ‘그동안있었던 일을 일절 입밖에 내지 않겠으며 이후 보안사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각서를 요구했다. 이같은 조사는 제대할 때까지 두번 다시 없었으나 사단의 중위가 3개월마다 직접 부대에 와 점검했다.
  • 국민인권위 내년초 신설/국기기관 가혹행위·性­종교 차별 조사

    ◎법무부 인권법시안 발표… 12월10일 공포 국가기관의 인권침해와 성·종교 등 차별행위를 조사,감시하고 시정하는 등 인권보장에 앞장서게 될 국민인권위원회(인권위)가 내년에 설립된다. 법무부는 25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인권법 시안을 발표하고 빠른 시일 안에 입법예고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 시안은 오는 11월 정기국회에 상정돼 12월10일 제50회 인권선언기념일에 맞춰 공포된다. 또 인권법이 공포되는 대로 설립위원 7명을 위촉,내년 상반기에 국민인권위원회를 공식 발족키로 했다. 朴相千 법무부장관은 “인권침해 및 차별행위에 대해 국가가 1차적 책임을 지고 인권위가 감시·보완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면서 “인권법은 내국인은 물론 국내 거주 외국인과 재외국민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시안에 따르면 독립된 특수법인 형태인 인권위는 검찰·경찰·안기부·교정기관·보호관찰소 등 소속 공무원과 군검찰·헌병·기무부대 군인,정신병원 등 보호시설 직원 등이 불법으로 체포·감금하거나 고문 등 가혹행위를 하면 피해자의 진정이나 직권으로 조사한다. 조사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되 조사결과 사실로 확인되면 시정 권고 또는 조정하거나 고발 및 수사의뢰를 할 수 있다. 성·인종·종교·출신지역 등을 이유로 고용 등에 불이익을 주거나 인종모욕 행위,성희롱 등 차별행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제재할 수 있다. 인권위는 전반적인 인권과 관련된 법령·정책에 대한 의견 표명,경찰서 유치장·교도소 등의 시찰과 권고,인권 교육 및 홍보 등을 다룬다. 인권위는 원인이 발생한 날로부터 1년이 지난 진정 등은 각하하지만 예외적으로 전체위원회의 의결을 거치면 1년이 지난 사건도 조사할 수 있다. 의문사 등 과거 청산의 길을 열어놓은 셈이다. 인권위는 위원장을 비롯,9명의 위원과 사무처로 구성되며 인권위원장과 인권위원은 인권이사회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3명의 인권위원은 변호사 자격자로 선임한다. 인권위의 활동 내용은 매년 2월 대통령에게 보고돼 공표되고 법무부는 매년 3월 개선대책을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한다.
  • 反독재 희생자 331명 명예회복 범국민운동/‘열사 범추위’ 결성

    독재정권에 항거하다 희생된 민족민주열사들의 명예회복 및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범(汎)재야기구가 출범했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 회 등 40여개 재야 및 시민단체들은 3일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약칭 열사 범추위)를 결성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민주화와 분단극복을 위해 싸우다 장렬하게 운명한 331명의 열사 및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이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왜곡된 민족사를 바로잡고 진정한 국민화합과 민주발전의 길을 열기 위해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을 범국민운동으로 전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열사 범추위는 명예회복 및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국가보안법과 노동관계법 등의 개폐,범국민적 차원의 열사 추모 및 기념행사 추진 등을 주요사업으로 정했다. 범추위 상임대표에는 전국연합 李昌馥 상임의장,文정현 신부,기독교서회대표 金상근 목사,李海東 목사,원불교 金玄 종무원장,실천불가승가회 공동대표 청화 스님 등이 위촉됐다. 이날 결성식에는 고 全泰壹씨의 어머니 李少仙 여사,고 李韓烈군의 어머니 裴恩深씨,고 朴鍾哲군의 아버지 朴正基씨 등 유가족을 포함,50여명이 참석했다.
  • 민주화 운동 희생자 유가족 대담

    ◎“젊은이들 값진 죽음 관심 가질때”/묻어둔 진실 캐 역사속의 자리 찾아줘야 연세대생 李韓烈군이 전경이 쏜 직격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숨진게 87년 7월5일.그의 어머니 裵恩深씨(58)는 10년이 더지난 지금도 아들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裵씨는 자신처럼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된 가족을 둔 사람들이 모인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회장을 맡고 있다. 이보다 앞서 같은해 1월14일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끝에 사망한 서울대생 朴鍾哲군의 부친 朴正基씨(69) 역시 이들의 명예회복에 앞장서고 있다.두사람의 대담을 통해 민주화 희생자 가족의 바램을 알아본다. ▲朴씨=서울신문이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것에 정말 감사드립니다.서울신문 독자들,나아가 전 국민들이 피지도 못하고 죽어간 젊은이들에게 깊은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裵회장=자식이 그렇게 되기까지는 내 가족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자식이 죽은 뒤 많은 것을 배웠어요.자식의 죽음이 행여나 헛될세라 노력하면서 10년 세월을 보냈습니다.회원 어머님들이 매달에 만원씩 내고 대학생 축제에서 장터를 열어 협의회 운영비를 대지만 돈 불평은 없습니다. ▲朴씨=유가족협의회는 86년 만들어졌습니다.87년 韓烈,鍾哲이가 죽었을때만 해도 회원수가 20명을 넘지 않았으나 5·6공과 金泳三 정부를 거치면서 328명으로 늘었습니다.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된 학생,그리고 노동운동을 하다 사망한 근로자 등 희생자들은 자기 개인을 위해 일하지 않았습니다.양심에 따라 하다보니 죽음에까지 이른 것 아닙니까. ▲裵회장=5·18 18주기 행사를 보고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했어요.저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 있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구요.4·19나 5·18희생자들은 명예회복이 되는데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희생당한 이들도 빨리 명예회복이 되어야한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朴씨=군대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람,공권력에 의해 죽어간 사람이 많습니다.지금 진상을 덮는다고 앞으로도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정부와 기성세대가 의문사 진상규명과 민주 희생자 명예회복의책임을 져야 합니다.민주희생자 합동묘지를 만들고 기념관도 건립,후세에 남겨야 합니다.정부는 지금 경제가 어렵다고 경제에만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경제도 중요하지만 민주화도 중요합니다.인권 이상 가는 가치가 어디 있습니까.바로 특별법을 제정해 민주 희생자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합니다. ▲裵회장=金대통령을 직접 만나기 힘들어 이렇게 언론을 통해 말씀드립니다.대통령께서도 유신시절 일본에서 납치되어 바다에 산채로 던져질뻔한 경험이 있고,또 민주화 과정에서 얼마나 사상시비로 고초를 겪었습니까.대통령 스스로는 저희들의 심정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그때문에 金대통령의 당선과 50년만의 정권교체를 손꼽아 기다려온 것입니다.대통령 혼자 새기시지 마시고 바로 실천하도록 지시를 내려주십시오.민주희생자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은 대통령 직권으로 해주셔야 합니다.양심수 추가석방도 간절히 호소합니다.
  • 대만 무기도입 비리 관련장성 타살 확인

    【홍콩 연합】 독일로부터 무기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미화 4억달러규모의 비리에 관련된 혐의를 받아온 대만 해군무기구매본부장 윤청풍(48)장군의 의문사 사건을 수사중인 군·검·경 수사관들은 21일 시체부검을 통해 윤씨가 흉기로 타살됐음을 확인하고 무기거래상과 해군고위층의 관련여부를 집중적으로 수사하고 있다고 홍콩 언론들이 22일 크게 보도했다.
  • “러·일 「핵투기」 조사결과 밝히라”(의정중계:3일 본회의)

    ◎혐오시설기피 등 집단이기 대책은/질문/「DJ 납치」 75년 한·일 양국간 일단락/답변 ▷사회분야 질문◁ ◇황윤기의원(민자)=아직 잔존하고 있는 기업간 거래비리등 사회비리의 척결방안은.지역감정해소를 위한 정부차원의 인사조치 내용과 향후 방향은.혐오시설기피 등 집단이기주의에 대한 대책은.한탕주의 사고에서 비롯되는 제반범죄를 발본색원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사정은 과거에 대하여는 관용과 용서를,앞으로에 대하여는 엄격한 의지를 밝힘으로써 사회불안 심리를 없애야 한다. 각종 국민운동조직이 가담하는 국민의식개혁을 위한 「새나라운동」을 전개할 용의는.수자원 관리체계를 일대 혁신하기 위한 구상은.인신매매등에 의한 실종자수가 얼마나 되며 대책은 무엇인가.국민소득 1만달러가 될 때까지 한시법률,긴급명령 또는 강력한 행정지도로 일체의 태업과 파업을 금지시킬 용의는. ◇박석무의원(민주)=현정부는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민심수습과 사회분위기 일신을 위해 내각은 총사퇴하라.범죄의 급증에 대한 근본대책은.민주계 인사로서 정부 산하기관및 투자기관에 들어간 사람은 몇명인가.사정의 편파성과 보복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이원조씨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요구한다.전교조문제와 관련,교육계의 화합과 교육발전을 기하기 위해 대통령의 특별담화를 발표토록 건의할 용의는.ABC제도는 반드시 실시되어야 한다.공보처가 소위 광화문팀이라는 모니터링팀을 운영하는 이유는.2002년 월드컵대회를 남북한 공동으로 유치하는 문제에 대한 입장은. ◇김찬우의원(민자)=개혁의 새차원은 인간존중의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사회 내면에 스며있는 관료주의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새정부 복지정책 방향과 실천계획은.향후 복지예산을 어떻게 늘려갈 것인가.보사부 내무부 총무처등으로 분산돼있는 복지행정을 일원화해야 한다.식품·의약품 분야는 별도의 독립전문기구를 설립해야 한다. 환경처의 위상제고 방안은.한·중 양국간 환경협력관계 추진계획과 환경투자재원 조달방안은. 주요시설물에 대한 안전점검을 즉각 실시하고 안전과 관련한 법령을 총정비하라.향후 건설될주요 사회간접자본등에 대한 별도의 안전관리기구를 설립하라.러시아와 일본의 핵폐기물투기 문제에 대한 정부조사단의 조사결과를 빠른 시일내에 발표하라. ◇신계륜의원(민주)=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이 사건을 비롯,12·12,5·18,김대중납치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담당할 대통령직속기구로서 특별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정부산하 투자·출연기관의 해고노동자들을 우선 전원 복직시켜라.정부의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이번 국회에 제출하지 않은 이유와 공론화 시기는.파업사업장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어떤 근거와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가. 무주택자를 위한 국민주택장기저리융자제도를 도입해야 한다.특수교육을 받아야 할 장애아동에 대한 대책은.민간탁아시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라. 군사독재시절 발생한 40여건의 의문사에 대한 사인을 재조사할 용의는.6공하에서 시국사범으로 형을 살아 입영적령기가 4∼5년 지난 5백30명의 학생을 구제할 용의는. ◇이순재의원(민자)=사회 전분야에 개혁을 확산시키고 지속적으로 추진하기위한 정부차원의 구상은.국민의식개혁을 생활속에 뿌리내리기 위한 교육혁신방안,유아교육제도의 정착방안은. 문민시대를 맞아 문예진흥시대를 꽃피울 좋은 기회라고 보는데 현정부의 문화관은 무엇인가.외국문화침투에 따른 문화종속을 막기 위해서도 영상산업에 대한 제조업수준의 지원대책이 절실한 실정이다.영화산업에 대한 종합적 실천계획은.해외소재 문화재의 국내 환수를 위해 문화체육부 외무부 등으로 구성된 범정부적 대책기구를 발족할 용의는. ▷정부측 답변◁ ◇황인성국무총리=법테두리를 벗어난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법질서확립 차원에서 엄정히 대처해 나가겠다.일련의 대형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데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유흥업소 영업시간제한 완화문제는 사회적 여건을 감안해 신중히 검토하겠다. 김영삼대통령은 정부출범이후 인사문제를 더욱 신중히 다루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대통령 친인척이 인사에 개입한 사실이 전혀 없다. 김대중씨 납치사건에 대해 한·일 양국은 지난 75년 7월 당시 외교적 현안으로 다루지 않기로 하고일단락지었기 때문에 이번 한일정상회담에서 거론하기가 곤란하다.고문은 이 땅에서 영원히 추방되어야하며 고문 가혹행위가 밝혀지면 엄격한 사법적 판단에 따라 법적조치를 받아야한다. 현재 노동관계법개정문제는 노사및 이해당사자의 첨예한 대립으로 연기된 상황이다. ◇이해구내무부장관=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을 기필코 해결하기 위해 경찰은 전담반을 구성,원점에서부터 재수사하겠다. ◇김두희법무부장관=검찰은 그동안 불구속 수사의 범위를 점진적으로 확대,구속사건 점유율이 91년 7.9%,92년 7.6%로 감소추세에 있다.앞으로도 부당한 구속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 ◇오병문교육부장관=학교교육의 활성화와 관련,학부모의 건전한 의견수렴을 위해 지역유지와 학부모대표·교사들로 가칭 학교교육협의회의 설치를 권장하고 있다. ◇이민섭문화체육부장관=청소년 관련 조직가운데 일부 기능이 중복되는 조직들은 정비해 나가겠다.엘리트 체육의 육성 발전을 위해 엘리트체육진흥기금을 조성하고 중단된 꿈나무선수제를 부활해 나가겠다. ◇송정숙보사부장관=전국민 연금제도의 전면실시에 앞서 내년까지 농어민을 대상으로 우선 실시하는 등 모두 8개 사업을 설정해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노인복지시설의 확충을 위해 민간자본을 적극 유치하고 재가노인복지사업을 확대해 나가겠다. ◇이인제노동부장관=노사분규가 경제상황을 악화시킨다는 우려를 이유로 일시적으로 단체행동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일용직 근로자에 대해서도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도록 적극 강구하고 있다. ◇최창윤총무처장관=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95년을 목표로 행정정보공개법의 제정을 추진하면서 선진외국의 사례에 대한 정밀조사와 연구용역을 의뢰하는 등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황산성환경처장관=지난달 체결한 한·중 환경협력협정에 따라 연례 환경장관회의 개최,환경협력공동위 설치,연구소간 정보기술 교환,환경현안에 대한 공동조사등 구체적인 협력계획을 적극 추진하겠다. ◇오린환공보처장관=ABC협회측이 자립운영 의사를 밝히면 지금이라도 정부의 공익자금 지원을 중단하겠다.이제도는 언론계와 광고계가 자율적으로 추진해야 할 일이므로 정부가 개입할 성격이 아니다.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는 세무당국이 판단,실시여부를 결정할 사안이다.
  • 특별위 별도 구성… 청문회 등 이용/「국정조사」 어떻게 이뤄지나

    ◎결과보고후 관련자 고발도 가능 율곡비리등에 대한 국회의 국정조사는 지난 88년 공포된 「국정감사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실시된다. 국정조사와 감사는 그 성격과 방법이 거의 비슷하지만 국정감사는 정기국회 개회 다음날부터 20일간 상임위별로 소관 정부부처및 관련기관의 전반적인 업무에 대해 포괄적으로 조사를 하는데 비해 국정조사는 재적의원 3분의1이상의 요구가 있는 때에는 언제든지 본회의의 승인을 받아 특정 사안에 대해 조사를 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국정조사와 감사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계속중인 재판 또는 수사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안된다. 이때문에 현재 검찰에 고발되어있고 감사원의 특별감사대상인 두전직대통령을 이번 국정조사에 포함시키느냐 여부가 여야간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국정조사는 상임위를 활용하거나 특별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해 이뤄진다. 조사는 조사와 관련된 보고 또는 서류의 제출요구,증인·참고인등의 출석요구,청문회,현장검증등의 방법을 이용한다. 청문회와 국정조사활동이 같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청문회는 「증거의 채택 또는 증거의 조사를 위해」 조사위원회가 활용하는 조사방법의 하나이다. 출석요구를 받은 증인은 정당한 이유없이 출석하지 않았을 경우 해당 조사위원장의 이름으로 동행명령장을 발부받게 되며 끝까지 거부할 경우 1년이하의 징역또는 5백만원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조사위는 조사를 마친뒤 조사결과를 본회의에 보고하고 필요할 경우 사건관련자를 사직 당국에 고발조치하고 정부 해당기관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정부는 이에대해 즉각 조치를 취하고 그 결과를 국회에 통보해야 한다. 국정감사및 조사법은 1공화국때인 54년 처음 제정된후 3공화국까지 활발하게 이뤄졌는데 정치사에 유명한 김두한의원의 본회의장 오물 투척사건은 3공때 소위 삼성의 사카린 밀수사건에 대한 국정조사활동 과정에서 일어났다. 국정감·조사는 유신시절인 지난 73년 폐지됐다가 88년 여소야대 상황에서 부활됐다. 이번의 율곡사업비리등 3대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는 지난 88년 국정감사및 조사법이 제정된후 세번째 이뤄지는 것이며 14대국회에서는 처음이다. 13대국회에서는 89년 조선대생 이철규군 의문사 사건과 「5공청문회」로 널리 알려진 5공관련 3개 특위활동이 있었다. 13대 국회의 「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위」「5공화국 정치권력비리조사특위」「양대선거부정선거조사특위」등 3개 특별위원회는 본래 일반특위로 조사활동을 시작했으나 88년8월 국정감사및 조사법이 제정됨에 따라 부칙에서 이들 특위활동도 국정조사승인을 받은 특위로 인정됐다.
  • 개혁 「신권위주의」 우려/필수청산 10대과제 제시/이기택대표 회견

    민주당의 이기택대표는 5일 『신정부는 개혁의 수단에 불과한 사정작업을 개혁의 전부인양 과대선전을 되풀이하고 있다』면서 『개혁의 주체와 방향·대상·기준은 날이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으며 권력핵심에 대한 사정은 오히려 기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대표는 이날상오 마포당사에서 새정부출범 1백일에 즈음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늘의 상황은 입법·사법·행정의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의회민주주의 아래서 대통령개인의 의사만이 초법적인 우월성을 보이고있는 우려할만한 파행구조에 빠져있다』며 『이런 상황은 신권위주의가 등장할 적신호』라고 지적했다. 이대표는 『제도와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사정일변도의 개혁은 민주적 개방사회를 경직시키고 있다』면서 『지속적인 개혁의 진행과 성취를 위해 잘못된 개혁의 방향이 즉각 시정되어야한다』고 촉구했다. 이대표는 본질적인 개혁달성을 위해서는 철저한 과거청산과 제도적개혁이 병행되어야한다고 전제,필수청산 10대과제로 ▲14대대선자금및 청와대정치자금공개 ▲5·16,12·12,5·18의 진상규명및 관련자 공직사퇴 ▲검찰등 사정기관의 내부사정 ▲군사정권하의 의문사에 대한 진상조사 ▲율곡사업과 군인사비리규명 ▲해직교사·언론인·근로자의 사면·복권및 복직 ▲6공7대의혹사건등 6공비리철저조사 ▲양심수 석방및 사면 ▲전직대통령을 포함한 부패지도층의 부정축재조사및 재산환수 ▲정경유착성 비자금의 전면수사등을 제시했다. 또 우선개혁 10대과제로 ▲금융실명제실시와 한국은행독립 ▲국가보안법 폐지와 민주질서보호법으로의 대체 ▲안기부의 수사권폐지및 예산공개 ▲지방자치단체장선거실시 ▲선거법·정당법·정치자금법개정 ▲입시부정방지를 위한 사립학교법개정 ▲노조정치활동보장과 고용보험제실시 ▲농업위기 극복을 위한 특별조치법제정 ▲인사청문회와 특별검사제도입 ▲부패방지를 위한 공무원 보수현실화를 제시했다.
  • 법정소란 대학생/9명에 감치명령/중대생 의문사 공판서

    서울형사지법 이진성판사는 4일 공판법정에서 소란을 피운 김호식군(26·중앙대 안성캠퍼스경제학과4년)등 9명에게 20∼10일씩의 감치명령을 내렸다. 김군등은 이날 하오2시부터 서울형사지법 424호 법정에서 열린 한겨레신문기자 김공순피고인(30)의 명예훼손사건 제3차 공판도중 구호를 외치며 재판진행을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 경찰 실종자 수사 무성의/실종 대학생 숨진뒤 5일만에 늑장통보

    ◎가족들 “의문” 주장에도 단순 변사 처리 실종자의 가족이 경찰과 사람·차량행방 문의전화(182전화)에 신고를 냈는데도 실종자가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져 만 하룻동안 생존해 있다 숨진뒤 5일이 지나서야 가족들에게 변사로 통보되고 가족들이 의문사를 주장하는데도 경찰이 단순 변사로 처리하고 있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경찰수사가 무성의하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지난 6일 상오 6시30분쯤 서울 강남구 개포동 87번 시내버스 종점에서 김상훈군(20·수원대 고분자공학1·강남구 역삼동 성보아파트 801호)이 버스안에서 신음중인 것을 운전사가 발견,병원으로 옮겼으나 다음날인 7일 상오11시쯤 숨졌다. 김군의 가족들은 김군이 돌아오지 않아 6일 하오 2시쯤 인군 파출소와 182전화에 김군의 실종 신고를 냈는데도 아무런 연락을 받지못하다가 김군의 지문조회 결과 신원이 밝혀진 11일 상오에야 김군의 변사 통보를 받았다.
  • 한겨레 편집위원장 명예훼손 혐의 조사

    서울지검 형사1부 원정일부장검사는 17일 한겨레신문사 편집위원장 권근술씨를 불러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사건의 피고소인 조사를 벌였다. 이번조사는 국가안전기획부 인천분실소속 여직원 도연주씨(23)가 한겨레신문이 지난해 10월6일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전 총학생회장 이내창군의 의문사사건을 보도하면서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권위원장 등 4명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한데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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