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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윌리엄 왕세손 탈모 악화…10년 전과 비교해보니

    英윌리엄 왕세손 탈모 악화…10년 전과 비교해보니

    아버지를 제치고 영국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왕족으로 떠오른 윌리엄 왕세손이 불과 10년 사이에 급격한 탈모가 진행돼 현지 언론의 관심까지 끌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8일자 보도에 따르면 최근 윌리엄 왕세손은 최근 자신이 복무했던 영국 공군 부대(RAF)가 위치한 웨일스 앵글시섬을 찾아 옛 동료들과 재회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함께 자리를 빛낸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는 붉은색 트렌치코트에 검은색 모자로 패션 감각을 뽐냈다. 특히 조지왕자와 샬럿공주 등 두 아이를 출산했다고는 믿기지 않는 완벽한 몸매로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반면 남편인 윌리엄 왕세손은 부쩍 심해진 탈모로 눈길을 끌었다. 한국나이로 35세에 ‘불과’한 그는 최근 들어 이마 위쪽부분의 탈모가 심해지기 시작했고, 특히 이날 현장에서는 정수리 주변 두피가 모두 드러날 정도로 탈모가 진행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왕세손 부부를 맞이하는 행사에서는 군 복무를 함께 했던 조종사 릭 마빙(55)도 참석했는데, 마빙은 윌리엄 왕세손과의 만남에 대해 “그를 다시 만나게 돼 매우 기쁘다. 머리카락을 더 많이 잃은 것 말고는 변한게 하나도 없다”며 “우리는 함께 늙어가고 있다”고 농담을 던질 정도였다. 윌리엄 왕세손은 그의 농담에 매우 즐거워하며 불쾌한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 그의 탈모 증상은 나이에 비해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데일리메일은 11년 전인 2005년 당시와 현재 윌리엄 왕세손의 모습을 비교한 사진을 게재했는데, 24살 때의 윌리엄 왕세손의 헤어스타일은 머리숱이 많지 않기는 했으나 보통 20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 공개된 모습은 불과 한달 여 전인 지난 달 왕세손비와 잉글랜드 노퍽주 북서부의 한 교회를 찾았을 때 보다 더욱 심해진 모습이었다. 윌리엄 왕세손의 심각한 탈모는 유전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윌리엄의 아버지인 찰스 왕세자(67)는 아들의 결혼식 축하연에서 “윌리엄의 대머리는 유전 때문”이라고 해명을 했을 정도다. 윌리엄 왕세손 입장에서는 탈모와 관련한 일거수일투족이 자국 국민에게 고스란히 노출되는 상황을 부담스러워 할 수 있지만, 이는 영국 국민 사이에서 그의 인기가 얼마나 높은지를 반영하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영국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윌리엄 왕세손은 ‘직업이 왕세자’인 아버지 찰스보다 호감도가 높은 덕분에 엘리자베스 여왕 다음으로 왕위를 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을 정도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주사기 재사용 의사 면허 취소·최고 징역 5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16일 일회용 의료기기 재사용의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최근 서울, 강원 원주에서 일회용 주사기의 재사용으로 인한 C형 간염 감염 사례가 잇따랐다. 개정안에는 주사기 재사용으로 C형 간염 집단 감염 같은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면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5년 이하의 징역 및 2000만원 이하의 벌금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제제 대상은 일회용 의료기기에 대한 제대로 된 지침이 없다는 이유로 ‘일회용 주사기’로 한정했다. 가수 신해철씨의 사망으로 부각됐던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은(일명 신해철법) 17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한편 국회 국방위원회도 이날 법안소위를 열어 단기 복무 장교와 부사관, 현역병이 자발적으로 전역을 연기할 수 있는 근거를 명확히 한 군인사법과 병역법 개정안을 처리해 전체회의로 넘겼다. 관련 법안은 ‘항해 또는 외국에서 복무 중이거나 중요한 작전이나 연습 등의 수행으로 인해 본인이 원하는 경우’ 등의 신설 조항을 담고 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김현회의 축구싶냐] ‘영원한 청룡의 주장’ 故정병탁을 기리며

    [김현회의 축구싶냐] ‘영원한 청룡의 주장’ 故정병탁을 기리며

    한 명의 위대한 축구인이 세상을 떠났다. 故정병탁 감독이 지난 10일 향년 74세의 나이로 하늘로 간 것이다. 어린 세대들에게는 생소한 인물일수도 있지만 고인이 가는 길에 많은 이들이 애도를 표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은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한국 축구를 위해 많은 일을 해왔던 故정병탁 감독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고인이 걸어온 발자취가 곧 한국 축구의 발자취였다. ‘축구판 실미도 부대’ 양지에 간 정병탁정병탁은 1942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그리 큰 키는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빠른 발을 앞세워 축구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축구 명문인 배재고를 거쳐 연세대학교 1학년인 1964년부터는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는 영광까지 누렸다. 이후 정병탁은 한국 축구의 역사와 같이 하기 시작했다. 군팀이 상한가를 쳤던 1960년대 해병대에 입대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간 정병탁은 대표팀에서도 주축 레프트윙으로 활약했다. 그런데 이때 정병탁을 비롯한 한국 축구 역사에 큰 획을 그을 만한 일이 벌어졌다. 북한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르며 세계의 주목을 받자 체제의 우월성을 자랑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축구팀을 결성했기 때문이다. 바로 ‘축구판 실미도 부대’였다. 정권 실세인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나선 창단한 이 팀은 강제로 각 팀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이들을 뽑아 들였다. 국가대표팀도 아닌 곳에서 강제로 선수를 빼가는 일이 벌어졌지만 그 누구도 이를 막을 수는 없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린다던 중앙정보부의 지시였기 때문이다. 팀 이름도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중앙정보부 슬로건에서 ‘양지’를 따 왔다. 물론 당대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정병탁도 해병대에서 양지로 옮겨야 했다. 정병탁을 비롯해 김호, 김정남, 조정수, 서윤찬, 허윤정, 김삼락, 이회택, 임국찬, 이세연 등 쟁쟁한 선수들이 이렇게 양지라는 한 팀에 모였다. 쌀 한 가마니에 4000원 하던 시절에 무려 매달 2만 5000원이라는 엄청난 급여가 제공됐고 선수단 전원이 중앙정보부가 위치한 서울시 이문동에서 숙소 생활을 하며 천연 잔디 구장을 마음대로 사용했다. 또한 중앙정보부는 양지축구단 활동을 군 복무로 인정, 병역 혜택까지 부여했다. 식탁에는 매일 고기 반찬이 올랐다. 심지어 서독과 프랑스, 스위스, 그리스 등을 도는 105일의 유럽 전지훈련도 떠났다. 물론 이 대단한 팀의 중심에는 정병탁이 있었다. 메르데카컵을 품은 청룡팀의 주장 정병탁은 소속팀 양지의 주축으로 활약하면서 1970년에 출범한 국가대표 1진 청룡의 주장까지도 맡고 있었다. 당시 대표팀은 1진 청룡과 2진 백호로 나뉘어 운영 중이었는데 청룡에 직면한 과제는 바로 메르데카컵 우승이었다. 지금은 그 권위가 떨어졌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메르데카컵은 아시아 최강을 가리는 최고의 대회였다. 1970년 당시 한국의 청룡을 비롯해 태국, 싱가포르, 일본, 인도네시아, 홍콩 등 만만치 않은 상대 12개 나라가 치르는 이 대회에는 전국민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1차전 태국과의 경기에서 0-0으로 비긴 한국은 두 번째 홍콩과의 경기에서도 비기며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3차전 인도와의 경기 역시 흐름이 좋지 않았다. 먼저 두 골이나 내주며 끌려간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청룡의 주장인 정병탁이 나섰다. 한 골을 따라간 한국은 후반 25분 정병탁의 크로스를 박이천이 동점골로 기록했고 10분 뒤에 마침내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정병탁이 왼쪽 구석에서 올린 크로스를 이회택이 헤딩골로 연결, 극적인 3-2 역전승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정병탁은 이날만 두 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한국 축구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당시 결승 상대는 버마였는데 버마는 예선에서 인도를 2-0으로 완파한 강호였다. 한국으로서는 메르데카컵을 가져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전까지 공동 우승을 한 적은 있어도 단독 우승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한국은 부담감을 안고 경기에 나서야 했다. 3만 5000여 명이 들어찬 가운데 버마와의 결승전이 시작되자 두 팀은 팽팽하게 맞섰다. 0-0의 균형이 이어지던 전반 33분 마침내 이 경기의 유일한 골이 정병탁의 발을 통해 시작됐다. 박이천에게서 패스를 이어받은 정병탁이 이 공을 완벽하게 이회택에게 넘겨줬고 이회택이 날린 슈팅이 버마 골문을 가른 것이었다. 후반 막판 정병탁은 중앙선을 돌파하면서 노마크 찬스를 만들어 슈팅으로 버마 골망을 한 번 더 출렁였지만 아쉽게도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다. 득점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정병탁은 이날 경기에서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며 감격적인 우승을 확정지었다. 12번이나 메르데카컵에 나서고도 1960년 말레이시아와 공동 우승, 1965년 중국과 자유 중국과 공동 우승, 1968년 버마와 공동 우승을 차지한 게 전부였던 한국의 첫 단독 우승이었다. 그의 충격적인 대표팀 은퇴 발표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기뻐했다. 그리고 시상식이 열리는 순간 ‘청룡’의 주장 정병탁이 말레이시아 라만 수상으로부터 메르데카컵을 건네받더니 번쩍 들어올렸다. 한국이 그토록 염원하던 메르데카컵을 단독으로 품는 순간이었다. 귀국 길에도 수많은 환영 인파가 몰릴 만큼 국민들의 성원 또한 대단했다. 팀의 주장 정병탁은 모든 국민이 바랐던 메르데카컵을 들고 당당히 귀국했다. 지금이야 메르데카컵 우승에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메르데카컵 우승은 아시아 정복을 뜻할 만큼 우리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대회였으니 국민들의 함성이야 이루 말할 것도 없었다. 또한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세 개나 기록한 주장 정병탁의 인기 역시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소속팀이었던 양지는 김형욱이 1970년 실각하면서 입지가 줄어 들었고 결국 흐지부지 흩어졌다. 정병탁도 양지를 떠나 신탁은행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무려 8년 동안 대표팀 생활을 했고 메르데카컵에만 6번을 출전했던 이 대단한 선수의 미래에 많은 이들이 희망을 안고 있었다. 해외 원정 경기만 18번을 치르면서 경험도 많이 쌓은 정병탁은 한국 축구를 계속 짊어지고 갈 희망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때 정병탁이 한국 축구계가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을 했다. “이제 대표팀에서 은퇴하겠습니다.” 아무리 선수 생명이 짧았던 1970년대라고 하더라도 28세의 혈기왕성한 나이에 그의 대표팀 은퇴 소식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사람들은 메르데카컵을 들고 금의환향하던 정병탁에게 대표팀 은퇴를 번복해달라고 매달렸다. 고별전 보기 위해 모여든 1만여 팬들그래도 정병탁의 고집은 꺾을 수가 없었다. 대표팀 은퇴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정병탁은 이렇게 답했다. “이제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어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싶습니다. 또한 가정과 직장에 충실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정병탁의 말을 그대로 믿는 이들은 없었다. 김용식이 43세까지 현역 생활을 이어갔고 당시 청룡팀 트레이너를 맡은 우상권 또한 36세까지 현역으로 뛰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28세의 창창한 선수가 체력의 한계를 느껴 대표팀을 떠난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주변의 추측이었지만 정병탁이 한창의 나이에 대표팀을 박차고 나온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청룡팀이 선수들에 대한 기본적인 대우도 해주지 않았던 데 따른 불만 때문이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병탁은 메르데카컵에서 단독 우승을 차지하고 1970년 8월 19일 귀국한 뒤 닷새만을 쉬고 또 다시 청룡팀 합숙훈련에 들어가야 했다.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거기에다 양지 시절 받던 월급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로지 훈련에만 전념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대표 선수 생활이 끝나면 미래에 대해 그 누구도 보장해 주지 않았고 가정 생활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당시 상황상 애국심만을 강요하며 나머지 모두를 포기해야 하는 분위기에 정병탁이 반기를 든 것이었다. 정병탁은 그렇게 28세의 이른 나이에 대표팀에서 물러났고 주장 완장을 김정남에게 넘겼다. 그가 애국심이 없어 대표선수 자격을 일찌감치 반납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병탁은 8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국 축구를 위해 양지에 묶여 있고 청룡에 묶인 채 모든 걸 포기해야 했었다. 그는 A매치 통산 39경기 출전에 11골의 기록을 남겼다. 1970년 9월 12일 서울운동장에서 국가대표 상비군 간의 평가전이 펼쳐졌다. 그런데 이 비공식 경기에 모인 관중수만 해도 무려 1만여 명이 훌쩍 넘었다. 이유는 단 하나, 청룡팀을 떠나는 정병탁이 마지막으로 청룡의 유니폼을 입고 고별전을 치렀기 때문이다. “정병탁 보러 가자.” 사람들은 청룡팀의 최초 주장인 정병탁의 모습을 보기 위해 비공식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운동장으로 몰렸다. 이 정도로 정병탁은 현역 생활 내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인물이었다. 그렇게 정병탁은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대표팀을 떠났고 이후 신탁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뒤 오랜 시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됐다. 사람들은 새로운 스타들의 등장이 이어지자 정병탁이라는 이름은 서서히 잊어갔다. 지도자가 돼 돌아온 정병탁의 성공시대그런 정병탁이 다시 축구계로 돌아온 건 1984년이었다. 모교인 연세대 축구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병탁 감독은 연세대에 부임하자마자 곧바로 일을 냈다. 부임 후 5개월 만에 치른 제29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서 파죽지세로 결승에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결승 상대인 중앙대의 수장이 바로 김기복 감독이었다는 점이다. 40대 초반인 정병탁 감독과 김기복 감독은 양지와 청룡에서 3년 가까이 활약했던 둘도 없는 선후배 사이였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정병탁 감독이 이끄는 연세대는 중앙대를 가볍게 2-0으로 제압하고 무려 36년 만의 감격적인 우승을 확정지었다. 대학 무대에 첫발을 내딛은 정병탁 감독은 5개월 만에 지도자 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누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잊혀졌던 정병탁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정병탁 감독도 연세대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김봉길 스카우트 작전’이었다. 1984년 첫 우승을 경험한 정병탁 감독은 곧바로 고교 최대어인 부평고 김봉길 잡기에 나섰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팀들의 스카우트 표적이 됐던 김봉길은 사실 고려대행이 점쳐지고 있었다. 부평고 고명수 코치와 고려대 남대식 코치의 사이가 돈독해 김봉길은 당연히 고려대행이 점쳐졌다. 그런데 정병탁 감독이 나섰다. 사실상 김봉길의 고려대행이 유력한 상황에서 정병탁 감독이 김봉길과 그의 부모를 설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김봉길과 그의 부모 역시 고려대로 가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정병탁 감독은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에 대해 김봉길은 이런 기억을 떠올렸다. “연세대 훈련이 저녁 6시에 끝나면 저녁 8시쯤 감독님께서 꼭 저희 집 앞으로 오셨어요.” 그렇게 무려 한 달 동안 정병탁 감독은 매일 저녁 김봉길의 집 앞으로 가 그의 부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선수층이 두터운 고려대보다는 아들이 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연세대를 선택해 달라”는 진심을 전했다. 그리고 김봉길은 닫혀 있던 마음을 열고 결국 연세대를 선택했고 연세대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정병탁 감독은 아주대 행이 유력했던 거제고의 최청일 또한 이런 식으로 설득해 연세대로 데려올 수 있었다. 김봉길은 정병탁 감독을 이렇게 기억했다. “옷도 잘 입는 멋쟁이셨고 굉장히 화끈하면서 남자다우셨어요. 한 번은 우리가 우승을 한 뒤 뒷풀이를 한다고 선수단 전체를 나이트클럽을 데려가기도 하셨죠. ‘오늘은 내가 쏠 테니 마음껏 놀아라’ 이 말에 다들 반했다니까요. 감독님 모시고 나이트클럽에 갔던 건 참 독특한 추억이죠.” 가족과의 이별, 그리고 전남과의 만남정병탁 감독은 연세대에서 지도 능력을 인정받고 이듬해에는 19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 감독까지도 겸하기 시작했다. 정병탁 감독의 지도자 인생도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이때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1987년 1월 개인적인 일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강릉을 떠나 서울로 오던 정병탁 감독의 승용차가 마주오던 고속버스와 정면충돌하는 큰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정병탁 감독은 중상을 입고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지만 정신을 차린 그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내가 그 자리에서 바로 숨졌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가정 생활을 위해 이른 나이에 대표팀까지 포기해야 했던 정병탁 감독에게는 아내의 죽음이 엄청난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곧바로 일어섰다. 그를 기다리는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털고 일어난 정병탁 감독은 1989년 또 다시 정상에 섰다. 제37회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그것도 1학년생 김도훈과 강철 등을 앞세워 이뤄낸 대단한 성과였다. 특히나 서울 대신고에서 공격수로 활약했던 강철을 대학 진학 후 정병탁 감독이 수비수로 전환시킨 게 ‘신의 한 수’였다. 아마도 정병탁 감독이 없었더라면 강철이라는 훌륭한 수비수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철 스스로도 “처음에는 달갑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할 정도다. 결승에서는 프로선수 네 명이 포함된 포철 아마팀을 4-1로 꺾는 등 7경기에서 20득점하는 놀라운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렇게 연세대를 아마추어 최강으로 이끈 정병탁 감독은 1992년 연세대 감독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숱한 스타 플레이어들을 배출해냈다. 그가 다시 돌아온 건 1994년이었다. 당시 전남 지역을 연고로 하는 프로팀 제8구단 창단을 앞두고 초대 사령탑으로 정병탁 감독의 이름이 거론된 것이다. 전남 여수 출신인 그가 고향팀 지휘봉을 잡는 모습이 조금씩 그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연고내에는 차경복 전 경희대 감독과 정태훈 한양공고 감독, 남대식 고려대 감독, 서현옥 중앙대 감독 등 쟁쟁한 인물들이 많았다. 이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전남 진도 출신 허정무 감독이 가장 강력한 경쟁 후보였고 연고는 없지만 지명도가 워낙 높은 이회택 전 포철 감독 또한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넘게 긴 토론이 이어진 후 최종 선택은 정병탁 감독이었다. 허정무 감독이 포철 감독으로 부임하고 있어 빼오는 게 무리가 있었고 나머지 후보군 중에는 정병탁 감독이 가장 적임자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청룡팀 최초의 주장’ 故정병탁을 기리며청룡의 초대 주장이던 그가 이번에는 전남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길조를 상징하는 용을 의인화한 전남의 마스코트가 모습을 드러냈고 팀 이름은 전남드래곤즈로 명명됐다. 전남의 초대 사령탑으로 부임한 정병탁 감독은 박경훈 코치와 여범규 코치를 선임한 뒤 곧바로 선수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드래프트를 통해 대졸 신인 9명을 받았는데 여기에는 훗날 전남의 상징이 된 김도근(한양대)도 포함돼 있었다. 이뿐 아니라 실업팀에서 뛰던 선수들을 대거 발탁했다. 전남의 전설적인 존재인 노상래와 김태영 등도 이때 정병탁 감독이 선택한 작품이었고 기존 프로팀에서 활약하던 김봉길(유공)과 박창현(포철) 등도 데려왔다. 정병탁 감독이 선택이 아니었더라면 노상래와 김태영, 김도근 등 ‘전남맨’들은 역사에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광양전용구장이 광양시민뿐 아니라 여수와 순천 지역 주민들까지 몰릴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정병탁 감독 때문이었다. 여수 출신인 그가 고향에 내려와 프로팀 감독이 되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전남은 1995년 5월 7일 역사적인 K리그 데뷔전에서 전북을 상대로 김봉길의 두 골과 노상래의 한 골을 앞세워 3-1 승리를 따내는 등 신생팀답지 않은 선전을 이어나갔고 결국 8개 팀 중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비록 엄청난 성과는 아니었지만 현재 전남의 토대를 만든 건 정병탁 감독의 공이 컸다. 하지만 정병탁 감독은 1996년 시즌 도중 성적 부진으로 사퇴하며 이 자리를 허정무 감독에게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정병탁 감독은 이해 마라도나가 소속된 보카주니어스의 방한 경기 때 잠시나마 한국 대표팀을 지휘한 뒤 주무대에서 쓸쓸히 사라졌다. 이후 정병탁 감독은 과거 양지팀 시절 동료들과 서울시 실버축구단에 속해 사회 공헌 활동을 하기도 했고 경기도 고양시에 ‘정병탁 어린이축구교실’을 창단해 유소년 선수 육성에 힘쓰기도 했지만 축구계 주류 무대에 다시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저께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정병탁 감독이 향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청룡팀 최초의 주장이자 연세대를 아마추어 최정상을 이끈 지도자이면서 전남의 초대 감독을 맡았던 그는 늘 자신의 자리에서 가장 빛이 날 때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故정병탁 감독은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하지만 고인이 한국 축구를 위해 보여줬던 헌신을 잊지 않겠다. 이제는 故정병탁 감독이 먼저 하늘로 보낸 사모님과 행복하셨으면 한다. 청룡팀 최초의 주장으로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故정병탁 감독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축구 칼럼니스트 김현회 footballavenue@nate.com
  • 찰스 캠벨 前 주한 미8군 사령관 별세

    찰스 캠벨 前 주한 미8군 사령관 별세

    주한 미8군 사령관을 지낸 찰스 캠벨 육군 대장이 지난 8일 고향인 미국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에서 별세했다. 68세. 1970년 루이지애나주립대 학군단(ROTC)에서 군 경력을 시작한 캠벨 대장은 베트남전에 참전해 참모와 지휘관으로 복무한 바 있다. 그는 베트남전을 실제 목격한 마지막 육군 장교 세대다. 캠벨 대장은 중장이던 2002년 중학생 신효순, 심미선양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한국 사회에 반미 감정이 높았을 때 주한 미8군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에는 주한미군 감축, 재배치 등 한·미 간 민감한 안보 문제를 다루는 책임자 역할을 했다. 고인은 2007년부터 미 육군 전력사령부 사령관으로 복무한 뒤 2010년 퇴임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탈레반 맞서 싸운 10살 소년 결국 반군에 암살

    탈레반 맞서 싸운 10살 소년 결국 반군에 암살

    겨우 10살의 나이에 탈레반에 맞서 싸웠던 소년병이 결국 반군에 암살당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면서 현지의 소년병 징집 관행을 둘러싼 국제적 비판이 일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우르즈간주의 주도 타린코트 시 경찰은 지난 1일(현지시간) 10세 소년 와실 아마드가 등교하던 길에 집 근처에서 머리에 두 발의 총상을 입고 반군에 살해당했다고 밝혔다. 아마드는 과거 아버지가 탈레반에 사살된 사건을 기점으로 탈레반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그 후 탈레반 지휘관이었다가 친정부군으로 전향한 삼촌과 함께 여러 차례 반군에 맞서 싸운 아마드는 지역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군복 차림에 무기를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이 현지 언론에 소개되는 등 근방에 인상착의가 널리 알려졌었다. 이후 가족들은 아마드의 소년병 복무를 중단시키고 학교에 보내는 등 평범한 삶을 돌려주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반군에 의해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만 것이다. 인권단체 ‘아프가니스탄 독립 인권위원회’(Afghanistan Independent Human Rights Commission)는 아마드의 가족과 아프간 정부, 탈레반 세 주체 모두 아마드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위원회 대변인 라푸일라 바이다르는 “어쩌면 아마드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스스로 무기를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됐건 경찰(친정부군)이 그의 신분을 노출시킨 것, 특히 탈레반에게도 알려지도록 방치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친정부군이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고, 탈레반은 너무도 유명해져버린 그를 죽였다”며 소년을 위험으로 몰아넣은 친정부군의 잘못은 탈레반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년병 징집은 명백한 불법이다. 아프간 정부는 1994년 유엔 안보리의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함으로서 소년병 징집 및 운용을 중단할 것을 선언했었고 지난해 2월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미성년자를 무장병력으로 삼는 행위를 범죄로 취급하는 법령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영국에 본부를 둔 NGO ‘소년병반대국제연합’(Child Soldier International)이 지난해 6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같은 규제에도 불구, 탈레반과 친정부군 모두 오랜 기간 미성년 병사들을 버젓이 운용하고 있다. 친정부군 측에 자원하는 소년병들은 애국심, 명예, 자식으로서의 도리 등 다양한 이유로 군에 참여하지만, 가장 주된 이유는 역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렇게 징집된 소년병들은 거점 확보나 전투와 같은 일반 군인의 의무를 동일하게 수행하고 있다. 반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쿠나르, 로가르, 자불 주 친정부군 병력의 10%는 소년병인 것으로 드러났다. 구체적인 통계로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반군 세력의 활동이 활발한 지역일수록 소년병 운용 규모도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부의 칸다하르, 헬만드 주, 그리고 파키스탄 접경지대에 해당하는 팍티야, 후스트, 팍티카 주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물론 탈레반측도 전투에 수많은 소년병을 활용하고 있다. 이들 병력은 자살폭탄테러 혹은 첩보 활동 등에 동원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벌어진 아프간 소재 프랑스 고등학교 자폭테러를 비롯해 여러 사건에서 이러한 탈레반 소년병들의 연루 사실이 확인됐다. 소년병들은 이처럼 전투에서 목숨을 잃을 위험에 늘 노출돼있는 것은 물론, 군 조직에 의한 인권침해의 가능성도 다분한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양 세력의 소년병들 모두 성범죄의 피해자가 될 위험성이 크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대통령을 위시한 아프간 정부가 소년병 징집을 금지하는 규제를 마련해낸 것은 사실이나, “소년병들을 식별, 분류, 해방시킬 수 있는 실질적 매커니즘 도입에 실패했다”며 상황 개선을 촉구했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10살 영웅’의 죽음으로 본 아프간 소년병 실상

    ‘10살 영웅’의 죽음으로 본 아프간 소년병 실상

    겨우 10살의 나이에 탈레반에 맞서 싸웠던 소년병이 결국 반군에 암살당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면서 현지의 소년병 징집 관행을 둘러싼 국제적 비판이 일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우르즈간주의 주도 타린코트 시 경찰은 지난 1일(현지시간) 10세 소년 와실 아마드가 등교하던 길에 집 근처에서 머리에 두 발의 총상을 입고 반군에 살해당했다고 밝혔다. 아마드는 과거 아버지가 탈레반에 사살된 사건을 기점으로 탈레반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그 후 탈레반 지휘관이었다가 친정부군으로 전향한 삼촌과 함께 여러 차례 반군에 맞서 싸운 아마드는 지역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군복 차림에 무기를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이 현지 언론에 소개되는 등 근방에 인상착의가 널리 알려졌었다. 이후 가족들은 아마드의 소년병 복무를 중단시키고 학교에 보내는 등 평범한 삶을 돌려주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반군에 의해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만 것이다. 인권단체 ‘아프가니스탄 독립 인권위원회’(Afghanistan Independent Human Rights Commission)는 아마드의 가족과 아프간 정부, 탈레반 세 주체 모두 아마드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위원회 대변인 라푸일라 바이다르는 “어쩌면 아마드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스스로 무기를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됐건 경찰(친정부군)이 그의 신분을 노출시킨 것, 특히 탈레반에게도 알려지도록 방치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친정부군이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고, 탈레반은 너무도 유명해져버린 그를 죽였다”며 소년을 위험으로 몰아넣은 친정부군의 잘못은 탈레반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년병 징집은 명백한 불법이다. 아프간 정부는 1994년 유엔 안보리의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함으로서 소년병 징집 및 운용을 중단할 것을 선언했었고 지난해 2월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미성년자를 무장병력으로 삼는 행위를 범죄로 취급하는 법령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영국에 본부를 둔 NGO ‘소년병반대국제연합’(Child Soldier International)이 지난해 6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같은 규제에도 불구, 탈레반과 친정부군 모두 오랜 기간 미성년 병사들을 버젓이 운용하고 있다. 친정부군 측에 자원하는 소년병들은 애국심, 명예, 자식으로서의 도리 등 다양한 이유로 군에 참여하지만, 가장 주된 이유는 역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렇게 징집된 소년병들은 거점 확보나 전투와 같은 일반 군인의 의무를 동일하게 수행하고 있다. 반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쿠나르, 로가르, 자불 주 친정부군 병력의 10%는 소년병인 것으로 드러났다. 구체적인 통계로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반군 세력의 활동이 활발한 지역일수록 소년병 운용 규모도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부의 칸다하르, 헬만드 주, 그리고 파키스탄 접경지대에 해당하는 팍티야, 후스트, 팍티카 주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물론 탈레반측도 전투에 수많은 소년병을 활용하고 있다. 이들 병력은 자살폭탄테러 혹은 첩보 활동 등에 동원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벌어진 아프간 소재 프랑스 고등학교 자폭테러를 비롯해 여러 사건에서 이러한 탈레반 소년병들의 연루 사실이 확인됐다. 소년병들은 이처럼 전투에서 목숨을 잃을 위험에 늘 노출돼있는 것은 물론, 군 조직에 의한 인권침해의 가능성도 다분한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양 세력의 소년병들 모두 성범죄의 피해자가 될 위험성이 크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대통령을 위시한 아프간 정부가 소년병 징집을 금지하는 규제를 마련해낸 것은 사실이나, “소년병들을 식별, 분류, 해방시킬 수 있는 실질적 매커니즘 도입에 실패했다”며 상황 개선을 촉구했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올림픽 영웅, 동네의 영웅 되다

    올림픽 영웅, 동네의 영웅 되다

    유도 金 황희태 순경 · 태권도 金 임수정 순경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의 무도 영웅들이 강력반 형사로 변신했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유도 금메달리스트 황희태(39) 순경, 2008년 베이징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임수정(29·여) 순경 등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지난해 6월 경찰 특채에 합격한 뒤 8월 17일 중앙경찰학교에 입교해 28주간 법률과 실무 관련 교육을 받았다. 5일 중앙경찰학교에서 임용식을 가진 뒤 현장에 배치된다. 황 순경은 유도 여자 국가대표팀 코치 자리를 박차고 나와 경찰에 자원했다. 유도부 시절 중학교 은사와 주변 선배들이 무도 특채로 뽑혀 강력반 형사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경찰을 꿈꿔 왔다고 한다. 그는 “2004년 무도 특채를 뽑을 당시에 지원하고 싶었지만 세계대회 우승 입상 경력이 없던 터라 눈물을 삼키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며 “11년 만에 다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운동할 때만큼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고 말했다. “범인을 잡을 때는 호랑이처럼 무섭게, 시민들과는 가족처럼 지내는 형사가 되고 싶습니다.” 임 순경은 중앙경찰학교에서 아침마다 울려 퍼지던 애국가를 들을 때 선수 시절 느꼈던 희열을 다시 느끼며 가슴이 뭉클해지곤 했다고 밝혔다. 임 순경은 “금메달을 따고 선수에서 은퇴한 후 태권도 사범으로 일하면서 목표 의식이 사라져 허무했는데, 경찰이 돼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강한 사람에게는 강하게, 약한 사람에게는 약하게 다가가는 경찰이 되고 싶어요. 수사기법 등도 많이 배워서 지력과 체력을 모두 갖춘 경찰이 될 겁니다.” 두 사람 외에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여자 유도 금메달을 땄던 정경미(31) 순경도 강력반 형사로 뛴다. 정 순경은 유도 여자 국가대표팀에서 황 순경의 코치를 받던 사제지간이지만 경찰 동기가 됐다. 신규 임용되는 286기 특채 경찰관 311명은 황 순경과 임 순경 같은 무도 특기자 50명을 포함해 총포·화약 전문가(5명), 정보화 장비 전문가(102명), 군 특수부대 출신 경찰특공대 요원(28명), 101경비단 소속 청와대 경호요원(120명), 심리학 등을 전공한 범죄분석요원(6명·경장 특채)이다. 무도 특기자 가운데는 2007년 태국 방콕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허준녕(29) 순경, 2006년 세계 검도선수권대회 우승자 김완수(36) 순경도 포함됐다. 이 밖에도 육군 특전사에서 복무한 폭발물 처리 전문가 김경중(33) 순경, 20년간 화약회사에서 관리소장으로 일한 윤기목(46) 순경이 각자 전문성에 맞게 특공대와 총포화약 분야에서 근무할 예정이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강용석, 서울 용산 출마선언…새누리당사 앞에서 제지 당해 ‘굴욕’

    강용석, 서울 용산 출마선언…새누리당사 앞에서 제지 당해 ‘굴욕’

    강용석, 서울 용산 출마선언…새누리당사 앞에서 제지 당해 ‘굴욕’ 강용석 서울 용산 출마선언 강용석 전 의원이 31일 새누리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하고 오는 4·13 총선에서 서울 용산 지역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강 전 의원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군 복무 기간의 대부분을 용산에서 보냈으며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용산구민으로 살았다”며 자신의 옛 지역구였던 마포을이 아닌 용산에서 출마를 결심한 배경을 설명했다. 강 전 의원은 지난 2010년 ‘여성 아나운서 비하 발언’으로 당에서 제명된 바 있으며, 변호사 겸 방송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 최근 유명 여성 블로거와 불륜설이 불거져 곤욕을 치렀다. 강 전 의원은 기자회견 뒤 기자들과 만나 “무소속 출마는 없다”며 “당원 자격에 대해서는 내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현명하게 판단하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서울시당위원장인 김용태 의원은 “강 전 의원이 복당을 신청하는 것은 자유”라면서도 “그러나 복당을 신청하면 당헌·당규상 제명당했을 당시 소속됐던 시도당이 복당 적격성을 심사하게 돼 있다. 조속한 시일 내 엄정하고 면밀하게 복당 심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강 전 의원은 이날 오전 새누리당 여의도 당사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열려고 했다가 현재는 당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문 앞에서 제지당했다. 그러자 국회 정론관으로 기자회견 장소를 바꿨다.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려면 현역 의원의 주선이 필요한 만큼 이날 당직인 유의동 원내대변인의 부탁을 받아 문정림 원내대변인이 배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강용석, 용산 출마선언…새누리당사 앞에서 제지 당해 ‘굴욕’ 용산 택한 이유?

    강용석, 용산 출마선언…새누리당사 앞에서 제지 당해 ‘굴욕’ 용산 택한 이유?

    강용석, 용산 출마선언…새누리당사 앞에서 제지 당해 ‘굴욕’ 용산 택한 이유? 강용석 서울 용산 출마선언 강용석 전 의원이 31일 새누리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하고 오는 4·13 총선에서 서울 용산 지역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강 전 의원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군 복무 기간의 대부분을 용산에서 보냈으며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용산구민으로 살았다”며 자신의 옛 지역구였던 마포을이 아닌 용산에서 출마를 결심한 배경을 설명했다. 강 전 의원은 지난 2010년 ‘여성 아나운서 비하 발언’으로 당에서 제명된 바 있으며, 변호사 겸 방송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 최근 유명 여성 블로거와 불륜설이 불거져 곤욕을 치렀다. 강 전 의원은 기자회견 뒤 기자들과 만나 “무소속 출마는 없다”며 “당원 자격에 대해서는 내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현명하게 판단하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서울시당위원장인 김용태 의원은 “강 전 의원이 복당을 신청하는 것은 자유”라면서도 “그러나 복당을 신청하면 당헌·당규상 제명당했을 당시 소속됐던 시도당이 복당 적격성을 심사하게 돼 있다. 조속한 시일 내 엄정하고 면밀하게 복당 심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강 전 의원은 이날 오전 새누리당 여의도 당사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열려고 했다가 현재는 당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문 앞에서 제지당했다. 그러자 국회 정론관으로 기자회견 장소를 바꿨다.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려면 현역 의원의 주선이 필요한 만큼 이날 당직인 유의동 원내대변인의 부탁을 받아 문정림 원내대변인이 배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강용석, 총선 출마선언…마포 대신 왜 용산?…새누리당사에서도 ‘굴욕’

    강용석, 총선 출마선언…마포 대신 왜 용산?…새누리당사에서도 ‘굴욕’

    강용석, 총선 출마선언…마포 대신 왜 용산?…새누리당사에서도 ‘굴욕’ 강용석 서울 용산 출마선언 강용석 전 의원이 31일 새누리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하고 오는 4·13 총선에서 서울 용산 지역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강 전 의원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군 복무 기간의 대부분을 용산에서 보냈으며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용산구민으로 살았다”며 자신의 옛 지역구였던 마포을이 아닌 용산에서 출마를 결심한 배경을 설명했다. 강 전 의원은 지난 2010년 ‘여성 아나운서 비하 발언’으로 당에서 제명된 바 있으며, 변호사 겸 방송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 최근 유명 여성 블로거와 불륜설이 불거져 곤욕을 치렀다. 강 전 의원은 기자회견 뒤 기자들과 만나 “무소속 출마는 없다”며 “당원 자격에 대해서는 내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현명하게 판단하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서울시당위원장인 김용태 의원은 “강 전 의원이 복당을 신청하는 것은 자유”라면서도 “그러나 복당을 신청하면 당헌·당규상 제명당했을 당시 소속됐던 시도당이 복당 적격성을 심사하게 돼 있다. 조속한 시일 내 엄정하고 면밀하게 복당 심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강 전 의원은 이날 오전 새누리당 여의도 당사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열려고 했다가 현재는 당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문 앞에서 제지당했다. 그러자 국회 정론관으로 기자회견 장소를 바꿨다.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려면 현역 의원의 주선이 필요한 만큼 이날 당직인 유의동 원내대변인의 부탁을 받아 문정림 원내대변인이 배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친정 새누리당서 ‘문전박대’ 강용석…마포을 아닌 용산에서 출마하는 이유?

    친정 새누리당서 ‘문전박대’ 강용석…마포을 아닌 용산에서 출마하는 이유?

    친정 새누리당서 ‘문전박대’ 강용석…마포을 아닌 용산에서 출마하는 이유? 강용석 서울 용산 출마선언 강용석 전 의원이 31일 새누리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하고 오는 4·13 총선에서 서울 용산 지역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강 전 의원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군 복무 기간의 대부분을 용산에서 보냈으며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용산구민으로 살았다”며 자신의 옛 지역구였던 마포을이 아닌 용산에서 출마를 결심한 배경을 설명했다. 강 전 의원은 지난 2010년 ‘여성 아나운서 비하 발언’으로 당에서 제명된 바 있으며, 변호사 겸 방송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 최근 유명 여성 블로거와 불륜설이 불거져 곤욕을 치렀다. 강 전 의원은 기자회견 뒤 기자들과 만나 “무소속 출마는 없다”며 “당원 자격에 대해서는 내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현명하게 판단하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서울시당위원장인 김용태 의원은 “강 전 의원이 복당을 신청하는 것은 자유”라면서도 “그러나 복당을 신청하면 당헌·당규상 제명당했을 당시 소속됐던 시도당이 복당 적격성을 심사하게 돼 있다. 조속한 시일 내 엄정하고 면밀하게 복당 심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강 전 의원은 이날 오전 새누리당 여의도 당사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열려고 했다가 현재는 당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문 앞에서 제지당했다. 그러자 국회 정론관으로 기자회견 장소를 바꿨다.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려면 현역 의원의 주선이 필요한 만큼 이날 당직인 유의동 원내대변인의 부탁을 받아 문정림 원내대변인이 배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병사들 오늘부터 생활관서 휴대전화 쓴다

    현재 군 복무 중인 병사들은 30일부터 일과 시간 이후 병영 생활관에 비치된 ‘병사 수신용 공용 휴대전화’로 부모와 친구의 전화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사회와 병사 개개인 사이에 소통 채널이 마련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방부는 2014년 12월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한 이후 1년여의 준비를 거쳐 30일 전군 병영 생활관에서 병사 수신용 공용 휴대전화 운용을 시작한다고 29일 발표했다. 병사들은 일과 시간 이후인 오후 6시부터 밤 10시까지 폴더형인 병사 수신용 공용 휴대전화로 외부 전화를 받을 수 있다. 국방부는 전군에 4만 4686대를 보급했다. 이는 병영 생활관의 내무반 1곳당 1대꼴이다. 지금까지 군 복무 중인 병사가 부모나 친구와 통화하려면 부대 공중전화를 이용하거나 국방마트(PX)에서 휴대전화를 빌려야 했다. 무엇보다 병사들이 이 휴대전화를 들고 생활관 밖에서 통화할 수 있어 사생활을 어느 정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다만 전화를 걸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는 없고, 병사가 부모나 친구에게 전화 걸어 줄 것을 요청하는 특정 문자메시지만 발송할 수 있다. 군 당국은 보안을 위해 휴대전화의 위치추적장치(GPS), 카메라, 녹음 기능도 제거했다. 당초 국방부는 수신용 공용 휴대전화 4만 4686대를 2018년 말까지 단계적으로 보급할 계획이었으나 계약 업체인 LG유플러스가 휴대전화와 요금을 무상 지원하겠다고 파격적으로 제안해 보급 시기를 앞당겼다. 이는 금액으로 환산하면 60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요즘 연예인들, 군대 덕 제대로 본다는데…

    요즘 연예인들, 군대 덕 제대로 본다는데…

    착한 남자 - 윤시윤·현빈·오종혁 등 해병대서 ‘성실 군복무’로 대중 환호 나쁜 남자 - ‘꼼수기피’ 유승준 14년간 입국 금지… 송승헌·장혁 병역비리로 곤혹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해 걱정했지만 전우들의 도움으로 군 생활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팬들 덕분에 2년이란 시간을 견뎠고 연기로 보답하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지난 27일 21개월의 군 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전역한 탤런트 윤시윤(30)은 인천 서구 금곡동 해병대 2사단 정문에 모인 500여명의 팬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윤시윤은 “전우들을 남겨놓고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고 했다. 국방의 의무가 있는 대한민국 20대 남성 연예인들에게 군 입대는 큰 고민거리다. 인기가 절정일 때 입대 시기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13년 7월 국방부 홍보지원대(일명 연예병사) 제도가 폐지된 이후로는 연예인에게 군 입대는 경력 단절을 의미한다. ‘사랑일 뿐이야’로 유명했던 발라드 가수 김민우(46)의 경우 1991년 입대해 1993년 제대했으나 결국 인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조용히 은퇴했다. ●사회 물의 일으킨 ‘병역기피’ 오빠들 하지만 최근 군대를 바라보는 연예계의 시각도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예전과 같은 병역비리는 물론이고 현역병 입대를 회피하다 추후 적발되면 연예계 활동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인식 때문이다. 특히 2000년대 초중반 가수 유승준(40·미국명 스티브 유)과 배우 송승헌(40)의 사례는 반면교사가 됐다. 병무청 관계자는 29일 “이 두 명의 사건을 계기로 연예인들도 병역을 회피하고자 하는 풍조가 확연히 줄었고 소위 스타급 연예인들의 경우 군 복무를 통해 오히려 자신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려는 추세”라고 했다. 1990년대 말 재미교포 출신으로 인기 절정의 스타였으나 2002년 병역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국이 금지됐던 유승준은 지난해 5월 인터넷 방송을 통해 무릎을 꿇고 울먹이며 “지금이라도 군대에 갈 수 있다면 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유승준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시선은 싸늘했다. 현행법상 입영이 불가능한 39세가 되고 나서야 입대하겠다고 나선 그의 진정성이 의심됐기 때문이다. 송승헌과 장혁(40)의 경우 2004년 소변 검사 결과를 조작해 사구체신염 판정으로 면제 판정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결국 군에 입대하게 된 사례다. 특히 전방 15사단에서 포병으로 군 복무를 마친 송승헌은 2006년 11월 전역할 당시 부대를 나서면서도 팬들에게 “죄송하다. 용서를 빈다”고 말해야 했을 정도로 비리 연예인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하듯 11세 때 영국 유학을 떠나 현지에서 시민권을 획득한 피아니스트 이루마(38)는 영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2006년 7월 해군에 입대해 성실히 군복무를 마쳤다. 당시 이루마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입대 이유를 설명했다. ●말 많고 탈 많던 ‘연예병사’ 역사 뒤안길로 국방부는 특히 1997년부터 2013년 7월까지 ‘연예병사’로 불리는 국방홍보지원대를 운영했다. 홍보지원대 소속 연예병사는 영화배우, 탤런트, 개그맨, 가수, MC 등으로 활동한 현역병 중에서 선발됐고 통상 경쟁률은 3대1이 넘었다. 연예병사 제도는 많은 연예인이 전역 후 연예계 활동을 이어가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연예병사들은 출연료를 받지 않는 대신 장병 위문 프로그램인 ‘위문열차’ 등을 통해 전국의 각 부대를 돌며 연기나 노래를 계속하며 기량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한류 스타 싸이(39·본명 박재상)를 들 수 있다. 싸이는 2003부터 2005년까지 병역특례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했지만 부실 근무가 적발되면서 2007년 12월 현역으로 재입대해 한때 비리 연예인으로 낙인 찍혔었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로 바뀌었다. 52사단 통신대를 거쳐 연예병사로 선발된 싸이는 장병 위문공연에서 장병들의 인기를 끌었고 결국 육군참모총장 표창을 받기에 이른다. 그는 평소 “군 위문 공연을 다니면서 무대 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아이돌 그룹 에이치오티(H.O.T)의 멤버였던 가수 문희준(38)도 도발적인 언행으로 자주 구설에 올랐고 ‘100만 안티설’이 돌 정도로 네티즌들의 악플에 시달렸다. 하지만 2005년 11월 입대해 2007년 11월까지 연예병사로 위문 열차 프로그램을 맡는 동안 모범적 군 생활로 이미지를 개선했다. 인기 절정이었던 1994년 12월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면서 입대한 차인표(49)는 이들에 앞서 원조 연예병사로 성실한 이미지를 구축한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일반 병사는 물론 여군 간부들까지 연예병사들에게 사인을 받으려는 사례가 비일비재해 군 당국이 관리하기가 어려웠고, 간부들이 연예병사들을 행사에 동원한 뒤 포상 차원에서 휴가와 외박을 남발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가수 비(34·본명 정지훈)는 군 복무 중이던 2013년 1월 배우 김태희와 버젓이 열애했다는 사실과 함께 365일 중 71일의 휴가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특혜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2013년 7월 연예병사 제도는 폐지됐다. ●땀내 나는 군생활은 또 하나의 홍보수단 최근에는 오히려 일부 연예인이 ‘위기는 기회’라고 시위하듯 해병대 같은 힘든 군 생활을 자원해 ‘개념 연예인’이라는 홍보 효과를 얻는 경우도 적지 않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으로 배우 생활의 절정기를 맞았던 배우 현빈(34·본명 김태평)은 연평도 포격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2011년 3월 해병대에 입대해 대중의 찬사를 받았다. 현빈에 이어 가수이자 탤런트 오종혁(33)의 해병대 복무도 화제가 됐다. 2011년 4월 군악대로 입대한 그는 사령관에게 직접 탄원서를 제출하며 해병대 수색대원을 자원했고 2013년 1월 전역할 예정이었으나 설한기 훈련에 참가하겠다고 전역을 한 달 이상 연기해 성실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오종혁은 2013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손에 담배를 쥔 모습이 전파를 타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지만, 해병대 복무를 통해 쌓은 이미지로 네티즌들 사이에서 그를 옹호하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해병대 출신인 가수 김흥국(57)이 후배 가수 이정(35)에게 해병대 입대를 권유한 사실도 연예계에 널리 회자됐다. 특히 이정이 2009년 1월 첫 휴가를 나왔을 때 분당 지하철에서 마중 나온 어머니를 앞에 두고 해병대 노래인 ‘위로휴가가’를 부르며 눈물짓던 동영상이 한때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연기·노래실력만큼 중요해진 ‘자원 입대’ 이 밖에 2009년 2월 전역한 그룹 지오디(GOD) 멤버 김태우(35)는 육군 27사단 수색대대, 지난해 5월 전역한 송중기(31)도 22사단 수색대대를 나왔다 병무청은 2000년 이후 연예인들의 병역이 민감한 문제가 된 것은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군의 미필률(면제율) 변화가 영향을 끼쳤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1960년대생의 군 면제율은 30.5%로 이들이 군에 입대할 당시인 1980년대에는 3명 중 1명이 면제될 정도로 면제가 흔했다. 하지만 1970년대생의 면제율은 18.3%, 1980년대생은 9.8%, 1990년대생은 4.8%로 점차 낮아지면서 유명인사의 군 면제는 대중의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하는 촉매가 됐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는 연예인들까지 굳이 자원해서 군대를 가려 하는 것은 대중에게 긍정적 이미지를 유지하는 게 연기 실력이나 노래 실력보다 휠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공무 중 다친 군인,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

    3월 30일부터 민간 진료비도 지원 의족 등 고가 보장구 무제한 제공 지난 3년내 민간진료 소급 적용 오는 3월 30일부터 직업군인(장교·부사관)은 전투 상황이 아닌 일반적인 공무 수행 도중 부상한 경우에도 군병원이 치료할 수 없는 경우 민간병원 진료비를 전액 지원받는다. 현재 민간병원에서 요양 중이거나 민간병원 진료를 받은 지 3년이 지나지 않은 직업군인도 공무상 요양비 형식으로 치료비를 소급 지원받을 수 있다. 이는 지난해 6월 지뢰 폭발로 다친 곽모 중사가 민간병원 진료비를 자비로 부담한 사례가 알려진 뒤 군 복무 중 다친 장병의 치료비 지원체계가 미흡하다는 여론에 따른 조치다. 국방부는 28일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장병 민간의료 지원체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말 군인연금법 개정에 이어 오는 3월 30일부터 군인연금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공무 수행 중 부상한 직업군인은 공무상 요양 기간을 최대 2년까지 보장받고 필요한 경우 심의를 거쳐 1년 이하 단위로 연장할 수 있다”며 “완치될 때까지 민간병원 진료비를 전액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설명했다. 기존에는 직업군인은 전투 임무 수행 중 다친 전상자와 대테러작전 등으로 인한 부상자만 진료비를 전액 지원받았고 일반적인 공무 수행 중 부상한 경우 30일에 한해 진료비를 지원받았다. 의무복무대상자(징병)인 병사들은 이와 무관하게 민간병원 진료비를 전액 지원받았다. 군 관계자는 “지난 3년 이내, 즉 2013년 3월 30일 이후 민간병원 진료를 받고 공무상 요양비를 청구하지 않은 직업군인도 진료비를 소급 지원받을 수 있게 했다”면서 “소급 적용으로 혜택을 받을 대상자는 400여명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군병원에서도 충분히 진료할 수 있는 부상을 당했으나 본인이 희망해 민간병원 진료를 선택했을 때도 진료비의 70%를 국가가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기존엔 진료비의 70%인 건강보험공단 부담금을 당사자가 내야 했지만 앞으로는 국가가 대신 내 본인 부담금이 30%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이 밖에 공무수행 중 신체장애자가 된 직업군인은 앞으로 의족을 비롯한 보장구 착용 비용도 무제한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해·공군도 ‘맞춤특기병’ 뽑는다… 직업훈련생도 지원 가능

    현재 육군에서만 실시하는 ‘맞춤특기병’ 제도가 올해부터 해군과 공군으로 확대 실시되고 지원 자격도 완화된다. 맞춤특기병은 고졸 이하 병역의무자가 입영하기 전 고용노동부의 기술훈련(3개월~1년)을 수료하면 해당 기술과 연관된 기술특기병으로 입영해 복무하고, 전역 후에는 관련 분야에 취업하거나 예전 직장에 복직하는 것을 지원하는 제도다. 병무청은 26일 국무회의에서 고용노동부와 군이 2014년부터 협업 과제로 실시해온 맞춤특기병제 모집 인원을 지난해보다 30% 늘어난 1300명으로 확대하고 해·공군에서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졸 이하 병역의무자들은 대부분 자격이나 기술이 없어 기술병 지원이 곤란하고,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 등이 아닌 일반고 졸업자들은 전공이나 스펙이 부족해 취업하기 어려웠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에 따라 군 복무 기간이 경력 단절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2년간 1842명이 맞춤특기병으로 지원해서 1061명이 기술 훈련을 받거나 훈련을 수료한 뒤 입영했다. 입영자 가운데 128명은 올해 전역을 앞두고 있고, 이들은 3개월간 취업알선 서비스를 받게 된다. 취업에 성공하면 최대 100만원까지 취업성공수당을 지급받는다. 병무청은 맞춤특기병 지원 자격을 현재까지 만 18~24세 고졸 이하 현역입영대상자 가운데 고용부의 취업성공패키지 참여자에게만 한정해왔다. 올해부터는 이를 국가 기간·전략산업 직종훈련, 폴리텍 기능사 양성과정, 일·학습병행제, 취업사관학교 등 각종 직업훈련을 받은 입영대상자에게도 확대한다. 맞춤특기병 지원을 희망하는 사람은 병무청 홈페이지 모병센터에 접속하거나 지방병무청 모병센터를 방문하면 연중 지원과 상담이 가능하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군침 도는 軍식단

    군침 도는 軍식단

    올해 군 복무 중인 병사들은 영내 식당에서 처음으로 광어찜과 탕수육, 팝콘형 치킨(뼈 없는 닭튀김의 일종)을 맛볼 수 있게 됐다. 병사들이 선호하는 메뉴인 삼계탕과 한우 갈비도 1년에 4차례 먹는다. 국방부 관계자는 24일 “올해 장병 1인당 1일 기본 급식비를 지난해보다 144원 올린 7334원으로 편성함에 따라 장병 선호도를 고려한 급식 메뉴를 확대해 지난 1일부터 시행 중”이라며 “특히 외부 전문조사기관에 위탁해 신세대 장병들의 선호도를 객관적으로 확인해 반영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우선 장병 급식 메뉴를 다양화하기 위해 광어, 팝콘형 치킨, 탕수육, 냉동 새우 등을 새 메뉴로 선정했다. 광어(1회 80g)는 유통 및 보관 등을 고려해 회가 아닌 찜과 구이 등으로 연 2회, 팝콘형 치킨(1회 100g)은 연 4회, 탕수육(1회 100g)은 연 4회, 냉동 새우(1회 60g)는 연 2회 제공된다. 장병들이 즐겨 먹는 육류의 급식도 강화됐다. 기존에 공급해 오던 삼계탕(1회 500g)과 한우 갈비(1회 150g)는 각각 지난해 연 3회에서 올해 4회로, 오리고기(1회 150g)는 연 12회에서 16회로 늘었다.병사들이 한 달에 두 번 먹을 수 있었던 고등어(1회 80g)는 월 3회로, 연 3회 맛볼 수 있었던 전복(1회 15g)도 연 4회 급식으로 늘어났다. 국방부는 장병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오이, 호박, 버섯, 감자 등 채소류의 급식량도 지난해 대비 10%씩 늘리기로 했다. 특히 군은 후식으로 제공됐던 과일 주스의 급식량을 연 132일에서 126일로 줄이고, 대신 사과, 복숭아 등 국산 제철 과일의 급식 횟수를 233일에서 239일로 늘려 국내 과일농가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까지 민간업체 1곳의 주스만 급식했지만 올해부터는 시험 급식 후 장병들이 선호하는 업체의 주스를 선정해 급식하는 선택계약제도도 도입한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내년 병사 월급 10% 인상… 여군 1만 960명으로

    내년 병사 월급 10% 인상… 여군 1만 960명으로

    국방부는 올해 연두 업무보고를 통해 병사들의 복지를 확충하고 우수한 여군의 비중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공언했던 군 장성 숫자 감축 등 민감한 구조 개편 계획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올해 업무보고 주제로 ‘국민이 신뢰하는 튼튼한 국방’을 내세운 군이 북한 위협을 내세워 밥그릇 챙기기에 몰두하며 신뢰를 저버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 관계자는 22일 “장병들의 의식주를 개선하기 위해 병사의 1인 기본급식비를 올해 7334원에서 내년 7481원으로 올리는 등 군 복무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전투력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지난해보다 15% 인상된 병사들의 월급을 내년에는 10% 더 인상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올해 상병 기준으로 17만 8000원이던 병사 월급이 내년에는 19만 5800원 수준이 된다. 이는 2012년 상병 월급 9만 7500원보다 2배 늘어난 수치다. 무엇보다 군 당국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9757명(장교 4535명, 부사관 5222명)인 여군 숫자를 올해 말에는 1만 490여명(장교 4650여명, 부사관 5840여명)으로, 내년에는 1만 960명 수준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 관계자는 “원래 2020년까지 전체 장교의 7%, 부사관의 5%를 여군으로 확충할 계획이었지만 지난해 이미 전체 장교의 7%가 여군으로 채워졌다”면서 “우수한 여성 인재 활용 차원에서 내년까지 부사관 가운데 여군 비율을 5%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지난해 10월 장성 40명을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감축하겠다고 밝혔으나 이에 대한 구체적 계획은 이번 업무보고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전체 병력 숫자는 2006년 68만여명 수준에서 지난해 63만명으로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군 장성 정원은 442명에서 441명으로 1명 줄었다. 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번 업무보고는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강행한 상황에서 그 상황에 기초해 필요한 보고가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아들 시신 훼손 父, “나도 어릴 때 체벌 당해…병원 간 적 없었다

    아들 시신 훼손 父, “나도 어릴 때 체벌 당해…병원 간 적 없었다" 진술 ‘충격’

    아들 시신 훼손 父, “나도 어릴 때 체벌 당해…병원 간 적 없었다“ 진술 ‘충격’아들 시신 훼손 아들의 시신을 훼손해 3년 넘게 집 냉동고에 보관한 아버지에 대한 경찰의 1차 범죄심리 분석 결과 별다른 사이코패스 성향이 드러나진 않았다고 경찰이 밝혔다. A군(2012년 당시 7세)의 아버지 B(34)씨와 어머니 C(34)씨를 대상으로 각각 지난 16일과 17일 경찰 프로파일러 심리분석 조사를 벌였다. 조사는 경찰청 소속 권일용 경감과 경기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 등 2명이 주관했다. 그러나 성격평가, 반사회적 인격장애 검사, 프로파일러 면담 등 심리분석 조사에서 B씨는 사이코패스라고 할 수준의 성향으로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B씨는 아들 시신을 훼손한 이유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진술하고 있지만 모순점이 있어 자세한 경위를 계속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1차조사 결과만으로 B씨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고 예단하기는 어렵다”면서 “면밀한 분석을 위해 2차조사를 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B씨는 지난 2012년 10월 씻기 싫어하는 아들을 욕실로 끌어당기며 데려가다 아들이 넘어져 다쳤다고 주장했다. 이후 한 달 뒤 아들이 숨지자 부엌에 있던 흉기로 시신을 훼손하고 집 냉동실에 보관했다. 시신 일부는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거나 화장실 변기에까지 버렸다. 그는 아들의 시신을 훼손한 이유에 대해 변호인에게 “아들이 갑자기 죽었는데 병원에 데려가기 애매한 상황이었다. 처벌이 두려워서, 마냥 방치할 수는 없어서 훼손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를 버린 이유에 대해서는 “냉동고에 안 들어가서 그랬다”고 말했다. B씨는 강력범죄 경력은 없고 사기 전과 1건만 있었다. 지난 2004년 10월 인터넷상으로 사제폭탄, 청산가리 등을 판다고 광고했고 이를 보고 연락해온 이들에게 총 43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지난 2006년 구속된 바 있다. 아내 C씨와는 22살 때인 2003년 만나 동거하다가 2005년 A군을 낳고 혼인신고를 했다. 그러나 특별한 직업을 구하지 못해 경제적으로 빈곤했고, 군 복무도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면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가끔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게임 아이템을 팔아 돈을 벌었고, 아내 C씨는 전화상담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B씨는 아내나 딸까지 학대하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어렸을 때에는 유복한 집에서 자랐지만 7~8년 전부터 아버지와 연락을 끊고 생활했다. B씨의 한 지인은 “장남인 B씨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네가 우리 집 장남이니까 성공해서 집안을 살려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며 “강박관념이랄까 늘 어떤 부담감을 짊어진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경찰은 B, C 부부가 모두 ‘방치’, ‘방임’ 등의 성장기를 거친 특징이 있고 이로 인해 심리적·사회적으로 고립된 삶을 살아왔다고 분석했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나도 초등학교 때부터 친어머니에게 체벌을 많이 받았고 다친 경우도 있었지만 병원에 간 적은 없었다“면서 ”아들이 숨질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C씨도 부모는 있지만 무관심 속에 사실상 방임 상태로 성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A군 부모 모두 자녀에 대한 정상적인 자녀관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A군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아들에 대한 체벌과 제재만이 적절한 훈육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한편 B씨는 17일 구속되기에 앞서 열린 법원 영장실질심사에서 아내에 대한 선처를 요청하기도 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대생 군대서 최대 6학점 딸 수 있다

    올 2학기부터 서울대 학생들이 군 복무 중에도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최대 6학점을 딸 수 있게 된다. 성균관대도 최근 1학기와 여름방학에 걸쳐 연간 수업을 모두 수강할 수 있게 하는 등 학생들의 편의를 위한 대학의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대는 오는 1학기부터 ‘군 휴학 중 원격수업 학점 이수’ 제도를 시범 운영한다고 17일 밝혔다. 지난해 5월 국방부와 맺은 ‘교육 및 연구협력을 위한 협정’의 결과다. 학교 측은 이를 통해 휴학자의 학업 단절을 막고 군 복무 중 자기 계발을 독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대 재학생 병사는 연간 1500명 선이다. 군 복무 중인 학생은 정규 1학기에 3학점 이내, 복무기간 중 최대 6학점을 취득할 수 있게 된다. 강의의 성적평가는 일반 정규강의와 같이 이뤄지며 군 복무 시 이수한 교과목 성적은 학적부에 올라간다. 그러나 여학생과의 형평성을 위해 평점 평균을 산출할 때는 포함시키지 않는다. 서울대가 군 복무 중 학점취득 제도 시행에 나섬에 따라 이 제도가 다른 대학에도 빠르게 확산될지 주목된다.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해 115개 대학이 원격 학점이수제를 운영했지만, 서울에 있는 대학은 중앙대, 서울시립대 등 12곳뿐이었다. 앞서 성균관대는 학생들이 1학기와 여름방학에 걸쳐 연간 수업을 모두 수강할 수 있도록 하는 ‘하계 집중과정’을 개설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학생들은 여름방학까지 1년치 수업을 모두 마치고, 2학기에는 해외연수 등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아들 시신 훼손 父, 대체 이유가 뭔가 봤더니? “아들이 갑자기 죽어…”

    아들 시신 훼손 父, 대체 이유가 뭔가 봤더니? “아들이 갑자기 죽어…”

    아들 시신 훼손 父, 대체 이유가 뭔가 봤더니? “아들이 갑자기 죽어…” 아들 시신 훼손 아들의 시신을 훼손해 3년 넘게 집 냉동고에 보관한 아버지에 대한 경찰의 1차 범죄심리 분석 결과 별다른 사이코패스 성향이 드러나진 않았다고 경찰이 밝혔다. A군(2012년 당시 7세)의 아버지 B(34)씨와 어머니 C(34)씨를 대상으로 각각 지난 16일과 17일 경찰 프로파일러 심리분석 조사를 벌였다. 조사는 경찰청 소속 권일용 경감과 경기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 등 2명이 주관했다. 그러나 성격평가, 반사회적 인격장애 검사, 프로파일러 면담 등 심리분석 조사에서 B씨는 사이코패스라고 할 수준의 성향으로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B씨는 아들 시신을 훼손한 이유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진술하고 있지만 모순점이 있어 자세한 경위를 계속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1차조사 결과만으로 B씨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고 예단하기는 어렵다”면서 “면밀한 분석을 위해 2차조사를 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B씨는 지난 2012년 10월 씻기 싫어하는 아들을 욕실로 끌어당기며 데려가다 아들이 넘어져 다쳤다고 주장했다. 이후 한 달 뒤 아들이 숨지자 부엌에 있던 흉기로 시신을 훼손하고 집 냉동실에 보관했다. 시신 일부는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거나 화장실 변기에까지 버렸다. 그는 아들의 시신을 훼손한 이유에 대해 변호인에게 “아들이 갑자기 죽었는데 병원에 데려가기 애매한 상황이었다. 처벌이 두려워서, 마냥 방치할 수는 없어서 훼손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를 버린 이유에 대해서는 “냉동고에 안 들어가서 그랬다”고 말했다. B씨는 강력범죄 경력은 없고 사기 전과 1건만 있었다. 지난 2004년 10월 인터넷상으로 사제폭탄, 청산가리 등을 판다고 광고했고 이를 보고 연락해온 이들에게 총 43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지난 2006년 구속된 바 있다. 아내 C씨와는 22살 때인 2003년 만나 동거하다가 2005년 A군을 낳고 혼인신고를 했다. 그러나 특별한 직업을 구하지 못해 경제적으로 빈곤했고, 군 복무도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면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가끔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게임 아이템을 팔아 돈을 벌었고, 아내 C씨는 전화상담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B씨는 아내나 딸까지 학대하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어렸을 때에는 유복한 집에서 자랐지만 7~8년 전부터 아버지와 연락을 끊고 생활했다. B씨의 한 지인은 “장남인 B씨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네가 우리 집 장남이니까 성공해서 집안을 살려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며 “강박관념이랄까 늘 어떤 부담감을 짊어진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B씨는 17일 구속되기에 앞서 열린 법원 영장실질심사에서 아내에 대한 선처를 요청하기도 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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