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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우 돕기 위해 제대 이틀 미룬 말년 병장

    전우 돕기 위해 제대 이틀 미룬 말년 병장

    함께 군생활했던 전우들을 돕기 위해 자진해서 제대 날짜를 이틀 미룬 말년 병장이 있다. 주인공은 육군 35사단 진안대대에 복무 중인 김덕규(23) 병장. 그는 애초 전역일이 10일이지만 12일 제대하기로 했다. 전우들과 함께 11일 끝나는 예비군 동원훈련 지원임무를 마치기 위해서다. “2년간 함께 고생한 전우들과 끝까지 임무를 마치고 싶습니다.” 김 병장은 “복학 준비를 하면서 제대를 기다렸는데 예비군 동원훈련이 제대 직전에 시작돼 전역일 다음 날까지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임무가 남은 상태에서 지금껏 함께한 전우들을 뒤로하고 부대를 떠나는 것보다는 며칠 기다렸다가 임무를 마치고 전역하는 게 좋겠단 생각에 전역을 미뤘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는 2014년 11월 입대한 이래 매사 책임감 있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으로 상사와 부대원들에게 두루 인정을 받았다. 대대장인 이진호 중령은 “김 병장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늘 후임병을 배려하고 긍정적인 자세로 임무를 완수해 왔다”며 “김 병장이 보여준 책임감과 군인정신을 후임병들이 배울 수 있도록 저 또한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항상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김 병장은 “전역해서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육군으로서 임무를 마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개인적으로도 그동안 함께한 전우들과 마지막 임무를 할 수 있어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경수 육군35사단장은 전역을 미룬 김 병장에게 감사의 의미로 표창과 부상을 수여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군인들 먹는 곰탕 엄마가 고른 거죠

    장병들의 식탁에 오르는 사골곰탕을 어머니들이 직접 맛보고 평가하는 시식평가회가 열렸다. 국방부는 4일 국방부 본청 제2식당에서 ‘어머니 모니터링단’과 장병,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장병 급식용 사골곰탕 제품 시식평가회를 열었다고 밝혔다. 어머니 모니터링단 등은 여러 업체가 제안한 사골곰탕 시제품을 시식한 뒤 점수를 매겼다. 이들의 평가 점수는 이날 오전에 이뤄진 서류심사 결과와 합산돼 납품업체 선정 과정에 반영된다. 시식평가회는 국방부가 2014년부터 시행하는 ‘급식류 개선 시범사업’의 일환이다. 매년 시범사업 대상 품목을 정하고 계약 물량의 10%는 시식평가를 거쳐 제품을 선정하도록 했다. 지난해에는 만두와 게맛살이 이런 방식으로 선정됐다. 맛을 내는 성분의 배합 비율이나 용기 사용 등에서 기존의 엄격한 군 규격도 완화해 민간업체들의 참여 문턱을 낮췄다. 국방부 관계자는 “어머니 모니터링단의 참여로 시식평가의 신뢰성 및 객관성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장병들의 복무 여건 개선 및 국방경영 효율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자라날 세대에게 문화적으로 큰 공헌하고 싶어요”

    “자라날 세대에게 문화적으로 큰 공헌하고 싶어요”

    멤버들 연습생 시절 가장 잊지 못해… “제대 후에도 평생 함께 활동했으면” 4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S팩토리에서 열린 빅뱅 10주년 간담회에서 멤버들은 “10년이 지났지만 무대는 아직도 긴장되고 버겁고 흥분되는 곳”(대성)이라며 “앞으로의 10년은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탑)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 10년간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힘겨웠던 순간은. -(지드래곤) 저희끼리 만날 때마다 항상 화두에 올리는 건 연습생 시절이에요. 힘들고 고민도 많고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시기였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해요. →앞으로의 10년, 이루고 싶은 꿈은. -(지드래곤) 그게 요즘 저희에게 가장 큰 고민이에요. 좋은 음악만 만들어서 될 것도 아니고 뭔가 한발 앞서서 해야겠다 싶어요.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서 저희에게 영감을 받을, 앞으로 자라날 세대에게 문화적으로 큰 공헌을 하고 싶어요. 어떤 콘텐츠로 소개될진 미정이지만 계속 큰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새로운 기록들을 많이 냈는데. -(태양) 기록을 염두에 두고 활동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랬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했던 ‘최초’라는 타이틀이나 큰 기록들이 붙게 됐고, 또 새로운 기록이 따르면 그 부담감이 더 잘해야겠다는 동기 부여가 됐어요. →군 입대 계획과 군 복무 이후 빅뱅의 모습은. -(지드래곤) 나라의 부름을 받으면 가야겠지만 그 일정이 언제일지는 모르기 때문에 시간이 허락하는 한 빅뱅 다섯으로 계속 함께하고 싶어요. -(탑) 군대에 다녀와서도 사랑받을 수 있다면 계속 활동하겠죠. 저희 마음 같아선 평생 (빅뱅 활동을) 하고 싶어요. 중간에 누군가 그만두는 일은 없을 거예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소설가 조정래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소설가 조정래

    “아유, 덥지? 자자, 이리 와. 빨리 웃옷 벗고 여그 에어컨 바람 좀 쒸여. 어서 어서.” 지난달 20일 오후 경기도 분당 집에서 만난 조정래(73)는 편안해 보였다. 신작 장편 ‘풀꽃도 꽃이다’ 집필 때문에 9개월 동안 이어졌던 ‘글감옥’에서 출소한 지 얼마 안 돼서였을까. “그란디, 뭐 인터뷰허고 자시고 헐 거시 뭐 있겄어? 태백산맥도 글코, 아리랑도 글코, 내 얘기야 많이들 알려진 것인디. 커피 한 잔씩 허면서 그냥 편하게 놀다들 가면 되제.” 서재에서 이어진 대화는 유쾌했다. 그리고 그의 이번 휴식이 길지는 않을 것임을 알게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래야, 이제 그만 부처님 앞으로 가야겠다.” 고3 때인 1961년 9월 어느 날, 아버지는 나를 앉혀놓고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라고 하셨다. 아버지 손에는 ‘조계사 승적 168호’라고 일련번호가 매겨진 승적(僧籍)이 들려 있었다. 속명 ‘조정래’, 법명 ‘인천’(?天)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나는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우리 가족이 전쟁의 난리 속에서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했던 것은 다 부처님의 가호 덕분이다. 형은 장남이어서 좀 그렇고, 차남인 네가 부처님 앞에 일생을 바치는 게 좋겠다.” 배신감이란 이런 것일까. 며칠 전 “남자가 장성하면 무릇 호(號)를 가져야 하는 법”이라며 갑자기 ‘하늘을 벗한다’는 뜻의 ‘인천’이란 이름을 주신 게 결국 아들을 중으로 만들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던 건가. “아, 아버지. 저, 저는 문학을 할 겁니다.” 하지만 그 정도 응수쯤은 이미 아버지의 계산 속에 들어 있던 듯했다. “그건 출가해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니냐. 만해(한용운) 선생을 봐라. 종교도 문학도 다 이루시지 않았느냐.” 아아, 나는 과연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을까. “아유, 만해 선생은 100년에 한번 날까 말까 하는 엄청난 분이시잖아요. 어떻게 제가 감히….” 그 말에 아버지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셨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남자로 태어나 연애 한번 못해 보고 중이 되는 위기를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다. -아버지 조종현(1906~1989)은 시조시인이자 승려였다. 예전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의상대 해돋이’가 아버지의 작품이다. 열여섯에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출가한 아버지는 불법 공부의 높은 경지에 다다라 스물넷에 그 어렵다는 법사 시험을 통과했다. 설법을 전문으로 하는 일종의 교수가 됐는데, 승려들의 비밀결사 ‘만당’(卍黨)에 참여해 만해 스님과 항일운동도 함께 했다. 아버지는 선암사에서 결혼을 한 최초의 승려가 됐다. 당시 일제 총독부가 불교를 장악하기 위해 젊은 승려들을 결혼시켜 일본식 대처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1943년 선암사에서 4남 4녀의 네째이자 둘째 아들로 태어난 것은 일제 황국화 정책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해방 후 좌익, 우익 투쟁의 소용돌이에서 빨갱이로 몰려 절을 떠나야 했는데, 이후 갖은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부처님을 등지고 사는 것을 늘 안타까워하셨다. 나를 승려로 만들려고 하셨던 것도 그런 죄의식의 소산이었던 것 같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0월 아버지가 벌교상고 교사로 가면서 나는 벌교 북국민학교 3학년으로 전학을 했는데, 그때부터 최고의 낙은 형이 부잣집 친구에게서 빌려다 주던 학생잡지 ‘학원’을 받아보는 일이었다. 내 관심은 잡지 속의 중고생 문예투고였다. 그걸 보면서 동시를 짓고 동요를 지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면 이 잡지에 실린 나의 글을 볼 수 있겠지.’ -“이게 다 네가 지은 것들이냐?” 국민학교 4학년 어느 날,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가 내가 쓴 작문을 들고 계셨다. 밥 먹을 때 쩝쩝 소리도 못 내게 했던, 늘 엄했던 아버지. 도둑질이라도 하다 들킨 양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낱장에 쓰면 되겠느냐”며 학교에서 버려진 시험 답안지를 수십장 묶어 이면지 공책을 만들어 주셨다. “여기에 적어야 글들이 안 없어지지.” 아버지는 잘 썼다, 못 썼다 단 한마디도 안 했지만, 조용히 공책을 만들어주는 모습을 보며 ‘칭찬을 저렇게 표현하나 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당시는 종이가 거칠고 잘 찢어져 사람들이 그걸 ‘똥지’라고 불렀는데, 나는 그 종이 묶음을 ‘똥지 문집’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즈음부터 학교에서 글짓기를 했다 하면 나는 수필이건 동요건 동시건 전교 1등을 했다. -1959년 서울 보성고에 입학하면서 방대한 양의 책읽기가 시작됐다. 학교 도서관에서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같은 명작들을 타는 목에 냉수를 들이켜듯이 독파했다. 하지만 남들이 느끼는 만큼의 감동은 내게 오지 않았다.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가슴이 떨리지가 않아.’ 그럴수록 마음 한편에서는 ‘나도 좀더 나이 먹으면 이 정도는 쓸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차올랐다. 고1 나이에 꽤나 기가 승하고 방자했던 셈인데, 그런 내가 은근히 좋기도 했다. -미치도록 글을 쓰고 싶었지만 학교 문예반에는 갈 수가 없었다. 당시 우리 보성고 문예반은 보성중 문예반과 통합으로 운영됐는데, 지도교사가 하필 보성중에 교편을 잡고 있던 아버지였다. 한 교실에 앉아 아버지 지도를 받는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민망했다. 그래서 운동을 했다. 태권도부, 역도부, 등산반을 두루 섭렵했는데 그 덕에 요즘 말로 ‘몸짱’이 됐다. 가슴둘레가 1m가 넘고 턱걸이는 60개를 넘게 했다. -“너도 아버지처럼 굶어가며 살려고 그러니. 제발 상과대학을 가라.” 내가 국문과에 가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기함을 하셨다. 당시는 국문과가 ‘굶을과’로 통하던 때였다. 그러나 나는 “굶지 않고 작가의 길을 걷겠다”고 몇 번을 어머니에게 다짐을 한 끝에 1962년 결국 동국대 ‘굶을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정말로 결심했다. 아버지처럼 처자식 배를 곯리지 않을 것이다, 교사라는 직업을 가질 것이다, 아이를 여덟이나 낳은 부모님과 달리 하나만 낳을 것이다(아들이 태어나고 15년 후에 태백산맥이 그렇게도 잘 팔릴 줄 알았더라면 셋쯤은 낳았어도 됐는데, 내 인생에 가장 실패한 계획이 가족계획이다). -대학에 들어갈 때 내 꿈은 다른 대부분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소설가도 아니고 수필가도 아닌 시인이었다. 정말 열심히 시를 썼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고민이 깊어 갔다. 남들은 일주일에 한 편 쓰기도 벅차다는데 나는 서너 편이 그냥 써졌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가 자꾸 길어지고 늘어지는 데 있었다. 내 시의 함축과 절제는 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교내 ‘문학의 밤’ 행사에서 1학년 동기 중 유일하게 시 낭독자로 뽑히기도 했지만, 뜻대로 시가 안 되는 데서 오는 우울감은 도통 가시지 않았다. “나는 시는 안 된다. 소설로 바꾸자.” 답답한 마음에 떠난 겨울방학 무전여행.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사흘간 어지러이 내리는 눈발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나의 시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소설로의 전향은 꽤 괜찮은 성취로 이어졌다. 2학년 때 교내 문학상에서 단편 ‘비탈진 음지’로 장원을 했다. 그때 상금 탄 걸로 같은 과 친구들한테 술 한번 사고, 당시 뭇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입학 동기 김초혜(시인)에게 손지갑을 사줬다. 그녀와는 군 복무 중이던 1967년 평생의 언약을 맺었고 1970년 동구여상에 함께 교사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우리를 ‘잉꼬부부’라고 불렀다. -문단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안 돼 나는 금세 공처가로 소문이 났다. 사람들에게 나는 한술 더 떠 “조정래는 공처가가 아니라 놀랄 경(驚)자를 쓰는 경처가다. 마누라만 보면 무서워서 깜짝깜짝 놀란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문학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작가입네 예술가입네 하면서 방탕하게 살고 바람 피우는 것 같은 이상한 짓들을 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문학은 형식적인 몸짓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충실한 내용으로 해야 한다고 스스로 경고했고, 주색잡기 같은 걸로 아내의 속을 썩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내가 눈부시지 않고 미우면 하루인들 어찌 살겠는가. 사람들에게 말한다. 내 왼팔은 50년 동안 아내가 잡고 다녀 망가졌고, 오른팔은 글을 쓰느라 망가졌다고. -1972년 동구여상을 떠나 중경고로 옮기고 얼마 안 돼 10월 유신이 선포됐다. 예비역 장성 출신인 교장은 “역사적 영단을 적극 지지해야 한다”며 흥분을 했는데, 나에게는 참기 힘든 압박의 시작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미국을 비판한 ‘누명’, 연좌제를 비판한 ‘어떤 전설’, 월남전을 비판한 ‘청산댁’ 같은 작품으로 교장에게 미운털이 박혀 있던 터였다. 시시콜콜 트집을 잡는 바람에 위경련이 생겼고, 결국 죽지 않으려고 사표를 던졌다. 이후에는 출판사를 경영하기도 하고 차리기도 하며 경제적 여력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였는데, 어느 정도 굶지는 않겠다는 믿음이 선 뒤 나는 글쓰기로 다시 돌아와 방대한 양의 소설을 써내기 시작했다. -1983년 9월부터 1989년 10월까지 6년여에 걸쳐 월간 ‘현대문학’에 ‘태백산맥’을 연재했다. 위로 쌓아 내 키만큼 되는 200자 원고지 1만 6500매 분량이 쓰였다. 한국의 작가들, 특히 전쟁을 겪은 우리 세대에 있어 분단은 문학의 원류 내지 본류라고 할 수 있다. 분단이야말로 우리 삶을 옥죄는 고통의 핵심이다. 소년 시절에 겪은 상처와 고통, 같은 민족끼리 싸운 아픔, 여전히 분단돼 있는 상황은 내가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제공한다. 태백산맥 이전에도 내 작품의 70%가 분단을 소재로 했던 이유다. 단편이 호미로 골짜기 하나를 파는 정도라면 중편은 골짜기 2개, 장편은 골짜기 3개를 파는 데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단편이나 중편, 장편으로는 태백산맥에 있던 그들이 왜 짐승이 아닌 사람인지, 왜 그들이 그래야만 했는지를 도무지 담아낼 수가 없었다. 1986년에 ‘태백산맥’이 단행본으로 발간되고 나서 한 달 정도가 지나자 미처 인지를 찍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책이 팔려나갔다. 태백산맥을 쓰면서, 또 영화화되면서 겪은 우익단체 등의 협박과 훼방 같은 것들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1994년 4월 우익단체에서 고발당한 사건의 경우, 2005년 5월에 무혐의 처분을 받기까지 무려 11년 동안이나 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아야 했다. -후배들이 나에게 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지 않느냐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난 “나는 소설로 참여한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가투(가두투쟁)를 안 했으니 가투를 해 본 너희들이 그 소재로 소설을 써보라”고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체험은 있지만 치열성이 없었고, 그래서 고민과 사명감과 역사의식을 작품에 담아내질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려면 하루 8시간 노동하는 보통 사람들의 두 배, 하루 16시간의 노동을 바쳐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래서 수십년 동안 글감옥에 갇혀 먹고 자고 쓰는 것이 연속되는 생활에서 16시간 노동을 다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켜 나 자신을 이기고 싶었다.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소설가 조정래 치열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시대와 사회의 아픔을 문학에 녹여낸 우리 시대의 대표 작가다. 탄탄한 구성과 깊은 통찰력, 실증적인 취재에 기반한 왕성한 활동은 작품의 수에서도 유례가 없다는 평을 받는다. 20세기 한국사 3부작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1500만부 돌파라는 출판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1943년 전남 승주군(현 순천시) 출생 ▲순천 남국민학교, 벌교 북국민학교, 광주서중, 서울 보성고, 동국대 국문학과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단편집 ‘어떤 전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황토’, ‘한(恨), 그 그늘의 자리’ ▲중편집 ‘유형의 땅’ ▲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 ‘비탈진 음지’, ‘황토’, ‘인간연습’, ‘사람의 탈’, ‘허수아비춤’, ‘정글만리’, ‘풀꽃도 꽃이다’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 ‘황홀한 글감옥’, ‘조정래의 시선’, ‘조정래 사진여행: 길’(사진앨범)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 ‘신채호’, ‘안중근’, ‘한용운’, ‘김구’, ‘박태준’, ‘세종대왕’, ‘이순신’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단재문학상, 노신문학상, 광주문화예술상, 만해대상, 현대불교문학상 등 수상
  • 무슬림 비하했다가… 역풍맞은 트럼프의 입

    도널드 트럼프가 무슬림 전몰자의 부모를 비하하는 발언을 해 역풍을 맞고 있다. 이번 발언은 전몰 용사의 가족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지난 막말보다 후폭풍이 거셀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자신을 공격한 키즈르 칸에게 반박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전했다. 2004년 이라크에서 복무하다가 자살폭탄 공격으로 숨진 후마윤 칸의 부모인 키즈르와 가질라 칸은 지난달 28일 민주당 전당대회에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찬조 연설자로 나와 트럼프의 반무슬림적 태도를 비판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12년 전 숨진 ‘캡틴 칸’은 영웅”이라면서도 “나는 키즈르 칸으로부터 사악한 공격을 받았다. 나도 대응할 권리가 있지 않느냐”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라크 전쟁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힐러리지 내가 아니다”라며 클린턴에 대한 공격도 덧붙였다. 앞서 트럼프는 지난달 30일 ABC와의 인터뷰에서 칸 부부 중 남편인 키즈르 칸만 연설한 것을 두고 “어머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발언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해 무슬림을 비하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클린턴뿐만 아니라 공화당 지도부도 트럼프를 간접적으로 비판하며 그와 거리 두기에 나섰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성명에서 “많은 무슬림 미국인이 우리 군에서 용감하게 싸우고 희생했다. 캡틴 칸과 그 부모의 희생은 언제나 존경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특정 종교인 전체에 대해 입국을 금지하는 것은 미국의 가치에 반하는 것이라는 칸 가족의 생각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칸 부부에 대한 발언을 철회하고 사과하지 않자 논란은 더욱 증폭되는 모습이다. NYT는 “트럼프의 이번 발언으로 트럼프가 과거 소수인종, 여성, 장애인에게 했던 막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며 트럼프에 대한 비판이 가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과거 막말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을 지켜왔는데 이번에는 공화당의 핵심 지지층인 참전용사와 그 가족을 건드렸다는 점에서 곤경에 빠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할아버지·아버지·아들 모두…‘카투사 3대’

    카투사(미 육군 근무 한국군) 창설 66주년 기념식이 다음달 15일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주한미군 기지 캠프 잭슨에서 열린다. 카투사연합회는 28일 “이번 행사는 6·25전쟁 중인 1950년 8월 15일에 창설된 카투사 제도의 66주년을 기념하고 한·미 동맹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더욱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민국카투사연합회와 주한 미8군 카투사교육대 공동 주관으로 진행되는 이 행사에는 카투사 참전용사와 카투사 예비역, 주한 미8군 관계자, 카투사 신병 등 4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김종욱 카투사연합회 회장과 시어도어 마틴 미 2사단장, 이철원 미8군 한국군지원단장(대령) 등이 자리를 함께한다. 특히 행사에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 등 3대가 모두 카투사에서 복무한 가족에 대한 표창도 이뤄질 예정이다. 현재 미2사단 본부대대에서 복무 중인 최호은 상병의 가족이 대상이다. 최 상병의 아버지인 최윤성씨는 1986∼1989년 미2사단 37야전포병연대에서 복무했고 최 상병의 할아버지인 고(故) 최상호씨는 카투사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카투사는 1950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의 구두협정에 따라 창설됐다. 지금까지 카투사로 복무한 이들은 모두 30만명으로 추정된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후임병 상습 추행 20대 징역형…모포 같이 덮고 만져

    대구지법 제12형사부(부장 한재봉)는 26일 군 복무 당시 후임병을 상습적으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A(22)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40시간의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도 명령했다. 다만 대학생 신분 등을 고려해 신상정보 공개는 면제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선임병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후임병인 피해자들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강제추행했고 이로 인해 피해자들이 인격적 모멸감과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등 상당한 정신적 고통과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이 사건 범행은 피해자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군대라는 특수한 공동체 사회의 건전한 질서와 군 기강을 문란하게 하고 나아가 신성한 병역의무 이행을 무력화시킬 우려도 있는 것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A씨는 지난해 7월 중순 소속 부대 막사 생활관에서 후임병 옆에 누워 모포를 함께 덮은 뒤 후임병의 신체 특정 부위 등을 만지는 등 2시간 30분여 동안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같은 범행은 A씨가 근무지를 옮긴 지난 2월까지 5차례 이어졌다. 그는 또 다른 후임병을 상대로도 유사한 방법으로 3차례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군대에서 이 사건으로 영창 15일의 징계처분을 받았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단독] ‘군대리아’ 새우버거 알고보니 ‘명태버거’

    [단독] ‘군대리아’ 새우버거 알고보니 ‘명태버거’

    이른바 ´군대리아´로 불리는 군 급식용 빵식의 주요 내용물인 패티 질이 부실하다는 내부 고발이 나왔다. 심지어 새우버거 패티는 새우 함량이 20%밖에 되지 않는 사실상의 ‘명태 패티’인 것으로 밝혀졌다. 24일 군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한눈에도 부실한 모양의 새우버거 패티가 일선 병사들에게 제공돼 일부 간부 사이에서도 “너무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이 입수한 새우버거 패티 사진을 보면 냉동 상태의 패티는 물론 조리를 한 패티도 두께가 얇아 대부분 밀가루 튀김만 보이는 형태다. 한 일선 군부대 관계자는 “‘이게 무슨 패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모습”이라며 “군대라는 곳에서 10여년 복무하며 최근 바뀐 불성실한 내용물을 보면서 우리 병사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불가피한 손해를 감수하라고 교육할 수 있는지 후회감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과거 병사들이 선호하던 새우버거는 패티 두께가 매우 두꺼웠지만 이제는 병사들이 먹기 싫어하는 빵식이 됐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장병 급식 개선을 위해 한 달에 6차례 제공하는 빵식의 빵 지름을 기존 9㎝에서 12㎝로 늘려 시중에 파는 햄버거와 비슷한 크기로 맞췄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새우버거 패티의 중량을 기존 45g에서 80g으로 늘렸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패티 내용물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그런데 방위사업청 국방전자조달시스템과 군에서 제공하는 제품 성분을 확인한 결과 새우버거 패티의 성분은 연육 40%, 새우 20%로 밝혀졌다. 연육 성분이 대부분 새우와 식감은 비슷하지만 가격은 저렴한 ‘명태’로 이뤄져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군에서 제공하는 새우버거 패티는 사실상 명태 패티인 셈이다. 다만 현재는 버거 패티와 같은 즉석 조리 식품의 경우 명태를 40% 이상 첨가한다고 해서 ‘새우 패티’로 표기하지 못하도록 규제할 규정은 없는 상황이다. 한편 2013년 한 유명 패스트푸드 업체는 ‘명태버거’라는 비난에 시달렸지만 “새우만으로는 패티 반죽이 쉽지 않다”며 “패티 내용물 중 새우가 40% 이상이고, 명태 함유량은 20% 미만”이라고 해명해 논란을 잠재운 바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단독] “이게 무슨 패티야”…부실한 軍 새우버거 알고보니 ‘명태버거’

    [단독] “이게 무슨 패티야”…부실한 軍 새우버거 알고보니 ‘명태버거’

    이른바 ‘군대리아(군데리아)’로 불리는 군 급식용 빵식의 주요 내용물인 패티 질이 부실하다는 내부 고발이 나왔다. 심지어 새우버거 패티에 들어간 새우 함량이 20% 밖에 되지 않는 사실상의 ‘명태 패티’인 것으로 밝혀졌다. 24일 군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한 눈에도 부실한 모양의 새우버거 패티가 일선 병사들에게 제공돼 일부 간부들 사이에서도 “너무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이 입수한 새우버거 패티 사진을 보면 냉동상태의 패티는 물론 조리를 한 패티도 두께가 얇아 대부분 밀가루 튀김만 보이는 형태다. 한 일선 군부대 관계자는 “‘이게 무슨 패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모습”이라며 “군대라는 곳에서 10여년 복무하며 최근 바뀐 불성실한 내용물을 보면서 우리 병사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불가피한 손해를 감수하라고 교육할 수 있는지 후회감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과거 병사들이 선호하던 새우버거는 패티 두께가 매우 두꺼웠지만 이제는 병사들이 먹기 싫어하는 빵식이 됐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장병 급식 개선을 위해 한 달에 여섯 번 제공하는 빵식의 빵 지름을 기존 9㎝에서 12㎝로 늘려 시중에 파는 햄버거와 비슷한 크기로 맞췄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새우버거 패티의 중량을 기존 45g에서 80g으로 늘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패티 내용물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그런데 방위사업청 국방전자조달시스템과 군에서 제공하는 제품 성분을 확인한 결과 새우버거 패티의 성분은 연육 40%, 새우 20%로 밝혀졌다. 연육 성분은 대부분 새우와 식감은 비슷하지만 가격은 저렴한 ‘명태’로 이뤄져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군에서 제공하는 새우버거 패티는 사실상 명태패티인 셈이다. 다만 현재는 버거 패티와 같은 즉석 조리 식품의 경우 명태를 40% 이상 첨가한다고 해서 ‘새우패티’로 표기하지 못 하도록 규제할 규정은 없는 상황이다. 한편 2013년 한 유명 패스트푸드 업체는 ‘명태버거’라는 비난에 시달렸지만 “새우만으로는 패티 반죽이 쉽지 않다”며 “패티 내용물 중 새우가 40% 이상이고, 명태 함유량은 20% 미만”이라고 해명해 논란을 잠재운 바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권익위 해설서로 본 김영란법] “아들 현역 빼줘” “친구 먼저 입원시켜줘” 민간인 청탁도 처벌

    [권익위 해설서로 본 김영란법] “아들 현역 빼줘” “친구 먼저 입원시켜줘” 민간인 청탁도 처벌

    국민권익위원회가 오는 9월 28일 시행될 예정인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해설집을 22일 펴냈다. 법률 시행을 앞두고 김영란법의 세부 조항을 어떻게 실생활에 적용하고 해석해야 할지 궁금증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해설집의 주요 내용을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해외 사례, 주요 판례 등을 중심으로 4차례에 나눠 싣는다. 전문은 국민권익위원회 홈페이지(http://www.acrc.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학생 A씨는 입대를 앞두고 한숨이 늘었다. 병역판정검사를 받으면 현역병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 몇 년간 군 생활을 할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고 극도로 우울해졌다. 보다 못한 아버지 B씨는 아들 몰래 평소 친분이 있는 병무청 간부 C씨에게 아들이 4급 보충역을 받고 서울 관내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할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청탁했다. C씨는 곧바로 병역판정검사를 담당하는 군의관 D씨에게 연락해 A씨가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을 수 있게 조치해 달라고 했다. 덕분에 A씨는 영문도 모른 채 현역병 입대를 면하게 됐다. 꼬리에 꼬리를 문 입대 관련 청탁의 최종 수혜자는 A씨이지만, 적발 시 법적 제재는 A씨를 제외한 모두가 받게 된다. 오는 9월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아버지 B씨는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병무청 간부 C씨는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군의관 D씨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될 수 있다. ●금품 오가지 않아도 청탁한 누구나 위법 많은 이들이 김영란법을 공직자나 언론인에게만 적용되는 법으로 알고 있지만, 금품을 건네지 않아도 실제 청탁행위를 하는 자라면 누구든지 이 법에 저촉될 수 있다. 민간인도 예외가 아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2일 펴낸 김영란법 해설집에 따르면 이 법이 강하게 제재하는 부정청탁은 ‘제3자를 위한 청탁’ 행위다. 자기 자신을 위한 청탁행위는 아예 처벌하지 않거나 제3자를 통해 부정청탁했으면 상대적으로 적은 과태료(1000만원 이하)를 매긴다. 다만 직접 자신을 위해 부정청탁한 자가 공직자면 의무적 징계 대상에 해당한다. 권익위는 “연고·온정주의에 따라 제3자를 위해 부정청탁하는 연결고리를 사전에 차단해 부정청탁을 효과적으로 규제하기 위해서다”라고 설명했다. ●과태료 부과대상 아닌 부정청탁은 ‘셀프 청탁’뿐 아버지 B씨는 가족인 아들을 위해 청탁했지만, 그 효과가 제3자인 아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제3자를 위한 부정청탁’에 해당해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이는 아들이 미성년자라도 마찬가지다. 연결고리 역할을 한 병무청 간부 C씨는 공직자 신분이어서 B씨보다 1000만원 많은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부정청탁을 받고 직무를 수행한 군의관 D씨는 형사처벌(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는다. 과태료 부과대상이 아닌 부정청탁은 이해당사자가 직접 자신을 위해 청탁하는 경우뿐이다. A씨가 아버지의 부정청탁 사실을 아예 몰랐다면 제재 대상이 아니다. 교사를 찾아 자녀의 생활기록부를 잘 써 달라고 부탁한 경험이 있는 학부모도 조심해야 한다. 금품이 오가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는 처벌하지 않았지만,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제3자를 위한 청탁’ 행위에 해당해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된다. 김영란법은 제5조에서 각급 학교의 입학·성적·수행평가 등의 직무도 부정청탁 대상 직무로 규정했다. 생활기록부를 고쳐준 교사는 형사처벌 대상이다. 인가·허가·면허·특허·승인·검사·검정·시험·인증·확인 등 민원인의 신청을 받아 처리하는 직무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아들이 “우리 어머니가 장기요양보험 대상자로 선정되게 해 달라”고 담당 공무원에게 부탁했다면, 아들은 2000만원 이하 과태료 처벌을 받는다. 친구 E씨의 부탁을 받은 F씨가 친분이 있는 국립대병원 등 공공의료기관의 원무과장에게 “대기자가 많이 밀렸지만, 내 친구를 먼저 입원하게 해 달라”고 부탁해도 부정청탁이다. 부정청탁의 판단 기준 중 하나인 ‘정상적인 거래 관행에서 벗어난 행위’에 해당해서다. 권익위는 “입원 순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접수 순서대로 하는 게 정상적인 거래 관행이며, 공공기관의 내부기준과 사규 등을 위반해 특정인에게 특혜를 부여하는 행위는 정상적인 거래 관행을 벗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을 위해 제3자인 친구 F씨를 통해 부정청탁한 E씨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제3자인 친구를 위해 원무과장에게 부정청탁한 F씨는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원무과장은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해외 나간 공직자·국내 외국인도 적용대상 김영란법은 속인(屬人)·속지(屬地)주의를 모두 적용하기 때문에 외국인도 국내에서 법을 위반하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공직자가 해외에 나가서 외국인으로부터 부정청탁을 받고서 이를 들어주면 김영란법이 적용된다. 김영란법은 최초 부정청탁을 받았을 때 거절 의사를 명확히 표시하도록 거절 의무를 명시했다. 이후 동일한 사람에게서 같은 청탁이 또 들어오면 신고를 해야 하는데, 만약 앞서 부정청탁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내세워 두 번째로 청탁해도 신고 의무가 발생한다. 현재 김영란법 적용 대상은 헌법기관, 중앙 부처, 공직 유관단체, 각급 학교, 언론사, 공공의료기관 등 3만 9965곳이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사설] 우 수석, 국정에 누 안 되게 직 내려놓는 게 순리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관련해 사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우 수석은 처가와 넥슨의 부동산 거래 관여 및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몰래 변론’ 의혹 등을 강력히 부인했다. 아들의 군 복무 특혜 의혹에 대해선 ‘아들 문제까지 거론돼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우 수석으로선 진경준 검사장의 비리 의혹 불똥이 자신에게 튄 것이 억울할 수도 있다. 정황만 가지고 그가 큰 비리라도 저지른 양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날 ‘이런 문제를 가지고 공직자가 관둬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우 수석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우선 그의 말 바꾸기가 하나씩 들통나고 있다. 그는 넥슨이 처가의 땅을 사 줬다는 첫 보도 직후 ‘매매에 전혀 관여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틀 만에 ‘계약하는 자리에 갔지만 장모님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였다’고 말을 바꿨다. 이젠 우 수석과 장모, 딸, 넥슨 관계자 4명만 방에 들어가 계약서를 썼다는 주장이 계약에 관여했던 사람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몰래 변론’ 의혹도 마찬가지다. 탈세 등의 혐의로 이미 구속된 홍만표 변호사와 동업하며 선임계 없이 변론했다는 의혹에 대해 처음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2013년 다단계 유사 수신업체 관련 사건을 공동 변론하고 수임료 5000만원을 받았다는 구체적인 보도가 나오자 ‘그거 딱 한 건 했다’고 뒤로 물러섰다. 거짓말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그가 진 검사장을 통해 부동산 매각을 부탁했거나, 진 검사장이 다리를 놔 줬다는 의혹을 그저 근거 없는 소설로 치부하기는 어려워졌다. 다단계 업체에 대한 ‘몰래 변론’을 시인한 마당에 정 전 대표와 브로커 이민희씨를 전혀 모른다는 해명도 신뢰하기 어려워졌다. 우 수석은 이미 모든 언론으로부터 표적이 된 처지다. 각종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고 있다. 처가 부동산 매매 때 다운계약서 작성, 가족 명의의 80억원대 부동산 투자회사 보유, 부인과 자매들의 화성시 농지 불법 보유 등의 의혹이 불거진 상태다. 우 수석이 결백만 내세워 사퇴를 거부하기엔 상황이 심각하다. 북한 핵 문제 대응과 경제 살리기에 매진해야 하는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그의 사퇴 없이 검찰 수사가 제대로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민정수석은 검찰을 비롯한 정부 고위직 인사를 위한 검증을 하는 자리다. 검찰 인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게다가 이번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라인이 우 수석과 학연·지연으로 얽혀 있다고 한다. 아무리 소신 있는 검사도 자신의 앞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현직 선배를 엄정하게 수사하기는 어렵다. ‘셀프 수사’란 비웃음을 살 수도 있다. 정말 결백하다면 직을 내려놓고 당당히 수사를 받는 게 순리다.
  • [커지는 ‘우병우 의혹’] 부동산 진경준 개입 “전혀 사실 아냐”…매수자 없었다? “중개업자 많이 연락”…의경 아들 논란에 “상사 본 적도 없어”

    [커지는 ‘우병우 의혹’] 부동산 진경준 개입 “전혀 사실 아냐”…매수자 없었다? “중개업자 많이 연락”…의경 아들 논란에 “상사 본 적도 없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은 20일 청와대 기자실을 찾아 최근 언론에서 제기한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했다. 문답 형식으로 정리한다. →처가 강남 땅을 진경준을 통해 김정주에게 사 달라고 했나. -절대로 진경준을 통해 김정주에게 부탁한 적 없고 다리 놔 줬다는 얘기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다운계약이라는데, 1300억원이 넘는 거래를 두고 금액을 줄였다는 게 가능한 얘기냐. 그쪽은 법인이고 우리도 그거 받아서 세금 낸 것 아니냐. →계약서 작성 당일 직접 현장에 갔나. -장모님이 살림하던 분이라 불안하다며 도와달라고 해서 갔다. 장모 입장에선 장인어른이 돌아가시자마자 열심히 일해서 번 땅을 본인이 지키지 못하고 판다는 부분에 대해 많이 우셨고, 내가 위로해 드렸다. →부동산 침체기여서 매수자가 거의 없었다고 하는데. -처가에서 부동산 업소에 땅을 내놓은 것도 아니다. 판다더라 하니까 수없이 온 거다. 그 땅은 대체불가능한 강남역 바로 옆 위치다. 침체기니 뭐니 그런 얘기는 모르겠다. 수없이 많은 중개업자가 수없이 많은 매수자를 데리고 와서 사겠다고 했었다. 거래 성사시키면 10억원을 버는 거니까. →진경준 비위 사실을 입수했으나 넘기지 않았다는데. -그런 적 없다. →10년간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을 했는데 비리 입수를 안 했다니. -내 인사도 모르는 판이다. →강남 땅 관련 기사가 보도되기 전에 청와대에서 상당 기간 전에 그 사실 자체를 알고 있었다는 보도가 있는데. -몇 년 전에 다 팔아서 끝난 일인데 청와대서 알아야 할 이유가 뭐가 있냐. →우병우 사단이 검찰 인사를 전횡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나한테 주어진 업무 범위 내에서 검증할 거를 했다. →홍만표하고는 일을 많이 했냐 -오늘 신문에 나온 거 그거 딱 한 건 했다. →정운호를 몰래 변론했나. -정운호와 (법조 브로커인) 이민희를 모른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수임한다는 게 말이 되나. 내 입장에서는 김정주도, 정운호도, 이민희도 모른다. →우 수석 아들이 꽃보직 군복무한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유학 가 있던 아들이 들어와서 군대 가라고 해서 간 거다. 아들의 상사라고 하는 사람을 본 적도 없고, 전화한 적도 없다.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 그라운드 떠나는 ‘전설의 수문장’

    그라운드 떠나는 ‘전설의 수문장’

    “그동안 고마웠다. 선수로서 보낸 35년을 추억으로 저장하겠다.” ‘한국 축구사의 살아 있는 전설’ 골키퍼 김병지(46)가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많은 이들의 머리와 가슴에 고스란히 기억돼 있을 내가 있으니, 선수로서의 삶은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세 아들 또한 골문 앞의 아빠를 기억해 주니 이 얼마나 감사한가”라면서 “나는 진정 행복한 선수였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김병지는 밀양중 재학 시절 축구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축구부 회비를 낼 여력이 없을 정도로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그는 꿈을 놓지 않았다. 국비 지원을 조건으로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등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 갔고, 창원기계공단에서 용접공으로 생활하는 등 힘든 시절을 이겨냈다.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친 그는 1992년 울산 현대에 입단한 뒤 1996년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1998년 10월 24일 포항과의 경기에서 헤딩슛으로 골키퍼 최초의 필드골을 넣는 등 프로축구의 역사를 썼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은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대회였다. 그는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 56개의 유효슈팅 중 47개를 막아내며 방어율 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는 2001년 1월 파라과이와의 경기 도중 무리하게 공을 몰고 가다 실점 위기를 자초해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 밖에 나 대표팀 선수로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프로 무대에선 2005년 5월 K리그와 K리그 컵대회 합산 통산 118경기 무실점 방어로 개인 통산 최다 무실점 신기록을 세웠다. 그는 24시즌 동안 706경기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고, 2014년 11월 15일 신의손이 갖고 있었던 최고령 출전 기록(44세 7개월 6일)을 넘어섰다. 그는 지난해 시즌 종료 후 전남과 계약 만료로 이적시장에 나왔지만 소속팀을 구하지 못하고 7월 이적시장에서도 팀을 찾지 못하자 은퇴를 선언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열린세상] 비리공화국, 조선과 대한민국/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비리공화국, 조선과 대한민국/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요즘 군납 비리를 비롯해 국방부의 기강해이가 심심치 않게 뉴스 도마에 오른다. 국방부 관계자들 스스로 우리 대한민국은 100% 자위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공언할 지경이니, 아마도 미국이 주도하는 신냉전 질서에 들어가 있기에 그나마 국가의 안녕을 유지하는지 모르겠다. 공직자들이 자행한 국방 관련 비리는 조선시대에도 못지않았다. 일일이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게 전개된 불법비리 중에서 대립(代立)도 그 한 예다. 대립이란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을 대신 세운다는 의미인데,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할 당사자는 빠지고 그 자리에 엉뚱한 사람을 대신 세우는 행위를 가리키는 용어였다. 세종과 세조의 영토 확장과 강병책에 힘입어 그나마 국가 기강이 잘 잡혔다고 알려진 15세기에 이미 대립이라는 용어가 널리 퍼졌으니, 대립은 차라리 조선왕조 내내 일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성 가운데 특정인을 호명해 불러내어 군에 복무시키는 게 국법이었지만, 조선왕조는 대개 국가에서 필요한 병력 수를 채우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따라서 군적에 올라 있는 병사들 숫자만 맞는다면 그 병사들 개개인이 모두 실제로 입영 통지를 받고 달려온 장본인인지, 또는 그들이 실제로 복무하는지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런 중세적 관행이 불법 대립을 활성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대립은 그 유형도 다양했고, 대립해 주는 데 따른 보수 곧 대립가(代立價)도 천차만별이었다. 이에 대한 상세한 연구는 아직 미진한 편인데, 최근에 아주 흥미로운 연구를 접했다. 대립의 유형 가운데 고위 관료들이 직접 개입해 부당이득을 취하던 관행을 구체적으로 밝힌 김근하의 연구가 바로 그것이다. 김근하에 따르면 조선의 각 관청에 근무하는 고위 관료에게는 병조에서 사후(伺候)라고 하는 병사를 서너 명씩 배정해 그 관료의 호위와 시중을 맡게 했다. 대개 당상관급이면 네 명을, 낭청급이면 세 명을 배정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사후를 배정받은 관료가 돈을 받고 그들을 방면하고는 그 빈자리를 자신의 사노(私奴)로 채우는 일이 15세기에 이미 관례처럼 버젓이 자행됐다. 당시 불법적으로 만연하던 대립의 값은 적게는 포 6필에서 많게는 13필까지 다양했다. 당시 포 1필의 경제가치가 4~5인 정도의 평민 가족 기준으로 한 달치 생활비에 버금갔으니, 매우 비싼 편이었다. 어떤 당상관(지금의 2급 이상 고위 공무원)이 자신에게 배정된 사후 네 명에게서 각기 10필씩 받고 모두 방면했다면 그는 앉아서 40필을 불법으로 꿀꺽한 셈이다. 사후의 빈자리는 자신의 사노 네 명을 데려다가 대립시키면 문제 될 일이 없었다. 사노비에게는 인건비를 줄 필요가 없었으니, 그 당상관은 이런 식으로 부당이득을 매년 취할 수 있었다. 이런 기형적 구조에서 관청의 업무가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했다. 사후를 대립한 사노들은 주인 나리의 사적인 집안일에 수시로 불려 가느라 관청의 공무에 전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당시 조선의 공무원 사회에서 이런 불법 대립이 매우 당연한 관례였다는 점이다. 이런 관행을 불법이라 지적하고 문제 삼는 이가 오히려 ‘왕따’를 당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대립 현상이 너무 일반화돼 국가에서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지경에 이르자 대립을 아예 합법화해 대립가를 국가에서 세금처럼 취하자는 논의가 일었고, 그 결과 16세기에 등장한 제도가 바로 방군수포제(放軍收布制)였다. 말 그대로 군 복무를 면해 주는 대신에 포를 징수하는 제도였다. 임진왜란(1592~1598) 초기에 조선군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문제는 바로 이런 ‘이상한’ 시스템 때문이었던 것이다. 공무원의 부정부패가 너무나 득세한 나머지 오히려 멀쩡한 제도마저 개악해 버린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크고 작은 군납 비리, 유사시에는 정작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무기들, 체력 단련을 골프장에서 하는 혁혁한 별과 무궁화들, 자위력 확립보다는 외국의 보호받기를 더 선호하는 장성들. 조선시대와 별로 다를 게 없다. 그야말로 ‘헬’이다.
  • ‘프랑스 니스 트럭테러’ 올랑드 대통령 “테러에 끝까지 맞서 싸울 것”

    ‘프랑스 니스 트럭테러’ 올랑드 대통령 “테러에 끝까지 맞서 싸울 것”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4일 밤(현지시간) 남부 해안도시 니스 테러에 대해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폭력이자 테러 행위”라고 강력히 비난하면서 국가 경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올랑드 대통령은 테러 발생 5시간반 만인 15일 새벽 4시 TV중계 연설을 통해 ”또 다시 일어난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폭력인 이번 공격에 테러의 특성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며 이번 사건을 테러 행위로 규정했다. 테러 발생 당일 니스에서는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 ‘바스티유의 날’(공휴일) 축제 중에 흰색 대형트럭 한 대가 군중을 덮쳐 최소 80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개인 일정으로 남부 아비뇽에 머물던 올랑드 대통령은 테러 소식을 듣고 급히 파리로 돌아가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나서 연설에 나섰다. 그는 ”프랑스가 자유의 상징인 국경일에 공격받았다“고 규탄하면서 ”약속하건대, 프랑스는 공격을 원하는 광신도보다 언제나 더 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직 테러의 배후 세력이 규명된 상태는 아니지만, 국제 테러조직이 연루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프랑스가 테러와의 전쟁을 지속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는 ”테러와 싸우려는 우리의 의지를 꺾을 수 있는 것은 없다“며 ”우리는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군사작전을 강화할 것이며 우리 영토에서 우리를 공격하는 자들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테러에 따른 대응 조처로 올랑드 대통령은 이달 26일 종료가 예정된 국가비상사태를 3개월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 때 선포된 국가비상사태가 여러 차례 연장돼 왔다. 또한 올랑드 대통령은 전역 군인뿐 아니라 군 복무를 하지 않은 프랑스 시민을 포함해 예비군을 소집하면서 이들을 국경 강화에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안보 작전에 투입된 군 추가 병력 1만명도 기존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공기업 임금 산정 때 軍복무 인정 의무화

    공기업 임금 산정 때 軍복무 인정 의무화

    앞으로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친 공기업 직원은 군 복무 기간이 근무 경력에 의무적으로 포함돼 임금·경력 평가에 반영된다. 국가보훈처는 12일 이런 내용을 담은 ‘제대군인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현재 국가기관과 공기업 등에 채용된 제대군인의 호봉이나 임금을 결정할 때 ‘군 복무 기간을 근무 경력에 포함할 수 있다’고 돼 있는 권고조항을 ‘포함하여야 한다’는 의무조항으로 바꿨다. 의무복무를 위해 현역병으로 입대한 경우에만 해당되며 공익근무요원이나 공중보건의, 전문연구요원, 산업기능요원 등으로 복무한 경우는 포함되지 않는다. 의무 군 복무 기간을 경력으로 인정해야 하는 곳은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국공립학교, 공기업을 비롯한 공공기관 등이다. 하지만 일부 공기업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보훈처에 따르면 2013년 4월 현재 총 1954곳의 공기업 중 군 복무 기간을 경력으로 인정하는 업체는 82%(1604곳)였다. 111곳(5.7%)은 군 경력을 전혀 인정해 주지 않았고, 의무병만 경력을 인정해 주는 업체가 228곳이었다. 보훈처는 이번 법 개정으로 군 복무 기간을 경력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 공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남성 직원 1만여명이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개정안은 2012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대군인 주간’의 시행 근거를 법률로 마련하고, 10년 이상 복무한 제대군인의 취업 지원 기간(전역 후 3년)을 폐지하고 계속 지원하기로 했다. 또 제대군인 고용 실적이 우수한 기업을 선정, 이를 정부가 인증하고 행정·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송중기, 메이저리그 LA다저스 구장 포착 ‘누구와?’

    송중기, 메이저리그 LA다저스 구장 포착 ‘누구와?’

    배우 송중기가 메이저리그(MLB) LA다저스 구장 관중석에서 포착됐다. 6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을 통해 ‘송중기 메이저리그 포착’이라는 제목으로 사진이 게재됐다. 사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에 위치한 다저스타디움에서 경기를 관전 중인 송중기의 모습이 담겨있다. 검정색 후드티에 모자와 선글라스를 착용했지만 송중기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당시 송중기가 관전한 경기는 LA다저스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경기로 이날 경기에서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는 2타수 1안타를 기록했지만, 볼티모어는 5-7로 패했다. 송중기는 평소 야구 광팬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군 전역 당시 인터뷰에서 군 복무 중 가장 힘이 된 것에 대해 “한화 이글스”라고 답하기도 했다. 한편 송중기는 지난달 말 열애설에 휩싸였다. 중국 매체에 따르면 송중기가 광고를 촬영하기 위해 미국 LA를 방문했을 당시 일반인 여자친구와 동행했다는 것. 또 송중기가 여자친구와의 여행을 위해 출국 2주전부터 직접 항공편과 호텔을 예약했다고 전했다. 미국 현지에서 송중기는 여자친구를 포함한 10명의 친구가 함께 있었고 당시 한 팬이 함께 사진을 찍길 원했지만 여자친구를 배려해 이를 거부했다고 설명도 있었다. 이에 대해 송중기의 소속사 블러썸엔터테인먼트는 “스태프들과의 휴가가 와전된 것”이라며 열애설을 일축한 바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신임 민주평통 사무처장 권태오씨

    신임 민주평통 사무처장 권태오씨

    박근혜 대통령은 6일 차관급 정무직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에 권태오(60) 예비역 육군 중장을 임명했다. 권 신임 처장은 38년간 군에서 복무하면서 수도군단장 등을 역임했고, 전역 이후 탈북자 관련 단체인 북한민주화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 중증장애인 연금정보 직접 알려준다

    중증장애인 연금정보 직접 알려준다

    다음달부터 정보 접근성이 낮은 중증장애인에게는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전화를 걸어 장애인 연금 관련 정보를 알려준다. 수급 대상자가 제도를 알지 못해 장애인 연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다. 정부는 4일 오전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장애인 연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장애인연금은 생활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에게 매월 일정 금액을 지급해 생활 안정을 지원하는 제도다. 그러나 그간 홍보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급률이 약 65% 수준에 머물렀다. 개정안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는 중증장애인에게 신청 방법과 절차를 자세히 알려야 한다. 원산지 거짓 표시 혐의로 형을 선고받고 5년 내에 같은 죄를 저지르면 10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하도록 한 ‘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의결됐다. 여성 단기복무 부사관과 학생군사 교육단 부사관후보생 출신 부사관의 의무 복무 기간을 3년에서 4년으로 연장한 ‘군인사법 개정안’도 처리했다. 푸드트럭 사업자가 사람이 많은 곳으로 트럭을 이동해 영업할 수 있도록 한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개정령안’도 이날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현행법상 푸드트럭 사업자가 장소를 옮겨 영업하려면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개정안은 지자체가 정한 ‘푸드트럭 존’ 안에서 옮겨 다니며 영업할 수 있게 했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5년 前 여중생 집단 성폭행’ 피의자들 檢 송치

    5년 전 고등학생 때 여중생 2명을 성폭행하는 데 가담한 피의자들이 검찰에 송치됐다. 서울 도봉경찰서는 특수강간과 공동협박 등 혐의로 구속된 주동자 김모(21)씨 등 4명을 기소 의견으로 서울 북부지검에 송치했다고 4일 밝혔다. 6명은 특수강간미수 혹은 방조 혐의로 북부지검에 송치하고, 실제 성폭행을 했던 2명을 포함한 피의자 12명은 군 복무 중이어서 군으로 송치할 예정이다. 김씨 등은 고등학생이던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여중생 2명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고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다른 피의자들은 피해자들이 강하게 거부해 미수에 그쳤고, 일부는 김씨 등의 범행을 방조했다. 김씨 등은 피해자들이 술을 마시는 장면을 목격하고 “학교에 알리겠다”며 협박해 동네 뒷산으로 부른 후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이들은 대학이나 직장을 다니며 평범하게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담당 수사관이 2012년 다른 사건을 수사하다가 인지해 수사가 시작됐다. 피해자들은 당시 충격으로 진술을 거부했으나 담당 수사관의 4년간에 걸친 설득으로 마음을 열어 올해 3월 고소장을 접수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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