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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ㆍ군 손잡고 “통일기원 대행진”

    ◎건군 42돌… 탈춤ㆍ농악등 「한마음축제」/20만 연도시민 색종이 뿌리며 환호/한강선 거북선취항식ㆍ항공시범도 「국민과 함께 국군과 함께」 「하나되어 통일로」라는 주제로 열린 건군 제42주년 국군의 날 행사가 1일상오 여의도 광장에서 거행됐다. 특전사 장병들의 고공 낙하와 태권도 시범으로 시작된 이날 행사는 육ㆍ해ㆍ공군 장병들의 분열과 88탱크 등 한국형 각종 신예장비 등이 위용을 자랑했고 F16기 등의 편대 비행 등 2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여의도 기념행사가 끝난뒤 도보부대와 기계화부대장병들은 이날 하오3시 남대문과 시청앞 광화문에 이르는 시가행진을 벌였다. 시가행진을 하는동안 20여만명의 시민들이 연도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장병들을 격려했고 프레스 센터 등 고층빌딩에서는 오색종이를 날려 축하해 주었다. ▷기념식◁ 오색찬란한 육ㆍ해ㆍ공군 각급 부대기와 경축 애드벌룬이 펄럭이는 가운데 시작된 기념식은 노태우대통령이 이상훈국방부장관과 정인균제병지휘관의 안내로 육ㆍ해ㆍ공군ㆍ예비군ㆍ학군단ㆍ기계화부대를 차례로 사열하면서 시작됐다. 사열을 마친 노태우대통령은 정호근합참의장에게 이날 창설된 새로운 합참본부기를 수여했다. 1천여명의 특전사장병들이 태권도시범과 격파묘기를 보이자 기념식에 참석했던 10만여 시민들이 박수갈채를 보내며 환호했다. 이어 육군항공대의 헬리콥터 선도비행,도보부대 및 기계화부대 분열,공군 E5E팬텀,F16의 편대비행에 이어 민ㆍ군 합창단의 「아! 대한민국」합창으로 기념식에 모두 끝났다. 기념식과 분열이 끝이 난 다음 벌어진 식후행사에는 올림픽부대장병 1천여명이 벌인 올림픽개막식때 규모의 고놀이를 시작으로 남사당놀이와 평택농악,북청사자놀이,양주별산대놀이,봉산ㆍ강령탈춤 등을 추어 축제분위기를 자아냈다. ▷시가행진◁ 도보부대는 하오3시 50여대의 헌병사이드카부대를 앞세우고 남대문을 출발,시청앞을 거쳐 세종로 네거리까지 1.2㎞를,기계화부대는 남대문∼시청앞∼세종로∼종로∼동대문까지 4㎞를 행진했다. 기계화부대뒤에는 9t트럭 6대를 민ㆍ군화합,민족자존,자유체제수호 등 각종 상징조형물로 꾸며 각계 각층의 보통사람 54명과 장병 38명 등 92명을 태운 호국대행렬이 뒤따랐다. 시청앞에 마련된 사열대에는 정호근합참의장과 이진삼육군,김종호해군,한주석공군참모총장 등 군지휘부와 소년소녀가장ㆍ우체부ㆍ청소부ㆍ어머니회원ㆍ노인회원 등 보통사람 5백여명이 자리잡고 박수를 보내며 늠름한 국군장병들의 행진을 지켜봤다. ▷한강축제◁ 이날 한강변선착장과 고수부지 등 4곳에서는 공군과 해군주관으로 4개 행사가 있었다. 낮12시부터는 동부이촌동 고수부지에서 해군이 제작한 거북선취항식이 거행됐으며 하오3시부터 5시30분까지는 여의도 고수부지에서 공군주관으로 동력행글라이딩시범ㆍ무선모형항공기시범ㆍ조종사생환구조시범 등 한강 공중축제가 있었다. 잠원동 선착장에서는 해군의 특전대시범과 LVT시범이 있었고 잠원수영장에서도 상오9시부터 모형함선만들기와 모형함선 속도경주 등이 벌어졌다.
  • 아ㆍ태에 「변화의 바람」 부는데… /정종욱 서울대교수(세평)

    제2차 아시아ㆍ태평양지역 대화ㆍ평화 및 협력회의는 지난 9월4일부터 6일까지 사흘 동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되었다. 아태지역의 23개 국가를 대표하는 2백50여명의 학계와 재계 및 정계인사들이 참석한 이 회의는 형식적으로는 소련과학아카데미가 주최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소련 외무부가 주관했었다. 1988년에 개최되었던 1차회의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르바초프가 추진하고 있는 소련의 아태지역에 대한 정치 경제적 진출을 외교정책차원에서 뒷받침하려는 것이 이 모임의 중요한 목적중의 하나였다. 1차회의때에는 초청되지 않아 참석하지 않았던 한국에서는 남덕우 무역협회회장을 위시하여 10여명이 참석했고 북한에서도 오창림 군축평화연구소 부소장 등 7명의 대표가 참석했다. ○소,아ㆍ태 진출 적극 모색 이번 회의에서 가장 주목을 끈 것은 회의 첫날 행해진 셰바르드나제외무장관의 기조연설이었다. 셰바르드나제의 연설이 주목을 끌었던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그가 9월2일부터 이틀 동안 평양을 방문하고 바로 블라디보스토크회의에 참석했다는 사실이다. 한소 수교임박설 등 평양과 모스크바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들이 셰바르드나제와 북한 고위층 사이에 심각하게 논의되었을 것으로 추측되었기 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소련 외무의 움직임과 발언이 크게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셰바르드나제가 소련의 아시아 태평양지역에 대한 중대한 외교정책을 발표할 것이라는 보도가 회의 전에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소련의 아태정책은 단순한 탈냉전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정치ㆍ겅제질서 형성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방향전환을 모색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으며 여기에 관한 기본구도가 바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행해질 셰바르드나제외무의 기조연설에서 제시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다자간협의 구성엔 냉담 실제로 셰바르드나제의 연설은 첫째 문제에 관해서는 원칙론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소련의 입장을 분명히했다. 소련은 한반도문제 해결에 있어 분단의 현실을 인정하고 나아가서 한반도에서 두개의 한국이 40년 이상의 오랜 시일에걸쳐 각기 배타적 주권을 행사해왔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이것은 한소 수교의 명분이기도 하지만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북한이 남한의 현 정부를 인정하고 정부간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분단의 고통을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평화공존에 입각한 통일에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통일을 위해서는 한반도에서 남북한간에 진정한 의미의 평화공존이 우선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주변국가들의 관계정상화는 물론 남북한간에도 정치적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소련의 주장은 물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북한과 소련의 관계는 한소 관계가 정상화될 경우에도 단절하기 힘들 만큼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특수한 측면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한소 관계정상화가 강행될 경우 한반도에는 북한이 그토록 반대해온 분단고착이 현실화된다는 게 평양측의 주장이었다. 셰바르드나제의 평양방문에서는 이러한 북한의 반대에 대한 소련의 단호한 입장이 전달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소련은 한소 수교문제 이외에도 북한이 받아들이기 힘든 새로운 몇가지 사실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유가의 현실화와 경화지불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셰바르드나제를 맞는 북한의 태도가 대단히 비우호적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불라디보스토크회의에서 북한과 소련 참석자들간의 접촉이 눈에 띄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가급적이면 서로 접촉을 피하려는 어색한 모습에서 셰바르드나제의 평양방문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둘째 문제는 93년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아태지역 외무장관회의를 개최하자는 셰바르드나제의 제안으로 구체화되었다. 유럽의 안보협력회의(CSCE)를 아시아에서도 실현시켜보겠다는 게 고르바초프의 일관된 정책이었으며 이것이 역내 외무장관회의라는 형태로 이번에 나타난 것이다. 아시아지역에서 전후의 냉전 유산을 청산하고 나아가서 새로운 역내의 정치 경제 협력관계를 만들기 위해 다자간회의를 열자는 취지이다. 이 제안에 대한 회의참가국들의 반응은 일단 부정적인 것이었다. 새로운 아태 질서 형성에 있어 소련의 적극적인 역할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미국의 태도도 그러했지만 일본이나 동남아국가들의 반응 역시 미지근했다. 소련을 아태지역국가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도 냉전의 응어리가 심각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결국 블라디보스토크회의는 아태지역에서 냉전 청산과 새 질서 구축의 중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그 구체적 내용이나 절차에 관해서는 다양한 이견들이 노정된 채 92년에 열릴 제3차 블라디보스토크회의때까지 해결을 연기하는 결과를 낳았다. 유럽에서의 변화가 아시아에로 파급되어 구체적 성과로 자리잡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넘어야 할 장벽들이 적지 않음을 다시한번 시인한 것이다. ○남북관계 실질성과 시급 아태지역에서 새로운 국제질서가 창출되기 전에 한반도문제에 대한 실질적 성과를 이룩하는 것만이 한반도문제가 역내의 다른 문제들에 묻혀 예기하지 않은 방향으로 해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길임을 확인하면서 아태지역에서 소련이 갖고 있는 막강한군사력을 상징하는 군항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났다. 2년 후 다시 이 항구도시를 찾을 때쯤에는 한반도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면서….
  • 「사천왕사 왔소」 새달 일 공연… 연출가 허규씨(안녕하십니까)

    ◎“전통축제 「해외마당」에 큰 보람”/“전래문화의 뿌리,일 재현에 가슴 뿌듯/춘향제등 향토축전의 활성화 힘써야”/재일동포들에 민족문화의 우월성 심어줄 터 【대담:장석영문화부장】 오직 무대를 통해 말한다는 연극연출가 허규씨(57). 그가 최근 연출가에서 문화이벤트기획가로 변신,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는 특히 지난 4월 진해 군항제를 시작으로 남원 춘향제,강릉 단오제에서 지역문화와 관련된 인물의 행차행렬을 꾸며 지역축제를 활성화시킨 데 이어 오는 8월 일본 오사카에서 펼쳐질 「사천왕사 왔소」라는 행사를 맡아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일에 몰두해 있다. 허씨는 이번 「사천왕사 왔소」라는 행사를 통해 한국의 전통축제 문화를 일본인들에게 선보여 한일문화의 고리를 복원시켜 보겠다고 벼른다. 그는 또 이번 행사가 자신의 연출무대를 제한된 실내 공간에서 실외마당으로 옮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국내마당에서 해외마당으로 넓혀나가는 길이라면서 이번 기회에 재일동포들에게 민족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데온 정열을 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평범한 예술가에서 민족예술가로 도약해 보겠다는 그의 오늘과 내일의 목표는 무엇일까. -먼저 「사천왕사 왔소」라는 행사를 맡게 된 동기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이 행사가 태동된 것은 지난 88년 서울올림픽이 치러진 이후였습니다. 올림픽 문화예술축전에서 거리축제인 「상감마마 행차요」를 기획·연출했는데 아마 그것이 인연이 되어 저에게 이번 행사를 맡긴 것 같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기획에 들어가 이미 지난달 12일 서울 임진각에서부터 본행사가 시작됐습니다. -행사의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원래 이 행사는 신한은행의 모체인 대판흥은의 이승재전무가 「빛나거라 21세기의 어린이여」를 기업이미지의 주제로 내세우다가 교포 3세이하의 세대를 위한 전통문화축제를 착안,재일실업가들로 후원회를 결성해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이 후원회는 후쿠다 전일본수상등 한일 주요인사 18명으로 「사천왕사 왔소」 실행위원회를 구성하고 두 나라를 연결하는 첫 행사를 이번에 갖는 것입니다. 지난달 12일 임진각에서 5백여명의 교포가 성토제등을 올려 조국순례행사의 막이 올려졌고 이달 31일 부산을 출발,다음달 19일 오사카에서 약 3천여명의 교포가 참석하는 고대의상 퍼레이드와 일본 사천왕사에서의 전통예술공연등으로 행사는 이어집니다. ○올림픽뒤 축제에 전념 -왜 행사의 이름을 「사천왕사 왔소」라고 했습니까. ▲교포들의 사상최대 뿌리찾기 운동인 이 축제의 명칭이 어째서 「사천왕사 왔소」인가 하면 일본의 사천왕사가 부여의 정림사지를 모방한 사찰로 고대 한일문화 교류의 창구역할을 맡았고,일본의 전통축제에서 「왔쇼이」(□□□)라고 외치는 말의 어원이 한국어 「왔소」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이번 축제의 의의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고대로부터 많은 문물이 한반도로부터 일본에 넘어갔다는 인식은 일본 사회에 깔려 있으나 그것을 기리는 축제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축제는 그 명칭에서 나타나 있듯이 한반도에서 받은 영향을 기리자는 최초의 축제로 오사카교포들이 중심이 되어 벌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고대 사기에도 나타나듯이 일본인 모두가 좋아하는 성덕태자의 스승이 고구려인이며 그런 분들이 이 시대에 오사카에 다시 나타났음을 표현해 보일 계획입니다. 또 우리 조상들이 일본에 전해준 문물들을 재현하려 합니다. 이 행사를 8월에 갖는 이유는 우리의 광복일이 8월에 들어있기 때문등입니다. -연출가에서 기획가로 변신한 셈인 데 보람을 느끼십니까. ▲물론입니다. 저의 활동을 변신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10년 주기로 변한 것 같습니다. 60년대에는 주로 서구식 연극에 주력해 왔고 70년대에 넘어오면서 우리 연극 찾기에 눈을 돌렸죠. 그러다 80년대에 와서는 창극쪽으로 관심을 모았고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치른 뒤부터 축제에 전념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축제다운 축제가 없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축제를 기획·제작·연출하는 단체를 만들어 보자는 데 착안했던 것입니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단체가 축제문화진흥회죠. ▲81년부터 89년초까지는 국립극장장으로 공직에 몸을 담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종합기획 「마루」라는 이름으로축제행사를 맡아 추진해왔는데 지난해 3월 주식회사로 등록하면서 「축제문화진흥회」란 간판을 달게 되었습니다. 거리축제는 가만히 서 있는 무대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오고 가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전에 구간별로 업무를 분담해 조립형태로 이뤄집니다. 따라서 상당히 많은 인력과 장비 그리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각 지방에 따라 고유의 축제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경시되어 온 경향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활성화가 되리라고 보십니까. ▲각 지역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유의 축제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이들 축제들이 주로 관청에서 주관해 왔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인 행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남원의 춘향제만 해도 제가 거의 30여년간 굿판등을 쫓아다니며 보아왔지만 전혀 발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어디든 백일장,노래자랑 등이 있고 난장에 서서 먹고 마시고 떠들썩한 것만 있었지 정작 삶의 질을 높여주는 축제다운 축제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신문에서 올해부터 전국 10개 지역에서 펼치는 향토문화축제는 그런 면에서 매우 바람직스럽고 반드시 지역문화 발전에 큰 몫을 하리라고 기대됩니다. ○마당극 현대에 잘 맞아 -현재 우리의 공연계에 대해 하실 말씀은. ▲제 자신이 공연계에 몸을 담고 있기 때문에 뭐라고 꼬집어 얘기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공연예술은 지금까지 보다는 앞으로 훨씬 독창력을 발휘해 나가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더욱 활성화도 이루어지리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 우리는 전파와 전자의 뉴미디어시대에 살게 되는데 그때가 되면 인간적인 모습의 예술공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고 또 그리워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그리워지고 자연이 그리워지고 하면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공연장을 찾아가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지금은 어찌보면 우리 공연계도 혼돈적 상황이라고 해야겠지요. 각종 개방화에 편승,외국의 공연단체들이 밀려 들어오고 있습니다. 정말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외국과 문화의 뿌리를 달리하는 우리나라에서 현재의 예술적 환경과 시대상황을 가장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극형식은 어떤 것일까요. ▲저보고 마당극의 기수라는 말을 하는 분들이 많은 줄 알고 있습니다만 마당극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맞는 전통의 현대적 수용의 지름길이 된다고 봅니다. 지난 75년 미국과 유럽을 40여일간 여행을 하면서 그곳의 공연만 38편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때 각 나라의 연극이 자기네 민족문화를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문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통일성은 언어입니다. 음식문화도 중요하지요. 역사와 국가를 떠나 인간중심의 시각에서 언어나 음식이 같으면 그 기질도 같아지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우리의 기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민족의 신명,신바람도 그런 것중의 하나죠. 일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또 놀기 좋아하는 특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단순히 놀기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예능적 재질이 뛰어난 민족이기 때문에 좋은 작품들을 무수히 만들어 낼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같은 언어,같은 음식에도 불구하고 매우 다양한 성격을 가진 민족입니다. 우리 민족은 음악적으로나 기타 다른 형식에서도 나름대로 획일적이 아닙니다. 신바람 잘 내는 민족이기 때문에 싸움도 잘하고 분파도 잘 일으킵니다만 이를 긍정적으로 보면 자존심과 자신감이 강한 민족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 연극부 활동 -맨 처음 연극을 하시게 된 동기는. ▲원래 대학의 전공은 임학이었습니다. 서울에서 공부를 할 때인데 연극에 열을 올리던 아저씨 집에서 기거를 했어요. 그때 연극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서울농대 3학년때 연극부에 들어가면서 연극인의 길을 걸었죠. 그동안 연극연출 횟수는 1백10여편정도였고 방송드라마는 약 5백여회를 제작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역시 77년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물도리동」과 68년에 제작했던 드라마 「탑」입니다. -가족이 분야는 달라도 모두 한길을 걷고 있다고 들었는데. ▲시인인 아내(박현영)와 시립국악단에 있는 딸,그리고 대학원에서 예술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는 아들이 가족인데 모두 한 길을 걷고 있는 셈이지요. -앞으로의 계획은. ▲전통예술의 뿌리에서 우리 예술을 꽃피우는 작업을 꾸준히 해 나갈 작정입니다.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 우리 문화예술의 우월성과 자긍심을 심어주는 데 노력해 나갈 계획입니다.
  • 벚꽃관광열차 운행/새달 1일∼12일

    철도청은 진해에서 군항제가 열리는 오는 4월1일부터 12일까지 12일동안 서울∼진해,대구∼진해 노선에 벚꽃관광열차를 운행한다. 이 벚꽃관광열차는 서울역에서 매일 상오7시40분에 출발,영등포와 수원 대전을 거쳐 진해역에 낮12시55분에 도착한뒤 진해역을 하오5시55분에 출발,서울역에 10시30분에 되돌아오는 무궁화호와 대구역을 상오8시50분에 출발,진해역에 10시40분에 도착했다가 하오6시20분에 떠나 8시20분에 되돌아 오는 통일호 등 2편이다. 이 관광열차의 왕복요금은 서울에서 1만6천8백원,영등포 1만6천6백원,수원 1만5천2백원,대전 1만6백원이고 대구에서는 6천4백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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