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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내고장 역점사업] (45) 진해시

    국내 최대의 군항도시인 경남 진해시가 21세기에는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변모한다. 한반도 동남부에 위치한 진해는 기온이 온화하고,리아스식 해안선과 어우러진 자연경관이 아름답다.수산자원과 문화유적도 풍부하다.이처럼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관광자원을 군항도시라는 기존의 이미지에 접목시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관광도시로 거듭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진해시는 올해부터 오는 2002년까지 1,243억원의 사업비로 군함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을 비롯,웅천읍성과 도요지,안골왜성 등 문화유적 복원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인다. [군함박물관건립사업] 군항도시에 걸맞는 밀레니엄기념사업으로 오는 2001년까지 웅천동 명동마을 해안에 퇴역 구축함을 개조한 군함박물관을 만들고,주변의 수려한 해안경관을 살려 38만㎡ 규모로 해양공원을 조성한다. 박물관으로 활용되는 구축함은 길이 118m 너비 13m 높이 28m의 2,500t급으로 지난 45년 건조돼 50여년간 취역하다 최근 퇴역했다.이 구축함은 내년 9월쯤 해군으로 부터 무상으로 넘겨받는다. 해양공원 조성사업은 군함박물관이 완공된 후 2차사업으로 추진한다.오는 2010년까지 야외공연장과 해상레스토랑을 건립하고,해안산책로와 야영장도 조성해 관광객에게 볼거리와 쉼터를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군함박물관 건립과 해양공원 조성에 소요되는 사업비는 500억원이다.이중 140억원은 국비를 지원받고,도·시비가 60억원이며,나머지 300억원은 민자를유치해 충당한다. [문화유적 복원사업] 오는 2010년까지 사업비 374억원으로 웅천과 웅동지역에 산재한 유적지를 복원,남해안 국제관광벨트와 연계시킬 계획이다. 한국 전래의 대표적인 성인 ‘웅천읍성’을 복원해 민속학술자료로 보존하고 국민교육의 장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이와 함께 조선시대 때 분청사기를 구웠던 것으로 전해지는 두동 일대 1만여평에 웅천도요지를 복원한다.2003년까지 83억원을 들여 전통 가마와 공방을 복원해 독특하고 창조적인 조형미를 지닌 도자예술의 전통과 우수성을 재현한다.당시 도공들이 생활했던 민가도 다시 지어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할 계획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축조한 웅천왜성과 안골왜성도 복원정비해 역사와 안보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일본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관광자원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숙박시설 증설계획] 연간 300만명의 관광객이 진해를 찾지만 숙박시설이 열악하고 위락시설이 없어 대부분 스쳐가고 있다.이같은 문제점을 개선,관광객들이 머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관광호텔 건립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시내제황산동에 객실 150실과 회의장,카지노 등을 갖춘 특급호텔 건립이 추진되고 있고,두동 안골포에도 50실 규모의 중형 관광호텔이 건립된다.용원동과태백동에 각각 건립중인 관광호텔은 마무리공사만 남겨둔 상태다. 진해 이정규기자 jeong@■진해의 벚꽃 진해는 벚꽃의 도시다.매년 봄이면 시내에 심어진 20만그루의 벚나무가 꽃을 활짝 피워 온 시가지는 ‘벚꽃터널’을 이룬다.진해만에 훈풍이 불어오는3월말쯤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벚꽃은 4월초에 절정을 이룬다. 벚꽃의화사한 빛깔이 절정에 달할즈음 바람에 날리는 꽃잎은 마치 눈이 내리는 듯한 광경을 연출,아름다움을 한층더해준다. 이와 때를 같이해 군항제가 열리고,전국에서 몰려든 100만명의 상춘객들은 화려한 벚꽃의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진해에 벚나무가 처음 심어진 것은 지난 1907년.을사보호조약(1905년)을 강제로 체결한 일제가 진해만을 일본해군의 중심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강점하면서 이주해온 일본인들이 집안에 한두그루씩 심었고,1910년 6월부터 군항으로 도시계획을 하면서 시가지에 2만그루의 벚나무를 심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광복이후 일제에 대한 감정때문에 상당수가 베어졌으나 ‘왕벚나무’가우리나라 자생종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심기 시작했다.지난 62년 진해시와 해군이 공동으로 왕벚나무 2,000여그루를 해군작전사령부 영내와 제황산공원,시가지 등에 심었다.이를 계기로 지금은 시내 도로변에 5∼6m 간격으로 1그루씩 심어져 있다. ■김병로 진해시장 인터뷰 “뉴 밀레니엄시대가 되면 진해는 군항도시·소비도시의 이미지에서 한 차원 뛰어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해양관광도시로 성장할 것입니다” 김병로(金炳魯) 진해시장은 “21세기 진해는 사람과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그린(Green)도시’로 가꿔진다”며 “시민들도 이에 걸맞는 시민의식과 친절의식의 함양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21세기 진해의 발전 방향은. 국내외의 많은 관광객이 찾고 싶고,머물고 싶고,쉬어가고 싶은 해양관광도시,수준높은 교육·문화·예술도시로 키워나가겠다.이를 위해 군함박물관을 건립하고 웅천동 일대의 문화유적지 복원사업을 펼치는 것이다. -21세기에 걸맞는 도시계획은. 2016년을 목표년도로 도시기본계획을 이미수립했다.도시의 주 기능을 항만 및 휴양도시로 개발할 계획이다.낙후된 동부지역의 해안을 매립,공업기능을 확대하고,도시공간구조를 다핵화하는 등미래지향적인 도시골격을 구축해 나갈 방침이다.특히 동부지역에 대단위 주거단지를 조성하고,종합대학을 유치하는 한편 도로·항만 등 사회간접시설을대폭 확충,동북아의 중심도시로 가꿔갈 생각이다. -군항제 행사의 발전적인 개편 방안은. 군항제는 37년의 전통을 가진 전국규모 페스티발로 자리매김됐지만 보완하고 고쳐야 할 부분이 많은 것은사실이다.따라서 민·관·군이 폭넓게 참여하는 ‘군항제 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논란이 되는 행사기간과 프로그램,교통·관광·환경문제,손님맞이 대책등을 백지상태에서 재검토할 계획이다.특히 군부대와 긴밀히 협조,군항도시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축제로 개편해 나가겠다. -새 천년을 맞는 시민들의 바람직한 자세는. 21세기 진해는 인구 30만명을수용하는 자치자족적인 중견도시로 사람과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그린도시로부상돼야 한다.따라서 시민들은 공중질서를 지키고,환경을 생각하는 선진 시민의식과 체질화된 친절의식을 가져야 한다.아울러 시정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는 주인의식도 빼놓을 수 없다. 진해 이정규기자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8)해상왕 장보고

    ‘生年未祇奉 久承高風 伏增欽仰(생년미기봉 구승고풍 복증흠앙:평소에 받들어 모시지 못했으나,오랫동안 고결한 풍모를 들었습니다.엎드려 우러러 흠모함이 더해 갑니다)’. 840년 2월 17일.당에서 천신만고 끝에 신라배로 귀국한 일본의 승려인 옌닌(圓仁)이 장보고에게 보낸 글의 일부이다.존경과 감동의 마음이 철철 흘러넘치고 있다.그가 쓴 ‘입당구법순례행기’덕분에 그나마 신라의 해양사,장보고의 활동,그리고 그의 동아시아적 위상을 알 수 있게 됐다. 장보고는 단순한 군인이나 상인,더욱이 야심찬 정치가는 아니었다.그는 변화된 동아지중해의 본질을 꿰뚫고 신질서의 핵심으로 뛰어든 인물이었다.장보고 선단의 활동범위는 매우 넓었고,바다와 육지에 걸쳐있었다.신라와 당,일본은 물론 간접적으로 발해와 동남아국가들,아라비아에까지 이어져 있었다.대운하의 주변에 포진한 신라방들과 연계하면서 산동반도의 여러 지역들,청도만입구의 연운,그리고 절강성 영파와 주산군도 등 황해의 서안,한반도의서해안,남해안,제주도,일본 규슈의 하카다,우사(宇佐)지역(金文經설)를 거점으로 황해와 동해북부를 제외한 동아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였다. 이 광범위한 활동의 중심지는 남부해안에 828년 설치한 청해진(완도)이었다.청해진은 한중일을 연결하는 항로가 경유하는 중요한 항구도시였다.동아시아의 해적을 퇴치하는 해군력을 키우고,선단이 대기하는 군사도시이었다.때문에 완도나 장도(將島)외에 주변 섬들에 소규모의 군항을 만들고,방어체제를 구축해 공수를 유기적으로 엮은 나폴리같은 대규모 해양요새였다.또 국제교역을 국내산업과 연결시키는 수륙교통의 요지로써 배후에 생산과 소비,운송을 담당한 강진 해남 등이 있는 해양폴리스였다. 장보고는 이 도시에서 사무역과 공무역과 산업을 관장하는 한편 해적의 퇴치,신라내정의 참여 등 사업을 벌였으며,곳곳에 황해 연안 포진한 신라방들을 관리하며 연결시켰다.때문에 라이샤워는 장보고를 해외조계지(colony)를지배한 총독(commissioner)으로 평가했다. 그로 하여금 경이적인 활동과 역사적인 역할을 하게한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해양활동 능력이었다.신라인들은 항해술이 매우 뛰어났다.옌닌의 책에 따르면 신라배들은 산동반도에서 신라땅까지 바람이 좋을 때는 2∼3일이면 닿을 수 있다고 하였다.847년 옌닌이 귀국할 때 탄 배는 음력 9월 2일 정오 적산포의 모야도를 출발해 황해를 건너 다음날 아침 육지를보았다.직횡단거리가 200㎞ 정도가 된다. 신라인인 절강의 대항해가 장우신(張友信:조영록 설)은 명주를 출발해 3일만에 일본의 서부까지 항해하였다.동중국해의 북부를 사단으로 항해하는 고난도의 원양 항해이다.신라배에는 ‘암해자’,즉 뱃길을 숙지한 항해사와 풍부한 경험의 선원들이 다양한 항해도구를 사용했다.9세기초 일본열도에는 신라인이 자주 오고,신라배가 해안에 출몰하여 불안을 조성하였다.장보고의 사후에는 신라인들이 일본해안에서 들끓었다.이런 사실은 신라인의 항해술이뛰어났음을 알려준다. 장보고의 선단은 다양한 항로로 바다를 누볐다.황해중부 횡단항로는 산동반도의 적산 등주와 밀주 등 여러 지역에서 출발해 횡단하다가 백령도 등 황해도 연안의 섬들을바라보면서 서해근해를 남하해 청해진에 도착한 뒤 각각의 목적지를 향해 출항한다.가장 안전하고 많이 사용하던 항로이다. 두번째는 동중국해 사단항로이다.절강성의 명주(영파)나 그 아래를 출발하여 동중국해를 근해항해로 북상한 다음에 상해만 부근에서 황해남부를 사선으로 항해,제주도 해역에 진입한다.한라산은 원양항해시 선박의 위치를 확인하는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이어 청해진으로 들어가거나 남해(사천:서영교설)나 동해(울산)부근으로 항해한다.또는 일본 서부의 고토(五島)열도로 항해한다. 세번째로는 절강에서 일본열도로 항해하는 또하나의 항로는 동중국해 사단항로이다.당시 이 항로들은 계절풍을 이용했는데,특히 동중국해 사단항로는당나라를 출발할 때는 봄에서 초여름까지는 남풍을 활용하고,다시 당으로 돌아갈 때는 북풍계열을 활용해야 한다. 신라인의 조선술은 매우 뛰어났다.신라는 752년에 일본의 나라 동대사에서대불의 개안식을 하였는데,이때 축하겸 사절 700명을 7척의 배에 태워보냈다.1척에 약 100명이 탄 것이다.839년 일본조정은 장보고가 교역하던 태재부에 우수한 신라배를 만들라는 명령을 내린다.이 무렵 태재부에는 6척의 신라배가 있었다.일본은 가야 백제 신라 등으로부터 조선술을 배워 왔으며,당과 교류할 때는 사신,승려,상인들이 신라배를 타거나 신라선원을 고용하였다. 양주의 신라상인 왕청(王淸)은 일본무역으로 부자가 되었는데,일본에 다녀오기도 하였다.839년에 당에서 귀국하던 일본사신은 신라배 9척을 고용하여무사히 귀국한 일도 있었다.신라인들은 당나라 대운하주변과 항구에서 조선업을 하였다.847년에는 옌닌이 타고온 신라배가 현재 비파호 근처 히에이산의 명덕원(明德院)에 그림으로 남아있다.쌍돛대에 활대가 9개인 사각돛은 물레를 이용하여 움직이고,닻이 8개 이상이었고,누각이 있다.그런데 당나라에가는 일본사신선들은 길이 20여m,폭은 7m 전후로,백 수십톤 정도로 추정된다. 이런 대선들이 수십척씩 그물같이 뻗은 항로를 이용해 황금의 바다에서 사람과 각종의 진귀한 물건을 실어 날랐던 것이다.장보고는 해양을 매개로 ‘동아지중해 환류(環流)시스템’을 완성시킨 전무후무한 사람이었다.그러나장보고의 죽음과 함께 이 시스템은 붕괴되어버렸고,바다는 배반의 공간이 되었으며,신라의 해양시대는 종언을 고하였다.그러나 한반도에서는 일부가 해상호족으로 기사회생하여 후삼국시대와 고려라는 새질서의 주인이 되고자 꿈틀거리고 있었다. 21세기 신질서속에서 분단한국은 중국와 일본에 비해 열세이다.우리가 생존할 길은 장보고를 모델로 신 해양질서의 본질을 인식하고,해양력을 강화시켜동아지중해의 중핵조정역할을 추진하는 것이다. [尹明喆 동국대 겸임교수]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7)海商王 장보고(상)

    841년 11월 중순 어느 날.한반도의 남쪽에서 빛나고 있었던 ‘동아지중해의 진주’인 청해진이 역사에서 사라지고,그 주인인 장보고는 암살돼 영웅의일생을 마쳤다. 장보고는 현재 완도군에 있는 한 섬에서 태어나 차별받고 자란 섬사람이었다.아명이 ‘궁복(弓福)’인 그는 친구 정년(鄭年)과 함께 배를 타고 당으로 건너갔다.그때는 관리와 귀족,승려,상인들도 많이 건너갔다.가난을 피해 외국으로 이민가는 서해 연안의 농민이나 어민들도 많았다.당군의 초급장교가된 장보고는 역설적으로 고구려 유민 이정기(李正己)일가가 일으킨 대당전쟁을 토벌하는 무령군(武寧軍) 군중소장으로 출세했다. 이정기는 고구려 멸망후 요동에서 산동으로 옮겨와 그 지역을 지배하던 군벌이었다.평로치청절도사(平盧淄靑節度使)로 발해 및 신라의 교역을 통제하였다.동족인 발해와는 황해북부항로를 이용하여 상당한 규모로 군마교역을하면서 부를 축적했다.그는 산동지역의 해양권과 대운하의 주변을 장악하면서 당을 경제·정치적으로 위협하다가 제나라를 세워 당나라와 오랫동안 전쟁을 했으나 결국 819년에 패하면서 55년에 걸친 역사는 사라졌다. 이를 계기로 유민사회는 전환을 맞았으며,신라와 당의 관계는 보다 원활해졌다.이 시기에는 대운하와 황해연안주변에 재당 신라인들이 집단거주지를이루었으며,황해를 건너다니며 교역을 하였다.장보고는 이들을 조직화하면서 실력을 키워나갔다. 당의 고급장교로 신라변방의 해양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거대 해상(海商)으로 커가던 장보고는 당시 국제질서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세계는 군사적 대결에서 경제협력 중심으로 변화하였고,교역이 질서변동의 핵이라는 것을 인식하였다.지중해와 페르시아의 물품들이 대상길과 해상길을통해서 중국에 수입됐고,다시 더 큰 이익을 위해 신라와 일본으로 수출됐다. 마찬가지로 신라와 일본의 토산물이나 공산품들도 당에 수출되었다. 산업이 발달한 신라는 일본에 적극적으로 수출해야 했다.당시 육로는 폐쇄돼 있어,열린 길은 해로 뿐이었다.때문에 각 나라는 물류망을 장악하고,해양력을 강화하는 일이 필요했다. 바로 이때 장보고가 시대변화의 중심으로 진입할 수 있는 몇가지 상황이 조성되었다.당시 동아지중해에는 당과 신라,일본의 해적이 횡행하고 있었다.해적들은 일종의 무장상인(武裝商人:armed-merchant)으로 그 실체가 분명하지못했다.다국적군으로 이뤄진 해적은 선박을 공격하고,교역을 방해하며,심지어 노예무역까지 하였다. 때문에 해로망을 이용한 교역을 통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당상인 신라상인 일본상인들에게 해적은 제거의 대상이었다.각 국은 해양방어체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현실에서 대규모 해군을 편성해 해적선을 토벌할 능력이없었다.때문에 상인과 정부는 무정부 상태인 황해에 무장력을 갖춘 해상관리자가 나타나 해적을 퇴치,바다를 평정하고,교역로를 보호해주길 바랐다. 한편 당에는 해적들에게 잡혀온 신라인들이 노예로 팔려와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당은 법으로 이를 금할 정도였다.장보고는 신라에 노예약탈을 방지하겠다는 명목을 내세웠다.정부는 자국민을 보호할 능력이 없었으며,정부의 힘을 약화시키는 서해와 남해에서 발호하는 해상세력들을 통제하는 일이 시급했다.또 교역상의 이익을 국가가 환수하는 한편 보다 국제화되고,정치적인발언권을 강화하기 위해 자국의 해상세력을 키워야만 했다. 이렇게 다이나믹한 국제환경과 신라내부의 필요에 의하여 장보고는 828년에 귀국,‘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라는 직책으로 해양과 관련한 전권을 부여받으면서 동아지중해의 ‘해상왕’(The Trade Prince of the Maritime Commercial Empire.라이샤워 설)이 되어갔다. 그는 해적을 퇴치하여 바다를 안녕시켰다.황해 연안에 퍼져 있던 재당 신라인들을 체계적으로 조직,거주지역,물품생산,교역과 해상운송 등을 효율적으로 운영했으며,법화원(法華園)같은 종교시설을 마련,정신적 유대관계를 강화시켰다.특히 본거지를 군항이며,자유무역항(金成勳설)으로 만든 청해진에 두어 재당신라인과 본국의 신라인을 동시에 관리하고 조정했다.제조업,상업,운송업,삼각 중계무역,보세가공업,문화교류,이데올로기 전달 등을 ‘해양’이라는 시스템속에서 운영하였다. 장보고는 ‘대당매물사(大唐賣物使)’를 교관선이라는 무역선에 실어 파견하였으며,구(毬:페르시아산 담요) 자단(紫檀:자바 등의 향목) 향(香:수마트라산 향료)등 고가품을 수입해 신라귀족들에게 팔았다.또 일본을 방문,현재의 후쿠오카에 지점을 설치하고 ‘회역사(廻易使)’란 무역선을 보내 사무역(私貿易)은 물론 공무역까지도 시도하였다.이 때문에 엄청난 무역 역조현상이 일어나 조정에서는 문제가 생기기도 하였다. 이렇게 장보고는 무력과 해양력을 바탕으로 상권을 장악하면서 신라인의 저력을 동아지중해에 실현시켰다.그는 오늘의 의미로 볼 때 좁은 신라땅을 극복하고 해양을 매개로 NET(자연스러운 영토.Natural Economic Territory)로만들었다.그는 또한 군산상(軍産商)복합체를 실현시켰으며 가문이나 혈통,학문적인 배경없이 탐험정신 하나로 해외로 진출,사업에 성공한 벤처 기업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신질서를 두려워한 신라의 보수적 중앙귀족과 장보고선단의 해상권 장악을 억제하려는 세력들에 의하여 암살되었다.장보고의 깨진 꿈과 함께 우리는 동아지중해의 주인자리를 앗겨버렸다.장보고는 바다를 향해 진출하려는 현재의 우리에게 ‘중핵관리 역할’이라는 희망과 지도자의 한계에서비롯된 좌절을 함께 보여준 인물이다. 尹明喆 동국대 겸임교수
  • 진해시민 은근한 문학사랑

    사람들의 문학을 보는 눈이 전같지 않다는 한탄이 적지않다.한때는 생활의일부였고,가까운 과거까지도 눈에 보였던 문학의 기능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짓기도 한다.그럼에도 해마다 9월 김달진문학제가 열리는 진해에서는 아직도 절망보다는 가능성을 조금 더 발견하게 된다고들 한다. 올해도 그랬다.진해에서 태어나,진해를 사랑한 시인 월하(月下) 김달진(金達鎭·1907∼1989)을 기리는 문학축제가 열린 지난 11∼12일,군항으로 잘 알려진 남해의 작은 도시는 더함도 덜함도 없는 ‘문학도시’였다. 그 이틀 동안 진해는 곳곳에 걸린 플래카드가 만들어내는 특유의 분위기가아니더라도 조금은 들떠 있었다.“(문학제가 열리는)시민회관에 한번은 가봐야 될낀데…”라는 택시운전사의 독백은 그런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었다. 행사를 준비한 경남시사랑문화인협의회도 그렇게 보통사람들의 참여에 신경을 썼던 것 같다.모임을 이끈 박태일 시인은 “문학제가 문인들만의 잔치가되지않도록 하겠다”는 생각을 준비과정에서 끊임없이 되새겼다고 했다. 청소년들을 위해서는 ‘진해사랑 시낭송 대회’를 열었다.‘월하전국백일장’도 일반인들에게도 문호를 넓혔다.특히 문학제의 소외계층이 되기 쉬운 노·장년들은 ‘옛 생활사 구연대회’로 참여를 유도했다.그 결과 청소년들 사이에는 시낭송대회와 백일장이 관심사이자 행복한 스트레스였고,주민들 사이에도 “그 얘기 한번 나가서 해보지…”라는 것이 인삿말이었다고 한다. 또 ‘한국 근대 희귀소설 전시회’를 열면서 진해시의 골목골목까지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는 사진도 함께 전시해 문학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도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배려했다. 문학제의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무엇보다 참석자들의 ‘무게’가 많이 작용했던 것 같다.원로시인인 김종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노구에도 백일장 심사를 자청하여 수백편의 시를 읽고,평가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고,시낭송대회도 중견시인 이성선과 문학평론가 김종회가 맡아 권위를 더했다. ‘현대시의 사회적 효용’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는 시인 박희진·황동규·박종해·김명인과 문학평론가김윤식·김종주·권택영·하응백·이지엽이대거 나섰다.지역의 젊은이들로서는 일부러라도 한번 찾아볼만한 인물들의들을 만한 얘기가 펼쳐졌던 셈이고,실제로 시민회관 강당은 딱딱한 심포지엄으로는 드물게 빈자리가 별로 없었다. 진해를 문학도시로 가꾸는 데는 지방자치단체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 처럼보였다.진해시는 문학제에 상당한 비용을 부담하지만,‘지원하되 간섭하지않는다’는 쉽지않은 원칙을 잘 지켰다고 한다.심포지엄에 참석한 김병로 시장은 환영사를 하라는 사회자의 주문에 “문학행사에 내가 나서서 되겠느냐”고 사양하는‘정치인 답지않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인구 13만명의 중소도시 진해는 문학제가 열리는 동안 다른 도시와는 무언가 조금씩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한 시인은 그것을 “진해에서는 아직문학이 제구실을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진해 서동철기자 dcsuh@
  • 日, 대형보급함 첫 도입

    일본 정부는 자국 및 주변국 유사시에 미군에 대한 해상보급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1만3,600t급 대형 보급함을 도입키로 방침을 굳혔다고 산케이(産經)가 15일 보도했다.일본이 1만t을 넘는 군함을 도입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해상자위대가 보유하고 있는 최대 군함은 수송함 ‘오오스미’(8,900t)이며 보급함으로는 ‘하마나’(8,150t) 등 4척을 요코스카(橫須),사보(佐世保) 군항 등에 배치하고 있다. 방위청은 2001년부터 시작되는 중기방위력정비계획에서 함정의 대형화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이에 앞서 방위청은 공중급유기 4대를 조기도입,2003년부터 배치할 뜻을 시사한 바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중국-타이완 전투기 타이완 해협서 대치

    [홍콩 연합] 중국과 타이완(臺灣)전투기들이 타이완 해협 중간선에서 대치상태에 있으며,양안간 전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홍콩 언론들이 4일보도했다. 일간 명보(明報)와 성도(星島)일보는 중국의 수호이-27과 지앤(殲:섬멸)-82M,지앤-7E가 타이완 해협 상공을 선회 비행하는 가운데 타이완도 징궈(經國)호와 F-16,후안잉(幻影:미라주)-2000기 등을 동원해 맞서는 등 타이완 해협의 긴장이 크게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계 신문 문회보(文匯報)는 중국사회과학원 타이완연구소의 왕젠민(王建民)부연구원의 말을 인용,양안 형세가 평화적 방법에 의한 타이완 문제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달을 경우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쉬스취앤(徐世銓) 소장도 리덩후이(李登輝) 타이완 총통의 ‘양국론’ 발언 이후 미국이 타이완에 대한 무기판매를 강행,분열 세력들을 부추기는 등 양안관계를 악화시켰다고 비난한 뒤,독립 추진이나 외세 개입이 있을 경우 국가주권 수호를 위해 무력 사용등 모든 수단을 강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성도일보는 베이징군구(軍區) 제24군 소속인 70기계화부대와 제27군 지대공 미사일부대가 저장성(浙江省) 취저우(衢州)와 푸젠성(福建省) 다티엔(大田)에,또 지난(濟南)군구 제20군 소속인 59사단의 2개 부대도 푸젠성 리엔장(連江)에 배치됐으며 후베이(湖北) 주둔군인 제15,제45공수부대도 이동중이라고 보도했다. 아울러 해군 북해함대 소속 232,342,351,357형 등 033급 잠수함 4척과 107,109형 등 051형 미사일 구축함 2척이 저장진(鎭)의 해군항과 푸젠의 링더(寧德)군항에 각각 도착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중국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리덩후이(李登輝)타이완 총통은 3일 중국과타이완의 재통일 가능성에 대해 거듭 의문을 표시하면서 “중국이 타이완을위협하고 양안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편 제임스 루빈 미국무부 대변인은 3일 “중국과 타이완 양측이 지금처럼서로 군용기들을 자주 출격시키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美항모 東海 전진배치 검토

    [도쿄 연합] 미국과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미 항공모함이 정박할 민간항으로 동해 연안의 후쿠이(福井)현 쓰루가(敦賀)항을 검토하고 있다고 아사히(朝日)가 10일 보도했다. 양국은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이 마련됨에 따라 미군 작전에 수반되는 미 함정의 연료,물자,보급,수리 등에 적합한 항구를 결정하는 문제를 놓고 실무협의를 진행중이다. 쓰루가항의 최고 수심은 12m로 항모 입항에는 충분치 않지만 후쿠이현이 2005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수심 14m의 접안시설 건설이 앞당겨질경우 조기 입항도 가능하다. 미 항공모함이 입항했던 일본의 민간항구는 홋카이도(北海道)의 오타루(小樽)항뿐으로 도쿄 인근 요코스카(橫須賀) 군항에는 미 항모가 수시로 기항하고있다.
  • 北과 교전 해군고속정 공개

    위풍당당한 귀항이었다. 18일 인천의 해군 2함대 군항부두에서 공개된 경비정 325호는 지난 15일 북한 함정과의 교전이 격렬했음을 여실히 증명해 주었다. 지난 16일 입항해 부두에서 수리중인 이 함정은 선미 우측이 포탄에 맞아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조타실 역시 심하게 파손돼 있었다. 인적피해도 이번 작전에 동원된 13척 가운데 가장 많아 9명이나 중경상을입었다. 325호 부정장 홍경식(洪景植·28)중위는 “우리 함정이 북한 함정의 남하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45도 각도로 충돌했으며 이후 양측이 10∼20m 간격을 두고 교전을 벌였다”며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충돌한 지 20초 후에 북한 경비정 PC­381호의 사병들이 일제히 탄창을개인화기에 집어넣더니 사격을 시작했다”고 전한 홍 중위는 “전투에 임한우리 전우들이 하나같이 불퇴전의 용기를 보였다”고 말했다.북측의 기습사격으로 함정 지휘소에서 지휘하던 안지영(安志榮)대위가 목에 총탄을 맞고쓰러지자 갑판에 있던 우리측 사병 11명이 일제히 개인화기로 응사해 불과수분만에 완전히 기선을 제압했다고 그는 숨막히던 당시의 상황을 담담히회상했다. “우리측의 지체없는 대응에 놀란 북한측이 함포사격을 시작,뱃머리가 부서지고 조타실에 파편이 날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적의 함포 공격에 맞서 우리도 즉각 선두(船頭)의 40㎜ 포와 함정의 중앙과 선미에 있던 20㎜ 발칸포로 맞서 집중 포격을 가했습니다”.이렇게 5분쯤교전을 하고 나니 북한 함정이 화염에 휩싸인 채 침몰하기 시작했다고 홍중위는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 日 군사대국 재무장하나-새 美·日 방위협력지침 해부

    일본 뿐아니라 한반도 등 동북아 질서에 큰 변화를 가져올 미일방위 협력지침(가이드라인)이 이달 일본 국회에서 확정된다.이 지침으로 일본 자위대는일본을 벗어나 해외를 종횡무진 누빌 수 있는 길을 열었다.‘일본군’의 재탄생으로까지 보는 시각이 대두될 만큼 일본의 군사적 역할이나 영향력을 ‘자연스럽게’ 키울 미일방위 협력지침을 해부해본다.[편집자주] 가이드라인으로 상징되는 새 미일안보체제가 한반도에 미칠 파장은 적지 않다.전문가들 견해가 엇갈리는 가운데서도 대체로 북한의 전쟁도발 억지력은높아졌다는 데는 일치하고 있다. 유사시 미군에 비행기지나 군항(軍港)을 제공하는 수준이던 일본은 당당히후방 지원을 담당하는 병참기지 역할 및 준전투행위를 수행하게 된다. 전투는 한미연합전력이 치르고 군수보급은 일본 자위대가 맡는 이른바 한반도 ‘3각 안보체제’가 확립됐다고 할 수 있다. 전쟁 억지력은 높아졌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긴 안목에서 바라볼 때 우리에겐 긍정적이지 않은 면도 있다.가이드라인의 발효는 세계 2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일본에 미국이 군사대국화의 길을 갈 수 있는 ‘통행증’을 부여한형국이 됐다. 일본 헌법을 개정해 교전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소리가 집권 자민당 총재 경선후보로부터 공공연히 제기되는 등 벌써부터 일본내는 심상치 않은 조짐을보인다. 이같은 일본의 군사적 역할 및 영향력 증대는 중국과 러시아의 견제를 동반하게 되고 곧 동북아에서의 군비증강이 현실화할 수 있음을 뜻한다.군비증강은 한반도 주변의 긴장,대립의 고조로 이어진다. 중국 외교당국은 “새로운 분란을 야기하고 지역안보를 위협할 것”이라고경고하고 나섰다.북한도 일본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를 구실로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군사노선을 고집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미일동맹과 이에 맞서는 중국 러시아의 동반자 관계,일본 러시아를 견제하는 미중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등 복잡한 동북아 질서는 가이드라인 이후 훨씬 미묘하게 얽히면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주변 4강의 힘의 역학관계는 21세기 통일을 꿈꾸는 한반도에 ‘현상고착’이라는어쩔 수 없는 선택을 계속 강요할 공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한국으로선 당장 전쟁위협은 줄어들었지만 오랜 대일(對日) 불신이나통일여건을 따져볼 때 좋은 환경이 조성됐다고는 할 수 없는 모순적 상황에놓이게 된 것이다. 앞으로 한국은 새 미일안보체제의 투명성을 끊임없이 미일에 촉구해나가면서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관련,한일간 신뢰를 다층적으로 쌓아가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한반도 유사시 후방에 전개될 자위대와 한국군이 어떻게 협력하고 자위대의 활동을 제한할 지도 주요한 과제가 됐다. 황성기기자 marry01@
  • 閣議 ‘국민인권위’ 설치 인권법 제정안 의결

    정부는 30일 金大中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열어 신문·방송등 ‘매체 관리’ 행정을 국정홍보처로 이관하지 않고 문화관광부가 계속 관장토록 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국정홍보처는 국정에 대한 국내외 홍보,정부내 홍보 조정,국정에 대한 여론수렴,정부발표에 관한 사무 등을 관장하게 된다. 국무회의는 또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인권침해 행위및 차별행위를 조사해 구제하는 ‘국민인권위원회’ 설치를 규정하는 인권법제정안을 의결했다. 국무회의는 이와 함께 매년 말 각 부처가 남는 예산을 마구 집행하는 폐해를 막기 위해 경상비의 5%는 다음해로 넘겨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예산회계법시행령개정안도 의결했다. 국무회의는 아울러 유아교육진흥법시행령도 고쳐 생활보호대상자 및 월 소득액이 일정 수준 이하인 가구의 자녀에 대해서는 유아원의 수업료 및 입학금을 감면하도록 했다. 국무회의는 이와 함께 육군항공사령부령을 개정,육군항공사령부를 육군항공작전사령부로 개편해 육군의 항공부대를 통합하고 지휘체계를 일원화하도록했다. 국무회의는 이밖에 거창사건 관련자 명예회복사업을 지원하기 이해 30억원의 예산을 지출하기로 했다.
  • [국무회의]’국민 공감얻게 국민연금 보완후 실시를’

    30일 청와대 국무회의는 추경,정부조직법,인권법 등을 주요 안건이 많아 2시간20여분이 걸렸다. 안건처리가 끝난뒤 金大中대통령은 金成勳농림부장관에게 농·축협 통합 추진상황을 물었다.金장관은 “축협이 통합에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며 “농·축·수·임협 등 4개의 협동조합중앙회가 우리나라에만 있고,특히 중앙회조직이 비대해 농민을 위해 반드시 통합이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金대통령은 이어 인권법 통과에 따른 의미를 설명했다.“우리 인권법은 유엔의 권고와 세계 각국의 실태를 참고한 것으로 손색이 없다”면서 “제정의 목적은 인권선진국 대열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또 실업대책,추경예산안의 조속한 국회 처리와 국민공감대 형성을 위한 국민연금의 보완후 실시를 역설했다. 끝으로 金鍾泌국무총리는 金농림부장관에게 ‘4월5일 식목일’의 계절적 타당성을 물었다.이에 金장관은 “통일후 남북 기후조건을 고려하면 4월5일이적기”라고 답했다. 이에 앞서 안건처리 과정에서 인권위원회 여성참여 규정 문구를 놓고 국무위원간 긴 논란이 벌어졌다.崔在旭환경장관 등이 “인권위 위원 임명조항에1인 이상의 여성이 포함되도록 규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그러나 姜基遠여성특위위원장 등이 반대의견을 냈고 결국 ‘각 1인 이상’이란표현만 빼기로 했다. 이날 처리된 안건은 다음과 같다. ■법률안?인권법안 ?정부조직법개정안■대통령령안?예산회계법시행령개정안 ?아시아·유럽정상회의 준비위원회 규정개정안?육군항공사령부령개정안 ?전투경찰대설치법시행령개정안 ?유아교육진흥법시행령개정안 ?한국종합기술금융주식회사법시행령폐지안 ?과학관육성법시행령개정안 ?농어촌정비법시행령개정안 ?품질경영촉진법시행령개정안 ?품질경영촉진법시행령개정안 ?산업디자인진흥법시행령개정안 ?혈액관리법시행령개정안 ?한강수계관리위원회규정안 ?공인노무사법시행령개정안 ?도시공원법시행령개정안 ?유료도로법시행령개정안 ?유료도로관리권등록령개정안 ?철도소운송사업법시행령개정안 ?항만법시행령개정안■일반안건?1999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1999년도 일반회계 예비비지출안(거창사건 관련자 명예회복 사업지원금) ?루마니아와의 관광분야에서의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안 ?카타르 정부와의 투자 증진 및 보호 협정안 ?2000년도 예산안편성지침안■보고안건?공공기관의 중소기업 기술개발 지원현황 ?1999년도 정부입법계획 ?제주도 국제자유도시 추진방안
  • 진해는 온통 벚꽃…새달5일까지 군항제

    국내 최대 벚꽃축제인 제37회 ‘진해군항제’가 26일 오후 추모제와 전야제를 시작으로 다음달 5일까지 진해시에서 다채롭게 펼쳐진다. 李忠武公호국정신 선양회(이사장 崔有慶)가 주관하고 진해시가 후원한다.벚꽃이 만개한 시가지 전역에서 문화·예술 및 체육행사와 전시 및 축하행사,관람행사,외곽행사 등 4개 부문으로 나뉘어 개최된다. 추모제는 오후 6시30분 충무공 동상 앞에서 해군 군악대가 취주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봉행되고,전야제에서는 화려한 불꽃 쇼와 축하공연 등으로 화려한 축제의 서막을 알린다. 올해는 지난해 중단됐던 벚꽃여왕 선발대회가 다시 개최되며,전북 남원의국립민속국악원 초청공연과 세계문화풍물전이 열리는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 국정개혁 보고-국방부·통일부

    ▒위기관리 및 대비태세 전면전에 대비,대북 조기경보 및 감시태세를 강화하고 미군 신속억제전력과 증원전력의 적시전개를 보장하는 등 한·미연합방위 태세를 확고히 구축한다.주한미군에 화학대대를 증편하는 등 화생전 대비전력을 증강하고 아파치헬기를 교체하는 등 육군항공전력을 개선한다.북한의침투 및 국지도발에 대비, 한·미연합 정보공조체제를 유지한다.후방지역 침투를 방비하기 위해 대잠(對潛)전대를 창설,운영하는 등 해안경계를 강화한다.대량살상무기 위협에 대비해 오는 6월 화생방방호사령부를 창설하고 미사일 요격용 방어전력(SAM-X)을 확보한다.다목적방독면을 개발,민방위대원에게 100% 보급하고 접적지역과 수도권주민에게 구매토록 권장하는 등 유사시 민·관 대비태세를 공고히 한다. ▒국방개혁 추진과제 미래전에 대비,2003년까지 온라인 정보통신망 및 컴퓨터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북한 등 외부세력의 정보침투 방어를 전담할 해커대응팀을 오는 12월까지 창설,운영한다.장군의 계급정년을 2001년까지 1년 이내에서 단축하고임기제 진급제도 및 명예진급제도를 확대시행해 2003년까지 육군 소장 12명 등 초과인력을 완전히 해소한다.다음달 대북정보수집부대와 정보사령부를 정보본부로 통합하고 2000년 이후 지상작전사령부와 후방작전사령부를 창설하는 대신 후방군단을 해체한다.다음달 중순까지국방개혁추진위원회 내에 군사혁신기획단을 설치,미래전에 대비한 한국적 군사혁신 방책을 수립한다.병영생활의 명랑화,합리적 부대관리로 신바람나는한국적 병영문화를 창출하고 기계 금속 전기 전자 통신 등 95개 분야 특기교육을 실시하는 등 제2건국운동과 연계,병영을 건전한 민주시민 교육의 장으로 발전시킨다. - 통일부 ▒대북 경협 활성화 여건 조성 북한항만의 설비지원을 통해 물류체계 개선을 추진한다.민간경협 방식으로 속초∼나진∼훈춘간 해륙연계 교통로 개설을추진한다.특히 1만t급 카페리의 주 2∼3회 운항을 추진한다.북한 서해안 시범공단(100만평) 개발을 위한 기본계획을 북측과 협의한다.국수공장·공동목장 운영 등 협력사업 방식의 대북 지원 활성화를 유도한다. ▒이산가족문제 해결추진 대북 지원의 지속적 추진을 통한 적십자 협의채널유지 및 적십자회담 개최 분위기를 조성한다.적십자회담으로 이산가족문제의 최우선적 해결을 추진한다.이산가족 면회소 설치를 추진하되 생사확인·서신교환 실현에 역점을 둔다.국군포로·납북자와 출소 남파간첩 등의 송환문제는 포괄적 이산가족 문제 해결차원에서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 ▒하반기 남북대화 돌파구 마련 실무차원의 접촉창구 마련을 위해 남북관계현안문제의 타개점을 모색한다.공개·비공개 등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추진한다.‘남북 고위급 정치회담’을 남북대화체제 정상화 조치의 일환으로 운영한다.남북당국간 대화창구를 특사교환,장·차관급 상설대화기구로 발전을유도한다. ▒농·어업 협력사업 활성화 북한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민간차원의 농업협력을 지속 추진한다.국제옥수수재단의 북한내 시험재배지역을 지난해 83개지역에서 1,000개 지역으로 확대한다.한국담배인삼공사의 잎담배 시범포(3㏊) 운영 및 1,000t 계약재배를 추진한다.감척(減隻)어선 등 국내유휴장비와북한의 어장·인력제공을 활용한 어업협력사업을 추진한다.어획물은 가공수출 또는 국내반입하는 협력방식을 추진한다.북한이 확보한 해외어장에서 공동어로를 추진한다.
  • KAL機 착륙사고 포항서…76명 부상

    15일 낮 12시쯤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포항공항에서 서울발 대한항공 1533편(기장 李永權·44) MD83 여객기가 착륙 도중 활주로를 이탈,동체가 부서진 상태로 잔디밭에 멈춰서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로 승객 전미자씨(42·여·포항시 대잠동)와 승무원 金윤숙씨(25·여)등 7명이 중상을 입는 등 76명이 다쳤다.가벼운 상처를 입은 승객들은 대부분 귀가했지만 21명은 포항시내 성모병원 등 5개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고있다. 사고 여객기는 활주로에 내린 뒤 속도를 줄이지 못한채 계속 달리다 활주로를 100여m 가량 벗어나 2m 높이의 방호벽을 뚫고 30여m 전방 잔디밭에 멈췄다.여객기는 앞부분과 날개가 크게 파손됐으며 중간 부분이 동강나듯 꺾였다. 포항공항 및 항공사측은 사고후 20분이 지나서야 구급차를 보내 부상 승객들이 공항에서 대기하는 등 불편을 겪었다. 그러나 여승무원과 긴급 출동한 해군항공단 대원들은 승객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고 제2의 폭발사고 등에 대비하는 등 민첩하게 대처했다. 부상한 승객 朴성준씨(35·회사원·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는 “‘시계가 좋지 않아 회항한다’는 기장의 안내 방송이 있고 15분쯤 뒤 다시 착륙을 시도했다”면서 “속도가 줄지 않은채 미끄러지다 창문 밖으로 바리케이드가 보인 뒤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사고 여객기는 승객 150명과 승무원 6명 등 156명을 태우고 이날 오전 10시45분쯤 서울을 출발했으며 1차 착륙에 실패한 뒤 2차 착륙을 시도하다 사고를 냈다.여객기는 활주로의 계기착륙장치(LOC) 안테나 14개와 연쇄 충돌하며활주로를 벗어났다. 사고원인에 대해 대한항공측은 “비 때문에 브레이크가 듣지 않아 미끄러졌다”면서 “사고 당시 순간 최대풍속은 32노트로 MD83 기종이 착륙하기에는무리한 여건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고 여객기를 관제한 해군 제6항공전단측은 착륙 직전 활주로 상태도 양호했고 시계도 8㎞로 여객기가 착륙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포항l李東九 趙炫奭 李相錄 yidonggu@
  • 金 대통령 국제관함식 해상 사열 받아/우리 대통령으론 처음

    ◎“초전 필승” 안보 역설/美 등 12개국 61척 참가 金大中 대통령은 13일 정부수립 및 건군(建軍) 50주년을 맞아 진해만에서 실시된 해군 국제관함식에 참석했다.이번 관함식에는 한국형 구축함인 광개토대왕함과 잠수함 등 40여척과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인도 등 11개국 21척의 함정이 참가했다. 관함식이란 국가원수가 자국의 군함을 한곳에 집결시켜 검열하는 의식으로 우리나라 대통령이 외국 함정까지 참여한 가운데 해상 사열을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날 행사는 진해군항 2부두에서 예포 21발이 발사되고 군악대의 연주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金대통령의 해군의장대 사열로 시작됐다. 각계 인사 8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의장행사에서는 金대통령이 탄 광개토왕함이 함정 앞을 지나갈때 각국의 승조원들은 자국 특유의 경례로 인사했다. 金대통령은 함상 오찬 자리에서 “군통수권자로서 국토방위에 한치의 허술함도 없이 국가안보를 확립하겠으며,만일의 경우 초전에 승리하는 태세를 갖추겠다”고 강조했다.○…관함식에서 단연 눈길을 끈 것은 미 항공모함 키티호크(8만1,000t급)와 일본의 최신예 미사일구축함 이지스함(7,250t급)의 위용. 행사 하이라이트는 한국 해군의 해상 사열과 화력 시범.한국 함정 40여척과 20여대의 항공기는 진해에서 부산 태종대 근해까지 운항한 뒤 1만여명의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함 및 대잠사격,고속정과 헬기 기동시범 등 모든 해상훈련을 선보였다.
  • 제주서 항공기 사고훈련/공포의 순간 번개구조 60분

    ◎“랜딩기어 고장… 활주로 벗어났다”/소방차 9대 출동… 10분여만에 진화/200명 비상탈출… 중상자 헬기 후송 승객 200여명을 태우고 서울을 출발한 가칭 태평양항공 소속 국내선 A300기가 제주공항에 착륙하던중 우측 랜딩기어 고장으로 활주로를 이탈하면서 화재가 발생했다. 관제탑으로부터 소방차 출동지시가 떨어지자 공항공단 소방차 6대와 해군항공대 소방차 1대가 사고현장으로 즉시 출동했다. 제주소방서 소방차 2대도 화재진압에 합류했다. 실제상황이 아니다. 18일 하오 3시부터 4시까지 한시간 동안 제주공항 계류장에서 실시된 항공기 사고처리 훈련 장면이다. 훈련은 가상 사고기에 연막탄이 터뜨려지면서 시작됐다. 붉은 연기에 휩싸였던 사고 항공기는 9대의 소방차가 분당 4만5,000ℓ의 물을 일제히 뿜어대자 10여분만에 제 모습을 드러냈다. 탑승객들은 승무원 지시에 따라 비상 탈출구를 통해 긴급히 빠져나왔고 기내에 남아있던 20여명의 사상자들은 인명 구조원들에 의해 응급처치장까지 옮겨졌다. 중상자 2명은 해경 구조헬기에 의해 지정병원으로 후송됐다. 사망자는 임시 영현안치소에 안치돼 가족들에게 통보됐다. 훈련에는 한국공항공단 제주지사,공항경찰대,제주해경,제주소방서,해군항공대,한국병원,제주시보건소,대한항공 등 관련기관이 참여했다.
  • 創軍(대한민국 50년:14)

    ◎해방 직후 좌우익 군사단체 60여개 난립/“치욕 되풀이 말자” 강력한 군사력 국민적 열망/미군정 견제속 육군·해군·해병대·공군 순 창설 대한민국 국군은,1948년 9월5일 남조선경비대가 육군으로 개편됨으로써 정식 출범했다.정부 수립 21일만이었다.해군도 곧이어 발족했고 해를 넘겨 49년에는 4월15일에 해병대가,10월1일 공군이 창설돼 초창기 4군체계를 확립했다. 나라를 세운 뒤 곧바로 창군(創軍)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그러나 대한민국 국군이 탄생하기까지에는 간단치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해방이 되자 우후죽순처럼 난립한 것은 정치단체만이 아니었다.각종 사설·유사 군사단체가 곳곳에서 깃발을 올렸다.이에는 까닭이 있다. 먼저 35년만에 국권을 되찾은 한민족에게는 ‘다시는 치욕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다짐과 함께 강력한 군사조직을 갖추어야 한다는 열망이 불타올랐다.아울러 해방정국에는 독립군 출신을 비롯해 일본군·만군·학도병·공산군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군을 경험한 인적 자원이 풍부했다.좌우 이념대립에따라 군을 선점하려는 양쪽의 경쟁이 작용한 것도 군사조직 난립에 큰영향을 미쳤다. ○사설 군사단체 끼리 충돌 해방 이틀 뒤인 45년 8월17일 서울 교동국민학교에서 귀환장병대(후에 국군준비대로 개편)가 발족한 것을 필두로 그달 말에는 일본 육사출신들이 주축이 된 조선임시군사위원회(위원장 李應俊)가,9월1일에는 좌익 성향의 학병동맹(위원장 王益權)이 잇따라 조직됐다.이밖에 학병단·학도대·광복군국내지대·보안대·한국혁명군·장병대·장총단·조선국군학교·대한민국 군사후원회·육해공군 출신 동지회·한국장교단 등 수많은 군사단체가 등장해 나름대로 활동을 벌였다. 45년 11월 현재 미군정청에 등록한 군사단체는 30곳을 넘어섰으며 비등록조직을 합하면 60여 단체가 존재했다. 이같은 군사조직의 난립에 당황한 미군정은 한국군 창설을 가시화하는 작업에 바로 착수했다.45년 11월13일 군정법령 제28호를 공포해 창군 기본계획 수립을 맡는 국방사령부를 설치한 데 이어 12월5일에는 군간부 양성을 목표로 군사영어학교를 세웠다. 그럼에도 군사단체들의 발호는 그치지 않았고 무력충돌도 적잖게 발생했다.46년 1월18일 학생동맹은 서울 도심에서 반탁전국학생총연맹 시위대를 습격했다.이에 따라 경기도경은 張澤相 부장의 지휘아래 다음날 새벽 학생동맹 본부를 기습해 해체시켰다.이날 金斗漢이 이끄는 우익단체 대한민청은 좌파그룹인 조선국군준비대(총사령관 李赫基)에 총공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미군정은 결국 46년 1월20일 사설군사단체해체령을 내려 강력한 단속에 들어갔고 그에 따라 각종 군사조직은 점차 퇴색했다. 한편 창군작업은 남조선국방경비대와 조선해안경비대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진행됐다.국방경비대는 병력 600명으로 제1연대 제1대대를 편성,46년 1월15일 서울 태릉에서 입대식을 갖고 출범했다.2월7일에는 국방경비대 사령부를 구성했으며 그해 4월까지 병력을 8연대로 늘렸다. 국방경비대 사령부는 국방부를 거쳐 통위부로 이름을 바꾸었고 남조선국방경비대도 국방경비대­남조선경비대 순서로 개칭하면서 대한민국 육군의 모태로 자리잡았다.정부 수립 직전 남조선경비대의 규모는 5여단,15연대에 장교 1천403명,사병 4만9천87명이었다. 육군에 비해 해군 창설작업은 훨씬 순조로웠다.해방된지 며칠 지나지 않은 8월21일 孫元一을 중심으로 해사대가 조직됐다.孫元一은 중국 남경 중앙대농학원 항해과를 나와 외항선에서 선원생활을 한 인물로,뒤에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제5대 국방장관(53∼56년)을 역임한다. 해사대는 그해 11월11일 해방병단(海防兵團)으로 확대되면서 100t급 2척과 40t급 1척 등을 갖고 미약하나마 해안경비에 나섰다.46년 6월15일에 군정법령 제86호에 따라 조선해안경비대로 개편된 뒤 전국 주요항구에 기지를 건설하고 총사령부를 서울에 두는 등 위치를 확고히 했다. 해병대는,여순반란사건을 겪으면서 그필요성이 인정돼 49년 4월15일 해군에서 차출한 병력 400여명으로 경남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출범했다. ○공군 연락기 20대로 창설 공군은 가장 늦은 49년 10월1일 조직됐다.해방직후 국내외 항공계 인사들이 모여 한국항공건설협회로 출발했으며 48년 5월15일 육군항공부대로 탈바꿈했다.육군 예하 항공군으로서 기틀을 닦은 공군은 창설 당시 1천600여 병력과 연락기 20대를 보유했다. 창군을 전후한 시기에 군은 숱한 시련을 겪었다.근본적으로 한미간에 시각차가 있었다.정부수립에 앞장선 정치 지도자들은 내심 북진통일을 바래 강력한 군대를 원한 반면 전쟁을 원치 않은 미국은 일정수준 이상의 군사력 확보를 견제했다.군맥(軍脈)에 따른 내부갈등이 있었고,‘여순반란사건’‘대구 6연대 사건’ 등 군에 침투한 좌익세력에서 비롯된 상쟁도 여러차례 발생했다. 그러나 가장 큰 위기는 창군 2년이 채 안돼 발발한 6·25였다.소련의 강력한 지원아래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춘 북한 인민군의 공격에 국군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다.그럼에도 이 위기를 극복하면서 대한민국 국군은 짧은 세월에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게 됐다. ◎“美는 李承晩의 北侵을 경계했다”/초대 주한대사 무초의 진술서 첫 확인 대한민국이 처음 군을 조직할 때 한국과 미국 정부사이에는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한국은 당연하게 강력한 군대를 갖기를 원한반면 미국은 상당히 견제하는 태도를 보였다.이는 ‘한국이 강한 군대를 보유하면 38선을 넘어 북진하는 통일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미국의 이같은 의혹에는 당시 한국정부 고위인사들의 경솔한 언행도 크게 작용했다.李承晩 대통령이 1949년 9월30일 자신의 개인적인 정치고문인 로버트 올리버에게 보낸 편지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李承晩은 이 편지에서 “나는 지금이 북한에 있는 우리의 충성스러운 지지자들과 합세해 평양에 있는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공격하는데 가장 좋은 기회라고 강하게 느끼고 있다.우리는 金日成의 부하들을 산악지역으로 몰아내 거기에서 굶어죽게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면 두만강과 압록강을 따라 우리방위선이 강해질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6·25 발발 아홉달전쯤에 쓴 이 편지는,李承晩의 ‘남한 단독정부 극복’이라는 통일의지를 드러낸 동시에 미국이 한국군 전력강화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 근거가 있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편지는 1950년 가을 유엔에서 공산측에 의해 ‘북침의 증거’로 제시되기도 했다.당시 미 정부는 편지가 가짜라고 주장했지만 후에 올리버는 진짜임을 확인해 주었다. 李承晩의 편지가 한국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라면 미국의 판단을 보여주는 자료로 무초의 진술이 있다.대한민국 주재 첫 미국대사인 무초는 1973년 12월 트루만 대통령도서관의 기록담당자에게 재임 때 경험을 토로했다. 현재 문서로 남아 있는 이 진술에서 무초는 “한국인들이 국토를 자체방위케 하는 한편 북한 진격이라는 그들의 열망을 억제해야 했다”고 회고했다.그는 “미국은 매우 어렵고 미묘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왜냐하면 우리가 李承晩과 한국군에게 원하는 것을 주었다면 그들은 북진을 개시했을 것이고,북한도 동일하게 남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오명은 우리몫이 됐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무초 대사의 진술서는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 행락인파 전국 ‘북적’/수도권 고속도 극심한 정체/휴일

    【전국 종합】 3월의 마지막 휴일인 29일 전국 곳곳이 초여름 날씨를 보인 가운데 벚꽃길과 유명산 등 유흥지에는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이에 따라 명승지로 이어지는 주요도로와 수도권 주변 도로들은 차량들로 심한 정체현상을 빚기도 했다. 군항제가 열리고 있는 경남 진해에는 연인이나 가족 단위의 관광객 5만 여명이 몰려 벚꽃축제와 창녕 화왕산 산신대제 등에도 2만여명이 찾아왔다. 용인 에버랜드에는 5만8천여명이 몰려 튤립축제와 포크댄스 등 다채로운 행사를 즐겼으며 민속촌에도 지난주보다 두배 가까이 늘어난 7천여며의 시민이 찾았다. 강원도 국립공원 설악산과 오대산 치악산에도 1만5천여명 등산객이 찾아와 봄을 맞았다. 한편 이날 하오부터 나들이 길차량들이 서울로 한꺼번에 들어오면서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오산∼신갈구간,중부고속도로 상행선 광주∼중부 1터널구간,영동고속도로 상행선 마성∼신갈구간 등이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 진해 군항제 오늘 전야제/새달 6일까지 벚꽃놀이

    【진해=李正珪 기자】 국내 최대 벚꽃축제인 제 36회 ‘진해군항제’가 27일 추모제와 전야제를 시작으로 다음달 6일까지 진해에서 펼쳐진다. 李충무공 호국정신 선양회(이사장 崔유경)가 주관하고 진해시가 후원하는 군항제는 시가지 전역에서 문화예술·체육행사와 관람행사,전시 및 축하행사,외곽행사 등 4개 부문 27개 종목으로 나눠 개최된다.
  • 군헬기 주택가 추락/훈련비행중… 1명 사망/서울 신길동

    21일 하오 2시5분쯤 서울 영등포구 신길6동 37의 41 청소년독서실 4층건물 옥상에 훈련비행 중이던 육군항공사령부 502대대 소속500­MD헬기가 추락,부조종사 임삼영 준위(36)가 현장에서 숨지고 조종사 임승효 준위(36)가 중상을 입었다. 헬기는 옥상에 떨어지면서 화염에 휩싸였으나 건물에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았다. 사고 당시 독서실 건물 안에는 학생 20여명이 공부하고 있었으나 밖으로 무사히 대피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사고 헬기는 비행 도중 꼬리부분이 떨어져 나가면서 추락했다.꼬리 부분은 2층 단독주택의 옥상에 떨어졌다. 사고 헬기는 이날 하오 1시47분쯤 항공사령부를 출발,난지도 쪽으로 훈련비행 중이었다. 사고 순간을 목격한 손경식씨(54)는 “5백m 상공에서 헬기의 꼬리부분이 떨어져 나간 뒤 헬기가 한동안 빙글빙글 돌더니 독서실 건물 옥상으로 떨어졌다”면서 “사고 직후 쾅하는 폭발음이 들리더니 화염이 치솟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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