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군함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시험대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농번기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시민 영웅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모니터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118
  • [기획]드라마 ‘조선총잡이’로 본 대한제국軍 - ‘밀덕’ 고종과 ‘빵빵’했던 총기

    [기획]드라마 ‘조선총잡이’로 본 대한제국軍 - ‘밀덕’ 고종과 ‘빵빵’했던 총기

    배우 이준기와 남상미가 7년만에 다시 연기 호흡을 맞추며 화제가 된 KBS 수목드라마 ‘조선총잡이’가 매 회차마다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점차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마치 미국 서부개척시대에나 있을 법한 총잡이를 조선시대에 접목시킨 발상도 참신하지만, TV 드라마를 통해 20세기 초에 등장했던 미국과 유럽의 다양한 총기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마니아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불러 모으고 있는 것 같다. 이 드라마는 고종이 흥선 대원군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친정(親政)을 시작한지 3년째 되는 해인 1876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드라마 속에서 등장하는 총기나 탄약들 대부분은 20세기에 등장한 것들이어서 1회 방영 직후부터 엉터리 고증 논란을 겪고 있다. 제작진이 고증에 맞는 총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빚어진 해프닝이이겠지만, 당시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종류의 총기들이 쏟아져 들어왔던 조선 말기의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지금 제작진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도 무슨 총이 무슨 총인지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고종의 ‘밀덕(밀리터리 덕후)’ 기질이 조선에 수십 종류의 총기를 들여다 놓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좋다는 것은 다 사라!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조선군은 서양의 신식 화기에 대해 적잖은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조선군은 화승총으로 무장했는데 반해 미군은 레밍턴(Remington)사의 롤링블럭(Rolling Block) 소총을 사용했다. 화승총은 숙련된 병사조차 분당 2발 이상을 사격하기 어렵고, 유효 사거리도 100m 수준이었지만, 롤링블럭 소총은 분당 10발을 발사할 수 있고, 유효 사거리도 400m에 달했다. 전투가 될 수가 없었다. 조선군의 대패에는 무엇보다 화력의 차이가 컸다. 당시 미군은 5척의 군함을 동원해 광성보 포대에 배치된 조선군 포병의 사거리 밖에서 포격을 퍼부었는데 조선군은 이 포격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는 조선으로 하여금 근대적인 군대 창설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고, 그 결과 일본의 호리모토 레이조(堀本禮造)를 교관으로 초빙해 1881년 신식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했다. 신식군대에 대한 고종의 애착은 대단했다. 물론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정변 등 잡음도 많았지만 고종은 별기군에서 시위대와 진위대로 이어지는 신식 군대 양성을 위해 국가 재정의 40%를 쏟아 부으면서 당시 좋다는 무기는 모조리 사들였다. 별기군 창설 당시 80명의 별기군을 위해 일본에서 무라타 13식 200정을 들여오는 것을 시작으로 신미양요 당시 조선군을 학살했던 미국의 레밍턴 롤링블럭 소총,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 군사고문단이 추천한 러시아제 베르당(Verdun) 소총, 독일제 마우저(Mauser) M1871 소총, 영국제 엔필드 스나이더(Enfield Snider) 소총 등을 수천 정씩 사들이더니, 1887년부터는 삼청동에 기기창을 만들고 아예 총기를 직접 생산하는 것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신미양요 당시 포병에 당했던 설움 때문에 신식 화포 도입도 서둘렀다. 소위 암스트롱포(Armstrong Gun)로 불린 12파운드 야포는 물론 당시로서는 최신식이었던 독일제 크루프(Krupp) 75mm 속사포도 도입했다. 여기에 미국제 개틀링(Gatling) 기관총과 당시로서는 강대국들만 보유했던 최신식 기관총인 맥심(Maxim) 기관총도 도입했다. 고종은 주변 누군가에게서 그 무기가 좋다는 이야기만 들리면, 혹은 이번에는 러시아제 무기를 들여왔으니 다음에는 관계 개선 차원에서 영국제 무기를 들여와야 한다는 논리로 문어발식으로 무기 도입선을 늘려갔다. 이런 무기들을 바탕으로 1898년 시위연대가 창설되었고, 이 시위연대는 2개 보병대대와 1개 기병대대, 1개 포병대대 등을 갖춘 근대적인 보병연대로 성장했고, 1902년에는 2개 연대로 확대 개편되어 약 5,000여명의 병력과 최신 무기로 무장한 부대로 다시 태어났다. 1900년 기준으로 대한제국은 이러한 시위대 이외에도 지방에 총 6개 연대 18개 대대로 구성된 21,000명의 진위대도 운영했기 때문에 구한말 대한제국의 군사력은 결코 약한 수준이 아니었다. -장비가 좋아도 의지가 없다면... 당시 조선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26,000여명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러일전쟁이 발발할 당시 일본 육군의 총병력은 15만 명 수준이었는데, 1개 연대 병력을 상륙시킨 이후 야금야금 병력 규모를 늘려 1904년에는 10만 명의 병력을 조선에 진주시키기에 이르렀다. 만약 고종이 좀 더 기민하게 움직여 지방에 산개된 진위대 병력을 집중해 운용하면서 일본군의 상륙을 방해하고, 러시아 극동군의 군사 개입을 좀 더 적극적으로 요구하였더라면 대한제국이 그리 허망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한제국은 26,000명의 근대화된 군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본이 러일전쟁을 준비하던 1904년부터 그 어떤 군사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일본이 쓰시마 해전과 뤼순 전투에서 러시아에 대승을 거두면서 러일전쟁에서 승리할 때까지 자신의 군사력을 이용해 일본군의 배후를 칠 그 어떤 궁리도 하지 못했다. 청국과 러시아를 물리치고 한반도를 독점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른 일본은 1905년 군대로 왕궁을 포위하고 친일파를 앞세워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체결했다. 이 늑약에 따라 설치된 통감부는 1907년 고종을 폐위・독살하고 순종을 옹립했다. 친일파에 둘러싸인 순종은 왕궁 호위를 위한 1개 대대 병력의 시위대 병력만 남기고 대한제국군을 해산하라는 조칙을 내렸다. 일본은 대한제국군의 저항에 대비했다. 수도 한성에는 신식 장비로 무장한 시위대 2개 연대 약 5,000여명의 병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제13보병사단 전 병력을 서울로 불러들이고, 제12보병여단 병력을 대대급으로 나눠 평양과 대구, 대전 등 진위대 병력이 주둔하고 있던 지역에 내려 보냈다. 이들은 대한제국 장병들을 연병장에 불러 모으고 군모를 벗기고 계급장을 뗐다. 그리고 해산을 명령했지만, 서대문에 주둔하고 있던 제1시위연대 제1대대장 박승환(朴昇煥) 참령은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했으니 만 번 죽어도 무엇이 아깝겠는가”라며 해산을 거부하고 자결했다. 박 참령의 순국이 도화선이 되어 시위대원들은 무기고를 열고 무장해 일본군과 맞서 싸웠지만, 조칙이 내려지기 이전부터 탄약고를 비워놓고 시위대 주둔기지를 포위하고 있던 일본군에 의해 70여명이 전사하고 100여명이 부상당하는 등의 피해를 입고 뿔뿔이 흩어졌다. 흩어진 군인들은 의병이 되거나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에 투신했다. 최신 무기를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변변한 저항조차 하지 못했던 대한제국군! 역사에는 ‘if’가 없다지만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조선총잡이로 본 ‘밀덕’ 고종과 빵빵했던 대한제국군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조선총잡이로 본 ‘밀덕’ 고종과 빵빵했던 대한제국군

    배우 이준기와 남상미가 7년만에 다시 연기 호흡을 맞추며 화제가 된 KBS 수목드라마 ‘조선총잡이’가 매 회차마다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점차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마치 미국 서부개척시대에나 있을 법한 총잡이를 조선시대에 접목시킨 발상도 참신하지만, TV 드라마를 통해 20세기 초에 등장했던 미국과 유럽의 다양한 총기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마니아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불러 모으고 있는 것 같다. 이 드라마는 고종이 흥선 대원군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친정(親政)을 시작한지 3년째 되는 해인 1876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드라마 속에서 등장하는 총기나 탄약들 대부분은 20세기에 등장한 것들이어서 1회 방영 직후부터 엉터리 고증 논란을 겪고 있다. 제작진이 고증에 맞는 총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빚어진 해프닝이이겠지만, 당시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종류의 총기들이 쏟아져 들어왔던 조선 말기의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지금 제작진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도 무슨 총이 무슨 총인지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고종의 ‘밀덕(밀리터리 덕후)’ 기질이 조선에 수십 종류의 총기를 들여다 놓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좋다는 것은 다 사라!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조선군은 서양의 신식 화기에 대해 적잖은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조선군은 화승총으로 무장했는데 반해 미군은 레밍턴(Remington)사의 롤링블럭(Rolling Block) 소총을 사용했다. 화승총은 숙련된 병사조차 분당 2발 이상을 사격하기 어렵고, 유효 사거리도 100m 수준이었지만, 롤링블럭 소총은 분당 10발을 발사할 수 있고, 유효 사거리도 400m에 달했다. 전투가 될 수가 없었다. 조선군의 대패에는 무엇보다 화력의 차이가 컸다. 당시 미군은 5척의 군함을 동원해 광성보 포대에 배치된 조선군 포병의 사거리 밖에서 포격을 퍼부었는데 조선군은 이 포격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는 조선으로 하여금 근대적인 군대 창설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고, 그 결과 일본의 호리모토 레이조(堀本禮造)를 교관으로 초빙해 1881년 신식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했다. 신식군대에 대한 고종의 애착은 대단했다. 물론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정변 등 잡음도 많았지만 고종은 별기군에서 시위대와 진위대로 이어지는 신식 군대 양성을 위해 국가 재정의 40%를 쏟아 부으면서 당시 좋다는 무기는 모조리 사들였다. 별기군 창설 당시 80명의 별기군을 위해 일본에서 무라타 13식 200정을 들여오는 것을 시작으로 신미양요 당시 조선군을 학살했던 미국의 레밍턴 롤링블럭 소총,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 군사고문단이 추천한 러시아제 베르당(Verdun) 소총, 독일제 마우저(Mauser) M1871 소총, 영국제 엔필드 스나이더(Enfield Snider) 소총 등을 수천 정씩 사들이더니, 1887년부터는 삼청동에 기기창을 만들고 아예 총기를 직접 생산하는 것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신미양요 당시 포병에 당했던 설움 때문에 신식 화포 도입도 서둘렀다. 소위 암스트롱포(Armstrong Gun)로 불린 12파운드 야포는 물론 당시로서는 최신식이었던 독일제 크루프(Krupp) 75mm 속사포도 도입했다. 여기에 미국제 개틀링(Gatling) 기관총과 당시로서는 강대국들만 보유했던 최신식 기관총인 맥심(Maxim) 기관총도 도입했다. 고종은 주변 누군가에게서 그 무기가 좋다는 이야기만 들리면, 혹은 이번에는 러시아제 무기를 들여왔으니 다음에는 관계 개선 차원에서 영국제 무기를 들여와야 한다는 논리로 문어발식으로 무기 도입선을 늘려갔다. 이런 무기들을 바탕으로 1898년 시위연대가 창설되었고, 이 시위연대는 2개 보병대대와 1개 기병대대, 1개 포병대대 등을 갖춘 근대적인 보병연대로 성장했고, 1902년에는 2개 연대로 확대 개편되어 약 5,000여명의 병력과 최신 무기로 무장한 부대로 다시 태어났다. 1900년 기준으로 대한제국은 이러한 시위대 이외에도 지방에 총 6개 연대 18개 대대로 구성된 21,000명의 진위대도 운영했기 때문에 구한말 대한제국의 군사력은 결코 약한 수준이 아니었다. -장비가 좋아도 의지가 없다면... 당시 조선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26,000여명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러일전쟁이 발발할 당시 일본 육군의 총병력은 15만 명 수준이었는데, 1개 연대 병력을 상륙시킨 이후 야금야금 병력 규모를 늘려 1904년에는 10만 명의 병력을 조선에 진주시키기에 이르렀다. 만약 고종이 좀 더 기민하게 움직여 지방에 산개된 진위대 병력을 집중해 운용하면서 일본군의 상륙을 방해하고, 러시아 극동군의 군사 개입을 좀 더 적극적으로 요구하였더라면 대한제국이 그리 허망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한제국은 26,000명의 근대화된 군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본이 러일전쟁을 준비하던 1904년부터 그 어떤 군사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일본이 쓰시마 해전과 뤼순 전투에서 러시아에 대승을 거두면서 러일전쟁에서 승리할 때까지 자신의 군사력을 이용해 일본군의 배후를 칠 그 어떤 궁리도 하지 못했다. 청국과 러시아를 물리치고 한반도를 독점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른 일본은 1905년 군대로 왕궁을 포위하고 친일파를 앞세워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체결했다. 이 늑약에 따라 설치된 통감부는 1907년 고종을 폐위・독살하고 순종을 옹립했다. 친일파에 둘러싸인 순종은 왕궁 호위를 위한 1개 대대 병력의 시위대 병력만 남기고 대한제국군을 해산하라는 조칙을 내렸다. 일본은 대한제국군의 저항에 대비했다. 수도 한성에는 신식 장비로 무장한 시위대 2개 연대 약 5,000여명의 병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제13보병사단 전 병력을 서울로 불러들이고, 제12보병여단 병력을 대대급으로 나눠 평양과 대구, 대전 등 진위대 병력이 주둔하고 있던 지역에 내려 보냈다. 이들은 대한제국 장병들을 연병장에 불러 모으고 군모를 벗기고 계급장을 뗐다. 그리고 해산을 명령했지만, 서대문에 주둔하고 있던 제1시위연대 제1대대장 박승환(朴昇煥) 참령은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했으니 만 번 죽어도 무엇이 아깝겠는가”라며 해산을 거부하고 자결했다. 박 참령의 순국이 도화선이 되어 시위대원들은 무기고를 열고 무장해 일본군과 맞서 싸웠지만, 조칙이 내려지기 이전부터 탄약고를 비워놓고 시위대 주둔기지를 포위하고 있던 일본군에 의해 70여명이 전사하고 100여명이 부상당하는 등의 피해를 입고 뿔뿔이 흩어졌다. 흩어진 군인들은 의병이 되거나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에 투신했다. 최신 무기를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변변한 저항조차 하지 못했던 대한제국군! 역사에는 ‘if’가 없다지만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동해 지킬래요” 함정 근무 자원 해군 삼형제

    “동해 지킬래요” 함정 근무 자원 해군 삼형제

    “처음에는 바다라는 공간이 낯설었지만 형제들이 알려준 노하우 덕분에 군 생활에 금방 적응했어요.” 한 가정의 삼형제가 모두 해군에 입대해 전역할 때까지 군함에서 동해 바다를 지키겠다고 나서 화제다. 그 주인공은 강원 동해시 해군 1함대 소속 마승태(22) 병장과 그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들인 마기태, 마상태(21) 일병. 첫째인 마승태 병장은 1함대 참수리 고속정(PKM) 329호정의 엔진을 담당하는 내연병이다. 둘째 마기태 일병과 셋째 마상태 일병은 1함대 초계함(PCC)인 광명함의 갑판병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육지에서 순환 근무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전역할 때까지 힘든 함정 근무를 계속하겠다고 자원했다. 이들 형제는 군 입대 전 고향인 강원 인제군에서 ‘육상선수 삼형제’로 통했다. 마 병장은 마라톤, 마기태 일병은 400m 달리기, 마상태 일병은 투포환·해머 던지기 선수 출신이다. 하지만 평소 해군을 동경했던 맏형 마 병장이 해군에 입대하자 어릴 때부터 형을 존경해 온 쌍둥이 형제는 주저 없이 올해 1월 해군에 동반 입대했다. 이들 형제는 특히 6·25전쟁 참전 유공자인 할아버지 마영섭(82)옹의 투철한 군인 정신을 이어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마기태 일병은 13일 “동생 상태와 함께 해군 부사관으로 지원해 이왕이면 군 생활을 제대로 해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맏형 마 병장은 “동생들이 같이 있으면 군 생활을 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부사관까지 희망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60살넘은 ‘늙은’ 폭격기에 목멘 ‘첨단’미국, 왜?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60살넘은 ‘늙은’ 폭격기에 목멘 ‘첨단’미국, 왜?

    정치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군의 이미지는 ‘첨단’이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은 전 세계에 군대를 배치하면서 독재자나 군벌, 이슬람 무장 단체부터 해적과 마약조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상과 지금 이 순간도 싸우고 있다. 하루하루가 전쟁의 연속인 만큼 전장에서 올라오는 교훈은 재빨리 새로운 무기 개발에 반영되고, 이렇게 전장 환경과 사용자의 니즈로 탄생한 새로운 무기들은 전 세계 전쟁터에서 얼굴을 내밀며 미국의 군사력과 과학 기술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첨단 무기 구매에 엄청난 국방예산을 쓴다하여 ‘천조국’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진 미국조차 60년 넘게 바꾸지 못한 무기가 있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은 미국의 전략적 힘의 심볼인 ‘전략폭격기’였다. -집안 대대로 조종하는 유서 깊은 폭격기 종류를 막론하고 무기체계의 한 세대는 약 30년 정도로 잡는다. 소총부터 전차는 물론 전투기와 군함도 30년을 기준으로 해서 퇴역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 무기의 수명이 30년을 넘긴다면? 전차나 장갑차는 ‘닦고 조이고 기름 쳐서’ 더 쓰거나 굴러가지 않으면 고정식 포탑으로라도 사용할 수 있고, 군함도 최소한 가라앉지는 않는다. 하지만 항공기는 다르다. 낡은 항공기는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하늘을 나는 관(Flying casket)’이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하는 경우라면 이러한 문제는 좀 더 심각해진다. 항공기 수명 30년이라는 것은 연간 비행시간을 일정하게 정해놓고 그것을 지켰을 때 수명이 30년이라는 이야기지만, 미국은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상황 때문에 항공기들이 혹사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도입 25~30년이 경과한 항공기들은 종류를 막론하고 현역에서 도태시켜 매각하거나 ‘항공기의 공동묘지’로 불리는 AMARC(Aircraft Maintenance And Regeneration Center)에 장기 보관 처리를 하고 새로운 항공기로 대체된다. 현재 AMARC에는 다른 나라에서는 당당한 1선급 전투기로 활약하고 있는 F-15/16/18 계열 전투기들이 500여대 이상 보관중이다. 그런데 여기에 100여대나 보관 중인 어떤 폭격기는 비슷한 숫자가 현재 미 공군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다. 바로 B-52H다. 1952년부터 생산되어 1955년부터 실전 배치된 이 폭격기는 ‘3대가 모는 폭격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이 폭격기 조종사로 근무하는 집안이 있다. 지난해 B-52H 조종사가 된 미 공군 데이비드 웰시(David Welsh) 대위의 아버지 돈 웰시(Don Welsh) 예비역 대령은 베트남전에서 B-52 폭격기를 몰았던 참전용사이고, 할아버지인 돈 스프레이그(Don Sprague) 예비역 대령 역시 냉전시기 B-52 폭격기를 이용한 핵공격 임무를 수행했던 파일럿이었다. 문자 그대로 집안 대대로 조종하는 유서 깊은 폭격기인 것이다. -여러번의 교체 시도, 하지만 구관이 명관? 사실 미 공군도 B-52 폭격기가 좋아서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이 폭격기를 대체하기 위해 몇 차례나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사실상 실패했기 때문이다. 제트기가 대중화되면서 자고 일어나면 항공기의 세대가 바뀌어 있을 정도로 항공기술 발전이 빨랐던 1960년대에 미 공군은 B-52를 마하 3의 초음속으로 날아가 소련에게 핵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XB-70 발키리(Valkyrie) 폭격기로 대체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 기술로도 무리가 있는 초음속 폭격기를 60년대 기술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고, 천문학적인 예산만 쏟아 붓고 결국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미국은 포기하지 않았다. 여전히 초음속 폭격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만, 기술 수준의 한계를 감안해 속도를 마하 2 정도로 낮추고 당시 유행하던 가변익을 채택한 B-1을 내놓은 것이다. 당시 미 공군은 “소련 근처까지는 마하 2로 접근하고, 소련 영공에서는 레이더에 잘 걸리지 않도록 낮은 고도를 마하 1.2의 속도로 침투해 빠르게 타격하고 돌아오면 된다”라는 발상이었지만, 1976년 소련공군의 빅토르 발렌코(Viktor Belenk) 중위가 MIG-25 전투기를 타고 귀순하면서 이 같은 발상은 산산조각 났다. 소련은 이미 미국의 이러한 발상에 대응할 수 있도록 마하 3의 속도와 장거리 미사일, 저고도 침투 항공기를 장거리에서 잡아낼 수 있는 대형 요격기를 만들어 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격도 1977년 기준으로 당시 최신예 전투기였던 F-15A 전투기의 10배가 넘는 1억 달러에 달했고, B-1B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던 1988년 당시에도 대당 3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등장해 애초에 244대를 생산해 B-52를 대체한다는 계획은 98대 생산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결국 B-52 대체에 실패한 것이었다. 1980년대 후반 미 공군은 더 이상 초음속 폭격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바로 스텔스(Stealth) 폭격기였다. 미 공군은 초음속 비행 성능은 포기하는 대신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스텔스 성능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로 B-2A 폭격기가 등장했지만, 애초에 133대가 생산되어 B-52를 대체할 계획이었던 이 폭격기는 달랑 21대만 생산되고 말았다. 직전 모델인 B-1B의 3억 달러보다 7배 이상 폭등한 대당 22억 달러의 가격 때문이었다. B-2A는 흔히 ‘금값보다 비싼 폭격기’라고 하는데, 실제로 B-2A의 기체 중량을 가격으로 나눠보면 1g당 50달러가 넘게 나오는데, 이는 1g당 45달러 안팎에 거래되고 있는 금보다 더 비싼 가격이다. 날아다니는 45톤짜리 금괴라는 별명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요컨대 미 공군은 지난 50년 동안 B-52를 대체하기 위해 몇 차례나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실패를 거듭했고 눈물을 머금으며 개량과 보수를 거쳐 B-52를 60년째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백전노장 B-52, 이제는 은퇴할 수 있을까?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의회조사국(CRS :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이 지난 7월 9일(현지시간)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는 미 공군이 미국내 주요 방산업체들에게 차세대 전략폭격기 사업, 일명 LRSB(Long-Range Strike Bomber) 사업을 위한 제안요청서(RFP : RFP : Request for proposal)를 발송했다고 밝히고 있다. CRS 보고서는 미 공군이 2025년 이후부터 신형 폭격기 80~100여대를 도입해 현재 운용중인 B-52H 76대 전부와 B-1B 36대를 대체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대당 가격은 5억 5,000만 달러 수준으로 억제하겠지만 최대 8억 1,000만 달러 수준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사업이 연방정부 예산 자동삭감(Sequester)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 공군 수뇌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되었기 때문인데, 실제로 지난해 가을, 마크 웰시(Mark A. Welsh) 공군참모총장은 “차세대 폭격기 프로그램을 취소 또는 연기해야 한다는 확실한 근거가 없는 한 이 사업과 관련한 그 어떤 예산 변경이나 축소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언한 바 있었다. 한술 더 떠 미 공군은 지금까지 비밀 예산으로 차세대 폭격기 설계 작업을 상당한 수준까지 진척시킨 것이 이번 CRS 보고서를 통해 확인되었는데, 이러한 강력한 의지를 통해 준비되고 있는 차세대 폭격기가 과연 B-52 폭격기의 유구한 전통(?)을 깰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 위에서부터 ▲ B-52 핵공격 파일럿이었던 할아버지(사진 왼쪽) B-52로 하노이를 폭격했던 아버지(오른쪽)에 이어 B-52 파일럿이 된 데이비스 웰시 미공군 대위(가운데) ▲ 같은 무게의 금값보다 비쌌던 B-2A 스텔스 폭격기 ▲ 60년째 자리를 지켰지만 앞으로 10년은 더 현역에 남아 있어야 할 B-52 폭격기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대영제국 여왕의 암울한 귀환…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

    대영제국 여왕의 암울한 귀환…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

    지난 4일(현지시간) 영국은 스코틀랜드 지방의 로지스(Rosyth) 조선소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참석한 가운데 영국 해군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항공모함인 ‘퀸 엘리자베스’(HMS Queen Elizabeth) 진수식을 가졌다. 전통적으로 군함의 진수식에서는 배의 무사 항해를 기원하며 여성이 샴페인 병을 배에 부딪치게 해 깨뜨리는데, 이날 행사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행사가 열린 조선소가 스코틀랜드 지방인 점을 고려해 이 항공모함의 진수식에서는 전통적으로 쓰이는 샴페인 대신 위스키 병을 깨뜨리며 이 배의 무운장구(武運長久)를 기원했다. HMS 퀸 엘리자베스 항공모함은 영국이 35년 만에 갖는 정규 항공모함이었고, 대영제국 해군 역사상 최대의 군함으로 기대를 모아왔기 때문에 행사에 참석한 여왕과 영국 해군 관계자들의 표정은 밝았지만, 실제로 이들의 속은 누구보다 더 타들어 가고 있었다. ▲풀을 먹고 살더라도 항공모함을 가지겠다! 풀을 먹고 사는 한이 있더라도 핵무기를 가져야겠다며 핵개발을 밀어붙여 결국 성공시킨 파키스탄의 부토(Zulfikar Ali Bhutto) 전 대통령처럼 영국 해군 역시 눈물겨운 집착으로 퀸 엘리자베스 항공모함을 탄생시켰다. 한때 전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해가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했던 영국 해군이지만, 영국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온몸으로 시달리면서 영국 경제는 전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연히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해군력에 더 이상 쏟아 부을 돈도 없었고, 많은 군함들이 해외로 팔리거나 폐기 처분되는 운명에 처해야 했다. 그 와중에서도 영국은 제국의 자존심은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고, 그 자존심의 상징은 역시 항공모함이었다. 영국 해군 최후의 정규 항공모함이라 불렸던 아크 로열(HMS Ark Royal)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주문되어 전후 건조가 취소될 뻔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1950년 진수되어 1955년 취역한 5만 4천톤급 항공모함이었다. 이 항공모함은 미 해군의 대형 항공모함과 동일하게 증기 사출기로 항공기를 발진시키는 CTOL(Conventional Take-Off and Landing) 방식의 대형 항공모함이었고, 당시 최신・최강으로 평가되던 F-4K 전투기와 자국산 버캐니어(Buccaneer) 공격기 등 24대의 전투기와 4대의 가넷(Gannet AEW) 조기경보기, 9대의 씨킹(Sea King) 대잠헬기 등 40여 대의 함재기를 운용하던 강력한 항모였다. 영국은 극심한 재정 적자 속에서도 이 항공모함을 전력화하고, 약 20여 년간 유지했지만, 1978년 제2차 오일 쇼크가 터지면서 경제 공황에 가까운 위기를 겪던 영국은 결국 1978년 이 항모를 퇴역시켰다. 대영제국의 자존심이 마이너스 성장과 두 자릿수의 인플레이션, 그리고 극심한 재정적자 때문에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는 말처럼 영국은 가난해도 제국의 자존심은 버릴 수 없었고, 궁여지책으로 경항공모함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인빈서블(Invincible)급 항공모함 3척을 건조해 실전에 배치했다. 배 이름은 ‘무적(Invincible)’이었지만, 2만톤의 작은 덩치에 수직이착륙 전투기를 운용하는 이 항공모함은 20여년 운용하다보니 한계점이 너무 많았고, 영국은 다음에는 무리를 좀 하더라도 미국처럼 대형 항공모함을 가져야 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차세대 항공모함 사업에 착수했다. ▲만들고 보니 ‘반쪽짜리’ 7월 4일은 대영제국이 35년 만에 정규 항공모함을 갖게 된 날이었지만, 영국 언론들은 이 항공모함의 진수를 그리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고 있다. BBC는 특집 보도를 통해 “2008년 계획 당시 2척 건조에 39억 파운드 정도의 예산이 들 것이라던 항공모함이 이제는 2척 건조에 62억 달러로 치솟았다”고 꼬집었다. 영국 정부는 극심한 재정위기로 인해 지난 2011년부터 영국군이 보유한 각종 무기들을 신형・구형 가릴 것 없이 ‘바겐세일’하고 있다. 4,200톤급 방공 구축함을 100만 파운드(약 17억원)에 내놓는가 하면 대당 1,800억 원 넘는 가격에 구매해 3년도 채 쓰지 않은 유로파이터 전투기를 반값에 내놓기도 했다. 전투기를 매각하면서 파일럿이 필요 없어지자 4년간 공들여 육성한 공군사관학교 생도 100명에게 이메일로 ‘해고’를 통보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언론들은 값비싼 대형 항공모함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라며 항모 도입 계획을 취소해야 한다고 열을 올렸지만, 영국 해군은 멀쩡한 다목적 구축함(Type 23)을 해외에 매각하고, 신형 방공 구축함(Type 45) 도입 계획을 대폭 축소하면서까지 항공모함은 반드시 도입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이렇게 강력한 의지로 탄생한 항공모함은 스펙은 정말 화려하다. 길이 280m, 폭 73m에 72,000톤에 달하는 덩치를 자랑하는 거함(巨艦)이다. 롤스로이스가 자랑하는 신형 가스터빈 등 최신 동력 장치를 갖췄고, 항해용 아일랜드와 항공기 관제용 아일랜드를 독립해 설치하는 등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도 빼놓을 수 없다. 함재기 역시 막강하다. 최신예 F-35B 전투기를 최대 40대까지 탑재하며, AW-101 대잠헬기 등 고가의 헬기들도 다수 탑재된다. 한때 미 해군의 정규 항공모함처럼 사출기를 장착해 CTOL 방식의 항공모함으로 건조되는 방안이 검토되었지만, 예산 문제로 취소되고, 스키 점프대를 운용하는 STOVL(Short Take Off and Vertical Landing) 항공모함으로 건조됐다. 그러나 화려한 모습은 여기까지다. 당초 2척이 건조되어 취역할 예정이었던 이 항공모함은 취역도 하기 전부터 반 토막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자매함으로 건조되고 있는 프린스 오브 웨일스(HMS Prince of Wales)는 예산 부족으로 인해 건조 취소 또는 건조 후 해외매각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5조원에 육박하는 고가의 대형 항공모함을 구매할 나라가 있겠냐는 여론에 건조 취소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함재기 역시 반 토막 났다. 당초 영국은 올해까지 36대의 F-35B 전투기 구매 계약을 체결했어야 했지만, 현재까지 영국에 인도된 F-35B 전투기는 3대에 불과하며, 확정된 구매 예산은 14대밖에 되지 않는다. 문제는 영국 정부의 재정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F-35B의 가격은 어지간한 호위함 1척 가격 수준을 넘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으며, 천문학적인 유지비가 들어갈 이 항공모함에 대한 여론의 질타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해군은 모든 것을 버려 가며 전력을 쏟아 부어 35년 만에 꿈에 그리던 대형 항공모함을, 그것도 찬란했던 대영제국을 건설했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딴 최첨단 항공모함을 갖게 됐다. 하지만 이 항공모함은 취역도 하기 전에 적의 어뢰나 미사일보다 더 무서운 ‘예산 부족’이라는 위협에 침몰할 위기에 내몰리게 됐다.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 finmil@nate.com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40년 됐어도 그날 생각하면 오늘도 가슴 철렁 내려앉아”

    “40년 됐어도 그날 생각하면 오늘도 가슴 철렁 내려앉아”

    “1974년 6월 28일. 그날을 어떻게 잊겠어요. 지금도 생각하면 오늘 일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요.” 그날따라 소나기가 천둥 번개와 함께 거셌다. 오전 11시쯤이었다. “모내기하는 친구의 논에 새참을 여럿이 가져다주고 집으로 돌아와서 막 돌 지난 막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데 부산에 사는 고모가 집안으로 뛰어들어오셨어요. 그러면서 지금 누워 있을 때가 아니다, 오빠 배가 가라앉았다고 한다며 절규하셨어요. 하늘이 노랬지요. 어찌할 바를 몰랐어요.” 당시 863함과 함께 강원 속초 앞바다 깊은 물 속에 잠든 허판구 부함장의 부인 백정임(70)씨는 27일 엊그제 같은 그날을 떠올리며 이렇게 되뇌었다. 세월호 참사로 해양경찰 해체가 결정된 가운데 북한 군함 3척으로부터 포격을 당해 침몰한 해경 863함 사건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당시 승조원 28명 중 26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863함은 1941년 건조된 200t급 경비정으로, 오징어잡이 어선을 보호하는 경계임무 중 사건을 맞았다. 40년 가까이 승조원들이 근무 태만으로 북방한계선을 침범해 벌어진 것이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해 6월 28일 내무·국방조사단 진상조사가 잘못됐다는 서울신문 보도에 이어 정부 재조사를 거쳐 명예를 되찾았다. 남편을 잃을 무렵 백씨는 여섯 살, 다섯 살, 두 살배기 아들을 두고 있었다. “일단 아이들 셋을 목욕시키며 말했어요. ‘나도 오늘부터 아버지처럼 죽었다. 너희 다 키울 때까지만 어떻게든 살겠다. 너희 키우는 데만 집중하고 한눈팔지 않고 무슨 일이든 하며 살겠다’고 말하며 스스로 다짐했어요.” 눈앞이 캄캄했다. 변변한 재산도 없었다. 닥치는 대로 일했다. 더 힘들었던 것은 11년 뒤인 1985년 일이다. 실종 10년을 넘겼다는 이유로 남편 급여가 끊기고 말았다. 순직처리가 되지 않아 민법에 따라 월급을 받고 있었는데 말이다. 서울대에 합격한 큰애의 학비를 댈 수 없었다. 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에 다녔다. 참 미안했다. 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지금도 옛일이 떠오르면 울다가 휴지 한 통을 다 쓴다. 다행히 온화하면서도 강직한 남편 성품을 닮아서인지 아이들도 착하게 잘 자랐다. 최근에는 장한 어머니상을 받고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오찬에도 다녀왔다. 다만 죽기 전 소원이 하나 있단다. 남편의 국립묘지 안장이다. “나마저 죽으면 애들 아빠는 영영 잊혀지는 것입니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국립묘지에 모시지 못한다니 이해할 수 없어요.” 글 사진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ICC “천안함·연평 포격 북한의 소행이다” 명시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해 전쟁범죄로 인정할 만한 소지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ICC 검찰부는 23일 “지난 3년 6개월간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ICC가 관할하는 전쟁범죄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 위해 1차적으로 광범위한 정보 수집에 주력했다”면서 “정확한 사실관계 및 법적 판단을 위해 북한에 정보 제공을 요청했으나 북한이 이를 철저히 무시해 법적으로 판단하는 데 충분한 조사활동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고 외교부가 전했다. ICC는 종결 사유로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는 “민간인이나 민간 시설이 아닌 군인과 군함에 대한 공격이라서 ICC가 관할하는 전쟁범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해서는 북한이 고의적으로 민간인을 공격한 사실이 입증돼야 하지만 수집된 정보만으로는 고의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북한이 발사한) 전체 포탄 230발 중 50발은 해상에 떨어졌으며 민간에 떨어진 것은 약 30발이었다”는 설명이다. ICC는 2010년 12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폭침 사건이 전쟁범죄 행위에 해당하는지를 가리기 위한 예비조사를 직권으로 착수해 이날 관련 내용을 ICC 검찰부 파투 벤수다 수석검사의 발표 형식으로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외교부는 “ICC는 보고서에서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군함조 속도 시속 400km 이상…군함조 KTX보다 빠른 속도 비결은?

    군함조 속도 시속 400km 이상…군함조 KTX보다 빠른 속도 비결은?

    ‘군함조 속도’ ‘군함조 속도 시속 400km’ 군함조 속도가 시속 400km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로 알려진 열대 해양성 조류 군함조의 속도는 시속 400㎞ 이상이다. 특히 가늘고 끝이 굽어 있는 긴 부리와 끝이 뾰족한 긴 날개와 깊게 팬 제비형 꼬리가 특징이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1년 강원 강릉 경포호수 일원에서 포착됐다. 태평양·인도양·대서양에 주로 서식하는 열대성 조류 군함조가 강릉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새로 알려져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라크 무능’ 눈 돌리려 뒤늦게 작전?… 美, 벵가지 테러 주범 체포 ‘구설’

    ‘이라크 무능’ 눈 돌리려 뒤늦게 작전?… 美, 벵가지 테러 주범 체포 ‘구설’

    2012년 리비아 벵가지 주재 미국 영사를 숨지게 한 테러의 주범이 체포됐다. 최근 나라 안팎의 잇단 사건으로 시련을 겪고 있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번 작전은 새로운 정치적 논란만을 불러오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24명의 델타포스 대원과 2~3명의 연방수사국 요원이 지난 16일 새벽 벵가지 외곽에서 무장단체 안사르 알샤리아의 지도자 아흐메드 아부 카탈라를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작전은 총알 한 발 쏘지 않고 사상자 없이 마무리됐다. 카탈라는 지중해에 배치된 미 군함으로 옮겨졌다. 카탈라의 체포 소식에 미국 양당은 일제히 환영을 표시했다. 특히 최근 이라크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뛰어난 외교력을 보여주지 못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자국민이 공격당하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책임자를 정의의 심판대에 세운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줬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공화당은 카탈라의 체포가 너무 늦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벵가지에서 NYT 기자의 인터뷰에도 응할 정도로 자신을 드러냈던 카탈라를 이전에 얼마든지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최소 1년 전에 카탈라 체포 작전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오바마 정부가 이라크 사태 등에 쏠린 눈을 돌리기 위해 뒤늦게 작전을 실행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한 카탈라가 법정에 서면 국무장관 재임 중 최악의 사건이 일단락돼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가도에 호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하지만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재판이 준비되는 수개월 동안 언론의 헤드라인은 ‘벵가지’로 장식될 것이고 장관 시절 클린턴의 책임론이 다시 부각돼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카탈라를 각각 미국 법정과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다뤄야 한다고 각을 세우는 이유도 클린턴의 책임론과 관계가 깊다. 민주당은 그를 온 국민이 볼 수 있는 민간 법정에 세워 테러범 자체가 주목받길 바란다. 반면 “미국 밖에서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이기 때문에 관타나모에 보내야 한다”는 공화당의 주장대로라면 사건의 중심은 클린턴 전 장관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美, 군함서 ‘무인정찰기’ 직접 발사 추진…이유는?

    美, 군함서 ‘무인정찰기’ 직접 발사 추진…이유는?

    미 해군이 군함에서 스파이 드론, 즉 무인정찰기를 직접 발사시키는 프로젝트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과학전문매체 라이브 사이언스닷컴은 미 해군이 국방부 소속 기술연구기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efenc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DARPA)과 무인정찰기를 해군 전함에서 직접 운용하는 기술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고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계획은 기존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의 TERN(Tactically Exploited Reconnaissance Node) 프로그램에 기초를 둔 것으로 무인정찰시스템을 해군 선박에 효율적으로 응용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와 관련해 미 해군 연구청(Office of Naval Research, ONR) 프로그램 매니저 길 그라프는 “해군전함의 탄탄한 내구성과 첨단 정찰시스템이 결합됨으로써 긴 장거리 작전 수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 전쟁에서 점점 중요시되고 있는 것은 공중 감시 및 정찰, 이동하는 표적 공격 수행 능력으로 해군 역시 항공모함에 헬리콥터와 전투기를 배치시켜 해당 작전을 수행해왔다. 다만 기존 고정익, 회전익 항공기는 이륙과 착륙이 가능한 활주로가 구비된 거대 항공모함이 없으면 운용이 될 수 없기에 장거리 작전 수행에 있어 일정부분 한계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무인정찰기시스템 도입은 미 해군의 효율적 군사 작전 수행을 가능하게 한다. 거대 항공모함이 아닌 작은 구축함에서도 충분히 정찰기를 운용할 수 있기에 기존보다 신속하고 위험부담도 적다. 방위고등연구계획국에 따르면, 이 무인정찰기 시스템은 길이 154m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에서 먼저 시험 운용 될 예정이다. 일반적으로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은 대공 미사일과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지스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다. 방위고등연구계획국 관계자는 “해당 프로그램은 차기 첨단 군사 기술개발을 위한 각 군 간의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DARPA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베트남의 대화 요청… 3번 연속 거절한 中

    중국의 남중국해 석유 시추를 두고 중국과 베트남 간 충돌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중국이 양국 관계 악화 이후 베트남 측의 고위층 교류 제안을 수차례 거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베트남은 지난 5월 초 중국이 파라셀군도(중국명 시사군도) 중젠(中建)섬 인근에서 시작한 석유시추 작업으로 양국 간 충돌이 일어나자 중국 측에 자국 공산당 응우옌푸쫑 총서기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 전화 연결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홍콩 명보가 12일 보도했다. 베트남은 이어 자국 쯔엉떤상 주석과 시 주석과의 전화 회담을 제안했으나 또다시 거절당했다. 이후 응우옌푸쫑 총서기의 특사를 중국에 파견하겠다고 전했으나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국은 베트남과의 대화를 계속 거부하면서 석유시추가 이뤄지는 남중국해 인근 지역이 중국의 해상영토라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명보는 “중국이 베트남 측의 대화 제안을 세차례 연속 거부한 것은 양국 간 시사군도 영토분쟁과 관련해 더 이상의 대화가 필요치 않고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서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이 대화를 거부할 때부터 이미 양국 관계 악화라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중국은 앞으로도 베트남과의 분쟁에 더욱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화권 매체 둬웨이(多維)는 “중국은 베트남이 중국의 석유시추에 대해 강하게 나오는 것은 ‘중국 억제’ 전략을 펴는 미국과 일본이 뒤에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중국이 작업장 인근에 군함까지 대거 파견한 것은 베트남은 물론 미국과 일본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주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남중국해 석유시추 작업 현장 인근 해역에서 양국 선박 간 충돌이 잇따르자 최근 6척의 군함을 작업장 주변에 파견해 억지력을 과시하고 있다. 또한 외교부 성명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공문 등을 통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대한 자국의 입장을 홍보하는 외교 공세도 강화하고 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부국(富國)의 전유물, 상륙작전 이야기(中) -한국의 현실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부국(富國)의 전유물, 상륙작전 이야기(中) -한국의 현실

    북한이 추가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한반도 긴장 국면을 조성하던 지난 봄, 한국과 미국은 경상북도 포항 독성리 해안에서 지난 1993년 제1차 북핵 위기 직전에 실시되었던 팀 스피리트(Team Sprit) 훈련 당시 상륙훈련 이래 사상 최대 규모의 병력과 장비를 동원한 가운데 연합상륙훈련을 실시했다. 이번 훈련에는 아시아 최대의 상륙함이라는 우리 해군의 독도급 대형수송함이 동원되었지만, 이 훈련에서 내외신 기자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독도함이 아니었다. -강대국도 어려워진 상륙작전 일반적으로 상륙작전이라는 단어를 제시했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형 상륙정이나 장갑차를 타고 해안에 상륙해 빗발치는 적의 총탄과 포화를 뚫고 해안의 적 방어진지를 점령하는 장면을 연상한다. 이러한 상륙작전은 인류가 배를 만들고 바다로부터 군사력을 투사하기 시작한 이래 지난 수십 세기동안 상륙작전의 전형(典型)이었다. 우리 해군과 해병대 역시 창설 이래 위와 같은 전통적 개념의 상륙작전에 부합하는 상륙함정과 해병대 전력을 건설해 왔고, 독도함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상륙작전 개념은 해안까지 접근한 LST(Landing Ship Tank)에서 발진하는 LCM(Landing Craft Mechanized)이나 LCU(Landing Craft Utility)에 병력과 장비를 탑승시켜 해안의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방식이었다. 해안 방어진지의 적은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상륙부대를 내려다보며 자체 화력이나 지원 화력을 퍼부을 수 있으며, 상륙부대가 압도적인 함포 사격과 공중 화력 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상륙작전의 성공 가능성은 크게 낮아지고, 희생자의 숫자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세계대전이 한참이던 70년 전이나 냉전 시기에는 이러한 물량 위주 상륙작전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냉전 종식 이후 전 세계적인 국방비 삭감 기조와 인명 중시 풍조가 확산되면서 과거와 같은 상륙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수평선 너머에서부터 시작되는 상륙작전 냉전 종식 이후 전통적인 개념의 상륙작전을 수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해병대 또는 해군육전대와 같은 상륙작전부대를 보유했던 대부분의 국가들은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상륙작전부대를 UN 평화유지군이나 신속대응군과 같이 소규모 기동부대로 개편하거나 새로운 개념의 상륙작전교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장비와 전술을 대거 도입하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개념의 상륙작전교리란 초수평선 상륙작전(Over the Horizon Amphibious Operation)이다. 초수평선 상륙작전이란 미 해군이 정립한 작전개념으로 해안으로부터 50km 이상 떨어진 먼 바다에서 발진한 공격헬기와 공격기로 적 해안을 초토화시킨 뒤 수평선 너머의 대형 상륙함정에서 발진한 고속 공기부양정이나 상륙돌격장갑차로 이루어진 공격부대가 해안으로부터, 수송헬기에 탑승한 공격부대가 해안 적 진지 후방에 침투하여 해안선의 적 방어부대를 포위 섬멸하고 목표 지역을 점령하는 개념의 상륙작전 형태이다. 미 해군은 항공모함 형태의 강습상륙함 1척과 도크형 상륙함 2~3척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 상륙준비단(Amphibious Readiness Group)을 편성해 이러한 ARG를 여러 개 운영하고 있다. 상륙작전 명령이 떨어지면 1개의 ARG는 호위 구축함들이 토마호크 미사일 공격을 퍼붓는 것을 시작으로 강습상륙함에 탑재된 AV-8B 수직이착륙 전투기와 AH-1Z 공격헬기로 해안선을 초토화시킨다. 이와 동시에 도크형 상륙함에서 발진한 대형 공기부양정인 LCAC(Landing Craft Air Cushions)에 전차와 장갑차 등의 장비와 병력을 탑승시켜 수평선 너머에서 발진시키고, CH-53E나 MV-22B 등의 항공기에 병력을 싣고 해안선 적 후방에 침투하여 해안 방어병력을 포위해 격파하고 교두보를 확보한다. 이러한 스케일의 상륙작전을 수행하려면 항공모함과 유사한 형태의 강습상륙함(Landing Platform Helicopter)이나 고속 공기부양정을 많이 실을 수 있는 도크형 상륙함(Landing Platform Dock)과 같은 고가(高價)의 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미 해군의 대형 강습상륙함인 아메리카호는 척당 건조비가 3조 4천억 원, 도크형 상륙함인 샌안토니오호의 건조비는 1조 7천억 원의 가격을 자랑한다. 초수평선 상륙작전을 위해 아메리카호에 탑재되는 항공기는 30여대 가량인데, 이들 항공기의 가격만 5조원을 훌쩍 넘는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은 3만 톤 이상의 선체를 갖고 20대 이상의 항공기 운용 능력을 가진 대형 상륙함을 건조해 운용하고 있지만, 미국을 제외하면 이러한 군함을 2~3척 이상 보유하고 있는 사례는 없으며,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러한 군함을 상륙함 목적보다는 원거리 병력 수송이나 항공모함 대용, 인도적 구호작전 수행을 위한 목적으로 운용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전략적인 의미에서 상륙작전을 하려면 상륙 후에도 독립적인 작전 수행이 가능한 최소 제대인 여단급, 즉 3천명 이상을 동시에 상륙시킬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데, 이 정도 규모의 병력과 장비를 상륙시키려면 앞서 말한 대형 상륙함이 최소 5~6척 이상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기준으로도, 미래에도 이러한 전력을 갖추고 있거나 갖출 예정인 나라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북한이 남침할 경우 북한의 배후에 비수를 꽂을 수 있는 전략기동부대로서 해병대 전력의 정예화와 독자적인 상륙작전능력 육성에 많은 관심을 가지며 세계 3위 규모의 해병대를 유지하고 있다. 대한민국 해병대는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최정예 전투부대이며, 해외에서도 ‘한국 해병대는 귀신도 잡는다’라는 칭송을 받고 있지만 한 가지 중대한 약점을 안고 있다. ‘귀신 잡는 해병대’지만 ‘귀신 잡으러 갈 수 없는 해병대’이기 때문이다.(하편에 계속) 사진= 위에서부터 ▲ 해안에 상륙하고 있는 해병대 KAAV-7A1 상륙돌격장갑차. 2차원적인 전통적 개념의 상륙작전 형태는 백사장에 닿기도 전에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은 과거의 작전개념이다. ▲ 미 해군의 주력 상륙함인 와스프급(左)와 샌안토니오급(右). 각각 5만톤과 3만톤에 육박하는 이들 상륙함들은 대량의 항공기 또는 고속 공기부양정을 싣고 수평선 너머에서부터 상륙작전을 수행하는 강력한 군함들이다.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 finmil@nate.com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美해군, 2차 세계대전 때 사라진 ‘USS 휴스턴 호’ 찾는다

    美해군, 2차 세계대전 때 사라진 ‘USS 휴스턴 호’ 찾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700명의 승무원과 함께 차디찬 동남아시아 심해 속으로 가라앉은 군함 USS 휴스턴 호의 잔해를 수거하는 대형 프로젝트가 미 해군에 의해 가동될 예정이다. 미국과학전문매체 라이브 사이언스닷컴은 미 해군이 인도네시아 해군과 협력해 USS 휴스턴 호의 잔해를 수거하는 계획을 진행 중이라고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USS 휴스턴 호는 길이 174m, 무게 9,050t의 노샘프턴 급 순양함이다. 해당 군함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1942년 2월 28일, 인도네시아 자바 섬과 수마트라 섬을 가르는 순다해협에서 벌어진 해상전투에서 700명의 승무원과 함께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미 해군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진행하는 2014 연례 해상 합동군사 훈련(CARAT, Cooperation Afloat Readiness and Training)의 일환으로 난파선 잔해 수거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미 해군은 정예 다이버와 구난함 세이프가드 호(T-ARS-50)를 투입해 바다에 가라앉은 선박의 상태를 정밀히 조사한 뒤 온전히 회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계획에는 인도네시아 해군도 일부 투입 될 예정이다. 휴스턴 호 탐색 프로젝트에는 미 해군 역사&유산 사령부(Naval History & Heritage Command)에서 지원하는 수중 음파 탐지 시스템과 원격 조종 탐사 차량 그리고 해양 고고학자들도 참여할 예정이다. 통계적으로 전 세계 바다에는 아직 17,000개 이상의 미 해군 선박, 항공기 잔해가 남아있다. 이 잔해들은 전쟁의 흔적을 그대로 품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풍부함은 물론 아직 안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기름이나 폭발되지 않은 탄약이 누출돼 환경오염을 초래할 위험이 있어 미 해군은 이를 수거하는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 중이다. 미 해군 측은 “해군 리더십은 임무를 수행한 군함에 대한 존경심에 기반 한다. 세계 평화를 위해 궁극적인 희생을 치룬 이들의 마지막 휴식 장소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사진=U.S. Naval Historical Center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부국(富國)의 전유물, 상륙작전 이야기(上)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부국(富國)의 전유물, 상륙작전 이야기(上)

    우리에게는 현충일이자 직장인들에게는 꿈같은 연휴의 시작이었던 지난 6월 6일은 인류 역사를 바꾼 거대한 사건이 일어난 날이기도 하다. 바로 아돌프 히틀러라는 희대의 악마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의 판세를 완전히 역전시킨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70주년을 맞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연합국의 일원으로 전체주의의 광기(狂氣)와 맞서 싸웠던 19개국 정상들은 70년 전 바로 그 장소에 다시 모여 상륙작전의 의미를 되새기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기념식을 가졌다. -노르망디 : 사상 최대의 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사상 최대의 작전」 등 영화로도 제작되어 흥행에 성공한 바 있었는데,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경우 엄청난 스케일의 상륙작전을 묘사하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이 대거 동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군복과 군화 등 당시 세계 군장 수집 시장이 휘청거릴 정도로 막대한 물량이 동원되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 제작을 위해 당시 군복 3천벌, 군화 2천족을 닥치는 대로 구매했고, 당시 전차와 상륙정 등을 구하는데 엄청난 예산을 썼다”고 회고한 바 있는데, 실제로 이 영화를 제작하는데 들어간 비용은 무려 7,000만 달러, 당시 환율로 약 98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다. 하지만 대부분의 군함과 항공기를 CG 처리한 영화와 달리 실제 병력과 장비가 동원된 실제 상륙작전에는 현재 기준으로도 추산하기 어려운 비용이 들어갔다. 상륙 당일에만 17만 4천명의 병력과 5,300여 척의 함정, 11,000여대의 항공기 등이 투입되었으며, 상륙거점 확보 후 불과 3주 만에 노르망디에는 156만 명의 병력과 33만여 대 이상의 전차와 차량이 양륙되었다. 당시 상륙작전이 실시된 노르망디의 5개 해변에는 독일군 4개 사단이 방어를 맡고 있었다. 불과 4개 사단이 방어하고 있는 이 해안에 상륙하는데 사상 최대의 병력과 장비를 동원한 것은 노르망디 해안 전체가 대서양 방벽이라 불리는 강력한 콘크리트 요새로 덮여 있어 여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압도적인 화력과 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연합군은 작전 당일 바다와 하늘을 군함과 항공기로 뒤덮고 노르망디 해안을 불바다로 만들었지만, 가장 먼저 상륙했던 병력이 문자 그대로 녹아 없어지는 등 작전 개시 첫날 5천여 명의 사망자와 그 몇 배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만약 연합군이 이보다 엄청난 함정과 항공기의 지원 없이 상륙작전을 했거나, 독일군에 대한 기만 작전에 실패해 독일군이 파드칼레(Pas-de-Calais)가 아닌 노르망디가 진짜 공격 목표였음을 알고 대비했다면 작전 첫날 상륙작전에 투입된 17만 4천명은 해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모조리 수장(水葬)되고,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륙작전? 돈 없으면 꿈도 꾸지 마라! 상륙작전은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미리 견고한 진지를 구축해 놓고 해안을 향해 느릿느릿 다가오는 상륙정에 탄 공격군을 향해 화력을 퍼붓기만 하면 되는 손쉬운 전투지만,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사람이 뛰는 속도보다 느린 상륙정에 오밀조밀 탑승해 해안으로부터 쏟아지는 포화를 피해 해안까지 접근해야 하고, 해안에 내린다 하더라도 사방이 탁 트인 해안에 엄폐물 하나 없이 노출된 채 적 진지를 향해 달려야 하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사지(死地)를 향해 몸을 던져야 하는 어려운 싸움이다. 이러한 공자(攻者)의 핸디캡을 극복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방어 측보다 압도적인 화력을 퍼부어 방자(防者)가 고개조차 들지 못하게 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 상륙부대는 상륙부대를 해안까지 날라줄 상륙함과 화력을 지원해 줄 다수의 전투함, 요청하면 언제든지 불벼락을 내려줄 수 있는 항공기, 그리고 그 항공기를 해안 근처에서 띄울 수 있는 항공모함 등 막대한 자산이 필요하다.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가장 규모가 컸던 인천상륙작전에서 UN군은 1개 연대 안팎으로 추산되는 북한군 방어병력에 대해 항공모함을 포함한 261척의 함정과 7만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월미도와 인천 해안을 초토화시키며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이러한 공자(攻者)의 핸디캡을 극복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방어 측보다 압도적인 화력을 퍼부어 방자(防者)가 고개조차 들지 못하게 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 상륙부대는 상륙부대를 해안까지 날라줄 상륙함과 화력을 지원해 줄 다수의 전투함, 요청하면 언제든지 불벼락을 내려줄 수 있는 항공기, 그리고 그 항공기를 해안 근처에서 띄울 수 있는 항공모함 등 막대한 자산이 필요하다.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가장 규모가 컸던 인천상륙작전에서 UN군은 1개 연대 안팎으로 추산되는 북한군 방어병력에 대해 항공모함을 포함한 261척의 함정과 7만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월미도와 인천 해안을 초토화시키며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역사상 가장 규모가 컸고 성공적이었던 상륙작전을 통해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상륙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해안의 방어 병력보다 압도적인 전력을 동원해야 하며, 상륙 해안의 바다와 하늘을 완벽히 장악하고 방어 병력이 머리를 들 수 없을 만큼의 화력을 퍼부을 수 있는 전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력을 갖추는 데는 예나 지금이나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가며, 이 때문에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타국의 도움이나 협조 없이 전략적인 의미에서 독자적인 상륙작전을 벌일 수 있는 국가는 사실상 미국이 유일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면서 군사력 강화보다 경제와 국민 생활수준 향상, 복지가 국가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름에 따라 과거와 같이 막대한 물량을 쏟아 붓는 상륙작전을 구사할 수 있는 국가가 사라지면서 현대의 상륙작전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다음편에 계속) 사진= 위에서부터 ▲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묘사된 노르망디 상륙작전. 170분의 러닝타임 중 불과 30분 안팎의 이 장면을 만드는데 수백억 원이 들어갔다. CG의 도움이 없었다면 재현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연합군의 상륙을 막기 위해 프랑스와 네덜란드, 독일 등 대서양 연안 약 3,860km에 걸쳐 구축해 놓은 대서양 방벽은 해안포와 ‘히틀러의 전기톱’이라 불린 MG42 기관총 등이 갖춰진 강력한 방어선이었다.▲ 인천상륙작전에서 상륙해안을 향해 로켓 공격을 퍼붓고 있는 UN군 LSM 상륙함. 이 작전에서 UN군은 항공모함과 전함, 순양함은 물론 상륙함을 개조한 화력지원함을 동원해 월미도와 인천 해안을 초토화시킨 뒤 상륙했다.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 finmil@nate.com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부국(富國)의 전유물, 상륙작전 이야기(上)

    부국(富國)의 전유물, 상륙작전 이야기(上)

    우리에게는 현충일이자 직장인들에게는 꿈같은 연휴의 시작이었던 지난 6월 6일은 인류 역사를 바꾼 거대한 사건이 일어난 날이기도 하다. 바로 아돌프 히틀러라는 희대의 악마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의 판세를 완전히 역전시킨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70주년을 맞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연합국의 일원으로 전체주의의 광기(狂氣)와 맞서 싸웠던 19개국 정상들은 70년 전 바로 그 장소에 다시 모여 상륙작전의 의미를 되새기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기념식을 가졌다. -노르망디 : 사상 최대의 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사상 최대의 작전」 등 영화로도 제작되어 흥행에 성공한 바 있었는데,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경우 엄청난 스케일의 상륙작전을 묘사하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이 대거 동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군복과 군화 등 당시 세계 군장 수집 시장이 휘청거릴 정도로 막대한 물량이 동원되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 제작을 위해 당시 군복 3천벌, 군화 2천족을 닥치는 대로 구매했고, 당시 전차와 상륙정 등을 구하는데 엄청난 예산을 썼다”고 회고한 바 있는데, 실제로 이 영화를 제작하는데 들어간 비용은 무려 7,000만 달러, 당시 환율로 약 98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다. 하지만 대부분의 군함과 항공기를 CG 처리한 영화와 달리 실제 병력과 장비가 동원된 실제 상륙작전에는 현재 기준으로도 추산하기 어려운 비용이 들어갔다. 상륙 당일에만 17만 4천명의 병력과 5,300여 척의 함정, 11,000여대의 항공기 등이 투입되었으며, 상륙거점 확보 후 불과 3주 만에 노르망디에는 156만 명의 병력과 33만여 대 이상의 전차와 차량이 양륙되었다. 당시 상륙작전이 실시된 노르망디의 5개 해변에는 독일군 4개 사단이 방어를 맡고 있었다. 불과 4개 사단이 방어하고 있는 이 해안에 상륙하는데 사상 최대의 병력과 장비를 동원한 것은 노르망디 해안 전체가 대서양 방벽이라 불리는 강력한 콘크리트 요새로 덮여 있어 여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압도적인 화력과 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연합군은 작전 당일 바다와 하늘을 군함과 항공기로 뒤덮고 노르망디 해안을 불바다로 만들었지만, 가장 먼저 상륙했던 병력이 문자 그대로 녹아 없어지는 등 작전 개시 첫날 5천여 명의 사망자와 그 몇 배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만약 연합군이 이보다 엄청난 함정과 항공기의 지원 없이 상륙작전을 했거나, 독일군에 대한 기만 작전에 실패해 독일군이 파드칼레(Pas-de-Calais)가 아닌 노르망디가 진짜 공격 목표였음을 알고 대비했다면 작전 첫날 상륙작전에 투입된 17만 4천명은 해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모조리 수장(水葬)되고,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륙작전? 돈 없으면 꿈도 꾸지 마라! 상륙작전은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미리 견고한 진지를 구축해 놓고 해안을 향해 느릿느릿 다가오는 상륙정에 탄 공격군을 향해 화력을 퍼붓기만 하면 되는 손쉬운 전투지만,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사람이 뛰는 속도보다 느린 상륙정에 오밀조밀 탑승해 해안으로부터 쏟아지는 포화를 피해 해안까지 접근해야 하고, 해안에 내린다 하더라도 사방이 탁 트인 해안에 엄폐물 하나 없이 노출된 채 적 진지를 향해 달려야 하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사지(死地)를 향해 몸을 던져야 하는 어려운 싸움이다. 이러한 공자(攻者)의 핸디캡을 극복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방어 측보다 압도적인 화력을 퍼부어 방자(防者)가 고개조차 들지 못하게 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 상륙부대는 상륙부대를 해안까지 날라줄 상륙함과 화력을 지원해 줄 다수의 전투함, 요청하면 언제든지 불벼락을 내려줄 수 있는 항공기, 그리고 그 항공기를 해안 근처에서 띄울 수 있는 항공모함 등 막대한 자산이 필요하다.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가장 규모가 컸던 인천상륙작전에서 UN군은 1개 연대 안팎으로 추산되는 북한군 방어병력에 대해 항공모함을 포함한 261척의 함정과 7만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월미도와 인천 해안을 초토화시키며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이러한 공자(攻者)의 핸디캡을 극복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방어 측보다 압도적인 화력을 퍼부어 방자(防者)가 고개조차 들지 못하게 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 상륙부대는 상륙부대를 해안까지 날라줄 상륙함과 화력을 지원해 줄 다수의 전투함, 요청하면 언제든지 불벼락을 내려줄 수 있는 항공기, 그리고 그 항공기를 해안 근처에서 띄울 수 있는 항공모함 등 막대한 자산이 필요하다.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가장 규모가 컸던 인천상륙작전에서 UN군은 1개 연대 안팎으로 추산되는 북한군 방어병력에 대해 항공모함을 포함한 261척의 함정과 7만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월미도와 인천 해안을 초토화시키며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역사상 가장 규모가 컸고 성공적이었던 상륙작전을 통해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상륙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해안의 방어 병력보다 압도적인 전력을 동원해야 하며, 상륙 해안의 바다와 하늘을 완벽히 장악하고 방어 병력이 머리를 들 수 없을 만큼의 화력을 퍼부을 수 있는 전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력을 갖추는 데는 예나 지금이나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가며, 이 때문에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타국의 도움이나 협조 없이 전략적인 의미에서 독자적인 상륙작전을 벌일 수 있는 국가는 사실상 미국이 유일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면서 군사력 강화보다 경제와 국민 생활수준 향상, 복지가 국가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름에 따라 과거와 같이 막대한 물량을 쏟아 붓는 상륙작전을 구사할 수 있는 국가가 사라지면서 현대의 상륙작전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다음편에 계속) 사진= 위에서부터 ▲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묘사된 노르망디 상륙작전. 170분의 러닝타임 중 불과 30분 안팎의 이 장면을 만드는데 수백억 원이 들어갔다. CG의 도움이 없었다면 재현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연합군의 상륙을 막기 위해 프랑스와 네덜란드, 독일 등 대서양 연안 약 3,860km에 걸쳐 구축해 놓은 대서양 방벽은 해안포와 ‘히틀러의 전기톱’이라 불린 MG42 기관총 등이 갖춰진 강력한 방어선이었다.▲ 인천상륙작전에서 상륙해안을 향해 로켓 공격을 퍼붓고 있는 UN군 LSM 상륙함. 이 작전에서 UN군은 항공모함과 전함, 순양함은 물론 상륙함을 개조한 화력지원함을 동원해 월미도와 인천 해안을 초토화시킨 뒤 상륙했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 finmil@nate.com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게이츠 “시진핑 외교, 후진타오보다 공격적”

    게이츠 “시진핑 외교, 후진타오보다 공격적”

    로버트 게이츠(71) 전 미국 국방장관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과 비교하며 시 주석의 외교 정책이 훨씬 공격적이라고 말했다. 또한 시 주석이 모든 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22일(현지시간) 미외교협회(CFR)에 따르면 게이츠 전 장관은 전날 CFR 주최로 열린 ‘역사를 만든 사람들’ 시리즈 행사에 참석, 강연 및 질의응답에서 “중국은 그들에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는 데 있어 갈수록 공격적”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후 주석하에서는 중국 선박들이 미 해군함을 공격했을 때와 인공위성 요격미사일(ASAT)을 발사했을 때, 그리고 내가 (2011년) 후 주석을 만나기 3시간 전 J20 스텔스기를 공개했을 때 (후 주석 등) 민간 지도부는 이런 상황들을 모르고 있었고 인민해방군(PLA)이 독립적으로 실행했다는 정황이 있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시 주석이 확실히 모든 것을 맡고 있으며 이런 일들도 그의 승인에 따라서만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게이츠 전 장관은 “지난 2년 동안 내가 본 중국은 눈에 띄게 더욱 더 공격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며 “방공식별구역 선포를 비롯, 센카쿠를 둘러싸고 일본에 갈수록 공격적으로 접근하는 것과 남중국해에서 베트남과 충돌한 것 등은 2년 전에는 생각할 수 없던 일이었다”며 중국이 야기하는 군사적 충돌을 우려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해경 반성문 등장, 50가지 잘못 나열… “비아냥 거리나” 비판, 무슨 내용?

    해경 반성문 등장, 50가지 잘못 나열… “비아냥 거리나” 비판, 무슨 내용?

    해양경찰청 소속 경찰관이 해경이 50가지의 잘못을 저질렀다는 내용을 담은 ‘내부 반성문’을 올렸다. 해경 해상안전과 예방총괄계장 손경호 경정이 사고, 구조 관련 각각 20가지와 한국해양구조협회 10가지 등 모두 50가지 잘못을 나열했다. 손 경정은 사고 관련 20가지로 ▲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지겠다고 한 죄(해운법) ▲ 형님이 있어 해운조합을 너무 믿은 죄(한국해운조합법) ▲ 1993년 서해훼리호 사고로 지도·감독에 대한 무늬만 바뀌었다고 아무 말 안 한 죄(해운조합에서 그대로 운항관리함, 해수부 걱정거리를 책임짐)를 들었다. 이어 ▲ 법적 근거도 미약한 특별점검을 한 죄 ▲ 해수부도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분야라 운항관리규정(ISM CODE)을 직접 심사하지 않는 것을 해경은 직접 심사한 죄 ▲ 항만청에서 운항면허를 주면서 면허조건에 적재중량을 표시해 달라고 말하지 않은 죄 ▲ 적재중량을 선사 임의대로 작성한 것을 믿은 죄라고 적었다. 또 ▲ 운항면허 발급(권한, 면허조건 명시)기관과 운항관리자 지도·감독은 권한을가진 기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이것은 비정상이라고 한번도 말하지 않은 죄 ▲ 여객터미널 운영자가 청사관리만 하고 여객관리는 하지 안 해도 말하지 않은 죄 ▲ 일부 국제여객선(항만청), 내항여객선(해경)이 관행적으로 과적과 미고박을 해 왔는데도 세월호만 그런 것처럼 보도해도 아무 말 안 한 죄도 지적했다. 손 경정은 또 ▲선박검사기관에서 합격 또는 승인된 사항에 대해서는 점검이 형식적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지려고 점검한 죄 ▲ 항만청에서 우수사업체로 지정된 업체가 구명벌 검사를 하는 것이 안전을 업체의 양심에 맡겨도 되는가를 해수부에 건의를 안 한 죄 ▲ 선원교육기관(해기연수원)이 비상훈련 요령에 “가만히 있으라”는 교육을 하는지 어떤 교육을 하는 지 확인하지 않은 죄 등을 들었다. 손 경정은 구조관련 20가지 죄에 대해서는 ▲ “왜 언론에는 119신고만 나올까?” 고민하지 않은 죄, 122 홍보 좀 해달라고 언론에 적극적으로 요청 안한 죄 ▲ 소방과 해경이 위치정보는 자동으로 공유하는 시스템을 진작 구축했으면 경위도를 묻지 않았을 텐데 이를 방치한 죄 ▲ 육상의 승용차나 버스가 45도 기울어진 것와 같이 비유하며 진입못한 것에 대해 비난을 받으면서 145m 길이에 6∼7층 건물이 45도 기울어 언제 붕괴될 줄 모르는 상황과 비교되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 죄를 들었다. 이어 ▲ 60년 역사상 구조활동과 관련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은 것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언론에 제대로 말 못한 죄 ▲ 천안함 사고당시 해군함정은 여러척 먼저도착해 있어도 구조하지 못하고 해경 경비함정 1척이 생존자 55명을 구조한 것에 대해 해경이 설명할 수 없는 죄를 들었다. 손 경정은 사고예방과 대응업무가 주 업무임에도 정보수사활동(5%) 때문에 해경이 구조를 못 한 것처럼 언론이 홍보하는데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죄도 추가했다. 그는 한국해양구조협회와 관련된 10가지 죄로 ▲ 세월호같은 사고시 민간지원체계를 마련하려고 수난구호법에 담았고 정부예산지원을 받지 못해 회원들의 회비를 받게 되었다는 말하지 않은 죄 ▲ 미국 해안경비대는 각 지역 담당자가 협회회원을 관리하고 일본에서도 수색구조의 특수성 때문에 해상보안청 퇴직자(7명)가 협회를 운영하고 있다고 외국의 예를 설명하지 못한 죄 ▲ 협회설립 초기 해양관련 다양한 종사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18명의 부총재를 두게 되었다고 말하지 못한 죄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손 경정의 ‘반성문’을 놓고 “시기를 놓친 데다가 변명만 늘어놓은 비아냥이다”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민간 잠수사, 세월호 브리핑 현장 난입

    민간 잠수사, 세월호 브리핑 현장 난입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에 투입됐던 한 민간 자원잠수사가 범정부사고대책본부 브리핑 현장에 나타나 해경이 민간 자원잠수사들을 매도했다며 항의했다. 이 잠수사는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브리핑장 단상에 올라가 사고 당일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장관이 잠수사들을 격려한다며 출항을 5분 이상 지연시키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28일 오전 진도군청에서 열린 범정부사고대책본부의 정례 브리핑 도중 10시 5분쯤 윤모씨가 발표자인 고명석 해양경찰청 장비기술국장을 향해 “목포시 예비군 중대장입니다. 민간 (자원) 잠수사들이 사진만 찍고 돌아갔다는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며 단상으로 올라갔다. 윤씨는 이어 “사고 당일인 4월 16일 12시 30분쯤 팽목항에서 최초로 출항했고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 잠수사들을 격려하겠다며 출항을 제지했다”며 “저쪽 침몰선에서는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게 장관인가?”라고 말했다. 2분여 동안 발언을 하다가 대책본부 관계자들에게 제지당한 윤씨는 브리핑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주영 해수부 장관의 사진을 보고는 “이 사람이 아니다. 그때 본 장관이 해수부 장관인줄로만 알았다”고 부인한 뒤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의 사진을 보고 “이 장관이 맞다”고 정정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출항 전 누군가와 악수한 것을 장관인 줄로 착각했다’고 밝혀 결국 ‘장관의 출항 제지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윤씨는 “우리가 사진이나 찍고 그랬다고 해경에서 발표해 그것을 해명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6일 낮 해경 상황실의 지시로 해경 함정을 타고 오후 2시께 사고 현장에 도착해 군함으로 갈아탔는데 6시가 훨씬 넘도록 대기만 하다가 투입이 취소됐다는 전달을 받았다며 “해경관계자에게 돌아가는 배편을 문의했으나 알아서하라고만 해 민간 어선에 직접 도움을 청해 돌아와야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대책본부는 지난 24일 정례 브리핑에서 “제한된 시간 안에 최대의 성과를 내야 하는 현실과 희생자 가족 대표의 요청을 고려해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를 제한하게 됐다”며 “거센 물살과 제한된 시야로 10분도 채 안 돼 나오거나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윤씨는 군무사무관에 해당하는 예비군 중대장은 아니며 명예직인 특전예비군중대 소속이다. 특전사 출신 예비역으로 구성된 목포시 특전예비군중대는 지난 2012년 창설됐으며 현역 때 익힌 폭파·저격·화기 등의 주특기는 물론 UDT, 고공강하, 스쿠버, 심리전 등의 기술을 활용해 유사시는 물론 재난 발생 등 긴급 상황에도 구조 활동 등을 수행한다. 한편 해수부 측은 “이주영 장관은 지난 16일 낮 12시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로 무안공항을 거쳐 진도 사고 해역으로 이동 중이었으며 팽목항에는 오후 4시 이후 도착해 윤씨를 만난 사실이 없다”고 설명했다. 안전행정부 역시 강병규 장관이 당시 낮 12시쯤 인천에서 경찰헬기에 탑승, 오후 1시 10분쯤 목포의 서해지방해양경찰청에 도착해 윤씨와 만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속초~러시아 백두산 항로 ‘이중고’에 운다

    속초~러시아 백두산 항로 ‘이중고’에 운다

    세월호 사고로 직격탄을 맞은 강원 속초~러시아 간 백두산 항로가 러시아 측의 일방적인 운항 중지 명령 등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속초시는 25일 세월호 사고 이후 러시아·중국으로 가려는 승객들의 예약이 무더기로 취소되는 가운데 지난 22일 러시아 측에서 군사훈련을 빌미로 운항 중지 명령을 내려 운항에 차질을 빚었다고 밝혔다. 속초항~러시아 자루비노(여객·화물)~블라디보스토크(화물)의 백두산항로를 오가는 뉴 블루오션호(1만 6000t급)는 지난 22일 오전 10시 블라디보스토크항을 떠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러시아 측이 군사항인 자루비노항에서 갑자기 군사훈련을 한다며 사전 통보 없이 운항 중지 명령을 내렸다. 이 때문에 뉴 블루오션호는 지난 22일 오후 블라디보스토크를 출항한 이후 블라디보스토크 외항에 정박해 있다가 24일 오전 자루비노를 향해 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는 당초 일정보다 이틀 늦은 25일 오후 속초항에 입항했다. 갑작스러운 운항 중지로 자루비노를 통해 속초항으로 입국하려던 승객 234명이 큰 불편을 겪었다. 대부분 중국 훈춘에서 자루비노항을 거쳐 속초항으로 입항하려던 중국인들이었다. 선사 측은 이에 따라 중국인 승객 14명에 대해 항공편을 지원했으며 여행 취소 승객에 대해 환불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이처럼 러시아가 예고 없이 운항 중지 명령을 내린 것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해에는 군함의 안내를 받아 큰 지장은 없었지만 올해는 이마저도 지원하지 않았다. 선사 관계자는 “러시아의 일방적인 훈련 통보로 수천만원의 손실이 발생했다”면서 “정부 관계 기관과 러시아 측에 재발 방지 촉구에 나서줄 것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현석 속초항물류사업소장은 “올 초부터 시행된 러시아와의 비자 면제 조치 등으로 승객이 늘고 4월부터 7월까지 성수기를 기대했는데 세월호 사고로 1000여명의 승객들이 예약을 취소해 어려움이 크다”면서 “사전 통보 없는 군사 훈련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자칫 백두산항로 자체가 위축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속초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부검하면 질식사·저체온증 밝힐 수 있나

    세월호 희생자 가족 가운데 희생자들의 정확한 사인과 사망 시간 등을 확인하고 싶다며 부검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인이 익사가 아닌 질식사나 저체온증이거나 배 안에서 상당 시간 생존했다는 부검 결과가 나오면 구조 시기를 놓친 정부에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부검을 하면 사인과 사망 시간이 명확하게 밝혀질까. 법의학자들은 이론적으론 가능하지만 실제 사인을 분명하게 밝히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익사한 시신의 폐는 물을 들이마셔 매우 팽창하는 탓에 크기가 커지고 무게도 800~1200㎎까지 늘어난다. 갑작스레 유입된 물과 공기, 침 등이 뒤엉키면서 콧속과 기도 안에는 흰색 거품이 생긴다. 하지만 생존자가 에어포켓 속에서 일정 시간을 버티다 질식사나 저체온증으로 완전히 사망한 뒤 물에 빠졌다면 폐 속 바닷물의 양도 눈에 띄게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른바 호흡과 맥박 등의 생활반응(살아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신체의 반응)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말한 흰 기포도 생기지 않는다. 반면 물속에서 저체온증이나 질식사로 사망했다면 해부학적으로 뚜렷한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익사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없는 시신은 질식사나 저체온증으로 죽었을 것이라고 추론할 뿐이다. 문제는 사인이 질식사나 저체온증이라 할지라도 익사와 비슷한 소견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질식사 또는 저체온증으로 의식이 희미해져 더 버티지 못하고 물에 빠진 경우가 대표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검의는 “군함 등과는 달리 격벽이 별로 없어 온전히 숨을 곳이 마땅치 않은 세월호의 경우 부검을 해도 질식사나 저체온증 등이 사인임을 밝히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망 시기를 특정하는 일은 더 쉽지 않다. 통상 법의학계에서는 체온 하강, 시체 얼룩(시반), 사후 강직도(시강), 부패 정도 등을 보고 사망 시기를 추론한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체온의 변화를 보고 사망 시간을 역계산하는 식이다. 보통 ▲헨스게 계산도표나 ▲모리츠 공식 등을 자주 이용한다. 36.5도를 유지하던 체온이 사망 이후 떨어지는 속도에 계절변수(보정계수) 등을 곱해 숨진 시간을 추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물속은 연구 데이터는 적고 변수는 많아 적용 자체가 어렵다. 이정빈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3일 안에 발견했으면 사망 시간 등을 알 수도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사망 시간을 추정하기엔 이미 늦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