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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서 독립군 지휘관 양성… 변절 누명 썼던 ‘이승만의 정적’

    美서 독립군 지휘관 양성… 변절 누명 썼던 ‘이승만의 정적’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한 주요 인물 세 사람을 꼽으라면 안창호, 이승만, 그리고 박용만이다. 박용만은 두 사람을 뛰어넘는 독립운동의 거목이면서도 변절 누명 등의 이유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우성(又醒) 박용만 선생은 1881년 7월 2일(음력) 강원 철원군 중리에서 태어나 숙부 박희병 슬하에서 자랐다. 박희병은 1895년 일본으로 유학을 갔는데 선생도 따라가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서 2년간 정치학을 공부했다. 갑신정변으로 일본에 갔던 박영효와 사귀었고 그의 활빈당에 가입한 뒤 체포돼 1차 감옥살이를 했다. 출옥 후 선생은 보안회(輔安會)에 가입해 일제의 황무지 개발권 요구에 반대하다 2차 옥살이를 했다. 이때 감옥에서 정순만과 이승만을 만나 의형제를 맺었는데 세 사람은 ‘삼만’이라고 불렸다.1905년 선생은 상동청년회의 지원으로 도미 유학길에 올랐다. 정순만과 이승만의 아들도 데리고 배를 탔고 선생이 교사로 일한 평남 순천 시무학교 제자인 유일한, 정한경, 이종희, 이관수 등도 뒤이어 박희병의 인솔로 미국에 도착했다. 선생은 이국 땅에서 독립군을 양성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있었다. 우선 숙부와 함께 네브래스카주를 답사한 뒤 데려온 소년들을 학교에 입학시켰다.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하자 선생은 서둘러 무장 투쟁을 준비해 나갔다. 콜로라도 덴버에서 열렸던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대회에 맞춰 1908년 7월 미국과 하와이, 러시아 등의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인애국동지대표자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의 큰 성과는 둔전병(屯田兵)제에 바탕을 둔 군사교육기관 설립안 통과였다. 이에 따라 1909년 6월 주정부의 인가를 받아 ‘한인소년병학교’가 네브래스카주 커니에서 출범했다. 첫해 입학생은 13명이었는데 함께 간 소년들이 중심이었고 하와이 노동 이민의 자녀도 있었다. ●한때 정순만·이승만과 ‘삼만’으로 불려 이듬해 학교는 헤이스팅스로 옮겼다. 헤이스팅스대학은 학교 건물과 땅을 빌려주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독립군을 양성하는 사관학교인 소년병학교를 미국인들은 ‘한국의 웨스트포인트’라고 불렀다. 소년병학교는 2년 후 만주에서 문을 연 신흥무관학교에 교재를 보내 주는 등 영향을 미쳤다. 학생들은 군사훈련과 학업, 노동을 병행하며 독립군 지휘관 수업을 받았다. 실제로 졸업생들은 연해주에 파견된 적이 있다. 선생 자신도 1908년부터 네브래스카 주립대학에서 군사학과 정치학을 공부하고 졸업했다.소년병학교는 1914년 6기 생도를 받고 폐교의 운명을 맞았다.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의 방해였다. 일본이 미국 정부에 거세게 항의하자 압박을 받은 헤이스팅스대학이 지원을 끊은 것이다. 소년병학교에는 6년 동안 170여명이 입학해 40여명이 졸업했다. 이들은 미국 각지의 대학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해 큰 재목으로 성장했다.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도 했고 학계에도 진출했다. 유일한은 유한양행을 창립했고, 구영숙은 초대 보건사회부 장관이 됐다. 선생은 재미 한인단체인 국민회 기관지 신한민보 주필로 초청받아 1911년 2월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논설을 통해 헌법을 제정하고 해외 자치정부인 가정부(假政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5000여명의 한인이 살던 하와이의 신한국보 주필로 초청받아 갔다. 선생은 자치 규정을 개정해 삼권분립 체제를 갖추고 특별경찰권을 얻어 냈다. 또 1914년 6월 오아후섬 카훌루에 대조선국민군단과 사관학교를 창설하고 파인애플을 재배하며 300여명의 군인을 훈련시켰다. 선생은 1913년 2월 마땅한 소속이 없던 의형 이승만을 하와이로 초청했다. 두 사람이 앙숙이 되는 시발점이었다. 무장론의 박용만계와 외교론의 이승만계로 교민들은 분열됐지만, 박용만계가 월등하게 우세했다. 이승만은 독자적 활동을 펴려 했지만 교민단체인 국민회의 지원을 받지 못해 불만이 많았다. 이승만은 나중에 무죄 판결이 난 박용만계 총회장 김종학의 공금 횡령 사건을 빌미로 판세를 뒤집으려 했다. 박용만 지지파에게 테러를 가하기도 했다.●이승만의 음해공작으로 법정싸움까지 일제는 1915년 미국에 항의해 주정부로 하여금 특별경찰권을 취소하도록 했다. 결국 대조선국민군단은 1917년쯤 문을 닫고 말았다. 이승만은 국민회를 완전히 장악, 조직과 재정의 사유화를 시도했고 법정 싸움으로 이어졌다. 1918년 2월 재판에서 이승만은 “박용만이 위험한 배일 행동으로 일본 군함인 이즈모호가 호놀룰루에 도착하면 파괴하려 한다”며 음해 공작을 감행했다. 이 때문에 선생은 법정에 서는 수모를 겪었고 이승만과 완전히 절연하기에 이르렀다. 두 사람의 노선 차이는 이전부터 드러났다. 이승만은 안중근, 장인환, 전명운 의사를 형법상 살인범이라고 비난하고 일본과 싸우는 것은 망상이라며 선생의 독립운동관을 비판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무렵 선생은 하와이에서 대조선독립단을 조직했고 그해 9월 상하이 임시정부의 외무총장에 임명됐다. 그러나 임시정부를 해체해야 한다는 창조파에 속했던 선생은 독자 노선을 걸었다. 1921년 국내외 10개 독립운동단체를 규합해 베이징에서 군사통일회를 개최했고, 이듬해 1922년 11월 독립운동 기지 건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흥화은행을 창립했다. 1928년 10월 17일 일이 벌어졌다. 선생이 베이징에서 의열단원 이해명이 쏜 총에 절명한 것이다. 47세의 아까운 나이였다. 보도에는 이해명이 선생에게 독립운동 자금 1000원을 요구하다 언쟁을 벌였다고 했지만 의열단은 선생을 변절자로 총살했다고 주장했다. 선생의 죽음에는 복잡한 배경이 있다. 선생은 1923~1924년 두어 번에 걸쳐 국내에 들어왔다. 이것이 변절 논란을 불렀다. 선생은 총독부의 누군가를 만나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국민위원회 비서장에 임명됐다. 그전부터 ‘자유시 참변’ 등을 통해 공산주의와 접하며 제국주의보다 더 위험한 것으로 생각, 일제를 이용하려 했던 것 같다. 선생은 과연 변절자일까. 그렇지 않다. 1924년 이후 행적을 봐도 선생의 생각과 행동은 변함이 없었다. 1925년 선생은 6년 만에 하와이로 가서 1년 가까이 머무르며 1만 달러의 독립군 기지 개척자금을 모금했다. 1926년 6월 베이징으로 돌아와 지금의 베이징역 근처의 땅을 사들여 대륙농간공사를 설립하고 수전(水田)과 정미소를 경영했다. 독립운동 근거지를 마련하고 독립군 양성 자금을 마련할 목적이었다.●작년 ‘박용만 선생 기념사업회’ 발족 정부도 선생의 죽음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결론짓고 1995년 국민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선생에게는 딸 하나와 외손녀가 있었는데 딸은 중국에서 사망하고 외손녀도 일본으로 건너간 뒤 소식이 끊겼다. 중국 부인 웅씨 사이에서 낳은 아들도 행방불명됐다고 한다. 여러 이유로 선생의 업적은 잊혔다. 지난해 말에야 ‘박용만 선생 철원기념사업회’가 발족돼 기념관 설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들과 함께 찾은 중리 109번지 생가터는 군부대 안에 있었다. 철원 노동당사에서 남쪽으로 약 1㎞ 떨어진 곳으로 군부대 연병장과 통행로가 돼 있었다. 사업회 측은 조만간 민간에 반환될 생가터를 확보하는 게 시급한 과제라고 했다. 기념사업회 연구위원장 이우형씨는 “선생이 총을 맞아 사망한 뒤 5일이나 시신이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그 후에 누가 시신을 거뒀는지는 알 수 없고 묘소도 없다”고 말했다. 1967년에 세운 애국선열추모비 속의 이름 석 자와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 세워 놓은 안내판이 있었지만 업적에 비하면 너무 초라해 보였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미·이란 증오의 70년, 새 핵협정과 제재 해제 갈림길에 서다

    미·이란 증오의 70년, 새 핵협정과 제재 해제 갈림길에 서다

    새해 벽두부터 중동에 전운이 뒤덮였다. 지난 3일(현지시간) 이란 군 최고사령관인 가셈 솔레이마니가 이라크에서 미국 드론의 폭격을 받고 사망했다. 미군 전투기에 기지를 폭격당한 친이란계 민병대 지지 세력이 3일 전 이라크에 있는 미 대사관 점거를 시도한 데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보복이었다. 이란 종교도시 곰에 있는 잠카런 사원 꼭대기에 붉은 깃발이 올랐다. 순교의 피가 흐를 격렬한 전투가 임박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란의 ‘복수’ 의지 표명으로 치솟은 긴장감은 엉뚱하게 무고한 176명이 타고 있던 우크라이나 항공 소속 여객기가 피격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반정부 시위로 가득했던 이란은 솔레이마니 사망으로 반미 시위가 휩쓸었다가, 여객기 피격으로 다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는 등 난장판이 됐다. 양국 간 긴장의 근본 원인은 미국의 이란 핵합의 탈퇴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주도로 국제사회가 체결한 핵협상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이어 이란에 가혹한 경제 제재를 가했고, 최악의 경제 궁핍에 처한 이란은 중동 곳곳에 구축한 시아파 민병대를 통해 미국과 동맹에 군사 압박을 가했다. CNN과 BBC의 보도에 따르면 증오의 역사는 약 70년 전부터 뿌리를 내리고 있다. 미국이 1953년 본격적으로 이란 내정에 깊숙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인 이란은 수백년간 수니파 이슬람 세력의 침략과 영국 소련의 수탈로 쇠약해져 갔다. 영국은 1900년대 초부터 ‘앵글로 이란 석유회사’를 통해 이란 석유 비축량을 통제해 왔다. 1951년 반외세 민족주의를 내세운 모하마드 모사데크가 민주적 지지를 통해 총리로 임명됐다. 그는 취임과 동시에 석유 국유화 조치로 앵글로 이란 석유회사를 국가에 귀속시켰다. 이 조치는 중동 석유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던 영국과 미국에 큰 타격을 줬다. 이에 영국과 미국은 이란에서 움튼 민주주의 싹을 밟았다. 영국은 이란 자금을 차단했고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1953년 영국 첩보기관과 함께 이란 쿠데타를 부추겼다. 모사데크는 반역 혐의로 체포돼 3년을 복역하고 가택연금 상태로 여생을 보냈다.1909년 제헌 혁명으로 도입된 입헌정치는 쿠데타로 끌어 내려지고, 이란은 샤(페르시아의 왕)가 통치하는 왕정으로 되돌아갔다. 미국 덕분에 다시 정치 권력을 얻은 무함마드 리자 팔레비는 이란을 친미국가로 만들어 갔다. 현재 서방국가와 이란의 갈등 중심엔 ‘핵’이 있다. 그런데 이란 핵 기술을 처음 지원한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과 이란은 1957년 민간 핵 협력에 합의한다. 미국이 이란에 기술과 자원을 지원하는 게 합의 골자다. 1970년대 미국 지원을 받은 이란은 핵 개발을 시작했고, 오늘날 논란이 되고 있는 핵 프로그램의 토대가 됐다. 이란이 언제까지나 친미 노선을 가게 될 거란 미국 예상은 빗나갔다. 미국을 등에 업은 팔레비 국왕이 반대파와 국민을 탄압했다. 모사데크 계열의 민족주의 노선,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이슬람 노선, 무자헤딘 등 무장노선이 모두 반 왕정 전선에 뛰어들었다.결국 1979년 1월 팔레비 국왕은 미국 보호를 받으며 이란을 떠났다. 1964년 체포됐다 추방돼 터키, 이라크, 프랑스 등을 떠돌던 호메이니가 2월 귀국했다. 4월 1일 국민투표에 이어 그는 이슬람 공화국을 선포한다. 미국과 이란이 다신 돌아올 수 없는 역사의 선을 넘게 되는 사건은 1979년 11월에 일어났다. 이란 학생들은 테헤란 미국 대사관을 습격해 인질 52명을 444일 동안 억류하며, 암 치료를 구실로 미국에 입국한 팔레비 왕을 이란으로 송환하라고 요구했다. 대사관 점거 사건으로 미국과 이란의 국교는 단절됐고 이후 공식적으로 결코 복원되지 않았다. 양국 사이 증오는 미국이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를 지원하면서 더 깊어졌다. 이라크에서 집권한 수니파 사담 후세인은 자국민 65%에 해당하는 시아파가 옆 나라 이란의 혁명에 휩쓸릴 것을 두려워해 선제공격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지원했음에도 8년에 걸친 전쟁은 이란 승리로 끝났다. 당시 이란 혁명수비대(IRGC)에 입대한 솔레이마니는 이 전쟁에서 커다란 전공을 세워 국민 영웅이 됐다.미국은 수십년째 이란을 ‘테러 지원국’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는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처음 선포한 것이다. 그런데 이란-이라크 전쟁 중이던 1986년 레이건 대통령은 앞에선 이라크를 지원하며 뒤로는 이란에 무기를 판매한 사실이 드러났다. 레바논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에 붙잡힌 미국인 석방에 이란이 도움을 줄 거라 기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란이 실수로 미사일을 발사해 우크라이나항공 소속 여객기를 격추했다는 사실에 세계가 황망함을 금하지 못하고 있지만, 1988년엔 미국이 이란에 똑같은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당시 호르무즈해협에서 이란 선박과 무력을 주고받던 미국 군함 빈센호는 290명이 타고 있던 이란 항공 소속 에어버스 A300 여객기를 전투기로 오인해 격추시켰다. 미국은 실수라고 했지만 이란은 지금도 고의로 보고 있다. 솔레이마니는 1997년 IRGC 내에서 해외 작전을 주도하는 엘리트 쿠드스 부대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그는 이때부터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등 시아파 지역에 국가 자산을 투입해 민병대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이란 용병 역할을 하는 준군사조직들을 만들어 지원했다. 민병대들은 현재 10만여명 규모로 성장했으며 중동에서 이란 대리군으로 미국에 대항하는 비대칭전력(상대가 보유하지 못하거나 상대보다 월등히 많은 전력)이 됐다. 2002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새해 국정연설에서 이란을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표현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공동의 적’인 탈레반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미국을 뒤에서 은밀히 도와주던 이란은 부시 전 대통령의 연설에 분노했다. 다음해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란에서 고농축 우라늄 흔적을 발견했다. 2005년 강경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취임한 뒤 이란은 국제사회와 핵 문제로 빈번하게 충돌했다. 수많은 제재로 이란은 경제에 큰 타격을 받았다. 수십년간 갈등 일로를 걸었던 두 국가 사이에 극적으로 온기가 돌던 때가 있었다. 2013년 취임한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취임 한 달 뒤인 9월 오바마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 양국 정상의 통화는 30여년 만에 처음이었다. 당시 두 정상의 합의를 바탕으로 미국, 이란,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 등은 2015년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을 체결했다. 이란이 민감한 핵 활동을 자제하고 이를 국제사회가 점검할 수 있도록 하는 대가로 미국 등은 제재 일부를 해제하는 게 골자다. 그러나 2017년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해 5월 JCPOA에서 미국을 탈퇴시키고 이란에 다시 전면적 제재를 가했다. 양국 간 긴장의 골은 계속 깊어져 갔다. 특히 지난해 5~6월 호르무즈해협에서 이란은 외국 유조선 6척을 나포했다. 6월 이란은 호르무즈 상공에서 미국 드론을 격추시켰고 트럼프는 공습 명령을 내렸다 취소하기도 했다. 9월엔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이 드론 공격으로 파괴됐는데 국제사회는 이 역시 이란의 공격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 일련의 갈등과 긴장 고조는 자신의 서명으로 새 핵합의를 체결하려는 트럼프와 미국 제재로 경제 위기에 몰린 이란의 적대 행위로 요약된다. 지난 8일 이란의 우크라니아 여객기를 오인 격추한 뒤로, 유럽이 이란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미국 탈퇴와 이란의 협의 이행 축소 조치로 흔들리는 핵합의 틀 안에서 트럼프를 비판하고 합의 보존을 위해 분투하던 유럽이었다. 유럽 JCPOA 서명국들은 지난 14일 합의 유효성을 논의하는 분쟁조정절차 착수를 선언했다. 19일 영국과 프랑스 정상은 핵합의 계속 준수 의지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국을 연일 압박하는 가운데, 국내 비판에 몰린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내릴 결정에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세계대전 참전 군함 고철로 해체, 역사속으로 사라져

    세계대전 참전 군함 고철로 해체, 역사속으로 사라져

    경남 고성군 당항포 바닷가에 11년간 전시됐던 2차 세계대전 참전 군함이 고철로 해체돼 역사속으로 사라진다.고성군은 2007년 해군군수사령부로 부터 무상임대해 당항포 관광지 해변에 관람용으로 전시해 놓았던 군함 ‘수영함’이 오래돼 낡아 전시 부적합 판정을 받음에 따라 해군군수사령부에 반납했다고 16일 밝혔다. 군은 이날 당항포항에서 ‘해군 퇴역함 인도 행사’를 한 뒤 함정을 해군에 돌려주었다. 이날 해군에 반납된 수영함은 1944년 미국에서 건조돼 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 상륙작전 등에 투입됐다. 1958년 우리나라에 인도돼 1964년부터 파월장병 수송, 팀스피리트 상륙훈련, 해군사관생도 연안실습 훈련 등에 참여하다 2005년 12월 29일 퇴역했다.고성군은 안보 홍보와 당항포 관광지에서 열리는 고성공용엑스포 볼거리 제공 등을 위해 2007년 해군군수사령부로 부터 무상으로 임대해 당항포 해변에 전시했다. 고성군에 따르면 수영함을 임대할 당시 오래돼 낡은 군함이어서 전시용으로 효용가치가 낮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홍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 임대·전시를 했다. 수영함은 2017년 전문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안전진단 결과 군함 전체가 부식이 심해 안전문제로 전시에 부적합 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군은 수영함 전시·공개를 중단하고 2018년 8월 해군에 수영함 반납을 요청했다. 군은 수영함을 임대해 정박과 도색작업, 내부 시설 설치·수리 등 그동안 보수·유지하는데 13억 4289만 7000원이 들어갔다고 밝혔다. 해군은 고성군의 반납 요청에 따라 수영함 선체 안전진단과 실무회의 등을 거쳐 군함을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지난해 12월 매각 입찰을 했다. 입찰결과 밀양시에 있는 자원재활용업체인 가야자원이 3억 5550만원에 수영함을 낙찰받았다. 수영함을 매입한 자원재활용업체는 이날 군함을 전남 목포시에 있는 한 조선소로 옮겨 고철 재활용을 위해 해체할 예정이다. 당항포 바닷가에 군함 수영함과 나란히 전시돼 있던 상륙장갑차도 이날 소유기관인 해병대 군수단(경북 포항시)에 반납됐다. 고성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차이잉원 “대만 이미 독립국”…中 강력반발

    차이잉원 “대만 이미 독립국”…中 강력반발

    지난 11일 치러진 대만 총통(한국의 대통령 격)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차이잉원 총통이 “대만은 이미 독립 국가여서 별도의 독립 선언이 필요없다“고 밝혔다. 차이 총통은 14일(현지시간) 재선 뒤 처음 가진 BBC 인터뷰에서 “중국은 현실을 직시하고 대만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이미 독립된 하나의 국가이고 자신을 (중화 타이베이가 아닌) 대만으로 부른다”고 강변했다. 중화 타이베이는 국제사회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반영해 대만을 부르는 이름이다. 그는 “상황이 변했다. 이제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는 과거에 기대했던 바를 이룰 수 없게 됐다.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바로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차이 총통은 중국이 지난 3년간 대만 해협에 군함과 군용기를 보내는 등 대만을 위협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과의 전쟁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리는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스스로 방어 능력을 키우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5일 정례브리핑에서 차이 총통의 발언에 대해 “세계에는 오직 하나의 중국이 있을 뿐”이라며 “중화인민공화국은 유일하게 중국을 대표하는 합법적인 정부”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대만은 중국과 뗄 수 없는 일부분”이라며 “하나의 중국 원칙은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공동 인식”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대만 업무를 총괄하는 국무원 대만판공실의 마샤오광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중국은 평화적인 통일을 위한 공간을 확대하길 원한다. 그러나 대만의 독립 분열 행위에 대해서는 어떠한 여지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대만 反中에 다시 불붙는 홍콩… 美는 ‘中 길들이기’ 지렛대로

    대만 反中에 다시 불붙는 홍콩… 美는 ‘中 길들이기’ 지렛대로

    지난 11일 치러진 제15대 중화민국 총통(한국의 대통령 격) 선거에서 대만 유권자는 자신들을 이끌어 갈 지도자로 차이잉원 총통을 다시 한번 선택했다. 대만 독립 성향의 차이 총통은 첫 번째 임기(2016~2020) 내내 정치력 미숙 등으로 부정적 평가를 면치 못했다. 그럼에도 그가 재선에 성공한 것은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압박으로 반사이익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도 차이 총통은 대만 독립 노선을 고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양안(중국과 대만) 갈등이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이 군사적 위협 수위를 더욱 높이고 대만의 수교국들도 속속 단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대만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미국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11월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대만 문제를 지렛대 삼아 ‘중국 길들이기’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13일 인민일보 등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차이 총통이 재집권하자 중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차이 총통이 재선 일성으로 “(중국의) 어떤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곧바로 엄포를 놓은 것이다. 전날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라고 못 박았다. 겅 대변인은 “대만 정세가 앞으로 어떻게 변하든지 세계에는 단 하나의 중국만이 존재하고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사실은 달라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이 차이 총통의 당선을 축하한 것과 관련해 “이들 국가의 행동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중국은 이에 대해 강력한 불만을 표명하며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특정 사안에 대해 외교적 경로로 항의할 때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는 표현을 쓴다.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는 공동사평(사설)에서 “차이 총통이 중국 위협론을 내세우고 대선 경쟁자였던 한궈위 가오슝 시장을 모함하는 전략을 사용했다”면서 “대만 독립이라는 급진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토로했다. 차이 총통이 대선 역사상 최다득표로 당선되면서 대만 독립 추구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을 차단하려는 베이징의 우려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실제로 대만 총통 선거 결과가 당장 홍콩 정세에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12일 홍콩 시민 3만여명이 도심에서 시위를 벌였다. 올해 9월 치러질 입법회(한국의 국회 격) 선거에 대만처럼 완전 직선제를 도입하자는 취지였다고 홍콩 명보가 13일 보도했다. 이에 맞서 홍콩 정부는 12일 국제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 대표의 홍콩 입국을 금지했다. 그가 홍콩 시위 사태 확산에 불을 붙일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조만간 중국이 대만에 대해 직간접적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린잉위 대만 국립중정대 교수는 중국 군용기가 대만을 위협 비행하는 등 중국이 군사적 위협을 가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양안 관계는 2016년 차이 총통이 집권하면서 크게 나빠졌다. 중국은 차이 총통 집권 1기 때부터 군사, 외교, 경제 등 다양한 방법으로 대만을 압박했다. 지난해 8월에는 중국인들의 대만 자유 여행도 제한해 연간 1조원이 넘는 경제적 타격을 가했다. 중국 전투기가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어 대만 전투기와 대치하고 중국 군함과 군용기들이 대만을 포위한 형태로 훈련하는 일도 잦아졌다. 앞으로 이런 ‘전통적 방식의 위협’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대만 전문가인 리모시 리치 미 웨스턴켄터키대 교수는 “얼마 남지 않은 대만의 수교국들이 관계를 단절하고 중국과 새로 수교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은 차이 총통 집권 뒤로 ‘차이나 머니’를 내세워 대만의 외교적 고립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태평양 지역에 있는 대만의 오랜 우호국들을 잇따라 단교시켜 자신의 편으로 돌려놨다. 중국으로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미군이 지배하는 태평양 지역에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차이 총통이 취임한 뒤 엘살바도르와 도미니카공화국, 부르키나파소, 상투메프린시페, 파나마, 솔로몬제도, 키리바시 등 7개국이 대만과 단교했다. 대만과 외교 관계를 맺은 국가는 15개국으로 줄었다. 대부분 정치적 영향력이 크지 않은 나라들이다. 차이 총통의 두 번째 임기(2020~2024)에도 중국발 ‘단교 도미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대만은 2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 미국, 러시아 등과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위상이 커지면서 미국이 수교에 나서려 하자 1971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유엔에서 탈퇴했다. 시간이 갈수록 대만의 외교적 고립이 가팔라지는 모양새다. 미국은 대만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는 국가를 제재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등 비공식적 동맹을 지켜 주고자 노력하지만 성과는 그리 크지 않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밝혔다. 미중 관계도 더욱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스인훙 중국 인민대 교수는 “차이 총통 재집권 뒤 직면할 중국의 큰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다. 그는 대만에 대해 적극적인 외교·군사적 지원책을 펴고 있어 중국의 ‘마지노선’을 시험하고 있다”고 했다. 스 교수는 “중국의 가장 큰 어려움은 트럼프 행정부가 인도·태평양 전략(호주와 일본, 인도 등이 연대해 중국 견제) 요충지에 대만을 포함하고자 한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을 사실상의 국가로 인정하고 대만에 첨단무기 수출을 승인했다. 중국의 강한 반발에도 차이 총통에게 힘을 실어 줬다. SCMP는 “차이 총통 재선 승리로 대만에 대한 중국의 압박이 더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대만을 보호하려는 미국의 지원도 계속될 것”이라면서 “지금도 긴장 상태인 미중 관계에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고 풀이했다. 즉흥적 성격의 트럼프 대통령과 ‘힘의 외교’를 추구하는 시 주석이 대만 문제를 매개로 초유의 갈등 상황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미 대선과 미중 2단계 무역협상이 대만 정책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린 교수는 “중국 입장에서 지금의 대만 정책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양안 관계가 얼어붙을수록 대만인들의 마음도 차가워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중국은 (대국적 차원에서) 양안 교류를 일정 부분 복원해 관계 회복을 모색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차이 총통이 급진적 노선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일국양제 수용 요구를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인내의 한계’로 여기는 독립 선언을 추진하는 것도 아니다. 냉엄한 국제사회 질서 속에서 대만의 처지를 이해하고 ‘현상 유지’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전략은 학자 출신으로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상대방을 설득하는 차이 총통 특유의 기질에서 비롯됐다는 견해가 많다. 같은 당 천수이볜 전 총통의 과오에 대한 학습효과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진보당 소속 첫 총통이 된 천수이볜은 자신의 임기(2000~2008)에 대만 독립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선언해 중국의 분노를 샀다. 그는 미국에서조차 ‘골칫덩이’라는 평가를 받아 고립을 자초했다. 민진당에는 ‘비현실적’, ‘급진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결국 천수이볜은 2008년 대선에서 국민당에 정권을 내줬다. 민진당도 해체 직전까지 몰리는 위기를 겪었다. 현재 차이 총통은 중국에 대한 자극을 최소화하면서도 미국과는 ‘사상 최고 수준’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도 무역전쟁을 계기로 중국을 견제하고자 대만의 전략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차이 총통의 ‘전략적 인내’가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가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대만 첫 여성 총통 차이잉원 재선 성공…그는 누구

    대만 첫 여성 총통 차이잉원 재선 성공…그는 누구

    통일도 독립도 추구하지 않는 ‘현상 유지’ 대만 독립 성향의 첫 여성 총통 차이잉원이 11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야당인 중국국민당 후보 한궈위 가오슝 시장은 이날 “차이잉원 총통에게 방금 당선 축하 전화를 했다. 선거 결과에 승복한다”고 밝혔다. 차이 총통은 당선을 확정 지은 후 무대에 올라 “매번 선거가 열릴 때마다 대만은 민주·자유적 생활 방식과 국가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보여줬다”면서 “이번 선거는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대만이 주권과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을 때 대만인들이 결의를 더 크게 외칠 것이라는 것을 세계에 보여줬다”고 연설했다. 차이 총통은 그러면서 “국민이 선택한 정부는 절대로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선거 결과야 말로 가장 분명한 답안”이라고 강조했다. 홍콩 지방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압승한 데 이어 대만 유권자들까지 독립 성향의 차이 총통의 재선을 선택한 것은 중국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1월 대만에 일국양제 통일 방안을 받으라고 요구하면서 무력 통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중국 전투기가 20년 만에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어 대만 전투기들과 대치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항공모함을 포함한 중국 군함과 군용기들이 대만을 포위하듯이 둘러싸고 훈련하는 일도 잦아졌다. 중국은 지난해 8월부터 자국민의 대만 자유 여행을 제한함으로써 대만에 연간 1조원대로 추산되는 경제적 타격을 가했다. 이러한 압박은 대만인들의 반감을 불러왔다. 2018년 11월 지방선거 패배로 재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던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끌어올랐다.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된 홍콩의 민주화 시위 운동도 대만에서 반(反)중국 정서가 급속히 커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중국 관영 신화 통신 등 주요 매체들은 차이 총통의 재선이 확정되자마자 이를 신속히 보도했다.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차이잉원이 중국 위협론을 내세우고, 한궈위 후보자를 모함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민진당은 매번 선거 때마다 양안 간 긴장 관계를 이용했다”고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 차이총통은 1956년 타이베이에서 부유한 사업가인 차이제성의 딸로 태어났다. 차이 총통의 부친은 자동차 수리업으로 사업을 시작해 이후 부동산 투자로 영역을 넓혀 큰 부자가 됐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차이 총통은 엘리트 법학자로 성장했다. 대만 최고 학부인 대만대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와 런던정경대에서 각각 법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국립정치대학 등 대학에서 오랫동안 법학 교수로 일했다. 2016년 치러진 대선에서 국민당 주리룬 후보를 꺾고 대만의 첫 여성 총통이 됐다. 학자 출신인 차이 총통은 합리적이면서도 진보적인 정치 성향으로 상대적으로 젊은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편이다. 차이 총통은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성향이지만 총통 집권 후에는 급진적인 독립 추구 노선을 걷지 않아 중국을 먼저 자극하는 일을 만드는 것은 피하고 있다. 통일도 독립도 추구하지 않는 ‘현상 유지’에 방점이 찍힌 정책을 펴고 있다. 생존에 가장 중요한 국가인 미국과도 사상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열린세상] 2020 동북아 복잡한 정세를 돌파하려면/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특훈교수

    [열린세상] 2020 동북아 복잡한 정세를 돌파하려면/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특훈교수

    2020년 새해, 동북아 정세는 그 어떤 때보다 격랑의 도전을 받게 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구상 그 어느 곳에서도 없는 항공모함 보유 경쟁이 한국과 지정학적 관련이 있는 모든 국가 즉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2018년 12월 일본이 항모를 보유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나서 2020년 한국마저 항공모함 개념설계에 들어간다. 또 하나 동북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력경쟁은 전 지구적 측위 시스템(GPS) 구축 경쟁이다. 미국은 1978년 첫 GPS 위성을 발사해 총 24기의 인공위성으로 전 지구를 커버하고 있고 러시아는 2018년에 24기로 독자적인 GPS 시스템을 구축했다. 중국도 2018년 12월부터 전 세계를 상대로 GPS 시스템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위성 수는 총 35기이다. 일본은 미국의 GPS와 협동하면서 2018년부터 준천정위성시스템이라 하는 자체 GPS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국도 독자적인 GPS 구축 계획이 있으나 2034년을 목표로 하고 있어 아마도 2040년이나 돼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시간을 단축할 필요가 절실할 정도로 GPS 경쟁에서 가장 뒤처져 있다. GPS는 군함이나 전투기의 위치 측정, 미사일의 유도 등 군사용 목적으로만 쓰이지 않고 자동차의 내비게이션, 스마트 폰, 자율주행차의 사용 등에도 직결돼 있어 민간산업에서도 중요도가 높아져 가니 그 어떤 분야보다도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할 국책과제다.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고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세계 최고의 강대국인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면서 한국은 오로지 경제성장에 몰두한 결과 세계 10위권의 무역강국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도약해 감히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한국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벌어 가며 부강한 나라로 우뚝 서야 하는 지금 한국의 경제는 침체되고 동북아 정세는 빠른 속도로 험악해지고 있다. 혈맹인 미국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터무니없이 다섯 배나 인상해 달라고 하는 것도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다.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방탄소년단이 세계를 누빌 정도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한층 키워 놓았는데 향후 30년만 더 허리띠 졸라매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면 북한은 물론 일본과 중국도 무시 못할 대한민국이 될 터인데 국론이 분열되고 연일 싸움만 하고 있다. 마치 조선시대에 패거리를 지어 벌였던 극한 당쟁을 보는 듯 심대한 좌절감만 느껴진다. 2019년 말 중국에서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렸지만 한일 관계는 대립적 관계가 상당히 지속될 것 같고 중국은 고압적인 태도로 한국의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각을 세우며 대륙간탄도탄 발사나 핵실험 같은 수단으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 지정학적 관련이 있는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한국, 북한 중 가장 어정쩡한 국력으로 위기를 헤쳐나가야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미래가 걱정된다. 어정쩡하다는 것은 국력이 정체되거나 쇠퇴할 수도 있다는 위험한 신호다. 동북아 정세가 안정돼 시간을 충분히 벌고 온 국민이 단합해 준강대국의 반열에 올라서야 한국 외교의 지평이 넓어지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처지가 될 것인데 국내외 환경이 혼란스러우니 새해에는 국민 모두가 새로운 각오로 국가의 운명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다가올 30년을 철저히 대비하는 국가경영과 국민의 단합이 있어야 외세에 시달리지 않는 역사를 후손에게 남겨줄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늘 변화한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주둔하며 한국은 유례없는 국력의 신장을 성취했다. 그 저변에는 한미 동맹의 보호가 있었고 온 국민이 쉴 틈 없이 노력한 결과이다. 한국민 자체가 근면하고 밤을 세워 공부하는 청년들이 있어 한국 주변의 정세가 험난해지고 있어도 단합된 국민의 힘만 있으면 이 난관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해 본다. 험난해지는 2020년 동북아 정세도 한강의 기적을 이룬 국민의 단합으로 무난히 헤쳐 나가리라 본다. 2020년은 초강대국인 미군의 주둔을 국가안보의 보험으로 삼고 시간을 벌어가며 대한민국을 준강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국가목표를 높이 잡아 국가경영을 시작하는 원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 트럼프 “이라크, 미군 철수 요구 땐 보지 못한 수준의 제재”

    트럼프 “이라크, 미군 철수 요구 땐 보지 못한 수준의 제재”

    미국에 의한 이란군 실세 피격 사망 사건 이후 이란뿐 아니라 이라크와 레바논 등 시아파벨트 국가들의 반미 감정이 고조되면서 이슬람 무장세력들의 보복 공격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미국은 이라크 등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는 동시에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조직인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해 방어태세로 전환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이라크가 미군의 철수를 요구한다면 “이전까지 보지 못한 수준의 제재를 가할 것이다. 이란에 가한 제재는 약과로 보이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엄청나게 비싼 우리의 공군기지가 거기에 있다. 내가 취임하기 한참 전 수십억 달러를 들여 지었다”면서 “그것(건설비용)을 갚기 전에는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이라크 의회는 지난 3일 미국의 이라크 내 이란군 실세 폭격에 대한 반발로 ‘미군 철수 결의안’을 가결했다. 이라크 외무부도 이번 미국의 바그다드 공항 폭격이 주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미국을 제소했다. 이런 가운데 레바논의 친이란 시아파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는 이날 “가셈 솔레이마니의 사망에 대응하는 것은 이란만의 책임이 아니라 동맹국의 책임이기도 하다”면서 “미국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역내 미군 기지와 군함, 군인 등 미군의 존재를 겨냥하는 것은 공정한 형벌”이라고 보복 공격을 시사했다.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에서 이란 대리 세력이 일제히 궐기해 미국의 자산 및 인력에 대한 위협에 나선 것이다. 이란 군부 실세의 폭사로 미국과 이란 사이의 충돌 위기감이 고조되자 미 민주당이 의회 차원에서 전쟁을 막기 위한 행동에 공식 착수했다. 민주당이 다수당인 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 행동을 제한할 결의안을 이번 주 발의해 표결에 부칠 전망이라고 CNN방송이 5일 보도했다. 민주당 일인자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하원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현 행정부가 의회와 상의 없이 이런 행동을 취한 것에 우려한다”면서 “의회의 추가적인 조처 없이는 행정부의 대이란 군사 교전은 30일 이내에 끝나야 한다고 지정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고든 정의 TECH+] 미 해군의 자율항해 무인 선박, 앞으로 말도 한다?

    [고든 정의 TECH+] 미 해군의 자율항해 무인 선박, 앞으로 말도 한다?

    미 해군은 미 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함께 사람 없이 혼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자율 항해 무인 선박을 개발했습니다. 2018년 미 해군에 정식으로 인도돼 ‘시헌터’ (Sea Hunter)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대잠전(對潛戰) 연속 추적 무인함정(ACTUV)은 이것으로 미래 해상전의 양상을 바꿀 신무기로 주목되고 있습니다. 시헌터는 길이 40m가 조금 넘는 140t급 소형 선박으로 승무원 없이 최대 3개월 동안 작전을 수행하면서 적 잠수함을 탐지할 수 있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미 무인항공기(드론)는 공중에서 현대전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무기로 활약하고 있는데, 미군은 이에 더해서 자율항해 무인 선박 역시 새로운 핵심전력으로 개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군함은 운용하는 데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므로 일부만 무인화해도 상당한 병력을 절감하고 유사시 인명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헌터 같은 자율항해 무인 선박이 실전 배치되기 위해서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자율주행차와 마찬가지로 자율항해 선박 역시 사람이 조종하는 선박과 충돌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차선이나 교통 신호가 없는 해상에서 선박이 서로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제기구는 오래전부터 국제해상충돌예방규칙(COLREG·International Regulations for Preventing Collisions at Sea)을 만들었습니다. 시헌터의 자율항해 알고리즘은 이 규정에 완벽하게 따라 움직일 수 있게 개발됐습니다. 실제로 수년간에 걸친 시험 항해에서 씨 헌터는 다른 배와 충돌 없이 안전하게 항해했습니다. 하지만 운전과 마찬가지로 항해 역시 언제든지 돌발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국제해상충돌예방규칙은 충돌 경로에 들어선 두 선박이 어떻게 정보를 교환하고 규정에 따라 충돌을 피하는지 명시하고 있지만, 3척 이상의 배가 인접해서 항해하는 경우에는 너무 변수가 많기 때문에 결국 항해사의 무전을 통해 항로를 수정하고 충돌을 피하게 됩니다. 문제는 시헌터에 해상용선박무전기(VHF) 채널을 통해 무선 통신을 할 항해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미 해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지능 음성 비서와 비슷한 음성 인식 및 응답 시스템을 개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미 인공지능(AI) 스피커나 스마트폰에 탑재된 AI 음성 인식 기술은 상당히 발전했지만, 시헌터에 탑재될 음성 인식 및 응답 시스템은 실수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인식과 적절한 대응이 중요합니다. 특히 영어권 사용자 이외에 비영어권 사용자의 응답을 이해하고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미 해군은 3단계에 걸쳐 기술을 개발하고 실제 시헌터에 적응할 계획입니다. 성공한다면 스스로 장애물과 다른 선박을 인지하고 항해할 뿐 아니라 인간이 조종하는 선박에 사람처럼 무선 교신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 무인 선박이 등장할 것입니다. 마치 공상과학(SF) 영화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지만, 최근 자율주행 기술이나 음성인식 기술, 그리고 이와 연관된 AI 기술의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인간처럼 반응하는 항공기, 차량, 선박, 그리고 로봇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상이 그렇게 먼 미래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진=해상 시험 운전 중인 시헌터(DARPA 제공)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남중국해는 중국 앞 바다가 아니다”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남중국해는 중국 앞 바다가 아니다”

    청(淸)나라 북양함대 창립일인 지난달 17일. 중국 첫 자국산 항공모함인 ‘산둥(山東)함’이 남부 하이난(海南)성 싼야(三亞)의 군항에서 취역식을 갖고 인민해방군 해군에 인도됐다. 이날 행사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해군 부대원과 항모 건설 인원 등 5000여명이 항구에 도열한 채 축제의 분위기 속에 열렸다.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가 힘차게 게양되고 국가인 의용군(義勇軍)행진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시 주석은 직접 산둥함에 올려 의장대를 사열하고 각종 장비와 함재기 조종사의 상황도 둘러본 뒤 항해 일지에 서명했다. 시 주석은 “당과 인민을 위해 새로운 공을 세웠다”고 항모부대 장병과 항모 건설자들을 만나 격려했다. 인도식에는 딩쉐샹(丁薛祥) 당중앙판공청 주임, 류허(劉鶴) 부총리, 허리펑(何立峰)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주임 등이 참석해 행사의 무게감을 더했다. 2012년 취역한 첫 항모 ‘랴오닝(遼寧)함’은 옛소련 미완성 항모 바리야그를 사들여 개조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중국 국내 기술로 완성한 첫 ‘메이드 인 차이나’ 항모가 바로 산둥함이다. 랴오닝함보다 전투능력과 구조, 적재량이 크게 향상된 것으로 평가받지만 연료 탑재가 공간을 많이 차지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무기 탑재 공간이 줄어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재래식 디젤엔진으로 가동되는만큼 미국의 원자력 추진 항모보다 작전 거리도 훨씬 짧을 수밖에 없다. 최대 속도가 31노트로 랴오닝함의 32노트에 비해서도 다소 느린 산둥함은 길이 315m에 만재배수량(배에 물건을 가득 채웠을 때 배 무게 때문에 밀려나는 물의 양)이 7만t급인 구형 중형 항모이다. 중국이 러시아의 수호이(SU)-33을 복제해 개발한 중국산 함재기 젠(殲·J)-15를 36대 실을 수 있다. 젠-15의 수를 줄이고 대잠수함 능력을 갖춘 최신예 Z-18 헬기 등을 적재하면 44대까지 실을 수 있는 까닭에 랴오닝함에 비해 공격력이 앞선다. 중국 관영 인민일보 해외판이 운영하는 소셜미디어 협객도(俠客島)는 “산둥함이 이끄는 항모 전단은 남중국해에 투입돼 외국 군함과 직접 맞서게 될 것”이라며 “이는 (중국이) 공중과 해상을 지배하게 도울 것”이라고 야심찬 청사진을 내보였다.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동남아 국가들이 들끓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군사기지 건설하고 항모 배치를 서두르는 등 총력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남중국해는 석유와 가스 등 풍부한 천연자원이 매장돼 있는 데다 해상 물동량이 연간 5조 달러(약 5775조원)에 이를 정도로 중요한 해상 에너지 수송로인 까닭에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주변국들이 자원 영유권과 어업권 등을 놓고 끊임없이 분쟁하는 해역이다. 동남아 국가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시 주석 등 공산당 지도부가 참가한 가운데 중국 해군이 두 번째 항모이자 첫 독자 기술로 건조한 산둥함을 하이난성 싼야의 해군기지에 인도하는 성대한 행사를 열면서 촉발됐다. 산둥함이 남중국해 앞의 싼야에 배치되면서 앞으로 남중국해와 대만 해역 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南沙群島, 필리핀명 칼라얀 군도)의 피어리크로스 암초(永暑礁) 등 7곳을 인공섬으로 조성해 군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설들을 계속 설치함으로써 남중국해를 중국의 군사기지화한다는 주변국의 강력한 비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산둥함이 남중국해에 배치할 것이라는 중국 관영 매체의 보도까지 나오면서 반중(反中) 분위기를 부채질한 것이다.이에 따라 사이푸딘 압둘라 말레이시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구단선’ 주장에 대해 “남중국해 전체가 중국에 속한다는 중국의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비판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구단선’(九段線)은 중국이 1940∼1950년대 남중국해 주변을 따라 그은 U자 형태의 9개 선으로, 중국은 이를 근거로 남중국해 수역의 90%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사이푸딘 장관은 최근 유엔에 제출한 남중국해 관련 제안서를 옹호하면서 “누군가 우리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주장을 굳건하게 지켜나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말레이는 남중국해에 접한 자국 해안에서 200해리 수역을 넘는 대륙붕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은 제안서를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CLSC)에 낸 바 있다. 말레이가 이 지역에 존재하는 해저 자원에 대한 권리를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 제안서는 유엔 해양법 협약에 따라 말레이와 같은 연안 국가들은 대륙붕 자원에 대한 ‘주권적 권리’와 200해리를 초과하더라도 지형이나 지질 등이 충족되면 대륙붕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에 중국은 발끈했다. 중국 정부는 즉각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말레이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을 침해했다”며 강력하게 비판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 유엔이 말레이의 주장을 검토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베트남은 2009년 이후 처음으로 발간한 국방백서를 통해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기지화를 비판했다. 베트남 국방부는 남중국해의 중국군 동향을 거론하고 “우리는 우리의 독립, 주권, 영토 및 정치 체제를 해치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양보할 수 없는 투쟁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국제법 위반’, ‘일방 행동’, ‘베트남 주권 및 관할권 침해’ 등 사용 가능한 외교적 용어를 활용해 베트남 입장을 분명히 표현했다. 베트남은 지난 7월 이후 연이은 중국 석유탐사선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활동에 강력히 항의하며 중국과 각을 세우고 있다. 중국도 되받아쳤다. 중국군은 남중국해에서의 ‘돌발적 대치 상황’을 대비한 공세적 훈련을 실시했다. 중국 해군 항공대는 10종 이상의 적 무선신호를 식별하는 정찰 훈련을 벌였다. 기존 방어 개념에서 예방적 개념으로 전환된 것이다.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대한 강한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친중국정책’을 펴는 필리핀도 해안 경비대를 대폭 강화하면서 중국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필리핀은 올해 4000명, 내년에 6000명을 증강하는 등 2025년까지 해안경비대 2만 5000명을 증강해 갈수록 남중국해에서 위협적인 중국 해안경비대와 어선들에 맞선다는 방침이다.동남아 국가들이 남중국해를 싸고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오는 2021년 타결 시한이 다가오는 ‘남중국해 행동준칙(COC)’과 관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과 아세안(ASEAN)은 2002년 영유권 분쟁 악화를 막기 위한 ‘남중국해 분쟁당사국 행동선언(DOC)’을 채택하고, 구속력 있는 이행 방안을 담은 행동준칙을 2021년까지 타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콜린 코 싱가포르 난양(南洋)이공대 교수는 “남중국해 주변국들이 최근 목소리를 키우는 것은 2021년 COC 타결을 위한 협상에서 발언권을 키우고,COC 타결 전에 최대한 남중국해 내 지분을 획득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COC는 DOC의 구속력을 보장하기 위해 구체적 이행방안을 담을 예정이다. 미국도 가세해 동남아 국가들을 측면 지원에 나설 전망이다. 남중국해 COC 타결을 앞두고 미국이 이 지역에 대해 ‘항행의 자유’ 작전을 강화하며 영유권 분쟁을 부추길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남중국해 군사시설을 세우고 비행 훈련 등을 하며 이 해역을 실효지배 전략을 펴는 중국에 맞서 미국은 동맹국과 함께 이곳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지속적으로 펼칠 것이라는 얘기다. 콜린 코 교수는 “미국은 설사 COC가 타결되더라도 ‘항행의 자유’라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남중국해 주변국들에 상기시키기 위해 항행의 자유 작전을 계속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 러·우크라 “연내 전면휴전 합의”… 5년 반 만에 내전 끝내나

    러·우크라 “연내 전면휴전 합의”… 5년 반 만에 내전 끝내나

    포로 교환·철군 합의… 4개월뒤 회담 재개 러 병력 완전철수 등 일부 쟁점 이견 여전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정상회담을 통해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무력 분쟁을 끝내기 위한 완전하고 전면적인 휴전에 합의했다. BBC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중재한 가운데 처음 대면했다. 양국은 서면 공동성명을 통해 연말까지 모든 분쟁 관련 억류자 석방 및 교환에 합의했다. 또 우크라이나 내 6개 대치지역 중 양측이 기존에 철수한 3개 지역을 제외하고 남은 세 군데에서도 내년 3월 말까지 군을 철수시키고, 이행 점검을 위한 추가 회담을 4개월 뒤 열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러시아 지원과 지휘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분리주의 반군은 5년 반 동안 무력으로 충돌해 1만 3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내전은 2014년 3월 키예프에서 친러 성향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탄핵되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하면서 시작됐다. 친러 반군은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를 장악한 뒤 각각 분리·독립을 선언, 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에 군사작전으로 대응했다. 같은 해 9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러시아 군대와 중화기가 우크라이나 동부에 진입하고 있는 걸 확인했다. 지난해 11월에는 크림반도 인근 해역에서 우크라이나 군함 세 척이 러시아에 나포되는 등 양국 긴장은 최근까지 계속됐다. 배우 출신인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4월 동부지역에 평화를 다시 가져오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당선됐다. 그는 당선 뒤 러시아와 대화를 서둘러 재개하려 애썼고, 지난 6월 스타니차 루한스카, 졸로테, 페트리브스키 등 3개 지역에서 먼저 철군하는 등 다소 무리하다고 판단될 수 있는 러시아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여 강경론자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그 결과 지난 9월 양측의 대규모 포로 교환이 성사됐으며, 지난달에는 러시아가 나포했던 우크라이나 군함 3척을 풀어 주는 등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날 협상도 돈바스 지역에 특별 자치권을 허용하기로 한 젤렌스키의 통 큰 양보 덕에 마련됐다. 이날 휴전 협정에도 양국은 아직 해당 지역에 남아 있는 러시아 병력의 완전 철수, 분리주의자들의 별도 선거 허용 등에 관해서는 아직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푸틴은 돈바스 지역 특별 자치권을 우크라이나 헌법 개정을 통해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젤렌스키는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평화를 대가로 영토를 양보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해양굴기 노리는 中… ‘조선 공룡’ 속내는 최강 해군 건설

    해양굴기 노리는 中… ‘조선 공룡’ 속내는 최강 해군 건설

    중국에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造船) 공룡’이 등장했다. 중국 정부가 국유산업의 효율화 차원에서 1, 2위 국유 조선업체를 합쳐 세계 최대의 조선소를 설립한 것이다. 중국은 국내 1위 조선업체인 중국선박공업(中國船舶工業)그룹이 2위 조선업체인 중국선박중공(中國船舶重工)그룹을 인수해 ‘중국선박그룹’(中國船舶集團)을 새로 설립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지난달 27일 보도했다. 중국 국무원의 95개 국유기업 담당 부처인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國資委)는 앞서 25일 중국선박공업과 중국선박중공의 합병을 승인했다. 중국 정부는 1982년 제6기계공업부 소속 135개 기업을 한데 모아 중국선박공업총공사를 설립했다. 글로벌 수주 경쟁이 벌어지면서 중국 정부는 1999년 국제경쟁력과 효율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창장(長江·양쯔강)을 경계로 ‘남선’(南船) 중국선박공업과 ‘북선’(北船)인 중국선박중공으로 분리했다가 이번에 다시 합쳐 ‘남북선’(南北船) 한몸이 된 것이다. 중국 정부가 20년 만에 양대(兩大) 국유 조선사를 합병한 것은 내부 개혁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등 글로벌 조선업의 대형화 추세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두 회사의 합병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내건 ‘해양강국’ 건설을 위한 중요한 도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두 조선사의 합병이 완료됨에 따라 설립된 중국선박그룹은 산하에 147개 연구기관과 사업 부문, 상장기업 등을 거느리는 매머드급으로 거듭났다. 총자산은 1120억 달러(약 132조원) 규모이고 직원수는 31만명에 이른다. 중국선박공업의 지난해 매출액은 1144억 위안(약 19조 2000억원), 순이익은 25억 위안이다. 중국선박중공의 매출액은 3530억 위안, 순이익은 69억 위안이다. 두 조선사를 합친 연간 매출 규모(4674억 위안)는 현대중공업(8조 666억원)과 대우조선해양(9조 6444억원) 매출 합계의 4.5배에 이른다. 두 회사의 조선 건조량은 2018년 기준 중국선박공업이 925만t으로 세계 2위, 중국선박중공이 602만t으로 세계 3위에 해당한다. 양사의 수주 잔량도 5월 말 기준 1170CGT(표준환산톤수)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수주잔량(1571CGT)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영국 조선 분석기관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선박공업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11.5%, 중국선박중공은 7.5%를 각각 차지해 신설 중국선박그룹은 시장점유율이 19%로 뛰어올라 1위인 현대중공업(13.9%)을 누르고 단숨에 글로벌 최대의 조선사로 발돋움했다. 특히 중국선박그룹은 초대형 컨테이너선부터 항공모함까지 제작이 가능해 한국 조선사들이 집중하는 고부가가치 시장에서 거센 도전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 전문가들은 “고부가가치 선박에 주력하는 한국 조선사가 단기적으로는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저가를 무기로 공세를 펴면 한국 조선업계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더군다나 국내 조선사들이 참여하지 않는 크루즈선 시장에까지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는 만큼 세계 시장 지배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레이판페이(雷凡培) 중국선박그룹 회장이 밝힌 ‘청사진’이다. 인터넷 매체 중국경제망 등에 따르면 레이 회장은 설립대회 이후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향후 그룹의 발전 계획과 관련해 3가지 사항을 거론했다. 첫 번째 계획은 강한 군대 건설을 꼽았다. 그는 우선 시 주석이 주창하는 군대를 강하고 흥하게 만드는 ‘강군흥군’(强軍興軍)의 책무를 잊지 않겠다고 밝혔다. 세계 일류 군대의 전면적 건설을 위해 일류 장비를 연구개발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레이 회장은 그룹의 두 번째 발전 계획으로 합병을 통해 세계 일류의 기업을 만들고 세 번째 발전 계획에서 해양방위장비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박차를 가하겠다며 해양 국방을 위한 중국선박그룹의 역할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선박공업과 중국선박중공으로 분리된 지난 20년간 군수산업으로 국가에 보답한다는 뜻의 ‘군공보국’(軍工報國)에 대한 초심을 잃지 않았고 강군흥군을 위해서도 총력전을 펼쳐 왔다고 말했다. 두 조선사가 납기일에 맞춰 항공모함과 핵잠수함, 대형 구축함, 수륙양용함 등 선진 함정 등에 대한 연구 및 개발, 생산으로 중국 해군의 현대화에 커다란 공헌을 해 왔다며 중국선박그룹의 가장 중요한 임무 또한 강한 중국 해군 건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콩 명보(明報)는 지난달 27일 중국의 첫 번째 항공모함인 랴오닝(遼寧)함과 중국이 자체 제작한 첫 국산 항모가 중국선박중공 산하의 다롄(大連)조선소에서 건조됐으며 중국의 두 번째 자체 제작 항모는 현재 중국선박공업 산하의 상하이 장난(江南)조선소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마카오 군사 전문가 황둥(黃東)은 “현재 중국의 군함 생산이 세계 1위”라며 “중국은 지난 10년간 ‘준전시 상태’의 속도로 군함을 건조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군사 투명도가 낮은 점을 고려하면 커다란 우려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대형 국유기업인 중국초상국그룹(招商局集團) 산하 중국초상국공업(招商局工業)그룹과 중국국제해운컨테이너(中集)그룹, 중국항공공업국제(航空工業國際)공사 간 전략적 합병이 논의되고 있다고 경제매체 차이쉰(財訊)이 전했다. 초상국공업이 국제해운컨테이너와 항공공업국제의 조선·해양 엔지니어링 부문을 흡수·합병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합병에 정통한 소식통은 “2~3년 전부터 이들 회사 간 합병이 추진돼 왔으며 실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합병을 주도하는 초상국공업은 이미 합병해 신설한 중국선박그룹, 중원해운중공(中遠海運重工)그룹에 이은 중국 3위 조선사다. 국제해운컨테이너의 경우 지난해 해양 엔지니어링 부문 손실이 35억 위안에 이른다. 항공공업국제는 화학제품 운반선 제조를 위한 조선소 2개를 소유하고 있을 뿐 주력 사업은 고급 전자제품의 생산·판매이다. 소식통은 “3개 기업이 합병하면 비용 절감이 될 뿐 아니라 두 회사가 자본 집약적인 조선 부문을 넘겨주면서 핵심 사업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선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주가 급감하면서 강력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세계 조선 강국이 되겠다는 청사진 아래 2017년 ‘선박공업 구조조정 심화 및 전환 업그레이드 가속을 위한 액션플랜’(실행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중국 정부의 1, 2위 조선사 합병 승인 조치가 현대중공업·대우조선의 합병에 긍정적일 수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이 합병하기 위해서는 유럽연합(EU)과 중국, 일본 등 6개국 공정거래 당국으로부터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중국이 자국 대형 조선사 합병을 허락했기 때문에 한국 조선사의 합병을 거부할 명분이 약해진다는 얘기다. 다만 중국 기업들이 한국 기업의 기술력을 바짝 따라오는 상황인 만큼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합병에 제동을 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초대형 조선사가 탄생하면 기술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KDB산업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 조선산업 경쟁력을 100으로 볼 때 일본은 99, 중국은 88이다. 한국과 중국의 선박 건조 기술 격차는 벌크선(산적 화물선)이 2.5년, 탱커(유조선) 4.2년, 컨테이너선 4.2년, LNG선은 7년가량이다. khkim@seoul.co.kr
  • 美, 222억弗 차세대 핵잠 9척 건조 계약

    美, 222억弗 차세대 핵잠 9척 건조 계약

    토마호크 40기 발사 가능, 공격력 강화 배수량 1.5배로… 수개월간 수중 작전태평양에서 해군력을 나날이 키우는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해군이 차세대 핵잠수함 9척을 건조하는 사상 최대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3일(현지시간) CNN은 전날 미 해군이 코네티컷 소재 방위산업체 제너럴 다이내믹스 일렉트릭 보트와 222억 달러(약 26조 5300억원) 규모의 핵추진 버지니아급 공격잠수함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2025~2029년엔 최신형 버지니아급 핵잠수함 9척이 미 해군에 추가된다. 버지니아급 핵잠수함은 현재 미국이 18척 보유, 10척 인수 예정인 해군 핵심 전력이다. 다른 잠수함과 수면 위 선박, 육상 목표물을 모두 공격할 수 있다. 미 해군은 노후된 로스앤젤레스급 핵잠수함을 버지니아급으로 대체하고 있다. 이번에 발주한 9척은 버지니아급 중에서도 성능이 탁월한 차세대 모델이다. 배수량이 1만 2000톤으로, 기존 버지니아급 잠수함(7800톤)의 약 1.5배이며, 길이도 기존 114.8m보다 긴 140.2m다. 특히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40기를 발사할 수 있어, 12기를 발사하는 기존 잠수함보다 공격력이 월등히 높다. 산소와 물을 자체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몇 달이고 잠수할 수 있다. 미 해군의 이번 잠수함 발주는 중국이 태평양에서 해군력을 급속히 키우는 데 비해 미군 잠수함이 부족하다는 경고가 나오는 가운데 이뤄졌다. 지난 8월 호주 시드니대 미국 연구센터 보고서는 미국이 중국 군사력 증강을 따라잡을 전략적 불능 위기에 처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중국 순항미사일, 초음속 기술, 지대공 방어체계 등 수면 위 전력이 갈수록 완벽해지고 있다”면서 “그럴수록 미국이 물속 전력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런던에 본부를 둔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지난해 연구결과에 따르면 2014년부터 최근까지 중국이 진수시킨 군함, 잠수함, 지원함, 수륙양용 함정은 현재 영국 해군이 보유한 전체 함대보다도 많았다. 2014~2017년 진수시킨 해군 함정의 배수량은 총 40만톤으로, 해당 기간 생산된 미군 함정 배수량의 두 배에 달했다. 지난 4월 현재 400여척의 군함과 잠수함을 보유한 중국 해군은 2030년 군용 선박을 530척 이상으로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 잠수함의 경우 아직은 미국 해군이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다. 중국은 약 60척으로, 대부분 디젤·전기의 힘으로 추진하는 소형이다. 미 해군 잠수함은 전부 핵잠수함이며, 지난 4월 로이터에 따르면 현역만 69척에 이른다. 칼 슈스터 전 미 태평양사령부 합동정보센터 작전국장은 이번 발주에 대해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서태평양 지역에서의 공격적 행동에 대한 미국의 가장 최근 대응”이라며 “중국을 적대시할 필요는 없으나 중국의 행동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사설] 일, ‘군함도 보고서’에 강제노역 명기 약속 지켜라

    일본이 지난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의 두 번째 후속 조치 이행경과보고서에도 한국인 강제노역 인정이나 강제동원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 사항 등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에 게재된 ‘일본의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후속조치 이행경과보고서’는 일본이 2017년 처음으로 제출했던 보고서에서 크게 달라진 내용이 없다. 일본은 지난 2015년 7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군함도를 비롯한 강제노역 시설 7곳을 포함한 메이지 시대 산업시설 23곳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일본은 당시 등재 과정에서 일부 시설에 한국인과 기타 국민이 자기 의사에 반하여 동원된 뒤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했다고 인정하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정보센터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은 2017년 12월 제출한 첫 번째 이행경과보고서에서 ‘강제’(forced)라는 단어를 명시하지 않고 “제2차 세계대전 때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전쟁에서 일본의 산업을 지원(support)한 많은 수의 한반도 출신자가 있었다”고 표현해 문제로 지적됐다. 정보센터도 나가사키현이 아니라 도쿄에 만들겠다고 했다. 산업시설의 부정적 역사도 알리라는 유네스코의 권고에 반하는 행위이자 범행현장을 은폐하려는 치졸한 꼼수이자 역사왜곡이다. 지난해 6월에 열린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 측에 ‘당사국 간 지속적 대화’를 독려하는 등의 결정문을 채택했지만 일본 정부는 주요 당사국인 한국의 지속적인 대화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번 보고서 역시 일본 정부가 이행 내용을 포함하지 않은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일본의 이런 행위는 국제사회와 했던 약속조차 뒤집는 것이다. 정부는 관련 시민사회단체 등과 함께 더 강하게 일본에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고 명기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 또 한국인 강제노역 인정·희생자 추모 빠져

    또 한국인 강제노역 인정·희생자 추모 빠져

    세계유산 등재 후속조치 이행 보고서 일본이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군함도 등 메이지 시대 근대산업시설을 등재하면서 한국인 강제 노역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으나 4년 후 제출한 두 번째 이행경과보고서에서도 이를 개선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3일 외교부에 따르면 전날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에 게재된 ‘일본의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후속조치 이행경과보고서’는 일본이 2017년 처음 제출했던 보고서에서 진전된 내용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 정부는 논평에서 “일본이 한국인의 강제 노역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보고서 역시 일본 정부가 이행 내용을 포함하지 않은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또한 “세계유산위원회가 지난해 6월 ‘당사국 간 대화’를 권고했음에도, 일본 정부가 주요 당사국인 우리 측의 지속적인 대화 요청에 응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보고서를 작성 및 제출한 데 대해서도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앞서 일본은 2015년 7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군함도를 비롯한 강제 노역 시설 7곳을 포함한 메이지 시대 산업시설 23곳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 국제적 논란이 일자 일부 시설에서 한국인과 기타 국민이 본인 의사에 반하게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했다고 인정하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정보센터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은 약속과는 달리 2017년 12월 제출한 첫 번째 이행경과보고서에서 ‘강제(forced) 노역’이라는 단어를 명시하지 않고 ‘제2차 세계대전 때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전쟁 전과 전쟁 중, 전쟁 후에 일본의 산업을 지원(support)한 많은 수의 한반도 출신자가 있었다’고 표현했는데 이번 보고서에서도 같은 입장을 반복했다. 정보센터도 해당 유산이 있는 나가사키현이 아닌 도쿄에 만들겠다고 하고, 그 성격도 ‘싱크탱크’라고 모호하게 규정했다.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목적이 아님을 시사한 것이다. 정보센터가 들어설 건물은 지난달 도쿄에 이미 완공됐다. 세계유산위원회는 2020년 6월 회의에서 결정문을 통해 일본이 이번에 제출한 보고서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이지만, 국제기구 특성상 일본에 후속 조치를 강제할 수는 없다. 등재 취소도 이뤄지기 힘들다. 현재까지 등록된 1700여건의 세계문화유산 중 등재가 취소된 경우는 단 두 건으로, 모두 보존에 문제가 있는 경우였기 때문이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일본, ‘군함도 보고서’에 ‘한국 강제노역’ 또 누락

    일본, ‘군함도 보고서’에 ‘한국 강제노역’ 또 누락

    日, ‘메이지 산업유산’ 두번째 이행경과보고서 제출또 ‘강제’(forced) 표현 빠져…정부 ‘유감 표명’ 논평일본 정부, ‘당사국 간 대화’ 권고 무시하고 협의 불응 일본이 이른바 ‘군함도’ 등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메이지시대 산업 유산의 두 번째 후속 조치 이행경과보고서에도 한국인에 대한 강제노역 인정이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 사항 등을 담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우리 정부가 유감을 표명했다. 3일 외교부에 따르면 전날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에 게재된 ‘일본의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후속 조치 이행경과보고서’가 일본이 2017년 처음으로 제출했던 보고서에서 크게 달라진 내용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은 지난 2015년 7월 세계유산위원회에 군함도를 비롯한 강제노역 시설 7곳이 포함된 메이지 시대 산업시설 23곳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일본은 당시 등재 과정에서 일부 시설에서 한국인과 기타 국민이 자기 의사에 반해, 즉 강제적으로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노역했다고 인정하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정보센터를 설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일본은 2017년 12월 제출한 첫 번째 이행 경과보고서에서 ‘강제’(forced)라는 단어를 명시하지 않고 “제2차 세계대전 때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전쟁 전과 전쟁 중, 전쟁 후에 일본의 산업을 지원(support)한 많은 수의 한반도 출신자가 있었다”고 표현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정보센터 역시 해당 유산이 위치한 나가사키현이 아니라 도쿄에 만들겠다고 해 논란이 됐다. 심지어 정보센터의 성격도 ‘싱크탱크’라고 해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목적이 아님을 시사했다. 이 정보센터가 들어설 건물은 지난달 도쿄에서 이미 완공됐다. 이렇게 되면 해당 시설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사실상 ‘반쪽의 역사’만 보여주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에 제출된 보고서에도 2017년 보고서와 비교해 진전된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이날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유감을 표명했다. 정부는 논평에서 “일본 측이 한국인의 강제 노역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를 취한 것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금번 보고서 역시 일본 정부가 상기 관련 이행 내용을 포함하지 않은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 “세계유산위원회가 ‘당사국 간 대화’를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주요 당사국인 우리 측의 지속적인 대화 요청에 응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동 보고서를 작성 및 제출한 데 대해서도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은 보고서에서 “관계부처와 지방정부, 유산 소유자 등 광범위한 당사자들과 정기적으로 대화했다”고 밝혀 ‘당사국 간(Between the concerned parties) 대화’를 국내 절차로 여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외교부 당국자는 “국제기구에서 ‘컨선드 파티’(Concerned Party)는 주로 당사국”이라며 “일본은 우리의 거듭된 대화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6월 열린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 측에 ‘당사국 간 지속적 대화’를 독려하는 등의 결정문을 채택한 바 있다. 정부는 “일본이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와 일본이 국제 사회에 약속한 대로 강제 노역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후속 조치를 성실히 이행할 것과 조속히 이와 관련된 대화에 응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2020년 6월 회의에서 결정문을 통해 일본이 이번에 제출한 보고서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이지만, 국제기구 특성상 일본에 후속 조치를 강제할 수는 없다. 등재 취소도 이뤄지기 힘들다. 현재까지 등록된 1700여건의 세계문화유산 중에서 등재가 취소된 경우는 단 두 건으로, 모두 보존에 문제가 있는 경우였기 때문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세계유산센터에 일본이 권고사항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각종 다자회의와 국제세미나 등을 통해서도 일본에 충실한 후속조치 이행을 촉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中, 美항모 홍콩입항 불허… 홍콩인권법에 반격

    中, 美항모 홍콩입항 불허… 홍콩인권법에 반격

    중국이 2일 미국 군함의 홍콩 입항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홍콩인권민주주의법’(홍콩인권법)에 서명한 지 4일 만에 중국 정부가 대응 조치를 내놓은 것이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이날부터 당분간 미국 군함과 함재기의 수리나 휴식을 목적으로 홍콩 입항을 허용하지 않으며, 홍콩 반정부 시위와 관련해 입장을 냈던 일부 비정부기구(NGO)를 제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항공모함 등의 홍콩 입항 불허가 언제까지 계속될지에 대한 질문에는 “미국의 실제 행동을 보라”고 답변했다. 화 대변인은 미국이 중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홍콩인권법 제정을 강행한 것은 국제법과 국제관계의 기본 원칙을 위반하고 중국 내정에 간섭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미국이 잘못을 바로잡아 홍콩 사무에 손을 쓰거나 중국 내정에 대한 어떠한 간섭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며 “중국은 홍콩의 번영과 안정은 물론 중국의 국가 주권과 안보, 발전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상황 변화에 따라 “필요한 추가 조치”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화 대변인은 “이들 비정부 기구들이 반중국 세력을 지원해 홍콩의 혼란을 조성했다”고 주장했다. 제재 대상 NGO는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를 비롯해 프리덤하우스, 미국국가민주기금회, 미국국제사무민주협회, 미국국제공화연구소 등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대마불사? 중국 세계 최대 조선사 출범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대마불사? 중국 세계 최대 조선사 출범

    중국에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造船) 공룡’이 등장했다. 중국 정부가 국유산업의 효율화 차원에서 1·2위 국유 조선업체를 합쳐 세계 최대의 조선소를 설립한 것이다. 중국은 국내 1위 조선업체인 중국선박공업(中國船舶工業·中船工業)그룹이 2위 조선 업체인 중국선박중공(中國船舶重工·中船重工)그룹을 인수해 ‘중국선박그룹’(中國船舶集團·CSG)을 새로 설립했다고 중국 국무원 기관지 경제일보의 인터넷판 중국경제망, 로이터통신 등이 지난 27일 보도했다. 중국 국무원의 95개 국유기업 담당 부처인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國資委)는 이에 앞서 25일 중국선박공업과 중국선박중공의 합병을 승인했다. 중국 정부는 1982년 5월 조선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제6기계공업부 소속 135개 기업을 한데 모아 중국선박공업총공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국 정부는 1999년 7월 1일 국제경쟁력과 효율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창장(長江·양쯔강)을 경계로 ‘남선’(南船)으로 불리는 중국선박공업과 ‘북선’(北船)인 중국선박중공으로 분가했다가 이번에 합쳐 ‘남북선’(南北船) 한몸이 된 것이다. 중국 정부가 20년 만에 양대(兩大) 국유 조선사를 합병하는 것은 내부적인 개혁 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등 글로벌 조선업의 대형화 추세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두 회사의 합병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내건 ‘해양강국’ 건설을 위한 중요한 도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두 조선사 간의 합병이 완료됨에 따라 설립된 중국선박그룹은 산하에 무려 147개 연구기관과 사업 부문, 상장기업 등을 거느리는 공룡 조선사로 거듭났다. 총자산은 1120억 달러(약 132조원) 규모이고 직원 수는 31만 명에 이른다. 중국선박공업의 지난해 매출액은 1144억 위안(약 19조 2000억원), 순이익은 25억 위안이다. 중국선박중공의 지난해 매출액 3530억 위안, 순이익은 69억 위안이다. 두 조선사의 합친 연간 매출 규모(4674억 위안)는 현대중공업(8조 666억원)와 대우조선해양(9조 6444억원) 매출 합계의 4.5배에 가깝다. 두 회사의 조선 건조량은 2018년 기준 중국선박공업이 925만t으로 세계 2위, 중국선박중공이 602만t으로 세계 3위에 해당한다. 양사의 수주 잔량도 5월 말 기준 1170CGT(표준환산톤수)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수주잔량(1571CGT)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선박공업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11.5%, 중국선박중공은 7.5%를 각각 차지해 신설 중국선박그룹은 시장점유율아 19%의 뛰어올라 1위인 현대중공업(13.9%)을 누르고 단숨에 세계 최대의 조선사로 발돋움한다. 특히 중국선박그룹은 초대형 컨테이너선부터 항공모함까지 제작이 가능하게 돼 한국 조선사들이 집중하는 고부가가치 시장에서 거센 도전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 전문가들은 고부가가치 선박에 주력하는 한국 조선사가 단기적으로는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저가를 무기로 공세를 펴면 한국 조선업계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더군다나 국내 조선사들이 참여하지 않는 크루즈선 시장까지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는 만큼 세계 시장 지배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레이판페이(雷凡培) 중국선박그룹 회장이 밝힌 ‘청사진’이다. 중국 인터넷 매체 펑파이(澎湃)에 따르면 레이 회장은 설립대회 이후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향후 그룹의 발전 계획과 관련해 3가지 사항을 거론했다. 첫 번째로 강한 군대 건설을 꼽았다. 그는 우선 시진핑 주석이 주창하는 군대를 강하고 흥하게 만드는 ‘강군흥군‘(强軍興軍)의 첫 번째 책무를 잊지 않겠다고 밝혔다. 세계 일류 군대의 전면적 건설을 위해 일류 장비를 연구 개발할 것이며 세계 일류 해군 건설을 위해 강대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역설했다. 레이 회장은 그룹의 두 번째 발전 계획으로 합병을 통해 세계 일류의 기업을 만들겠다고 말한 뒤 세 번째 발전 포부에서 해양방위장비 산업을 발전시키는데 박차를 가하겠다며 해양 국방을 위한 신설 중국선박그룹의 역할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분가한 지난 20년간 중국선박공업과 중국선박중공이 군수산업으로 국가에 보답한다는 뜻의 ‘군공보국’(軍工報國)’에 대한 초심을 잃지 않았고 강군흥군을 위해서도 총력전을 펼쳐 왔다고 말했다. 두 조선사가 납기일에 맞춰 항공모함과 핵잠수함, 대형 구축함, 수륙양용함 등 선진 함정 등에 대한 연구 및 개발, 생산으로 중국 해군의 현대화에 커다란 공헌을 해왔다며 중국선박그룹의 가장 중요한 임무 또한 강한 중국 해군 건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콩 명보(明報)는 27일 중국의 첫번째 항공모함인 랴오닝(遼寧)함과 중국이 자체 제작한 첫 국산 항모가 중국선박중공 산하의 다롄(大連)조선소에서 건조됐으며 중국의 두 번째 자체 제작 항모는 현재 중국선박공업 산하의 상하이 장난(江南)조선소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마카오 군사 전문가 황둥(黃東)은 “현재 중국의 군함 생산이 세계 1위”라며 “중국은 지난 10년 간 ‘준전시 상태’의 속도로 군함을 건조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군사 투명도가 낮은 점을 고려하면 커다란 우려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대형 국유기업인 중국초상국그룹(招商局集團) 산하에 있는 중국초상국공업(招商局工業)그룹과 중국국제해운컨테이너(中集)그룹, 중국항공공업국제(航空工業國際)공사 간 전략적 합병이 논의되고 있다고 경제매체 차이신(財訊)이 전했다. 초상국공업이 국제해운컨테이너와 항공공업국제의 조선·해양 엔지니어링 부문을 흡수·합병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합병에 정통한 소식통은 “2~3년 전부터 이들 회사 간의 합병이 추진돼 왔으며 실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합병을 주도하는 초상국공업은 이미 합병돼 설립된 중국선박그룹, 중원해운중공(中遠海運重工)그룹에 이은 중국 3위 조선사다. 국제해운컨테이너의 경우 지난해 해양 엔지니어링 부문 손실이 35억 위안에 이른다. 항공공업국제는 화학제품 운반선 제조를 위한 조선소 2개를 소유하고 있을뿐 주력 사업은 고급 전자제품의 생산·판매이다. 소식통들은 “3개 기업이 합병하면 비용 절감이 될 뿐 아니라 두 회사가 자본 집약적인 조선 부문을 넘겨주면서 핵심 사업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선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주가 급감하면서 강력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세계 조선 강국이 되겠다는 청사진 아래 2017년 ‘선박공업 구조조정 심화 및 전환 업그레이드 가속을 위한 액션플랜’(실행계획)을 내놓기도 했다.한편 중국 정부의 1·2위 조선사 합병 승인 조치가 현대중공업·대우조선의 합병에 긍정적일 수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이 합병하기 위해서는 유럽연합(EU)과 중국, 일본 등 6개국 공정거래 당국으로부터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중국이 자국 대형 조선소 합병을 허락했기 때문에 한국 조선소의 합병을 거부할 명분이 약해진다는 얘기다. 다만 중국 기업들이 한국 기업의 기술력을 바짝 따라오는 상황인 만큼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합병에 제동을 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초대형 조선소가 탄생하면 기술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KDB한국산업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 조선산업 경쟁력을 100으로 볼 때 일본은 99, 중국은 88이다. 한국과 중국의 선박 건조 기술 격차는 벌크선(산적 화물선)이 2.5년, 탱커(유조선) 4.2년, 컨테이너선 4.2년, LNG선은 7년 가량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軍, 불법 환적 의심 北상선 승선검사 안 해

    軍, 불법 환적 의심 北상선 승선검사 안 해

    해당 선박 AIS 끄고 검색 무시한 채 남하 군 “中선박 오인”… 대북제재 위반 가능성지난 27일 북방한계선(NLL)을 남하했던 북한 상선이 운항 기록을 추적할 수 있는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켜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선박이 대북제재를 위반하고 석탄이나 석유를 밀거래할 때 주로 AIS를 끈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가 해당 선박에 대한 승선검사를 하지 않은 것을 두고 의혹이 커지고 있다. 28일 합참에 따르면 북한 상선은 지난 27일 오전 5시 50분 백령도 전탐감시대 레이더에 최초 포착됐다. 북한 상선은 중국 어선과 함께 있다가 오전 6시 40분쯤 NLL을 통과해 남하하기 시작했다. 군 당국은 신원 확인을 위해 통신검색을 수차례 실시했으나 응답하지 않았다. 이후 계속 남하하던 북한 상선은 오전 11시쯤 한국 영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해군 군함이 현장에 출동했지만 선박에는 국기도 걸려 있지 않았고 선체에 이름도 없었다. 12시 30분쯤 호위함이 상선과 가깝게 접근해 조타실 유리창 위에 표기된 번호를 찾아낸 뒤에야 국제해사기구에 등록된 북한 선박 번호임을 확인했다. 군은 경고통신을 두 차례 실시했음에도 북한 선박이 계속 기동하자 12시 40분쯤 10여발의 경고사격을 했다. 북한 상선은 이때서야 “날씨가 안 좋고 기관고장으로 해주항으로 들어가겠다”는 교신을 했고, 오후 11시 30분쯤 서해 원해 쪽으로 완전히 벗어났다. 이날 군 당국이 해당 선박에 대해 북한 선적임을 확인한 것은 NLL 남하 이후 약 6시간 만이었다. 이에 대해 군은 중국 선박으로 오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해의 경우 제3국 상선의 자유 항해가 가능하다. 군 관계자는 “북한 상선이 남하한 경로는 통상 중국 어물 운반선이나 어선들이 보급하기 위해 자주 통하는 항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승선검사를 하지 않는 것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AIS를 끈 북한 선박이라면 대북제재 위반을 의심하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9월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이 제재 대상으로 추가할 것을 권고한 북한 선박 6척, 미 재무부가 불법 환적을 의심하고 있는 선박 25척 등의 운항 기록을 분석한 결과, 최근 3달 사이에 AIS를 켠 선박은 6척에 불과했다. 특히 북한 상선이 NLL을 남하하기 전 중국 어선군과 섞여 있었다는 점도 해상 석유 밀거래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다만 군 관계자는 “국제법상 공해상에서 채증 자료 없이 승선 검색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미국이 ‘항행의 자유’ 작전한 남중국해에 항모 보내는 중국

    미국이 ‘항행의 자유’ 작전한 남중국해에 항모 보내는 중국

    에스퍼 美국방장관 “남중국해 인접국들도 참가해야”겅솽 中외교 대변인 “군함 보내는 미국, 긴장 원인”美국방부, ‘中 남중국해’ 반발 베트남에 쾌속정 제공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자 남중국해에서 최근 잇따라 펼치는 ‘항행의 자유’ 작전에 입접국의 공개적인 참여를 요구한 가운데 중국의 새로운 항공모함이 남중국을 향하고 있어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21일(현지시간) 미 군함이 이번 주 두 차례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섬들 인근을 항해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미군 미사일 구축함인 ‘웨인메이어’(DDG-108)가 파라셀 군도(중국명 시사군도·베트남명 호앙사 군도)를 항해했다고 리안 몸젠 7함대 대변인이 밝혔다. 몸젠 대변인은 “이들 작전은 합법적이었으며, 모든 국가에 허용된 바다와 하늘에 대한 합법적 이용과 자유, 권리 수호를 위한 우리의 책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앞서 지난 20일에는 연안전투함 ‘개브리엘 기퍼즈’가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군도·필리핀명 칼라얀 군도·베트남명 쯔엉사군도)의 팡가니방 산호초의 12해리(22.2km) 이내 해역을 항해했다. 남중국해를 두고 미국과 중국은 해묵은 신경전을 교환했다.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장관)은 지난 18일 아세안확대 국방장관회의(ADMM-Plus)가 열린 태국 방콕에서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을 만나 남중국해에서 무력을 과시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에스퍼 장관은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전략적 목표를 위해 무력과 위협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이와 관련해 중국의 2번째 항공모함이자 최초의 독자 건조 항공모함이 시험 항해에서 대만해협을 지나 남중국해를 향하고 있다고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가 19일 전했다. 아직 이름이 붙지 않은 이 항공모함이 남중국해 항해 후 해군기지에서 취역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싼야는 남중국해의 문 앞이면서도 대만에서도 멀지 않은 위치이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이 ‘항해의 자유’를 명분으로 툭하면 군함을 남중국해로 보내는 것이야말로 남중국해 긴장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미국은 남중국해 인접국을 지원하면서 항행의 자유 작전 참여를 주장하고 나섰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이날 “우리 모두 매우 공개적으로 주권을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집단적인 행동이 중국이 올바른 길로 가도록 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가 보내려고 하는 분명한 신호는 중국 자체를 반대한다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 국제법을 지지하고 있으며 중국도 그것을 준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작년에 (남중국해에서) 지난 20여년간 했던 것보다 더 많은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펴 국제법 준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에스퍼 장관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에 가장 강하게 반발하는 베트남에 연안 경비용 쾌속정을 제공하기로 했다.중국은 남중국해의 산호섬에 군사시설과 같은 인공 구조물을 건립하면서 이 해역의 90%가량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인근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과 영토갈등을 빚고 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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