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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최신 항모 ‘레이건호’ 日로 출항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 해군의 최신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호(CVN-76)’가 한반도를 비롯해 서태평양을 관할하는 미 해군 7함대에 배속돼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기지를 27일 출발, 일본으로 향하고 있다고 미 해군이 28일 밝혔다. 레이건호는 그동안 일본 요코스카항을 중심으로 활동해오다가 정비에 들어갈 예정인 항공모함 키티호크호를 대신해 작전을 수행하고 서태평양 지역에서 각종 훈련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또 키티호크호의 정비를 마치는 대로 귀환할 계획이다. 키티호크호는 6개월 동안 정비하게 된다. 특히 로널드 레이건호는 제14항공모함비행단의 전투기 및 공격기 70∼80대, 조기경보기, 전자전지원기를 탑재하게 된다. 또 제7구축함 전대를 동행하고 임무에 들어가 서태평양지역 미 해군의 전력이 상당 정도 증강될 것으로 분석된다. 항공모함 중 가장 큰 규모인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레이건호는 지난해 7월까지 걸프만과 서태평양에서 ‘첫 임무’를 마친 뒤 6개월만에 다시 작전에 투입되게 됐다. 레이건호는 미 해군의 현역 항모 12척 중 가장 최근인 2003년에 취역한 니미츠급 항모(초대형 핵추진 항모)로, 항공기 80여대를 싣고 한번의 연료 보급으로 20년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레이건호의 한반도 인근 배치는 최근 F-117 스텔스 전폭기 비행대대의 한반도 배치 및 F-22 최신예 전투기의 일본 배치에 뒤이어 나온 것이어서 북한의 추가적인 핵실험 움직임 및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한편 레이건호는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해군함대 대응작전계획(FRP)에 따라 서태평양지역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며 함대 대응작전계획은 지구상의 어떤 임무에도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능력을 미군에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dawn@seoul.co.kr
  • 美는 압박?

    취임 뒤 처음으로 이라크 바그다드를 방문한 로버트 게이츠 신임 미 국방장관은 “최근 몇 주간 걸프(페르시아만)에 해군을 증원했다.”고 22일 밝혔다. 게이츠 장관은 방문 마지막 날인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사실을 밝힌 데 이어 “여기에서 내가 배우고 느낀 것에 대한 보고서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에게 제출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엿다. 게이츠 장관의 발언은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對)이란 제재 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그는 해군 증파가 이란의 핵 논란을 겨냥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이란 뿐 아니라 모든 나라에 미국이 걸프에 계속 주둔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게이츠 장관은 미국이 두번째 항공모함을 걸프에 배치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선 “모르는 일”이라며 직접 언급을 회피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유엔의 제재안 결의에 따른 이란의 군사적 도발을 막기 위해 지난 12일 미국이 바레인 마나마항에 군함 2대를 추가배치했다고 이날 보도했다.이 신문은 또 영국도 지뢰제거선 2대 등 걸프지역에 해군력을 2배로 증강해 순찰 뿐 아니라 걸프지역 국가 해군과 합동 해상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두바이 연합뉴스
  • [이문열 소설 정치성 논란] 소설속 ‘한야대회’ 시국성토 쟁점

    45장으로 구성된 ‘호모 엑세쿠탄스’(처형하는 자라는 뜻)의 36,37장에 논란이 되는 글이 집중돼 있다. 퇴역한 정치인, 검찰과 경찰, 안기부의 고위 공무원, 장성들이 양평의 남한강변에서 벌이는 ‘한야(寒夜)대회’의 시국성토 등이 그것이다.“북한을 주적으로 경계하고 있다가 적절한 반격으로 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끈 제독은 진급에서 누락되어 퇴역하고 주적이 아니라서 어물거리다가 군함과 장병을 잃은 제독은 시말서 한 장 쓰지 않았다.”고 주적문제를 꼬집었다.“고시합격보다 학생운동 경력이 출세하고 고위직에 이르는 데 지름길”,“시민운동이 가장 효과적인 엽관(獵官)의 수단”이라며 현 정부의 인사문제를 공격했다.“전교조 핵심에 침투한 친북극좌세력은 아이들을 인민공화국 인민으로 길러내고 있다.”고 전교조를 정면으로 비판하는가 하면,“남한의 햇볕이 그들의 옷을 벗기기 위함이란 걸 뻔히 알면서 김정일 정권이 선군정치의 옷을 벗어던지고 개혁개방으로 나올까.”라고 햇볕정책도 비난했다. “친여매체의 선동은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를 적의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렸다.”고 일부 언론을 매도하는 등 정치, 사회, 대북 정책을 전방위에서 비판했다. 소설은 내년 1월 출간될 예정.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안보리 대북결의안 채택] ‘北 NPT체제 복귀’ 촉구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4일 채택한 대북 결의 1718호는 ▲북한의 핵 실험을 규탄하고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복귀를 촉구하고 ▲유엔 회원국들이 북한에 가할 제재 내용 등으로 구성돼 있다. 안보리 결의 1718호는 먼저 북한이 핵 실험을 하더라도 NPT에 따른 핵 보유국 지위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결의는 이어 추가 핵 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중지하도록 촉구했다. 이와 함께 북한이 NPT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규정으로 복귀할 것도 촉구했다. 이번 결의의 핵심은 유엔헌장 7장 41조 규정에 따른 회원국들의 대북 제재 방안들이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내용은 회원국들이 “국내법과 국제법에 따라 핵 및 화생방 무기의 밀거래를 막기 위해 북한으로부터 화물검색 등 필요한 협력조치를 취한다.”는 조항이다. 미국은 이 조항을 북한에 대한 확산방지구상(PSI) 활동의 국제법적 근거로 삼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측은 북한 선박 검색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혀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결의는 또 회원국들이 전차와 장갑차, 중화기, 전투기, 공격용 헬기, 군함, 미사일 및 미사일 시스템과 관련된 물품을 북한에 직·간접적으로 판매나 이전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또 핵이나 탄도미사일, 기타 대량살상무기(WMD)에 사용될 수 있는 장비들도 북한이 수출하거나 북한에 수입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북한에 대한 수출 금지 품목에는 사치품들도 포함됐다. 이와 함께 결의는 회원국들이 북한의 핵 등 WMD, 탄도미사일 개발에 지원되는 자금과 금융자산, 경제적 자원을 동결,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이 조항은 한국의 개성공단 사업 및 금강산 관광과 관련해서 주목된다. 결의는 이밖에 회원국들이 재량에 따라 북한의 핵, 탄도미사일 등과 연루된 인물과 가족들의 입국, 경유를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했다. 결의는 이같은 제재 사항들의 이행을 뒷받침하기 위한 실무 위원회의 구성도 규정했다. 한국을 포함한 모든 회원국은 앞으로 30일 이내에 결의에 따른 이행조치들을 안보리에 보고해야 한다. 위원회는 각국의 이행 상황을 감독하며 90일마다 이행상황을 안보리에 보고한다.dawn@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가을 편지’의 샹송가수 최양숙 (1)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가을 편지’의 샹송가수 최양숙 (1)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낙엽이 쌓이는 날/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시인 고은의 시에 김민기씨가 곡을 붙인 ‘가을편지’다. 선율을 모르는 채 그냥 읽어도 가을의 리듬이 완연히 느껴지는, 이 노래의 주인공 최양숙씨. 최양숙(崔良淑)은 본명이다.‘양(良)’자는 ‘좋다, 뛰어나다, 또는 아름답다’라는 뜻을 갖고 있고 ‘숙(淑)’자는 ‘맑고 깊다, 혹은 정숙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이 이름 그대로 ‘맑고 깊은, 그리고 뛰어난 가창력으로 아름다운 노래를 주로 부른’ 가수였다. “그저 평범한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은데 그 것도 쉽지 않아. 이름 석자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몇몇 사람들 때문에 병원 같은 데서 이름이라도 불려질라치면 누가 보는 것 같아 아직도 불편해. 그저 잊혀져 조용히 늙고 싶은데 말이지.” 서울대 성악과를 나온 음악도로 국내 최초의 샹송가수라 일컬어지며 ‘황혼의 엘레지’ ‘모래 위의 발자국’ ‘초연’ ‘호반에서 만난 사람’ 그리고 ‘꽃피우는 아이’ ‘세노야’ 등을 발표했던 최양숙은 샹송에 관한 한 독보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가창력이 뛰어났고 분위기 또한 매력적이었다. 37년 원산에서 태어난 최양숙은 경음악평론가이자 DJ로 활동하던 최경식씨의 동생. 원산 명석보통학교를 다니던 중 1·4 후퇴 때 피란 내려와 부산에서 임시로 문을 열었던 무학여중에 들어간 뒤 환도 후 지금의 서울예고에 진학한다. 당시 노래 실력이 뛰어나 서울대 음대 주최 전국콩쿠르서 ‘시인’을 불러 대상을 차지한 뒤 60년, 서울대 음대 성악과에 진학한 최양숙은 2학년 때 중앙방송국(현 KBS) 합창단원으로 입단해 활동을 시작한다. 그녀가 솔리스트로서의 자질을 주목받기 시작한 때는 이 무렵, 지휘자 이남수의 인솔로 해병대 의장대원들과 함께 한국예술사절단의 일원으로 해외 공연을 떠나던 해군함정 LST 안에서였다. 여흥시간 중 게임에 져 벌칙을 받아야 했던 그녀가 부른 노래는 샹송 ‘고엽’, 이어 앙코르 요청에 의해 부른 노래가 ‘자니 기타’였다. 망망대해 선상에서 반주 없이 부른 이 노래로 함께 동행했던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다. 특히 당시 방송국 관계자들이 이를 놓치지 않고 눈여겨보았음도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다음 해, 그녀는 솔로로 마이크 앞에 서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다. 대학 3학년 때였다. 무대에 나서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데 음악부장이 찾아와 지금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를 녹음 중인데 그 주제가를 한 번 불러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해왔다. 처음 그녀는 완강히 거절했지만 그냥 연습 삼아 불러보자는 말에 악보를 받아 쥐고 마이크 앞에 섰다. 당시 최양숙은 이 노래가 실제로 녹음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술회한다. 그러나 바로 그날 밤, 첫 방송되는 드라마에 자신의 노래가 주제가로 방송되고 있었다. 이 드라마 제목이 ‘어느 하늘 아래서(한운사 극본)’이다. 이 주제가는 후에 한명숙씨에 의해 ‘눈이 나리는데’라는 제목으로도 발표되었다. 이 드라마는 당시 HLKA 라디오 연속극에 이어 이후 64년도 말부터 동양 TV(D-TV, 채널 7)에서 최초의 TV 일일드라마로 리바이벌, 제작되기도 했다. 이 때 드라마 제목은 ‘눈이 나리는데(황운진 연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노래가 연속극 주제가로 방송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최양숙은 서울대 음대 학장실에 불려간다. 그리고 당시 학장이었던 작곡가 현제명씨로부터 ‘목소리의 주인공이 아니냐.’는 추궁을 당한다. 특히 노래 중 ‘모두가 세상이 새하얀데’ 라는 후렴구의 고음 부분에서 최양숙의 특징이 확연히 드러났기 때문이었다.(계속) sachilo@empal.com
  • [책꽂이]

    ●일본의 대미 무역협상(다니구치 마사키 지음, 차재훈 옮김, 한울아카데미 펴냄) 미국과의 통상마찰에 관한 경험이 많기로는 일본을 빼놓을 수 없다.1950년대 섬유마찰에서 시작해 철강, 컬러 텔레비전, 자동차, 반도체, 공작기계, 유통산업 등 일본은 그동안 미국과 온갖 부문에서 크고 작은 통상마찰을 겪었다. 이 책은 1970년대 이래 미국과 일본의 통상마찰 문제를 이론과 사례분석을 통해 꼼꼼히 다룬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으로 골머리를 앓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책.2만 5000원.●한국유학통사(최영성 지음, 심산 펴냄) 유교 또는 유학은 공자를 중심으로 한 교학사상이다. 이 두 용어는 혼용되고 있지만 굳이 구분한다면 유교는 하ㆍ은ㆍ주 삼대의 선왕으로부터 공자에 전승돼 정립된 유가의 ‘가르침’을, 유학은 유교의 ‘학’으로 유교사상의 체계가 학문적으로 정립된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저자(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가 1990년대 펴낸 ‘한국유학사상사’의 개정판. 순수학술적인 면에 치중해온 기존의 유학사 서술방식에서 탈피, 사회사상사로서의 유학의 기능과 역할을 살핀 점이 눈에 띈다.전3권 각권 4만원.●나는 소세키로소이다(고모리 요이치 지음, 한일문학연구회 옮김, 이매진 펴냄) 근대 일본의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 그는 어릴 때 친부모와 양부모에게 버림받은 기억, 런던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동안 고향에서 죽어가는 친구 시키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죄책감, 평생에 걸친 다섯 번의 전쟁 때문에 외상을 안고 살았다. 이런 ‘신경쇠약 직전’의 남자가 내뱉는 냉소는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부터 마지막 장편 ‘한눈팔기’, 필생의 역작 ‘문학론’, 자기본위란 말로 유명한 강연 ‘나의 개인주의’에 까지 이어진다. 소세키의 사고와 소설의 세부까지 아우른 완성도 높은 평론.1만원.●불꽃(최승희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친일예술가, 월북예술가라는 꼬리표로 인해 그동안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던 신무용 창시자 최승희(1911∼1969) 자서전. 직접 쓴 9편의 수필과 친오빠이자 자신을 무용으로 이끈 정신적 지주 최승일과 주고받은 편지 3통이 실렸다. 최승희는 “군함은 나라를 위해 싸웁니다. 그러나 나는 조선의 리듬, 더 크게 말하면 동양의 리듬을 갖고 서양으로 싸우러 건너갑니다…어떤 경우에라도 민족은 망하지 아니하고 그 민족의 예술도 결단코 망하지 않는다고요.”라고 적고 있다.1만 1000원.●히포크라테스 선서(반덕진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히포크라테스가 속한 가문의 시조인 아스클레피오스는 기원전 13세기의 인물. 그의 후손들은 그를 의술의 수호신으로 삼아 대대로 의술을 전승해왔다. 아스클레피오스의 19대(혹은 18대) 후손으로 전해지는 히포크라테스 역시 가문의 전통에 따라 의사가 됐다. 히포크라테스의 시대에 와서 의사가 부족해지자 가문 내에서만 전수되던 의학교육이 외부 학생들에게도 개방됐고 이 과정에서 가문 외부의 학생들에게 요구된 것이 바로 히포크라테스 선서다. 국내 첫 완역본.1만 5000원.
  • 부시 ‘CIA 비밀감옥’ 시인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테러 용의자들을 구금, 신문하기 위해 중앙정보국(CIA)에 의해 유럽 등에 설치된 비밀감옥의 존재를 시인했다.이 감옥의 존재는 지난해 말 뉴욕 타임스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으나 부시 대통령이나 미국 정부가 이를 공식 시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시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백악관에 9·11 테러 희생자 유족들을 초청해 행한 연설에서 당시 비행기 납치 기획자로 알려진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를 비롯,14명의 일급 용의자들이 CIA 비밀감옥에서 미군이 운영하는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로 이관됐으며 내년 초 재판이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모하메드 이외의 구금자 중에는 9·11때 항공기를 납치하려 했던 혐의를 받고 있는 람지 비날시브, 알 카에다 조직원간의 연결고리로 알려진 아부 주바 등이 있다.1998년 케냐 및 탄자니아 주재 미국 대사관 테러 용의자,2000년 예멘에서의 미 군함 콜호 폭탄테러 용의자 등이 있다고 부시 대통령은 설명했다. 그는 또 “테러범들이 어디에 숨어 있고,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가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보원은 테러범 자신들”이라며 “이들을 비밀리에 수용하고, 전문가들이 신문할 수 있으며, 테러 행위의 책임을 적절히 따질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고 비밀감옥의 당위성을 강변했다. 시사주간 타임은 부시 대통령이 구금자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이들이 알 카에다 핵심이라는 사실을 알림으로써 비밀감옥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며 “특히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예상되는 민주당의 공세를 미리 차단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테러와의 전쟁 탓에 가뜩이나 불편해진 유럽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려는 전략적 계산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또 비밀감옥 프로그램은 미 행정부 변호사들에 의해 검토됐고,CIA 내부에서 엄격히 감독됐다고 강조했다.그는 이곳에서의 신문 방법에 대해선 상세히 언급하지 않은 채 “조사 기법들이 혹독하긴 했지만 고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의혹을 일축했다.이어 부시 대통령은 국방부 관할인 관타나모 기지로 이들 용의자 신병이 이관됨에 따라 다른 재소자들과 마찬가지로 제네바 협약에 따른 보호를 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테러 용의자들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열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하루 빨리 처리해줄 것을 의회에 요청하는 등 ‘선수’를 치고 나섰다.dawn@seoul.co.kr
  • [인디아 리포트] (18) 친디아의 세계 열릴까

    [인디아 리포트] (18) 친디아의 세계 열릴까

    |뉴델리 이석우특파원|인도 시킴주와 중국 티베트를 잇는 해발 4545m 높이의 나투라 고갯길에 올 여름 40여년 만에 생기가 돌았다. 티베트 야둥의 자유무역시장과 시킴주 셰라탕을 오가며 교역을 벌이는 인도와 중국 상인들로 활기가 넘친 덕분이다. 쌀과 밀, 차 등 농산품을 실은 트럭과 경공업 제품 등을 갖고 나온 중국 상인들로 44년 동안 막혔던 국경 무역로가 북적였다. 이곳은 1962년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인 뒤 철조망으로 막혀 있었다. 무역로로 번성했던 563㎞의 옛 실크로드의 대동맥. 나투라 길의 재개통은 다가서는 양국 관계를 상징한다. 인도는 3225㎞에 달하는 중국과의 국경지역에 앞으로 6년동안 27개의 도로를 신설하기로 했다는 5일 두르다르샨 방송의 보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근년 들어 급증하는 무역규모는 이미 두 나라가 뗄 수 없는 동반자임을 보여준다. 지난해 두 나라 교역액은 136억달러. 전년에 비해 79%나 늘었다.1991년 교역액이 2억 6400만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비약적인 증가세다. 경제협력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과 함께 더 주목할 점은 전략적 접근이다.“국경을 맞댄 두나라가 무력 대치와 군비 부담을 덜고 나아가 전략적인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고 라지브 쿠마르 인도 외교차관은 지적했다.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항하는 인도·중국의 전략적 협력은 물론 러시아까지 낀 ‘3각 협력’이 타진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2006년 두나라 우호의 해를 맞아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인도 방문 등 최고지도자들의 상호방문을 협의중”이라고 쿠마르 차관은 설명했다. 압둘 칼람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놓고 있는 후 주석은 오는 11월 중순 아·태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 참석한 뒤 인도를 방문할 것으로 뉴델리의 외교소식통들은 전했다. 전략적 협력은 자원확보 분야에서도 한발 앞으로 나가고 있다. 인도석유천연가스공사(ONGC)는 지난달 11일 중국석유화공공사(SINOPEC)와 미국 오미멕스 드 컬럼비아 지분 50%를 8억달러에 공동매입키로 했다. 앞서 ONGC는 지난해 12월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와 페트로 캐나다로부터 시리아 유전 지분 37%를 4억 8400만달러에 사들였다. V S 라마무티 과기부 차관은 “정보통신분야는 물론 생명과학, 의약, 항공우주 분야까지 연구 데이터·과학자 교류 등 협력을 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세계의 공장’ 중국과 정보기술(IT) 및 서비스부문에서 경쟁력을 가진 인도의 보완적인 경제구조가 협력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라마무티 차관의 평가다. 집권 국민회의당의 알케이 아난드 상원의원은 “두 나라는 국제관계의 민주화와 세계정치의 다극화 등 21세기 신질서에 비슷한 입장”이라면서 “화해협력을 통해 양측 모두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두 나라 정치·외교분야의 전략적 협력은 지역협력체에 대한 상호 참여로 두드러지고 있다. 쿠마르 차관도 “인도가 상하이협력조직의 정식 회원이 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면서 적극적인 자세다. 중국도 서남아시아협력회의(사크)에 옵서버 자격을 얻었다. 물론 두 나라의 협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주 인도 미국상공회의소 라시미 티와리 박사는 “인도는 미국과 유럽 등으로부터 열렬한 ‘러브콜’을 받으며 몸값을 높이고 있다.”면서 “제조업이 취약한 인도로 중국의 싼 공산품이 쏟아지고 있는데 중국 상품이 인도시장을 평정하게 놔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력 일간지 타임스 오브 인디아도 최근 인도가 국가안보의 우려 때문에 중국의 인도 투자 제한과 외환관리법(FEMA) 등을 개정하지 않고 대중국 투자협정을 미루고 있다고 전한 것도 뿌리 깊은 중국 기피증의 한 예다. 현동화 전 주 인도 한인회장은 “1962년 전쟁 때 인도는 콜카타(당시 캘커타)를 점령당할 위기를 맞았을 정도로 두 나라의 의구심과 경쟁관계는 뿌리 깊다.”고 평했다. 아난드 의원은 “인도와 중국은 모두 다 실용외교를 축으로 경제성장을 위한 평화적인 주변환경 확보를 추구하고 있다.”면서 “과거는 잊지 않지만 전진을 위해 내일에 더 무게를 두고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막을 수 없는 대세”라고 말했다. jun88@seoul.co.kr ■ “합동 군사훈련등 전분야 신뢰 증진” |뉴델리 이석우특파원|“올해 중국과 인도는 군함을 파견해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한다. 군사분야의 신뢰증진까지 두 나라의 관계발전 속도는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뉴델리 외교지역에 위치한 주인도 중국대사관. 쑨위시(孫玉璽) 중국대사는 “중·인 두 나라가 적극적으로 관계개선에 나서고 있으며 모든 부문에 걸쳐 전략적 협력 관계의 발전을 시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관계발전은 어디까지 왔나. -신뢰증진을 위한 핵심 분야인 군사분야까지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고 연내 군함까지 파견, 해상훈련을 공동으로 실시한다.2005년부터 군사훈련에 서로 참관단을 파견하는 등 신뢰회복을 두텁게 하고 있다. ▶경제협력은 어디까지 왔나. -지난해 두 나라의 무역은 전년도에 비해 비약적으로 늘었다. 지금 속도대로라면 2010년까지 500억달러 달성은 무난하다. 투자보호협정 등 제도적 준비도 진행되고 있다. 경제분야의 진전이 다른 분야의 협력도 이끌 것이다. ▶인도 진출에서 중국의 관심 분야는. -경제 성장의 시동이 걸린 인도는 도로, 항만, 전기, 상하수도 등 부족한 사회간접자본(SOC)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상품수출뿐 아니라 SOC 건설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접근을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 인도의 상하이협력조직 참가가 미국에 대항하는 군사동맹으로 발전할 것이란 우려가 그것이다. -중국이 주도,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상하이협력조직은 지역 협력을 강화해 나가자는 취지에서 결성·운영되고 있다. 미국을 겨냥하거나 반미 성향의 정치·군사안보체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도가 이 조직에 들어오는 것은 바람직하며 환영한다. ▶국제무대에서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상충되지는 않나. -양국 모두 석유 등 자원확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협력 프로젝트 도출 등 가능한 한 경쟁을 피하고 협력 극대화 방안을 협의중이다.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상 등에서 ‘동병상련’ 처지여서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 성사를 위해 전문가 그룹 발족 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두 나라 다 인구만도 10억이 넘는 ‘발전중인 개발도상국’이다. 농촌빈곤화, 실업자, 에이즈 등 많은 공통의 문제를 안고 있고 그만큼 협력의 영역도 넓다. ▶인도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움직임에 대한 입장은. -중국은 유엔안보리 이사국이 늘어나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유엔에서 개발도상국들의 발언권이 더 확대돼야 보다 평등한 국제질서 구현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이런 차원에서 인도의 역할 확대도 환영한다. ▶카슈미르 북부지역 등 영토분쟁의 해결 전망은. -아직 국경문제를 완전히 매듭짓지 못했다. 그렇지만 지난해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인도 방문 등을 통해 해결의 틀과 원칙을 마련했다.(두 나라는 최근 몇 년 동안 인도가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을 인정하고 중국은 인도의 시킴 왕국의 영유권을 사실상 인정하는 등 관계개선의 장애물을 제거해 나가고 있다.) jun88@seoul.co.kr ■ “2020년 친디아 GDP 세계40% 육박” 친디아(China+India)의 시대는 언제 열릴까. 인도가 1978년부터 개혁·개방정책을 표방하고 달려온 ‘선발주자’ 중국을 뒤쫓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오는 2032년 국내총생산(GDP)에서 인도는 미국·중국에 이은 3대 경제대국이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모건스탠리 등은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2020년이면 중국과 인도의 GDP는 전세계의 40%에 육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인도는 아직 경제지표로 볼 때 중국의 적수는 아니다. 외국인 직접투자(FDI)의 경우 인도는 중국의 10분의1 수준.2004년 인도의 FDI는 53억달러, 중국은 606억달러였다. 수출은 중국이 인도의 8배, 저축률도 두 배 규모다. 중국은 제조업이 전체 생산에서 40% 이상을 차지하지만 인도는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인도는 농업과 인프라의 수준이 세계 최하수준이다. 반면 인도는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서비스업이 전체 생산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우주항공기술도 국제적이다. 인도 과기부 C R 무르티 국장은 “인도는 10∼24살까지의 청소년 인구비율이 30%로 중국(24%), 일본(15%)보다 훨씬 높다.”며 “영어와 세계 최고수준의 수학교육으로 무장한 젊은 과학인재들이 미래를 앞당기고 있다.”고 자부했다.
  • [주일 미군기지를 가다] (상) 美·日 ‘국방공조’의 현장 요코다·요코스카 기지

    [주일 미군기지를 가다] (상) 美·日 ‘국방공조’의 현장 요코다·요코스카 기지

    |요코다·요코스카(일본) 김상연특파원|기자는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1일까지 일본 도쿄 인근과 오키나와에 위치한 주일 미군기지를 둘러보고 미·일동맹의 현주소를 체감했다. 그 소감을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사령관과 한국전 당시 유엔군 사령관으로 활약한 더글러스 맥아더와의 가상대화 형식으로 두차례로 나눠 소개한다. ●기자 처음 뵙겠습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맥아더 어서 오세요. 그런데 세상 등지고 쉬고 있는 늙은이는 뭣하러 불러내셨소. ●기자 ‘한국’의 기자가 ‘일본’에 있는 ‘미국’의 군 기지에 왔으니, 당연히 장군을 찾아야죠. 장군의 이름을 빼고 한·미·일의 근현대 전쟁사를 논할 수 있나요. ●맥아더 그렇게 되나요. 사실 2차대전 종전 전후가 내 인생의 전성기였죠. 일본인이 신처럼 떠받드는 천황을 쥐락펴락하고, 또 한국전쟁에서는 인천 상륙작전으로 그림같은 역전 드라마를 일궈냈죠. 그때 공산주의자들 끝장을 봤어야 했는데. 트루먼 그 자만 아니었다면…. 참, 이거 내가 손님을 앞에 두고 흥분하다니. 실례가 많소. 그래, 둘러본 소감이 어떻소. ●기자 뭐랄까요. 여기 오기 전엔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별개의 집합이란 인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한발 물러서 바라보니, 휴전선을 경계로 해양 자유주의 세력(남한·일본·미국)과 대륙 공산주의(북한·중국) 세력이 덩어리져서 대치하는 그림이 확연히 부각되더군요. 알고보니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최전방, 일본은 후방부대 개념이더군요. ●맥아더 그걸 이제야 아셨소?본토의 요코다, 자마, 요코스카, 사세보와 오키나와의 가데나, 후텐마, 화이트 비치 등 주요 미군기지는 한반도 유사시 즉각 병력 투입이 가능한 유엔사 후방부대들이라오. 미군이 괜히 일본에 5만여명이나 주둔하고 있는 줄 아시오? ●기자 그런데 이번에 보니까 주일 미군기지의 재배치 계획이 2014년 완료를 목표로 한창이더군요. ●맥아더 그럴 때가 됐지요. 사실 처음 미군이 한국과 일본에 들어왔을 때는 전쟁 통에 경황이 없어 아무 데나 막 기지를 건설하고 그랬어요. 이젠 두 나라의 국력도 커지고 국제정세도 변했으니 합리적으로 정비해야죠. 어떻게 바뀌나요. ●기자 가장 큰 변화는 섬 전체가 미군기지화돼 있는 오키나와에서 예고되고 있습니다. 이곳 주민들의 민원을 받아들여 미 해병대 8000여명이 2014년까지 미국령인 괌으로 이전합니다. 후텐마 해병 항공부대 기지도 오키나와 북부의 슈와브로 이전할 계획입니다. 본토에서도 변화가 있는데, 미국 워싱턴주의 미 육군 1군단 사령부가 도쿄 인근의 자마 기지로 2008년까지 이전합니다. ●맥아더 복잡하군요. ●기자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주일 미 육군의 허브 기지는 자마, 해군의 허브는 요코스카, 공군의 허브는 요코다(수송)와 오키나와의 가데나(전투)기지입니다. ●맥아더 내가 오히려 브리핑을 받다니…. 요코다, 자마, 요코스카 기지는 도쿄에서 차로 1시간 이내 거리에 있지요. 직접 보니까 어떻소. ●기자 먼저 주일미군 사령부와 미 5공군 사령부가 있는 요코다 공군기지를 찾았습니다. 주일미군은 해·공군 위주이기 때문에 공군의 3성(星)장군이 주일미군 사령관을 맡고 있는 게 특이했습니다. 그런데 도쿄돔 153개를 모아놓은 크기라는 요코다엔 채 10대의 항공기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알고보니 평소엔 거의 비어 있다가 한반도 등에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군수품과 병력의 집결지 역할을 한다고 하더군요. 항공기 100대의 동시 작전이 가능한 규모랍니다. ●맥아더 요코스카는 어땠습니까. ●기자 세계에서 가장 큰 해군기지라는데, 겉보기에는 그리 무시무시하지 않았습니다.1조원을 넘는다는 이지스함이 2척 이상 정박해 있었는데, 외양은 그냥 평범한 군함같았습니다. ●맥아더 이지스함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일반 순양함이나 구축함의 하드웨어에 첨단 이지스 체계를 갖춘 것이니 그렇겠지요. ●기자 최신 무기인데도 잘 아시는군요. 미 해군의 최신 이지스 구축함인 ‘머스틴’(2003년 취역)과 스탠더드 요격 미사일(SM-3)을 싣고 샌디에이고에서 막 투입된 이지스 순양함 ‘샤일로’가 나란히 정박해 있었습니다. 그 중 머스틴에 직접 오르는 기회를 얻었는데, 배 앞뒤의 대포와 발칸포를 제외하곤 어떤 화기도 돌출해 있지 않은 게 특이했습니다. 심지어는 레이더도 안에 내장돼 있더군요. 이지스 체계를 종합지휘하는 ‘전투정보센터’는 적의 공격을 피해 배의 정중앙에 꽁꽁 숨어 있었습니다. 가로·세로 60㎝가량의 SM-3 발사대가 앞쪽 갑판에 32개, 뒷 갑판에 64개가 뚜껑에 덮인 채로 비치돼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맥아더 요즘 주일미군의 최대 관심사가 북한 대포동 미사일 요격인가 보군요. ●기자 그런가 봅니다. 미국은 또 10월까지 도쿄 인근과 오키나와에 최신 패트리엇 미사일(PAC-3)을 다수 배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맥아더 아∼, 요코스카에 한번 가보고 싶군요. 어떻게 변했을지. ●기자 참, 그렇지요. 요코스카는 장군께서 일본으로부터 항복 서명을 받은 곳이지요. 이번에 듣고 놀란 게, 미군이 전후에 요코스카 항을 사용하려고 전쟁 당시 일부러 항만시설에 폭격을 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와중에 그런 머리를 내다니, 미국이란 나라는 정말 용의주도하다는 생각입니다. ●맥아더 그렇습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감정적으로 뭔가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착각은 없을 겁니다. ●기자 이번에 주일미군 기지를 돌아보면서 한국내 전시(戰時) 작전통제권 환수 논란과 관련해 일부 보수 진영에서 국면을 호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미국이 한국 정부에 불만을 품고 감정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논리는 둘째치고,‘일본은 연합사 체제로 가는데, 한국은 왜 거꾸로 가려고 하느냐.’‘이러다가 주한미군 사령관은 3성장군으로 전락하고, 주일미군 사령관이 4성장군이 될 수도 있다.’는 그들의 주장에 대해 주일미군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니까 “금시초문”이라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군요. 오히려 “연합사가 없어도 미·일간에 긴밀한 작전협조가 충분히 이뤄지고 있다.”고 자부하더군요. 요코스카에서는 “해상자위대와 미 해군은 1년에 100회 이상 합동훈련을 통해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유대를 자랑한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맥아더 아, 작통권 말씀이군요. 이승만 대통령이 나한테 작통권을 넘겼을 때 한국군의 역량은 너무나 미약했지요. 지금과는 비교가 안될 겁니다. ●기자 이번에 미국사람들의 얘기를 직접 들으면서 한국사람으로서 참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일미군 사령관에게 작통권 논란에 대해 물었더니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국민이 직접 선출한 지도자의 판단을 따르는 데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답이 돌아오더군요. 우리가 그동안 자기비하에 너무 길들여진 것은 아닌지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모름지기 스스로를 모욕한 연후에 남으로부터 모욕을 받는다.”는 맹자(孟子)의 경구는 바로 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닐까요. 대통령이 안보를 자주(自主) 운운하면서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국민의 다수가 선출한 대통령을 좌파적이니, 친북적이니 하고 공격하는 것은 결국 우리 얼굴에 침을 뱉는 자해행위는 아닌지…. ●맥아더 어디가나 국가 대사를 놓고 편을 가르는 것을 즐기는 무리들이 있으니 어쩌겠습니까. 군인들이라도 중심을 잡고 ‘의무’‘명예’‘조국’이란 숭고한 단어를 향해 나가야지요. 다음 행선지는 어디입니까. ●기자 오키나와입니다. ●맥아더 아∼, 오키나와…. 태평양 전쟁 당시 참으로 격렬했던 곳이지요. carlos@seoul.co.kr
  • [유림 속 한자이야기] 提調(제조)

    儒林 (664)에는 ‘提調’(통솔할 제/고를 조)가 나오는데,‘조선시대에 雜務(잡무)와 技術(기술)계통 機關(기관)에 兼職(겸직)으로 任命(임명)되었던 고위 관직’을 이른다.異字同音語(이자동음어)에는 ‘制條:제정(制定)된 조규(條規)’‘製造:큰 規模(규모)로 物件(물건)을 만들거나 原料(원료)에 人工(인공)을 가하여 精巧品(정교품)을 만듦’‘啼鳥:우는 새, 또는 새의 울음소리’같은 것들이 있다. ‘提’자는 ‘들다’라는 뜻을 나타냈으나 그밖에 ‘끌다’‘들다’‘걸다’‘거느리다’‘던지다’의 뜻으로도 쓰인다. 참고적으로 是는 해를 향하여 똑바로 걸어가는 모습을 통하여 ‘똑바로’의 뜻을 나타냈으나 후에 ‘옳다’의 뜻으로 널리 쓰였다.用例(용례)로 ‘提供(제공:갖다 주어 이바지함),提起(제기:의견이나 문제를 내어놓음),提携(제휴:행동을 함께하기 위하여 서로 붙들어 도와줌)’같은 것들이 있다. ‘調’자는 ‘言’(언)과 ‘농작물이 빼곡히 들어선 밭’의 상형인 ‘周’가 어울려 ‘잘 어울리다’란 뜻을 나타냈다. 후에 ‘맞다’‘길들이다’‘속이다’‘뽑히다’‘고르다’‘살피다’같은 뜻이 派生(파생)했다.‘調練(조련:군사를 훈련함),調味(조미:음식의 맛을 알맞게 맞춤),調査(조사:사물의 내용을 명확히 알기 위하여 자세히 살펴보거나 찾아봄)’등에 쓰인다. 조선시대에는 기술 계통의 일을 관장하던 관청이나 기구에는 자체의 首長(수장)이 아닌 사람이 兼職(겸직)으로 임명되어 指揮(지휘)監督(감독) 임무를 수행하였다. 보통 종1품, 또는 2품의 品階(품계)를 가진 사람을 임명하는데, 이를 提調(제조)라고 하였다. 중요한 업무를 관장하는 곳에는 提調 위에 正一品(정일품)의 都提調(도제조)를 임명한다. 국가의 중대사가 있을 때 임시로 설치하는 機構(기구)에도 도제조와 제조 및 부제조를 두었다. 事大(사대)와 交隣(교린)에 관한 문서를 管掌(관장)하고 중국에 보내는 외교문서 작성 실무 교육을 담당하는 승문원(承文院), 국가의 祭祀(제사) 諡號(시호) 籍田(적전)과 勸農(권농) 屯田(둔전) 敎樂(교악) 등의 일을 관장하는 봉상시(奉常寺), 왕실의 譜牒(보첩)을 관리하는 종부시(宗簿寺),宮中(궁중)음식과 生活瓷器(생활자기)를 관장하는 사옹원(司饔院), 궁중의 醫藥(의약)을 관장하는 내의원(內醫院),兵器(병기)의 제조 등을 관장하는 군기시(軍器寺),軍糧(군량)을 관리하는 군자감(軍資監), 번역·통역 및 외국어 교육기관인 사역원(司譯院),京鄕(경향)의 선박과 군함의 관리를 맡아본 전함사(典艦司),宗廟(종묘)의 守衛(수위)를 맡아보던 종묘서(宗廟署), 사직단을 관리하는 사직서(社稷署)와 東園秘器(동원비기:왕실에서 쓰던 관)를 관리하는 장생전(長生殿),大同米(대동미)와 大同布(대동포) 등의 출납을 관장하는 선혜청(宣惠廳),都城(도성) 내의 治水(치수)를 관장하는 준천사(濬川司),首都(수도) 警備(경비)를 담당하는 훈련도감(訓鍊都監),軍國機務(군국기무)를 관장한 文武(문무) 合議機構(합의기구)인 비변사(備邊司), 궁성과 도성의 修築(수축)과 消火(소화)를 담당한 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 등이 도제조와 제조의 직제를 두었던 곳이다. 宮人(궁인)인 尙宮(상궁)에도 提調가 있었다.內殿(내전)의 御命(어명)을 받드는 으뜸 위치에 있는 제조상궁(提調尙宮), 내전의 별고(別庫)를 관리하는 부제조상궁(副提調尙宮) 등이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인천이 원조] (17) 시외전화·전보

    [인천이 원조] (17) 시외전화·전보

    우리나라에 전화가 처음 개통된 것은 1898년 서울 덕수궁이었다. 당시 전화는 다리풍(釐風), 덕률풍(德律風) 등으로 불렸는데, 이는 영어 텔레폰(telephone)을 음역한 것이다. 전화는 점점 그 영역을 넓혀 1903년 2월17일 서울과 인천 사이에 일반 시외전화가 개통되는데, 대한천일은행 서울본점과 인천지점 사이의 통화였다. 초기 가입자는 5명이었는데 모두 공적인 성격이 강한 단체였다. 시외전화 통화료는 분당 50전이었다. 그리고 전화가 걸려오면 당사자를 불러야 했는데 호출대상자의 집을 거리로 계산해서 1리에 2전씩 받았다고 한다. 서민들이 이용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전화 가설권을 일본에 빼앗긴 청나라는 고종에게 대비의 능에 전화를 가설해 문상토록 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말하자면 전화문상이라는 건데, 고종이 서거한 후 순종도 전화문상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능참봉이 전화기를 봉분 앞에 대면 왕과 신하들이 전화기에 대고 곡을 하는 식이었다. 이는 고종의 죽음이 부각돼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 일본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전보는 전화보다 앞서는데, 1885년 9월 서울과 인천 제물포 사이에 첫 전보가 떴고,1894년에는 정식으로 전보사가 설치됐다. 하지만 초기에는 통신두절이 빈번했고 정확성과 신속성 역시 많이 떨어졌다. 전보에 대한 세간의 오해도 많았다.“전보를 통해 전염병이 나돌고, 가뭄이 든다.” “청나라 군인들이 전보내용을 바꾼다.”는 식이었다. 1900년대 전보는 국문, 한문, 영문, 해외전보 등 4종류가 있었고 요금은 국문 1자당 4전, 영문 1자당 10전이었다. 일제는 1940년대 창씨개명을 강요하면서 학교에서 우리말 대신 일본말을 사용토록 했는데,1941년에는 한글 전보마저 폐지시켰다. 한글 전보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야 부활됐다. 무선통신 역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군함인 ‘광제호’와 인천 월미도에 있던 무선전신소 사이에 처음으로 이뤄졌다. 이처럼 최초의 전보, 시외전화, 무선통신이 이뤄진 인천 송도신도시에 IT클러스터와 미디어밸리가 들어서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인천이 원조] (17) 시외전화·전보

    [인천이 원조] (17) 시외전화·전보

    우리나라에 전화가 처음 개통된 것은 1898년 서울 덕수궁이었다. 당시 전화는 다리풍(釐風), 덕률풍(德律風) 등으로 불렸는데, 이는 영어 텔레폰(telephone)을 음역한 것이다. 전화는 점점 그 영역을 넓혀 1903년 2월17일 서울과 인천 사이에 일반 시외전화가 개통되는데, 대한천일은행 서울본점과 인천지점 사이의 통화였다. 초기 가입자는 5명이었는데 모두 공적인 성격이 강한 단체였다. 시외전화 통화료는 분당 50전이었다. 그리고 전화가 걸려오면 당사자를 불러야 했는데 호출대상자의 집을 거리로 계산해서 1리에 2전씩 받았다고 한다. 서민들이 이용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전화 가설권을 일본에 빼앗긴 청나라는 고종에게 대비의 능에 전화를 가설해 문상토록 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말하자면 전화문상이라는 건데, 고종이 서거한 후 순종도 전화문상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능참봉이 전화기를 봉분 앞에 대면 왕과 신하들이 전화기에 대고 곡을 하는 식이었다. 이는 고종의 죽음이 부각돼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 일본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전보는 전화보다 앞서는데, 1885년 9월 서울과 인천 제물포 사이에 첫 전보가 떴고,1894년에는 정식으로 전보사가 설치됐다. 하지만 초기에는 통신두절이 빈번했고 정확성과 신속성 역시 많이 떨어졌다. 전보에 대한 세간의 오해도 많았다.“전보를 통해 전염병이 나돌고, 가뭄이 든다.” “청나라 군인들이 전보내용을 바꾼다.”는 식이었다. 1900년대 전보는 국문, 한문, 영문, 해외전보 등 4종류가 있었고 요금은 국문 1자당 4전, 영문 1자당 10전이었다. 일제는 1940년대 창씨개명을 강요하면서 학교에서 우리말 대신 일본말을 사용토록 했는데,1941년에는 한글 전보마저 폐지시켰다. 한글 전보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야 부활됐다. 무선통신 역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군함인 ‘광제호’와 인천 월미도에 있던 무선전신소 사이에 처음으로 이뤄졌다. 이처럼 최초의 전보, 시외전화, 무선통신이 이뤄진 인천 송도신도시에 IT클러스터와 미디어밸리가 들어서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무궁화 5호’ 軍통신전력 증강

    ‘무궁화 5호’ 軍통신전력 증강

    (1)강원도 험준한 산악→“통화 OK”(2)호주 인근 태평양→“통화 OK”(3)적의 전파방해→“통화 OK” 앞으로 우리 군의 통신 능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된다.22일 하와이 인근 적도 공해상에서 발사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군 공용 통신위성 ‘무궁화 5호’ 덕택이다. 무궁화 5호는 하나의 위성체에 각각 12개와 24개의 군·민용 중계기가 탑재된 것으로 3만 6000㎞ 상공의 정지궤도(동경 113도 적도지점)에 올려져 임무를 수행한다. 지구와 함께 자전하기 때문에 아래에서 보면, 고정된 위성이나 다름없다. 기존의 군사용 통신은 땅속 광케이블을 이용한 유선망이나 마이크로파를 활용한 무선통신, 무전기 등 주로 지상망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케이블이나 고지의 통신중계소는 전시에 집중 타격대상이 되거나 천둥이나 번개 등 자연재해에 취약하며 거리상 제약도 따른다. 또 한반도처럼 산악 지형에서는 전파가 차단되기 일쑤여서 무전기 사용도 매끄럽지 못하다. 하늘 높이 쏘아올려진 인공위성은 이같은 지상 통신의 장애를 일소할 수 있다. 우선 무궁화 5호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반경 6000㎞까지를 통신권으로 하기 때문에 태평양 중앙부 날짜변경선에 있는 군함과도 한 번에 통화할 수 있다. 다만 휴전선 이북의 북방 지역은 전파방해를 방지하는 국가간 협약에 따라 통신권에서 제외했다. 또 산악 등 장애물에 상관없이 항공기와 함정 등 움직이는 무기체계와의 통신도 원활해진다. 이와 함께 군용 위성은 적의 전파방해에 대응할 수 있는 대(對)전자전 기능까지 갖춰 전투력 향상도 기대된다. 이와 맞물려 우리 군이 최근 자체 개발에 성공한 ‘지상전술 ‘C4I’(정보·감시·지휘·통제) 체계와 연동돼 전투 상황에서 부대간 통신이 실시간으로 가능해진다. 국방과학연구소(ADD) 관계자는 “기존에 우리 군은 무궁화 3호 등 민간 위성을 빌려 통신을 주고받았는데, 이 경우 통신 보안이 어렵고 적의 전파 방해에 노출되기 쉬웠다.”며 “무궁화 5호로 이런 문제가 해소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군이 무궁화 5호를 실제로 활용하는 시기는 내년 말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무전기부터 지상 송수신시설에 이르기까지 무궁화 5호의 체계와 ‘교감’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모두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일제징용 한국인 1만996명 명부 발굴

    일제시대 남태평양 지역으로 끌려갔다 송환된 조선인 명부가 공개됐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유영렬)는 1930년대 후반 이래 남태평양 군도(괌·티니안·사이판섬과 팔라우제도 등) 지역으로 강제동원됐다 광복과 함께 한국땅으로 되돌아간 조선인 승선자 1만 996명의 명단을 발굴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들은 농업 및 일반인이 6880명, 군속(군노무자) 3751명, 군인 90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3799장에 달하는 문서는 미 태평양함대가 본국 귀환 희망자를 모은 뒤 미군함에 태운 사람들의 명단이다. 그래서 귀환자 이름과 함께 나이·직업은 물론 한국의 본적지 주소까지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이제껏 일본측의 근거없는 주장(7727명)을 일축할 수 있는 자료다. 편찬위는 “자료가 워낙 충실해 추적조사가 이어지면 관련 연구를 크게 촉진시킬 것으로 본다.”면서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 넘겨 실질적인 조사·연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中국방비, 2008년엔 日추월”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은 1일 발표한 방위백서에서 중국의 국방비 규모가 2008년에는 일본의 방위예산을 크게 넘어설 것이라며 중국 정부에 대해 “국방 정책이나 군사력의 투명성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서는 중국의 국방비가 18년 연속 두자릿수(15% 전후)의 증가율을 보였다고 지적하면서 “5년마다 대략 두배가 되는 속도로 18년간 명목상 13배 규모로 확장됐다.”고 밝혔다. 또 중국군의 급속한 첨단화에 우려를 표시하면서 중국이 동중국해 가스전부근 해군함정 항해 등 해양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는 것에 대해 타이완의 독립을 저지하기 위한 군사력 정비 혹은 해양의 권익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분석했다. 북한이 지난달 5일 미사일을 시험발사한 것에 대해서는 “일본의 안전보장상 중대한 문제로 국제법상의 문제도 있다.”며 강력히 비판했다. 백서는 또 북한이 핵무기 계획을 상당히 진행시키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독도주변 해역에서 한국 해양조사선이 지난달 조사에 착수했던 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taein@seoul.co.kr
  • [국제플러스] 日 인도양 미 군함 급유활동 1년 연장

    일본 정부가 반(反)테러특별조치법을 1년 연장, 해상자위대가 인도양에서 실시해온 미 군함에 대한 급유활동을 지속할 방침이라고 일본 언론이 31일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오는 11월1일 만료되는 반 테러특별조치법을 1년 연장하기로 하고 오는 10월쯤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가결되면 지난 2001년 미국 9·11테러 뒤 제정된 이후 3번째 연장하는 셈이 된다. 이 법에 근거해 그간 해상자위대는 테러리스트와 무기, 마약의 해상 이동을 저지하는 각국의 활동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보급함 1척, 호위함 1척 등 총 2척을 인도양에서 활동케했다.
  • 동원호 117일만에 풀려났다

    동원호 117일만에 풀려났다

    지난 4월4일 소말리아 주변 해역에서 해적에게 납치됐던 동원수산 소속 원양어선 ‘동원호’ 선원들이 30일 무사히 풀려났다. 납치된 지 117일 만이다. 외교통상부와 동원수산측은 “납치단체들과 29일 석방에 합의한 데 따라 30일 밤 10시30분(한국시간) 선박(동원호)과 선원들이 소말리아 영해에서 석방됐으며,11시50분 공해(公海)상으로 무사히 빠져나왔다.”고 밝혔다. 정부는 “한국인 8명을 포함한 선원 25명 모두가 무사하다.”고 덧붙였다. 동원호는 억류돼 있던 소말리아의 오비아항 부근 해상의 기상상태가 좋지 않아 납치범들이 동원호에서 철수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협상타결 후 하루가 지난 뒤에야 석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해상에 도착한 동원호는 우리 정부의 요청을 받고 대기중이던 미국 해군 5함대 소속 군함의 호위 아래 인근 케냐의 몸바사항으로 향했다. 몸바사항 도착까지는 4일이 걸리며, 그곳에서 선원들은 건강검진을 받고 휴식을 취한 뒤 곧바로 항공편으로 귀국길에 오를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날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북쪽으로 300㎞가량 떨어진 하라데레 지역 원로인 압디 일미는 AFP와의 전화통화에서 “소말리아 영해에 불법적으로 진입한 선원들이 80만달러를 지급한 뒤 모두 풀려났다.”고 말했다. 원호는 지난 4월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조업 중 현지 무장단체에 납치됐으며, 최성식 선장 등 한국인 8명, 인도네시아인 9명, 베트남인 5명, 중국인 3명 등 선원 25명이 3개월 넘게 억류돼 왔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날카롭고 냉정한 눈빛… 진짜 명성황후?

    이번엔 정말 명성황후일까. 고종황제·명성황후·흥선대원군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25일 공개됐다. 사진 수집가인 영국인 테리 베닛이 발굴한 19세기 사진 2600여점 가운데,1884년부터 1906년까지 한·중·일을 오갔던 한 독일 사진작가의 사진 중 한 장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 사진작가가 군함 ‘카이저’호를 타고 조선땅에 들어온 시점이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1895년) 직전인 데다, 명성황후 사진 밑에는 독일어로 ‘시해된 왕비(Die Ermodete Konigin)’라는 기록까지 남겨뒀다. 여기에다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 사진의 배경이 같고, 명성황후를 접견한 사람들이 남긴 “왕비의 눈은 날카롭고 냉정한 빛을 띠고 있어서 기밀한 두뇌 회전이 느껴졌다.”(이사벨라 비숍 ‘명성황후의 회고록’)는 묘사와 사진 속 모습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점도 주목된다.학계에서 벌써 “정확한 확인 작업이 필요하다.”(이태진 서울대 교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데다, 베닛 역시 “한국이 진실규명 작업을 한다면 기꺼이 돕겠다.”고 밝히고 있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그동안 명성황후 사진이나 초상화는 모두 진위논쟁에 휩쓸렸다. 대표적인 것이 1904년 ‘꼬레아 꼬레아니’(카를로 로제티)와 1906년 ‘대한제국 멸망사’(호머 헐버트) 등에 실린 사진. 당초 명성황후 사진으로 알려졌으나 고종황제의 밀사로 활약했을 정도로 조선정부에 우호적이었던 호머 헐버트가 얼굴을 잘 알고 있었을 명성황후 사진설명에다 ‘조선여인’이라는 표현을 쓸 리가 없고, 이 사진을 ‘조선의 상궁’이라 설명한 당시 미국쪽 책이나 잡지 등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그 진위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이軍 레바논 침공… 중동 전면전 ‘암운’

    이軍 레바논 침공… 중동 전면전 ‘암운’

    무장단체의 자국 병사 납치로 촉발된 이스라엘의 무력 보복이 ‘두개의 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00년 5월 철군한 지 6년 만에 레바논을 침공한 이스라엘군은 13일 레바논에 대한 육해공 봉쇄에 착수하는 한편, 시리아 접경지에 주둔해 있던 레바논 공군기지까지 타격해 전면전 확전 우려를 낳았다.1973년 4차 중동전쟁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스라엘은 이날 군함을 레바논 영해로 진입시킨 뒤 항구들에 대한 봉쇄 조치에 들어갔다. 또 시리아 국경과 맞붙은 베카 계곡의 레바논 공군기지마저 폭격했다. 침공 이틀 만에 이스라엘이 레바논군을 직접 공격,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수도 베이루트 국제공항 공습에 이어 항구마저 봉쇄한 것은 사실상 레바논 경제를 무력화시키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이 지역에서 전운이 고조되면서 국제 원유 가격은 이날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 전자거래에서 8월 인도분 경질유는 94센트가 뛴 75.89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주말 폐장 때는 75.78달러였다. 지난달 28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습으로 포문을 연 이스라엘군은 무장단체 하마스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레바논 남부 지역에도 지상군을 투입해 시아파 민병대 헤즈볼라와 교전하고 있다. 현지 언론은 이스라엘이 육·해·공군을 모두 투입했고 예비군에 대한 총동원 명령도 내렸다고 전했다. 문제는 ‘전선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헤즈볼라는 레바논뿐만 아니라 시리아로부터도 무기와 자금을 지원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리아는 이란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고 이란은 또 팔레스타인 집권세력인 하마스와도 연대하고 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평소 “이스라엘을 세계 지도에서 없애버리겠다.”고 공언해 왔다. 분석가들은 시리아와 이란이 개입하면 레바논 사태가 주변국과의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스라엘과 무장단체는 표면적으로는 각각 납치 병사 석방과 1만여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재소자의 해방을 놓고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슬람 무장단체를 초토화시킬 전략적 기회로, 무장단체는 전선 확대를 통해 이스라엘 무력의 분산을 노리고 있어 전쟁 위기를 해소하기란 쉽지 않다. 핵문제로 이란과 적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도 과거와 같은 중재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백악관은 헤즈볼라의 오랜 후원자인 이란에 레바논 납치 사태의 책임을 묻고 있다. 이틀간의 공습으로 어린이 8명 등 52명이 사망하고 103명이 부상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도시들에 대한 로켓 공격을 공언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한국형 블록버스터 ‘한반도’ 강우석감독

    한국형 블록버스터 ‘한반도’ 강우석감독

    강우석 감독의 팩션 블록버스터 ‘한반도’(제작 KnJ엔터테인먼트)가 새달 13일 개봉한다. 그런데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논쟁적인 영화가 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지난 26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이후 연일 영화가 안팎을 시끌시끌하게 달군다.“상투적 애국주의”“허구적 역사로 돈벌이하려는 상업주의” 등의 거센 비판에서부터 “강우석 감독이라서 만들 수 있는 영화” 식의 변론까지…. 일찍부터 “이번 영화 잘못되면 다시는 영화 못 만들지 모른다.”며 자신감을 우회적으로 피력해온 감독이다. 뚜껑을 열기 전에 ‘비호감’쪽의 언론평가가 와르르 쏟아진 지금, 그의 심정은 그래서 더욱 복잡하다.‘실미도’로 1000만 관객을 일궈낸 신화의 주인공이란 수식어는 납덩이 같은 짐일 수밖에. 흥행귀재의 이름값을 이어갈지, 대중의 산술적 호기심에 부응해야 한다는 것도 그에겐 족쇄이다.28일 “(영화를 만들면서)마음 고생 너무 많았다.”며 상기된 그를 영화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논란이 많다. 예상했던 반응일 것 같다.<잃어버린 조선의 국새를 찾아 을사늑약 이후 일본에 넘어간 경의선 등의 권리를 되찾는다는 게 영화의 얼개> -물론 예상했다. 국가관을 정면으로 따져보자는 상업영화인데 관객이 쉽게 적응할 수 있겠나. 감독의 주관을 강요하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는 지적도 많다. 인정한다. 일본에 대한 개인적 국가관을 한번쯤 들이밀고 싶었다. 여기에 동의하지 못하는 관객에겐 불편할 것이다. ▶감상적 애국주의를 부추긴 시대착오적 작품이란 혹평도 있다.<명성황후 시해, 고종 독살, 한·일 전쟁 위기 등 역사적 사실과 근미래의 한·일 가상 관계를 나열하는 등 이분법적 극일 메시지가 강렬한 영화이다. 남북통일이 임박한 근미래, 경의선 철도 개통에 일본이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면서 갈등이 본격화한다.> -사실 ‘한반도’란 선언적 제목부터가 엄청 건방진 것이다. 제목부터 정해놓고 그 기대치에 맞춰 만드느라 진땀을 뺐으니까. 영화가 마치 현실을 빗댄 것처럼 돼 버렸는데, 실은 처음엔 이렇게 직설적으로 만들 의도는 아니었다. 근데 올해 초 고이즈미 총리가 급격한 남북통일은 원치 않는다고 발언하지 않았나. 영화는 독해지고 세질 수밖에 없었다. 뭇매를 맞더라도 밀어붙이겠다는 결심이 더 단단해진 거다. 그러나 가상미래일 뿐인데 현 정권과 연계해 바라보는 시각들은 아쉽다. 나를 편협한 민족주의자로 내모는 것도 억울하고. ▶한·일 가상역사로 박박 긁어줘서 시원하다는 관객반응도 많을 것이다. 반면 영화적 재미가 떨어진다는 평가도 피할 수 없겠다. -너무 무거워질까봐 찍는 내내 걱정했던 부분이다. 처음 시나리오 대사량의 반을 잘라냈는데도 말이 많아 관객에게 역사수업을 시키는 것 같다는 지적이 들린다. ▶장황한 대화,“끝까지 맞서 주권을 찾자.”는 식의 단순선동적 대사 등이 드라마의 은유에 치명타가 됐다. -(웃음)영화기자들을 썩 즐겁게 해주지 못했는진 모르지만 관객서비스는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내 영화의 일본수출길이 막힐지도 모르는데 의미나 각오 없이 만들었겠나. ▶출연배우 조합이 묵직하다. -명성황후 역의 강수연은 삼고초려했다. 감정선을 살리는 결정적 역할이지만 시나리오 원본엔 한 신뿐이었으니까. 안성기·문성근 선배, 조재현, 차인표 모두 흥행배우 만들어 주겠다고 장담하며 모셨다.(웃음) ▶CG에 20억, 미술에 20억원. 순제작비 96억원 중에 절반 가까이가 볼거리에 들어갔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폭파, 한·일 군함 출동장면 등에 공을 많이 들였다. 청사폭파 때의 군중신 등이 박진감 있다는 호평을 듣는다. ▶영화만 만들겠다는 선언과 함께 새 제작사(KnJ엔터테인먼트)를 차리고 첫 작품이다. -솔직히 그래서 부담이 더 크다. 영화만 만들겠다더니 사업할 때보다 더 못한다는 소릴 들으면 안 되니까. ▶계속 블록버스터를 만들 건가. -내 주특기는 코미디이다. 코미디 하고 싶은데 이거다 싶은 시나리오가 없다. 코믹 첩보물 한편을 눈여겨 보고 있는 중이다. 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이태진 교사가 본 영화 한반도영화 ‘한반도’의 키워드는 ‘감춰둔 진짜 국새’다. 물론 이는 사실과 다르고, 설사 그렇다 해도 일본이 지금와서 경의선을 요구한다든가, 진짜 국새 하나로 모든 상황을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영화적 설정인데, 이런 설정이 가능하려면 전제돼야 할 것이 있다.‘고종황제의 영민함’이다. 실제 영화는 독살 당하지 않을 수 없는, 기개 넘치는 군주로서 고종을 그려낸다. 최근 ‘고종시대의 재인식’을 주도했던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에게 감흥을 물었다. 그는 “무능하고 유약한 왕이 아니었다는 자료들이 최근 많이 발굴됐으며 영화를 통해 그런 편견이 고쳐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종이 무력했다기보다 조선침략을 위해 일제가 그만큼 전력투구했다는 얘기다. 러·일전쟁이 단적인 예다.“러·일전쟁 100주년을 맞아 요미우리신문이 최근 학계 연구동향을 종합한 기사를 보면, 정보장교 아카시 모토지로를 통해 러시아를 교란하는 데 들인 돈만 73만엔입니다. 쌀가치 기준으로 환산하면 지금 돈으로 72억엔입니다. 이렇게 전력투구했는데, 막 걸음마단계였던 대한제국이 어떻게 버티겠습니까.” 이 교수는 그래서 고종 독살설은 신빙성 있다고 본다.“1918년 1월8일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내놓아요. 일제는 당황합니다. 고종에게는 빌미가 될 수 있거든요.” 일제는 곧 선전에 들어간다. 일본에 잡아뒀던 영친왕을 귀국시키고 ‘황실전범’을 고쳐 일왕가의 이방자 여사와 결혼시킨다. 신혼여행도 이듬해 1월 파리로 보내는데, 이는 1차대전 뒤 강화조약이 열린 프랑스에서 ‘일본과 조선은 화목하다.’고 선전하기 위해서다. 동시에 송병준 등을 보내 고종에게 일본의 지배에 만족한다는 친서를 받아내려 든다. 고종이 죽은 것은 묘하게도 이를 거부한 직후다. 이게 일종의 ‘정황’이라면 ‘문헌’도 있다. 윤치호가 영문일기에 고종의 독살을 암시하는 내용을 1919년 2월11일,1920년 10월13일 두 차례 남겨두는데, 특히 뒤의 것은 고종의 시신을 염했던 ‘민영달’이란 인물의 증언을 자세히 기록해뒀다.‘친일파’ 윤치호의 기록이니 신빙성은 더 높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고종의 영민함 때문에 일제가 골치 아파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1896∼1900년 타이완 식민화를 끝내고 조선으로 눈을 돌렸을 때, 일제는 고종의 근대화 플랜 ‘광무개혁’에 경악했다. 근대화플랜에 국내자본육성까지 시도한 고종이었기에, 일제로서는 어떻게든 그를 쓰러뜨려야 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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