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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도권 남부 아파트 시황]재건축 아파트 등 값 상승폭 커져

    [수도권 남부 아파트 시황]재건축 아파트 등 값 상승폭 커져

    수도권 남부지역 아파트 값은 지난 달에 비해 상승폭이 컸다. 재건축 대상 아파트 값이 많이 올랐다. 그러나 ‘5·4 대책’ 이후 매물이 줄어들고 거래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세가도 조금 오른 상태에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수원 아파트 값은 매매가가 1.12% 올랐고 전세가도 1.77% 상승했다. 지난 달에 비해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장안구 정자동 동신아파트 34평형은 1000만원 안팎 올랐다. 과천은 매매가가 3.04% 상승했다. 재건축 단지 아파트 값이 급등한 탓이다. 전세가도 2.19% 올랐다. 중앙동 주공10단지 27평형이 2000만∼3000만원 뛰었다. 의왕은 매매가 1.36%, 전세가는 0.69% 상승했다. 안양 지역은 매매가 0.49%, 전세가는 0.95% 올라 지난 달보다 상승폭이 줄었다. 박달동 한라비발디아파트 64평형은 1000만원 정도 올랐다. 군포는 매매가 0.28%, 전세가는 0.97% 상승했다. 평택은 매매가 0.54%, 전세가는 0.82% 상승, 오름폭이 커졌다. 안성도 매매가 0.71%, 전세가는 0.69%를 기록했다. 추가 공급되는 동탄신도시 아파트와 수원 이의신도시 아파트가 관심을 끌고 있다. 김광성 한국감정원 정보조사팀장 ●조사일자 2005년 5월18일
  • [부고]

    ●남정식(국민일보 편집국 부국장·비주얼에디터)정애(미래가족문화연합 상임이사)씨 모친상 18일 서울대병원, 발인 20일 오전 7시30분 (02)2072-2022 ●홍기표(대우건설 문화홍보팀장)가표(목동 청소년회관 과장)권표(서울에어엔씨 대표)승표(호주항공 부장)씨 부친상 서대운(대주항운 이사)씨 빙부상 18일 이대 목동병원, 발인 20일 오전 9시 (02)2650-2746 ●양주철(경남대 체육교육과 명예교수)씨 별세 태현(창원사파성당 주임신부)태석(재미 사업)태경(미국 유학)씨 부친상 17일 창원 파티마병원, 발인 20일 오전 10시 (055)270-1940 ●이선호(중앙감정평가법인 감정평가사)진호(전 안양시 동안구청장)씨 부친상 박종철(전 한국유리 부장)씨 빙부상 1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0일 오전 10시 (02)3410-6915 ●한동주(대한통운 국제물류 상무이사)씨 모친상 윤영환(라이온스 D지구 부총재)씨 빙모상 한지훈(현대기아차 마케팅총괄본부)씨 조모상 18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0일 오후 1시 (02)392-0299 ●이백경(금광기업 대표)씨 별세 재명(군인)씨 부친상 정경(하나은행 북부지역본부장)씨 형님상 혜경(국민대 성곡도서관)혜령(군포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씨 오라버니상 1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0일 오전 7시 (02)3010-2294 ●오영식(베스트카고해운 대표)씨 모친상 1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 (02)3010-2235 ●조준형(전 신동아화재해상보험 전주지점장)씨 별세 박혜란(전 상업은행 당산동지점 과장)씨 상부 조성환(우리은행 안산지점 과장)성윤(현대중공업)씨 숙부상 1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0일 오전 7시 (02)3010-2268 ●변성규(한양대 중국학과 교수)씨 상배 홍재호(서울복층유리 대표)태호(하영특수유리 〃)씨 여동생상 1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9일 오전 9시 (02)3010-2253
  • [유림 속 한자이야기] (71) 奔喪(분상)

    儒林 (322)에는 ‘奔喪’(달릴 분/잃을 상)이 나오는데,‘먼 곳에서 부모가 돌아가신 소식을 듣고 급히 집으로 돌아감’을 이르는 말이다. ‘奔’자의 金文(금문) 자형을 보면 사람이 팔을 휘젓고 있으면서 그 아래에는 발을 뜻하는 ‘止’(지)자가 세 개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會意字(회의자)이다. 用例(용례)에는 ‘奔忙(분망:매우 바쁨),奔放(분방:규칙이나 규범에 구애받지 않고 제멋대로임),奔走(분주:몹시 바쁘게 뛰어다님)’ 등이 있다. ‘喪’자는 뽕나무 한 그루와 그 가지에 걸린 대바구니들을 본뜬 글자로, 원래 뜻은 ‘뽕잎을 따다’였다. 그런데 뽕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누에의 먹잇감으로 잎을 모두 잃어버린다. 여기서 착안하여 喪에서 ‘잃어버리다’‘죽다’의 뜻이 派生(파생)되었다고 한다.用例에는 ‘喪明(상명:아들의 죽음을 당함. 자하가 아들의 죽음에 너무 상심하여 실명한 고사에서 나온 말),喪心(상심:근심 걱정으로 맥이 빠지고 마음이 산란하여짐),喪妻(상처:아내가 죽음)’ 등이 있다. 상례란 사람이 殞命(운명)하여 땅에 묻힌 다음,大祥(대상)을 지내고 吉祭(길제)를 지내고 脫喪(탈상)까지의 一連(일련)의 의식 절차를 말한다.近代化(근대화)의 물결과 함께 각종 傳統意識(전통의식)이 退色(퇴색)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상례에 관한 풍습만큼은 여전히 전통적인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전통 상례의 節次(절차)의 대강만을 거론하더라도,“臨終(임종:운명이라고 하는데 원래 사람이 장차 죽을 때를 말함)-皐復(고복:生時(생시)에 입던 저고리를 왼손에 들고 지붕에 올라서거나 마당에서 북쪽을 향해 이름을 부르는 일)-設奠(설전:死者(사자)를 생시와 같이 섬기기 위해서 매일 한 번씩 음식을 드림)-小殮(소렴:시신을 옷과 이불로 싸는 것을 말함)-大殮(대렴:소렴이 끝난 뒤 시신을 입관하는 의식)-成服(성복:大殮이 끝난 이튿날,五服(오복)의 사람들이 각각 그 복을 입고 조곡을 하며 조상함)-遷柩(천구:영구를 상여로 옮기는 의식으로 발인 전날 행함)-발인(發靷:영구가 장지를 향해 떠나는 것을 말함)-成墳(성분:흙과 회로 광중을 채우고 흙으로 봉분을 만드는 일)-虞祭(우제:神主(신주)를 위안시키는 제사로 초우는 葬日(장일) 당일 집에 돌아와 지낸다)-卒哭(졸곡:삼우 종료 후 3개월이 경과한 剛日(강일)에 지냄)-小祥(소상:초상을 치른 지 만 1년이 되는 날 지내는 제사)-대상(大祥:초상 후 만2년만에 지냄)-吉祭(길제:담제를 지낸 직후 택일하여 지냄)” 등 매우 복잡하다. 다음 奔喪의 설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내용 또한 까다롭다.“무릇 服(복)을 입어야 할 親戚(친척)의 喪(상)이 났으나 다른 곳에서 訃音(부음)을 들었으면 神位(신위)를 설치하고 哭(곡)을 한다. 만일 奔喪을 해야할 경우라면 그 집에 도착하여 成服(성복)을 하고,奔喪이 어려우면 나흘만에 成服을 한다.” 이렇게 喪禮(상례)의 절차를 까다롭게 規定(규정)해 놓은 것은 哀悼(애도)의 뜻을 충분히 표현하기 위한 制度的(제도적) 裝置(장치)이기도 하지만 슬픔을 적절히 調節(조절)하여 喪主(상주)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크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군포 시민에 자전거 무료대여

    경기도 군포시는 10일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해 시민들에게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주기로 했다. 대여할 자전거는 모두 100대로, 가구당 1대씩 3개월·6개월·1년 단위로 빌려주며 계약 만료시 연장도 할 수 있다. 자전거를 이용할 시민은 오는 16∼17일 시 행정지원과로 신청서와 서약서, 협약서, 사진, 신분증 등을 제출하면 된다. 시는 접수 순서에 따라 이번에 새로 구입한 자전거를 대여한다. 지난 99년부터 자전거 무료 대여사업을 벌이고 있는 군포시는 지금까지 모두 1140대의 자전거를 시민에게 무료로 대여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교통·환경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대안이 바로 자전거 타기”라며 “자전거를 타고 싶은 시민은 시청으로 신청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031)390-0835. 군포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퇴직교원 562명에 훈·포장

    정부는 8일 지난 2월 말 명예·의원퇴임한 교원 562명에게 훈·포장 및 표창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박찬석 전 경북대 총장과 이무근 경일대 총장, 박명수 전 중앙대 총장, 고재식 전 한신대 총장 등 4명에게는 1등급인 청조근정훈장이 수여된다. 문병언 경기부광초 교장 등 34명에게는 황조근정훈장, 서기원 부산 브니엘예술고 교장 등 35명은 홍조근정훈장을 받는다. 조동균 전남 목포인성학교 교장 등 83명은 녹조근정훈장, 이문호 충북 청안중 교사 등 136명은 옥조근정훈장을 받는다. 이밖에 79명은 근정포장,36명은 대통령 포장,55명은 국무총리표창,100명은 교육부총리 표창을 받는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청조근정훈장(4명) 1 박찬석 朴贊石 (前)총장 경북대학교2 이무근 李茂根 총장 경일대학교3 박명수 朴命洙 (前)총장 중앙대학교4 고재식 高在植 (前)총장 한신대학교 ◆황조근정훈장(34명) 5.고문자 高文子 교사 동산초등학교6 故 신중배 愼重培 교감 서울연촌초등학교7 정화자 鄭和子 교장 서울덕수초등학교8 박승봉 朴勝鳳 교장 서울잠동초등학교9 김상욱 金相旭 교감 서울학동초등학교10 박인홍 朴寅弘 교장 서울남성초등학교11 신웅 申雄 교장 서울광장초등학교12 최진흡 崔振洽 교감 서울동자초등학교13 박부자 朴富子 교장 달북초등학교14 송후덕 宋厚德 교감 낙동고등학교15 황봉진 黃鳳鎭 교감 분포초등학교16 이호기 李好基 교감 초읍초등학교17 이연무 李然武 교감 학남고등학교18 김윤환 金允煥 교장 대구칠곡초등학교19 故 김휘영 金輝永 교장 대구동호초등학교20 윤덕자 尹德子 교사 인창초등학교21 문병언 文炳彦 교장 부광초등학교22 김영수 金永壽 교장 오남초등학교23 양건 梁健 교장 청곡초등학교24 오영자 吳英子 교장 부림초등학교25 장대홍 張大弘 교장 안말초등학교26 김재섭 金在燮 교장 구운초등학교27 최일웅 崔一雄 교감 교동초등학교28 故 조공성 趙孔聖 교장 대진초등학교29 김순택 金淳澤 교장 아우내중학교30 김영석 金永錫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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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초등학교169 하태진 河太鎭 교감 부산중앙고등학교170 이영희 李永熙 교감 운봉초등학교171 박옥수 朴玉守 교감 용호중학교172 김승석 金承石 교감 해운대공업고등학교173 故 이병욱 李丙旭 교감 구서여자중학교174 정경혜 鄭慶惠 교감 동주여자상업고등학교175 김정시 金正市 교감 성광고등학교176 김홍 金弘 교감 평리중학교177 이상백 李相伯 교감 와룡고등학교178 이팔수 李八洙 교감 원화여자고등학교179 권태승 權泰昇 교장 영진고등학교180 정재영 鄭載榮 교감 구남중학교181 이정석 李正錫 교감 현풍고등학교182 안신영 安信瑩 교사 인천남동초등학교183 박민호 朴敏鎬 교감 인천신광초등학교184 김명애 金明愛 교감 인천신흥초등학교185 이우만 李愚萬 교감 인천용현남초등학교186 故 장경선 張慶善 교감 인천서운초등학교187 최지선 崔志瑄 교감 인천박문여자중학교188 김옥은 金玉恩 교감 광주문화초등학교189 박명진 朴明辰 교감 상일중학교190 박내길 朴來吉 교감 각화초등학교191 박정식 朴定植 교감 두암초등학교192 김종윤 金鍾潤 교사 광주효덕초등학교193 강중구 姜重久 교감 동대전중학교194 황태운 黃泰雲 교감 대전고등학교195 나능찬 羅能燦 교감 회덕초등학교196 이옥선 李玉善 교감 도덕초등학교197 故 김은기 金銀起 교감 상패초등학교198 김남주 金南珠 교감 부용초등학교199 강태진 姜太珍 교장 의왕부곡초등학교200 전갑순 全甲順 교감 오마초등학교201 이영휘 李永徽 교감 화성장안초등학교202 황연욱 黃蓮旭 교감 운암초등학교203 故 한민교 韓敏敎 교장 이천송정초등학교204 엄귀순 嚴貴順 교감 원천초등학교205 이정애 李貞愛 교감 조원초등학교206 허관철 許關鐵 교감 이천중학교207 고삼직 高三直 교감 수성여자중학교208 이양자 李洋子 교감 동부여자중학교209 엄준섭 嚴準燮 교감 안양공업고등학교210 오영일 吳英日 교감 평택여자고등학교211 장재영 張在濚 교감 동두천중앙고등학교212 김선희 金善姬 교사 동내초등학교213 신춘애 申春愛 교감 강릉초등학교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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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순 金晶順 교감 봉원초등학교260 故 조찬래 趙贊來 교감 주동초등학교261 故 안수경 安守敬 교사 밀양초등학교262 故 배영동 裵英東 교사 밀성초등학교263 권영숙 權榮淑 교감 사포초등학교264 故 박무재 朴武在 교장 산외초등학교265 전경주 全炅柱 교감 삼천포초등학교266 박정제 朴正濟 교감 정곡중학교267 이종석 李鐘碩 교감 고성여자중학교268 임일석 林逸錫 교장 해성중학교269 김국치 金國治 교감 마산공업고등학교270 최배규 崔培奎 교감 마산공업고등학교271 故 이우섭 李佑燮 교감 밀성고등학교272 장세철 張世哲 교사 함안고등학교273 신호향 申鎬享 교장 마산중앙고등학교274 박중구 朴重久 교감 합포고등학교275 문정일 文丁一 교감 노형초등학교276 오광균 吳廣均 교감 서귀포초등학교277 정화철 鄭和喆 교수 우송공업대학278 정은식 鄭垠植 교수 동의공업대학279 문창아 文昌兒 교수 동주대학280 구대회 具大會 부교수 대구미래대학281 이종수 李宗秀 교수 경남정보대학282 임채현 林采鉉 교수 동부산대학283 박재환 朴載煥 교수 동부산대학284 인주철 印柱哲 교수 경북대학교285 한은재 韓恩在 교수 계명대학교286 이길룡 李吉龍 교수 대구가톨릭대학교287 곽광자 郭光子 교수 대구가톨릭대학교288 황석자 黃晳子 교수 대구가톨릭대학교289 故 강진경 康珍敬 교수 연세대학교290 故 송세목 宋世穆 교수 청주대학교291 전용기 全勇起 교수 호원대학교292 박현빈 朴鉉彬 교수 호원대학교 ◆근정포장(79명)293 신승철 申承澈 교장 보인중학교294 故 이달수 李達壽 교사 은평웹미디어고등학교295 신동범 愼東範 교장 상계제일중학교296 백금순 白金順 교감 둔촌고등학교297 故 박도원 朴道元 교사 서울용암초등학교298 박임희 朴臨熙 교장 서울신답초등학교299 故 홍완석 洪完錫 교사 신재초등학교300 윤승삼 尹勝三 교감 계성정보고등학교301 박명복 朴明福 교감 동현중학교302 이인숙 李仁淑 교감 장림여자중학교303 전철부 田鐵夫 교사 대양전자정보고등학교304 김해원 金海元 교감 대구서부고등학교305 송옥헌 宋玉憲 교감 성명여자중학교306 박대흠 朴大欽 교감 현풍고등학교307 정승현 鄭承鉉 교감 경북여자정보고등학교308 유순종 劉順鍾 교감 인천신광초등학교309 오순학 吳淳鶴 교감 문학정보고등학교310 이용성 李勇成 교감 인천함박초등학교311 박오순 朴五順 교사 문산초등학교312 故 신명식 申明植 교사 문산중학교313 박장환 朴長煥 교장 보문고등학교314 김영철 金榮喆 교감 대전양지초등학교315 故 서원기 徐源基 교감 신탄진초등학교316 김순희 金純姬 교감 가납초등학교317 임충균 林忠均 교감 매화초등학교318 이영임 李榮壬 교감 용정초등학교319 김정원 金貞媛 교감 경의초등학교320 신비식 申妃植 교감 성남매송초등학교321 김영희 金英姬 교사 도곡초등학교322 권태범 權泰範 교감 소하고등학교323 김찬용 金讚鎔 교감 수원공업고등학교324 박상열 朴相烈 교사 평택기계공업고등학교325 박군자 朴君子 교감 군포정보산업고등학교326 심현국 沈鉉國 교감 유신고등학교327 황미자 黃美子 교감 영성여자중학교328 강윤석 姜允錫 교장 심석중학교329 김현숙 金賢淑 교감 홍천초등학교330 류영오 柳瑩五 교감 남원주중학교331 이세구 李世求 교감 영월중학교332 박광모 朴光模 교장 심천중학교333 고평식 高平植 교사 개신초등학교334 故 전경우 全敬寓 교사 제천동중학교335 김학수 金學洙 교사 운호고등학교336 故 김창동 金昌東 교사 석교초등학교337 조옥명 趙玉明 교감 온양여자중학교338 차인호 車仁鎬 교장 신풍종합고등학교339 손원의 孫源義 교사 군산영광중학교340 김상칠 金相七 교감 이리영등초등학교341 안병진 安秉鎭 장학관 전라북도교육청342 유재덕 兪在德 교감 전주인후초등학교343 신재도 申載道 교사 호남고등학교344 최성호 崔盛皓 교사 불갑초등학교345 이경호 李京浩 교감 석보초등학교346 허영숙 許英淑 교감 상주초등학교347 정태환 鄭泰煥 교감 지곡초등학교348 정영화 鄭永花 교감 형일초등학교349 김소경 金素卿 교감 인동초등학교350 김영옥 金永玉 교감 경산서부초등학교351 조희축 曺喜丑 교감 자인초등학교352 장영희 張永熙 교장 현일고등학교353 신인묵 辛仁默 교장 오천고등학교354 조봉환 趙鳳煥 교장 경주중학교355 정해유 丁海酉 교감 병곡중학교356 박종현 朴種鉉 교감 청도여자고등학교357 김채숙 金菜淑 교감 회원초등학교358 이상훈 李相勳 교장 거창대성중학교359 김종환 金鍾煥 교사 성지여자고등학교360 조병철 曺秉鐵 교감 삼계중학교361 오경순 吳京順 교수 숭의여자대학362 오인식 吳仁植 부교수 우송공업대학363 김영찬 金榮燦 교수 인덕대학364 김진숙 金辰淑 교수 동부산대학365 양삼승 梁三勝 교수 포항1대학366 심영학 沈永鶴 교수 연세대학교367 조규철 調圭哲 교수 울산대학교368 이정전 李正典 교수 전남대학교369 한기영 韓基榮 교수 제주대학교370 한준노 韓俊老 교수 호원대학교371 이종복 李鍾福 교수 호원대학교 ◆대통령표창(36명)372 故 박종출 朴鍾出 교사 서울상월초등학교373 이옥희 李玉姬 교감 교리초등학교374 김천규 金千圭 교감 부산여자고등학교375 故 김영신 金渶信 교사 덕명정보여자고등학교376 최돈규 崔敦圭 교감 남성여자고등학교377 박정순 朴正順 교감 부산혜성학교378 정헌찬 鄭憲澯 교장 장안제일고등학교379 김재일 金載一 교감 덕원중학교380 이영희 李英姬 교감 인천만수북초등학교381 지진호 池珍昊 교감 인천외국어고등학교382 박인수 朴仁秀 교장 동산고등학교383 안영진 安暎珍 교감 가좌여자중학교384 권선유 權善有 교감 유성여자고등학교385 故 김용호 金龍鎬 교감 전하초등학교386 정점순 鄭占順 교감 부광초등학교387 오세화 吳世和 교감 경의초등학교388 이상희 李相姬 교감 덕풍초등학교389 장인숙 張仁淑 교감 구운중학교390 김안자 金安子 교감 백석중학교391 故 오영진 吳永鎭 교감 광주고등학교392 故 오종덕 吳鍾德 교감 안내중학교393 이규현 李揆炫 교사 상산고등학교394 소선영 蘇善永 교감 이리동중학교395 김정애 金貞愛 교사 여수부영초등학교396 최종구 崔鍾九 교감 포항동부초등학교397 이명애 李明愛 교감 풍기중학교398 송국자 宋國子 교감 봉곡중학교399 최충길 崔忠吉 교감 함창고등학교400 허정숙 許貞淑 교감 명서중학교401 구갑순 具甲順 교감 문산중학교402 이원부 李源夫 교감 김해고등학교403 곽오계 郭五季 교수 대구과학대학404 윤현중 尹玄重 부교수 경북전문대학405 이진표 李振杓 교수 대불대학교406 정원배 鄭元培 교수 부산대학교407 故 고소웅 高昭雄 교수 연세대학교 ◆국무총리표창(55명)408 윤병욱 尹炳旭 교감 유석초등학교409 故 최응도 崔應燾 교감 경희초등학교410 장현숙 張賢淑 교사 성신초등학교411 신유섭 申庾燮 교사 수송중학교412 김연심 金連心 교사 이사벨중학교413 김인근 金仁根 교감 금사중학교414 최정숙 崔貞淑 교사 사직여자중학교415 정정순 鄭靜順 교감 내성중학교416 마동호 馬東浩 교감 부산국제고등학교417 이국웅 李國雄 교사 대구광명학교418 최호숙 崔好淑 교감 대구범어초등학교419 김우태 金瑀泰 교감 삼산고등학교420 조병남 趙炳楠 교감 신흥여자중학교421 김복순 金福順 교감 광주제일고등학교422 김영현 金榮賢 교사 대전백운초등학교423 김정선 金貞善 교사 대전석봉초등학교424 故 안의환 安義煥 교사 대전중학교425 염근호 廉根浩 교감 동구초등학교426 박광희 朴光熙 교감 성복초등학교427 김성태 金聖泰 교감 양곡초등학교428 장은주 張恩珠 교감 의정부서초등학교429 김순옥 金順玉 교감 금상초등학교430 이상옥 李相玉 교감 포천초등학교431 故 최도철 崔道撤 교감 평촌공업고등학교432 전주영 全珠英 교감 부일중학교433 박순자 朴順子 교감 군포중학교434 한명옥 韓明玉 교장 여주제일중학교435 원옥희 元玉姬 교감 여주중학교436 정순희 鄭舜姬 교감 도농중학교437 故 서정호 徐廷晧 교사 중흥고등학교438 故 임상철 林相喆 교사 이월중학교439 故 윤택중 尹宅重 교사 경천초등학교440 오인순 吳仁順 교감 신풍중학교441 이정옥 李貞玉 교감 광천고등학교442 박영수 朴英秀 교사 전주덕진중학교443 이종암 李鍾岩 교사 전주영생고등학교444 유명심 兪明心 교감 정읍여자중학교445 이순희 李順姬 교감 경산중앙초등학교446 故 김동원 金東源 교사 정평초등학교447 김영열 金永烈 교감 안동중앙고등학교448 박종욱 朴鍾郁 교감 김천농공고등학교449 최영철 崔永喆 교사 상주고등학교450 정명숙 鄭明淑 교감 남양초등학교451 이정기 李政基 교감 삼천포제일중학교452 진옥선 陳玉善 교감 영운중학교453 김연실 金硏實 교감 애월상업고등학교454 박금옥 朴今鈺 부교수 신구대학455 원송대 元松大 교수 천안연암대학456 김일남 金一男 교수 포항1대학457 김욱동 金旭東 교수 서강대학교458 이원섭 李元燮 교수 경북대학교459 황윤식 黃潤植 교수 동국대학교460 함병문 咸秉文 교수 서울대학교461 故 심재룡 沈在龍 교수 서울대학교462 백인욱 白寅煜 교수 인제대학교 ◆장관표창(100명)463 서경호 徐璟鎬 교사 중동중학교464 이선종 李善鍾 교사 신정여자중학교465 김경환 金敬煥 교사 등촌중학교466 황선현 黃善鉉 교사 혜원여자중학교467 권순택 權純宅 교사 대일고등학교468 홍익의 洪翼義 교사 서울대현초등학교469 장경신 張慶信 교사 서울포이초등학교470 정용오 鄭用五 교사 서울역삼초등학교471 故 조재식 趙宰湜 교사 수유중학교472 양종화 梁鐘和 교사 종암중학교473 故 권태형 權泰亨 교사 방산중학교474 선일영 宣逸永 교사 경서중학교475 김선혜 金善惠 교사 서울보광초등학교476 이은적 李殷適 교사 서울염창초등학교477 박순희 朴順姬 교사 서울신목초등학교478 박용조 朴龍祚 교사 서울정목초등학교479 이희숙 李喜淑 교사 서울구의초등학교480 이인숙 李仁淑 교감 영도중학교481 엄애숙 嚴愛淑 교감 부산고등학교482 서혜원 徐惠媛 교감 데레사여자고등학교483 김영숙 金永淑 교감 다선중학교484 손양숙 孫陽淑 교감 구남초등학교485 이명옥 李明玉 교감 해운대여자중학교486 남광이 南光二 교감 소선여자중학교487 이현정 李賢貞 교사 가좌여자중학교488 황예자 黃禮子 교사 인천소양초등학교489 최현주 崔賢珠 교사 인천능허대초등학교490 박태구 朴泰求 교감 광주여자상업고등학교491 故 이길선 李吉仙 교사 대전둔산여자고등학교492 김은희 金恩姬 교감 새일초등학교493 김욱생 金旭生 교감 동천초등학교494 이성옥 李成玉 교감 효정고등학교495 김혜자 金惠子 교감 광명북초등학교496 김혜숙 金惠淑 교감 광명북초등학교497 권영숙 權英淑 교감 광명동초등학교498 조계환 趙啓煥 교감 주엽초등학교499 이수자 李修子 교감 고양화정초등학교500 이규영 李圭英 교사 문촌초등학교501 故 노두한 魯斗漢 교사 전곡초등학교502 강춘식 姜春植 교감 상갈초등학교503 故 김재웅 金載雄 교사 양성초등학교504 故 양내석 梁來錫 교사 현덕초등학교광덕분교505 문기섭 文奇燮 교감 세교초등학교506 김차옥 金次玉 교감 수성초등학교507 선향영 宣享榮 교감 중탑초등학교508 김경숙 金京淑 교감 관양초등학교509 곽용임 郭勇壬 교감 의정부고등학교510 김귀식 金貴植 교감 용호중학교511 윤상화 尹相和 교사 용호중학교512 이선애 李仙愛 교감 저동중학교513 故 이승호 李承鎬 교사 호성중학교514 홍정임 洪貞任 교감 양영중학교515 故 최진화 崔鎭和 교사 구리중학교516 전윤주 全潤珠 교사 경화여자고등학교517 변미숙 卞美淑 교사 충북대학교사범대부속중학교518 이정옥 李晶玉 교사 매괴고등학교519 이미미 李美美 교사 삼산초등학교병설유치원520 김영자 金英子 교사 천안부영초등학교521 송해성 宋海星 교사 부여여자고등학교522 오재균 吳在均 교사 천안백석중학교523 문승태 文承泰 교사 공주정명학교524 故 김영순 金榮順 교사 천안봉서중학교525 황금순 黃錦順 교감 신풍중학교526 정종섭 丁鍾燮 교사 남성여자고등학교527 김장욱 金장旭 교사 전주중앙여자고등학교528 김영표 金永標 교사 상산고등학교529 김종배 金鍾倍 교사 상산고등학교530 김연수 金蓮秀 교감 고산고등학교531 故 김지순 金智淳 교사 남평중학교다도분교장532 조혜숙 趙惠淑 교사 월야초등학교533 양선옥 梁先玉 교사 영주초등학교534 서정숙 徐貞淑 교감 신동초등학교535 최병길 崔丙吉 교감 안강제일초등학교536 윤창식 尹昌植 교감 옥산초등학교537 노윤희 盧允熙 교감 구미신평초등학교538 故 김정화 金貞和 교사 남성초등학교539 김은희 金恩姬 교사 신동초등학교540 박선희 朴善熙 교감 신녕중학교541 故 최우남 崔羽南 교사 구미여자중학교542 김효철 金孝哲 교감 서라벌여자중학교543 故 김명미 金明 교사 구미신평중학교544 채수광 蔡洙光 교사 이동중학교545 염찬기 廉贊基 교사 남해해성고등학교546 故 정훤 鄭煊 교사 김해고등학교547 김철 金哲 교감 선명여자고등학교548 최진숙 崔珍淑 교감 중문상업고등학교549 이영진 李榮振 교사 오현고등학교550 홍순태 洪淳泰 부교수 대구산업정보대학551 김경학 金京鶴 교수 동부산대학552 김경호 金暻浩 교수 대불대학교553 구본식 具本植 교수 대구가톨릭대학교554 故 임창호 任昌虎 교수 서울대학교555 이택수 李宅洙 부교수 이화여자대학교556 故 이동수 李東洙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557 조백현 曺伯炫 교수 전남대학교558 정영숙 丁英淑 교수 전북대학교559 송요한 宋要翰 부교수 전북대학교560 정태기 鄭泰基 교수 한신대학교561 이대남 李大南 교수 호원대학교562 박노준 朴魯俊 교수 관동대학교(끝)
  • [유림 속 한자이야기] (70) 巫山之夢(무산지몽)

    儒林 (323)에는 巫山之夢(무당 무/뫼 산/어조사 지/꿈 몽)이 나오는데,‘남녀간의 密會(밀회)나 情交(정교)’혹은 ‘덧없는 한때의 꿈’을 이르는 말이다. ‘巫’는 工(공)자 모양을 가로 세로로 놓은 형태의 도구인데, 가로로 놓였던 부분이 小篆(소전)에서 人(인)자처럼 변하여 오늘날의 字形(자형)으로 변했다.用例(용례)로는 ‘巫覡(무격:무당과 박수),巫女(무녀:무당),巫俗(무속:무당의 풍속)’ 등이 있다. ‘山’자는 산 모양을 본뜬 것이다. 참고로 ‘岳’은 산 뒤에 두어 봉우리의 산이 더 보이는 글자이니 山보다는 더 높고 큰 산의 상형이다.山자의 用例에는 山戰水戰(산전수전:세상의 온갖 고생과 어려움을 다 겪었음),山海珍味(산해진미:산과 바다에서 나는 온갖 진귀한 물건으로 차린 맛이 좋은 음식)’ 등이 있다. ‘之’자는 ‘止’(지)와 ‘一’(일)을 합친 글자이다.止는 본래 발을 뜻하였으나 점차 ‘그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이렇게 발을 나타내는 止 아래에 출발선 또는 지면을 가리키는 一을 넣어 ‘어디론가 가다.’라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夢’자의 원형은 현재의 字形(자형)에서 ‘夕’(저녁 석)이 생략된 형태로,‘꿈’을 뜻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본래 ‘어둡다, 컴컴하다.’는 뜻의 ‘夢’자가 ‘꿈’의 뜻으로 자리잡더니 오늘날까지 그 생명력을 연장하고 있다.夢寐(몽매:잠을 자면서 꿈을 꿈),蒙昧(몽매: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움),夢死(몽사:헛되이 살다 죽음),夢想(몽상:실현성이 없는 헛된 생각을 함) 등에 쓰인다. 巫山之夢은 文選(문선)에 수록된 高唐賦(고당부)에서 비롯된 말이다. 전국시대 楚(초)의 襄王(양왕)이 宋玉(송옥)과 함께 雲夢(운몽)이라는 곳에서 놀다가 高唐館(고당관)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왕은 때마침 기이한 형상의 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송옥에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송옥은 다음과 같은 사연을 들려주었다. 선대의 어떤 왕이 고당관에서 宴會(연회)를 열고 즐기다가 잠시 낮잠을 자게 되었는데, 꿈속에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자신을 巫山(무산)에 사는 여인이라고 소개하며 왕의 잠자리를 받들고자 왔다고 하였다. 왕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魅惑(매혹)되어 雲雨(운우)의 情(정)을 나누었다. 헤어질 무렵이 되자 그녀는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 아래에 머물면서 朝夕(조석)으로 그대만을 그리워하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자취를 감추었다. 다음날 아침 왕이 巫山 쪽을 바라보니 꿈속에서 만난 여인의 말대로 산봉우리에 아름다운 구름이 걸려 있었다. 왕은 그곳에 朝雲廟(조운묘)라는 사당을 세웠다. 유사한 말로는 중국 당나라의 淳于(순우분)이 술에 취하여 홰나무의 남쪽으로 뻗은 가지 밑에서 잠이 들었는데 槐安國(괴안국)으로부터 영접을 받아 20년 동안 영화를 누리는 꿈을 꾸었다는 데서 유래한 ‘南柯一夢(남가일몽)’,盧生(노생)이라는 사람이 邯鄲(한단)이란 곳에서 呂翁(여옹)의 베개를 빌려 잠을 잤는데, 꿈속에서 80년 동안 부귀영화를 다 누렸으나 깨어 보니 메조로 밥을 짓는 잠깐 동안이었다는 데서 유래한 ‘邯鄲之夢(한단지몽)’이 있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쪽지 통신]

    ●e러닝 박람회 전자학습(e러닝)을 통해 구현되는 미래 교육의 청사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박람회가 3∼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도양관에서 열린다. 교육인적자원부가 개최하고 한국교육학술정보원과 한국교육정보진흥협회, 시·도교육청이 공동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삼성과 LG 등 60여개 관련 민간업체가 참여한다. 특히 언제 어디서나 이동하면서 활용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기술과 연계된 미래 교실의 모습과 함께 가정과 연계한 교수학습활동, 사이버 체험을 통한 새로운 학습 경험들을 직접 현장에서 느낄 수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다음달 1∼14일 경기도 고양시 한국국제전시장에서 열릴 예정인 ‘한국교육 100년 사진전’에 전시할 사진을 공모하고 있다. 한국교육의 역사를 회고하는 행사로 오는 14일까지 사진을 내면 된다. 주제는 지난 한 세기 동안 대한민국 교육과 관련된 사진이면 된다. 수상자 발표는 25일이며, 대상 1점과 우수상 2점, 장려상 5점, 다수의 입선을 선정할 계획이다. 신청 방법은 서울시 서초구 우면동 92의 2 ‘에듀 엑스포 2005’사무국을 직접 방문해 접수하거나 우편으로 하면 된다. ●온라인 교육사이트 비타에듀(www.vitaedu.com) 최근 기존 논·구술 강좌를 한층 보강한 첨삭 논술 및 ‘대학별고사’등 60여개 강좌를 선보였다.1학시 수시모집 지원을 앞둔 수험생 뿐 아니라 고1·2 학생도 대상별로 구분, 총론과 논술 공통 기본강의, 논술 배경지식, 대학별 논술 첨삭강의 등을 제공한다. 대학별 고사 강좌에서는 논·구술 기본과정과 배경지식 심화과정, 첨삭교실, 대학별 맞춤특강 등 과정별로 세분화한 것이 특징이다. 답안을 온라인으로 작성하면 해당 논제에 대한 해설과 예시답안을 볼 수 있다. 전문논술 첨삭팀은 제시된 논제에 대한 표현력, 논증력, 창의성 등의 세부 영역으로 구분하여 첨삭 지도를 진행한다. ●고덕평생학습관 16일 오후 본관 2층 컴퓨터교육실에서 ‘초·중고생 정보사냥대회’를 연다. 초등부는 오후 4시∼5시 40분이며, 중·고등부는 오후 5시 50분∼7시 50분이다. 참가 인원은 초·중·고 각 20명.13일까지 선착순 마감이다. 수상자는 20일 홈페이지에 공고하며, 참가자 전원에게 문화상품권을 준다. ●㈜디지털대성(www.ds.co.kr) 최근 온라인 평가 및 자동 논술채점 서비스 제공업체인 미국 밴티지러닝사와 제휴, 초·중·고 학생들의 영어 읽기와 쓰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마이액세스(MY Access)’와 ‘러닝액세스(Learning Access)’ 서비스를 조만간 시작한다고 밝혔다. 마이액세스는 인공 지능으로 논술 답안을 채점할 수 있는 온라인 논술평가 시스템으로, 문제의 정답이나 논술내용을 입력하면 몇 초 안에 분석결과와 점수를 확인할 수 있다. 러닝액세스는 읽기, 쓰기, 수학, 과학 영역에서 학생들의 지식을 평가하는 일종의 온라인 진단 도구다. ●경기도교육청(www.ken.go.kr) 도내 전역을 5대 권역으로 나눈 뒤 학생들에게 권역별 여건에 맞는 특성화 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도 교육청은 이에 따라 도를 ▲대북교류권역(김포·파주·연천·포천·동두천·양주) ▲생태환경권역(하남·광주·가평·여주·남양·양평) ▲지식기반 서비스권역(부천·고양·성남·광명·의왕·안양·과천·구리·군포·의정부) ▲지식기반 제조권역(수원·오산·용인·이천·안성) ▲해양물류권역(시흥·안산·평택·화성) 등으로 나눴다.
  • [儒林 속 한자이야기] (69) 雅號(아호)

    雅號(아호) 儒林 (322)에는 ‘雅號’(바를아/부를 호)가 나오는데,‘문인이나 예술가 등의 號(호)나 別號(별호)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雅’자는 아래위가 맞물려 있는 ‘짐승의 이빨’을 뜻하는 ‘牙’(어금니 아)가 音符(음부)로, 새의 象形(상형) ‘ ’(새 추)가 意符(의부)인 形聲字(형성자)이다.許愼(허신)에 의하면 雅는 원래 ‘까마귀’의 일종을 뜻하는 글자였다. 그런데 점차 ‘고상하다, 너그럽다’는 뜻이 일반화되면서 ‘鴉’(갈까마귀 아)자를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用例(용례)로는 ‘雅量(아량:너그럽고 속이 깊은 마음씨),雅拙(아졸:성품이 단아하나 융통성이 없음),端雅(단아:단정하고 아담함) 등이 있다. ‘號’자는 ‘ ’(신음소리 호)와 ‘虎’(범 호)가 결합된 글자이다.字意(자의)는 막대기로 두들겨 맞을 때 너무 긴장되어 소리를 지르고자 해도 낼 수 없는 ‘처절한 울부짖음’이다.‘號令(호령:부하나 동물 따위를 지휘하여 명령함),號外(호외: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 임시로 발행하는 신문이나 잡지),諡號(시호:제왕이나 재상, 유현들의 사후에 공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등에 쓰인다. 우리의 先賢(선현)들은 자신의 상징인 이름이 함축하고 있는 뜻을 생각하며 이에 부합하도록 처신하고자 노력하였다. 나의 인격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인격도 소중한 것으로 여겨 상대방을 상징하는 이름마저도 함부로 부르지 않았다. 따라서 孔孟(공맹) 같은 성현은 물론 조상이나 존장자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고, 자신의 이름도 낮춰야 할 경우가 아니면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등장한 게 ‘字’(자)와 ‘號’이다. 字는 오늘날의 성년식인 冠禮(관례)를 행할 때 짓는 호칭이다.字의 사용이 名(명)보다는 자유롭다 하나 아랫사람이 웃어른의 字를 함부로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와 같은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나 누구나 허물없이 부를 수 있는 稱號(칭호)가 號인데, 이 號는 雅號(아호)와 堂號(당호)로 나눌 수 있다.雅號는 優雅(우아)한 號라는 뜻으로 예술가들이 詩文(시문)이나 書畵(서화) 등에 쓰는 것이고 堂號는 본래 堂(집 당)의 명칭이지만 이 것이 그 堂의 주인을 나타내는 명칭으로 쓰였다. 그러나 후세에는 號,雅號,堂號 등이 모두 같은 의미로 쓰였다. 名과 字는 부모나 존장자, 스승이 지어준 것으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어진 것이다. 반면 號는 자신의 理想(이상),性情(성정),別號(별호),居處(거처),處地(처지)를 상징하는 명칭으로 자신이 지을 수도 있고 타인이 지어줄 수도 있다. 호를 짓는데 절대적 규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緣故地(연고지)를 號로 정하는 所處以號(소처이호), 인생 목표와 의지를 號로 삼는 所志以號(소지이호), 처한 環境(환경)이나 여건을 가지고 號를 짓는 所遇以號(소우이호),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 가운데 특히 아끼고 좋아하는 것으로 號를 짓는 所玩以號(소완이호) 등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號를 雅號라고도 한다. 아호란 우아한 호라는 뜻이므로 他人의 호를 雅號라 하는 것은 穩當(온당)하나 자신의 호를 스스로 아호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세계롤러선수권 통역도우미 모집

    경기도 안양시는 내년 9월 안양에서 개최될 ‘2006 세계롤러선수권대회’에서 외국인에게 통역봉사를 할 외국어 통역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고 26일 밝혔다. 대상은 영어, 스페인어, 독어, 불어, 중국어 등을 구사할 수 있는 안양, 군포, 의왕, 과천 등 안양권 거주자로 오는 6월말까지 시 세계롤러기획단(031-389-2363)으로 신청하면 된다. 안양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재건축아파트 오름세 주춤

    계속 치솟던 재건축아파트 시세가 다소 주춤해지는 양상이다. 24일 부동산정보제공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재건축단지 가격은 지난 한 주간 0.77% 상승해 상승률이 이전 주(1.43%)의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특히 정부의 긴급 안전진단 조사권 발동 방침에 안전진단을 진행 중이거나 아직 안전진단을 받지 않은 초기 재건축단지는 소폭이지만 일부 하락하는 곳도 있다. 강동구 둔촌 주공4단지와 서초구 서초동 우성2차, 강남구 대치동 청실1차 등이 단지별로 500만∼1500만원 가량 내렸다. 재건축단지 시세의 상승세가 한풀 꺾이면서 일반아파트까지 포함한 서울 아파트 가격은 0.32% 올라 이전 주(0.43%)보다 상승폭이 다소 둔화됐다. 구별로 송파구(0.92%), 강남구(0.5%), 서초구(0.4%), 중랑구(0.36%), 영등포구(0.34%) 등이 다소 높은 상승세를 보였는데 중대형 평형이 오름세를 주도했다. 반면 서울숲 개장을 앞두고 최근 상승폭이 컸던 성동구는 0.18% 하락해 다소 조정을 받는 모습이었다. 신도시는 분당이 0.99% 올라 이전 주(1.06%)보다는 상승폭이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강세를 보였다. 일산(0.19%), 평촌(0.16%), 중동(0.02%) 등도 강보합이었다. 수도권은 재건축단지가 강세인 의왕(0.78%)과 과천(0.77%), 판교 영향을 받는 용인(0.59%) 등 호재 지역을 중심으로 상승했고 오산, 군포, 평택, 구리, 하남 등은 소폭 하락했다. 전세시장은 이사철이 종료되면서 하락세를 보인 지역이 늘었다. 서울(0.02%)은 송파(-0.22%), 동대문(-0.21%), 강서(-0.16%), 중랑(-0.15%), 종로(-0.09%) 등이 상대적으로 많이 하락했다. 동작(0.39%), 용산(0.35%), 금천(0.3%) 등은 신규 단지를 중심으로 강세였다. 신도시는 평촌(0.74%), 산본(0.54%), 분당(0.43%), 일산(0.09%), 중동(0.03%) 순으로 상승했다. 수도권도 하남(1.6%), 의왕(0.51%), 용인(0.44%), 수원(0.26%) 등이 오름세를 보였지만 화성, 광명, 아산, 성남 등은 소폭 내렸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⑦-한라건설·성우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⑦-한라건설·성우그룹

    한라건설이 역사속으로 사라진 한라그룹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재기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풀무질에 매진하고 있는 주인공은 정인영(85) 전 한라건설 명예회장의 차남인 정몽원(50) 회장이다. 한라는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의 바로 아래 동생인 정인영 한라그룹 전 명예회장이 황무지에서 일궈낸 그룹이다. 형님과 함께 현대건설 초석을 다지는 동시에 독자적으로 창업했다. 소비재·경공업 제품보다는 장치산업 중심으로 키웠고 21개 계열사를 거느리면서 재계 12위를 기록할 정도로 성장했던 기업 집단이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계열사끼리 상호출자·지급보증이 족쇄로 작용, 그룹 전체가 한꺼번에 쓰러지는 운명을 맞게 되면서 계열사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현재는 한라건설이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다. 한라건설은 연간 매출 규모 8000억원 규모인 중견업체로 자회사도 없다. 그래서 한라건설은 한라그룹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정 회장의 직책도 ‘한라건설 회장’이고, 정 명예회장 직책도 ‘한라건설 명예회장’이다. ●미군 공병대 일감 현대건설 연결 정 명예회장은 동아일보 신문기자 출신이다.14세에 무작정 상경, 야간 YMCA야간 영어과 2년을 다닌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학으로 아오야마(靑山)학원대학 야간 영어과 2학년을 중퇴하고 귀국, 동아일보에 둥지를 틀었다. 운명은 한국전쟁이 갈라놓았다. 외신부 기자였던 그는 형과 둘이서 피란길에 올랐다. 대구에서 한 일간지 편집일을 했고, 형은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부산까지 내려간 두 형제는 두 끼 먹을 밥값밖에 없어 유일한 재산이던 손목시계를 잡히기 위해 전당포를 들렀다가 미군 사령부 통역 모집 광고를 접했다. ‘왕 회장’은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동생이 미군 통역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인영이가 통역으로 취직하면 미군 식당에서 나오는 빵부스러기를 가져와도 먹는 것은 해결될 것이라면서 통역 취직을 했다.”고 회고했다. 자서전은 “아우가 공사라도 해서 밥을 먹어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공병대 장교 통역을 자원했는데 일이 뜻대로 잘 풀렸고, 공병대 일감을 현대건설에 연결해 줬다.”고 적고 있다. 이것이 현대건설이 미군 공사를 휩쓸면서 기업을 키울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이를 인연으로 정 명예회장은 1951년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61∼76년 현대건설 사장을 맡아 ‘왕 회장’과 함께 현대건설의 초석을 다진 장본인이다. 휴전 이후에는 국내 공사 수주에도 적극 나선다. 그러나 공사를 잘못 수주하는 바람에 미군 공사에서 알뜰하게 벌어들인 돈을 몽땅 털어넣고도 모자라 ‘왕 회장’은 자신의 집과 동생, 매제(김영주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85) 집까지 팔아 공사비를 충당했지만 엄청난 적자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57년 한강 인도교 공사를 수주,40%의 이익을 거두면서 ‘건설 5인조’에 들어갈 만큼 성장했다. 그 뒤 해외건설 시장에 진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자신감과 경쟁력을 기르고 ‘세계속의 현대건설’로 성장하는 데 한 축을 맡았다. ●현대양행에서 출발, 중공업에 치중 한라그룹은 정 명예회장이 1962년에 세운 현대양행에서 출발한다. 이 때는 정 명예회장이 ‘왕 회장’과 함께 현대건설의 초석을 다질 때였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건설 사장으로 일하면서도 “부존자원 없는 나라에서 중공업 개발 없이는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면서 62년 경기도 군포에 독자적으로 세운 기업이 바로 현대양행이다. 그는 76년 현대건설 사장직을 내놓았지만 현대양행은 80년 정부의 산업합리화 조치에 따라 포기해야 했고, 대신 중공업을 중심으로 그룹을 구성하게 됐다. 단일 공장으로 최대 규모인 130만평 부지에 창원종합기계공장(현 두산중공업)을 건설해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후 시멘트와 건설, 조선소, 제지, 자동차 부품, 중장비 등을 생산하는 기업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한라는 장치산업 중심의 그룹으로 우뚝 섰다.96년에는 자산 6조 2000억원, 매출 5조 3000억원, 종업원 2만여명이 딸려 있는 재계 12위의 대기업 군으로 성장했다. 주력 기업은 만도기계, 한라중공업, 한라건설, 한라시멘트 등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그룹을 키우는 동안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 말이 있다.“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야말로 경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까이서 그를 본 사람들은 유별난 ‘독서광’이라고 말한다. 출장길이나 차안에서도 영자 신문은 물론이고 경제경영 관련 책이 손에서 떠나질 않았다.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캐내 읽을 정도였다. 집무실에서도 불편한 손으로 영어단어를 외우고 돋보기를 들이대면서까지 셰익스피어전집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정신력도 대단했다. 중풍으로 쓰러진 뒤에도 의지를 갖고 치료를 받았으며, 경영에 소홀하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휠체어의 부도옹’‘오뚝이 기업인’‘프런티어 기업인’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명예회장 자신이 왕성하게 활동하였던 터라 2세에게는 계열사 사장을 맡기는 것으로 족했다. 그러나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휠체어를 타고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경영권을 2세에게 물려주기 위한 수순을 밟았다. ●재계 12위그룹, 건설이 명맥 유지 96년 말 한라그룹의 상황은 다른 대기업 집단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계열사간 상호 출자와 지급보증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었다.96년 말 한라의 경영상태는 부채비율이 현상유지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도로 악화됐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만도기계는 수익성이 높고 지주회사 성격을 지녔다. 역시 자동차 부품 회사인 한라공조와 한라건설, 한라시멘트 등이 흑자를 기록했다. 반면 주력기업에 속했던 한라중공업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 중공업을 뺀 수익성이 좋은 3개 주력사는 다른 계열사의 지급보증과 채무를 떠안아야 했고 특히 중공업에 발목이 잡혔다.8000억원 이상이 투자된 삼호공단 조성 및 조선소, 플랜트 공장 건설이 뒤따랐다. 이 때 시작된 자금난이 그룹 부도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보아도 된다.96년 조선소가 가동되기는 했으나 막대한 투자비를 일시에 회수하지 못하고 외환위기를 맞았다. ●그룹 총수도 전셋집, 기업의 사회적 책임 충실 한라그룹이 쓰러질 때는 정몽원 회장 체제였다.97년 1월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외환위기 파고 때문에 자신의 뜻을 펼쳐보지 못하고 그룹 해체라는 상황을 맞게 됐다. 외환위기라는 복병을 만나는 바람에 아버지가 공격적으로 펼쳤던 사업을 추스르기에도 바빴다. 결국 정 회장은 어려운 결단을 내린다. 우량 회사와 적자 회사를 가릴 것 없이 모든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기업인으로서 사회적·도의적 책임을 통감하고 자신의 집은 물론 명예회장의 집까지 팔아치우면서까지 모든 것을 버렸다. 재계 12위 그룹 총수였던 명예회장은 지금 전셋집에서 살고 있다. 잘 나가던 만도기계, 한라건설, 한라시멘트 등을 팔고 싶어도 중공업에 서준 지급보증 때문에 매각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발상의 전환을 했다. 외국자본을 들여와 기업을 정상화시키는 방안을 찾던 중 미국계 투자은행 로스차일드가 10억달러 정도를 투자, 주력 업체를 살리는 프로그램을 내놓았고 이를 따랐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했다. 기아나 한보 등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종업원들을 거리로 내몰았지만 한라는 종업원을 그대로 유지했다. 부도 이후에도 생산성이 올라갔고 기업가치도 떨어지지 않았다. 매각된 계열사들이 곧바로 정상을 되찾고 우량 기업으로 태어나는 계기가 됐다. ●그룹 경영권 차남에게 지명 정 명예회장의 장남 몽국(52)씨는 89년부터 92년까지 한라그룹 부회장을 맡았다. 그러나 94년 말 정 명예회장은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차남을 그룹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형 몽국씨는 95년 초부터 그룹 경영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유학갔다. 한때 배달학원(한라대학교)이사장을 맡고 부인 이광희(51) 여사가 총장을 맡기도 했다. 정 회장은 정 명예회장의 2남으로 고려대 상대를 졸업하고 지난 79년 현대양행에 입사해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89년 만도기계 사장을 거쳐 92년 한라그룹 부회장으로 부친과 함께 한라를 키웠다. 차남 몽원씨가 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후 형제간에 약간의 갈등도 있었다.2003년 형 몽국씨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본인도 모르는 사이 그룹 기획실에서 임의 처분했다며 민형사고소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형사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민사건은 형제간의 원만한 화해로 ‘왕자의 난’을 비켜갔다. 전문 경영인으로는 김홍두 사장이 있다.78년 한라 공채로 입사,96년 관리 분야 부사장에 올랐다.2003년 이후 사장을 맡고 있다. 한라그룹의 부침을 지켜본 몇 안되는 사람으로 판단이 빠르고 부지런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단조로운 혼맥, 독실한 기독교 집안 한라그룹의 혼맥은 다른 현대가처럼 얽혀있거나 거물급이 눈에 띄지 않는다.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색다른 맛이 없다. 결혼은 자유로웠고 상대 집안도 평범했다. 몽원 회장의 어머니인 고 김월계 여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자연히 두 형제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중매쟁이도 교회였다. 두 형제가 모두 교회에서 만나 결혼했다. 장남 몽국씨는 이광희 여사와 만나 연애 결혼을 했다. 평범한 가정으로 알려졌다. 동생 정 회장도 역시 교회에서 아는 사람의 소개로 홍인화(48) 여사를 만났다. 홍여사는 TBC아나운서 출신이다. 장인·장모가 약사였고 굳이 따지자면 장모가 서상목 전 국회의원 누나다. 정 회장은 최근 다니던 교회 장로로 취임했다. 명예회장도 늦게 교회를 나왔고, 몸이 불편한 관계로 최근에는 집에서 가족 예배를 드리곤 한다. chani@seoul.co.kr ■ 성우그룹 성우그룹의 모태는 현대시멘트다. 1970년 1월 정주영 전 현대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인 정순영(83) 당시 현대건설 부사장이 현대건설에서 떨어져 나온 현대시멘트㈜ 사장을 맡으면서 성우그룹의 역사는 출발한다. 당시는 성우그룹이 아닌 현대시멘트라는 단일 회사였다. 현대 방계가 대부분 그렇듯이 성우그룹도 ‘왕 회장’이 덩치가 커진 현대건설의 일부 사업을 떼어주면서 시작됐다. 경제개발 호재를 안고 있을 때라서 출발은 순조로웠다. 현대건설이 국내 시장과 해외시장에서 뿌리를 내릴 즈음이라서 분가도 쉬웠다. 성우그룹이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부터다. 성우리조트를 설립하고 사옥을 현재의 서울 서초동으로 옮기면서부터다. ●그룹 우산 키우기 미미 정순영 당시 현대시멘트 사장은 5년 동안 시멘트 단일 품목에만 손을 댔다. 그러다가 75년 현대종합금속을 세워 그룹의 덩치를 키운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룹의 위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추가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해 고심하던 끝에 찾은 것이 자동차 부품산업이었고,87년 성우오토모티브를 설립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자동차 산업 발전 추세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그룹 우산을 제대로 펴기 시작한 것은 현대시멘트를 독립 운영하기 시작한지 20여년이 지나면서부터다.95년에 성우종합레저를 설립, 강원도 둔내에 대규모 레저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같은 해 사옥을 지금의 서울 잠원동에서 서초동으로 옮겼다. 이 때부터 ‘성우그룹’이 통용되기 시작했다.92년에는 성우종합건설을,96년에는 성우전자를 잇따라 그룹사로 편입시켰다. 그러나 시멘트와 자동차 부품사, 건설을 뺀 다른 업체들의 경영실적은 영 신통치 않았다. 몇몇 업체는 부도를 맞기도 했고 그룹 위상도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결국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다른 그룹보다 경영권 이양작업을 서둘러 진행했다. ●경영권 이양, 순조롭게 마무리 정 명예회장은 2세들에게 외국 유학을 다녀온 뒤 일찍부터 경영수업을 받도록 했다. 주로 시멘트를 거치도록 했다. 다만 딸과 사위들은 성우그룹 경영과 거리를 두었다. 장녀도 사위가 먼저 세상을 떴지만 단지 현대시멘트 고문으로 있다가 최근 별세했다. 차녀도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사위 역시 개인사업을 한다. 경영권은 97년 1월에 이전됐다. 경영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잡음이 거의 없었다. 정 명예회장은 가급적 자식들이 경영 수업을 받을 때 맡았던 분야를 떼어주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단순 주식분배 차원이 아닌 전공을 찾아 맡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계열분리가 이뤄지도록 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다. 정 명예회장은 장남 몽선씨에게 그룹의 주력 기업이던 현대시멘트를 잇도록 했다. 자신과 정 회장이 오랫동안 경영에 참여했던 분야다. 현대시멘트는 시멘트 사업부와 성우리조트를 개발·운영하는 레저사업부를 포함하고 있다. 현재 국내 시장 점유율 3∼4위를 지키고 있다. 성우종합건설도 장남의 몫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일반 건설사처럼 민간 공사 수주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자체 공사와 관계사 공사를 벌일 정도다. 신생 회사 성우이컴도 정 회장이 지휘한다. 골프장 관리·운영 전문 업체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4월에는 형제간 계열 분리도 마쳤다. 주력기업인 현대시멘트는 부실기업인 성우전자 성우정보통신 성우캐피탈 등 3개사를 계열사에서 제외해버렸다. 정몽훈(46) 성우전자 회장이 지분을 갖고 있던 회사다. 이로써 형제간 지분정리까지 마치게 됐다. 둘째아들 몽석(47) 회장은 현대종합금속을 받았다. 포항 공장에서 용접봉과 카바이트를 만들어내는 회사다. 현재는 용접봉만 생산한다.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에 많은 양을 납품한다. 3남 몽훈 회장은 성우전자, 성우캐피탈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사실상 경영에서 물러서 있다. 막내 몽용(44) 회장은 88년 성우오토모티브와 현대 에너셀을 맡아 왕성한 경영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로 자동차 부품생산업체를 물려받았다. 오토모티브는 자동차 시트, 알루미늄 휠 등을 생산하는 회사. 포항공장에서 자동차용 주물을 생산, 현대자동차에 납품하고 있다. 충주공장에서는 자동차 알루미늄 휠을 전문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시트 생산 부문은 지난해 말 현대자동차 계열사에 매각했다. 에너셀은 자동차용 배터리 생산업체다.㈜성우는 육상 시멘트 화물 운송 회사다. ●드러내기 싫어하는 성우그룹 혼맥 현대가의 혼맥이 그렇듯이 성우그룹에도 특별히 튀는 집안이 없다. 그런데도 성우그룹은 혼맥이 드러나는 것을 극구 꺼린다. 혼맥이 비치는 자체를 싫어한다. 장남인 현대시멘트 몽선 회장과 결혼한 김미희 여사(작고)는 집안이 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다. 장남 결혼을 시키면서 말 그대로 평범한 교육자 집안과 사돈을 맺었다. 장인 김태휴씨는 뒤에 현대성우리조트 고문을 지냈다. 김수진 서울대 교수, 차연택 현대백화점약국 대표, 최동일 연세산부인과원장, 정 회장, 전동진 경원대 교수 등이 동서지간이다. 하지만 김 여사는 93년 10월 태릉 아이스링크 선수 대기실에서 둘째딸과 함께 불의의 화재사고를 당했다. 이때 대한항공 조중훈 회장이 전용기를 내주어 일본 행림대학 병원으로 후송, 치료를 받았으나 아깝게도 함께 세상을 달리했다. 이를 계기로 사업상 앙금이 있던 왕 회장과 조중훈 회장이 화해하는 계기가 돼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혼한 진영심(36) 여사 역시 평범한 집안으로 알려졌다. 둘째아들 현대종합금속 몽석 회장 처가도 대구에서 작은 기업을 하던 평범한 집안이라는 정도밖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셋째 몽훈 성우전자 회장의 장인은 직업군인이었다. 장성으로 예편한 뒤 공기업 임원으로 근무했다는 정도만 알려진다. 하지만 넷째 몽용 성우오토모티브 회장의 결혼 때는 좀 다르다. 잘 알려진 로열 패밀리 가운데 하나인 인촌 김성수가와 사돈을 맺는다. 몽용 회장의 장인이 체육계 원로인 김상겸 박사다. 김 박사는 동아일보와 고려대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의 막내아들이다. 한국 체육 발전에 평생을 바친 전 고려대 명예교수이며 지난해 별세했다. 김 박사는 대한체육회 부회장과 대한스키협회회장, 나가노동계올림픽 한국선수단장, 고려대 사범대학장 등을 지냈다. 장녀, 차녀도 평범한 집안과 결혼했다. 그룹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전문 경영인 전문 경영인은 많지 않다. 직접 경영을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김희대(44) 현대시멘트와 성우종합건설 대표이사 부사장은 정 회장의 매제. 미국 하트포드대학원 경영·경제학과를 졸업한 유학파.88년 현대시멘트에 입사, 총괄 부사장을 거쳐 올 1월부터 대표이사 부사장을 맡고 있다. 성우리조트는 엄준섭(53·부사장) 본부장이 정 회장을 돕고 있다. 성우이컴 김연문(55) 대표이사 사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74년 입사해 경리파트를 맡으면서 명예회장과 정 회장을 지근에서 보좌했다.2001년 부사장에 오른 뒤 2002년부터 이컴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골프장 개발 운영업을 이끌고 있는 전문 경영인이다. chan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儒林 속 한자이야기] (68)夫婦有別(부부유별)

    夫婦有別(부부유별) 儒林 (318)에는 ‘夫婦有別’(지아비 부/지어미 부/있을 유/나눌 별)이 나오는데,‘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分別(분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分別은 調和(조화)를 前提(전제)한 區分(구분)이기 때문에 差別(차별)과는 의미가 다르다. 남편과 아내가 각기 역할에 충실한 가정은 和睦(화목)하다. 반면 남편과 아내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愛情(애정) 전선에도 이상이 온다. 따라서 夫婦有別을 男性(남성) 優位(우위)를 강조하는 前近代的(전근대적) 遺産(유산)으로 보는 것은 短見(단견)에 불과하다. ‘夫’자의 본 뜻은 ‘성인 남자’인데,‘지아비, 힘든 노동을 하는 사람, 다스리다, 돕다.’의 뜻으로도 쓰였다. ‘婦’자는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는 婦女子(부녀자)의 모습을 나타낸 會意字(회의자)에 속한다.用例(용례)에는 ‘婦德(부덕:부녀자의 아름다운 덕행),婦人(부인:결혼한 여자),婦人之仁(부인지인:여자가 지니는 좁은 소견의 인정)’ 등이 있다. ‘有’는 ‘고기 덩이를 손으로 잡고 있는 모양’을 뜻한다.‘有口無行(유구무행:입에 발린 말만 있고 실행하는 바가 없음),未曾有(미증유:지금까지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음)’ 등에 쓰인다. ‘別’자는 ‘月’(고기 육의 변형)이 없는 ‘骨’(뼈 골)과 ‘刀’(칼 도)를 합하여 ‘분해하다.’는 뜻을 나타내었고, 다시 ‘다르다, 나누다, 떠나다, 구별하다.’ 등의 뜻이 派生(파생)되었다.用例에는 ‘別故(별고:특별한 사고),別種(별종:다른 종류),判別(판별: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판단하여 구별함)’ 등이 있다. 栗谷(율곡) 李珥(이이)는 學問(학문)이란 일상생활의 實踐(실천)을 통해 ‘아버지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孝道(효도)하며, 신하는 忠誠(충성)하고, 부부는 分別(분별)이 있고, 형제는 友愛(우애)하고, 젊은이는 어른을 恭敬(공경)하고, 붕우는 信義(신의)가 있도록 하는 것’, 즉 五倫(오륜)을 體得(체득)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五倫(오륜)의 첫째는 父子有親(부자유친)으로 ‘아버지와 자식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부자간은 가장 가까우면서 사랑으로 맺어진 인륜의 출발점이다. 시작을 다지기 위해서는 慈愛(자애)와 孝誠(효성)을 돈독히 해야 한다. 둘째,君臣有義(군신유의)는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義’란 자기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인간으로서 행해야 할 道理(도리)를 실천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민주주의 체제에는 君臣의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君을 國家(국가)로,臣을 國民(국민)으로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셋째,夫婦有別(부부유별)은 冒頭(모두)의 설명과 같다. 넷째,長幼有序(장유유서)는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序란 순서와 질서를 말한다. 연장자는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젊은이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젊은이는 연장자를 인생의 先輩(선배)로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다섯째,朋友有信(붕우유신)은 ‘벗과 벗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친구 사이에는 信用(신용)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친구 사이에 신용을 잃으면 그 사람은 설자리가 없다. 신용은 값으로 換算(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財産(재산)이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경기교육청 내년 고입전형 내신 200점+선발고사 100점 반영

    경기도 교육청은 22일 내년도 고입 전형 및 내신성적 반영지침을 확정했다. 일반계 고교의 경우 8개 평준화지역(수원·성남·안양·과천·군포·의왕·부천·고양)과 비평준화지역 중 외부 학생 유입이 많은 5개 지역(의정부·광명·안산·남양주·구리)은 내신성적 200점, 선발고사 점수 100점 등 300점 만점으로 전형한다. 또 나머지 비평준화지역 학교 중 선발고사를 승인받은 86개교도 같은 방법으로 전형하며, 선발고사를 실시하지 않는 모든 일반계 고교와 실업계 고교는 내신성적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내신성적은 교과점수 150점(1학년 30점,2학년 45점,3학년 75점), 출석·결석상황 20점, 봉사활동 20점, 수상실적 10점 등으로 산출한다. 선발고사는 국민공통기본교과인 10개 과목(국어·도덕·사회·수학·과학·기술 또는 가정·체육·음악·미술·외국어)을 대상으로 실시하며 시험문제는 1학년 교과과정에서 10%,2학년 과정에서 20%,3학년 과정에서 70%를 출제한다. 교과특기자 육성교로 지정받은 학교는 모집정원의 10% 이내에서 특별전형을 실시할 수 있으며, 봉사활동 점수는 3년 동안의 활동실적 60시간을 기준으로 산출하도록 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수도권 남부 아파트시세표

    수도권 남부 아파트시세표

    수도권 남부지역 아파트값이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확실히 반전세로 돌아섰다고 말하기에는 다소 이른 감이 있다. 이사철 수요와 불경기에 숨죽였던 실수요가 어우러져 증폭된 분위기다. 전세가도 점차 오르고 있지만 하락폭을 밑돌고 있다. 수원은 매매가는 0.27%, 전세가는 0.44% 올랐다. 천천동 성우아파트 40평형이 1000만원 정도 상승했다. 과천∼안양∼의왕으로 이어지는 지역 아파트값이 많이 올랐다. 과천은 매매가격이 1.79%, 전세가는 0.73% 올랐다. 주공10단지 27평형이 1500만원 안팎 올랐다. 안양지역은 매매가 1.31%, 전세가는 1.62% 상승률을 기록했다. 의왕은 매매가 1.34%, 전세가는 1.05%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산동 한아름아파트 34평형이 1000만원 안팎 올랐다. 군포는 매매가 0.87%, 전세가 0.53% 상승했다. 평택은 매매가와 전세가가 지난달과 비슷한 수준에서 형성됐다. 판교와 동탄신도시를 중심으로 수도권 남부지역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부고속도로축 남부 주거벨트가 형성되면 주거환경과 교통여건 등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김광성 한국감정원 정보조사팀장 ●조사일자 2005년 4월20일
  • [부고]

    ●허석한(한국포리탱크 대표)근우(미국 거주)운나(한국정보통신대 총장)씨 모친상 전종우(서울대 교수)박성호(서강대 〃)권태우(권태우정형외과의원장)김영훈(국회 보좌관)씨 빙모상 노혜란(한양대 연구교수)홍정림(미국 거주)씨 시모상 1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2일 오전 8시 (02)3410-6917 ●최낙기(한화자동차 이사)성옥(사업)성문(군포시청)성진(대한주택공사 차장)씨 부친상 2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2일 오전 9시 (02)3010-2294 ●공문필(전 덕소고 교장)문호(사업)씨 모친상 안성배(사업)씨 빙모상 20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22일 오전 9시 (02)921-7699 ●지춘근(전 대한투자신탁 운용팀장)형근(하나가정의학과의원장)창근(A+과학나라 구리남양주지사장)씨 모친상 20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22일 오전 8시 (02)921-7099 ●김성은(Cuno Filter System 한국지사 차장)씨 부친상 2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2일 오전 6시 (02)3010-2260 ●백민원(함경북도 중앙도민회 통일위원)씨 모친상 2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2일 오전 9시 (02)3010-2263 ●안창근(동원타워 사장)씨 별세 1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2일 오전 9시30분 (02)3410-6906 ●신태은(KBS 예능기술팀 선임감독)씨 빙모상 20일 울산병원, 발인 22일 오전 8시10분 (052)259-5192 ●박재국(충북도의원)씨 모친상 20일 청주 참사랑병원, 발인 22일 오전 9시 (043)286-9401 ●서만성(전남대 의대 안과학교실 교수)씨 별세 20일 전남대병원, 발인 22일 오전 10시30분 (062)220-6983 ●이순재(전 대구가톨릭대 학장)씨 별세 이인구(전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 학장)씨 상배 20일 경북대병원, 발인 22일 오전 8시 (053)420-6151 ●이희갑(연세대 생활환경대학원 부장)희열(한전 고창지점 과장)희방(금강화원 대표)씨 부친상 정진택(한국재활복지대학 교수)심동열(해양수산개발원 책임연구원)조계성(서울남부지방검찰청)씨 빙부상 19일 전북 김제장례식장, 발인 21일 오전 11시 (063)545-8391 ●이채준(두창산업 대표)채문(경북대 사회학과 교수)승범(대신증권 무거동지점 부지점장)씨 모친상 안태정(울산시청 행정사무관)씨 빙모상 20일 울산 21세기병원, 발인 22일 오전 9시 (052)298-4535 ●박세원(용인시축구센터 기획실장)씨 부친상 19일 수원 연화장장례식장, 발인 22일 오전 8시 (031)217-2797 ●이기동(전 평택세무서장)기덕(미국 거주)기봉(삼환건설 주임)씨 부친상 20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2일 오전 9시 (02)392-1899
  • [儒林 속 한자이야기] (67)

    曠夫(광부) 儒林 316에는 ‘曠夫’(빌 광/지아비 부)가 나오는데, 이 말은 孟子(맹자) 梁惠王(양혜왕) 下篇(하편)의 다음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惠王(혜왕) 자신은 女色(여색)을 너무 좋아하여 탈이라는 話頭(화두)를 꺼냈다. 이에 대하여 孟子(맹자)는 “남자로서 女性(여성)을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다만 與民同樂(여민동락)해야 할 王(왕)의 신분이기 때문에 백성들의 苦痛(고통)을 외면한 채 혼자만 여색을 탐하는 것이 잘못일 뿐이다. 따라서 善政(선정)을 베풀어 짝을 이루지 못하였거나 짝 잃은 怨女(원녀:과부를 뜻함)와 曠夫(광부:아내에게 충실하지 못한 남편, 혹은 홀아비)가 없도록 한다면 王道政治(왕도정치)의 구현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라는 趣旨(취지)의 應答(응답)을 하였다. ‘曠’자는 ‘해가 넓게 비추어 밝다’에서 派生(파생)하여 너무 넓어 ‘공허하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이밖에도 曠에는 ‘헛되이 지내다, 요원하다’의 뜻이 있다.用例(용례)에는 ‘曠官(광관:벼슬아치가 직무를 게을리함),曠年(광년:오랜 세월),曠野(광야:텅 비고 아득히 넓은 들),曠日持久(광일지구:오랜 세월을 견디어 냄)’ 등이 있다. ‘夫’자는 우뚝 선 어른의 상형인 ‘大’와 어른들의 뒤통수에 꽂은 동곳을 가리키는 ‘一’을 합한 글자로, 본래의 뜻은 ‘성인 남자’인데 ‘지아비, 힘든 노동을 하는 사람, 다스리다, 돕다’의 뜻으로도 쓰였다.用例로는 ‘匹夫(필부:신분이 낮고 보잘것없는 사내),夫子(부자:남편이나 스승, 혹은 존경하는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大丈夫(대장부:건장하고 씩씩한 사내)’ 등이 있다. 大丈夫는 매사에 正正堂堂(정정당당)하고 떳떳하여 道理(도리)와 信義(신의)를 중시한다. 남의 失手(실수)를 春風(춘풍)처럼 따스하게 대하지만 자신의 過誤(과오)에 대해서는 秋霜(추상)과도 같이 嚴格(엄격)하다. 孟子의 定義(정의)에 따르면,大丈夫는 큰 뜻을 품고 부단히 노력하기 때문에 時俗(시속)에 흔들리지 않는다. 뜻을 이루더라도 驕慢(교만)하지 않고, 뜻을 이루지 못해도 卑屈(비굴)하지 않다.孟子의 기준으로 볼 때,魏(위)나라 사람 公孫衍(공손연)과 張儀(장의)와 같은 사람은 말 한마디로 천하의 諸侯(제후)들을 左之右之(좌지우지)할 만큼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大丈夫는 아니다. 대장부라면 모름지기 천하의 가장 넓은 곳에 살면서 천하의 가장 바른 지위에 서서 천하의 가장 큰 도를 행하여 백성들의 지지를 얻으면 백성들과 함께 그 도를 행한다. 설령 백성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묵묵히 홀로 그 도를 행한다. 그러므로 富貴(부귀)가 放蕩(방탕)하게 하지 못하고,貧賤(빈천)이 뜻을 바꾸게 하지 못하며,威勢(위세)와 暴力(폭력)이 그의 뜻을 꺾을 수 없다.反面(반면)에 肉體的(육체적)인 삶에 執着(집착)하는 사람은 富貴를 얻게 되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없으므로 그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여 放蕩하게 되며,貧賤하게 되면 그보다 더 큰 슬픔이 없으므로 거기서 벗어나기 위하여 무슨 짓이든 서슴없이 한다. 이런 삶에 집착하는 사람을 小人(소인), 또는 拙丈夫(졸장부)라고 한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儒林 속 한자이야기] (66)鄒魯之鄕(추로지향)

    儒林 307에는 ‘鄒魯之鄕’(추나라 추/노나라 노/어조사 지/고을 향)이 나오는데,孔子(공자)와 孟子(맹자)의 故鄕(고향)이란 뜻으로 ‘禮節(예절)이 바르고 學問(학문)이 旺盛(왕성)한 고장’을 이르는 말이다. ‘鄒’자는 音符(음부)에 해당하는 ‘芻’(꼴 추)와 意符(의부)인 ‘ ’(우부방) 즉 ‘邑’(고을 읍)을 結合(결합)한 形聲字(형성자)이다. ‘魯’자는 ‘曰’과 ‘魚’를 결합한 글자인데, 여기서 ‘魚’는 ‘鹵’(소금밭 로)와 통하는데,鹵는 소금기가 있어 耕作(경작)이 부적절한 땅을 뜻한다. 이리하여 魯는 ‘말씨가 둔하다, 미련하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用例(용례)로는 ‘魯鈍(노둔:재주가 둔함),魯直(노직:지나치게 정직함),愚魯(우로:어리석고 매우 둔함)’ 등이 있다. ‘之’자는 止(지)와 一(일)을 합친 글자이다.止는 본래 발을 뜻하였으나 점차 ‘그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이렇게 발을 나타내는 ‘止’ 아래에 出發線(출발선) 또는 地面(지면)을 가리키는 ‘一’을 넣어 ‘어디론가 가다’라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鄕’자는 갑골문의 자형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음식상을 앞에 두고 마주 앉은 사람’의 상형이었다. 따라서 본래의 뜻은 ‘마주 보고 음식을 먹는다’이며, 여기서 ‘마주 보다’라는 뜻이 파생되기도 하였다.‘마을’이 골목길을 가운데 두고 집들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형태라는 데에서 ‘마을’을 가리키는 글자로 널리 통용되었다.‘饗’(잔치 향)은 본래의 뜻을 보존하기 위하여 새로 만든 글자이다.用例(용례)로는 錦衣還鄕(금의환향:출세를 하여 고향에 돌아가거나 돌아옴),鄕黨尙齒(향당상치:향리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을 높이 대접함),鄕愁(향수: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등이 있다. 鄒魯之鄕(추로지향)은 孟子(맹자)가 태어난 鄒와 孔子(공자)의 母國(모국)인 魯를 합친 말로 예의 바르고 학식이 높은 고장을 가리키니 儒敎(유교)를 崇尙(숭상)하는 나라에서는 最高(최고)의 名譽(명예)이며 讚辭(찬사)이다. 비슷한 말로 ‘洙泗’(수사)나 ‘洛閔’(낙민)이 있는데,洙泗는 공자가 살던 곳이 洙水(수수)와 泗水(사수)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며,洛閔은 宋代(송대) 性理學(성리학)의 대가인 程子(정자)와 朱子(주자)의 고향이 각각 洛水(낙수)와 閔(민) 지방이었다는 데에서 由來(유래)하였다. 이렇듯 鄒魯之鄕은 聖賢(성현)을 尊敬(존경)하며 道德(도덕)을 기리고 學問(학문)을 崇尙(숭상)하여 禮儀(예의)를 지키는 고장으로 道學君子(도학군자)와 鴻儒碩學(홍유석학)이 많이 배출되는 地域(지역)을 일컫는다. 慶尙北道(경상북도) 安東(안동)에서 奉化(봉화)로 통하는 35번 國道(국도)를 타고 올라가면 도산면 토계리에 嶺南(영남) 士林(사림)의 중심이었던 陶山書院(도산서원)이 있다.書院(서원) 입구에 ‘鄒魯之鄕’(추로지향)이라는 篆書體(전서체)의 비가 서있다.李滉(이황)은 本來(본래) 도산 남쪽에 書堂(서당)을 짖고 後學(후학)을 가르쳤으나 그곳이 마음에 들지 않아 61세 되던 1561년에 現在(현재)의 位置(위치)로 옮겼다고 한다.孔子의 77대 宗孫(종손)인 孔德成(공덕성) 博士(박사)가 서원에 謁廟(알묘)한 후 쓴 親筆(친필)을 새긴 記念碑(기념비)라고 한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의왕-군포 물류시설 이전 공방

    의왕-군포 물류시설 이전 공방

    ‘물류시설은 애물단지’ 물류시설이 지방자치단체의 세수 증대에 기여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다. 요즘 경기도 의왕시와 군포시가 관내에 들어선 물류시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의왕시 이동 의왕내륙컨테이너기지(운영회사 경인 ICD)는 수도권 컨테이너 화물의 45%를 수송하는 수출입화물 종합물류기지이다.1992년 들어선 22만 8000평 규모의 컨테이너기지는 연간 100만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량)의 화물을 처리하는 등 우리나라 수출 경쟁력 제고에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발전에 도움은 커녕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어 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수입은 7억원, 손실은 203억원 하루 6000여대의 화물트럭이 기지를 통행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교통체증이 빚어지고 차량에서 발생하는 매연과 소음 등으로 인근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최근 경기개발연구원에 의뢰한 연구용역 결과보고서에서도 ICD로 인해 의왕시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의왕ICD는 국가교역에 연간 2000억원의 경제적인 파급효과를 주는 반면 의왕지역에는 고천·부곡지역의 생활권 단절 등 지역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도로파손 및 소음·분진 등으로 인해 지가손실 125억원, 도로보수관리 47억원, 교통사고비용 10억원, 대기오염비용 16억원, 소음비용 4억원 등 모두 203억원의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시가 ICD로부터 거둬들이는 세수입은 연간 7억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부지가 국유재산으로 비과세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는 수년전부터 정부측에 사회경제적 손실 보전 등 대책 마련을 요구해 왔지만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경기개발연구원의 보고서에서도 사업용 국유재산의 비과세제도 폐지, 물류기지특별법제정,ICD와 연계한 면세 쇼핑몰 등 유통단지유치, 기지주변 도로망확충, 국도 1호선 입체화 사업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지 이전요구 봇물 보고서는 도시공간적 저해요인과 생활환경 훼손, 주변 땅값에 대한 부정적 영향, 환경오염 등으로 주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만큼 다른 곳으로 이전이 요구된다고 제시했다. 대규모 항만 및 물류기지로 개발되고 있는 평택항 배후지가 의왕ICD 이전 최적지로 떠오르고 있다. 시 관계자는 “기지가 의왕의 고천지역과 부곡지역을 연결하는 중간지점에 위치해 시의 생활권을 단절하고 도시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며 “더구나 기지 주변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차량 통행이 급증함에 따라 기지이전을 요구하는 민원이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컨테이너기지를 운영하고 있는 경인 ICD측은 이전 요구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경인 ICD 관계자는 “평택으로 기지를 이전할 경우 8000억원에 달하는 이전 비용이 소요되고 물류비용만 상승시킬 뿐”이라며 “수도권 수출입 화물의 대부분을 처리하는 기지가 포화상태에 달해 확장이 절실한 실정이다.”고 말했다. 경인 ICD는 기지확장을 추진하다 의왕시 및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계획을 중단한 상태다. ●군포시도 정부와 갈등 의왕시와 이웃한 군포시도 물류시설 확장문제로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건설교통부는 국가 물류시설인 부곡동 복합화물터미널이 포화상태에 놓이자 한국복합물류㈜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 시설에 대한 대폭적인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복합물류는 기존 터미널(11만평) 인근 16만평에 3300억원을 들여 오는 2010년까지 화물취급장 10개동, 배송센터 13개동 등 연면적 13만평 규모의 물류시설을 추가로 건설할 예정이다. 확장공사가 완료되면 연간 화물처리능력이 기존 500만t에서 1200만t으로 늘어나 물류비용이 1000억원 가량 절감될 것으로 건교부는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곽씨·문씨·박씨 등 5대 문중과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군포복합화물터미널 확장반대 대책위원회’는 터미널을 확장하면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가 훼손되고 교통 및 환경오염문제가 우려된다며 확장을 반대하고 있다. 대책위 관계자는 “그동안 그린벨트로 묶여 재산권 침해를 받아왔는데 이곳에 터미널이 들어서면 주민들의 재산권 침해는 물론 4만여평의 녹지가 훼손되고 인근 도로에서 심각한 교통체증이 빚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심각한 교통체증 우려 군포경실련 등 시민단체들도 “터미널 건설로 4만여평의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가 훼손됨에 따라 인근에 건설 중인 3500가구의 부곡 택지개발지구 등의 주거환경이 악화돼 결국 삶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화물터미널 확장논의를 즉각 중단하고 동북아 물류기지의 거점인 평택항으로 터미널을 이전하는 것이 국가이익에 부합된다.”고 주장했다. 군포시도 의회 및 시민단체들과 확장반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시민 20만명으로부터 반대 서명을 받아 건교부에 전달했다. 시 관계자는 “복합화물터미널이 확장되면 하루 1만여대의 대형트럭이 터미널 주변으로 몰려 매연과 소음, 심각한 교통체증이 빚어지는데 반해 지역에 주는 세수혜택은 연간 10억원 안팎에 불과, 도로유지 보수비용도 충당하기 힘들 것”이라며 터미널 확장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의왕 군포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이형구 의왕시장 ‘볼멘소리’ “의왕지역 발전을 위해선 시내 복판에 들어선 컨테이너기지의 이전이 시급한 실정입니다.” 이형구 의왕시장은 “의왕 컨테이너기지로 하루 6000여대의 대형 컨테이너 트럭이 드나 들면서 인근 주민들이 심각한 교통난과 환경피해를 입고 생활권이 단절되는 등 피해를 입고 있으나 정부는 수년째 팔짱만 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95년부터 기지주변 관리에 따른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 지역개발세 도입과 물류기지 지원을 위한 특별법제정 등을 촉구했지만 정부의 답변은 없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1월 정부와 지원방안을 마련하기로 협의한데 이어 같은해 10월에도 건설교통부장관과의 면담을 통해 중앙정부 차원의 재정보전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아직까지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를 비난했다. 이 시장은 “시 재정형편으로선 연간 40억원에 달하는 도로 유지비용을 마련하는 것도 버거운 실정”이라며 “ICD가 국가경제적으로 필요한 시설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도로유지비용 등 200억원의 막대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의왕시가 모두 떠안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경기개발연구원에 의뢰한 용역보고서에서 지적했듯이 우선 중앙정부는 기지 입지에 따른 보상차원에서 의왕시에 교부세를 지원하고 국유재산 비과세제도를 폐지하며 신규 고용을 창출할 수 있도록 기지 주변에 대형 면세 쇼핑몰단지를 조성하는 등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대 중국 교역량 증가 추세와 대륙횡단 철도 등 철도 인프라 구축사업 등과 연계, 장기적인 관점에서 평택항 주변으로 기지를 이전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의왕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65)

    儒林 306에는 ‘忌憚(꺼릴 기/꺼릴 탄)’이 나오는데, 이 말은 ‘어렵게 여겨 꺼림’을 뜻한다. ‘忌’자의 본뜻은 ‘미워하다’였으며, 여기서 ‘꺼리다, 원망하다, 질투하다’의 뜻이 派生(파생)되었다.音符(음부)에 속하는 ‘己’는 甲骨文(갑골문)에 등장할 정도로 오랜 歷史(역사)를 지닌 글자로,字形(자형)도 크게 바뀌지 않았으나 무엇을 나타낸 것인지는 確實(확실)치 않다.‘巳’(뱀 사)나 ‘已’(이미 이)로 混同(혼동)하기 쉽다.忌의 用例(용례)에는 ‘忌日(기일:해마다 돌아오는 제삿날),忌則多怨(기즉다원:다른 사람을 시기하면 반드시 자신을 미워했던 사람에게 도리어 원망을 산다),忌避(기피:꺼리거나 싫어하여 피함) 등이 있다. ‘憚’자는 意符(의부)인 ‘ ’(=心)과 音符(음부)인 ‘單’(홑 단)이 결합한 形聲字이다.‘單’은 화살 시위에 얹어 쏘는 돌, 즉 ‘탄알’이 본래의 뜻인데,‘활을 쏘다’로 확대됐다.用例로는 ‘敬憚(경탄:공경하면서도 어려워하고 꺼림),嫌憚(혐탄:싫어하며 꺼림),憚改(탄개:고칠 것을 두려워하여 꺼림),憚服(탄복:두려워하여 복종함)’ 등이 있다. 조선조 中宗(중종)때의 학자 松堂(송당) 朴英(박영)은 젊은 시절, 몸이 건장하고 武藝(무예)가 出衆(출중)하여 武科(무과)에 급제하였다. 하루는 長劍(장검)을 차고 말을 몰아 서울 장안을 누비다가 깜박하여 수구문을 벗어나고 말았다. 한참 동안 달리다가 자신에게 秋波(추파)를 던지는 여인을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갔다.美色(미색)에 眩惑(현혹)되어 이끌려 간 곳은 松林(송림) 속의 외딴 家屋(가옥)이었다. 박영과 단둘이 마주앉은 그녀가 털어놓은 사연은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본디 良家(양가)의 閨秀(규수)였으나 도적들에게 拉致(납치)되어 유린당한 뒤, 그들과 함께 길손들을 이곳으로 誘引(유인)하여 재물을 强奪(강탈)하고 목숨까지 빼앗곤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영을 처음 본 순간 자신을 구해줄 수 있는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았다고 했다. 잠시 후 분탕질에 나갔던 무리들이 돌아오는 소리로 떠들썩한가 싶더니 갑자기 “당장 저것들을 묶어라.”라는 고함이 들렸다. 한 놈이 천장에 숨어 그들의 酬酌(수작)을 줄곧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영은 그녀를 등에 업고 뛰어 가까스로 도둑의 소굴을 벗어나 都城(도성)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일은 박영에게 머릿속에 먹물이 들어야 이 세상을 올바르게 살 수 있다는 신념을 갖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모든 旣得權(기득권)을 포기한 채 고향으로 내려가 한동안 鄭鵬(정붕)에게서 師事(사사)하여 마침내 큰 선비가 되었다고 한다. 論語(논어) 學而(학이)편에는 ‘잘못을 저지르면 고치기를 꺼리지 마라’(過則勿憚改(허물 과/곧 즉/말 물/꺼릴 탄/고칠 개)는 孔子(공자)의 가르침이 전한다. 사람은 누구나 예기치 못한 失手(실수)를 범할 수 있으므로 실수 그 자체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잘못 인줄 알면서도 고치려 하지 않는 것(過而不改 是謂過矣), 이것이야말로 심각한 일이다.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卽刻(즉각) 고쳐 나간다면 그런 사람은 같은 잘못을 두 번 거듭하지 않는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자서전 ‘대화’ 낸 리영희 전 한양대교수 산행 인터뷰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자서전 ‘대화’ 낸 리영희 전 한양대교수 산행 인터뷰

    ‘아큐정전’의 저자 루쉰(魯迅)은 생전에 영국의 시인 바이런을 예찬했다.‘영국’이라는 속박에서 끊임없이 벗어나려는 저항정신을 사랑했다. 얼마전 중국은 네티즌 13만명을 상대로 20세기 중국사회에 가장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루쉰을 1위로 꼽았다. 한국의 루쉰으로 일컬어지는 사람이 있다. 누굴까.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한다. 파란과 곡절의 삶 그 자체이다. 주위에서는 ‘60% 저널리스트,40% 아카데미션’이라고 한다. 르몽드지는 ‘사상의 스승’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1999년 ‘연세대학원신문’이 교수와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20세기 영향력 있는 학자와 저작’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국내 학자 가운데 리영희(77)씨를 가장 으뜸으로 꼽았다. 또 모언론사에서 지난 한 세기동안 가장 영향력있는 100대 인물 중 리씨가 24위로 조사됐다. 리씨는 “나의 글은 루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루쉰을 좋아한다. 흥미로운 것은 루쉰과 리씨가 해양대학 출신의 지식인이라는 점. 리씨 역시 온몸으로 ‘저항’하며 한 시대를 깨우치려 했다. 또 올곧은 사상가의 길을 걷고자 했다. 경기도 군포시 수리동의 한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다. 신분을 밝히자 “문이 열렸으니 그냥 들어오세요.”라고 했다. 안으로 들어섰다.40평쯤 돼 보였다. 리씨는 식탁에서 혼자 과일을 먹고 있었다.“점심을 지금 막 먹었거든. 조금만 기다려주게.”라고 했다. 잡안에는 조수미의 ‘새야새야’가 조용히 울려퍼졌다. 이윽고 리씨와 마주앉았다. 이런저런 인사말이 오고갔다. 그는 “오늘 날씨도 좋은데 뒷산 구경이나 할까.”라면서 옷을 갈아입었다. 이때 전화벨이 울렸다. 본의 아니게 전화내용을 듣게 됐다.“요새 글 못써. 책도 안 읽어. 스트레스 받으면 재발하거든. 뭐? 대학에서 두번 쫓겨나는 바람에 연금도 없어. 내가 언제 감투를 써봤나. 요새 책도 안팔려, 전자매체로 다 보잖아.” 문득 벽에 걸린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손자손녀들과 밝게 웃는 모습의 사진도 보였다. 전화통화를 끝낸 리씨는 “가족이란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해야 기억할 수 있지. 손자들은 서울 신촌에 살고 있어.”라며 노년의 외로움을 감추지 못했다. 잠시후 마을 뒷산인 수리산 입구에 들어섰다.“이 산은 말야, 해발 489m의 야트막한 산이지. 그런데 물이 좋아. 약수물 받으러 오는 사람 많아.” 리씨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 천천히 걸었다. ●이번 자서전이 마지막 글 최근 발간된 자서전 ‘대화’(한길사刊)에 대한 얘기가 먼저 나왔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직접 글을 다듬고 쓰지 못해 어려움이 많았지. 서울대 학생이 우리집에 기거하며 정리해 주었어.2년 걸렸지. 누락됐거나 생략된 것도 많아. 살아온 76년은 한마디로 ‘야만의 시대’였지. 일제와 해방후 50년은 반인간적 생존환경이었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싸우는 고결한 정신의 소유자들 돕기 위해 많은 글을 썼지. 문장으로는 꽤나 중국의 루쉰 같은 스타일로 써왔어.” 20분 가량 걸었다. 약간 힘들었는지 의자에 앉자고 했다. 푸른 소나무 사이로 새들의 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혔다. 자연이 그에겐 어떤 모습으로 다가갈까. 잠시 하늘을 쳐다보다가 “아름다운 경치야. 무심(無心)으로 걸어. 자연의 오묘한 변화를 새삼 느끼지. 몸이 불편하니까, 지난날의 정열과 행동양식이 내면화되니까, 정서가 합치돼.”라면서 지나온 세월을 잠시 돌이켜본다. “참으로 우역곡절과 파란만장이었어. 어떤 장면과 국면에 가까이 안가도 될 것을, 지성인의 본질적 책임을 위해 개인의 안락보다는 사회쪽으로 시선을 돌렸지. 가정위주로 산다는 것은 배반이었어. 자식들에겐 굉장히 미안해. 또 지나칠 정도로 논증적으로 빈틈없이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었지. 정서적 내면은 철저히 억압됐어.” 이같은 고통스러운 삶으로 술은 늘 곁에 끼고 있었다고 했다. 모언론사 외신부장 시절이다. 부원들과 팔당에서 야유회를 가졌다. 부원들은 정종을 마셨지만 리씨는 들고온 고량주(10홉짜리 큰병)의 뚜껑을 땄다. 안주없이 벌컥벌컥 5홉을 연거푸 마셨다. 정신을 잃었다. 이튿날 배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위궤양이었다. 성인의 위두께가 보통 11㎜인데 9㎜까지 파고들었단다. 이후 15년 동안 위궤양으로 고생했다. 리씨는 인터뷰에 앞서 스트레스 받는 질문은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온국민의 관심사인 독도문제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본은 모든 상황을 1945년 이전으로 롤백하려는 큰 구상 속에 영토문제를 꺼내고 있지. 우리는 고증과 실증을 통해 법률적 역사적 근거를 제시해야 해. 걱정되는 것은 우리 국민의 ‘냄비’ 정서야. 항상 반응적이거든. 그러나 독도문제만큼은 영국 국민처럼 뚝심으로 대처해야 해.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은 불독처럼 말야. 여기에 일본인 같은 교묘함도 염두에 두어야 해.” ●한·일 우익들의 밀착이 문제 이어 “이번 사태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의 친일파 우익과 일본의 우익단체간에 밀착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라면서 “한국과 일본의 우익 뒤에는 항상 미국이 있지. 김대중 정권에서도 그랬지만 노무현 정권에 와서 미국은 남한의 우익을 더욱 부추기고 있어. 기독교 인사, 전직 장관, 군부세력 등 남한의 우익단체가 더 무서워. 자기 몸속의 벌레를 찾아내야 해.”라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혈압이 오르는 것을 느낀 듯 “그만두자.”고 했다. 화제를 돌렸다. 여생에 뭔가 또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자 “한 인간으로 할 수 있는 분량이 있어.40년간 범속한 지식인의 머리로 쓴 소리도 많이 했지. 국민들에게 시대의식과 세계관을 바로잡는 데 나름대로 기여했다고 봐. 또 우리 국가나 사회가 대체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이 기쁘고 행복해. 이만하면 분량을 다했어.”라며 말끝을 흐린다. ●광주 배후자로 몰려 수차례 고초 그는 1929년 평북 운산에서 3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부친은 구한말 신식교육을 받은 선비형이었다.14세 때 경성의 ‘공립5학년제 갑종 중학교’에 입학한 뒤 1945년 11월 미국식 6년제가 된 고등학교에 5학년으로 편입했다. 이때 담배말이와 성냥장사를 했지만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정도였다. 그러던 1946년 국비로 입혀주고 먹여준다는 말을 듣고 해양대학 1기생으로 입학해 1950년 3월 졸업했다. 6·25전쟁이 나자 연락장교에 지원해 7년 동안 전방근무를 했다. 전방 근무시절엔 권총을 잘 쏘아 명사수로 명성이 자자했다. 제대 1년전 56년 스물일곱에 하숙집 아줌마의 중매로 결혼했다. 제대후에는 합동통신사 외신부 기자로 취직했다. 슬하에 2남1녀를 두었는데 셋다 합동통신사 다닐 때 태어났다. 이후 72년 신학기부터 한양대 강단에 서면서 무섭게 글을 썼다.77년에 ‘8억인과의 대화’‘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을 한데 묶어 2년 동안 투옥된다. 수감 중에는 ‘D검사와 리교수의 하루’라는 소설을 썼다. 대학에 복직됐으나 ‘광주폭동’ 배후자로 몰려 다시 해직되는 등 수차례 고초를 겪는다. 정년 퇴임후 그는 시대적 소임을 다했다고 자위하며 조용히 살았지만 2000년말 일흔나이에 뇌출혈로 쓰러졌다. 언어장애까지 겹쳤다. 다행히 요즘들어 건강이 다소 회복됐다. 그러나 오른손의 떨림과 손가락마비는 여전해 장마철만 되면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의 심한 고통을 느낀다고 했다. “내가 할 일은 다했다.”고 거듭 말하는 리씨. 그는 자신의 책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며 저녁노을을 뒤로 하고 쓸쓸히 산을 내려왔다. ■ 그가 걸어온 길 ▲1929년 평북 운산 출생 ▲50년 해양대학 1기 졸업, 경북 안동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중 6·25전쟁이 나자 연락장교 지원 ▲57년 대위로 군제대 ▲57∼64년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 ▲64∼71년 조선일보·합동통신 외신부장 ▲72년 한양대 문리과대 교수 ▲76년 박정희 정권때 해직 ▲80년 3월 복직됐으나 그해 여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됨. ▲84년 재복직 ▲87년 미국 버클리대 부교수 초빙 ▲95년 한양대에서 정년퇴임 ▲99년 동대학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 역임 ■ 주요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74년), 우상과 이성(77년),8억인과의 대화(77), 분단을 넘어서(84년), 베트남전쟁(85년), 인간만사 새옹지마(91년) 등 k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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