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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흑인·다종교 등장한 ‘찰스 3세 대관식’… 군주제 논란 숙제도

    여성·흑인·다종교 등장한 ‘찰스 3세 대관식’… 군주제 논란 숙제도

    역대 처음 제단 무릎 꿇고 기도문“내가 모든 믿음에 축복이 되기를”‘흑인 여성’이 국왕 비둘기 홀 들어반대 시위자들 “나의 왕 아니다” 영연방 12개국 원주민 지도자들“사과·배상 촉구” 서한에도 ‘무시’ 71년 전인 네 살 때 본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1926~2022)의 대관식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영국 찰스 3세가 “신이시여 국왕을 지켜 주소서”란 외침 속에 5파운드(2.23㎏)짜리 왕관을 머리에 썼다. 1952년 2월 어머니의 대관식 날 때처럼 비가 내리는 6일(현지시간)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치러진 대관식에서는 왕실을 반대하는 이들의 “나의 왕이 아니다”란 구호도 울려 퍼졌다.찰스 3세는 ‘정복왕’ 윌리엄 1세가 1066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연 후 10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전통의 틀을 따르면서 새 시대가 원하는 군주상을 담으려 했다. 특히 역대 국왕 가운데 처음으로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내가 모든 믿음과 신앙에 축복이 될 수 있기를”이란 특별 기도문을 낭독했다. 찰스 3세는 또 귀족보다는 사회 엘리트 중심으로 2300여명의 대관식 초청 명단을 결정했는데 이는 1952년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의 8000여명보다 대폭 줄어든 인원이다. 대관식에 가장 먼저 입장하는 성직자 행렬에는 국교회 외에도 이슬람, 힌두, 시크, 유대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이 최초로 동참했다.여성 사제가 대관식 역사상 처음 참석하고, ‘흑인 여성’ 플로라 벤저민 남작이 국왕의 비둘기 홀을 드는 등 여성, 흑인, 다종교 등이 대관식 주요 장면마다 ‘상징’이 됐다. 영어 외에 웨일스어 등 다른 언어로도 찬송가를 합창했다. 줄리언 페인 전 영국 왕실 공보관은 일간 더 타임스를 통해 이는 화합과 조화를 낳으려는 찰스 3세의 의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세금으로 치러지는 대관식 비용만 최소 1억 파운드(약 1685억원)로 추정돼 혈세 낭비 논란은 물론 왕실 존립을 반대하는 이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5600만 파운드(944억원)인 어머니 대관식 비용의 곱절이다. 찰스 3세의 개인 재산은 최소 18억 파운드(3조원)가 넘으며, 이번에 상속받은 재산도 5억 달러(7000억원) 상당으로 알려졌지만 법에 따라 상속세를 면제받았다. 영국 의회로부터 연 8600만 파운드의 왕실 보조금을 지원받지만 세습 부동산에서 나오는 배당금은 법인세를 내지 않는다. 군주제 폐지 시민단체 ‘리퍼블릭’은 “국민 대표가 국가원수가 돼야 한다”며 2000명 이상 모여 시위를 벌이다 트래펄가 광장 주변에서 그레이엄 스미스 대표가 체포됐다. ‘나의 왕이 아니다’, ‘왕정 폐지’라고 새겨진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대관식 반대 시위를 벌인 리퍼블릭 측은 경찰이 아무런 이유도 제시하지 않고 체포했다고 주장했다. 대관식이 진행된 토요일 런던에는 1만 1500명 이상의 경찰이 동원됐고, 얼굴 인식 기술도 사용됐다. CNN은 이날 대관식 동안 영국 경찰이 시위와 공공질서 위반 등의 혐의로 52명을 체포했다고 전했다. 대관식 전날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파푸아뉴기니, 자메이카, 앤티가 바부다, 바하마, 벨리즈 등 영연방 12개 국가의 원주민 지도자들은 찰스 3세에게 서한을 보내 식민 지배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왕실 재산을 이용한 배상을 촉구했다. 하지만 새로운 왕이 택한 것은 ‘무시’였다. 찰스 3세는 대관식에서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의 국민들 그리고 당신의 다른 영역과 영토를 통치할 것”이라고 서약에서 언급했다. 반면에 엘리자베스 2세는 현재의 영국은 물론 식민지배 사과를 요구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연방, 파키스탄, 실론 등도 통치할 것이라고 서약했다.영국과 14개 영연방 왕국의 새 군주가 된 찰스 3세는 평생 어머니의 이인자로 살다 처음 주인공이 됐지만, 아들 윌리엄 왕세자보다 못한 인기와 기세등등한 군주제 폐지 여론에 맞서야 하는 상황이다. 아내와 자식을 대동하지 않고 홀로 대관식에 참석한 둘째 아들 해리 왕자와의 갈등처럼 왕실 내부 분열도 또 다른 숙제다. 찰스 3세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섬김받지 않고 섬길 것”이라고 대관식에서 말했지만, 왕의 존재 자체가 오래된 권력과 특권의 상징일 뿐이라고 군주제 반대주의자들은 강조했다.
  • 찰스 3세 대관식에 바이든 “양국 우정은 힘의 원천”…시진핑 “평화와 발전 추동하자”

    찰스 3세 대관식에 바이든 “양국 우정은 힘의 원천”…시진핑 “평화와 발전 추동하자”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대관식이 열린 6일(현지시간) 세계 각국 정상들은 축하 메시지를 보내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관식 직후 트위터에 “찰스 3세 국왕과 커밀라 왕비의 대관식을 축하드린다”며 “미국과 영국의 지속적인 우정은 양국 국민 모두를 위한 힘의 원천”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는 영부인(질 바이든)이 이 역사적 행사를 위해 미국을 대표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영부인인 바이든 여사가 손녀 피네건(23)과 함께 행사를 방문했다. 미 영부인의 대관식 참석은 처음이다. 그는 AP통신에 “왕관이 왕과 왕비의 머리에 차례로 씌워지는 순간을 상상도 못 할 것”이라며 “그 순간을 보고 경험하는 것은 정말 초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영부인인 올레나 젤렌스키 여사와 나란히 앉았던 바이든 여사는 CNN방송에 “그녀는 (우크라이나에서) 사이렌이 일상적으로 들리고 그게 삶의 일부가 됐다고 했다”며 전쟁의 아픔을 전했다. 일각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두고 ‘외교적 결례’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오는 7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참석차 유럽을 방문할 때 찰스 국왕을 만나 환경 문제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축전을 보내 찰스 3세 국왕을 축하했다.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시 주석은 “중국과 영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안목으로 평화와 발전, 협력, 공영이라는 역사의 조류를 함께 추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양국은 함께 노력해 국민 우호를 증진하고 상호 협력을 확대하고 인적 교류를 심화하고 안정적이고 호혜적인 관계로 양국과 세계를 더욱 복되게 하길 원한다”고 전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트위터를 통해 “이번 대관식은 영국 군주제가 지속 가능한 힘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이는 안정과 연속성의 상징”이라고 치켜 세웠다. 샤를 미셸 EU 이사회(정상회의) 상임의장도 “찰스 국왕의 폭넓은 경험을 높이 평가한다”며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촉진하는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대관식을 축하하면서 영국과 EU가 기후변화 등 문제에 있어서 긴밀하게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고, 대관식에 직접 참석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트위터에 “역사적인 날에 여러분과 함께하게 돼 자랑스럽다. 찰스 3세 국왕과 커밀라 왕비는 프랑스의 친구”라고 썼다. 이날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된 대관식에는 각국 정상 및 원수급 100명 등 2200여명이 참석했다. 한국에서는 정부 대표로 한덕수 총리가 자리했다. 러시아와 벨라루스, 이란, 미얀마,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베네수엘라 정상은 초청받지 못했다.
  • 식민지배 사과 무시한 찰스 3세 시대 개막…“나의 왕이 아니다”

    식민지배 사과 무시한 찰스 3세 시대 개막…“나의 왕이 아니다”

    네살 때 본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영국 찰스 3세가 6일(현지시간) “신이시여 국왕을 지켜주소서”란 외침 속에 2.23kg(5파운드)의 왕관을 썼다. 70년 전 엘리자베스 2세와 마찬가지로 비가 내리는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치러진 대관식에서는 왕실을 반대하는 이들의 “나의 왕이 아니다”란 구호도 울려 퍼졌다. 찰스 3세는 ‘정복왕’ 윌리엄 1세가 1066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연 후 10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전통의 틀을 따르면서 새 시대가 원하는 군주상을 담으려 했다. 특히 역대 국왕 가운데 처음으로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내가 모든 믿음과 신앙에 축복이 될 수 있기를”이란 특별 기도문을 낭독했다. 찰스 3세는 또 귀족보다는 사회 엘리트 중심으로 2300여명의 대관식 초청 명단을 결정했는데 이는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의 8000여명보다 대폭 줄어든 인원이다. 대관식에 가장 먼저 입장하는 성직자 행렬에는 국교회 외에도 이슬람, 힌두, 시크, 유대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이 최초로 동참했다.여성 사제가 대관식 역사상 처음 참석하고, ‘흑인 여성’ 플로라 벤저민 남작이 국왕의 비둘기 홀을 드는 등 여성, 흑인, 다종교 등이 대관식 주요 장면마다 ‘상징’이 됐다. 영어 외에 웨일스어 등 다른 언어로도 찬송가를 합창했다. 줄리언 페인 전 영국 왕실 공보관은 일간 더 타임스를 통해 이는 화합과 조화를 낳으려는 찰스 3세의 의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세금으로 치러지는 대관식 비용만 최소 1억 파운드(약 1685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돼 혈세 낭비 논란은 물론 왕실 존립을 반대하는 이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이는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5600만파운드(약 944억원)로 추산되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관식 비용의 두 배에 달한다. 찰스 3세의 개인 재산은 최소 18억 파운드(약 3조원)가 넘으며, 이번에 상속받은 재산도 5억달러(약 7000억원) 상당으로 알려졌지만 법에 따라 상속세를 면제받았다. 영국 의회로부터 연 8600만파운드의 왕실 보조금을 지원받지만 세습 부동산에서 나오는 배당금은 법인세를 내지 않는다. 군주제 폐지 시민단체 ‘리퍼블릭’은 “국민 대표가 국가 원수가 돼야 한다”며 2000명 이상 모여 시위를 벌이다 트래펄가 광장 주변에서 그레이엄 스미스 대표가 체포됐다. ‘나의 왕이 아니다’ ‘왕정 폐지’라고 새겨진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대관식 반대 시위를 벌인 리퍼블릭 측은 경찰이 아무런 이유도 제시하지 않고 체포했다고 주장했다. 대관식이 진행된 토요일 런던에는 1만 1500명 이상의 경찰이 동원됐고, 얼굴 인식 기술도 사용됐다. CNN은 이날 대관식 동안 영국 경찰이 시위와 공공질서 위반 등의 혐의로 52명을 체포했다고 전했다.대관식 전날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파푸아뉴기니, 자메이카, 앤티가 바부다, 바하마, 벨리즈 등 영연방 12개 국가의 원주민 지도자들은 찰스 3세에게 서한을 보내 식민 지배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왕실 재산을 이용한 배상을 촉구했다. 하지만 새로운 왕이 택한 것은 ‘무시’였다. 찰스 3세는 대관식에서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의 국민들, 그리고 당신의 다른 영역과 영토를 통치할 것”이라고 서약에서 언급했다. 반면에 이전 엘리자베스 2세는 현재의 영국은 물론 식민지배 사과를 요구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연방, 파키스탄, 실론 등도 통치할 것이라고 서약했다. 영국과 14개 영연방 왕국의 새 군주가 된 찰스 3세는 평생 어머니의 이인자로 살다 처음 주인공이 됐지만, 아들 윌리엄 왕세자보다 못한 인기와 기세등등한 군주제 폐지 여론에 맞서야 하는 상황이다. 아내와 자식을 대동하지 않고 홀로 대관식에 참석한 둘째 아들 해리 왕자와의 갈등처럼 왕실 내부 분열도 또 다른 숙제다. 찰스 3세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섬김받지 않고 섬길 것”이라고 대관식에서 말했지만, 왕의 존재 자체가 오래된 권력과 특권의 상징일 뿐이라고 군주제 반대주의자들은 강조했다.
  • 찰스 3세 대관식날 체포된 사람들… “내 왕이 아니다” 외쳤다가 징역 살 수도

    찰스 3세 대관식날 체포된 사람들… “내 왕이 아니다” 외쳤다가 징역 살 수도

    70년 만에 영국 국왕의 대관식이 거행된 6일(현지시간) 런던에서 노란색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체포됐다. 군주제에 반대하는 이들은 ‘내 왕이 아니다’(Not My King) 시위를 준비하던 중 경찰에 끌려간 것으로 전해졌다. BBC·가디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반(反)군주제 캠페인 단체인 ‘리퍼블릭’ 소속 사람들이 이날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서 열린 시위에서 경찰에 체포되는 모습이 소셜미디어(SNS)에 공유됐다. 이 단체는 대표인 그레이엄 스미스를 포함해 6명이 이날 오전 7시 30분쯤 광장 근처에서 손팻물을 내리던 중 이유도 말하지 않은 경찰에 의해 수갑이 채워졌다고 밝혔다. 이들은 당시 이날 시위대를 위한 음료와 손팻말 등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찰스 3세(74)의 대관식을 앞두고 영국에서는 지난 3일 도로·철도 등을 막는 시위대를 최대 12개월 징역형에 처할 수 있게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공공질서법이 발효됐다. 또한 영국 내무부는 리퍼블릭 등 반군주제 단체들에 “공공질서법에 관해 회원들에게 알려주길 바란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체포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의 반군주제 단체 대표를 포함해 각지에서 모인 약 2000명의 시위대가 트래펄가 광장의 찰스 1세 동상 근처에 모였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찰스 1세는 왕권 강화를 위해 의회를 해산시켰다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인물이다. 한 트위터리안은 이들의 체포 소식을 트위터에 공유하면서 “경찰이 반군주제 시위대를 체포하고 손팻말을 훔치고 있다”며 “사람들이 푸드뱅크(무료급식)에 줄을 서고 학교가 무너지는 동안 상상할 수 없는 부를 갖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한 남자가 국가 원수가 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것조차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앞서 영국에서는 지난 3일 도로·철도 등을 막는 시위대를 최대 12개월 징역형에 처할 수 있게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공공질서법이 발효됐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대관식 비판 시위 등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현지 보안 당국은 대관식을 앞두고 수천여명의 경찰을 투입하면서 경계 태세를 강화했다. 당국은 이 같은 철통 보안을 ‘황금보주 작전’(Operation Golden Orb)으로 명명했다. 보주(寶珠·구체로 된 장식품)는 찰스 3세가 왕좌에 앉을 때 양손에 홀(笏·scepter)과 함께 드는 것을 일컫는다. 경찰 당국은 성명을 통해 “대관식을 앞두고 주말 전후로 2만 9000명 이상의 경찰이 배치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하루 규모로는 수십년 만에 가장 많이 투입되는 경찰력이다. 한편 왕세자로 거의 평생을 대기했던 찰스 3세는 마침내 이날 대관식을 치르고 영국과 14개 영연방 왕국의 군주가 됐다.
  • “모로코와 한국은 정치·문화 유사점 많은 60년 동맹국…여행, 문화, 경제 교류 확대 기대”…샤픽 하샤디 모로코왕국 대사 인터뷰(상) [헬로 월드]

    “모로코와 한국은 정치·문화 유사점 많은 60년 동맹국…여행, 문화, 경제 교류 확대 기대”…샤픽 하샤디 모로코왕국 대사 인터뷰(상) [헬로 월드]

    <편집자 주> 지구촌 별별 이야기를 담는 나우뉴스는 외국인 오피니언 리더들의 눈과 입을 통해 세계의 다양하고 유익한 정보를 전하는 ‘헬로 월드’ 연재를 시작합니다. 인터뷰는 유엔공식벤더로 인정받은 통역번역 전문법인 (주)제이엠 커넥티드 임지민 대표와 함께 진행합니다.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에서 공부한 임 대표는 국가기관과 글로벌 기업, 대학, 산업 분야에서 열리는 다양한 국제행사에서 통·번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4강 돌풍을 일으킨 모로코가 유엔군의 일원으로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모로코가 프랑스 보호령이던 당시 국왕인 모하메드 5세는 모로코 국민들에게 프랑스와 동맹국의 자유 수호를 위해 프랑스군에 입대할 것을 권고했고, 이 가운데 일부가 유엔군 일원으로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샤픽 하샤디 주한 모로코왕국 대사는 27일 “모로코는 1962년 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먼저 한국과 수교를 체결한 국가로 60년 넘게 정치, 경제, 문화 등 많은 분야에서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면서 “모로코 군인 일부가 유엔군 일원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하는 등 두 나라는 이미 수교 이전부터 각별한 관계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하샤디 대사는 “모로코는 한국과 멀리 떨어진 국가이지만 역사와 문화, 전통, 신념 등에서 많은 공통점을 가진 국가”라며 “한국의 문화가 아랍 국가에 한류열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고, 모로코의 풍부한 관광자원이 많은 한국 관광객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샤디 대사는 앞으로 자동차 산업, 항공분야, 신재생에너지, 보건 분야에서 더 많은 많은 교류를 기대하고 있다.  모로코는 아프리카 북서단에 있는 입헌군주제 국가로 정식명칭은 모로코왕국(Kingdom of Morocco)이다. 수도는 라바트이며, 1962년 한국과 수교를 체결했다. 1993년 비자면제협정을 체결하면서 양국의 관공 교류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영화 ‘카사블랑카’를 떠올리고, 최근 재개봉한 영화 ‘모가디슈’, 드라마 ‘배가본드’ 촬영지로도 친숙하다. 특히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아프리카 국가로는 최초로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내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이 아시아 최초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른 뒤 20년 만에 아프리카 축구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셈이다. 샤픽 하샤디 주한 모로코왕국 대사 인터뷰를 문화·관광과 정치·경제 분야로 나눠 두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다음은 하샤디 대사와의 일문일답.  ▷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월드컵 4강 신화를 달성한 비결은. - 아프리카 국가 월드컵 준결승 신화는 모로코의 기적이자 꿈이었고, 엄청난 순간이었다. 아랍 세계의 잠재력을 전세계에 보여준 역사였다. 특별한 비법은 없다. 모든 모로코, 아랍 및 아프리카 국가의 지원과 함께 결단력, 인내, 의지, 팀워크의 결과였다.  ‘아틀라스 라이온즈’(모로코 국가대표팀 별칭)는 눈부신 활약으로 모든 국민들에게 감동과 애국심을 선사했다. 1999년 모하메드 6세 국왕 즉위 이후 국가 근대화 과정이 정치에서 사회,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추진됐다.  축구도 이러한 과정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국가 차원에서 젊은 모로코인들이 스포츠 및 학업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아카데미와 시설의 개발을 장려했다.  ▷ 월드컵을 계기로 모로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 실제 한국에서 모로코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눈에 띈다. 모로코는 수세기에 걸쳐 내려오는 문화적 다양성, 예술, 영화, 음악 등을 축적하고 있고, 여러 유형의 유네스코 세계 유산이 국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로코의 자연, 역사, 예술, 모로코식 환대에 매료돼 찾고 있다. 모로코는 항상 다양한 문명, 신념 및 문화의 교차로였으며, 아랍, 지중해 및 아프리카 기원의 용광로였다. 페니키아인, 카르타고인, 로마인, 반달족이 이 땅을 거치면서 다양한 문명과 문화가 스며들었다. 이 같은 문화적 다양성은 과거, 잠재 의식 및 문화에 잘 묻혀 있고, 이는 일상 언어, 사실 및 몸짓, 심지어 종교적 신념에서도 찾을 수 있다.  ▷ 모로코에 한국 문화는 얼마나 잘 알려져 있나. - 한류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모로코에서도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드라마, 음악, 패션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모로코를 포함한 아랍 국가 전역의 많은 대학에서는 한국어를 배울 수 있다.  K-드라마는 모로코에서 점점 인기를 얻고 있으며 많은 모로코인들이 시청한다. K-드라마의 인기는 모로코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드라마에 나오는 언어와 문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했고, 모로코에 한국어 학교를 개설하는 계기가 됐다.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Blackpink), 엑소(EXO) 등 K팝 그룹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한국 음악도 모로코에서 많은 팬을 확보했다. 모로코 K팝 팬들은 팬클럽을 결성하고 좋아하는 그룹을 축하하기 위해 이벤트와 모임을 개최한다.  한국 패션도 모로코에서 인기를 끌었다. 한류는 한국의 엔터테인먼트와 문화를 수용하는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모로코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모로코인들은 한국인과 그들의 문화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모로코에서 한국인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시민들의 근면함이다.  한국인들의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 화합, 근면, 자기 수양을 우선시하는 문화적 가치와 전통은 어릴 때부터 교육, 가족 및 사회 제도를 교육을 받는다.  위계와 권위에 대한 존중과 직업 윤리, 직업에 대한 헌신으로 유명하다. 한국인들은 종종 오랜 시간 일하고 그 일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일에 대한 이러한 헌신은 경쟁이 치열하고 학업 성취도를 강조하는 교육 시스템에도 반영된다.  전반적으로 한국인의 행동은 강한 의무감과 책임감, 타인에 대한 존중, 근면과 자기 수양에 대한 헌신이 특징이다.  ▷ 한국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모로코 여행지는. - 우리는 모든 관광 상품에 ‘환경적 요소와 사회적 요소’를 중시한다고 생각한다. 관광객들이 관광을 통해 진정한 성찰을 할 수 있게 한다. 아틀라스 산맥에서 대서양 해변, 사막의 고요함에서 활기찬 도시 등 자연과 문화, 건축, 역사, 전통 등 많은 관광 자원을 가진 나라 중 하나다. 기후, 토양, 문화 다양성과 관련된 광범위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2023년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모로코는 세계 최고의 여행지 중 하나로 선정됐다. 그런 점에서 한국 관광객들에게 유럽의 다른 도시들과는 다른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마라케시, 와르자자트, 라윤, 다클라 등 남부 도시들을 추천하고 싶다. 황토색 모래 언덕과 바위 첨탑이 이루는 광대한 풍경은 등산객과 사진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 한국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한국에 대한 인상은. - 한국은 대사로 근무한 국가 이상이다. 내 아이들이 자란 나라다. 우리가 처음 왔을 때 막내는 13살이었는데 지금은 19살이다. 그는 한국을 제2의 나라로 생각한다. 실제로 한국은 문화가 풍부하고 역사에 상당한 중요성을 부여하는 매혹적인 나라다. 내가 한국 문화에 대해 가장 좋아하는 점은 다른 종교와 문화가 혼합되어 상대적으로 동질적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것은 한국 문화에서 본질적으로 얻어지는 성숙이다. 좋아하는 한식을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비빔밥이다. 비빔밤을 가르쳐준 딸과 소소한 이야기(a tête à tête)를 나누며 함께 즐겨 먹는다. 하지만 한국에서 보낸 모든 순간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주말에 나는 도시를 내려다보기 위해 남산타워에 올라간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고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나라라고 말할 수 있다. ▷ 한국과 모로코의 유사점은 무엇인가. - 비록 모로코는 한국과 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곳에서 보낸 지난 몇 년은 우리가 여러 면에서 얼마나 비슷한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높게 평가되는 가족관계와 의존성은 모로코의 가치관과 유사하다. 양국 모두 가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연장자를 존경한다. 또한 근면과 근면, 효도, 겸손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 유교 철학은 개인의 행복보다 가족의 화합을 우선시함으로써 한국의 전통적인 가족 구조를 형성했다. 많은 한국인들이 자기표현보다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모로코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뿌리 깊은 전통, 가치 및 신념을 가진 다양한 부분으로 구성된 다문화 사회다. 공통적으로 영토를 회복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나는 독립을 위해 조선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평화적인 운동인 1919년 3.1절을 예로 들고 싶다. 이는 1975년 모로코 녹색 행진을 떠올리게 한다. 이 운동은 우리 남부 지방의 평화로운 해방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모로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로 모로코 왕국의 영토 보전을 완성하는 이정표가됐다. 두 사례는 양국 모두 독립을 위해 같은 길을 걸었다는 것을 보여준다.Interview with H.E. Dr. Chafik RACHADI, Ambassador of His Majesty the King of Morocco to the Republic of Korea    ▷ Congratulations on becoming the first African country to achieve the World Cup semi-final myth.  What is the secret to reaching the semifinals? - With pride, I here recall that my country’s football team is the first Arab and African nation ever to reach the semifinals of the FIFA competitions organized for the first time in an Arab country (Qatar). Joy was overwhelming all Moroccans all over the world, all Arab and African nations throughout the globe. This was a magical wish of every Arab and African country. There was no secret behind. It was the result of determination, perseverance, will and teamwork, along with the support of all Moroccans, Arab and African nations. It was a Moroccan miracle and dream, a mountainous moment, a potential history for a country, for a continent and for the Arab world. The Atlas Lions have portrayed unbelievable emotions and values among all nations around the globe through their brilliant performance, having with them their mothers who have instilled them the values of patriotism and sacrifice. To be noted that this achievement was a further demonstration of the support of His Majesty the King for sport and football in Morocco. Since the King´s accession to the throne in 1999, the process of national modernization undertaken by His Majesty has encompassed all areas, from the political to the social, as well as the sporting. Football has not been left out of this process of evolution, and the national authorities have encouraged the development of academies and facilities that have fostered the sporting and academic development of young Moroccans.▷ Morocco's culture seems to be less well known in Korea. Can you tell us what kind of county it is? - In fact, it is noticeable that Morocco is becoming increasingly popular within Korean society, especially in recent years. This can be explained by the fact that Moroccan culture fascinates the world by its diversity, art, cinema, music, and history that goes back centuries. With several dynasties that have succeeded one another over the years (the Idrisside dynasty, Almoravid, Almohad, Merinid, Saadian and the Alaouite) Morocco has gained international consideration as a multicultural country, with several types of heritage recognized as World Heritage by UNESCO. Morocco is one of the go-to destinations for discovery lovers, the most fascinated by nature, history, the art of living and Moroccan hospitality. The experience gained during their journeys in Morocco leave them pleasantly satisfied with their stay. Morocco has always been the crossroads of different civilizations, beliefs, and cultures, a melting pot of Amazigh, Arab, Mediterranean and African origins, has seen the Phoenicians, the Carthaginians, the Romans, the Vandals pass through its lands. As a result, it has been impregnated with different civilizations and cultures. These shares between societies, languages, traditions, and customs allow Morocco to have a vibrant culture that includes several other specificities. Thus cultural diversity is not new for Moroccans, but its notion is well buried in its past, subconscious, and culture. This notion can be detected in its daily language, facts and gestures, and even its religious beliefs, without forgetting its material and immaterial heritage.▷ How well is Korean culture known in Morocco? What do Moroccan people think of Korea What Korean Wave content would the Moroccans like? - Rich by its millenary history, Morocco has always known how to take advantage of the contributions of the societies it has lived alongside and absorb them.Globalization, migration, and the evolution of the contemporary world project the Moroccan society towards new horizons where tradition and modernity meet.  Also, Korea's cultural diplomacy has brought the Hallyu wave to Arab countries. K-Drama, K-pop, and Korean food appear all over these countries. In addition, many universities all over Arab countries offer the Korean language for study, including my own country, the Kingdom of Morocco.  The Korean wave, also known as Hallyu, has been gaining popularity in many parts of the world, including Morocco. In recent years, Korean drama, music, and fashion have gained many followers in Morocco, especially among younger generations.  Korean dramas, also known as K-dramas, have become increasingly popular in Morocco, with many Moroccans tuning in to watch their favorite shows. The popularity of K-dramas has led to the opening of Korean language schools in Morocco, where Moroccans can learn Korean and better understand the language and culture portrayed in the dramas.  Korean music has also gained many followers in Morocco, with K-pop groups such as BTS, Blackpink, and EXO becoming increasingly popular. Moroccan fans of K-pop have formed their own fan clubs and hold events and gatherings to celebrate their favorite groups.  In addition to K-drama and K-pop, Korean fashion has also become popular in Morocco. Korean street style, in particular, has gained many followers among Moroccan youth who are drawn to the unique and trendy clothing styles. Overall, the Korean wave has been making a significant impact on Moroccan culture, especially among younger generations who are embracing Korean entertainment and culture.  Also, Moroccans have a positive view of Koreans and their culture. It is important to remember that all individuals, regardless of their ethnicity or nationality, are unique and should not be stereotyped or generalized. In Morocco when we talk about Koreans, the first thing that comes to our mind is the hard work and the good behavior of the citizens.  We believe that the behavior of the Korean people is shaped by their cultural values and traditions, which prioritize respect for others, harmony, hard work, and self-discipline. These values are instilled in Koreans from their early years through education, family, and social institutions.  Another aspect of the Korean behavior is their respect for hierarchy and authority. This is reflected in the way they speak to and interact with those who are older or of higher social status.  Koreans are known for their work ethic and dedication to their jobs. They often work long hours and take their work very seriously. This dedication to work is also reflected in their education system, which is highly competitive and emphasizes academic achievement.  Another aspect of the Korean behavior is their emphasis on cleanliness. Koreans take great pride in keeping their homes and public spaces. Overall, the behavior of Koreans is characterized by a strong sense of duty and responsibility, respect for others, and a dedication to hard work and self-discipline.  ▷ Which Moroccan destination do you want to recommend to the Korean people? - We believe it is necessary that “environmental and social element” be inscribed among the foundations of all tourist products. This allows us to undertake a real reflection on the products to introduce to the tourists. The search for a real match between supply and demand is essential.  From the Atlas Mountains to the Atlantic beaches, from the silence of the desert to the lively cities... nature, culture, architecture, history, tradition of hospitality... few countries in the world concentrate so many riches. Morocco is one of them.  The Kingdom has a wide range of tourist assets linked to the diversity of its climate, relief, soil and culture. In 2023, Morocco is ranked among the top travel destinations in the world according to the Washington Post.  In this regard, I would recommend to Korean tourists, the southern cities (Marrakech, Ouarzazate, Laayoune, Dakhla…) where they will enjoy special experiences much different from what they can find in other European cities. In this part of Morocco, the magic happens! The immensity of these landscapes of ochre dunes and rocky spires will fascinate the hiker as well as the photographer. ▷ If you were to talk about life in Korea, what is your impression of Korea ? What is your favorite Korean culture, food and tourist attraction? - The Republic of Korea is more than an accreditation country for me. It is the country where my children grew up. My youngest was 13 years old when we first came. Today, he's nearly 19. He considers Korea as his second country.  Indeed, Korea is a fascinating country, rich in culture and gives considerable importance to its history. What I like most about Korean culture is that it is relatively homogeneous, with a mixture of different religions and cultures. Acceptance of others and respect for their way of life is a maturity acquired essentially in Korean culture.  If you ask me about my favorite Korean dish, I will answer without hesitation that it is the “Bibimpap” because I learned to enjoy it every time I went out for “a tête à tête” with my daughter, who taught me to love it.  Although, I learned to love every little moment I spent in Korea. My perfect plan for the weekend was to go all the way up to “Namsan Tower” to have a bird's eye view of the city.  In conclusion, I could say that Korea is a country that has a unique vibe and never stops surprising me, that's why it holds an exceptional place in my heart.  ▷ What are the similarities between Korea and Morocco? - Even if Korea is quite far from Morocco, these last few years I spent here made me notice how similar we are in many ways. Foremost, the close family ties and dependencies valued so highly in Korea are similar to Moroccan values.  We both give great importance to family and respect elders. In addition, we admire diligent and hard work, filial piety, and humbleness. Confucian philosophy defined the traditional Korean family structure, by placing family harmony over individual happiness. Many Koreans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family rather than self-expression, which is the same in Morocco.  We are multicultural societies composed of many different parts with deeply rooted traditions, values, and beliefs.  In the common history marked by the desire to recover our territories, I quote the example of the March 1st Movement in Korea, with its peaceful demonstrations that spontaneously broke out in 1919 throughout Korea to affirm to the whole world the hope and ardent desire of the Korean people for independence. This reminds us of the Moroccan Green March of 1975, which also led to the peaceful liberation of our southern provinces.  It was one of the most significant epics in the history of Morocco and a milestone in the process of completing the territorial integrity of the Kingdom. Both examples show us that our two nations went through the same path to recover their independence.  진행 임지민 통번역사·JM커넥티드 대표 jc@jmconnected.co.kr
  • 찰스 3세 대관식 축하 공연에 엘튼 존을 초청? 영국인들 놀란 이유

    찰스 3세 대관식 축하 공연에 엘튼 존을 초청? 영국인들 놀란 이유

    “찰스(3세 영국 국왕)가 대담하게도 엘튼 존에게 대관식에서 ‘캔들 인 더 윈드’를 불러 달라고 했다고?” 찰스 3세의 대관식 행사가 5월 6∼7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릴 예정인 가운데 행사 이튿날 축하 콘서트 무대에 싱어송라이터 엘튼 존 경(卿)을 초청했다는 보도를 보고 어느 누리꾼이 트위터에 비꼰 내용이다. 찰스 3세와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 끝에 15년 만에 이혼한 고(故) 다이애나비와 존이 각별한 사이였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존은 1997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다이애나비를 기리기 위해 편곡한 ‘캔들 인 더 윈드’를 장례식에서 직접 불렀다. 그는 2018년 해리 왕자와 매건 마클의 결혼식에서도 이 곡을 연주했다. 다른 트위터 이용자는 “영국 왕실이 엘튼 존에게 전화를 걸어 찰스의 대관식에서 공연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직접 들을 수 있다면 700달러를 내겠다”라고도 적었다. 그만큼 뜻밖의 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엘튼 존과 아델 등 영국을 대표하는 유명 가수들이 오는 5월 찰스 3세 국왕의 대관식 콘서트 공연 초청을 줄줄이 거절한 사연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일간 가디언과 LBC 라디오 등 현지 매체는 왕실이 5월 7일 열리는 축하 콘서트에 음악계 유명인사를 섭외했다고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왕실은 아직 공식적으로 콘서트 라인업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현지 매체들은 콘서트에 초청된 일부 가수들의 명단을 확보해 참석 여부를 보도했다. 존 경은 그 동안 왕실 공연의 섭외 1순위로 꼽혔으나 유럽투어 일정을 이유로 대관식 콘서트에 참석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엘튼 존은 (대관식 전날인) 5일 독일 공연 직후 또다른 콘서트가 있어 영국으로 달려가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존이 공연 일정을 핑계로 내세웠을 뿐이라고 보고 있다. 존 말고도 아델과 에드 시런, 해리 스타일스, 로비 윌리엄스, 스파이스 걸스 역시 다른 일정 등을 이유로 콘서트 참석 거절 의사를 밝혔다. 이를 두고 외신들은 역대 영국 국왕 중 인기 없기로 유명한 찰스 3세의 입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군주제 폐지를 촉구하는 무언의 시위라는 분석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반면 찰스 3세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이자 또래 친구인 미국 싱어송라이터 라이어널 리치는 대관식 콘서트 무대를 빛낸다. 리치는 2019년 당시 왕세자이던 찰스 3세가 운영하는 자선 단체 프린스 트러스트의 국제 홍보대사로 발탁됐을 정도로 국왕과 친분이 두텁다. 1990년대를 풍미한 영국 보이 밴드 ‘테이크 댓’도 대관식 콘서트무대에 설 가능성이 높다. 테이크 댓은 영국 왕실 행사에 단골 손님이었는데 바쁜 투어 일정에도 찰스 3세의 대관식을 축하하기 위해 시간을 비워둔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싱어송라이터 올리 머스와 국민가수 카일리와 대니 미노그 자매도 대관식 축하 행사에 함께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관식 행사는 TV로 생중계된다. 공영방송 BBC는 대관식이 국가 중요 행사라고 판단해 생중계 영상을 무료로 배포하기로 했다. 생중계 영상은 시청이나 교회 등 지역사회 내 공유 공간뿐 아니라 콘서트홀, 공연장, 영화관 등 상업 공간에서도 중계 상영될 예정이다.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배우자가 함께 치르는 이번 대관식은 영국에서 70년 만에 열리는 행사로 캔터베리 대주교가 주재한다.
  • 호주, 英 엘리자베스 2세 흔적 지운다…원주민 넣은 지폐 찍는다

    호주, 英 엘리자베스 2세 흔적 지운다…원주민 넣은 지폐 찍는다

    호주가 엘리자베스 2세의 초상화를 지폐에서 영구 삭제하는 등 과거 영국 군주제의 흔적을 차례로 지워나가는 분위기다. 호주 중앙은행(RBA)은 2일(현지시간) 5호주달러(약 4350원) 지폐에 남아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초상화를 지우고, 호주 원주민과 문화를 도안으로 한 새 지폐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AP통신 등 외신은 보도했다. 지금껏 호주에서 통용됐던 5호주달러 지폐는 영국 국왕의 초상이 남아있는 유일한 호주 지폐였다. 하지만 이를 두고 호주에서의 왕정 폐지를 주장하는 공화주의자 등을 중심으로 새 화폐 도안 도입에 대한 필요성이 꾸준하게 제기돼 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호주 중앙은행인 RBA와 연방 정부의 협의 끝에 호주 역사상 최초로 현재 호주와 영국 등의 국왕인 찰스 3세의 초상화가 들어가지 않은 새 지폐에 대한 소식이 알려져 큰 관심이 집중된 분위기다. 하지만 지폐가 아닌 일반 1호주달러(약 870원) 동전에는 기존과 같이 찰스 3세의 초상이 들어갈 것이라고 이 매체는 전했다. 호주 정부는 찰스 3세의 초상이 새겨진 새 동전을 빠르면 올해 안에 주조해 유통할 방침이라고 지난 12월 이미 예고한 바 있다. 호주 재무장관 짐 찰머스는 이번 움직임에 대해 “변화와 균형을 제대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 “호주 원주민들의 문화와 역사를 기록한 첫 번째 지폐 사례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또 “영국 국왕은 여전히 호주 동전 위에 새겨져 있을 것”이라면서도 “5호주달러 지폐에는 우리만의 역사와 유산, 그리고 호주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들이 새겨질 것이며, 이 움직임을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고 지지했다. 특히 꾸준하게 왕정 폐지에 무게를 실어왔던 이들 사이에서는 영국 출신 이민자들이 호주에 정착하기 6만 5000년 전부터 호주에 터를 잡고 살아온, ‘진짜 주인’인 호주 원주민들이 지폐에 등장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다. 야당 지도부인 피터 터튼 역시 이번 움직임을 두고 호주의 국경일이 변경된 것과 같은 매우 큰 의미가 있는 현상이라고 비유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다만, 원주민 문화와 관련된 도안 등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정해진 바가 없으며, 새 도안이 결정되고 인쇄돼 일반에 통용되기까지는 최소 몇 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전해졌다. 새 5호주달러 지폐 뒷면에는 현행과 동일한 도안인 호주 의회가 인쇄될 예정이다. 또, 기존의 5호주달러는 새 도안이 새겨진 지폐가 유통된 이후에도 법정 통화로 인정돼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유통될 예정이다. 
  • ‘첫 여왕’ 기대받던 태국 공주…한 달째 의식불명된 이유

    ‘첫 여왕’ 기대받던 태국 공주…한 달째 의식불명된 이유

    태국 왕실 장녀 팟차라끼띠야파 나렌티라텝파야와디 공주(44)가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진 지 한 달 넘게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공주는 지난달 14일 육군 주최 군견대회에 참가했다가 가슴 통증 등을 호소하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현지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후 헬기로 방콕 쭐라롱꼰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아직까지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태국 왕실은 9일 “공주가 마이코플라스마 감염에 따른 심장 염증으로 심각한 부정맥이 발생해 의식을 잃은 것으로 의료진이 결론내렸다”라며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이며 의료진이 지속해서 항생제 등 약물을 투여하고 있다.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면서 폐와 신장 기능을 도울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팟차라끼띠야파 공주의 상태와 관련된 왕실의 발표는 이번이 세 번째로, 구체적인 원인은 처음 공개됐다. 마이코플라스마는 바이러스와 세균의 중간 영역에 위치하는 미생물로, 주로 폐렴, 관절염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주는 ‘파 공주’로도 불린다. 마하 와치랄롱꼰(라마 10세) 국왕이 왕세자 시절인 1978년 첫째 부인과 낳은 딸이다. 공주는 태국 탐마삿대를 졸업하고 2005년 미국 코넬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태국으로 돌아와 2006년 방콕 검찰청 검사로 임용됐고, 지방 검찰 등에서 근무하며 마약 단속에 주력했다. 어머니와 함께 설립한 ‘파 공주 재단’을 통해 농촌 지역 빈곤층과 이재민 구호에 힘을 쏟기도 했다. 여성 수감자 처우 개선을 돕는 등 태국의 여성 인권 운동에도 나섰다. 최근까지 왕실 호위대에서 근무했다. 이러한 대외적인 행보로 태국 국민의 호감을 얻으며 그가 태국 최초의 여왕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태국은 1974년 헌법을 개정해 공주도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했다. 라마 10세는 2016년 즉위 이래 아직 공식 후계자가 없다. 가디언은 “파 공주는 다른 자녀들과 달리 아버지와 정기적으로 행사에 동행하는 핵심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현 와치라롱껀 국왕은 올해 70세다. 태국은 입헌군주제 국가지만 국왕이 상징적인 존재에 머물지만은 않는다. 사실상 국가 수반이며 최고 권력자다. 왕실모독제가 여전히 형법(112조)으로 존재한다. 왕실의 맏딸이 쓰러지면서 관심은 다시 후계구도에 모아진다. 태국 각지에선 공주의 회복을 바라는 기도회가 진행되고 있다. 전국 곳곳에 공주의 초상화가 마련돼 있는데, 이곳에는 쾌유를 기원하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검사 시절 한국 왔던 왕위승계 1순위 그녀 위해… 8일째 손 모은 태국

    검사 시절 한국 왔던 왕위승계 1순위 그녀 위해… 8일째 손 모은 태국

    태국 왕위승계 1순위인 팟차라까띠야파 나렌티라텝파야와디(44) 공주가 8일째 의식불명 상태다. 공주는 태국 국왕의 장녀로, 지난 14일 군견대회에 참가했다가 심장 이상으로 쓰러졌다. 급히 헬리콥터로 수도인 방콕의 대학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깨어나지 못하자 많은 시민이 병원 앞에 몰려 회복을 기원하고 있다. 태국 왕실은 지난 19일 “공주의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됐으며 심혈관 조영술 결과 기형 증세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현재 공주의 심장 박동은 약물로 조절되고 있으며, 심장 수축도 약한 상태”라고 발표했다. 검사로 활동해 ‘검사 프린세스’로 불리는 공주는 ‘파’(PA)란 애칭이 있을 정도로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태국은 입헌군주제이지만 국왕이 사실상 국가수반으로 막강한 힘을 갖는데, 현 마하 와치랄롱꼰 왕은 이혼과 결혼을 세 차례씩 반복하며 사생활 논란을 자초해 신망을 잃었다. 아버지에 비해 파 공주는 2005년 미국 코넬대에서 법학박사를 받은 뒤 검사와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활발한 사회적 활동을 해 왔다. 특히 지난해 2월부터는 왕립 근위사령부에서 장군으로 복무하며 군인처럼 머리도 짧게 자르는 등의 행동으로 대중 신망을 두텁게 받는다. 현재 국왕과 셋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17세의 왕자가 있지만 왕실 후계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또 1974년 태국 정부가 공주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 뒤 ‘파’ 공주는 왕위 승계 1순위로 여겨졌다. 공주가 쓰러진 뒤 쁘라윳 짠오차 총리를 비롯해 각계각층이 문병해 회복을 기원하고, 전국 사원과 학교 등에서도 단체기도를 올리고 있다.
  • 영국 찰스 3세 국왕 향해 ‘또’ 계란…20대 男 체포

    영국 찰스 3세 국왕 향해 ‘또’ 계란…20대 男 체포

    영국 찰스 3세(74) 국왕이 6일(현지시간) 한 달도 채 안 돼 또 ‘달걀 테러’ 위협을 받았다. 영국 일간 가디언·로이터, 프랑스 AFP통신에 따르면 찰스 국왕은 이날 영국 런던 북서쪽 루턴시 중심가를 걷다 20대 남성으로부터 달걀 위협을 받았다. 이 남성은 국왕을 겨냥해 달걀을 던진 것으로 추정돼 일반 폭행 혐의로 체포됐다. 찰스 국왕은 직접 달걀 공격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가디언은 “찰스 국왕이 보안 요원들에 의해 인파들로부터 잠시 떨어져 있다가 다른 구역으로 이동해 대중들과 악수를 재개했다”고 전했다. 사건과 관련해 버킹엄궁은 현재까지 논평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앞서 찰스 국왕은 한 달 전에도 달걀 위협을 받았다. 국왕 내외는 지난달 9일 노스요크셔주 요크시 남서쪽 미들게이트바 앞에서 군주제를 반대하는 20대 남성이 던진 달걀에 맞을 뻔했다. 당시 남성은 달걀 세 개를 국왕에게 던졌지만 빗나갔다. 경찰은 이 남성을 공공질서 위반 혐의로 체포했고 보석 석방했다. 그는 영국 환경단체 멸종 저항 지지자이자 전 녹색당 요크 시원 후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찰스 국왕에게 달걀이 날아간 것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찰스 국왕은 지난달 카밀라 왕비와 노스요크셔주 요크를 방문했다가 한 남성이 던진 달걀에 맞을 뻔했다. 당시 남성은 국왕 내외를 향해 달걀 4개를 던지며 “나의 왕이 아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범인은 요크대에 재학하고 있는 기후 운동가로, 그는 공공질서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가 보석 석방됐다. 앞서 지난 1995년에도 찰스 당시 왕세자는 더블린 중심가를 산책하다 위협을 받은 바 있다.
  • 케인 막으려다…이란 골키퍼, 코출혈·뇌진탕으로 교체[포착]

    케인 막으려다…이란 골키퍼, 코출혈·뇌진탕으로 교체[포착]

    사상 첫 월드컵 16강 진출을 노린 ‘아시아 1위’ 이란이 21일(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B조 1차전에서 2-6으로 대패했다. 이날 경기에서는 이란의 골키퍼 베이란반드가 경기 중 충돌로 뇌진탕 증세를 보이다 들것에 실려 나갔다. 전반 7분, 잉글랜드의 주장 해리 케인의 날카로운 크로스를 막으려던 베이란반드는 같은 팀 수비수 마지드 호세이니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코피를 흘리며 쓰러진 베이란반드는 고통스러운지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약 6분여 동안 일어나지 못하던 베이란반드는 8분간 의료진의 조치를 받고 다시 경기를 뛰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2분 뒤 다시 쓰러졌다. 결국 전반 19분 세컨드 골키퍼 호세인 호세이니가 교체 투입됐다. 베이란반드는 강한 충돌에 코뼈 골절뿐만 아니라 뇌진탕 증세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14분의 추가시간이 주어졌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란 테헤란 도심에서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다가 의문사한 사건을 계기로 여전히 여성의 축구 경기 관람을 금지하는 등 차별적 현실이 지적되며 이란을 월드컵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져 왔다. 주축 선수인 사르다르 아즈문(레버쿠젠)이 반정부 시위를 탄압하는 정부를 비판하면서 대표팀 선발 논란을 겪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월드컵 무대에 선 이란은 첫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골키퍼 베이란반드가 부상으로 이탈하는 악재까지 덮치며 큰 점수 차의 패배를 떠안았다.“계속 싸운 선수들 자랑스러워” 이란 대표팀의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은 마지막까지 노력한 선수들을 격려했다. 케이로스 감독은 “선수들이 지금 처한 상황은 최상이 아니다. 경기 준비에 집중할 수 없었다”며 “이들은 그저 나라를 대표해 축구를 하려는 선수들일 뿐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뛰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꿈이다. 제발 이들이 경기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강조했다. 케이로스 감독은 아직 두 경기가 남았다며 16강의 희망도 놓지 않았다. 그는 “아직 우리에게 모든 것이 열려있다. 딸 수 있는 승점 6이 있다”며 “오늘 배운 것들을 토대로 집중해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고 승리를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베이란반드에 대해선 “코뼈 골절과 관련 있는지 아직 모르겠다. 의무진에 따르면 출혈을 멈추기가 어려웠다고 한다”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겠다고 했다.국가제창 거부…반정부 시위 지지 이란 대표팀 선수들은 이란 국가가 연주됐음에도 노래 부르는 것을 거부한채 침묵했다. 수비수이자 이란 대표팀 주장인 에산 하지사피는 지난 20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란의 현재 상황이 옳지 않으며 이란 국민들이 즐겁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며 “우리는 지금 카타르에 와 있지만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거나 그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힘은 모두 이란 국민에서 나온다”고 답하며 연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축구 팬들도 반정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일부 팬들은 이란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소리를 지르며 야유했고 ‘여성, 생명, 자유’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이란 정부의 강경진압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또 일부 팬들은 이란 국기의 가운데에 새겨진 국장이 오려진 국기를 들기도 했다. 현재 국기의 국장은 지난 1979년 입헌군주제인 팔라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란 혁명의 상징이어서 이를 오린 것은 이슬람 정부에 대한 강력한 저항 표시이기도 하다. 케이로스 감독은 “월드컵 규정을 준수하고 경기 정신에 부합한다면 이란에서 여성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에 대해 자유롭게 항의할 수 있다”며 선수들의 국가 제창 거부를 두둔했다. 영국 BBC에서 해설을 하고 있는 게리 리네커도 “강력하고 매우 중요한 제스처였다”며 이란 대표팀 선수들의 행위에 대해 지지 의사를 보냈다.
  • 찰스 3세에 달걀 던진 대학생 석방… 엘리자베스 서거 당시 트윗 보니

    찰스 3세에 달걀 던진 대학생 석방… 엘리자베스 서거 당시 트윗 보니

    영국 찰스 3세 국왕에게 달걀을 던져 체포된 20대 대학생이 보석으로 풀려났다. 영국 경찰은 10일(현지시간) 찰스 3세에게 달걀을 던진 23세 남성을 공공질서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가 보석으로 석방했다고 트위터에서 밝혔다. 이 남성은 전날 요크를 방문한 찰스 3세가 남서쪽 성문인 미클게이트 바 앞에서 시 관계자들과 악수하는 틈을 타 달걀을 던졌으나 맞추지는 못했다. 당시 이 남성은 “나의 왕이 아니다. 영국은 노예의 피로 건설됐다”고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미러지에 따르면 찰스 3세에게 달걀을 던진 학생은 요크대 재학생 패트릭 셀웰로, 전날 밤 10시에 풀려났다.셀웰은 미러지 인터뷰에서 처음 보석 조건은 찰스 3세의 500m 이내로 접근하지 않고 공공장소에서 달걀을 소지하지 않는 것이었는데, 식료품을 사야 하기 때문에 후자는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화를 내며 자신의 머리를 뜯고 침을 뱉었으며 소셜 미디어에서 살해 위협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 녹색당 소속 요크 시의원 후보이자 기후변화 관련 과격시위를 하는 단체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XR)의 지지자로, 군주제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미러지는 셀웰은 이전에 자신의 트위터에서 군주제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으며, 엘리자베스 2세 서거 당시 “여왕이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재판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슬플 뿐”이라는 트윗을 올렸다고 전했다.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찰스와 밀턴/우석대 명예교수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찰스와 밀턴/우석대 명예교수

    찰스 3세가 영국 왕으로 즉위했다. 같은 이름으로 400년 전 영국을 통치했던 찰스 1세와 찰스 2세를 떠올린다. 두 사람 모두 시인 존 밀턴(1608~74)과 인연이 깊다. 찰스 1세는 독재 권력을 휘두르다가 의회군에 패해 재판을 받고 1649년 1월 참수형을 당한다. 그러나 비록 폭군일지언정 사형장에서 국왕다운 품격을 잃지 않아 구경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신민이 국왕을 처형한다는 걸 상상하기 힘든 절대왕정 시대였다. 프랑스 등 유럽 군주국에서 반발 여론이 들끓었다. 이를 잠재우기 위해 공화국의 대의를 설득하는 여론전을 펼칠 필요가 있었다. 혁명정부를 대변해 군주제의 해악과 공화제의 정당성을 전 유럽을 상대로 선포하는 임무를 맡은 인물이 밀턴이다. 혁명정부의 외교부 장관직을 맡고 있던 그는 1650년 국가대표 단일 논객으로 국제무대에 섰다. 밀턴은 녹내장으로 1644년부터 왼쪽 눈 시력을 서서히 잃었고, 공화국 논객을 맡으라는 명을 받았을 때는 남은 오른쪽 눈도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의사들은 밀턴이 그 막중한 임무를 맡으면 스트레스로 두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밀턴은 자신의 소명으로 여기고 임무를 떠맡았고, 그 결과 1652년 두 눈의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다. 1649년에 시작한 공화정은 프랑스로 망명한 찰스 2세(사형당한 찰스 1세의 장남)가 복귀하면서 1660년 끝났다. 11년간의 공화정 실험은 끝났다. 세상은 뒤집혔다. 앞 못 보는 혁명가 밀턴은 은둔한 채 ‘실낙원’ 등 서사시 집필에 전념한다. 1663년 어느 날 밀턴 집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다. 사형당한 찰스 1세의 둘째 아들이며, 찰스 2세의 동생이자 왕위 계승권자인 제임스 2세였다. 부왕 처형을 정당화해 전 유럽에 필명을 떨친 공화주의자 밀턴이 얼마나 미웠을까. 그는 장애인 밀턴을 한껏 조롱했다. 하지만 왕세제 앞에서도 밀턴은 꼿꼿한 기개를 잃지 않았다. 불쾌해진 제임스 2세는 왕궁에 돌아가 밀턴을 교수형시키지 않은 건 큰 실수라고 투덜댔다. 그러나 찰스 2세는 늙고 가난한 장애인을 뭐하러 죽이느냐고 타이른다. 정치보복을 삼가는 절제와 품위다. 결과적으로 찰스 2세의 품격이 ‘영문학의 보석’을 살렸다고나 할까.
  • [2030 세대] 여왕이 없는 나라/김현집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역사·철학과

    [2030 세대] 여왕이 없는 나라/김현집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역사·철학과

    영국 1파운드 동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전이다. 작고 두툼해서 손으로 쥐어 보면 누구나 그 매력을 알 수 있다. 흔히 ‘금화’라고 불리는 그 묵직한 느낌이다. 2017년부터 매력의 1파운드는 보통의 1파운드로 바뀌었다. 영국 동전의 또 다른 재미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변하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그것도 끝이 났다. 영국은 잘 알다시피 몇 남지 않은 입헌군주국가이다. 마키아벨리는 늘 그렇듯이, 칼끝처럼 꿰뚫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변화는 언제나 또 다른 변화를 위한 홈을 남긴다.’ 무언가를 애써 고치면 그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따른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혜를 바탕으로 입헌군주제를 주장한 이들이 있다. 작가 C S 루이스는 ‘헐뜯기보단 진단하고, 찬미하기보단 분별하라’고 했다. 그는 군주제를 옹호했다. 군주제를 부정하긴 쉽다. 하지만 인간이 왕을 섬기지 못한다면 백만장자, 운동선수, 영화배우를 섬길 것으로 보았다. 영국의 보수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도 ‘섬김’의 대상을 고민했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는 평화를 위협한다. 하지만 이를 억눌러선 안 된다. 충성을 바칠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국왕이라 보았다. 좀 극단적인가? 하지만 입헌군주제를 보수주의자들만 옹호한 것은 아니었다. 스크루턴의 논리는 그보다 50년 전 좌성향 작가 조지 오웰이 먼저 꺼냈다. 오웰은 국왕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위험한 감정을 배출시킬 배기 밸브’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파시즘으로 이어질 수 있는 충동을 왕실이 해소한 것이, 영국이 히틀러나 스탈린을 면한 이유의 하나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루이스도 윗글을 1943년에 썼다. 절대군주를 열망하며 쓴 글은 아니란 것이다. 영국 총리는 아직도 일주일에 한 번씩 국왕을 찾아가 국정에 대해 보고하고 자문을 구한다. 기자도 보좌관도 없는 자리에서 총리와 국왕은 둘만의 대화를 나눈다. 운이 좋게 태어났다 해서 혜택을 누리는 건 불공정하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자를 믿고 섬겨야 할까? 우리는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사람을 가리킬 때 흔히 ‘정치적’이라고 한다. 이 말은 이제 경멸을 담은 욕이 되었다. 반대로 좋아하는 영어단어 중 하나는 ‘dignity’(품위, 격)이다. 영국 여왕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말이다. 처칠, 클린턴, 만델라도 여왕을 만났다. 그녀는 역사였다. 영국 동전엔 단아한 젊은 여성의 옆모습이 새겨져 있다. 시간이 흐르며 점점 목은 짧아지고 턱밑에 조금씩 살이 붙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머리 스타일만 달라지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균형을 잡아 주고 그 균형은 아름다운 비례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우리 세대에 더이상 영국 여왕을 만날 일은 이제 없어졌다.
  • 27일 아베 국장이 英 여왕 장례보다 더 많은 돈 든다고?

    27일 아베 국장이 英 여왕 장례보다 더 많은 돈 든다고?

    “어떻게 아베 전 총리 국장 비용이 영국 여왕 장례 비용보다 많이 들 수 있어요?” 영국 일간 데일리 미러가 27일(이하 현지시간) 치러지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국장 비용이 16억 6000엔(약 159억원)으로 추정돼 지난 19일 엄수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 비용 13억엔(약 130억원)보다 훨씬 많다고 보도해 눈길을 끈다고 BBC 방송이 전했다. 물론 일본 정부는 아직 아베 국장에 얼마나 지출될 것인지 정확히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해 치러진 2020 도쿄올림픽 개최 비용이 실제로는 곱절로 늘어 130억 달러(약 18조원)가 지출된 것에 비춰 많은 일본인들은 실제 장례 비용은 이것을 훨씬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두 나라 국장 비용의 차이가 대형 이벤트 개최에 끼어드는 중개인 기업 때문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이번 국장을 관장하는 업체는 도쿄에 본사를 둔 무라야마가 선정됐는데 단독 입찰해 1억 7600만엔 계약을 따냈다. 이 업체는 아베 전 총리가 매년 벚꽃축제를 개최했을 때 대행 업체였다. 최근 교도통신이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일본 정부가 장례에 너무 많은 돈을 지출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전체의 75% 이상이었다. 개최 비용의 절반이 삼엄한 경호 업무에 지출될 예정이며, 3분의 1정도는 해외 조문객들을 맞는 데 쓰일 예정이다. 217개 국가의 700명 정도가 공식 초청됐다. 커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앤서니 앨버니즈 호주 총리 등인데 벌써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예방하겠다며 도착하는 이들도 있다. 사흘 동안 치러지는 국장 내내 이른바 “조문 외교”가 치러진다. 그러나 아무래도 영국 여왕 국장과 저울질을 피할 수 없다. 여왕 장례에는 세계 각국의 현직 지도자들이 자리를 빛낸 반면, 아베 장례에는 주로 전직 정부 수장들이 참석하기 때문이다. 21세기에 웬 군주제이며 국장이냐는 시선도 여전하지만 여왕 장례식에는 그래도 왕실과 국민의 교감이라든가 낭만적이며 인간적인 매력들이 번뜩였는데 아베 전 총리의 공과 때문에라도 일본인들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일본의 최장수 총리인 아베의 삶은 지난 7월 9일 선거 유세 도중 총격을 받아 갑자기 중단됐다. 그는 총리로서 일본의 국장이 치러지는 두 번째 사례가 된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의 전후 복구와 경제 도약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듣는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가 1967년 사망한 뒤 국장이 엄수됐다. 당시 장례 비용은 1800만엔이었다.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7000만엔에 해당한다. 일본 경제는 전후 가장 안 좋은 상태다. 해서 가장 고통받는 저소득층 가족들을 부축하는 데 장례 비용을 쓰는 게 더욱 좋겠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막대한 장례 비용에 대한 반대 때문에 기시다와 내각 지지율은 취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물론 아베 전 총리가 일본의 우편향과 국론 분열에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겠다. 우리로선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반대하거나 못마땅해 할 이유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인데 영국 방송이 막대한 비용과 영국 왕실과의 비교에 치중하는 점도 이채롭다.
  • [김균미 칼럼] 엘리자베스 2세 장례식 단상/편집인

    [김균미 칼럼] 엘리자베스 2세 장례식 단상/편집인

    19일 세계의 중심은 영국 런던이었다.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엄수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은 유엔 총회장을 옮겨 놓은 듯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전 세계 200여국에서 국가 정상과 정부 수반, 왕족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여왕의 ‘세기의 장례식’은 이날 오전 11시(현지시간)부터 1시간 동안 BBC와 CNN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25세에 즉위해 70년 재임한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군주였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은 한 시대의 끝이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 여왕은 재위 기간 동안 15명의 영국 총리를 맞았다. 14명의 미국 대통령이 거쳐 갔다. 윈스턴 처칠 전 총리 장례식 이후 57년 만에 국장으로 거행된 장례식은 장엄함과 화려함 그 자체였다. 10일간의 장례 일정은 절정인 장례식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긴장감을 높여 가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지난 8일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서거한 직후 런던 버킹엄궁 정문에 A4 용지 크기의 흰 종이에 여왕의 서거와 장례식 일정을 알리는 액자가 내걸리는 것으로 여왕의 장례 일정은 시작됐다. 에든버러를 거쳐 거처인 런던 버킹엄궁으로 돌아오는 여왕의 장례 행렬을 수만, 수십만명이 따랐다. 웨스트민스터홀에서 나흘간 진행된 일반인 직접 참배에 30만여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이들은 평생 유일 군주였던 여왕의 관 앞에서 3~5초의 짧은 추모를 위해 길게는 18시간 줄 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여왕의 국장을 지켜보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 첫째, 사후에도 구심점으로서 영국인을 하나로 묶어 내는 여왕의 변함 없는 힘이다. 영국은 현재 경제적·정치적으로 상황이 어렵다. 고물가와 저성장, 공공부문 파업으로 서민층 삶은 고단함의 연속이다. 브렉시트와 코로나19,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겹치며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가 10%까지 치솟았다. 영국 중앙은행은 4분기부터 경기침체에 접어든다고 전망했다. 정치적으로도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파티게이트와 거짓 해명 등으로 실각한 뒤 여왕 서거 이틀 전 40대 리즈 트러스 새 총리가 취임해 내각을 이끌지만 아직은 불안정하다. 여기에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가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으로 피소되고, 찰스 3세 차남 해리 왕자가 다른 왕실 구성원들과의 갈등으로 왕실을 떠나는 등 다이애나비 사고사 이후에도 스캔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천문학적인 왕실 유지 비용도 군주제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을 30년 만에 50%대로 끌어내렸다. 하지만 여왕은 생전에는 물론 사후에까지 이 같은 복합 위기를 뚫고 갈등을 중재하고 영국민을 하나로 모았다. 장례식 비용으로 3조원 넘는 세금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돼 비판 목소리도 있지만, 대다수 영국민은 당장은 여왕과의 이별을 슬퍼하고 있다. 둘째는 영국 문화, 소프트파워의 강력한 힘이다. 왕의 국장은 1952년 조지 6세 이후 70년 만이어서 그 자체로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됐다. 10일간의 장례 일정은 마지막 안장 순간을 빼고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영국 왕실의 역사와 전통을 직접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로 영국 문화와 영국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여왕이 국민에게 준 마지막 선물처럼 보인다. 통합과 소프트파워의 저력을 보여 준 여왕의 장례식을 보면서 줄곧 우리는 어떤지 돌아보게 된다.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혼돈의 연속이다. 여야가 극한 대립으로 치달아도,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져도 우리에게는 이를 중재할 어른도, 시스템도 보이지 않는다.
  • 떠날 때도 영국 그 자체였다

    떠날 때도 영국 그 자체였다

    영국 최장 재위(70년) 군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이 1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엄수됐다. 웨스트민스터사원은 여왕이 즉위 1년여 만인 1953년 대관식을 치른 장소이자 1947년 남편 필립공과 결혼식을 올린 역사 깊은 곳이다.이날 오전 11시 55분 웨스트민스터사원에는 ‘마지막 임무’라는 뜻의 ‘라스트 포스트’ 나팔 연주가 울려 퍼졌다. 묵직한 연주가 끝나자 그들의 퀸을 보내는 ‘2분간의 묵념’이 이어졌다. 군인도, 경찰관도, 행인도 잠시 서서 눈을 감았다. 장례식 당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돼 영국 전역의 기업·영업장이 문을 닫았고, 런던 증시도 휴장했다. 여왕을 배웅하기 위해 영국이 잠시 멈춰 섰다. 윈스턴 처칠 전 총리 서거 이후 57년 만에 국장으로 거행된 이날 ‘세기의 장례식’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세계 주요국 정상과 왕족 500명을 포함한 2000명이 참석했다. 런던에는 수백만명이 장례 행렬을 직접 보기 위해 운집했다.영국 메트로폴리탄 경찰은 이날 “단일 이벤트로는 2012 런던올림픽과 지난 6월 플래티넘 주빌리(여왕 즉위 70주년 기념행사)보다 큰 보안 작전”이라고 밝혔고, 일간지 더 타임스는 “사상 최대 규모의 정상회담”이라고 전했다. 나흘간 웨스트민스터홀에서 30만명의 일반인 참배를 마친 여왕의 관은 약 5분 거리인 웨스트민스터사원으로 옮겨지면서 영면을 향한 마지막 여정에 최종적으로 올랐다. 장례식에 앞서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는 여왕의 96년 생애를 기리며 1분에 한 차례씩 96차례 종소리가 울렸다. 장례식을 집전한 데이비드 호일 웨스트민스터사원 사제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결혼하고 대관식을 올린 이곳에 우리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의 긴 생애와 헌신을 추모하며, 그를 주님의 자비로운 품속으로 보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였다”고 말했다. 이날 장례식에서는 캔터베리 대주교가 설교하고,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성경을 봉독했다.9월 중순의 새벽 날씨가 비교적 쌀쌀했지만, 조문객 상당수는 전날 밤부터 런던에 도착했다. 해가 뜨기도 전부터 운구 행렬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을 차지하기 위해 먼저 자리를 잡기도 했다. 런던에서 약 100㎞ 떨어진 베리세인트에드먼드에서 하루 전에 런던에 도착했다는 한 형제는 BBC방송에 “자리 잡기가 (런던 최대 축구 경기장인) 웸블리 스타디움의 VIP석을 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례식은 왕실 백파이프 연주자가 여왕의 영면을 기원하는 자장가를 연주하는 것을 끝으로 정오를 조금 넘겨 막을 내렸다. 이후 여왕의 관은 장례 행렬과 함께 웨스트민스터사원을 떠나 웰링턴아치까지 런던 중심을 약 2㎞ 행진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74세 큰아들 찰스 3세 국왕과 왕실 인사들이 비통한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이후 여왕의 관은 윈저성의 세인트조지교회 지하 납골당에 안장됐다. 평생의 반려자인 남편 필립공의 옆자리였다. 1952년 만 25세의 나이로 국왕에 즉위한 여왕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불렸던 영국 식민지들의 독립, 전후의 궁핍, 냉전과 공산주의 몰락, 유럽연합(EU)의 창설과 영국의 탈퇴 등 역사의 격변을 두루 겪었다. 군주제의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에서 여왕은 평생 헌신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면서 신중한 언행과 검소한 생활 태도로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11일간의 장례 일정 동안 영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추모 열기가 이어졌을 정도다. 왕위를 계승한 찰스 3세는 내년 대관식을 열 예정이다. 여왕 서거를 계기로 군주제 폐지 논의, 영국의 식민지였던 영연방 일각의 탈퇴 주장이 잇따를 조짐을 보여 찰스 3세 국왕이 만만찮은 도전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찰스3세, 북아일랜드 악연 털고 UK 지킬까

    찰스3세, 북아일랜드 악연 털고 UK 지킬까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계승한 새 국왕 찰스 3세(74)가 잉글랜드, 웨일스와 함께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로 구성된 ‘연합왕국’(United Kingdom·UK)을 온전히 사수하기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분리·독립하려는 기류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1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은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가 이날 북아일랜드 벨파스트를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여왕을 위한 추도예배가 진행된 이날 새 국왕이 비행기를 타고 찾은 상대는 북아일랜드 최대 정당인 신페인당의 유력 지도자인 미셸 오닐 자치정부 부수반과 앨릭스 마스키 북아일랜드의회 의장이다. 둘 다 영국과 싸운 무장단체인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후예인 신페인당 고위 지도자이지만, 찰스 왕과는 역사적으로 얽힌 ‘악연’이 있다. 찰스 3세가 아버지처럼 따랐던 증조부 루이스 마운트배튼경은 1979년 IRA의 폭탄 테러 공격으로 피살됐다. 찰스 왕은 1972년 북아일랜드 민간인에게 발포해 13명이 숨진 ‘피의 일요일 사건’을 초래했던 영국군 공수부대의 명예연대장을 역임해 원성을 샀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역시 2012년 이곳을 찾아 전 IRA 사령관 출신의 북아일랜드 부총리인 마틴 맥기니스와 역사적인 ‘화해의 악수’를 나눈 바 있다. 찰스 3세는 이 자리에서 “어머니가 이곳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왔다”며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어머니의 상중에도 이곳을 찾은 것은 악화하는 북아일랜드의 민심을 달래고 자신의 비호감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첫 부인이었던 다이애나 비의 비극적 사망 이후 대중에게 부정적 인상이 강한 그가 모친의 국장을 이끌면서 이미지 회복과 재임 초 ‘허니문’ 효과를 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고브와 더타임스가 이날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찰스 3세의 리더십에 대해 응답자의 73%가 ‘잘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가 훌륭한 왕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63%로, 지난 5월 조사 때의 32%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과거 7차례 조사에서 찰스 3세의 긍정 평가가 40%를 넘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커밀라 왕비에 대한 긍정 평가도 53%에 달했다. 하지만 찰스 3세가 연합왕국을 통합하는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45%만 긍정적으로 답했다. 이번 조사에서 군주제 지지 여론이 64%로 여전히 우세했지만 10년 전(73%)과 비교하면 낮았다.엘리자베스 2세의 시신은 이날 런던 버킹엄궁에 도착했다. 여왕의 시신은 14일부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된 후 장례식 당일인 19일 오전 6시 30분까지 공개돼 국민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눈다.
  • [책 속 한줄] 삶의 평판과 죽음/하종훈 기자

    [책 속 한줄] 삶의 평판과 죽음/하종훈 기자

    다른 사람의 삶을 판단할 때 나는 항상 그 마지막이 어땠는지를 고려한다. 그리고 나 자신의 삶에 대한 주요한 관심 중 하나는 그 마지막이 잘 이루어지는 것, 즉 고요하고 담담하게 죽음을 맞는 것이다.(159쪽)  프랑스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1533~1592)의 ‘에세’(민음사) 1권에 나온 이 구절에선 죽음에 대한 성찰이 엿보인다. 권위와 명성을 얻고 승승장구했던 인물도 생애 전체에 대한 평판은 결국 죽을 때의 평가에 좌우된다.  최근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세계적으로 왕정이 설 자리를 잃어 가며 시대착오적인 군주제의 위장 간판이라는 바판을 받기도 했지만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전통을 고수하며 영국 국민 통합의 구심점 역할을 해 왔다. 정치 제도는 다르지만, 분열과 갈등이 심화된 현재의 한국에는 서거와 함께 대다수 국민의 진심 어린 추모를 이끌어낼 지도자가 얼마나 있을까.
  • “여왕의 관 보자” 텐트서 밤샘 대기… 英 2주간 배웅 끝나면 가시밭길

    “여왕의 관 보자” 텐트서 밤샘 대기… 英 2주간 배웅 끝나면 가시밭길

    지난 8일(현지시간)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시신이 12일 대중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여왕과의 작별에 대한 애도와 군주제에 대한 날 선 비판이 엇갈리는 가운데 국가적인 추모가 끝난 뒤 닥쳐올 경제 위기 등 숱한 난관에 대한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영국 BBC 등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시신이 이날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성자일스대성당에서 대중에 공개되며 추모 인파가 몰렸다. 홀리우드궁에서 ‘로열마일’로 불리는 길을 따라 성자일스대성당으로 향하는 장례 행렬에는 찰스 3세 국왕과 부인 커밀라 왕비, 앤 공주, 앤드루 왕자 등 왕실 인사들이 앞장섰다.성자일스대성당에는 수만명의 시민들이 몰려 여왕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여왕이 잠들어 있는 참나무 관은 이날 오후부터 24시간 동안 닫힌 상태로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시민들은 손에 유니언잭(영국 국기)을 들고 더러는 눈물을 훔치며 수시간 동안 줄을 서 기다렸다. 수천명이 이날 밤새 대성당 앞에 줄을 서면서 13일에는 조문객들이 길게는 12시간까지 기다려야 할 것으로 영국 언론들은 내다봤다. 여왕의 시신은 13일 오후 공군기 편으로 런던 버킹엄궁으로 옮겨진 뒤 14일부터 나흘간 웨스트민스터홀에서 대중에 공개된다.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웨스트민스터홀 앞에는 이미 이날부터 조문객들이 줄을 서기 시작해 많게는 100만명의 추모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다. 트래펄가광장에서 버킹엄궁으로 이어지는 ‘더몰’ 거리 곳곳에서는 일부 추모객들이 텐트를 세워 놓고 밤샘 대기하기도 했다. 추모 물결의 반대편에서는 군주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에든버러에서는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이 있는 앤드루 왕자를 향해 고함을 지른 22세 남성이 경찰에 의해 끌려나간 뒤 ‘치안 위반’을 이유로 체포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런던 의회 광장에서는 한 변호사가 백지를 들고 있다가 경찰에 제지당했다. 이 변호사는 트위터에서 “경찰은 내가 백지 위에 ‘(찰스 3세는) 나의 왕이 아니다’라고 적으면 공공질서법에 따라 나를 체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야당인 노동당과 시민단체들이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행사를 비판하자 총리실은 “국가적인 애도 기간이지만 (시민들이) 항의할 수 있는 기본권은 남아 있다”고 해명했다. 여왕의 서거를 계기로 영국은 ‘연합왕국’과 영연방의 분열 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찰스 3세는 이날 커밀라 왕비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의회를 찾아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 새 직무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찰스 3세 부부는 이어 북아일랜드로 향할 예정이다.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는 최근 독립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에너지 대란 등 경제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2주간의 애도 기간이 국정 공백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영국은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과 파운드화 가치 폭락 등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난에 직면해 있다. 이날 영국 국립통계청은 영국의 7월 경제성장률이 0.2%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위기를 수습해야 할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는 취임 첫 주부터 사실상 상주(喪主) 역할을 도맡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찰스 3세가 북아일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를 순방하는 일정에 트러스 총리가 동행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야당으로부터 “현안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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