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군주제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김지우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최재경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급발진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노인 범죄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22
  • EBS 12부작 ‘조지형의 미국사‘ 기획특강,역대 미국대통령 리더십 분석

    EBS는 12부작 연속 기획 특강 ‘조지형의 미국사를 통해 본 대통령의 리더십’을 3일부터 낸다.오는 20일까지 매주 월~목요일 오후10시에 방송된다.강의에 나설 조지형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는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미국법제사를 전공했다. 조교수는 워싱턴,링컨,루즈벨트,레이건,클린턴 등 역대 미국 대통령과 그들의 리더십을 시대상황과 연관지어 분석한다.성공한 대통령의 리더십,개인적인 특성과 리더십의 상관관계,미국 정치사에 전통으로 남은 리더십,대통령과 국가통합 등 크게 4가지 주제로 나누었다. 1강 ‘대통령직의 탄생’에서는 본격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의 사례를 살피기에 앞서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미국민에게 갖는 의미를 조명한다. 조교수는 미국인들에게 대통령선거전이 어떻게 축제로 발돋움할 수 있었는지 역사를 더듬어 설명한다.군주제를 거부하고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제를 창안한 만큼 대통령직이란 미국 혁명의 산물이라는 것이다.독립선언서와 미국헌법을 통해 대통령제가 어떻게 생겨났으며,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과 대통령직 수행이 정치·역사·문화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본다. 2강 ‘미국 건국의 아버지’(4일)에서는 후대의 귀감이 되고 있는 조지 워싱턴,3강 ‘자유의 제국’(5일)에서는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4강 ‘보통사람의 시대’(6일)에서는 앤드류 잭슨의 낭만적 입신출세기를 곁들인 리더십을 소개한다. 특강은 10일 ‘에이브러햄 링컨,위대한 해방자’,11일 ‘시어도어 루즈벨트와 혁신주의 대통령’,12일 ‘우드로 윌슨과 세계평화의 이상’,13일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뉴딜정책’,17일 ‘존 F 케네디와 뉴 프런티어’,18일 ‘리처드 닉슨과 한계의 시대’,19일 ‘로널드 레이건과 냉전체제의 종식’,20일 ‘21세기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과 빌 클린턴’으로 이어진다. 권의정 PD는 “노무현 당선자의 대통령 취임에 맞춰 대통령의 리더십을 생각해보고자 했다.”면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 미국 대통령 11명을 미국사에 접목시켜 올바른 리더십을 조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
  • 책/ 살육과 문명-서구는 전쟁에 이길 수밖에 없었다?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9가지 전투를 문화사적으로 그린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주장을 하는 지은이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하는 궁금증부터 든다. ‘서구는 왜 승리했는가’란 제목으로 프롤로그를 시작한 것에서 보듯 서구는 군사적으로 비서구지역을 제패했다는,비(非)서구인들에겐 매우 오만해 보일 수 있는 전제 하에서 저자는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저술의도에 대해 ‘서구인들은 어떻게 자신의 문명을 이용하여 다른 문명권 사람들을 죽이는 데 그토록 능숙했을까?’‘어떻게 자기들은 죽지 않으면서 그토록 난폭한 전쟁을 벌일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여기에 덧붙여 ‘과거와 현재,미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군사활동에 관한 이야기는 결국 용맹스러운 서구의 무력에 대한 탐구나 마찬가지다.’라는 서구의 ‘절대 우월주의’로 비칠 수 있는 표현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서구적 전쟁방식’‘전투의 본질’등을 쓴 전쟁사가.지금까지 그리스·로마시대의 전쟁을 주제로 책을 많이 썼다. 그러나 이번 책에서 보듯 그는 세계사의 승리자는 서구이며,그것은 필연적 귀결에 의한 것이란 서구 우월적 시각을 지닌 대표적 지식인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에서 9가지 전투를 통해 서구 군대 승리의 필연성을 주장한다.먼저 서기전 480년 페르시아와 그리스가 맞붙은 살라미스해전서 그리스가 승리한 요인에 대해 자유를 존중하는 문화의 승리로 든다.즉 그리스인들은 전쟁의 향방이 주로 절대적 가치의 문제에 달려 있다고 믿었으며,개개인의 자유에 가치를 둔 그리스 군대가 병력·경제력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페르시아군대를 물리쳤다는 것이다. 서기전 216년 한니발의 카르타고 군이 로마군을 대파했으나 1년 뒤엔 로마군이 같은 장소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에 대해서도 비슷한 잣대를 댄다. 즉 법치체제를 갖춘 로마군은 1년만에 완전히 새로운 군단을 만들어 나선 반면 전제군주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카르타고는 1차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병력을 충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한니발은 수만명의 강인한 군사를 거느렸지만 로마의 공화주의와 시민군국주의라는 얼굴 없는 제도와 마주하게 됐으며,시민이야말로 가장 치명적 학살자였다고 덧붙인다. 이러한 분석은 1942년 벌어진 일본과 미국의 미드웨이 해전에서도 이어진다.당시 미군은 개인주의자,일본군은 사고력 없는 자동기계였다며 미국의 승리는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제도 전체에 뿌리를 두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러나 미국의 베트남전 패배 원인에 대해선 다소 모순된 논리를 들이댄다.즉 자기비판에 충실한 전통에 편승해 미국 언론은 전쟁의 부도덕성을 부추기고 베트남을 동정하는 보도를 집중 내보내면서도 북베트남의 만행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함으로써 미국 전력을 붕괴시켰다는 점,베트남 전투는 민간인과 구분이 안되는 적,정글,게릴라작전 등으로 전통적 타격전이 불가능했다는 점을 주장한다. 사회·문화적 체제,가치의 문제로 전투의 향방이 갈렸다는 앞서의 주장에서 많이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3만 2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
  • 단군주제 남북 공동학술대회 연다, 개천절날 평양서 전문가들 참여

    단군을 주제로 한 남북한 공동학술회의가 개천절인 새달 3일 오후4∼7시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개최된다고 남한측 단군학회(회장 윤내현)가 23일 밝혔다.이번 ‘단군 및 고조선에 관한 력사학자들의 공동 학술토론회’는 북한사회과학원 조선력사학회(회장 허종호)와 단국학회가 공동주관한다.대회 공동의장은 북한측 허종호 회장과 남한측 김정배 단군학회 명예회장(전 고려대 총장)이 맡는다. 학술대회는 북한측 정창규 력사연구소 소장과 남한측 윤내현 단군학회장의 사회로 진행되며 북한측에서 손영종(사회과학원) 남일룡(김일성종합대학) 한선홍(김형직사범대) 서국태(사회과학원) 김유철(김일성종합대학) 박사 등 전문가들이 발표자로 나선다. 남한측에서는 이형구(선문대) 최광식(고려대) 정영훈(정문연) 윤내현(단국대) 김상일(한신대) 교수가 주제별 발표를 할 예정이다. 남북한 양측은 학회가 끝난 뒤 공동보도문을 발표하며 학회 발표내용은 책으로 간행하기로 했다.주제발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단군 및 고조선 관계 비사들에 대한 리해(손영종)▲평양지방의 고대 성곽(남일룡)▲고조선의 건국과 그의 사회적 성격에 대하여(한선홍)▲최근에 평양지방에서 발굴된 단군조선 초기의 유적 유물(서국태)▲고조선의 중심지와 령역(김유철)▲강화도의 단군사적과 단군 관계 사료(이형구)▲남북한 ‘단군’인식편차의 극복 방안(최광식)▲단군민족주의의 회고와 과제(정영훈)▲단군조선 도읍의 위치 문제(윤내현)▲단군신화에 나타난 조화의 논리(김상일) 연합
  • 귀국 아프간 前국왕 “왕위복귀 관심없다”

    [카불 AFP AP 연합] 29년간의 이탈리아 망명생활을 접고지난 18일 귀국한 모하메드 자히르 샤 아프가니스탄 전 국왕이 21일 여생을 아프간에서 보내겠지만 왕위 복귀에는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샤 전 국왕은 관영 바크타 통신을통해 발표한 성명서에서 “국민 사이에 있다는 것이 기쁨을 준다.”면서 “군주제를 도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돕고 국민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돌아온 것”이라고밝혔다.
  • 두 학자의 日역사왜곡 차별화된 대응

    ‘한국의 역사교과서부터 개정해야 일본 교과서의 역사왜곡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일본 군국주의 청산과 올바른 역사인식의 걸림돌인 천황 및 천황제에 주목해야 한다.’ 최근 일본 교과서의 역사왜곡 문제가 또다시 불거진 가운데 두 역사학자가 지금까지의 대응과는 차별화된 방안을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13일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에서 역사문제연구소 주관·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화해와 반성을 위한 동아시아 역사인식’ 학술심포지엄에서 김성보 충북대 교수는 일본 교과서의 역사왜곡 문제와 관련, 우리나라 역사교과서의 문제점을 먼저 지적했다. 김 교수는 “역사왜곡 문제는 일본에서 채택률이 극히 낮은 일부 교과서의 문제”라며 “이는 한·일 양국간 역사의식의 상호이해가 전제돼야 풀릴 수 있다.”고 전제했다. 그는 “역사왜곡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사례를 찾아내 시정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역사의식상의 상호이해가 이루어지기 어렵다.그보다는 두 나라 역사교과서를 비교하여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장단점을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민주주의의 보편적 시각에서 양국 역사교과서가 다시 쓰여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는 이를 위해 우리 역사교과서가 안고 있는 역사인식의 협소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도쿄서적·오사카서적·교육출판·일본서적등에서 출간된,비교적 채택률이 높은 4종의 교과서들은 국제적 맥락을 중시하는 서술체계를 갖추고 내셔널리즘을 자제하며 민주주의·평화·인권 등 보편적인 가치를 중시하고 있는 반면,우리 교과서는 주변국,특히 일본을 도외시한 일국사(一國史)적으로 한국사를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대표적 사례로 한국전쟁과 한·일국교정상화의 경우 일본은 전쟁과 협정의 국제적 배경과 파장,자국 경제와의 연관성 등에 주목한 반면,우리 교과서는 단순 사실 기술에 그치고 있는 점 등을 실례로 든다.김 교수는 “우리가일국사적 시각에서 벗어나 일본을 바라볼 때 일본의 쇼비니스트들도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게 될 것”이라며 “비판도 중요하지만 역사인식의 상호이해를 위한 노력을 이어갈 때 교과서 왜곡 문제도 자연스럽게 풀려나갈 것”이라고강조했다. 한편 하종문 한신대 교수는 교과서 왜곡 문제와 관련, 일본의 천황 및 천황제를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하 교수는 일본의 전후 반세기 역사를 돌이켜볼 때군국주의 청산과 전후 보상의 실현,그리고 올바른 역사인식의 확립이 유야무야되고 뒤틀리게 된 데는 천황제 온존이 큰 역할을 했다고 강조한다. 그는 “일본은 입헌군주제,즉 천황이 정부나 군의 지도자 결정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워 천황을 전쟁과 일제의 만행으로부터 철저히 보호해왔다.그러면서 1936년 군 반란 진압,1945년 종전에 대한 천황의 결단은 ‘성단’으로 미화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역사왜곡 뒤에는 ‘천황의 정치 이용 배제’라는 논리에 용해된 근대 이후 일본의 근본적 모순이 있다는 점에 천착해야 한다.”면서 “아시아의 진정한 ‘역사화해’를 위해서도 천황제와의 정면대결을 더 이상 회피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 아미티지 美국무副장관 “남북대화 환영… 좋은소식 기대”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27일 한국 특파원단과 기자회견을 갖고 김정일 정권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달리 정권 교체의 대상이 아니며 대화로 문제를 풀 것이라고 강조했다. ●핵태세검토(NPR) 보고서에는 북한에 대한 핵무기 사용가능성이 언급됐다.클린턴 행정부 당시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 만든 보고서를 보고 사람들이 깜짝 놀랐는데 더놀라는 것 같다.그러나 분쟁지역에서 어떠한 무기들을 사용할 수 있으며 사려깊은 군사계획에는 모든 대안들이 고려돼야 한다. ●미사일을 수출하는 북한의 선적을 차단해야 한다는 입장(아미티지 보고서)은 그대로인가.그러한 선적은 나포(intercept) 한 뒤 귀항시키거나 장비들을 수장시키고 선적을격침시킨다(destruction)는 방안들은 모두 미국이 선택할수 있는 대안들이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핵합의 이행을 보증할 수 없다고밝힌 배경은.북한이 핵합의를 지키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다.충분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북한이 합의사항을 이행한다고 말하기가 껄끄럽다는뜻이다. ●한국의 대북특사 파견에 대한 의견은.북한이 대화에 나서기로 결정해 기쁘다.예단할 수는 없으나 좋은 결과와 진전된 논의가 있기를 바란다.한국과는 긴밀한 협의관계를유지하고 있다.우리가 특사파견을 몰랐다면 그 자체가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 ●김정일 정권도 교체 대상인가.미국은 북한의 정권 교체를 꾸미거나 위협하지 않는다.북한이 마르크스주의와는 상충되는 군주제 형태를 띠고 있으나 김정일은 북한의 지도자다.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도 북한의 정권교체를 요구한적이 없다. ●북·미 대화에 대한 중국의 역할은.중국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나 수출 문제로 동북아 지역에 관심이 쏠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mip@
  • 바레인 입헌군주제 선포

    [마나마(바레인) 외신종합] 세습군주 일가가 전권을 행사해온 중동의 소국 바레인이 14일 입헌군주제를 선포하고오는 10월 총선을 치르기로 했다. 대부분 세습군주나 이슬람군주(술탄) 통치체제인 걸프협력회의(GCC) 소속 국가가 정부 감시 기능을 지닌 의회를두기로 한 것은 바레인이 처음이다. 바레인은 특히 여성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동시에 부여했다. 새 국왕이 된 셰이크 하마드 빈 이사 알 할리파 왕세자는 지난해 통과한 수정헌법에 동의하고 “총선에 앞서 지방선거를 실시,헌법재판소와 국가재정 감시기구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회는 양원제이며 수정헌법에 따라 행정기관 감시 권한은의회에 주어지지만 최종결정권은 국왕이 행사하게 된다. 현재 걸프 연안국 중 의회를 둔 나라는 쿠웨이트가 유일하다.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오만,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모두 세습 왕가 통치체제로 임명직 협의체가 의회 역할을 대행하고 있다.
  • 각국 ‘탈레반 이후’ 계산 분주

    탈레반 붕괴 이후를 놓고 주변국들과 아프간 내 종족들의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파키스탄은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미국 지지로 돌아섰지만 탈레반 집권때부터 돈독한 관계를 유지,맹방이나다름없다.친(親)파키스탄이며 파슈툰족 출신의 온건 탈레반 세력을 중심으로 차기 정권을 세워 아프간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기를 원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이럴 경우 카슈미르 문제에 있어서 인도를 효과적으로 견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소수 종족들로 구성된 북부동맹의 정권 구성 참여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파키스탄의 이런 입장은 북부동맹과 오랜 관계를 유지해온 러시아,이란,인도 등으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다.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온건파라도 탈레반은 안 된다”라며 탈레반 참여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이란,인도는 ‘반(反)탈레반 친(親)북부동맹’을 표방,아프간 공습 이후 러시아와의 관계가 어느 때보다도 훈훈하다.그러나 북부동맹 중에서도 지지 종족이 서로 달라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인도로서는 탈레반 이후 카불에 또다시 친 파키스탄 정권이 들어설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가 된다.탈레반 집권으로세력균형이 파키스탄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던 쓰라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더구나 전략 요충지인 카슈미르 지역의테러행위에 온건파 탈레반도 개입했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만큼 차기 정권에서 탈레반은 반드시 배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슬람 시아파가 다수인 이란은 수니파인 탈레반의 정권참여는 결사반대다.동시에 1979년 왕정을 뒤엎었던 이란의지배세력은 이웃의 군주제 부활 움직임도 매우 못마땅하다. 따라서 북부동맹이 모하마드 자히르 샤 전 아프간 국왕과접촉,차기정부 구성을 논의하는 것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박상숙기자 alex@
  • 불가리아 前국왕 총선 승리

    시메온 2세(64) 전 불가리아 국왕이 17일 실시된 총선에서 ‘민족운동 시메온2’당을 이끌고 승리,1946년 공산정권수립 직후 망명길에 오른지 55년만에 기적같은 권토중래를이루었다. 18일 불가리아 중앙선거위원회는 개표가 완료된 가운데 민족운동당이 총 240석 가운데 절대과반수에서 1석 부족한 120석을 얻었다고 밝혔다.이반 코스토프 총리가 이끄는 집권당인 중도우파 민주세력동맹은 51석,사회당은 48석,터키계정당 자유권리당은 21석을 얻었다. 시메온 2세는 이로써 왕정 붕괴로 왕위에서 물러났다가 재집권에 성공한 첫번째 동유럽의 군주가 됐다.1943년 왕위에 오른 그는 1946년 공산정권 하에서 국민투표로 군주제가폐지되면서 망명길에 올랐다.이후 그는 망명생활 대부분을스페인에서 보내면서 성공한 기업가의 이미지를 쌓았다. 시메온 2세는 망명생활 중 본국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왔다.불가리아 신문을 구독하고 불가리아 출신 이주자나 망명객들과 관계를 유지해왔다.그가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불가리아 방송이 그의 인터뷰를 방송하면서부터다. 그의 이번 승리에는 동구에 부는 왕정복귀 바람 외에 불가리아의 현 정치상황도 기여했다.불가리아 정치인 대부분이부패와 사치로 악명이 높은 반면 그는 서유럽에서 교육받은,깨끗하고 인자한 군주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또 성공한 기업가 이미지가 실업률 18%에 인구의 70%가 가난으로 고생하는 불가리아에 개혁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됐다고 UPI통신은 분석했다. 이번 총선에 시메온 2세는 후보로 출마하지 않았다.그러나 불가리아 헌법에 따라 그는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총리가 될 수 있다.시메온 2세는 18일 연정구성을 제의했고 페타르 스토야노프 대통령도 정국안정을 위해 연정을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앞으로 구성될 차기 정부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아직 정해지지 않았다.전문가들은 그가 총리가 되기보다는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전경하기자 lark3@. * 동구 옛 군주들 권토중래 꿈꾼다. 시메온 2세 전 불가리아 국왕의 총선 승리는 권토중래를꿈꾸는 몇몇 동유럽 군주들의 마음을 설레게하고 있다.이들은 비록 왕정붕괴로 쫓겨났지만 최근 동유럽에 부는 왕정복귀 바람을 타고 세력을 넓히고 있다. ◇유고의 알렉산더 카라조르제비치 왕세자=1941년 영국으로 망명한 아버지인 페라트 2세가 런던에서 낳은 왕세자다.지난해 10월 영구귀국했다.과거 유고 민주화 시위 당시 공산정부와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의 퇴장을 주장,개혁주의자와대학생의 지지를 얻었다.그의 영구귀국도 밀로셰비치의 잔존세력과 맞서기 위한 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 대통령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알바니아의 레카 1세=알바니아 전 국왕 조그 1세의 외아들.1942년 공산혁명으로 그리스로 쫓겨간 뒤 프랑스와 영국을 떠돌다 1979년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살고 있다.1997년 망명생활 반세기만에 돌아왔으나 그를 지지하는 왕정파와 경찰간 총격전이 벌어져 다시 떠났다.이 시위를 조직한혐의로 궐석재판에서 3년형을 선고받았다. ◇루마니아의 미카엘 전 국왕=1927년부터 1930년까지와 1940년부터 1947년까지 두차례 집권한 바 있다.1947년 공산정권 수립 당시 영국으로망명했다.현재 스위스에 머물고 있고 이달 초 이온 일리에스쿠 대통령의 거듭된 요청으로 옛왕궁에서 열리는 미술전시회에 참석차 잠시 귀국했다. ◇몬테네그로의 니콜라스 페트로비치=몬테네그로를 1차대전 종전까지 3세기 동안 지배한 왕조의 후계자로 1944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파리에서 건축가로 활동중이며 복귀를 추진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몬테네그로의 독립운동을 지지하고 있다. 전경하기자
  • ‘네팔 왕가 몰살’ 음모설 증폭

    지난 1일 밤 발생한 네팔 국왕 일가 집단학살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폭력시위가 격화하면서 5일 이틀째 통금령이 내려진 가운데 왕실내부 쿠데타,외세 개입 등 온갖 음모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군주제에 반대하는 네팔내좌익반군및 정부 관료 연루설과 힌두교 왕정을 반대하는 인도 개입설 등 각종 음모론 가운데 가장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것은 새 국왕에 취임한 갸넨드라 부자(父子)에 의한 왕실 쿠데다설. 왕위계승 순위에서 밀려있던 갸넨드라가 국민적 신망이 높은 이튼칼리지 출신 엘리트인 조카 디펜드라 왕세자를 ‘미치광이’패륜아로 몰면서 권력을 찬탈했다는 이야기다.세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현대판 추리다. 갸넨드라는 디펜드라 왕세자가 사망한 뒤 4일 왕위에 올랐지만 대관식장은 ‘썰렁함’그 자체였다. 당초 왕실 고위 관리들은 디펜드라 왕자가 가족들의 결혼반대에 격분,만취상태에서 부왕 등 왕실 일가에 총을 겨눠몰살시키고 자신도 자살했다고 밝혔다.그러나 디펜드라는사건 몇 시간 전 정부 관리들과 담소하며 스포츠경기상황을 점검,‘멀쩡’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사건 당일 왕실 만찬에 갸넨드라 신임 국왕과 아들인파라스 샤 왕자만 불참한 것도 의혹이다.만취 상태인 디펜드라가 어떻게 정확히 목표물을 명중시킬수 있었는지,아무제지도 받지 않고 디펜드라 왕자 혼자 10여명을 죽일 수 있었는지,왜 왕가 직계 가족만 죽고 왕실 다른 직원들은 안죽었는지 등도 수수께끼다.병원에 실려간 디펜드라의 총상이 등뒤에 있었으며 이는 디펜드라 역시 살해 대상이었다는추정이 돌고 있다. 네팔 언론들은 갸넨드라의 아들 파라스 샤 왕자도 공모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파라스는 지난해 가을 교통사고로 네팔의 인기 대중가수를 죽였다는 의혹과 함께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있는 인물로 부자가 함께 권력찬탈을 꾀했다는 추측이다. 디펜드라의 신붓감 데브야니 라나가 현재 모습을 감춘 것도 신상의 위협 때문이라는 시각도 적지않다.비극의 단초를제공한 여인으로 당초 알려졌으나 사실은 음모속에 죽어간연인의 비보를 숨어서 들어야만 했던 비극의 주인공 ‘오필리아’라는 것이다. 갸넨드라 신임 국왕은 4일 TV 성명에서 “케샤브 브라사드우프댜야 법원장이 지휘하는 조사위원회가 참극이 빚어지게 된 배경을 조사할 것”이라며 사흘안에 사건 진상 규명을 약속했지만 네팔 국민들을 납득시킬지는 의문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네팔, 국왕 장례식장 수만명 오열행렬

    네팔 나라얀히티 왕궁에서 지난 1일밤 디펜드라(30) 왕세자가 비렌드라 국왕(55)등 왕실 일가족을 살해하고 자살을기도,뇌사상태에 빠지는 참극이 발생했다.정확한 진상은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혼사 문제로 불만을 품은 디펜드라 왕세자가 만취상태에서 총기를 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고에 따른 사망자는 국왕과 아이스와랴(51)왕비,니라잔(22)왕자,쉬루티(24)공주 등 8명이며 디펜드라 왕세자를비롯한 4명은 군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네팔 정부가공식 발표했다. ■사건 개요 사건은 1일 밤 10시40분(현지시간) 나라얀히티왕궁에서 열린 왕실 정례 만찬석상에서 발생했다. 네팔 일간 네팔리안타임스는 만취한 디펜드라 왕세자가 왕비의 꾸중을 듣고 격분,자동소총을 난사한 뒤 자살을 기도했다고보도했다. 현지언론들은 독실한 힌두교 신자인 왕비가 “디펜드라 왕세자가 35세 이전까지 결혼 또는 아이를 갖는다면 국왕이비운에 사망할 것”이라고 경고한 점성술가들의 말을 믿은데다 왕세자가 고른 신붓감이 자신의 가문과 반목하는 집안출신이어서극구 반대했다고 전했다. 사고 뒤 국왕 직무대행을 맡은 국왕의 동생 갸넨드라 왕자(54)는 이번 사건이 “자동소총이 갑자기 발사되면서 생긴돌발적 사고”라고만 밝혔다. 한편 이번 참사의 씨앗이 된 ‘비운의 여인’은 전직 재무장관의 딸 데브야니 라나(22)로 현재 인도 뉴델리로 피신한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여파 국가평의회는 사건 발생 후 수습과 왕위 계승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특별회의를 개최해 디펜드라 왕세자를 일단 왕위 계승자로 지명했으나,뇌사상태에 빠져 있어갸넨드라 왕자가 섭정중이다.이번 참사로 각 지방에 근거지를 둔 좌익세력이 준동하고 국왕에 충성을 맹세한 군부가반기를 드는 등 사회 불안이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장례식 2일 네팔 국민 수만명이 수도 카트만두 곳곳에서추모 물결을 이뤄 오열하는 가운데 국왕 내외와 니라잔 왕자 등의 장례식이 거행됐다.이들의 시신은 군병원에서 카트만두 황금사원 옆 장례식장으로 운구돼 화장됐다. 이날 카트만두 시내에서 일부 시민들은 디펜드라 왕세자가부왕을 살해했을리 없으며 어떤 음모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진상 조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한편영국과 일본, 미국,유엔 등 국제사회는 일제히 성명을 발표,네팔 왕실 참변에 애도의 뜻을 표했다. ■네팔은 인도 북부와 중국에 걸쳐있는 히말라야 산맥의 고립된 지역에 위치한 세계 최빈국중 하나.국왕이 국가원수와군통수권을 행사하는 입헌군주제 국가다. 2,100만명 인구중 80%가 농업에 종사하며 국민 1인당 연간 소득은 213달러수준.인구중 90%가 힌두교,5%는 불교신자다. 이동미기자 eyes@. *네팔 비렌드라 국왕…입헌군주제 도입 민주화 정착. 비렌드라 국왕(55)은 90년 절대 왕권을 포기,다당제 총선을 실시하면서 입헌군주제를 도입해 네팔에 민주화를 정착시키면서 네팔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존경과 사랑을 받아왔다. 그후 각종 의식에 참석하는 상징적 지위에도 불구,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영국 이튼칼리지와 미 하버드대에 유학한 후 72년 국왕에올랐으며 왕자 때인 71년 아이스와랴 왕비와 결혼,악연의디펜드라 왕자를낳았다. *네팔 디펜드라 왕세자…英 이튼 칼리지 출신 모범생. 디펜드라 왕세자(30)는 영국 이튼 칼리지 출신으로 평소매우 온화하고 다감했던 성품의 소유자.가끔 폭음하는 것외에는 흠잡을 게 없는 모범적 왕실자제로 참극 직전까지도아버지를 도와 왕실 업무를 도왔다. 총과 사냥, 무술에 관심이 많았던 만능 스포츠맨으로 “영국 유학을 통해 수신(修身)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해왔지만 결혼을 둘러싼 부모와의 갈등을 극단적 방법으로 끝내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말았다.
  • [씨줄날줄] 천황과 일왕

    일본 국수주의 세력은 이른바 ‘자학사관(自虐史觀)’을극복해야 한다며 ‘황국사관(皇國史觀)’을 되살리고 있다. 역사 교과서 왜곡이 그 방증이다.황국사관은 자국의 치부를감춘 채 이웃 민족을 열등시해 자존심을 극대화하려는 비뚤어진 사관에 다름아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문제와 관련,일부 일본 언론이 우리를 더욱 약오르게 한다.중국은 강경 대응하고 있으나 한국은 상대적으로 미온적이라는 보도가 그것이다.물론 우리사회에서도 일본 상품 불매운동에서부터 국교 단절에 이르기까지 강경 대응론이 비등하고 있다.그러나 국교단절 주장등은 무모하다는 생각이다. 일본 국수주의의 발호에 분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일간 경제의 상호 의존도가 심화된 상황에서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왕이 우리 국내에서도 흔히 천황(天皇)으로 불린다. 한 의원은 이를 천왕(天王)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발상은 참고할 만하지만 착지점은 사리에 맞지 않다.과거처럼 일왕(日王)으로 환원해야 마땅하다. 서양의 황제(emperor)는 옥타비아누스 이후 다민족을 통치하는 로마제국의 임페라토르에서 비롯됐다.반면 중국에선기원 전 221년 최초로 중원을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이 고대의 3황5제를 능가하겠다며 황제(皇帝)라는 존호를 만들었다. 일본에서 천황 호칭은 덴무,지토 두 왕이 다스리던 7세기후반에서 8세기 초반에 등장했다는 게 정설이다.빗나간 민족 우월감을 고취하는 천황 호칭은 중국에서도 당(唐) 고종만이 유일하게 썼다.엄밀히 말해 일본이 입헌군주제하에서상징적 존재일 뿐인 그들의 군주를, 왕으로 부르든 황제로‘참칭’하든 그들 내부문제다.그러나 일황(日皇)도 아닌‘하늘(神)이 내린 황제’라는 천황 호칭을 우리가 사용하는 것은 문제다. 지난해 모리 총리가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신의나라”라고 했을 때 우리는 귀를 의심하면서 단순 말 실수로 치부했다.그러나 이번에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일부 교과서 내용은 천황제가 국수주의적 황국사관과 맥이 닿아 있음을 실감케 한다.따라서 천황 호칭을 일왕으로 바꾸면 어떨까.황국사관의 미망에 빠져 있는일본 사회에 경종을 울리려면 일왕도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보통사람임을일깨워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구본영 논설위원kby7@
  • ‘아나키즘’ 관련서 두권 눈길

    아나키즘=무정부주의.이렇게 공식처럼 영어 단어를 외워온 사람들이많다.그러나 그리 간단치는 않다.아나키즘의 목표는 개인이 절대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이상사회 건설이다.현대사회의 구조적 위기를 극복할 대안적 사상으로서의 아나키즘을,생태공동체운동이나 대안학교등 사회운동과 접목하려는 다양한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책세상이 펴낸 관련서 두권은 이 문제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로버트 폴 볼프는 ‘아나키즘-국가권력을 넘어서’에서 인간의 자율성과,개인의 의지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하는 정치적 권위는 양립할수 없다고 주장한다.유일한 이상적 정치체제로 만장일치적 직접민주주의를 꼽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제도다.다수결이나 대의제 민주주의 등 어떠한 현실 정치제도도 이상과는 거리가 있는 조정과 타협의 산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나키즘이라는 주장이다. 조세현교수(부경대 사학과)는 책세상문고 제29권인 ‘동아시아 아나키즘,그 반역의 역사’에서 동아시아 3국의 역사에서 태동되고 움직인 아나키즘 운동을집중소개한다.고토쿠 슈스이(幸德秋水)로 대표되는 일본의 아나키스트들은 군국·애국주의를 부정하고 보편적 인류애를 주장하며 천황 테러를 시도했고,스푸(師復)등 중국 아나키스트들은 군주제 타도를 사회혁명의 첫 목표로 삼았다.신채호와 의열단 등한국의 아나키스트들은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려는 민족해방운동의한 수단으로 아나키즘을 받아들였다.동양은 서양에 비해 개인보다 사회문제에 좀더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고 저자는 평한다. 김주혁기자 jhkm@
  • 濠 새 지폐 英여왕 초상 제거

    [캔버라 AP 연합] 호주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계속 국가원수로 받들기로 결정했지만 새로 발행하는 지폐에서 여왕의 초상을 제거했다고 호주 중앙은행이 18일 밝혔다. 호주 중앙은행은 내년 1월1일 호주연방 성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새로 발행하는 5호주달러짜리 지폐에서 전통적인 여왕의 초상을 제거했다고 밝히면서 여왕의 초상이 들어있는 구권(舊券)도 2001년까지 통용되며 제한적으로 발행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호주 화폐에서 여왕의 초상을 제거하는 논란은 지난해 여왕을 국가원수로 하는 현행 군주제를 폐지하고 국가원수로 대통령을 새로 선출해 공화제로 거듭나자는 뜨거운 논란이 일어났을 때도 거론됐다. 호주 국민들은 그러나 국민투표를 통해 군주제 폐지안을 압도적 다수로 거부,여왕을 계속해서 국가원수로 모시기를 원했다.
  • 美 대통령 선거/ 넘치는 지구촌 풍자

    “신이여 저희를 앨 고어로부터 구하소서”(미국인 제프 호킨스),“우리에게 군주제가 존재함에 감사한다”(네덜란드인 카렐 포스툴라트). 미 대선을 둘러싼 법정 공방이 끝없이 이어지면서 각 언론 지면과웹사이트들에는 민주당 앨 고어 후보와 공화당 조지 ―부시 후보의대치 상황을 풍자하는 프로 및 일반 네티즌들의 해학과 유머가 넘쳐나고 있다. “미국이 ‘일렉투스 인터럽투스(electus interruptus)’라는 병을앓고 있다”.미국의 공무원 테드 보베는 선거(일렉션)가 중단(인터럽션)되고 있는 상황을 빗대 라틴어 병명처럼 만들어냈다. 대학교수인 수전 롱은 “미국의 정치 시스템은 정치적 ‘채드노빌(Chadnobyl)’에 의해 타격을 받았다”는 유머를 만들어 냈다.‘채드’는 플로리다주에서 유효표 판정기준과 관련해 논란이 되고 있는 투표용지의 천공 부스러기.옛 소련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누출사고를 일으킨 체르노빌을 결합시킨 용어. 제3세계인들의 반응도 흥미롭다.스리랑카의 한 네티즌은 “미국은항상 다른 나라를 가르쳤다.이제 미국이 다른 나라로부터 어떻게 그들의 지도자들을 뽑는지를 배워야할 차례”라고 꼬집었다.나이로비의한 시민은 “기표를 제대로 못한 플로리다주 유권자들에게 감사한다. 그들은 미국에 의해 후진국 취급을 받아온 아프리카인들에게 미국조차도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줌으로써 용기를 주고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ABC 방송의 쇼 진행자 빌 메이어는 선거전 기간 내내 조롱거리가 됐던 부시 후보의 말 실수를 겨냥,“미국에서 혼돈과 무지의 상황이 조성되고 있는 걸 보니 이제 부시의 시대가 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고 비꼬았다. 몇몇 신문들은 “미국이 대통령을 선출하지 못해 스스로와 자유세계를 통치하지 못하게 됐으므로 독립을 취소한다”는 엘리자베스 2세영국 여왕의 가짜 통고문을 실었다. 난마처럼 얽힌 대치상황을 풀 수 있는 갖가지 해법도 쏟아졌다.NBC의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프로그램에서는 부시와 고어 후보가 대학생 사교클럽에서 처럼 공동 대통령이 되는 방안이 제시됐다.한 덴마크인은 “민주주의 모델국가에 대한 신망을 무너뜨리고 있는 미국의 두 대선 후보는 차라리 동전 던지기를 해서 대권을 얻으라”고 주장하기도 했다.내셔널 퍼블릭라디오에 전화를 건 한 청취자는 “두사람이 진정한 신사라면 18세기 방식대로 결투를 벌여야 할 것”이라며 흥분했다. CBS의 코미디쇼 진행자 데이비드 레터맨은 대선 판도 보도에서 자주사용된 지도를 빗대 “부시는 빨간 주(州),고어는 파란 주의 대통령이 되면 될 것”이라는 해결책을 마련했다.레터맨은 “만일 이 방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빌 클린턴 대통령을 플로리다주에보내 캐서린 해리스 주 국무장관을 유혹하도록 하면 될 것”이라고색다른 방안을 권고했다. 유에스에이투데이에 기고한 한 네티즌은 “정의의 미국인들이여,더러운 전쟁을 치르고 있는 두 사람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가 왔다”며 강한 분노를 표출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룩셈부르크 새 大公 취임

    [룩셈부르크 AP 연합] 룩셈부르크의 국가원수인 대공(大公) 장(Jean)이 7일 대공 자리에서 물러나고 앙리 대공세자가 뒤를 이었다. 대공은 퇴위 전날인 6일 TV 연설을 통해 42만여 국민이 지지해 준다면 앙리 대공세자와 쿠바 태생의 아내 마리아 테레사가 룩셈부르크에 지속적인 번영과 안정 그리고 존경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79세인 대공 장은 이날 대공궁에서 퇴위식을 갖고 36년간의 국가원수 생활을 마감했다. 퇴위식에 이어 의사당에서는 대공 취임식이 거행됐는데 올해 45세인 앙리 대공세자는 1890년 룩셈부르크에 근대 군주제가 도입된 이후 6번째 대공이 됐다. 취임식에는 네덜란드의 베아트릭스 여왕과 벨기에의 알베르 2세 국왕 및 파올라 왕비 등이 참석했다.알베르 국왕은 대공의 부인인 조세핀-샬롯의 오빠다. 한편 지난달 10일 파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기욤 왕자(37)가 여전히 사경을 헤매고 있어 새 대공 취임을 기념하는 행진,음악회 그리고 불꽃놀이 등은 취소되거나 재조정됐다.룩셈부르크는 유럽연합(EU) 15개 회원국 중 국토가 가장 작으면서도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국가로 군주제는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 [대한광장] 제대로 된 인사청문회법 만들자

    지난 5월29일로 임기가 끝난 15대 국회는 개원식을 갖지 못했다.15대 국회의 법정 개원일은 96년 6월 5일이었지만 15대 국회의 첫 집회는 이날 열리지않았다. 임기가 시작되면 개원해서,원을 구성하고 의정활동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그런데 그동안 여야의 대립으로 임기가 시작된지 몇 달이 지난뒤에 개원하는 일이 많았다.그래서 아예 법으로 개원일을 못박아 놓은 것인데,15대 국회는 법정 개원일조차 지키지 못한 것이다. 당시 여당이 야당 의원을 빼가고 무소속 당선자를 끌어들여 여소야대의 국회를 여대야소로 바꾼 뒤에 원을 구성했기 때문이다.16대 국회도 여소야대라개원일이 늦춰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여야가 이달 5일에 개원식을 갖기로 합의했지만 지켜질지 미지수이다.여야 사이의 날카로운이해관계 대립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인사청문회법 제정 문제이다.이한동 국무총리 서리에 대한 국회의 인준은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이한동 총리 지명자가 서리라는이름으로 총리직을 수행하는 것은 헌법을 비롯한 어떤법에도 근거가 없이이루어지는 불법행위이다.헌법에 따르면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임명할 수 있다.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국회의 인준을 받을 때까지 국무총리 권한대행을 국무위원 가운데 지명하거나 재정경제부 장관이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이한동 총리 지명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빨리 열어야 한다.그러기위해서는 국회가 인사청문회법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그런데 여당은 인사청문회를 형식적으로 거치려 하고,야당은 인사청문회를 통해 대통령의 임명권과 국무총리 지명자를 흠집내려고 하기 때문에 인사청문회법 협상이 난항을 겪는 게 아닌가 싶다.인사청문회는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사전에 막고능력 부족에 따른 국정 파행을 막기 위해서 필요하다. 따라서 인사청문회법은 고위공직자의 투명성과 공정성,그리고 국민의 신뢰도를 평가할 구체적인 운영 및 절차를 마련하는 내용이어야 한다.업무수행능력,정치지도자로서의 도덕적 권위,국민대표자로서의 정치적 감각,시대상황변화와 사회집단 현상에 대한 정책 조정력 등을검증하고 인선 자체에 대한국민적 합의와 승인의 제도적 장치가 바로 인사청문회인 것이다. 인사청문회를 형식적으로 때우려 하거나 흠집내기 식으로 진행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인사청문회가 이미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서 시행되었음을 아는 이들은 별로많지 않다. 조선시대에 사간원이라는 기구가 있었다.사간원은 왕의 동정과정치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기관이다.사간원은 홍문관 사헌부와 더불어 공론을 모아 이를 국정에 반영하도록 하는 구실을 했다.그러나 사간원은 왕에게공론을 전달하는 일 말고 아주 중요한 임무를 하나 더 갖고 있었다.바로 서경(署經)이라는 임무이다. 서경은 관직에 임명된 사람들의 자질을 검토하는 일이다.인물의 가문조사를중심으로 이전의 관직생활이나 일상생활 태도를 조사하여 그 직책을 수행하기에 흠이 없는가를 판단하는 것이 바로 서경이다.사간원에서 서경을 하지않으면 관원이 직무를 수행하지 못했다.서경은 결국 오늘날의 인사청문회와같은 맥락이라 하겠다.서경은 5품 이하에만 이루어졌지만,4품 이상의 고급관원도 사간원에서 이의를 제기하면 임명될 수 없었으니 결국 군주제인 조선시대에도 관원을 임금이 일방적으로 임명할 수 없었다. 7월이면 대법관들,그리고 9월이면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려야 한다.인사청문회는 고위공직자 인사에 대한 국회의 견제권한이다. 여야는 국회의 올바른 자리매김을 위해서 당리당략을 떠나 인사청문회법을바르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孫 赫 載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 [김삼웅 칼럼] 분노도 슬픔도 잃은 광주항쟁 20년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쓴다는 것은 야만이다.”(철학자 아도르노), “아,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 처참하지 않았으리.”(김남주 ‘학살1’)그래서 어쨌다는 말이냐고 묻는가. 과거보다 현재,미래지향,국민화합,상생정치가 중요한 마당에 어쩌자고 과거사를 꺼내느냐고 힐난하는가. 해방후 친일파 척결하잘 때도 그랬고 4·19후 반민주행위자 처벌하잘 때도 비슷했고 89년 5공청산때도 똑같았고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런 악순환으로 역사는 역류하고 국민은 피를 흘렸다.청산할 때 청산하지않고 범법자들을 처벌하지 않음으로써 나타난 역사의 악순환인 것이다. ‘게르니카의 학살’보다 더 처참한 광주학살은 지금 ‘역사의 평가에 맡기는’것으로 매듭지어진 상태다.“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E H카)라는 것은 중학생도 아는 상식인데 당대사의 진실을 과거라는 무덤에 매장하고 우리는 지금 ‘화해’와 ‘상생’의 신소리나 외쳐댄다.회칠한 무덤가에서 양심에 털난 위선의 합주곡이랄까. 우리는 광주항쟁의 역사성과 혁명성 그리고 현재적 실천성을 거세하고 광주학살을 과거완료형으로 묻어두길 바란다.‘흘러간 과거사’로 화석화하고 ‘광주지역사건’으로 지역화시키면서 ‘오래된 사건’의 하나로 박제(剝製)화를 노린다. ■프랑스혁명과 광주항쟁. 발포명령자,학살자 등 가해자들의 반성과 참회가 없는 터에 피해자들만 용서하고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설익은 ‘용서의 미학’을 비웃기라도 하듯 민주주의를 압살한 무리들이 민주의 가면을 쓰고 날뛰고,인권을 유린한 자들이민주투사로 행세하고,광주항쟁을 폭도로 매도한 언론인들이 유력한 논객행세를 한다.한 줄기 분노도,슬픔도 잃어버린 당대사(인)의 모순,허위 그리고이중성이여! 근대의 역사는 프랑스혁명·산업혁명과 함께 시작됐다고 한다.이미 토크빌이 지적했듯이 혁명가(프랑스)들이 군주제를 철폐하고 루이 16세를 단두대에 보냈음에도 결국 혁명은 중앙집권화를 추구하던 절대주의의 오랜 역사적 과제를 계승해 완성하게 됐다.광주학살은 ‘단두대’는커녕 가해자들의 사과한마디도 받지 못했다.프랑스혁명이 반봉건·반귀족의 부르주아 혁명이라면광주항쟁은 “4·19의 자유민주주의 혁명으로 반독재 투쟁에 머물렀던 한계를 극복하고 그것과 결탁한 외세의 제국주의 침략까지 분쇄하고자 했던 민중해방운동”(전남사회문제연구소·1988)으로서 ‘현대사의 일대 분수령’이다. 80년대 이후의 민족민주운동은 광주의 피를 먹고 자랐다.광주의 피가 아니었다면 6월항쟁은 상상하기 어렵고 6월항쟁이 아니었다면 군부독재의 종식은불가능했다.1789년 프랑스에는 단 하나의 혁명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연쇄적인 충돌을 일으킨 세 종류의 혁명 즉 도시하층계급의 분노와 농민들의 불만이 짧은 기간에 지도적인 개혁가들의 의지와 마주치게 되면서 시민혁명으로 나타났듯이 광주항쟁도 현대사의 제반 모순에서 역량을 키워온 민족·민주·민중 세력에 의해 분출됐다.5·18광주민중항쟁은 민주화운동인 동시에궁극적으로는 민족통일운동에 연결되는 위치에 있다.특히 갑오농민전쟁·호남의병전쟁·광주학생운동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전통에서 5·18의 성격은 그참모습을 찾게 된다. ■무장한 비폭력저항. 신군부가 다시 광주를 무력으로 장악하면서 시민들의 무장은 시작됐다.아우슈비츠나 게르니카에 못지않는 학살에 대항하는 자위수단이었다.그러나 많은 총기가 시민들 손에 쥐어졌는데도 항쟁기간 10일동안 은행·백화점·금은방은 물론 구멍가게 한 곳도 털리지 않았다.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고립무원의 공간에서 라면과 김치를 나눠먹고,총상으로 피가 부족하자 헌혈자들이 줄을 이었다.노점상과 부녀회원들은 김밥과 음료수를 시위대원은 물론 계엄군에도 나눠주었다. 세계혁명사상,민중봉기사상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이런 광주항쟁을 일부에 서 폭력성으로,지역주의로 매도했다.폭력이 아닌 ‘무장한 비폭력주의’의 성격과 함께 왜 광주에서만 항쟁이 일어났는가를 묻기 전에 왜 다른 지역은 침묵했는가를 먼저 물어야 옳다. 광주학살로 희생된 259명의 영령과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는 수백명의 부상자들 앞에 분노도 슬픔도 잃어버린 생자(生者)들은 어찌해야 하는가.5월은 묻고 있다. 김삼웅 주필 kimsu@
  • [발언대] ‘4·13’임시정부수립 참뜻 되새겨 올바른 투표를

    13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제81주년이 되는 날인 동시에 제16대 국회의원을 뽑는 날이다. 국회의원 선거일을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겠지만 1919년 3·1운동의 결과인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현행 헌법 전문에서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명시하고 있다.대한민국 임시정부 헌장 제1조에서는 반만년 동안 답습한 전제군주제에서과감히 탈피해 역사 속에서 한 번도 경험하거나 시도하지 못했던 ‘민주공화제’를 채택하고 제5조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있음을규정하고 있어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이 귀중한 권리를 공산 침략자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수많은 호국영령들과 상이용사 등 국가유공자들이 피와 땀을 흘렸고 독재권력에 빼앗기지않기 위해 4·19혁명 등에서 큰 희생을 치러 왔음을 잊어서는 아니될 것이다.또한 임시정부 헌장 제6조에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 소중한 권리의 대가로 당연한 교육·납세 및 병역의 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며 정강에서는 임시정부의 법령을 어기는 자는 적으로 간주함을 천명하고 있다. 이외에도 헌장 제2조에서는 정부와 의정원을 두는 등 통치기구를 민주화했으며 제3조에서는 남녀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이 일체 평등함을 규정하고제4조에서는 종교 언론 저작 출판 결사 집회 서신 주소이전 신체 및 소유의자유권을 확인하는 등 민주헌법의 훌륭한 체제를 갖추고 있다. 13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돼 주권행사를 할 수 있게 기틀을 마련한날임을 기념하는 동시에 우연찮게도 국회의원 선거가 겹치는 뜻깊은 날이다. 이 날을 정부에서는 주권행사가 원만히 이루어지도록 임시공휴일로 지정했지만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오히려 투표율이 저조할 것으로 걱정까지 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참뜻을 오늘의 실정에 맞게 훌륭히 계승하고 앞으로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후보를 찾아 투표하는 것도 81번째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에 할 수 있는 뜻깊은 일일 것이다. 이용원[수원보훈지청장]
  • 공화제냐 입헌군주제냐 濠, 6일 선택의 갈림길

    공화제냐,입헌군주제냐.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호주에서 공화제로의 전환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6일 실시된다.입헌군주제 유지를 바라는 반대파와 공화제를 지지하는찬성파들은 5일까지의 치열한 캠페인전을 마치고 ‘선전’을 다짐했다. 호주의 유력지 시드니 모닝헤럴드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만을 보면공화제는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군주제 유지파는 41%로 공화제 지지파(33%)보다 우세를 보이고 있다. 부결이 되면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을 국가원수로 하고 실제 통치는 총리가맡는 현행 입헌군주제는 유지된다.존 하워드 총리도 군주제를 지지하고 있다.만일 공화제 찬성파가 승리할 경우 호주는 영 연방에 잔류는 하지만 2001년 1월부터 국가원수가 엘리자베스 여왕에서 의회가 선출하는 대통령으로 바뀐다. 투표 전까지는 입헌군주제 유지파가 우세를 보이고 있으나 결과가 여론조사대로 나올지는 예측불허다.마음을 정하지 못한 ‘부동표’가 4명중 1명꼴인26%나 되기 때문이다. 잠재적인 공화제 지지자가 7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호주에서 정작 국민투표를 앞두고 공화제 반대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왜일까.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지 못하도록 한 조항 때문이라는게 언론들의 분석이다.국민투표에 부쳐지는 ‘국가원수를 연방의회의 3분의 2의 찬성으로 임명된 대통령으로 한다’는 간접선거 조항이 호주 국민들에게 “그럴바에야 차라리 입헌군주제가 낫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는 풀이다. 게다가 ‘공화제가 되면 영연방에서 이탈할 것’이라는 뜬소문도 영연방 탈퇴에 불안감을 느끼는 부동층과 일부 공화제 찬성파의 마음을 돌리는 이유다. 황성기기자 marry01@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