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군주제
    2026-01-18
    검색기록 지우기
  • 성추행
    2026-01-18
    검색기록 지우기
  • 선관위
    2026-01-18
    검색기록 지우기
  • 검찰 수사
    2026-01-18
    검색기록 지우기
  • 이코노미
    2026-01-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19
  • 네팔 갸넨드라 국왕 백기 “하원 복원” 선언…20만명 승리의 행진

    19일간 이어진 네팔의 ‘피플 파워’가 14명의 시위대들이 흘린 피 위에서 마침내 승리를 거뒀다. 갸넨드라 네팔 국왕은 25일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에 굴복,2002년 5월 해산한 의회(하원)를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국왕은 이날 5분간의 TV연설을 통해 “의회가 오는 28일부터 시작될 것”이라며 “야당 동맹은 국가의 화합과 번영을 위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네팔의 7개 야당 동맹은 공식적으로 민주화 시위와 파업을 중단하고 공산반군과도 긴밀히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야당 지도자들은 전직 총리이자 제1야당인 네팔의회당의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 당수를 차기 총리로 추대했다. 야당 동맹은 의회가 재구성되면 마오이스트와의 휴전을 선언할 계획이다.25일 20만명이 참여하기로 예정된 시위는 ‘승리의 행진’으로 변모했으며,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새로 구성되는 의회의 주요 의제는 헌법을 다시 구성하기 위한 선거를 실시하는 것으로 왕의 권력을 줄이고 군주제를 폐지할 전망이다. 야당 지도자들은 이날 “국왕이 결국 무릎꿇게 만들었다. 민중이 실질적인 힘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AP통신에 말했다. 카트만두 포스트는 “피플 파워가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민주화시위를 후방에서 지원했던 공산 반군은 국왕의 제안을 “권력을 유지하려는 음모”라며 거절했다. 또 야당동맹에 배신당했다며, 수도 카트만두에 식량과 연료 부족사태를 일으켰던 도로 봉쇄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갸넨드라 국왕은 14개월 전 마오이스트를 분쇄하고, 국가의 질서를 정립하겠다며 정부를 해산했다. 공산반군의 정권 수립을 위한 10년간의 무장투쟁으로 그간 1만 3000여명이 사망했다. 현재 1만여명의 마오이스트가 네팔 국토의 40%를 장악하고 있다. 공산반군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는 이웃 국가인 인도 역시 네팔 사태를 통해 반군 세력이 확장할 것을 우려, 갸넨드라 국왕을 압박했다. 마오이스트에 대한 지원을 거부한 중국은 네팔 국왕의 결정을 환영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네팔 시위대에 발포… 또 통금

    네팔 수도 카트만두 일원에 23일에도 전날에 이어 또다시 주간통금령이 내렸다. 갸넨드라 국왕이 지난 주말 권력이양을 발표했지만 민주화시위가 격화되자 다급해진 당국이 다시 통금을 실시한 것이다. 야당과 시민들은 국왕 하야와 군주제 폐지, 보다 확실한 민주화 일정 제시 등을 요구하며 충돌을 향해 치닫는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22일 수도 카트만두에서는 통금령에도 불구하고 10만여명의 군중이 참가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열려 당국을 긴장시켰다. 시내 중심가에서의 대규모 시위는 처음이었다. 이날 경찰은 국왕의 궁 주변으로 몰려드는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고무탄과 최루가스에 이어 실탄까지 발사해 부상자가 속출했다. 7개 정당으로 구성된 야당연합은 지난 21일 국왕의 권력 이양 발표에 대해 거부의 뜻을 밝히고 국왕의 즉각적인 하야를 요구했다. 야당측은 “국왕의 발표가 의회 재개, 새 헌법 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 등 요구사항과 거리가 많다.”면서 반대 시위를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제 1야당인 네팔의회당 등 야당측은 “국왕의 발표는 사기극에 불과하다. 행정권만 넘기겠다는 갸넨드라 국왕의 조치에 결코 만족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1년 즉위한 갸넨드라는 전임 비렌드라 국왕의 입헌군주제 및 복수정당제 도입 등 개혁노선과 달리 정치인 권한 제한 등을 시도했다. 지난해 2월1일 ‘친위 쿠데타’를 통해 정부를 전격 해산하면서 절대왕정을 부활, 국내·외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영국·인도 등 전통적 우방들이 다당제 민주화 압력을 넣으며 군사원조를 중단하자, 갸넨드라는 중국·파키스탄 등과의 유대강화 전략으로 버텨왔다. 한편 지난 6일 야당측이 공산반군과의 조율 속에 총파업을 시작하면서 촉발된 네팔 민주화사태로 지금까지 보안군에 의해 최소 14명이 사망하고 150여명이 부상하는 등 사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네팔 국왕, 권력이양 선언

    네팔 국왕, 권력이양 선언

    히말라야 산맥에 수천년 은둔해온 네팔 왕국이 드디어 ‘피플 파워’의 감격에 휩싸였다. 지난해 2월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내각을 해산한 후 직접 국정을 장악했던 갸넨드라 국왕이 21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권력을 국민에게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총파업 16일만에 백기 투항 갸넨드라 국왕은 이날 미리 녹화된 연설에서 “입헌군주제와 다당제를 향한 신조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가능한 한 빨리 7개 야당이 총리를 지명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특히 “행정 권력은 오늘 이 시간부터 국민에게 돌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왕은 또 “이른 시간안에 선거를 통해 정통성 있는 기구들이 가동됨으로써 민주주의의 실천이 담보될 것”이라며 “현 각료협의회는 새 총리가 임명될 때까지만 운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평화와 질서가 회복되길 희망한다는 말도 보탰다. 그러나 그는 선거 일정이나 권력 이양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전날에 이어 이날도 수도 카트만두 시내 진입을 시도하던 15만명의 시위대는 외곽지대로 물러나 국왕 연설을 경청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연설이 끝난 직후 일부 시민은 거리를 행진하며 “민주주의 만세!갸넨드라는 이 나라를 떠나라!”고 외치고 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대체로 시위대는 국왕 연설을 환영하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정치 일정이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헨드라 슈레스타는 “싸움에서 이겼지만 아직도 이겨내야 할 전투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주요 정당 지도자도 연설 직후 회합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 내용은 즉각 전해지지 않았다. 이로써 지난 6일 국왕 하야를 요구하는 전국적인 총파업에 돌입한 지 16일만에 국왕의 투항으로 네팔은 새로운 민주주의 역사를 쓰게 됐다. ●“평화 티켓을 놓친 것이 결정적 실책” 갸넨드라 국왕은 7개 야당 연합의 총파업에 맞서 지난 6일 통금령을 발포한 데 이어 20일에는 사살령까지 내리는 강압 조치로 일관했으나 결국 무릎을 꿇게 됐다.16일 이어진 반정부 시위로 모두 14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백명이 다쳤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날 “갸넨드라 국왕의 도박은 사실상 실패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국왕의 ‘권력 배후’인 보안군의 가족들까지 시위에 동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인과 전문직, 공무원까지 시위에 참여하거나 지지를 보냈다. 마지막 외부 지원세력인 미국과 중국, 힌두 민족주의 세력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미 국무부는 최근 “(전제정치가) 모든 분야에서 실패했다.”고 밝혔으며 제임스 모리아티 네팔 주재 미국 대사는 이날 “그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는 말로 결정타를 날렸다. 일부 전문가는 갸넨드라 국왕의 가장 큰 실정(失政)으로 ‘평화 티켓’을 놓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마오이스트 반군이 제안한 평화협정도 거부했다. 그렇다고 사회적 갈등을 봉합한 것도 아니었다. 경제 안정과 도덕성 측면에서도 국민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1999년 50만명이었던 해외 관광객은 지난해 27만명으로 크게 줄었다.3주째 접어든 총파업으로 생필품 가격은 폭등했다. 국왕은 왕자 시절부터 뺑소니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또 왕실 총기 사건을 직접 일으켰다는 의혹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동안 왕실 예산은 6배가 늘었고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정책은 민심을 돌려세웠다. 국토의 40%를 점유한 마오이스트 반군은 가난한 농촌을 중심으로 꾸준히 세력을 키웠다. 피폐한 현실에 절망한 농민들이 마오쩌둥(毛澤東)의 혁명 이론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씨줄날줄] 王의 힘/한종태 논설위원

    태국을 여행하다 보면 중요한 장소에는 언제나 푸미폰 아둔야뎃(78) 국왕의 초상화가 걸려 있거나 관련 조형물이 설치돼 있는 것을 쉬이 알게 된다. 태국민들은 외국인들에게 통상 두 가지를 자랑한다. 하나는 1900년대 초반 서구열강의 아시아 침략때 태국은 한번도 식민통치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온 국민의 추앙을 받는 국왕의 존재다. 입헌군주제에 따라 군림은 하지만 통치하지 않는 국왕에 대한 태국민들의 존경심과 신뢰는 상상을 초월한다. 영향력 측면에선 왕정시대의 전제군주에 버금갈 정도로 푸미폰 국왕의 말 한마디는 법 이상의 효력을 발휘한다.2달여의 퇴진 시위와 정국 불안에도 굴하지 않고 버티던 탁신 치나왓 총리가 지난 4일 항복 선언을 한 것도 푸미폰 국왕을 알현한 직후였다. 그야말로 ‘왕(王)의 힘’이 발현된 것이다. 물론 푸미폰 국왕도 국민들의 무한한 신뢰를 받게끔 행동해왔다. 오는 6월 재위 60주년을 맞는 그이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부정부패나 스캔들과 연관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국왕뿐 아니라 왕실 가족 누구도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하니 푸미폰 국왕의 높은 도덕성과 철저한 자기관리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으리라. 무엇보다 자신의 일가가 19억달러어치의 주식을 팔면서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은 탁신과는 크게 대비된다 하겠다. 국민을 끔찍이 생각하는 푸미폰 국왕의 ‘위민부모(爲民父母)’ 사례는 숱하게 많다고 한다. 왕궁에서 각계각층 국민들을 두루 만나 어려움을 청취하는 것은 기본이고, 나라에 가뭄이 들면 백성과 고통을 함께한다며 아예 식음까지 전폐한다고 하니, 한 나라의 군주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의 사정은 어떤가. 엄청난 부정부패로 국민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던 지난날 절대권력자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힘깨나 쓴다는 인물치고 ‘내가 그런 도덕성을 가졌소.’라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은 불행히도 없는 것 같다. 여전히 브로커와 ‘게이트’가 난무하고 학연·지연과 같은 연줄이면 안 통하는 게 없는 사회…. 더 안타까운 것은 우리 스스로 모든 국민의 좌표가 될 만한 ‘큰 어른’을 모시려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게 아닐까 싶다. 한종태 논설위원 jthan@seoul.co.kr
  • 김정훈 “’궁’의 인기비결…”

    김정훈 “’궁’의 인기비결…”

    말도 많고 탈도 많던 MBC 미니시리즈 ‘궁’이 마침내 수목드라마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지난 16일 방송된 ‘궁’ 12회는 전국 시청률 25.2%(TNS미디어 코리아 집계)로 자체 최고시청률을 기록하며 쾌조의 상승세를 이어갔다. 캐스팅 논란으로 방영 초기부터 시끄러웠던 문제작이 최고 인기드라마로 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 인기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탄탄한 구성과 입헌군주제라는 독특한 설정, 그리고 15억이 투자된 호화 세트장 등 다양한 특성들이 인기요인이다. 그러나 과연 이 뿐일까. 드라마 속에서 비운의 황태자 ‘율’로 출연중인 김정훈에게 숨겨진 인기비결을 들어봤다. ◇논란 잠재운 맞춤형 캐스팅 주연 연기자들의 캐스팅은 방영 초기부터 뜨거운 논란을 낳았다. 이에 대해 김정훈은 “캐릭터의 외모가 아니라 성격을 살펴보면 딱 맞는 캐스팅”이라고 말했다. 그는 “윤은혜는 얼마전 촬영 도중 세트장에서 대형 화분 하나를 깨뜨렸을 정도로 천방지축 말괄량이다. 드라마 캐릭터가 실제와 똑같아 연기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갈 정도”라고 평했다. 효린 역의 송지효에 대해서는 “드라마에서 재벌친구들을 이끌고 다니는 역할이 제 모습이다. 연약한 외모와는 달리 엄성모 이용주 최성준 등 조연 연기자들을 마음대로 부리는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있다”고 귀띔했다. ◇신세대 작가의 톡톡 튀는 개성 김정훈은 극중 개성넘치는 대사와 구성은 인은아 작가(35)의 젊은 감각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인작가는 대본 집필 때문에 여유는 없지만 연기자들과 휴대폰 문자메세지를 통해 수시로 연락을 한다. 특히 ‘즐~’ ‘화이삼!’ 등 인터넷 통신언어를 곁들여 메세지를 보내 한결 친근하게 느껴진다. 한동안 논란이 일었던 극중 통신체 언어 활용과도 무관하지 않은 대목이다. 더불어 김정훈은 “황위 계승 문제 때문에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이중성을 고민하는 장면이 있다. 사실 인작가에게 내가 건의했던 장면인데 흔쾌히 수락해줬다”며 배우들과 함께 고민하는 작가의 넉넉한 마음 씀씀이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황위 쟁탈전으로 강화된 갈등구조 전반부에는 윤은혜와 주지훈의 사랑싸움만으로 이야기가 펼쳐져 템포가 다소 느리다는 시청자들의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중반 이후 ‘궁’은 황위 계승을 둘러싸고 등장인물들의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극 전개에 탄력을 받고 있다. 특히 윤은혜를 사이에 두고 주지훈과 김정훈의 갈등이 더욱 고조된다. 김정훈은 “황실 속에서 벌어지는 권력다툼과 음모가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이번주 금발 머리를 검은 색으로 바꿔 권력지향적인 냉철한 분위기로 변신할 예정”이라고 기대를 부풀렸다.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 [7·9급 공무원 시험 완전정복] 헌법

    ●헌법 1. 다음 예산에 관한 기술 중 틀린 것은. (1)예산의 성질에 관해서는 법규범의 일종으로 보는 법규범설과 정부의 세출에 대하여 국회가 의결로써 행하는 승인 행위로 보는 승인설이 대립하고 있으며 예산과 법률이 불일치하는 경우에 예산을 가지고 법률을 변경하거나 법률을 가지고 예산을 변경할 수 없다. (2)예산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의 심사를 거친 후 본회의에 부의되는 것이 아니라 예산결산 특별위원회의 심의에 회부된다. (3)예산안에 대해서는 국회는 증액, 수정 또는 새로운 비목설치권이 인정되지 않지만 삭제, 감액권은 인정된다. (4)가예산과 준예산은 국회의결을 요한다는 면에서 동일하며, 가예산은 건국헌법에서 채택한 바 있다. 2. 헌법개념의 역사적 발전에 관한 설명 중 가장 거리가 먼 것은. (1)고유한 의미의 헌법이란 국가최고기관의 조직·구성과 권한행사방법, 권력기관의 상호관계 및 활동범위를 규정하는 것이다. (2)근대적·입헌주의적 의미의 헌법은 국민주권의 원칙, 기본권보장의 원칙, 권력분립의 원칙 등을 그 구성원리로 하고 있다. (3)현대적·복지주의적 의미의 헌법은 국민주권주의의 실질화, 사회권적 기본권보장과 사회정의실현,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체계의 보장 등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4)불문헌법국가의 경우 형식적 또는 실질적 의미의 헌법이 존재하지 아니하고, 대체로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3. 헌법재판소의 헌법조문 등에 관한 판례태도와 상이한 것은. (1)헌법의 개별규정은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의 소정의 공권력행사의 결과라고 볼 수 없으며, 헌법은 헌법전문과 다른 개별조항의 상호관련성이 없는 집합에 지나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통일된 가치체계를 이루고 있으며, 이념적·논리적으로 헌법규범 상호 간에는 가치의 우열이 인정된다. (2)헌법규범 상호 간에 이념적·논리적으로는 가치의 우열이 인정되나, 헌법의 어느 특정 규정이 다른 규정의 효력을 전면부인할 수 있는 정도의 효력상의 차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3)현행 헌법상으로는 과연 어떤 규정이 헌법핵 내지는 헌법제정 규범으로서의 상위규범이고, 어떤 규정이 단순한 헌법개정 규범으로서의 하위규범인지를 구별하는 것은 가능하지 아니하다. (4)현재까지의 헌법재판소의 판례태도에 따를 때, 헌법 제3조의 영토규정과 헌법 제4조의 국가의 평화통일 정책수립시행 의무규정의 학리해석론과는 견해가 일치된다고 볼 수 있다. 4. 국무회의에 관한 기술 중 틀린 것은 몇 항목인가. (ㄱ)제1,2공화국때 국무회의는 의결 기관이었다. (ㄴ)헌정사상 국무회의가 자문기관이었던 시기는 제4공화국이었다. (ㄷ)미국의 각료회의는 자문기관이지만 영국의 각료회의는 의결기관이다. (ㄹ)대통령은 국무회의의 구성권자이고 동시에 소집권자이다. (ㅁ)현행헌법상 필수기관이므로 폐지시의 국민투표실시는 필수적이다. (ㅂ)국무회의의 성격은 정책의 심의기관이며 합의제 기관이다. (ㅅ)국무회의는 구성원 과반수의 출석으로 개의하고 출석구성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1)1항목 (2)2항목 (3)3항목 (4)4항목 5. 헌법재판소의 결정효력에 관한 기술 중 틀린 것은. (1)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불가변력, 불가쟁력이 발생한다. (2)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공권력의 주체에 대해서 그 효력이 발생하는 것으로 공무수탁사인에 대해서는 그 효력이 없다. (3)헌법재판소는 결정을 선고하면 동일한 소송에서 내린 결정은 더 이상 취소나 변경할 수 없다. (4)헌법소원의 인용결정은 모든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기속한다. ●해설 및 정답 1.(4)가예산은 국회의결을 요하지만, 준예산은 국회의 의결없이 일정한 경비를 지출할 수 있다. (2)국회법 제84조 (3)국회법 제57조 2.(4)문서화된 헌법전의 유무에 따라 성문헌법과 불문헌법으로 구분된다. 불문헌법은 관습법의 형태로 존재하는 헌법이며, 불문헌법의 국가에서도 실질적 의미의 헌법은 존재한다. 실질적 의미의 헌법은 헌법사항을 규정한 성문법과 불문법을 막론한 일체의 법을 가진 형태를 말한다. 영국에도 헌법이 있다는 것은 실질적 의미의 헌법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경우의 헌법은 실질적 의미의 헌법을 말하는 것이다. 3.(4)헌법재판소의 판례태도는 헌법의 어느 특정규정이 다른 규정의 효력을 전면부인할 수 있는 정도의 효력상의 차등은 인정되지 아니하므로(헌재 1996.6.13,94헌바20;헌재 1995.12.28,95헌바3), 학자들의 해석론과는 상이하다. 대다수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헌법 제3조의 영토규정과 제4조의 국가의 평화통일정책수립시행의무규정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신법우선의 원칙과 현실우선의 원칙에 의해서, 헌법 제4조가 우선적으로 적용된다고 본다. 4.(1) (ㄴ)국무회의가 심의기관이었던 시기는 제3·4·5·6공화국이며, 자문기관이었던 시기는 한번도 없었다. (ㅅ)국무회의규정 제6조 5.(2)공무수탁사인도 그 효력이 적용된다. 채한태 한교고시학원 강사
  • [씨줄날줄] 볼리바르 혁명/이목희 논설위원

    19세기 초 남미대륙에는 스페인 식민통치에 대항하는 두 영웅이 있었다. 북쪽으로부터 스페인 군대를 격파하고 내려온 시몬 볼리바르와 남쪽에서 치고 올라온 산 마르틴. 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를 독립시켰고, 산 마르틴은 아르헨티나·칠레·파라과이를 해방시켰다. 두 영웅은 과야킬이란 곳에서 운명의 만남을 갖는다. 독립쟁취란 궁극 목표는 같았으나 각론에서 두 사람의 견해는 갈렸다. 산 마르틴은 스페인과 협상을 통해 희생자를 줄이려 했고, 군주제를 선호했다. 볼리바르는 더 급진적이었다. 계몽사상에 심취한 그는 공화제 도입을 주장했다. 볼리바르는 특히 라틴아메리카의 통합을 희망했다. 먼저 독립한 미국이 연방제를 통해 북미대륙을 묶고 있는데, 남미가 갈라지면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논지를 폈다. 산 마르틴은 볼리바르에게 남미 독립전쟁의 주도권을 내주고 깨끗이 물러선다. 그러나 볼리바르의 남미 통합론 역시 실패로 끝난다. 미국과 유럽의 방해와 독립세력의 분열 때문이었다. 남미통합을 주장하는 우고 차베스가 1999년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볼리바르의 꿈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차베스는 국호까지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으로 바꿨다. 차베스는 반대파의 공세와 미국의 공작으로 여러 차례 축출위기에 몰렸으나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지난 4일 실시된 총선에서 압승, 사실상 1당체제를 구축했다. 앞으로 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을 노릴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차베스의 주장은 남미가 단결해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21세기형 사회주의 모델’을 내세우기도 한다. 브라질을 비롯, 남미 곳곳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그들은 실용적 신자유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 볼리바르와 산 마르틴의 투쟁방법 차이가 재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 밀착해 실익을 챙기려는 멕시코, 거리를 두되 신자유주의를 일정부분 수용한 브라질·아르헨티나, 반미·반신자유주의 기치를 강화하는 베네수엘라. 누가 국민을 배부르게 할 수 있을까. 차베스도 유가가 올라 국민경제가 좋았을 때 지지율이 높았고, 경제가 나빠지면 정치위기를 맞곤 했다. 차베스가 볼리바르의 유업을 이어갈지, 국제 돈키호테로 끝날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대한제국기의 근대화’ 학술대회 김도형 연세대 사학과 교수

    ‘대한제국기의 근대화’ 학술대회 김도형 연세대 사학과 교수

    4일 연세대 연희관에서는 ‘대한제국기의 근대화’와 개혁사업을 주제로 연대 국학연구원과 UCLA간 공동학술대회가 열렸다. 사학자들에게 중요한 시기로 꼽히는 대한제국기를 되돌아보기 위한 자리다. 한국의 근대화 성격을 두고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이 갈리는 지점도 여기다. 식민지근대화론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서 있기도 한 이번 공동학술대회의 좌장을 맡은 연세대 사학과 김도형 교수를 학술대회 전에 만났다. 초여름 땡볕에 땀을 흘리는 기자에서 생수 한 통을 건넨 뒤 김 교수는 “학계에서 일제시대 경제발전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그럼 무엇에서 차이가 나는가.“결국 역사변혁의 주체세력이 누구냐, 또 지금 한국 사회의 과제가 무엇이냐는 문제에 대한 기본생각 자체가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소농사회론의 맹점은 민중변혁 부정 식민지근대화론은 조선에는 서구적 근대화의 계기인 ‘경영형 부농(富農)’이 없고 자급자족적인 ‘소농(小農)’만 있었다는 ‘소농사회론’을 내세우고 있다. 식민지근대화론의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소농사회는 부르주아처럼 서구적 방식의 근대화를 이끌 계층이 없어 강력한 국가권력이 개입합니다. 문제는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이 권력을 1930년대 일제 파쇼 세력으로 보고 있다는 겁니다.”이들은 또 그 이전 갑신정변 같은 개화파의 움직임이나 광무개혁 같은 고종의 근대화 작업을 모두 부정할 뿐 아니라 동학혁명과 같은 민중적 변혁의 가능성도 부인한다. 조선의 변혁가능성 자체를 봉인한다는 점에서 일제가 내세웠던 ‘조선정체론’과도 비슷하다. 이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긍정론과도 연결되어 있다. 마침 식민지근대화론자로 꼽히는 서울대 이영훈 교수는 지난달 29일 열린 교과서포럼 심포지엄에서 박정희 시대에 따라다니는 ‘저임금에 기반해 성장했다.’는 꼬리표를 떼버리자고 주장했다. 임금률과 한계노동생산성의 증가 추이가 비슷해 결코 저임금이 아니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 교수의 논리상 그런 주장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초기 자본주의 단계에서 수탈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야 자본이 축적되니까요. 수탈은 결국 저임금구조입니다. 이건 영국 등 수많은 국가에서 확인된 사례들입니다. 박정희 시대라면 저임금 대상은 노동자·농민이고, 식민시대라면 조선인이 되는 것이지요.”박정희 시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과 계급·계층간 차별을 함께 봐야 하듯, 식민시대에서도 경제성장과 동시에 일본인·한국인간 차별도 들여다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식민시대를 긍정하려면 박정희 시대를 긍정할 수밖에 없고, 동시에 박정희 시대를 긍정하려면 식민시대를 긍정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서 나온다. 한·일 양국 우익 세력의 논리적 친화성에 대한 설명이다. ●식민시대 ‘삶의 질’·‘역동성’ 주목해야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았을까.“역사란 사실 그 자체뿐 아니라 그 사실이 당시 사람들의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따져야 합니다.” 김 교수는 식민지근대화론에서 ‘민족’ 같은 개념이 부정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비판했다.“민족을 절대화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버릴 수는 없습니다. 하다못해 개인이 쓰는 일기에도 ‘나’라는 주인공이 있지 않습니까.”식민지근대화론과 내재적 발전론간 논쟁에 대한 대안으로 김 교수는 다양한 가능성과 그 가능성들이 빚어내는 ‘역동성’에 주목하자고 제안했다.“고종과 개화파와 농민운동 등 조선 내부에서도 근대화 움직임이 있었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일본을 비롯한 외세의 개입도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현실은 힘의 관계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국면마다 이들간 역학관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다이내믹한 상황을 봐야 합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종 보면 근대화 파악 가능 고종은 개명군주였나, 도학군주였나, 절대군주였나. 지난해 교수신문 지상을 통해 6개월여 동안 벌어진 논쟁의 주제였다. 풀어서 말하자면 고종이 근대화를 지향했느냐, 안 했다면 전통적 유교 군주에 불과했느냐 아니면 러시아의 차르와 같은 서구적 의미의 ‘왕’을 지향했느냐다. 이 논쟁은 단순히 고종 개인에 대한 평가로 끝나지 않는다. 고종 시대가 곧 한국 근대의 뿌리였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는 근대화의 싹이 한국에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문제와 직결된다. 이 논쟁의 뿌리는 30여년 전인 1976년 광무개혁 성격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무개혁은 1897년 대한제국 수립부터 1904년 러일전쟁 때까지 고종이 추진한 근대화작업이다. 이 작업이 실체가 있었느냐를 두고 두 입장이 다퉜다. 신용하 교수 등이 주도한 쪽에서는 개화파에 무게를 뒀기에 왕권강화에 초점이 맞춰진 광무개혁에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반면 김용섭·강만길 교수쪽은 외세에 기댄 개화파보다 동학혁명에서 엿볼 수 있는 농민의 자생적 힘을 강조하는 데 무게를 뒀다. 이 관점에서 광무개혁은 나름의 의의를 지닌다. 특히 김용섭 교수는 조선후기 농업경제를 분석, 이때 이미 자본주의의 싹이 있었다는 ‘자본주의 맹아론’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이 주장은 박정희시대 국사교육 강화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 신화라는 비판도 받았다. 시간이 흐른 뒤 서울대 이태진 교수는 조금 색다른 관점을 내놨다. 김용섭·강만길 교수처럼 조선 스스로 근대화하려 했다고 보되 그 힘을 농민에게서가 아니라 고종에게서 찾은 것이다. 이 교수가 고종과 광무개혁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서울대 이영훈 교수 등 최근 부상하고 있는 일군의 경제사학자들은 반대로 대한제국은 파탄 직전이었기에 굳이 살펴볼 가치를 못 느낀다는 입장이다. 조금 비약하자면 고종은 외세의 바람 앞에서도 유교 경전이나 외우던, 혹은 이미 기진맥진한 조선을 부둥켜안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도학군주일 뿐이다. 반면 고종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동시에 과대평가하는 것 역시 근거가 빈약하다는 쪽에서는 고종이 서양의 절대군주제를 지향했다고 보는 지적도 있다. 고종의 지향점을 러시아의 차르로 보고 있는 경희대 허동현 교수가 대표적 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월드이슈-중동에 이는 변화의 바람] 외세 개입… 민주화의 봄 ‘산넘어 산’

    [월드이슈-중동에 이는 변화의 바람] 외세 개입… 민주화의 봄 ‘산넘어 산’

    미국의 이라크 침공 2주년(20일)을 맞는 요즘 중동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왕정과 독재로 점철된 과거의 중동 정세와는 다른 양상이다. 이라크에선 사상 첫 선거로 새 정부가 곧 구성되며 내전의 상처로 얼룩진 레바논에선 ‘피플파워’가 넘친다. 팔레스타인은 선거로 첫 자치정부 수반을 뽑는 등 민주적 개혁을 통해 이·팔 평화협상에 대한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이라크 침공으로 안팎의 비난을 받던 부시 행정부가 그렇게 고대하던 민주주의의 흔적이 곳곳에서 읽혀진다.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도 자유로운 선거방식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동유럽에 확산된 ‘민주화의 봄’으로 보기에는 시기상조다. 들불처럼 번지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같은 변화가 자칫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 가능성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 1월 말 이라크 총선을 ‘베를린 장벽의 붕괴’에 비유했다.2기 집권의 목표를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으로 규정한 부시 대통령과 신보수주의자(네오콘)에게는 의미심장한 전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인 내부로부터의 혁명같지는 않다. 이라크나 레바논, 팔레스타인 모두 미국과 시리아, 이스라엘군의 점령하에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특이하다. 통치기반이 무너지거나 허약한 정권에서만 변화가 시작됐음을 뜻한다. 체코의 ‘벨벳혁명’ 등과 달리 변화의 진원지가 폭발적이지도 않다. 자생력이 부족해 후유증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이라크의 경우 변화의 주도세력은 미국이다.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뒤 선거에 의한 정권을 탄생시켰지만 수니파와 시아파, 쿠르드족 사이의 갈등이 더 커 이라크 민주주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미국은 이라크를 ‘중동의 모델’로 삼으려 하지만 지배구조가 확고한 이집트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파급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정파간 반목으로 정정 불안 레바논은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의 암살사건으로 반시리아 열풍이 불었다. 결국 친시리아계인 오마르 카라리 총리가 사임하고 시리아군이 일부 철수하자 미국은 레바논 국기에 그려진 삼나무에 빗대,‘백향목 혁명’으로 불렀다. 그러나 헤즈볼라가 대규모의 친시리아 시위를 주도하면서 카라리 총리는 10일 만에 복귀했다. 이는 레바논에서의 ‘민주화의 봄’이 친시리아와 반시리아로 양극화, 사상누각으로 끝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시리아가 철군한 배경에도 ‘피플파워’보다는 미국과 프랑스 등의 압력이 더 컸다. 시리아 철군 이후 야기될 권력공백은 레바논을 다시 내전의 수렁에 빠뜨릴 수도 있다. 일각에선 하리리의 암살 배후가 시리아가 아닌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야세르 아라파트의 죽음이 발단이 됐다. 지난 1월 선거로 아바스 정권을 출범시켜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재개했다. 무장투쟁으로 일관한 하마스도 7월 팔레스타인 총선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무쟁투쟁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민주주의의 진전이라는 시각도 있으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을 겨냥, 일정 지분을 확보하려는 정략적 측면이 더 큰 것 같다. ●정권유지를 위한 임시방편적 개혁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복수 후보가 출마하는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했다. 그러나 파라오에 버금가는 그의 권력에는 이상 징후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당이 대선 후보를 낼 수 있다고 했지만 정당의 적법성 여부를 집권당이 심사한다.50년간 일당 독재체제의 여파로 야당 후보의 이미지는 약하고 개표과정에서 조작 등 선거부정의 여지는 충분하다. 진보적 야당인 ‘알 가드’의 아이만 누르 대표가 창당서류 위조 혐의로 체포된 것은 이집트의 민주개혁이 무늬에 불과하다는 점을 입증한다. 입헌군주제인 요르단은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지방정부에 이관할 계획이다. 부시 행정부에 인권 및 민주개혁 대상으로 지목된 사우디아라비아는 단계적인 지방선거를 실시하고 쿠웨이트는 여성에게 참정권을 허용할 방침이다.3년전 계엄통치를 끝내고 해외 망명인사들의 입국을 허용한 바레인은 더 개혁하라는 국민들의 요구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국가 예산지출의 감시와 검열받지 않는 언론의 자유, 독립적인 사법기관,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경찰과 보안군 등에 대한 개혁은 아직 요원하다. 부시 대통령이 ‘자유의 확산’이라고 말했지만, 그보다는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른 생존전략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중동지역의 변화가 민주개혁으로 이어지려면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같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분쟁 끊이지 않는 ‘세계의 화약고’ 중동지역은 ‘세계의 화약고’라 불릴 만큼 다양한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 민족·종교 갈등이 수그러지지 않고 있고 세계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권의 대립은 중동 분쟁의 핵심이다. 역사적으로는 기원전 13세기 무렵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이 이 지역으로 들어오면서 마찰이 시작됐다. 본격적으로 갈등이 시작된 것은 유대인들이 1897년 팔레스타인 지역에 조국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유대인들은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이 지역에서 세력을 키운 뒤 1948년 국가 수립을 선포했다. 이후 이스라엘과 아랍권은 4차례에 걸쳐 전쟁을 치렀다.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지역과 가자지구에서 점진적으로 철수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우면서 타협을 모색하고 있다. 야세르 아라파트 사후 온건파로 분류되는 마무드 아바스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 오르면서 양측은 지난달 휴전에 합의하는 등 해빙 무드를 맞고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무장세력들이 휴전에 반대하고 있고 동예루살렘 지배권,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 문제 등 난제들이 여전히 산적해 있다. 이스라엘은 또 1967년 골란고원 점령 이후 시리아와 긴장 관계에 놓여 있으며,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을 공격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과의 휴전 합의를 계기로 아랍국가들과의 외교관계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종교적으로 중동지역은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어 있다. 전체적으로는 이슬람의 80% 이상이 수니파지만 이란과 이라크 등 일부 국가는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한다. 수니파와 시아파가 나뉘게 된 것은 창시자 마호메트의 후계자 승계 문제 때문이었지만 현재 두 종파의 갈등 원인은 종교적이기보다는 정치적인 데서 찾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라크의 경우 오랫동안 수니파가 집권해오다 이라크전 이후 시아파에 정권을 내준 뒤 수니파가 새 정부 수립에 반대하면서 테러행위를 주도하고 있다. 강대국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사안별로 반목과 협력을 반복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른바 ‘자유의 확산’ 정책에 따라 이라크전을 벌이고 이란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동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원유 수급을 원활하게 하겠다는 속셈이라고 비판한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짙어가는 레바논 내전 암운 레바논이 시리아 군대의 철수 문제로 극심한 내부 분열을 겪고 있다. 시리아의 지원을 받아온 이슬람 시아파 세력과 이스라엘을 등에 업은 기독교 마론파,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해온 이슬람 수니파 등이 이뤄온 세력균형이 깨져 또다시 내전에 휩싸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가 탄생때부터 갈등 배태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의 암살로 급류를 탔지만 갈등의 씨앗은 레바논 탄생과 더불어 배태된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국제연맹의 결정에 따라 시리아 영토였던 레바논 땅에 진주한 프랑스군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던 마론파를 중심으로 이슬람 수니파·시아파 등을 규합해 독립국가 건설에 나섰다. 1943년 레바논 독립을 앞두고 마론파는 이슬람 진영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대통령은 마론파, 총리는 수니파, 의회 의장은 시아파 몫’이라는 권력분배안을 마련했고 의회 의석은 인구 구성 비율에 따라 기독교와 이슬람 진영을 6대5 비율로 나눴다. 그런데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끊임없이 몰려들면서 이슬람교도가 증가하자 마론파와 이슬람 진영간의 갈등이 고조됐다. 급기야 1975년 내전이 발발했고 마론파를 지원하는 이스라엘과 이슬람 진영을 지지하는 시리아가 개입하면서 15년간 계속된 내전은 10만여명의 사망자를 내고 1990년에야 끝났다. 마론파와 이슬람 진영의 의회 의석수를 같게 하는 등 새로운 권력분배안도 마련됐다. 외국군도 철수키로 했지만 시리아를 등에 업은 역대 레바논 정권은 시리아의 철군을 반대했다. ●시리아 철군싸고 양진영 세대결 최근 베이루트는 마론파가 이끌고 수니파 등이 가세한 반시리아 시위대가 세를 과시하면 시아파 정치조직이자 무장단체인 헤즈볼라가 친시리아 시위로 맞서는 등 ‘장군 멍군’ 행태를 연출하고 있다. 지난 8일 친시리아 진영이 50만여명을 동원하자 반시리아 진영은 14일 100만명가량을 불러모았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인구는 불과 370만명에 지나지 않는다. 국제사회는 19일 테르예 로에드 라르센 유엔 중동특사가 코피 아난 사무총장에게 보고하는 시리아의 구체적 철군안 내역과 하리리 암살사건 조사를 마친 유엔 진상조사단의 결과보고서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부시, 또 말실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진 미·러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러시아를 ‘군주제’로 표현했다가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해프닝을 빚었다. 그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석유수출국기구(OPEC)’로 부르는가 하면 ‘1월(January)’을 ‘6월(June)’이라고 말하는 등 잦은 말실수로 유명하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민주주의 제도에 대해 취한 결정들과 관련해 한 얘기들이 만족스러웠느냐.”는 질문에 “중요한 것은 푸틴 대통령이 얘기한 군주제에 관한 발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푸틴이 러시아 민주주의에 대해 한 말은 “러시아가 전체주의 시대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전체주의’를 ‘군주제’로 혼동한 셈이다. 푸틴은 앞서 한 기자가 “러시아와 미국의 체제는 네덜란드 같은 나라와 비교할 때 완전히 민주적이라고 할 수 없다.”며 질문하자 “네덜란드는 어쨌든 군주제다.”라고만 했었다. 부시 대통령은 ‘군주제’라는 표현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자 “어쨌든 이해했죠?”라며 멋쩍게 웃었고 “여행 말미이다 보니…. 아무튼 그(푸틴)는 민주주의에 대해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나는 그것에 감사한다.”고 강조했다. 부시는 말실수에 앞서 푸틴을 “내 친구” “블라디미르”라고 부르며 친근감을 표시했고 “그는 민주화를 절대적으로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지난 4년 동안 지내본 바 그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고종의 ‘을사조약 거부’ 日도 알았다”

    “고종의 ‘을사조약 거부’ 日도 알았다”

    올해는 을사조약 체결 100년이 되는 해다. 우리에게 을사조약은 외교권을 강탈당한 ‘늑약’(勒約·강제로 체결한 조약)이지만 일본에서는 여전히 이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남아 있다. 국제법적으로 상세히 따져야 한다는 논리를 갖다 대지만 사실 을사조약의 불법성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던 것은 일본 그 자신이었다. 국제법적인 측면에서, 체결 된 조약의 유·무효를 따지기 위해서는 한쪽 당사자가 ‘강박(强迫)에 의한 의사표시’를 했는지 가려야 한다. 그러나 강박의 개념에도 차이가 있다. 을사조약의 경우 강박을 고종황제 개인에 대한 압력인지 대한제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압력인지, 물리적 협박인지 아니면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포함시켜야 하는지 등을 두고 미묘한 의견차이가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2일까지 하와이 카우아이 리조트 컨벤션 홀에서는 남북은 물론, 중·미·일 학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을사조약 100년 하와이 컨퍼런스’가 열려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 컨퍼런스의 주제가 바로 “한-일간 1905년 ‘협약’은 강박으로 이뤄졌는가?”이다. 서울대 이태진 국사학과 교수는 고종황제가 조약체결에 거부감이 없었다는 하라미 다마키 교수의 최근 주장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하라미 교수는 고종황제의 공식일기인 일성록(日省錄)을 비롯한 각종 기록에 ‘황제 지시에 따라 협상했다.’는 을사5적의 상소문이 실렸고 황제의 비판적인 코멘트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적극적 동의는 아니었다 해도 적어도 반대는 안했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교수는 조약체결 당시 일성록 같은 황제 관련 기록물의 작성권한이 대부분 일본인들에게 넘어갔다는 점을 들어 고종황제의 생생한 목소리가 애초부터 실릴 수 없다고 반박했다. 북한 대표로 참석한 일본 조선대학 강성은 교수는 을사조약을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의 ‘복명서’를 추적했다. 복명서에서 이토는 고종이 조약체결에 동의한 것처럼 기록했지만 당시 이토의 비서실장 스즈끼 게이로쿠가 작성한 초안은 달랐다. 초안에는 ‘한국황제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선명하고 이를 가필해서 수정한 흔적까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애초부터 고종황제가 조약을 거부했고 일본도 고종황제가 거부했다는 사실이 나중에라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증거다. 일본측 참가자 가운데 한명인 아이치현립대 고쿠분 노리코 교수는 조약체결 당시 대한제국의 국내법제와 법사상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과연 고종황제의 권한이 절대적이었느냐는 문제의식이다. 즉 갑오개혁과 같은 근대적 개혁 조치 뒤에는 더 이상 전근대적 절대 군주제 시절과는 다른 정치체제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종황제가 자유의사가 아닌 강박에 의해 조약체결에 동의했는지 여부와는 별도로, 그럴 만한 권한 자체가 없지 않았느냐는 지적이다. 서울대 김기석 교수는 고종황제가 적극적으로 조약무효화 운동을 벌인 사실을 들어 우회적으로 강박을 증명했다. 고종황제는 조약을 체결한 뒤 목숨을 걸고 밀사를 미국과 러시아 등 당시 강대국들에게 파견했다. 밀사의 자살로 유명해진 헤이그밀사파견도 그 중 하나다. 미국에 밀사로 파견됐던 헐버트 박사가 1942년 출간한 ‘한국자유회의’에서 “황제가 보이신 불멸의 충의를 영원히 간직하라.”고 언급한 것도 고종황제의 끈질긴 노력을 뒷받침한다. 을사조약의 무효화 문제는 동북공정의 목표라는 간도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을사조약이 무효면 대한제국을 대신해 일본이 중국과 체결했다는 간도협약은 당연히 무효가 된다. 따라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대한제국과 상해임시정부를 계승했다는 점이 명확해지면 간도영유권 문제는 국제법적으로 분명한 결론에 다다른다. 물론 상해임시정부의 대표성 문제, 조약의 무효화가 곧 원상복귀를 뜻하느냐에 대한 국제법적 해석과 이에 대한 국제정치적 현실의 문제는 따로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시아누크 캄보디아 국왕 양위

    노로돔 시아누크(82) 캄보디아 국왕이 7일 양위(讓位)를 발표하며 후임 국왕 선출을 요청했다. 중국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시아누크 국왕은 이날 오전 왕자이자 의회 의장인 라나리드를 통해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건강상 이유를 들어 양위 방침을 밝히고 9인으로 구성된 국왕선출위원회를 발족할 것을 요구했다.후임 국왕에는 시아모니(51) 왕자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인 양위 발표 배경이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약해지고 있는 것에 대한 실망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7월 캄보디아 총선 이후 정국이 혼란에 빠지자 시아누크가 중재에 나섰지만 실패하면서 정치적 타격을 받았다.지난 1월 진료를 핑계로 캄보디아를 떠난 이후 중국과 북한에 머물러왔다.그는 지난 6일 귀국하려 했지만 야당이 반대하자 귀국을 취소했다. 시아누크의 정치 역정은 파란만장하다.1941년 조부인 모니본 국왕 사망 뒤 19세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했다.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55년 왕위를 아버지 수라마리트에게 넘겨주고 총선에서 승리,총리로 취임했다. 그는 70년 우파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중국으로 망명했다.크메르 루주가 집권한 1975년 귀국해 국가원수가 됐지만 79년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한 뒤 다시 중국으로 피신,망명정부를 세웠다.오랜 망명생활 끝에 91년 귀국,93년 캄보디아 헌법이 입헌군주제로 바뀌면서 왕좌에 복귀했다.시아누크는 특히 고 김일성 북한 주석과 각별했다.김 주석은 시아누크를 위해 평양에 호화저택과 경호원까지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책꽂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이유명호 지음,웅진닷컴 펴냄) 최근들어 자궁을 드러낸 ‘빈궁 마마’가 늘고 있다.자궁암보다 오히려 자궁섬유종이나 골반통,자궁탈출증 등으로 자궁적출술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과연 자궁을 떼어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여권운동 한의사인 저자는 자궁적출술이 무자비하게 자행되고 있다고 경고한다.“여자의 몸은 남자에겐 없는 자궁이란 당당한 장부가 있어 6장6부”라는 게 저자의 말.여성 힘의 근원인 자궁을 포함,여성의 몸 전반에 대한 건강 정보를 담았다.1만 3000원. ●악마와의 동침(로버트 베어 지음,곽인찬 옮김,중심 펴냄) 전체 인구가 1700만명인 사우디아라비아엔 왕족이 3만명이나 된다.왕자들은 매달 최하 1만9000 달러에서 최고 27만 달러에 이르는 왕족수당을 받는다.왕족들의 사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CIA 공작관으로 중동에서 근무한 저자는 사우디 왕족의 타락상,워싱턴과 사우디 왕가의 추악한 거래,사우디가 테러조직의 본산이 된 이유 등을 밝힌다.저자는 워싱턴은 사우디 왕족들의 ‘도둑정치’를 권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악마에 대해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침묵의 동의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1만 2000원. ●아메리고(슈테판 츠바이크 지음,김재혁 옮김,삼우반 지음) 신대륙에 먼저 발을 들여 놓은 사람은 콜럼버스였다.하지만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1492년 자신이 본 대륙을 인도의 일부라고 여겼고 바하마 제도의 과나하니와 쿠바를 중국이나 인도 쯤으로 생각했다.반면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직접 포르투갈 탐험대와 함께 대륙에 도착,그곳이 완전히 새로운 세계임을 확인했다. 이 책은 신대륙이 ‘아메리카’란 이름을 갖기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역사의 ‘우연과 오류의 미스터리’를 풀어간다.오스트리아 출신인 저자는세계 3대 전기작가로 꼽히는 인물.8000원. ●카이사르의 죽음(마이클 파렌티 지음,이종인 옮김,무우수 펴냄) 임호섭 지음,파르마 펴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암살은 로마 역사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됐다.이 사건으로 로마는 내전으로 치달았고,그나마 희미하게 남아있던 민주제는 완전히 파탄에 이르렀으며 뒤이어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는 군주제가 확립됐다.그 후 군주제는 십수 세기 동안 서유럽의 보편적인 정치제도로 이어져 내려왔다.노암 촘스키·하워드 진 등과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진보주의 사상가로 꼽히는 저자는 로마의 원로원 의원들이 왜 동료 귀족이며 뛰어난 통치자인 카이사르를 암살했는지 추적한다.1만원.˝
  • [열린세상] 북한의 민주화를 위하여

    지난주 안식년 연구차 체류하고 있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정치학과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북한문제에 관한 특강을 하였다.강연에서는 지난해 8월과 지난 3월 두만강 북·중 접경지역에서 탈북자들을 만나 조사한 자료와 지난 7월과 9월 2차례에 걸쳐 평양과 인근 지역을 방문한 경험들을 디지털 카메라 사진과 함께 발표하였다.최근 북한에 대한 관심 탓에 1시간 강연에 이어 40분의 질의 응답도 시간이 부족하여 정작 북한 핵문제는 내년 2월에 보다 큰 규모의 학술회의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미국의 국제정치학은 현실주의 이론을 중심으로 국제문제를 분석 설명하고 예측하였다.현실주의에 대해 이상주의는 도덕과 법 그리고 제도에 의한 평화를 구축하고자 끊임없이 상호 의존과 자유주의적 대안을 제시해왔고,현실주의 역시 체제의 균형과 억제이론을 중심으로 신현실주의의 비전을 제시해왔다.그러나 이 모든 이론들이 물질적 요소를 중심으로 국가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의 산물인 냉전의 불안정한 평화는 설명했지만 소련 및 동유럽사회주의체제의 해체로 도래한 탈냉전의 새 시대를 예견하지 못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지 14년이 지났건만 국제정치학자들은 아직도 그 당시의 충격과 자괴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코소보 내전 등 민족분쟁이 지구촌 곳곳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9·11사건 이후 대 테러전쟁은 조만간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북한 핵문제는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의 최대 안보 위협으로 등장하고 있는 현실에서 학자들의 고민과 상실감은 그만큼 더 깊어진 것 같다.국내 정치적 요소가 새삼 강조되고 보다 정교한 정책결정과정이론이 개발되는 동시에 정체성과 가치관,문화와 상호작용 등을 중시하는 구성주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으나 요동치고 있는 국제사회를 명쾌히 규명하기엔 역부족이다.이러한 지적 풍토에서 현존하는 마지막 스탈린식 체제이자 동양적 전제군주제 요소가 가미된 북한체제는 최적의 연구 대상이 아닐 수 없다.더욱이 현실주의와 네오콘의 영향을 받고 있는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민주주의 평화론에 기반한 민주화 정책추진을 예고한 상황이어서 향후 북한문제는 더욱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될 전망이다. 우리 국내에서 북한문제는 냉전적 대결과 전쟁 억제 등 안보차원과 영토적 통일에 대한 관심에서 민족화해와 교류협력 등 탈냉전의 남북관계 개선에 초점을 맞추어 다루어져왔다.굳이 국제정치이론으로 설명하자면 신(新)현실주의에서 신(新)기능주의로 전환되어 정책이 추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햇볕정책이 시행된 지 6년이 되도록 아직까지 한반도에는 군사적 긴장상태가 상존하고 있으며,체제로서의 북한 수령독재는 유지되고 있다.국제정치이론이 냉전 해체에 기여하지도,예측하지도 못했듯이 우리의 학계나 정부도 북한체제의 향방에 대해 아무런 예측이나 기여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보다 북한 지도층이나 사회 전반의 정체성과 문화를 체험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황장엽 비서는 망명 이후 지금까지 북한문제의 해결책으로 북한사회의 민주화를 제시하고 있다.그가 지난달 워싱턴을 방문하여 그의 주장을 되풀이했지만 국내외의반응은 한물간 망명객의 넋두리 정도로 흘려버린 것만 같아 안타깝다. 북한 군사력은 남한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거나 북한 경제력이 남한의 20분의1도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전쟁불가론을 주장하는 햇볕론자들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냉전시기 현실주의론자들의 기본 가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신남북관계를 주도한다는 우리 정부가 북한의 변화 방향을 중국이나 베트남식 개혁으로 상정하고 있다면 남북관계와 상관없이 북한 지도부가 중국이나 베트남의 경험을 배우면 그게 더 빠른 길이다.체제변화와 관련한 규범과 가치,그리고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우리 정부는 본격적으로 북한 민주화에 대한 황장엽 비서의 제안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으며,학계도 이와 관련한 체계적 연구를 통해 냉전 해체 이후 미국 국제정치학계가 겪었던 자괴심을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 호 열 고려대교수 비교정치학
  • [사설] ‘대북송금은 통치행위 아니다’

    대북송금이 통치행위인 남북정상회담과 주관·객관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지만 송금 과정에서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부분까지 면책되는 것은 아니라는 법원의 판결이 내려졌다.대북송금 의혹사건 1심 재판부는 어제 이 사건으로 기소된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특별검사팀과 마찬가지로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 의미와 민족 화해,군사적 긴장 완화,이산가족 만남 등 남북관계 진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했다.하지만 사법적 심사 자제의 대상인 통치행위에 부수되는 대북송금 행위까지 통치행위의 범주에 드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대북송금 과정에서 불법성이 개입된 만큼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우리는 지난 4월 특검이 수사에 착수했을 당시에도 논란이 됐지만 남북정상회담의 숭고성에도 불구하고 적법 절차 준수와 사회적 합의,투명성 등을 주문한 법원의 판단에 주목한다.법원의 지적처럼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비밀리에 추진된 대북송금은 법치주의와 호혜평등에 어긋난 남북 교류,남북관계에 대한 냉소적 비판,국민적 의혹과 대북경협 수행 부담 등 적잖은 부작용을 남겼기 때문이다.법원이 전제군주제의 잔재로 일컬어지는 통치행위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위법행위자에 대해서는 단죄한 것도 이러한 부작용을 감안한 판단으로 풀이된다. 우리는 법원 판결을 계기로 대북송금을 둘러싼 소모적인 보·혁 논쟁을 종식시키는 한편,남북관계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틀을 다져나가야 할 것으로 본다.민족의 운명이 달린 통일 문제를 정권 이해의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통일을 향한 길이 멀고도 험난하지만 국민의 합의가 바탕이 돼야 한다는 게 이번 판결의 교훈이다.
  • 세계인 - 우리는 이렇게 산다 / 포토맥江 있어 살맛나는 워싱턴

    |워싱턴 백문일특파원|워싱턴의 젖줄인 포토맥(Potomac) 강에는 ‘고수부지’라는 게 없다.심야의 컵 라면과 ‘소주 파티’라는 낭만적 요소도 찾기 어렵다.휘황한 유람선이 떠 있는 것도 아니다.그곳에는 ‘흐르는 강’만 있을 뿐이다.그러나 미국인들은 늘 포토맥을 찾는다. 포토맥이 한강과 가장 다른 점은 콘크리트의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치수(治水)를 위해 강을 난도질하기 보다 자연의 생명력을 그대로 간직했다.인공적인 요소가 가미됐다면 19세기 초반 본류를 따라 300㎞에 이르는 운하를 만든 게 전부다.지금은 운송 목적이 아니라 카누와 보트·하이킹 등을 위한 일종의 ‘수상레저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부유층 아니라도 카약·요트 즐겨 메릴랜드 록빌 지역에 사는 존 휴(14)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린다.이달 초 카약 강습을 신청한 뒤 포토맥강의 샛강인 세네카에서 물에 젖는 연습을 했다.카약이 뒤집혀도 바로잡는 법,노 젓는 방식 등을 익혔다.그러나 ‘실전’에 돌입하진 못했다. 지난 주말엔 비가 오는데다 바람까지 불어 연기됐다.당초상류쪽 급류에 도전할 생각이었으나 이번주에도 날씨가 허락하지 않으면 운하에서라도 카약을 띄울 생각이다.강습료는 인원에 따라 10시간 기준에 90달러에서 160달러까지 다양하다. 포토맥강에는 카약 뿐이 아니다.상류에서 급류타기가 겁나면 운하에서 카누와 보트를 즐길 수 있다.하류 지역인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부유층이 아니더라도 요트를 즐길 수 있다.2군데 요트 스쿨이 있어 10시간에 강습료 215∼275달러를 내면 기술을 익히고 바다로 직접 항해할 수도 있다. 부유층들이 밀집된 메릴랜드 포토맥에서 리버 로드를 타고 서쪽으로 10분쯤 가면 ‘스와니시 록’이란 곳이 나온다.숲에 가려 도로에선 잘 보이지 않지만 50m만 강쪽으로 들어가면 강과 운하에 접한 공원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자전거와 카누를 빌려준다.1시간에 6달러에서 10달러까지다.하루종일 빌리려면 20∼22달러를 내야 한다.카누 대여점을 운영하는 크리스티나는 “포토맥 강변에는 자전거와 카누 등을 빌려주는 곳이 7∼8군데 된다.”며 “주중이나 주말에 관계없이 하루 30명이상 찾는다.”고 말했다. 우체국 직원인 피터 듀크(27)는 주말마다 미니 마라톤에 나선다.운하를 따라 시내 조지 타운에서 샛강인 세네카까지 비포장도로 36.8㎞를 달린다.완주할 때도 있지만 보통 10㎞ 안팎을 뛴다고 한다. 그는 “한번 완주하면 몸무게가 2㎏ 이상 준다.”며 “월 50∼100달러 가까이 되는 시내 헬스 클럽을 다닐 필요가 없다.”고 했다.때로는 자전거로 달리며 겨울에는 스키로 ‘크로스 컨트리’를 즐기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주말에는 강변에서 바비큐 파티를 낚시를 좋아하는 러시아 출신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유진(41)은 종종 가족과 함께 샛강인 세네카를 찾는다.석쇠로 스테이크를 굽는 동안 12살짜리 아들과 함께 그물 낚시를 즐긴다.당국으로부터 특별히 낚시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지역이기 때문에 부담없이 하루를 보낸다. 공원에는 식탁과 바비큐를 위한 드럼통 모양의 석쇠가 준비돼 있다.고기와 음식 및 불이 잘 붙는 ‘목탄(charcoal)’만 가져오면 된다.목탄은 미국 내 모든 잡화점에서 판다. 그러나 공원에서 맥주를 비롯해 어떠한 술도 마실 수 없다.한국 사람들이 가끔 술을 마시다 공원 내 경찰에 적발돼 벌금을 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일부는 요리용이라고 ‘위기’를 모면하기도 한다. 포토맥강에는 본류와 지류를 따라 크고 작은 공원들이 있다.한국처럼 ‘땡볕’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한낮에도 숲에 가려 햇볕이 부족할 정도다. 주말이면 강변의 공원들은 바비큐를 즐기는 나들이 행렬로 붐빈다. 웬만한 도로에서 강 쪽으로 난 길로 들어가면 대개 공원들이 나온다.우리처럼 대형 주차장 따로,휴식 장소 따로가 아니다.자동차 문화가 발달된 만큼 주차장에서 10m만 떨어져 피크닉을 즐길 수 있도록 돼 있다. 워싱턴 시내에는 포토맥 공원이 있다.서울의 여의도 같은 지역이지만 상업건물은 한 채도 없다.동쪽과 서쪽으로 나눠 골프장과 피크닉 장소가 들어섰다. 우리로서는 시내에 골프장이 있다는 자체가 믿기 어렵다. 주중이라도 웃통을 벗고 달리는 사람,낚시대를 드리운 사람,단체로 야유회에 나온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루즈벨트 섬에도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들로가득하다. ●곳곳에 역사·문화유적 가득 포토맥의 관광명소인 ‘대폭포(great falls)’는 차 1대당 5달러를 받는 유료공원이다.낙차가 큰 게 아니라 급류지역이다.나이아가라와 같은 커다란 폭포를 기대했다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곳은 폭포가 아니더라도 가족 단위의 하이킹과 운하시대 유람선의 출발지역으로 유명하다. 포토맥 곳곳에선 과거의 ‘숨결’을 느낄 명소가 많다.버지니아와 메릴랜드 사이를 상업용 뗏목으로 처음 연결한 화이트 페리 지역은 수영도 가능하며 여전히 바지선이 차량을 싣고 강을 오간다. 불명예스런 일도 감추지 않는다. 워싱턴 남쪽 포토맥강이 체사피크만과 만나는 지점에는 ‘포인트 룩아웃’이라는 명소가 있다.남북전쟁 당시 이곳에는 군인 교도소가 세워졌다. 5만 2000명이 2년간 수용됐으나 이 가운데 3384명이 죽었다.오염된 물과 식량 부족 때문이다.지금은 당시의 상황을 재현시킨 건물이 들어섰다.하류에는 워싱턴 대통령이 살던 마운트 버넌이 관광객을 맞는다. mip@ ■포토맥강 소유권 분쟁 |워싱턴 백문일특파원|워싱턴 일대에 대동강 물을 판 ‘봉이 김선달’이라도 나타난 것인가.포토맥강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메릴랜드와 버지니아가 ‘물전쟁’을 벌이고 있다. 양측의 주 경계로 삼은 포토맥 강에 대한 소유권 시비는 미국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고 끊임없이 반복됐다.그러나 법정공방으로 치닫기는 이번이 처음이다.1996년 버지니아가 포토맥강의 한복판에 취수원 파이프를 박으려 한 데에서 전쟁은 비롯됐다. 버지니아는 현재 강 기슭에서 물을 끌어쓰고 있다.그러나 강에 접한 페어팩스 카운티가 급성장,식수원이 부족해졌다.게다가 강 기슭에서의 취수는 모래와 나뭇잎 등 부유물이 포함돼 수질이 나쁘다는 평판을 얻자 강 한복판에서 물을 뽑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자 메릴랜드는 ‘소유권 침해’를 내세워 파이프 건설 계획을 불허했다.관행적으로 메릴랜드의 허가를 받아 온 버지니아는 차제에 그동안의 불만을 해소하겠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메릴랜드는 1632년 영국왕 찰스 1세가 볼티모어 총독에게 포토맥강을 메릴랜드의 영토로 인정한 문서를 소유권의 기원으로 본다.문서는 강의 복판 뿐 아니라 버지니아 쪽 기슭까지를 메릴랜드의 영토로 지정했다. 버지니아는 1785년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중재한 합의문을 강조한다.당시 항해권 및 세금 부과 등과 관련해 소유권 분쟁이 재연되자 워싱턴 대통령은 포토맥강은 메릴랜드 소유이지만 버지니아에 방파제나 다른 건설물 등을 세울 수 있도록 정리했다. 버지니아는 이에 근거,취수원 파이프의 설립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볼티모어 연방순회 지법도 2001년 버지니아의 손을 들어줬다.이에 따라 1000만달러짜리 취수원 공사가 진행돼 이번 여름이면 끝날 예정이다. 그러나 버지니아는 메릴랜드의 소유권 주장을 불식시키겠다는 각오로 대법원의 심판까지 청구했다.강의 소유권을 절대 군주제의 문서로 합법화할 수 있느냐는 것.대법원은 이같은 청구를 받아들여 심리를 열기로 했으나 날짜는 정하지 않았다.해묵은 논쟁이 일자 주민들은 시간과 예산 낭비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양측은 협상을 시작했으며 최근 워싱턴 시장의 중재로 법정 청문회 이전에타협점을 찾기로 원칙적 합의를 봤다. 그러나 앙금은 가시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버지니아의 취수는 허락돼야 하며 버지니아가 포토맥의 ‘이용권’과 관련 메릴랜드의 통제를 받지 않는 새로운 경계가 설정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이 경우 메릴랜드가 소유권을 갖더라도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 [외교관 통신] 전대완 駐태국 공사

    국내와 해외를 오간 세월도 20년이 훌쩍 넘었다.그런데,왕을 왕같이 모시고 사는 나라는 태국이 처음이다.오늘 같은 대명천지에 ‘고리짝 같은’ 왕인가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금방 깨달았다.들여다 보면 볼수록 왕의 존재,왕가의 역할이 충분하게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아하,이렇게 해서도 사회가,국가가 성립될 수 있구나 싶고,그런 만큼 감탄이 절로 난다. 태국 왕실은 국민적 존경과 사랑을 향유하고 있다.일반적으로는 왕실부터 봉건·전제적 지배에 강한 미련을 갖기에 국가 근대화에 장애가 되기 십상인데,태국 왕실은 오히려 근대화를 주도했다.서양의 선진 문화와 문명을 받아들이고자 왕실이 먼저 해외유학에 나섰고 엘리트층에게도 널리 권장했다. 국민들은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독립과 주권을 보전할 수 있었다는 데 무한한 자긍심을 느끼며,그 만큼이나 왕실에 대한 신임도 두터워질 수밖에 없다.물론,이제는 왕이 절대적 권력을 휘두를 수가 없다.1932년 청년장교와 관료를 중심으로 일어난 민주개혁 쿠데타로 입헌군주제가 도입됐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왕의 권위는 날로 하늘을 찌르고 있다. 쿠데타 세력이 왕의 지지를 못 받으면 쿠데타 자체가 무산될 정도다.왕이 총리를 불러 앉혀 놓고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훈계를 한다.이런 권위는 어떻게 나올까.바로 왕이 나라 경영에 알게 모르게 구심역할을 하고,국민을 위해 부단히 봉사하는 까닭이다. 현 푸미폰 국왕,라마 9세는 1967년 이래 외국방문을 일체 중단하고 농촌복지사업 등,국민후생 향상에 온 마음을 바치고 있다.끊임없이 농촌지역을 방문한다.홍수 방지,조림,식수 확보,수자원오염 방지,유전자변형(GMO)식품에 대한 경각심 고양 등,어렵고 가려운 부분에 해결책을 제시한다. 정부에다 그 해결을 위임하는 게 아니다.왕가가 직접 사업을 펼치고 선도한다.크고 작은 이런 사업이 2000개가 넘는다.사업이 일정 궤도에 오르면 정부에 넘긴다.국왕뿐만 아니다.전통 실크산업 육성은 왕비가,비행 간호단 운영은 왕의 누나가 하고 있다.소수민족 보호와 교육사업은 이미 타계한 왕의 모친과 부친이 했고,지금도 왕실에서 하고있다.모양만 내는 게 아니다.실제 땀흘리며 현장에 임한다.진실은 알려지게 마련,국민들이 따르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하겠다. 태국은 얼핏,날씨는 더워 짜증만 나고 거리에는 환락이 넘치며,국민은 느릿느릿 긴장감이 없어 보인다.정부는 연신 바뀌어 리더십이 약한 것은 아닌지,사회는 잘 견디어 나갈까 하는 의문을 한두 번은 갖게 마련이다. 그러나 천만의,만만의 의문이다.왕과 왕실이 나서서 국가중심을 위에서부터 반듯하게 잡고,국민은 절대적인 불교신앙으로 아래에서부터 흔들림이 없으며,지도층은 국제화되고 실질을 숭상하는 두터운 전문인력으로 중간에서 기둥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때때로 국왕은 국민이,또는 정부가 뒷심 부족하다 싶으면 ‘귀한 말씀’을 내리곤 한다.정부와 국민은 귀담아 듣고 마음에 담는다.이 얼마나 좋은 화음인가.우리 사회에도 이렇게 정신적으로 군림하는 존재가 있었으면 싶다. ●전대완(全大完·49)공사 약력 서울대 불문학과,외시 12회,핀란드 2등서기관,러시아 1등서기관,동구2과장,중구과장,뉴욕부총영사
  • EBS 12부작 ‘조지형의 미국사‘ 기획특강,역대 미국대통령 리더십 분석

    EBS는 12부작 연속 기획 특강 ‘조지형의 미국사를 통해 본 대통령의 리더십’을 3일부터 낸다.오는 20일까지 매주 월~목요일 오후10시에 방송된다.강의에 나설 조지형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는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미국법제사를 전공했다. 조교수는 워싱턴,링컨,루즈벨트,레이건,클린턴 등 역대 미국 대통령과 그들의 리더십을 시대상황과 연관지어 분석한다.성공한 대통령의 리더십,개인적인 특성과 리더십의 상관관계,미국 정치사에 전통으로 남은 리더십,대통령과 국가통합 등 크게 4가지 주제로 나누었다. 1강 ‘대통령직의 탄생’에서는 본격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의 사례를 살피기에 앞서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미국민에게 갖는 의미를 조명한다. 조교수는 미국인들에게 대통령선거전이 어떻게 축제로 발돋움할 수 있었는지 역사를 더듬어 설명한다.군주제를 거부하고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제를 창안한 만큼 대통령직이란 미국 혁명의 산물이라는 것이다.독립선언서와 미국헌법을 통해 대통령제가 어떻게 생겨났으며,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과 대통령직 수행이 정치·역사·문화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본다. 2강 ‘미국 건국의 아버지’(4일)에서는 후대의 귀감이 되고 있는 조지 워싱턴,3강 ‘자유의 제국’(5일)에서는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4강 ‘보통사람의 시대’(6일)에서는 앤드류 잭슨의 낭만적 입신출세기를 곁들인 리더십을 소개한다. 특강은 10일 ‘에이브러햄 링컨,위대한 해방자’,11일 ‘시어도어 루즈벨트와 혁신주의 대통령’,12일 ‘우드로 윌슨과 세계평화의 이상’,13일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뉴딜정책’,17일 ‘존 F 케네디와 뉴 프런티어’,18일 ‘리처드 닉슨과 한계의 시대’,19일 ‘로널드 레이건과 냉전체제의 종식’,20일 ‘21세기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과 빌 클린턴’으로 이어진다. 권의정 PD는 “노무현 당선자의 대통령 취임에 맞춰 대통령의 리더십을 생각해보고자 했다.”면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 미국 대통령 11명을 미국사에 접목시켜 올바른 리더십을 조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
  • 책/ 살육과 문명-서구는 전쟁에 이길 수밖에 없었다?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9가지 전투를 문화사적으로 그린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주장을 하는 지은이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하는 궁금증부터 든다. ‘서구는 왜 승리했는가’란 제목으로 프롤로그를 시작한 것에서 보듯 서구는 군사적으로 비서구지역을 제패했다는,비(非)서구인들에겐 매우 오만해 보일 수 있는 전제 하에서 저자는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저술의도에 대해 ‘서구인들은 어떻게 자신의 문명을 이용하여 다른 문명권 사람들을 죽이는 데 그토록 능숙했을까?’‘어떻게 자기들은 죽지 않으면서 그토록 난폭한 전쟁을 벌일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여기에 덧붙여 ‘과거와 현재,미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군사활동에 관한 이야기는 결국 용맹스러운 서구의 무력에 대한 탐구나 마찬가지다.’라는 서구의 ‘절대 우월주의’로 비칠 수 있는 표현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서구적 전쟁방식’‘전투의 본질’등을 쓴 전쟁사가.지금까지 그리스·로마시대의 전쟁을 주제로 책을 많이 썼다. 그러나 이번 책에서 보듯 그는 세계사의 승리자는 서구이며,그것은 필연적 귀결에 의한 것이란 서구 우월적 시각을 지닌 대표적 지식인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에서 9가지 전투를 통해 서구 군대 승리의 필연성을 주장한다.먼저 서기전 480년 페르시아와 그리스가 맞붙은 살라미스해전서 그리스가 승리한 요인에 대해 자유를 존중하는 문화의 승리로 든다.즉 그리스인들은 전쟁의 향방이 주로 절대적 가치의 문제에 달려 있다고 믿었으며,개개인의 자유에 가치를 둔 그리스 군대가 병력·경제력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페르시아군대를 물리쳤다는 것이다. 서기전 216년 한니발의 카르타고 군이 로마군을 대파했으나 1년 뒤엔 로마군이 같은 장소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에 대해서도 비슷한 잣대를 댄다. 즉 법치체제를 갖춘 로마군은 1년만에 완전히 새로운 군단을 만들어 나선 반면 전제군주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카르타고는 1차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병력을 충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한니발은 수만명의 강인한 군사를 거느렸지만 로마의 공화주의와 시민군국주의라는 얼굴 없는 제도와 마주하게 됐으며,시민이야말로 가장 치명적 학살자였다고 덧붙인다. 이러한 분석은 1942년 벌어진 일본과 미국의 미드웨이 해전에서도 이어진다.당시 미군은 개인주의자,일본군은 사고력 없는 자동기계였다며 미국의 승리는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제도 전체에 뿌리를 두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러나 미국의 베트남전 패배 원인에 대해선 다소 모순된 논리를 들이댄다.즉 자기비판에 충실한 전통에 편승해 미국 언론은 전쟁의 부도덕성을 부추기고 베트남을 동정하는 보도를 집중 내보내면서도 북베트남의 만행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함으로써 미국 전력을 붕괴시켰다는 점,베트남 전투는 민간인과 구분이 안되는 적,정글,게릴라작전 등으로 전통적 타격전이 불가능했다는 점을 주장한다. 사회·문화적 체제,가치의 문제로 전투의 향방이 갈렸다는 앞서의 주장에서 많이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3만 2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
  • 단군주제 남북 공동학술대회 연다, 개천절날 평양서 전문가들 참여

    단군을 주제로 한 남북한 공동학술회의가 개천절인 새달 3일 오후4∼7시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개최된다고 남한측 단군학회(회장 윤내현)가 23일 밝혔다.이번 ‘단군 및 고조선에 관한 력사학자들의 공동 학술토론회’는 북한사회과학원 조선력사학회(회장 허종호)와 단국학회가 공동주관한다.대회 공동의장은 북한측 허종호 회장과 남한측 김정배 단군학회 명예회장(전 고려대 총장)이 맡는다. 학술대회는 북한측 정창규 력사연구소 소장과 남한측 윤내현 단군학회장의 사회로 진행되며 북한측에서 손영종(사회과학원) 남일룡(김일성종합대학) 한선홍(김형직사범대) 서국태(사회과학원) 김유철(김일성종합대학) 박사 등 전문가들이 발표자로 나선다. 남한측에서는 이형구(선문대) 최광식(고려대) 정영훈(정문연) 윤내현(단국대) 김상일(한신대) 교수가 주제별 발표를 할 예정이다. 남북한 양측은 학회가 끝난 뒤 공동보도문을 발표하며 학회 발표내용은 책으로 간행하기로 했다.주제발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단군 및 고조선 관계 비사들에 대한 리해(손영종)▲평양지방의 고대 성곽(남일룡)▲고조선의 건국과 그의 사회적 성격에 대하여(한선홍)▲최근에 평양지방에서 발굴된 단군조선 초기의 유적 유물(서국태)▲고조선의 중심지와 령역(김유철)▲강화도의 단군사적과 단군 관계 사료(이형구)▲남북한 ‘단군’인식편차의 극복 방안(최광식)▲단군민족주의의 회고와 과제(정영훈)▲단군조선 도읍의 위치 문제(윤내현)▲단군신화에 나타난 조화의 논리(김상일) 연합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