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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중근 동양평화론은 유엔보다 10년 앞선 구상”

    “안중근 동양평화론은 유엔보다 10년 앞선 구상”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독일 철학자 칸트의 사상과 유사하지만 진일보한 것으로, 현 유엔이나 유럽연합(EU)에 가까운 구상이었다는 주장이 일본 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사사가와 노리가쓰(笹川紀勝) 일본 메이지(明治)대 교수는 24일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 ‘안중근의 재판-안중근과 칸트의 사상 비교연구’ 논문을 통해 “안 의사가 유교와 기독교(가톨릭)의 영향을 동시에 받아 대한제국 황제에 대한 충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당시 가톨릭교도들처럼 부정한 명령에는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군주제를 수립하면서도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려 했던 칸트의 국가론과 유사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사사가와 교수는 특히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핵심 동기는 동양평화에 있었으며, 이 동양평화론은 칸트의 ‘평화연맹’과 유사하면서도 그 구상을 넘어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안의사 평화회의는 EU에 가까운 구상” 안 의사의 구상은 뤼순을 한·중·일 3국의 군항으로 삼고, 이곳에 ‘평화회의’를 조직하자는 것으로, ‘평화회의’가 공동화폐를 주조하고 공동의 군단(軍團)을 구성해 영구한 평화와 행복을 얻자는 게 골자다. 이는 조약으로 ‘평화연맹’을 창설, 전쟁을 방지하면서도 명확하게 ‘세계정부’를 추구하지 않은 칸트의 사상과 비교될 수 있다고 사사가와 교수는 해석했다. 그러나 안 의사의 ‘평화회의’는 군사·재정적 권한이 주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EU에 가까운 구상이라 할 수 있다. 사사가와 교수는 특히 이 구상이 “유엔보다 10년 앞선 발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안 의사의 법정 투쟁을 조명하기 위해 여순순국선열기념재단 주최로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또 일본의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이 사법관할이나 심리과정에서 합법적이지 않았다는 한·중 학자들의 주장도 발표됐다. ●“안중근 재판 불법적으로 이뤄져” 린지안(林堅) 중국 인민대 교수와 두원중(杜文忠) 중국 서남민족대 교수는 공동논문 ‘안중근 재판의 부당성 및 그에 대한 검토’에서 “안중근 저격 사건이 중국에서 일어난 만큼 중국 정부가 승인한 법정이나 국제법정에서 재판이 이뤄져야 했는데도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진행됐다.”며 “사법관할상 합법적이지 않은 재판”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안 의사의 저격은 군인이 전투 중에 적의 수뇌를 사살한 것이지 사사로운 살해가 아니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박정원 국민대 교수도 ‘안중근 재판의 부당성’이라는 논문을 통해 “일본 형법을 적용한 안 의사의 재판은 1905년 2차 한일협약의 유효성을 인정하더라도 부당하다.”며 “당시 한국은 일본에 단지 외교권을 넘긴 것이지 주권을 상실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법을 적용하는 것이 옳았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또 민병과 의용병 등의 교전자격을 인정한 1907년 헤이그협약에 따라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자신을 밝힌 안 의사가 국제법상 포로 대우를 받아야 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씨줄날줄] 골프황제의 복귀/이춘규 논설위원

    황제(皇帝)는 제국의 세습군주를 칭한다. 왕국의 군주인 왕보다 상위 개념이다. 중국에서 황제라는 명칭은 진의 시황제 영정이 처음 사용했다. 혼란스러운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각국에서 수많은 ‘왕’이 난립, 왕보다 권위있는 칭호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서 ‘황제’라는 칭호가 만들어진 것이다. 서양에서는 로마제국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이름과 칭호에서 비롯했다. 영어 ‘엠퍼러(emperor)’와 독일어 ‘카이저(Kaiser)’ 및 러시아어 ‘차르(tsar)’ 등으로 불렸다. 중화(中華) 사상에서 독자적인 연호(年號)를 사용할 수 있는 국가는 당, 송, 원, 명, 청 등 황제국뿐이었다. 그 아래 제후국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할 수 없었다.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다는 것은 황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자주독립 국가임을 선언하는 것으로 간주됐다. 조선은 청나라가 기울어 가던 1894년 청나라 연호를 폐지했다. 1897년에는 대한제국을 수립하여 황제로 칭하고 일제에 국권을 잃을 때까지 13년간 연호를 사용했다. 21세기에도 입헌군주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있지만 시민권이 성장하면서 절대군주제의 황제를 칭하는 나라는 사실상 없다. 1975년 에티오피아가, 1979년 이란이 제정을 폐기한 것이 마지막이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된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황제는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황제라는 칭호는 스포츠나 문화계의 걸출한 스타들에게 그 분야의 최고라는 의미에서 사용되며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전설적인 축구스타 펠레는 축구황제로 호칭된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팝스타 마이클 잭슨은 팝의 황제로 불렸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범죄계의 거물을 밤의 황제라고도 칭한다. 골프에서는 타이거 우즈가 황제로 추앙됐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교통사고 뒤 불미스러운 성추문이 연쇄적으로 폭로되면서 황제의 지위를 영원히 잃는 듯했다. 전세계의 골프 인기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그런 골프황제 우즈가 복귀한다고 야단법석이다. 우즈가 4월 마스터스 대회를 통해 복귀한다고 밝히고 나서자 전세계가 난리다. 미국언론들은 그의 복귀전 시청률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취임식에 필적, 사상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기대한다. 광고주도, 도박사들도 신났다. 다만 팬들은 냉담하다. “미안하다.”는 말로 면죄부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란 것이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도 복귀가 이르다는 의견이 나왔다. 골프황제의 복귀식이 논란 속에 치러질 것 같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궁’ 만화에서 드라마, 이젠 뮤지컬로

    ‘궁’ 만화에서 드라마, 이젠 뮤지컬로

    만화에서 드라마로, 드라마에서 다시 뮤지컬로 지난 2006년 드라마화 됐던 원작 만화 ‘궁’ 이 뮤지컬로 재탄생한다. 뮤지컬 ‘황실로의 초대-궁’ 의 제작사인 그룹 에이트의 송병준 대표와 김재성 감독은 2일 서울 충무아트홀 지하 1층 소극장 블루에서 열린 공개오디션을 통해 흥행과 작품성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송병준 대표는 “드라마로 할 때도 뮤지컬로 만들기에 가장 완벽한 소재라고 생각했다.” 면서 “드라마를 통해 이미 친숙한데다 학교, 채경의 집 등 공간적으로 집약된 공간들의 대비가 매력적이다.” 고 만화원작 ‘궁’ 을 뮤지컬 무대에 올리게 된 동기를 밝혔다. 송 대표에 따르면 뮤지컬인 만큼 드라마와 달리 전환적 기능이나 상징이 많이 들어간다. 16부작인 드라마와 달리 짧은 공연 시간 내에 원작의 매력을 얼마나 살릴 수 있는지도 관건. 이에 뮤지컬 ‘궁’ 은 1막의 분량을 늘이는 한편, 2막은 템포감 있게 구성한다. 송 대표는 “결국은 대본이다. (채경과 신)둘의 합방 바로 직전까지가 1막으로 해 문화적 충돌 등을 다룬다.” 며 “2막부터는 이들의 사랑전선에 구름이 꼈다 다시 걷히기는 게 반복되면서 충분히 재밌을 것이다.” 고 설명했다. 뮤지컬 ‘궁’ 의 연출을 맡은 김재성 감독도 ‘궁’ 을 올해 최고의 뮤지컬로 만들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지난 2003년부터 연출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김 감독은 “뮤지컬 ‘궁’ 은 지금까지의 작품 중 가장 좋은 작품이다. 눈이 수북이 쌓인 길 위에 첫 발자국을 남기듯 창작의 재미가 있다.” 면서 “입헌군주제가 유지되고 있는 특수한 상황이지만 결국 사랑 얘기다. 이 때문에 코믹적인 요소, 쇼적인 재미, 만화적인 요소를 도입하겠다.” 고 밝혔다. 특히 김 감독은 “원작의 범주 안에서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랑의 순수한 의미를 새롭게 되새겨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환타지적인 요소들도 현실을 사는 관객들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만화가 뮤지컬 무대로 옮겨지는 만큼 주요 인물(채경, 신, 율, 효린)의 느낌을 최대한 살릴 예정인 뮤지컬 ‘황실로의 초대-궁’ 은 오는 9월 중 국립중앙박물관 소재인 극장 ‘용’ 에서 막이 오른다. 사진 = 그룹 에이트 서울신문NTN 백영미 기자 positive@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英왕실 인기 ‘격세지감’

    캐나다 퀸즈대학 명예교수인 C 프랭크스는 70년 전 소년시절 왕실 행차를 처음 봤을 때의 흥분이 지금도 생생하다. 왕실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려고 마을사람들이 철로에 몰려들어 객실 안의 영국 왕과 왕비를 향해 환호했다. 하지만 영연방 국가로서 영국 왕이 여전히 상징적 국가원수인 캐나다에서 이런 추억은 지금은 옛날 얘기다. 영국 찰스 왕세자가 카밀라 파커볼스 왕세자비와 지난 10일부터 캐나다를 방문 중이지만 가는 곳마다 ‘썰렁한 환영’을 받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3일 보도했다. 찰스가 온타리오주 페타와와시 공항에 내렸을 때 공항직원 몇명 빼고는 누구도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행차를 위해 3대의 제트여객기를 동원한 캐나다 정부측이 머쓱할 정도였다. 왕세자의 차량행렬이 지나는 도로변에는 1만 4600명의 마을주민 중 어떤 구경꾼도 나와 있지 않았다. 심지어 찰스는 10일 퀘벡주를 방문했을 때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시위대로부터 달걀 세례를 받기까지 했다. 프랭크스 교수는 “오늘날 캐나다에 군주제에 대한 신비감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최고의 궁정신하를 말한다

    최고의 궁정신하를 말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어느날 제나라의 선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중국 고대 은나라의 탕왕이 하나라의 걸왕을 잡아 가두고, 주나라를 세운 무왕이 은나라의 주왕을 쳤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맹자는 전해오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답했다 선왕이 재차 물었다. 신하가 임금을 해치는 일이 어찌 있을 수 있냐고. 이에 맹자는 “사람다움을 짓밟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합니다. 잔적한 자는 일개 사내(一夫)에 불과합니다. 저는 일개 사내인 걸과 주를 처형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임금을 시해했단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고 말했다. ●군주론과 쌍벽…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정치 교양서 왕에게 조언하던 맹자를 서양의 중세로 치면, 궁정의 신하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서양의 중세 사람들은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또 신하로서 어떤 모습이 이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1507년 3월 이탈리아의 중심부 아펜니노 산맥의 비탈에 자리잡은 우르비노 궁정에서 부도덕한 군주가 있다면 궁정 신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잠시 이야기가 오간다. 한 궁정 신하는 “자신이 모시는 군주가 사악하고 악의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 즉시 그곳을 떠나서 악덕한 지도자를 모시는 훌륭한 인물들이 맛보는 쓰라린 고뇌를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전쟁에 처하거나 어려움에 빠져 있을 때는 절대로 지도자를 버려서는 안된다. 그러나 위태로운 상황이 아니라면 궁정 신하는 지도자를 모시는 것을 그만둘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군주의 이익과 명예를 높일 수 있는 모든 명령에 복종하되, 군주에게 손해를 입히고 손해를 안겨줄 명령은 따르면 안된다.”고 강조한다. 단테(1265~1321년)의 ‘신곡’(1321년), 보카치오(1313∼1375년)의 ‘데카메론’(1350∼1353년), 마키아벨리(1469∼1527년)의 ‘군주론’(1513년) 등과 함께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저서로 꼽히는 발데사르 카스틸리오네(1478~1529년)의 ‘궁정론’(원제 The Book of the Courtier, 신승미 옮김, 북스토리 펴냄)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출간됐다. 특히 이 책은 ‘군주론’과 쌍벽을 이루는 르네상스 최고의 정치 교양서로 평가받는다. 이탈리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평생을 만토바, 우르비노, 밀라노, 로마 등 이탈리아 내 궁정에서 일했던 르네상스 시대 외교관 카스틸리오네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해 1528년에 펴냈다. 내용이 딱딱하거나 고리타분하지 않다. 우르비노 궁정을 배경으로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공작부인과 귀부인, 궁정 신하들이 완벽한 궁정 신하의 모습 등을 주제로 나흘에 걸쳐 토론하는 상황을 상상한 대화록이다. 신사와 숙녀 10명이 피렌체 교외 별장에서 10일 동안 하루에 한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내용을 담은 ‘데카메론’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 ‘궁정론’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실존했던 인물들로, 4장으로 나뉘어져 진행되는 대화 속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와 철학, 사상, 음악, 미술, 생활상, 관습, 농담과 풍자 등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궁정신하의 이상형 이상적인 궁정 신하라면 외모와 복장은 어떠해야 하는지 시시콜콜한 부분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는 지금 시각으로 보면 웃음이 나기도 한다. 고귀해야 하고, 무기에 정통하고, 음악과 회화에 조예가 깊어야 하고, 정치적 협상에 능하고, 언변이 좋아야 하고, 모든 행동에 절제가 있어야 하며 예의 바름과 품격과 우아함도 갖춰야 하고, 겉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과도한 허식은 멀리하고, 모든 것에 중용을 지켜야 한다는 갖가지 의견들이 쏟아진다. 시라쿠사의 디오니시오스 2세를 가르쳤던 플라톤이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쳤던 아리스토텔레스가 궁정 신하의 이상형으로 꼽히기도 한다. 요즘 세상과 맞지 않는 이야기도 더러 있지만 곱씹어 새길 부분도 상당하다. 카스틸리오네는 로도비코 다 카노사 백작의 입을 빌려 “올바른 궁정 신하라면 마음속에 하나의 교훈을 필히 간직하고 있었으면 한다. 항상 앞으로 나서기보다는 어려워하거나 자신 없는 태도를 유지하며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잘 감시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부분은 궁정 신하에 대해 토론하는 과정에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이 투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장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오타비아노 프레고소는 “군주가 고귀한 미덕을 깨닫고 잘 활용해서 훌륭하게 통치하도록 만드는 것이 궁정 신하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전제하며 군주에게 깨우쳐 주고 싶은 교훈은 백성들 가운데 항상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덕이 높고 현명한 신사들을 선택해 주제를 막론하고 망설임 없이 의견을 밝힐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하고, 지혜롭고 청렴결백한 정치인들을 뽑아 정의를 구현해야 하며, 폭정을 휘둘러서 미움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군주제가 변형된 전제정치, 옵티마테스가 변형돼 소수 권력자들로 구성된 정부, 절대권력이 군중에게 넘어간 정부 등이 올바르지 못한 정부이며 이 가운데 최악은 폭정으로 점철된 전제정치”라면서 “훌륭한 통치자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을 위해서 두려워하는 반면, 전제 폭군은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을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2만 5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日, 천황제 유지 전략적 거래 있었다

    日, 천황제 유지 전략적 거래 있었다

    1945년 8월15일 정오, 일왕 히로히토의 항복 선언이 라디오 전파를 타고 일본 전역에 퍼져나갔다. 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패망으로 종결되는 순간이었다. 침략전쟁에 대한 법적·윤리적 책임자로서 ‘천황’ 히로히토가 전범 재판정에 설 수도 있는 위기가 닥친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전개되지 않았다. 1947년 5월 시행된 신헌법(평화헌법) 아래서 히로히토는 민주주의와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일본을 패하게 한 미국은 오키나와에 거대한 군사 기지를 건설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맥아더의 점령정책에 필요했던 히로히토 ‘히로히토와 맥아더’(권혁태 옮김, 개마고원 펴냄)의 저자 도요시타 나라히코 일본 간사이가쿠인대 법학부 교수는 이 의문에 대한 열쇠를 점령군 최고 사령관이었던 맥아더와 히로히토의 관계에서 찾는다. 물론 이는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맥아더로 대변되는 미국과 천황제를 사수하려는 히로히토간의 ‘전략적 거래’ 관계이다.히로히토와 맥아더는 1945년 9월27일 첫 번째 회담을 시작으로 1951년 4월 맥아더가 해임될 때까지 총 11차례 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뒤이어 부임한 리지웨이와도 7차례에 걸쳐 회담했다. 저자는 회담에 관한 수많은 자료를 통해 히로히토가 전쟁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변명했던 것처럼 입헌군주제 하의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이중외교’를 구사하는 능동적인 정치 주체였다는 점을 드러낸다. 저자에 따르면 히로히토와 측근들은 전쟁의 모든 책임을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군부에 떠넘겨 도쿄재판의 위기를 모면할 계획을 세웠다. 패전 처리 과정에서 나타난 히로히토의 권위를 점령정책에 이용하려던 맥아더는 본국에 히로히토를 기소하지 않도록 설득했다. 1차 회담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히로히토와 맥아더가 이같이 노선을 조정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그러나 ‘맥아더 회고록’에는 당시 회담에서 히로히토가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말해 맥아더가 크게 감동을 받은 것으로 기술돼 있고, 이 ‘미담’은 일본 전후 사회에 널리 유포돼 천황의 권위를 더욱 굳건하게 했다. 맥아더는 또한 일본 점령에 대한 연합국 최고 결정기관인 극동위원회가 설치되기 전에 서둘러 헌법 개정을 ‘강제’함으로써 천황제가 폐지될 가능성을 차단했다. 이런 전후 사정들은 히로히토가 왜 맥아더와의 마지막 11차 회담에서 도쿄재판에 대해 감사의 뜻을 밝혔는지, 그리고 ‘천황’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왜 중지하게 됐는지에 대한 배경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일본 전후사의 ‘금기’ 본격 다뤄 히로히토가 천황제 사수를 위해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한 두번째 사례는 오키나와 미군 기지이다. 공산주의를 천황제의 최대 위협으로 간주한 히로히토는 신헌법으로 ‘상징천황’이 된 후에도 ‘극동의 스위스론’을 주장한 맥아더를 따돌리고 직접 미국과 접촉을 통해 불평등한 미·일안보조약을 음지에서 실현시켰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이 책은 일본 전후사 연구에서 금기시돼 온 ‘천황’을 전면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저자는 전쟁 책임은 물론 전후 책임을 둘러싼 히로히토에 대한 연구가 ‘공백’으로 남아 있는 한 전후 일본사를 충분히 서술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전후 일본이 걸어온 길을 인식해야만이 일본이 동북아시아라는 지역 차원에서 새롭게 안정보장의 틀을 만들어나가는 역사적 책임에 응답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1만 6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진시황 이래 中 황실 성생활 보고서

    진시황 이래 中 황실 성생활 보고서

    중국은 하(夏)왕조가 세워진 이래 1911년 동안 군주제도를 택해 왔고, 진(秦)나라부터 황제제도가 시작됐다. 이런 전제군주 시대를 관통한 통치이념은 유가사상. 유가는 충효를 연구하는 학문이고, 특히 효의 핵심은 대를 잇는 것이기 때문에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을 가장 큰 불효로 여겼다. 효는 대대로 같은 성을 가진 자들이 나라를 통치해야 하는 황제 가문에서는 더욱 절실하고 중요했다. 중국의 역대 제왕들이 10대 중반부터 성적 쾌락과 여색에 빠져 산 것은 이같은 이념 아래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황궁의 성’(시앙쓰 지음, 허동현 감수, 강성애 옮김, 미다스북스 펴냄)은 중국 진시황 이래 중국 역대 왕조와 그 왕조를 구성해온 걸출한 황제들의 성생활과 애정행각에 관련된 보고서다. 1962년생인 저자 시앙쓰는 중국 고궁박물관 연구원 및 도서관 부관장으로, 고서에서 황제와 황후의 성생활과 관련된 부분을 모조리 찾아내 책으로 펴냈다. 원래 제목이 ‘후궁의 금지옥엽’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 책의 주인공들은 황제라기보다도 이른바 당나라 현종의 양귀비, 한나라 성제의 조비연, 당나라 고종의 측천무후, 한나라 유방의 부인 여치, 청나라 자희태후 등이다. 후궁이란 황후와 비빈들이 거처하던 곳이니 말이다. 하지만 후궁은 부제로 달린 ‘치정과 암투가 빚어낸 밤의 중국사’처럼 한숨과 질투, 배신, 치정, 음모, 살인 등이 난무하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였다. 이를테면 진나라 혜제의 가남풍 황후는 불임이었는데, 임신한 궁녀를 보면 날카로운 창으로 사정없이 찔러 죽였다. 측천무후는 자신이 여제가 되기 전 왕 황후를 모함하기 위해 자신이 낳은 딸을 죽여 버리기도 했다. 한나라 혜제는 자신의 조카(장 황후)와 결혼을 했는데, 원래부터 귀여워하던 조카와 잠자리를 끝내 피해, 장 황후는 마흔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처녀였다. 한나라 헌제의 생모 왕씨는 헌제를 낳은 뒤 독살됐다. 선비족들이 세운 북위는 태자를 옹립하기 전에 반드시 생모를 죽여야 한다는 규정도 있었다. 외척의 발호를 막기 위해서였다. 명나라에서는 영종 이전의 비빈들은 왕이 죽으면 순장됐다. 순장되는 날은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했다고 한다. 선종 주첨기는 재위 10년째 되던 해 시녀 곽애를 빈으로 봉했다. 그러나 입궁한 지 20일이 지났을 때 선종이 붕어했다. 부귀영화를 누리지도 못한 채 순장돼야 했던 곽애는 ‘절명사’란 애절한 시를 남겼다. 순장하기 전 비빈들은 진수성찬이 차려진 연회에서 배불리 먹은 뒤 연회가 끝나면 어두운 불빛이 비치는 대전 앞 대들보 밑으로 가 머리를 풀고 목을 매 자살했다. 중국의 어린 황제와 태자는 사춘기에 접어들기 전에 춘궁도(春宮圖)로 불리는 춘화나 환희불(歡喜佛)이라 불리는 조각상 등을 통해 성교육을 받았다는 대목도 재밌다. 때로 태자들은 직접 시녀들과 실습도 했다고 한다. 또한 황궁에서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기르면서 동물들의 본능적인 모습을 보여 줬다고 한다. 궁사(宮詞)에 ‘계집종은 매일매일 군왕을 섬긴다.’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계집종은 암고양이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 책의 미덕은 아주 강한 디테일에 있다. 우리가 거의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진시황의 출생 비밀이나, 당현종과 양귀비의 숨겨진 사랑 이야기들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현종은 뚱뚱한 양귀비가 술 취한 모습을 가장 좋아했다. 또 현종은 이지적이고 숙녀였던 매비를 사랑하면서도 양귀비를 안록산의 난이 날 때까지 끊지 못했다. 책 구석구석에서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인 조선왕조 500년과 비슷한 대목들이 나타난다. 3만 2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新아시아시대-아세안 경제 전망] 인구 20억 아세안+3 경제공동체 2015년 출범 꿈꾼다

    [新아시아시대-아세안 경제 전망] 인구 20억 아세안+3 경제공동체 2015년 출범 꿈꾼다

    인종과 종교, 과거사를 둘러싼 분쟁으로 뒤엉킨 아시아. 정치체제와 소득격차도 제각각인 아시아가 ‘통합’을 꿈꾼다. 아세안+3(한·중·일)이 주도하는 아시아 경제공동체(AEC) 설립이다. 아세안+3은 2015년까지 유럽연합(EU)식 경제공동체를 구축, 세계 최대 단일시장·단일 생산기반을 출범시키겠다는 로드맵을 추진 중이다. EU의 유로화 같은 단일통화는 없지만 상품과 서비스, 투자, 자본 등이 자유롭게 오가게 된다. ●EAFTA 실현땐 GDP 1.18% 증가 아시아 경제공동체의 실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최근 들어 더욱 높아졌다. 지난해 미국발 글로벌 경제위기가 아시아 시장의 무역, 투자를 위축시키면서 공동 대응의 필요성이 커졌다. 또 중국의 급격한 부상으로 대외 의존도가 높던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수익창출 모델에 대수술이 불가피해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시아 지역에 단일시장이 없어 글로벌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아세안+3 재무장관회의에서는 동아시아공동기금의 출범에 대한 합의도 이뤄졌다. 1999년 회원국 간의 통화스와프 제공을 골자로 출범한 치앙마이이니셔티브(CMI) 다자화기금이 10년만에 성사된 것이다. 이를 통해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 외에 아세안 금융시장의 자체 위기 대응능력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전세계 외환보유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시아 국가들이 금융·통화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외환투기세력의 공격을 억제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동아시아자유무역지대(EAFTA)와 역내 신용보증투자기구 설립, 환율 공조체제 등도 추진 중이다. 2006년 아세안+3의 공동 연구 결과 EAFTA가 실현될 경우 아세안+3의 GDP는 1.18%, 후생은 1046억달러(약 132조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세안의 국내총생산(GDP)은 3.64% 증가하게 된다. 한·중·일도 각각 아세안과의 FTA 협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4월 협상을 완료해 19억명의 인구를 하나의 경제권역으로 잇는 차프타(CAFTA)를 본격 가동한다. 일본도 지난해 12월부터 아세안과 경제연대협정(EPA)을 체결, 투자·서비스 등 교류를 확대하고 공적개발원조(ODA)를 늘려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한국도 지난 6월 중국, 미국에 이어 세번째 교역 상대인 아세안(902억달러 규모)과의 FTA 투자협정에 서명했다. ●국가별 경제 큰 차이… 난제도 많아 그러나 경제공동체 실현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예고된다. 먼저 주도권을 쥐려는 중국과 일본의 세 싸움이 지속될 전망이다. 양국은 지난 5월 CMI 기금 분담 비율에서도 서로 많이 부담하겠다고 신경전을 벌였다. EAFTA도 양국의 갈등으로 진전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가별 경제규모도 큰 차이를 보인다.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는 유엔이 가장 가난한 개도국으로 분류할 정도로 빈곤에 허덕인다. 이런 소득 격차는 비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쟁에서도 방해요소로 작용했고, 다국적 기업들의 글로벌 투자처 선정에 있어서 인도, 중국의 경쟁까지 뒤처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지적했다.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에는 정치적 불안이 잠재한다. 사회주의 일당제인 라오스와 베트남, 군부정권 미얀마, 전제군주제를 취하는 브루나이 등 정치체제도 제각각이다. 다양한 인종, 종교, 역사로 인한 분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서방국을 비롯, 전문가들은 아시아 공동체 실현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짙다. 싱가포르 동아시아 연구소의 마이클 몬테사로 연구원은 “아시아 국가들은 공동선을 추구하는 데 희생할 용의가 없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한 예로 역내 국가끼리 2005년까지 상품 관세를 대폭 감축한다는 첫번째 경제협력 실험도 아직까지 ‘미완’이다. ●인권·민주 내정 불간섭 극복이 과제 서방국들은 또 아세안이 인권이나 민주주의 악화 등에 너무 관대한 입장이라고 비난한다. 미얀마 민주화의 영웅 아웅산 수치 여사를 포함, 정치범 2100명을 투옥하고 있는 미얀마 군정은 이들을 석방하라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외면해 왔다. 이 때문에 아세안과 EU의 FTA 협상도 지지부진했다. 아세안은 2009년까지 인권기구를 설립, 오는 10월까지 공식활동에 들어간다는 복안을 내놨으나 반응은 신통치 않다. 아세안은 지난 40년 간 내부 문제에 ‘불간섭 정책’으로 일관해 오며 논쟁적인 이슈를 피하고 비공식 협상 등으로 현상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BBC는 이 때문에 국제사회의 옵서버 국가들은 아세안에 “말만 많고 행동은 적다.”는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꿈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구로다 하루히코 아시아개발은행 총재는 “EU식 성공을 기대한다면 아세안은 역내 빈국들에 더 열정적으로 통합을 받아들일 것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유럽과 동유럽의 경제적 격차를 좁힌 EU의 성취가 아시아에서도 충분히 실현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고조선은 동아시아 첫 고대국가”

    “고조선은 동아시아 첫 고대국가”

    고조선 전문 연구단체로 지난해 3월 출범한 고조선학회(회장 윤내현)가 첫 결실인 학회지 ‘고조선연구’ 1집을 펴냈다. 고조선 역사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등 각 분야를 망라하는 본격적인 고조선 연구서라는 점에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맥·예 3부족, 혼인동맹으로 결합” 중국 동북공정과 일본 역사왜곡 사건을 계기로 2006년부터 뜻 맞는 학자들이 모여 매달 한 차례씩 열었던 고조선연구모임을 발전시킨 고조선학회는 출범 이후 중국 요서와 요동 지역의 고조선 유적지 추정 지역과 홍산문화, 하가점하층문화 등의 유적지를 답사하며 심층적인 연구를 벌여 왔다. 이를 토대로 지난해 10월 첫 정기학술대회를 열었고, 그때 발표했던 논문 6편을 다듬어 책으로 묶어 냈다. 신용하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논문 ‘고조선의 통치체계’에서 고조선이 기원전 30세기~기원전 24세기에 건국된 한국 최초의 고대국가이자 동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라고 주장한다. 고조선은 한·맥·예 3부족이 결합해 세워졌는데 이때 한족은 왕을 내고, 맥족은 왕비를 내는 혼인동맹으로 결합해 단군이 고조선의 초대 군주가 되었다. 신 교수는 단군이 후국족인 예족의 소왕까지도 통치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왕이 아니라 처음부터 ‘제왕’이었으며, 고조선의 정치체제는 세습군주제였다고 해석한다. 학회장인 윤내현 단국대 명예교수는 ‘고대 문헌에 보이는 한국 고대사의 두 가지 체계’에서 한국 문헌을 토대로 한 ‘제왕운기-고려사 체계’와 중국 문헌에서 확인되는 ‘삼국유사-기본사료 체계’를 비교검토하면서 전자를 바탕으로 현재 통용되는 고대사 체계에 이의를 제기한다. 즉 중국문헌의 기록에 따라 재구성한 ‘삼국유사-기본사료 체계’가 더 신빙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한반도와 요동·요서의 만주가 영토” 이 체계에 따르면 고조선의 영역은 한반도와 요동·요서의 만주를 포괄하며 단군 왕검이 세운 고조선은 오랫동안 존속하다가 고조선의 분열로 열국시대가 등장한 것이 된다. 열국은 모두 한민족의 나라였고, 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은 지금의 요서, 즉 고조선의 서부 변경에서 일어났던 사건들로서 한국사의 주류가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반면 한국 문헌에 기록돼 있는 ‘제왕운기-고려사 체계’를 근거로 하면 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이 고조선의 중심부에 있었던 것으로 돼 이들 모두 한국사의 주류를 이루게 된다. 윤 교수는 “이 체계를 따르면 한민족은 고조선을 건국했지만 오래지 않아 멸망했고 상당히 오랜기간 중국인들의 지배 아래 있었다는 논리가 성립되고, 한민족의 활동무대가 시종일관 한반도 북부, 지금의 평양이 그 중심지였던 것이 된다.”면서 하루빨리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단군묘 전승의 형성시기를 분석한 김성환 실학박물관 학예연구관의 ‘전통시대의 단군묘 인식’, 한국 상고사와 고대사 연구에서 고고학 자료 응용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복기대 국제뇌교육종합대 교수의 논문 등이 실렸다. 학회 간사인 복기대 교수는 “고조선 연구의 중요성에 비해 그동안 연구가 미비했는데 앞으로 매년 두 차례 학회지 발간을 통해 한국사의 시원을 밝히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회원은 90여명이며, 매달 열리는 토론회에는 30~40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방콕 비상사태 선포… 강제진압 초읽기

    방콕 비상사태 선포… 강제진압 초읽기

    태국 반정부 시위대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를 ‘볼모’로 잡아 회의를 무산시키자 정부가 12일 다시 비상사태를 선언하며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정부가 군병력과 탱크, 장갑차를 시내 곳곳에 배치, 강제진압 초읽기에 들어가자 시위대는 “사람들이 우리의 무기”라고 맞서 유혈사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06년 쿠데타로 축출돼 망명 중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도 이날 전화성명을 통해 “혁명에 나설 때”라며 “탄압이 시작되면 즉시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복귀의사를 밝혀 정국은 더욱 요동칠 전망이다. ●3만명 시위행렬… 주요길목 10곳 차단 아피싯 웨차치와 태국 총리는 12일 수도 방콕과 논타부리, 아유타야 등 주변 5개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또 시민들에게 곧 시위대 진압에 나설 예정이니 동요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발표 직후 장갑차 수대가 방콕 중심지로 이동하고, 최루탄으로 무장한 경찰 1000명이 정부청사로 진입하면서 현지언론은 곧 강제진압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했다. 군 대변인은 “육·해·공 56개 중대 병력을 버스 정류장, 기차역 등 시내 요지 50곳에 배치한다.”며 “이는 쿠데타 임박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라 질서유지를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그러나 탁신 전 총리를 지지하는 ‘독재저항 민주주의 연합(UDD)’이 이끄는 시위대가 이미 장갑차 2~3대를 탈취하고 방콕 경찰청으로 향하는 도로 등 주요 길목 10곳을 차단해 정부의 ‘특단’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고 있다. 비상사태가 선포되자 도심 전역에서 3만명이 시위에 나섰으며 이중 수백명은 내무부 청사에서 돌과 막대기 등으로 총리가 탄 차량을 공격했다. 경찰이 공중에 경고사격을 하자 시위대가 항의하면서 수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동영상 보러가기 ●아세안 회의 연기… 시위 주도자 체포 11일 이틀 일정으로 개막한 아세안 정상회의는 반정부 시위대 1000여명이 이른 아침부터 회의장인 로열클리프 호텔을 봉쇄하면서 취소됐다. 이들은 호텔을 둘러싼 비무장 군병력의 벽을 뚫고 유리문을 깨고 내부로 난입해 ‘총리 사퇴’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의 공세가 폭력사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자 태국 정부는 파타야와 인근 촌부리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가 6시간 뒤 해제했다. 16개국 정상들도 헬리콥터를 타고 인근 우타파오 군비행장으로 탈출하는 등 허겁지겁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강경 자세를 고수하다 회의를 두 번째 연기하며 체면을 구긴 태국 정부는 12일 즉각 ‘응징’에 나섰다. 아피싯 총리는 이날 오전 주례연설에서 시위 관련자에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등 신속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회의 무산을 주도한 UDD 시위대 지도자인 아리스문 퐁루엥롱도 이날 경찰에 체포됐다. 그러나 UDD 지도부는 “회의를 막는 데 성공했다.”며 13~15일 태국의 설날인 송크란데이 축제 기간에도 시위대를 결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강경 대응을 부르짖던 정부가 시위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현 정부의 존립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쿠데타설 확산… 정부 존립 위기론 대두 아피싯 총리는 “3~4일 내 평화를 회복할 것”이라며 빠른 수습을 약속했지만, 이번 사태로 태국의 취약한 민주주의뿐 아니라 입헌군주제까지 손상될 위험이 높아졌다는 지적이다. 쿠데타가 발생하거나 정부가 의회를 해산할 것이라는 소문이 정가에 빠르게 확산되면서 ‘위기론’이 세를 더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현지신문 더 네이션은 익명의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 “정부가 48시간 내 중대 결정을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태국 관광위원회는 이번 소요로 56억달러 규모의 관광 손실을 봤다고 밝혔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한·중·일 근대화 과정 다각도 조명

    19세기말 20세기초 근대 이행기의 한·중·일 3국을 총체적으로 살펴보는 시리즈가 나왔다. ‘기획강좌:근대의 갈림길’(전 4권, 창비 펴냄)은 성공과 실패라는 도식적 역사 해석에 제동을 걸면서 세 나라의 근대화 과정을 내재적 근대화, 억압과 팽창, 민족 문제 등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했다. ‘근대와 식민의 서곡’(한국)에서 김동노 연세대 교수는 근대화를 향한 조선인들의 노력을 살피면서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했지만 “조선의 식민지 전락이 실패의 역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는 “식민화에만 초점을 맞춰 (조선을) 실패의 역사로 규정한다면, 역사의 복잡한 과정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라며 “이 시기는 근대화로 가는 길과 식민으로 가는 길이 중첩됐고, 뒤엉킨 모습이었다.”고 덧붙인다. 강진아 경북대 교수는 ‘문명제국에서 국민국가로’(중국)에서 일본보다 개항이 빨랐지만, 근대화 속도는 오히려 늦었다는 점을 “중국의 실패”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이민족 정권인 청조의 성격상 입헌군주제로 혁신하기 어려웠다는 점 ▲일본보다 신분 상승이 비교적 쉬운 사회구조로 이뤄져 혁명에 대한 동력이 떨어졌다는 점 등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함동주 이화여대 교수는 ‘천황제 근대국가의 탄생’(일본)에서 일본의 발전과 성공에는 ‘억압과 팽창’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지적한다. 청일전쟁(1894)이후 노동쟁의가 증가하고, 사회주의 사상이 소개되면서 반정부적 물결이 일본 사회 저변으로 확산했으나 일본 정부와 의회는 치안경찰법을 제정하고, 정치 행위 제한 입법을 강화하는 등 내부 비판을 억압하는데 몰두했다고 주장한다. 이어 20세기 접어들어 일본의 면방직업, 제조업이 성장하고, 무역 규모도 많이 늘어났지만, 일부 회사의 독점체제가 강화됐고, 노동문제와 빈부격차 등의 사회문제가 심화됐다. ‘동아시아 근대 이행의 세 갈래’는 백영서 연세대 교수와 박훈 국민대 교수, 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가 공동 집필했다. 각권 1만 2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반정부단체 PAD는

     반정부 단체인 국민민주주의연대(PAD)가 태국 정국의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2005년 결성된 PAD는 지난 8월부터 수만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현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이들은 정부청사 점거를 시작으로 의사당과 재무부, 경찰청사를 봉쇄한 데 이어 25일에는 국제공항까지 점거했다.  태국 사회는 ‘친(親) 탁신’과 ‘반(反) 탁신’ 세력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PAD는 현 정부가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보는 반 탁신 세력이다.따라서 이들은 탁신 전 총리의 매제인 솜차이 옹사왓 총리가 이끄는 현 정부 퇴진을 ‘마지막 전쟁’이라 부르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그러나 솜차이 총리는 국민 선출에 의한 합법적 정부라며 퇴진을 거부하고 있어 정국 혼란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정부에 대한 PAD의 적의는 탁신과 그 측근들이 입헌군주제를 공화정으로 바꾸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PAD는 국민으로부터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받고 있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과 입헌군주제의 수호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시위대가 왕실을 뜻하는 노란색 옷을 입는 것도 국왕에 대한 충성 때문이다.  PAD는 방콕의 중산층,왕당파 정치인,국왕에 대해 절대적인 충성을 보이는 군부 인사로 이뤄져 있다.지역적으로는 남부지방에 널리 분포해 있다.공동대표는 손티 림통쿨, 잠롱 스리무앙, 핍홉 동차이, 솜삭 코살숙, 솜키앗 퐁파이분 등 5명이나 최근 시위를 이끄는 양대 지도자는 손티와 잠롱이다.친 탁신 세력은 독재저항 민주주의 연합전선(UDD)으로 도시노동자와 농민이 주 지지기반이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英 역사를 뒤흔든 혈육간의 애증

    英 역사를 뒤흔든 혈육간의 애증

    헨리 7세부터 엘리자베스 1세까지를 일컫는 튜더 왕조는 영국의 절대 군주제가 절정을 이룬 시기다. 앨리슨 위어가 쓴 ‘헨리 8세의 후예들’(박미영 옮김, 루비박스 펴냄)은 16세기 영국 튜더 왕조의 국왕인 헨리 8세 사후 왕위에 오른 네 인물의 삶을 다룬 책이다. 위어는 ‘헨리 8세와 여인들’‘9일 여왕:레이디 제인 그레이’ 등의 저서를 통해 튜더왕조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재현해온 영국의 저명한 역사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다. ●왕과 여왕의 개인사에 초점 맞춰 튜더 왕조를 다룬 많은 책들이 정치적인 공과를 기술하고 있는 것과 달리 ‘헨리 8세의 후예들’은 왕과 여왕의 개인사에 초점을 맞춰 소설처럼 풀어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메리 1세, 에드워드 6세, 엘리자베스 1세. 이들의 얽힌 관계는 아버지(헨리 8세)가 같지만 어머니가 모두 다르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이 세 명의 왕들과 그들의 사촌 제인 그레이(헨리 7세의 외증손녀)는 서로 다른 어머니와 성장환경의 차이만큼이나 다양한 성격을 지녔다. 메리 1세의 어머니 카탈리나는 에스파냐 아라곤 왕국의 공주로 원래 헨리 8세의 형 아서와 혼례를 치른 터. 하지만 신혼 6개월 만에 아서가 요절하자 헨리는 형수를 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카탈리나가 아들을 안겨주지 못하자 헨리는 그녀의 시녀인 앤 불린과 불륜에 빠진다. 헨리 8세는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교황에게 카탈리나와의 혼인을 무효화해 줄 것을 요청한다. 로마 교황이 이를 인정하지 않자, 그는 수장령으로 영국국교회를 분리, 설립한다고 선언하며 종교개혁을 단행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다. 앤 불린 역시 에드워드 6세의 어머니인 제인 시모어에게 남편을 빼앗기고는 간통죄와 반역 혐의로 참수당한다. 헨리 8세의 애정이 누구에게로 향하느냐에 따라 딸들은 운명의 부침을 겪게 됐고, 살아남기 위한 생존 싸움은 결국 온갖 음모와 배신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죽음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해묵은 원한과 시기심, 그리고 종교적 불화가 배다른 형제자매들 사이를 갈가리 찢어놓았던 것”이라고 일갈한다. ●비자금 내역 등 방대한 자료 바탕 저자의 말처럼, 왕들의 개인사는 16세기 잉글랜드를 지배한 종교적 긴장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헨리에 이어 열 살에 즉위하지만 6년 후 요절한 에드워드 6세는 광신적 개혁주의자였다.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은 제인 그레이. 그녀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정치싸움에 떠밀려 왕이 됐지만, 민중의 지지를 받은 메리 1세가 런던에 입성하자 9일 만에 폐위당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이어 왕권을 잡은 메리 1세는 열렬한 가톨릭교도였다. 그녀는 기독교의 흐름을 가톨릭으로 바꿔놓기 위해 가톨릭에 반발하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해 ‘피의 메리’라는 악명을 얻는다. 마지막으로 즉위한 엘리자베스 1세는 이같은 갈등을 잠재우기 위해 국교를 확립하는 동시에 종교적 통일을 추진하는 데 힘쓴다. 당대의 개인 서신과 공문서, 국정 일정표는 물론, 에드워드 6세의 일기와 비자금 지출내역 등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사실적인 시대 묘사가 눈길을 끈다.2만 2900원.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황신혜, ‘토크女王’ 컴백 “두렵다 못해 무섭다”

    황신혜, ‘토크女王’ 컴백 “두렵다 못해 무섭다”

    대한민국 대표 미인 황신혜(본명 황정만·46)가 4년만에 토크쇼 MC로 귀환하는데 강한 부담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황신혜는 22일 오후 2시부터 서울 논현동 빌라 드 베일리에서 진행된 케이블 채널 tvN의 신생 프로그램 ‘더 퀸’의 메인 MC를 맡게 된 소감을 전하며 배우가 아닌 토크 쇼 진행자로 브라운관에 복귀하는데 적지 않은 고민을 했다고 털어놨다. 2004년 MBC 미니시리즈 ‘천생연분’ 이후 4년만의 안방 극장에 컴백한 황신혜는 “4년 만에 그것도 배우가 아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게 돼 감회가 남다르다.”며 말문을 열었다. ’토크쇼’라는 이색 관문으로 컴백을 알린데 부담감이 있었는지 묻는 질문에 황신혜는 “두렵다 못해 무서웠다.”고 솔직한 답변을 꺼냈다. 황신혜는 처음 녹화장을 찾았던 때를 회상하며 “어찌나 긴장했는지 옆사람에게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녹화 시간이 가까워지니 갑자기 집에 돌아가고픈 충동이 느껴질 정도였다.”고 초조함을 드러냈다. 이어 황신혜는 “하지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면서 이 정도의 두려움은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그쳤다.”며 “막상 녹화가 시작되니 패널 분들과 스텝 분들 모두가 예능 프로그램의 선수들이어서 그런지 든든하고 편안하게 첫 녹화를 마쳤다.”고 흡족함을 표했다. 황신혜는 “그동안 배우로서 베일에 가려져 있던 부분이 크다 보니 토크쇼에서 보여지는 내 본연의 모습을 시청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며 “작품 속에서 보였던 모습과 다소 차이가 있어 생소하겠지만 이 모두가 황신혜 자체기 때문에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 ‘더 퀸(The Queen)’은 입헌군주제 국가 하의 21세기 대한민국을 가상 배경으로 여왕 황신혜의 총애를 받기 위해 대신들이 사투를 벌인다는 콘셉트의 신개념 버라이어티 토크쇼로 지상렬, 김신영, 윤현숙, 유채영, 김시향 등이 MC군단으로 참여해 재치 넘치는 입담을 더할 예정이다. 매주 화요일 밤 11시 방영되는 ‘더퀸’은 오는 23일 첫 선을 보인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황신혜ㆍ장동건 “완벽한 외모 때문에…”

    황신혜ㆍ장동건 “완벽한 외모 때문에…”

    대한민국 컴퓨터 미남·미녀인 황신혜와 장동건이 완벽한 외모로 인한 피곤함을 호소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했던 일화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4년 만에 케이블 채널 tvN의 신생 프로그램 ‘더 퀸’의 메인 MC로 컴백한 황신혜는 방송 첫 회에서 부터 거침없는 질문 세례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이와 같이 폭로 한 것. 약 20년간 대표 미녀로 군림해 온 황신혜에게 김신영, 지상렬 등의 MC군단들은 “예뻐서 불편했던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이에 황신혜는 “물론 있다. 예쁜 것 때문에 배우로서 힘든 일이 많았다.”고 거침없이 털어놔 주변인을 놀라게 했다. 황신혜는 “내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장동건 밖에 없다.”며 “어느날 사석에서 만난 장동건에게 이러한 불편함을 토로했고 장동건은 ‘어? 누나도 그래? 나도 그런데’라고 동의를 표해 동지를 만난 것 같은 기쁨을 느꼈다.”고 전했다. 한편 ‘더 퀸(the Queen)’은 입헌군주제 국가 하의 21세기 대한민국을 가상 배경으로 여왕 황신혜의 총애를 받기 위해 대신들이 사투를 벌인다는 콘셉트의 신개념 버라이어티 토크쇼로 매주 화요일 밤 11시 방영되며 오는 23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泰선관위, 집권당 해체 헌소 ‘혼란 가중’

    사막 순타라 총리가 2일 수도 방콕에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태국의 정국혼란이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비상사태 선포 직후 육군본부 가까이에 집결해 있던 친정부 시위대는 해산했으나, 정부청사에서 농성하고 있는 수천명의 반정부 시위대는 해산을 거부하고 있다. 정부청사 점거농성을 주도하고 있는 PAD의 핵심 지도자인 잠롱 스리무앙 공동대표는 비상사태 선포 직후 반정부 시위를 계속할 것을 지시했다. 법원은 경찰의 요청에 따라 잠롱과 손티 공동대표 등 PAD 지도부 9명에 반역, 음모 혐의 등으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이다. 여기에 선관위는 집권당의 해체를 헌법재판소에 요청키로 결정해 정국혼란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손티 림통클(61) PAD 대표는 이날 “유혈 충돌이 일어나기 전 헌병들이 버스를 동원해 어딘가에서 친정부 단체인 반독재민주주의연합전선(UDD)의 회원을 방콕으로 실어 날랐다.”면서 “우리는 평소처럼 질서 속에서 평화롭게 집회를 갖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찰관은 AFP 기자에 “친-반정부 단체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총소리가 들렸다는 보고도 있었는데, 누가 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망자는 가슴에 총을 맞았으며, 머리에도 심한 구타 흔적이 남아있다고 증언했다. 사막 총리는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기자들에게 “어젯밤 한숨도 잠을 자지 못했다. 나는 내 의무를 다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파오진 다아누퐁 육군 참모총장은 TV에 나와 “평화 회복을 돕기 위해 군이 병영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태국 사회는 탁신 친나왓 전 총리에 대한 찬반을 놓고 두 세력으로 갈려 있다. 탁신의 반대세력은 방콕을 중심으로 한 중산층과 왕정주의자 등이며 군부 내에서도 다수를 차지했다. 탁신 지지세력으론 사막이 이끄는 현 정부와 농민, 도시의 빈민층이 꼽힌다. 지역별로는 반 탁신 세력이 방콕을 중심으로 한 남부지방, 친 탁신 세력은 그의 고향인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북동부와 북부지방에 널리 분포했다. 정치 분석가들은 이같은 사회의 양극화가 민주화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경제에 타격을 주며 정치 시스템을 마비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PAD가 공공청사 점거농성까지 벌이며 탁신 전 총리와 그의 추종세력을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탁신과 측근들이 입헌군주제를 공화정으로 바꾸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민으로부터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받고 있는 푸미폰 아둔야뎃(80) 국왕과 입헌군주제의 수호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푸미폰 국왕에 대한 충성의 의미로 시위대는 늘 왕실을 상징하는 노란 옷을 입는다. 첸 남차이신 태국의류산업연합회장은 “정치 상황이 나빠져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정치가 경제발전의 제1 저해요소”라고 개탄했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건국 60주년] 개헌논란… 외국 정치구조는

    [건국 60주년] 개헌논란… 외국 정치구조는

    프랑스 의회는 지난 21일 대통령의 권한을 현재보다 크게 강화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프랑스 상·하원 합동회의는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나눠 가지는 ‘이원집정부제’에서 대통령에게 권한을 몰아주는 대통령 중심제 색채를 띠는 개헌안을 채택한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처럼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의 개편에 대한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원집정부제,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중 하나를 채택 중인 세계 각국은 정치 상황에 따라 권력구조 개편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구조 모델의 장단점을 분석해 자국에 맞는 절충식 정부 형태로의 전환도 눈에 띈다.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면서도 의원내각제 요소를 기본으로 하는 정부 형태다. 프랑스를 비롯해 핀란드,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포르투갈 등이 채택하고 있다. 국가에 따라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 대통령과 의회의 관계, 대통령 선출 방식에서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20세기 초일류 국가로 부상하면서 미국식 대통령제를 전파시켰다. 대통령과 의회 간의 독립, 대통령 직선제, 행정부와 의회 간의 겸직 금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러시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필리핀, 인도네시아, 남아공 등 남미, 동남아, 아프리카 국가들이 주로 운용 중이다. 의원내각제는 영국을 모델로 하고 있다. 의회의 내각불신임권과 내각의 의회해산권을 결합시킨 내각과 의회 간의 상호 의존 및 견제 관계, 의원과 내각 간의 겸직 허용, 의회 다수파의 의사에 따른 총리 선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영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유럽지역이나 영연방 또는 전통적인 군주제 국가들에서 주로 시행하고 있다. 고려대 이준일 법학과 교수는 “개헌을 통한 새로운 권력구조 개편은 외국 선진국들의 제도를 충분히 검토한 뒤 다음 세대까지 고려하는 측면에서 신중하고 장기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네팔공화국’ 28일 출범

    히말라야 산자락의 네팔이 민주주의 국가로 28일 다시 태어난다. 이날 239년간 유지됐던 샤(Shah)왕조의 완전 종식을 선언할 제헌의회가 소집되기 때문이다. 지난달 10일 총선에서 선출된 601명의 제헌의원들은 이날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 총리 주재로 첫 회기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 마오 반군이 만든 네팔공산당(M)은 왕정 폐지와 공화국 출범을 선언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네팔은 공화제로 전환된다.3대 정당인 네팔국민회의(NC)와 마르크스 레닌주의자 연대인 네팔공산당(UML),M으로부터 퇴진압력을 받고 있는 갸넨드라 국왕도 왕의 신분을 버리고 평민으로 돌아갈 전망이다. 지난 3월24일 은둔의 왕국인 부탄이 총선을 통해 100년 동안의 왕정을 끝내고 입헌군주제로 전환한데 이어 네팔도 공화제로 바뀌면서 히말라야 주변국에 민주화 실험이 확산되고 있다. 네팔은 제1당인 M이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NC와 UML 등이 참여하는 연립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 정당들이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자기 몫을 둘러싼 갈등이 나타나고 있어 연정구성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향후 네팔 정국 기상도는 맑지마는 않다. 왕정 폐지를 반대하는 테러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마오이스트, 네팔 총선 압승

    네팔 첫 총선에서 반군 정당 마오이스트(M)의 돌풍이 거세다. 일간 네팔뉴스 등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13일 개표가 완료된 94개 선거구 가운데 54석이 M에 돌아갔다. 이 추세라면 집권은 떼놓은 당상으로 보인다고 더 히말라이언타임스는 보도했다.플라찬다 총재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2만 3277표를 얻어 1만 2154표에 그친 네팔국민회의(NC) 후보를 2배 가까이 따돌리고 무난히 당선됐다. 제헌의회 진입에 성공한 다른 후보들도 워낙 큰 표차로 앞서 M의 기세를 그대로 드러냈다. 바부람 바타라이 부총재도 3만 5119포로 4894표의 NC 후보를 제쳤다. 반면 M과 각축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던 NC와 마르크스-레닌주의 연대(UML)는 13일 현재 각각 16석을 차지하는 데 머무르며 제2당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번 선거를 통해 240명의 지역구 의원과 335명의 비례대표 의원이 뽑히며, 선거결과 확정 뒤 총리가 26명의 의원을 추가로 지명,601명의 제헌의회가 구성된다. 특히 총선엔 74개 정당 가운데 54개가 뛰어든 난립상태여서 M의 득표는 그 결과가 사실상 뻔하다는 분석을 가능케 한다.M은 벌써부터 압승을 장담하며 축제 분위기에 빠졌다. 수도 카트만두에서는 망치와 낫이 그려진 당기(黨旗)가 나부끼는 가운데 지지자들이 공산혁명 구호를 외치면서 거리를 붉은 색 꽃가루로 물들이고 있다. 플라찬다 총재는 “민주주의 정부 수립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뜻이 반영된 당연한 결과”라면서 “다른 정당들과 협조해 이에 부합하는 새 헌법을 만들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총선에 옵서버로 참가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선거는 네팔이 오랜 정치폭력을 털어내고 민주주의의 길을 걷는 계기”라면서 “마오이스트 정당이 승리하더라도 미국과 좋은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네팔에서는 1990년 복수정당제가 허용된 이래 의회 세력이 꾸준히 민주화를 요구해 왔으나 정부해산권을 가진 갸넨드라 국왕은 총리를 13번이나 교체하면서 의회와 맞섰다. 네팔의 마오이스트 반군은 군주제 타도와 공산국가 건설을 꿈꾸며 1996년 무장봉기를 일으켜 10년간 정부군과 내전을 치렀으며 이 과정에서 1만 3000여명의 희생자를 냈다.2006년 11월 정부와 평화협정을 체결, 내전에 종지부를 찍은 마오 반군은 뒤로는 임시정부에 참여해 민주화 이행 과정에 목소리를 냈다. 1만 5000여명의 병력을 거느린 마오 반군은 국토의 절반 가까이를 장악하며 국왕 축출과 군주제의 즉각적인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총선에서 M이 승리하면 1769년부터 239년간 영욕을 누려온 샤(Shah) 왕조는 실권을 모두 빼앗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질 확률이 커진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239년 왕정’ 네팔 민주주의 첫실험

    ‘239년 왕정’ 네팔 민주주의 첫실험

    히말라야의 작은 나라 네팔이 민주주의 국가로 다시 태어난다. 오는 10일 역사적인 총선을 통해 제헌의회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제헌의회가 민주주의 헌법을 만들면 239년간에 걸친 샤(Shah)왕조에 의한 절대왕정은 완전히 종식되고 공화제로 바뀐다. 지난달 24일 ‘은둔의 왕국’ 부탄이 총선을 통해 100년 동안의 왕정을 완전히 접고 입헌군주제로 전환한 데 이은 것이다. 히말라야 산자락에 ‘민주주의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있다. 네팔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0일 전국 240개 선거구 2만 1000여개 투표소에서 제헌의회 의원 610명을 뽑는 선거를 치른다.6일 현재 선관위에 등록된 지역구 출마후보는 3947명이며 비례대표 후보도 5710명에 달한다. ●마오반군 “선거 압승 자신한다” 현재 네팔에는 74개의 정당이 난립하고 있다.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 총리가 이끄는 네팔국민회의당(NC)과 마르크스 레닌 주의자 연대인 네팔공산당(UML), 인도와 중국이 기원으로 알려진 마오 반군이 만든 네팔공산당(M)이 3대 정당으로 손꼽힌다. 왕정 반대에 한목소리를 내는 이들 정당이 이번 총선에서도 다수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절대왕정 국가였던 네팔은 1990년 비렌드라 전 국왕이 입헌군주제 도입을 골자로 한 정치개혁을 단행하면서부터 정치상황이 급변했다. 하지만 정정 불안으로 2년을 넘긴 정부가 없었고 1996년 마오반군의 무장봉기로 네팔은 내전의 불바다로 빠져들었다.10년 내전 끝에 정부와 마오반군은 2006년 11월 공동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총선을 치르기로 합의했었다. 총선 이후 정국 기상도에 있어서는 맑음보다 흐림에 무게추가 실린다. 부탄은 국왕이 스스로 권력을 국민에게 넘겨줌으로써 소리 없는 정치혁명을 이룬 데 비해 네팔은 ‘피플파워’가 국왕의 권력을 강제로 빼앗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유혈사태가 벌어졌으며 희생자가 속출했었다. 그 후유증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게다가 마오반군이 “우리는 총선 압승을 자신하고 있다.”며 “선거 조작 행위가 포착되면 선거 결과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수차례 밝혀 향후 정국은 시계제로 상태다. ●향후 정국 시계제로… 주도권 다툼 예상 이에 따라 네팔 정부는 파국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공정 선거를 위해 28개 국제기구와 단체에서 선거감시단 856명을 초청했으며 부정선거 감시요원도 6만 4000명을 위촉했다. 인도와의 국경을 봉쇄하고 13만 5000여명의 경찰병력을 동원하는 한편 지난 주말부터 항공기를 동원한 공중정찰도 실시하고 있다. 한국외대 남아시아연구소 김찬완 박사는 “네팔은 의회민주주의 경험이 적고 마오주의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민주주의 정착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당분간 정국 주도권을 둘러싸고 계파 갈등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네팔의 민주화 실험이 성공할지, 미완으로 끝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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