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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靑 ‘과거사정리위원’ 지명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이 다음달 1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활동할 위원 인선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지명하는 4명의 위원 명단을 최근 중앙인사위원회에 이첩한 것으로 알려졌고, 국회도 다음주 중에 소속 정당별로 해당 인사를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과거사위 구성은 위원장과 상임·비상임위원을 포함해 모두 15명으로 대통령이 4명, 대법원장이 3명을 각각 지명하고 국회가 8명을 선출한다. 이들은 모두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회 몫으로는 열린우리당이 4명, 한나라당이 3명, 비교섭단체가 1명이다. 이 가운데 상임위원은 위원장을 포함해 4명이다. 청와대측은 올바른 과거 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가 위원장으로 추천한 송기인 신부를 비롯해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최일숙 한울 법무법인 변호사를 지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오늘 청와대 인사추천회의에서 최종 검증작업을 벌여 송 신부와 안 교수 등 2명을 위원장으로 추천키로 했다.”고 밝혔다. 상임위원 1명과 비상임위원 3명을 선출하는 열린우리당의 경우 상임위원에 김갑배 대한변협 전 법제이사를, 비상임위원에 김영범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와 김경남(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장)목사, 법타(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공동대표)스님을 위원으로 추천했다. 한나라당에서는 김용균 전 의원과 첫 여성 러시아 대사를 지낸 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 이성헌 국사편찬위원, 서경석 목사 등을 놓고 막바지 인선작업을 벌이고 있다.한나라당 몫은 상임위원 1명과 비상임위원 2명이다. 그러나 시행을 불과 보름 앞두고 위원회와 사무처 구성문제, 다른 국가기관 과거사위와의 관계 등이 논란의 불씨가 되고 있다. 범국민위원회측 관계자는 “상임위원 숫자가 4명에 불과해 일제 강점하부터 미군정과 한국동란, 독재정권 치하의 각종 사건들까지 지난 100년간의 역사적인 숙제를 풀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털어놨다.그는 “의문사위원회의 경우 2명의 상임위원이 44건의 조사를 지휘 감독하는데도 엄청난 과부하가 걸렸다.”며 향후 진실규명 과정의 어려움을 호소했다.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투옥… 망명… 군정 맞선 ‘철의 여인’

    TEXT 서부 아프리카의 빈국 라이베리아에서 아프리카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의 포효가 울려퍼졌다. 4자녀의 어머니이자 할머니인 엘렌 존슨 설리프(66). 두 번의 투옥과 두 번의 망명속에서도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됐다. 라이베리아는 물론 아프리카 역사상 첫번째 여성 최고지도자다. 지난달 1차투표서 19.8%의 지지율를 기록,2등으로 결선에 오른 그녀는 막판 뒤집기로 대권을 거머쥐었다.‘민족 통합과 발전’이란 국가재건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내전 이후 라이베리아의 첫 민선 대통령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흔들리는 표심을 낚아챘다는 평이다. 11일 AP통신 등은 90% 이상 진행된 결선투표 개표에서 59%를 얻어 사실상 승리를 확정지었다고 전했다. 설리프는 이날 당선 확정 직후 AFP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자신있다. 나는 준비가 돼 있으며 나를 선택해 준 유권자들에게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지난 1989년부터 2003년까지 20만명이 사망한 ‘14년 내전’으로 갈갈이 찢긴 라이베리아를 ‘여성의 힘’으로 되살려 놓겠다고 강조했다. 선거운동기간 “남성들이 파괴한 나라를 여성의 힘으로 일으켜 세우자.”고 여성 참여와 역할을 호소, 반향을 일으켰다. ‘민주화 투사’이면서도 미 하버드대에서 석사를 받고 세계은행과 유엔개발프로그램(UNDP) 아프리카국장 등을 역임할 정도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지난 1970년대 후반 윌리엄 톨베르트 정부에서 재무장관도 지낸 경제통이다. 군사정권에 맞서다 내란죄·반역죄 등으로 투옥되고 해외 망명길에 올라야 했지만 ‘철의 여인’이란 별칭의 그녀를 꺾지는 못했다. 그녀는 결선투표 결과를 승복하지 않고 있는 ‘축구영웅’ 조지 웨아(39) 후보와 그의 지지자들에게 “자신의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달래고 있다. 그녀는 내년 1월 6년 임기를 시작하면 6개월내 수도 먼로비아에 전기를 끌어오고 와해된 관료조직과 국가질서를 재건하겠다고 공언했다.그러나 문맹률 80%, 실업률 80%의 빈국 라이베리아의 정치안정과 경제발전이 그리 쉬울 것 같지는 않다. 10여개가 넘는 주요 부족간 갈등과 웨아 후보를 지지하는 불만에 가득찬 무장세력들을 다독거리는 일도 ‘발등의 불’이다. 해방 노예출신들이 건국한 라이베리아는 1980년 군사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내전과 독재의 악순환을 겪었다. 불안한 정정 때문에 지금도 유엔 평화유지군 1만 5000명이 주둔해 있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로버트김 “국민 따뜻한 사랑 온몸으로 느껴”

    로버트김 “국민 따뜻한 사랑 온몸으로 느껴”

    “저는 스파이도 아니었고, 한국정부가 고용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지난 10년간 잃은 것도 많았지만 이번 일로 국민들의 따뜻한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게 됐습니다.” 미군 기밀을 한국에 유출한 혐의로 수감됐다가 지난달 완전히 풀려난 로버트 김(64·김채곤)씨가 6일 오후 4시55분 인천공항을 통해 대한항공 KE094편으로 부인 장명희(61)씨와 함께 입국했다. 스파이로 몰려 영어(囹圄)의 몸이 된 지 10년 만이다. 이날 공식 환영행사는 김씨의 뜻에 따라 생략됐다. 공항에는 동생 김성곤(열린우리당) 의원 등 가족과 미군으로부터 기밀을 넘겨 받은 것으로 지목됐던 백동일(57) 예비역 대령, 후원회 관계자 등 30여명이 조촐하게 나와 그를 맞았다. 백씨와는 눈물 젖은 긴 포옹이 계속됐다. “한때 지나친 형량을 부과한 미국은 물론 사건의 원인을 저 개인의 영웅심리 탓으로 몰아간 한국정부도 많이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 잊었습니다.” 인천공항 인근 하얏트리젠시호텔에 첫날 여장을 푼 김씨는 7일에는 전북 익산 영묘원의 부모 묘소를 찾는다.“돌아가신 부모님들이 가장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자식 걱정에 망자석이 된 부모님께 임종도 못 지킨 못난 아들이 무릎 꿇고 잘못을 빌어야지요.” 8일에는 김수환 추기경 등을 만난 뒤 대통령 후보 시절 미국 집을 방문해 용기를 줬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자택으로 찾아갈 계획이다. 이후 저서 ‘집으로 돌아오다’의 사인회를 여는 등 오는 24일 미국으로 떠날 때까지 19일간 분주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김씨는 1996년 9월24일 미국 해군정보국(ONI) 정보분석가로 일할 당시 기밀문서를 빼돌렸다는 혐의로 붙잡혀 97년 7월 징역 9년에 보호관찰 3년을 선고받았다. 지난달 3일 형집행정지로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됐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수사권 독립·과거사 규명등 과제

    수사권 독립·과거사 규명등 과제

    해방과 함께 시작된 경찰의 역사는 민생치안과 시국치안이라는 빛과 그림자의 공존으로 요약된다. 현재 경찰은 60년 공과(功過)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 청사진을 준비하고 있다. 그 성패는 선진경찰의 이상을 얼마나 현실에 녹여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 ●정권의 하수인에서 민중의 지팡이로 경찰은 1945년 10월21일 미 군정 산하 경무국으로 출발했다. 앞서 같은해 9월16일 처음으로 한국인 경찰관을 뽑긴 했지만 일제경찰 잔재를 물려받아 태생적 한계를 지닌 채 출발했다. 이는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정권의 하수인’으로 기능하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1991년 8월 대통령령에 의해 치안본부가 내무부 외청인 경찰청으로 형식적인 독립의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오랜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 역할만을 할 수는 없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권인숙 성고문, 이한열 최루탄 사망 등은 어두운 과거의 대명사가 됐다. ●수사권 독립…풀어야 할 매듭 산재 현재 경찰의 최대 화두는 수사권 독립이다. 초기 일시적으로 수사권을 가졌던 경찰은 48년 이후 검찰과 상명하복 관계에 놓였다. 이후 경찰은 여러 차례 수사권 조정을 요구했고 지난해 9월에는 검ㆍ경이 ‘수사권 조정 협의체’를 발족하기에 이르렀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 ●“인권 경찰돼야” 한 목소리 최근 들어 경찰은 인권을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민중의 지팡이’가 아닌 ‘민중의 몽둥이’이라는 평가를 불식시키겠다는 각오다. 경찰에 바라는 외부 목소리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진다. 조영황 인권위원장은 “인권보호에 적극적일수록 경찰과 일반국민간의 거리는 좁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오종렬 올바른과거청산을위한범국민위원회 공동상임대표는 “민주경찰로 거듭나고자 하지만 아직은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남영동 보안분실을 인권센터로 바꾸는 형식적인 노력보다는 환골탈태하는 진정한 인권 지킴이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北찬양 서적·CD 무단 대량 반입

    최근 민간인의 평양 방문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방문객 상당수가 북한 서적과 콤팩트디스크(CD) 등을 무단 반입해 문제가 되고 있다. 14일 인천공항세관에 따르면 지난 6월부터 지금까지 남북 교류사업과 평양 아리랑공연 관람 등을 위해 북한을 방문한 사람은 19차례 4719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북한 서적,CD, 비디오테이프, 우표 등을 불법으로 반입하다 적발돼 세관에 유치된 것은 180건 1000여점이다. 유치품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적은 ‘김일성 회고록’‘김정일 장군 선군정치이론’ 등 김일성 부자와 관련된 것들이다.CD·테이프 등은 대체로 아리랑공연 내용이 담긴 것이다. 유치된 물품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무작위 검색에서 적발된 것이어서 검색을 받지 않은 관광객은 제지없이 상당량을 반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행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르면 북한에서 발행된 서적과 CD 등은 사전에 통일부 승인을 받아야 반입이 가능하다. 통일부는 북한으로 가는 기내에서 이같은 사항을 공지하고 있다. 승인없이 반입할 경우 세관에 유치하며, 반입승인서를 사후 제출해야 통관이 가능하다.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시론] 새 대법원장에 바란다/ 한상범 한국법학교수회 명예회장

    [시론] 새 대법원장에 바란다/ 한상범 한국법학교수회 명예회장

    김영삼 정부로부터 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현정부에 이르기까지 정권이 새로 출범할 때마다 사법개혁이 당면과제가 되었다. 개혁의 외침은 거셌지만 실속은 없었다. 우선 신임 대법원장은 이제까지와 같은 형식적인 개혁 행사를 더 이상 되풀이하지 말라는 주문부터 하고자 한다. 겉치레 개혁은 더 이상 필요 없고, 국민들도 동의하지 않는다. 개혁에 나선 사법부는 스스로 개혁의 대상으로서 겸허하게 반성하고 국민의 뜻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독재하에 일부 재판이 잘못되었던 것은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다. 군정독재하에서 잘못된 재판을 세상에서는 ‘사법살인’ 그리고 ‘쪽지재판’과 ‘정치재판’이라고 부른다. 결국 법률에 의한 피해자로서 국민의 재판 불신을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신임 대법원장의 사과는 그에 상응한 행동과 대응책으로 나타나야 한다. 잘못된 재판은 신임 대법원장 말대로 재검토돼 시정되어야 한다. 30여년에 이르는 군사정권의 폭정이 남긴 잔재는 그 자체로 엄청나다. 우선 상당수의 재판관이 군정독재하에서 임관되어 근무하며 보직, 전보, 승진 길을 걸어 온 과거가 있다. 그 과거에는 흠도 있고 문제가 될 일도 상당히 있을 것이다. 여기서 그 모두를 두고 따질 일은 아니지만,“과거를 묻지 마세요.”식으로 얼렁뚱땅 지나칠 수는 없다. 패전후 독일의 사법부는 나치즘에 희생된 사람들을 애도하며 거듭났다. 과거사를 정리하려는 우리 사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가 남긴 상처 때문에 아픔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피해갈 수 없다. 그런데 법원 일각에는 사회단체나 일반인의 재판 비판이 사법권 독립에 대한 침해인 듯 그에 반발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이를 지켜보자면 우리가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잘못된 재판의 검토는 그 억울함의 구제와 연계되어야 한다. 공정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행법상의 재심절차로는 부족하다. 그 문제의 해법은 입법부와 협조해 당장 모색 강구해야 한다. 법관은 시민의 비판과 참여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우리 법원과 검찰은 권위주의와 관료주의를 깨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관료주의와 권위주의는 관리에겐 한없이 편한 제도이지만, 지금은 관료가 주인인 시대가 아니다. 일본 법조계도 시민들에게 재판참여의 문을 열고 있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출신 연고·기수를 따지고 서열·석차에 줄서고 전관예우의 타성에서 과감히 벗어나지 않는 한 장래는 없다. 얼마전 고위 공직자나 돈 많은 부자가 형기를 제대로 채우지 않는다는 보도를 보고 다시 한번 가슴이 쓰렸다. 사법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법률의 그늘에서 억울함을 느끼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의문사’를 다루는 기관에 근무하면서 법률에 의한 피해자를 거의 매일 만났다. 피해자나 가해자까지도 독재와 권위주의의 희생물이다. 법률의 마지막 파수꾼인 법원은 어떻게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법관들이여. 사법권의 독립은 당신들 스스로의 노력과 투쟁으로 지켜진다. 그러한 법관이 있을 적에 국민은 충심으로 그를 존경하고 신뢰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법의 권위의 기반이 되고 사법권 독립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법률(또는 재판)이 달래지 못한 피해자가 흘리는 절망의 눈물을 닦아주는 인간성과 정의를 추구해 나가는 기개가 있는 재판관을 국민은 원하고 있다. 한상범 한국법학교수회 명예회장
  • 담양군 환경 ISO인증 받았다

    전남 담양군이 그린시티 지정에 이어 친환경 국제규격인 ’ISO 14001(국제환경경영시스템)‘ 인증을 받는 등 ’생태도시 건설‘에 탄력이 붙고 있다. 담양군은 “최근 세계적 인증기관인 노르웨이의 DNV(Det Norske Veritas)인증원으로부터 친환경국제규격인 ISO 14001을 획득했다.”고 9일 밝혔다. 담양군은 지난 3월부터 6개월간 군청 전 실·과·소를 대상으로 DNV 인증원으로부터 서류 및 현장 심사를 받았다. 군정에 대해 ISO 14001인증을 받은 것은 자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담양군은 이에 앞서 지난해 환경부로부터 ’그린시티(Green City)‘로 지정되고, 지난 5월 국제경제협력기구(OECD)로부터 환경성 평가를 받았다. 담양군은 이번 인증이 환경친화적인 생태도시 담양의 이미지를 국제적으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ISO 14001은 국제품질표준화기구(ISO)에서 정한 환경경영시스템에 관한 국제규격으로 관공서의 조직구조, 활동계획, 환경보전 활동과 법규 등이 국제규격에 맞는지 심사를 통해 보증하는 제도다.광주 남기창기자kcnam@seoul.co.kr
  • [열린세상] 10월유신 체제와 주체사상 체제/이덕일 역사평론가

    유신체제가 기승을 부리던 1970년대 후반 고교를 다녔던 필자에게 학교의 일부는 군대였다. 교련수업이 있는 날은 교련복을 입고 등교해 제식훈련과 총검술을 배웠다. 군가 경연대회도 있어서 아침 저녁으로 군가를 연습해야 했다.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 침략의 무리들이 노리는 조국’으로 시작하는 군가 ‘너와 나’는 비슷한 시기 고교를 다녔던 사람이면 누구나 읊조릴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이 왜 군가를 불러야 하는가라는 의문은 사치에 불과했다. 학교 담벼락에 ‘유신만이 살길이다’같은 전체주의성 정치구호가 도배된 시절이었다. 심지어 소풍까지 교련복을 입고 4열 종대로 시내를 가로질러 군가를 부르며 가야 했다. 고교 안보실기대회라는 것도 있었다. 시내의 전체 남녀 고교생들이 공설운동장에 모여 제식훈련과 총검술을 시범보이는 것인데, 여학생들까지 위생 가방을 멘 채 씩씩하게 팔을 흔들며 행진해야 했다. 근래 재방영하는 대한뉴스에서 그때의 행사장면을 보고 국가권력, 아니 정권에 빼앗긴 나의 청춘시절이 가슴 아팠다. 세상에 대한 사랑을 배워야 할 나이에 증오를 배웠던 불행한 시절이었다. 필자가 좌우파를 막론하고 전체주의 체제에 대해 무조건적인 저항감을 갖게 된 것은 이때의 경험과 상처가 체화된 것이다. 또한 역사를 권력을 쥔 지배자나 승자의 시각만이 아니라 피지배자나 패자의 시각도 중요하게 바라보게 된 것도 이때의 경험 때문이다. 이런 반(反) 전체주의 시각을 현재 평양에서 공연 중인 ‘아리랑 공연’에 맞출 필요가 있다.2002년 고 김일성 주석의 90회 생일을 기념해 처음 선보였는데 올해 노동당 창건 60주년을 기념해 다시 상연된다는 자체가 짙은 정치성을 내포하고 있다. 총 10만여 명이 출연하는데 그중 평양시내 10개 중학교 학생 2만여 명으로 구성된 것이 ‘배경대’이다. 중학생 배경대가 지휘자 10명의 구호에 맞춰 ‘총’ ‘폭’ ‘탄’이라는 구호를 동시에 지르는 것도 공연의 일부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총폭탄이 되기 위해 하루 반나절씩 4개월을 연습해야 한다니 인간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공연 내용 역시 ‘선군정치’의 기치를 높이 내세우고 군복 차림의 6만여 참가자들이 백병전을 선보이는 군사주의이자 ‘21세기의 태양’은 김 주석이라며 김일성 부자에 대한 충성을 촉구하는 것이라니 이것이 과연 21세기 정상적인 인간사회의 모습이란 말인가. 북한의 이런 모습은 태평양전쟁 시절 일제를 생각나게 한다. 당시 ‘초등과 수신 교과용서(初等科修身敎科用書)’는 “일본은 좋은 나라 강한 나라, 세계에 빛나는 훌륭한 나라”라고 강조하며 “미·영을 응징하는 대동아전쟁이야말로 바로 우리 건국의 정신을 세계에 실현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일본’만 ‘공화국’으로 바꾸면 흡사하다. 일제는 전황이 악화되자 ‘1억옥쇄’를 전 국민들에게 강요했는데 여학생들도 ‘백합부대’란 이름으로 징발되어 목숨을 잃었다. 여학생들의 죽음이 백합같이 순결하다고 붙인 이름인데 이렇게 순결한 여학생들이 천황제란 괴물을 위해 강제로 죽어야 했던 것이다. 유신체제와 주체체제는 많은 부분에서 군국주의 시절 천황제와 닮은 일란성 쌍둥이같다. 필자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과거 유신체제에 맞서 싸웠던 많은 인사들이 그보다 더한 전체주의인 북한에는 침묵하거나 심지어 동조하는 점이다. 이는 자신들이 걸었던 역사에 대한 부정에 불과하다. 한때 존경해 마지않았던 그 분들에게 인간 그 자체보다 우위에 있는 이념이나 조직은, 국가를 포함해 있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말씀드려야 하는 현실이 고교시절 안보실기대회장에서 외쳤던 구호처럼 서글프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 강정구 교수 “한·미 동맹 예속적-반민족적”

    ‘6·25는 북한이 시도한 통일전쟁’이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강정구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가 30일 ‘한·미 동맹은 반민족적이고 예속적’이라는 주장을 폈다. 강 교수는 이날 오후 서울대 문화관에서 열린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주최 한반도 정세 토론회에서 ‘한·미 관계의 비판적 검토와 새판짜기’라는 발제문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그는 “한·미 동맹은 본질적 속성상 예속적이고 반민족적, 반평화적, 반통일적”이라면서 “한국전쟁 때 미국이 남한을 도와줬으니 우리도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맹목적 보은론에 포로로 사로잡힌 결과”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국사회의 기성 주류는 일제 40년, 미국 신식민지 지배 60년 등 100년간 노예 노릇을 해와 이제는 자신들이 자발적 노예주의자라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비난했다. 그는 “한·미 군사동맹은 철폐돼야 하며 한·미 관계는 한·중, 한·일 관계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우호친선 협력관계로 바뀌어야 한다.”면서 “민족 공조와 탈미(脫美) 비동맹 중립의 위치에서 동북아 경제평화협력체를 구성해 동북아의 장기적 상생 구도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1946년 미 군정청이 시민 8453명에 대해 실시했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 당시 사람들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압도적으로 선호했다고 전하고 “현재의 기준에서 과거 역사를 정당화시키는 것은 몰역사적 결과론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73년 펴낸 자료집에 실린 해당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회체제에 대한 46년 당시 시민들의 선호도는 자본주의 14%, 사회주의 70%, 공산주의 7%, 모른다 8%였다. 강 교수는 “사실 차원에서 6·25를 통일내전으로, 맥아더를 전쟁광으로 본 것”이라며, 이념 및 가치 논쟁은 이와 별개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통일전쟁’ 발언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6·25가 국제법상 내전인지 침략전쟁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도 6·25를 (주권국가간 침략전쟁이 아니라) ‘평화 파괴’로 규정한 것을 보면 통일내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새영화] 한길수 23일 개봉

    23일 개봉하는 영화 ‘한길수’(제작 트라이엄프 픽쳐스)는 아쉬움을 남기는 영화다. 드러나지 않은 역사의 진실을 알리려는 감독의 집요한 노력만큼 영화적인 모양새가 따라 주지 못했다.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한국 현대사에서 주목받지 못한 한길수라는 인물의 재조명.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하와이에 거점을 둔 한인 독립 단체 KSPL 요원이자 미 해군정보부 요원으로 일하며 조국의 광복을 위해 힘쓴 한국인이다. 하와이 일본 영사관에 이중 스파이로 잠입한 뒤 미국의 참전을 유도한 진주만 공습을 예견해 미국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진주만 공습 자체를 촉발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조국 독립을 위한 남다른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일본의 이중 스파이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비운의 인물이다. 이 한길수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이인수 감독의 뚜렷한 목적 의식에서 시작됐다. 그는 지난 2002년 자신이 연출한 KBS 다큐멘터리 ‘수요기획-최초 공개 한길수 X 파일’을 통해 한길수라는 인물의 존재를 세상에 공개했다. 이후 이 감독은 한길수의 드라마틱한 삶에 매료됐고, 그의 활약상을 영화화해 널리 알리고 싶었던 것. 사재까지 털어 제작비에 보탤 정도로 열정을 쏟았다.12세 관람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예비역장성들 ‘국방개혁’ 쓴소리

    국방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방개혁 법제화 작업과 국방개혁안에 대해 예비역 장성들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박춘택 전 공군참모총장과 이남신 전 합참의장, 송영근 전 기무사령관 등 예비역 장성들은 ‘21세기군사연구소’ 주최로 지난 2일 열린 ‘국방개혁 법제화’ 세미나에서 개혁안이 ‘국방의 정치화’로 변질할 수도 있다며 강하게 지적한 것으로 8일 확인됐다.국방개혁 법제화와 관련, 이석복 예비역 육군소장은 “1990년 초 군개혁 청사진인 ‘818계획’도 1년간 각 군의 의견을 수렴해 안을 만들어 1년간 공청회, 국민설득 등의 과정을 거쳤다.”면서 “1개월가량의 짧은 기간에 중대한 문제를 법제화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이선호 예비역 해병 대령은 “법제화로 인해 자칫 국방 의사결정과정이 정치적 가치판단으로 잘못 호도되거나 군정·군령 일원화라는 헌법의 기본정신이 정치적 외압에 의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남신 전 합참의장은 “현행 68만여명의 병력을 50만명으로 줄이는데 2015년까지 우리 안보상황은 어떻게 되고 우리 경제는 얼마나 성장할까 고려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최명상 예비역 공군준장은 “육해공군 비율을 2대1대1,3대1대1로 하자는 것이 어떻게 균형이냐.”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해공군 비율도 각각 23∼25% 수준인데 우리는 10%도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여군 창설 55주년 맞아

    대한민국 여군이 6일 창설 55주년을 맞았다. 한국전쟁 발발 3개월 뒤인 1950년 9월 여성 의용군 491명이 자원 입대한 것이 대한민국 여군 역사의 첫 출발점이다. 현재는 군내에 부사관급 이상 여성 간부가 4000여명으로 전체 간부 대비 2.3%를 차지하고 있다.‘금녀의 구역’으로 인식되던 일반 함정이 2001년에 첫 개방된 이래 2003년에는 전투함에까지 여군이 승선했다. 현재 여군 진출이 제한돼 있는 육군 포병이나 기갑, 방공 등 극히 일부 병과를 제외하면 군내 여군에 대한 문호는 전방위로 확대된 상태다. 국방부는 미래 하이테크 전에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접목시킨다는 계획에 따라 2020년까지 여군 비율을 5%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여군 창설 55주년을 기념해 이날 국군정보사령부 920정보여단 김현경 중령, 여군발전단 고충처리과장 이민숙 소령, 공군 제8전투비행단 조종사 박지원 대위가 국방장관상을, 육군 제2수송교육단 김진여 상사가 여성가족부 장관상을 각각 받았다. 한편 국방부 여군발전단은 이날 1박2일 일정으로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21세기 파워(POWER), 국방여군 네트워크 한마당’이라는 워크숍을 개최했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한국여성처럼 불쌍한 여성은 없다

    한국여성처럼 불쌍한 여성은 없다

      『한국여성처럼 불쌍한 여성은 없을 것 같다-』남성으로부터「뭇매를 맞을 듯한 소리」를 펼친다. 신학박사 김태묵(60)목사의 거침없는 결론이다. 약 1년 전부터「카운셀링」(정신위생상담)업을 개업, 갈등을 안고 찾아온 내담자(來談者)와의 정신분석적인 대담 끝에 얻을 결론이란다. 상담실 찾아오는 여성 손님들은 거의 신경쇠약증 환자 김태묵 목사는 그 학위가 말해주듯 바로 신학자이고 또 종교활동가이다.「하와이」한인교회 목사,「워싱턴」한인교회 창립, 서울 남대문교회 목사, 중앙신학교 교장, YMCA연맹 총무, 대구 신명(信明)여고 교장 등의「코스」를 주로 걸어왔다. 그 목사가「한국정신위생원」이라는 정신상담소를 개업, 사무실을 서울 중구 충무로 2가 52의 4에 있는「소피아·하우스」에 차렸다. YMCA에 근무할 때부터 젊은이들의 정신상담을 맡아 듣고 차차 그 방면의 공부를 해온 결과, 근대화병의 하나인「노이로제」를 고쳐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8·15해방과 6·25동란, 4·19와 5·16의 두 차례의 혁명 등 수차에 걸친 정치 문화의 격동기를 거친 우리 겨레는 지금 급격한 사회 변천과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정신력의 박약과 부조화로 근심 불안 번뇌 등 각종 정신장애와 절망감 좌절감에 사로잡히는 신경쇠약증에 빠져들어가고 있습니다』 「카운셀링」개업의 변(辯)이다. 『서울에는 정신장애자가 많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일례를 들면 호주머니에는 돈 한 푼도 없으면서 큰 사업을 합네 하고 다방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일종의 정신질환 환자일겝니다』 1년 동안에 약 2백 건의 상담을 받았다. 목회(牧會) 상담학의 강의를 맡고 있는 장로교 신학대학과 숭실대학 학생들의「카운셀링」을 맡아보고 또 교회의 목사들이 보내주는 신도들의 정신상담을 들었다. 상담내용의 대부분이 가정문제 애정문제의 갈등이 일으킨 정신장애, 입시 등에 실패한 중·고교학생들의 열등감과 이로 인한 부모들의 정신적 고통 등이다. 특히 기혼여성들의 대담자가 많았다. 최근에「카운셀링」한 여성 대담자의 고민 두 가지를 실례로 들었다. ① 결혼 생활을 약 20년간 해온 주부 김영숙(45·가명)씨의 경우. 원래는 국민학교의 교사였는데 10년 전에 그만두고 양장점을 차렸다. 장사는 계획대로 잘 되었다. 자연 바빠졌다. 그녀의 장사수완이 가족의 생활을 유지해 왔다. 한편 남편은 회사원이었는데 10년 전에 실업. 월급쟁이는 죽어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남편은 아내가 번 돈을 번번이 가지고 나가 사업을 한다고 뛰어 다녔으나 제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 처음 5년 동안은 아내를 실업 이전과 다름없이 다루었다. 폭력도 쓰지 않았다. 그것이 5년 전부터는 아내의 일거일동에 일일이 말썽을 부리고 폭력을 휘둘렀다. 신경쇠약증에 빠진 이 주부가「카운셀링」을 받기 위해 김박사를 찾아왔다. 돈 못 벌면 열등감만 남는 남편한테 매맞고 구박 받기 일쑤 김박사의 진단 -『남편이 의처증을 나타내고 폭력을 쓰는 것은 열등의식의 발로이거든요. 5년 전까지는, 비록 실업상태에 있고 또 아내의 도움을 받았었지만 자기도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뛰어다니는 기력이 있었기 때문에 아내를 옛날과 다름없이 사랑할 수가 있었죠. 빈번한 실패로 그 기력조차 없어지고 아내에 대한 열등의식만이 남았습니다. 남편은 자기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아내에게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온 것입니다』 김박사는 그 주부를 만난 후 남편의 상담도 받았다.「카운셀링」은 내담자에게 고민거리를 모두 쏟아 놓게 한다. 내담자는 자기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확 털어놓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기의 해결방법을 발견해 낸다. 이 부부는 그 이후 다행히 원만한 가정생활로 돌아갔다. ② 일류 여대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여성 이강희(40·가명)씨의 경우. 초혼에 실패하고 재혼한「인텔리」여성인데 이혼문제를 들고 김박사를 찾아왔다. 초혼에 실패한 것은 춤바람 때문이었다. 그 초혼은 부모가 정해주는 남자와의 평범한 결혼. 십수 년을 같이 살아 오는 사이에 두 남매까지 두었다. 춤을 배우기 전까지는 그저 남자란 모두 남편과 같은 줄만 알고 지냈다. 3년 전에 춤을 배워「댄스·홀」에서 자기와 같은 나이 또래의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가 남편보다 훨씬 좋아졌다. 화끈 달아오르는 연애감정을 느꼈다. 남편과 이혼했다. 친정어머니가 준 돈 3백 만원을 가지고 그 남자와 결혼을 했다. 새 남편은 공무원이었다. 3년 동안의 새 살림을 위해 3백 만원이 고스란히 들어갔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남편이 번번이 가출했다. “그래도 무슨 정이 남았는지” 이혼계(離婚屆) 차마 못내기도 드디어 이혼을 결심, 새 남편도 그것에 동의하고 이혼신고서에 도장을 찍었다. 남은 절차는 자기의 도장을 찍어 구청에 내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이여인의 고민이 시작됐다.『그래도 무슨 정이 남았는지』그것을 구청에 낼 수가 없었단다. 신경쇠약에 빠졌다. 이 부부도 다시 평화스러운 가정으로 되돌아갔다. 애정문제의 갈등의 대부분은 여성쪽이 피해자였다. 그래서『우리나라 여성처럼 불쌍한 여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벌써 이혼을 했을지도 모를 문제들을 안고 한국여자들은 고민에 떨어지고「노이로제」에 빠진다. 요즘은 이혼들을 쉽게 한다지만 그래도 이혼이라는 것은 한국여성에게 있어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대사건이다. 여기서 생기는 마음의 갈등과 부조화가 기혼여성들을 괴롭힌다. 김박사는 반드시 결합만 시킨 것은 아니었다. 이혼을 서둘러 시킨 예도 있다. ③ 젊은 남녀가 목사의 소개로 그를 찾아왔다. 두 사람은 결혼식만 올린 부부였다. 결혼식 후 신혼여행을 어디로 가느냐고 두 사람이 대립했다. 남자는 유성온천을, 여자는 제주도를 내세웠다. 그 길로「별거생활」이 시작되었다. 이 부부는 나란히 앉아 김박사와 상담한 결과 이혼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삶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영남지방에서 다소는 알려진 승려, 법옹(法翁)스님이 박사의 선친이다. 승려의 아들이 16세에 기독교에 입신, 목사가 됐다. 미국유학(오벨린대학) 중에 제2차대전이 터지자 일어능력으로 발탁되어 대일본어 방송의 요원으로 활약, 일본제국은 궐석재판에서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여 선고문을 고향인 대구의 자택까지 보내왔다. 선고장을 들고 온 일본인이 김박사의 선친을 위로한답시고 말했단다. 일본이 이길 것이니 전승기념특사가 내리면 10년 징역으로 감형될 것이니 안심하라고. 해방 후는 미군정청 관리로 일했고 4·19 후는 YMCA 총무 자리를「쫓겨났다」.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때까지 안 얻은 미국시민권을 갖고 정신분석학을 연구,「카운셀러」가 된 것이다. 현재는 정신병원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다. 『「카운셀링」은 그러므로 제2경제의 실천행동이 되기도 합니다』라고 상당히 확대된 포부를 피력했다. [ 선데이서울 69년 1/26 제2권 제4호 통권18호 ]
  • 강남대체 미니신도시 송파구 2곳 82만평 주목

    강남대체 미니신도시 송파구 2곳 82만평 주목

    서울 강남의 주거 수요를 대체할 ‘미니 신도시’가 어디에 조성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24일 업계에 따르면 미니 신도시 후보군으로 송파구 장지동·거여동 일대의 남성대골프장(24만평)과 특전사(58만평) 부지가 주목받고 있다. 두 부지를 연계해 개발하면 80만여평의 대규모 신도시 조성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강남·송파·성남과 두루 접하고 있는 데다 환경이 쾌적해 현재 강남의 중·대형 아파트 수요자들이 이동할 만한 이점을 갖고 있다. 부동산114 김희선 이사는 “신도시는 강남에 있는 각종 기반·편의 시설들을 이용할 수 있는 이점을 가져야 눈길을 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지동·거여동 일대는 미니 신도시 후보지 외에도 각종 호재가 맞물려 있다. 송파대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문정동 일대는 3만 2000여평 규모의 법조타운이 조성돼 2010년까지 동부지법·지검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또 18만평 규모의 장지 택지개발지구에는 내년까지 6000여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이밖에 강남권 부지로는 서초구에 남아 있는 유일한 대단지 터인 서초3동 국군정보사 터(5만 5000평)가 거론된다. 용인 죽전동 옛한국전산원 터(11만평)의 경우 죽전 택지개발지구와 가깝고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대체 신도시로서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경기 광주시 오포읍 한국노동교육원(14만 6000평)도 좋은 입지로 평가된다. 분당과 바로 인접한 데다 공기가 맑은 게 장점이다. 그러나 교통여건 개선이 과제다. 반면 공공기관 이전 대상인 경기도 용인시 구성읍 국립경찰대학(27만 1000평)과 법무연수원 부지(21만평)는 용인시 안에 있더라도 서울과 거리가 멀어 선호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밖에 유력한 후보지로 꼽히는 수원 오목천동 축산연구소(33만평), 수원 서둔동 작물과학원(31만 7000평), 수원 서둔동 농업과학기술원(15만 3000평) 등도 큰 이점은 없어 보인다는 평가가 많다. 강남과 먼 지리적인 한계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들을 미니신도시로 조성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군 시설은 국방부와의 의견조율과 대체부지 확보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공공기관 이전부지 역시 혁신도시 조성이 마무리되는 2010년 이후에나 활용이 가능하다. 한편 개발이 진행중인 택지지구의 규모를 확대 개발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인천 청라지구(541만평), 파주시 운정(284만 6000평)·교하(61만 8000평)·금촌2지구(26만 1000평), 양주시 고읍(44만 9000평)·광석(36만 3000평)·옥정(184만 7000평)·덕정2지구(7만 4000평) 등이 대표적이다. 내집마련정보사 함영진 팀장은 “세제를 아무리 강화해도 공급대책을 함께 제시해야 ‘내가 이 집을 계속 갖고 있어도 신도시 개발로 향후엔 큰 메리트가 없겠구나.’라는 인식을 주어 장기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안정된다.”면서 “강남 인접성이 신도시 경쟁력을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 라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광복60-미래를 위한 제언] 한·일 두 학자가 보는 양국관계

    [광복60-미래를 위한 제언] 한·일 두 학자가 보는 양국관계

    광복 60주년.1945년 8월15일에서 2005년 오늘 그 60년은 대한민국의 희망과 좌절, 격동, 전진의 대역사이기도 하다. 광복 60주년이 우리 대한민국에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지금 이 시기 한반도 평화는 어떤 모습으로 구체화돼야 하는지, 그리고 한국과 일본은 한반도 평화 구축이란 대전제 속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가 두 나라 국민 모두에게 던져진 과제다. 이런 취지 아래 한·일 두 학자의 인터뷰를 통해 양국 관계의 미래를 위한 제언을 듣는다. 최상용 교수는 주일 한국대사를 지낸 대표적인 지일파(知日派)학자이며, 고하리 스스무 교수는 신진 지한파(知韓派)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최 교수는 직접 인터뷰를, 고하리 교수는 e메일 인터뷰를 했다. ■ 주일대사 역임 최상용 고려대 교수 ▶광복 60주년이 갖는 의미를 정리하면. -우선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을 갖고 싶다.1945년 광복 이후 3년 의 군정을 거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 우리는 자유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선택했고 그 기반 위에 산업화를, 산업화의 태내에서 자생적인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동아시아에서 민주화된 시장경제를 구현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하지만 일본의 민주주의는 서구처럼 시민혁명에 의한 자생적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명치유신 이후 약 140년간 서구 민주주의를 학습해 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 7년간의 미군의 점령정책이 일본의 민주화를 반석에 올려 놓았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은 분단과 전쟁, 독재, 수많은 희생, 반인권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피와 땀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광복 60년 이순(耳順)의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냉혹한 국제현실에서 자주의 역량을 갖춰야 한다. 자주는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안팎의 자원을 주체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이다. 냉전시대엔 서방의 맹주였던 미국이 있었고, 서방체제 안에 편입돼 있으면 안전했다. 이젠 달라졌다. 자주 역량을 발휘한 최근 두 사례가 있다.5년 전 6·15 남북정상회담은 바깥 세력에 의해 강제된 한반도 냉전을 우리 민족의 힘으로 풀어보려는 몸부림이었다. 자주적 역량의 표시로 이를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본다. 지난 1년여 동안 정체된 6자회담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우리의 역내 조정자 역할도 훌륭했다. 우리는 이제 ‘중견국가’로서의 역량을 갖춰 나가면서 자유와 자주를 기반으로 한반도 평화를 일궈 나가야 한다. ▶한·일관계의 현주소와 미래는. -1965년 국교 정상화 무렵 한·일국민간 교류는 연간 만 명이었다. 지금은 하루 만 명 이상이다. 이 현실을 무게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1998년 한·일 파트너십 정신은 일본의 식민통치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과, 이를 토대로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나갈 것, 그리고 일본 대중문화를 한국시장에 개방하는 것이 중심내용이었다. 우리와 일본의 문화산업의 격차를 우려해 많은 국민들이 반대했다. 나는 당시 문화 교류는 어떤 특정한 시기에서의 우열의 문제가 아니고,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끊임없는 서로 배우기의 과정이라고 판단하여 찬성했다. 그래서 지금 한류(韓流)가 있다. 한·일 과거사 논쟁에서 항상 먼저 어기는 쪽은 일본이다. 소위 망언인데,6자회담에서 화두가 된 ‘말 대 말’‘행동 대 행동’ 원칙을 기초로 일측에 대응하되, 한·일관계 협력을 위한 큰 틀을 유지하는 게 성숙한 자세가 아닌가 한다. ▶구체적으로 독도 문제 등이 나오면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독도는 실효 지배를 유지하고 내실화하면 된다. 독도는 우리의 천연기념물이다. 우리 정원을 가꾸듯 해야 한다. 관광객, 군인, 경찰이 대거 들어가는 것보다 천연기념물 관련 전문연구원을 상주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관련해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신사에 합사돼 있는 A급 전범이다.A급 전범의 분사, 또는 제3의 추도시설 등 일본의 사려 깊은 조치를 기대하고 싶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미국도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패전국 일본의 A급 전범 판단을 한 당사자는 미국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너무 일본을 획일적으로 보는 경향에 대해선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일부 극우지도자들의 망언으로 일본 전체를 나쁘게 보면, 수많은 친구를 잃는 우를 범한다.4년 전 문제의 후소샤 교과서 채택률이 불과 0.039%였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한류에 마음을 열고 있는 수많은 일본인의 반응을 귀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평균적인 일본 국민에게 정서적으로 호감을 받을 수 있고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은 지난 베이징 6자회담에서 납치문제를 고집, 참가국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일본의 위치와 역할은. -이 지구상에서 비핵화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나라는 선진국이면서 핵을 갖고 있지 않은 일본이다. 인류사상 최초의 피폭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도, 방법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전후 일본은 비핵3원칙을 바탕으로 핵무기를 만들 능력을 충분히 가졌으면서도 만들지 않고 있다. 그런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이런 점에서 비핵 이니셔티브를 위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가해자이자 동시에 원폭을 맞은 피해자이다. 그러나 그 두개 고리가 따로따로 논다. 그 간격을 이을 수 있는 전략도 설명 책임도 없어 보인다. 사실 일본에서의 ‘납치 문제’는 우리나라의 독도 정도의 파괴력을 갖고 있어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6자회담은 목적이 한반도비핵화다. 피폭국가 일본은 최소한 비핵과제와 납치문제를 병행할 수 있는 전략이라도 보여야 한다. 일본은 이번 6자회담을 통해 대 아시아 외교를 소홀히 해 온 대가를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미국과의 동맹에만 의존했던 안이함이 부른 화(禍)라고 할 것이다. 보통국가로의 변신을 시도하며 헌법을 바꾸려 하고, 자위대를 강화하려는 ‘전쟁가해국가’ 일본이 아무리 히로시마 원폭의 피해국임을 강조한다 해도 이웃나라가 선뜻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김수정 기자 crystal@seoul.co.kr ■ 고하리 스스무 시즈오카현립대 교수 ▶지난 60년간의 한·일관계를 평가한다면. -엇갈림과 협력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승만 시대에 한국인은 과거사 문제로 대일청구 의식을 강하게 했지만, 일본인은 한반도를 무관심·기피의 대상으로 했다. 박정희 시대에는 양국 정부가 양국간의 정치·경제적 협력을 모색했지만, 국민 차원에서는 상호 이해가 진행되지 않았다. 전두환·노태우 시대에는 일본인이 이문화로서의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다. 김영삼·김대중 시대는 역사인식 문제로 갈등이 있는 한편 대중문화 교류가 비약적으로 진행되었다. 노무현 시대는 일본에서는 한류를 통해 호의적으로 한국을 보려 하지만, 한국에서는 외교갈등이란 부정적 측면에서 일본을 보려는 분위기가 있다. ▶역사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 해결방안은. -역사적 사실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양국간에 공동연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역사인식이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를 모두 일치시키는 것은 꽤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검증할 때 한국에선 일제 식민지 지배를 실행한 장본인이라며 부정적 인물로 평가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일본에서는 입헌정치의 기초를 확립한 초대 총리라는 긍정적 측면을 평가한다. 양국 모두 ‘우리 민족은 우수하다.’는 자민족 중심주의적인 역사관을 가르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북한 핵문제 해결 방식은. -북한의 핵무기는 절대로 포기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지가 양국 정부와 여론이 어느 정도인지 의문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일본여론은 핵문제보다 일본인 납치 문제를 우선하는 분위기가 있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외교 전쟁도 불사한다.’라고 하는 한편, 핵보유에 관해서는 ‘북한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라고까지 말한다. 양국 국민도 북한 핵문제에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북한에 체제보증을 약속하는 한편으로, 모든 핵보유를 완전하게 포기시킨다고 하는 점에 일·한·미가 완전하게 일치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3국이 대립해도 그걸 북한에 보여주면 안된다. 특히 한국은 북한이 다른 문제로 대일 공동대응을 제안해도 동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남북한에 대한 일본 여론이 악화되면 예상되는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도 이뤄지지 않게 된다. ▶동북아시아에서의 한·일 관계는. -10년 후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양국 지도자는 지금의 일밖에 생각하지 않는 행동이 많은 듯하다. 특히 중국과 미국 관계가 중요하다. 현재 일본은 ‘미국 중시-중국 경시’, 한국은 ‘미국 경시-중국 중시’의 경향이다. 일본은 좀 더 중국에, 반대로 한국은 좀 더 미국에, 정중한 외교를 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류와 한·일 문화교류의 공평성,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제언이 있다면. -지금까지 일본인 중에서 한국에 친근감을 느끼지 않는 핵심층은 중년의 여성이었지만, 욘사마 현상 덕분에 지금 중년 여성이 가장 한국에 친근감을 갖는 층이 되었다. 서울신문·도쿄신문 공동여론조사 결과 양국간의 외교관계가 악화되는데도 과반수의 일본인이 한류현상으로 인해 한국에 친근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만약 한류현상이 없었으면 올해 한·일관계는 더 악화되었을지도 모른다. 또 한국측이 경제효과, 국위선양 측면에서만 한류현상을 강조한다는 것이 일본에 전해지면 일본에서 한류현상이 식을 수 있다. 한국은 일본 등 외국 대중문화의 수용에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고이즈미 총리와 노무현 대통령, 양국 지도자가 한·일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두 지도자는 ‘국제 협조형의 애국심’보다 ‘배타적인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이 계속 대두되고 있는 점을 더 우려해야 한다. 고이즈미 총리도, 노 대통령도 말을 좋아하지만 내셔널리즘을 자극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게 신경써야 한다. 한·일간의 문제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을 한 정부여당의 간부에게는 해임을 포함해 엄격하게 대처해야 한다. 외교관계가 악화되어도 문화교류나 자치체간 인적교류는 절대로 중단해선 안된다고 지도해야 한다. 일본에서 반한 감정이, 한국에서 반일 감정이 높아져도 양국에 이익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행동해야 한다. ▶양국 갈등을 가져온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양국 쌍방에 다양한 원인과 배경이 있다. 한가지 들고 싶은 것은 언론 보도의 문제점이다. 양국 신문과 TV를 보고 있으면 자국민을 자극하는 도쿄발, 혹은 서울발의 보도가 너무 많다. 도쿄 이춘규특파원 taein@seoul.co.kr
  • 언더우드家 이야기/서정민 지음

    언더우드家 이야기/서정민 지음

    ‘이제 한국에서 언더우드가 할 일은 다 한 것 같다.’ 지난 해 11월.4대에 걸쳐 한국과 동고동락한 언더우드 가문의 원한광(언더우드 4세) 박사가 한국을 떠나며 했던 말이다. 구한말 이후 한국 근현대사와 영욕을 함께하며 언더우드 가문이 쌓아온 업적과 한국 사랑에 비추어볼 때 그의 출국은 다소 쓸쓸함을 느끼게 했다.1885년 11월, 그의 증조부인 원두우(언더우드 1세)가 미국을 떠나 인천(제물포항)에 첫발을 디딘 지 120년 만에, 한국생활을 접고 다시 인천(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른 원 박사의 감회는 어떠했을까.? ‘언더우드 家(가) 이야기’(서정민 지음, 살림 펴냄)는 기나긴 세월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언더우드 집안의 정신과 삶의 궤적을 살핀 책이다. 연세대 신학과 교수인 저자는 서문에서 “한국에서 언더우드의 의미는 결코 기독교 선교사에 머물지 않는다.”며 “그와 연관되지 않은 한국 근대문물과 제도를 찾기 어려울 만큼 언더우드는 ‘프론티어’였다.”고 말한다. 언더우드 1세가 약관 25세의 나이로 이 땅에 첫 발을 디딘 때는 1885년 4월5일. 당시 한국은 미국인들에게 ‘유럽의 예수회 선교사들이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고 죽임을 당했던 중국 근처의 한 섬’‘미개하고 사나운 종족이 사는 곳’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이에 대해 언더우드는 훗날 한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몰이해를 개탄한다. 유럽 선교사들이 선교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지나치게 배타적이었고, 한국의 전통적 문화의 사상 수준이 오히려 높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한국의 참모습을 발견하면서 언더우드 1세는 한국에 대한 깊은 매력과 함께 한국사랑의 싹을 키워나간다. 서울 정동에 마련한 그의 집 사랑채에서 한국 최초의 조직 장로교회(새문안교회)를 시작하는 한편,‘황성기독청년회’(YMCA)를 조직했다. 그는 선교사로만 머물지 않고 교육·의료사업도 본격 시작한다.1886년 정동에 고아 기숙학교인 ‘언더우드 학당’을 열어, 혼란한 시기 미처 나라에서 챙기지 못한 고아들을 키워냈고, 제중원에선 알렌을 도와 의료사업에도 참여한다. 언더우드 1세의 교육사업은 1915년 연희전문학교 설립으로 이어진다. 당시 미국에서 타자기 제조업을 하던 그의 큰형 존 T. 언더우드의 재정적 도움을 받아 설립된 이 학교는 오늘날 한국의 대표적 사학으로 자리잡은 연세대의 시초가 됐다. 언더우드 2세인 원한경은 교육학을 전공한 뒤 일제하에서 연희대 교육과 행정에 헌신하다가,3·1운동 당시 수원 제암리 학살사건 현장을 조사하는 등 일제의 폭압에 항거한다. 그때문에 언더우드 일가는 일제 말기 한국에서 추방당한다. 해방이 되면서 3세 원일한은 1946년 한국으로 돌아와 육국 군정청 교무부에서 근무한다. 이때 연희대학 경험을 살려 국립 서울대학교의 개편과정에 관여하며, 서울대가 제국대학의 굴레를 벗고 새 교육기관의 기틀을 잡는 데 크게 기여한다. 한국 전쟁때는 자진 참전,UN의 통역사가 되어 휴전회담에서 활약하는 한편, 이후 한국과 미국이 긴밀한 관계를 맺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에 따라 지난 120년간 기독교 뿐만 아니라 교육·의료·문화·정치 등 한국사회 전체에 걸쳐 언더우드가의 족적이 미치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렵다. 언더우드 가문이 직접 이 땅의 중요한 순간들을 카메라로 담아두었던 사진들도 볼 만하다. 쓸쓸한 고종황제의 모습, 세브란스의 전신이랄 수 있는 경신학당과 제중원, 광혜원, 조선 경찰, 문맹 퇴치운동, 뱃놀이를 즐기던 한국의 옛모습 등등. 모두 한국의 근현대사를 생생히 고증해주는 사진자료들이다. 메마르고 가난한 땅인 조선에 들어와 한 세기 넘게 한국 사랑을 실천한 한 외국인 가문의 노고가 절로 느껴지게 하는 책이다.1만 45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책꽂이]

    ●제노사이드-학살과 은폐의 역사(최호근 지음, 책세상 펴냄) 백인에 의한 북아메리카 인디언 학살로부터,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살육, 보스니아·코소보의 인종청소, 한국의 4·3사건까지 세계 역사상 발생했던 대표적 집단학살 사건을 다섯가지 유형으로 분석한다.2만 2000원.●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가(헬렌 피셔 지음, 정명진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사랑의 심리에 대한 과학적 안내서. 다양한 과학실험을 통해 낭만적 사랑이 뇌 회로 및 신경 화학물질의 작용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음을 밝힌다.1만 2000원.●중국의 옷(服飾)문화(왕웨이띠 지음, 김하림·이상호 옮김, 에디터 펴냄) 중국인들이 역사적으로 입었던 의복의 기원에서부터 실용적 기능, 윤리적·미학적 의의, 풍속에 따른 중국복식의 변화양상, 각 민족간 의복의 차이 및 유행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여준다.1만 8000원.●사계절 꽃산행(현진오 지음, 궁리 펴냄) 진기한 산들꽃을 키워내는 동강, 키작은 풀들의 천국 태백산, 봄부터 가을까지 꽃잔치를 벌이는 점봉산, 등 저자가 20여년간 전국을 누비며 우리 꽃들을 찍고 기록한 것들을 담았다.2만 2000원.●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할 포스터 지음, 전영백과 현대미술연구팀 옮김, 아트북스 펴냄)초현실주의의 아름다움에 프로이트적 해석을 가한 평론서. 초현실주의는 창시자인 앙드레 브로퉁에 의해 사랑과 해방의 운동으로 이해돼왔다. 그러나 할 포스터는 반복 강박, 죽음 충동 등 어두운 측면에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1만 8000원.●세계의 과거사 청산(안병직 등 지음, 푸른역사 펴냄) 독일과 프랑스, 남아공, 스페인, 러시아, 아르헨티나, 칠레, 알제리의 과거 청산 사례를 분석·정리했다. 과거 청산과 관련해 그동안 국내에 잘못 알려지거나 간과되었던 외국 사례들에 주목한다.1만8000원.●우남 이승만 연구(정병준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그동안 제대로 해명되지 않았던 이승만의 집권 과정에 대해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한 결과를 담았다.1912년 미국 명명후 국내에 기반을 갖지 못한 이승만이 어떻게 미군정과 좌·우익 등의 지지를 받으며 정치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지 살펴본다.3만5000원.●장군이 된 이등병(이계홍 정리, 화남 펴냄) 최장기 근속 보유자, 최다 계급 진출자, 최다 참전 군인 등 수많은 기록과 함께 한국 군현대사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꼽히는 최갑석 장군의 인간승리 기록을 담았다. 육군 이등병에서 소장오르기까지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져 있다.1만원.
  • [지금 무안에선] 중국진출 전초기지로

    [지금 무안에선] 중국진출 전초기지로

    ■ 전국유일 산업교역기업도시 지정 이후전남 무안반도의 지도가 바뀌고 있다. 지난 8일 무안이 정부의 산업교역형 기업도시로 확정 발표되면서 개발 기대감으로 들썩거린다. 오는 10월에는 전남도청이 무안으로 옮겨오고 인근 해남·영암에서는 관광레저형 기업도시가 무르익으면서 개발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군청에는 외부 투자가들의 전화가 빗발친다. 하지만 기업도시는 정부가 아닌 민간기업이 주축이 돼 모든 것을 총괄한다. 때문에 자본유치, 산업기반시설 부족, 대기업 불참 등에 따른 숙제도 적지 않다. ●왜 무안반도인가 기업도시 시범지역으로는 무안읍, 청계·현경·망운면 등 4개 읍·면 등 1220만평이 신청됐다. 이곳에 중국 등 동북아시아를 겨냥한 미래형 첨단산업도시(인구 20만명)를 만든다. 차세대 휴대전화, 가정용 로봇 등 신산업단지를 중심 축으로, 공항·항만과 연계한 물류복합단지가 들어선다. 배후에는 주거단지가 들어서고 창포호 주변에는 휴양·건강·레포츠 단지가 조성된다.100만평의 창포호는 레저·휴양단지로, 국제영상문화단지, 놀이주제공원 등을 2011년까지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기업도시에 국내 100여개 기업을 참여시켜 대중국 수출의 선도기지로 삼는다는 게 무안군의 전략이다. 무안 기업도시에 투자의욕을 불태우는 나라는 중국이다. 무안이 국제공항(2008년 개항)·항구·철도·고속도로 등 교통망이 잘 갖춰져 있다는 점에 후한 점수를 준다. 또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상하이는 무안과 이웃한 목포항에서 국내 최단거리다. 또 상대적으로 싼 땅(3만∼10만원대)이 구릉지로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러한 입지여건으로 기업유치 4개월만에 무안군은 국내 46개(건설사 12개, 제조·물류업체 34개) 기업으로부터 무려 18조여원의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하는 성과를 올렸다. 여기다 무안군 삼향면에는 신도청 이전으로 인한 신도심이 들어서고 국가계획으로 추진 중인 해남·영암 서남해안 관광레저도시도 훈풍을 불어넣고 있다. ●중국을 잡아라 강기삼 무안 부군수는 “무안반도 기업도시는 중국을 겨냥해 조성계획안을 작성했다고 보면 된다.”며 “국내 대기업이 투자를 꺼리고 있어서 기업도시 성패의 사활이 중국자본 유치에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때마침 중국 정부는 넘쳐나는 달러로 고민 중이고 인플레이션을 막는 자구책으로 해외 투자처를 찾고 있다. 강 부군수가 지난 20일 쉬관화(徐冠華) 중국 과학기술부장관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 한국 투자에 대한 확약을 받았다. 중국은 이번 무안 진출을 해외투자 제1호 사업으로 여길만큼 비중을 두고 있다. 오는 8월 말 서울에서 열릴 한·중 세미나 참석차 중국의 우량기업 관계자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투자협약을 맺는다. 중국은 무안에 자본을 투자하는 대신 대덕기술연구단지에서 개발한 첨단기술을 제공해 주도록 단서를 달았다.26일 중국 과학기술부 장관이 대덕연구단지에서 대덕연구소와 협약을 맺고 우리측의 기술과 마케팅을 지원받기로 약속받았다. 현재 중국은 무안군에 600만평의 부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곳에 중국 전용 산업단지와 차이나타운을 만들겠다는 야심이다.1단계로 200만평에 2조원을 투자한다. 중국은 무안에 기술집약산업 전용단지를 만들어 동북아 진출 교두보로 삼아 중국기업 해외진출의 시범모델로 채택할 계획이다. 국내 노동집약형 기술력에 한계를 느낀 중국이 해외 첨단기술 도입에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휴대전화, 생명공학 등 첨단기술에 눈독을 들인다. 반일감정 때문에 일본 쪽으로는 엄두를 못내는 실정이다. ●무안반도는 동북아 물류 전초기지 무안군은 중국 측의 자본을 끌어들여 중국 산업단지를 축으로 한 파급효과에 기대를 건다. 국내 최대의 차이나타운 조성계획도 그 하나다. 이곳에서 생산한 물건은 곧바로 배나 비행기에 실려 중국으로 역수출된다.‘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상표를 달고 중국 최상위층 소비자를 겨냥한다. 처음으로 한국에서 중국으로 상품을 역수출하는 전진기지로 자리잡게 된다. 홍콩 물류회사인 셉콥사가 지난 5월 국내 농협물류와 컨소시엄 형태로 무안에 투자키로 투자협약을 마쳤다.50만평에 항공과 컨테이너 관련 물류단지를 조성한다는 것. 일본의 파나소닉사(마쓰시타그룹)도 공항·항구 등 여건을 활용해 무안반도 투자에 적극적이다. ●개발주체는 민간기업 무안 기업도시 개발주체는 무안기업도시주식회사(SPC)이다. 여기에 참여하는 건설사와 시행사 등 출자사 12개 기업이 출자금 2700억원을 내기로 확정했다. 출자금은 출자사들이 참여하면서 늘어나고 자본 유치는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우리은행과 한국산업은행이 SPC에 대출금으로 충당한다. 사업비는 보상비 8000억원, 부지조성비 1조 6000억원 등 2조 7000억원 규모다. 또한 상가주택 등의 분양이익금(2조여원)을 산업용지로 돌려 값싸게 산업용지를 공급한다. 예정지내 토지는 국·공유와 군유지가 20.2%, 사업시행자 소유가 20.6%, 사유지가 59.2% 등이다. 기업도시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고용유발 5만여명, 부가가치 1500억원 등 3조 7000억원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토지수용 단계에서 주민들의 반발과 친환경 개발에 따른 부담 등이 만만찮은 걸림돌이다. 무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서삼석 무안군수 “기업도시는 현재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이지만 늦어도 내년 말이면 착공될 것으로 봅니다.” 서삼석 무안군수는 기업도시에 군정의 무게를 두고 있지만 시행착오를 막기 위해 소걸음처럼 신중에 신중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에서 제기하는 대기업의 불참 우려에 대해,“정부와 전경련이 기업도시개발특별법에 따라 대기업 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있어 오히려 전망이 아주 밝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차세대 동력산업 육성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고, 기업도시에 투자하면 정부차원의 지원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대기업도 기업도시에 투자할 것으로 보입니다.” 서 군수는 또 기업도시 확정 발표 이후 쌍용건설이 투자협약을 맺으면서 주위 시선도 달라지고 사업추진에도 속도가 붙었다고 자랑했다. 이와 함께 거대자본을 가진 중국이 기업도시에 투자 의욕을 불태우고 있고 구체적인 투자계획도 다음 달 말쯤이면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은 대덕연구단지측이 개발한 첨단기술을 활용해 상품화하고 이를 중국으로 판다는 복안이다. 차이나타운도 중국 문화의 거리를 조성하는 등 경기 성남의 분당 정도되는 도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기업도시에 최첨단산업 분야를 유치해 농·어촌의 소득을 높이고 사람이 살기 좋은 친환경 생태도시를 만드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100만평에 달하는 창포호는 수질개선 이후 곧바로 개발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본·실시설계, 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쳐 늦어도 내년 말에는 기업도시 첫삽을 뜨게될 것으로 전망했다. 무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국내최대 100만평 차이나타운 조성 무안반도에 국내 최대 규모(100만평)의 차이나타운이 조성된다. 무안 기업도시에 하이테크단지 조성을 계획 중인 중국 정부가 당초 200만평에서 3배로 늘어난 600만평의 땅을 요구하고 나섰다. 쉬관화(徐冠華)중국 과학기술부 장관은 지난 26일 대덕연구단지에서 대덕연구소와 기술지원 및 마케팅 투자협약을 하면서 이같이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중국 측은 “중국내 53개 하이테크단지(경제특구)에서 우량기업 30여개를 선발해 무안 기업도시에 보내 한국측의 첨단 기술을 전수받겠다.”고 의욕을 불태웠다. 중국은 한국의 앞선 기술과 마케팅 기법을 배우고 한국은 외자유치와 함께 중국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는다는 서로 다른 속셈이었다. 중국 측은 500만평은 산업단지로 쓰고 100만평은 중국인 근로자와 양국을 넘나들며 장사하는 중국인들을 위해 차이나타운을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중국 기업에서 일하는 중국인 기술자와 근로자들을 위해서다. 주거·교육·문화단지 조성으로 물류거점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중국에서 휴대전화를 만들어서는 자국민들에게 팔아먹을 수가 없다며 한국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로 제품을 만들어 팔겠다고 했다. 이같은 중국측의 계산은 8월 말 서울에서 열리는 투자설명회에서 투자액과 투자방안 등이 나오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무안군은 이미 차이나타운 조성 기본계획 수립에 들어갔다. 무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지금 그곳은]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관

    [지금 그곳은]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관

    ‘꿈의 백화점-상상, 그 이상의 세계가 8월에 열립니다.’ 신세계 백화점 신관공사가 마무리단계다. 서울시 중구 충무로 1가 25의 5 신세계 백화점 본관 뒤편으로 과거에 주차장으로 쓰이던 곳이다. 지하 7층, 지상 19층 규모로 오는 8월 초현대식 백화점으로 개관할 예정이다. 도로와 맞닿아 있는 신관 건물 앞에는 포클레인과 트레일러가 도로 정비작업과 조경시설 작업 등 막바지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군데군데 바닥재로 사용할 대리석 더미가 흩어져 있다. 건물 내부에는 400여명의 작업 인부들이 방화셔터·전화시설·엘리베이터·소방시설·CCTV 등 건물 내부의 인프라 시설을 설비하느라 하루종일 분주하다. ●연면적 4만평… 매장 1만 4000평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나오던 강경원(32·여·서울시 종로구 송월동)씨는 “아직까지 신관 건물이 완성되지 않는 탓에, 앞쪽은 현대식 건물(본점 신관)이고, 뒤쪽은 일본식 건물(현 본점 본관)이 서있어 조금은 불균형미를 띠고 있다.”며 “그래도 신관 건물이 완공돼 오픈하게 되면 롯데백화점과 벌일 불꽃 튀는 한판 승부가 벌써부터 기대를 모은다.”고 말한다. 본점 신관 건물은 백화점 본관 뒤편의 3500여평 부지에 연면적 4만평과 매장면적 1만 4000평 규모로 세워진다. 지하철 4호선 회현역과 연결통로로 바로 연결되는 본점 신관은 지하 1층부터 11층까지 백화점 매장으로 사용된다. 롯데 명품관인 ‘에비뉴엘’과 ‘영플라자’를 제외한 롯데 본점(1만 7000평 규모)에 조금 못미치지만 그래도 매머드급이다. 지하 1층의 식품매장을 시작으로 지상 1층에는 해외 유명브랜드를 비롯해 화장품 등이 선보인다.2~9층은 남녀의류·스포츠·생활·가전·가구·주방 등의 매장으로 구성된다.10층과 11층에는 식당가와 이벤트홀이 들어서고, 식당가는 2개 층으로 구성돼 각종 모임이 가능한 공간도 마련된다.12~14층엔 문화센터가 들어서 상품 판매시설과 함께 문화공간도 마련된다. ●본관도 곧 ‘명품관´ 단장 착수 백화점인 현 본관 건물은 신관 건물 오픈과 함께 리뉴얼 공사에 착수, 내년 상반기중 매장면적 3000평 규모의 명품관인 ‘클래식관’으로 다시 태어난다. 대지면적 730평, 건축면적 435평, 연건평 2300평의 4층 건물인 본관 건물은 1937년 오픈한 종로 화신백화점(5층)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한국 최고층 건물로 ‘유명세’를 탔다. 이 건물은 1945년 일본 패망으로 철수한 이후 백화점으로 사용되다가 50년 한국전쟁 이후에는 미 군정청 PX건물로 사용되는 등 우리 역사의 큰 굽이굽이를 지켜보고 있다. 특히 60년대 당시 국가 원수급인 VIP들의 방문 코스로 유명세를 탄 이곳은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이후 ‘못이 안들어갈 만큼 튼튼한 건물’로 화제에 올랐다. 이런 까닭에 최대한 지금의 모습을 살리는 선에서 리모델링을 해 문을 연다는 계획이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특종] 나는 모국의 스파이였다

    [특종] 나는 모국의 스파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단 하나 밖에 없는 개인 임업장을 사재를 털어 꾸며놓은 전 내무부장관(제6대) 장석윤(張錫潤)(65)옹은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미군에 협조한 국제「스파이」였다. 그는 또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명을 어기고 김종원(전 치안국장)씨의 기용을 거부한 경무대의 반항투사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10만 공무원 대신 10만 그루의 나무를 호령하는 나무장관이 되었다. 동남아 휩쓸던 청년 시절 이젠 10만 그루 나무 호령(號令) 강원도 횡성군 횡성면 마산리 15번지 3만 5천 평의 땅에 1백 50종의 나무를 질서정연하게 심어놓고 하루 4시간씩 잠자면서 10만 그루의 각종 나무를 돌보는 장석윤(張錫潤)옹-. 그는 횡성군 둔내면에서 태어나 서울 제일고보(경기고교 전신)를 졸업한 뒤 1923년 미국으로 건너가「테네시」주「벤트·빌드」대학을 졸업했다. 유색인종 박해 속에서 갖은 고생을 겪으며 장옹은 이승만(李承晩)박사와 함께 교민생활 지도를 해오던 중 41년 제2차 세계대전을 맞았다. 당시 미국대통령「루스벨트」씨의 부인과 친교가 두터웠던 이박사의 소개로 비밀히「루스벨트」대통령이 조직한 COI(OSS 및 CIA 전신) 제1기생으로 조직에 가담, 소정의 교육(스파이 교육)을 마친 장옹은 한국인으로서는 단신 미국 21명과 함께「파키스탄」의「카라치」시에 공수되어 첩보 활동에 나섰다. 2차대전 때 미의 COI 대원 「버마」전투에 참가, 활약해 「히말라야」산맥을 낀「버마」전투에 참여한 장옹은 일본군 전선에 잠입, 정보를 수집하여 무전으로 미「셰넬」장군에게 타전, 작전계획을 세우도록 했으며 또한 일본군 포로 신문, 포로수용소 안에 잠입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등 007을 방불케 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이와 같이 사선을 넘나드는 활동 속에서도 장옹은 이박사 김구(金九)주석 간의 비밀문서 연락을 맡아「티베트」고원지대를 넘어 중경(重京)을 넘나들었으며 때에 따라 미군 장교와 일본군 장교 및 외교관 신분을 마음대로 붙이고 활동했다. 45년 조국해방과 더불어「하지」장군과 함께 귀국한 장옹- 군정 당시 좌익계열의 만행을 낱낱이 파헤쳐 치안을 유지하도록「하지」장군에게 건의해 왔으며 이박사를 측근에서 도왔다. 6·25동란이 일기 며칠 전 1950년 6월 18일 당시 내무부장관 백성욱(白性郁)씨의 권유로 치안국장에 기용된 장옹은 서울이 괴뢰들의 발굽에 짓밟히던 날 노동자로 변장, 가족을 서울에 둔 채 홀로 적정을 살피고 한강을 넘어 아군 진지로 탈출했으며 대전에 도착한 장옹은 일선 경찰 정보망을 통해 괴뢰군의 선발대 동태를 파악, 육군에 정보를 제공, 큰 공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때의「에피소드」로 당시 괴뢰군이 천안, 온양을 거쳐 공주 방면으로 대전을 침공해 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치안국장 장옹은 그 사실을 국방부장관에게 연락했으나 국방부장관은 허위정보라고 대발노발, 정보제공자인 온양경찰서장을 총살하겠다고 으르렁거리다가 후에 정확한 정보임을 확인한 장관이 사과하기도 했다는 것. 치안국장 재직 30일만에 사표를 낸 후 52년 1월 내무부장관에 발탁된 장옹은 국군이 당시 총부처장의「지프」와「프란체스카」여사의「지프」를 강제징발하였음을 폭로했고 국군 장병들의 가슴에 명찰을 달도록 권유, 실행케 했음을 회고하면서 부산 정치파동 때 장총리(장면(張勉)박사)의 사표를 직접 받아 오기도 했다는 장옹의 회고담. 또한 지방자치제를 실행했으며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하는 산파 역할도 맡아 했다고 밝혔다. 특히 내무부장관 때 거창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나온 김종원(金宗元)씨의 경무관 기용을 이박사로부터 세 번이나 명을 받은 장옹은 매번 공무원 자격문제를 들고 거절했었다는 것. 국민을 과신한다고 이박사의 약점을 밝히는 장옹은 그래도 이박사는 부모와 같이 섬겼다면서 미국에서의 인연을 잊지 않고 있다. 그 뒤 국도신문(國都新聞)사 사장을 역임했고 3대 국회의원으로 향리 횡성군에서 당선된 무소속 민의원으로서 자유당의 만행을 보면서도 이박사와의 인간관계로 말 못하는 벙어리 국회의원으로 생애에 오명을 남겼다는 장옹…. 그래서 4대에는 자유당 공천 국회의원으로 역시 벙어리 의원을 지냈다는 장옹은 3년 뒤쯤 나올 자서전을 통해 모든 것을 해명(?)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4·19 의거 후 고향에 내려온 장옹은 현재의 마산리 15번지 3만 5천 평을 구입하여 자신이 밥을 지어먹고 빨래를 하면서 나무를 심기 시작, 태기산(泰岐山)의 정목 등 1백 50종 10만 그루의 나무를 가꾸며 살아 가고 있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저녁 7시까지 나무와 씨름하면서 찾아드는 농민들에게 일일이 접목, 전지 방법을 비롯 이식재배, 시비방법 등을 자세히 가르쳐 주고 있다. 각종 수목이 자연스럽게 꽉 들어찬 장옹의 임업장에는 멀리 서울을 비롯한 각 도시의 관광객들이 찾아들 뿐 아니라 인근 각급 학교 어린이들의 소풍터로 알려졌고 심지어 미군들까지 찾아와 놀다가는데 하루 보통 1백 여명의 구경꾼이 오고 많은 학생들이 실습을 위해 찾아들고 있다. 잣나무 4년 만에 결실케 산림 물려줄 젊은이 찾아 임업과 목축업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에 고된 줄을 모르고 일한다는 장옹은 지난 해 목초로는 최고의 영양가를 지녔다는「코리언·레이스·패스자」라는 풀을 발견, 재배하고 있다. 이 풀은 30년 전 미국 선교사가 개성 지방에서 채취하여 본국에 보냄으로써 영양가가 제일 많은 목초로 밝혀져 현재 미국에서는 목초지의 20%가 이 풀을 재배하고 있으며 자꾸 번지고 있다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아직 풀 이름조차 없다는 이야기. 장옹은 앞으로 임업장에 5백종의 수목을 더 심고 농림학원을 세워 자신이 직접 후배 양성을 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15~20년이 되어야 열매를 맺는 잣나무들이 장옹의 임업장에서는 불과 4년 만에 잣이 달리도록 비배관리 및 이식재배 기술을 보여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으며 넓은 초원과 하늘이 안보이는 숲길은 관객들의 환성을 사고 있다. 임업장은 자기와 같은 뜻을 가진 젊은이에게 넘겨주는 것이 소망이라는 장옹의 가족으로는 현재 서울에 부인과 딸 셋이 있다. <원주 = 정준교(鄭俊敎) 기자> [ 선데이서울 68년 11/3 제1권 제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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