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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티/군정 종식… 민정회복 새 전기/아리스티드 귀국과 파장

    ◎경제난 해결 못하면 민주화 난망/세드라 추종과 처리 등 불안요인 아이티군부 최고지도자 라울 세드라 장군이 퇴진하고 미국에 망명중이던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이 15일 귀국하게 됨에 따라 아이티는 민주정권 회복에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아리스티드의 귀국은 그를 지원한 미국이나 아이티 국민들에게는 일단 군사통치 종식의 첫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민주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민선대통령으로서 복귀에 성공한 아리스티드가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를 회복하기에는 아직도 해결해야할 과제가 산적해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리스티드가 해결해야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세계최빈국의 하나인 아이티의 빈곤을 추방하고 경제를 회생시키는 일이다.아이티 국민들은 세드라 정권 당시 유엔이 취한 경제봉쇄조치로 현재 극히 열악한 생활을 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극심한 식량부족으로 취학전 아동의 절반이상이 영양실조를 겪고 있으며 1주일에 5백명의 어린이들이 사망하고 있다고 유엔아동기금은 밝히고 있다.따라서 서방의 경제원조등을 통해 빈곤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민주회복」은 구두선에 그치고 또다른 정치불안이 야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함께 미군주둔 이후에도 경찰서나 관공소 습격사건이 산발적으로 발생한데서 보듯 세드라정권에 충성했던 군장성및 공무원들에 대한 민간인 테러로 사회혼란이 벌어질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수 없는 상태다.「아이티사태」가 비록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됐다해도 세드라 정권하에서 4천명이 넘는 정치범이 살해되는 고초를 겪었던 친아리스티드인사들의 복수심을 당장 쉽게 해소할수는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와관련,지난 4일 아리스티드가 유엔총회에서 『현 집권층에 대한 폭력과 복수에는 반대하며 화해를 이룰 것』이라고 밝힌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또다른 폭력이 내전으로 확산될 소지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견해다. 또 미국으로부터 아이티 통치권을 부여받은 아리스티드의 개인적인 한계성에서 불안요인을 찾는 시각도 있다.중남미 최초의 해방신학자로 도시빈민과 농촌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있는 아리스티드가 군부와 공무원등 기득권층이 갖고있는 뿌리깊은 불신을 과연 어떻게 씻어내고 정치적 안정과 화합을 도출해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실제로 아리스티드는 지난 90년 12월 아이티 최초의 민선대통령으로 선출된뒤 집권 7개월동안 부패공무원의 숙정과 군장성의 해임을 단행한바 있어 이것이 쿠데타의 직접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이처럼 안팎으로 쏟아지고 있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아리스티드가 경제회생과 정국안정이라는 두마리의 토끼를 다 잡아 아이티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회복할수 있을지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알제라/군정반대 테러격화/회교강경파/도심 차량폭파 잇따라

    【알제 UPI AFP 연합】 대우그룹 강대현 부사장(56)이 총격을 받고 사망한 알제리 수도 알제에서 12일 밤 (현지시간) 다시 6번째 차량폭탄이 터져 알제리 군사정권에 대한 회교원리주의자들의 공세가 유례없이 강화되고 있다. 알제리 보안당국은 이날 아침 수도 알제의 대학교와 법무부 건물 앞 등에서 5대의 차량폭탄이 터져 4명이 숨진데 이어 하오 10시30분쯤 시내 중심부에서 다시 6번째 차량폭탄이 터졌으나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혐의자 2명을 붙잡아 조사중이라고 말했다. 이날 연쇄 차량폭탄 테러는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회교원리주의자들이 고도의조직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 데다 수도에서 백주대로에 테러를 감행할 정도로 대담했다는 점 때문에 알제리 군사정부의 심리적 충격은 컸다. 알제리 전문가들은 이날 테러가 회교원리주의자들의 대정부전략이 강화됐음을의미하는 것으로 테러분자를 제압 중이라는 정부측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있다고 분석했다.
  • 이달의 독립운동가 조성환선생/서울신문사 보훈처·독립기념관 선정

    ◎임정 무장단체 「광복진선」 결성/중국시찰 가쓰라 일본총리 암살기도/만주서 교포에 문맹퇴치운동도 펼쳐 청사 조성환선생(1875년7월9일∼1948년10월7일)은 일제의 침략으로 국운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이자 항일구국운동에 뛰어들었다. 25세때인 1900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교해 군복을 입은 선생은 일부 선배군인들이 주요보직을 차지하기 위해 일제와 야합을 일삼는데 분개,숙군을 외치다 군을 떠나게 됐다. 선생은 『썩은 군대는 나라를 망친다』면서 부패군인의 제거를 주장,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복역 3년만에 특사로 풀려나온뒤 신민회에 가담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항일구국운동에 투신했다. 1907년 결성된 비밀결사 신민회에는 선생과 같은 무관출신,양기탁등 언론인,이회영등 교육자,민족자본가,안창호등 해외국권회복 운동가등이 참여하고 있었다. 이동휘·노백린등 다른 무관학교 출신자 14명과 함께 신민회에 가입한 선생은 독립운동의 터전을 확보하기 위해 자주 북간도를 돌아보았으며 1910년 국권침탈을 맞아 민족종교인 대종교를 믿기시작했다.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는 나철이 창시한 종교로 일제의 탄압을 피해 국내에서 만주 동삼성으로 자리를 옮겨 포교중이었다. 선생은 1912년 중국 동북지방을 시찰하는 일본 총리대신 가쓰라 다로를 암살하려다 사전에 붙잡혀 거제도에서 1년동안 유배생활을 지내기도 했다. 유배를 마친뒤 곧바로 중국으로 망명한 선생은 동료 독립운동가들과 청소년교육에 몰두하던중 1918년 만주길림에서 「대한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는 대한독립선언서의 서명자 가운데 1명으로 참여했다. 다음해인 1919년 국내에서 발발한 3·1만세운동에 자극을 받아 독립운동가 사이에 임시정부 수립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이에 적극적으로 힘을 쏟았다. 선생은 4월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군무부 총장 이동휘와 함께 군무부차장에 임명됐으며 4개월후 동만주에서 활동중인 중광단에 참가,무장독립운동을 벌였다. 선생은 이와 별도로 대종교도들을 규합,정의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선생은 이어 1920년 청산리 봉오동전투에서 참패한 일제관동군이 추격에 나서자 이를 피해 노령 이만으로 이동,이곳에서 이청천·홍범도·안무등과 함께 고려의용군을 결성하고 의용군을 모집해 훈련을 시켰다. 그러나 선생은 일제의 꾐에 넘어간 소련이 독립군을 무장해제하기 위해 기습해오자 동료들과 다시 만주로 돌아오게 된다. 북만주로 돌아온 독립군단체들은 1923년 재통합에 나서 군정서·의군부·혈성단·독립단·광복단·국민회·신민단·대진단·의민단등 9개 단체로 각 단체의 통합을 위한 군사연합회 준비회의를 열었으며 선생은 이 과정에서 연락책을 맡았다. 선생은 이 모임이 진척을 보이지않자 김좌진을 중심으로 창설된 신민회에 참여,중앙집행위원회 외교부위원장에 임명됐다. 군정서를 모체로 하는 신민부는 백두산에서 흑룡강,장춘에서 구참까지를 활동무대로 정하고 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한족을 대상으로 문맹퇴치운동을 펼치면서 민족반역자의 징계,일본기관 습격등을 주임무로 삼았다. 선생은 이런 가운데 정의부·한국독립유일당촉성회 조직운동등을 통해 흩어져있는 독립운동단체를 통일시키기 위해 수년동안 힘을 쏟았으나 정당의 이합집산이 심해 뚜렷한 진전을 얻지 못했다. 선생은 1938년에 이르러 비로소 뜻이 맞는 이동녕·차이석·엄항섭등과 함께 임시정부의 외곽무장단체인 한국광복진선을 결성하는데 성공했다. 선생은 같은해 이청천등과 함께 독립군 군사학편찬위원회 주임위원으로 임명돼 군사관련 교재를 번역하기도 했으며 1년뒤 1939년 임시의정원 의원과 임시정부 국무위원에 선임됐다. 선생은 1939년 임시정부가 독립운동 3개년 계획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광복군을 양성키로 한데 따라 11월 임시정부 군사특파단장으로 서안에 파견돼 광복군설립의 기초를 닦았으며 1940년9월17일 마침내 광복군이 창설되자 최고원수부의 판공처장으로 임명됐다. 선생은 42년에는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있으면서 중국측의 광복군 무력화 움직임을 무산시켰으며 43년에는 국무위원에 올라 대일전쟁을 지도했다. 선생은 45년 들어 임시의정원 제4과 군무·교통위원으로 일하다 8·15해방을 맞아 같은해 12월 동료 임정요인들과 함께 환국했다. 선생은 환국 이후 대한독립촉성회 위원장·성균관 부총재등을 지내다 48년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아이티군정 지도자/세드라 오늘 퇴진

    【포르토프랭스 AFP 연합】 미국의 축출 압력을 받고 있는 아이티 군정 지도자 라울 세드라 장군이 10일 사임하며 현재 군부 2인자인 장클로드 두퍼발 장군이 세드라의 뒤를 이어 군최고위직을 맡게 될 것이라고 아이티 소식통들이 8일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이 소식통은 축출된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과 세드라 측근들이 워싱턴에서 회담을 갖고 이같이 합의했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은 7일 세드라 장군 등 아이티 군정 수뇌부가 당초 약속시한인 오는 15일까지 자진 출국하지 않을 경우 강제 축출시킬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한바 있다.
  • 세드라 아이티출국 거부땐 미군,축출 재확인

    【포르토프랭스 로이터 AFP 연합】 미국은 7일 라울 세드라장군 등 아이티군정 수뇌부가 당초의 약속시한인 오는 15일까지 자진출국하지 않으면 이들을 강제축출시킬 것이라고 강력 경고했다. 아이티주둔 미군사령관인 휴 셀턴중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세드라장군이 15일까지 자발적으로 떠나지 않으면 우리가 그를 몰아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며 그가 자진출국하지 않을 경우,미군이 무력을 동원해 강제축출할 것임을 분명히했다. 셀턴사령관은 『15일로 잡혀있는 시한은 바로 14일 자정을 의미한다』면서 세드라장군 일행이 시한전에 자발적으로 출국할 것이라는 조짐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아이티를 방문중인 미행정부고위관리들은 이와는 별도로,군부가 임명한 에밀 조나셍대통령 등 과도정부각료들도 이 시한까지 출국하지 않으면 미군에 의해 강제축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날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중심가에서는 수천명의 아리스티드 지지자들이 『세드라 타도』등 반군정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를 벌였다.
  • 이라크군 정예부대/쿠웨이트국경 집결/야당연합 주장

    【니코시아 AFP 연합】 이라크 군정예부대들이 쿠웨이트와 국경지역인 남쪽으로 대규모로 이동하고 있다고 이라크 야당연합단체인 이라크국민회의(INC)가 6일 말했다. INC는 이날 성명을 통해 사담 후세인대통령이 『자신의 정예부대들에게 쿠웨이트국경으로 총동원령을 내렸다』고 말하고 지난 2일동안 이라크 여러곳에서 「대규모 군대이동」이 있었다고 전했다. INC는 『이 정예부대들은 이라크북부 모술시,키르쿠크시 주변에서 진을 치고 있다』고 말했다.
  • 카르도소 브라질대통령 당선자

    ◎교수 출신… 64년 군정땐 망명생활/재무장관땐 인플레 억제로 각광 강력한 인플레 대책을 내걸어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모은 브라질 사회민주당의 페르난도 엔리케 카르도소 후보(63)가 3일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당선이 사실상 확정됐다. 그는 재무장관 재직시 입안해 추진했던 인플레 억제정책의 성공으로 대중의 인기가 높았다.그러나 상당수의 국민들은 그의 학자적 기품에도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 카르도소는 좌파 세력들을 겨냥해 농정및 교육 개혁과 고용 확대,의료혜택 확충을 지지하고 나섰다.자유시장경제 정책을 지지하는 한편 정부의 경제간섭 축소와 세제개혁,민영화를 옹호하고 있다. 그는 1931년 6월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육군대위였다.61년 상파울루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그는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서 산업사회학을 계속 공부했다.그는 지난 64년 조아오 굴라르트 대통령 정부를 전복시키고 집권한 군사정권이 체포하려하자 칠레와 프랑스에서 4년간이나 망명생활했다.68년 귀국한 그는 이듬해 군사정부가 그의 정치활동과 시민권을 박탈할때까지 상파울루대학에서,그후로도 소르본,케임브리지,스탠퍼드,버클리대학 등에서 강의를 맡았다. 지난 85년엔 남미 최대도시인 상파울루 시장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그로부터 1년뒤 민주행동당 소속 상원의원으로 선출됐으며 2년후 당내 이탈파를 이끌고 브라질 사회민주당 결성을 주도했다.
  • 아리스티드 전대통령/군정퇴진 직후에 귀국

    【포르토 프랭스 AP AFP 연합】 망명중인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아이티대통령은 아이티 군부지도자들의 퇴진시한인 다음달 15일이 지나면 곧 아이티로 귀국하려 하고 있다고 윌리엄 페리 미국방장관이 24일 밝혔다.
  • 미군,아이티 군사통제권 장악/무력사용권 확대

    ◎군정선 의회·지방선거 착수 【포르토프랭스 로이터 AFP AP 연합】 아이티 군사정부는 22일 의회및 지방선거를 실시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하는 한편 의회를 소집해 군사정부 지지자들에 대한 전면적 사면절차를 밟는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대통령 지지자들은 군부지지자들에 대한 사면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어 군사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에 많은 논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미군 1만5천명의 아이티 진입허용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평화협정은 군사지도자들이 인권침해 혐의를 받지 않고 퇴진할 수 있도록 사면규정을 통과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아이티에 대한 군사적 통제권을 거의 장악,아이티군이 갖고 있던 중화기를 제거하는 한편 민주운동가들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고 미군들로 하여금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재량권을 확대했다. 이에 따라 미군선발대 병력은 이날 항구와 국제공항,산업기지등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했으며 아이티 두번째 도시에도 1천여명의 병력이 배치돼 군사시설을 접수했다. 미군들은 이와함께 3년전 아리스티드정권 축출에 앞장섰던 아이티 육군 정예부대의 중화기 무장해제 작업도 시작했다. 에밀 조나생 아이티 임시대통령 정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곧 이번 겨울에 2천여명이 넘는 상하 양원의원과 시장,지방관리들을 선출하는 선거를 실시하기 위한 일정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AFP AP 연합】 미국의 클린턴행정부는 아이티에 대한 유엔의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기술지원과 인도주의적 지원및 각종 경제적 혜택 등 아이티 복구를 위해 1억달러 이상의 원조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원조담당 행정관인 마크 슈나이더씨가 23일 밝혔다. 미국정부는 이를 위해 7천5백만달러 규모의 올 회계연도 원조자금을 1억4백만달러로 증액 요청했다고 슈나이더씨는 덧붙였다.
  • 아리스티드 내일 귀국/미선 “아이티경찰 폭력 불용”

    【포르토프랭스 로이터 AP 연합】 미국과 아이티 군사정부간의 평화협정이 체결된 뒤 지난 3일간 침묵을 지켜온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전아이티 대통령은 21일 윌리엄 페리 미국방장관을 비롯,국방부 고위관리및 군관계자들과 만난 뒤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이 아이티에 병력을 파견,아이티의 민주주의회복을 지원하고있는데 지지를 표시한 뒤『늦어도 24일까지는 아이티로 귀국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아리스티드는 또 장 벨리요트 전국방장관을 수반으로 한 임시정부를 발표한뒤 3년전 자신과 함께 물러난 모든 행정당국자들은 즉각 해당기관의 업무를 재개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21일 아이티에 상륙한 미군이 포르토프랭스 시가지 등에서 치안 지원업무에 들어간 가운데 아이티경찰의 시위 과격진압 행위를 비난하면서 아이티 국민에 대한 경찰및 군의 폭력행사를 용납치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군정지도자 세드라 “사임후 고국잔류” 【뉴욕·포르토프랭스 로이터 AFP 연합】 아이티 군부지도자 라울 세드라 장군은 미국과 합의한마감시한까지 사임할 계획이나 고국을 떠날 생각은 없다고 21일 밝혔다. 세드라 장군은 이날 미CBS 방송에 출연,『아이티 헌법은 추방을 금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퇴진시한인 다음달 15일이후에도 아이티에 머물 것이라는 세드라의 발언은 이에 반대하는 미국정부와 갈등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 미얀마 군부지도자/수지여사와 회담

    【방콕 로이터 AFP 연합】 미얀마 군부지도자들은 20일 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야당지도자 아웅산 수지 여사와 만나 회담을 가졌다고 현지언론들이 보도했다. 미얀마 국영TV는 이날 수지여사가 미얀마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의 탄 수웨의장및 군정보책임자 킨 뉘앙트 중장과 양곤의 육군 영빈관에서 회담하는 장면을 보도했으나 구체적인 회담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 미군 아이티 진주 “순조”/8천명 공항·항만 배치

    ◎「군정퇴진」 합의로/질서유지 임무 수행/아이티군부,시위금지령 발표 【포르토프랭스·워싱턴 로이터 AP 연합】 미국과 아이티 군사정부는 지난 18일 군사정권의 퇴진 등 아이티사태의 평화적 해결에 합의했으며 합의이행을 보장하기 위해 미군병력들이 19일 포르토프랭스에 도착한 것을 시발로 20일 현재 아이티북부를 비롯한 각지에 속속 배치되고 있다. 미군진주 이틀째인 20일에는 해병대원 약 1천8백명이 제2의 도시 캅 아이시앵에 도착해 공항및 항만 등 주요시설을 접수했는데 아이티주둔 미군대변인 배리 윌리대령은 미국과 아이티 군사정부간의 합의에 따라 미군이 진주하고 있다고 말하고 20일까지 미군 6천명 이상이 추가로 아이티에 도착할 것이라고 전했다. 윌리대령은 『앞으로 며칠간 1만명 가량의 병력이 아이티로 들어올 것』이라면서 내전시 미군의 역할에 관해 언급하지 않은 채 이들이 아이티 전역으로 들어가 질서유지 활동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빌 클린턴대통령은 이날 이들의 협상결과를 들은 뒤 대국민연설을 통해 아이티 군부지도자들이 아이티 의회의 사면을 받아 오는 10월15일까지 퇴진하고 미국에 망명중인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대통령당선자는 이들의 퇴진 후 귀국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포르토프랭스 로이터 AP 연합】 아이티 군사정권은 20일 아이티인들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가 전개된 것과 관련,전면적인 시위 금지령을 내리고 경찰에 대해서는 질서유지 차원에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에밀 조나셍 과도정부는 20일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대규모 반정부 가두시위가 발생한후 몇시간만에 발표한 성명에서 『모든 가두시위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 미함정·전투기 아이티해안 접근/양국 “전쟁 전야” 주변표정

    ◎미 국무차관/군정지도자 체포땐 사법처리/아이티 주민/클린턴연설 경청… 차분한 생활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은 이날 아이티 군사정권지도자들이 미국의 침공시 체포되면 아이티 합법정부로 넘겨 사법처리를 받도록 할 것이라며 침공이후 아이티군부지도자의 처벌방침을 공개. 크리스토퍼장관은 이날 아침 미ABC방송의 「굿모닝 아메리카」라는 프로에서 『우리가 그들을 붙잡게 되면 합법정부로 넘겨 사법절차를 밟도록 할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과제가 아니며 중요한 과제는 어디까지나 그들을 권력에서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강조. ○…작전완료까지의 시간과 관련,윌리엄 페리 미국방장관은 이날 『아이티를 침공한다면 군사작전은 최장 이틀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 페리장관은 이날 NBC TV와 가진 회견에서 이같이 밝히고 전투상황은 수시간안에 끝날 것이며 『길어야 하루 또는 이틀』이라며 자신감을 표명. ○…미군함들과 항공기가 아이티 해안에 모습을 나타난 가운데 아이티인들은 군사정권 퇴진에 대한 희망과 불안속에서 오래전에 예고된 미국의 침공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들. 그러나 군부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강경한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으며 에밀 조나생대통령은 『정부가 그 임무를 충분히 수행하겠다』고 다짐하고 『공화국을 방위하는데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 ○사격장서 실탄훈련 한편 아이티군 소식통은 아이티 정규군과 민병대가 한달반전부터 포르토프랭스를 비롯한 전국 일원에서 실탄없이 침공에 대비한 훈련을 받아왔으나 15일부터는 포르토프랭스와 도미니카 국경 중간지점의 한 사격장에서 실탄 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미국방부는 아이티 침공에 참여하는 병사들에게 월 1백50달러의 위급전쟁수당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국방부의 한 관리는 계급에 관계없이 전투지역에 파견되는 장병들에게 이같은 전쟁수당을 일률적으로 지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엔은 미국의 아이티 침공을 감시하는데 필요한 군사옵서버단을 15∼60명으로 구성했다고 유엔의 조 실스 수석대변인이 15일 밝혔다. 실스대변인은 프랑스·방글라데시·피지 등이 옵서버단 참여를 자원했으며 캐나다의 경우 민간경찰 감시단을 파견할 예정이라고 했다. ○…미군함들이 아이티에 대해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거리로 이동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이티의 일상생활은 15일에도 예상보다 정상적이었으며 대다수의 아이티인들은 집에 머물면서 조용히 클린턴대통령의 연설내용을 들었다.아이티의 라디오방송들은 이날 프랑스어로 동시통역을 하면서 클린턴대통령의 연설을 워싱턴에서 생중계. ○…미국의 아이티침공이 임박함에 따라 수도 포르토프랭스에는 수백명의 취재기자들이 몰려들어 이들이 침공병력을 가장 먼저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대다수가 미국인인 외국기자들은 수주전 아이티항로가 모두 끊기는 바람에 이웃 도미니카공화국으로부터 거칠기 짝이 없는 비포장육로를 거쳐 포르토프랭스로 진입했다. ○기자 수백명 몰려 특히 기자들과 외교관들에게 인기가 높은 일사이드 몬타냐 호텔에는 텔레비전 카메라장비와 위성접시들로 만원을 이루었으며 호텔측은 기자들을 위해 공항을 포함,포르토프랭스가 거의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방을 제공하고 있다.
  • 아이티2인자/군부퇴진 촉구/경찰총수/아리스티드대통령 복귀 요구

    ◎미선 “정권이양땐 망명처 제공” 【포르토프랭스 DPA 연합】 미국주도 다국적군의 아이티침공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경찰 최고책임자인 미셀 프랑수아대령은 14일 선거로 뽑힌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대통령이 복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군부지도자 라울 세드라장군의 퇴진을 촉구했다고 이곳의 메트로폴라디오방송이 보도 했다. 이 방송은 군사정권의 2인자로 꼽히는 프랑수아대령이 세드라장군과 필립비암비군참모총장이 함께 퇴진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워싱턴 AFP 연합】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아이티 군정지도자들에게 퇴진을 조건으로 망명처제공을 제안하는 계획을 승인했다고 15일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 “총성 없을뿐 침공 이미 개시”/“긴장 고조”… 위기의 아이티

    ◎“탈출구 봉쇄… 저항만 남아” 감도는 전운/다국적군 전력 월등… 군정축출 높앞에 아이티 침공이 아직 실행된 것은 아니지만 아이티국민들은 이미 심리적으로 전쟁이 시작된 것으로 느끼고 있다.지난 몇주간 미군 함정들이 아이티 해역에서 눈에 띄는 빈도가 잦아졌다.에반스 폴 포르토프랭스시장은 『총만 쏘지 않았을 뿐 이미 침공은 시작됐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지난 7월 유엔 안보리의 승인을 받아놓았으며 대아이티 경제제재 등 침공에 앞선 국제적·도덕적 절차를 밟아왔다.13일 현재 아이티는 모든 해상과 육로·공중이 완전봉쇄된 상태.따라서 현군부지도자들이 빠져나가고 싶어도 「출구」가 없는 상황이다.에반스시장은 이에 대해 『탈출구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은 한가지 뿐이다.그것은 곧 할 수 있는 데까지 저항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수도 포르토프랭스 해안은 15척의 함정에 둘러싸여 있고 미국방성관계자는 2척의 항공모함이 곧 이 지역에 가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육로의 경우 도미니카와의 3백60㎞에 이르는국경은 2천명의 도미니카군이 경제물자교류를 차단하고 있고 캐나다와 아르헨티나 등 다국적 감시원 1백여명이 이미 파견돼 활동에 들어가 있다. 일단 다국적군의 아이티공격이 시작되면 「짧은」 시간안에 「접수」는 끝날 것으로 보인다.아이티의 전력은 7천5백명의 군인과 세스나기 6대,초계정 12척이 고작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미국이 아이티에 대해 무력을 써야만 하는 이유와 배경은 간단하지 않다. 아이티는 뒤발리에 부자의 독재정권이 무너진 86년 이후에도 정치적 혼돈이 계속됐고 세계최빈국으로 전락했다.국민들은 「살기 위해」 미국으로의 대탈출러시를 이뤘고 지금의 쿠바사태처럼 이것이 미국을 정치적 곤궁에 빠뜨렸다.인권과 민주주의 회복을 구실로 미국은 그동안 아이티정부에 대해 금수조치등 각종 압력을 행사,효과가 없자 「무력」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뒤발리에 부자의 28년 독재가 남긴 것은 공포정치와 인권탄압,극심한 빈부격차와 관리들의 부정부패 뿐이었다.뒤발리에 몰락당시 6백만인구 가운데 80%가 연소득 1백30달러로 허덕였고국부의 40% 이상을 1% 미만의 뒤발리에 일가와 추종자들이 장악했다.이같은 정치·경제상황은 뒤발리에 이후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게다가 미국은 인권탄압을 이유로 85년 5천4백만달러에 이르던 원조액을 해마다 줄여 나갔고 지난해 10월에는 급기야 대아이티 금수조치마저 단행했다. 미국의 침공선택이 국제적 지지를 받고 있지만 미의회는 이에 강력히 제동을 걸고 있다.국내정치 위기 때마다 「카드」로서 인권문제를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다.침공이후도 복잡성을 띨 것이다.「인권」을 부르짖는 한편으로는 뒤발리에 독재정권을 28년간 「방치」한 미국.보스니아에의 유엔평화군 파견에는 소극적인 미국이 국익과 관련된 것에는 집착을 보인다는 비판도 있다.냉전이후 미국주도의 세계질서에서 그 발길을 눈여겨볼 필요도 있다.
  • 안무장군/봉오동·청산리대첩의 얼굴없는 주역(이달의 독립운동가)

    ◎국민회군 조직,김좌진·홍범도와 연합/회령·강양동 일군 습격… 국내 진입 시도/모아산서 일기습받아 피랍… 42세 순국 안무장군(1883년 6월29일∼1924년 9월7일)은 김좌진·홍범도장군등과 함께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대표적인 무장항일투사이다. 호가 청전인 안장군은 함북 경성에서 출생,1889년 대한제국 진위대 병사로 입대해 하사관을 거쳐 교련관으로 근무한 정규군인이다. 안선생은 1907년 8월1일 일제가 대한제국군을 강제해산한데 따라 잠시 고향에서 체육교사로 일하다 1910년 8월 경술국치를 맞아 북간도로 망명,독립운동가로 나서게 됐다. 선생은 이동휘가 활약하고 있던 북간도 명동에 도착한뒤 동지들과 대한국민회를 조직하고 예하에 국민회군 3백명을 편성,사령관으로 취임했다. 선생은 1919년 만세운동으로 독립운동의 열기가 높아지자 다른 독립운동 지도자들과 힘을 모아 본격적으로 무기반입·독립군 훈련을 펼쳤다. 당시 대한국민회는 북간도 각지에 10여개의 지방회와 80여개의 지회를 두는등 한창 세력을 확대해가고 있었다. 대한국민회는 세력이 확산됨에 따라 산하 군사조직으로 홍범도의 대한독립군과 선생의 국민회군등 2개 조직을 두게 된다. 바로 이 부대들이 항일무장투쟁사에서 가장 빛나는 전투의 하나로 손꼽히는 북간도 봉오동 전투를 치른 주역이다. 봉오동 전투는 일제가 중화기를 동원,국내진입을 꾀하는 독립군부대를 토벌하려는데 맞서 독립군이 일제를 일패도지시킨 전투이다. 1920년 5월28일.무장독립단체들은 국내진입작전을 펼치기 위해 대한군북로도군부를 조직하고 병력을 화룡현 봉오동에 집결하기 시작했다. 당시 모인 병력은 홍범도와 안무계의 5백50명등 모두 1천2백명이었으며 무기는 기관총 2문·총기 1천1백정·수류탄등 1백개등에 불과했다. 먼저 이들 무장독립군은 같은해 5·6월 두차례에 걸쳐 함북 회령과 강양동의 일제초소를 공격,국내진입 가능성여부를 타진했다. 일제는 이에 따라 나남 주둔 19사단의 보병대대 및 기관총대 1개대대로 「월강추격대대」를 편성,중국땅으로 건너와 「독립군토벌작전」을 감행했다. 독립군은 공격에 나선 일제의 주력을봉오동으로 유인,4시간여에 걸친 포위전 끝에 일제를 물리치는데 성공한 것이다. 당시 상해 임시정부 정무원은 『적군의 사자 1백57명·중상 2백여명·경상 1백여명이요,아군의 사자 4인·중상 2인』이라고 피아 피해상황을 밝혔다. 안장군이 이 전투에서 맹활약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봉오동 전투는 일군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일제는 이 전투를 계기로 독립군의 전력을 재평가,이른바 「간도지방 불령선인 초토계획」을 본격적으로 수립하게 됐다. 일제의 대대적 작전을 감지한 독립군은 안장군의 국민회부대를 화룡현 이도구지역으로 이동시키고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와 홍범도의 대한독립군등도 이도구와 삼도구 서북지방의 밀림지대로 기지를 옮기도록 했다. 당시 집결한 병력은 사상 최대규모인 2천여명에 이르렀다. 독립군은 이런 배치로 유명한 청산리대첩에 대한 준비를 갖춘 것이다. 청산리대첩은 김좌진·홍범도·안무 3장군의 부대등이 연합,이·삼도구 서북쪽 심산 밀림지대에서 일제 「토벌군」2만여명과 밤낮 구별없이 6일동안 치른 전투이다. 독립군은 이 청산리대첩에서 일제를 철저히 괴멸시키는 대성공을 거두었으나 일제 19사단이 추가로 출동할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다시 더멀리 밀산으로 이동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독립군은 밀산이 너무 비좁은 지역이라 장기주둔하기 곤란하다는 판단아래 러시아 연해주 자유시(하바로스크 위쪽 알렉세호스크)로 이동했다가 일제와의 불화를 우려한 러시아로부터 큰 타격을 받고 주력을 잃는 비극을 겪게 됐다. 러시아는 1921년 6월 일제의 요구에 따라 독립군을 무장해제키로 하고 장갑차를 동원해 갑자기 독립군부대를 공격한 것이다. 당시 피해상황에 대해 간도지방 한국독립단에서 발표한 「자유시사변에 대한 성토문」은 『독립군 2백72명이 전사하고 9백17명이 포로로 붙잡히는 대참변을 당했다』고 적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안장군의 부대는 별다른 피해를 받지 않고 북간도로 돌아왔다. 안장군은 독립군의 재기를 위해 활약하던중 1924년 9월6일 일경의 습격으로 모아산부근에서 총격전을 벌이다 총상을 입고 체포된뒤 다음날 42세의 일기로장렬하게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영정마저 남기지 못하고 조국광복의 제단에 목숨을 받친 선생의 일생은 무장독립운동사에 길이 빛나리라.
  • 미군 곧 아이티 침공/군정 퇴진 거부에 작전개시 당겨

    ◎미 백악관·주아이티대사관 대변인 밝혀 【마사스빈야드(미매사추세츠주) 로이터 AFP 연합】 미국은 6일 아이티 침공의 시한을 정할 계획이 없으며 미군이 아이티 군부지도자들을 축출하기 위해서나 또는 그들이 자진해서 물러날 경우 유엔 평화유지군의 일환으로 아이티의 질서회복을 위해 곧 아이티에 진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디 디 마이어스 백악관대변인은 빌 클린턴 대통령이 휴가중인 마사스 빈야드에서 백악관이 아이티 침공의 시한을 정할 계획이 없다면서 『우리는 어느 때라도 행동을 취할수 있으며 언제까지나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아이티주재 미대사관의 스탠리 슈라거대변인은 아이티 수도 포르토 프랭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군과 국제군이 곧 아이티에 올 것이며 그들은 아이티 군부지도자 라울 세드라 장군이 출국한 뒤에나 또는 그가 떠나기 전에 이 곳에 당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민주선거로 선출된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을 축출한 세드라장군 등 아이티 군부지도자들에게 퇴진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는데 슈라거 대변인은 최근 몇차례에 걸쳐 아이티지도자들이 퇴진할 의향이 없음을 나타내는 상황이 벌어진데 이어 미군주도 국제군의 아이티 침공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말했다. 일부 외교관들은 아이티 군부지도자들이 특히 미국무부와 국방부사이에 군사행동에 관한 의견차이가 있다는 보도 등으로 침공위협을 믿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슈라거대변인은 미국방부와 국무부 당국자들이 필요할 경우의 대아이티 군사행동을 확고하게 지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은 캐나다에 미군주도 아이티 침공군에 참여하도록 설득하고 있으나 캐나다는 유엔 평화유지군으로서는 아이티에 군대를 보낼 용의가 있지만 침공군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당국자들이 말했다.
  • 나이지리아 「반체제 탄압」 포고령

    ◎군정/임의구금 허용·3개신문 정간 선포 【라고스 로이터 AP AFP 연합】 나이지리아 군부는 6일 민주화를 요구하는 석유노조 파업을 굴복시킨 여세를 몰아 각종 소요 등을 억압하기 위한 강도높은 포고령을 발표하는 등 반체제 언론과 단체·인사들에 대한 본격적인 탄압에 착수했다. 나이지리아 군부는 이날 안보를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인물에 대해 재판없이 3개월간 구금할 수 있도록 하는 포고령을 비롯,강경한 내용의 포고령들을 발표했다고 나이지리아통신(NAN)이 보도했다. 군사정부는 또 현정부의 결정사항이 법원의 재판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기된 새로운 포고령을 발표함으로써 노조지도부 해체에 반발하는 움직임을 원천봉쇄했다. 군부는 이와함께 나이지리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가디언지등 3개 신문·잡지 그룹에 대해서도 6개월간 정간 조치를 취하는 포고령도 아울러 발표했다. 이에대해 반체제변호사 가니 파웨힌미는 로이터통신에 『이같은 포고령은 폭격과 다름없다』고 분개하면서 『이는 나이지리아가 비상사태하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파웨힌미 변호사는 12호 포고령에서 아바차장군이 이끄는 현군사정부는 혁명정부인 만큼,정부의 조치가 법원의 심리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이에앞서 해체된 나이지리아 최대의 석유노조지도부는 근로자들의 파업을 공식중단한다고 밝혔다.
  • 미,아이티근해 병력 증파/LA타임스 보도/군정퇴진 시한 통첩 고려

    【뉴욕 로이터 연합】 미국 정부는 아이티 군부정권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기 위해향후 수주동안 카리브해 미군 증파 등 군사·외교적 조치들을 계획하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지가 3일 보도했다. LA타임스지는 미관리들의 말을 인용,미국이 아이티 침공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아이티 군사통치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이같은 조치들을 구상하게 됐다면서 침공 출발지점에 병력을 집결시키는 등의 대아이티 「벼랑정책」이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계획에 따라 미국은 병력을 아이티 인접지역으로 증강시킬 것이라고 이신문은 설명했다. 타임스지는 또 빌 클린턴 미대통령이 외교사절단을 마지막으로 아이티에 파견,군부통치자들에게 퇴진 최종시한을 전달하는 방안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핵·관계개선 대미직거래 “창구트기”/북의 정전위체제 무력화 속셈

    ◎한미공조 틈새 벌리기 집요한 기도/「전문가회담」 앞서 중 철수 결국 관철 이번에 중국이 군사정전위 철수를 결정한 것은 정전협정체제의 폐기를 집요하게 획책해온 북한측의 정전위 무효화 전술에 중국이 공조한 산물로 볼 수 있다. 정전위의 중국인민군 지원단 철수 결정이 북한측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이다.더욱이 북한이 이미 정전위 대표단을 철수한데 이어 정치협상기구 성격을 띤 인민군대표부를 판문점에 설치한 상태에서 이번 발표가 나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정전협정체제의 변화를 기도하고 있는 이면에는 우리측을 배제한 채 미국과의 직거래를 통해 관계개선과 경제지원 등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장기적 전략이 깔려 있다는 것이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즉 정전협정을 북한과 미국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는 논리를 펴면서 그 과정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 등을 추구한다든가 상주연락사무소급 이상의 관계개선을 촉진하려는 속셈이 개재되어 있는 것이다. 북한은 올들어 그들의 이같은 장단기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1차적으로 군사정전위를 기능상실 상태로 몰고가기 위한 분위기 조성에 주력해 왔다.지난 92년 한국군 황원탁소장이 미국측을 대신해 유엔측 수석대표로 임명된 직후부터 군정위 본회의 참석을 거부해온 연장선상에서 중립국감독위 철수통보에 이어 지난 4월28일부터 군정위 비서장을 아예 철수시키겠다고 공언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북측이 지난 5월24일 유엔사측에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설치를 일방적으로 통보해온 것도 정전협정의 폐기를 노린 계산된 행동이었다.지난달부터 북한측이 판문점 북측지역에 있는 판문각 확장공사에 들어간 것 역시 판문점대표부 활동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므로 궁극적으로 군정위의 효력정지를 기정사실화 하려는 속셈인 것이다. 이처럼 북측이 군정위 기능정지를 꾀하고 있는 데는 정전협정을 무효화하되 정전협상의 당사자로서 미국과의 대화채널은 유지·확대하려는 계산이 깔려있다.때문에 이러한 북측의 처사들을 미국과의 핵 및 관계개선을 일괄타결하기 위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려는북한특유의 「벼랑끝 대화전술」의 일환으로 보는 관측도 있다.미­북 전문가협상을 앞두고 중국측의 정전위 철수발표를 이끌어냈다는 점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그렇다고 해서 북측도 정전협정을 무효화한 뒤 당장 미국과의 평화협정이 이뤄질 것으로 믿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는 게 정부당국의 분석이다.말하자면 이 과정에서 한­미 공조를 약화시키고 미국과의 대화창구를 넓히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최근 북한은 미국과의 막후접촉에서 단골메뉴인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지 않고 있다.이로 미뤄 볼 때 북측은 의도적 긴장조성을 통한 대내 결속 도모 차원에서 정전협정과 평화협정의 중간단계의 과도기 체제를 일단 중간목표로 설정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대표 소환」 중국의 정전위정책/정전협정 존중·평화협정 지지 함께/한국 자극않고 북지원 「양다리 외교」 중국이 1일 군사정전위에서 대표단을 소환키로 결정함으로써 한반도의 정전협정체제가 뿌리째 흔들리게 됐다.중국 외교부 수뇌부는 북한 특사로 지난달 30일부터 북경을 방문중인 외교부 부부장 송호경과의 일련의 회담 끝에 북한측 주장인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라는 북한측 주장에 동조하는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정전위대표단 철수조치에도 불구하고 중국측은 한반도에서 당사국간 협상을 통해 새로운 평화보장 체제가 탄생하기까지는 기존 정전협정체제가 유효하다는 상치되는 입장을 동시에 밝혀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혼선은 중국측이 나름대로 이 문제로 한국과 미국을 자극하지 않고 대외명분상으로도 수세에 몰리지 않기 위해 정전협정유효라는 원칙론을 덧붙인데서 빚어진 것이란 분석이다.중국이 명분상의 입장 선언은 전기침외교부 부장이,실질적 입장은 당가선외교부 부부장의 입을 통해 밝히는 더블플레이를 했다는 것이다. 북한측으로 보아서도 중국의 입장은 분명치 못한 구석이 있는 셈이다.왜냐하면 당부부장은 국제관계의 변화와 한반도형세에 따라 한반도에서의 새로운 평화체제수립이 필요하다는데 두나라(중국과 북한)의인식이 같다고 송호경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그러나 바로 같은날 전외교부부장은 송에게 기존의 정전협정을 대체할 새로운 평화보장 제도 마련을 위해선 한반도안정과 평화정착이 전제조건이며 여전히 정전협정은 유효하고 이해당사자들은 이를 준수해야 한다며 북한 주장의 한계를 명확히 했다. 중국측은 정전위에서의 대표단 소환 필요성을 정전위의 파트너를 이루고 있는 북한대표단이 이미 철수,정전위의 기능이 사실상 정지돼 있어 북한측의 요구를 고려한 끝에 이같이 결정할수 밖에 없었다는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측의 정전협정의 유효성 천명에도 불구,우리측으로선 중국 외교부 당국자가 정전협정을 대신할 새로운 체제에 대한 고려논의가 언급됐다는 점에서 큰 부담을 안게 됐다. 한편 북경의 외교관측통들은 중국과 북한과의 이러한 논의는 지난6월 최광북한총참모장의 방중등을 통해 계속돼 왔으며 북한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이날 결정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고 있다.또 관측통들은 중국도 정전위에서 한발 물러나는 것이 북한이 미국과 한국을 상대하는데 더 많은 여지를 갖게 하고 중국 자신들도 대미 외교의 협상력을 발휘하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중국은 주중 한국대사관등에 중국의 이번 조치가 철수가 아니라 다시 대표단을 재파견할 수 있는 소환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북경의 외교가에서는 이러한 중국측의 결정이 정전위의 단계적인 무력화와 나아가서는 주한미군철수의 당위성으로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성하면서 한국정부의 대응조치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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