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군입대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코리아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토허제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시민 지지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현대화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82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엿장수 딸에서 하버드대 박사까지’ 희망전도사 서진규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엿장수 딸에서 하버드대 박사까지’ 희망전도사 서진규

    “아줌마 희망 한단에 얼마래요?” “희망유? 몰라유, 채소나 한단 사가슈∼선생님?” 장사익씨가 부른 소리판 ‘희망 한단’에 나오는 대목이다. 8년 전 어느날 미국에서 살던 한 아줌마가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는 화두를 던지며 고국땅을 밟았다. 그의 목소리는 처음엔 조용했지만 입소문을 통해 삽시간에 퍼지면서 점차 요란해졌다. 그가 펴낸 책은 한동안 각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방송국의 특별 프로그램 등에 초청됐고 언론지면을 통해 그의 삶이 종종 전해졌다. 까닭이 있었다. 잡초처럼, 지독하리만큼 억척스럽게 살아온 한많은 여인네의 삶 그 자체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절망으로 쓰러질 때마다 희망의 지팡이에 의지해 오뚝이처럼 일어선 생생한 경험담이 많은 감동을 선사했던 것. 그 어떤 영화 속의 주인공보다 더 찐한, 말 그대로 신선한 ‘희망의 메신저’나 다름 없었다. 파란만장한 인간 드라마의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1948년 경상남도 월내라는 어촌마을에서 엿장수의 딸로 태어났다. 남동생 중 한 명은 미군 복무 중 사고로 요절했으며, 한 사람은 정신지체 장애인이다. 시골에서 세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며 공부하겠다는 일념으로 서울로 올라와 군 장교인 큰아버지댁에서 살면서 풍문여고를 다녔다. 잡지판매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충당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인 1967년 종로구에 있는 가발공장에서 사촌 언니와 같이 일했다. 얼마 후에는 관악컨트리클럽 캐디로도 근무했다. 그러던 1971년 친하게 지내던 미국 개신교 선교사가 식모를 구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비행기삯 100달러만 달랑 가지고 미국으로 갔다. 식모일도 하고 한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틈틈이 영어공부를 했다. 1975년에는 한국인 태권도 사범과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남편의 폭력으로 얼룩졌으며, 이를 피하려고 미 육군 사병으로 입대했다. 일등병일 때 용산의 주한 미군 부대에서 군수업무를 맡았고 상등병 시절에는 고된 훈련을 무사히 거쳐 장교로 임관하는 끈기를 보여줬다. 이후 독일과 일본 등 주로 해외에서 근무하면서 여러 대학을 전전한 끝에 1987년 미국 메릴랜드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이어 마흔두살 때인 1990년 하버드대 석사과정에 입학했고,2년 뒤에는 하버드대 국제외교사와 동아시아 언어학 박사과정에 합격했다. 대위 때 하와이에서 패트리엇 미사일 장교로 근무하면서 공부에 매진했다. 1996년 11월 소령으로 전역한 그는 2006년 당당히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러는 가운데 그의 딸도 어머니와 함께 하버드대학을 다녀 ‘하버드 최초의 모녀 재학생’으로 미국에서 화제가 됐다. 딸도 어머니의 뒤를 이어 하버드대 졸업 후 워싱턴주 포트 루이스에서 교육 장교로 복무 중이다. 최근 그는 ‘서진규의 희망’이라는 3번째 책을 펴내 ‘희망전도사’로 전국 곳곳에 강연을 다니느라 분주하다. 또 한달에 한번꼴로 미국에 건너가 영어판 책자발간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적인 성공전략 컨설턴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잭 캔필드가 주도하고 있다. 잭 캔필드는 “미군과 하버드에서 살아남은 이 여성의 드라마틱한 인생 이야기는 우리들의 삶에 무한한 영감과 새로운 희망을 향한 동기를 부여하기에 충분하다.”며 영어판 발간은 물론 할리우드에서도 얼마든지 통할 만한 소재로 여긴다는 것. 이래저래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서 박사를 만났다. 명함을 받았더니 이름 밑에 ‘희망연구소 소장’‘박사’‘예비역 소령’이라는 직함이 보였다. 얼굴에는 나이답지 않게 가냘픈 소녀와 같은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저런 연약한 모습에서 어떻게 불굴의 정신이 나왔을까. 손에는 자신이 펴낸 자전적 에세이집 3권을 들고 있었다.‘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는 35만부,‘서진규의 희망’은 15만부 등 모두 50만부가 넘게 나갔다고 했다. 이어 자신의 딸 얘기가 나왔다. “딸은 구두닦이 생활을 하며 학교에 다녔어요. 동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한 켤레에 2달러를 받고 구두를 닦았지요. 나중에는 특히 군화를 잘 닦는다는 입소문이 퍼져 동네에 사는 군인들이 우리집에까지 군화를 들고 왔을 정도였어요. 그러다 보니 딸의 아르바이트를 도와주느라 장교인 제가 퇴근 후 계급상 하급자들의 군화도 닦아주는 일이 많았습니다.(웃음)” 딸은 지금도 어머니에게 매달 100만원씩을 꼬박꼬박 보내 줄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다.ROTC로 임관할 때는 어머니한테 거수경례로 선서를 해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당시 하버드대측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의미부여를 했다. 서 박사는 이같은 사연과 함께 딸을 키운 이야기를 ‘희망은 또다른 희망을 낳는다’라는 제목으로 2000년 책으로 펴냈으며 지금까지 17쇄를 찍을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 또한 올해 안에 미국에서 출판될 예정이다. 현지 출판사측에서는 “딸을 어떻게 키우면 딸이 부모에게 돈을 보내게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정하면 어떠냐.”는 농담 섞인 제안을 하고 있단다. 한국의 풍습과는 달리 미국에서 자식이 부모에게 용돈을 주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요즘 출판일 때문에 매달 미국에 다녀오고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서 박사의 인생에는 영화가 몇 편 들어 있다. 미국사회에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해요.” 국내에 있을 때는 주한 미군병원에서 C형간염을 치료하면서 각종 단체와 지방 등지에서 ‘희망강연’에 대부분 시간을 할애한다. 지난 설 직전에는 국군방송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인간은 언제 어디서 태어날지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단 한번 주어지는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좌우된다.”면서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그 환경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세상이 비웃고, 조롱하더라도 자신만큼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지켜줄 때 분명 꿈은 이루어진다고 강조했다. 처음 군입대했을 때 윗몸일으키기 한번 제대로 못해 겨날 뻔했으나 오직 ‘나 자신만’을 믿으며 이겨낸 일화도 소개했다. 오늘날의 서 박사를 있게 한 것은 척박한 그의 집안 환경이었다. 아버지는 엿장수, 어머니는 술 장사를 했다. 이런 여건탓에 주위로부터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이럴 때마다 반발심으로 ‘공부를 잘해야겠다’ ‘성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오히려 척박한 여건이 우물 안 개구리를 탈피할 수 있도록 강한 정신력을 심어주었다고 회고한다. 고등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했지만 오빠에게 밀려 대학 진학을 포기하면서 ‘아메리칸드림’을 꾸었다. 미국에 가면 창녀가 된다는 주위 비아냥에 “내가 창녀가 되면 반드시 장을 지진다.”고 단단히 결심했을 정도였다. 그는 두번의 이혼을 겪으면서도 그때마다 보다 멀리,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해 새로운 목표를 정해 도전을 거듭하며 소중한 결실을 맺게 됐다. 그는 요즘 틈틈이 명상의 시간을 갖는다. 왜냐고 했더니 “세계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려면 내 마음의 꿈이 커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이어 “미 대통령은 내각에 영웅을 필요로 한다.”면서 “책 잘 팔리고, 영화화되고, 미국에서 강연도 휩쓸고, 하버드에서 국제사를 전공했으니 외교역량도 있고, 장차 미 국무장관감으로 충분하지 않으냐.”며 웃는다. 그런 다음 여세를 몰아 노벨평화상과 맞먹는 ‘세계평등상’을 제정, 전세계인에게 꿈과 희망의 기회를 주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라고 했다.“희망은 꿈꾸는 자의 몫이기에 10년 내에 반드시 이룰 것입니다. 이민자 출신인 매들린 올브라이트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들이 해냈듯이 말입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8년 경남 기장 출생 ▲67년 풍문여고 졸업. 가발공장, 골프장 캐디 등 근무 ▲71년 도미 ▲75년 미 육군 입대 ▲87년 미 메릴랜드대 경영학과 졸업 ▲92년 미 하버드대 석사 ▲96년 미 육군 소령 예편 ▲2006년 하버드대 국제외교사·동아시아언어학 박사 ■ 주요 저서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1999), 희망은 또다른 희망을 낳는다(2000), 서진규의 희망(2007)
  • [22일 TV 하이라이트]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전 세계 생물 종의 10∼12%가 서식하는 멕시코는 다양한 생태계를 갖춘 나라 가운데 하나다. 철새 보호론자들은 철새가 멕시코를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도록 습지대를 보존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습지대는 철새가 이동하거나 먹이를 얻고 번식하는 곳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 여자가 무서워(SBS 오후 7시20분) 백회장과 통화하던 영림은 백회장이 빨리 오라고 재촉하자, 자기가 가면 가족들과 함께 대문 밖에서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다. 잠시 후 영림은 백회장의 집에 도착한다. 영림은 백회장을 위해 준비한 007가방에서 영림이 입사시험 당시 면접보던 녹음 테이프를 꺼내 틀어놓는다.   ●인간극장(KBS2 오후 7시30분) 지난해 막내 경우의 뒤를 이어 동생 덕우가 태어났다. 어느새 훌쩍 자라 군입대 영장을 받은 경한이와 덕우의 나이 차이는 스무살. 이제 모두 열두 남매, 열네 식구가 된 가족. 서로 다른 얼굴처럼 성격도 제각각인 열두 아이들과 함께 산 20년 세월 동안 엄마, 아빠는 아이들만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산(MBC 오후 9시55분) 영조의 돌변에 괴로워하던 산은 뭔가 떠오른 듯 어린 시절 사도세자가 전하라고 했던 그림을 찾아낸다. 남사초는 송연이 살피면 이 그림에 숨겨진 뜻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한편 홍국영은 영조에게 드리는 한약의 재료로 매병(치매) 여부를 알아보려 한다. 달호는 내관복장을 한 채 내의원에 들어간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생선 중에서 값이 싼 편이고 오메가3·불포화지방산 등 영양도 풍부해 밥반찬으로 자주 올라오는 생선 고등어. 구이나 조림에 회까지 그 쓰임새도 다양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비린내나 기름진 맛을 말끔히 없애고 집에서 해먹을 수 있는 간편한 고등어 요리법과 다양한 영양성분을 알아본다.   ●세계명작드라마 와신상담(EBS 오후 8시50분) 부차가 진나라 등과 협의를 하고 있을 때 공손웅이 고소성 함락 소식을 부차에게 알려준다. 되도록 빨리 성으로 돌아가 지원을 하기 위해, 부차는 즉각 황지를 포위하고 무력으로 진공을 협박해 맹약을 맺으려 한다. 패주가 된 부차는 고소성으로 돌진해 오고, 왕손락은 자결해 사죄한다.
  • [종교·신념따른 대체복무 허용]대상자 어떻게 가리나

    국방부는 종교·신념에 따라 군입대를 거부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법조계와 학계, 사회단체, 정부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대체복무 동기의 진실 여부를 가릴 방침이다. 일단 여호와의 증인 등 종교적 양심에 따른 입대거부자는 본인 진술서와 종교단체의 증빙서류 등으로 서면심사를 한 뒤 위원회에 출석시켜 문답조사를 실시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국방부는 교리를 통해 총을 잡는 행위를 금지하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의 경우 종교활동의 진실성에 대한 교단의 보증이 있다면 자격을 가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불교나 천주교, 개신교 등 ‘집총거부’를 교리차원에서 명시하지 않은 종파 출신 병역거부자들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평화운동 등 ‘정치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제7일안식일교와 불교, 천주교 신도 8명이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했다. 정치적 신념 등에 의한 병역거부자도 24명이나 된다. 김화석 국방부 인력관리팀장은 “개인의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는 독일의 심사제도를 참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독일의 대체복무 심사기구에서는 지원자의 무기소지나 폭력전과 여부, 병역거부에 이르게 된 개인적 동기나 가족내력 등을 제출받아 심사의 근거로 삼고 있다. 사회단체 활동경력 등도 참조한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종교·신념따른 대체복무 허용] “집총 거부하다 주검으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를 허용하겠다는 소식이 어찌나 고마운지 몰라요. 앞으로 이들은 우리 사회에 보다 많은 기여를 하게 될 테니까요.” 18일 정부가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해 대체복무를 허용하겠다는 소식을 들은 자영업자 김윤태(54)씨의 눈가가 촉촉히 젖어들었다.20여년 전 종교적 신념으로 집총을 거부하다 입대 뒤 하루만에 숨진 동생 선태(당시 22세)씨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1981년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장사를 시작한 선태씨는 갑작스레 군입대 통지서를 받고 같은 해 8월14일 서울 태릉의 모 사단 훈련소에 입소했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 신도였던 그는 군사훈련 일체를 거부했고, 다음날 부내 내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입대한 다음날 아침 동생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온 가족이 부대로 달려갔어요. 주검을 보니 온 몸에 타박상 흔적이 나 있고 특히 가슴과 엉덩이에 시커멓게 멍이 들어 있었어요. 유서도 없었는데 군 당국은 이렇다 할 해명 한 마디 없이 ‘자살했으니 확인서에 서명하라.’는 요구만 했어요.” 당시 군 당국은 “자살 확인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당신도 구속해 버리겠다.”며 선태씨와 같은 이유로 군 입대를 기피하던 김씨를 위협했다. 결국 확인서에 서명이 끝나자 동생은 곧바로 화장됐고, 김씨도 석달 뒤 병무청 직원들에게 이끌려 강제 입영된 뒤 병역 거부로 3년 1개월간 수감 생활을 했다. “동생이 죽은 뒤로 집안은 완전히 풍비박산이 났어요. 억울한 사연을 알리고 싶었지만 당시는 군사정권이 들어서 ‘계엄상황’이다보니 함부로 말할 수도 없었어요. 어머니는 화병 때문에 8년 전 돌아가셨고요. 저 역시도 수감 후유증으로 몸도 가누기 어렵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등 괴로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어요. 취직도 안 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그동안 ‘먹고 사느라’ 정신이 없었던 김씨는 지난해에야 동생의 사인 규명을 위해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김씨는 이번 정부 방침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전과자가 되지 않고 사회에 온전히 기여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국회의원 학력검증] 수강은 ‘수료’ 중퇴는 ‘졸업’

    [국회의원 학력검증] 수강은 ‘수료’ 중퇴는 ‘졸업’

    국회의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학력을 부풀렸다. 학력사항에다 논문도 제출하지 않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고 쓰거나 청강한 학교를 수료한 것처럼 썼다. 학위공장으로 알려진 비인가대학 졸업장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하기도 했으며 중퇴한 학교를 졸업한 것처럼 보이게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오차노미즈大 “박사학위 받지 않았다” 국무총리를 지냈고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경선 후보로 출마했던 한명숙(63·경기 고양 일산갑) 의원은 일본 오차노미즈대학 박사과정을 마치지 않고도 수료라는 프로필을 공개해 왔다. 한 의원은 2001년 김대중 정부 시절 초대 여성부장관에 임명되면서 ‘일본 오차노미즈대 박사과정(수료)’라는 내용의 프로필을 언론에 배포했다. 이후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의 첫 내각에서 환경부장관에 취임할 때와 2005년 4월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이 됐을 때, 지난해 4월 헌정 사상 첫 여성 국무총리에 임명됐을 때까지 오차노미즈대 박사과정 수료라는 프로필이 보도돼왔다. 오차노미즈대는 ‘일본의 이화여대’라고 불리는 명문이다. 하지만 한 의원이 총리에 오른 직후인 지난해 4월24일 오차노미즈대는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려 한 의원이 박사학위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학교측은 ‘한국 첫 여성 총리 한명숙씨와 오차노미즈대학과의 관계’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명숙씨가 오차노미즈대학에서 논문박사에 따른 학위를 신청하기 위해 96년부터 97년에 걸쳐 당시 젠더연구센터 교수였던 하라 히로코 명예교수의 연구지도를 받아 박사논문 제출 준비를 했다. 하지만 논문신청을 앞두고 1999년 9월 김대중 대통령의 권유로 귀국했다.’고 밝혔다. 한 의원측은 공식 해명서를 통해 ‘오차노미즈 대학에서 논문을 준비한 적이 있는데 1997년 8월 가족이 미국으로 가면서 중단했다. 이런 이력을 영문으로 ‘Dissertation Candidate(박사학위 지원자)’라고 적었는데 이력을 정리하던 직원이 잘못 번역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2004년쯤 즉시 시정조치했다.’고 말했다. 일본에는 과정박사와 논문박사라는 제도가 있으며, 과정박사는 수업을 들은 뒤에 논문을 쓰는 것이고 논문박사는 수업을 듣지 않고 논문만 쓰는 것이다. 한 의원의 경우는 논문박사에 해당된다. ●美·佛 특파원 시절 대학 청강도 수료로 한나라당 박성범(67·서울 중구) 의원은 19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 때 만든 공보에서 고려대 중퇴,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조지 워싱턴 대학 수료, 파리 소르본 대학 수료, 고려대 언론대학원 수료 등의 학력을 게재했다.1992년 펴낸 번역서 ‘앵커맨’의 옮긴이 약력에선 ‘고려대 사학과를 나와’라고 썼고 1996∼1999년과 2004년 발행된 국회수첩에는 ‘고려대·건국대졸’이라고 썼다. 마치 고려대를 졸업한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취재팀이 미국 조지 워싱턴대학과 학력 검증 사이트인 크리덴셜스 아이엔씨(www.degreechk.com)에 확인한 결과 조지 워싱턴 대학에 박 의원의 학적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박 의원은 고려대 사학과 재학 시절 4·19 시위로 인해 입학 1년 만에 제적당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박 의원 측은 이에 대해 “KBS 워싱턴 특파원이던 1972∼1975년 사이 미 국무성의 권고에 따라 조지 워싱턴 대학원 국제관계학과에 부설된 미국의 대외정책 강의를 들었고, 파리 소르본 대학도 1979∼1986년 특파원 시절 신문연구소에서 비학위 코스를 1년 수강했다.”면서 “비학위과정의 수업을 수강한 경우 졸업이라는 표현을 쓸 수가 없어서 수료라고 썼다.”고 해명했다. ●‘학위공장’ 비인가대학 선관위에 신고 대통합민주신당 염동연(61·광주 서갑) 의원은 김옥랑(62·동숭아트센터 대표) 전 단국대 교수가 졸업했다고 밝혀 세간에 ‘학위공장’으로 알려진 비인가대학 퍼시픽웨스턴 대학원 석사학위를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김옥랑 전 교수가 현재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파장이 예상된다. 염 의원은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며 중앙선관위에 퍼시픽웨스턴 대학교 정치학 석사(2년)라고 신고했고,2006년 발행된 국회수첩에도 똑같이 게재했다. 또 독일어과 1년을 다니고 중퇴한 한국외국어대 경력도 2005년과 2006년 국회수첩에 ‘한국외대 독일어과’라고만 게재해 마치 졸업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염 의원 측은 이에 대해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학위를 땄지만 그 학교(퍼시픽웨스턴대)가 추후에 문제를 일으킨 것이기 때문에 염 의원도 피해자”라고 해명했다. ●동국대 최고경영자과정 1년 이수가 전부 서울 법대에 검사출신의 한나라당 정종복(57·경북 경주) 의원은 개인 홈페이지와 2004∼2006년 발행된 국회수첩에 다니지도 않은 동국대 사회과학대학원을 졸업했다고 기재했다. 취재팀이 동국대측에 확인한 결과 정 의원은 2000년 동국대 최고경영자과정을 1년 이수한 게 전부였다. 정 의원 측은 이에 대해 “99년 지인으로부터 동국대 사회과학대학원에 다녀달라는 말을 듣고 1년 과정을 마쳤는데 이게 최고경영자 과정인 줄 몰랐다.”면서 “사회과학대학원 졸업이라고 표기한 것은 보좌진이 학력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잘못 표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한나라당 이재오(62·서울 은평구을) 의원은 학사학위 과정 기간과 군복무 기간이 겹쳐 논란이 되고 있다. 이의원은 중앙농민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처음 받았다.1965년 중앙대 2학년 재학 때 6·3한일회담비준반대 학생운동을 주도하다가 제적당한 이의원은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이듬해 3월 중앙농민학교에 입학했다. 정식대학은 아니지만 학사 학력이 인정되는 대학이다. 하지만 한달 뒤인 4월에 군대로 강제징집됐다. 재학기간은 1966년부터 1970년 2월이고 1969년 4월 병장 제대를 했기 때문에 군입대 기간과 재학기간이 겹친다. 이 의원은 “(나를)아끼는 대학교수들의 배려 덕분에 중앙농민학교 학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어 1970년에 중앙농민학교를 졸업했다.”고 해명했다.1972년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고,1996년 중앙대 경제학과를 입학 32년 만에 졸업했다. 특별취재팀
  • [여성&남성] ‘불륜의 덫’에 빠진 그남자 그여자

    [여성&남성] ‘불륜의 덫’에 빠진 그남자 그여자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유부남을 사랑하는 미혼녀’라는 글에 대한 설전이 벌어졌다.“어떻게 임자 있는 남자한테 꼬리를 치느냐.”는 기혼 여성들의 항의에 미혼 여성들은 “남편 바람난 게 자랑이냐.”는 식으로 응수했다.‘사이버 전쟁’의 이면에는 유부남과의 연애에 당당한 미혼 여성이 늘고 있는 세태가 자리잡고 있다. 당장 주변만 둘러봐도 직장 상사와 연애하는 미혼 여성이나 유부녀와 만나는 미혼 남성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만 해도 수십개에 달한다.‘금지된 사랑’을 찾는 남성과 여성의 마음 속에는 어떤 심리가 자리잡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임일영 류지영기자 argus@seoul.co.kr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유부녀’일 뿐 회사원 박모(28)씨는 두 아이의 엄마인 동갑내기 A씨와 만나고 있다. 대학시절 ‘캠퍼스 커플’이던 이들은 박씨의 군입대로 헤어졌다 지난해 과 동기모임을 계기로 다시 연락이 닿았다. 미남형의 외모와 깔끔한 매너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박씨지만 지금까지 A씨를 완전히 잊지 못했다. 올 초 학교 후배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A씨와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 때문에 결국 결별하고 말았다. 역술가인 A씨의 남편은 늘 “기운을 받아야 한다.”며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기 일쑤여서 A씨를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고. 심지어 주말에 A씨의 집에 찾아가 아이들과 놀아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남들 사생활을 족집게처럼 맞히는 역술가들도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있다는 사실은 모르나봐요. 남들이 저에게 어떤 비난을 쏟아부을지 모르겠지만 전 사실 유부녀라서 그녀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유부녀일 뿐이죠.”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김모(29)씨는 박사과정 선배인 두 살 연상의 누나 B씨와의 관계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올 초 대학원 술자리에서 “둘이 잘 어울린다.”는 주변의 농담을 재미삼아 응대하다 몇 달 만에 실제 ‘연애’로까지 발전했다고. 문제는 B씨는 이미 남편뿐 아니라 두살배기 아이까지 있다는 것. 김씨는 철저히 자신이 원할 때만 만나주는 B씨를 보며 이기적이라고 느끼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친구들은 “B씨는 조건을 보고 결혼해 남편과 관계가 좋지 않다 보니 대리 만족을 위해 널 만나는 것”이라며 말리지만 ‘콩깍지’가 씐 김씨로서는 그런 경고가 귀에 안 들어온다. “저도 양심은 있어서인지 가끔 B씨를 데리러 오는 남편과 눈을 못 맞추겠더라고요. 어떠한 변명이나 면죄부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은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또래에게 느끼지 못하는 특별한 것이 있다 지난해 말 지방 지점으로 발령이 난 회사원 정모(30)씨는 주말마다 회사 근처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다 얼마 전 여중생 딸을 둔 열두살 연상의 ‘띠동갑’ C씨를 만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방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볼 요량으로 가끔 전화 연락이나 하며 지냈다. 하지만 재미삼아 한두 번 만나기 시작하면서 둘 사이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30대에 접어든 자신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마치 늘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콕 집어 조언해주는 C씨의 진지한 태도에 차츰 빠져들기 시작했다. “처음 만날 때부터 C씨와 불륜관계로 나아가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비슷한 또래 사이에서는 느낄 수 없는 배려나 포용성 같은 감정들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제가 ‘정’에 굶주려 있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어요. 지방으로 발령나자 ‘시골에서는 못 산다.’며 떠나간 옛 여자친구와 많이 비교되기도 했고요.” 회사원 조모(33)씨는 7살 연상 직장 상사인 기혼녀 D씨와 2년째 은밀한 관계를 지속 중이다. 어린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조씨는 D씨로부터 엄마에게 받지 못한 포근함을 느껴 첫눈에 반했다.‘이건 안 된다.’는 생각에 억지로 D씨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했지만 회식 뒤 술에 취한 D씨를 집에 바래다 주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 만남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D씨는 남편과 이혼한 뒤 딸아이와 살고 있다. “가끔 D씨가 ‘우리나라를 떠나서 남들 눈치 안 보고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곤 해요. 저 역시도 지금 제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D씨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점은 말할 수 있어요.” ●책임감 없이 만날 수 있으니까 학원강사 박모(35)씨는 직장에 다니던 5년 전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된 동갑내기 여성 E씨와 지금까지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처음 만날 당시만 해도 E씨는 갓 결혼한 새색시였지만 지금은 이혼한 뒤 지방에 혼자 살고 있다. 예전에는 지방 출장 겸 만나곤 했지만 지금은 E씨를 만나기 위해 KTX를 타고 갈 만큼 만남에 열의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박씨는 한 번도 E씨와 결혼할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어차피 E씨는 아이가 있는 사람이고 나이도 많아서인지 나에게 뭔가를 바라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런 점이 나를 편하게 만들기도 하고요.E씨는 정말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이긴 해도 만약 결혼을 전제로 만났으면 이미 내가 먼저 도망쳐 나왔겠죠. 나 때문에 이혼한 것도 아닌 만큼 E씨의 현 상태에 죄책감 같은 것도 솔직히 느끼지는 않고요.” ●그 사람 말고는 아무 것도 안 보여 회사원 김모(26·여)씨는 지난해 결혼한 회사 동기 H씨를 짝사랑하고 있다.1년쯤 전부터 회식자리에서 늘 김씨의 옆에 앉아 챙겨주던 H씨의 자상함에 반하면서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H씨의 신혼 집들이에 갔던 김씨는 의외로 평범한 외모인 H씨의 아내를 보고는 ‘내가 외모나 능력 어느 것 하나 저 여자에게 달리지 않는데….’라는 생각에 화가 났다고. 최근 H씨가 이직을 하자 김씨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H씨에게 고백을 했다가 완곡하게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저한테 그 남자의 아내는 존재감이 없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예요. 오직 그 남자 하나만 보인다고 할까요. 그 남자 이혼하는 건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밥 한 번씩 먹고 영화나 볼 수 있는 관계만 돼도 좋을 것 같은데. 유부남이라 그것도 안 될까요. 그래서 가슴이 더 저려요.” 최모(30·여)씨는 4년 전 세 아이의 아버지였던 I씨를 만났다. 잘생기지도 않았고 돈도 별로 많지 않던 열다섯 살 연상의 I씨가 최씨에게 선물공세를 펼 때만 해도 ‘정신 나간 사람’쯤으로 생각했지만 당시 이별의 아픔을 겪던 그에게 I씨의 배려는 큰 힘이 됐다고. 결국 최씨는 ‘기러기아빠’였던 I씨와 동거를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I씨는 외박이 잦아지고 변하기 시작했다. 최씨는 I씨가 자신을 폭행하고 또 다른 여자를 만나는 일이 잦아지자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I씨는 곧바로 집을 나갔고 연락 한 번 없다. 지금 최씨에게는 4년을 함께 산 I씨에 대한 그리움뿐이라고. “늘 곁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없어지니 세상이 온통 빈 느낌뿐이에요. 제가 전화하면 그대로 전화를 꺼버려요. 제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사람이니 늘 행복했으면 하지만 저를 이렇게까지 마음 아프게 했으니 평생 불행하게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도 교차해요.” ●유부남 사랑하는 내 마음 나도 몰라 3년 전 취직한 회사원 정모(27·여)씨는 입사 당시 ‘사수’(일을 직접 가르치는 선임자)였던 상사 F씨와 얼마 전 만남을 시작했다. 처음 입사할 당시 “일 못하는 빵점짜리”라며 혼도 많이 내던 F씨였지만 3년이 지나면서부터는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고. F씨는 정씨에게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불러내서는 고가의 목걸이나 반지 등을 선물하며 애정 공세를 시작했고 정씨 역시 그런 F씨가 싫지만은 않았다.‘내가 원하면 언제든 관계를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던 정씨였지만 이제는 자신의 의지로는 상황을 벗어날 수 없게 됐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다른 남자가 생기면 언제든 떠나겠다.’며 F씨에게 자신있게 말했지만 이상하게도 회사에서 저 좋다는 남자들이 아무리 덤벼도 안 끌렸어요. 다른 남자가 좋아지려고 해도 F씨가 ‘그와 만나지 말라.’고 말하면 자연스레 헤어지게 됐어요. 내가 생각해도 이렇게 돼 버린 내 자신이 너무 황당하고 이상해요.” 외국 유학 중인 이모(29·여)씨는 해외 지사 근무 중이던 기혼남 G씨를 알게 됐다. 아침마다 모닝콜을 해주고 먼 거리라도 언제든 이씨의 집으로 달려와주는 G씨에게 남자다운 매력을 느꼈다. 몇 달 뒤 G씨는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고 공항에서 그를 바래다주며 ‘이것으로 G씨와의 인연은 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G씨가 돌아간 뒤 이씨가 먼저 연락하게 됐고 지금까지 인터넷 화상채팅 등을 통해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공유하고 있다. “G씨는 이혼할 마음이 전혀 없어요. 그럼에도 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걸 너무도 싫어해요. 쉽게 말해서 ‘난 가정을 지킬 테니 넌 결혼하지 말아라.’라는 심보죠. 하지만 이상한 것은 제가 그런 남자를 사랑한다는 거예요.G씨가 나와 결혼해주길 원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내가 너무 이상해요.” ●서로 좋아하는 현재가 제일 중요하니까 얼마 전 결혼한 김모(27·여)씨는 최근까지 10살 연상의 직장 상사 J씨와 소위 말하는 ‘불륜’관계를 맺었다. 당시 김씨는 미혼이었고 헌칠한 외모의 J씨에게 반해 먼저 프러포즈를 했다고. 그제서야 J씨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를 좋아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은 보통 연인들과 똑같이 데이트도 하고,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J씨의 부인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 당시만 해도 앞으로 둘 간의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J씨와 사랑하고 있는 현재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지요. 철없는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나이에는 그저 누구든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J씨의 집에 집들이 갔다가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서로 좋아하던 거니까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어요.” ■심리학으로 본 불륜 진화 심리학에서는 외도가 오랜 기간에 걸친 인류의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인류에게 ‘1부1처제’가 정착된 지 수천년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십만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1부다처’ 혹은 ‘1처다부’의 전통이 아직 상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 쉽게 말해 인간 유전자에 아직 ‘바람기’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우리 사회에서 윤리·규범 등을 통해 이를 잘 억제해 왔지만 최근 이러한 규제가 느슨해지면서 외도나 불륜이 다시금 사회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외도나 불륜에는 어떤 심리학적 원리가 작용하고 있을까.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랑에 장애가 있는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상대를 더 깊이 사랑한다고 지각하게 되는데 이를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라고 한다. 이는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불륜 커플의 사랑이 유독 열정적인 이유를 설명해준다. 불륜은 극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인 만큼 들키지 말아야 한다. 조마조마해서 가슴이 뛰게 만드는 상황은 두 사람의 사랑을 실제보다 더욱 큰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콘돔 판매량과 호텔 예약률이 급증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도 불안이 사랑을 더욱 크게 느끼게 만드는 요인임을 잘 보여준다. ‘남들 다 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의 사회 분위기 또한 외도나 불륜을 조장하는 데 크게 기여하는데 이를 ‘사회규범이론’이라고 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처럼 TV나 영화 등 미디어가 외도나 불륜을 미화해 방영할 경우 대중들 또한 이에 관대한 사회적 태도를 갖게 된다.‘남들 다 하는 것인데 나도 하면 안 되냐.’는 식의 사고방식이 일종의 사회적 합의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한때 기혼남녀 사이에 불었던 ‘애인만들기’ 열풍 또한 외도나 불륜이 일종의 사회적 규범이 된 우리 사회의 윤리적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 도움말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 [시론] 추악한 정치와 사악한 지식인/김주연 문학평론가·숙명여대 명예교수

    [시론] 추악한 정치와 사악한 지식인/김주연 문학평론가·숙명여대 명예교수

    결국 이렇게 되고 있다. 대학과 지식인을 엘리트 이기주의니 먹물이니 하면서 공격하고 조롱하는데 최근 10여년 정치권은 바빴다. 대학이나 지식인과 먼 거리에 있는 것이 건강한 민중성으로 자랑되었고, 각종 선거의 출마자들은 그것을 미덕처럼 강조하였다. 배운 자들은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자처럼 매도되어, 설령 지식인들이라도 이러한 ‘시대정신’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민중주의에 편승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고 그들 중 다수는 나름대로 ‘출세’하기도 했다.IMF 환란을 전후해 전통적 지식인들은 밀려나고 돈 잘 버는 사람들이 ‘신지식인’으로 우대되었다. 이후 엘리트, 일류 등의 낱말들이 타기해야 할 용어들로 기피되었다. 문학에서조차 소수문화로서의 ‘하위문화’가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하면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전통은 수구적인 것으로 평가절하되는 문화단절의 현상마저 나타났다. 그러나 대저 축적없는 새로움이 어디 있겠는가. 전통과 문화에 무지한 ‘진보’가 과잉 행보하면서 전통적인 지식인의 설 자리는 사실상 사라진 듯하였다. 이 판에 지식인들 스스로의 ‘자기 투매(投賣)’현상이 일어났다. 대학교수라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수백명, 수천명씩 소위 대선캠프라는 곳을 찾아든 것이다. 정책을 조언한다는 것이 명분인데, 결국 자신을 사달라는 말 아니겠는가. 이래저래 지식인이라는 낱말은 우리 사회에서 실종의 위기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지식인의 이러한 위상 추락은 먼저 우리 사회, 그것도 정치권에 그 책임이 있다. 건국 이후 지금까지 위정자들은 그 누구든 대학, 문화, 지식인들을 존중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많은 조건들이 결여된 탓이었는지 걸핏하면 대학을 공격하고 대학교수나 지식인들을 못마땅해 왔다. 군사독재 시절은 그렇다치고, 민주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최근에도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있다. 우수한 인재라든가, 수월성 같은 말만 나오면 깜짝깜짝 놀라는 정치권과 교육당국 아래에서 지식인들의 창의성, 비판성이 주눅들지 않고 맑은 음성을 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회현실의 비우호성에도 불구하고 지식인들의 왜곡되고 타락한 풍속에는, 지식인들 스스로의 책임 또한 무겁다는 사실이 똑똑히 인식되어야 한다. 몇해 전 ‘사악한 지식인’이란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가볍다면 가벼운 책인데, 제목만큼은 오랜 생각 끝에 붙여 본, 이를테면 회심작이라고 내심 즐겼다. 아닌게 아니라 친구들은 나를 사악한 지식인이라고 놀렸다. 왜냐고?무엇보다 지식인에게는 아무 힘이 없는데도 힘이 있는 척 행세하는 모습이 그렇다. 칭찬을 받으면 고래도 춤춘다고 했던가. 우리의 지식인들은 그러나 대학을 통해서든, 온갖 문화기관을 통해서든 칭찬은커녕 격려조차 못 받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지식인들 스스로 행여 잘난 척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일까. 그 지적 천덕꾸러기들이 대선주자들을 돕겠다고 줄을 섰다니 민망하기 짝이 없다. 캠프에 찾아간 대학교수들이 혹시라도 한표 이상의 영향력이 있다고 스스로 믿는다면 부디 거두어 주기 바란다. 차라리 철저한 자기고립을 통한 고전적 연마만이 다소의 권위라도 찾는 길이라면 지나친 자학일까.‘역사를 위한 변명’의 사학자 마르크 블로크의 나치 항거를 위한 군입대는 얼마나 겸손한 사회참여인가. 현실적 이해관계를 제외한다면, 복수(複數)의 지적 허세로서 이루어질 지성적 과제는 없어 보인다. 김주연 문학평론가ㆍ숙명여대 명예교수
  • [로스쿨 시대] 비고시생·직장인“나도 한번” 밀물

    로스쿨법 통과 이후 직장인과 대학생을 중심으로 로스쿨 준비 열풍이 불고 있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불과 이틀밖에 안됐지만 관련 인터넷 카페 회원 수가 하루 수백명씩 늘고 고시학원에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5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최대 로스쿨 준비 관련 카페인 ‘로스쿨진학준비위원회’에 따르면 평소 5명 수준이던 회원수가 로스쿨 법 통과 이후 최고 70배나 늘었다. 운영자 박종필(33)씨는 “3년 전 카페를 만들었는데 로스쿨법 통과 다음날인 4일 가입자 수가 350명이나 됐다.”면서 “5일에도 오후 2시 현재 70명 정도 가입하는 등 관심이 무척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방문자수도 4일 1500명,5일 1300여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평소 가입자가 5∼6명이었던 카페 ‘로스쿨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지난 3일 280명이나 새로 가입해 5일 현재 회원이 1300여명에 이른다. 카페에는 자신의 진학 가능성을 상담하거나 나름대로의 정보를 공유하는 글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다. ‘공대생’이라고 밝힌 한 카페 회원은 “영어성적은 어느 정도 갖춰진 상태지만 언어 능력이 부족하다.”면서 “논리력·논증력 등을 기를 수 있는 기초적인 책을 소개해 달라.”고 주문했다. 일부 게시판에는 ‘로스쿨 가능성 높은 대학 명단’이라는 출처없는 글이 떠도는가 하면 “비법대생들에게 불리하다.”“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좋다.”는 등의 근거없는 정보성 글이 올라오고 있다. 고시학원가에는 ‘비고시생’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조대일 한림법학원 부원장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문의를 해 5일 오전에만 30통 넘는 전화 상담을 했다.”면서 “일과 로스쿨 준비를 병행하려는 직장인들도 많다.”고 말했다. 유완기 베리타스 원장은 “과거 고시를 준비하다가 떨어진 사람들이 법조인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인원 등 유동적인 것이 많아 구체적인 상담보다는 좀 기다려 보라는 쪽으로 조언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컨설팅회사에 다니며 로스쿨을 준비 중인 홍성환(32)씨는 “금융쪽에 밝아 변호사가 되면 금융관련 법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로스쿨을 지원하려 한다.”면서 “로스쿨을 기다리며 몇년째 영어학원까지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입학 정원이나 입시안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김문현 법대 학장은 “현재 사시 정원을 고려해 로스쿨 정원을 정한다면 과거 사시와 같이 로스쿨 입학이 ‘또다른 고시’가 될 수 있다.”면서 “법학 적성시험과 학점, 면접, 영어 등이 기준이 될 텐데 학점이 대학마다 다르기 때문에 현 대학입시 내신반영률보다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정종섭 법대 교무부학장은 “정부 계획대로라면 당장 10월까지 인가 신청을 하고 입시안을 만들어야 하지만 필수 반영요소인 법학 적성시험의 개념조차 불투명하다.”면서 “대학의 학원화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비용 문제도 핵심이다. 회사원 양모(31)씨는 “로스쿨을 졸업하려면 수천만원이 든다고 하니 소수계층의 전유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면서 “지금도 일부 변호사들은 먹고살기조차 힘들다는데 고비용을 감당하며 로스쿨에 들어갔다가 본전도 못찾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양씨는 그러나 “그래도 법조인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서재희 이재훈 이경주 이경원기자 s123@seoul.co.kr ■ 법조인 준비 어떻게 3일 국회를 통과한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로스쿨을 입학하기 위해서는 학부 성적, 법학적성시험(LEET), 외국어 능력 등 세가지를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만 로스쿨법이 시행되더라도 로스쿨에서 졸업생이 처음 배출되는 2012년까지는 현행 사법시험제도가 유지된다. 또 로스쿨 졸업생이 나오더라도 1∼2년간은 정원을 줄인 상태에서 사법시험제도가 유지된다. 따라서 법조인이 되고 싶다고 해서 모두 로스쿨 진학을 할 것이 아니라 나이와 전공 등에 따라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변호사가 되고 싶은 고등학생 A군 현재 중·고생은 대학졸업 후 로스쿨을 가야 변호사 자격증을 딸 수 있다. 로스쿨 입학생 중 비법학과 및 타교출신자가 각각 3분의1 이상 되도록 의무화했지만 앞으로 로스쿨이 설치되는 대학에는 법학 대학이 폐지된다. 다만 교양수준의 법학과목 이수를 요구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향후 시행령에서 정한다. 현재 사법시험에서는 법학과목 35학점을 요구하고 있다. 로스쿨 입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LEET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어능력은 현행 사법시험처럼 토익이나 텝스 등 공인영어시험의 일정 점수 이상을 갖추는 것으로 대신한다. 학부 성적은 학교간 성적차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변별력이 크지 않다. 그외 학교에 따라 사회활동 및 봉사활동 경력을 입학전형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비법학과 출신의 30대 직장인 B씨 LEET는 나이가 많은 수험생에게 유리한 시험은 아니기 때문에 노장생은 로스쿨보다는 현행 사법시험을 치르는 것이 유리하다.LEET는 법학과목없이 언어이해, 추리논증, 논술 등 세과목으로 치러진다.LEET는 현재 공무원임용시험에 사용되는 PSAT(공직적격성평가)와 비슷하다. 전문가들은 도입 5년째를 맞은 PSAT의 선례에 비춰볼 때 노장생이 LEET에 상대적으로 불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법학과목에 강점이 있는 노장생이라면 로스쿨행을 피하고 사법시험에 매진하는 것이 좋다. ●비법학과 3학년 여대생 C씨 사법시험을 염두에 두고 2년 정도 공부를 해왔거나 법학과목 35학점을 이수했다면 현재 사법시험에 도전하는 것이 유리하다. 로스쿨 첫 졸업생이 나오는 2012년까지는 현행대로 사법시험 1000명 수준은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후 사법시험 합격자 인원을 줄이다가 2014년쯤 사법시험은 없어진다. 군입대를 미룬 채 사법시험에 매달려온 수험생들은 일단 내년 8월에 처음 치러지는 LEET를 보고 사법시험을 계속할지 로스쿨로 바꿔 탈지 결정해야 할 것 같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법학적성시험 LEET는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해 3월부터 11월까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의뢰해 로스쿨 입학시험인 LEET(Legal Education Eligibility Test)를 연구, 개발했다. 교육부는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수정, 검토를 거친 후 늦어도 내년 5월 전까지 확정안을 만들 계획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LEET는 모두 3과목으로, 이 가운데 논술도 포함된다.LEET는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자질에 관한 적성을 측정하기 위한 검사 성격의 시험으로 법학전문대학원의 기본 수학능력과 법조인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 자질과 적성을 평가하게 된다. 출제는 문제은행식으로 출제될 예정이다. 과목은 언어이해, 추리논증으로 40문항씩이며 시험시간은 각각 90∼120분 동안 진행된다. 별도로 논술이 치러질 예정이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언어이해 과목은 장문의 텍스트를 지문으로 제시하고 그에 대한 이해를 묻는다. 내용은 인문, 사회과학, 과학기술, 문학예술 등에서 골고루 출제된다. 추리논증은 문항별로 간단한 지문을 제시하거나 별도의 지문없이 문제해결에 필요한 정보를 문제에 포함시키는 형태로 출제된다. 미국의 로스쿨 입학시험인 LSAT는 총 175분 동안 5개 영역의 객관식 문제와 30분간의 작문시험으로 진행된다. 시험과목은 논리력(35분), 분석력(35분), 독해력(35분), 정보처리능력(35분), 작문(30분)이다. 일본의 법학적성시험은 대학입시센터(DNC)에서 실시하는 것과 일본 변호사연합회(일변련)에서 실시하는 것 두 가지가 있다.DNC의 시험은 추리 분석력(90분), 독해표현력(90분)이고 일변련이 주관하는 시험은 논리적판단력(40분), 분석력(40분)장문독해력(40분) 외에 표현력을 묻는 논술시험(40분)이 추가된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로스쿨 정원 적정규모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설치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입학 정원의 적정 규모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교육부가 당초 마련한 시행령에는 대학당 정원을 150명선으로 정했었지만 법원행정처와 법무부는 경제규모, 소송 사건 추이 및 변호사별 평균 수임건수 등 법률수요, 외국의 운영실태 등을 고려해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9월말쯤까지 시행령를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법원행정처 등은 공식 입장을 마련하면서 문화가 비슷하고 최근 로스쿨을 도입한 일본을 비교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02년을 기준으로 할때 국내총생산(GDP) 1억달러당 법조인 수가 한국의 경우 1.66명인데 반해 GDP규모에서 우리보다 8배 이상인 일본은 0.61명에 불과했다. 또 법조인 1인당 국민 수는 한국이 5783명인데 반해 일본은 5247명으로 비슷하지만, 판사 1인당 상대 국민은 한국이 2만 6350명, 일본이 5만 5033명으로 한국이 우위다. 검사 기준으로도 한국이 3만 5107명인데 비해 일본은 5만 5033명이나 됐다. 다만 변호사 기준에선 우리나라가 1인당 9391명인 반면 일본은 6752명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정부가 일본을 참고한다면 판·검사보다는 변호사 수를 늘리는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대학이나 로스쿨 지원자들이 원하는 만큼 변호사 직역이 확대될 수 있을진 미지수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대한민국의 아들 정체성 찾아”

    해외영주권을 지닌 형제가 처음으로 군에 동반입대했다. 지난달 28일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 입소한 박희성(20)·종성(19) 형제. 박씨 형제는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중이던 지난 1998년 가족과 함께 브라질로 이민을 떠난 뒤 9년 동안 현지에서 살아왔다. 올해초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들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인내심, 도전정신을 기르기 위해 군입대를 결심하고 지난달 조국행 비행기에 나란히 몸을 실었다. 입대후 1주일간 언어, 역사, 관습, 군대예절 등을 배우는 ‘초기 적응 프로그램’도 무사히 마쳤다. 희성씨는 “군생활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아버지와 친척들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형제가 함께 있는 한 어떤 고통과 어려움도 다 이겨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이들과 함께 훈련소에 입소한 해외영주권자는 22명. 이 가운데는 지난해 결혼해 아내와 5개월된 딸을 미국에 남겨두고 온 김신영(29) 훈련병도 있다. 이들 영주권자 훈련병은 다음달 13일 신병교육을 수료한 뒤 자대로 배치돼 20개월간 국방의무를 수행하게 된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68년 피랍선원 “어머니, 꿈만 같아요”

    “아들아,39년만이구나.” “이렇게 다시 보다니 꿈만 같아요, 어머니.” 11개월만에 재개된 제15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9일 오후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금강산에서 열렸다. 남측 1회차 상봉단 99가족 148명은 이날 낮 육로를 통해 금강산에 도착, 금강산호텔에 마련된 상봉장에서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북측 가족 229명과 감동적인 만남을 가졌다.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 빛바랜 결혼사진, 돌사진 등을 꺼내놓은 채 기억을 되살리던 이산가족들이 서로를 껴안고 흐느끼자 상봉장은 이내 울음바다로 변했다. 이동덕(88·인천시 부평동) 할머니는 1968년 주문진 선적 대성호에 승선, 조업 중 피랍된 아들 김홍균(62)씨를 39년만에 만났다. 김씨는 노모를 껴안으며 “어머니를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다.”며 흐느꼈다. 이 할머니 가족 외에 한국전쟁 중 피랍됐거나 군입대 후 전사처리된 특수 이산가족 3쌍도 북측 친인척들을 만났다. 남측 최고령자로 언동이 자유롭지 못한 고면철(98·경북 영천시) 할아버지는 아들 고명설(71)·명훈(61)씨와 딸 정화(65)씨를 만났지만,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자 탁자를 치며 통곡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장남 명설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 알고 몇해 전부터 제사를 지냈는데 이렇게 만나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친정집에 간 사이 남편이 일가족을 데리고 월북해 이산가족이 된 김진영(87·서울 노원구) 할머니는 유일하게 생존한 둘째딸 이지숙(64)씨가 내민 가족사진을 보고 오열했다. 그러나 뿌리를 찾은 반가움도 전쟁이 남긴 이별의 상처는 덮지 못했다. 국군포로·납북자 등 특수 이산가족들은 ‘납북이냐 월북이냐.’를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을 내세우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1951년 북으로 간 형님의 아들 2명을 만난 정혁진(72)씨는 조카들의 주장에 당황했다. 정씨는 형 정용진(74)씨가 백골전투에서 인민군에 끌려갔다고 했지만 조카 철민(43)·철성(39)씨는 “아버지가 생전에 혼자 올라왔다고 했다.”고 주장하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단체상봉에 이어 북측 조선적십자사가 마련한 환영만찬에서 이산가족들은 뜨거운 정을 이어갔다. 이들은 10일 해금강호텔에서 개별상봉을 하고, 오후에는 삼일포를 구경한 뒤 11일 작별상봉을 끝으로 2박3일 일정을 마무리한다.12일부터는 북측에서 신청한 이산가족 100명이 남측 가족 442명을 만날 예정이다.금강산 공동취재단·김미경기자chaplin7@seoul.co.kr
  • 군인 휴대전화 이용정지시 요금↓

    정보통신부는 4월부터 군 현역병이 복무기간에 휴대전화 서비스를 해지하지 않고 이용정지 서비스를 신청하면, 업체별 기본요금에서 매월 540∼780원을 면제받는다고 27일 밝혔다. 관련 법규인 전파법의 시행령 및 시행규칙은 4월1일자로 개정돼 시행된다. 기본 요금은 SK텔레콤·KTF가 3850원,LG텔레콤은 4400원이며,SKT는 매월 780원을,KTF·LG텔레콤은 540원을 할인받는다. 감면 대상은 육·해·공군의 현역병과 전·의경, 경비교도대원, 의무소방원이다. 경찰대 졸업예정자로서 전환복무자 추천을 받거나 군부대에 입소하지 않은 대체복무자는 제외된다. 이미 군입대해 이용정지 서비스를 신청한 현역병은 자동 감면 혜택을 받는다. 감면 혜택을 받으려면 병무청(홈페이지 등)에서 입영확인서 또는 병적증명서를 발급받은 뒤 이동통신 대리점에서 이용정지 서비스를 신청할 때 제출하면 된다. 대리인이 신청하면 주민등록(호적)등본 및 대리인 신분증이 추가로 필요하다.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생각나눔] ‘군입대 세아이 아빠’ 구제방법 없나

    [생각나눔] ‘군입대 세아이 아빠’ 구제방법 없나

    오는 12일 논산훈련소에 입소하는 신대광(30)씨는 자녀가 셋이다. 어린 아이들을 돌보느라 직장에 나갈 수 없는 아내까지 부양가족 4명을 둔 가장이다. 대학 졸업, 다른 대학 학사편입, 대학원 재수와 입학 등을 거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아이를 ‘바쁘게’ 낳은 것은 여섯살 연상인 아내를 위해서다. 늦어지면 출산하기에 나이가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다. 자신 말고는 네 식구를 마땅히 부양해줄 사람이 없는 신씨는 각계에 선처를 호소했다. 병무청, 국가인권위, 청와대 신문고, 국민고충처리위 등등. 그러나 각 민원은 결국 병무청 담당자에게 패스됐고,‘병역법상 구제해줄 수 없다.’란 대답만 돌아왔다. 신씨는 훈련 뒤 가족 거주지 인근 부대에라도 배치해줄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군 복무 중에라도 조금이나마 가족을 돌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방부는 ‘사정을 봐줄 수 없다.’란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민·관 합동으로 구성된 저출산·고령화대책 연석회의(공동의장 한명숙·강신호 등)는 다자녀 가장에 대한 병역 관련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나서 주목된다. 연석회의는 우리 군이 자녀를 둔 기혼 입대 예정자들과 사병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에 귀 기울이고 있다. 현행 병역법상 장남인 신씨의 경우 미혼인 3명의 동생·누나들 때문에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군 입대자를 빼고 남은 가족 중 부양의무자 대비 피부양자의 비율이 1대3을 초과해야만 면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미혼으로 법적 분가가 안 된 형제 자매들은 신씨 자녀들의 법적 부양 의무자가 되어 있다. 연석회의 지원단 관계자는 6일 “군복무기간 단축 혜택 부여, 상근예비역 또는 공익근무요원 복무, 가족 주거지 인근부대 배치, 자녀 출산·양육시 휴가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방안을 마련중”이라고 밝혔다. 연석회의 지원단은 최근 국방부에 신씨의 사례를 들어 다자녀를 가진 입대 예정자의 병역 혜택 방안을 공식 문의했다. 하지만 병역 혜택은 물론 주거지 인근 부대 배치 인센티브도 주기 어렵다는 입장만 전달받았다. 극소수의 병역 혜택을 위한 병역법 개정은 어렵다는 이유다. 그러면서도 국방 인력자원 부족현상이 해소되는 2011년 이후엔 논의가 가능하다고 언급,‘미래의 과제’로 넘기려는 태도다. 특히 거주지 인근 배치 거부에 대해 연석회의 관계자는 “명백한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8월 육군은 ‘군인·군무원의 인사관리 제도’를 개선, 하사관 이상의 군인 및 군무원이 셋째 자녀를 출산했을 경우 본인이 희망하는 지역으로 보직을 옮길 수 있는 인센티브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국방부는 현재 우리 군내 기혼 사병이 몇 명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기혼사병 수가 얼마나 되는지, 이들이 몇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지에 대해 조사한 적이 없으며, 자료도 없다.”고 밝혔다. 연석회의 지원단 관계자는 “기혼자라고 무조건 병역혜택을 주자는 게 아니라, 가족간 부양과 생계 문제 등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군 인력자원 관리에 지장이 없는 한 복무중인 기혼사병에 대해서도 다양한 배려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순박한 네팔 아이들 꿈 키워주고 싶어요”

    “순박한 네팔 아이들 꿈 키워주고 싶어요”

    “쓸모없는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네팔에서 1년 동안 저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때묻지 않은 사람들과 보낸 1년이 ‘비행 청소년(?)’의 삶을 바꿔놓았다. 지난달 31일 국제청소년연합(IYF) 해외봉사단 일원으로 네팔에서 1년 동안 머물다 귀국한 최상훈(25)씨가 주인공이다. 그는 대학 1학년 때까지 울산 모 폭력조직 조직원으로 활동했다. 경찰에 적발된 적은 없지만 “싸움이 벌어졌다는 전화만 오면 뛰어나갈 정도였어요.”라고 할 만큼 밤거리에서 시간을 보냈다.2001년말 군입대를 하면서 가까스로 손을 씻었지만 여전히 인생의 나침반은 흔들렸다. 대학에서 경찰행정학을 전공했지만 공부와는 담을 쌓았고, 졸업 후 파트타임으로 소일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국제청소년연합 해외봉사단의 팸플릿을 본 것이 인생을 바꿔놓았다. 막연한 호기심과 기대로 설명회장을 찾았던 그는 꽉 막힌 인생의 탈출구로 네팔행을 선택했다. 다른 두 명의 봉사단원과 함께 네팔의 소도시 틸슐리를 처음 찾았을 땐 어떻게 1년을 머물지 막막했다. 전기가 안 들어올 뿐더러 군불을 때 난방을 하는 등 60∼70년대 한국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곳이었다. “나마스테(안녕하세요).”란 한마디밖에 할 줄 모르던 그였지만 순박한 네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시나브로 말이 늘었고, 웃음을 되찾았다. 폭력조직 생활을 시작한 이후 단 한 번도 마음 편한 적이 없던 그가 비로소 안식을 발견한 셈. 틸슐리에서 지역 학생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네팔 국가대표 태권도팀 훈련을 돕게 됐다. 대표팀을 맡고 있던 한국인 권혁중 감독의 통역을 겸해 품세나 겨루기 자세를 취하는 도우미로 나선 것. 네팔은 지난해 12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태권도 여자 63㎏급에서 마니타 사이 선수가 동메달을 따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이달 말 예정된 귀국발표회 준비에 한창이다. 지난해 봉사단으로 활동했던 사람들과 함께 1년간 느꼈던 그 나라의 문화를 알리고, 그동안의 경험으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를 댄스 공연 등으로 풀어내는 형식이다. 그는 “(경찰행정학과를 나오긴 했지만)경찰이 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데 난 공부랑 담을 쌓고 살았기 때문에 못 할 것 같다.”면서 “기회가 닿는다면 네팔에 다시 한 번 가서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면서 그들의 꿈을 키워주고 싶다.”고 소박한 희망을 밝혔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8월 ‘사상계’ 복간하는 장준하 선생 아들 호권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8월 ‘사상계’ 복간하는 장준하 선생 아들 호권씨

    ● 1953년 4월1일 서울 종로구 청진동 백조다방 4층.‘사상계’ 창간호 3000부 발행. ● 1970년 5월 ‘사상계’ 폐간조치.232쪽에 게재된 김지하 시인의 ‘오적’을 이유로.‘∼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예가 바로 재벌(1), 국회의원(국獪의猿·2), 고급공무원(고급功無猿·3), 장성(長猩·4), 장차관(暲차관·5)이라 이름하는/간뗑이 부어 남산하고 목질기기가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의 소굴이렷다∼’. ● 1975년 8월17일 경기도 포천군 소재 약사봉에서 장준하 선생 의문의 추락사. ● 2007년 1월25일 한국관광공사 대강당.‘사상계’ 복간 발기인대회 개최. 복간추진위원장 박정훈 전 국회의원을 비롯, 김근태 열린우리당의장, 함세웅 민주화추진협의회 이사장, 김상현 민주협 공동의장,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장영달·권영길 의원 등 300여 명 참석. 지난 2005년 8월 ‘교수신문’은 광복 60주년을 맞아 분야별 학자 100명을 대상으로 ‘광복 이후 60년간 학문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 무엇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사상계’를 1순위로 꼽았고 이어 ‘자본론’과 ‘전환시대의 논리’의 순으로 나타났다. 그랬다. 독립 운동가이며 민주투사인 장준하 선생의 주도로 창간된 ‘사상계’는 민족과 분단문제, 민주주의, 경제발전 등 당시 지식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졌던 문제를 가장 선도적으로 다뤘다.1960∼70년대 춥고 배고팠던 시절에 따뜻한 인문(人文)의 샘으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함석헌 선생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와 장준하의 ‘백지(白紙)권두언’ 등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가슴 뭉클 기억에 남는다고 당시 지식인들은 입을 모은다. 하기야 1961년 4·19때에는 발행부수가 8만부에 달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당시의 관심도가 어느정도인지 충분히 짐작된다. ●부친만큼이나 많은 恨 가슴에 안고 살아 이제 그 ‘사상계’가 오는 8월호로 37년 만에 복간된다. 발행인은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58)씨가 맡는다. 그의 현 직함은 ㈜장준하 思想界 대표.2005년 11월 온라인을 통한 ‘e-사상계’(www.esasang ge.com)를 창간, 운영해오고 있다. 그는 부친이 사망하자 테러를 당하는 등 국내에 머물 수 없어 오랫동안 해외 도피생활을 해와 부친만큼이나 많은 한을 가슴에 안고 살아왔다. 복간호 준비에 여념이 없는 장 대표를 지난 주 서울 종로구 내수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때마침 박정훈 전 의원과 함께 복간호 견본 표지를 살피고 있었다.“7월말쯤 발간하고 기념식은 장준하 선생의 기일(8월17일)에 맞춰 실시할 예정이다.”고 하면서 발행인은 자신이 맡되 CEO역할만 할 뿐 편집권은 철저히 보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편집주간은 언론인 출신이자 청와대 통치사료비서관을 지낸 윤무한 강원대교수가 정해졌고 편집위원 6명이 곧 짜여진다고 밝혔다. 아울러 광화문 주변에 사무실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복간준비 과정과 관련,“주변에서 오늘날의 어려운 잡지현실을 예로 들면서 ‘돈벌이가 되겠느냐.’는 걱정을 많이 했다.”면서 “하지만 장준하 선생이 손수레를 끌면서 사상계를 운영했던 옛날과 비교하면 지금은 훨씬 나은 편”이라고 했다. 아울러 사상계 복간을 갈망하는 사람들도 이 같은 경제적 어려움을 공감하면서,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보자는 뜻도 있어 복간준비에 많은 힘을 얻고 있다. 편집 방향에 대해서는 “중도가 아닌 중용이다.”고 전제한 뒤,“이념이나 방향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면 나중에는 그쪽으로 중독되고 만다.”면서 “장준하 선생의 철학처럼 진취적인 보수와 따뜻한 진보의 성향을 추구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따라서 좌·우이념과 통일문제, 기득과 비기득층 등을 아우르는 국민적 통합차원의 논조를 지향하면서 진정한 언론의 사명을 다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예를 들어 이 나라의 진정한 지도자는 어떠해야 하며 또 국민들 스스로가 차기 지도자감에 대해 잘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박근혜 전대표 대선 출마해선 안돼” 대통령 후보로 꼽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만날 수 있느냐고 불쑥 물었다.“광복군 출신의 아버지는 박정희 독재에 항거하다 사망했다. 나 역시 오랜 외국 도피생활로 집안꼴이 뭐가 됐겠느냐. 박정희 집안과는 한이 맺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박근혜 전 대표는 어쨌거나 군사독재의 상징이기 때문에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서는 안 된다. 만약 출마하려면 정수장학회, 육영재단, 부산일보 등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시킴과 동시에 정말로 바를 ‘정(正)자’의 정치를 하겠다는 진심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따라서 박 전 대표와 만나는 문제는 그때가서야 다시 생각해 볼 일이라고 했다. 화제를 바꿔 한많은 세월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장준하 선생이 사망하던 이듬해 1976년 4월19일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낮 백범사상연구소에 들렀다가 저녁에 운동권 학생들과 만나 술을 몇잔했다. 밤이 되어 이들과 헤어져 서울 상봉동 집골목으로 막 들어서는데 갑자기 청년 3명이 다가와 다짜고짜 얼굴을 가격하더라는 것. 잃었던 정신을 차려보니 경희의료원 응급실. 턱뼈가 여덟조각으로 깨졌고 8시간에 걸치는 대수술을 받았다. 이후 3개월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고된 병상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국 주재 주미대사를 역임했던 필립 하비브가 미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방한하는 길에 장준하 선생의 아들을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이를 미리 안 당국요원들의 저지로 무산됐다. 대신 하비브의 편지를 받게 된다.“조용히 살고 있으면 당신의 아버지 장준하 선생이 바라는 세상이 곧 올 것이다.”는 내용이었다. 하비브의 귀띔대로 퇴원하자마자 그는 평소 장준하 선생을 흠모했던 법조계 인사의 도움으로 여권을 발급받아 도망치듯이 말레이시아로 출국했다. 손에 쥔 것은 미화 20달러가 전부였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장준하 선생한테 신세졌다는 한 건설사 사장의 도움으로 건설현장에서 일을 했다. 그러던 중 10·26으로 박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귀국했다. 하지만 몇달 뒤 집 주변에서 낯선 이들에게 눈을 가린 채 납치돼 감금당했다. 일주일만에 극적으로 탈출한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가족을 남겨두고 혼자 싱가포르로 떠났다. 여기에서는 화교 사업가와 인연을 맺으면서 금융컨설팅 등을 배웠으며 외국 투자회사들을 상대로 한국 외자유치 세일즈 등에 나섰다. ●“현실도피한 것처럼 얘기할 때 마음 아파” “외국생활을 하면서 육체적인 고생이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지만 가족을 두고온 처지와 또 아는 분들이 현실 도피한 것처럼 얘기를 자주할 때에는 마음이 정말 아팠습니다.” 아픈 추억은 군 복무 시절에도 있다. 해군 사병으로 있던 그가 1968년 부대 동료 몇명과 함께 베트남 전에 참전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 파병부대원들과는 달리 자신에게만 주월 사령부에서 보직을 받으라는 것. 사령부로 갔더니 다시 한국에서 타고 온 수송선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하지만 수송선은 사이공에서 나트랑으로 떠나 있었다. 다시 나트랑으로 갔으나 수송선은 없었다. 이후 나트랑 부근의 부대를 전전하다가 최종적으로 십자성부대에서 귀국하게 된다. 이 같은 경우는 매우 드믄 일로 나중에 당시 동료들과 만났을 때 “그건 당국에서 장준하 선생이 베트남 파병을 반대해 아들인 장대표가 실종되도록 방치했을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이처럼 장준하 선생의 아들로 파란만장과 가슴에 커다란 멍을 안고 살아온 장 대표.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의문사 진상규명에 대한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비로소 외국생활을 접고 2003년 12월 다시 한국땅을 밟게 된다. 이후 그는 여러 인사들을 만나 사상계 복간의 뜻을 모았고 이에 앞서 ‘e-사상계’를 먼저 창간하기에 이르렀다. 진상규명과 관련,“어떤 실적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해야 가능한 일”이라면서 처음 기대보다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슬하의 딸 둘은 미국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마쳤고 큰딸은 현지 변호사로 있다. 장 대표는 서울 일원동 전셋집에서 노모 김희숙(81)여사와 함께 산다. 김 여사는 천주교 ‘열령회’ 등을 통해 봉사활동을 하며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9년 서울 출생 ▲67년 이대부고 졸업 ▲68년 해군입대, 베트남 파병 ▲76년 테러 뒤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생활 ▲89년∼2000년 싱가포르서 사업 ▲2003년 엠렛테크놀로지 고문 ▲04년 ㈜장준하 사상계 법인설립 ▲06년 3월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졸업 ▲07년 8월 사상계 복간호 발간예정
  • 임요환 공군입대 후 첫 출격

    스타크래프트의 `황제´’로 불리는 프로게이머 임요환이 지난해 10월 공군입대 후 공식 경기에 첫 출전한다.25일 CJ미디어에 따르면 임요환은 27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 ‘e스포츠PC 제4회 슈퍼파이트’에 공군팀 소속으로 출전할 예정이다. 임요환은 공군팀 멤버로 출전,11개 프로게임단 선수들과 경기를 펼친다.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늘어나는 귀화자] “애국가 밤새워 외웠는데 한국인 되기 어렵네요”

    [늘어나는 귀화자] “애국가 밤새워 외웠는데 한국인 되기 어렵네요”

    시험 3분전.“첨성대를 만든 사람이 누구죠?”파키스탄인 돌루 시이드(37)씨의 질문에 기자는 “신라 시대 석공이 아닐까요.”라며 궁색한 대답을 했다.“이것봐. 한국 사람들도 잘 모른다니까….”타박하면서도 시이드씨의 손은 예상 문제지를 뒤적였다. ●“3번밖에 기회 없는데…”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정부과천청사 안내동 지하에는 귀화시험이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귀화신청을 냈다. 한번에 100명을 웃도는 귀화신청자들이 필기시험을 치른 뒤 합격하면 면접시험을 본다. 지난 10일의 시험장에도 80여명이 모여 시험을 봤다. 귀화신청자 대부분은 중국동포 2∼3세대. 부모를 따라 한국 국적을 얻기 위해 시험을 본 것이다. 오전 10시30분. 시험장에 들어가는 자녀들을 배웅하기 위해 부모들은 문앞까지 몰렸다. 자녀들이 시험장 안에서 주관식·객관식 문제(20문항)의 답을 찾는 20분이 부모들에게는 20년처럼 느껴진다. 다들 처음 본 사이지만, 금방 서로를 격려한다. “애국가를 밤새워 외웠는데 잘 쓸 수 있겠죠.”“우리 애는 한국말이 서툴러요. 그래도 세종대왕이랑 이순신은 외웠는데….”“3번밖에 기회가 없으니 이번에 떨어지면 큰일이에요.” 시험장 안에 있는 신청자들은 모두 긴장한다. 우리말로 된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 옆 응시자가 손을 번쩍 들고 감독관에게 질문하는 동안에도 신청자들은 시험지에만 집중했다. 책상 오른쪽 위에는 외국인등록증이 놓여 있다. 시험에 합격하면 외국인등록증은 없어지고 주민등록증 수여와 함께 부모의 호적에 오른다. ●“군대 가야 한다면 가겠습니다.” 신청자들의 편의를 위해 30분 동안의 즉석 채점이 끝나고 필기시험 합격자가 발표된다. 이날 합격률은 52%로 60% 정도 되는 평소 합격률보다 낮았다. 탈락자들은 한국말과 중국말을 섞어가며 복받치는 감정을 토해냈다. 부모들이 항의하지만,“애국가는 다 맞았다는데요.”라는 말이 전부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의 면접시험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치른다. 한국에서 ‘가족’을 이룰 수 있는지 종합 검토를 하는 절차다. 중국에서 1년 전쯤 입국해 국내 인터넷 바이크 동호회에도 가입한 안용철(23)씨는 면접관 앞으로 가자 시킨 사람도 없는데 쓰고 있던 모자를 얼른 벗었다. 면접관이 “애국가 문제를 많이 틀렸다.”고 지적하자 얼굴이 붉어진다. 20대 남성 귀화 신청자에게 빠지지 않는 질문이 군입대에 관한 것이다. 면접관은 “국내 법령이 바뀌어 귀화자들도 모두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게 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대부분은 “그렇다면 가겠다.”“의무도 중요하다.”고 대답한다.“지금 대답을 기록해 두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라도 하면 부모들도 “국민이 되면 의무를 다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나선다. 중국군으로 5년 동안 복무했던 최광욱(24)씨는 “중국군 경력도 있고 중국이 지금보다 발전할 가능성도 높은데, 중국 국적을 포기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망설임없이 “네.”라고 했다. 사실 귀화 신청자보다 더 긴장하는 사람들은 부모들이다. 한국에서 미용 학원에 다니고 있는 김려화(23·여)씨는 10년 전에 한국인과 결혼한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왔다. 그동안 태어난 동생도 처음 봤다. 면접관이 “90년대 초반에 들어와 지금까지 이렇게 성실하게 사시니 보기 좋습니다.”라고 말을 건네자 “아이를 데려오는데 10년이나 걸렸네요.”라며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김철명(26)씨도 김려화씨와 같은 이유로 어머니와 10년을 떨어져 지냈다. 면접관이 “어린 마음에 원망스럽지는 않았나요.”라고 조심스럽게 묻자 김씨는 “원망할 처지가 못됩니다.”라며 어머니의 손을 꼭 쥐었다.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을 모두 통과한 신청자들은 보름에서 한달이 지나면 최종 통보를 받는다. 면접에서 불합격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다시 한번 면접을 볼 수 있다. 이날 돌루씨 등 시험을 본 파키스탄인 6명은 아쉽게도 모두 필기시험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들은 한국에서 5년 이상 산 외국인들이다. 돌루씨가 마지막까지 궁금해 한 예상문제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 시절에 만들어졌다.”면서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출제되지 않는다.”고 귀띔하며 아쉬워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그냥 노는’ 남자 100만명 첫 돌파

    15세 이상의 비경제활동인구 중 늙지도 않았는데 일할 생각이 없고 취업준비도 하지 않는 진짜 ‘남자 백수’가 사상 처음 100만명을 돌파했다. 일할 능력과 생각은 있으나 일자리를 얻지 못해 구직을 단념한 남성도 6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대졸 이상 고학력자와 20대의 증가세가 가장 컸다. 1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비경제활동인구는 평균 1478만 4000명으로 2005년보다 22만 7000명(1.6%) 늘었다. 비경제활동인구는 취업도 실업도 아닌 상태이다. 비경제활동인구의 유형으로는 ▲가사 526만 5000명 ▲통학 400만 5000명 ▲육아 150만 8000명 ▲연로 150만 2000명 ▲쉬었음 127만 7000명 등이다. 이 가운데 ‘쉬었음’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일자리를 찾지 않는 상태로 군입대나 진학·취업 등의 준비도 하지 않는 진짜 ‘백수’를 뜻한다. 남자 백수는 103만 3000명으로 2005년보다 4만 8000명이 증가했지만 여자 백수는 24만 5000명으로 8000명 감소했다. 비경제활동인구를 학력별로 보면 대졸 이상이 226만 6000명으로 8만 5000명 증가했다.2000년과 비교하면 42.3%인 67만 1500명이 늘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유급지원병 2만명 운영

    정부에서 군 복무기간 단축 방안을 내년 상반기 중으로 공개하기로 한 가운데 변형된 모병제나 다름없는 유급 지원병제가 2008년부터 시범 운영될 것으로 파악됐다. 군 당국은 이 제도를 2011년부터 본격 도입,2020년까지 2만여명으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군 복무기간 감축은 대선용 선심정책이라며 정치적 의혹을 제기하는 등 정치공방 조짐도 일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24일 “유급지원병제를 2008년 일부 부대를 대상으로 시범 운영한 뒤, 문제점을 보완해 2011년부터 점진적으로 확대해 2020년까지 2만여명으로 운영할 계획”이라면서 “지난 15일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이런 계획이 보고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추가 복무기간이나 급여수준 등에 대해서는 정해진 게 아무 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유급 지원병제는 전차·헬기 등의 운용 및 정밀장비 등의 정비·수리분야 기술·숙련인력을 확보할 목적으로 이런 분야에서 의무복무를 마친 병사들 가운데 지원자를 대상으로 일정한 급여를 조건으로 일정기간 추가복무하도록 하는 국방개혁법안의 하나다. 사실상의 모병제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국방부는 이를 위해 내년 중으로 급여 및 복지, 계급 등 유급 지원병 제도 시행과 관련한 세부 내용을 담은 입법안을 마련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군 안팎에서는 이와 관련, 유급 지원병들의 추가 복무기간은 1년 정도이며 급여는 대졸 초임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돌고 있다. 한편 야당 등 정치권 일각에서는 군 복무기간 단축과 유급지원병제에 대해 군입대 적령기의 청년층의 표를 겨냥한 여권의 대선 공약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면서도 젊은 층의 표심(票心)을 무시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의식한 듯 감축 반대 등 직접적 대응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한나라당 박영규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복무기간 단축은 전형적인 대선용 선심정책”이라면서 “청와대가 밀실에서 이 문제를 계속 추진하면 ‘제2의 병풍’을 획책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며 국회내 관련 특위 구성을 촉구했다. 열린우리당 노식래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국가안보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면서도 “군 복무로 인한 청년층의 고충을 줄이려는 군복무 단축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군 감축 방안에 대해 대권주자들도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의장측은 당의 공식논평 외에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고, 정동영 전 의장측도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고건 전 총리측은 입장을 정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나라당내 ‘빅 3’인 박근혜 전 대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 캠프에서는 즉각적 반응을 자제한 채 여론의 추이를 보는 형국이다. 박현갑 이세영기자 eagleduo@seoul.co.kr
  • [2006 도하 아시안게임] “군입대 대신 베이징올림픽 간다”

    남자유도 중량급 간판 김성범(KRA)은 올해 27살이다. 이번 아시안게임 출전이 현역 시절 마지막 도전일 수 있었다. 그동안 올림픽 메달이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지 못했던 그는 병역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아직 군복무를 하지 않았고, 상무에도 지원하지 않은 탓에 열사의 땅에서 금을 캐지 못하면 입대를 해야 할 처지.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다시 도전하려면 ‘금빛 메치기’가 반드시 필요했다. 6일 치러진 아시안게임 유도 100㎏이상급(무제한급) 1회전에서 그는 자칫 뼈에 사무치는 한을 남길 뻔했다. 김성범은 몽골 선수를 상대로 띠잡아돌리기를 구사, 거의 동시에 매트에 쓰러졌으나 심판은 외려 기술을 건 김성범에게 한판패를 선언했다. 전기영 남자대표팀 코치가 강력하게 항의했고 김성범의 한판승으로 번복됐다. 4강전에서 경기 종료 20초 전 유효를 따내 다시 고비를 넘긴 그는 자신보다 약 40㎏이나 체중이 더 나가는 미란 파샨디(이란)와 결승서 맞닥뜨렸다. 파샨디는 규정에 어긋나는 무릎 보호대를 차고 나와 실격이었다. 하지만 보호대를 떼고 경기가 속행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또 김성범은 종료 10초 전 지도를 받았으나 심판진의 판정 번복으로 연장에 돌입했고, 결국 발뒤축걸기로 유효를 따내 극적으로 정상에 올랐다. 김성범은 “그동안 할머니의 기도 만큼 성적을 내지 못해 죄송했는데 오늘 금메달을 따 기쁘다.”면서 “군대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에 더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하겠다.”고 울먹였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한게임배 마스터즈 서바이벌-2006 하이라이트(제9라운드)] 선수활용인 줄 알았는데…

    [한게임배 마스터즈 서바이벌-2006 하이라이트(제9라운드)] 선수활용인 줄 알았는데…

    대한민국의 젊은 남자들은 20세가 되면 군입대와 관련해서 고민하기 마련이다. 프로기사들도 마찬가지이다. 20대 초반은 프로기사로서 가장 기량이 무르익어서 성적이 좋을 때이다. 당연히 아쉬움도 크겠지만, 군에 다녀온 뒤에 정신 무장이 돼서 성적이 더 좋아진 경우도 제법 있다. 모두 자신이 하기 나름이다. 박승현 5단은 11월7일 입대했는데 이 바둑은 그 전날인 11월6일에 두어졌다. 낮에는 원익배 2회전 대국을 둬서 승리했고, 이 바둑은 저녁 5시에 두었다. 어차피 입대하면 잔여 대국은 기권처리될 것을 무엇 때문에 열심히 두느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승부사 본연의 자세라고 하겠다. 장면도(103∼107) 실리는 흑이 많지만 중앙 흑돌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의 수습이 승부이다. 원성진 7단이 그냥 수습하려 하지 않고 흑103으로 끊어서 하변 백돌을 공격하면서 자연스럽게 수습하려고 한 장면이다. 실전진행(108∼113) 백108로 흑 한점을 따낸 것은 지나는 길의 선수 활용이라고 생각한 것이지만 큰 실수이다. 흑113까지 중앙을 두텁게 지키며 살아버리자 흑의 우세가 확정됐다. (참고도) 백1로 갈라서 중앙 흑돌을 계속 공격하는 것이 정수, 이랬으면 서로 어려웠다. 233수 끝, 흑 불계승 유승엽 withbdk@naver.com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