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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자체 곳간은 텅텅 직원 검진비는 펑펑

    지자체 곳간은 텅텅 직원 검진비는 펑펑

    지방자치단체들이 직원 및 지방의원들의 1인당 건강검진비로 수십만원씩을 지원해 선심성 행정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재정자립도 전국 최하위권인 자치단체들이 전국 최고 수준의 직원 검진비를 지원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북 경주시는 올해 청원경찰 등 직원과 시의원 등 1460여명의 검진비로 예산 4억 50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24일 밝혔다. 지난 2010년 3억 4980만원을 지원한 데 이어 두 번째다. 격년제로 직원 1인당 23만~30만원 지원한다. ●성주, 해마다 35만원씩 꼬박꼬박 포항시도 올해 직원 1000명의 검진비로 예산 3억원을 확보했다. 여기에는 시의원 35명도 포함됐다. 지난해엔 직원 등 936명의 검진비 2억 7400만원을 시비로 썼다. 영주시는 40세 이상의 직원에 한해 검진비를 준다. 2010년 처음으로 직원 660명에게 검진비 1억 3200만원을 지원했다. 올해는 674명에게 1억 3480만원을 줄 예정이다. 시의원 14명은 올해 처음으로 1인당 20만원씩 받게 된다. 올해 재정자립도 10.5%로 전국 최하위권인 봉화군은 도내 23개 시·군 가운데 직원 1인당 검진비가 50만원으로 가장 많다. 전국 최상위권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45%로 도내에서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 구미시가 직원 1인당 검진비가 30만원씩인 것을 감안하면 봉화군의 지원액은 파격적이다. 봉화군은 올해 예산 1억 5000만원을 편성해 놨다. 울진군도 올해 직원 1인당 검진비 40만원씩, 모두 398명(군의원 8명 포함)에게 1억 6000만원 정도를 지원한다. 성주군은 2008년부터 도내에서 유일하게 매년 직원 580여명에게 검진비 35만원씩을 지원하고 있다. 4년간 8억 1200만원을 지원했다. 성주군의 올해 재정자립도는 16%다. 의성·청송·고령·청도·칠곡군 등도 격년에 30만~35만원씩을 지원해 주고 있다. 이 같은 지원액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개별 가입자에게 지원하는 검진비(암 제외) 4만여원의 10배 안팎에 이른다. 이런 가운데 일부 시·군은 내년에 1인당 10만~20만원 인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문경시는 도내 시·군 가운데 유일하게 직원들의 검진비를 지원하지 않아 눈길을 끌고 있다. 김의섭(한국지방재정학회장) 한남대 교수는 “주민 삶의 질 향상에 쓸 예산이 지자체 공무원과 지방의원들의 검진비로 마구 지출되는 것은 개선돼야 할 문제”라면서 “정부가 검진비 지원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경, 경북내 유일하게 지원금 없어 자치단체 관계자들은 “직원들에 대한 검진비 지원은 전국 자치단체가 마찬가지며, 대상 및 규모도 비슷하다.”면서 “최근 직원 ‘돌연사’가 잇따르는 등 건강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자 자치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직원 보호책을 마련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해명했다. 한편 지난해 기준으로 경북도 시·군에서 지방세 수입으로 소속 공무원의 인건비를 해결하지 못하는 곳은 울릉, 울진, 봉화, 예천, 성주, 고령, 청도, 영덕, 영양, 청송, 의성, 군위 등 12곳이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그의 숨결·호흡 그대로 ‘현대사 질곡’ 투영하다

    그의 숨결·호흡 그대로 ‘현대사 질곡’ 투영하다

    20대에 연좌제에 좌초돼 한국 사회를 쓸쓸하게 또는 필사적으로 떠돌아다닌 그는 소영웅주의자일까, 아웃사이더일까. 한국의 대표적인 번역자, 저자, 소설가로 살다간 이윤기(1947~2010)의 이야기다. 그는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2000년)의 저자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1986년)과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1981년)의 번역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삶은 유명세만큼이나 화려(?)하다. 그는 별스러운 사람이었다. 경북 군위 출신인 그는 대구 칠성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북중에 이어 경북고에 진학했으나 들어간 지 3개월 만에 그만뒀다. 이후 검정고시로 대학 진학 자격을 얻어 1967년 신학대학에 진학하지만 역시 도중에 그만뒀다. 그 후 유학 자격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기회를 얻었지만, 재일교포였던 그의 큰아버지가 조총련계로 재일교포 북송단 모집책이었던 탓에 연좌제에 걸려 포기해야만 했다. 연간 1만 5000장을 번역하는 고달픈 번역 노동자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던 이유이자, ‘온갖 똥폼을 다 잡는 스타일리스트’였지만 죽는 날까지 학력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이유였다. 2010년 8월 27일 심장마비로 사망한 이윤기 사후 2주기를 맞아 그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던 출판사 열린책들이 그의 첫 소설 ‘하늘의 문’을 재출간했다. 원래 3권으로 나왔던 책인데, 읽다가 졸리면 목침으로도 쓸 만한 1085쪽 두께의 한 권으로 내놨다. 1994년 펴낸 이 책은 권당 5500원으로 3권이면 액면가가 1만 6500원이지만, 중고책 시장에서 7만 5000원의 고가에 거래된다. 이번 신간은 2만 8000원이니, 더이상 중고책을 구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겠다. 이윤기의 첫 소설을 재출간하려고 애쓴 책 디자이너이자 이윤기의 경북고 3년 선배인 정병규(66)는 지난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소설처럼 윤색됐으나 그의 삶을 아는 나로서는 이 책이 소설로 읽히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삶을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한국 현대사의 묘한 얼룩이 삶에 스며든 근대인의 삶으로 이 소설이 읽힐 것이므로, 이른바 ‘한국 현대사 교양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재출간의 이유를 말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과 철저한 양반의식, 연좌제로 좌절된 유학, 베트남 파병 군인의 삶과 공사판을 전전하며 노동자로 살아간 이윤기의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이어 정병규는 “이 소설에는 사전에 안 나오는 말들이 많은데, 노동자들의 현장의 목소리, 지방의 사투리 등이 고스란히 들어 있어 한국 밑바닥의 진솔한 삶을 직접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친구이자 문학평론가였던 황현산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도 이날 “이윤기가 서사가 뛰어난 작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문장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고, 이 소설은 ‘자기 자신을 번역했다’고 할 만한 책”이라고 말했다. 이윤기는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단편 ‘하얀 헬리콥터’로 등단했지만 번역일에 휘둘리다가 이 책을 내놓고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문단 데뷔 20년 만의 ‘중고 신인작가’였던 셈이다. 정병규는 “자신의 속살을 다 드러낸 뒤에야 스스로 본격 소설가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의미들이 부여된 까닭에 재출간된 ‘하늘의 문’은 원본을 그대로 살렸다. 강무성 열린책들 편집주간은 “출판 당시의 오자만 바로잡았지,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새로 교정하거나 국문법상으로 쉼표가 올 수 없는 부분에 놓여 있는 쉼표라고 해서 없애거나 하지 않고, 이윤기의 숨결과 호흡 그대로 살려 놓았다.”고 말했다. 180㎝ 가까운 키에 터무니없이 큰 발, 그리고 큰 체구를 지닌 이윤기는 건강이 나빠진 말년에도 하루에 조니워커 레드를 2병씩 마실 정도로 술도 셌다. 심장마비를 일으키기 전에 몸이 비쩍 말라갔지만, 병원에 다니며 병명을 찾고 몸에 주삿바늘을 꼽는 것은 인위적인 삶이라며 거부한 이가 이윤기다. 정병규는 “파커 만년필의 촉이 닳아 날카로운 칼처럼 돼 수북이 꽂혀 있고,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일 것 같아 손가락 부분을 잘라낸 골프장갑을 낀 채 번역하는 그의 모습이 징그러우면서도 그립다.”면서 “문학적 감수성을 가지고 삶을 기록한 이윤기의 모습과 느낌을 ‘하늘의 문’ 표지를 통해 고스란히 살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번 책표지를 그가 디자인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지방의회 69곳 내년 의정비 인상 추진

    지방의회 69곳 내년 의정비 인상 추진

    전국 244곳 광역·기초의회 가운데 69곳이 내년도 의정비 인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가 평균 이하임에도 인상을 추진하는 의회가 무려 48곳이다. ●“2~4년 동결… 인상 불가피” 18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광역단체 의회 17곳 중 서울, 경기, 대전 등 9곳과 기초단체 의회 227곳 중 경기 안산시, 경남 창원시 등 60곳 등 69곳 지방의회가 내년도 의정비 인상을 추진하며, 170곳 지방의회는 동결할 예정이다. 부산시의회 등 5곳 지방의회는 아직 인상 여부를 정하지 못했다. 69곳의 지방의회가 의정비 인상 방침을 정함에 따라 조만간 지방의회별로 의정비 심의위원회를 꾸린 뒤 인상률을 결정하고, 주민여론조사를 거쳐 지방의회 조례를 개정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전북 전주시의 경우 이미 심의위원회를 통해 6.3% 인상안을 잠정 결정한 상태며 대전 대덕구 역시 7.48% 인상안을 결정했다. 2010년 당선된 6기 지방의회는 거의 대부분 2~4년째 의정비가 동결된 상태이기에 의정비 인상의 불가피성을 주장한다. 최근 몇 년간의 물가 인상률은 물론, 공무원 보수 인상률도 따라가지 못했으니 실질적 의정비 하락이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년 연속 의정비 인상을 추진하는 광주광역시의 경우, 2년 연속 동결하다가 지난해 겨우 2.1% 인상했다. 그럼에도 4960만원으로 광역의회 평균 의정비 5346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인상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는 이유다. 그러나 의정비가 전국에서 하위 3위인 강원도 화천군(2820만원), 전남 진도군(2829만원), 전남 곡성군(2903만원)이 지난 3년 동안 동결했고, 내년 의정비 역시 동결했음을 감안하면 의정비 인상을 추진하는 의회는 지역 주민들의 따가운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2년 연속 의정비 인상을 추진하는 곳도 광주와 제주 광역의회를 비롯해 대구 달서구, 광주 북구, 대전 동구, 강원 원주시·양구군, 경남 창원시 등 8곳에 달한다. 여기에 지자체별 재정자립도 현황까지 따지면 의정비 인상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69곳 지방의회 중 해당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평균 이하인 곳도 인천 동구·부평구 등 48곳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예컨대 광주 북구의 재정자립도는 전국 자치구 평균 36%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7.1%다. 반면 구의원 의정비는 3540만원으로 자치구 평균 의정비 3135만원에 비해 높다. 광주 북구의회는 지난해 4.98%를 인상한 데 이어 올해에도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지방세와 세외수입 등 자체 수입만으로 인건비를 해결할 수 없는 지자체의 지방의회도 부산 중구·서구, 대구 남구·서구, 광주 동구, 대전 동구, 강원 횡성군·화천군, 경북 봉화군·청도군·의성군·군위군, 경남 합천군 등 13곳이나 된다. 이렇다 보니 지자체의 세입, 세출을 엄정하게 감시해야 할 지방의회가 나서서 도덕적 해이를 자행한다는 비판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지역 시민사회에서 감시 필요” 행안부 관계자는 “의정비는 지자체 조례로 정하게 돼있으며 지방의회가 법령을 위반하거나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을 경우에만 정부가 조례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정도”라면서 “행정적 가이드라인 제시도 좋지만 지역 시민사회가 투명한 의정활동을 요구하고 감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와 경기도 의회의 의정비는 각각 6100만원, 6069만원으로 244곳 지방의회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의정비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故 김수환 추기경 사랑 그리며

    故 김수환 추기경 사랑 그리며

    김수환(1922~2009) 추기경의 선종 3주년을 맞아 그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경북 군위군에서 추모 사진전이 2일 개막됐다. 11일까지 군위읍 삼국유사문화교육회관에서 열리는 추모 사진전에는 김 추기경의 생애와 성직자로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사진작가 전대식씨의 작품 40여점이 전시됐다. 김 추기경은 1993년 3월 생가와 군위초등학교를 방문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다. 당시 추기경은 한동안 옛집 툇마루에 앉아 옛날을 회상하며 동행했던 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추기경은 “내가 신앙 생활을 잘못하면 어머니가 저기 집 앞 수양버들 가지를 꺾어 사정없이 종아리를 내리치시곤 했다.”면서 “밭으로 변한 저곳은 아버지께서 옹기를 구우시던 곳”이라고 회상했다. 군위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누수·단수사고 年17만 건… “인색한 물투자 탓”

    물 산업이 무섭게 커지고 있다. 2010년 기준 세계 물시장 규모는 4828억 달러에 달했다. 같은 해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2800여억 달러, 조선은 2500여억 달러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물에 대한 투자는 인색하기만 하다. 24일 관련부처에 따르면 2010년 전국에서 발생한 누수와 단수 사고는 각각 2만 7000건, 14만 7000건이다. 이로 인한 유실 수량은 파악도 힘들다. 단수와 누수가 잦은 이유는 수도 관거가 낡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광역상수도 4957㎞ 중 22%인 1074㎞는 묻은 지 20년이 지났다.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는 “누수사고로 인해 버려지는 물이 얼마인지 파악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투자를 하지 않는 탓에 귀한 자원인 물이 얼마나 새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 수급에 있어서 불평등도 심각하다. 2010년 급수보급률은 94.1%로 수치상으로는 대부분의 국민이 깨끗한 수돗물을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도시 이야기다. 면단위 농어촌 지역의 상수도 보급률은 55.9%에 불과하다. 물값에서도 불평등은 존재한다. 광역상수도가 설치된 경북 군위는 1㎥당 351.7원인 반면 강원 정선은 1356.8원으로 최대 3.9배의 가격차를 보였다. 관계자는 “광역상수도 망을 넓히면 더 많은 국민이 저렴하게 물을 공급받을 수 있지만 망을 깔기 위한 재원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우리나라 상수도가 전형적인 ‘레몬마켓’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정부 정책에 따라 물값 현실화가 억제되면서 질 나쁜 상품이 공급되고 시민이 이를 회피하면서 더 많은 비용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1년간 우리나라 국민이 정수기와 생수 구입을 위해 쓰는 돈만 2조 3400억원에 이른다. 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사적으로 해결하면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환경 보전과 물 관리를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물값을 일정 부분 인상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재 1㎥당 평균 610원이라는 비현실적인 수도요금을 현실화하는 것이 시민들에게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윤원철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싼 가격으로 낮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보다 수도요금을 좀 올리더라도 깨끗한 물을 서비스 받는 것이 더 나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아름다운 간이역 걸으며 추억여행 어때요

    아름다운 간이역 걸으며 추억여행 어때요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을 감상하면서 전통 체험 축제를 즐겨 보세요.’ 경북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 주민들이 15일 ‘추억의 체험 축제’를 연다. 올해로 2회째다. 화본리는 팔공산과 화성산, 화산 등 높은 산 3개에 둘러싸인 오지 중의 오지로 노선버스가 하루에 오전, 오후 1차례씩 들어가는 산골마을이다. ●전국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 ‘화본역’ 하지만 1930년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주변의 수려한 자연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는 화본역이 있다. 화본역은 네티즌이 뽑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선정됐다. 마을에는 100여 가구 120여명의 주민이 산다. 70~80대 고령층이 주류다. 50~60대는 20여명에 불과하다. 이 축제는 지난해 주민들이 마을을 알리기 위해 스스로 기획하고 십시일반 비용을 마련해 시작됐다. 화본역이 네티즌으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뽑힌 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폐선 철로 및 간이역 관광자원화 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것이 계기가 됐다. 이 사업은 국비 등 45억원을 투입해 화본역사와 관사를 복원하고 급수탑을 리모델링하는 것이다. 화본역은 서울 청량리와 부산진구 부전을 잇는 중앙선 역으로 지금도 상·하행선 하루 세 차례씩 총 여섯 번의 열차가 정차한다. 지난해 축제 때는 2000여명이 찾았다. 올해는 마을기금 등 모두 3000여만원을 들여 축제를 마련했다. 이번 축제는 오전 10시부터 1960~70년대 생활상을 재현해 놓은 화본마을 추억의 학교를 비롯해 인근 화본역과 삼국유사 벽화마을 등에서 시작된다. 팽이치기, 딱지치기, 미꾸라지 잡기, 농산물 수확 및 구워 먹기, 봉선화 물들이기, 솟대 및 장승 만들기, 삼국유사 목판 탁본 뜨기 등의 체험 행사가 다채롭다. 또 참가자 노래자랑과 공연, 행운권 추첨 등의 각종 이벤트 행사가 펼쳐지고 눈깔사탕 등 추억의 과자와 농특산물을 시중가보다 20~30% 이상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추억의 학교에 전시된 1960년대 전파상과 만화방, 이발소, ‘포니2 픽업’ 자동차와 타자기, 아이스케키통, 잡지와 포스터 등을 구경하는 것은 덤이다. 이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고 싶은 관광객은 최근 리모델링이 마무리된 화본역사의 관사나 민박을 이용하면 된다. ●마을 알리려 시작… 올해 두 번째 군위군은 추억의 축제를 활용해 15~16일 이틀간 전국 가족 여행 체험단 및 파워 블로거 등 100여명을 대상으로 화본마을을 비롯해 김수환 추기경 생가, 삼국유사의 산실인 인각사, 경주에 있는 석굴암보다 제작 연대가 1세기 정도 앞선 것으로 알려진 군위삼존석굴(국보 제109호) 등을 둘러보는 팸투어를 실시한다. 화본마을운영위원회 윤진기(67) 위원장은 “추억의 체험 축제는 특히 가족과 연인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군위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삼국유사 흔적 찾아 세계 문인들 한자리에

    삼국유사(국보 제306호)가 전세계 문인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다. 경북 군위의 인각사(주지 도권 스님)는 경주 국제펜대회에 참가 중인 전세계 문인 350여명이 13일 인각사를 방문한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인각사 방문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나이지리아의 월레 소잉카(78)와 프랑스의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2)도 포함됐다. 인각사는 일연 스님이 노년에 어머니를 모시고 기거하면서 우리나라 민족문화의 보고로 일컬어지는 삼국유사를 집필한 유서 깊은 천년고찰이다. 이들은 이날 오후 6시부터 1시간 동안 인각사 인근 일연공원 특별무대에서 펼쳐지는 ‘삼국유사 문학의 밤’ 행사에 참가한다. 하일라이트는 도권 스님이 삼국유사 속에서 찾아낸 이야기를 각색해 직접 대본을 쓴 뮤지컬 ‘도화녀와 비형랑’ 공연. 이 작품은 등장 인물 간 천년의 사랑과 기다림을 애틋하게 그렸다. 2007~2008년 이화여대에서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학을 강의했던 르 클레지오는 “한국에서 읽어 본 책 중에서 삼국유사가 가장 재미있다.”고 술회했을 정도로 삼국유사에서 큰 감흥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이들은 삼국시대 패션쇼를 관람한다. 삼국시대 왕·왕비·신하 등의 복장을 한 어린이 20여명이 출연해 우리 전통의 옷맵시를 뽐낸다. 달구벌 북춤 황보영씨와 외줄타기 명인 김대균씨 초청 공연도 곁들여진다. 도권 스님은 “전세계 문인들은 삼국유사의 산실인 인각사 방문에 깊은 관심과 함께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군위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시론] 위안부 문서는 일본 정부가 제시해야/강정숙 이대 이화사학연구소 연구원

    [시론] 위안부 문서는 일본 정부가 제시해야/강정숙 이대 이화사학연구소 연구원

    일본의 전·현직 총리까지 나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며 최악으로 치닫던 한·일 갈등이 다른 현안들에 가려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상황이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하시모토 도루 일본 오사카 시장은 지난달 21일 “위안부가 (일본)군에게 폭행·협박을 당해서 끌려갔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일본 우익이 자주 언급해 왔던 내용이고, 아베 신조 전 총리 발언의 연장선상의 표현이기에 대응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하시모토는 유력한 ‘차기 일본 총리감’으로 언급될 정도로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기에 그의 발언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일본군에게 폭행·협박을 당해서 끌려갔다는 증거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답한다면 ‘그렇다.’이다.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에서 이미 결론 난 부분이다. 한국의 피해자 증언에서 일본군 경관의 관여 등이 확인되며, 인도네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인과 네덜란드인 여성들을 군인이 폭력적으로 끌고 간 사실을 기록한 공문서가 있다. 이 발언의 문제 핵심은 징집과정에서 군의 폭행·협박에 끌려갔다는 증거를 요구함으로써 징집뿐만 아니라 이송, 배치과정에 있었던 강제성 전체를 부정하고 외면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위안부’를 징집하는 데 일본군의 직접 수행을 일반화하지는 않는다. 일상적으로는 일본군에 속하거나 명령 받은 ‘(준)군속’ 혹은 ‘군 종속자’에 해당하는 이들이 거의 전권을 가지고 다양한 강제적 방식으로 수행했다고 본다. 강제란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하게 하는 것이다. 이 강제란 또한 군위안소 내 행위까지 적용되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제를 만든 것 자체가 범죄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일본정부는 미성년자 인신매매 금지를 위한 국제조약에 가입한 상태였다. 미성년 여성들의 국제적 성매매를 방지하기 위한 조약으로, 정부가 나서서 인신매매·유괴·협박 등 성매매를 목적으로 한 국외이송을 금지시킨다는 것을 약속한 것이다. 국내법 형법 제226조에서도 국외로 이송할 목적으로 사람을 매매하거나, 유괴 혹은 매매된 자를 국외 이송하는 것에 대해서도 금지하고 어길 경우 2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쟁지에 있던 일본군이 조선총독부나 ‘조선군’에게 요청하여 다양한 불법적 방식으로 여성들을 동원하였음은 이미 당시 문서자료에서 확인되었다. 또 주목할 것은 1939년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인신매매에 대한 신문보도가 있었으나 조선총독부가 이들을 처벌하였다는 내용은 없다. 반면 전쟁상황이나 ‘위안부’제와 연관되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육해군형법으로 엄하게 처벌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있다. 일제의 주구가 되다시피 하였지만 폐간된 동아일보나 조선일보도 1940년 이후에는 없었다. 이러한 엄혹한 사회 분위기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이었던 일본군의 필요라면 심지어 범죄 행위에 대한 처벌도 중지시킬 수 있었다. 그 강력한 일본군의 요구 중 하나가 바로 일본군 ‘위안부’ 동원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일상적인 동원방식은 주범인 일본군의 명령과 요구에 의해 종범인 대리인이 강제적 방식으로 일본군 ‘위안부’를 동원하는 것이었다. 피해자 증언이 자료가 되지 못한다면 문서자료는 일본 측이 제시해야 한다. 패전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체계적으로 자료를 소각정리하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중요한 자료들은 복수로 만들어 일본으로 보내기도 했으므로 일본에 있을 가능성도 있다. 우리에게 문서자료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일본의 법무성, 경찰청, 출입국 관련 자료, 군사우편국 등의 ‘위안부’와 관련된 자료를 조사 공개하는 것이 순서이다. 앞으로 중요한 위치로 나아갈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이러한 유사한 발언을 반복적으로 하지 말고 눈앞의 이익을 뛰어넘어 이젠 동아시아의 인권 수준을 높이는 생산적인 논의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 [부고]

    ●유재일(서울 종로구 공보팀)씨 장모상 3일 순천향병원, 발인 5일 오전 8시 (02)792-1634 ●최부병(전 경희대치과병원장)씨 별세 4일 경희의료원, 발인 6일 오전 8시 (02)958-9545 ●이유덕(봉화군청 과장)유경(한국수력원자력 처장)유진(자영업)유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위원)씨 부친상 4일 영주 추모의 집, 발인 6일 오전 9시 (054)633-4441 ●정흥춘(스탠다드차타드은행 이사)씨 부친상 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6일 오전 8시 (02)3410-6914 ●이용주(대신증권 리테일채권부 차장)숭주(광주교도소 보안과 경위)재화(자영업)씨 모친상 4일 영암 성심장례식장, 발인 6일 오전 9시 (061)472-8424 ●김정애(경북 군위군의회 의원)씨 남편상 4일 칠곡경북대병원, 발인 6일 오전 7시 (053)200-2507 ●최순철(전 교통부 시설국장)씨 별세 충정(전 태신상사 대표이사)용범(캐나다 거주)용국(한국쉬즈라인 대표이사)씨 부친상 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6일 오전 8시 (02)3410-6912
  • “울려라~ 삼국유사 골든벨”

    “울려라~ 삼국유사 골든벨”

    ‘2012 삼국유사 골든벨 퀴즈 대회’가 전국 고교생들의 한마당 축제로 펼쳐진다. 경북 군위군은 오는 8일 군위읍 삼국유사교육문화회관에서 전국 161개 고교 900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하는 ‘삼국유사 골든벨 퀴즈 대회’를 개최한다고 4일 밝혔다. 올해 4회째다. ‘삼국유사 골든벨 퀴즈 대회’는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인 군위에서 해마다 열리는 삼국유사 문화축전행사의 하나로, 전국 고교생 가운데 학교장의 추천을 받은 학생들이 참가해 실력을 겨룬다. 행사는 우선 오전에 삼국유사 관련 권장도서 내용을 중심으로 한 예선(필기시험)을 통해 본선 진출자 50명을 가린다. 오후에는 본선 진출자 중에서 골든벨을 울리는 최후의 1인을 선발하게 된다. 본선 진출자들은 삼국유사사업추진위원회가 단군신화부터 신라·백제·가야의 설화와 역사, 향가, 불교사(佛敎史) 등 삼국유사에 담긴 방대한 자료에서 출제하는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대회를 치른다. 최우수상인 골든벨 등 수상자 9명에게는 교육과학기술부장관상, 경북도지사상, 군위군수상 등의 상과 함께 총 800만원의 장학금이 주어진다. 특히 이번 대회는 참가자들이 각종 공연과 체험 행사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성악가 초청 공연을 비롯해 클래식 기타 및 플루트 연주, 참가자들이 즉석에서 노래와 게임 실력을 선보이는 장기자랑대회 등이 펼쳐져 축제 분위기를 연출한다. 삼국유사 목판 탁본 체험과 우리 농산물 시식회도 곁들여진다. 군위 주민들도 올해 처음으로 행사 지원에 나섰다. 25가구가 서울과 경기, 제주 등 원거리 참가자 120여명의 편의를 위해 1박 2일 무료 숙박을 제공키로 했다. 장욱 군수는 “대회를 통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워 주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군위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위안부’증거 이렇게 많은데…간교한 日

    ‘위안부’증거 이렇게 많은데…간교한 日

    일본은 전·현직 총리까지 나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나타낸 한·일 간 공식문서가 없다.”며 식민지 시대의 반인권적 범죄행위에 대해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공식문서’ 운운하는 일본 정부는 역사적 진실에 두 눈을 가리고 있다. ‘공식문서’만이 증거라면, 일본 역사학자는 물론 한국, 타이완,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 위안부 및 위안소 설치와 관련해 쏟아진 증거들은 다 무엇인가. 이들은 일본에 강력한 법적 책임을 촉구하는 움직일 수 없는 지표들이다. 1938년 3월 4일 일본 육군성 부관이 북지방면군 및 중지주둔군 참모장에 보낸 통첩에는 ‘위안부 모집 관계자 단속에서 군의 위신을 지키고 사회문제를 야기시키지 않게끔 인선을 적절히 행하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1940년 9월 19일 일본 육군성 부관이 작성한 ‘군기진작대책’ 에서는 ‘위안 시설은 사기 진작, 군기강 유지, 범죄 및 성병 예방 등에 대한 영향이 크므로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교육지도 참고자료를 송부했다고 밝혔다. 일본 후생성이 해방 전후 위안부 신상기록을 담아 작성한 ‘유수명부’가 2005년 발견되기도 했다. 1994년 미군이 작성한 증인보고서에는 포로들이 증언한 일본군 위안부 모집·관리 실태가 담겨 있다. 일본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는 ‘일본군 군대위안부’를 책으로 써 ‘위안부는 없다’던 일본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또한, 일본의 여성을 위한 평화기금에서는 ‘정부조사 종군위안부관계자료집성 전 5권’을 펴냈다. 한국 외교부는 1992년 7월 일본 정부의 조사를 근거로 ‘일제하 군대위안부 실태조사 중간보고서’ 자료집을 냈고, 네덜란드 정부도 1994년 ‘일본 점령하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의 네덜란드인 여성에 대한 강제매춘’ 보고서를 발표했다. 쏟아지는 증거들 앞에서 물러설 곳이 없어진 일본은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명의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사과 담화를 발표했다. ’살아 있는 증거’들은 수없이 많다. 꽃 같은 청춘을 위안부로 살며 인권을 유린당한 네덜란드 여성 세마랑, 베트남의 랑송, 중국 구리인, 한국의 수많은 위안부 할머니 등이다. 유엔 보고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보편적 인권의 문제이자 국제적인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유엔인권이사회의 여성폭력특별보고관 보고서가 1996년과 2003년 위안부 문제를 정식 거론한 이후 관련 유엔보고서만 10개나 된다. 유엔총회도 1992년을 시작으로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해 왔다. 서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강제성을 나타내는 공식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본정부와 군대가 조직적으로 동원한 반인권적·반도덕적 행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면서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와 전후 배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소영·배경헌기자 symun@seoul.co.kr
  • [위안부 증거 있다] “日, 국제법 위반 면하려 軍·경찰 관여 철저히 숨겼다”

    [위안부 증거 있다] “日, 국제법 위반 면하려 軍·경찰 관여 철저히 숨겼다”

    “강제동원 증거가 있느냐고 묻는 것 자체가 잘못된 질문입니다. 일본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경찰이나 군인이 강제로 끌고 간 적은 없지 않으냐, 국가총동원령 같은 법에 따라 징집하듯 끌고 간 적은 없지 않으냐는 겁니다. 그런데 거꾸로 말하자면 그러니까 점령지가 아니라 식민지인 겁니다. 점령지라면 군대가 전면에 나서겠지만 식민지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거지요. 식민지배 체제라는 큰 틀 아래에서 누가 위안소를 설치, 운영하고 위안부를 모집, 이송했느냐를 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맥락을 다 버린 채 ‘강제로 끌고 간 증거가 있느냐’고 묻는 것은 진실을 찾아보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무시하겠다는 말에 불과합니다.” 한·일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마침내 일본군 위안부 문제까지 나왔다. 한국은 고노 담화마저 뒤집느냐며 벌집을 쑤신 분위기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 연구자인 윤명숙(50) 박사에게 물었다. 윤 박사는 2000년 일본 히토쓰바시대학에서 ‘일본의 군 위안소제도와 조선인 군위안부 형성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활동에 관여해 왔고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에서 위안부조사팀장을 맡은,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일본군 위안부 전문가로 꼽힌다. 윤 박사는 고노 담화 자체도 그리 높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지만 외교적 수사에 가려 일본 정부나 군이 주동했다는 부분은 모호하게 처리됐다고 본다. 잘못은 주로 민간에서 저질렀고 정부와 관련해서는 일부 불미스러운 사례가 있었다는 식의 언급으로 뭉뚱그려 놨다는 것이다. 윤 박사는 “1991년 일본 국회에서 위안부 관련 질문이 나왔을 때 당시 일본 정부 측 인사들의 답변 역시 총동원령 같은 명백한 법적 근거에 따라 시행된 게 아니니까 민간업자가 데려간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은 공창제를 법률적으로 인정했고 조선은 식민지로서 공창제가 연장된 것이 위안소라는 논리다. 윤 박사는 1938년 2월 23일 내무성 통첩과 3월 4일 육군성 통첩에 주목한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전선이 확대되면서 위안부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이 통첩에는 위안부를 모집하되 21세 이상 매춘 경험이 있는 자로 한정하고 매매나 유괴 같은 형태를 엄격히 단속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그래놓고서는 위안부 모집은 헌병과 경찰이 밀접하게 연관지어 하도록 하고, 민간업자가 징집하도록 하되 경찰의 관여 사실은 되도록 숨기도록 했다. 또 근거자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진행상황 보고 같은 것을 문서가 아니라 전화로 하라는 지침(1938년 11월 8일 내무성 경보국 자료)을 내렸다. 윤 박사는 이를 두고 “1921년에 체결된 ‘부인 및 아동에 매춘을 금지하는 국제조약’ 등 성매매에 관련된 5~6개의 국제법이 있는데 일제도 이를 어기지 않기 위해 무척 노력한 증거”라면서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위안부 모집 과정이 국제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명백한 행정자료를 남기지 않으려 했던 증거”라고 말했다. 국제법에 따르면 성매매한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동의한 성인 여성만 합법적인 위안부라는 얘기다. 그렇게 못할 게 뻔한 상황에서 위안부 문제의 민감성을 그 누구보다 일본이 더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극력 은폐하려 들었다는 것이다. 이를 유추해볼 수 있는 자료도 있다. 1942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외무성과 타이완총독부 외사부장이 주고받은 문건이다. 태평양전쟁 발발로 전선이 더욱 확대되자 타이완총독부에서 위안부들의 여권 문제를 본국에 문의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외무성은 “여권 발급은 바람직하지 않으니 군 증명서를 갖고 군용선을 이용하라.”고 답했다. 정식으로 여권을 발급하는 것 자체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일본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는 증거다. 조선과 관련해서 이런 문건이 나오지 않은 것은 조선총독부가 일왕 직할체제여서 위상이 높아 본국에 굳이 질의하지 않아도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데다, 국제법에 따른 문제 소지를 없애기 위해 철저하게 없앴을 것이라는 게 윤 박사의 추정이다. 윤 박사는 “일본의 경우 오히려 위안부 모집 초기에는 일본 내에서 위안부를 모으면서 현 단위로 몇명씩 할당한다는 내용이 문서로 남아 있다.”면서 “그러나 조선에 이런 자료가 없는데 그것 자체가 식민지배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위안부 증거’ 이렇게 많은데…

    ‘위안부 증거’ 이렇게 많은데…

    일본은 전·현직 총리까지 나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나타낸 한·일 간 공식문서가 없다.”며 식민지 시대의 반인권적 범죄행위에 대해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공식문서’ 운운하는 일본 정부는 역사적 진실에 두 눈을 가리고 있다. ‘공식문서’만이 증거라면, 일본 역사학자는 물론 한국, 타이완,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 위안부 및 위안소 설치와 관련해 쏟아진 증거들은 다 무엇인가. 이들은 일본에 강력한 법적 책임을 촉구하는 움직일 수 없는 지표들이다. 1938년 3월 4일 일본 육군성 부관이 북지방면군 및 중지주둔군 참모장에 보낸 통첩에는 ‘위안부 모집 관계자 단속에서 군의 위신을 지키고 사회문제를 야기시키지 않게끔 인선을 적절히 행하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1940년 9월 19일 일본 육군성 부관이 작성한 ‘군기진작대책’ 에서는 ‘위안 시설은 사기 진작, 군기강 유지, 범죄 및 성병 예방 등에 대한 영향이 크므로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교육지도 참고자료를 송부했다고 밝혔다. 일본 후생성이 해방 전후 위안부 신상기록을 담아 작성한 ‘유수명부’가 2005년 발견되기도 했다. 1994년 미군이 작성한 증인보고서에는 포로들이 증언한 일본군 위안부 모집·관리 실태가 담겨 있다. 일본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는 ‘일본군 군대위안부’를 책으로 써 ‘위안부는 없다’던 일본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또한, 일본의 여성을 위한 평화기금에서는 ‘정부조사 종군위안부관계자료집성 전 5권’을 펴냈다. 한국 외교부는 1992년 7월 일본 정부의 조사를 근거로 ‘일제하 군대위안부 실태조사 중간보고서’ 자료집을 냈고, 네덜란드 정부도 1994년 ‘일본 점령하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의 네덜란드인 여성에 대한 강제매춘’ 보고서를 발표했다. 쏟아지는 증거들 앞에서 물러설 곳이 없어진 일본은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명의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사과 담화를 발표했다. ‘살아 있는 증거’들은 수없이 많다. 꽃 같은 청춘을 위안부로 살며 인권을 유린당한 네덜란드 여성 세마랑, 베트남의 랑송, 중국 구리인, 한국의 수많은 위안부 할머니 등이다. 유엔 보고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보편적 인권의 문제이자 국제적인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유엔인권이사회의 여성폭력특별보고관 보고서가 1996년과 2003년 위안부 문제를 정식 거론한 이후 관련 유엔보고서만 10개나 된다. 유엔총회도 1992년을 시작으로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해 왔다. 서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강제성을 나타내는 공식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본정부와 군대가 조직적으로 동원한 반인권적·반도덕적 행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면서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와 전후 배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소영·배경헌기자 symun@seoul.co.kr
  • [한일 독도갈등] “한국, 日위안부 강제성 증거 내놔라” 日 차세대 총리감 역사인식마저…

    [한일 독도갈등] “한국, 日위안부 강제성 증거 내놔라” 日 차세대 총리감 역사인식마저…

    일본에서 대중적 인기가 높은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 전망이다. 21일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하시모토 시장은 이날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대한 일본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면서 “위안부가 (일본)군에 폭행·협박을 당해서 끌려갔다는 증거는 없다.”며 “있다면 한국이 내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위안부 제도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제도일지도 모른다.”라며 “한국 측의 주장을 전부 부정하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폭행당해 끌려간 증거없다” 하시모토 시장은 또 “위안부라는 문제가 뿌리에 있다.”며 “일본의 입장뿐만 아니라 상대의 주장도 뿌리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시모토 시장의 이날 발언은 ‘고노 담화’의 의미를 축소하길 원하는 일본 우익의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이 발표한 담화에서 ‘위안소는 군 당국의 요청으로 설치됐고, 일본군이 위안소의 설치·관리와 위안부의 이송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위안부의 모집은 감언이나 강압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한 경우가 많았고, 관헌 등이 직접 가담한 적도 있었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와 군이 위안소 설치·운영이나 위안부 모집에 총체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정신대硏 “이미 충분” 특히 하시모토 시장은 차기 중의원(하원) 총선거에서 자신이 이끄는 ‘오사카 유신회’의 전국 정당화를 노리고 있어 보수 우익의 표를 의식해 위안부 관련 발언을 꺼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하시모토 시장은 지난해 8월 오사카의 고급 유흥 클럽에서 일하던 술집 여성과 온갖 변태적인 애정행각이 한 주간지에 보도될 정도로 부도덕한 정치인으로 각인되고 있어 여성계 등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국정신대연구소 윤정옥 고문은 “증거는 이미 충분하다. 우리 자료가 싫다면 일본인 요시미 요시야키가 쓴 ‘종군위안부’라는 책을 봐라. 한국의 소녀와 젊은 여자들이 어떻게 끌려갔는지 자세히 묘사돼 있다.”고 말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양노자 팀장은 “일본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갖는 게 중요하지 어떤 사람의 발언 한마디에 일일이 대꾸할 가치를 못 느낀다. 그들 수준에 맞출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도쿄 이종락특파원·서울 조은지기자 jrlee@seoul.co.kr
  • [김문이 만난 사람] 일본군 위안부할머니 전문 안세홍 사진작가

    [김문이 만난 사람] 일본군 위안부할머니 전문 안세홍 사진작가

    얼마나 기다리고 사무쳤으면 ‘흙다시 만져 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라고 했을까. 해마다 맞이하는 광복절이지만 올해만큼은 타국에서 떠도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고향마저 잃은 채 비참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한 젊은 사진작가가 발품을 팔며 온몸으로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아 내고 있다. 안세홍(42)씨는 지난 6월 26일부터 7월 9일까지 도쿄 한복판, 그러니까 신주쿠(新宿)에 있는 사진 전시관인 니콘살롱에서 일본 우익단체들의 갖은 협박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위안부 할머니들 사진전’을 열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우여곡절도 많았다. 지난해 12월 안씨가 처음 사진전 신청을 했을 때만 해도 니콘살롱은 “도쿄뿐 아니라 오사카(大阪)에서도 사진전을 열자.”고 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그런데 전시를 코앞에 두고 갑자기 ‘사진전 개최 불가’ 통보를 해 왔다. 이유는 “일본군 위안부 사진전은 정치색이 강하다.”는 것. 그러자 안씨는 도쿄지방법원에 사진전 개최 불가를 취소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사실 니콘살롱이 갑자기 방침을 바꾼 까닭은 니콘의 주요 주주인 미쓰비시(三菱)가 전쟁물자 제조로 성장한 회사인 만큼 주주의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도쿄지방법원은 “위안부 사진전이 일정한 정치성을 띠고 있지만 사진 문화의 향상이라는 목적도 함께 있다. 니콘은 사진전을 위한 장소를 제공하라.”며 안씨의 손을 들어 줬다. 이렇게 해서 안씨는 일본에서 무사히 전시를 마쳤고 이번에는 광복절을 앞두고 서울에서 전시를 열고 있다. 통의동에 위치한 ‘갤러리 류가헌’에서 26일까지 ‘겹겹-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라는 제목으로, 눈물로 살아가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원한을 달래고 있다. 그는 이번 서울 전시에 이어 앞으로 오사카와 히로시마, 삿포로 등 일본에서만 12개 도시 순회 전시를 할 예정이며 뉴욕, 파리, 베를린, 런던 등 국제 사진전까지 준비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일본 10여개 도시를 순회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그 실상을 알리고 있다. 지난 6일 오후 ‘갤러리 류가헌’에서 안씨를 만났다. 전시장 입구에 박대임 할머니의 사진이 크게 걸려 있었다. 깊게 파인 주름이 겹겹이 쌓여 있고 양손은 자신의 고향 지도를 매만지며 시름에 잠겨 있는 표정이었다. 일본에 이어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 제목을 ‘겹겹 프로젝트’라고 한 것은 ‘한 많은 세월 속에 주름이 겹겹이 쌓였다.’고 해서 그렇게 정했다면서 사진 설명을 해 준다. “박대임 할머니가 지금 살아 계셨으면 100세인데 5년 전 돌아가셨습니다. 1934년 22세 때 한 살 된 아들을 업고 중국에 있는 일본군 주둔 지역으로 끌려갔지요. 2003년 중국 산둥반도 요산현 지역에 살고 계신 박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아들과 며느리 손자와 같이 살고 있더군요. 할머니 집에는 한국과 일본, 중국 등의 지도가 걸려 있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지도를 만져보며 고향(청주)을 그리워하곤 했지요.” 박 할머니를 어떻게 만났느냐는 질문에 “일본군이 주둔해 있던 곳에 가서 한국인 위안부 할머니를 찾다가 수소문 끝에 만나게 됐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가 중국에서 만난 한국인 위안부 할머니는 모두 12명. 그 가운데 벌써 8명이 세상을 떠났다. 현재까지 살아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도 대부분 90살 전후이기 때문에 아마 몇 년 후면 아픈 역사를 간직한 주인공들이 모두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70여년 전 한반도 전국 각지에서 끌려온 우리나라 처녀들은 몇날 며칠이고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몸을 중국으로 가는 기차에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망막한 오지에 내던져진 꽃다운 처녀들은 또다시 일본군의 트럭에 실려 총칼의 공포에 떨며 만주에서 윈난, 태평양 연안에 이르기까지 전장의 위안소로 내몰렸지요. 그들은 아직도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채 한국과 북한, 타이완,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외롭게 살고 있습니다.” 그는 위안부 할머니를 단순히 ‘위안부’가 아닌 ‘전쟁과 여성인권’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의 의미도 그런 차원이라고 말했다. 전시장에는 박 할머니의 사진을 비롯, 13세 때 위안부로 차출당한 고(故) 배삼엽 할머니, 19살 때 위안부로 끌려간 뒤 현재 헤이룽장성 오지에 살고 있는 이수단 할머니, 20살 때 사시키라는 일본 이름으로 끌려간 고 박서운 할머니 사진 등 모두 40점이 눈물로 걸려 있다. “지난해부터 일본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 강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위안부 문제를 잘 모르더라구요. 정보가 차단돼 있고 왜곡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그동안 찍은 위안부 할머니 사진전을 열어 그 사실을 생생하게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도쿄에서 전시를 열었고 이번에 서울에서 전시를 하게 됐지요.” 도쿄 전시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8000명에 가까운 관람객들도 기대 이상이었지만 특히 20~30대의 젊은이들이 전시장을 많이 찾았다. 또 일부 뜻있는 관람객들은 ‘겹겹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싶다고까지 할 만큼 관심을 보였으며 위안부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지에 대한 앙케트 조사에는 1200명이 응답을 했다. “홍보는 제 스스로 했습니다. 그동안 일본에서 무당을 주제로 사진전을 두 번 열었고 강연 등을 통해 나름대로 인프라를 구축했지요. 이러한 인맥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시 내용을 알렸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보고 난 관객들 중 일부는 전시 불가를 통보한 니콘살롱 측에 거친 비난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가 맨 처음 위안부 할머니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1996년 ‘나눔의 집’(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집)에서 자원봉사할 때였다. 당시 월간 ‘사회평론’에서 나눔의 집을 대상으로 화보를 찍었고 이 과정에서 안씨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처음에는 할머니들이 입을 열지 않았지만 역사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안씨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인터뷰에도 응했다. 2년 뒤인 1998년 창원 신세계백화점 갤러리에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제목으로 첫 전시회를 연 이후 지금까지 15년째 거의 매년 ‘위안부 할머니’를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많이 아는 듯하지만, 중·일전쟁 때 중국으로 끌려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분들이 있다는 사실은 잘 모릅니다. 그들은 일제에 의해 청춘을 짓밟혔고, 지금도 가난과 외로움에 타국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사진을 통해서나마 그분들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는 고등학교 시절 ‘전태일평전’을 읽으면서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졌고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항상 사진에 관심을 가졌다. 눈으로 본 것을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학생 신분에 무작정 ‘사회사진연구소’(사사연)를 찾아가 사진을 배우고 ‘사사연’이 문을 닫을 때까지 3년 동안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이후 절집과 무당집을 찾아다니며 사진 작업을 하다가 위안부 할머니로 방향 전환을 했다. 이번 전시가 끝나면 오는 10월 중순 다시 중국 후베이성과 헤이룽장성 등지로 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 사진을 찍을 예정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중국뿐만 아니라 타이완, 필리핀 등 다른 아시아 지역에 사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3년 후에는 전쟁과 여성 인권에 관심이 있는 세계 각국 사진작가들과 함께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과 유럽 등을 순회하는 투어 사진전을 열겠다고 말했다. 이미 일본과 북한, 미국 등의 여러 사진작가들과 뜻을 함께해 놓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 문제를 한·일 간의 감정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적으로 이슈화하겠다는 것이 그의 목적이다. “파인더 속의 할머니는 한 사람의 인간 그 자체였습니다. 깊이 파인 주름에서, 사방에 널브러진 손때 묻은 물건에서, 글썽이는 눈망울에서, 할머니의 한 맺힌 가슴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안세홍 그는… 1971년 강원도 옥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중학생 시절부터 탈춤 사진을 찍기 시작해 장애인, 인권사진, 일본군 위안부 등 사회 소외계층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고 있다. 아울러 한반도의 뿌리를 바탕으로 무속, 불교, 민속 등 전통문화를 끊임없이 찾아다니며 배우고 사진 작업을 해왔다. 현재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의 샤머니즘을 심도 있게 작업 중에 있으며 일본 10여개 도시를 중심으로 강연회와 ‘위안부 사진전’을 개최하고 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1998), ‘겹겹-중국에 남겨진 일본군 위안부’(2003), ‘영혼을 부르는 몸짓’(2011), ‘겹겹-중국에 남겨진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2012) 등이 있다. 저술로는 ‘중국으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2002), ‘눈밖에 나다’(2003), ‘일본군 위안부’(2004)를 비롯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주제로 한 영상작업이 다수 있다.
  • 문화바우처 카드, 농어촌선 ‘그림의 떡’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 및 차상위 계층 등의 저소득층이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행하는 ‘문화 바우처 카드제’가 농어촌 지역에선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정작 농어촌 지역에서는 문화 바우처 카드를 이용할 수 있는 문화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문화 바우처 카드는 한장에 5만원 상당으로 1년 동안 공연장, 전시장, 영화관, 인터넷 서점 등에서 신용카드처럼 결제할 수 있다. 가구당 1장 발급이 원칙이지만 청소년이 있으면 6장까지 별도로 발급해 준다. 이 사업은 2010년까지 시범 사업으로 시행되다가 지난해부터 전국으로 전면 확대됐다. 7일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따르면 올해 전국 16개 시·도의 문화 바우처 예산은 총 480억원이다. 이 중 문화 바우처 카드 예산은 전체의 70%인 336억원(복권 기금)이다. 지역별로는 경기가 44억 600만원으로 가장 많다. 서울 42억 5600만원, 부산 31억 8700만원, 경북 26억 9200만원, 전북 25억 500만원, 전남 24억 2500만원 등이다. 문화 바우처 예산 중 나머지 144억 100만원은 기획 바우처 사업에 쓰인다. 하지만 문화 바우처 카드 발급률은 문화시설이 많은 도시와 적은 농어촌 지역 간에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 6일 현재 도시 지역의 발급률은 광주 80.1%, 서울 77.4%, 인천 72.1%, 대구 71.5% 등으로 농촌 지역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 지역은 전남 50.3%, 경북 54.8%, 충남 56.3% 등으로 저조했다. 특히 영화관과 서점 등 문화시설이 거의 없는 경북 군위군과 영양군, 의성군은 각각 18.7%와 19.3%, 22.7%로 전국 꼴찌 수준이다. 이 밖에 전남 신안군이 24.5%, 강진군 27.3%, 장흥군 32.5%, 진도군이 34.7% 등으로 발급률이 낮다. 도서 지역 및 산간 오지가 많은 경북과 전남은 전국에서 문화시설이 가장 열악한 반면 고령화율은 가장 높다. 이들 지역에서는 바우처 카드를 발급받더라도 가맹점이 거의 없고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해 사용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김모(73·군위군 군위읍 동부리) 할아버지는 “인터넷으로 바우처 카드를 사용할 수 있게 했지만 컴퓨터가 없는 데다 이용 방법도 전혀 모른다. 바우처 카드는 사실 있으나 마나 한 존재”라고 불평했다. 이에 따라 경북과 전남 등 카드 발급률이 낮은 농어촌 자치단체들은 고령자나 장애인들을 ‘모셔 오거나’ ‘찾아가는’ 기획 바우처 서비스 사업을 확대해 줄 것을 문화부에 요구하고 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경북 건설사업소 이전 ‘우왕좌왕’

    경북도가 산하 종합건설사업소를 군 지역으로 이전하는 작업<서울신문 2011년 10월 14일 자 18면>을 불과 수개월 만에 중단해 졸속 행정이란 비난과 함께 해당 자치단체와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6일 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대구 칠곡 지역에 있는 도 종합건설사업소에 대한 도내 군 지역 이전을 추진해 왔다. 이를 위해 도는 같은 해 10월 칠곡군과 성주군, 군위군 등 3개 군을 대상으로 청사 신축 후보지 공모를 했다. 이들 3개 군은 ▲칠곡군 왜관읍 아곡리 일대 부지 4만 5400여㎡(군유지 2만 9000㎡ 포함) ▲성주군 대가면 옥성리 일대 사유지 3만 3000㎡ ▲군위군 군위읍 무성리 일대 군유지 3만 2700㎡를 각각 제시하고 유치전까지 펼쳤다. 직원 60여명에다 예산이 330억원 정도인 건설사업소를 유치할 경우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클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특히 군위군과 칠곡군은 부지 전체 또는 일부를 무상 제공키로 했다. 당초 도는 올해 상반기 중 이전 부지를 결정하고 늦어도 2014년까지 이전을 마칠 계획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전 작업을 중단했다. 도는 이전 부지조차 결정하지 못하는 등 사업 추진에 미온적이었다. 최근엔 도의회에 청사 신축 설계용역비 3억원을 요구했다 거절당하기도 했다. 이전지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라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도 관계자는 “도의회가 건설사업소 이전에 대해 종합적인 검토를 실시한 뒤 재추진할 것을 요구해 이를 전면 수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관련 자치단체와 지역 주민들은 졸속 행정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 자치단체는 “도의 일방적인 건설사업소 이전 중단 결정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면서 “주민과의 약속 이행을 위해 당초 계획대로 군 지역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도가 건설사업소 이전을 백지화할 경우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건설사업소를 예정대로 3개 군 지역으로 이전할지 등에 대한 결정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라고 말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깔깔깔]

    ●웃기는 지명 모음 1. 전남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2.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방구마을 3. 전북 순창군 풍산면 대가리 4.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발리 5. 경남 김해시 진영읍 우동리 6. 경북 군위군 의홍면 파전리 7. 경남 양산시 웅상읍 소주리 8. 경남 거제시 일운면 망치리 9. 충북 증평군 증평읍 연탄리 10. 전남 해남군 해남읍 고도리 11. 경남 김해시 불암동 ●쉬어 가기 난센스 2 ▶일 년에 한 번 목욕 가는 사람이 가기 전에 먹는 과자는? 때빼로 ▶과외 선생님에게 수고하셨다고 부모님이 주는 음료는? 레쓴비 ▶동네 아줌마가 미용실 갈 때 먹는 라면. 먹어도 먹어도 풀리지 않는 라면은? 막파마
  • 日민주당 4명 또 탈당 노다정권 붕괴 초읽기

    일본 정치권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여야는 중의원 해산을 시간문제로 보고 있다. 정기국회 회기가 끝나는 8월 말이나 9월 초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오자와 이치로 그룹의 대거 탈당 이후 자고 나면 탈당자가 속출하고 있다. 17일 참의원의 후나야마 야스에, 고다 구니코, 다니오카 구니코 의원이 탈당했다. 표결에서 빠지는 정·부의장을 제외한 참의원에서의 민주당 의석은 88석으로 줄었다. 제2당인 자민당(86석)과의 차이는 단 2석이다. 18일에는 중의원(하원) 나카쓰가와 히로사토 중의원의원도 탈당계를 제출했다. 나카쓰가와 의원이 탈당하면 민주당의 중의원 의석은 248석이 된다. 연립 정당인 국민신당 의석을 합해도 252석에 불과해 민주당에서 14명이 추가 탈당하면 과반 의석(239석)이 무너질 수 있다. 중의원에서 과반 의석을 잃으면 정권을 내주게 돼 해산을 선언하고 총선거를 치르게 된다. 노다 요시히코 정권이 붕괴되는 셈이다. 민주당의 탈당 러시는 진보와 보수 성향의 인사들이 이합집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민주당에는 3년 전 정권 교체를 위해 이념과 출신이 다른 다양한 세력이 뭉쳤다. 목표는 자민당 정치의 종식을 통한 정권 교체였다. 당내에는 마쓰바라 진 의원과 같이 군위안부 동원에는 정부의 조직적 개입이 없었다고 강변하는 극우 성향의 의원에서부터 간 나오토 전 총리와 같은 시민운동가 출신들이 포진해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군위 첫 국민임대주택 2014년 8월까지 건립

    군위 첫 국민임대주택 2014년 8월까지 건립

    경북 군위에 저소득층 등을 위한 국민 임대주택이 처음으로 건립된다. 18일 군위군에 따르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측이 올해부터 2014년 8월까지 총 268억원을 들여 군위군 군위읍 서부리 120-1 일대 부지 1만 5392㎡에 임대 주택(조감도) 296가구를 짓는다. 10층짜리 4개동으로 지어질 이 보금자리 주택은 전용면적 39㎡ 68가구와 46㎡ 108가구, 51㎡ 120가구로 구성된다. 당초 이 사업은 2009년 착공 예정이었으나 LH 자금난으로 2015년으로 밀렸다. 하지만 군이 지역의 열악한 주거여건 개선을 위해 적극 나서 완공시기가 앞당겨졌다. 군위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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