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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정신대문제 이미 끝났다”

    ◎관방차관/“65년 매듭… 외교적 논의는 가능”/한국의 「일왕화형식」엔 공식항의 【도쿄 UPI 연합】 일본정부는 22일 2차대전때 강제로 일제국군대의 종군위안부로 끌려갔던 한국인 정신대 보상문제와 관련,한국정부의 배상요구 결정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종결됐다는 일본정부의 『기존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시하라 노보루 일관방성 차관은 이날 정례기자회견에서 『지난 65년 한일간에 체결한 전쟁배상을 위한 협정에 정신대문제에 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일본정부는 한국정부의 배상요구에 대해 논의할 것이지만 그러나 일본정부의 종전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노보루 차관은 그러나 『한국에서 이문제에 관한 논란이 있는 것 같다』고 전제하고 『일본은 외교적인 채널을 통해 이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종군위안부로 끌려갔던 3명의 한국인 여성이 지난달 일본정부에 정신대 실상을 밝히고 법원에 소송을 낸데 대해 일본정부는 소송과정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노보루 차관의 이날 『일본정부의 기존입장 고수』발언은 가토 【도쿄 AFP 연합】 일본정부는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일본총리의 한국방문시 반일시위대들이 아키히토(명인) 일왕의 초상화를 불태운데 대해 21일 한국측에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고 한 관리가 22일 밝혔다. 일본 외무성의 한 관리는 이러한 항의가 21일 타니노 사쿠타로 일본 외무성 아주국장에 의해 남홍우 주일 한국대사관 공사에게 구두로 전달됐다고 전했다.
  • 오키나와 군위안소/설치명령서 또 발견/일 방위청연구서

    【도쿄 연합】 구일본군이 「종군 위안부」모집에 직접 관여한 자료들이 계속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오키나와(충승)의 위안소 설치를 지시한 명령서,지도,방 배치등을 기록한 설계도가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일본의 아사히(조일)신문이 21일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자료들은 「빨간 기와집­한국으로부터 온 위안부」라는 책을 쓴 작가 가와다 후미코씨(천전문자)가 방위청 방위연구도서관에서 찾아냈다.
  • 정신대 만행/「사과」엔 높은 소리… 「배상」엔 미온적

    ◎두 얼굴의 일본사람들/“다끝난 일” 정부·시민 소극자세 일관/일부선 “과거죄악 청산,새 출발 해야” 한일간 비극적 역사의 한부분인 종군위안부(정신대)문제가 서울과 도쿄에서 이슈화되고 있다.그러나 강제연행의 당사자인 일본의 대응은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일본총리는 20일 『종군위안부문제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때 참기 어려운 문제』라고 전제하고 이들에 대한 보상의 필요성을 지적했다.그러나 가토(가등)관방장관은 『한일간 보상의 문제는 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끝났다』며 정부의 보상가능성을 배제했다.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이같은 이중성은 일반 시민들의 여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도쿄의 한 시민단체가 개설한 「종군위안부 110번」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전화응답자중에는 『사죄와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제와서 일본의 치부를 폭로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본의 일부 양식있는 사람들은 과거침략에 대한사죄와 보상을 적극 주장한 자,종군위안부문제에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발굴한 사람도 일본 중앙대의 요시미(길견)교수였다. 요시미교수는 『일본은 패전 50주년이 되는 앞으로 4년간이 과거침략사를 청산할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지적하고 사죄와 보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그는 일본정부가 종군위안부문제에 군의 관여를 인정한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해결을 위한 출발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일본에는 이같이 양식있는 목소리가 있다.그들은 일부 교수 변호사 언론인 사회단체 등이다.이들은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해 사죄와 보상을 주장하고 있다.「종군위안부 110번」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도 보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일부는 일본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을 토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양식있는 소수」에 불과하다.그들의 목소리는 메아리가 없다.정부도 그들의 정당한 주장을 외면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일본정부가 종군위안부문제에 군의 관여를 부인해온 것은 군의 관여사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보상문제로 발전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일본은 전종군위안부에 대한 보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일부에서는 민간차원의 보상을 주장하기도 한다.그러나 일본정부의 기본입장은 김학순씨 등이 제소한 배상청구소송에 대한 사법적 판결결과에 따르겠다는 것이다.그러나 그 판결의 결과는 알 수 없으며 또 언제 판결이 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일본정부가 사과를 하면서도 보상에 소극적인 것은 그들의 전형적인 2중적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일본은 말로는 사죄하면서도 행동은 또 다르다.일본에 대한 불신의 벽을 허물 수 없는 것도 바로 이러한 2중적 행동때문이다. 일본의 보상에 대한 소극적 태도는 한일간의 외교마찰로 비화될지 모른다.한국정부는 종군위안부에 대한 배상청구문제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만약 한국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에 일본정부가 적절한 대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양국간의 관계는 악화될 우려마저 없지않다. 미야자와 총리는 노태우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21세기를 향한 미래지향적인 한일협력관계를 강조했다.그러나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는 진정한 과거청산 없이는 불가능하다.과거없는 미래는 없다. ◎“나는 죄인” 세 일인의 증언/“숨돌릴 틈도없이 「다음」 받으라” 강요/“몸 좋고 가난한 학생 중점선발” 특명 일본의 한 시민단체는 지난 14일부터 3일간 「종군위안부 110번」이라는 프로그램을 개설,당시의 경험담 및 관련정보를 수집했다.종군위안부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는 아사히(조일)신문은 21일 이 프로그램 내용과 함께 그동안 들어온 2백30건의 제보가운데 3명의 증언을 보도했다.증언내용을 소개한다. 남경주둔 일본군 부대에 소속되었던 나는 3회정도 위안소를 출입했다.위안소에는 고참병사가 차례를 무시하고 새치기하는 것을 막기위해 별도의 감시병이 배치되었다.한사람당 15분이 할당되었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을 때는 『빨리 끝내고 나오라』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위안부들이 허리띠를 채 매지도 못한채 다음 사람을받는 경우도 있었다.위안소출입은 일반병·하사관·장교등 계급에 따라 시간대가 달랐다.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나는 군연금을 받고 있다.전위안부들에게도 어느정도의 보상은 있어야 한다. 당시 19세였던 나는 2차대전 말기 해남도의 해군병원에서 종군 간호부로 일했다.매월 1회정도 종군 위안부들이 3대의 트럭에 실려 성병검사를 받으러 왔다.트럭 1대에는 보통 70여명이 타고 있었는데 일본인·대만인도 있었다.의사가 검진을 했지만 매독증상이 있을 때는 간호부가 선정했다.나보다 한두살 많은 언니들에게 『아프냐』고 물으면 『슬프다』『아이고』라며 눈물을 흘렸다.임신한 사람들도 있었다.나는 지금도 간호부로 계속 일하고 있다.환자중에는 재일 한국인도 있다. 나는 한국에 있는 국민학교교사로 일했었다.6학년 담임이었던 1943년 일본인 교장으로부터 『가능한 한 체격이 좋고 집이 가난한 여학생을 선발하라』는 지시를 받고 8명을 선발했다.그들은 도야마(부산)에 있는 비행기부품공장으로보내진것 같았다.일본에 돌아와서도 당시 선발됐던 어린이들이 늘 마음에 걸렸다.4년전 한국을 방문,나에게 배운 제자 몇명을 만날수 있었다.그러나 내가 선발한 8명은 누구하나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제자들로부터 『그들은 위안부가 됐다.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고 행방불명되었다』라는 말을 들었다.
  • “「정신대」 배상계획 없다”/일 관방장관

    ◎지난 65년 해결… 조사 않겠다”/총리의 「배상발언」 뒤엎어 【도쿄 외신 종합】 2차 세계대전중 일본군에 종군위안부로 끌려간 한국인 정신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문제와 관련,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일본총리는 배상을 해야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가토 고이치(가등굉일)관방장관은 배상가능성을 배제하는 등 서로 엇갈린 발언을 하고 있다. 미야자와총리는 20일 정부와 집권 자민당 고위간부 연석회의 석상에서 『한국정부가 정신대 피해자들에게 대한 배상을 분명하게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문제가 해결됐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미야자와총리는 이어 정신대 문제는 한일간의 가장 큰 현안중의 하나라고 말하고 『한국인들에겐 정신대 문제가 참을 수 없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에앞서 가토관방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과 한국간의 배상문제는 양국간에 전면적인 국교정상화가 이뤄진 지난 1965년 당시 양국간 협정에 따라 이미 해결됐다고 주장하면서 일본정부는 이 문제가 모두 마무리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었다.그는 또 일본정부는 한국인 정신대는 물론 중국여성들이 위안부로 끌려 갔다는 관련보도에 대한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가토장관은 일본과 한국간의 배상문제는 양국간에 전면적인 국교정상화가 이뤄진 지난 1965년 당시 양국간 협정에 따라 이미 해결됐다고 주장하면서 일본정부는 이 문제가 종결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 국민당 50명 공천

    정주영씨가 주도하는 가칭 「통일국민당」은 20일 서울지역 10명등 50명의 1차 지구당조직책을 발표했다. 국민당은 구정전까지 2·3차에 걸쳐 약 2백명 안팎의 조직책을 확정발표하고 다음달 중순쯤 창당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조직책은 다음과 같다. ◇종로△종로 이래흔△성동을 정진화△도봉병 송태희△노원을 홍성우△강서갑 유 영△강서을 박한상△구로갑 정순주△도봉을 김충섭△용산 봉두완△서초갑 이충우 ◇부산△중구 김광일△동래을 노경규△남갑 이영근△강서 기우탁△영도 박순석 ◇광주△서구갑 최운용△서구을 박행삼△북구을 조영전 ◇경기△부천남 김정웅△동두천·양주 김국환 ◇강원△원주 원광호△춘성·양구·인제 홍종욱△영월·평창 신민선△철원·화천 이경희 ◇충북 △청주갑 김진영△진천·음성 정우택△제천 신영식 ◇충남 △대천·보령 박창규△서천 김종갑△서산·태안 박성호 ◇전북 △군산 신동안△완주 송주인△부안 김종수△옥구 채의석△익산 유재석 ◇전남 △목포 안철△순천 박강근△곡성·구례 김문일△화순 양동희△해남·진도 최장현△무안 정남식 ◇경북△군위·선산 권천문△청송·영덕 황위섭△영양·봉화 이철희△경주 황한수 ◇경남△울산중 차화준△울산동 정몽준△진해·창원 정차두△밀양 박성규△울산군 박진구
  • “과거침략사의 부담 현장서 확인”/미야자와 방한… 일 각계 반향

    ◎한국측 예상밖 강경에 일 수세/「행동계획」 합의 긍정평가… 실효엔 의문 미야자와(궁택)일본총리의 방한은 한국에서 아직 일본의 과거 어두운 역사가 청산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고 일본언론들이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미야자와총리는 가이후(해부)전총리가 구축해논 양국 협력관계를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발전시키기를 희망했었으나 종군위안부와 무역적자로 상징된 과거및 현재의 문제가 부각되어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사설에서 『새로운 시대는 과거청산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양국정상회담에서 종군위안부와 무역적자등 「과거와 현재」문제가 예상밖으로 주요이슈가 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일본언론들은 노태우대통령이 매우 강경하게 이들 문제를 제기했으며 미야자와총리는 수세적 입장에서 어려운 대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일부 일본언론들은 이같은 문제화는 한국매스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그러나 아사히신문은 『역사의 진실을 부인하려는 일본의 역사의식』때문이라며 『겸허한 반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일본외무성은 『한일양국이 한국의 유엔가입을 계기로 국제무대에서의 협조강화및 문화·인적교류에 합의한 것은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위한 진전』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일본은 종군위안부문제와 관련,미야자와총리의 사죄와 성실한 진실규명 약속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하지만 보상등 구체적인 대응조치에는 소극적이다. 일본은 양국간 무역불균형 개선문제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회의적이다.일본은 한국의 대일무역적자는 설비및 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한후 완제품을 수출하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언론들은 미야자와총리가 민간경제인을 중심으로 한 장기적인 관점의 한일판 「구조협의」를 제의한 것과 양국의 「행동계획」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실효성에는 회의적이다.일본 통산성은 일본기업에 한국의 부품산업육성,산업구조개선 지원및 기술이전,특허제도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으나 민간기업들이 어느정도 적극적일지는 의문이다.더욱이 통산성은 『협력할 것은 협력하겠지만 무역불균형의 책임이 일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미야자와총리의 한국방문은 자신의 아시아중시 외교정책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그러나 이번 방한은 스스로 고백했듯이 『힘겨운 방문』이었다. 미야자와총리는 「미래」를 구상하며 한국에 갔으나 한국에는 「과거」와 「현재」의 문제가 있었다.따라서 미야자와총리는 과거 침략사를 가지고 있는 일본외교의 어려움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 일언론의 공통된 시각이다. 미야자와총리는 동북아의 번영을 위한 한일양국간의 협력을 강조했다.그러나 노대통령은 일본 자위대의 해외파병움직임에 우려를 표명하며 「경제적 공헌」을 강조했다.일본언론들은 일본에 대한 경계는 과거 역사적 경험때문이며 이는 한국및 아시아에서 일본의 과거역사 청산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미야자와총리의 이번 방한은 일본의 미래지향적인 아시아정책 구상이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미야자와총리는 부시 미대통령 방일에 따른 대미 경제협조에 새로운 과제를 떠맡게 되었다.
  • 일에 「정신대보상」 제기/정부대책회의

    ◎피해신고등 받아 증거확보 정부는 일제의 종군위안부(정신대) 동원실태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이에따른 대책을 마련하라는 노태우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21일 심대평국무총리행정조정실장주재로 관계부처대책회의를 열어 관련자료수집방안,피해신고접수창구설치등 정부차원의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정부는 우선 이날 회의에서 피해자및 가족·친지들로부터의 신고와 관련자료를 토대로 정밀한 진상조사를 벌여 일제만행에 대한 물적증거를 확보,이를 토대로 일본법원에 계류중인 피해보상 소송을 적극지원하거나 일본정부에 보상문제를 공식제기하는 등 다각적인 후속조치를 마련할 계획이다.
  • 개인배상청구권 인정여부가 열쇠/정신대등 대일 소송 전망

    ◎일 법원에 6건 계류… 형식적 심리로 일관/사법부의 「묻혀진 진실」 양심적 평가에 기대 미야자와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일제에 희생을 당한 사람들의 유족 등이 일본 정부에 대해 피해보상소송을 무더기로 제기할 움직임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희생자나 단체·유족 등이 배상문제를 들고 나올 때마다 지난 65년 이뤄진 한일협정을 내세워 「보상문제는 이미 일괄타결됐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국가간의 협상으로 과거사에 대한 보상처리가 완료된 만큼 피해자 개개인의 배상요구는 더이상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미야자와 총리의 지난 2박3일동안의 방한을 계기로 일제의 정신대징발문제가 주요사안으로 등장하는 등 한국내에서 반일분위기가 고조되자 미야자와총리는 피해유족에 대한 배상 또는 보상문제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전향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미야자와 총리가 방한기간동안 과거청산문제에 대해 구사했던 수사적 표현의 문맥으로 보아 아직까지는 배상청구에 대응하는 수위를 가늠키는 어렵지만 한국국민들의 감정적 앙금을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가시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그동안 한국인 피해당사자 등의 개인피해보상 청구권 등을 인정치 않았던 자세에서 변화,최소한 개인차원의 보상청구는 인정하며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현재 일본법원에 제기돼 있는 강제연행피해 관련 보상소송은 지난해 12월 종군위안부 피해자 3명을 포함한 35명이 도쿄재판소에 제기한 태평양희생자유족회건 등 6건이다. 이 가운데 지난 90년8월 사할린억류동포 21명이 일제때 강제징용됐다 지금까지 억류생활을 하는데 대해 한사람앞 1천만엔씩의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도쿄지방재판소에 제출한 소송등 2건은 현재 형식적인 심리가 이뤄지고 있으나 일본정부의 배상청구 불인정태도 등으로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태평양전쟁유족회는 최근 소속회원 2만여명이 빠른 시일안에 집단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할 뜻을 밝히고 있어 일본내에서 한국인 피해보상논쟁이멀지않아 불붙을 전망이다. 따라서 법정시비가 본격화될 경우 초점은 역시 일본 정부에대한 배상청구권이 한일협정으로 소멸됐느냐 하는점에 귀결될 것이 분명하다. 일본법조계의 일부에서는 『65년 체결된 한일정부간의 청구권협정에 따라 한국측에 5억달러를 지급한 이상 민간차원의 개별소송에서 별도의 보상금을 지급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측 입장에 동조하는 소송 대리인등은 『한일협정은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외교보호권을 포기한 것일뿐 국민개개인의 일본 상대청구권이 소멸됐다고는 볼수 없다』고 국민개개인의 권리를 국가간의 협정으로 포기할수 없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결국 앞으로의 배상청구인정 문제는 일본사법부가 50년가까이 묻혀져왔던 진실을 얼마나 양심적으로 평가·판단해 매듭지어주느냐에 달려있다 할 것이다. 양국간의 정치적 책임문제는 이미 상당부분 해소됐다 하더라도 일본 사법부가 지금까지 잠복돼있던 갖가지 증거등을 토대로 국제관례에 입각,피해자와 유족 개개인에 대한 물질적·정신적 보상을 하려는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다.만족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사법적 처리가 이뤄질 경우 한일간의 과거사를 둘러싼 앙금은 재일동포에 대한 법적지위인정등의 조치와 더불어 정리의 단계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동안 한일간의 문제가 첨예화될 때마다 일본측이 보여온것처럼 갈등관계를 임시미봉으로 대처하려는 자세로 접근한다면 양국국민간의 앙금을 또다시 잠복상태로 놔둘수 밖에 없게된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 한일간의 과거사 정리는 최근 제기되고 있는 사법 절차에 대한 처리와 함께 2차대전당시 징용인 명부공개,전몰자유골 확인및 송환,피해자 진상조사등에 대한 일본정부의 노력이 병행될때 비로소 가능하다 할수 있다.
  • “경제대국 정치소국” 일본/박정현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일본총리의 2박3일간 한국 방문은 한·일 양국관계의 현주소를 새삼 일깨워준 계기가 되었다. 이번 정상회담의 주의제가 종군위안부문제와 대일무역수지적자 해소에 있었던 만큼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는 어느때보다 각별했다. 그러나 미야자와총리는 이같은 현안과 양국간 실질협력방안에 대해 원론적인 수사로 일관했다. 빈손으로 서울에 온 그는 「말의 성찬」만 늘어놓았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다. 우선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해 우리의 입장이 역사의 시계바퀴를 45년이전의 과거로 돌리자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다만 지난 65년 한·일기본조약체결 당시 이 문제는 전혀 사회문제화되지 않았던 만큼 새롭게 조명되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야자와총리는 그럼에도 「사죄」대신에 「사과」라는 표현을 했고 노태우대통령의 응분의 조치 요구에 「적절한 조치」라는 모호한 용어를 썼다. 방한 직전 미야자와총리는 한·일 양국간 미래지향적 선린우호관계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그의 발언이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번에 종군위안부등 현안에 대해 보다 겸허한 표현과 구체적 보상문제까지 거론했어야 옳았다. 미야자와총리가 노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을 때 일본에서는 가토(가등)관방장관이 「반일감정을 가르치는 역사교육을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흔히 일본인은 말로 명분을 차리는 「다테마에(건전)」와 속마음인 「혼네(본음)」가 따로 노는 민족이라고 한다.가토의 「망언」을 보면 미야자와총리의 사과발언이 그들의 「혼네」인지조차 의심스럽다. 또한 90억달러에 이르는 대일무역수지적자에 대해 일측이 구체적인 시정방안을 내놓기보다 「실천계획」을 실무위로 떠넘긴 것은 일단 상황을 모면해 보려는 의도라고 여겨진다. 무역적자가 우리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그러나 1천억달러의 흑자를 내는 일본이 우리의 무역역조시정 5개항을 대부분 거부한 것을 보면 일본이 경제대국은 될지언정 정치대국이 되기에는 요원한 것같다. 계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일본의 자세가 계속되는 한 한일양국간 21세기를 향한 미래지향적 선린우호관계도,아태지역내 정치대국화를 향한 일본의 노력에 협조해줄 어느 주변국가도 있지 않음을 일본은 깨우쳐야 할 것이다.
  • “대구에 일군 위안소 있었다”/당시 도청직원 증언

    ◎위안부 20여명 수용 【대구=이동구기자】 대구에 일제의 종군위안소가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이 18일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경북도청 근로동원과 원호계에 근무했던 유모씨(73·대구시 동구 검사동)가 증언함으로써 공개됐다. 유씨에 따르면 이 종군위안소는 태평양전쟁말기인 지난 1944년 10월 북간도 방면에서 후퇴해온 하야부사 전투비행대가 동촌비행장에 주둔하면서 당시 철공소자리였던 대구시 동구 검사동984 일대를 강제로 접수,50평짜리 2층 목조건물을 지어 사용했다는 것이다. 유씨는 또 위안소에는 20여명의 종군위안부가 있었다며 이 위안소는 해방직후 동촌지역 청년들이 조직한 동촌청년자위대에 의해 1945년 8월21일 폐쇄됐다고 밝혔다. 한편 영남대 오세창교수(한국근대사)는 『국내에도 위안소가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로 처음 밝혀진 사실』이라고 밝혔다.
  • “일본은 「이웃」이 없는 나라”/이창순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일본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일본을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은 늘 착잡하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바로 이웃이다.그러나 역사적 갈등을 경험한 한국인의 정서는 일본과 멀리 떨어져 있다.일본의 2중적 역사의식은 언제나 우리를 실망시킨다. 미야자와(궁택)일본총리의 한국방문으로 과거 일본의 어두운 역사가 다시 이슈화되고 있다.반인륜적 전쟁범죄인 종군위안부 문제가 양국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되었다. 미야자와총리는 일본의 한국인 종군위안부 강제연행을 사과했다.그러나 일본은 보상등 차후 대책에는 미온적이다.종군위안부문제는 일본의 역사왜곡의 한 단면을 다시 보여주었다. 일본은 종군위안부 강제연행에 일본군의 관여를 부인해왔다.그러나 군의 관여를 증명하는 자료가 보도되자 이를 인정했다.그들의 2중성을 잘 나타내주는 뚜렷한 증거다. 일본의 일부 보수 지식인들은 일본 식민지통치의 필연성과 정당론까지 거론하고 있다.그들은 식민통치가 조선의 개화와 발전에 기여했다고 강변하고 있다.그들은 한민족의 고통과 비참함은 외면하고 있다. 일본은 이같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이 부족하다.어쩌면 일부러 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일본은 과거 한국및 중국침략과 만행에 대한 진정한 반성보다는 자신에게 불리한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려는 태도를 보여왔다. 히로시마에 있는 평화공원은 일본인들의 역사 인식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일본은 평화공원에 원폭피해의 실상을 생생하게 재현했다.일본은 피해자 중심으로 만들어진 평화공원을 역사교육 현장으로 활용하며 2차대전의 피해자라는 인식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의 이같은 역사의식은 일본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일본이 아무리 침략자로서의 과거를 부인하려해도 역사적 사실이 없었던 것으로 될수는 없다.어느 누구도 과거로부터 자유로울수는 없는 것이다. 일본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냉전이후 경제력이 중시되는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일본의 역할은 증대되고 있다.그러나 일본이 진정한 지도국이 되기위해서는 주변국의 신뢰와 존경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일본에대한 주변국의 신뢰는 거의 없다.슈미트 전서독총리는 『일본은 이웃이 없는 나라』라고 지적한바 있다.일본인들은 개인적으로 매우 친절하다.그러나 일본이라는 국가적 이미지는 다르다.일본은 과거 어두운 역사의 진정한 청산을 바탕으로 보다 투명해져야 한다.
  • 미야자와 일 총리 국회연설/요지

    우리나라는 과거의 교훈을 염두에 두고 다른 나라에 위협을 주는 군사대국이 되지 않는다는 기본방침을 견지하고 있습니다.이러한 방침에 따라 국제평화와 안전유지를 위하여 경제적 공헌을 강화함은 물론 정치적,나아가서는 인적 공헌의 강화를 추진해 가고자 합니다.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이 남북한간의 대화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말할나위도 없습니다.작년 남북총리회담에서 서명된 합의서와 관련,본인이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귀국이 주장해온 남북간의 교류와 협력이 강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동시에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보다 오히려 외부세계로 끌어내어 받아들이는 쪽이 북한에 대해 개혁과 변화,특히 개방을 촉진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귀국의 생각에 공명합니다.본인은 북한이 귀국의 진의를 이해하고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행동할 것을 강력하게 희망합니다. 우리나라와 귀국과의 관계에서 잊어서는 안될 수천년에 걸친 교류 속에서 역사상 한 시기에 우리나라가 가해자이고 귀국이 피해자였다는 사실입니다.본인은 그간 한반도의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참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체험했다는 것에 대하여 여기에 다시한번 마음으로부터 반성의 뜻과 사과의 기분을 표명합니다. 최근 소위 종군위안부 문제가 거론되고 있는바 본인은 이러한 것은 정말로 마음 아픈 일로서 참으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더욱이 본인은 지난 2차대전시 살았던 한 사람으로 우리 세대의 잘못이 두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21세기를 담당하는 다음 세대에 역사를 바르게 전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이것은 본인을 포함한 우리 세대의 책임입니다.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이런 관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보급하는데 노력해 왔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생각입니다.본인은 과거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리고 두번다시 이러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경계심을 국민,특히 청소년들에게 배양시켜 나갈 결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역불균형에 관해서는 양국의 협력에 의해 무역의 확대균형의방향으로 해결돼야 할것이라고 믿습니다.이를 위해 본인은 노태우대통령각하에게 양국 경제인이 중심이 된 포럼을 설치할 것을 제안했습니다.본인은 이 포럼을 본인의 직접 관심하에 놓고 거기서 무역불균형의 원인과 대책을 기탄없이 논의해 갈 생각입니다.포럼의 제안에 관해서는 정부로서도 전행적으로 임해 갈 것입니다.
  • 「역사의 아픔」에 눈감는 자 누군가/일의 정신대만행에 부쳐

    ◎일관성 분노로 머물면 또다른 죄악 오늘,일본인 남자 관광객들이 줄줄이 데리고 다니는 이른바 한국인 콜걸들을 보면서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일본군에 끌려가 그들의 배설을 받아내는 공동변소 역할을 하다가 숨져간 20만명의 어린 소녀들을 생각한다. 한국에 놀러온 것은 그렇다치자.어린 나이에 인육의 노리개로 유린당하다가 숨져간 그 무수한 영혼들을 생각한다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다녀도 부족할 판인데 대낮에 한국의 거리에서 돈주고 산 한국 아가씨들을 버젓이 데리고 다니면서 부끄러워하는 기색 하나 없는 것을 보면 한국 남자로서 분이 솟구치는 것을 금할 수가 없다.과거에는 총칼로써 한국 여인들을 유린했는데 지금은 돈으로 한국 여인들을 사고 있으니 그들의 본성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해방 47년­이렇게 기나긴 세월이 흘렀는데 왜 이제서야 정신대 문제가 세상에 알려져 전국이 온통 분노로 들끓고 있는 것일까.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일본어를 일본인들처럼 구사할줄 아는 일본어 세대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누가 이에대한 책임을 질 수 있을까.죽 끓듯이 끓어오르는 분노.이런 분노는 지금까지 여러 번 있어왔지만 얼마 못가 금방 식어버리고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리기 일쑤였다. 정신대의 참상을 목격한 자,그들을 동원하는데 적극 참가한 자,징집되어 떠나는 그들을 모아놓고 그앞에서 고무적인 시를 낭송하던 친일 문인들,그 모든 것을 기록하던 자­그들은 지금까지 모두 침묵해왔고 오늘도 쉬쉬하고 있다.오히려 일본쪽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자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우리쪽에서는 숨을 죽인채 비굴하게 눈치만 살피고 있다.그 비굴함과 야비함이 오늘까지 펄펄 살아남아 우리의 현대사를 주름잡아왔다고 생각하니 이 땅이 마치 소돔과 고모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대 문제를 소재로 해서 필자가 「여명의 눈동자」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은 17년전인 1975년의 일이었다.필자가 알기로는 그때까지 정신대 문제를 다룬 국내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그렇게 작가도 많은데 왜 정신대 문제를 다룬 작품은 하나도 없을까.일본어세대의 작가들은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이해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집필을 시작하면서 알게된 것은 우리 국내에는 정신대에 관해 정리되어 있는 자료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하는 수 없이 나는 일본쪽에서나마 빈약한 자료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여명의 눈동자」는 처음에는 정신대 문제만을 다루려고 구상했던 작품이었다.그런데 쓰다보니 욕심이 생겨 무대가 방대하게 넓어지게 되었던 것이다.「여명…」에 나오는 여주인공 윤여옥은 17세의 나이에 정신대로 끌려가 참혹한 시련을 겪는다.그녀의 나이를 17세로 정하면서 당시 나는 나이를 너무 어리게 잡았다고 생각했었다.17세의 어린 여학생이 감당하기에는 공동변소 생활이 너무도 참혹하고 엄청났던 것이다.그런데 지금 밝혀지고 있는 자료들을 보면 12,3세의 국민학교 여학생들까지 정신대에 끌려갔었으니 거기에 비하면 17세의 여옥은 나이든 축에 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군은 한 곳을 점령하면 닥치는대로 여자를 강간하고 강간 끝에는 대검으로 찔러 죽이는 것이 다반사였다.마치 성도착증환자처럼 여자만 보면 날뛰고 성병이만연되자 그것을 예방하는 목적에서 젊고 깨끗한 조선 소녀들을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징집해 갔던 것이다. 「돌격지상」­.이것은 일본군이 정신대,이른바 종군위안부와 관계를 맺을 때 사용하던 콘돔에 찍혀있던 글귀이다.무엇을 위한 돌격지상이었을까? 오늘의 일본인들에게 묻고 싶은 말이다.
  • “마음아픈 일 참으로 죄송”/일 총리,정신대관련 국회연설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일본총리는 17일 국회연설에서 정신대문제 등 일본이 과거 한국인에게 저지른 잘못을 사과했다. 미야자와총리는 이날 하오 「아시아와 세계속의 일한관계」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해 『우리나라(일본)와 귀국간의 관계에서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수천년에 걸친 교류 속에서 역사상 한 시기에 우리나라가 가해자이고 귀국이 피해자였다는 사실』이라고 전제,『본인은 그간 한반도의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참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체험했다는 것에 대하여 마음으로부터 반성의 뜻과 사과의 기분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미야자와총리는 특히 『최근 종군위안부(정신대)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바 본인은 이를 매우 마음아픈 일로서 참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 2차회담 75분중 22분간 「정신대」 언급/노 대통령

    ◎미야자와 서울여로 이틀째/미야자와,8차례 “정신대사과” 반복/국회연설엔 여야의원 50여명 불참/「무역역조개선」 놓고 실무진 11시간 마라톤 절충 ▷확대정상회담◁ ○…노태우대통령과 미야자와 일본총리는 17일 상오10시3분 청와대본관 2층 집현실에서 양국 각료 및 관계자들을 배석시킨 가운데 양국간 쌍무문제를 다루기 위한 확대정상회담을 시작. 노대통령과 미야자와총리는 2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곧바로 회담장에 입장,사진기자들을 위해 악수하는 포즈를 취한뒤 회담을 시작. 미야자와총리는 『어젯밤 훌륭한 만찬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고 먼저 인사를 했고,노대통령은 『어제 눈이 왔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서설이라 하여 좋은 징조로 생각합니다』라면서 『양국 정상이 만나 훌륭한 미래를 위한 생산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징후를 어제 눈으로 느꼈다』고 좋은 회담결과 창출을 기대. 노대통령은 이어 『보고를 받으니 어젯밤 양국 실무자들은 전혀 잠을 자지 못하고 막바지 협의를 계속했다는데 이는 양국간의 좋은 미래를 위해 옥동자를 낳기 위한 진통이 아니겠습니까』며 『오늘 날씨는 춥지만 활짝 갠 것을 보니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고 강조. 두 정상은 일본사진기자들의 요청으로 다시 한번 악수를 나누는 포즈를 취한뒤 회담을 계속했는데 노대통령은 전날 단독정상회담 결과를 요약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본론인 한일무역불균형시정 및 산업기술협력에 관한 문제로 회담을 진행. 이날 확대정상회담에는 우리측에서 이상옥외무·이용만재무·한봉수상공장관·오재희 주일대사·정해창비서실장·김종휘외교안보수석이,일본측에서는 하타 대장상·곤도 관방부장관·야나기 주한대사·다니노 외무성 아주국장등이 배석. ○…청와대에서 17일 상오 한일정상회담이 끝난뒤 김학준청와대대변인은 『노태우대통령은 회담에서 국민의 관심이 모아져 있는 정신대등 과거문제에 대해 강력하게 말했다』고 전하면서 75분여동안 정상회담에서 약 22분여동안 과거문제가 거론됐다고 설명. 김대변인은 미야자와총리가 이날 회담중 『일본정부는 그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한다는 입장을 취하기로 했다』『진심으로 사과하고 반성한다』『깊은 반성의 뜻을 나타낸다』『깊은 반성과 유감의 뜻을 표명한다』는 등 8가지 표현을 사용하며 사과와 반성의 뜻을 표했다고 전달. 노대통령과 미야자와총리가 정신대라는 단어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사용했느냐는 질문에 김대변인은 『그렇다』고 대답하고 『미야자와총리는 종군위안부 모집과 위안소관리에 구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은 움직일수 없는 사실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고 소개. ▷실무협상◁ 한일 양측은 이번 정상회담의 최대현안인 무역역조개선을 위한 구체방안을 놓고 16일 하오10시부터 17일 2차정상회담 30분전인 상오9시30분까지 11시간30분여동안 마라톤 절충을 벌이는 등 진통을 거듭. 양측 대표들은 정상회담이 임박했는데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미합의 부분에 대해서는 양 정상의 「결단」에 맡기는 형식으로 협상을 종결 ▷국회◁ ○…미야자와총리는 이날 하오2시 국회에 도착,현관에서 박상문국회사무총장의 안내로 의장접견실에 도착,박준규의장을 비롯,민자당의 김영삼대표 및 김종필·박태준최고위원과 민주당의 김대중대표 등 여야인사들과 악수를 나눈뒤 환담. 박의장은 간담회 인사말을 통해 『총리께서 일본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국회에서 연설하시는 것은 한일관계의 지속적이고 우호적인 발전과정에 「따뜻한 꽃길」을 여는 것』이라고 언급한뒤 『한일양국의 유대관계는 역경에서 말하는 「동성상응동기상구」(소리가 같으면 서로 응하고 뜻이 같으면 서로 구한다)하는 것』이라고 치하. ○…이날 하오 국회본회의장에서 있은 박준규국회의장 초청 일본총리 연설에는 민주당측이 참석여부를 소속의원 개인의사에 맡기도록 함으로써 야당은 이기택대표등 50여명의 의원이 불참했으며 민자당측에서도 이종찬의원등이 불참. 이날 미야자와총리의 국회연설내용과 관련,박의장은 지난 8일 야나기 주한 일본대사를 의장접견실로 초치,미야자와총리의 국회연설에 과거사 관련사죄와 정신대문제등 6가지 사항이 포함되도록 요청했다는 후문. ▷공동기자회견◁ ○…양국정상의 공동기자회견은 제2차 정상회담이 끝난후 청와대 본관1층 세종실에서 두정상의 회담결과 발표와 양국기자의 질문 답변순으로 이날 상오11시15분부터 12시5분까지 약50분동안 진행. 이날 회견은 라디오와 TV로 전국에 생중계됐으며 일본의 NHK­TV도 회견실황을 일본 전국에 생중계. 회견은 당초 양국 기자 2명씩 4명에게 질문할 기회를 줄 예정이었으나 미야자와 총리가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 대한 일본측의 입장을 장황하게 설명,2명의 기자질문에 답변하는 것으로 종료.
  • 「말치레」로 끝난 미야자와 방한/한일 정상회담 무얼 남겼나

    ◎역조개선에 무성의… 왜 왔는지 모를 일/「정신대」 관련 “사과”만 거듭… 배상 무관심/“대북 수교 핵사찰 이후에” 답변한건 성과 노태우대통령이 16,17일 두차례에 걸쳐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일본총리와 가진 한일정상회담은 무역불균형및 산업과학기술협력이 양국간 해결해야될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인식을 같이 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이다. 이는 지난해 90억달러에 이르는 대일무역수지적자에 대해 「어쩔수 없는 일」이라는 무성의한 입장을 견지해온 일본이 무역역조의 심각성과 한일선린우호협력관계에 미칠 영향등을 인식,기존의 시각을 교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정부는 지난주말 미야자와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일측과 정상회담 실무회의를 열어 무역수지적자 해소를 위한 5개항을 제시했으나 일측은 국내 사정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시해 왔다.또 미야자와총리도 지난 14일 방한에 앞서 『무역역조는 산업 고도화를 향한 일시적 현상』이라며 『기술이전문제는 어디까지나 기업과 기업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이므로 기업간 해결해야 된다』고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같은 일측의 소극적 자세에 우리 정부는 서울과 도쿄의 외교창구를 풀 가동,일측과 협상및 설득작업에 나섰다.노대통령도 16일 단독정상회담에서 무역의 균형적 확대와 기술협력의 증진을 통해 호혜적 경제협력관계 구축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기술이전등에 정치적 결단을 촉구했다. 그러나 기술이전등에 대한 일측의 입장은 완강했다.양국 실무자들이 16일 하오10시부터 2차회담 직전인 17일 상오9시30분까지 12시간에 가까운 마라톤회의를 가진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우리측이 이번 정상회담의 무역수지적자부분에 대한 기본입장은 적자 해결을 위한 원론적인 합의보다는 개선을 위한 구체적 대응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이 방침은 양국 정상이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하고 양국 무역산업기술협력위원회등을 통해 집중적인 토의를 벌여 오는 6월말까지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작성,보고토록 함으로써 어느정도 충족된 셈이다. 실천계획의 대상으로는 ▲한일산업과학기술재단의 설립과 그시행사업에 대한 정부지원문제 ▲한국상품에 대한 일본시장의 확대 ▲환경분야협력 ▲무역불균형개선및 산업간 교류협력 추진 ▲양국 경제인간 민간 포럼(협의체)구성 ▲투자환경개선,기술이전환경개선 등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제시한 5개항 가운데 3개항의 내용이 부분적만으로 수용된 것인만큼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또 관세인하등 시장접근에 관한 문제는 우루과이라운드(UR)교섭과정에서 일본측이 한국측의 요청사항을 고려키로 했고 한국 건설업계의 일본공공사업 참여는 계속 협의해나가기로 합의,당초 우리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노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국민적 관심을 끌고 있는 일제하 한국인 여성종군위안부등 과거사에 대해 일정부가 그 진상을 적극적으로 규명,응분의 조치 즉,보상을 성실히 해줄 것을 요청,미야자와 총리로부터 명백한 반성과 사과및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노대통령이 17일 확대정상회담 75분 가운데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해 22분여동안에 걸쳐 강력한 톤으로 얘기했으며 미야자와 총리는 8번에걸쳐 사과·사죄등의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사죄부분은 일단락된 것으로 여겨진다. 한일정상회담의 대차대조표를 볼때 무역수지적자완화및 종군위안부부분을 감안하면 「흑자」를 기록했다고 외교문제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그러나 앞으로의 문제는 실천계획 수립및 종군위안부 진상규명및 보상에 대한 일측의 성의있는 태도에 있다 하겠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가능성에 대해 노대통령은 우려의 뜻을 분명히 했으며 미야자와총리는 이에대해 자위대의 유엔평화유지활동(PKO)참여가 군사대국화를 겨냥하지 않고 있음을 다짐했다. 한일 정상은 한반도문제와 관련,남북한당사자 해결원칙을 확인하고 북한의 핵사찰문제에 공동대응하며 일·북수교는 핵사찰이전에 하지 않겠다는 등의 내용에 합의했다.이는 한반도정세와 해결에 관한한 양국간 이견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일측이 이달말 제6차 북경 일·북수교협상에서 남북정상회담개최를 북측에 촉구하겠다는 것은 일본이 한반도 통일에 어떤 형태로든 협조·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한일 양국이 21세기를 향한 미래지향적 선린우호관계를 구축하느냐 여부는 일본측의 인식의 전환이 앞으로 성실한 행동으로 나타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 민자 공천접수 첫날 이모저모

    ◎「매명성」 신청 줄어 5대 1 경재 예상/“무소속 불출마” 서약때 애먹고/최고위원 찾아 얼굴알리기 부산/신청1호 주성돈씨… 「비공개창구」 한산 민자당이 14대 국회의원 공천신청 접수를 시작한 17일,현역의원을 포함해 50여명이 신청을 끝냈다. 전국 지역구수가 2백37개이고 닷새동안 공천신청을 받는 것을 고려할때 비교적 신청상황이 저조한 편이어서 첫날부터 「눈치작전」이 치열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둘쨋날 대거 몰릴듯 그러나 신청서류배부가 16일 하오부터였기 때문에 구비서류를 갖추는데 시일이 걸릴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공천접수 둘째날부터는 다수 신청자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신청서류가 1천여부이상 나간 것으로도 반증되며 공천신청접수 마감때 까지는 1천2백여명의 접수로 5대1 정도의 경쟁률을 나타낼것이란게 당관계자들의 전망. 이 경쟁률은 13대 7대1보다 다소 낮은 것인데 이번부터는 지구당접수를 받지 않기로 한데다 서약서에 입회인도장을 받도록 해 매명성 신청이 많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자금능력 20억∼25억 ○…이날 민자당 공천신청은 당초 상오 9시부터 받을 예정이었으나 아침 일찍부터 접수장에 기다리던 신청자들을 감안,몇시간 앞당겨 새벽부터 접수. 신청1호는 이날 새벽5시 대리인을 통해 당사무처요원에게 가접수시킨뒤 접수와 더불어 서류를 공식제출한 주성돈국민체육진흥공단 상임감사가 차지했는데 주씨는 사고당부인 경남 울산군에 공천을 신청. 두번째 신청자는 전북 김제를 희망한 이건식정조실부실장이었으며 현역 지구당위원장으로는 서울 송파을의 김병태위원장이 처음으로 접수. 현역 의원으로서는 경북 영양·봉화의 오한구의원이 맨 처음 신청했으며 김종필최고위원도 이날 상오 김동근비서실장을 통해 충남지역 1호로 부여에 신청서를 접수시켰다.김최고위원의 기반진술서에는 예금 2억원,부동산 6억원,자금동원능력 3억원으로 각각 기재. 이날 공천신청서를 접수시킨 주요 인사로는 서수종 전안기부장비서실장(경북 경주시),김현동 전청와대 비서관(경북 청송·영덕)김기도 전청와대 비서관(경남 삼천포·사천)임사빈전경기도지사(경기 동두천·양주)등. 당직자로는 김최고위원외에 김윤환총장(경북 군위·선산)이 신청서를 접수시켰고 이정무(대구남)권해옥(경남 합천)김동규(서울 강동갑)함종한(강원 원주시)의원 등 현역 의원도 30여명이 신청. 전국구 의원은 최재욱의원이 신설구인 대구 달서을에 신청했고 석준규의원이 부산서,연제원의원이 서울 영등포갑에 각각 접수. 김영삼대표와 박태준최고위원은 전국구 진출이 유력시되는 탓에 지역구 신청움직임이 없었으며 공직자 등 일부 출마희망자들의 사적 비밀보호를 위해 당기조국에 마련된 비공개 접수창구에는 이날 하오까지 단 1건의 신청도 없어 공천접수가 비교적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느낌. 일부 공천신청자들은 올해 처음 신설된 무소속 불출마 서약서 입회인을 구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는데 7종의 신청서류중 지지기반·재산정도를 기입한 「기반진술서」에는 대체로 자금동원능력을 20억∼25억원으로 적은 인사가 많아 선거자금소요액에 맞춘 듯한 인상. ○“면담사절” 방침 세워 ○…14대총선 공천신청서접수첫날인 이날 당사6층 세최고위원실에는 상·하오를 가리지 않고 김배지 지망생들로 북적대는등 문전성시. 특히 이들은 신청서를 접수한뒤 계파구분없이 최고위원실에 골고루 들러 「얼굴도장」찍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 김영삼대표최고위원실에는 경기 과천·의왕을 노리는 이동진의원(전국구),신영국(경북 문경·점촌),오경의의원(경북 안동시)등 원내인사와 유흥수(부산남갑),이수천(부산남을),나오연씨(경남 양산)등 20여명이 찾아와 자신이 그동안 지역구에서 쌓아온 탄탄한 지지기반을 읍소하며 낙점을 강력희망. 김대표의 상도동자택에도 17여명의 민주계 원내외인사들이 방문,김대표와의 면담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모습을 연출했는데 유흥수전의원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있는 허재홍의원과 원외의 이재옥·윤영탁씨 등이 눈에 띄기도. 또한 박태준최고위원실에는 노인환(경남 산청·함양),이정무(대구남),김영선(경기 가평·양평),권해옥(경남 협천),함종한의원(강원 원주)등과 전국구의 이동진·이상하의원(전남 담양·장성)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최고위원 부속실과 최재욱비서실장 방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 ○공천작업 호텔서 시작 특히 박최고위원은 시내 포철사무실에서 하오내내 머무르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들어 이곳에도 방문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는게 한 측근의 전언. 김종필최고위원의 당사집무실과 청구동 자택에도 공천희망자들로 발디딜 틈이 없기는 마찬가지. 공천희망자들은 신청서를 접수시킨뒤 김윤환사무총장실에도 어김없이 방문하고 있는데 이때문에 김총장은 시간절약을 위해 식사를 외부에서 시켜먹을 정도. 이처럼 공천희망자들의 문전쇄도로 김대표는 이날 하오부터 『공천이 끝날 때까지 일체 면담을 사절하겠다』는 방침을 신경식비서실장을 통해 밝혔으며 김총장도 이날부터 자택에 들어가지 않고 시내 호텔에서 공천작업을 본격준비하기 시작. 한편 계파별 사무처요원대표 12명은 이날 상오 세최고위원실과 김총장실을 차례로 방문,이번 공천에서 실·국장들의 「배려」를 요청해 눈길.
  • 정신대 사죄 대상/북한 출신도 포함/일 교도통신 보도

    【도쿄 연합】 한국인 종군위안부(정신대)문제와 관련,지난 13일의 관방장관 담화에 의한 일정부 사죄는 북한출신자에 대해서도 똑같이 표명한 것이라고 일교도(공동)통신이 16일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정부 고위관계자는 관방장관의 사죄담화에 대해 『북한 출신위안부에도 한국과 똑같은 기분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관방장관이 담화를 발표했을 때 북한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가는 별개문제로 하고 사죄의 대상을 한국민에 한정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 3인 의견/드러나는 정신대 만행에 국민분노 폭발/특별기고

    ◎“말로만의 사죄로는 안된다”/인간존엄성에 걸맞는 보상 뒤따라야/오선주 법박·청주대교수 지난 수세기동안 우리나라와 일본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아왔고 일반국민의 윤리·도덕도 삼강오륜에 바탕을 두어왔다.유교는 남성우위·남성중심사상이 중핵을 이루고 있음으로하여 남성의 혼외성관계에는 매우 관대하였으나 여성의 경우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려 가혹하리만큼 엄격하였다. 여성에게는 자의에 의한 혼외정사란 있을 수 없고 불가항력으로 성폭행을 당한 경우도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병자호란·임진왜란등 외적의 침입으로 몸을 더럽히게된 많은 여성들이 죽음으로 그 인생을 마감하였다.자결하지 못한 경우 주위의 죽음에 대한 권고가 성화 같았고,구차히 목숨을 유지하려면 죽음을 능가하는 사회적 멸시와 천대를 감당하여야 했었다. 그 순결을 생명보다 귀히 여기던 시절인 1940년대초 일제는 우리나라 여성에게 육체적·정신적 학살을 자행하였다.일제가 저지른 갖은 만행중 우리를 분노케하는 가장 못된짓은 우리여성을 동아침략군의 성적노예로 만든 것이다. 탈출을 시도하면 총을 쏘았고,만삭임신부에게도 성폭력을 일삼았다.열두살 어린이까지도 정신대로 끌어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우리는 할말을 잃고 말았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일본총리는 그간 「민간인이 한 일이므로 정부의 채임 밖」이라던 종래의 태도를 바꾸어 「사죄하고 반성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양심이 살아있는 일본인교수가 종군위안부는 군부의 직접 지휘 감독하에 있었음을 방위청관련 기록문서를 들어 입증하였다.또 열두살 제자를 달래 정신대로 보냈던 일인녀교사의 참회어린 고백도 이를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국내에서도 각종 증빙서류들이 발굴·공개되어 정신대의 실체는 더 이상 외면할 수만 있는 일이 아니다. 국민학교 재학중 어린 나이에 위안부로 징집된 여자가 벌써 1백명이 넘는다는 사실이 전국 각학교의 학적부를 통해 확인되었다.해방이후 징집된 자녀의 소식을 알 길이 없어 들끓던 비탄의 소리를 감안하면 정신대 수는 이의 열배 백배 혹은 그 몇배가 넘을지 모른다. 그 숫자는 계속 조사되어 근사치만이라도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그러나 육신이 살아서 돌아왔을지라도 당사자와 가족들의 가슴에 맺힌 한은 그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가족 상봉의 기쁨도 잠시뿐,침략군을 상대했던 과거가 부끄러워 산사의 공양주로 일하면서 남의 눈을 피하다가 평생을 마친 슬픈 사연도 들었다.감히 엽렵한 낭군을 맞이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부둣가 주모로 자포자기한 삶을 사는 기구한 운명의 여성을 만난 일도 있다.그들은 지금 모두 할머니가 되었다.그 백발의 할머니들이 「내 열일곱 청춘을 돌려달라」고 절규하면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있다.그래서 전범 일본이 일찍이 세계의 양심앞에 부끄럽게 여겨야 했을 비인도적 만행을 다시본다. 일본은 이번 총리 방한에 즈음하여 「정신대문제는 사법처리에 의하여」해결한다는 입장이라는 소식도 들린다.일본인들은 어린이에서부터 「혼네」(본음=주의·방침)와 「다데마에」(건전=진심)를 배우며 자란다고 한다.그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어디서부터가 수식어인지 알지 못하고서는 외교적 성공을거둔다는 일도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기술협력이라는 명분으로 기술이전 문제를 논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기술이전을 말하기 전에 그들이 어떻게 기술을 개발했고 또 어떤 방식으로 경제 향상을 도모하였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그들은 근대화과정에서 우리를 수탈하였고,한국을 식민지화 한데서 온 우리의 분단은 결국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살찌웠다. 정신대문제는 천인공노할 비인륜적 인간수탈이다.따라서 정신대보상문제는 결코 「사법처리」운운으로 회피할 수 없는 일이 분명해진다.일왕의 「통석의 염」에서 그랬듯이 총리의 「사죄와 반성」역시 한갖 「다데마에」에 지나서는 안된다.또 일본관방장관이 최근 종군위안부와 관련한 공식담화에서 「한반도」란 말을 거침없이 되풀이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혼네」가 어디에 있는지를 짐작케 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도 여러 사정으로 미온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정부도 정신대실태조사위원회를 설치,운영할 방침이라고 한다.우리 정부의 대응책을 기대하면서 일본에는「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걸맞는 정신적 물질적 보상을 요구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독의 대유태민족 사죄 본받아야/이태영 한국가정법률상담소소장 일본인 자신들이 문화국민이라면 비인간적인 과오에 대해 가슴 아프게 느끼고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독일은 그렇지 않았다. 바이츠제커대통령은 통일독일 취임식에서 조상들이 이스라엘민족을 살해하고 주변 국가들을 얼마나 괴롭혔는지에 대해 언제나 책임을 느끼고 사과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많은 독일 청년들이 지금도 여름이면 이스라엘에서 자원봉사를 하는등 과거에 대해 사죄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어린 국민학생까지 강제로 끌고가 사람을 사람취급하지 않았던 일제만행에 대해 명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방법이 무엇이던간에 최대한의 위로를 보내야 한다.그들의 조상들이 저지른 과오는 백번 천번 사과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정부는 떳떳하게 보상 요구하길/이계경 여성신문 발행인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군인들의 성욕처리의 수단으로 한국의 어린 여성들을 이용하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이같은 행위의 이면에는 여성천시 사상도 깔렸지만 그보다우리 민족을 말살하려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이러한 이유로 여성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신대 문제를 거론해 왔다.다만 국가적인 문제로 받아들인 것이 너무 늦은감이 있다.하나의 사례를 남기는 일이기 때문에 일본정부 상대의 보상청구소송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여성계뿐 아니라 정부도 떳떳하게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면서 사례수집과 자료발굴등 진상조사가 계속되길 바란다.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행동 절실/김천주 대한주부클럽연합회 명예회장 정신대문제가 한일간의 주요쟁점으로 떠올랐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너무 늦었다.국민학생 제자를 정신대로 보낸 일본인 담임선생이 한국에 와서 그렇게 사장됐던 자료를 찾아내고 사죄하는 이 마당에 한일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우리 정부가 전후 보상문제를 철저히 매듭짓고 물심양면으로 정당한 대가를 받았다면 대일 무역적자문제도 오늘날처럼 심각해지지는 않았을것이라고 생각한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생존해있는 피해 당사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용기를 갖고 나서서 생생한 목소리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정부·민간차원 모두가 철저하게 진상을 파헤치는 연대의식을 가져야 할것이다.
  • “중국 격전지서 위안부로 3년”/대천 노청자할머니

    ◎피맺힌 한 꼭 사과 받을터 『모진 목숨이었지만 악착같이 살아 남아 조선땅을 다시 밟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참았습니다.일본총리앞에서 못하는 일본말이나마 진실을 밝혀 사과를 받아내고야 말겠습니다』 미야자와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종군위안부문제가 한일간의 중대한 현안으로 떠오른 시점에서 정신대의 또 다른 산증인으로 나선 노청자할머니(72·충남대천시 대천동 395의 10).그는 15일 하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실을 찾아와 당시의 참혹했던 생활을 되새기며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충남 유성이 고향인 노씨는 17세때인 지난37년 처녀동원령을 받았고 치마를 뒤집어쓰고 피해 다니던중 대전 근처에서 헌병에게 끌려갔다. 『낮에는 창고에 갇혀 있으면서 뚜껑 없는 기차에 짐짝처럼 실려 밤에만 장소를 옮겼습니다』 이렇게 해서 3일 뒤 도착한 곳이 중국 산서성에 있는 오태산이란 곳이었다.이곳에서 그는 끌려온 조선인 여성 38명,일본인 위안부 2명과 함께 3년간 일본군을 상대로 위안부 생활을 강요받았다. 『위안소는 마구간처럼 생긴곳이었고 우리들은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려 나가 하루 40명이 넘는 일본군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노씨가 있던 곳은 아침에 나가면 탄피를 한바가지 정도 거둘만큼 격전장에 인접한 곳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그곳에서 옷행상을 하는 조선인 내외를 만나 그들의 수양부모가 사는 천진으로 보내는 짐속에 숨어 그곳을 탈출하는데 성공했다.천진에서 1년간 숨어살다 해방직전인 1945년 2월쯤 옷장수 수양부모의 연고지였던 충남 강경을 거쳐 부모가 사는 유성땅을 밟았다.부모와 오빠는 당시 살아 있었지만 모두 곧 세상을 떠나고 지금까지 혼자서 생활보호대상자로 어려운 생활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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