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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필품공장 연20∼30일 가동”/귀순 김영성씨 일문일답

    ◎젊은세대 정치에 무관심… 50대이상 “함구”/월남자가족 출간추방… 「이산재회」 걸림돌 ­귀순동기는. 『58년 맏형이 종파분자로 몰려 숙청당했고 1·4후퇴때 두 형이 월남했다는 사실이 70년대초 밝혀져 그때부터 불이익을 받아왔다.그후 체코유학동기생들의 도움으로 재기,89년 55세에 후보당원이 되기는 했으나 크게 나아진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러던중 동독파견근무이후 동구권몰락의 엄청난 변혁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개방밖에 살길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해왔는데 이로인해 베를린 대표단장으로 부터 질책과 감시를 받아왔다.귀국하면 큰형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을 두려워하게됐고 이때문에 탈출을 결심했다』 ­북한의 건축기술수준과 평양과 지방의 차이는. 『6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괜찮았으나 65년이후 설계전문교수들이 성분불량으로 숙청된 이후부터 설계원 처우가 낮아 인재고갈상태에 있다. 만수대혁명박물관등 기념비적인 건물과 살림집들과 건축설비나 자재등에서 엄청나게 차이가 나지만 그나마 거의 모든 건설이 평양에 집중되고 있다.때문에 남포·원산 등 일부 지방도시를 제외하고는 지방의 건축물들은 60년대 지어진 「성냥곽같은」조립식 주택들이 고작이다』 ­김정일비서도 50년대말 동독 항공군관학교에 유학했다고 하는데. 『김정일이 한때 모스크바대학으로부터 유학제의를 받았으나 「나는 김일성종합대학서만 공부하겠소」라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그가 외국유학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북한주민들의 김정일에 대한 평가는. 『새세대들은 아예 정치에 무관심하다.이론과 실제의 괴리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반면 50세이상의 나이많은 사람들은 최근 상황이 나빠지고 있음을 의식해 아예 의사표시를 하지않는다』 ­월남가족이 있는 북한주민에 대한 대우와 이산가족상봉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월남자의 가족으로 자기 고향에 사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된다.그들은 모두 산간오지로 추방당했다.때문에 이산가족의 명단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월남자의 가족은 최저생활계층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최근 일본이나 미국에 가족을 둔 사람은 이들의 방문을 「구원의 천사처럼」기대하고 있다.단번에 집이 새로 생기고 잘하면 평양으로 이주시켜 주기 때문이다』 ­북한의 현경제실상은. 『현재 완전 가동중인 공장은 금광이나 시멘트공장 군수공장등 외화벌이용 공장에 불과하다고 보면 된다. 청진의 경우 ▲청진제강소 5∼6년전부터 가동완전중지 ▲김책제철소 4개 대형용광로중 1개만 가동 ▲청진화학섬유공장 20% 가동 ▲생필품공장 김부자생일선물공급시 20∼30일정도 가동등이 최근 나타난 엄연한 현실이다.
  • 옐친 “무기팔아 생필품난 극복”/러연 노동자에 밝혀

    【니주니 타길(러시아)이타르 타스 연합】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8일 러시아의 군수품 생산기업은 탱크 등 무기를 해외에 판매,경화를 획득하는 방법으로 생필품란을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옐친은 제철·제련산업으로 유명한 니주니 타길시 「우랄바곤자보드」 군수공장을 이날 방문해 노동자들에게 러시아의 소비재부족과 관련,『자체 생산하고 있는 T-72탱크 등의 무기를 해외에 내다팔아 경화를 획득하는 방법으로 생필품란을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옐친은 이어 이들 군수공장이 무기를 해외에서 팔아 얻게 될 경화의 소유권과관련,『물자를 판매해 얻는 수입의 80%는 해당기업이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옐친의 이같은 발언은 냉전의 붕괴로 과거 소련치하에서 과대성장한 러시아 군수산업의 나갈 방향을 제시한 것이어서 소련제 무기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일부 제3세계 국가의 대응과 관련,귀추가 주목된다.
  • 1백만 관동군에 「정신대」 8만 동원/일 여성단체서 증언집 발간

    ◎조선인위안부 「기모노」입혀 위장/“군수공장 취직” 구실… 한번에 2천명씩 만주로 일본의 여성단체들이 지난 1월 개설했던 직통전화 「종군위안부 110번」에 걸려온 제보를 토대로 증언집을 발간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의 전후 책임을 확실하게 하는 모임」「종군위안부 문제를 생각하는 모임」「종군위안부 우리 여성 네트워크」「재일 한국 민주여성회」등 일본 여성단체들은 직통전화에 걸려온 제보 2백35건을 토대로 4개월에 걸쳐 제보자와 직접 만나 사실여부를 확인하거나 추적조사를 벌인후 그 내용을 책자(1백88쪽)로 엮어 냈다. 이 책자에 담긴 일부 증언내용은 다음과 같다(증언자들은 당시의 직책). ▲군의(78세)=1940년 관동군 사령부 조선후방부대에서 사령부의 가족과 보급감부의 진료를 담당했다. 「관동군 여자특수군속 복무규정」이라는 두꺼운 규정서는 위안부의 취급에 대해 상세히 규정해 놓고있다.여자 특수 군속이란 조선인 위안부를 말하고 있다. 규정서에는 이들에게 월 8백엔의 급료 지급과 함께 피복·침구·화장품등을 대여하도록 하고 있다.관동군 보급감부는 위안부의 「보급」업무도 맡고 있다. 철도로 여자들을 운송했다.보통 열차 한칸에 2백명씩,10칸의 화차를 통해 2천명을 한꺼번에 운송했다. 만주철도의 열차는 넓어 열차 자체가 「팡팡열차」(위안소)가 되기도 했다.국경군은 「팡팡열차」를 일정한 기간까지 두도록 명령서를 시달했다.국경의 숙박업소들은 모두 관동군의 위안소가 되어버리고 민간집까지 접수해 「팡팡 숙」(위안소)를 만들었다. 당시 전 중국 해남도까지 위안부의 수는 8만명,관동군 수는 1백만명이었다.성병에 걸리면 곤란하기 때문에 일요일 외출시에는 「돌격 1번」(콘돔)을 지급했다. ▲경비대원(75세)=1938년 중국 양자강 상류의 악주(현재 악양)에서 철도 경비부대에 근무했다. 위안소에는 일요일만 갈 수 있으며 병사 한사람이 대부분 5,6분정도 위안소에 머무를 수 있었다.위안부 한사람당 하루 20명 정도의 병사를 상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위안부의 식사는 부대의 취사병이 만들어 보냈다.중국인 위안부는 중국옷을,조선인은 일본인 옷을입고 있었다. ▲통신 교육대원(73세)=나는 1944년 만주 흑용강성 부금에서 근무했다.거기에는 18∼20세의 조선인 위안부 20명이 수백명의 병사를 상대하고 있었다. 한사람의 조선인 위안부를 도망시킨 일이 있다.그녀는 경성고전 여학교를 졸업한 18세 처녀였다. 아버지가 조선총독부 고관으로서 학교에서는 관동부 사령부 근무를 약속했다는 것이다.「관동군 전시 특별 여자 정신대」라고 했으나 실제로 와보니 위안부였다며 그녀가 눈물을 흘렸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그녀가 마침 고열로 앓고 있어 호위헌병을 불러 「결핵」이라고 말해 해방시켰다. 조선인 여성은 경성역에서 2천명이 모여 열차에 태워져 만주의 신경에 하차 시켰다.거기서 20∼30명씩 나누어 다시 열차에 태워 각 지역으로 운송했었다. ▲국민학교 교사(71세)=1929년 8세때 부모들과 함께 조선으로 건너가 전라북도에서 소학교(국민학교) 교사를 했다. 조선에서 3번째 근무지인 이리의 일출소학교에 있을 때 교장의 명령에 따라 8명의 제자(13세)를 여자정신대로서도미야마(부산)현의 군수공장에 보냈다. 당시 지시는 집안이 가난하고 몸이 튼튼한 어린이를 선발하도록 했기 때문에 수업료를 못내는 어린이 집을 방문,부모의 승낙을 얻어냈다. 그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정신대로 보내진 8명은 「심신이 모두 상처를 입어 사람들앞에 절대로 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확실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종군위안부를 의미한 것으로 알았을때 몹시 충격을 받았다.
  • “집없어 더 서글퍼”/정신대 할머니들

    ◎대책협신고 41명중 유주택은 1명뿐/“역사 희생물… 사회냉대로 외로움” 『한순간이라도 내한 몸 맘편히 쉴 곳이 있었으면…』 지난 6일 지금까지 자신의 눈비막이가 되어준 남양주군 진정읍의 무허가집을 헐어야 한다는 읍사무소 직원들의 2차통고를 받고 쓰러져 교문리병원에 입원치료중인 강덕경할머니(64).일제에 의해 정신대로 끌려가 역사의 희생물이 되어 버린 그는 사회의 냉대속에 또 다른 희생을 강요 당하고 있다. 진주태생인 강할머니는 14살때인 42년 공장에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일본인 담임선생의 말에 속아 일본에 근로정신대로 끌려 갔었다.도야마현 군수공장지대에서 선반일을 하다 힘든일과 굶주림을 견디기 어려워 탈출을 시도하다 헌병대에 붙잡혀 이 때부터 해방될 때까지 종군위안부 생활을 했다. 45년 어느 군사항구의 골방에 갇혀있다 해방소식을 접하고 밀항선을 타고 귀국했으나 가족을 찾지 못하고 채소행상,식당일등을 전전하며 지금까지 객지생활을 해왔다. 현재는 주변 비닐하우스농가의 일을 도와주며 논두렁 한 가운데있는 물탱크실 한쪽에 동네 청년들이 마련해 준 1·5평 남짓한 방에 살고 있지만 농경지가 개인에게 입찰되면서 이 방마저 헐릴 위기에 놓이게 됐다. 지난해 경운기에서 떨어져 오른팔을 다쳐 일은 커녕 물도 길어다 먹지 못한다는 강할머니는 『햇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골방이지만 안식처였는데 늙고 병든 몸을 이끌고 당장에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정신대대책협의회에 신고해온 종군위안부 할머니들 41명중 자기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며 모두가 주거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새마을취로사업을 하며 장독대밑에서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7만원을 내고 살고 있는 오류동의 문할머니(66)는 보증금 50만원을 더 올려달라는데 마련할 길이 없는 딱한 처지.또 성남의 심미자할머니(69)도 지역구 모의원의 배려로 그냥 살고 있던 집을 헐고 상가로 만들게 되어 이달말까지 비워야 하는등 딱한 처지는 마찬가지다.
  • 「9백일 포위」이겨낸 영웅도시엔 찌든 삶이(러시아에선 지금…:6)

    ◎타공화국서 식품반입 끊겨 “최악고통”/실업자 수만명… 주민20%가 연금생활/외자유치부진으로 민영화도 “게걸음”/시당국선 “생필품값 안정추세…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 물가자유화이후 모스크바와 함께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도시가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구레닌그라드)이다.4월말인데도 연일 내리는 눈과 핀란드만에서 불어오는 음습한 바람탓도 있겠지만 한마디로 도시 전체가 우중충하고 사람들은 잔뜩 움츠려 전혀 활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한 때 번성했던 러시아제국 수도로서의 옛영광을 얼핏얼핏 느끼게 하는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네프스키대로,키로프스키대로 등 큰 길가에는 어김없이 물건을 팔러나온 시민들의 긴 줄이 모스크바와 흡사하다.차이가 있다면 모스크바에 비해 가격은 조금씩 더 비싼 반면 물건들은 질·양 면에서 모두 훨씬 뒤떨어진다는 점이다.사람들이 들고 있는 물건들이 일용잡화 외에 빵·우유·치즈·통조림 등 주로 「먹는 것」이라는 사실이 현재 이들이 당하는 고통을 짐작케 한다. 한때 소련제1·2의 도시들이 어쩌다 당장 먹는 문제에 이렇게 고통을 당하게 됐을까.가장 큰 원인으로 이들은 농산물을 직접 생산하지 않는 공업지대들인데 연방이 무너지면서 여타 공화국에서 오던 농산물 공급이 끊겼기 때문이다.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인접 에스토니아공화국이 농산물 주공급원이었는데 그것이 끊겨버렸다.에스토니아는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와의 국경에서 철저하게 짐검사를 하며 농산물의 유출을 막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전형적인 군항·산업도시이다.이곳 시청자료에 의하면 구소련 산업생산량의 40%를 담당했고 연방해체 이후 지금은 러시아 전산업생산량의 90%가 이곳에서 만들어진다.그리고 이중 90%이상이 직·간접적으로 군수산업과 연관돼 있다. 러시아공화국 전역에 공급되는 TV·가스오븐·냉장고·세탁기 등 가전제품은 대부분 이곳에서 생산되는데 그런 탓에 이곳 가정들은 이들 제품들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문제는 먹을게 부족하다는 것인데 1월 가격자유화 이후 대부분의 가정들은 치즈·빵 한조각씩으로 끼니를 때우는게 보통이다.시장에서 농산물을 파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루지야·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등 코카서스지방사람들인데 이들이 시장을 거의 독점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시민들의 감정이 아주 좋지 않다.연금생활자인 한 노인은 『겉으론 싹싹하지만 돌아서면 배신하고』 『2차대전 땐 도망이나 다니던 자들이 농산물이 좀 있다고 갖은 행패를 다 부린다』며 코카서스 사람들을 욕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공화국내에서 연금생활자 비율이 가장 높은 속칭 「회색도시」이다.시청 대외경제협력위의 수노노프위원장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구 5백만명중 1백30만명이 연금생활자라며 이들에 대한 생계대책 마련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데카브리스트 광장」부근 한 아파트 촌에는 실제로 『물건을 사러갈 기력이 없는 노인들이 죽어가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호소쪽지들이 각동 현관 입구 곳곳에 나붙어 있었다. 실업자문제도 심각하다.시청 노동고용위원회에 공식으로 등록된 실업자수는 1만3천명.하지만 수노노프 위원장은 등록되지 않은 사람까지 합치면 수만명에 이르고 현재 월급을 절반정도씩 받고 있지만 일거리가 없어 사실상 실업상태에 있는 군수산업종사자들이 수십만명에 달한다고 했다. 호자레프위원장은 현재 군수공장중 「키로프」(트랙터·가스터빈),「로보」(광학기계),「스베틀라나」(전자장비),「레니네츠」(전파장비)등은 세계최고수준의 기술자와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하지만 기계설비중 곧바로 민수용으로 전환가능한 것은 40% 미만이고 그나마 대부분 낡은 모델이어서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생산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호자레프 위원장은 내다봤다. 결국은 새로운 시설투자에 외국자본이 참여해 주는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그래서 91년 6월 시전역을 「자유시장 경제지역」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외자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시집행위에서 채택한 「92년도 사유화계획」에 따라 금년안에 3천개의 국유기업을 강제매각한다는 계획아래 「사유화 특별기구」를 만들고 상반기중 식품상점·식당·서비스업·빌딩임대업 등을 우선 매각하고 있다. 수노노프위원장은 현재 외국인의 1백%투자가 가능하고 이에따라 4월현재 합작사업으로 들어와 있는 외국인 회사수가 1천3백50개.이중 3백개는 1백% 외국인 소유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거창한 장기개발계획이 추진중인데 반해 당장 시급한 식량난 해소에는 뚜렷한 대책이 없는 것 같았다.『연금생활자들에 대해서는 서방원조물자를 집중배정할 계획』이고 『식품값이 다소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으니 조금만 더 참아달라』는 것이 시청측의 입장이었다. 볼셰비키혁명의 산실이었고 2차대전 때는 독일군의 「9백일 포위」를 견뎌내 영웅도시 칭호를 받은 구소련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시회주의가 무너지기 무섭게 이렇게 시민들이 고통받고 활기없는 도시로 전락했다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든다.
  • 일제징용 한인여성 2명 임금청구소(단신패트롤)

    ◎일 정부에 최초로 제기 ◇2차대전중 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일본군에 의해 강제연행돼 군수공장에서 1∼2년간 혹사당했으나 임금을 한푼도 받지 못했던 한국여성 2명이 23일 일정부를 상대로 임금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도쿄 지방재판소에 소장을 제출한 사람은 이종숙씨(61·강원도 속초시3차 주공아파트201)와 최봉녀씨(64·강원도 춘천시 삼천동 산8). 이씨는 지난 44년6월 일본인 동사무소 직원이 집으로 찾아와 『너야말로 진짜 일본인이다.나라를 위해 정신대로 나가라』며 강제연행,일도야마(부산)현의 군수공장인 후지고시(불이월)강재에서 45년7월 귀국할 때까지 하루 12시간씩 철관연결도구 청소작업등으로 혹사당했으나 회사측은 통장에 액수만 적어 줄뿐 임금을 한푼도 지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근로 정신대원으로 강제연행된 한국인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해 임금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한국말 배워 진심으로 사죄하고 싶다”

    ◎제자 정신대 보낸 일인교사 이케다씨 내한/그 고초 생각하며 참회의 나날 보내 『죽기 전에 나이 어린 제자들을 군수공장 정신대원으로 보낸데 대해 꼭 사죄하고 싶습니다』 일제말기 서울 방산국민학교(폐교)교사로 재직하던중 자신이 담임했던 한국인 학생 6명을 일본 도야마(부산)후지코시(불이월)군수공장 정신대원으로 보냈던 이케다씨(지전정지·69·여·일본 나양현 생구시거주)는 28일 12살 안팎의 어린 나이에 부모곁을 떠나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을 제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기전에는 눈을 감을 수 없다고 참회의 뜻을 밝혔다. 3박4일의 일정으로 지난 26일밤 서울에 온 이케다씨는 이날 아침 열차편으로 부산으로 떠나기 전 기자와 만나 국내언론에 자신의 이야기가 보도된 이후 『근로정신대로 갔던 제자들이 종군위안부였던 것처럼 비쳐져 걱정하고 있다』면서 『당장이라도 사과의 뜻을 전할 수 있지만 한국말로 해야 진심이 보다 잘 전달될 수 있을 것 같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현재 테이프를 구입해 열심히 한국말을 배우고 있다는 그는 『의사소통이 될만큼 한국말을 배우게 되면 제자들을 일본에 초청해 정식으로 사죄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위로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 러시아/모스크비치 95% 궁핍/정부선 외화조달 위해 무기 판매

    【모스크바 AP 연합】 러시아연방이 시장경제로 급격히 이행함에 따라 모스크바시민들 가운데 95% 가량이 빈곤선 이하의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6일 모스크바시 부시장이 밝혔다. 러시아TV방송은 유리 루즈코프 모스크바 부시장의 말을 인용,모스크바 시민들중 95%가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모스크바는 극빈생활자들을 위해 오는 20일쯤 시영상점망을 개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스크바 AP 로이터 연합】 러시아는 군수공장을 민간 용도로 전환하기 위한 외화를 조달하기 위해 비축무기 판매를 열망하고 있다고 군수산업민영화국가위원회의 미하일 바즈하노프 위원장이 6일 말했다.
  • 중국 군수공장/민수전환 박차/10억달러 투입

    【북경 UPI 연합】 중국은 모택동 집권 당시의 주요 안보정책중의 하나인 군수공장 배치정책을 수정,산간오지에 있던 무기생산공장들을 산업중심지역내로 이동배치하고 이들 무기공장을 민수용공장으로 전환하는데 10억달러 이상을 쓰고 있다고 중국관영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가 5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중국이 지난 60년대에 세워진 2천개의 무기공장 가운데 1백21개 공장들을 폐쇄했거나 이동배치했으며 오는 95년까지 또 다른 1백15개의 무기공장이 재배치될 것이라고 전했다.
  • 새질서 속의 한·미 안보협력(사설)

    오늘의 세계적 시대상황은 구질서가 붕괴되고 신질서는 미처 정립되지 못한 과도기적 상황이라 할 수 있다.세계는 군축과 평화공존의 화해로 나아가고 있으나 곳곳의 저항과 마찰이 그것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가 유독 그러한 역행의 지역이 되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과도기는 기대와 불안이 동반되는 불확실한 시기다.현명하게 대응하면 바람직스러운 평화공존의 질서를 정착시킬 수 있고 자칫 잘못하면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중요한 시기인 것이다.20,21일 양일간 서울에서 개최되는 이번 제23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는 그런 중요한 시기의 회의이기 때문에 특별히 관심이 더 간다. 미소의 핵감축선언및 미국의 한반도를 포함하는 범세계적 핵철수 선언에도 불구하고 핵무장의 고집을 버리지 않는 북한의 저항으로 동북아의 긴장은 완화되지 않고 있는 오늘이다.북한의 핵이 가장 중요한 의제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설득과 압력으로 불가능하다면 군사적 수단에 호소할 수도 있다는 보도들이 어느 정도의 진실성을 띤 것인지 알 길은 없으나 가능성을 부정할 수도 없는 일이다.그것이 안고 있는 위험을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그런 불행한 지경에 이르기 전의 해결이 가장 바람직 할 것이다.그런 기본인식을 전제로 하는 논의와 대응이 강구되기를 우리는 바란다. 핵문제 뿐만이 아니다.북한은 경제파탄의 위기 속에서도 군수공장은 24시간 가동시키고 있으며 군비증강은 게을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그런데도 일방적 화해분위기에 도취하는 것은 금물이다.한국방위의 한국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스런 일이다.그러나 일방적 전술핵 철수나 주한미군감축등 한국방위력의 변화내지 약화를 초래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선 충분한 논의와 철저한 보완의 신중한 대응이 절대 필요하다.이번 회의가 안고 있는 과제의 하나인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한미안보회의는 시야를 한반도에만 국한시켜서는 안되는 시기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동북아안보 틀속의 한반도안보를 생각할 때인 것이다.북한을 제외하면 소련과 중국의 군사적 위협은 크게 감소된 것이 사실이다.대신 상대적으로 일본의 위상이 급부상되고 있다.미국은 일본으로 하여금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대신하게 하려한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막연히 추측만 하고 반발만 할 것이 아니라 한미의 공동우방인 일본의 새질서 속에서의 군사·안보역할에 대해서도 솔직하고 구체적인 논의가 있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아시아제국의 확고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아시아에서의 정치·군사적 역할에 계속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통일한국을 상정한 동북아 질서속의 일본의 역할과 한국의 역할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라 생각한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보상황은 변하고 있다.북한이라는 위험천만의 변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보다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안목의 새로운 동북아및 한미안보를 생각해 보는 것도 유익한 일일 것이다.
  • 외언내언

    제2차세계대전 직후 전승국이었던 미소가 패전의 독일에서 제일 먼저 가져간 것이 과학기술두뇌였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미국으로간 독일로켓의 아버지 폰 브라운박사의 경우를 들지 않더라도 이때 미소가 데려간 수많은 독일 과학기술자들이 전후 미소과학기술및 무기개발경쟁의 기초가 되었던 것 또한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2차세계대전 직후 독일에서 있었던 그일이 지금 소련·동구에서 일어나고 있다니 세상 무상인가.냉전의 패전때문.사회주의경제는 붕괴되고 과학기술두뇌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중단되자 과학두뇌실업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생계가 막연해진 이들이 대접받는 해외로의 이주를 희망하고 있고 서방연구소,기업등이 이들을 스카우트 하고 있는 것이다.◆가장 심각한 경우는 역시 소련.프랑스의 르 몽드지는 「소련의 연구·실험실에 대지진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89년의 50명에 이어 90년엔 2백50여명의 저명한 소과학자들이 서방연구기관들과의 장기 계약으로 소련을 떠났다.「우주팽창론」의 창시자 린데박사에 대한 미스탠퍼드대학과 프랑스의 CERN연구소간의 유치경쟁은 최근의 일.◆「소련과학자들의 엑서더스현상」이라든가 「2차대전종전 이후 최대의 두뇌유출」등으로 표현되고 있다.소련은 연간 4백31억달러(86년)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왔으며 연구원만도 1백50만.기초이론과 군사첨단과학기술 수준이 높아 일본까지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형편이며 보수도 서방세계의 3분의 1이면 족하다는 것.◆문제는 서방선진국이 안전상 수용을 꺼리는 핵과학자들.핵군축등으로 실직상태에 있는 것이 10여만명인데 이중 1만여명이 핵용병이 될수 있는 위험수준의 과학자들.이들이 핵개발을 원하는 중동의 석유부국이나 한반도의 북한으로 유입되거나 됐을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것.북한이 이들을 노린다는 보도도 있었다.체니 미국방도 7일 우려를 표시했을 정도.국민은 굶기면서 핵고집은 꺾지않고 군수공장은 쉬지않는다는 북한이니 정말 걱정이다.
  • “사할린서 한국 영화촬영진 만나 남행 결심”

    ◎귀순 김용씨 기자회견 일문일답/북,경제난 외면 무기생산 독려/50개 회사 차려 무역활동 혈안 북한로동당 산하 무역회사에서 외화벌이담당 책임지도원으로 일하다 한국으로 탈출한 김용씨(33·평양시 모란봉구역 서흥동 48반 17층 4호)는 7일낮 서울 앰배서더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의 실상과 망명동기등을 자세히 밝혔다. 김씨는 북한에 노모와 부인및 아들 1명을 두고 있다.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망명동기는. 『김정일의 친필지시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사할린에 갔으나 달러가 없어 낭패를 겪었다.궁여지책으로 사업수행자금도 조달하고 개인적으로 돈도 벌겸해서 중·소간 송어교역중개에 손을 대려다 이 사실이 정무원직속무역회사 「오산덕총국」직원에게 탄로나는 바람에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망명을 결심하게 됐다.또 당시 사할린에서 현지촬영을 하던 남한영화 「명자 아끼꼬 쏘냐」촬영진들을 만났는데 이들로부터 남한실상을 들은 것도 망명을 결행하게 된 동기의 하나다』 ­북한이 최근 대외무역을 중시하면서 많은 무역회사들이 활동하고 있다고하는데 그 실상은. 『지난 86년부터 각 기관별로 외화를 자체 조달토록하는 「독립채산제」가 도입되면서 각기관소속의 무역회사가 생겨났다.현재 평양시에 30개,지방에 20개등 50여개의 독자적 무역회사가 활동중에 있다』 ­북한의 경제가 매우 나쁘다고 하는데 군수산업은 어떠한가. 『북한은 주민의 경제난을 아랑곳 않고 군수산업발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이들 군수공장은 자강도 강계시 및 성강군 등지에 밀집돼 있는데 각종 탄알은 「93호공장」에서,로켓탄등 신형무기탄두는 「26호공장」(대외적 명칭은 남문뜨락또르공장)에서,첨단전자무기는 「11호공장」에서,무기생산에 필요한 특수강은 「8호제강소」에서 생산된다.또 자강도에는 예비식량저장창고 및 대형식료공장이 건설돼 있다.평양시 모란봉에는 모란봉구역관내 주민모두를 대피할 수 있는 지하대피소가 있는데 올봄 처음 공개됐다』 ­식량난은 어느 정도인가. 『지난해 가을에는 넉달동안 배급이 끊어진 곳도 많았으며 온 가족이 도토리를 따기 위해 휴가를 내기도 했다.지난 가을 지력을 높이기 위해 흙깔이를 했으나 이번에는 농약이 부족,벌레피해를 막지 못해 올해도 풍년을 기대하기 어렵다.게다가 김일성이 지난 88년 평양에서 열린 비동맹회의때 「자급자족」을 이룬다고 큰소리 쳤기 때문에 식량수입도 공개적으로 할 수 없는 처지다』
  • 전 김일성 통역관겸 고위외교관/고영환은 말한다:6

    ◎“원자탄 만든다” 70년대초 소문 파다/핵개발과 군수산업/박천에 지하 핵연구소… 불서 기술 도입/“핵정보 극비”… 김 부자등 5명밖엔 몰라/개천군 지하군수공장 “하루종일 걸려도 다 못봐” 북한의 경제사정이 어렵다고 군수산업 역시 별것 아니겠구나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이와 관련,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지난 87년 4월15일 조총련의 한덕수회장이 김일성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사절단을 이끌고 입북했었다.당시 북한 고위층을 만난 한회장은 『현재 북한주민들의 생활이 형편없다는데 회의를 느끼고 조총련을 이탈하려는 동포가 많아 고민이다.무슨 좋은 방도가 없겠느냐』며 고층을 털어놓은 일이 있다.이에 대해 북한 고위층은 『공장 한곳 안내할테니 보고나서 얘기합시다』라며 긴말을 하지 않았다. 이때 한회장이 안내된 곳은 평남 개천군 각암리에 있는 「1월18일 기계공장」(일명 각암공장)이었다.이곳은 모든 생산시설이 지하에 설치된 군수품제조창인데 미사일·탱크·발동기가 주종제품이다. 아파트단지 지하에 공장이 세워졌기때문에 개천에 사는 주민들 가운데서도 이 공장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가 않다.현재 만경대 약전기계공장(지대함미사일 생산)설계기사로 한때 각암공장에 근무한 바 있는 친형 고방남(47)에 따르면 지하 땅굴은 하루 종일 걸어도 다 못돌아볼 정도로 넓다는 것이다.한덕수회장은 이 공장을 돌아본 뒤 『북조선이 이렇게 힘있는 줄 몰랐다.이제 제대로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의 핵무기개발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으나 북한 내부에서도 이 문제는 극비사항이어서 자세한 내막을 알고있는 사람은 김일성부자를 포함,5명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북한이 핵무기를 이미 개발했는지 또는 어느 정도의 개발단계에 와 있는지에 대해 정확히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북한의 핵무기문제가 북한사회,특히 북한외교부 관리들 사이에서 이슈화된 것은 이미 85년경부터다. 『곧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이심전심으로 외교관들사이에 전해진 것도 그 무렵이다. 또 이때부터 『스탈린이 잘한 것은 원자탄을 제때 개발해가진 것』이라는 말들이 나돌았다. 북한 외교관들은 80년초까지만 해도 남북의 경제력이 엇비슷하다고 생각했으나 85∼86년을 고비로 남한 우위가 확실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고 그때부터 패배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이때 외교관들 사이에 『「상용」(CLASSIC)무기같은 것으로 대응하기는 어려울 텐데….그렇다면 핵무기가 이미 개발된 것이 아니냐』는 루머가 떠돌았으며 이것으로 상당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결국 핵무기개발을 「체제보존의 마지막 수단」으로 생각하는 심정은 통치자나 관리들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북한에서는 원자로 설계팀등 각종 기술대표단이 프랑스에 와서 원자로에 관한 기술을 「뽑아갔다」.이와관련,북한외교관들은 북한당국이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의 규제가 비교적 「무른」 프랑스및 오스트리아를 대상으로 핵무기개발에 필요한 기술과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판단했었다. 특히 지난해 오스트리아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이사회가 열릴 무렵엔 핵사찰문제와 관련한 긴급 전문이 해외공관에 빈번히 내려왔다. 전문내용은 핵의 강대국 독점및 핵사찰반대에 대한 주재국의 지지획득을 독려하는 것이었다. 외교관들 사이에서 핵무기개발문제가 이슈화된 시점은 80년대 중반부터지만 일부 사람들이 핵에 대해 수군거리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앞선 60년대초부터이다. 북한은 59년도에 김일성종합대학에 핵물리학과를 설치한 것을 필두로 김책공업대에도 핵물리학과를 신설했으며 60년대 중반 평북 박천에 지하핵연구시설을 설치했다. 당시 김일성은 『왜 간부 자식들이 핵물리학과에 가지 않고 정치경제학부만을 지원하느냐.간부자제들 가운데 똑똑한 아이들은 핵물리학과에 넣어라』라고 직접 지시,많은 학생들이 「기대에 부풀어서」 지원했다.이들은 졸업후 모두 박천의 핵연구시설에서 근무했는데 부모친척도 못만나고 평양출입도 자유롭지 못하다 하여 대단한 불평을 늘어놓았다고 들었다. 『핵물리학과에 가면 박천땅 귀신이 된다.이미 원자탄을 만들었다』하는 소문은 65∼72년 사이 평양외국어학원 다닐때와 72∼77년 평양외국어대학 재학시 들었는데 학생들의 대부분이 북한 고위층의 자식들이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 나도는 이야기들은 80∼90%가 맞을 정도로 정확하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해볼때 북한은 이미 60년대 중반부터 핵무기개발에 착수했으며 80년대들어 남북간 경제력의 차가 현격히 벌어지면서 더욱 박차를 가한 것으로 판단된다.
  • “소는 「한·일경제모델」 본뜰때”/소인이 본 소 장래/특별기고

    ◎유리 타브로프스키/일정기간동안 권위주의적 통치 불가피/혼란 막게·통제·시장경제 병행돼야 쿠데타가 조기진압됨으로써 소련은 국가적 재앙을 맞을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그러나 쿠데타를 일어나게 만든 정치·경제·윤리적인 제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곡물수확량은 금년에도 감소했고 인플레는 급등하고 있으며 겨울은 다가오는데 석탄·석유는 턱없이 부족하다. 안정을 보이는 부문도 없지는 않다.일부 기간산업의 생산량이 늘고 있고 많은 군수공장들이 TV·냉장고등 소비재를 생산하고 있다.특히 단절위기까지 갔던 공화국들의 경제한계가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다. 난파선 같은 소련경제를 버리고 뿔뿔이 제갈길을 가기보다는 힘을 모아 배를 수리하는게 더 유익하다는 생각들을 하기 시작한 것같다.많은 공화국들이 자기들끼리 경제조약체결을 서두르고 있다.특히 고무적인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 등 대공화국들이 이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세력들이 승리함에 따라 이제는 보다 번영되고 안정된새 소련방건설을 위한 「묘수」를 찾아나설때다.고르바초프대통령이 시작한 페레스트로이카는 공산독재체제를 해체하는데는 큰 역할을 했지만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새체제 건설에는 적합치 않음이 드러났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한국·일본·대만·독일등 독제체제를 청산하고 민주주의와 경제적번영을 이룩한 나라들의 모델을 채택하는 것이다. 독제체제로부터 민주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일정기간 권위주의통치를 도입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같다.고르바초프대통령이 쿠데타가 일어나기전 경제·정치적 위기를 타개하는데 미온적인 방법으로 대처했다는 비난을 받았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경제부문도 다른 나라의 경험을 배울 필요가 있다.한국·일본 등이 중앙집중적이고 군사위주의 경제를 자유시장경제체제로 바꾼 경험은 소련에게 중요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나라와 달리 소련에는 70여년동안 모든 자유시장원리가 금지됐었다.잊었던 자본주의의 과거를 되살리고 문명세계의 경험을 다시 배우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개개인이 갖고 있는 뿌리깊은 평등주의의식도 새 국가건설의 큰 장애요소이다.이 평등의식은 곧 부유한 이웃에 대한 증오심과도 통한다. 엄청나게 높은 군사비지출이 그동안 국가경제를 마비시켰기 때문에 군산복합체의 즉각 해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도처에서 들리고 있다.일본과 같이 방위비를 GNP의 1% 수준으로 낮추자는 요구도 있다.1% 수준으로 떨어지지야 않겠지만 군사비 삭감과 대폭적인 병력감축이 단행될 것은 분명하다. 경제적으로 이제 다시 중앙집중식 관리체제로 되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지금의 경제난,산업중심지들간의 거리·통신·수송상의 문제들을 고려할때 경직된 「고전적 사회주의」계획경제가 다시 등장할 가능성은 없다.나는 개인적으로 중도의 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즉,합리적인 중앙계획경제로 수송·에너지·군사부문생산은 통제를 하되 소비·서비스산업은 자유시장경제원리에 맡기는 것이다. 향후 수년간 소련경제는 동아시아·미국·유럽등 특정모델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고 미래지향적이되 기존체제의 합리적인 점도 공존시키는 형태가 좋을 것이다.70여년 지속해온 사회주의경제를 하루아침에 모두 버리려다간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게 된다. 이번 쿠데타를 기점으로 해서 최소한 10년의 과도기는 거치게 될 것이다.러시아를 비롯한 몇몇 공화국에서 권위주의체제가 등장,소위 정치적 과도기까지 거치게 될 것이다.이 정치·경제적 과도기간 동안 소련국민들은 다소의 어려움을 감수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비상위」 강경파 3인 권력전면에/크렘린 실세는 누구인가

    ◎크류치코프 KGB의장·야조프 국방·푸고 내무/권력중추장악… 「파워트리오」 부상/「대행」야나예프는 「얼굴마담」 인듯 소련 개혁의 기수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몰아내고 최고권력을 차지한 것으로 보이는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8인 가운데 누가 실세일까. 고르바초프 실각 이후 서방세계는 잠정적으로 권력장악에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비상사태위원회」의 실체 파악에 분주하다. 지난 19일 쿠데타 직후 비상사태위원회는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54)이 헌법에따라 대통령 직무를 수행한다고 밝혀 일단 야나예프가 소련의 얼굴을 대표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야나예프는 급진개혁주의자인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등 고르바초프의 복귀를 주장하는 개혁지향세력들의 반발과 분리독립을 거세게 요구하고 있는 공화국들의 움직임을 제어,「비상위」가 지키고자 하는 연방체제를 형성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러시아태생인 그는 법률·역사학자 출신으로 지난해 12월 고르바초프에 의해 부통령직에 임명되기 전까지는 중앙정치무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당시 그를 부통령으로 승인했던 인민대표회의는 1차투표에서는 과반수이상이 그를 거부하기도 했을만큼 정치적인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인물이다. 야나예프가 명목상이지만 대통령직무를 수행하게 된것은 이번 쿠데타의 대외적 모양새를 고려할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주도세력들이 온건적인 야나예프의 정치적 성향을 고려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이러한 점은 「비상위」가 쿠데타 직후 밝힌 성명에도 드러난다.「비상위」는 성명에서 쿠데타의 정당성을 고르바초프의 무리한 개혁정책으로 인해 피폐화된 경제회복과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공화국들로 인해 무너지는 연방체제 고수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 성명의 내용은 그동안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으로 입지가 상당히 약화된 군부등 보수강경파들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어 이번 쿠데타의 실세가 누구인지 엿볼 수 있게 한다. 즉 크류치코프 KGB의장(67),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67),보리스 푸고 내무장관(54)등 이른바 「보안 트리오」가 이번 쿠데타를 주도했으며 앞으로 소련의 대서방정책과 국내경제정책등을 추진하게 될것으로 추측된다. 지난 87년 서독의 루스트군이 소련방공망을 뚫고 모스크바 광장까지 경비행기 세스나기를 몰고와 인책경질된 스콜로프에 이어 국방장관에 오른 드미트리 야조프는 중앙아시아군관 사령관과 극동사령관을 역임했다. 지난해 12월,내무장관직에 오른 푸고는 공산당내 강경파의 선두주자로 지난달 미·소양국의 START(전략무기감축)협정체결과 때를 맞춰 리투아니아공화국 수비대원 7명을 사살한 사건의 배후에 내무부가 개입됐다는 설이 나돌 정도로 과격파로 알려져있다. 크류치코프 KGB의장은 워싱턴 포스트지가 CIA정보를 인용,소련 권력서열 2인자로 부상했다고 보도한 인물로 지난 67년 이래 줄곧 KGB에 몸담아 왔다. 이들 「보안트리오」와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는 인물로 발렌틴 파블로프 총리(53)를 들 수 있다. 재정통으로 보수강경파인 그는 G­7회담에 참석,서방원조를 요구했던 고르바초프를 비난해 서방기업인에게는 요주의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 「보안트리오」외에 이번 쿠데타의 핵심배후세력으로 올레크 바클라노프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거론되기도 한다. 바클라노프는 우크라이나 태생으로 지난 83∼89년 동안에는 우크라이나 하르코프에서 미사일 부품을 만드는 군수공장 책임자 역할을 하기도 했던 군·산복합체의 대표격인 인물. 일본 외무성은 그가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군·산복합체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번 쿠데타의 실세로 분석하기도 했다. 이밖에 바실리 스타로드브체프 농민동맹위원장(59)과 국영기업및 산업시설협회장 티자코프는 농민들과 광공업 종사자들의 동요를 막기위해 이번 「비상위」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보안트리오」등 보수강경파가 주도세력인 이번 쿠데타세력은 군·경찰등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않아 속수무책인 옐친을 비롯한 개혁주창세력을 누르고 당분간은 계속 소련을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경제정책에 따라 나타난 경제난을 빌미로 쿠데타를 벌인 만큼 「빵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 쿠데타의 성공여부는 판가름될 것이다.
  • 세계의 군축환영 무드에 찬물/미·소,“핵탄두 재사용” 안팎

    ◎비용절감 명목 운반수단만 폐기/소 실익 적어 강경파 반발 거셀듯 미소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내용중 일부감축대상 핵무기의 재사용을 허용하고 있음이 뒤늦게 밝혀져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당초 전세계는 START체결로 40년 냉전시대를 마감하고 동서협력시대로 접어들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었다.이협정은 실제로 소련의 핵탄두를 1만1천개에서 7천개로,미국은 1만2천개에서 9천개로 전체 전략핵탄두의 30%를 7년간 3단계로 감축시키는 것을 주요골자로 하고있다. 그러나 지난15일 워싱턴 포스트 보도와 국무성대변인 해명에 따르면 미국은 감축대상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나 핵탄두를 반드시 「파괴」시켜 「감축」시킬 필요는 없다는 주장을 협상에서 관철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무성의 리처드 부커 대변인은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가 사실이라고 밝히면서,그러나 전략핵무기의 이동수단인 장거리지상및 해상탄도미사일 발사대와 수백대의 폭격기들은 파괴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양측은 1천1백개를 초과하는 이동식ICBM은 폐기시키되 그밖의 미사일과 핵탄두는 파괴시킬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미사일발사대와 수백대의 폭격기등 전략핵무기 운반수단은 파괴시키되 ICBM·SLBM과 여기에 장착될 핵탄두는 「잠정적으로」재사용할수 있게 그대로 남겨둔다는 논리다. 여기에는 미국의 감축대상미사일이 다른용도로 쓰일 수 있는 반면,소련의 미사일은 이러한 용도변경이 기술적 어려움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미국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감축대상 핵무기처리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미국측 실무자들은 이런 판단을 자국의 미사일을 전략방위구상(SDI)을 보조하는데 활용하고 또 핵탄두부품을 만드는 군수공장들의 일부폐쇄로 생기게 될 부족분을 보충하기 위해 다시 이용할 수 있게 해야한다는 논리로 소련측을 설득시켰다고 볼 수 있다. 협상초기부터 감축대상 핵탄두의 「전면폐기」를 주장했던 소련측은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논리를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고 어물쩡하게 수용한듯 보인다.이러한 이면에는 소련이 미국으로부터 경제협력을 얻어내기 위해 훨씬 많은 양보를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소련은 이번 START체결로 자원배분면에서 군사비의 상당부분이 경제개혁과 민간부문으로 이전이 가능하게 됐다. 이번 핵탄두재사용으로 소련내 강경파들의 반발은 물론 지난해 5월 양국정상이 합의한 다탄두미사일등 START협정에서 제외된 대량파괴력을 지닌 무기들에 대한 추가감축협상은 당분간 힘들것으로 보인다.
  • “화해시대”… 세계군수산업 사양길

    ◎미·영·불 등서 신병기개발 잇단 취소/작년 재래식무기거래 35% 격감 한때 로켓발사기를 생산했던 체코의 무기생산공장은 지금 포크리프트 트럭을 만들어내고 있고 영국의 한 군수산업체는 첨단무기용으로 만들던 감지장치를 환경보호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스웨덴의 거대한 군수산업체는 인력을 최소한 24% 감축할 계획이며 아르헨티나는 미사일개발계획을 취소했다. 냉전시대의 종언은 이처럼 세계군수산업을 위축시키고 있다. 지난 수십년동안 늘기만 했던 세계의 국방예산은 4년째 내리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1990년 세계국방예산 총규모는 9천5백억달러로 25년전에 비하면 70%가 늘어난 상태이다. 스톡홀름 소재 세계평화연구소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 세계의 재래식무기거래는 2백17억달러로 35%가 줄었다.세계군비지출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과 소련은 무기구입이 각각 6%와 10% 감소했다. 미국·소련과 서유럽의 경우 군비지출이 금년에 5%정도 줄고 1995년에는 15∼30%축소될 것으로 전망한 이 보고서는 『미국의 거대한 군수산업은근본적인 기구축소와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 급속히 빠져들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의 주요 무기수입국으로 1985년부터 5년동안 1백74억달러 상당의 무기를 수입했던 인도는 1990년에는 무기수입이 15억달러에 불과했다.반면 일본의 군비지출은 1981년의 2백6억달러에서 1990년의 3백5억달러로 꾸준히 늘고 있으며 앞으로 3년동안 이러한 증가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세계국가들은 전반적으로 새 무기개발계획을 폐기하거나 개발비용이 덜한 무기로 대체하고 있다. 미국은 A­12어벤저 전투기개발계획을 취소했고 영국은 새 핵잠수함건조를 포기하는 대신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잠수함 트라팔가호의 능력을 개선하기로 했다.프랑스는 50억달러의 이동식 핵미사일계획을 취소했고 아르헨티나는 7년전에 시작한 콘도르­2 중거리 로켓개발을 중단했다. 군수산업위축의 결과로 서유럽의 경우 1백50만 군수산업체 인력중 1987년 이후모두 1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1995년까지 적어도 30만명의 실직자가 더 생겨날 것으로 예상된다. 소련은 1990년에 군수산업체 인력 4백25만명중 50만명이 줄었다.소련은 4백22개군수공장을 1995년까지 민수용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세계3위의 무기수출국인 중국도 일부 군수산업체를 민수용으로 바꾸고 있다.그러나 이란·사우디·파키스탄·이라크·태국·북한 등에 아직도 무기를 팔고 있다.
  • 소,한국과 군수공장 합작 모색/방한 노조간부 밝혀

    【내외】 소련은 군수산업의 민영화추진과 함께 소련군수공장과 한국기업들간의 합작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최근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 소련의 한 노조간부가 12일 밝혔다. 소련직맹(노총) 대표단을 인솔,지난 7월26일부터 8월2일까지 방한했던 파라셍코 소련광산노조위원장은 이날 모스크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소련직맹대표단의 방한에서는 한소노조간의 교류협력발전 및 합작기업창설 문제가 논의됐다고 말했다.
  • 소,군수공장 6백곳 민수전환/시체르바코프부총리

    ◎4년간 1천2백억불 투입/소비재 생산도 180% 확대/실업자 매년 38만 발생할듯 【모스크바 AP 연합】 소련 정부는 앞으로 4년간에 걸쳐 국내 군수공장중 6백개를 냉장고,TV,VCR등 각종 소비재 생산공장으로 전환시킬 계획이라고 6일 발표했다. 블라디미르 시체르바코프 부총리는 이날 관영 타스통신 보도를 통해 이같이 말하고 군수공장의 민수용품 생산 전환에는 약 1천2백64억달러의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며 이로 인해 생기는 실업자들의 수도 한해 38만명에 이를 것으로 덧붙였다. 시체르바코프 부총리는 이어 소련 경제의 재건은 군수산업을 전환시키려는 정부계획의 실현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경고했는데 이같은 계획중에는 현재 노후화된 국영 항공 아에로플로트의 여객기들을 최신 기종으로 바꾸는 것을 비롯,수출상품 선적용 선박의 건조·확대 및 소련이 자랑하는 우주개발계획의 상업화 등이 포함돼 있다. 그는 또 이 계획은 앞으로 4년간 소비재 생산의 1백80%확대와 현대적 의학장비의 2백50% 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이와 함께 이 기간중TV는 1천5백만대,VCR은 2백40만대,냉장고는 8백70만대를 생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시체르바코프 부총리가 밝힌 이같은 계획은 지난해 12월 소련정부가 발표한 군수공장의 대규모 민수용 전환계획의 일부인데 이에 따라 지금까지 6개 군수공장 및 군수용품을 생산하던 34개 민간공장들이 민수용품 생산으로 공장기능을 전환시켰으며 3백여개의 군수공장 건설계획이 중단되었다.
  • 징용한인 미불임금/2천9백억엔 공탁/일 법무성

    【도쿄 연합】 2차대전중 일본의 광산이나 군수공장에 강제연행된 한인에 대한 미지불 임금 5천만엔(물가상승 감안 환산할 경우 2천9백억엔)이 전후 4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법무국에 공탁된 채로 있다고 일 아사히(조일)신문이 10일 보도했다. 공탁의 경우 보통 10년으로 시효가 소멸되지만 한인의 공탁에 대해서는 일 법무성이 「시효에 의한 수속을 하지 말도록」 통지를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거액이 공중에 떠 있는 상태라고 이 신문은 설명했다. 「조선인 강제연행 진상조사단」(단장 김기철)은 2차대전이 끝날 당시 한인 노동자 수는 32만9천명이었기 때문에 당시 자료를 근거로 1인당 1백50엔씩만을 계산해도 5천만엔에 이른다고 밝혔다. 2차대전 직후인 1946년 일 후생성은 전국에 산재해 있는 한인단체들의 일본 기업에 대한 배상청구를 배제할 목적으로 법무성의 전신인 사법성과 협의,각 지방 장관 앞으로 한인 노동자의 임금과 퇴직금,적립금 등을 일괄해서 공탁하도록 각 기업에 대해 지도할 것을 시달했다. 각 기업은 이 지시에 따라 미지불 임금 등을 각 지방 법무국에 공탁했으며 공탁금은 일본 은행에 보관돼 환불청구가 있을 경우 본인과 대조한 후에 지불하기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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