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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의 심판」 기다리는 동독공산당/18일 실시되는 총선 전망

    ◎20여개 정당 난립속 사민당,선두로 급부상/기세꺾인 공산당,“항복은 없다”막판 총력전 통독문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동독최초의 자유총선이 18일 실시된다. 총선을 불과 10여일 앞둔 중반전에 접어든 현재 보수우익과 중도파ㆍ좌파등 20여개의 정당들은 서독정당들의 지원까지 받아가며 열띤 득표활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잇다. 서독의 콜총리와 빌리 브란트전총리 등을 비롯한 서독 각정당 당수들은 이번 동독총선결과가 오는 12월 실시될 서독총선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중시,이미 정강정책이나 이념면에서 자신들과 비슷한 성향의 동독정당들과 「짝짓기」를 이루고 지원에 나서 이번선거는 서독정당들의 「대리전」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이번 총선에 참가하는 정당들중 사민당(SPD) 기민당(CDU) 민주사회당(PDSㆍ구공산당)등이 현재까지 선두주자로 꼽히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력한 차기집권당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사민당. 지난달 중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사민당은 53%의 지지를 얻어 서독콜총리의 지원아래 24%의지지를 얻은 「독일연맹」이나 민주사회당의 12%를 큰 격차로 압도하고 있다. 지난 46년 소련에 의해 강제로 공산당에 흡수됐다 지난해 10월 호네커 정권이 붕괴되면서 부활한 사민당은 지난달 23일 이브라힘 뵈메를 당수겸 차기 총리후보로 선출했으며 빌리 브란트전서독총리를 명예당수로 추대,서독 사민당과의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민주적이고 사회적이며 환경문제를 중시하는 시장경제」를 정강정책으로 내세운 사민당은 또 지난달 25일 서독에 대해 4월중 통독위원회를 구성,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통일독일헌법의 제정을 제안해 놓고 있다. 사민당은 이번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다 할지라도 정권의 안정을 위해 다른 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할 방침이지만 공산당(민사당)의 연정참여는 배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민당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기민당ㆍ독일사회연합(DSU)ㆍ민주각성당 등 3개 동독우익정당들은 지난달초 서독콜총리의 강력한 지원아래 「독일동맹」이라는 선거동맹체를 결성,사민당에 대항하고 있다.「독일동맹」은 현재 서독 기민당과 기사당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통일된 독일이 나토에 잔류해야 한다』는 콜총리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자유와 번영,그리고 사회주의 재등장 절대반대」라는 선거 구호를 내세우고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독일동맹」은 또 국경문제에 관해서도 폴란드의 현국경을 존중하는 콜총리의 주장에 찬성하고 있다. 또 「독일동맹」속에 포함된 기민당은 자신이 한때 공산당의 위성정당이었다는 지적에 대해 『동독 사민당이야말로 과거 40여년간의 공산당지배에 대한 연대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콜총리는 동독선거전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독일동맹」의 동독내 선거유세를 계획하고 있으며 지난달 20일 에르푸르트시 선거유세에 참석,하나의 독일을 위해 「독일동맹」측에 표를 던져 줄것을 호소했다. 한편 지난 46년이후 동독을 지배해온 공산당에서 간판만 바꿔단 민주사회당은 갈수록 인기를 잃어가고 있으며 다른 정당들이 서독정당들로부터 자금및 선거유세등을 지원받고 있는데 비해 외로이 고군분투하고있다. 「민주적인 현대 사회주의 정당」으로 변신했음을 선언하고 지난달 25일 한스 모드로브 현동독 과도정부총리를 총선에서 차기총리후보로 지명한 민주사회당은 『항복이란 있을 수 없다』며 정력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서고 있으나 선거후 야당으로 전락할 전망이다. 이밖에 서독의 지원을 거부하고 동독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좌파세력인 「노이에스 포룸」 「인권 평화동맹」등은 「동맹 90」을,넬켄당ㆍ통일좌익당ㆍ독일공산당ㆍ기타 마르크스주의 단체등은 「통일좌익」을 각각 결성,선거에 임하고 있다. 또 동독의 독립을 추구하는 동독녹색당과 독립여성동맹은 서독녹색당의 지원아래 「녹색 선거동맹」을 결성했으며 중도 성향의 자유민주주의당(FDP)ㆍ독일포룸당ㆍ자민당(LDP)등도 서독 자민당의 후원으로 「자유민주동맹」을 결성했다. 이들 좌파군소정당들은 통화 통합 예고 이후 화폐예금에 대한 불안과 실업불안등이 점차 동독인들 사이에 심화되자 동독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자신들의 정강정책을 활용,최대한의 득표작전을 펼치고 있으나 얼마만큼의 표를 모을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1천1백50만명의 유권자가 임기4년의 의원4백명을 뽑는 이번 총선은 비단 통독문제의 가속화뿐만 아니라 양독시민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인식의 공감대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 소ㆍ동유럽의 자유선거(사설)

    민주화개혁을 서두르고 있는 소련ㆍ동유럽 제국에 전후 처음이 되는 서구식 복수정당제의 자유민주선거바람이 불고 있다. 4일 소련에서는 이미 공산당의 참패를 가져온 리투아니아 공화국에 이은 러시아,백러시아,우크라이나 등 소 전체인구 50% 이상을 차지하는 3대 공화국의 최고회의및 지방의회 자유선거가 실시되어 예상했던대로 개혁파가 현저한 진출을 보였다. 동유럽에선 통독문제가 최대의 쟁점인 동독의 자유총선이 18일 실시되는 것을 시발로 헝가리(25일),루마니아(5월20일),불가리아(5월중),체코슬로바키아(6월8일) 등 제국이 금년 상반기중에 일제히 자유총선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번 소련ㆍ동유럽 자유선거는 공산권에서는 전후 처음 실시되는 참된 의미의 자유민주선거라는 점에서 뿐 아니라 정치ㆍ경제적 개방ㆍ개혁이후 처음 실시되는 개방과 개혁에 대한 국민 전체의 직접적인 평가 내지는 심판이란 점에서 특별히 주목되고 있다. 소련의 경우 이번 선거는 공산당 독재의 포기및 서구식 다당제 도입과 토지등 사유재산제도의 인정및 대통령중심제 실시 등 정치ㆍ경제적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고르바초프서기장에 대한 신임투표적 의미까지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선거결과는 물론,개혁파에 대한 압도적 지지가 예상되는 나머지 10여개 공화국 선거결과를 발판으로 하는 고르바초프의 정치ㆍ경제개혁은 앞으로 보다 본격화하고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에 대한 소련국민 일반의 공식적이고도 직접적인 추인 내지는 지지의 의미를 갖는 것이며 완강한 보수파의 반대에 대한 효과적인 방어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유럽의 경우 금년 상반기중에 일제히 실시되는 자유총선은 우선 89년 하반기의 국민적 봉기사태가 빚은 결과를 정리하고 새출발 하기 위한 의미와 성격의 총선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동유럽 제국은 공산당 독재체제의 붕괴이후 권력 내지는 힘의 공백사태속에서 무정부상태의 혼돈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파괴는 이루어졌으나 건설은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자유총선을 통한 새 정부의 구성이 이루어진 후에라야 새로운 시작이 가능할 것이며 이 때문에 선거일정들이 앞당겨 지기도 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형편이지만 경험도 없고 제대로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시되는데 따른 혼돈과 부작용이 동유럽 각국 총선의 공통된 특징이 되고 있다. 복수후보의 출마는 인정되었으나 제대로 조직을 갖춘 정당다운 정당이 없는 상황이며 그동안 절대적인 조직의 위력을 발휘해온 공산당마저도 유명무실의 군소정당으로 전락,살아남기에 급급한 형편이다. 이름을 바꾸었든 안바꾸었든 기존 공산당후보의 몰락사태는 이번 동유럽 총선의 또하나의 특징이 될 것으로 진작부터 예상되고 있다. 이번 동유럽 총선에서 특히 중요하고 비상한 관심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은 역시 동독총선이다. 콜 서독수상,브란트 전사민당수 등의 동독 선거유세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민주사회당으로 이름을 바꾼 동독공산당의 궤멸이 예상되고 있다. 동독 총선을 주목하는 것은 이같은 공산당 궤멸의 결과가 독일인들의 조기통독 추진노력의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 틀림없을 것으로보기 때문이다.
  • 수권능력 불투명…안정보수 선택(일본 「보혁 새정국」:상)

    ◎사회당,「비전」 제시못해 추격 주춤/군소정당 대패… 양당체제로 진입/“동구변혁등 능동대응” 국민의식도 작용 일본국민은 최후의 순간 보수안정을 선택했다. 불리한 상황속에 스타트한 집권자민당이 안정다수 의석을 획득,대승속에 막내린 제39회 일본 중의원선거결과는 한마디로 일본국민들의 「위기감의 표현」으로 집약될 수 있다. 지난해 7월 참의원선거에서의 「여야역전」이래 일본정국은 구심점을 잃고 있던 상태였다. 야당측은 「악법 소비세폐지」를 내세워 정부ㆍ여당에 대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으며,미일무역마찰,농정실패,정치개혁,토지ㆍ주택문제등을 이슈로 국민속에 파고 들었다. 도이 다카코(토정다하자) 사회당위원장이 리드해 온 야당측의 「추격바람」은 거셌던 반면,참의원에서의 여소야대현상은 계속 자민당의 정국운영에 제약요소로 작용해왔다. 가이후(해부)정권은 취약한 당내기반으로 인하여 정국을 주도하지 못했다. 중의원 해산ㆍ총선거일정 결정및 앞으로의 정국운영 방향도 다케시타(죽하)전총리ㆍ가네마루(김환) 전부총리등 당내 실력자에 의해 결정되었으며,국민적 불만의 표적인 소비세개선안 작성때도 주도권을 갖지 못했었다. 더구나 그의 불분명한 대외정책으로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하기 어려울것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가이후총리의 외교역량에 대한 의문과 불안은 대단했다. 참의원에서의 여소야대현상을 해소하기에는 향후 6∼12년이 소요되며,그동안에는 야당과의 타협과 협조가 불가피하다. 더구나 지난 연말이래의 국제정세는 동구의 민주화개혁,몰타 미소정상회담을 통한 동서화해구축등 급변이 계속됐으나 일본은 국내정국에 얽매여 국제정세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따라서 일본 국민들의 위기감은 팽배해갔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체제선택문제」를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의 자민당의 승인이 체제선택문제가 유권자들에게 어필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시대감각에 뒤진 선거 슬로건이었다는 지적도 없지않았다. 최대의 승인은 역시 위기상황 아래서의 일본 국민들의 단결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측은 비전있는 뚜렷한 정책을 국민들에게 제시하지 못했으며 야당간의 선거협력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 최대의 노동단체 「신운합」(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의 정치적 영향력도 일본국민들에 의해 거부되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전총리를 낙선시키기 위해 신운합이 (군마) 3구에 내세웠던 시라이시(백석건일)후보는 낙선됐다. 신운합은 당선이 불확실한 야당후보를 연합후보로 내세워 당선시킨뒤 본래의 소속 정당으로 복귀시킨다는 전략을 추진하려 했으나 각당의 반응이 여의치 않았으며 마땅한 인물도 없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신운합은 군마3구 이외에도 오사카(대판) 1ㆍ6구,효고(병고)5구 등에서 후보를 내세웠으나 효고5구의 요시오카(길강현치)후보만이 당선하는데 그쳤다. 야당간의 선거협력이 부진했던것은 사회당의 후보 대량공천(공인 1백48명,추천 10명)으로 야당간 경합이 격화되었으며 종래 선거협력의 중심추진체 역할을 맡아왔던 공명당이 일련의 의혹사건 관련으로 소극적인 자세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도이위원장의 개인적인 인기에 힘입은 사회당은 종전 의석 83석을 크게 늘린 1백36석을 획득한 반면,공명당은 54석에서 45석으로 부진했으며 공산당도 26석에서 16석으로 10석이나 줄었다. 해산당시 25석을 확보하고 있던 민사당은 14것으로 대패,창당이래 30년만의 최대 위기를 맞아 나가스에(영말영일)위원장의 진퇴 문제로까지 발전했다. 사회당을 제외한 일본야당이 이처럼 군소정당으로 전락한 것은 사회당이외의 야당은 야당으로서의 메리트를 잃었다는 의미이며 앞으로의 일본 정국이 양대2당 체제로 접근,운영되리라는 것을 뜻한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해산당시의 의석 2백95석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당초 예상보다는 훨씬 많은 2백75석을 얻음으로써 「복조의 현상」을 나타냈다. 여기에 자민계 보수 무소속의원 15명을 합치면 당분간 안정된 단독정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전후35년간 지속돼온 자민당 일당지배체제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전망은 사회당을 비롯한 야당측의 정책부재에 기인한다. 야당측의 최대 공격목표였던 소비세는 국민생활에 어느정도 정착되어 수정작업만이 남았으며,리크루트 스캔들은 이미 「풍화」되었음을 이번 선거는 실증했다. 새로운 정책의 제시없이 소비세 폐지ㆍ리크루트 비판만으로는 선거에 승리할 수 없었다. 가이후 도시키 자민당총재는 선거결과가 밝혀진 19일하오 NHK­TV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국민들이 자민당의 정책을 지지하고 장래를 충분히 인식한 가운데 다시 정권을 담당하도록 맡겨준 것』이라는 소감을 피력했다. 비전의 제시가 없는 정치구호,비판을 위한 비판만으로는 사회당 도이위원장의 말처럼 산은 움직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 일 자민 낙승… 안정의석 확보/중의원 선거

    ◎2백75석 차지… 사회당 1백36석 【도쿄=강수웅특파원】 제39회 일본 중의원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원활한 정국운영에 필요한 안정다수의석인 2백71석보다 4석이 많은 2백75석을 획득,대승을 거뒀다.〈관련기사4ㆍ5면〉 이번 선거에서의 승리로 자민당은 공인후보 2백75명과 자민계 보수무소속 당선자 15명 등 2백90석을 확보,단독정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총선거 이후의 특별국회는 오는 27일 소집되어 총리지명선거를 실시할 예정인데 현재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총리의 재지명이 확실시되고 있으며 이에따라 가이후총리는 즉시 새로운 조각에 착수,제2차 가이후내각을 출범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에앞서 자민당은 20일 간부회의를 열어 당3역인사를 단행할 방침인 데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 현간사장의 유임은 확정적이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이외에 사회당도 해산당시 의석 83석을 1백36석으로 크게 늘리는 대약진상을 보였으나 공명당은 45석,공산당 16석,민사당은 14석을 얻는데 그쳐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자민당의석 과반수의 유지인가,아니면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 때처럼 여야역전의 실현인가』가 최대의 초점이었던 이번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은 소비세문제를 비롯,정치개혁ㆍ무역마찰ㆍ농정실패 등 각종 이슈에서 수세에 몰렸으나 동유럽 격동의 영향과 급격한 변화를 원하지 않는 일본국민들의 위기의식에 힘입어 예상 이상의 승리를 거두었다. 일본 사회당은 도이(토정)위원장의 개인적 인기와 참의원선거 이래의 「추격바람」을 타고 의석수를 크게 늘리는데 성공했으나 야당간 협조부재ㆍ정책제시 미흡 등으로 여야역전을 실현시키지는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 나카소네 전총리등 리크루트 관련의원 14명중 13명이 당선됐다. □일 중의원 의석분포 정 당 당선자 해산전 참의원 자 민 275 295 109 사 회 136 83 73 공 명 45 54 21 공 산 16 26 14 민 사 14 25 10 사민련 4 4 진 보 1 1 25 무소속 21 7 계 512 495 252 (결원17)
  • 벼랑에 선 공산주의/변혁물결 집중탐구:1

    ◎시장경제ㆍ다당제로의 전환 몸부림/「노멘크라투라」군림에 국민불만 폭발/레닌의 국가론에 반하는 개혁 불가피/동구 자유선거 실시땐 공산당 붕괴는 시간문제 동구와 소련의 격변이 거듭되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서방의 시각은 여러갈래며 또한 심상치 않다. 공산주의 내부 모순을 극복해 가는 개혁의 소용돌이라는 측면이 있는가 하면 상당히 위기적인 모습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불확실성을 더해가고 있는 공산권의 변혁을 국내 학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 서병철(외교안보연구원교수),박명호(국민경제제도연 연구위원),안정수(경희대교수),박영호씨(한신대교수)등 네분의 다양한 입장의 분석을 차례로 소개한다. 1,공산주의채택 이전으로의 복귀 공산주의국가들이 사회주의 이념을 국가의 통치원칙과 경제운영방식으로 채택한 것은 소련이 종주국가로서 1917년 볼셰비키혁명 때였던 것을 제외하고는 대개의 경우 2차대전이 종결된 1945년 이후 약 반세기 걸친 현실 사회주의 기간이다. 독일 제3제국과 일본군국주의를 패망시킨승전연합국중 하나인 소련은 전리품으로 할당받은 동유럽 국가에서 해방군으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공산주의를 심는데 성공하였다. 전후 귀국한 런던망명정부 요인들과 기존브르좌 정당 및 공산주의자들이 참여한 첫번째 선거에서 소련에서 훈련된 공산당원들은 소수밖에 정계에 진출하지 못하였으나 소련은 이들을 보안담당 내무 및 국방등 주요부서에 심어 놓고 비공산세력을 제거하여 결국에는 친소정권이 수립되어 공산화되도록 하는 수법이 활용되었다. ○팽배한 반소사상 이와 같은 과정은 독일점령군에 저항하여 독립을 쟁취할 유고슬라비아와 내전을 통하여 공산화할 중국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동유럽국에서 예외없이 거치게 되었는데 국민들이 원치않는 공산체제를 외세에 의하여 불가항력적으로 채택한 결과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보면 동유럽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민주화 추세는 본래의 희망이 충족되어 공산화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 가는 순리에 따른 역사적 흐름이다. 소련영향권에 속한 나라들에 있어 반소사상이 팽배해 있는 현상은공산주의를 강요한데 대한 적개심의 발로이다. 또한 프롤레타리아가 주인이라는 공산국에서 기대했던 「근로자의 열광된 노동」이 있어 본적도 없는 사실은 공산이념의 본질적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소련은 고르바초프의 선견지명때문에 난처한 입장에서 구제되었다고 보겠다. 그는 1987년 11월 볼셰비키혁명 70주년 기념연설에서 『소련공산당은 동맹국의 정책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소련과 다른 사회주의 국가간의 관계가 수직에서 수평으로 바뀌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는 또한 1988년 12월 유엔총회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이 나라사정에 맞는 노선을 채택할 수 있다고 연설하여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을 재확인하였다. 이러한 정책변화를 선언해두지 않았던들 소련은 동유럽동맹국들이 시장경제와 다당제를 채택하여 고삐를 벗어나는 것을 허용할 명분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망령을 다시 불러들여 무력을 동원하여 간섭할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극히 난감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을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긴장완화의 산파로서 서방진영에서 높이 평가받고 동유럽에서는 개혁을 허용한 유공자로서 「고르비선풍」을 일으킬 만큼 인기가 높고 소련에게는 체면을 살려준 선각자이다. 2,개혁의 복합적 원인 독일철학자 카를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상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역사적 유물론」을 통하여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의 변천은 역사적 법칙으로 어느 누구도 중단시킬 수 없으며 자본주의는 몰락할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오늘날 공산권에서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들에 의하여 잘못된 예측의 결과이었음이 증명되고 있다. 정치이념으로 무장되어 전쟁까지도 불사하도록 만들었던 장본인인 마르크스가 수모를 피할 수 없게 된 이유는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모든 분야의 복합적인 요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침체ㆍ낙후만 초래 공산주의 정치는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정당이 국가위에 군림하여 모든 권력을 장악한다는 제한성을 애초부터 갖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뜻이 제대로 정치에 반영될 수 없다. 따라서 통제와 감시가 주된 통치수단이 되고 국민들의 불만은 축적되어 기회만 있으면 터질 수 있는 상태에까지 발전하였다. 경제적으로도 사회주의건설을 위하여 중앙계획통제체제속에서 당지도부에서 국민경제행위를 엄격한 규격속에 묶어 운영한 결과 침체와 낙후만을 초래하였다. 국민에게 생활의 질을 높여주기 위하여 과감한 경제개혁이 불가피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자본주의와의 체제경쟁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물질적 풍요를 바라는 국민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하여 시장경제를 채택할 수 밖에 없다. 사회주의국가에 있어 이론상의 지배계급은 노동자와 농민이며 이들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공산주의 정당을 통하여 특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근로자를 중심으로 한 일반국민은 하층계급을 형성하고 당간부 및 정치ㆍ경제 엘리트로 구성된 지배층에 대층되는 만년 서민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론과 실제가 다른 현실에 불만족하는 국민의 울분이 축적되어 과감한 개혁만이 문제해결의 방법이 되었고 신흥귀족으로 형성된 「노멘크라투라」를 혐호하는 국민감정은 개혁을 가속화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3,시장경제로의 변화 마르크스는 사회경제발전 이론속에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변천하기 위한 조건을 제시하고 사회주의가 고도의 경제성장을 가져온다고 선언하였는데 레닌과 스탈린이 이를 바탕으로 공산주의 중앙계획통제 경제체제를 확립하였다. 일사불란한 지휘체제속에 움직이는 이제도는 제한된 자원과 노동력을 단기간안에 동원할 때에는 그런대로 효험이 있었으나 경제구조가 다양화되고 국제협력이 확대되면서 필요로하는 활력을 주지 못하여 침체만을 유발하는 제도로 탈락하였다. ○개인 창의성 결여 중앙계획제도가 풍부한 천연자원과 잠재노동력을 가진 광활한 땅 소련에서 조차 쓸모없는 것으로 낙인찍힌 것은 고르바초프가 집권한지 1년만인 1986년 2월 개최된 27차 당대회에서 과감한 경제개혁을 강조함으로써 비롯되었다. 계획된 수량생산에만 치중하고 시장ㆍ분배ㆍ서비스ㆍ판매에는 소홀하며 개인창의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결여된 이 제도가 통용된 사회주의권 전체가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신속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것이 유일한 처방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시장경제체제가 오늘날에는 모든 동유럽 국가에서 국민을 잘 살게 해 주는 특효약으로 받아들여지고 사회주의권 공동번영을 위하여 소련에 의하여 적극 권장된다. 시장경제 체제로의 개혁은 처음 헝가리에서 1968년 니에르쉬 사회당수(당시 경제연구소장)의 제창으로 시작되었는데 헝가리가 사회주의 국가중에서 최초로 작년 2월 한국과 국교를 수립하여 북방정책에 첫번째 결실을 맺게 했던 나라라는 점을 고려할때 헝가리의 진취성은 모든 분야에서 돋보인다. 4,다당제의 채택 공산주의 국가들이 일당독재 통치를 하면서 이론적 받침대로 삼아온 레닌의 국가론을 보면 국가는 사회주의 건설을 계획하고 완수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그 존재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지배계급인 노동자층의 전위기능을 가진 공산주의 정당의 교시에 따라서만 통치되도록 되어 비공식 정당의 정치참여가 사실상 금지된다. ○일당독재 쇠퇴 그러나 알바니아를 제외한 모든 동유럽 국가들이 금년 상반기안에 자유선거를 실시하여 작년에 시작된 정치개혁을 제도적으로 마무리 지을 계획을 세워놓고 있어 다당제 채택은 기정사실화되었다. 소련에서도 공산당의 지도적 역할을 명시한 헌법6조를 개정하기 위한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현재 개최중에 있다. 자유선거가 실시되면 공산주의정당은 자연 소멸하거나 최소한의 의석만을 갖는 군소정당으로 전락할 것이 분명하다. 폴란드에서 공산국으로서는 처음으로 작년 6월 하원의석의 35%만이 허용된 제한적 자유선거가 실시되었을 때 자유노조가 의석을 석권함으로써 국민들이 공산당을 발붙이지 못하도록 혐오한다는 사실이 나타난 바 있다. 이는 헝가리공산당이 사회민주주의적 정당으로 탈바꿈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고 동독ㆍ불가리아ㆍ체코에서도 공산당이 체질개선을 서두르도록 만들었다. 피를 흘린 혁명에 의하여 차우셰스쿠 정권이 타도된 루마니아에서도 총선거가 실시될 계획으로 있어 모든 동유럽 국가에서 다당제가 채택된다. 5,이념에서 떠나 군사ㆍ경제적으로 결속 동유럽국가 사람들이 「동유럽」이라는 표현을 싫어하고 「유럽」혹은 「중부유럽」으로 불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공산주의 체제가 열등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인식되어지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을 결속하는 응집력을 상실했고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집착해 볼만한 이념으로서의 매력도 잃었다. 소련은 고르바초프의 「신사고」로 새로운 사태발전에 능숙히 대처하고 있듯이 공산권의 질적 변화를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에 동조하는 것으로 수용할 것이다. 소련은 폴란드의 마조비에츠키 비공산내각이 바르샤바조약기구와 코메콘의 회원국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서약한 예를 다른 동맹국의 새정권에도 요구할 것이다. 작년7월 부카레스트에서 개최된 바르샤바조약 군사자문위원회에서 소련은 통합의지를 강하게 부각시켰고 회원국의 탈퇴불가 원칙을 재확인한 바도 있다. 또한 경제적으로 코메콘회원국간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고 나라별 개혁이 기구구조와 일치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1992년 완성될 유럽공동체 시장단일화에 적응키 위한 공동시장 건설이 적극 추진된다. ○집단결속력 상실 동유럽국가들이 다투어 추진하는 시장경제와 다당제채택은 국민들의 열망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후퇴란 있을 수 없다. 한번터진 봇물은 막을 수 없으며 만약 전체주의적 보수세력이 저항한다면 이는 역사적 추세를 거스르는 것이므로 루마니아에서와 같은 피를 흘리는 혁명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병철 ■서울대독문과졸 서독쾰른대(정치학) 수학 ■서독 본 대학교 정치학 박사 ■서독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서독 라인차이퉁(일간신문)기자 ■저서=▲자주외교론 ▲통일을 위한 동서독관계의 조명 ▲변모하는 공산권
  • “「창당심정」으로 당 이미지 쇄신”/평민 새총장 신순범씨(인터뷰)

    『내부수리가 아닌 신장개업으로 당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심부름꾼의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29일 평민당의 「살림꾼」으로 전격 발탁된 신순범 신임사무총장은 재야 인사등의 영입을 통한 당세확장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여대야소의 상황에서 사무총장을 맞게 된 소감은. 『인위적인 정계개편에 대한 대응전략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산적해 큰 책임을 떠맡게 돼 어깨가 무겁다. 문호개방을 통한 당세확장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본다. 보수대연합에 반대하는 재야등 범민주 세력을 영입하는 데 교량역할을 하겠다. 재야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인사들과도 접촉하고 설득해 제1야당의 면모를 갖추는 데 진력하겠다』 ­재야인사중 영입하는 창구역을 맡겠다는 뜻인가. 『총재가 전면에 나서 범민주인사들은 규합할 것이다. 나는 밥의 뜸이 덜 들었을 때 불을 더 때는 역할로 만족한다는 뜻으로 이해해 달라』 ­당세확장ㆍ지자제선거 등에 엄청난 정치자금이 소요될 텐데…. 『솔직히 말해 가장 자신이 없는 문제이지만 최선을 다해 정치자금이 원활하게 조달될 수 있도록 하겠다』 신총장은 11대선거 당시 군소정당인 안민당 공천으로 여수­광양­여천 지역구에서 출마,원내에 진출한 이래 신민ㆍ평민당으로 간판을 바꿔 12ㆍ13대에 내리 당선된 3선의원. 10대 선거에서 낙선한 뒤 한때 서울 서대문구 노라노예식장 차고를 빌려 재수생들을 상대로 라면가게를 운영하며 역경을 이겨낸 「입지전적 인물」로 서민적인 풍모를 갖고 있다. 13대총선 직후 3선 이상으로 국회직및 당직을 배분할 때 당내 경합이 심하자 스스로 당직을 사양하는 등 모나지 않는 처신으로 당내외에서 호평이나 자금동원력은 부족하다는 평. 따라서 권노갑사무차장­김대중총재를 잇는 총재직계 정치자금조달 라인을 굳히기 위한 포석으로 인화형인 신총장이 발탁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뒤늦게 영어공부를 시작,원고를 통째로 암기하는 뚝심으로 영어웅변대회에서 1등을 차지할 정도로 의지가 굳으며 대중연설에도 능하다. 부인 장금자여사(52)와의 사이에 2남. 취미는 서예.〈구본영기자〉
  • 일본 중의원의 해산과 총선(사설)

    일본 중의원이 24일 해산되고 새 중의원을 구성할 총선이 내달 18일 실시되는 것으로 공식발표되었다. 이번 총선은 집권 자민당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여건에 처한 가운데 실시되며 결과 여하에 따라서는 35년간의 자민당 단독장기정권의 청산과 일본 정계의 혁명적 재편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후 국제사회를 지배해온 냉전체제 붕괴의 세계사적 대전환기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실시된다는 점에서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 일본내에선 21세기를 향한 90년대 일본정치의 향방을 가름할 정치선택의 일대결전의 의미도 부여되고 있다. 결국 이번 총선의 최대 초점은 집권 자민당이 과반수 의석 아니면 어느 정도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로 귀착된다 하겠다. 중의원 5백12명을 선출하는 이번 총선은 86년 7월6일 중ㆍ참의원 동시선거로 자민당이 압승을 거둔 이후 3년 7개월 만의 총선이다. 현 의석분포는 자민당이 과반수 2백75석을 20석이나 상회하는 압도적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총선일자를 임기만료보다 5개월이나 앞당긴 것은 내외정세로 미루어 그것이 그나마 자민당에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자민당 단독장기정권의 전도에 붉은 신호등이 켜진 것은 작년 7월 참의원선거 여야역전 때였다. 자민 1백9석대 사회등 야당 1백43석의 역전을 가져온 원인으로는 비대한 의석의 자민당의 오만및 그에 따른 인기없는 소비세제의 성급한 도입,리크루트사건에서 보인 부패한 금권정치에 대한 실망,장기정권에 식상한 전통적 보수우익의 의도적인 자민당 외면 등이 지적되었다. 이번 총선에서도 이들 요인이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민당은 참의원 선거에서 야당에 투표한 보수우익층의 표를 얼마나 회복하느냐,그리고 사회당등 야당은 지난해 거세게 불었던 「반자민당역풍」을 얼마나 재현시킬 수 있을 것인가가 승패의 가름길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자민당은 사회주의 체제의 패배를 상징하는 최근의 동유럽사태를 호재로 충분히 활용,자유주의사회의 우위성을 강조하는 「체제선택」을 선거구호로 내세워 보수세 회복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참의원 선거에서 등을 돌린 보수표의 진의가 사회당 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자민 경고에 있었으며 그 목적이 달성된이상 중의원선거에서는 자민당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아무튼 이번 총선결과가 지난번 총선때 같은 예상외의 압승이 아닌이상 총선후의 일본정계 재편은 불가피할 것이란 것이 많은 일본정치관측통들의 일치된 전망이다. 과반수 미달의 참패의 경우는 근본적인 재편의 혼돈이 예상되고 과반수선을 간신히 넘는 경우도 분위기 일신의 새 출발을 위한 재편이 이루어질 것이며 가이후총리 정부의 수명도 길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자민당이 정권을 내어놓는 상황은 불가능하나 사회당과의 대연정 혹은 공명등 군소정당과의 소연정 또는 합당을 통한 재편등은 충분히 예상된다. 일본 자민당 성립을 모델로 했다는 정계개편의 와중에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일본총선의 귀추는 더욱 주목된다 하겠다.
  • 박준병 민정총장 발언의 함축

    ◎신당창당→내각제 개헌 여,정계개편 구도 가시화/신당의 지분문제등 해결 시사/빠르면 내주초부터 “개편행보”/평민ㆍ재야 등 반대 거세 “대결정국” 올 수도 여권의 정계개편 구상인 「신당창당 13대 국회임기중 내각제개헌」 구도가 마침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민정당의 박준병사무총장은 1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노태우대통령이 정계개편 의사를 갖고 있다고 전하면서 노대통령 임기 전에 내각제개헌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로 여권의 개편구도를 처음으로 언급하고 나섰다. 박총장은 이날 발언에서 정계개편 방법론과 내각제개헌 추진시기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흐림으로써 개편구도의 완전한 공개에 따른 당내 반발 가능성에 대처할 여지를 일단 남겨두었다. 그러나 민주ㆍ공화당 관계자들이 민정당을 포함한 3당간의 신당창당 추진을 거의 공개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박총장의 정계개편 추진발언은 신당창당설을 뒷받침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같은 신당창당 시사는 나아가 13대 국회임기중 내각제개헌을 의미하는 조기개헌을 내포하고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권내에는 정계개편과 관련,두가지의 흐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나가 박총장의 발언에서 시사된 연내 신당창당및 조기내각제개헌이라면 또 하나의 흐름은 14대 총선을 계기로 「헤쳐모여」를 하고 개헌도 14대 국회에서 해야 한다는 신중론이라 할 수 있다. 박총장의 발언으로 노대통령을 포함한 여권의 지도부는 두가지 흐름중 조기신당창당및 조기개헌방식을 택했고 이를 실천할 의사를 가졌음이 분명해진 셈이다. 이에 따라 민주ㆍ공화당에서부터 시작된 신당창당 움직임은 민정당의 동참으로 그 흐름이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공화당의 김종필총재가 이날 하오 언급한 「진천동지할 정계개편」이 빠르면 내주초부터 가시화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정계관측통들은 특히 박총장의 발언배경과 관련,신당창당의 난해한 숙제로 인식돼온 ▲노대통령 이후의 후계구도 ▲신당의 지분문제 ▲임기중 개헌에 따른 노대통령의 임기보장문제 등이 지난번 청와대영수회담등과 그 이후의 막후접촉을 통해 이미 해결된 징후로 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총장의 발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여권과 민주ㆍ공화당의 정계개편 모델은 말하자면 일본의 자민당식 합당을 통한 당내에서의 정권교체라 할 수 있다. 민정ㆍ민주ㆍ공화당은 물론 평민당의 일부까지를 합쳐 개헌선을 확보한 신당을 창당하고 이에 합류를 거부한 나머지 정치세력들을 군소정당으로 남겨두자는 구도이다. 내각제개헌,중선거구제 채택 등은 신당창당 뒤에 당연히 뒤따르는 수순이며 신당내의 3∼4개 계보가 서로 연합해 내각제하의 총리를 선출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민정당과 민주ㆍ공화당의 이같은 정계개편 구상은 합당에 따른 지분문제 등을 해결했다 하더라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산넘어 산이다. 이와 관련해 비록 3당이 조기 신당창당,조기내각제 개헌을 공동목표로 하고 있지만 실현성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첫째는 평민당의 제동과 민정당 내부 신중파들의 반발을 들 수 있다. 평민당은 3당간의 보수 또는 중도연합 신당이 가시화될 경우 또 하나의 「유일선명야당」의 신당 깃발을들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평민당이 보­혁구도로의 정계개편에 반대하는 정치세력과 재야 등을 묶어 신당창당 움직임에 제동을 걸 경우 노대통령정부는 「자신의 시대」를 단한번도 갖지 못한 채 새로운 정쟁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민정당 신중파,정호용 전의원을 중심으로 한 TK(대구ㆍ경북)세력과 이종찬 전총장 등의 조직적인 신중파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또하나의 문제점은 정계개편이 조기에 이루어질 경우 노대통령이 신당창당과 함께 임기말 통치권 누수현상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신당추진세력들은 노대통령이 당적을 버리지 않고 신당의 총재직을 맡을 경우 이를 해소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함께 평민당세력의 흡수 정도에 따라 정계구조가 비호남연합대 호남으로 2원화된다는 점도 신당창당 과정에서 해소해야 할 어려운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 민정당내 정계개편 방법론을 둘러싼 두가지 흐름은 노대통령의 당내 후계구도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당내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박준규 전대표 김윤환 전총무 박철언정무장관 등 이른바 신TK들이 조기정계개편을 주장하는 반면 이종찬 전총장ㆍ정호용 전의원 등이 신중론을 펴고 있는 것도 정계개편 시기에 따라 노대통령 후계구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박총장의 발언과 함께 정계개편 움직임은 어느정도 공개될 수 밖에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정계는 신당추진 세력과 신당반대 세력간의 대결이 첨예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발의 정도에 따라서는 민주ㆍ공화당만의 신당창당이 먼저 이뤄지고 일정한 기간을 거친 후 신당과 민정당이 통합하는 형식으로 정계개편 계획이 변질될 가능성도 크다.〈김영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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