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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국진 순회특파원 중동을 가다] (1) ‘재스민혁명 150일’ 이집트 현지 르포

    [강국진 순회특파원 중동을 가다] (1) ‘재스민혁명 150일’ 이집트 현지 르포

    2일은 ‘재스민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중동의 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지 150일이 되는 날이다. 1월 4일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야채 행상을 하던 26세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 자살로 촉발된 중동의 민주 혁명은 이후 이집트와 시리아, 예멘, 리비아, 바레인 등으로 이어지면서 삽시간에 2011년을 중동 혁명의 해로 만들었다. 특히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30년 철권통치를 몰아낸 이집트의 민주 혁명은 중동 지역 전체에 일대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혁명 150일. 지금 중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집트 민주화의 성지 타흐리르 광장의 모습을 시작으로 민주화의 새 아침을 열고 있는 중동의 다양한 표정을 현지 르포와 전문가 진단 등을 통해 6회에 걸쳐 짚어 본다. 이집트 민주화 혁명의 성지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이곳은 지금 두 얼굴이 공존한다. 아니 무슬림의 주일인 금요일과, 금요일이 아닌 나머지 6일의 그것으로 얼굴이 바뀐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철권독재는 사라졌지만, 민주화는 아직도 오고 있는 중이고, 그 자리를 혼돈이 눙치고 앉아 있었다. 지난 30일 기자가 찾은 타흐리르 광장은 불법주차 차량들로 넘쳐났다. 혁명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풍경이다. 경찰 한 명이 차를 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곧바로 그 경찰은 수십명의 군중에 둘러싸여 버렸다. 경찰이 노점상과 불법주차 차량을 단속하려 하자 군중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모습이었다. 한참을 떠들어도 도저히 안 먹히자 경찰은 결국 지원을 요청했고 곧이어 경찰 서너 명이 더 나타났다. 그러나 경찰과 군중들의 실랑이는 그로부터 한참 더 이어졌다. 옥신각신 끝에 결국 불법주차했던 차 주인이 차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노점상이 물건들을 주섬주섬 거둬들이는 것으로 실랑이는 끝이 났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바로 옆에 불법주차돼 있는 수십대의 차량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던 듯 경찰은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석달 전 타흐리르 광장을 뜨겁게 달궜던 민주화의 열기는 이렇게 표정을 바꿔 가고 있었다. 독재자를 몰아낸 이 시민의 힘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 타흐리르 광장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독재는 몰아냈지만 그 자리를 메울 민주적 질서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혁명의 발단이 됐던 식품가격 상승도 여전히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관광객이 줄면서 최대 수입원인 관광산업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정권퇴진 운동이 정점으로 치닫던 1월 말보다는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치안 역시 불안하다. 관광객들을 다시 불러 모으려면 치안을 안정시켜야 하는데 정작 시민들은 불법주차 단속 같은 정당한 공무집행조차도 경찰 말이라면 일단 반발부터 한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퇴진과 함께 추락한 공권력의 권위는 이처럼 아직도 바닥을 기고 있었다. 지금 타흐리르 광장은 이집트의 무질서를 상징한다. 사람들은 뭔가 조급해 한다. 차선과 신호등도 없는 곳이 태반인 카이로 시내 도로에선 과속과 난폭운전이 부쩍 늘었다. ●페이스북으로 집회 참석한 학생들 그러나 이것이 타흐리르 광장의 모든 것은 아니다. 이보다 앞서 지난 27일, 즉 금요기도회가 열린 광장은 전혀 딴판이었다. 평소엔 귀청을 울리는 경적소리와 난폭운전으로 난리법석이지만 금요일만은 해방구로 변신했다. 무바라크 퇴진 운동과 함께 시작된 수십만명의 집회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타흐리르’는 아랍어로 ‘해방’이란 뜻이다. 금요일만은 이름값 제대로 하는 광장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광장은 여전히 삼엄했다. 그러나 경비는 경찰이 아닌 시민들이 섰다. 기자가 광장에 들어설 때에도 시민들로 이뤄진 자율대원들의 검문을 받았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하자 환영한다며 길을 내줬다. 10m쯤 더 가자 이번에는 소지품 검사와 몸수색을 한다. 검색이라고 해 봐야 1~2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이를 통해 위험한 물건이나 수상한 사람들이 광장에 섞여드는 걸 막고 있다. 타흐리르 광장 주변에 모여 있는 대학생들에게 집회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 물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집회에 참가하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이들은 모두 혁명 당시 광장에서 노숙하며 농성을 했다. 한 학생은 당시 친정부 시위대가 휘두른 각목에 맞아 다리를 다치기도 했다. 이들에게 오늘 집회에 왜 나왔느냐고 물었다. “이집트의 미래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이렇다. “무바라크를 감옥에 보내야 한다.” 짧은 검문을 마치자 붓을 든 한 사람이 다가와 왼쪽 팔에 이집트 국기와 숫자 ‘25’를 그려 준다. 검문을 통과했다는 인증인 줄 알고 팔을 내맡기고 그림을 다 그린 뒤 ‘고맙다’고 했더니 “20파운드”라고 했다. 알고 보니 시위대와 무관한 장사꾼이다. 혁명을 상징하는 티셔츠, 국기, 그리고 국기를 팔에 그려 주는 노점상은 타흐리르 광장을 누비며 대목을 한껏 누리고 있었다. 타흐리르 광장 중심부에 들어섰다. 플래카드가 여럿 걸려 있었다. “국민들은 무바라크와 부패 정치인을 재판하길 원한다.” “국민들은 혁명과 언론 자유를 원한다.” “국민들은 군사재판을 원하지 않는다.” 광장 곳곳에 무대를 설치하고 있었다. 이날 집회는 주최 단체가 아예 없다.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로 타흐리르 광장은 금요일에는 언제나 붐빈다. 혁명이 낳은 새로운 풍속도다. 정당이나 단체들은 각자 알아서 무대를 설치하고 연설을 하며 청중들에게 호소한다. 그런 연단이 광장 주변에 다섯 곳이 넘는다. 사람들은 각자 광장 주변을 돌아보며 연설도 듣고 이런저런 피켓과 플래카드도 살펴본다. 그러다 정오가 되면 다같이 기도를 했다. 기도가 끝나고 나면 다시 오전과 똑같은 모습이 저녁까지 이어진다. 연단에서 한 연사가 “아직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혁명은 여전히 원하는 게 많다.”며 열변을 토했다. 연설 뒤에는 구호와 노래가 뒤를 이었다. 2-2-3으로 박자를 맞추는 구호 역시 혁명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무대에서 울려퍼지는 경쾌한 노래 역시 혁명 와중에 나온 ‘민중가요’다. “이집트 사람이라면 손을 머리 위로 올려라”라는 노래가사에 맞춰 연단 주변에 있던 시민들은 국기를 흔들며 호응했다. ●여성들 ‘보수’ 벗고 화려한 옷차림 광장엔 온갖 사람들로 넘쳐 났다. 다섯 살도 안 된 어린이부터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들까지 각양각색이다. 가족단위 참가자도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중동권에서 가장 개방적이라는 말이 실감나듯 다양한 복장을 한 여성 참가자들을 볼 수 있었다. 한 가족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히잡을 멋스럽게 머리에 두른 젊은 여성은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사진 찍는 걸 거부했다. 화장을 안 해 사진이 예쁘게 안 나올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그녀 말고도 광장 곳곳에서는 다양한 색깔을 한 히잡과 화려한 옷차림으로 멋을 낸 젊은 여성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부르카를 입은 여성, 머리를 드러낸 여성도 있다. 사실 이집트는 1960년대 이전까지 카이로 시내에선 히잡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 넘쳐났던 카이로가 50년 가까운 보수화 뒤에 다시 기지개를 펴는 셈이다. 30년 독재를 이겨낸 혁명은 ‘이집트’를 호출하고 있다. 모두가 이집트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자신들의 손으로 독재자를 몰아냈다는 자부심과 결합하면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나는 이집트를 사랑한다’거나 ‘1월 25일’이라고 쓴 티셔츠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몇 달 전만 해도 국기는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 응원물품에 불과했다. 국기를 파는 한 노점상은 20이집트파운드에 판매하는 국기가 잘 팔린다며 흡족한 표정이다. 오늘 얼마나 팔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70개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단다. ●혁명 도화선 식품가격은 여전 콧수염을 멋스럽게 기른 한 중년 남성이 한 손엔 이집트 국기를 들고 젊은 여성과 어린이와 함께 광장으로 향하고 있는 게 보였다. 정부에서 일한다는 것 말고는 자세한 자기소개를 거부한 이 공무원은 시골에 사느라 그동안 집회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딸과 외손자에게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 광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집트는 미래가 밝습니다. 우리에겐 우수한 인재도 많고 자원도 많습니다. 잘사는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광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마흔 살이 넘도록 지금까지 선거에 참여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독재정권을 지지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투표를 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랬던 그가 오는 9월 총선과 11월 대선을 손꼽아 기다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선거인데 무척 설렙니다. 이집트를 이끌 지도자를 우리 손으로 뽑는 것이잖아요.” 혁명의 발단이 됐던 식품가격은 여전히 내릴 줄 모른다. 정치 격변 한편에선 극단주의 정당이 활동을 시작했다. 공권력은 무너졌지만 새로운 질서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런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기자 앞을 스쳐가는 한 승용차의 뒤쪽 유리창에 큼지막하게 써붙여진 문구는 이집트인들이 지금 중동의 새 역사를 직접 써가고 있음을 웅변했다. 뒷유리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난 이집트가 자랑스럽다.” 글 사진 카이로 강국진 순회특파원 betulo@seoul.co.kr
  • 9·11테러용의자 4명 결국 군사법정에

    관타나모 기지를 폐쇄하려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의지가 결국 좌절되는 모양새다. 미 정부가 의회의 반대에 부닥쳐 9·11테러 주모자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와 공범 용의자 4명을 뉴욕의 민간 법정이 아닌 쿠바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의 군사법정에 세우기로 방침을 바꾼 것이다.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4일(현지시각) “관타나모 수감자의 미국 내 재판 금지 조치를 의회가 지난해 12월 승인함에 따라 관타나모 기지의 군사재판을 재개하도록 국방부에 회부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내 재판을 막는 의회의 제한조치가 가까운 장래에 철회되기 힘들다는 것이 정부가 직면한 현실”이라며 “10년 가까이 재판을 기다려 온 9·11테러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해 재판을 더 미룰 수 없다.”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시절 관타나모 수용소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의 부적절성을 상징하는 사례로 들면서 이를 폐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은 관타나모 기지의 재판을 중단시키면서 이 수용소를 1년 내에 폐쇄하고 9·11테러 용의자를 뉴욕 법정에 세우겠다고 발표했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씨줄날줄] 사막의 라이언/박홍기 논설위원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오마르 무크타르(1862~1931)다. 무크타르는 1910년 제국주의 이탈리아에 맞서 싸운 구국의 지도자다. 이탈리아가 옛 로마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미명 아래 침공하자 반목을 일삼던 부족들을 결집시켜 20년간 이탈리아를 상대로 항전했다. 서구세력의 팽창에 맞선 비서구권, 이슬람권의 응전이었다. 이탈리아는 1911년 트리폴리에서부터 벵가지에 이르는 리비아 지역을 전격적으로 점령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무려 20년 동안 무크타르가 이끄는 원주민들의 끈질긴 저항에 부딪혀 교착상태에 빠진다. 무크타르의 영웅담은 1981년 할리우드의 아랍계 감독 무스타파 아키드에 의해 영화 ‘사막의 라이언’으로 되살아났다. 감독 아키드는 “서방에 살면서 이슬람의 진실을 말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밝혔다. 3500만 달러의 오일머니가 투입됐다. 카다피가 가장 큰 투자자로 나섰다. 영화 속에서 리비아인들은 유목민족 베두인의 후예답게 말을 타고 이탈리아 탱크부대와 처절하게 싸운다. 무크타르는 중과부적으로 이탈리아군에 패해 포로가 된 뒤 정복자의 논리에 따라 ‘식민정부에 대한 반역’ 혐의로 군사재판에 회부돼 교수형을 선고받는다. 무크타르는 공개 교수형에 앞서 “나는 절대 항복하지 않는다. 승리가 아니면 죽음이다. 투쟁은 다음 세대, 다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것이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다. 영화는 이탈리아에서 상영금지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리비아 공사 수주 등과 맞물려 1981년 12월 개봉됐다. 카다피는 2009년 이탈리아를 방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만나는 자리에 보란 듯이 무크타르의 사진이 가슴에 새겨진 제복을 입고 나왔다. 베를루스코니가 65년 만에 식민지배를 사과하고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한 데 대한 화답으로 이탈리아를 찾았을 때다. 리비아 10디나르 지폐에 새겨진 초상화도 무크타르다. 카다피가 원하는 이상인 셈이다. 카다피는 유엔에 의해 인권을 유린한 독재권력으로 낙인찍혔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다국적군은 유엔 결의에 따라 ‘국민보호’를 목적으로 리비아 공격에 나섰다. 벌써 3차례 폭격했다. 카다피는 다국적군의 공습을 ‘십자군 침공’, ‘식민전쟁’으로 규정해 이슬람권의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나아가 “마지막 총탄이 다할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항전의 의지를 불사르고 있다. 국민의 뜻과는 달리 마치 ‘사막의 라이언’이라도 되는 듯이.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美 관타나모 군사재판 재개 허용 오바마 폐쇄 공약 2년 만에 후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테러 용의자 구금 시설인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군사재판을 재개할 것을 허용했다.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9년 1월 “재판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며 중단시킨 지 2년 만에 한 걸음 물러선 것이다. 미국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수용소를 폐쇄시키겠다던 오바마의 공약도 임기 내에 실현하기 어려워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성명에서 “테러리스트를 심판대에 세우기 위한 우리의 역량을 확대하고 우리의 행동을 감독하고자 여러 가지 절차를 발표한다.”고 밝히며 재판 허용을 지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신 수감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고문과 비인간적 대우를 금지한 제네바 협약을 준수하겠다고 말했다. 또 수감자가 구금된 이유가 정당한지를 주기적으로 재조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인권 사각지대로 악명 높은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겠다고 약속했다. 조지 W 부시 전 행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며 관타나모 기지에 지은 수용소에서 물고문 등 인권 유린 행위가 자행된 일이 알려지면서 미국은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아왔다. 문제는 공약은 쉬웠지만 이행이 어려웠다는 점이다. 호기롭게 수용소 폐쇄를 추진하던 오바마 행정부는 수용소를 없애면 172명의 수감자를 어디로 이송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했다. 테러 용의자를 출신 국가 등에 보내겠다던 계획은 관련 국이 뒷짐을 지면서 무산됐고 미국 본토로 데려오는 방안도 반대 여론에 부딪혀 폐기됐다. 또 미 의회는 지난해 1월 국방법안을 통과시키면서 관타나모 수감자를 민간 법정으로 옮기는 데 필요한 관련 예산을 동결시키는 등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에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백악관 쪽은 “대통령이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겠다는 공약을 철회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이 문제를 둘러싼 오바마 대통령의 속앓이는 깊어지게 됐다. 당장 국제인권단체들이 미 정부의 재판 재개 결정에 대해 “실망스럽다.”며 비판했다. 한편 미 언론은 재개된 군사재판의 첫 대상자는 2000년 예멘에 정박 중이던 구축함 USS콜 폭파 사건의 주범 아브드 알라힘 알나시리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성폭행범에 저항하다 내 딸 죽었는데… 경찰출신 피의자친척 수사 관여 풀려나”

    “성폭행범에 저항하다 내 딸 죽었는데… 경찰출신 피의자친척 수사 관여 풀려나”

    성폭행에 저항하다 사망한 딸의 사연을 올린 어머니의 글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지난 7일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는 피해 여성의 어머니가 작성한 ‘성폭행에 저항하다 죽은 어린 여대생의 사연과 현실’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글쓴이의 아이디는 ‘HEY-YO’였다. 이 글에 따르면 2009년 8월 여대생이던 신모(당시 19세)양은 성폭행을 시도하던 남자 2명에게 저항하다 폭행을 당해 응급실로 실려갔지만 결국 숨졌다. 글쓴이는 사건 당시 딸이 친구로부터 소개받은 군인 김모·백모씨와 함께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 이들이 끈질기게 성관계를 요구, 이를 거부하다 변을 당했다고 호소했다. 피해자 어머니는 김씨와 백씨가 범인임을 확신했지만 경찰 출신인 백씨의 외삼촌이 수사에 관여하자 경찰이 백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한 뒤 풀어줬다고 주장했다. 이에 유족은 재수사를 요구했지만 경찰은 오히려 “이혼녀 밑에서 자란 딸의 행실이 얼마나 나빴겠느냐.”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군사재판에서는 김씨의 폭행 혐의만이 인정됐고, 2심인 서울고등법원에서 폭행치사 혐의가 결국 인정돼 김씨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이 글은 며칠 사이에 23만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퍼지고 있다. 논란이 가열되자 서울경찰청은 전담 수사팀을 편성, 재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원점에서부터 철저히 재검토해 한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수사할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36년만에 ‘법원의 사죄’

    36년만에 ‘법원의 사죄’

    “영광입니다.” 1974년 7월21일 군사재판(비상군법회의) 법정.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된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김병곤(당시 21세·1990년 작고)씨는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자 이렇게 외쳤다. 변론을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는 “차라리 피고인 석에서 그들과 같이 재판을 받는 게 편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가 법정모욕죄로 구속됐다. 우리 사법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날’로 남은 이날에 대해 법원이 36년 만에 사죄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부장 홍승면)는 30일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됐던 이철(62) 전 한국철도공사 사장 등 12명에 대해 무죄 또는 면소를 선고했다. 무죄를 선고받은 이들 중에는 검찰의 사형 구형에 “영광입니다.”라고 응수한 김씨도 포함돼 있었지만, 부인이 대신 선고를 들었다. 이미 20년 전 작고했기 때문이다. 군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1974년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다 “공산주의자들의 조종을 받아 인민혁명을 시도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썼다. 그의 나이 고작 21세. 비상군법회의 검찰부가 구속 기소한 180명 중 가장 어렸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김씨는 상급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이듬해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하지만 민주화를 향한 ‘투쟁’은 멈추지 않았고, 무려 6번이나 더 옥살이를 했다. “군사 독재를 결코 대물림하지 않겠다.” 야학교사를 하다 김씨의 반려자가 된 박문숙(55)씨는 그가 항상 입버릇처럼 했던 말을 전했다. 두 딸이 태어났지만 ‘옥살이’ 탓에 실제 얼굴을 본 적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김씨가 안동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어느 날 가족과 특별면회가 주어졌다. 박씨는 두 딸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지만, 문득 어린 딸들이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이상하게 여길까 걱정됐다. 결국 “지금 미국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며 딸들을 데려가야 했다. 김씨는 1990년 12월 위암으로 37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김씨는 20년이 더 지나고 나서야 ‘삶’을 인정받았다. 민청학련 사건 재심을 맡은 재판부는 “법원은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사명이 있음에도, 민청학련 사건에서는 재판 그 자체가 인권침해 수단이었다.”고 사죄했다. 또 “30년이 넘도록 이를 바로잡지 못한 것도 법원의 잘못”이라며 “피고인들의 용기와 희생으로 민주화가 이룩된 만큼 국민의 자유와 권리 수호라는 사명을 다시 한번 되새기겠다.”고 다짐했다. 김씨가 “영광입니다.”라고 응수했던 일화가 전해지자, 시인 김지하는 ‘고행 1974’라는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분명히 사형은 죽인다는 말이다. 그런데 ‘영광입니다’. 확실히 그렇다. 우리는 드디어 죽음을 이긴 것이다. 병곤이 한 사람, 나 한 사람이 이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집단적으로 이긴 것이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박통 후계자는 형님” 쿠데타 모의 혐의

    지난 1973년 4월, 절대 권력을 누리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받아 군내 실력자로 군림하던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전격 구속된다. 그를 따르던 장교들과 함께 쿠데타를 모의한 혐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사건은 윤 사령관이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등 박 대통령의 측근들과 함께 한 만찬 자리에서 이 부장에게 “각하의 후계자는 형님이십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게 발단이 됐다. 이 말 한마디는 제4공화국의 권력지도를 바꿔놓았으며 이른바 ‘윤필용 사건’으로 오늘날까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1949년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임관한 윤 사령관은 1961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대리를 지낸 박 대통령의 측근이었고 군부 내 신진세력인 ‘하나회’의 후원자이기도 했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은 이 부장과의 경쟁관계에 있던 박종규 경호실장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대로한 박 대통령은 강창성 보안사령관에게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다. 이 사건으로 윤 사령관은 그해 4월29일 열린 군사재판에서 업무상 횡령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 8개 죄목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손영길 수경사 참모장 등 ‘윤필용 그룹’ 10명이 전격 구속돼 1~15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으며 30여명이 군복을 벗었다. 중앙정보부에서도 이 부장과 가까운 ‘울산사단’ 30여명이 구속되거나 쫓겨났다. 그러나 그는 3년 만인 1975년에 석방됐고 1980년 하나회가 주축이 된 신군부가 집권한 이후에는 한국도로공사 사장과 한국전매공사 이사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합헌 재판관도 “대상 줄이고 입법개선을”

    합헌 재판관도 “대상 줄이고 입법개선을”

    사형제 위헌제청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25일 결정문은 한마디로 ‘백가쟁명’이다. 형식으론 합헌이지만,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도 현행 사형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헌재 관계자는 “보충의견이 3개나 나온 것은 이례적”이라고 밝힐 정도로 의견 다툼이 심했다. 사형제 찬반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논쟁 지형이 고스란히 녹아든 셈이다. 결정문에는 사형제 폐지와 같은 이슈를 사법부 판단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부가 논의를 주도하라는 뜻도 포함돼 있다. 헌재 관계자가 “사형제 존폐 여부는 입법부의 판단 대상”이라면서 “이번 결정이 사형제 논의를 심화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에서 쟁점은 헌법 110조 4항의 단서조항. 사형이 헌법에 유일하게 언급된 조항이다. 110조 4항은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은 군인·군무원의 범죄나 군사에 관한 간첩죄의 경우와 초병·초소·유독음식물공급·포로에 관한 죄 중 법률이 정한 경우에 한하여 단심으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한 뒤 단서조항으로 “다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돼 있다. 재판관 5명은 이를 들어 “법률로써 사형이 형벌로 규정되고 선고될 수 있음을 전제한 것”이라며 합헌의견을 냈다. 이강국 헌재소장은 특히 보충의견을 통해 “단서조항에서 이미 사형은 헌법적으로 긍정된 것으로 생명권의 최상위 기본권만 내세워 실정 헌법이 규정하는 사형제를 위헌이라고 부정하는 것은 헌법 개정이나 변질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는 “단서조항은 사형 선고를 억제하는 것이지 인정한 게 아니다.”라는 김희옥 재판관의 전부위헌 주장이나, “군사재판에 대해서는 합헌이지만 민간재판에 대해서는 위헌”이라는 조대현 재판관의 일부위헌 주장과는 배치된다. 목영준 재판관은 사형제 폐지에 가장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놓았다. 목 재판관은 사형제의 대안으로 절대적 종신형제 도입을 주장했다. 목 재판관은 “헌재가 사형제 폐지만 선언할 것이 아니라 가석방이 불가능한 절대적 종신형제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은 형법 41조 2호 등에 대해서도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기징역 상한선은 가중처벌을 합쳐도 25년, 무기징역이면 형기를 일정 정도 채우거나 감형 등을 통해 가석방이 가능하다. 합헌 의견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민형기·송두환 재판관은 보충의견에서 입법상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민 재판관은 “사형대상 범죄를 축소하고, 사형조항에 대해서도 여론과 시대상황을 감안해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달았고, 송 재판관은 “사형 범죄는 반인륜적 극악범죄에 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송 재판관은 “사형제는 위헌법률심사로 해결되기보다 국민의 선택과 결단을 통해 입법적으로 개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공은 결국 국회로 넘어갔다. 조태성 장형우기자 cho1904@seoul.co.kr
  • [월드 뉴스라인] 스리랑카 대선 패배후보 재판 회부

    지난 8일 쿠데타 시도 혐의로 전격 체포된 사라스 폰세카 전 스리랑카 육군참모총장이 군사재판에 회부될 것이라고 국방부가 9일 밝혔다.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와 벌여온 26년간의 내전을 종식시킨 ‘전쟁영웅’인 그는 지난달 대선에서 범야권 후보로 출마했으나 마힌다 라사팍세 현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군 법정에 설 경우 사형 또는 종신형을 선고 받을 가능성이 높아 대선 부정 선거 시비로 가뜩이나 어지러운 스리랑카가 더 큰 혼란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 “야스쿠니신사 A급 전범 분사를”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전몰자 유족들의 모임인 후쿠오카현 유족연합회가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A급 전범 14명을 분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A급 전범은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전쟁을 계획·수행한 혐의로 기소된 정부와 육군·해군 등 관계자 28명이다. 그 가운데 14명이 지난 1978년 10월 야스쿠니신사에 위패로 안치됐다. 15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자민당 고가 마코토 전 선거대책본부장이 회장을 맡고 있는 후쿠오카현 유족연합회는 2007년 이후 11차례에 걸친 회의 끝에 야스쿠니신사에서 A급 전범의 분리를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연합회 차원에서의 A급 전범 분사 제안은 처음이다. 후쿠오카현 연합회는 또 지난달 30일 1000여명이 모인 전몰자 유족대회에서 집행부의 이 같은 방침을 보고받고 승인했다. 이에 따라 A급 전범의 분사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다른 연합회 안에서도 논의가 활성화될 전망이다. 하지만 야스쿠니신사 측이 거부할 경우 교섭에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후쿠오카현 연합회의 결정에는 1978년 야스쿠니신사에 A급 전범이 합사된 이후 일왕과 총리의 참배가 공식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데다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이 야스쿠니신사를 대체할 새로운 국립추도시설을 건립할 경우 야스쿠니신사의 존재 의미가 축소될 것을 우려한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특히 회원들의 고령화에 따른 회원 감소를 고려, “전쟁의 비참함을 아는 세대가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도 작용했다. 연합회 측은 “한국이나 중국의 의견에 관계없이 유족으로서 전쟁 책임자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서 제사를 지내서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라면서 “일왕이 참배할 수 있는 환경을 정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hkpark@seoul.co.kr
  • ‘군무이탈’ 이재진, 징역 1년에 집유 2년

    ‘군무이탈’ 이재진, 징역 1년에 집유 2년

    ‘군무이탈’로 군사재판에 오른 그룹 젝스키스 출신 이재진 일병이 군법정으로부터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최종선고 받았다. 이재진 이병은 4일 오후 대구 북구에 위치한 육군 50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군사재판에서 33일간 군무이탈한 혐의로 징역 1년형을 구형받았다. 군 검찰은 “미복귀 시기가 장기화됐던 이재진의 죄질이 가볍지 않아 정상 참작하기 어렵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이재진 일병은 “군복무 기간에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병역비리로 늦은 나이에 현역병 복무를 하게 돼 동료병사들의 시선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건강상의 문제와 집안의 어려운 사정 때문에 힘들었다.”며 “선처해주시면 열심히 군 복무해서 대한민국 육군 병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최후 진술했다. 이재진 일병은 3월 2일 청원휴가를 나와 복귀예정일인 3월 6일까지 복귀일을 넘기고 숨어지내다가 5월 8일 대구역 인근 모텔에서 현병대에게 긴급 체포됐다. 이재진은 2006년 게임개발 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했지만 병역특례비리조사에서 부실 복무 혐의로 2008년 10월8일 현역으로 재입대했다.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관타나모 군사법원 美 정부, 부활 검토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관타나모 기지에 수감된 테러 용의자들의 재판을 위해 군사법원을 부활시키는 방안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져 오바마 지지자들과 인권단체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뉴욕타임스는 2일(현지시간)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월20일 취임하면서 관타나모 기지내 군사재판의 120일간 전면 중단을 지시하면서 기지내 군사법정 활동이 끝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가게 됐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오바마 행정부가 군사법원 부활을 검토하게 된 배경에는 테러 용의자들을 연방법원의 일반재판에 회부할 경우 정보기관의 가혹한 심문 등으로 수집된 증거로 기소된 경우 혐의가 기각돼 처벌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 등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러나 군사법원 활동이 부활된다고 해도 테러 용의자들이 재판 과정에서 기본권을 보장받도록 하는 등 법적 보호장치를 강화해 인권침해 논란을 불식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과거 가혹한 심문에 의해 수집된 증거나 정보기관의 전문 증거 등 일반 법정에서는 증거로 채택될 수 없는 사항들을 허용했던 군사법정의 관행을 고쳐 이들 증거의 채택을 보다 엄격하게 하도록 수정할 방침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미 행정부는 또 5월20일까지로 된 군사재판 중단시한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군사법원을 재활용하려는 방침은 미국의 일반 법정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방법들을 계속 사용하겠다는 의미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2002년 1월 문을 연 관타나모 기지 수용소에는 현재 241명의 테러용의자들이 수감돼 있으며 재판을 둘러싼 법적 논란과 지연사태로 지난 8년 동안 2건만 군사재판을 마친 상태다. kmkim@seoul.co.kr
  • ‘관타나모’ 폐쇄… 오바마식 외교 신호탄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버락 오바마 신임 미국 대통령이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외교 흔적 지우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집무 이틀째인 22일(현지시간) 그동안 인권침해 논란을 빚어온 쿠바 관타나모 기지내 테러용의자 수감시설을 1년 이내에 폐쇄토록 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또 국외 중앙정보국(CIA) 감옥을 폐쇄하고 고문도 금지토록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이같은 일련의 조치를 신속하게 취하는 것은 인권과 민주주의, 도덕성을 주요 가치로 내세워 온 미국이 조지 부시 정권 하에서 비밀 수감시설을 운영하고, 고문을 허용해 왔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외 위상과 이미지를 실추시킨 대표적인 상징물인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키로 함으로써 새로운 외교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관타나모 수용소내 수감시설 폐쇄 이후 테러 용의자 처리에 대한 정책을 앞으로 30일 동안 검토해 건의할 전담반을 설치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관타나모 수감시설에 수감돼 있는 테러용의자들은 앞으로 1년 이내에 석방되거나 출신국 또는 제3국 및 미국 내 다른 수감 시설로 이송된다. 수감자들에게는 ‘인도적인 구금 기준’이 곧바로 적용되며, 명령이 발표된 뒤 30일 안에 국방장관은 관타나모 수감시설의 현황을 점검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현재 관타나모 기지에는 245명이 수감돼 있고, 그들 중 21명에 대해 기소가 이뤄졌다. 로버트 깁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와 관련, 첫 기자브리핑에서 “관타나모 기지 수감시설 폐쇄명령이 미국민의 안보를 증진시킬 것으로 대통령은 믿고 있다.”면서 “미국민의 안전이 오바마 대통령의 최우선 순위”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수사관들에게 인권남용 소지가 있는 신문을 거부하고 제네바협약을 준수하도록 하는 행정명령과 테러용의자들에 대한 군사재판을 재검토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그는 이와 함께 CIA가 테러 용의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국외에 설치·운영해온 수용시설을 폐쇄하라는 행정명령도 발표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공화당의 회의론과 반발도 만만치 않다. 공화당 소속 오린 해치(유타) 상원의원은 “수감자들을 어디로 보낼지 결정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타나모를 폐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판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이날 오바마 대통령의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결정을 지지했다. 매케인은 그러나 CNN의 래리킹 라이브에 출연, 폐쇄 결정 자체는 지지하지만 수감자들에 대한 처리 방침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서둘러 발표한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직후인 지난 2002년 1월 쿠바 관타나모 기지 내에 테러용의자들을 수감하기 위한 수용소를 설치한 뒤 지금까지 700여명이 이곳에 격리 수감돼왔다. kmkim@seoul.co.kr
  • 한국전때 부당 즉결처분 배상 판결

    6·25전쟁 때 상관에게 억울하게 사살된 육군장교의 유족들에게 국가가 손해를 배상하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58년 만에 나왔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1950년 전쟁 당시 상관에게 부당하게 즉결처분된 허모 육군 대위의 부인과 아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국가가)1억 7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5일 밝혔다. 1950년 8월쯤 모사단 대대장으로 근무하던 허 대위는 당시 연대장인 김모씨의 즉결처분으로 총살됐다. 김 연대장은 허 대위가 군사재판을 거쳐 적법하게 사형당한 것처럼 고등군법회의 판결문 등을 위조했다. 하지만 유족이 낸 재심을 통해 2003년 12월 허 대위의 사망이 불법행위에 의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유족들은 재심이 끝난 뒤 2005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국가는 손해배상의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배상을 거부해 왔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채무자(국가)가 시효 완성 전에 채권자(허 대위 유족)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곤란하게 했거나 객관적으로 봤을 때 권리행사에 장애사유가 있는 경우 등에서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허용할 수 없다.”면서 “국가의 주장이 이유 없다.”고 원심대로 판단했다. 앞서 1·2심 재판부는 “허씨가 숨진 1950년 8월부터 10년이 지난 1960년 8월 손해배상 소송의 소멸시효는 완성됐지만, 유족들은 2003년 12월 법원의 재심판결이 선고된 때 비로소 살해된 사실을 알게 됐으므로 신의칙상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부인에게 1억원, 아들에게 7000만원을 각각 지급하라.”고 선고했다.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빈 라덴 운전기사에 유죄평결 논란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 군사법원 배심원단은 6일(현지시간) 오사마 빈 라덴의 운전기사 출신인 살림 함단에 유죄 평결을 내렸다. 배심원단은 이날 쿠바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에서 열린 재판에서 테러 지원 등 5가지 혐의를 유죄로 평결했다. 그러나 테러공격을 위해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와 공모했다는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이번 재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첫 전범재판인데다 9·11테러 직후인 2001년말 테러 용의자를 수감하는 수용소가 관타나모 기지에 설치된 뒤 처음으로 열린 테러 용의자 재판으로 관심을 모았다. 6명의 군장교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8시간이 넘는 긴 심리 끝에 이 같은 평결을 내렸다. 함단은 선고공판에서 종신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테러용의자들을 미 군사재판에 회부하는 것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평결 결과가 재판의 공정성을 입증한다고 주장한 반면 변호인단은 “역사와 세계가 과연 오늘의 재판이 공정했는지 판단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예멘 출신의 함단은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빈 라덴의 운전기사로 일했으며 지난 2001년 11월 붙잡혔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빈 라덴의 운전기사로 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백악관은 성명을 내고 재판 결과에 만족하며 함단이 ‘공정한 재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함단의 변호인단은 항소할 계획이며 인권단체들은 재판이 공정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변호인단은 “물질적 지원이 전쟁범죄냐.”며 반문한 뒤 항소심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I)은 재판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며 관타나모 테러 용의자들을 군사법정에 세우는 것을 중단하라고 촉구했으며, 미국시민자유연맹(ACLU)도 미국의 정의가 무너졌다고 비판했다. 테러용의자들에 대한 군사재판은 일반재판이나 미국내에서 열리는 군사재판과는 달리 비공개 심리가 인정됐고, 고문 등에 의해 확보된 진술 등을 증거로 채택했으며, 테러 용의자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피하기 위한 묵비권 등을 사전에 고지하지 않는 등 절차상 문제가 많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kmkim@seoul.co.kr
  • 파키스탄 인권변호사 말리크 올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5·18기념재단은 18일 2008년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파키스탄의 무니르 말리크(58) 인권변호사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무니르 말리크는 1981년 파키스탄 지하울 하크 장군의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에 앞장서다가 반정부 활동 혐의로 투옥됐다. 그는 군사재판에 회부됐으나 국제사회의 거센 압력에 힘입어 석방됐다. 1986∼2007년 카라치 변호사협회장, 파키스탄 변호사 평의회 의원, 신드 고등법원 변호사협회장 등을 지내며 파키스탄의 민주주의 회복과 인권 신장에 앞장서 왔다. 광주인권상 심사위는 “무니르 말리크가 처해 있는 파키스탄의 정치·사회적 상황은 1980년대 한국과 비슷하다.”며 “혹독한 군사독재 체제 하에서 그가 보인 인권 수호를 위한 투쟁은 광주 ‘5월 정신’과도 통한다.”며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5·18기념재단은 2000년 이 상을 제정, 민주주의와 인권·평화를 위해 공헌한 국내외 인사나 단체에 수여하고 있다. 시상식은 다음달 18일 오후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열리며, 수상자에게는 미화 5만달러와 금장 메달 등을 준다. 광주인권상 역대 수상자들은 사나나 구스마오 동티모르 전 대통령, 바실 페르난도 아시아인권위원회 상임위원장,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아웅산 수기 버마민족민주동맹 사무총장 등이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총기탈취 軍형법 적용

    강화 총기 탈취 용의자 조모씨는 일반 법정이 아닌 군사법정에 서게 된다. 군·경 합동수사본부는 13일 “조씨가 비록 민간인 신분이지만 군사작전 중인 초병을 살해하고 소총과 수류탄 등 군용물을 빼앗아 달아났기 때문에 특별법인 군 형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합동수사본부의 설명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것이다. 조씨가 군 형법의 적용을 받게 되지만 초병살해 및 초병상해 혐의는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등법원 한 판사는 “초병이 근무를 마치고 이동하거나 근무를 위해 이동하는 도중에 살해했다면 군 형법이 아닌 일반 살해·상해에 해당된다.”고 지적했다. 초병 근무중에 살해했다면 군 형법, 이동 중에 살해했다면 일반 형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조씨가 군사법정에 서는 까닭은 군용물 탈취 혐의 때문이다. 헌법 27조는 일반 국민은 군사재판을 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면서 법률로 정하면 민간인도 군사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군형법은 총포·탄약·폭발물 절도 강도 등의 죄를 범한 내외국민에게는 군인에 준하여 군형법을 적용한다고 규정한다. 군 형법은 초병 습격 살해 및 군용물 탈취를 가중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조씨는 여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고성과 동해안 총기탈취범에게는 징역 5년이 선고됐고, 초병을 살해한 수방사 총기 탈취범에게는 징역 10년이 선고됐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관타나모선 재미삼아 때리더니 이라크선 연습삼아 민간인 저격

    “미군 저격수들이 ‘군수품 미끼’로 이라크인을 사살했다.” 영국 인디펜던트와 BBC방송 등 외신들은 25일(현지시간) 미군 제501보병여단 1대대 저격소대 대원들이 이런 만행을 저질렀다고 전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저격소대 대원들은 총기류나 플라스틱 폭탄, 도화선 등을 노상에 떨어뜨려 놓고 멀리서 이를 지켜보다가 이 물품을 가져가려는 이라크인들을 총으로 저격해 살해했다. 이러한 사실은 워싱턴포스트(WP)가 이라크에서 민간인을 사살한 뒤 죽은 사람의 주머니에 철사꾸러미를 넣어 사살 행위를 정당화하려 한 혐의로 군사재판에 회부된 미군 저격수의 가족으로부터 법정진술 문건을 입수해 보도하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WP가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저격소대장인 매튜 P 디디에 대위는 “우리는 물건을 길거리에 놓고 지켜본다. 누군가 이 물품을 발견하고 집어가려 하면 이 사람이 그 물건으로 미군을 공격할 것으로 가정하고 저격한다.”고 진술했다. 저격소대 대원들은 모두 이 작전을 알고 있었으며 이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고 WP는 덧붙였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사설] 아베총리, 전쟁책임 또 물타기 하나

    아베 신조 일본총리가 21일부터 인도를 방문하는데, 그 길에 2차 세계대전 당시 A급 전범들의 무죄를 주장한 라다 비노드 팔(사망) 판사의 유족을 만날 예정이라고 한다. 팔 판사는 1946년 열린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에 영국령 인도제국 소속 재판관으로 참여해 “전승국이 패전국의 지도자들을 재판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며 재판관 11명 중 유일하게 전범 전원의 무죄를 주장한 인물이다. 도쿄재판의 인연으로 야스쿠니 신사측은 2년 전 그의 공적비를 세워주기도 했다. 따라서 아베 총리가 바쁜 인도 방문 일정을 쪼개 굳이 팔 판사의 유족을 면담하려는 의도는 분명하다.A급 전범들을 감싸안음으로써 전쟁의 책임을 희석시키려는 저의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이 일정에 대해 “일본과 인도의 우호관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이야말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참배의 정당성을 줄곧 주장해왔고, 도쿄재판의 결과에 대해 팔 판사와 같은 입장을 견지한다는 사실은 세상이 다 알고 있다. 우리는 아베 총리의 이같은 행보가 한국·중국 등 전쟁피해 당사국의 신경을 건드리고 여론을 악화시킬 수 있음을 분명히 지적하고자 한다. 그래도 팔 판사의 유족 면담을 강행한다면 일본 각료들이 종전일 야스쿠니 참배를 보류한 것도 결국 잔꾀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될 것이다. 기회만 생기면 역사왜곡과 전쟁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 정부의 얄팍한 기도는 왜 이렇게 끝이 없는가.
  • 아베 ‘역사인식’ 또 주변국 자극하나

    |도쿄 박홍기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23일 인도 방문 때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범을 심판한 이른바 ‘도쿄재판’인 극동군사재판에서 유일하게 A급 전범 전원의 무죄를 주장했던 인도인 펄 판사의 유족을 면담할 방침이라고 일본 언론이 14일 보도했다. 아베 총리의 이같은 계획은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과 맞물려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는 행동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커 한국·중국 등 주변국들의 큰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 도쿄재판에서는 25명의 일본인이 A급 전범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7명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연합국측의 펄 판사는 당시 승전국이 패전국 지도자들을 처벌하는 재판 방식에 비판을 제기하면서 피고인 전원에 대한 무죄 논리를 폈다. 현재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에는 펄 판사의 공적비도 세워져 있다. 아사히신문은 “아베 총리가 이미 A급 전범 및 도쿄재판에 대해 의문을 밝힌 적이 있어 이번 면담이 파문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니치신문도 “정부 관계자가 아베 총리의 펄 판사 유족 만남에 대해 ‘일본과 인도의 우호적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면담 내용에 따라 A급 전범을 비난하는 중국 등을 자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h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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