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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쏘지마! 쏘지마! ‘42년 철권’ 목숨 구걸했다

    쏘지마! 쏘지마! ‘42년 철권’ 목숨 구걸했다

    독재자의 말로는 비참했다. 한때는 부패한 왕정을 무너뜨린 ‘젊은 영웅’이었으나 42년간의 철권통치로 악명을 날린 리비아의 전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과도정부군(NTC)의 총에 맞아 결국 숨을 거뒀다. 최후의 순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국가원수의 면모는 찾아볼 수 없었다. 콘크리트 배수로에 숨어 있다 발각된 그는 총을 겨누는 병사에게 “쏘지 마, 쏘지 마.”라며 목숨을 구걸했다. 지난 8월 트리폴리 함락 이후 도피 중이던 카다피 전 국가원수는 20일 최후의 은신처로 지목돼 온 고향 시르테에서 체포되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해 사망했다고 로이터와 알자지라 등 외신들이 NTC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로써 지난 2월 ‘아랍의 봄’의 영향으로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래 8개월에 걸친 리비아 사태는 막을 내렸다. 리바아 과도국가위원회(NTC)의 마무드 지브릴 총리는 이날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렸다. 카다피가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압델 하페즈 고카 NTC 대변인도 “폭정과 독재의 종말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라면서 “카다피는 독재자의 운명을 맞았다.”고 말했다. NTC 관계자에 따르면 카다피는 시르테 근처에서 생포될 당시에 양쪽 다리에 상처를 입었고, 앰뷸런스로 이송 도중에 부상이 심해 사망했다. 카다피는 머리에도 총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NTC측은 카다피가 체포 당시 황금으로 만든 권총을 든 채 카키색 군복과 터번 차림을 하고 있었으며 두 다리에 총을 맞아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고 밝혔다. 카다피는 배수관에 숨어있다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시민군을 향해 “쏘지마! 쏘지마!”라고 외쳤던 것으로 전해졌다. 카다피의 사망설에 대해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아직까지 이 같은 언론 보도가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NTC는 사실상 최종 승리를 선언했다. NTC 지휘관 유누스 알 압달리는 “시르테가 해방됐고 카다피군은 없다.”고 말했다. 카다피의 4남 무타심과 카다피의 군 최고책임자도 NTC군과의 총격전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NTC군 병사들과 시민들은 시내 중심부에 모여들어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치며 환호했고 승리를 자축하는 자동차 경적이 곳곳에서 울려 나왔다. 카다피는 지난 2월 15일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뒤 “결사항전”을 공언하며 퇴진을 거부해 왔다. 그러나 나토군이 벌인 5개월여간의 융단폭격과 반군의 대대적인 군사작전으로 지난 8월 수도 트리폴리가 무너지면서 카다피는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다.  이후 카다피의 행방을 둘러싼 각종 추측이 무성했지만 실제 은신처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다만, 그가 여전히 리비아 내에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면서 고향인 시르테와 바니 왈리드 등이 유력한 은신처로 거론돼 왔다. 그러나 NTC 내부에서는 최근 그가 남부 사막의 사브하에 은신했거나 인접 아프리카 국가에서 병력을 모집하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돼 혼선을 빚기도 했다.  카다피 사망 소식은 시르테가 NTC군에 함락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얼마 안 돼 전해졌다. 이날 오전 8시 30분 나토군이 공습을 펼쳤고, 이어 NTC군이 최후의 공격을 감행해 90분 만에 시르테를 점령했다. 카다피는 나토군의 공습을 피해 달아나다 체포됐으며, 낮 12시 45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순녀·유대근기자 coral@seoul.co.kr
  • [카다피 비참한 최후] 카다피 ‘마지막 90분의 혈전’

    리비아를 42년간 철권 통치했던 독재자의 최후는 너무 초라했다. “고향 시르테를 지켜 달라.”던 그의 절규도 끝내 허사로 돌아갔다.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는 20일 ‘마지막 90분의 혈전’을 통해 카다피를 제거하고 진정한 리비아의 새 주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카다피의 고향인 시르테 내부로 진격 중인 NTC군은 이날 오전 8시 30분(현지시간) 남은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최후의 일전에 나섰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공습 지원을 받은 NTC군 수백명은 카다피의 은신처로 보이는 폐가를 샅샅이 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카다피 친위부대와 격렬한 교전을 벌였고 양측 진영의 병사 다수가 숨졌다. 피 튀기는 전투를 벌이며 진군해 가던 NTC군은 나토 전투기의 폭격을 피해 달아나던 카다피 측을 발견했다. 호위 세력과의 전투 끝에 16명을 생포한 NTC군은 이윽고 고속도로 밑의 콘크리트 배수로 구멍에 몸을 숨긴 카다피를 발견하고 붙잡았다. 당시 카다피는 카키색 복장에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있었으며 두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수로에서 끌려나온 카다피는 생포 과정에서 두 다리와 머리에 중상을 입은 탓에 얼마 못 버티고 끝내 숨졌다. 카다피가 발견된 배수로 표면에는 반군이 쓴 것으로 보이는 “비열한 카다피”, “신은 위대하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미 인터넷 신문인 글로벌 포스트는 카다피가 앰뷸런스에 실려가던 도중 숨졌다고 목격자의 말을 토대로 전했다. 아랍권 위성TV인 알자지라는 상의를 반쯤 벗은 카다피의 시신으로 보이는 사진을 공개했다. 알자지라는 카다피의 시신이 미스라타의 모스크에 있다고 보도했지만 다른 아랍권 위성TV인 알아라비야는 쇼핑몰에 보관돼 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100대의 차량 행렬이 시르테에서 미스라타로 향한 것으로 전해졌다. 알자지라는 “차량에 누가 탔는지 확인되지 않았으나 카다피 정권의 고위 관계자가 일부 탑승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BBC방송 등 일부 외신들은 카다피의 시신이 미스라타로 옮겨졌다고 전했다. 카다피 체포 소식은 리비아 곳곳에서 확인됐지만 처음에는 NTC 측도 작전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혼선을 빚었다. NTC 대변인인 압둘라흐만 부신은 카다피의 체포 사실을 묻는 CNN 기자의 질문에 “루머인 것 같다.”면서 “카다피가 고향인 시르테나 그 주변에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조대식 리비아 주재 대사는 “트리폴리에서 생포를 반기는 인파가 몰려나와 전화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지경”이라고 전했다. 한편, 나토군 관계자는 “지난 3월 이후 계속해 왔던 리비아 군사작전 종료를 논의하기 위해 조만간 회의를 소집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친미 보도’ 들통 알자지라 사장 사퇴

    위키리크스의 문건 폭로로 친미 보도 논란에 휩싸인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의 와다 칸파르(42) 사장이 전격 사퇴했다. 알자지라는 20일(현지시간) 칸파르 사장이 사퇴 의사를 밝혔으며, 후임으로 카타르 왕족이자 사업가인 셰이크 아마드 빈 자심 빈 무하마드 알타니가 결정됐다고 보도했다. 8년간 알자지라를 이끌며 아랍권 대표 언론으로 키워낸 그는 최근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문건으로 난처한 입장에 놓여 있었다. 카타르 주재 미국 대사관의 2010년 외교전문에 따르면 칸파르는 미 국방정보국(DIA)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면서 미국에 부정적인 보도 내용의 수위를 낮추는 데 협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례로 미군의 이라크전에 관한 방송물에서 미군의 군사작전으로 다쳐 병실에 누워 있는 어린이와 중상을 입은 여성의 모습을 삭제하도록 했다. 칸파르는 미국 측에 자신의 협조 사실을 비밀로 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어제 새벽 제주행 여객선 화재… 130명 전원 구조 ‘기적’

    어제 새벽 제주행 여객선 화재… 130명 전원 구조 ‘기적’

    6일 오전 1시 20분쯤 전남 여수시 백도 북동쪽 11㎞ 해상에서 승객 130명을 태우고 부산을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4000t급 여객선에 불이 났다. 하지만 해경과 해군의 신속한 초동대처에다 승객들의 침착함이 더해져 승객 전원이 무사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부산을 떠나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설봉호’의 화재 발생 신고를 접한 시각은 이날 오전 1시 20분쯤. 여수해경은 경비함 등을 현장에 급파해 30분 만에 도착했다. 주변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에 갇혀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단지 선미쪽이 화염에 휩싸인 설봉호의 모습만이 드넓은 바다에서 더욱 환하게 드러날 뿐이었다. 곧바로 작전에 돌입한 317함 등 10여척으로 구성된 여수해경 구조팀은 서치라이트로 주변 해상을 대낮같이 밝힌 뒤 4~5명이 탈 수 있는 소형 단정들을 내려 설봉호에 조심스럽게 접근시켰다. 또 나머지 경비함들은 화염에 휩싸인 설봉호 선미쪽으로 접근, 물대포 등을 쏘기 시작했다. 통영·부산·제주해경에서 급파된 함정과 해군에서 파견된 함정 등 나머지 10여척의 배도 일제히 소화작전에 합류했다. 20여척의 해경과 해군 함정이 여객선을 에워싼 현장은 어둠, 화염, 서치라이트, 물대포 등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거대한 합동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그러는 사이 설봉호에서는 구명조끼를 착용한 승객 10여명을 한 조로 태운 구명튜브가 연이어 해상에 내려졌다. 어둡고 파도마저 치는 상황에서 구명 튜브에 탄 승객들이 단정에 옮겨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해경 대원들의 신속하고 능숙한 안내로 사고 발생 2시간여 만에 승객 104명과 승조원 26명 등 130명 전원이 317함에 옮겨타는데 성공했다. 일부 승객이 상처를 입기도 했으나 이는 단정과 함정 등으로 옮겨 타는 과정에서 생긴 찰과상 정도에 불과했다. 승객들은 사고 발생 5시간 뒤인 오전 6시쯤 여수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가벼운 부상을 입은 승객 10여명은 여수전남병원과 성심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해경·해군의 완벽한 초동대처와 승객 및 승조원들의 침착한 대응이 자칫 발생할 수 있었던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여기에 사고 현장의 비교적 잔잔했던 바람과 파도 등 기상 상황도 톡톡히 한몫을 했다. 구조 활동을 지휘한 김두석 여수해경서장은 “해경과 해군의 신속하고 완벽한 구조작전과 위기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작전에 협력해준 승객들의 힘이 컸다.”고 말했다. 여수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중국은 7월에도 카다피군에 무기 판매

    중국은 7월에도 카다피군에 무기 판매

    중국 국영기업이 무아마르 카다피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지난 수주일 동안에도 카다피군에 무기를 팔았다고 리비아 과도정부가 4일(현지시간) 주장했다. 캐나다 ‘글로브 앤드 메일’(G&M)과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카다피 정부 관계자들이 지난 7월 16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2억 달러어치의 중국제 무기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런 사실은 G&M 소속 그래미 스미스 기자가 리비아 현지에서 입수한 카다피 정부 문서에 기재돼 있으며, 과도정부 측은 문서가 진본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카다피 측이 베이징에서 만난 무기제조 회사는 중국 북부산업(Norinco), 중국 국립 정밀기기 수출입공사(CPMIC), 중국 신싱 수출입 공사 등 3곳이다. 카다피군이 구매한 무기는 로켓 발사대와 대전차 미사일,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QW18) 등으로, 중국은 카다피군에 대한 무기 판매를 금지한 유엔 결의를 위반한 셈이다. 문서에 따르면 중국 측은 무기를 알제리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통해 리비아로 반입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두 나라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대(對)리비아 군사작전에 반대하는 나라들이자 평소 중국제 무기를 수입하는 국가들이다. 중국 측은 무기 운송에 시간이 걸리는 점을 감안, 급한 대로 알제리가 갖고 있는 무기를 카다피군이 가져다 쓰는 방법까지 제의했다. 리비아 반군 대변인 압둘라만 부신은 “유엔 결의를 위반한 나라는 앞으로 리비아와 사업을 하기 힘들 것”이라면서 “중국과 카다피가 거래한 문서와 무기 등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미스 기자는 4장으로 된 문제의 문서를 카다피 정부 고위 관리들이 많이 살았던 트리폴리의 ‘밥 아카라’ 마을 휴지통에서 발견했으며, 문서는 리비아 정부 조달청 마크가 새겨진 봉투에 들어 있었다고 밝혔다. 문제의 중국 기업과 알제리 정부 등은 사실 확인을 거부했다고 G&M은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의 장위(姜瑜) 대변인도 5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유엔 안보리의 리비아 관련 1970, 1973호 결의안을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다.”면서 “리비아에 군수품을 수출하지 않았고 그런 제안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 등은 “그런 (중국과 카다피군의 무기거래) 사실을 몰랐다.”면서 “그 문서를 분석해봐야 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막판까지 카다피의 리비아에 대한 유엔 차원의 제재에 반대했던 중국은 반군이 상황을 완전 장악하자 뒤늦게 반군 측을 상대로 적극적인 ‘구애작전’을 펴고 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왕재산’ 대북 무기 기밀도 北에 넘겨

    북한의 지령으로 남한에 구축된 반국가단체인 ‘왕재산’ 조직이 대북 무기 관련 자료 상당수를 입수해 북한에 넘긴 것으로 공소장에서 드러났다. 북한은 왕재산을 통해 한화인천공장, 주안공업단지, 인천항, 인천시청 등 주요 기업시설·민간시설까지 파괴하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내용은 검찰이 왕재산 간부 5명을 구속기소하면서 제출한 공소장에서 확인됐다. 31일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북한 대남공작부서인 노동당 ‘225국’ 지시로 결성돼 17년간 활동하다 최근 적발된 남한 지하당 ‘왕재산’은 각종 군사기밀 자료를 수집해 북한에 넘겼다. 이들이 넘긴 군사자료는 위성항법 위치확인기, 특전사 훈련 자료, 스마트 폭탄·야포·공습기 제원 등 수 없이 많았다. 왕재산의 총책 김모씨는 2006년 1월 북한 노동당 산하 ‘225국’으로부터 각종 군사작전계획 자료를 수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미 미국 위성이 촬영한 최고 화소급 한반도 위성사진 책자와 노트북, USB 메모리 3개, 하드디스크 1개 등을 당시 베이징에 체류 중이던 북한 ‘225국’ 공작조 과장 리진에게 전달했던 상태였다. 하드디스크에는 경찰 특공대 관련 자료, 특전사 동계훈련 자료, 스마트 폭탄, 각종 야포, 헬리콥터, 공습기 등 무기 제원, 일본 해상자위대 밀착취재 자료 등이 담겨 있었다. 왕재산은 남한에서 혁명이 발생했을 경우 인천을 폭력혁명투쟁의 전략거점으로 삼기 위해 육군 제17보병사단 102연대, 공병대대, 제9공수특수여단 등을 타격하라는 구체적인 전투지침까지 북한으로부터 시달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석유공장과 주안공업단지 등 주요 산업시설물을 비롯해 인천항과 인천시청 등 주요 도로 거점지역과 공공기관도 타격 대상에 포함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청와대 측근의 동향은 물론 민주당, 범민련, 한총련 내부 인사의 움직임과 활동 전망까지 분석해 일체의 기록을 북한에 보고해 왔으며 카지노 경영을 통한 기업화도 모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항복 안하면 10일내 시르테 장악”

    무아마르 카다피의 고향인 시르테로 진격하고 있는 리비아 반군이 카다피군에 최후통첩을 보내고 차기 정권을 함께 구상하자는 카다피의 협상 제의도 일축했다. 반군은 시르테에 있는 카다피 친위대에게 29일까지 무기를 버리고 반군을 평화적으로 입성하지 못하게 하면 격전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살렘 무프타 알레파이디 반군 대령은 28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시르테 내 카다피 지지세력의 항복을 요구하는 협상이 실패하면 10일 안에 시르테를 장악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반군 전사 1만 4000여명도 대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말 투날리 반군 사령관은 “시르테 서쪽 30㎞ 지점에 최전선이 형성됐다.”고 밝혔다. 반군은 동쪽으로 100㎞ 떨어진 동부의 최전방 빈자와드와 소규모 마을인 노필리아도 장악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 전투기도 시르테 공습에 합세했다. 마무드 압델 잘릴 과도국가위원회(NTC) 위원장은 29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반군 지원국 국방장관 회의에서 “카다피는 여전히 리비아뿐 아니라 세계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며 반군에 대한 나토와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구했다. 나토는 리비아 군사작전 만료시한인 오는 9월 27일까지는 작전을 계속하겠다고 약속했다. 카다피 측은 NTC에 차기 정권의 구상을 놓고 협상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으나 보기 좋게 묵살됐다. 카다피 측 대변인인 무사 이브라힘은 “카다피는 여전히 리비아에 머물고 있으며 셋째 아들 알사디를 통해 NTC와 과도정부 구성에 대해 논의하고 싶어 한다.”고 AP를 통해 밝혔다. 하지만 마무드 샤맘 NTC 대변인은 “우리에게 그들은 범죄자”라며 협상 가능성을 부인했다. 카다피 측이 반군의 공세를 저지하기 위해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삼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시르테 교전이 트리폴리보다 더 큰 유혈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편 반정부 시위 탄압이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에 대해 유럽연합(EU)이 시리아산 석유제품의 유럽 수입을 금지하는 데 합의했다고 AFP가 외교 소식통을 인용, 보도했다. EU는 이번 주말 안에 이 제재안을 최종 승인할 예정이다. 유럽은 시리아의 전체 석유 수출량 가운데 95%를 구입해온 터라 제재안이 발효되면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이범진 순국 100년… “그의 자결은 日에 가장 확실한 복수”

    이범진 순국 100년… “그의 자결은 日에 가장 확실한 복수”

    국가보훈처는 대한제국 시기 러시아 상주공사였던 이범진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그가 을사늑약에 항거하고 헤이그 특사를 후원했으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사실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올해는 이범진 공사가 경술국치에 반대하여 자결·순국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그래서 이번 선정이 더욱 뜻깊게 다가온다. 광복절을 맞아 이역만리에서 풍찬노숙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이범진과 그의 아들 이위종, 그리고 그와 밀접하게 연계하며 연해주에서 무장 의병투쟁을 전개했던 이범윤 3인의 활동을 되돌아본다. 이범진의 일생은 ‘배일연아’(排日連俄)로 응축된다. 그는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의 침략을 막는 세력 균형 외교를 추구했다. 그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던 날 밤 고종의 명에 따라 미국 및 러시아 공사관으로 달려가 일제가 황후를 시해할 것이라 전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후 이범진은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며 아관파천을 계획하고 이를 실현했다. 아관파천은 고종을 일본군의 포위 상태로부터 해방해 친일 내각을 해산하는 등 독립국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 일종의 정변이었다. ●전재산 독립운동자금 제공하고 목매 이후 이범진은 1896년 주미 공사로, 1899년 러시아, 프랑스 등 유럽 3개국 주재 겸임 공사로, 1901년 러시아 상주 공사로 임명돼 국제 무대에서 외교관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다. 그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에 맞서 싸우는 러시아를 돕고자 노력했다. 1905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각국 주재 한국공사들을 소환하자 이범진은 이에 불응하고 페테르부르크에 체류하면서 국권 회복 운동을 지속했다. 1907년 헤이그에서 만국평화회의가 개최될 때 이범진은 대한제국 특사 파견을 위해 커다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특사들이 헤이그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러시아 황제에게 보호를 요청했다. 이범진은 항일혁명가로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특히 연해주 지역의 항일운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1908년 4월 연해주에서 최재형, 이범윤 등이 의병부대인 동의회를 편성할 때 이범진은 아들 이위종을 파견하여 군자금 1만 루블을 제공하는 등 동의회의 조직과 활동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는 러시아 한인들의 민족운동 발전에 일익을 담당한 ‘해조신문’ 창간에도 직접 개입했다. 그러나 이범진은 1910년 경술국치 소식을 접하자 유산을 모두 정리해 미주와 연해주 지역의 독립운동 자금으로 제공하고 1911년 1월 13일 자결했다. 이범진은 죽기 전 만주에 있는 동생에게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겼다. “우리나라는 망했다. 폐하도 모든 권력을 잃었다. 나는 우리의 적들에게 복수할 수도, 그들을 벌할 수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부닥쳐 있다. 이것이 내가 오늘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이범진의 자살은 나라는 망했지만 자신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불굴의 투쟁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목숨조차 반일투쟁의 수단으로 내놓은 것이다. 서울 주재 러시아 총영사 소모프는 이범진이 자살로 “적들에게 가장 잔인하고 확실한 복수를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범진은 자신의 유해를 고국으로 보내줄 것을 희망했지만 그의 아들 이위종은 일제가 부친의 유해를 욕보일지 모른다고 판단해 독립이 될 때까지 부친의 유해를 페테르부르크에 안장하기로 했다. 이위종은 당시 러시아 퇴역 군인 놀겐 남작의 딸과 결혼해서 가정을 이뤄 부친과는 떨어져 살고 있었다. 그는 러시아 여성과의 결혼을 위해 러시아 정교에 귀의했고, 블라디미르 세르게예비치 리라는 러시아 이름도 사용했다. 이위종은 11살의 어린 나이에 고국을 떠나 부친을 따라다니며 미국에서 중등교육을 받고, 프랑스에서 초등군사교육을 이수하고 러시아의 사관학교에서 장교교육을 받았다. 이런 생활 덕분에 그는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한국 독립운동을 위해서는 소중한 존재였다. 이위종은 1907년 헤이그 특사의 일원으로 평화회의에 파견되었을 때 특사 대변인으로 활약하며 을사늑약이 황제의 승인 없이 강압에 의해 체결된 것이므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위종은 7월 9일 국제협회에서 ‘한국을 위한 호소’라는 주제로 유창한 불어로 연설해 세계 각국의 기자들을 감동시켰고 한국의 입장을 동정하는 결의안을 이끌어냈다. ●이위종 러시아군 장교로 일본군과 싸워 1911년 부친 이범진의 자살은 이위종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했다. 이위종은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방황하며 부인과 자녀를 돌보지 않아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위종은 1916년 이후 러시아군과 소비에트군에서 장교로 활동하며 의젓한 항일혁명가로 성장했다. 1918년 이위종은 붉은 군대 장교로서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러시아와 한국 공동의 적인 일본 간섭군을 상대로 혁명투쟁을 전개했다. 1919년 8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한국 거류민단 집회에서 이위종은 소비에트 러시아와의 연대를 호소하는 연설을 했다. 그는 “미국인들처럼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고 진정으로 박해받은 자들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자유로운 러시아 인민들만이 우리에게 원조를 제공해 줄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범진이 유서를 남긴 만주의 동생은 바로 이범윤이다. 이범진과 이범윤은 둘 다 전주 이씨 광평대군파의 후손인데 러시아 문서들은 이 두 사람이 친척 관계에 있는 형제들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범윤은 간도 관리사로 간도 한인 동포들에 대한 행정 및 보호 사무를 맡아 인망을 얻었다. 그는 러일전쟁 당시 한인부대를 이끌고 러시아군과 함께 반일 군사작전에 참가했다. 그는 일제가 국권을 강탈하자 러시아로 망명하여 1908년 연추에서 의병부대를 조직했다. 이범윤 의병부대는 1908년 7~9월 여러 차례 국내 진공작전을 전개했는데, 안중근도 우영장의 신분으로 이 전투에 참여했다. 러일전쟁 이후 이범윤의 활동은 이범진과 밀접히 연계된 것이었다. 이후 이범윤은 유인석과 함께 13도의군을 결성하고 그 창의군 총재가 되어 재차 국내 진공작전을 모색했다. 그러던 중 경술국치를 당하자 성명회를 조직하여 일제의 한국 강점을 규탄하고 그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힘썼다. 1919년에는 만주·노령 지역에서 대한독립선언을 발표하여 3·1운동의 불꽃을 지폈다. 3·1운동 이후에는 북간도로 들어가 독립군 단체인 의군부 총재, 광복단 단장으로 추대돼 활동하다 1940년 10월 20일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전현수 경북대 사학과 교수
  • 시리아군 탱크 진압… 30명 사망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로이터통신은 1일(현지시간) 알아사드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대에 대해 유혈 진압을 강행하면서 권좌를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정부군은 지난달 31일 140명에 가까운 시위대를 숨지게 한 데 이어 라마단 기간이 시작된 1일과 2일에도 탱크 수십대를 동원해 시위대에 무차별 포격을 가했다. 현지 인권운동가들은 탱크 공격과 군경의 발포로 1일 하루 동안에만 모두 24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수십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외신들은 원유 중심도시인 동부의 데이르 에즈 조르시에 80여대의 탱크가 진격하는 등 대규모 군사작전이 임박했다고 보도했다. 2일 새벽에는 경찰이 다마스쿠스 동쪽 교외 에르빈 지역에서 라마단 특별기도를 마치고 이동하던 군중을 향해 무차별 사격했으며, 이로 인해 적어도 6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시리아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자 국제 사회의 비난 목소리도 고조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로버트 포드 시리아 주재 미국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너무나 충격적”이라고 말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긴급 비공개회의를 열어 결의안 채택 문제 등을 논의했다.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광범위한 우려와 비난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는 시리아 정부의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유혈 진압을 규탄하며 시리아 주재 대사를 본국으로 불러들였다. 다만, 프랑스 외무부는 “아직 (서방사회에서) 시리아에 대한 군사 개입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로이터 통신은 “매일 군중이 모스크에 모이는 라마단 기간을 맞아 반정부 시위가 더욱 격렬해질 것을 우려해 당국이 무력 진압 강도를 높이고 있다.”면서 “유혈 진압이 오히려 반정부 시위대의 반발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시리아軍 발포… 시위대 121명 숨져

    시리아 군이 31일 반정부 시위의 중심 도시인 하마에서 민간인들에게 무차별 발포해 적어도 95명이 숨졌다고 AFP 통신 등 외신들이 인권단체들의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시리아 인권을 위한 국민기구’의 암마르 쿠라비 대표는 이날 “정부군이 오늘 오전 하마에 진입해 민간인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바람에 최소 95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면서 “사망자 가운데 62명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고 AFP 등이 전했다. 또 동부의 데이르에조르 시에서도 시리아 군의 공격에 의해 19명이 숨지고 50명이 다쳤고 남부 데라 지역에서는 3명이 죽고 수십 명이 다치는 등 이날 시리아 전역에서 적어도 121명이 사망했다고 쿠라비 대표가 덧붙였다. 레바논에서 활동하는 인권 운동가 오마르 이들비는 “오늘 새벽 군인들이 탱크를 동원해 하마를 습격하고 북부 지역에 포격을 가했다.”면서 군인들이 하마의 대형 병원들을 에워싸 부상자 이송도 막았다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시리아 군의 장교 한 명이 반정부 시위대 진압을 거부하고 정부군과 맞서 싸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리아드 알 아사드 대령은 AFP와의 전화통화에서 자신이 시리아 자유군의 사령관이라며, 군 당국이 동부도시 데이르에조르에서 군사작전을 멈추지 않으면 자신 휘하의 군인 수백 명과 맞서 싸우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3월 중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후 시리아 군의 유혈 진압으로 1500명 이상의 민간인과 360여명의 군인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브레이비크 “2개조직 더 있다” 공범 가능성 시사

    93명의 사망자를 낸 노르웨이 연쇄 테러 용의자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32)에 대한 첫 심리가 25일 오후(현지시간) 열려 35분 만에 끝났다. 브레이비크는 이날 오슬로 시내 법원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심리에서 폭탄 테러 및 총기 난사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나는 무슬림(이슬람교도)으로부터 서유럽을 구하고 싶었다.”면서 무죄를 강변했다. 특히 지금까지 단독 범행을 주장해 오던 것과는 달리 “우리 조직에는 2개의 소규모 조직이 더 있다.”고 밝혀 공범의 존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이와 함께 집권 노동당이 “무슬림을 대거 수입했다.”면서 “국가를 배신했다.”고 비난한 것으로 전해졌다. 예정보다 1시간 가까이 늦게 시작된 심리는 35분 만에 초고속으로 끝났으며 심리를 진행한 킴 헤거 판사가 테러범의 진술 내용을 4시쯤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헤거 판사는 브레이비크에 대해 8주간의 구금을 명령했으며 “선임 변호사를 제외하고는 외부로부터의 편지는 물론 언론과 방문자와의 접촉도 금지했다.”고 밝혔다. 앞서 그는 심리를 공개할 것을 요청했으나, 법원은 브레이비크가 공개 심리를 테러 합리화와 반(反)이슬람 사상 전파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비공개로 진행했다. 브레이비크 법원 출정과 심리는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오후 1시 50분쯤 법원에 도착한 그는 무장한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를 타고 법원 건물 후문을 통해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바람에 일반에 노출되지 않았다. 곧이어 심리가 시작됐고 그로부터 35분쯤 뒤인 오후 2시 30분쯤 법원 경비가 밖으로 나와 기자들에게 “심리가 끝났고 모든 사람들이 떠났다.”고 알렸다. 테러 이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브레이비크를 취재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오슬로 법원 건물 앞에 몰려 들었던 수십 명의 내외신 기자들은 끝내 테러 용의자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법원 앞에는 오슬로 시민 수백명도 운집해 장사진을 이뤘다. 브레이비크는 테러 전 인터넷에 올린 선언문에서 재판정 출두를 연극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며, 법정에서 할 연설까지 준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법정에 출두할 때 제복 입기를 원한다는 뜻을 변호사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그의 변호사는 어떤 제복인지 모른다고 말했지만, 브레이비크가 추종하는 단체 ‘템플 기사단’의 제복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원은 테러 용의자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법원 측은 심리 시작 전 기자들에게 비공개 결정을 미리 알렸다. 심리를 주재한 헤거 판사는 이에 대해 ”용의자에 대한 공개 심리가 특별하고 아주 어려운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구체적 정보가 있어 심리를 비공개로 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옌스 스톨텐베르그 노르웨이 총리는 이날 테러 현장에서 가까운 오슬로 대학에서 희생자 추모식을 주재했다. 추도식에는 하랄 5세 국왕 부부와 이웃 나라 덴마크·스웨덴 대표도 참석했다. 테러 현장인 정부 청사 건물 주변에는 저지선이 처져 일반인의 출입이 여전히 통제되고 있으나, 시내 대부분의 거리에선 통행이 허용되고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함대사령관도 통합방위사태 선포 건의권

    국방부는 24일 해군 1·2·3 함대사령관도 통합방위사태의 선포 및 해제 건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통합방위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또 경계태세 1급 발령 지역에 민간인을 통제하는 구역을 설정할 수 있는 내용도 신설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해군 함대사령관은 북한의 해상침투 등으로 인해 을종사태나 병종사태에 해당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시·도지사에게 통합방위사태의 선포를 건의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는 지방경찰청장과 지역군사령관이 선포 및 해제 건의를 할 수 있다. 지난해 천안함 사태나 연평도 사태처럼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고, 서해 5개 도서를 기습 점령할 경우 해상 상황을 가장 빨리 파악할 수 있는 함대사령관에게 통합방위사태의 수위를 조율할 수 있게 하는 한편 군사작전 초기 일반인의 보호와 원활한 군사작전 수행을 위한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통합방위사태는 경중에 따라 갑종·을종·병종으로 나뉜다. 가장 높은 단계인 갑종 사태는 적의 침투나 도발 혹은 그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발생 시 선포되며, 을종은 2개 이상의 지역에서 적이 침투·도발해 단기간 내에 치안회복이 어려운 경우, 병종은 적의 침투나 도발 위협이 예상되거나 소규모의 적이 침투해 단기간에 치안회복이 가능한 경우에 선포된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서방 출구모색 다각화 속 지지부진 중동사태

    미국과 프랑스 등 주요국들이 아랍권의 교착 사태를 풀기 위해 다양한 카드를 내놓기 시작했다. 미국은 돈줄을 틀어막으며 파키스탄 등 사이가 틀어진 대테러전 파트너를 압박하고 있고 리비아 공습을 주도하고 있는 프랑스는 카다피 정권과의 대화를 통해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반면 시리아 등 일부 아랍 국가에서는 정정 불안 속에 반정부 시위와 강경 진압이 되풀이되고 있다. 내전 양상으로 번진 북아프리카·중동 국가들의 무력 충돌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 국제 사회가 본격적으로 ‘협상 카드’를 빼들기 시작했다. 리비아 군사작전의 선봉에 섰던 프랑스는 100일 넘는 공습에 지친 듯 협상을 통한 출구전략을 찾고 있고 미국도 6개월째로 접어든 예멘 사태를 끝내려고 ‘독재자 설득 작전’을 가속화하고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차남인 사이프 알이슬람은 알제리 신문인 ‘엘 카바르’의 11일자에 실린 인터뷰에서 “프랑스 정부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리비아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에게 특사를 보냈다.”면서 “프랑스 측은 우리 리비아 정부가 자신들과 (휴전을) 합의한다면 반군 측에 ‘전쟁을 중단하라’고 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알이슬람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카다피 축출’을 목표로 줄곧 공습에만 매달려 온 프랑스 측 입장에 미묘한 변화가 생긴 것이다. 프랑스 측은 카다피 정부와의 직접 대화 사실을 부인하면서도 향후 협상 가능성을 내비쳤다. 제라르 롱게 국방장관도 10일(현지시간) 현지 TV에 출연해 “카다피군과 리비아 반군이 서로 대화하고 (전쟁 중인 리비아) 군인들이 막사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포격을 중단할 것”이라면서 “(카다피군과 반군) 양측이 정치적 타협을 위해 테이블에 둘러앉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의 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담당 보좌관은 10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과 회동했다. 브레넌 일행은 국민적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살레 대통령에게 “걸프 국가들이 마련한 권력 이양 중재 방안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고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이 전했다. 미국 정부는 대테러 작전의 동맹국인 예멘이 6개월째 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득세하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사설] 구타와 가혹행위 없는 해병대로 거듭나야

    해병대가 최근 발생한 해병 2사단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병영문화 혁신 100일작전’에 돌입했다. 기존의 병영문화 혁신 프로그램을 생사를 건 군사작전에 준하는 수준으로 대폭 강화해 시행하겠다는 각오다. ‘무적 해병’의 이면에 똬리를 틀고 있던 악·폐습이 듣는 이의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로 도를 넘어선 것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군(全軍)과 국민에 미친 충격도 엄청나다. 유낙준 해병대 사령관은 지난 8일 긴급지휘관회의에서 “해병대에 퍼져 있는 악·폐습을 반드시 뿌리뽑겠다.”고 선언했다. 지금은 정면돌파 외엔 방법이 없다. 해병대는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을 통해 막강한 전투력과 끈끈한 전우애, 불굴의 충성심을 보여줬기에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불패의 신화와 역사를 만들 수 있었다. 젊은이들이 가장 가고 싶은 군대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드러난 군 내의 가혹행위 실상은 추악하고 끔찍하다. 구타와 욕설은 일상에서 다반사다. 2009년부터 올 3월까지 사병 943명이 구타 등에 따른 상처 등으로 치료를 받았다. 정해진 시간에 강제로 음식을 먹게 하는 악기바리, 후임자가 선임자 대접을 하지 않는 기수 열외, 계급과 호봉에 따라 행동양식을 규정한 호봉제 등도 횡행했다. 종교를 문제삼아 성경까지 태우려 했다. 야만적이고 반인권적인 이런 악행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해병대는 뼈를 깎는 반성과 더불어 거듭나기 위한 고통을 감내해야 할 시점이다. 시대의 변화에 걸맞게 근본적인 치유와 혁신에 나서야 한다. 의식 전환도 필수다. 지휘관들은 구타 등을 더 이상 군기라는 핑계로 외면해서는 안 된다. 원칙대로 처리해야 한다. 미온적인 대처는 이번 사건에서 보듯 조직 전체를 더 큰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입영 단계의 엄격한 심사와 가혹행위를 일삼는 사병을 퇴출시키는 3진 아웃제, 병영 인권 및 군법 교육 강화 등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인권 문제를 광범위하게 살피고 권고하는 군사 옴부즈맨제의 도입도 고려해 봄직하다. 해병대는 ‘100일 작전’을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기회로 삼아 국민의 신뢰와 성원을 받는 병영문화를 만들어 ‘빨간 명찰’과 ‘팔각모’의 명예를 되찾기 바란다.
  • 진보성향 6개 시·도교육감 “교육혁신 위한 민간기구 만들자”

    진보성향 6개 시·도교육감 “교육혁신 위한 민간기구 만들자”

    진보 성향으로 구분되는 서울, 광주, 경기, 강원, 전남, 전북 등 전국 6개 시·도교육감들이 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민간독립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가칭) 결성을 제안했다. 이들은 또 시·도교육청에 대한 교육과학기술부의 잘못된 통제에서 탈피하겠다고 밝혀 교육 현안을 둘러싼 교과부와 진보교육감의 갈등이 계속될 전망이다. 30일 서울 등 6곳의 시·도교육감들은 서울시교육청에서 공동으로 발표한 ‘주민 직선 교육감 취임 1주년 공동선언문’을 통해 “교육혁신을 위한 사회적 대토론과 합의를 위해 민간독립기구 구성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요동치는 교육행정은 이제 끝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정부와 교육계, 지자체, 경제계, 국회, 시민사회 등 책임 있는 주체들이 참여하는 민간독립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 만들기 ▲대학입시제도 개선으로 초·중등교육 정상화 ▲교사, 학부모, 학생 등 교육 주체들에 의한 교육과정 개정 ▲보편적 교육복지 실현 ▲교육재정 확충과 공정배분으로 공교육의 질 제고 ▲학생, 학부모, 교사에 의한 교육자치 등을 제안했다. 민병희 강원교육감은 “독립기구 결성 문제는 교육감협의회에서도 제안했으나 합의가 안 돼 6명이 따로 발표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국가교육위원회 설립 계획에 대해 “각계각층 인사들이 토론을 통해 구체적인 청사진을 만들어갈 것”이라며 “지금 필요한 건 사회적 대토론과 합의를 위한 틀”이라고 말했다. 장만채 전남교육감은 “우리나라 초·중등 교육을 파행시킨 중심에 대학입시가 있다. 다양한 평가 방법이 있음에도 시험 성적에만 의존해 창의·인성교육을 무력하게 만든다.”면서 “‘물수능’이란 논란도 있지만 수능은 말 그대로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정도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교과부와 일선 시·도교육감 간의 갈등에 대해 “교과부가 법대로 하지 않아 자꾸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며 “일례로 교원 징계는 교육청 권한인데도 교과부가 군사작전하듯 문제를 밀어붙이기만 한다.”고 비판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나토, 리비아 민간인 오폭 인정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소속 전투기의 폭격으로 지난 주말 트리폴리의 민간인 다수가 희생됐다는 리비아 정부의 주장을 19일(현지시간) 나토가 시인했다. 나토는 리비아 군사작전 사령관인 찰스 부처드 중장 명의의 성명을 통해 ‘무기 체계의 오작동’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을 수 있다고 오폭을 인정했다. 이번 사안은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를 축출하기 위한 지난 4개월간의 리비아 공습에서 나토와 다국적군이 저지른 최대 실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앞서 리비아 정부는 나토의 미사일이 트리폴리의 주거지역 내 민가에 떨어져 어린이 2명을 포함해 적어도 9명의 민간인이 숨졌다고 밝혔다. 부처드 중장은 성명에서 “리비아군의 미사일 군사 지역이 공습의 목표였으나, 미사일 가운데 하나가 의도된 목표를 맞히지 못하고 무기 체계 오작동으로 다수의 민간인 사상자를 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나토는 현재 오폭의 정확한 진상을 밝히기 위해 전투기 조종사와 전투기에 입력된 폭격 관련 자료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나토 관계자는 “정확한 폭파 지점에 대해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리비아 사태 이후 무장한 반군에 대한 나토의 오폭 사례는 더러 있었지만, 이번 사안은 비무장 민간인이 주거지역에서 나토의 오폭으로 희생당한 것이어서 향후 리비아 내 나토의 군사작전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당장 리비아 정부는 나토의 공습이 리비아 내 불안정과 무질서를 부추기고 있다며 아랍 세계의 ‘성전’을 촉구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한국戰 전사자 유해발굴] 첨단장비 총동원… 60년전 묻힌 ‘무명용사 恨’ 풀어주다

    [한국戰 전사자 유해발굴] 첨단장비 총동원… 60년전 묻힌 ‘무명용사 恨’ 풀어주다

    지난 15일 오전 11시쯤 충남 연기군 금남면 대평리 감성초등학교 뒤 야산. 61년 전 6·25전쟁 당시 북한군에 밀려 퇴각하던 국군이 북한군의 공격을 받아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한, ‘대평리 전투’가 벌어졌던 85고지다. 한낮 32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100여명의 장병들이 야산 일대를 샅샅이 파헤치고 있었다. 군사작전을 하듯 한 손에는 무전기를 들고 상황을 실시간 전달하고, 다른 손에는 금속탐지기나 삽, 곡괭이 등을 들고 산 곳곳을 물샐 틈 없이 훑어가고 있었다. ●전쟁 아픔 간직한 산의 비밀 찾아 이들은 충남 공주 일대의 향토 방어를 담당하는 32사단 기동대대 장병 100명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속 장병들이다. 20살을 갓 넘긴 앳된 얼굴부터 쉰살을 넘겨 흰머리가 보이는 장병이 함께하고 있지만, 6·25전쟁과의 거리는 멀어 보인다. 하지만 목소리만큼은 그 날을 기억하듯 비장함과 함께 굳은 신념이 배어 있다. 이곳에서 만난 이성현 이병은 “일주일째 발굴작업에 참여하고 있다.”면서 “힘이 든다기보다 (선배들의) 작은 (유해나 유물)하나라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흘러내리는 땀을 훔쳐냈다. ●발굴·감식 능력 세계 최고 감식단 한쪽에선 노트북을 이용해 지형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고, 다른 한쪽에서 파낸 흙을 채로 걸러내는 작업을 반복했다. 주경배 발굴과장은 “작은 치아 하나라도 찾아내기 위한 과정”이라면서 “자료를 노트북에 입력해 모두 기초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해발굴감식단의 자료 축적은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국방부 상설 기구로 유해발굴감식단이 처음 설립된 미국보다 뛰어난 기초 자료를 확보하고 있으며, 발굴 실력도 더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과 함께 영국, 호주의 국방 무관들도 우리 군의 유해발굴 감식 기술을 배우기 위해 수시로 방문하고 있다. 낮 12시가 다 될 무렵 감식단 장병들이 산 정상의 넓은 교통호를 줄과 플라스틱 못을 이용해 바둑판 모양으로 구역을 나눴다. 개인용 참호보다 유해나 유물이 나올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교통호를 정밀하게 탐색하기 위해서다. 얼마 뒤 무전기 너머에서 점심 식사를 위해 집합하라는 연락이 왔다. 장비를 정리해 산 아래로 내려가 32사단 장병들과 감식단 장병들이 뜨거운 태양볕을 피해 감성초교 운동장 한편에 주저앉아 식판을 들고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밥을 먹은 장병들은 발굴 현장으로 서둘러 나갈 준비를 했다. 점심시간을 맞아 운동장으로 나온 아이들이 줄을 맞춰 이동하면서 군인아저씨들에게 장난스레 ‘충성’하며 거수경례를 했다. 이들의 발굴작업은 오후 4시까지 이어졌지만 특별한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개인호 150개를 찾아 파냈을 때 유해 한 구를 찾을 수 있다는 감식단 관계자의 말처럼 무더위 속에 앞으로도 3주간의 지루한 싸움이 계속될 예정이다. 검게 그을린 장병들의 얼굴이 60여년 전 자유를 지키기 위해 85고지를 넘던 무명 용사의 얼굴들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기록으로 80%·제보로 20% 발굴 실제로 국군의 유해는 6·25 전쟁 기록에 나온 전투 지역을 유해발굴감식단이 직접 찾아 발굴하는 경우가 80%에 이른다. 지역 주민 등의 제보로 이뤄지는 경우는 20%에 불과하다. 그래서 감식단은 노출된 유해를 신고할 경우 2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 제보자 일부가 ‘유해파라치’로 변했다는 것이다. 최근 최고 70만원까지만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유해파라치는 또다시 진화해 여러 구의 유해를 나눠 신고하기도 한다. 글 연기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소셜미디어는 나토 ‘정보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도 리비아 공습에서 트위터,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의 막강한 정보력에 기대고 있다. 나토군이 리비아 공습에 앞서 타격 대상을 정하고 공습의 성과를 평가하는 데 소셜 미디어를 ‘정보 센터’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6일 보도했다. 이집트, 튀니지 등 중동 시위와 결합해 독재자 퇴진이라는 극적인 역사를 일궈낸 소셜 미디어가 다국적군의 군사작전에도 필수 무기가 된 것이다. 리비아 현지인들과 현지 상황을 꿰고 있는 사람들이 올리는 각종 메시지를 분석·종합·가공해서 유용한 정보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비아 군사작전 대변인인 영국공군(RAF)의 마이크 블래큰 사령관은 “트위터는 이곳 상황의 전체 그림을 그려 보는 데 도움이 되는 오픈소스 중 하나”라면서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출처에서 정보를 취합한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특히 극히 소수의 특수부대가 활동하고 있는 지상전에서 어떻게 정밀유도무기를 사용할지 계획하는 데 트위터에서 얻은 정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역효과도 만만치 않다. 우선 리비아에 거주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올리는 메시지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 14일 한 여성 트위터 사용자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친위대가 미스라타에 있다는 메시지를 나토군 페이지에 띄웠다. 하지만 이 사용자가 어디에 살고 있고 어떻게 이 정보를 얻어 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허위 정보가 확산될 위험도 있다. 영국 국방부는 이번 주 당국자들에게 “영국의 적에게 우위를 뺏기지 말라.”면서 “트위터나 페이스북 업데이트를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라.”고 경고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현역 중령이 부처로 간 까닭은

    군부대나 국방부가 아닌데도 중앙 부처에 근무하는 현역 군인들이 적지 않아 주목되고 있다. 15일 국방부에 따르면 군사작전이나 전투와 상관이 없는 부처에 파견된 현역 군인이 70여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전역 후 배치되는 비상기획관과 달리 국방부 소속의 현역 군인 신분이다. 이들은 업무 성격상 군부대 협조 등이 필요한 중앙 부처에서 국방부에 요청한 인력들이다. 직급은 영관급(중령)이나 고참 부사관들이며 파견 부처에서는 부이사관급 대우를 받는다. ●각 부처 요청에 따라 근무 중 이들은 주로 군과 부처 간의 업무 협의나 사업과 관련해 협력관 역할을 하고 있다. 국방부는 군부대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자 2005년 3월부터 중령급 협력관을 환경부에 파견했다. 행정안전부도 현재 육·해·공군에서 한 명씩 3명의 중령이 재난 위기 종합상황실에서 근무 중이다. 이들은 국가 비상상황에 대비한 대북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접경 지대 산불·수해 등 각종 재난과 관련해 군부대와 긴밀한 협조를 얻어내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정보요원 오해받기도 현역 장교나 부사관이면서 중앙 행정부처에서 근무하다 보니 종종 오해를 받기도 한다. 환경부에서 근무 중인 김순식(중령·육사 37기) 국방녹색협력관은 “업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정보 요원’이나 ‘군 수사대원’쯤으로 생각하기도 한다.”면서 “군부대의 환경 관리에 대해 환경부와 협조하고 개선책을 찾아내는 것이 주된 업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군부대의 토양 오염, 폐기물, 수질, 자연환경, 대기환경 등의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을 받아야 해결할 수 있다.”면서 “환경부 예하 지방청이 사업 계획을 승인하고 예산 할당을 해주기 때문에 협조 차원에서 파견 근무자가 필요하고 보람도 있다.”고 밝혔다. ●환경부 협력관 이달 말 종료 김 중령은 이달 말 제대를 앞두고 있다. 따라서 현역 군인으로서의 환경부 파견 업무도 끝난다. 하지만 국방부는 후임자를 파견하지 않기로 했다. 일부에서는 고엽제 매립 의혹 등 현안 환경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데, 2005년부터 유지해 온 자리를 없애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파견 직위는 기한이 정해져 있으며, 업무에 대해 충분히 목표를 달성했다고 판단해 정원 회수(자리를 없앰) 결정을 하게 됐다.”면서 “군부대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국방부 내에 전담과를 신설하는 등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군인은 전투력 강화가 우선이고 대외 기관 파견은 부수적인 일이기 때문에 앞으로 파견 인력도 최소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중령의 경우 당초 파견 기간은 2008년 5월부터 지난해 말까지였지만, 그가 올해 6월 말 제대 예정자여서 기간을 연장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중령처럼 자기 몫을 충실히 해내 필수 요원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에선 불필요한 인력 배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영관급 퇴역 장교는 “아무래도 계급 정년을 앞둔 영관급 장교나 부사관들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자리를 선호하게 된다.”면서 “중앙 부처 파견 근무자도 일부는 이런 배려 차원에서 생겨난 자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유진상·이재연기자 jsr@seoul.co.kr
  • 서방·아랍 ‘포스트 카다피’ 밑그림 그린다

    서방과 아랍국가들의 ‘포스트 카다피’ 체제 등 리비아의 미래에 대한 논의가 구체화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등 서방국가 외교장관과 아랍연맹(AL), 이슬람회의기구(OIC), 유엔 고위관리들은 9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리비아 연락그룹(International Contact Group) 회의를 갖고 ‘최후의 군사작전’과 후속 조치 등을 논의했다고 BBC방송 등이 보도했다. 임시정부 수립 등 권력 이양과 전후 처리를 위한 각종 사안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트리폴리에 있는 카다피의 관저인 바브 알아지지야 요새 등에 대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공습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뤄졌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이날 30여 개국 대표가 참석한 회의에서 “카다피에게 남은 날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라며 “우리는 동맹국들과 함께 유엔을 통해 필연적인 미래, 즉 ‘포스트 카다피의 리비아’에 대한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빅토리아 눌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도 “연락그룹은 나토 군사작전과 다음 단계에 대한 입장을 조율하고, 공동 행동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이번 회의에서 리비아가 단일 민주국가로 안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신들은 리비아 반군의 국가임시위원회(NTC)가 예비내각을 구성했으며 민간인 출신 군 최고책임자도 지명했다고 전했다. 이날 이탈리아는 반군의 국가위원회 측에 긴급 자금으로 6억 달러를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고, 쿠웨이트의 셰이크 모함마드 알 살렘 외무장관도 반군 측에 1억 8000만 달러를 송금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국제형사재판소(ICC)는 8일 카다피가 시위 진압을 위해 군인들에게 비아그라를 대주면서 ‘성폭행’ 명령까지 내렸다고 밝혔다. 카다피의 죄상을 드러내며 축출 명분을 다지려는 분위기다. ICC의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58) 수석 검사는 “카다피가 시위 진압을 위해 ‘성폭행’ 명령을 내렸으며 이를 위해 군대에 비아그라와 같은 약물을 제공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오캄포 검사는 이에 따라 카다피에 대한 추가 체포 영장을 발부하고, 민간인 학살에 비인도적인 성폭행 혐의를 추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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