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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눈] 17년 만의 고백, 미안하다 김 일병/이두걸 경제부 기자

    [오늘의 눈] 17년 만의 고백, 미안하다 김 일병/이두걸 경제부 기자

    원래 군대 이야기는 세상 사람 절반이 가장 싫어하는 주제다. 하지만 윤 일병 사건 이후 아들을 둔 어머니들은 군복무 문제에 누구보다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자신의 아들들이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군대에 자식을 보낸 부모 형제는 열이면 아홉은 단잠을 자기는 다 글렀다고 봐야 한다. 온갖 연줄을 동원해 자식을 ‘꽃보직’에 앉혀도 하룻밤 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게 군대다. 군 복무 시절 폭력에 연관되지 않은 전역자는 거의 없다. 그저 ‘어쩔 수 없었다’는 자기 변명으로 회피할 뿐이다. 징병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전혀 맞지 않는다. 현재 징병제를 폐지한 나라는 70여개 국에 달한다. 선진국 중에서 징병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물론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분단국가다. 그러나 경제력 세계 2위, 군사력 세계 3위의 중국과 대치 중인 타이완이 지난해부터 징병의 의무를 없앴다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20여년 전 18만명의 미군은 120만명의 이라크군을 궤멸했다. 요즘은 수십m 아래 벙커도 정밀 폭격하는 세상이다. 일본 자위대가 병력(25만명)으로는 우리의 3분의1 수준이지만 군사력 면에서는 우리보다 월등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110만명 북한군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은 ‘보병이 고지에 깃발 꽂던’ 2차 세계대전 시절 논리인 셈이다. 모병제를 도입하면 경제적으로도 실보다 득이 많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거론됐던 것처럼 모병제를 통해 현재 65만명 병력을 30만명으로 줄이면 한 해 35조원의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나는 것으로 평가된다. 높은 수준의 노동력과 소비력을 가진 35만명의 근로자가 새롭게 시장에 가세하는 덕분이다. 현재 GDP가 1300조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4% 내외인 GDP 잠재성장률이 7%대로 뛰어오른다. 최근 대졸 남자 신입사원 평균 나이는 33세가 넘는다. 늦게 직장을 잡으니 결혼도 늦춰지고, 자연스레 출산도 미룰 수밖에 없다. 징병제가 폐지되면 첫 직업 연령도 단축될 여지가 높다. 이보다 더 효과적인 저출산 고령화 대책은 찾기 힘들다. 병역비리나 종교적 병역 거부 등 사회적 논란을 종결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올해 우리나라 국방비 예산 38조 4000억원 중 인건비는 10조원 내외다. 30만명에 대해 올해 3월 기준 근로자 평균 연봉인 3664만원 정도를 지급하면 지금의 1조원만 인건비로 더 쓰면 된다. 공무원 신분의 직업군인 1명이 최저임금의 10분의1도 못 받는 2명의 군인보다 전투력이 떨어질 이유가 없다. GDP가 늘면 예산도 풍족해질 테니 국방비도 더 늘리고, 이를 토대로 ‘자주국방’을 실현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닌가. 천운을 타고 났는지 군 복무 당시에 거의 안 맞았다. 때린 적도 없다. 하지만 옆 내무반의 순한 인상의 후임이 10분의 구타당한 끝에 갈비뼈가 부러지고, 관련자들이 ‘축구하다가 다쳤다’고 거짓말한 데 대해 침묵으로 동조했다. 17년 만에 고백한다. 미안하다, 김 일병. douzirl@seoul.co.kr
  • [열린세상] 시진핑의 한국 방문이 남긴 여운/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시진핑의 한국 방문이 남긴 여운/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을 다녀갔다. 한국은 지정학적 여건상 주변 국가들 모두와 화평스럽게 지내는 것이 상책이라서 중국과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시진핑이 한국을 다녀가고 나서 머리는 이래저래 복잡해진 느낌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과의 관계를 맺으면서 역사상 가장 가까운 한·미동맹으로 발전한 지금 한국은 세계가 놀랄 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역사 이래 가장 풍요로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 국제적 위상도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지켜주고 평화의 60여년을 지날 수 있었기에 한국은 세계의 무역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급속한 경제성장에 성공하고 막강한 경제력을 근간으로 동북아의 최강자로 군림하고자 하는 야망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한국 주변의 안보 역학구도는 빠른 속도로 대립의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중국이 이제 때가 됐다는 결심을 하고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센가쿠 열토(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본격적으로 거론하자 일본은 집단자위권을 해석변경하며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나라로 변모하고 있다. 중국은 센가쿠 열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기에 앞서 동중국해, 남중국해를 중국의 내해(內海)로 만들기 위한 역사적인 작업을 착착 진행시켜 왔다. 여기에는 황해도 포함돼 있다. 중국 대륙 최남단의 해남도를 남해함대 본거지로 삼고 1000㎞나 남쪽으로 떨어져 있는 남사제도의 영유권을 1988년부터 거론하기 시작했고 그 중간에 위치한 서사제도는 1974년에 베트남으로부터 탈취해 군사 요새화했다. 이제는 해남도에 탐지가 쉽지 않도록 물밑으로 드나드는 잠수함기지를 건설했고 항공모함 부두도 마련 중이다. 대륙간탄도탄을 발사할 수 있는 원자력 잠수함도 배치돼 있다. 미국 항공모함보다 허술하기는 하지만 항공모함 랴오닝호가 실전 배치됐고 차기 항모도 배치할 예정이다. 시간을 두고 이런 준비를 해온 중국이 드디어 일본의 센가쿠 열도의 영유권을 주장하자 일본은 잠수함 16척 체제에서 22척 체제로 전환해 중국에 맞서기 시작했고 이지스함도 6척에서 8척으로 증강됐다. 그 와중에 한국도 군비증강에 동참해야 하니 눈덩이 같은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한국 경제의 앞날은 불안하기만 하다.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하겠지만 국방만큼은 더욱 굳건한 한·미동맹으로 바닥을 다져야 한다는 것을 실감케 된다.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용인하면서 군사력 확장과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나라로 변모하는 현실을 견제하고 경계해야 하겠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북아의 안보평형 상태를 뒤흔들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란 사실을 명백히 알아야 한다. 급속히 성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은 세계를 지배하는 G2 체제를 미국과 중국으로 각인시키며 서태평양 제해권을 미국에 양보하도록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떤 국가도 국력이 강해지면 그에 걸맞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국제정세지만 1970년대부터 중국이 보여준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갈등은 지역패권주의의 모습이 강해 안보불안이 증폭돼 왔다. 동북아시아에는 당사국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영토분쟁으로 불리는 사례가 몇 곳 있다. 한국은 전혀 인정하지 않지만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일본은 러시아에 홋카이도 북쪽 북방영토를 돌려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센가쿠 영토를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중·일 군비경쟁이 촉진되고 있는 중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고 그나마 조용했던 영토분쟁의 갈등을 중국이 본격적으로 거론하면서 영토분쟁은 해결책도 없이 무기 사재기로 돌변해 가고 있다. 중국이 걱정스러운 것은 서해바다뿐만 아니라 동해바다에도 수백척의 어선을 보내 한국의 수산업을 위협하고 있으니 중국의 힘이 더 강해지면 어떻게 나올지 짐작이 간다. 시진핑이 한국에 와서 친척집에 온 것 같다는 말이 어째 친근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중국이 한국의 형님”이라는 말로 들려 섬뜩하다. 21세기 개명천지에 국가 간의 관계는 친구로 불리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북한 잠수함 보유 세계 1위” 미국 잠수함 72척 보유했다는데 북한 잠수함 보유 대수는?

    “북한 잠수함 보유 세계 1위” 미국 잠수함 72척 보유했다는데 북한 잠수함 보유 대수는?

    ‘북한 잠수함’ 북한 잠수함 보유 대수가 미국을 앞지르며 세계 1위에 올랐다는 집계가 나왔다. 북한이 모두 78척의 잠수함 또는 잠수정을 보유, 72척인 미국을 앞서며 보유 척수 기준으로 세계 1위라는 집계가 나왔다. 미국 온라인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27일(현지시간) 군사력 평가기관 ‘글로벌 파이어파워’의 자료를 재가공한 결과 이렇게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의 집계에서 미국 다음으로는 중국(69척), 러시아(63척), 이란(31척)이 잠수함을 많이 가진 나라로 지목됐다. 한국과 일본의 보유 잠수함 수는 각각 14척과 16척이었다. 하지만 이 집계는 크기나 운용 목적에 따른 분류가 이뤄지지 않은 단순한 수치 집계다. 워싱턴의 한 군사 소식통은 “미국이나 러시아의 핵잠수함들은 힘의 균형이라는 전략적 목적으로 운용되지만 북한 잠수함은 주로 한국에 특수요원을 침투시키거나 후방을 교란하기 위해 운용된다”며 “숫자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안보 환경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군사전문매체 글로벌시큐리티는 북한의 작년 기준 잠수함 보유량을 78척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최소 8척으로 알려진 침투용 반잠수정도 포함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규모 세계1위 北 잠수함..‘고철덩어리’라 안무서워?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규모 세계1위 北 잠수함..‘고철덩어리’라 안무서워?

    북한의 잠수함 전력이 보유 척수 기준 세계 1위라는 미국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 보도가 화제다. 국내 언론은 28일 “비즈니스 인사이더에서 북한의 잠수함 전력을 세계 1위로 평가했다”고 일제히 보도했지만, 정작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이러한 기사를 낸 적이 없었다. 다만 3주 전인 지난 10일에 호주의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35개국(The 35 Most Powerful Militaries In The World)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북한이 78척의 잠수함을 가지고 있으며, 보유 척수 기준에서는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보다 많다는 보도가 있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참조한 글로벌 파이어 파워(The Global Firepower Index)가 북한의 잠수함 보유 척수에 대한 최신 업데이트를 한 것이 몇 달 전이었는데, 철 지난 뉴스거리가 왜 갑자기 화제의 뉴스가 되어 돌아온 것일까? -북한 잠수함 전력 해부 북한이 도대체 몇 척의 잠수함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은 국가와 기관, 그리고 자료마다 각기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78 ~ 80여척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이 숫자에는 수중 배수량 300톤 이상의 잠수함과 수중 배수량 300톤 미만의 잠수정이 모두 포함된 것이다. 잠수함은 어뢰와 기뢰 등을 이용해 적함을 공격하는 임무를 주로 수행하지만, 잠수정은 주로 특수부대원을 후방에 침투시키거나 기뢰를 이용해 항구나 해상교통로를 봉쇄 또는 파괴하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북한은 약 20여 척의 잠수함과 60여 척의 잠수정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 잠수함의 주력은 로미오(Romeo)급으로 알려진 중국제 033형(形)잠수함인 무한(武漢)급이다. 최근 김정은이 동해에서 타고 나갔던 잠수함이 바로 이 무한급이다. 수중배수량 2,100톤급이며, 533mm 어뢰발사관 8개와 16발의 어뢰를 탑재한다. 북한은 1973년부터 무한급 4척을 직수입하였고, 그 개량형인 035형 명(明)급 잠수함 3척 등 총 7척을 완제품 형태로 들여왔다. 이들 잠수함을 뜯어본 북한은 1976년부터 함경남도 신포에 있는 마양도 해군조선소에서 1년 반 간격으로 15척을 건조해 1995년 22번째 무한급 잠수함을 전력화했다. 이 가운데 1척이 사고로 침몰했고, 선체 노후화가 심해 운항이 불가능한 2척을 퇴역시킨 것으로 확인되어 현재 보유중인 무한급 잠수함은 19척 가량으로 평가된다. 우리 해군의 장보고급(209-1200형) 잠수함이 1987년 주문되어 1991년 진수한 것을 감안하면, 북한 해군이 보유한 무한급 잠수함이 심각히 낡은 배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무한급 바로 아래 체급으로 지난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주역으로 널리 알려진 상어급 잠수함도 약 36척 가량이 건조되어 운용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잠수함은 1964년에 처음 등장한 유고슬라비아제 헤로즈(Heroj)급의 개량형으로 수중 배수량은 370톤에 불과하지만 533mm 어뢰 4발을 운용할 수 있고 특수부대 요원들을 후방에 침투시킬 수 있어 가장 위협적인 전력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1998년 꽁치잡이 그물에 잡힌 잠수정으로 유명해진 유고급은 유고슬라비아의 기술지원으로 건조된 90톤급 소형 잠수정이다. 워낙 소형이기 때문에 승조원 외에 10여명 가량의 특수부대원을 실어 나르는 임무만 수행하지만, 일부 함정에서 어뢰발사관을 탑재한 형식이 식별되기도 한다. 이 형식도 20척 이상 건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천안함 폭침 사건의 주역으로 추정되는 연어급 잠수정은 북한이 지난 2007년 이란에 가디르(Ghadir)급이라는 명칭으로 수출하면서 처음으로 그 존재가 알려졌다. 130톤급으로 533mm 어뢰발사관을 운용하는데, 특수부대 침투보다는 연안에서의 대함 공격 임무에 특화된 잠수정이다. 정확한 건조 수량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위성사진을 통해 확인된 수량만 10척이 넘기 때문에 유고급이나 상어급만큼 대량으로 건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운기에도 깔리면 죽는다! 흔히들 북한의 잠수함 전력을 이야기할 때 ‘바다 속의 경운기’라는 표현을 쓴다. 경운기는 훌륭한 농기계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초라하거나 낡은 자동차를 비하할 때 쓰이는 표현이고, 소음이 대단히 심하다는 뜻도 담고 있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는 북한 잠수함은 고물이나 고철, 폐기 처분해야 할 물건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러나 경운기도 엄연한 교통수단이고 여기에 깔리면 죽거나 중상을 입는다. 500년 전 임진왜란 때 사용된 조총이라 해서 21세기에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특히 한반도 주변 해역은 잠수함 천국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배나 항공기가 잠수함을 찾아내기가 어렵기로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 곳이다. 북한 잠수함이 가장 많이 활동하는 동해는 수심이 깊어 잠수함을 탐지하기 어렵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 잠수함은 일반에 알려진 것처럼 그리 낡지 않았다. 이 때문에 무한급 잠수함의 파괴심도인 250 ~ 300m 깊이까지 잠항이 가능하다. 문제는 동해에서는 200m 이내의 수심에서 수온약층이 형성된다는 점이다. 물 속에서는 레이더 전파가 닿지 않기 때문에 음파로 물체를 찾아야 하는데, 매질의 성질이 달라지면 음파는 굴절되거나 왜곡・소실된다. 예를 들어 잠수함이 수심 250m까지 내려가 있으면 바다 표면에 있는 군함의 소나(SONAR)와의 사이에 무수히 많은 온도층이 존재하기 때문에 잠수함이 내는 소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설상 가상으로 동해 지역에 유입되는 쿠로시오 난류나 리만 난류, 동한 한류 등 각각 다른 성질을 가진 해수들이 유입되면서 수괴(水塊)가 형성되기 때문에 사방에서 음파가 왜곡・소실되어 잠수함을 찾기가 대단히 어려워진다. 서해는 중국과 한반도에서 유입되는 수 십개의 하천에서 막대한 양의 담수(淡峀)가 유입되기 때문에 연안 지역 곳곳에 담수괴가 형성되고, 수심이 얕아 곳곳에서 바위와 돌출 지형이 음파를 반사・왜곡시키고, 부유물과 쓰레기가 많아 자기장 변화로도 잠수함 탐지가 대단히 어렵다. 남해는 동해와 남해의 성질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면서 딱총새우(Pistol shrimp)의 최대 서식지 가운데 하나이다. 이 딱총새우들은 계절을 불문하고 사냥할 때마다 190 ~ 210dB의 소음을 내는데, 이는 일반적인 디젤 잠수함이 내는 소음이 120dB인 것을 감안하면 남해에서 음파로 잠수함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해군이 비공개로 실시한 시뮬레이션에서 우리 군의 최신 대잠수함 작전 장비를 모두 동원하더라도 북한 잠수함에 대한 탐지 및 격침률은 25%를 밑돌았고, 우리 군 함정 역시 큰 피해를 입는 결과가 나온 바 있었다. 이래도 북한 잠수함 전력을 경운기라고 비웃을 수 있을까? -한국판 ‘위스키 온 더 락’? ‘위스키 온 더 락’. 애주가들은 입맛을 다실 단어이지만 1981년 전 세계 일간지를 장식했던 이 단어는 세계 대전의 방아쇠가 될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1981년 가을, 스웨덴 해군기지 입구에 소련의 위스키(Whiskey)급 잠수함 1척이 암초 위에 끼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스웨덴 해군은 즉각 이 잠수함을 포위했지만 소련과 잠수함 함장은 “다가오면 핵무기를 발사 하겠다”고 위협했고, 결국 잠수함은 소련으로 무사히 돌아갔었다. 만약 이 같은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진다면? 지난해 11월, 김관진 당시 국방부장관은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북한이 우라늄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밝히면서 북한 핵무장 여부에 많은 관심이 모아진 바 있었다. 우라늄 핵무기는 플루토늄 핵무기에 비해 제조 기술이 비교적 간단하고, 은밀한 제조가 가능하지만, 소형화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무기 소형화 수준이 아직 미사일 탄두로 장착할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회고나 최근 사망한 전병호 노동당 군수담당비서와 핵 개발 전반에 걸쳐 깊은 협력관계였던 칸(Abdul Qadeer Khan) 박사, 그리고 칸 박사로부터 북한과의 핵 커넥션에 대한 사항을 편지로 전달 받은 사이먼 헨더슨(Simon Henderson)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Washington Institute for Near East Policy) 연구원이 주고받은 서신들을 종합해보면 북한은 이미 오래 전에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했기 때문에 국내 전문가들의 추정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북한이 ‘덩치가 큰 우라늄 핵무기’를 어디에 쓰려고 대량 제조 시설을 갖추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핵미사일은 하늘을 통해 날아온다. 발사 직후부터 누가 쐈고, 어느 공역을 통과해 어디로 날아가는지 전 세계가 지켜보기 때문에 쏘고 나서 발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핵탄두가 하늘이 아닌 바다를 통해서 온다면?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이다. 우라늄 핵무기는 소형화가 어렵지만, 소형화를 포기한다면 제조는 대학교 연구소에서도 가능할 만큼 구조가 단순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핵폭발 장치(nuclear fission device)가 잠수정에 장착되어 해류를 타고 동해안을 따라 내려온다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동해에는 다양한 해류가 흐르기 때문에 동력을 거의 소모하지 않고도 경상남도 일대 해안까지 침투가 가능하다. 겨울철에는 원산에서 강원도 지역까지 북한해류가 흐르는데, 이 해류를 타고 남하하면 울진이나 월성 등 원자력 발전소 앞바다까지 대단히 손쉽게 침투가 가능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울산이나 포항 등 주요 공업단지 인근까지 접근이 가능하다. 북한이 남한에 대해 핵 공격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상황이라면 침투 직후 폭발시키면 되는 것이고, 정치적 목적이 있다면 잠수함을 수상으로 부상시킨 후 협박을 가해올 수도 있다. 몰래 폭발시킨다면 나중에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 남한의 원자력 발전소 고장으로 인한 폭발 사고였다고 잡아떼면 그만이니 남한에게 가공할만한 피해를 입히고 천안함 사건 당시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남남 갈등을 유발할 수 있고, 남한의 핵심 산업단지를 볼모로 막대한 정치・경제적 이익도 뜯어낼 수 있으니 김정은 입장에서는 궁지에 몰리면 써 볼 만한 카드가 아닐까?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청일전쟁 120주년… 中 “두 번 치욕은 없다” 자기반성 중

    25일 청일전쟁 발발 120주년을 맞아 중국 언론들이 당시 일본에 패배한 원인을 분석하는 기사를 대거 쏟아 냈다. 중국은 이 전쟁을 시작으로 일본을 포함한 열강에 국토의 상당 부분을 점령당하는 등 사실상 망국의 치욕과 고통을 당했다. 역사 문제와 영토 분쟁 등으로 일본과 갈등 중인 상황에서 굴욕의 역사를 조명해 민족 단결과 항일 의식을 고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경화시보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6월 과학기술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청일전쟁을 언급하며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청일전쟁을 계기로 중화민족이 당했던 고난과 희생은 세계 역사에서 보기 드문 것”이라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과학기술 강국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문은 “일본이 당시 과학기술 발전에 힘써 강국이 됐고 이로 인해 청나라 군대가 패배한 것”이라며 “괴롭힘을 당하지 않으려면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강국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민일보는 중국이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낙후한 봉건 독제 체제 탓이었다며 계속적인 개혁을 통해 강한 정부와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청나라 서태후는 청일전쟁 발발로 군사력을 강화해야 하는 비상 시기에 자신의 환갑잔치에 거액을 투자했다. 전쟁은 썩을 대로 썩은 체제를 가진 봉건제국이 무너지는 임계점이 됐을 뿐”이라고 분석하면서 “중국은 당의 지배와 중국특색사회주의 체제를 견지해 민족부흥을 실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주권 강화 여론도 고조됐다. 명보는 전날 베이징에서 열린 청일전쟁 발발 120주년 학술 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이 일본 우익에 대한 경계를 주문했다고 보도했다. 류장융(劉江永) 칭화대 교수는 “청나라는 패전의 대가로 댜오위다오를 일본에 바쳐야 했다”며 중국이 굴욕의 청일전쟁을 기리는 것은 댜오위다오가 중국 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기획]드라마 ‘조선총잡이’로 본 대한제국軍 - ‘밀덕’ 고종과 ‘빵빵’했던 총기

    [기획]드라마 ‘조선총잡이’로 본 대한제국軍 - ‘밀덕’ 고종과 ‘빵빵’했던 총기

    배우 이준기와 남상미가 7년만에 다시 연기 호흡을 맞추며 화제가 된 KBS 수목드라마 ‘조선총잡이’가 매 회차마다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점차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마치 미국 서부개척시대에나 있을 법한 총잡이를 조선시대에 접목시킨 발상도 참신하지만, TV 드라마를 통해 20세기 초에 등장했던 미국과 유럽의 다양한 총기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마니아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불러 모으고 있는 것 같다. 이 드라마는 고종이 흥선 대원군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친정(親政)을 시작한지 3년째 되는 해인 1876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드라마 속에서 등장하는 총기나 탄약들 대부분은 20세기에 등장한 것들이어서 1회 방영 직후부터 엉터리 고증 논란을 겪고 있다. 제작진이 고증에 맞는 총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빚어진 해프닝이이겠지만, 당시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종류의 총기들이 쏟아져 들어왔던 조선 말기의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지금 제작진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도 무슨 총이 무슨 총인지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고종의 ‘밀덕(밀리터리 덕후)’ 기질이 조선에 수십 종류의 총기를 들여다 놓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좋다는 것은 다 사라!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조선군은 서양의 신식 화기에 대해 적잖은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조선군은 화승총으로 무장했는데 반해 미군은 레밍턴(Remington)사의 롤링블럭(Rolling Block) 소총을 사용했다. 화승총은 숙련된 병사조차 분당 2발 이상을 사격하기 어렵고, 유효 사거리도 100m 수준이었지만, 롤링블럭 소총은 분당 10발을 발사할 수 있고, 유효 사거리도 400m에 달했다. 전투가 될 수가 없었다. 조선군의 대패에는 무엇보다 화력의 차이가 컸다. 당시 미군은 5척의 군함을 동원해 광성보 포대에 배치된 조선군 포병의 사거리 밖에서 포격을 퍼부었는데 조선군은 이 포격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는 조선으로 하여금 근대적인 군대 창설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고, 그 결과 일본의 호리모토 레이조(堀本禮造)를 교관으로 초빙해 1881년 신식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했다. 신식군대에 대한 고종의 애착은 대단했다. 물론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정변 등 잡음도 많았지만 고종은 별기군에서 시위대와 진위대로 이어지는 신식 군대 양성을 위해 국가 재정의 40%를 쏟아 부으면서 당시 좋다는 무기는 모조리 사들였다. 별기군 창설 당시 80명의 별기군을 위해 일본에서 무라타 13식 200정을 들여오는 것을 시작으로 신미양요 당시 조선군을 학살했던 미국의 레밍턴 롤링블럭 소총,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 군사고문단이 추천한 러시아제 베르당(Verdun) 소총, 독일제 마우저(Mauser) M1871 소총, 영국제 엔필드 스나이더(Enfield Snider) 소총 등을 수천 정씩 사들이더니, 1887년부터는 삼청동에 기기창을 만들고 아예 총기를 직접 생산하는 것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신미양요 당시 포병에 당했던 설움 때문에 신식 화포 도입도 서둘렀다. 소위 암스트롱포(Armstrong Gun)로 불린 12파운드 야포는 물론 당시로서는 최신식이었던 독일제 크루프(Krupp) 75mm 속사포도 도입했다. 여기에 미국제 개틀링(Gatling) 기관총과 당시로서는 강대국들만 보유했던 최신식 기관총인 맥심(Maxim) 기관총도 도입했다. 고종은 주변 누군가에게서 그 무기가 좋다는 이야기만 들리면, 혹은 이번에는 러시아제 무기를 들여왔으니 다음에는 관계 개선 차원에서 영국제 무기를 들여와야 한다는 논리로 문어발식으로 무기 도입선을 늘려갔다. 이런 무기들을 바탕으로 1898년 시위연대가 창설되었고, 이 시위연대는 2개 보병대대와 1개 기병대대, 1개 포병대대 등을 갖춘 근대적인 보병연대로 성장했고, 1902년에는 2개 연대로 확대 개편되어 약 5,000여명의 병력과 최신 무기로 무장한 부대로 다시 태어났다. 1900년 기준으로 대한제국은 이러한 시위대 이외에도 지방에 총 6개 연대 18개 대대로 구성된 21,000명의 진위대도 운영했기 때문에 구한말 대한제국의 군사력은 결코 약한 수준이 아니었다. -장비가 좋아도 의지가 없다면... 당시 조선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26,000여명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러일전쟁이 발발할 당시 일본 육군의 총병력은 15만 명 수준이었는데, 1개 연대 병력을 상륙시킨 이후 야금야금 병력 규모를 늘려 1904년에는 10만 명의 병력을 조선에 진주시키기에 이르렀다. 만약 고종이 좀 더 기민하게 움직여 지방에 산개된 진위대 병력을 집중해 운용하면서 일본군의 상륙을 방해하고, 러시아 극동군의 군사 개입을 좀 더 적극적으로 요구하였더라면 대한제국이 그리 허망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한제국은 26,000명의 근대화된 군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본이 러일전쟁을 준비하던 1904년부터 그 어떤 군사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일본이 쓰시마 해전과 뤼순 전투에서 러시아에 대승을 거두면서 러일전쟁에서 승리할 때까지 자신의 군사력을 이용해 일본군의 배후를 칠 그 어떤 궁리도 하지 못했다. 청국과 러시아를 물리치고 한반도를 독점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른 일본은 1905년 군대로 왕궁을 포위하고 친일파를 앞세워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체결했다. 이 늑약에 따라 설치된 통감부는 1907년 고종을 폐위・독살하고 순종을 옹립했다. 친일파에 둘러싸인 순종은 왕궁 호위를 위한 1개 대대 병력의 시위대 병력만 남기고 대한제국군을 해산하라는 조칙을 내렸다. 일본은 대한제국군의 저항에 대비했다. 수도 한성에는 신식 장비로 무장한 시위대 2개 연대 약 5,000여명의 병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제13보병사단 전 병력을 서울로 불러들이고, 제12보병여단 병력을 대대급으로 나눠 평양과 대구, 대전 등 진위대 병력이 주둔하고 있던 지역에 내려 보냈다. 이들은 대한제국 장병들을 연병장에 불러 모으고 군모를 벗기고 계급장을 뗐다. 그리고 해산을 명령했지만, 서대문에 주둔하고 있던 제1시위연대 제1대대장 박승환(朴昇煥) 참령은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했으니 만 번 죽어도 무엇이 아깝겠는가”라며 해산을 거부하고 자결했다. 박 참령의 순국이 도화선이 되어 시위대원들은 무기고를 열고 무장해 일본군과 맞서 싸웠지만, 조칙이 내려지기 이전부터 탄약고를 비워놓고 시위대 주둔기지를 포위하고 있던 일본군에 의해 70여명이 전사하고 100여명이 부상당하는 등의 피해를 입고 뿔뿔이 흩어졌다. 흩어진 군인들은 의병이 되거나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에 투신했다. 최신 무기를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변변한 저항조차 하지 못했던 대한제국군! 역사에는 ‘if’가 없다지만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조선총잡이로 본 ‘밀덕’ 고종과 빵빵했던 대한제국군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조선총잡이로 본 ‘밀덕’ 고종과 빵빵했던 대한제국군

    배우 이준기와 남상미가 7년만에 다시 연기 호흡을 맞추며 화제가 된 KBS 수목드라마 ‘조선총잡이’가 매 회차마다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점차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마치 미국 서부개척시대에나 있을 법한 총잡이를 조선시대에 접목시킨 발상도 참신하지만, TV 드라마를 통해 20세기 초에 등장했던 미국과 유럽의 다양한 총기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마니아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불러 모으고 있는 것 같다. 이 드라마는 고종이 흥선 대원군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친정(親政)을 시작한지 3년째 되는 해인 1876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드라마 속에서 등장하는 총기나 탄약들 대부분은 20세기에 등장한 것들이어서 1회 방영 직후부터 엉터리 고증 논란을 겪고 있다. 제작진이 고증에 맞는 총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빚어진 해프닝이이겠지만, 당시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종류의 총기들이 쏟아져 들어왔던 조선 말기의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지금 제작진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도 무슨 총이 무슨 총인지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고종의 ‘밀덕(밀리터리 덕후)’ 기질이 조선에 수십 종류의 총기를 들여다 놓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좋다는 것은 다 사라!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조선군은 서양의 신식 화기에 대해 적잖은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조선군은 화승총으로 무장했는데 반해 미군은 레밍턴(Remington)사의 롤링블럭(Rolling Block) 소총을 사용했다. 화승총은 숙련된 병사조차 분당 2발 이상을 사격하기 어렵고, 유효 사거리도 100m 수준이었지만, 롤링블럭 소총은 분당 10발을 발사할 수 있고, 유효 사거리도 400m에 달했다. 전투가 될 수가 없었다. 조선군의 대패에는 무엇보다 화력의 차이가 컸다. 당시 미군은 5척의 군함을 동원해 광성보 포대에 배치된 조선군 포병의 사거리 밖에서 포격을 퍼부었는데 조선군은 이 포격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는 조선으로 하여금 근대적인 군대 창설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고, 그 결과 일본의 호리모토 레이조(堀本禮造)를 교관으로 초빙해 1881년 신식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했다. 신식군대에 대한 고종의 애착은 대단했다. 물론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정변 등 잡음도 많았지만 고종은 별기군에서 시위대와 진위대로 이어지는 신식 군대 양성을 위해 국가 재정의 40%를 쏟아 부으면서 당시 좋다는 무기는 모조리 사들였다. 별기군 창설 당시 80명의 별기군을 위해 일본에서 무라타 13식 200정을 들여오는 것을 시작으로 신미양요 당시 조선군을 학살했던 미국의 레밍턴 롤링블럭 소총,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 군사고문단이 추천한 러시아제 베르당(Verdun) 소총, 독일제 마우저(Mauser) M1871 소총, 영국제 엔필드 스나이더(Enfield Snider) 소총 등을 수천 정씩 사들이더니, 1887년부터는 삼청동에 기기창을 만들고 아예 총기를 직접 생산하는 것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신미양요 당시 포병에 당했던 설움 때문에 신식 화포 도입도 서둘렀다. 소위 암스트롱포(Armstrong Gun)로 불린 12파운드 야포는 물론 당시로서는 최신식이었던 독일제 크루프(Krupp) 75mm 속사포도 도입했다. 여기에 미국제 개틀링(Gatling) 기관총과 당시로서는 강대국들만 보유했던 최신식 기관총인 맥심(Maxim) 기관총도 도입했다. 고종은 주변 누군가에게서 그 무기가 좋다는 이야기만 들리면, 혹은 이번에는 러시아제 무기를 들여왔으니 다음에는 관계 개선 차원에서 영국제 무기를 들여와야 한다는 논리로 문어발식으로 무기 도입선을 늘려갔다. 이런 무기들을 바탕으로 1898년 시위연대가 창설되었고, 이 시위연대는 2개 보병대대와 1개 기병대대, 1개 포병대대 등을 갖춘 근대적인 보병연대로 성장했고, 1902년에는 2개 연대로 확대 개편되어 약 5,000여명의 병력과 최신 무기로 무장한 부대로 다시 태어났다. 1900년 기준으로 대한제국은 이러한 시위대 이외에도 지방에 총 6개 연대 18개 대대로 구성된 21,000명의 진위대도 운영했기 때문에 구한말 대한제국의 군사력은 결코 약한 수준이 아니었다. -장비가 좋아도 의지가 없다면... 당시 조선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26,000여명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러일전쟁이 발발할 당시 일본 육군의 총병력은 15만 명 수준이었는데, 1개 연대 병력을 상륙시킨 이후 야금야금 병력 규모를 늘려 1904년에는 10만 명의 병력을 조선에 진주시키기에 이르렀다. 만약 고종이 좀 더 기민하게 움직여 지방에 산개된 진위대 병력을 집중해 운용하면서 일본군의 상륙을 방해하고, 러시아 극동군의 군사 개입을 좀 더 적극적으로 요구하였더라면 대한제국이 그리 허망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한제국은 26,000명의 근대화된 군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본이 러일전쟁을 준비하던 1904년부터 그 어떤 군사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일본이 쓰시마 해전과 뤼순 전투에서 러시아에 대승을 거두면서 러일전쟁에서 승리할 때까지 자신의 군사력을 이용해 일본군의 배후를 칠 그 어떤 궁리도 하지 못했다. 청국과 러시아를 물리치고 한반도를 독점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른 일본은 1905년 군대로 왕궁을 포위하고 친일파를 앞세워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체결했다. 이 늑약에 따라 설치된 통감부는 1907년 고종을 폐위・독살하고 순종을 옹립했다. 친일파에 둘러싸인 순종은 왕궁 호위를 위한 1개 대대 병력의 시위대 병력만 남기고 대한제국군을 해산하라는 조칙을 내렸다. 일본은 대한제국군의 저항에 대비했다. 수도 한성에는 신식 장비로 무장한 시위대 2개 연대 약 5,000여명의 병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제13보병사단 전 병력을 서울로 불러들이고, 제12보병여단 병력을 대대급으로 나눠 평양과 대구, 대전 등 진위대 병력이 주둔하고 있던 지역에 내려 보냈다. 이들은 대한제국 장병들을 연병장에 불러 모으고 군모를 벗기고 계급장을 뗐다. 그리고 해산을 명령했지만, 서대문에 주둔하고 있던 제1시위연대 제1대대장 박승환(朴昇煥) 참령은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했으니 만 번 죽어도 무엇이 아깝겠는가”라며 해산을 거부하고 자결했다. 박 참령의 순국이 도화선이 되어 시위대원들은 무기고를 열고 무장해 일본군과 맞서 싸웠지만, 조칙이 내려지기 이전부터 탄약고를 비워놓고 시위대 주둔기지를 포위하고 있던 일본군에 의해 70여명이 전사하고 100여명이 부상당하는 등의 피해를 입고 뿔뿔이 흩어졌다. 흩어진 군인들은 의병이 되거나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에 투신했다. 최신 무기를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변변한 저항조차 하지 못했던 대한제국군! 역사에는 ‘if’가 없다지만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조선시대 최북단 군사력 담은 7m 기록

    조선시대 최북단 군사력 담은 7m 기록

    18세기 조선 최북단 국경지역의 군사력을 가늠할 수 있는 ‘해유문서’(解由文書·인수인계서)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해유문서란 조선시대 관리가 교체될 때 후임자에게 업무를 인계하면서 작성하는 문서로 이번에 발견된 고문서에는 활·화살, 조총, 화약 등 무기류와 병서류, 군량미까지 350여 항목이 망라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정조 9년(1785년)에 작성된 길이 6.7m, 폭 0.8m의 대형 해유문서를 21일 공개했다. 이 문서는 함경북도 길주목(吉州牧)의 서북진병마첨절제사(西北鎭兵馬僉節制使) 윤빈이 다른 곳으로 발령 나면서 김세휘에게 전달한 것이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해유문서 100여건 가운데 지방 무관이 작성한 것은 이 문서를 포함해 단 7건에 불과하다. 그간 평안도의 군비를 담은 2건의 해유문서가 나왔지만 조선시대 최북단 국경인 함경북도의 상황을 담은 문건은 처음이다. 길주목 서북진은 지금의 북한 김책시 바로 위 길주군에 해당하며, 1만 가구 안팎의 백성이 거주하는 군사 요충지로 꼽혔다. 문건에는 300여종에 이르는 무기류의 현황이 담겼다. 궁시(활과 화살), 화약병기(총통, 조총, 화약, 탄환, 폭탄, 화약심지 등), 사살무기(창, 칼), 신호장비(징, 북, 취라, 깃발), 방어장비(방패, 마름쇠) 등으로 상세히 구분했는데, 무쇠 탄환 1만 4111개, 마름쇠(지뢰 역할을 하는 쇠못류) 4997개, 편전 670개, 조총 343개 등이 기록돼 있다. 예컨대 이 고문서를 통해 편전이 정조가 즐겨 쓰던 화살일 뿐만 아니라 멀리 함경북도 국경지대에서 널리 사용되던 화살임이 드러났다. 일명 ‘애기살’로 불리는 편전은 대나무통에 넣어 쏘는 매우 짧은 화살로, 정조는 “편전은 명쾌하고 신묘해 따를 화살이 없다”고 예찬했다. 아울러 고문서는 쌀·콩·조·보리·기장 등 군량미의 종류도 꼼꼼히 담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도서관연구소의 이혜은 연구사는 “이 고문서는 함경 지방의 군비 상황을 알려주는 것 외에 가장 긴 현존 해유문서로 추정된다”면서 “18세기 북방지역에 꾸준히 화약병기가 보급되는 정황을 통해 여진족의 위협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문서 뒷부분에 경자년(1720), 을사년(1725), 병오년(1726), 정미년(1727), 임자년(1732), 을유년(1765)으로 나뉘어 기록된 내역을 보면 조총에 사용되는 납으로 만든 총알(鉛丸)과 화약의 보급이 크게 늘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국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트던 시기의 국방력 강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도서관 관계자는 “서울의 한 70대 노인에게 유물 구입비 3000만원을 지불하고 최근 이 문서를 입수했다”고 말했다. 글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경제학 미로에서 길 잃은 당신… 세계의 석학들, 안내자로 나서다

    경제학 미로에서 길 잃은 당신… 세계의 석학들, 안내자로 나서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장하준 지음/김희정 옮김/부키/496쪽/1만 6800원 강대국의 경제학/글렌 허버드·팀 케인 지음/김태훈 옮김/민음사/404쪽/2만 5000원 경제학 서적 출간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작금의 경제학 열풍은 출판사들이 경쟁적으로 책을 냄으로써 만들어 낸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만큼 경제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근간 경제학 서적 중에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이하 ‘경제학 강의’)는 대중을 위한 비판적 경제입문서라는 점에서, ‘강대국의 경제학’은 정책결정자들의 필독서가 될 만하다는 점에서 유독 눈길을 끈다. ‘경제학 강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사다리 걷어차기’ 등으로 유명한 밀리언셀러 경제학자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쓴 일반인을 위한 경제학 입문서다. 지난 5월 영국에서 출간된 ‘이코노믹스 유저스 가이드’(Economics, The User’s Guide)의 번역본이다. 책은 1989년 종간한 펭귄의 펠리컨북스 시리즈를 복간하는 첫 책으로 영국 현지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장 교수는 서문에서 “경제학이 스스로를 과학으로 믿는 과대망상에 빠져 있으면서 실제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예측하는 데 계속 실패해 왔다”고 비판하고 “책임 있는 시민은 모두 어느 정도 경제학적 지식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두꺼운 경제학 교과서를 읽으면서 특정 경제학적 시각을 무조건 흡수하라는 뜻은 아니다. 장 교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경제학적 논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어떤 경제학적 시각이 가장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 시각을 갖추도록 경제학을 배우는 것”이라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경제학을 이야기하는’ 책을 쓴 동기를 설명했다. 책은 1부에서 자본주의가 진화해 온 역사부터 신자유주의에 이론을 제공한 신고전학파, 고전주의, 케인스주의, 마르크스주의, 오스트리아학파, 개발주의, 제도학파 등을 개괄해 각 학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와 맹점, 장단점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2부는 실제 세상에서 경제를 이해하는 데 경제학을 어떻게 적용할지를 보여 준다. 소득, 행복, 금융, 불평등과 빈곤, 정부의 역할, 국제무역, 국제수지, 초국적 기업과 외국인 투자의 허실, 이민 등을 알기 쉽게 짚는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가치중립적으로 경제 현상을 꿰뚫어 설명한다는 점이다. 강자의 입장에 있는 나라들에서 태동한 주류 경제학이 그동안 세뇌한 여러 가지 ‘진실’들이 ‘참’으로 입증된 것은 거의 없다는 점을 알게 된다. 읽기 수월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장하준 교수의 책들은 누적판매부수 150만부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상황에서 이 책 역시 하반기 출판시장을 얼마나 뒤흔들지가 관심사다. ‘강대국의 경제학’은 경제학의 관점에서 강대국 흥망의 메커니즘을 살핀 흥미로운 책이다. 미국 부시 행정부의 경제자문위원장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정책의장직을 역임한 세계적 거시경제학자 글렌 허버드와 허드슨연구소 수석경제학자인 팀 케인이 함께 썼다. 책은 지금껏 축적된 다양한 데이터와 그들이 개발한 새로운 경제력 측정법을 이용해 고대 로마의 성공과 몰락, 스페인 제국의 영광과 파산, 일본의 경제 기적과 잃어버린 10년 등 강대국의 흥망성쇠에서 공통된 패턴을 찾아냈다. 그들은 넓은 영토와 인구, 군사력 등은 강대국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며, 한 나라를 유지하고 번영하게 하는 것은 경제적 요소들 간의 독특한 관계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그 이론을 바탕으로 미국과 중국, 유럽과 영국 등 현재의 최강대국이 처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진단하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 나갈지 강대국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라고 권한다. 저자들은 “겉으로 격렬해 보이는 전쟁이나 극적인 선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의 경제적 균형과 그것을 가능케 할 정치적 역량”임을 역설하면서 다음과 같은 강대국 번영의 조건을 제시한다. 필연적 붕괴는 없다. 경제개혁뿐 아니라 제도 개혁을 통해 변신하라. 민족성은 신화다. 어떤 국가든 상업, 기업가 정신, 기술적 변화를 촉진하는 우월한 제도를 수립하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모든 집단은 내부에서부터 무너진다. 경제적 무지는 최악의 적이다. 정부는 가장 위험한 이익집단이다. 잃을 것에 대한 불안이 혁신을 그르친다. 팽창보다 고립이 위험하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트리폴리 공항 로켓포 피격… 리비아 비상

    트리폴리 공항 로켓포 피격… 리비아 비상

    리비아에서 최근 6개월 새 최악의 교전이 일어나 공항이 마비되고 유엔 지원단이 완전히 철수하는 등 전면전 양상을 띠고 있다. 15일 알자지라에 따르면 전날 수십 발의 로켓이 수도 트리폴리의 국제공항에 떨어져 계류 중인 항공기의 약 90%가 파괴됐다. 트리폴리에서는 지난 13일부터 계속된 진탄 부족 기반 무장세력과 이슬람 민병대 사이의 교전으로 최소 7명이 숨지고 공항과 항공관제센터가 폐쇄됐다. 트리폴리 서쪽에 있는 제2 도시 벵가지에서도 치열한 교전이 일어나 최소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다. 이번 사태로 트리폴리 국제공항과 서부 미스라타시 공항은 일시 폐쇄됐다. 지난 5월 교전으로 문을 닫은 벵가지 국제공항에 이어 리비아 서부 전체를 관할하는 트리폴리 항공관제센터가 폐쇄됨에 따라, 현재 리비아에 남아 있는 공항은 라브라크와 토브루크 등 동부의 작은 공항뿐이다. 외국과의 통로는 사실상 튀니지와의 육로밖에 남아 있지 않아, 리비아는 사실상 국제교통이 봉쇄된 상태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유엔 리비아 주재 지원단은 안전을 이유로 15일 리비아에서의 철수를 결정했다. 유엔은 “계속되는 교전과 트리폴리 국제공항의 폐쇄로 리비아에서 더 이상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돼 잠정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유엔은 지난 13일 리비아 주재 지원단 일부를 철수한 데 이어 이날 나머지 인력을 모두 철수시켰다. 리비아 정부는 성명에서 “비상회의를 열어 국제사회에 군사력을 요청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정부군은 이날도 무장단체들의 충돌을 통제하지 못한 채, 공항에서 최소 20㎞ 이상 벗어나라는 명령만 내렸다. 리비아는 무아마르 카다피의 40년 독재가 2011년 막을 내리자 지역 부족을 기반으로 한 무장세력들이 유전 등 이권을 장악하고 정부군과 대립하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이슬람계 의회 해산을 요구하며 재등장한 퇴역 장성 칼리파 하프타르가 5월부터 이슬람주의 무장세력과 충돌해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60살넘은 ‘늙은’ 폭격기에 목멘 ‘첨단’미국, 왜?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60살넘은 ‘늙은’ 폭격기에 목멘 ‘첨단’미국, 왜?

    정치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군의 이미지는 ‘첨단’이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은 전 세계에 군대를 배치하면서 독재자나 군벌, 이슬람 무장 단체부터 해적과 마약조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상과 지금 이 순간도 싸우고 있다. 하루하루가 전쟁의 연속인 만큼 전장에서 올라오는 교훈은 재빨리 새로운 무기 개발에 반영되고, 이렇게 전장 환경과 사용자의 니즈로 탄생한 새로운 무기들은 전 세계 전쟁터에서 얼굴을 내밀며 미국의 군사력과 과학 기술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첨단 무기 구매에 엄청난 국방예산을 쓴다하여 ‘천조국’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진 미국조차 60년 넘게 바꾸지 못한 무기가 있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은 미국의 전략적 힘의 심볼인 ‘전략폭격기’였다. -집안 대대로 조종하는 유서 깊은 폭격기 종류를 막론하고 무기체계의 한 세대는 약 30년 정도로 잡는다. 소총부터 전차는 물론 전투기와 군함도 30년을 기준으로 해서 퇴역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 무기의 수명이 30년을 넘긴다면? 전차나 장갑차는 ‘닦고 조이고 기름 쳐서’ 더 쓰거나 굴러가지 않으면 고정식 포탑으로라도 사용할 수 있고, 군함도 최소한 가라앉지는 않는다. 하지만 항공기는 다르다. 낡은 항공기는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하늘을 나는 관(Flying casket)’이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하는 경우라면 이러한 문제는 좀 더 심각해진다. 항공기 수명 30년이라는 것은 연간 비행시간을 일정하게 정해놓고 그것을 지켰을 때 수명이 30년이라는 이야기지만, 미국은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상황 때문에 항공기들이 혹사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도입 25~30년이 경과한 항공기들은 종류를 막론하고 현역에서 도태시켜 매각하거나 ‘항공기의 공동묘지’로 불리는 AMARC(Aircraft Maintenance And Regeneration Center)에 장기 보관 처리를 하고 새로운 항공기로 대체된다. 현재 AMARC에는 다른 나라에서는 당당한 1선급 전투기로 활약하고 있는 F-15/16/18 계열 전투기들이 500여대 이상 보관중이다. 그런데 여기에 100여대나 보관 중인 어떤 폭격기는 비슷한 숫자가 현재 미 공군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다. 바로 B-52H다. 1952년부터 생산되어 1955년부터 실전 배치된 이 폭격기는 ‘3대가 모는 폭격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이 폭격기 조종사로 근무하는 집안이 있다. 지난해 B-52H 조종사가 된 미 공군 데이비드 웰시(David Welsh) 대위의 아버지 돈 웰시(Don Welsh) 예비역 대령은 베트남전에서 B-52 폭격기를 몰았던 참전용사이고, 할아버지인 돈 스프레이그(Don Sprague) 예비역 대령 역시 냉전시기 B-52 폭격기를 이용한 핵공격 임무를 수행했던 파일럿이었다. 문자 그대로 집안 대대로 조종하는 유서 깊은 폭격기인 것이다. -여러번의 교체 시도, 하지만 구관이 명관? 사실 미 공군도 B-52 폭격기가 좋아서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이 폭격기를 대체하기 위해 몇 차례나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사실상 실패했기 때문이다. 제트기가 대중화되면서 자고 일어나면 항공기의 세대가 바뀌어 있을 정도로 항공기술 발전이 빨랐던 1960년대에 미 공군은 B-52를 마하 3의 초음속으로 날아가 소련에게 핵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XB-70 발키리(Valkyrie) 폭격기로 대체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 기술로도 무리가 있는 초음속 폭격기를 60년대 기술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고, 천문학적인 예산만 쏟아 붓고 결국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미국은 포기하지 않았다. 여전히 초음속 폭격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만, 기술 수준의 한계를 감안해 속도를 마하 2 정도로 낮추고 당시 유행하던 가변익을 채택한 B-1을 내놓은 것이다. 당시 미 공군은 “소련 근처까지는 마하 2로 접근하고, 소련 영공에서는 레이더에 잘 걸리지 않도록 낮은 고도를 마하 1.2의 속도로 침투해 빠르게 타격하고 돌아오면 된다”라는 발상이었지만, 1976년 소련공군의 빅토르 발렌코(Viktor Belenk) 중위가 MIG-25 전투기를 타고 귀순하면서 이 같은 발상은 산산조각 났다. 소련은 이미 미국의 이러한 발상에 대응할 수 있도록 마하 3의 속도와 장거리 미사일, 저고도 침투 항공기를 장거리에서 잡아낼 수 있는 대형 요격기를 만들어 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격도 1977년 기준으로 당시 최신예 전투기였던 F-15A 전투기의 10배가 넘는 1억 달러에 달했고, B-1B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던 1988년 당시에도 대당 3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등장해 애초에 244대를 생산해 B-52를 대체한다는 계획은 98대 생산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결국 B-52 대체에 실패한 것이었다. 1980년대 후반 미 공군은 더 이상 초음속 폭격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바로 스텔스(Stealth) 폭격기였다. 미 공군은 초음속 비행 성능은 포기하는 대신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스텔스 성능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로 B-2A 폭격기가 등장했지만, 애초에 133대가 생산되어 B-52를 대체할 계획이었던 이 폭격기는 달랑 21대만 생산되고 말았다. 직전 모델인 B-1B의 3억 달러보다 7배 이상 폭등한 대당 22억 달러의 가격 때문이었다. B-2A는 흔히 ‘금값보다 비싼 폭격기’라고 하는데, 실제로 B-2A의 기체 중량을 가격으로 나눠보면 1g당 50달러가 넘게 나오는데, 이는 1g당 45달러 안팎에 거래되고 있는 금보다 더 비싼 가격이다. 날아다니는 45톤짜리 금괴라는 별명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요컨대 미 공군은 지난 50년 동안 B-52를 대체하기 위해 몇 차례나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실패를 거듭했고 눈물을 머금으며 개량과 보수를 거쳐 B-52를 60년째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백전노장 B-52, 이제는 은퇴할 수 있을까?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의회조사국(CRS :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이 지난 7월 9일(현지시간)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는 미 공군이 미국내 주요 방산업체들에게 차세대 전략폭격기 사업, 일명 LRSB(Long-Range Strike Bomber) 사업을 위한 제안요청서(RFP : RFP : Request for proposal)를 발송했다고 밝히고 있다. CRS 보고서는 미 공군이 2025년 이후부터 신형 폭격기 80~100여대를 도입해 현재 운용중인 B-52H 76대 전부와 B-1B 36대를 대체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대당 가격은 5억 5,000만 달러 수준으로 억제하겠지만 최대 8억 1,000만 달러 수준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사업이 연방정부 예산 자동삭감(Sequester)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 공군 수뇌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되었기 때문인데, 실제로 지난해 가을, 마크 웰시(Mark A. Welsh) 공군참모총장은 “차세대 폭격기 프로그램을 취소 또는 연기해야 한다는 확실한 근거가 없는 한 이 사업과 관련한 그 어떤 예산 변경이나 축소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언한 바 있었다. 한술 더 떠 미 공군은 지금까지 비밀 예산으로 차세대 폭격기 설계 작업을 상당한 수준까지 진척시킨 것이 이번 CRS 보고서를 통해 확인되었는데, 이러한 강력한 의지를 통해 준비되고 있는 차세대 폭격기가 과연 B-52 폭격기의 유구한 전통(?)을 깰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 위에서부터 ▲ B-52 핵공격 파일럿이었던 할아버지(사진 왼쪽) B-52로 하노이를 폭격했던 아버지(오른쪽)에 이어 B-52 파일럿이 된 데이비스 웰시 미공군 대위(가운데) ▲ 같은 무게의 금값보다 비쌌던 B-2A 스텔스 폭격기 ▲ 60년째 자리를 지켰지만 앞으로 10년은 더 현역에 남아 있어야 할 B-52 폭격기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朴정부 외교, 노무현정부 ‘동북아 균형자론’ 전철 피하려면

    우리 정부가 혼돈의 동북아 외교안보 지형에서 국익을 위해 균형외교의 시험대에 올라섰지만 나침반도 없이 안갯속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과거 ‘동북아 균형자론’을 앞세웠던 노무현 정부의 균형외교가 국내외에서 고립되며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전례도 있다. 전문가들은 노무현 정부 균형외교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주변국의 오해를 사지 않는, 절제와 명민한 대응 그리고 큰 그림의 전략적 사고와 냉철한 판단이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노무현 정부의 균형외교는 중장기적으로 미국이 동북아에서 철수해 힘의 공백 상태가 발생하면 중국과 일본 간 역내 패권 경쟁을 막고 중재할 수 있는 군사력 등을 배양해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이는 당시 한·미 동맹을 부정한다는 오해와 함께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 미·중 간의 균형자가 되는가”라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한·미 동맹 위주의 외교안보 전략을 펼침에 따라 이 구상은 폐기됐다. 문정인 연세대 정외과 교수는 7일 “노무현 정부 균형외교가 미국을 버리고 중국편을 들어 고립을 자초한다는 식으로 왜곡됐다”면서 “한·미 동맹과 중국과의 동반자관계를 균형 있게 편다고 보면 노무현 정부와 비슷하겠지만 현 정부는 구체적 행동에 대한 논의가 없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의 균형외교는 균형자보다는 한·미 안보동맹을 기초로 한 ‘조율’(alignment)에 역점을 둔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의 국력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의욕을 내세우기보다 변화하는 미·중 관계에서 치우침 없이 유연하고 실리적인 대응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흥규 아주대 정외과 교수는 “한국은 강대국이 아닌 중견국가라서 현실적으로 미·중에 대한 지렛대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강대국 사이에서 완전한 균형을 이루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강대국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유연하고 명민한 외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재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는 다자외교에서 안보적으로는 미국의 편을 들고, 대신 중국의 입장도 고려해 중국의 다자구상에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깨어나는 日군국주의 상징, 사실상 항공모함 이즈모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깨어나는 日군국주의 상징, 사실상 항공모함 이즈모

    헌법 해석 변경을 통해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일본의 행보가 연일 주변국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일본의 군사력, 특히 독도나 센카쿠 열도에서 무력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가장 먼저 투입될 해군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은 냉전시기 소련의 태평양 진출을 막기 위한 미국의 핵심 파트너로서 미 해군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세계 정상급의 해군력을 만들어 왔지만, 이른바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헌법 제9조와 전수방위(専守防衛) 원칙이라는 족쇄로 인해 갖고 싶고, 가질 수 있는 능력도 있지만 가질 수 없었던 궁극의 무기에 대한 열망을 남몰래 불태우고 있었다. 이러한 열망은 지난해 여름, 이즈모(いずも)가 진수되면서 현실로 바짝 다가왔다. 제국주의 냄새 물씬 풍기는 이름 지난해 8월 7일, 진수식에서 이즈모라는 함명이 공개되자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러시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즈모(いずも)라는 이름은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독도의 행정구역이라 우기고 있는 시마네(島根)현 동부의 옛 지명이다. 우리 해군이 대형 수송함(LPH)에 독도 수호 의지를 담아 함명을 독도로 정한 것에 맞불을 놓는 격이었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이 함명에 대단히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이즈모라는 이름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직후 제국주의 국가로서 기지개를 펴던 일본이 영국에 주문해 처음으로 1898년 장만한 장갑순양함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 배는 1896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시모노세키 강화조약에서 청나라로부터 뜯어낸 전쟁 배상금을 투입해 착수한 일본의 해군력 강화 사업을 통해 태어났다. 이 배는 1905년 러일 전쟁 당시 제정 러시아 해군 발틱 함대를 궤멸시켰던 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 함대를 처음으로 발견해 전투의 시작을 알렸던 배였고, 1937년 중일 전쟁 기간 중에는 상하이(上海)의 황푸강(黃浦江) 하류에 정박하며 상하이 시내를 향해 포격을 가해 중국 군인은 물론 민간인을 수 없이 살상했던 배였다. 중국과 러시아 입장에서 일본이 신형 함정에 ‘이즈모’라는 이름을 쓴 것은 도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름은 ‘헬기 호위함’ 실상은 ‘항공모함’ 일본 해상자위대는 삼척동자가 보아도 항공모함처럼 생긴 이즈모를 ‘헬기 호위함’이라고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배의 구조를 뜯어보면 이 배는 누가 봐도 항공모함이다. 그것도 경항공모함이 아닌, 정규 항공모함에 가까운 큰 덩치를 가진 항공모함 말이다. 무려 1,208억 엔, 우리 돈으로 1조 4,000억 원 가까운 건조비가 들어간 이즈모는 갑판 길이 248m, 폭 38m, 만재배수량 27,500톤의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한 때 아시아 최대의 상륙함이라 불렸던 우리 해군의 독도함보다 길이는 50m, 폭은 7m 크고, 배수량도 1만 톤 가까이 크다. 현재까지 취역한 경항공모함 가운데 가장 대형인 이탈리아 해군의 카보르(Cavour)급보다 더 크고, 프랑스 해군의 중형항공모함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이나 어지간한 나라의 항공모함보다 더 큰 미 해군의 신형 강습상륙함 아메리카(USS America)의 크기에 육박한다. 갑판의 넓이 이외에도 이 배에서는 곳곳에서 항공모함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이즈모의 갑판 중앙과 좌현에는 각각 20 × 13m, 15 × 14m 사이즈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들 엘리베이터의 적재 하중은 30톤으로 F-35B 전투기를 충분히 실어 나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상자위대는 진수식에서 이 배의 갑판 바로 아래에 여성 자위관을 위한 독실(獨室)을 무려 90개나 설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배의 승조원은 함정 요원과 항공 요원을 모두 합쳐도 470명이고, 해상자위대의 여성 자위관 비율은 5% 미만인데 존재하지도 않는 여성용 공간에 막대한 공간을 배정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독실이 배에서 차지하는 용적은 미국이 개발하고 있는 함정용 항공기 사출장치인 EMALS (Electromagnetic Aircraft Launch System)의 용적과 비슷하다. 이러한 사실은 이 배가 무려 80만 갤런 용량의 항공기용 연료 탱크를 별도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일본이 이 배를 가까운 시일 내에 전투기를 탑재한 항공모함으로 운용할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일본은 이미 항공자위대가 F-35A 스텔스 전투기 42대 도입 계약을 체결한 바 있고, 해상자위대 역시 F-35B와 F-35C 등 항공모함용 함재 전투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전투기의 제조사인 미국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 관계자들은 일본이 F-35B에 관심이 많고, 관련 자료를 요청하기도 했다고 밝힌 바 있어 일본이 항공모함용 전투기 획득을 추진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일본은 이즈모와 동형인 헬기 호위함을 한 척 더 건조중인데, 오는 2020년 이전까지 이즈모급 항공모함 2척과 이보다 약간 작은 휴우가(ひゅうが)급 2척을 전력화해 각 호위대군에 1척씩 배치할 계획이다. 각 호위대군은 이미 이지스 구축함 등 고성능 전함들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어 여기에 함재기만 들여오면 일본은 4개의 항공모함 전단을 손에 넣게 돼 당분간 아시아 최강의 해군이라는 지위를 잃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 (자주국방네트워크)
  • 日 집단자위권 용인 ‘들러리’ 비판도

    日 집단자위권 용인 ‘들러리’ 비판도

    한국과 미국, 일본의 합참의장이 환태평양 합동군사훈련(림팩)을 계기로 2일(한국시간) 미국 하와이에서 만났다. 군 당국은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 차원이라고 하지만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용인과 맞물려 미국 주도하에 3국 공조를 다진 계기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우리 군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는 군사 이벤트에 들러리를 섰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이날 “최윤희 합참의장과 이와사키 시게루 일본 통합막료장,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포함한 지역 안보 환경 변화에 대해 논의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3국이 긴밀히 공조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한·미·일 군 당국은 매년 3국 국방장관 회의를 개최했지만 작전을 주관하는 합참의장끼리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다. 3국이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움직임에는 무엇보다 국방예산을 삭감하면서도 동맹국에 일부 역할을 전가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의 전략이 반영됐다. 여기에 집단적 자위권 허용 등 군사력 확대를 노리는 일본의 노림수가 맞아떨어졌다. 미국 측은 이 회의의 정례화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은 우리 군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용인에 들러리를 선 게 아니냐는 지적을 의식해 이날 “최 의장은 회의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한반도 작전구역 내에서는 우리 정부 허가 없이 행사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면서 “회의를 정례화하려면 역사 인식에 대한 일본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종건 연세대 정외과 교수는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적 군대’로 격상된 일본군의 수뇌부가 이제 한·미 합참의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효과”라면서 “정부가 한·미 동맹의 중요성 때문에 미국이 의도한 한·미·일 삼각 군사 협력 체제로 끌려가는 모양새”라고 했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한국과 일본이 결국 준동맹 관계까지 격상되는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열린세상] 일본의 역사 왜곡을 넘어서려면/유찬열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일본의 역사 왜곡을 넘어서려면/유찬열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최근 일본이 고노 담화 검증을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 회피를 시도하고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의 일부 칼럼과 교회 특강 내용이 반민족, 친일적 성격을 띠었는가에 대한 논란이 크게 확산된 상황에서, 한·일 관계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몇몇 국제관계의 원칙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대두되고 있다. 한·일 관계는 왜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이 갈등으로 특징지어질까. 현 정부 들어 한·일 관계는 악화 일로이다. 아베 내각의 신사 참배, 집단 자위권 재해석, 독도 영유권 주장, 또 고노 담화 검증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이것이 과거의 잘못을 부정하고 또다시 패권주의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여기서 특기할 사항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고 지난 수십년간 수없이 반복되어 온 정형화된 패턴이라는 사실이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또 이명박 정부 시기 모두 한·일 관계는 초기의 상호 우호적 정책과 태도에도 불구하고 예외 없이 교과서 역사 왜곡 등 과거사와 독도 문제로 인해 관계 악화로 귀결됐다. 이것은 근본적으로는 지정학적으로 얽혀 있는 양국 관계의 중심에 과거 역사와 독도 문제가 자리 잡고 있고, 미래 공통의 안보, 협력 과제에도 불구하고 이 사안에 관한 한 두 나라 모두 물러서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독도 문제는 우리가 현실적으로 지배하고 또 그 정당성을 입증하는 많은 자료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 큰 문제는 없다. 그렇지만 일단 유사시 강대국 간 분쟁이 가시화되고 동아시아의 안보 구조에 큰 혼란이 오는 시점에 일본의 의도는 걷잡을 수 없이 노골화될 것이다. 역사 문제는 어떠한가. 이 경우는 한국이 엄청난 피해자이기 때문에 우리의 분노는 그칠 줄 모른다. 여말선초의 왜구 침입, 임진왜란, 그리고 강화도 조약으로부터 한·일 합병을 거쳐 해방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무수한 피해가 모두 그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과거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난을 넘어 일본을 능가하는 실력, 특히 군사력과 경제력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돌아보면 19세기 일본 역시 미국 페리 제독의 함포 사격에 의한 강제 문호개방 후 산업혁명을 앞세운 서양 각국과 형사 재판권과 관세 자주권을 포기하는 불평등 조약을 체결했고, 그 과정에서 메이지 유신을 통해 부국강병, 근대화, 제국주의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나. 냉전시대의 일본이 미·일 안보협력의 토대 위에 신중상주의적 경제성장에 몰두한 것은 미·소 사이에서 아무 힘도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이제 냉전 이후 시대, 특히 고이즈미 총리 이후의 정책 변화는 급변하는 안보환경 속에서 선제적 역할을 모색하는 것이 아닌가. 오늘날 나토가 해체될 경우 서유럽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지정학적 갈등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워싱턴의 견해, 재부상하는 중국의 신형 대국관계 주장과 저돌적 행동, 그리고 국제규범과 국제기구의 역할 증대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가 그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모두 그런 현실주의적 분석의 정당성을 뒷받침한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강대국의 흥망, 세력 균형, 약소국의 지위, 국제법과 국제기구의 역할, 그리고 국제정치에서의 외교, 군사, 경제의 역할에 거의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우리의 대일 정책과 국제관계 전반에 대한 인식이 어때야 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한국이 일본의 과거 제국주의 유산에 대해 격렬하게 항의, 반대하고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권리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세력균형에 유의하면서 군사, 경제력을 기르는 것이다. 오늘날의 국제질서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한·일 간의 군사, 경제력 균형은 어떠한가. 우리의 힘이 증대해 강대국 대열에 합류하는 날 우리의 아픈 상처는 희미한 기억으로 퇴색하는 동시에 새로운 차원에서 역설적으로 재해석 될 것이다. 이미 사퇴한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생각도 다소 과격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한 가지 덧붙이면, 국제정치의 석학 한스 모겐소는 평화는 기득권 국가의 이데올로기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미국이나 한국은 모두 평화를 선호하는 국가로 이 명예로운 현실을 유지, 발전시킬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야 할 것이다.
  • 우크라 동부 27일까지 임시 휴전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정부군과 교전을 벌이던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이 오는 27일까지 임시 휴전하고 평화 협상을 준비하기로 합의한 데 이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우크라이나 영토 내 군사력 사용 권한을 철회했다.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친러 분리주의 세력의 최고 지도자들은 23일(현지시간) 도네츠크 주정부 청사에서 정부 측 대표인 레오니트 쿠치마 전대통령과 회담한 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20일 선언한 임시 휴전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정부와 반군 측은 일시 휴전 상태에서 포로셴코 대통령의 평화안에 대한 협상을 준비할 전망이다. 회담 뒤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의 알렉산드르 보로다이 총리는 러시아 국영방송에 나와 “우리는 임시 휴전 기간 중에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협상 착수에 합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친러 세력 측은 또 수주일째 억류 중인 유럽안보협력기구 실사 단원들을 풀어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친러 세력의 임시 휴전 선언에 주목하면서도 실제로 적대 행위가 멈췄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리 하프 국무부 대변인은 “그들에게서 교전 중단을 지지한다는 발언이 나오긴 했지만 우리는 아직 이를 뒷받침하는 행동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편 AFP통신에 따르면 푸틴의 대변인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24일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사태 해결과 안정을 위해 지난 3월 1일 승인된 군사 개입 결의안의 철회를 상원에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푸틴은 당시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축출되자 상원의 승인을 얻어 크림반도에 군사력을 투입했다. 포로셴코 대통령은 즉각 환영 의사를 밝혔다. 그는 푸틴의 결의안 철회 요청이 나온 직후 낸 성명에서 “평화를 위한 첫 번째 실질적인 진전이 나왔다”고 밝혔다. 러시아 상원은 25일까지 푸틴의 요청을 검토할 예정이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이라크 사태’ 미국 제한적 개입으로 가닥…공습·비전투병 파병 등 검토 중

    ‘이라크 사태’ 이라크 사태가 확대 일로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제한적 개입’을 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이라크 북부를 장악한 데 이어 남쪽 수도 바그다드까지 위협하는 등 이라크 사태가 내전 상황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지상군 투입을 통한 ‘전면 개입’보다는 비전투병 파병이나 공습 등 정치적으로 부담이 덜한 제한적 개입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17일 AP,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 백악관과 국무부는 이라크 정부 지원을 위한 다양한 옵션을 검토하면서도 지상군 투입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최근 이라크에 지상군 파병을 제외한 모든 지원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16일(현지시간)에도 자국민과 대사관 보호 등을 위해 이라크 바그다드에 미군 병력 275명을 파견했다고 밝히면서도 지상군 파병 계획은 없다는 점을 거듭 분명히 했다. 케이틀린 헤이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이날 “지상군을 다시 이라크에 투입하지 않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입장이 매우 확고하다”고 했고,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도 ‘오랜 숙적’ 이란과의 이라크 사태 논의 가능성을 확인하면서도 군사적 협력 방안에 대해서는 “절대 그럴 의도도, 계획도 없다”고 일축했다. 사실 오바마 행정부 입장에선 이라크 사태는 ‘뜨거운 감자’다. 지난 2011년 잔류 병력을 완전 철군시키며 ‘책임 있는 종전’을 했다고 선언한 마당에 다시 지상군을 파견한다고 나서면 외교 실패를 자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호의적인 여론도 이끌어내기 어렵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으면 자칫 이라크 사태가 더욱 꼬여 중동 전체의 안보가 위협받을 상황에 닥쳐 또 다른 차원의 외교 실패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공화당은 이미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라크전은 대실패’라며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이런 딜레마의 상황에서 절충점으로 거론되는 것이 제한적 개입이다. 제한적 개입 옵션으로는 유·무인기 공습, 비전투병 파병 등이 거론된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이날 ‘야후! 뉴스’ 인터뷰에서 이라크에서의 무인기(드론) 등을 동원한 공습 가능성을 묻는 말에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옵션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이라크 지원책 논의에 정통한 복수의 미국 관리는 “현재 고려 중인 여러 군사 옵션 가운데 특수부대 파견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 관리는 “최고 100명가량의 특수부대 요원이 파견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이들은 전투병이 아니며, 대사관에 소속돼 이라크군과 긴밀하게 협력하며 훈련 자문 등의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그런 맥락에서 이미 제한적 개입 조치들을 속속 실행에 옮기고 있다. 지난주 이라크 내 군사작전에 대비해 니미츠급 항공모함 조지 HW 부시함을 이라크 인근 페르시아만으로 이동시킨 데 이어 해병 550명이 탑승한 상륙수송함 ‘USS 메사 버디함’도 페르시아만에 진입시켰다. 미 정부가 자국민과 대사관 보호를 위해 미군 275명을 파견하고, ‘이라크 비상작전 자금 계획’을 조만간 의회에 제출키로 한 것도 이라크 사태 개입에 대비한 사전 조치의 성격으로 해석된다. 이런 가운데 이란과의 이라크 사태 논의는 제한적 개입 시나리오의 일환이자 오바마 정부의 ‘신(新)외교독트린’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웨스트포인트 연설에서 ▲미국의 안보이익이 직접적으로 침해받을 경우 일방적 군사력 개입도 불사하고 ▲원칙적으로 다자주의 틀과 동맹·우방 간 협력 메커니즘을 활용해 국제분쟁에 개입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라크 내전 위기’ 사태 미국 제한적 개입으로 가닥…일각에선 공습 회의론도 나와

    ‘이라크 내전’ 이라크 내전 사태가 확대 일로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제한적 개입’을 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북부를 장악한 데 이어 남쪽 수도 바그다드까지 위협하는 등 이라크 사태가 내전 수준으로 번진 상황에서 지상군 투입을 통한 ‘전면 개입’보다는 비전투병 파병이나 공습 검토 등 정치적으로 부담이 덜한 제한적 개입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17일 AP,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 백악관과 국무부는 이라크 정부 지원을 위한 다양한 옵션을 검토하고 있지만 지상군 투입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최근 이라크에 지상군 파병을 제외한 모든 지원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16일(현지시간)에도 자국민과 대사관 보호 등을 위해 바그다드에 미군 병력 275명을 파견했다고 밝혔지만, 지상군 파병 계획만큼은 없다는 점을 거듭 명확히했다. 케이틀린 헤이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이날 “지상군을 다시 이라크에 투입하지 않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입장이 매우 확고하다”고 했고,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도 ‘오랜 숙적’ 이란과의 이라크 사태 논의 가능성을 확인하면서도 군사적 협력 방안에 대해서는 “절대 그럴 의도도, 계획도 없다”고 일축했다. 사실 오바마 행정부 입장에선 이라크 사태는 ‘뜨거운 감자’다. 지난 2011년 잔류 병력을 완전 철군시키며 ‘책임있는 종전’을 했다고 선언한 마당에 다시 지상군을 파견한다고 나서면, 외교 실패를 자인하는 것일 뿐 아니라 호의적인 여론도 이끌어내기 어렵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으면 자칫 이라크 사태가 더욱 꼬여 중동 전체의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에 닥쳐 또 다른 차원의 외교 실패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공화당은 이미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라크전은 대실패’라며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이런 딜레마의 상황에서 절충점으로 거론되는 것이 제한적 개입이다. 제한적 개입 옵션으로는 유·무인기 공습, 특수부대 파견, 비전투병 파병 등이 거론된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이날 ‘야후! 뉴스’ 인터뷰에서 이라크에서의 무인기(드론) 등을 동원한 공습 가능성을 묻는 말에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옵션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이라크 지원책 논의에 정통한 복수의 미국 관리는 “현재 고려 중인 여러 군사 옵션 가운데 특수부대 파견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 관리는 “최고 100명가량의 특수부대 요원이 파견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이들은 전투병이 아니며, 대사관에 소속돼 이라크군과 긴밀하게 협력하며 훈련 자문 등의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그런 맥락에서 이미 제한적 개입 조치들을 속속 실행에 옮기고 있다. 지난주 이라크 내 군사작전에 대비해 니미츠급 항공모함 조지 HW 부시함을 이라크 인근 페르시아만으로 이동시킨 데 이어 해병 550명이 탑승한 상륙수송함 ‘USS 메사 버디함’도 페르시아만에 진입시켰다. 언제든 군사작전 수행이 가능하도록 준비를 갖춘 것이다. 미 정부가 자국민과 대사관 보호를 위해 미군 275명을 파견하고, ‘이라크 비상작전 자금 계획’을 조만간 의회에 제출키로 한 것도 이라크 사태 개입에 대비한 사전 조치의 성격으로 해석된다. 다만 일각에선 ‘지상군 파병 없는 공습’은 효과가 없고 민간인 피해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집권 시 국방차관을 지낸 에릭 에델만은 블름버그 통신에 “공습이 효과적 이려면 민간인과 군사 목표물을 구분해 줄 수 있는 지상군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2007년 당시 이라크 주둔 미군 증파에 관여했던 피터 맨수어 예비역 대령도 “미국의 공습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러려면 지상에서 목표물 조준 과정을 도와줄 수 있는 항공관제관들(air controllers)이 필요하다”고 단언했다. 이런 가운데 이란과의 이라크 사태 논의는 제한적 개입 시나리오의 일환이자 오바마 정부의 ‘신(新)외교독트린’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웨스트포인트 연설에서 ▲ 미국의 안보이익이 직접적으로 침해받을 경우 일방적 군사력 개입도 불사하고 ▲ 원칙적으로 다자주의 틀과 동맹·우방 간 협력 메커니즘을 활용해 국제분쟁에 개입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내전 위기 이라크… 미군 재개입 딜레마

    내전 위기 이라크… 미군 재개입 딜레마

    이라크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북부 지역을 장악한 뒤 수도 바그다드를 향해 파죽지세로 남진하면서 내전 위기가 가속화하자 국제사회가 긴장하고 있다. 특히 이라크 정부의 공습 요청을 지속적으로 묵살해 온 미국은 군사 재개입 여부를 둘러싸고 진퇴양난의 고민에 빠졌다. ISIL이 지난 10일(현지시간)과 11일 이틀 새 이라크의 제2도시 모술과 바그다드 인근 도시 티크리트를 점령한 데 이어 12일 오전엔 바그다드의 동쪽 바로 옆 디얄라주의 마을 3곳을 점거했다. 국제사회는 신속하게 이라크 정부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AP 등 외신에 따르면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이번 사태를 이라크 국민에게 자행된 테러 공격이라고 강하게 규탄하면서 ISIL을 알카에다 제재 리스트에 추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터키 정부는 자국 외교관과 경호원 등 48명을 납치한 ISIL에 대해, 자국민이 해를 입으면 보복조치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아파 국가인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도 ISIL에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미 정부도 이라크 정부에 대한 추가 지원 의사를 밝혔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에서 “미국은 ISIL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이라크 지도자들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 역시 “이라크 정부 및 지도자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어느 수준까지 이라크 정부를 지원하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은 추가 지원을 약속하면서도 이라크 정부가 요구하는 공중폭격 등 직접적인 병력 투입은 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11일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지난달 ISIL 장악 지역에 대한 공중 폭격을 오바마 행정부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NYT는 오바마 대통령이 2011년 미군을 완전히 철수시키며 “갈등은 끝났다”고 사태 종결을 선언했던 땅에 새로운 갈등과 충돌을 시작하길 꺼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이번 사태를 군사적인 문제보다는 정치적인 문제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2010년 총선에서 정당 지지율이 부족해 막후 협상을 통해 권력을 잡은 알말리키는 이듬해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자신의 오랜 정적인 수니파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다. 그의 행보에 분노한 수니파는 ISIL 쪽으로 쉽게 가담했다. 알말리키에 대한 미 의회 전반의 반감도 오바마가 군사력을 이라크로 움직일 수 없는 이유다. 다수 의원은 이라크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도 못했고 미국이 전쟁을 불사하며 이뤄낸 이라크의 평화 상태를 독단적인 국정운영으로 망가뜨린 알말리키가 총리직에 계속 있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은 병력을 철수한 뒤로 이라크의 군사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지원을 전환했다. 하지만 ISIL의 공격으로 현지 상황이 급박하게 변하면서 군사개입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3차 이라크 전쟁이 시작됐다”며 미국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부국(富國)의 전유물, 상륙작전 이야기(中) -한국의 현실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부국(富國)의 전유물, 상륙작전 이야기(中) -한국의 현실

    북한이 추가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한반도 긴장 국면을 조성하던 지난 봄, 한국과 미국은 경상북도 포항 독성리 해안에서 지난 1993년 제1차 북핵 위기 직전에 실시되었던 팀 스피리트(Team Sprit) 훈련 당시 상륙훈련 이래 사상 최대 규모의 병력과 장비를 동원한 가운데 연합상륙훈련을 실시했다. 이번 훈련에는 아시아 최대의 상륙함이라는 우리 해군의 독도급 대형수송함이 동원되었지만, 이 훈련에서 내외신 기자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독도함이 아니었다. -강대국도 어려워진 상륙작전 일반적으로 상륙작전이라는 단어를 제시했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형 상륙정이나 장갑차를 타고 해안에 상륙해 빗발치는 적의 총탄과 포화를 뚫고 해안의 적 방어진지를 점령하는 장면을 연상한다. 이러한 상륙작전은 인류가 배를 만들고 바다로부터 군사력을 투사하기 시작한 이래 지난 수십 세기동안 상륙작전의 전형(典型)이었다. 우리 해군과 해병대 역시 창설 이래 위와 같은 전통적 개념의 상륙작전에 부합하는 상륙함정과 해병대 전력을 건설해 왔고, 독도함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상륙작전 개념은 해안까지 접근한 LST(Landing Ship Tank)에서 발진하는 LCM(Landing Craft Mechanized)이나 LCU(Landing Craft Utility)에 병력과 장비를 탑승시켜 해안의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방식이었다. 해안 방어진지의 적은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상륙부대를 내려다보며 자체 화력이나 지원 화력을 퍼부을 수 있으며, 상륙부대가 압도적인 함포 사격과 공중 화력 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상륙작전의 성공 가능성은 크게 낮아지고, 희생자의 숫자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세계대전이 한참이던 70년 전이나 냉전 시기에는 이러한 물량 위주 상륙작전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냉전 종식 이후 전 세계적인 국방비 삭감 기조와 인명 중시 풍조가 확산되면서 과거와 같은 상륙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수평선 너머에서부터 시작되는 상륙작전 냉전 종식 이후 전통적인 개념의 상륙작전을 수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해병대 또는 해군육전대와 같은 상륙작전부대를 보유했던 대부분의 국가들은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상륙작전부대를 UN 평화유지군이나 신속대응군과 같이 소규모 기동부대로 개편하거나 새로운 개념의 상륙작전교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장비와 전술을 대거 도입하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개념의 상륙작전교리란 초수평선 상륙작전(Over the Horizon Amphibious Operation)이다. 초수평선 상륙작전이란 미 해군이 정립한 작전개념으로 해안으로부터 50km 이상 떨어진 먼 바다에서 발진한 공격헬기와 공격기로 적 해안을 초토화시킨 뒤 수평선 너머의 대형 상륙함정에서 발진한 고속 공기부양정이나 상륙돌격장갑차로 이루어진 공격부대가 해안으로부터, 수송헬기에 탑승한 공격부대가 해안 적 진지 후방에 침투하여 해안선의 적 방어부대를 포위 섬멸하고 목표 지역을 점령하는 개념의 상륙작전 형태이다. 미 해군은 항공모함 형태의 강습상륙함 1척과 도크형 상륙함 2~3척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 상륙준비단(Amphibious Readiness Group)을 편성해 이러한 ARG를 여러 개 운영하고 있다. 상륙작전 명령이 떨어지면 1개의 ARG는 호위 구축함들이 토마호크 미사일 공격을 퍼붓는 것을 시작으로 강습상륙함에 탑재된 AV-8B 수직이착륙 전투기와 AH-1Z 공격헬기로 해안선을 초토화시킨다. 이와 동시에 도크형 상륙함에서 발진한 대형 공기부양정인 LCAC(Landing Craft Air Cushions)에 전차와 장갑차 등의 장비와 병력을 탑승시켜 수평선 너머에서 발진시키고, CH-53E나 MV-22B 등의 항공기에 병력을 싣고 해안선 적 후방에 침투하여 해안 방어병력을 포위해 격파하고 교두보를 확보한다. 이러한 스케일의 상륙작전을 수행하려면 항공모함과 유사한 형태의 강습상륙함(Landing Platform Helicopter)이나 고속 공기부양정을 많이 실을 수 있는 도크형 상륙함(Landing Platform Dock)과 같은 고가(高價)의 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미 해군의 대형 강습상륙함인 아메리카호는 척당 건조비가 3조 4천억 원, 도크형 상륙함인 샌안토니오호의 건조비는 1조 7천억 원의 가격을 자랑한다. 초수평선 상륙작전을 위해 아메리카호에 탑재되는 항공기는 30여대 가량인데, 이들 항공기의 가격만 5조원을 훌쩍 넘는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은 3만 톤 이상의 선체를 갖고 20대 이상의 항공기 운용 능력을 가진 대형 상륙함을 건조해 운용하고 있지만, 미국을 제외하면 이러한 군함을 2~3척 이상 보유하고 있는 사례는 없으며,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러한 군함을 상륙함 목적보다는 원거리 병력 수송이나 항공모함 대용, 인도적 구호작전 수행을 위한 목적으로 운용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전략적인 의미에서 상륙작전을 하려면 상륙 후에도 독립적인 작전 수행이 가능한 최소 제대인 여단급, 즉 3천명 이상을 동시에 상륙시킬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데, 이 정도 규모의 병력과 장비를 상륙시키려면 앞서 말한 대형 상륙함이 최소 5~6척 이상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기준으로도, 미래에도 이러한 전력을 갖추고 있거나 갖출 예정인 나라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북한이 남침할 경우 북한의 배후에 비수를 꽂을 수 있는 전략기동부대로서 해병대 전력의 정예화와 독자적인 상륙작전능력 육성에 많은 관심을 가지며 세계 3위 규모의 해병대를 유지하고 있다. 대한민국 해병대는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최정예 전투부대이며, 해외에서도 ‘한국 해병대는 귀신도 잡는다’라는 칭송을 받고 있지만 한 가지 중대한 약점을 안고 있다. ‘귀신 잡는 해병대’지만 ‘귀신 잡으러 갈 수 없는 해병대’이기 때문이다.(하편에 계속) 사진= 위에서부터 ▲ 해안에 상륙하고 있는 해병대 KAAV-7A1 상륙돌격장갑차. 2차원적인 전통적 개념의 상륙작전 형태는 백사장에 닿기도 전에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은 과거의 작전개념이다. ▲ 미 해군의 주력 상륙함인 와스프급(左)와 샌안토니오급(右). 각각 5만톤과 3만톤에 육박하는 이들 상륙함들은 대량의 항공기 또는 고속 공기부양정을 싣고 수평선 너머에서부터 상륙작전을 수행하는 강력한 군함들이다.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 finmil@nate.com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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