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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르단 군사력 IS 공습 진두지휘하는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

    요르단 군사력 IS 공습 진두지휘하는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

    ‘요르단 IS 공습’ ‘요르단 군사력’ 요르단 군사력을 동원해 요르단 IS 공습을 진두지휘하는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53)에 세계인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압둘라 2세 국왕은 조종사 처형 소식이 전해진 후 ‘가차없는 전쟁’ 같은 강도 높은 언사를 동원하며 보복 공습을 진두지휘하는 것은 물론 군복을 입은 모습의 사진까지 공개하며 전의를 과시했다. 조종사 처형이 공개된 지난 3일(현지시간) 요르단 왕실의 공식 페이스북에는 방미 중인 국왕이 급거 귀국한다는 소식과 함께 군복 차림의 국왕 사진이 올라왔다. 지난해 7월 특수부대 훈련을 직접 지휘하면서 촬영한 사진이다. 국왕은 소매를 접어 올린 군복을 입고 결연한 표정으로 서 있다. 유튜브에 공개된 특수부대 훈련 영상을 보면 국왕은 군용기 입구 한복판에 서서 양옆으로 줄지어 뛰어들어가는 군인들을 격려하고 공중 강하훈련을 하는 군인들을 뒤에서 밀어주면서 적극적으로 훈련에 동참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국왕은 직접 병사들이 뛰어내릴 위치를 점검하기도 하고 낙하하는 병사들을 지켜보기도 한다. 영상 속 군인들은 자연스러운 자세로 스스럼없이 국왕에게 말을 걸거나 악수를 하고 국왕도 부하의 팔을 툭 치며 친근하게 대한다. 요르단 공군사령관을 겸하는 압둘라 2세 국왕은 왕위에 오르기 전 약 20년간 군에 복무해 그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다. 요르단 왕가 홈페이지에 따르면 왕자 시절 영국 옥스퍼드대와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수학한 그는 영국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1981년부터 군 생활을 시작했다. 영국군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하던 그는 1985년 요르단으로 돌아와 모국에서 본격적인 군 복무를 하면서 1996년 특전사령관까지 올랐으며 공격용 헬리콥터인 코브라 조종 자격도 갖고 있다. 보복 공언 직후 국왕이 직접 공습에 나서 IS를 타격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 것도 국왕의 이 같은 이력 때문으로 보인다.
  • 요르단 IS 공습 불구 요르단 군사력으로 IS 괴멸 어려워…IS 女인질 사망 주장 의혹

    요르단 IS 공습 불구 요르단 군사력으로 IS 괴멸 어려워…IS 女인질 사망 주장 의혹

    ’요르단 IS 공습’ ‘요르단 군사력’ 요르단 IS 공습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요르단 군사력으로 IS 괴멸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편 요르단 IS 공습으로 미국인 여성 인질이 사망했다는 IS 측의 주장이 나왔으나 신빙성 여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요르단은 5일(현지시간) 마즈 알카사스베 중위를 살해한 IS에 대한 보복으로 ‘순교자 마즈’라는 작전명 아래 전투기 30대를 동원해 시리아 내 IS 군사 훈련 시설과 무기고를 공습했다. 미국의 대표적 중동 우방국인 요르단은 산유국이 아니라 재정난을 겪어 미국으로부터 연간 10억 달러 상당의 경제·군사적 지원을 받고 있다. AP 통신은 이런 지원 덕택에 요르단은 전투기 650여대를 보유해 공군력이 강한 국가라고 보도했다. 따라서 IS 보복전은 우선 기존의 공습을 강화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과 국제동맹군이 5개월 동안 매일 공습했는데도 이라크는 IS에 빼앗긴 영토의 1%만 탈환한 것으로 분석됐다. IS는 주요 시설을 수시로 바꾸고 지하로 옮기며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삼는 등의 대응에 나서 전투기로 공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요르단이 이라크로 IS 공습을 확대할 수도 있으나 이라크 정부가 허용할지는 미지수다. 공습 외 대안으로는 특수부대의 작전이 거론된다. 요르단의 특수부대는 1만4천여명 규모에 최신 군 장비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요르단 전체 국토와 맞먹는 IS 점령지를 국지적 작전으로 괴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편 요르단 IS 공습에 미국인 여성 인질이 사망했다고 IS 측이 주장했지만 사실 여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당국자들 역시 현재로서는 이 정보를 확증할 방법이 없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요르단 IS 공습에도 요르단 군사력으로 IS 괴멸 어려워…IS 女인질 사망 주장

    요르단 IS 공습에도 요르단 군사력으로 IS 괴멸 어려워…IS 女인질 사망 주장

    ’요르단 IS 공습’ ‘요르단 군사력’ 요르단 IS 공습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요르단 군사력으로 IS 괴멸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편 요르단 IS 공습으로 미국인 여성 인질이 사망했다는 IS 측의 주장이 나왔으나 신빙성 여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요르단은 5일(현지시간) 마즈 알카사스베 중위를 살해한 IS에 대한 보복으로 ‘순교자 마즈’라는 작전명 아래 전투기 30대를 동원해 시리아 내 IS 군사 훈련 시설과 무기고를 공습했다. 미국의 대표적 중동 우방국인 요르단은 산유국이 아니라 재정난을 겪어 미국으로부터 연간 10억 달러 상당의 경제·군사적 지원을 받고 있다. AP 통신은 이런 지원 덕택에 요르단은 전투기 650여대를 보유해 공군력이 강한 국가라고 보도했다. 따라서 IS 보복전은 우선 기존의 공습을 강화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과 국제동맹군이 5개월 동안 매일 공습했는데도 이라크는 IS에 빼앗긴 영토의 1%만 탈환한 것으로 분석됐다. IS는 주요 시설을 수시로 바꾸고 지하로 옮기며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삼는 등의 대응에 나서 전투기로 공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요르단이 이라크로 IS 공습을 확대할 수도 있으나 이라크 정부가 허용할지는 미지수다. 공습 외 대안으로는 특수부대의 작전이 거론된다. 요르단의 특수부대는 1만4천여명 규모에 최신 군 장비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요르단 전체 국토와 맞먹는 IS 점령지를 국지적 작전으로 괴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편 요르단 IS 공습에 미국인 여성 인질이 사망했다고 IS 측이 주장했지만 사실 여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요르단 IS 공습에도 요르단 군사력으로 IS 괴멸 어려워

    요르단 IS 공습에도 요르단 군사력으로 IS 괴멸 어려워

    ‘요르단 군사력’ 요르단 군사력으로 IS 괴멸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요르단은 5일(현지시간) 마즈 알카사스베 중위를 살해한 IS에 대한 보복으로 ‘순교자 마즈’라는 작전명 아래 전투기 30대를 동원해 시리아 내 IS 군사 훈련 시설과 무기고를 공습했다. 미국의 대표적 중동 우방국인 요르단은 산유국이 아니라 재정난을 겪어 미국으로부터 연간 10억 달러 상당의 경제·군사적 지원을 받고 있다. AP 통신은 이런 지원 덕택에 요르단은 전투기 650여대를 보유해 공군력이 강한 국가라고 보도했다. 따라서 IS 보복전은 우선 기존의 공습을 강화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과 국제동맹군이 5개월 동안 매일 공습했는데도 이라크는 IS에 빼앗긴 영토의 1%만 탈환한 것으로 분석됐다. IS는 주요 시설을 수시로 바꾸고 지하로 옮기며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삼는 등의 대응에 나서 전투기로 공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요르단이 이라크로 IS 공습을 확대할 수도 있으나 이라크 정부가 허용할지는 미지수다. 공습 외 대안으로는 특수부대의 작전이 거론된다. 요르단의 특수부대는 1만4천여명 규모에 최신 군 장비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요르단 전체 국토와 맞먹는 IS 점령지를 국지적 작전으로 괴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편 요르단 IS 공습에 미국인 여성 인질이 사망했다고 IS 측이 주장했지만 사실 여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요르단 IS 공습만으로 IS 괴멸 어려워…IS 女인질 사망 주장 곳곳 의문점

    요르단 IS 공습만으로 IS 괴멸 어려워…IS 女인질 사망 주장 곳곳 의문점

    ’요르단 공습’ ‘요르단 군사력’ 요르단 공습만으로 IS 괴멸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편 요르단 IS 공습으로 미국인 여성 인질이 사망했다는 IS 측의 주장이 나왔으나 신빙성 여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요르단은 5일(현지시간) 마즈 알카사스베 중위를 살해한 IS에 대한 보복으로 ‘순교자 마즈’라는 작전명 아래 전투기 30대를 동원해 시리아 내 IS 군사 훈련 시설과 무기고를 공습했다. 미국의 대표적 중동 우방국인 요르단은 산유국이 아니라 재정난을 겪어 미국으로부터 연간 10억 달러 상당의 경제·군사적 지원을 받고 있다. AP 통신은 이런 지원 덕택에 요르단은 전투기 650여대를 보유해 공군력이 강한 국가라고 보도했다. 따라서 IS 보복전은 우선 기존의 공습을 강화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과 국제동맹군이 5개월 동안 매일 공습했는데도 이라크는 IS에 빼앗긴 영토의 1%만 탈환한 것으로 분석됐다. IS는 주요 시설을 수시로 바꾸고 지하로 옮기며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삼는 등의 대응에 나서 전투기로 공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요르단이 이라크로 IS 공습을 확대할 수도 있으나 이라크 정부가 허용할지는 미지수다. 공습 외 대안으로는 특수부대의 작전이 거론된다. 요르단의 특수부대는 1만4천여명 규모에 최신 군 장비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요르단 전체 국토와 맞먹는 IS 점령지를 국지적 작전으로 괴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지상전도 불가능에 가깝다. 정규군 11만명을 보유한 요르단은 시리아 남부와 접경해 IS의 근거지인 시리아 북부와 거리가 있어 IS와 싸우기도 전에 시리아 정부군에 막힌다. 한편 요르단 IS 공습에 미국인 여성 인질이 사망했다고 IS 측이 주장했지만 사실 여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IS는 이날 시리아 락까 외곽에서 미국인 여성 케일라 진 뮬러가 이날 금요예배 중 1시간에 걸친 공습으로 건물이 폭파되면서 잔해에 깔려 숨졌다고 주장했다. IS는 이번 성명에서는 종전과 달리 인질이 살해된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 등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극단주의·테러 감시단체 시테 등에 따르면 IS는 뮬러를 가뒀다고 주장한 건물 사진들만 증거로 제시했다. 이 사진들은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 것으로 이 건물이 공습으로 단계적으로 부서지는 장면이 담겼다. IS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공습이 진행되는 1시간여 동안 이 건물 주변에서 공습을 피해가며 사진을 촬영했다는 것으로 신빙성이 의심된다. 미국 당국자들 역시 현재로서는 이 정보를 확증할 방법이 없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요르단 공습만으로 IS 괴멸 어려워…IS 女인질 사망 주장 의혹

    요르단 공습만으로 IS 괴멸 어려워…IS 女인질 사망 주장 의혹

    ’요르단 공습’ ‘요르단 군사력’ 요르단 공습만으로 IS 괴멸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편 요르단 IS 공습으로 미국인 여성 인질이 사망했다는 IS 측의 주장이 나왔으나 신빙성 여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요르단은 5일(현지시간) 마즈 알카사스베 중위를 살해한 IS에 대한 보복으로 ‘순교자 마즈’라는 작전명 아래 전투기 30대를 동원해 시리아 내 IS 군사 훈련 시설과 무기고를 공습했다. 미국의 대표적 중동 우방국인 요르단은 산유국이 아니라 재정난을 겪어 미국으로부터 연간 10억 달러 상당의 경제·군사적 지원을 받고 있다. AP 통신은 이런 지원 덕택에 요르단은 전투기 650여대를 보유해 공군력이 강한 국가라고 보도했다. 따라서 IS 보복전은 우선 기존의 공습을 강화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과 국제동맹군이 5개월 동안 매일 공습했는데도 이라크는 IS에 빼앗긴 영토의 1%만 탈환한 것으로 분석됐다. IS는 주요 시설을 수시로 바꾸고 지하로 옮기며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삼는 등의 대응에 나서 전투기로 공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요르단이 이라크로 IS 공습을 확대할 수도 있으나 이라크 정부가 허용할지는 미지수다. 공습 외 대안으로는 특수부대의 작전이 거론된다. 요르단의 특수부대는 1만4천여명 규모에 최신 군 장비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요르단 전체 국토와 맞먹는 IS 점령지를 국지적 작전으로 괴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지상전도 불가능에 가깝다. 정규군 11만명을 보유한 요르단은 시리아 남부와 접경해 IS의 근거지인 시리아 북부와 거리가 있어 IS와 싸우기도 전에 시리아 정부군에 막힌다. 한편 요르단 IS 공습에 미국인 여성 인질이 사망했다고 IS 측이 주장했지만 사실 여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IS는 이번 성명에서는 종전과 달리 인질이 살해된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 등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 당국자들 역시 현재로서는 이 정보를 확증할 방법이 없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요르단 군사력으로 IS 괴멸 곳곳 난관…IS 女인질 사망 주장 의혹

    요르단 군사력으로 IS 괴멸 곳곳 난관…IS 女인질 사망 주장 의혹

    ’요르단 IS 공습’ ‘요르단 군사력’ 요르단 군사력으로 IS 괴멸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편 요르단 IS 공습으로 미국인 여성 인질이 사망했다는 IS 측의 주장이 나왔으나 신빙성 여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요르단은 5일(현지시간) 마즈 알카사스베 중위를 살해한 IS에 대한 보복으로 ‘순교자 마즈’라는 작전명 아래 전투기 30대를 동원해 시리아 내 IS 군사 훈련 시설과 무기고를 공습했다. 미국의 대표적 중동 우방국인 요르단은 산유국이 아니라 재정난을 겪어 미국으로부터 연간 10억 달러 상당의 경제·군사적 지원을 받고 있다. AP 통신은 이런 지원 덕택에 요르단은 전투기 650여대를 보유해 공군력이 강한 국가라고 보도했다. 따라서 IS 보복전은 우선 기존의 공습을 강화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과 국제동맹군이 5개월 동안 매일 공습했는데도 이라크는 IS에 빼앗긴 영토의 1%만 탈환한 것으로 분석됐다. IS는 주요 시설을 수시로 바꾸고 지하로 옮기며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삼는 등의 대응에 나서 전투기로 공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요르단이 이라크로 IS 공습을 확대할 수도 있으나 이라크 정부가 허용할지는 미지수다. 공습 외 대안으로는 특수부대의 작전이 거론된다. 요르단의 특수부대는 1만4천여명 규모에 최신 군 장비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요르단 전체 국토와 맞먹는 IS 점령지를 국지적 작전으로 괴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지상전도 불가능에 가깝다. 정규군 11만명을 보유한 요르단은 시리아 남부와 접경해 IS의 근거지인 시리아 북부와 거리가 있어 IS와 싸우기도 전에 시리아 정부군에 막힌다. 한편 요르단 IS 공습에 미국인 여성 인질이 사망했다고 IS 측이 주장했지만 사실 여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IS는 이번 성명에서는 종전과 달리 인질이 살해된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 등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 당국자들 역시 현재로서는 이 정보를 확증할 방법이 없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요르단 IS 공습에도 요르단 군사력으로 IS 괴멸 난망…IS 女인질 사망 주장 의혹

    요르단 IS 공습에도 요르단 군사력으로 IS 괴멸 난망…IS 女인질 사망 주장 의혹

    ’요르단 IS 공습’ ‘요르단 군사력’ 요르단 IS 공습이 이어지고 있지만 요르단 군사력으로 IS 괴멸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편 요르단 IS 공습으로 미국인 여성 인질이 사망했다는 IS 측의 주장이 나왔으나 신빙성 여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요르단은 5일(현지시간) 마즈 알카사스베 중위를 살해한 IS에 대한 보복으로 ‘순교자 마즈’라는 작전명 아래 전투기 30대를 동원해 시리아 내 IS 군사 훈련 시설과 무기고를 공습했다. 미국의 대표적 중동 우방국인 요르단은 산유국이 아니라 재정난을 겪어 미국으로부터 연간 10억 달러 상당의 경제·군사적 지원을 받고 있다. AP 통신은 이런 지원 덕택에 요르단은 전투기 650여대를 보유해 공군력이 강한 국가라고 보도했다. 따라서 IS 보복전은 우선 기존의 공습을 강화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과 국제동맹군이 5개월 동안 매일 공습했는데도 이라크는 IS에 빼앗긴 영토의 1%만 탈환한 것으로 분석됐다. IS는 주요 시설을 수시로 바꾸고 지하로 옮기며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삼는 등의 대응에 나서 전투기로 공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요르단이 이라크로 IS 공습을 확대할 수도 있으나 이라크 정부가 허용할지는 미지수다. 공습 외 대안으로는 특수부대의 작전이 거론된다. 요르단의 특수부대는 1만4천여명 규모에 최신 군 장비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요르단 전체 국토와 맞먹는 IS 점령지를 국지적 작전으로 괴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편 요르단 IS 공습에 미국인 여성 인질이 사망했다고 IS 측이 주장했지만 사실 여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IS는 이번 성명에서는 종전과 달리 인질이 살해된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 등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 당국자들 역시 현재로서는 이 정보를 확증할 방법이 없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구본영 칼럼] 평양 넘어 세계를 봐야 통일이 보인다

    [구본영 칼럼] 평양 넘어 세계를 봐야 통일이 보인다

    분단 70년인 올해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회견에서 “주저 말고 대화에 응하라”고 제안했다. 적극적으로 도와줄 테니 북한이 회담장에서 신뢰를 보여 달란 주문이다. 하지만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신년사에서 “제도 통일을 추구하지 말라”고 했다. 남한이 흡수 통일을 추구한다는 의심이다. 뒤집어 보면 대화가 무르익어 주민들이 개방에 노출되면 세습 체제가 흔들릴 것이란 불안감이다. 남이 다가서면 북이 더 움츠리는 ‘밀당’을 보며 답답하던 차에 영국의 한반도 전문가 에이던 포스터카터의 글을 읽었다. “박근혜 정부가 통일지상주의에 빠져 글로벌 외교를 방기하고 있다”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통일이란 목표에 ‘올인’해 북한만 쳐다보지 말고 미국과 중국·러시아·일본 등 주변 강대국의 협력을 구하란 충고다. 맞는 얘기다. 분단이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국제 역학의 산물이었다면.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내치에선 성공한 미 대통령이었다. 뉴딜 정책과 2차 대전 특수에 힘입어 대공황을 극복했다. 다만 외교적 통찰력은 부족한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집권하자마자 소련을 승인하는 등 다가올 동서 냉전을 예측하지 못했다. 동서 분리의 불씨가 된 테헤란회담에서 소련의 의중을 읽지 못했다. 스탈린의 제의대로 미군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앞장섰지만 독일로의 진군을 늦추자 무임 승차한 소련이 동유럽을 삼켰다. 그의 외교적 ‘순진함’이 부른 대가는 엄청났다. 죽기 직전에야 자신의 실책을 알아차렸지만 후임자인 해리 S 트루먼에게 큰 부담을 안겼다. 미국은 서유럽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막대한 재정과 군사력을 쏟아부어야 했다. 서유럽 국가들에 대한 경제 원조를 위한 마셜플랜이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창설이 그 부산물이다. 더 큰 실수는 태평양전쟁에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소련이 한반도의 절반을 신탁통치하려는 걸 묵인했다는 사실이다. 부동(不凍)항 확보는 제정 러시아 이래 소련의 비원이었다. 이를 눈치 못 챈 루스벨트가 삼팔선 이북을 소련의 영향권으로 헌납한 꼴이다. 부동항에 대한 집착은 이제 ‘현대판 차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로 이어진 것인가. 한국으로의 석탄·가스 수출에 관심 많은 러시아가 부동항인 나진에 눈독을 들이고 있으니…. 러시아와 북한이 일단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놓고 이해가 일치했다. 북한은 시베리아횡단철도의 한반도 통과보다 나진항을 내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쪽을 선택한 듯하다. 문을 너무 열면 체제가 동요할 것이란 우려 탓일 게다. 박근혜 정부가 말로만 ‘스마트 외교’를 읊조리릴 게 아니라 창조적 외교를 펼쳐야 할 때다. 물론 남북 정상회담을 하면 만사형통이라는 진부한 주장에 현혹될 까닭은 없다. 북한이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은행 설립을 위해 100억 달러와 쌀 수십만t 등을 요구했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 회고록에 실린 비화가 사실이라면 더욱 그렇다. 임기 초반 “남북 관계 하나만 잘 되면 다른 건 다 깽판 쳐도 된다”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했던가. 세습체제 유지를 위해 이에 더 절망적으로 매달렸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 대통령이 오는 5월 러시아 전승 기념일 행사 참석이나 김정은과의 조우를 꺼릴 이유도 없다. 모스크바 정상회담이 성사되더라도 북이 체제 개혁과 평화통일의 대도로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시베리아 가스전이나 유라시아 철도의 한반도 통과에 대한 푸틴의 강렬한 의지를 선용할 호기임은 분명하다. 동서독 통일 때처럼 미국은 물론 러시아와 같은 주변 강국의 도움을 이끌어 내야 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은 독일 통일을 앞둔 1987년 6월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역사적 통찰이 담긴 연설을 했다. 그는 “고르바초프 대통령, 이 장벽을 허무시오”라고 동서독 분단에 대한 소련의 결자해지를 요구했고, 3년 후 통독은 이뤄졌다. 누가 알랴. 어쩌면 푸틴에게 휴전선을 허무는 데 일역을 하라고 요구할 운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지….
  • 돈과 군사 중국을 살리리라

    돈과 군사 중국을 살리리라

    돈과 힘/존 델러리·오빌 셸 지음/이은주 옮김/문학동네/624쪽/2만 8000원 중국 난징 서북쪽의 징하이사(靜海寺) 안내판에는 영어·중국어로 이렇게 적혀 있다. ‘이러한 불평등조약은 치욕의 족쇄가 됐다. 이것이야말로 근대사 속의 중국이 가난하고 약한 국가가 된 주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한 뒤 이곳에서 난징조약에 굴욕적으로 서명해야 했던 나약하고 무기력한 근대사를 되새기는 상징물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청나라 왕실의 아름다운 여름궁전이었던 베이징 서북쪽 원명전은 제2차 아편전쟁 중 영·불 연합군에 불탄 폐허로 남아 있다. 공산당 정부가 잔해 그대로 보존한 왕궁터는 서구열강의 만행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역사박물관이다.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거침없이 부상하고 있는 중국이 외세의 침략과 강점, 내란 등 굴곡 많은 근현대사 속에 어떻게 지금의 강국이 됐는지를 한마디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열악한 상황에서 민심과 나라의 힘을 한 군데로 모아간 걸출한 지도자의 리더십을 자주 입에 올린다. 그리고 그 리더십의 핵심 철학은 부강(富强)으로 결집된다. ‘돈과 힘’은 바로 이 부강을 국가적 목표로 추구한 중국 역사의 대표 유명인 11명의 이야기이다. 풍계분(馮桂芬)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사상가부터 서태후, 량치차오(梁啓超)를 거쳐 쑨원(孫文)과 장제스(莊介石), 마오쩌둥, 덩샤오핑 같은 세계적 정치가가 들어 있다. 저자는 컬럼비아대와 베이징대를 거쳐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에 재직 중인 존 델러리 교수와 오빌 셸 아시아소사이어티 미·중관계센터 소장. 두 사람은 강성했던 옛 국력의 회복을 지상명제로 삼은 이들의 의지와 동력을 지금의 중국을 있게 한 으뜸 요소이자 제대로 이해하는 열쇠로 보고 있다. 원래 ‘부강’은 2000년 전쯤인 전국시대에 탄생한 고대격언 ‘부국강병’을 줄여 부른 말이다. ‘현명한 군주가 있어 부국과 강병을 이뤄낼 수 있다면 이 군주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갈파한 법가 사상가 한비자의 말이 시초다. 부강을 역사의 갈피 속에서 다시 꺼내 개혁의 기치로 세운 최초의 위인은 바로 청나라대에 민정·재정 담당 지방장관 포정사를 지낸 사상가 위원(魏源)이다. 위원은 아편전쟁에서 중국이 패하는 참담한 현실을 자각, 오랫동안 묻어 두었던 ‘치국적 정치개혁’이라는 전통 부활을 국력 회복의 길로 보고 전략적 차원에서 서구열강의 문물을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 힘’이라고 외친 그는 ‘황조경세문편’을 통해 사대부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태평천국의 반란군을 피해 도피했던 상하이 외국인 거류지에서 문화적 충격을 받고 ‘수치심을 느껴야 강해진다’며 자강(自强)을 치국의 핵으로 세운 19세기 후반 정치사상가 풍계분이나 ‘근본적 변화 없이 성공할 수 없다’면서 강(强)은 자유의 필요조건이라고 외쳤던 20세기 벽두의 량치차오의 신민(新民)사상도 눈에 띈다. 국력을 회복하려면 발전을 방해하는 문화적 전통을 폐기하고 새 국가개념을 세워야 한다는 량치차오의 이 사상은 후대 지도자들에게 계승된다. 그 사상은 신문화운동 당시 사회비판 소설을 쓴 루쉰(迅), 신생활운동을 추진한 장제스, 혁명적 신중국의 청사진을 내놓은 마오쩌둥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파괴 없이 건설 없다’는 ‘선 파괴 후 건설’을 모토로 문화혁명을 강요한 마오쩌둥은 ‘진정한 혁명가는 사람을 죽이는 일도 불사해야 한다’고 외쳤다. 검은 고양이든 하얀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흑묘백묘’의 덩샤오핑은 ‘혁명보다는 생산, 이념보다는 실리’를 앞세워 경제적 수단에 온 관심을 쏟아 비교된다. 책은 11명의 짧은 전기를 엮은 구성이지만 각 인물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저작물과 연설문 등에 연결해 중국 근현대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한다. 특히 마지막에 톈안먼 사건 이후 인권·민주화운동에 헌신해 201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를 소개해 눈길을 끈다. 저자들은 류샤오보를 소개하면서 의미심장한 말로 마무리한다. “부강을 추구하는 것과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두 가지 사조가 미래의 어느 순간 하나로 수렴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물론 그러한 날이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김정은의 ‘7일 전쟁’ 시나리오... 가능성 있나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김정은의 ‘7일 전쟁’ 시나리오... 가능성 있나

    김정은이 집권 직후 북한군에 한반도 전면전을 상정한 작전계획 수립을 지시했으며, 지난해까지 전쟁 준비를 완료하고 올해를 통일대전의 해로 선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2015년 통일대전 발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는 익명을 요구한 군 소식통과 정부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해 김정은이 지난 2011년 12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된 직후 한반도 전면전 작전계획 수립을 지시했으며, 2012년 8월 25일 원산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이른바 ‘7일 전쟁’으로 전해지는 작전계획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원산에서 열린 회의에는 당 중앙군사위원들은 물론 군단장급 이상 고위 장성들이 대거 참석했으며, 이 회의를 통해 총참모부가 수립한 작전계획을 확정하고 이 작전계획에 맞춰 각 군단이 세부 작전계획을 수립해 훈련을 실시하라는 김정은의 지시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지시했다는 작전계획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北 작전계획의 5단계 시나리오 이번에 정부 당국자와 군 소식통이 전했다고 하는 김정은의 작전 계획 가이드라인은 사실 전통적인 북한군 전쟁 전략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다만 핵과 미사일 사용을 작전계획에 명기하도록 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실제로 이번에 보도된 북한의 새로운 작전계획은 지난 2013년에 북한이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서 공개했던 ‘3일 전쟁 시나리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의 전쟁 전략은 지난 1971년 인민군 창건 23주년 기념 보고대회에서 당시 북한군 총정치국장 한익수 상장이 발표한 전략에 기초하고 있다. 김일성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이 전쟁 전략의 핵심은 선제 기습공격 · 단기속전속결전 · 배합전 등으로 요약되며,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이 다듬어 가고 있는 전쟁 전략 역시 이 전략의 틀 안에서 수립되고 있다. 북한이 수립했다는 새로운 작전계획은 우리 군의 전면전 작전계획인 ‘작전계획 5027’과 마찬가지로 5단계로 나뉘어 전개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1단계는 전쟁 개시를 위한 국지도발 단계다. 선제 기습 전략에 따라 북한은 전방 북방한계선(NLL) 일대나 서북도서 지역에서 아군 함정을 공격하거나 백령도·연평도 등에 포격을 가하고 공기부양정과 항공기 등을 이용해 섬을 점령하는 등의 기습적인 국지 도발을 걸어온다. 우리 군은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나 한민국 국방부장관, 최윤희 합참의장 등이 “적이 도발할 경우 도발 원점은 물론 지휘·지원 세력까지 응징하겠다”라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 만큼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것이며, 이러한 반격은 포병 화력은 물론 전투기와 전투함 등의 전력과 미군 전력까지 동원할 수 있도록 미국과 공동 대응 계획까지 수립되어 있다. 지난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에도 남쪽 해상을 향해 포탄 사격 훈련을 실시했던 우리 군의 합법적이고 정당한 훈련에 대해 자신들의 영해에서 사격 훈련을 하는 등 남측이 먼저 도발했다고 주장하며 연평도에 포탄을 퍼부었던 것처럼 북한은 우리 군의 훈련 상황을 구실로 선제 도발을 감행한 뒤 이에 대해 우리 군이 반격하면 최초 도발 원점 인근의 지원 전력까지 모두 끌어 모아 대대적인 공세를 펴면서 전면전의 포문을 열 것이다. 2단계는 전면전 확전 단계다. 우리 군 수뇌부가 강조해왔던 ‘도발 원점 및 지휘·지원세력까지 응징’을 수행하는 전력은 전방 지역의 자주포 및 다련장로켓, 해군 호위함과 구축함, 공군 전투기 등이다. 우리 군은 국지도발 대비계획에 따라 북한군이 도발할 경우 어느 부대의 어떤 전력이 어떤 무기로 몇 발의 사격을 가해 보복 타격에 나선다는 세부 지침을 수립해 놓고 있다. 북한의 도발이 발생하더라도 최단시간 내에 적 도발 및 지원 세력을 제거하고 현장에서 상황을 종결지음으로써 확전을 막기 위함이다. 그러나 북한이 전면전으로의 확전을 의도하고 도발을 감행했다면, 응징에 나선 아군 전력에 대한 공격에 나섬으로써 ‘도발-응징보복-재보복’ 형태로 무력 충돌 확대를 시도할 것이다. 북한은 이미 이를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다.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우리 군이 차후 도발 시 북한의 갱도 진지를 타격하기 위해 서북도서에 자주포와 다련장로켓을 증강 배치하자 이 자주포와 다련장로켓을 타격할 수 있는 175mm 자주포와 240mm 방사포를 황해남도 일대에 추가 배치한 사례나 우리 공군 전투기의 공습에 대응하기 위해 SA-5 등 지대공 미사일을 전방에 추진 배치한 사례를 예로 들 수 있다. 가령 연평도에 배치된 우리 해병대가 포탄 사격 훈련을 실시할 때 이를 구실 삼아 황해남도 강령군과 옹진군 일대의 해안포가 연평도에 포격을 실시한다. 연평도의 해병대 K-9과 증강 배치된 다련장 로켓, 스파이크 미사일 등이 해안포를 타격하면, 강령군과 벽성군, 옹진군 일대에 증강 배치된 122mm, 240mm 방사포가 우리 해병대 포대에 보복 사격을 가한다. 북한의 장사정포와 방사포를 타격하기 위해 KF-16 전투기와 F-15K 전투기가 나서면 황해북도 사리원시와 봉산군 일대에 배치된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 SA-5와 황해남도 해주시와 옹진군 일대에 배치된 SA-2/3 지대공 미사일은 물론 백령도와 가까운 황주 비행장에 전진 배치된 MIG-23 전투기를 이용해 요격에 나서는 한편, 우리 공군의 전투기 증원을 막기 위해 최근 개발 완료 단계에 와 있는 사거리 200km 이상의 300mm 방사포 KN-09와 와 신형 지대지 탄도 미사일 KN-10을 이용해 우리 공군기지 활주로에 대한 무차별 공격에 나설 것이다. 장사정포와 방사포 등 포병이 일제 사격을 시작했다는 것은 전술 용어로 ‘공격준비사격’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며, 이는 사격 후 전방 4개 전연군단과 제2, 제3 제파를 구성하는 후방 예비 부대가 대대적인 공격 작전에 나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의도대로 국지적 도발이 전면전까지 확대되는 상황이 이것이다. 3단계는 미 증원 전력의 차단이다. 한반도에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미국은 해ㆍ공군 가용 전력을 우선 투입하고, 신속억제방안(FDO : Flexible Deterrence Option)에 따라 SBCT(Stryker Brigade Combat Team)를 한반도에 증원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 이를 전투력증강(FMP : Force Module Package) 단계로 확대해 병력을 증원한다. 이 전력으로도 확전을 막지 못하고 대규모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시차별 부대 전계 제원(TPFDD : Time Phased Forces Deployment Data)에 따라 대규모 지상군과 함정, 항공기를 한반도 전역에 투입한다. FDO로 파견되는 일명 ‘스트라이커 부대’는 3,700여 명의 병력과 330여 대의 스트라이커 장갑차로 구성되며, 수송기를 통해 하와이와 미 본토에서 96시간 이내에 한반도에 전개되며, 이 부대가 증원되어도 전쟁 억제 및 확전 방지에 실패할 경우 FMP에 따라 SBCT가 추가로 증원되는데, FMP로 투입되는 전력은 미국 본토 서부 워싱턴 주 소재 루이스-맥코드(Lewis-McChord) 합동기지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이 인근의 시애틀 기지에서 고속수송선에 적재되어 부산항에 도착하려면 약 15~20일 가량이 소요된다. FMP로도 북한군 저지에 실패할 경우 TPFDD에 따라 주방위군과 예비군이 소집되며, 전차와 장갑차로 무장한 HBCT(Heavy Brigade Combat Team) 부대가 전개되는데, TPFDD에 반영된 미군 증원 전력이 한반도에 완전히 전개하는데는 약 2개월이 소요된다. 즉, 북한 입장에서는 미군 TPFDD 전력이 들어오는 것은 당연히 막아야 하며, FMP 전력이 들어오기 전에 부산을 점령하고 종전을 선언한 뒤 협상에 나서는 것이 유리하다. -김정은 새로운 작전계획에 핵과 미사일 사용 반영 김정은이 새로운 작전계획에 핵과 미사일 사용 계획을 반영하라고 지시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미 본토에서 전략수송기로 나흘 내에 들어오는 FDO 전력은 막기 어렵다 하더라도 알래스카와 하와이, 괌, 일본에 배치된 FMP 전력의 발을 묶어 놓을 수만 있다면 손쉽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 본토 도달이 가능한 핵미사일로 미국을 위협하거나, 재래식 탄두를 탑재한 장거리 미사일을 알래스카와 괌, 일본, 하와이 등에 발사해 미군의 신속한 증원을 막으려 할 것이다. 4단계는 배합전과 남조선 혁명이다. 배합전(配合戰)은 문자 그대로 정규전과 비정규전이 뒤섞인 전쟁 형태이다. 휴전선 일대에서는 북한군을 동원해 대규모 재래식 전쟁을 진행하면서, 대규모 특수부대를 남한 후방에 침투시켜 주요 시설 파괴, 요인 암살, 보급로 차단 등으로 한국군 후방에 제2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제2전선이 형성되면 우리 군은 전방 지역에 증원 병력을 보내기가 어려워지고, 보급이 어려워지면서 전쟁 지속 능력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후방 지역에 고향이 있는 장병들의 동요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특수부대와 종북 세력을 규합한 소요 사태 유발 역시 배합전 전략의 일부다. 이러한 전략은 과거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집어 삼키는데 가장 효과적이었던 전략이었다. 평화와 반외세·민족공조를 부르짖던 과거 북베트남이 제1야당 지도자였던 쭈옹 딘 쥬(Truong Dinh Dzu), 반전·반미 시위에 앞장섰던 짠 후 탄(Tran Huu Thanh) 신부, 월남 정부에 대한 비난 기사를 쓰면서 군사기밀을 북베트남에 빼돌렸던 팜 쑤안 안(Pham Xuan An) 기자 등은 지속적으로 반정부 시위와 소요 사태를 일으켜 남베트남의 전쟁 수행 능력과 의지를 무너뜨리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는데, 종전 이후 이들은 북베트남의 간첩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압도적인 병력 우위와 대량살상무기를 이용해 신속하게 남한의 군사 역량을 소멸시키고, 제2전선 형성을 통해 남한 전역을 혼란으로 몰아넣은 다음 실시되는 마지막 5단계는 종전 선언과 ‘반동분자 색출’이다. 이 과정은 과거 6.25 직후 북한군 점령 지역에서 공산 세력이 붉은 완장을 차고 앞장서서 지역 유지와 부유층, 군과 경찰 등 공무원들에 대한 처형에 나섰던 상황과 유사하게 전개될 것이다. 김정은은 이 모든 과정을 7일 이내에, 이것이 녹록치 않다면 15일 이내에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북한군은 김정은 최고사령관 추대 이후 빠른 속도로 변모해가고 있다. -北, ‘의지’ 뒷받침할 ‘능력’ 확보에 총력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은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인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재래식 군사력에 투자할 돈이 없었다. 그러나 1997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북포용정책에 따라 대북 현물 지원이 급증하면서 10여년 가까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재래식 군사력 증강에 다시 손을 대기 시작했다. 1998년 러시아로부터 BTR-80A 보병전투차량 수십여 대를 구입했고, 1999년에는 카자흐스탄으로부터 개량형 MIG-21 전투기 40여 대를 도입했다. 같은 시기 중국과 러시아, 독일에서 폭풍호 전차에 사용된 디젤엔진과 장갑차, 헬기 등을 수입하는 등 연 평균 1억~3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해외에서 수입했다. 북한군의 재래식 군사력 강화는 김정은 집권 이후 더 빠른 속도로 추진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제3차 핵실험으로 핵무기 소형화에 성공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 핵미사일이라는 수단을 손에 넣음으로써 미국의 개입을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자마자 재래식 군사력 강화에 나섰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3년 7월 전승 6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신형 무기체계들을 대거 공개하면서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증강이 이전에 알려졌던 것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국방부가 최근 발간한 '2014 국방백서'를 보면 최근 북한은 노후 전차를 퇴역시키고 폭풍호와 선군호 등 신형 전차를 대량으로 생산해 전체 전차 보유량을 100여 대 증가시켰으며, 장갑차 역시 신형 장갑차인 BTR-80A를 모방 생산해 200여 대 증가시킨 것이 확인되고 있다. 포병화력 역시 신형 방사포를 대량 배치하면서 그 수가 무려 700문 이상 증가했다. 신형 전차와 장갑차 수량이 대폭 증가했다는 것은 북한이 대규모 포병 화력을 통해 한국군을 조기에 무력화시키고, 기계화부대를 이용해 기동전을 벌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해군력 분야에서도 소형 경비정과 어뢰정 위주의 전력을 탈피해 신형 미사일과 함포를 탑재한 중형 전투함들을 건조하고 있으며, 신형 잠수함과 스텔스·고속 성능이 강화된 침투용 선박을 대량 건조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해상에서 파상 공세를 퍼부어 한국 해군을 개전 초기에 제압하고, 고속 침투용 선박을 이용해 특수부대를 대량으로 침투시키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처럼 김정은 후계자 등극 직후부터 할아버지 김일성 시기부터 기획된 전면 남침 시나리오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작전계획을 구체화시키고, 이 작전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능력을 갖추는데 총력을 기울여 오면서 ‘2015년 통일대전’ 주장을 계속해 왔던 것이다. 이제 김정은이 그토록 외쳐왔던 ‘통일대전 완성의 해’인 2015년에 되었고, 이립(而立)을 갓 넘긴 그의 손에는 핵미사일과 120만 대군이라는 위험한 장난감이 쥐어져 있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中 군사개입 차단” vs “軍 시설 보호 목적”

    북한이 중국 접경 양강도와 자강도 지역에 12군단을 새로 창설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불편해진 북·중 관계를 반영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군 당국은 후방 주요 군사시설 보호와 국경의 탈북자 차단 등 지역 수비를 강화하는 차원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렇지만 일부에서는 북한 급변 사태 시 중국의 군사 개입을 차단하기 위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은 지상군 전력의 70%를 평양~원산 이남 지역에 배치해 언제든지 남한을 기습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특히 자체 개발 주력전차인 천마호, 선군호를 본격적으로 배치하는 등 기갑부대와 기계화부대의 장비 현대화에 진력하고 있다. 후방지역인 평안북도와 자강도, 양강도는 전력 공백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곳으로 간주된다. 특히 자강도는 북한 군수공장이 밀집한 구역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급변 사태가 발생하고 인민해방군이 국경을 넘을 경우 이렇다 할 방비책이 없다. 북·중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급히 군사력을 보강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북한과 인접한 선양군구는 장성택 처형 직후인 지난해 1월 10만여명의 병력을 동원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중국은 북한 급변 사태 시 1주일 내 신속대응부대를 투입하는 시나리오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12군단 창설 목적과 관련, “군사시설을 정비하고 나진·하산 특구를 중심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협력에 대응해 지역 방어를 강화하는 차원으로 보인다”면서 “중국의 군사 개입에 대비하려면 내륙지역인 양강·자강도보다 평양으로의 진입이 용이한 단둥 접경의 평안북도(서해 인근) 지역 병력을 강화하지 않았겠는가”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북한이 기계화보병여단과 산악경보병여단이 포함돼 정규전 능력을 갖춘 정예 부대인 12군단을 단순히 탈북자 감시와 주요 시설 방호 목적으로 창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7일 “북한이 실질적으로 국경질서를 바로잡으면서도 중국에 맞서 자주권을 과시하는 상징적 메시지를 보여 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기획] 김정은의 ‘7일 전쟁’ 시나리오

    [기획] 김정은의 ‘7일 전쟁’ 시나리오

    김정은이 집권 직후 북한군에 한반도 전면전을 상정한 작전계획 수립을 지시했으며, 지난해까지 전쟁 준비를 완료하고 올해를 통일대전의 해로 선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2015년 통일대전 발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는 익명을 요구한 군 소식통과 정부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해 김정은이 지난 2011년 12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된 직후 한반도 전면전 작전계획 수립을 지시했으며, 2012년 8월 25일 원산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이른바 ‘7일 전쟁’으로 전해지는 작전계획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원산에서 열린 회의에는 당 중앙군사위원들은 물론 군단장급 이상 고위 장성들이 대거 참석했으며, 이 회의를 통해 총참모부가 수립한 작전계획을 확정하고 이 작전계획에 맞춰 각 군단이 세부 작전계획을 수립해 훈련을 실시하라는 김정은의 지시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지시했다는 작전계획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北 작전계획의 5단계 시나리오 이번에 정부 당국자와 군 소식통이 전했다고 하는 김정은의 작전 계획 가이드라인은 사실 전통적인 북한군 전쟁 전략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다만 핵과 미사일 사용을 작전계획에 명기하도록 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실제로 이번에 보도된 북한의 새로운 작전계획은 지난 2013년에 북한이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서 공개했던 ‘3일 전쟁 시나리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의 전쟁 전략은 지난 1971년 인민군 창건 23주년 기념 보고대회에서 당시 북한군 총정치국장 한익수 상장이 발표한 전략에 기초하고 있다. 김일성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이 전쟁 전략의 핵심은 선제 기습공격 · 단기속전속결전 · 배합전 등으로 요약되며,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이 다듬어 가고 있는 전쟁 전략 역시 이 전략의 틀 안에서 수립되고 있다. 북한이 수립했다는 새로운 작전계획은 우리 군의 전면전 작전계획인 ‘작전계획 5027’과 마찬가지로 5단계로 나뉘어 전개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1단계는 전쟁 개시를 위한 국지도발 단계다. 선제 기습 전략에 따라 북한은 전방 북방한계선(NLL) 일대나 서북도서 지역에서 아군 함정을 공격하거나 백령도·연평도 등에 포격을 가하고 공기부양정과 항공기 등을 이용해 섬을 점령하는 등의 기습적인 국지 도발을 걸어온다. 우리 군은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나 한민국 국방부장관, 최윤희 합참의장 등이 “적이 도발할 경우 도발 원점은 물론 지휘·지원 세력까지 응징하겠다”라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 만큼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것이며, 이러한 반격은 포병 화력은 물론 전투기와 전투함 등의 전력과 미군 전력까지 동원할 수 있도록 미국과 공동 대응 계획까지 수립되어 있다. 지난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에도 남쪽 해상을 향해 포탄 사격 훈련을 실시했던 우리 군의 합법적이고 정당한 훈련에 대해 자신들의 영해에서 사격 훈련을 하는 등 남측이 먼저 도발했다고 주장하며 연평도에 포탄을 퍼부었던 것처럼 북한은 우리 군의 훈련 상황을 구실로 선제 도발을 감행한 뒤 이에 대해 우리 군이 반격하면 최초 도발 원점 인근의 지원 전력까지 모두 끌어 모아 대대적인 공세를 펴면서 전면전의 포문을 열 것이다. 2단계는 전면전 확전 단계다. 우리 군 수뇌부가 강조해왔던 ‘도발 원점 및 지휘·지원세력까지 응징’을 수행하는 전력은 전방 지역의 자주포 및 다련장로켓, 해군 호위함과 구축함, 공군 전투기 등이다. 우리 군은 국지도발 대비계획에 따라 북한군이 도발할 경우 어느 부대의 어떤 전력이 어떤 무기로 몇 발의 사격을 가해 보복 타격에 나선다는 세부 지침을 수립해 놓고 있다. 북한의 도발이 발생하더라도 최단시간 내에 적 도발 및 지원 세력을 제거하고 현장에서 상황을 종결지음으로써 확전을 막기 위함이다. 그러나 북한이 전면전으로의 확전을 의도하고 도발을 감행했다면, 응징에 나선 아군 전력에 대한 공격에 나섬으로써 ‘도발-응징보복-재보복’ 형태로 무력 충돌 확대를 시도할 것이다. 북한은 이미 이를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다.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우리 군이 차후 도발 시 북한의 갱도 진지를 타격하기 위해 서북도서에 자주포와 다련장로켓을 증강 배치하자 이 자주포와 다련장로켓을 타격할 수 있는 175mm 자주포와 240mm 방사포를 황해남도 일대에 추가 배치한 사례나 우리 공군 전투기의 공습에 대응하기 위해 SA-5 등 지대공 미사일을 전방에 추진 배치한 사례를 예로 들 수 있다. 가령 연평도에 배치된 우리 해병대가 포탄 사격 훈련을 실시할 때 이를 구실 삼아 황해남도 강령군과 옹진군 일대의 해안포가 연평도에 포격을 실시한다. 연평도의 해병대 K-9과 증강 배치된 다련장 로켓, 스파이크 미사일 등이 해안포를 타격하면, 강령군과 벽성군, 옹진군 일대에 증강 배치된 122mm, 240mm 방사포가 우리 해병대 포대에 보복 사격을 가한다. 북한의 장사정포와 방사포를 타격하기 위해 KF-16 전투기와 F-15K 전투기가 나서면 황해북도 사리원시와 봉산군 일대에 배치된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 SA-5와 황해남도 해주시와 옹진군 일대에 배치된 SA-2/3 지대공 미사일은 물론 백령도와 가까운 황주 비행장에 전진 배치된 MIG-23 전투기를 이용해 요격에 나서는 한편, 우리 공군의 전투기 증원을 막기 위해 최근 개발 완료 단계에 와 있는 사거리 200km 이상의 300mm 방사포 KN-09와 와 신형 지대지 탄도 미사일 KN-10을 이용해 우리 공군기지 활주로에 대한 무차별 공격에 나설 것이다. 장사정포와 방사포 등 포병이 일제 사격을 시작했다는 것은 전술 용어로 ‘공격준비사격’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며, 이는 사격 후 전방 4개 전연군단과 제2, 제3 제파를 구성하는 후방 예비 부대가 대대적인 공격 작전에 나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의도대로 국지적 도발이 전면전까지 확대되는 상황이 이것이다. 3단계는 미 증원 전력의 차단이다. 한반도에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미국은 해ㆍ공군 가용 전력을 우선 투입하고, 신속억제방안(FDO : Flexible Deterrence Option)에 따라 SBCT(Stryker Brigade Combat Team)를 한반도에 증원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 이를 전투력증강(FMP : Force Module Package) 단계로 확대해 병력을 증원한다. 이 전력으로도 확전을 막지 못하고 대규모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시차별 부대 전계 제원(TPFDD : Time Phased Forces Deployment Data)에 따라 대규모 지상군과 함정, 항공기를 한반도 전역에 투입한다. FDO로 파견되는 일명 ‘스트라이커 부대’는 3,700여 명의 병력과 330여 대의 스트라이커 장갑차로 구성되며, 수송기를 통해 하와이와 미 본토에서 96시간 이내에 한반도에 전개되며, 이 부대가 증원되어도 전쟁 억제 및 확전 방지에 실패할 경우 FMP에 따라 SBCT가 추가로 증원되는데, FMP로 투입되는 전력은 미국 본토 서부 워싱턴 주 소재 루이스-맥코드(Lewis-McChord) 합동기지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이 인근의 시애틀 기지에서 고속수송선에 적재되어 부산항에 도착하려면 약 15~20일 가량이 소요된다. FMP로도 북한군 저지에 실패할 경우 TPFDD에 따라 주방위군과 예비군이 소집되며, 전차와 장갑차로 무장한 HBCT(Heavy Brigade Combat Team) 부대가 전개되는데, TPFDD에 반영된 미군 증원 전력이 한반도에 완전히 전개하는데는 약 2개월이 소요된다. 즉, 북한 입장에서는 미군 TPFDD 전력이 들어오는 것은 당연히 막아야 하며, FMP 전력이 들어오기 전에 부산을 점령하고 종전을 선언한 뒤 협상에 나서는 것이 유리하다. -김정은 새로운 작전계획에 핵과 미사일 사용 반영 김정은이 새로운 작전계획에 핵과 미사일 사용 계획을 반영하라고 지시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미 본토에서 전략수송기로 나흘 내에 들어오는 FDO 전력은 막기 어렵다 하더라도 알래스카와 하와이, 괌, 일본에 배치된 FMP 전력의 발을 묶어 놓을 수만 있다면 손쉽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 본토 도달이 가능한 핵미사일로 미국을 위협하거나, 재래식 탄두를 탑재한 장거리 미사일을 알래스카와 괌, 일본, 하와이 등에 발사해 미군의 신속한 증원을 막으려 할 것이다. 4단계는 배합전과 남조선 혁명이다. 배합전(配合戰)은 문자 그대로 정규전과 비정규전이 뒤섞인 전쟁 형태이다. 휴전선 일대에서는 북한군을 동원해 대규모 재래식 전쟁을 진행하면서, 대규모 특수부대를 남한 후방에 침투시켜 주요 시설 파괴, 요인 암살, 보급로 차단 등으로 한국군 후방에 제2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제2전선이 형성되면 우리 군은 전방 지역에 증원 병력을 보내기가 어려워지고, 보급이 어려워지면서 전쟁 지속 능력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후방 지역에 고향이 있는 장병들의 동요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특수부대와 종북 세력을 규합한 소요 사태 유발 역시 배합전 전략의 일부다. 이러한 전략은 과거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집어 삼키는데 가장 효과적이었던 전략이었다. 평화와 반외세·민족공조를 부르짖던 과거 북베트남이 제1야당 지도자였던 쭈옹 딘 쥬(Truong Dinh Dzu), 반전·반미 시위에 앞장섰던 짠 후 탄(Tran Huu Thanh) 신부, 월남 정부에 대한 비난 기사를 쓰면서 군사기밀을 북베트남에 빼돌렸던 팜 쑤안 안(Pham Xuan An) 기자 등은 지속적으로 반정부 시위와 소요 사태를 일으켜 남베트남의 전쟁 수행 능력과 의지를 무너뜨리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는데, 종전 이후 이들은 북베트남의 간첩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압도적인 병력 우위와 대량살상무기를 이용해 신속하게 남한의 군사 역량을 소멸시키고, 제2전선 형성을 통해 남한 전역을 혼란으로 몰아넣은 다음 실시되는 마지막 5단계는 종전 선언과 ‘반동분자 색출’이다. 이 과정은 과거 6.25 직후 북한군 점령 지역에서 공산 세력이 붉은 완장을 차고 앞장서서 지역 유지와 부유층, 군과 경찰 등 공무원들에 대한 처형에 나섰던 상황과 유사하게 전개될 것이다. 김정은은 이 모든 과정을 7일 이내에, 이것이 녹록치 않다면 15일 이내에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북한군은 김정은 최고사령관 추대 이후 빠른 속도로 변모해가고 있다. -北, ‘의지’ 뒷받침할 ‘능력’ 확보에 총력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은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인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재래식 군사력에 투자할 돈이 없었다. 그러나 1997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북포용정책에 따라 대북 현물 지원이 급증하면서 10여년 가까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재래식 군사력 증강에 다시 손을 대기 시작했다. 1998년 러시아로부터 BTR-80A 보병전투차량 수십여 대를 구입했고, 1999년에는 카자흐스탄으로부터 개량형 MIG-21 전투기 40여 대를 도입했다. 같은 시기 중국과 러시아, 독일에서 폭풍호 전차에 사용된 디젤엔진과 장갑차, 헬기 등을 수입하는 등 연 평균 1억~3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해외에서 수입했다. 북한군의 재래식 군사력 강화는 김정은 집권 이후 더 빠른 속도로 추진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제3차 핵실험으로 핵무기 소형화에 성공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 핵미사일이라는 수단을 손에 넣음으로써 미국의 개입을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자마자 재래식 군사력 강화에 나섰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3년 7월 전승 6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신형 무기체계들을 대거 공개하면서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증강이 이전에 알려졌던 것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국방부가 최근 발간한 '2014 국방백서'를 보면 최근 북한은 노후 전차를 퇴역시키고 폭풍호와 선군호 등 신형 전차를 대량으로 생산해 전체 전차 보유량을 100여 대 증가시켰으며, 장갑차 역시 신형 장갑차인 BTR-80A를 모방 생산해 200여 대 증가시킨 것이 확인되고 있다. 포병화력 역시 신형 방사포를 대량 배치하면서 그 수가 무려 700문 이상 증가했다. 신형 전차와 장갑차 수량이 대폭 증가했다는 것은 북한이 대규모 포병 화력을 통해 한국군을 조기에 무력화시키고, 기계화부대를 이용해 기동전을 벌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해군력 분야에서도 소형 경비정과 어뢰정 위주의 전력을 탈피해 신형 미사일과 함포를 탑재한 중형 전투함들을 건조하고 있으며, 신형 잠수함과 스텔스·고속 성능이 강화된 침투용 선박을 대량 건조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해상에서 파상 공세를 퍼부어 한국 해군을 개전 초기에 제압하고, 고속 침투용 선박을 이용해 특수부대를 대량으로 침투시키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처럼 김정은 후계자 등극 직후부터 할아버지 김일성 시기부터 기획된 전면 남침 시나리오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작전계획을 구체화시키고, 이 작전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능력을 갖추는데 총력을 기울여 오면서 ‘2015년 통일대전’ 주장을 계속해 왔던 것이다. 이제 김정은이 그토록 외쳐왔던 ‘통일대전 완성의 해’인 2015년에 되었고, 그의 손에는 핵미사일과 120만 대군이라는 위험한 장난감이 쥐어져 있다. 이립(而立)을 갓 넘긴 어린 폭군의 손에 7000만 민족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2014 국방백서] 방사포 700문 늘고 기계화부대 증강

    국방부가 6일 발간한 2014 국방백서에서 북한 정규군 병력을 2012년 국방백서 발간 당시보다 1만여명 늘어난 120만여명으로 평가함에 따라 북한의 재래식 군비 증강에도 관심이 쏠린다. 북한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로 자강도 일대의 군수시설 경비와 북한·중국·러시아 접경지역의 군사력 보강 등을 위해 군단급 부대 12군단을 창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최근 북·중 간의 갈등과 관련해 눈여겨볼 대목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자강도와 양강도 일대의 군수 시설을 경비하고 나진·하산 특구를 중심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협력에 대응해 군 차원에서 국경 수비를 강화하려는 조치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북한군 전체 병력은 육군 102만여명, 해군 6만여명, 공군 12만여명으로 나타났으며 주로 포병과 함정을 중심으로 전력을 증강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구체적으로 전차는 2년 전보다 100여대가 늘어난 4300여대, 장갑차는 300여문 늘어난 2500여문으로 나타났다. 특히 방사포(다연장 로켓)는 5500여문으로 2년전에 비해 700여문이나 늘었다. 이밖에 전투함정 10여척, 지원함정 40여척이 각각 증강된 것으로 국방부는 파악했다. 잠수함 전력은 70여척으로 변화가 없었지만 신형 어뢰개발에 이어 탄도미사일 탑재가 가능한 신형 잠수함을 지속 건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군 사단급 부대는 88개에서 81개로 7개 감축됐고, 기동여단은 72개에서 74개로 2개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예비사단이 줄었고, 산악보병여단과 기계화보병여단이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이 관계자는 “방사포를 포함해 포병전력과 기계화부대가 증강됐고 항공기는 증가하지 않았지만 여러 대가 추락했다”면서 “대침투용인 ‘파도관통형 고속선박’(VSV)을 다수 개발하는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또 김 제1위원장의 군 조직 장악을 위해 한국군의 기무사령부에 해당하는 보위사령부를 국방위 산하에서 총정치국 예하로 이관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임을 배경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던 보위사령부를 황병서가 책임자인 총정치국으로 이관함으로써 김 제1위원장이 군 조직을 장악도록 하고 군의 주민통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토록 한 것으로 분석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北核 소형화 능력 상당 수준… 장거리 미사일 美 본토 위협”

    북한이 사정거리 1만여㎞의 장거리 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으며 핵무기 소형화 능력도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중국·러시아 접경 지역의 군사력을 보강하기 위해 12군단을 창설하는 등 지난 2년간 지상군 전력도 대폭 확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6일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 발간된 ‘2014 국방백서’에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국방정책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돕기 위해 2년마다 국방백서를 발간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은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강행했으며, 첫 핵실험을 실시한 2006년 이후 8년이 지났기 때문에 ‘소형화가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명기했다”면서 “다만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완성됐다고 평가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2006년 처음으로 시험 발사한 장거리 탄도미사일 ‘대포동 2호’는 사거리가 1만㎞에 이르러 알래스카와 미국 서부 지역을 위협할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군 당국은 2년 전 ‘2012 국방백서’에서 대포동 미사일의 사거리를 알래스카를 사정권에 둔 6700㎞ 정도로 평가했었다. 백서는 “북한은 수차례의 폐연료봉 재처리 과정을 통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40여㎏ 보유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혀 플루토늄 양은 수년째 변화가 없다고 분석했다. 다만 북한은 플루토늄을 통한 핵 개발뿐 아니라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백서는 2010·2012년 국방백서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무력 도발과 위협이 지속되는 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표현을 유지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대해서는 ‘1953년 8월 30일 설정된 이래 지켜져 온 남북 간의 실질적 해상 경계선으로, NLL 이남 수역은 대한민국의 관할 수역’이라고 적시했다. 한편 북한 정규군 병력은 2년 전에 비해 공군이 1만여명 늘어난 120만명으로 알려졌다. 정규군단은 12군단이 창설되면서 9개에서 10개로 늘었다. 반면 우리 군 병력은 63만 9000여명에서 63만여명으로 줄어 북한군의 절반 수준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치킨으로 전투기도 살 수 있다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치킨으로 전투기도 살 수 있다

    포클랜드를 두고 영국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아르헨티나가 지난 2일(현지시간) 러시아로부터 12대의 전투폭격기를 임차하기로 합의하면서 현지 언론과 누리꾼들의 화제가 되고 있다. 최신형도 아닌 구식 전투기 12대를 임대하는 것이 현지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르헨티나가 빌려오는 전투기가 ‘러시아판 F-111’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다양한 정밀유도무기를 운용할 수 있어 포클랜드에 배치된 영국군에게 큰 위협이 된다는 것도 있지만, 거래 방식이 특이했기 때문이었다. -전투기 임대료는 ‘쇠고기’와 ‘밀’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아르헨티나는 유럽에서 ‘아르헨티나 드림’을 꿈꾸며 이주할 정도로 부유하고 살기 좋은 나라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만화영화 '엄마 찾아 삼만 리'의 원작인 '아페니니 산맥에서 안데스 산맥까지'라는 아동 단편소설 역시 아르헨티나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어머니를 찾아 떠나는 이탈리아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었을 만큼 20세기 초 아르헨티나는 강대국이자 희망의 나라였다. 1920년대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줄곧 내리막길을 걷긴 했지만, 넓은 영토와 탄탄한 1차 산업이 유지되고 있었던 아르헨티나의 군사력은 ‘썩어도 준치’였다. 1980년 포클랜드 전쟁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과 함께 남미의 양대 강국으로 항공모함과 순양함, 중형 잠수함, 당시 기준으로 최신 전투기를 다수 보유한 군사강국이었다. 그러나 포클랜드 전쟁에서 무려 100여 대의 항공기와 8척의 군함을 상실하면서 군사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전쟁 이후 패전에 의한 정치적 혼란과 경제 위기 등으로 인해 20년 가까이 제대로 된 무기 도입을 하지 못해 현재는 육·해·공군을 막론하고 노후 장비만 보유한 나라로 전락했다. 아르헨티나 주변에는 안보를 위협할만한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노후 전투기나 군함만으로도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는 전투기와 군함이 너무 낡아 부품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신형 무기 도입이 필요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아르헨티나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포클랜드에 영국이 지난 2008년부터 전투기와 구축함을 증강 배치하면서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 도입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신형 전투기 도입 사업을 시작했다. 아르헨티나가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곳은 이스라엘이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스라엘제 크피르(Kfir) 전투기 18대 도입을 추진했고, 지난해 1월 도입이 성사되는 듯 했으나, 협상 타결 직전 영국의 압력으로 협상이 유야무야되면서 전투기 도입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스웨덴과 접촉해 최신형 전투기인 JAS-39E 그리펜(Gripen) NG 전투기 도입을 추진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전투기는 전체 부품의 약 28%가 영국에서 생산되고 있었고, 당연히 영국은 수출 허가를 내주지 않아 그리펜 전투기 도입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영국의 집요한 방해공작을 피하기 위해 아르헨티나가 눈을 돌린 곳은 러시아였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2010년부터 러시아제 무기 도입을 위해 노력해 왔지만, 러시아 입장에서는 돈 없는 고객인 아르헨티나 보다는 돈 있는 국가인 영국과의 관계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는 수송헬기 몇 대 도입하는 것 말고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러시아와 서방 국가들의 사이가 급격히 틀어지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러시아와의 무기 도입 협상도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는 러시아에 중고 전투기와 군함을 임대 또는 판매해 줄 것을 요청했고, 러시아 역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변수는 ‘결제방식’이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지난해 여름 디폴트를 선언했고, 외환보유고는 바닥을 치고 있으며, 대외 부채가 1320억 달러를 넘는 상태이기 때문에 사실상 무기 대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는 상태였다. 돈은 없어도 무기 도입은 절실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가 러시아에 제시한 결제 방식은 ‘바터 무역(Barter trade)' 즉, 물물교환이었다. 아르헨티나는 돈은 없지만 콩과 밀, 쇠고기 등 농축산물은 풍부한 나라이고, 세계적인 농축산물 수출국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는 자신들에게 풍부한 밀과 쇠고기로 전투기 임대료를 내겠다고 러시아에 제안했다. 전투기 임대 계약은 스위스와 체코, 스페인 등의 국가가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종종 썼던 방식인데, 계약 기간이 길지 않다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단시간 내에 전력 증강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돈은 없는데 전력공백 문제가 시급한 아르헨티나에게 농축산물과 전투기 물물교환은 매력적인 결제 방식이었다. 러시아는 세계 3위의 밀 수출국이기 때문에 아르헨티나로부터 밀을 수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으나, 쇠고기는 이야기가 달랐다. 러시아는 과일과 채소류, 육류 등을 매년 400억 달러 이상 수입하는 세계 5위의 농축수산물 수입대국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미국과 캐나다, EU, 호주 등 주요 농축수산물 수출국들이 대러시아 경제제재 조치를 발표하자 이에 격노한 푸틴 대통령이 이들 국가로부터의 농축수산물 수입을 1년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해버리면서 러시아 국내 농축수산물 가격이 급등해 버렸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축수산물의 수입선 다변화를 모색하던 중 돈은 없지만 농축수산물은 풍부해 현물로 대금을 지급하고 무기를 도입하려는 아르헨티나와가 물물거래를 제안해 온 것이었다. 러시아는 입장에서는 도태 장비인 Su-24를 아르헨티나에 빌려 줌으로써 노후 항공기 운용에 필요한 유지비를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임대 대금으로 농축산물을 들여와 국내 식료품 가격 안정도 도모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아르헨티나 역시 강력한 정밀유도무기 운용이 가능한 Su-24 도입을 통해 공군력 강화를 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 위축되고 있는 국내 축산업계에 활력을 불어 넣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태국도 ‘닭’으로 전투기 구매한 적 있어 물물교환을 통해 전투기를 도입한 사례는 아르헨티나 이외에도 태국이 있다. 사실 ‘먹을 것’으로 전투기 대금을 지급한 원조는 핀란드였다. 핀란드는 지난 1992년 64대의 F/A-18 전투기를 구매하면서 약 30억 달러에 달하는 전투기 구매 대금에 상당하는 절충교역을 요구했고, 이 가운데 일부는 순록고기도 있었다. 여담이지만 순록고기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이나 독일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거의 소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팔리지 않았고, 이 때문에 핀란드에 F/A-18 전투기를 판매했던 맥도널 더글러스 공장의 구내식당의 메뉴로 순록고기가 질리도록 올라왔다는 일화도 있다. 그러나 핀란드는 전투기 대금으로 순록고기를 직접 지불했던 것이 아니라 일정 금액의 순록고기의 미국 시장 판매를 요구했던 것이고, 이 물량 일부를 전투기 제작사가 떠안은 것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순록고기로 전투기를 구매했다고 볼 수는 없다. ‘먹을 것’으로 물물교환을 통해 무기를 구매한 대표적 케이스는 태국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에는 지난 2000년대 이후부터 중국 위협론이 대두되면서 군비 증강 열풍이 불고 있는데,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인접한 국가들이 전투기와 호위함, 잠수함 등을 구매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경제가 어렵던 태국은 이러한 무기 대량 구매를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중국의 위협 때문에 군사력 현대화는 절실했고, 우선 노후화된 F-5 전투기를 대체하기 위한 신형 전투기 도입에 착수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태국은 미국의 F-16, 러시아의 Su-30과 MIG-29, 프랑스의 라팔(Rafale) 등을 후보 기종으로 놓고 신형 전투기 구매를 계획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외환위기를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태국은 대당 1억 달러에 가까운 고성능 전투기를 구매할 여력이 없었지만, 당장 전투기는 급했기 때문에 지난 2004년부터 ‘닭 물물교환’을 통해 전투기를 구매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세계 4위의 닭 수출국인 태국은 2004년 여름 아시아를 덮친 조류독감으로 인해 닭 수출길이 막히자 “닭을 시장에 팔 수 없다면 물물교환이라도 해서 시장에 진입해야지 언제까지고 닭을 태국에 썩혀둘 수 없다”는 탁신 총리의 강력한 지시에 따라 물물교환 방식으로 무기 도입을 추진했다. 태국이 가장 먼저 물물교환 의사를 타진한 나라는 러시아였다. 태국정부는 Su-30MK 전투기와 MIG-29를 저울질 하다가 인접국인 미얀마와 말레이시아가 MIG-29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MIG-29는 고려 대상에서 제외하고 Su-30MK를 도입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곧 모스크바 주재 대사관을 통해 “닭 25만 톤을 Su-30MK 전투기 6대와 바꾸자”고 제안했으나, 러시아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러시아는 이미 브라질에서 대량으로 닭을 수입하고 있었고, 조류독감이 유행하는 태국에서 닭을 구입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국은 포기하지 않고 미국에게 매달렸다. 2005년 미국 정부에 냉동 닭 8만 톤을 제공하는 대신 F-16 전투기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2006년 봄에 쿠데타가 일어난 직후 미국이 군사정권에 대한 무기 수출을 거부하면서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러시아와 미국에게 퇴짜를 맞은 태국은 프랑스에 닭 - 전투기 물물교환 의사를 타진했으나 애초에 유럽 최대의 닭 생산국 가운데 하나였던 프랑스가 이를 받아들일 리 만무했고, 태국이 마지막으로 눈을 돌린 곳이 스웨덴이었다. 2006년부터 본격화된 협상에서 태국은 냉동 닭고기와 고무, 쌀 등으로 대금을 결제하고 JAS-39C/D 전투기 6대와 Saab 340 조기경보통제기 1대, 각종 미사일 등을 받아오는데 합의하고 2008년과 2010년에 비슷한 조건으로 총 12대의 전투기를 계약하는데 성공했다. 냉동 닭 1마리에 평균 1kg 안팎인 것을 고려하면, 약 8,000만 마리의 닭이 희생되어 6대의 전투기로 돌아온 것이었다. 이 전투기는 체급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FA-50과 비슷하지만, 전체적인 성능은 최신형 F-16에 버금가는 강력한 수준을 자랑하는 기종이기 때문에 태국의 공군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실제로 지난 2011년부터 본격적인 운용에 들어간 태국공군 역시 이 전투기의 성능에 크게 만족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2013년 말부터 6대 추가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태국은 이번에도 물물교환 방식의 거래를 원하고 있어 스웨덴 정부가 과연 이를 받아들일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전환의 시대, 기로에 선 동북아 정세 전망-해외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하) 에드윈 풀너 美헤리티지재단 설립자

    [전환의 시대, 기로에 선 동북아 정세 전망-해외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하) 에드윈 풀너 美헤리티지재단 설립자

    “새해에는 미국과 한국, 일본, 중국 등 각국 지도자들이 긍정적인 자세로 협력을 강화하길 기대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 설립자이자 전 이사장인 에드윈 풀너(73) 박사는 지난달 27일 워싱턴DC 집무실에서 서울신문과 가진 신년 인터뷰 내내 ‘긍정적으로’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미국 내 최고의 동아시아 전문가로 꼽히는 그는 그러나 답변 중간중간 긴 한숨을 쉬며 숙고를 거듭하는 모습을 보여 올해 동북아 정세가 평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2015년은 한국 광복 70주년이고 한·일 수교 50주년이다. 한·일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인 한국과 일본 간 갈등과 차이를 보고 있으면 슬프고 힘들다. 그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워싱턴과 서울, 도쿄 사이에는 틈이 없이 함께 일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특히 6자회담에서 3국의 협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중국은 북한에 유화적이고 러시아는 다소 이상한 행보를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과 일본 친구들에게 미래를 향해 일하면서 긍정적인 부분을 강조하기를 권한다. 물론 한·일 간 역사적 논쟁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동북아 정세에서 한국과 일본은 공유한 이익이 많고 이는 미국과도 공유되는 만큼 더 긍정적으로 함께 일해야 한다. 절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일 북한이 남한을 공격할 경우 미국의 (개입)능력은 일본 내 주둔부대에 즉각 접근해 미군을 동원하는 것에 달려 있다. 이렇게 우리가 공유할 것이 많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외교·안보적인 차원뿐 아니라 경제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함께 나아가길 바라는 것이다. →미국은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조해 왔고 3국은 최근 정보공유약정도 맺었다. -나는 3국의 국방부·외교부 간 안보협력에 강하게 찬성하는 입장이다. 동북아에서 중국은 미국, 한국, 일본과 기본적으로 다른 이익구조를 갖고 있다. 한·미·일이 이익을 공유할 때 베이징·평양과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3국이 가능한 한 긍정적인 관계를 강화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3국 간 미사일방어(MD) 협력도, 북한이 핵무기든 재래식 무기이든 정교한 공격 능력을 개발하는 상황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억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과거 지미 카터 정부 시절 주한미군 감축 추진으로 한·미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고 그 뒤로 의회 강경파는 “한국이 원하지 않으면 철수하자”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아주 긍정적인 관계에 있고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협력해서 북한의 그 남자(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를 다룰지 생각해야 한다. →6자회담은 공전하고 미국은 대북 관계에서 ‘전략적 인내’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북핵 문제의 해결책은. -전략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에는 미·중 관계가 중요하다. 미국은 경험 많은 맥스 보커스 전 상원의원을 주중 대사로 보낸 만큼 중국이 평양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좀 더 구체적인 요구를 중국 지도부에 전달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가 6자회담을 막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예상보다 6자회담에 관심을 덜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러시아·중동 등 외교정책의 접시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회귀’ 정책은 미국이 앞으로 어디에 중점을 두는 것이 맞는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지지한다. 아시아로의 회귀는, 미국이 아시아에서 군사력을 유지하겠다는 약속이자 동시에 한·미·일 공조를 바탕으로 중국을 견제할 뿐 아니라 3국이 직접 또는 중국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전략이 돼야 할 것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평가와 전망은. -김정은은 고모부인 장성택 등 가족 및 군부 내 권력 경쟁자들을 제거했다. 그는 정치적으로 영리하거나 또는 영리한 측근들의 조언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나는 그를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김정은은, 비유하자면 아프리카 사냥터에서 동물이 궁지에 몰렸을 때 오히려 맹렬하게 반격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상황이 몇 년 전(핵실험 등)보다 더 악화되면 주변국들은 북한이 다른 나라들과 관계 회복에 나서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그런 행동을 수용할 수 없으니 관계를 아예 끊을 것인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남한 정부는 그동안 개성공단·금강산관광 등 중장기 시도를 해왔는데 상당수는 어려움에 처했다. 무엇인가 시도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폭정에 시달리는 북한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북한의 정권 교체 또는 현 정권의 대내외 태도를 바꾸는 방안 등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 →박 대통령의 통일대박론,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박 대통령처럼 기회에 대해서는 낙관적이고 싶다. 동시에 현실적이기를 원한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기회를 위한 시도를 계속하는 것은 좋지만 무엇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현실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남북 간 협력이 가능한 구체적 분야를 찾는 ‘물밑 대화채널’이 가동되기를 희망한다. 김정은은 핵을 갖고 있어서 전 세계가 자기한테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금융제재나 중국을 통한 압박 등 광범위한 레버리지를 갖고 있다. 1965년 내가 워싱턴 싱크탱크에 처음 몸담았을 때 옆 사무실 전문가가 ‘베를린 장벽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제목의 책을 썼는데, 베를린 장벽이 생긴 지 겨우 4년이 지났을 때였다. 이는 많은 면에서 북한을 생각하게 한다. 북한도 영원할 수 없고 억압 정권하에서는 어딘가에 금이 생겨 평화로운 방법으로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현명한 방법들을 찾음과 동시에 동맹국들과 함께 긴밀히 대처해 가길 바란다. →한·미 동맹이 60년을 넘었다. 한·미 동맹에 대한 평가와 제언은. -한국을 꾸준히, 자주 방문해 온 지난 40년간의 경험상 현재 한·미 동맹은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단지 정부 간, 군대 간 긴밀히 일하는 것뿐 아니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따라 양국 국민들의 교류가 왕성해진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특히 미국은 이제 한국을 세계적 수준의 생산국이라고 평가한다. 더 이상 일본의 소니·도요타가 아니라 한국의 삼성·현대차인 것이다. 앞으로도 모든 분야에서 함께 일하고 부정적인 요소보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동북아 평화협력 강화를 위한 제언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예전에 개인적으로 나한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북한에 대한 나의 접근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아주 긴 길 위에 작은 발자국들이니.” 동북아 국가 간에는 서로 다른 시각과 장벽이 존재한다. 이를 함께 극복하고 긍정적인 기회를 찾아가는 것, 작은 발자국들이 모이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하룻밤에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동북아 리더들이 같은 방향의 많은 발자국을 쌓아야 할 것이다. 새해에는 오바마 대통령과 박 대통령, 아베 총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미래를 위해 긍정적인 발걸음을 함께 내딛기를 희망한다. 글 사진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에드윈 풀너 박사는 미국 싱크탱크계의 산증인이자 신보수주의그룹 리더로, 1973년 헤리티지재단을 세운 뒤 1977년부터 2013년 4월까지 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현재 재단 아시아연구센터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등에 자문하는 등 워싱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MBA)을 거쳐 에든버러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 한국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광화장을 받았다. ‘자유의 행진’, ‘미국을 위한 리더십’ 등 8권의 저서가 있다.
  • [전환의 시대, 기로에 선 동북아 정세 전망-해외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상) 지한파 언론인 와카미야 요시부미 日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환의 시대, 기로에 선 동북아 정세 전망-해외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상) 지한파 언론인 와카미야 요시부미 日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인 올해는 한국 광복 70년이자 일본 패전 70년, 중국 승전 70년 등 동북아 3국이 저마다 중대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 해다. 한국과 일본이 국교정상화를 한 지 5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북한 핵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한·미·일 3국이 안보협력 강화에 나서면서 미국 주도의 동맹 체제에 맞서는 중국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 가운데 일본 아베 정권의 우경화 가속화 행보로 인한 한·일, 중·일 간 갈등 증폭 등 올해도 동북아 정세는 심상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중국, 미국 3국의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격랑의 2015년 동북아 기상도를 전망해 본다. 일본의 대표적 지한파 언론인인 와카미야 요시부미(66·전 아사히신문 주필)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는 지난 12월 중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965년 맺은 한일기본조약은 50년간 진화해 왔다”면서 “새롭게 한일기본조약을 되돌아보고 지금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서로 양보해 해결하도록 제안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양국 정상에게 주문했다. 합리적인 시각으로 한·일 간의 화해를 추구하는 글을 써온 와카미야 전 주필은 최근 ‘전후 70년 보수의 아시아관’(작은 사진)이라는 저서에서 일본 현대사를 보수 정치인의 행보와 엮어 통렬히 분석하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연말 총선을 통해 정권 기반을 다졌다. 아베 총리의 향후 외교정책에 대해 유연 노선과 강경 노선의 양론이 있는데. -좀 희망적일지도 모르겠지만 두 가지 관측 중 전자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중국과 일단 정상회담을 가졌고, 위기관리에 대해서도 합의하면서 개선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한·중·일 정상회담을 제안했고 50주년을 맞아 무엇인가 하는 게 좋다는 여론이 있다. 박 대통령이 유연하게 나온다면 아베 총리도 화답할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핵심인데, 한 번에 해결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양측이 접점을 찾는 자세가 좋다고 생각한다. →국교정상화 50주년인 6월 22일 전에 두 정상이 만날 가능성이 있나. -지금 분위기라면 두 정상이 만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만나지 않고 50주년을 맞는 것도 심한 얘기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만나려고 해도 상대가 만나 주지 않는다”고 말해 왔는데,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보다 조금 유리한 입장에 있다. 한·중·일 정상회담이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서울에 아베 총리가 가게 되는데, 거기까지 가서 만나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하다. 지난해 11월 중·일 정상회담을 하기 전 박 대통령이 한·중·일 정상회담을 긴밀히 성사시켰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않아서 유감이다. →국교정상화 이후 50년을 평가한다면. 또 앞으로의 50년을 전망한다면. -1965년 한일기본조약은 어떤 의미로는 타협의 산물로 만들어진 것이다. 무리하게 타협했던 것이 독도, 역사인식 문제 등으로 불거지고 있지만 조약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한국의 경제 발전을 조약이 뒷받침한 것도 틀림없는 얘기이고, 게다가 타협을 그대로 방치한 것도 아니다. 조약의 내용은 50년 동안 진화해 왔다고 생각한다. 가령 일본의 반성이나 사죄가 조약에는 없었지만 무라야마 담화(1995년)나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1998년·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발표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한국과 일본이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이를 위해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합의한 것이 주요 내용)으로 일본의 사죄가 명확해졌다. 또 당시 일본에서는 독재 정권과 조약을 맺어도 되느냐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한국은 민주화 국가가 됐다. 지금까지 부족한 부분을 앞으로 어떻게 할지 냉정히 생각하는 것이 정치나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한 번 더 한일기본조약을 되돌아보고 위안부 문제 등 지금 해결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양보해 해결하고, 앞으로 50년을 새롭게 시작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신(新)김대중·오부치 선언 같은 새로운 파트너십의 제안인가. -가능하다면 좋겠다. 국가 대 국가로 맺은 공식 선언이라는 데 의미가 있지 않나. 일본이 다시 사죄하는 게 아니라 그 공동선언의 정신을 재확인하면서 미래지향적인 박근혜·아베 공동선언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장기적으로는 한·일 관계를 낙관하나. -그렇다. 남북 통일이 어떻게 될지에 따라서도 영향은 있겠지만 그때 일본이 좋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의 전후 70년을 평가하면. -70년간 일본이 한 번도 전쟁에 참가하지 않고 평화적인 경제 발전의 길을 걸어온 것은 평가해 주었으면 한다. 특히 1990년대에는 과거에 대한 사죄를 거듭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 다른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중국이나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확대되고 있고 계속해서 사죄를 요구당한 것에 대한 울분 섞인 반발도 있다. 과거를 모르는 세대가 주류가 돼 속죄 의식보다는 오히려 피해자 의식이 커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은 다시 한번 겸허히 자성을 해야 하지만 주변국에도 관용의 정신을 부탁하고 싶다. 남북 분단, 내전, 그리고 군사 독재로부터의 민주화를 경험해 온 한국에 비해 일본은 전후 평탄한 길을 걸어왔다. 이 때문에 사회 발전은 빨랐지만 에너지를 잃어 노화돼 왔다. 헤이트 스피치(특정 인종·집단에 대한 증오 발언)처럼 유치한 현상은 노화에 의해 갓난아기로 돌아온 일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달의 총선으로 극우 정당이 괴멸한 것처럼 일본 전체가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유아화하거나 아니면 성숙을 되찾아 가거나 현재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동북아 정세가 갈수록 복잡해질 전망이다. 일본의 대(對)중국 정책은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나. 그 안에서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G2라고 불리는 중국이 그 정도의 지위를 갖춘 것을 존중하는 동시에 견제하는 세력이 돼야 한다. 일본이 전후 경제 발전 속에서 겪어온 공해, 버블 등 큰 실패를 중국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중국은 경제력으로는 ‘넘버 2’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정치·경제적으로 아직은 미숙하다. 한국은 일본의 중요한 ‘동지’다. 일본은 중국에 힘으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과도 다툰다면 고립되고 만다. 또 한국과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 한·일이 중국을 견제하면서 한·중·일 연계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일 관계를 전망한다면. -지난달 총선으로 오키나와현 후텐마 미군기지의 헤노코 이전이 어려워진 것 등을 감안하면 미·일 관계도 좋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베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사이가 그리 좋지 않기 때문에 아베 총리가 공화당에 기대를 하고 있지만 공화당이 집권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군사력이 약해지고 있는 미국은 일본에 기대를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중·일이 갈등을 빚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쉽지 않다. 과연 아베 정권이 잘할 수 있을지 약간 걱정이 된다. 글 사진 도쿄 황성기 특파원 marry04@seoul.co.kr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주필은 1948년 도쿄 출신. 1970년 아사히신문 기자가 돼 지방 지국을 거쳐 1975년부터 정치·외교 분야를 취재했다. 2013년 주필로 퇴직했다. 현재 일본 국제교류센터의 시니어펠로인 동시에 게이오대학, 서울대, 동서대의 객원교수, 연구원으로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두 차례 한국 유학 경험이 있으며 일·한포럼의 간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르포 현대의 피차별부락’, ‘잊을 수 없는 국회 논전’, ‘한국과 일본국’, ‘야스쿠니와 고이즈미 총리’, ‘신문기자’ 등이 있다.
  • [신무기] 사거리 1000km... 美 공대지 미사일 ‘재즘 ER’

    [신무기] 사거리 1000km... 美 공대지 미사일 ‘재즘 ER’

    미국의 대표적인 방산 기업인 록히드 마틴은 보도 자료를 통해서 이 회사가 개발 중인 AGM-158 재즘(Joint Air-to-Surface Standoff Missile, 합동 공대지 스탠드오프 미사일)의 사정거리 연장형인 재즘 ER(JASSM-Extended Range)의 완전 양산(full rate production)이 미 공군에 의해 승인되었다고 발표했다. 재즘은 미 공군을 위한 장거리 공격 수단으로 1995년부터 개발되었다. 그러나 개발 중 몇 가지 문제점으로 우여곡절을 겪었기 때문에 2009년에야 본격 양산과 배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 미사일은 1,021kg의 중량에 450kg의 탄두를 탑재한 순항 미사일로 그 사정 거리는 370km에 이른다. 길이는 4.27m에 날개를 펼쳤을 때 폭 2.4m 정도 되는 대형 공대지 미사일로 F-15E, F-16, F/A-18, F/A-18E/F, F-35, B-1B, B-2, B-52 등 미 공군의 다양한 군용기에 탑재할 수 있다. 우리에게 재즘이 친숙한 이유는 우리 공군 역시 이를 도입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군의 차기 “장거리공대지 유도탄 사업”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는 바로 재즘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수출 승인을 해주지 않는 가운데 독일과 스웨덴의 합작 기업인 타우러스 시스템즈(TAURUS Systems GmbH)가 타우러스 미사일(TAURUS KEPD 350)을 유리한 조건에 판매하기로 해 결국 우리 공군의 장거리 공대지 유도탄 사업의 승자는 타우러스가 되었다. 타우러스는 1400kg급으로 재즘보다 더 대형이며 사정거리도 500km에 달한다. 재즘은 타우러스보다 사정거리가 짧긴 하지만 항공기에서 발사하는 공대지 미사일이므로 370km라는 사정거리가 결코 짧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 공군은 이보다 더 사정거리가 먼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을 원하고 있었다. 미 공군의 요구는 최소한 575마일(925km) 밖에서 발사해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세미 스텔스 미사일로 매우 작은 목표도 아주 정밀하게 타격할 수 있는 무기였다. 이는 테러와의 전쟁은 물론 다른 국가에 대한 미국의 군사력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록히드 마틴은 2002년부터 재즘 ER(AGM-158B)의 개발을 진행했다. 재즘 ER은 기존의 재즘과 하드웨어의 70%를 공유하고 소프트웨어의 95%를 공유하면서 사정거리를 두 배 이상 증가시키는 상당히 어려운 목표를 달성해야 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신형 엔진이다. 윌리엄스 인터네셔널의 F107-WR-105 터보팬 엔진과 몇 가지 개선 방법을 통해 재즘 ER은 애초 요구보다 더 먼 620마일(약 1000km)의 사정거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신 가격은 재즘보다 더 비싸졌다. 재즘 ER은 초도 저율 생산(low-rate initial production (LRIP))을 통해 2013년 100기가량 양산되었으며 2014년 4월부터 B-1B 폭격기에 탑재되어 실전 배치에 들어갔다. 초기 운용 테스트 및 평가(U.S. Air Force Initial Operational Test and Evaluation (IOT&E))기간 동안 재즘 ER은 21회의 테스트에서 20회의 성공 확률을 보여 미 공군의 신뢰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으며 앞으로 B-52, F-15E, F-16에도 통합될 것이다. 록히드 마틴의 보도 자료에 의하면 재즘 ER이 완전 양산 체제에 들어가는 것은 2017년 정도라고 한다. 연간 생산량은 360기 정도이다. 미 공군이 구매를 계획한 수량은 재즘과 재즘 ER을 합쳐 4900기 가량인데 향후 안보 상황과 전쟁 수행 등에 의해서 추가 구매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재즘 ER의 존재로 인해서 미 공군은 제주도 남쪽에서도 미사일을 발사해 평양까지 공격할 수 있다. 물론 가능하다는 것이지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유사시 한반도에서는 재즘만으로도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한 상태에서 정밀 타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가까운 위치에 공군 기지를 확보하기 힘든 분쟁국가에서는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수도 있다. 재즘 ER은 전 세계 모든 지역을 언제든지 정밀 타격하려는 미 공군에게 매우 든든한 존재지만 미국의 반대하는 국가와 단체에게는 매우 성가신 존재가 될 것이다. 한국의 경우 이미 북한을 억제하기 위해서 충분한 사정거리를 지닌 타우러스 미사일을 도입한 상태로 한동안 추가 장거리 공대지 유도탄을 도입할 가능성은 떨어진다. 하지만 급변하는 미래 안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 언젠가 더 장거리 타격이 가능한 미사일 도입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오늘 퇴역 ‘국산1호 전투함’의 파란만장 33년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오늘 퇴역 ‘국산1호 전투함’의 파란만장 33년

    30일 오후, 경남 창원의 진해해군기지에서는 지난 30여 년간 해군의 주력 전투함으로 활약해 왔던 국산 전투함들의 퇴역식이 열린다. 퇴역하는 함정은 남해를 담당하는 제3함대 소속 호위함인 울산함(FF-951), 동해를 담당하는 제1함대 소속 초계함인 경주함(PCC-758)과 목포함(PCC-759)을 비롯해 북방한계선 최전선에서 임무를 수행했던 참수리(PKM)급 고속정 8척 등 무려 11척에 달한다. 이날 퇴역한 함정 가운데 울산함은 함의 자매도시이기도 한 울산광역시에 대여되어 안보 공원으로 활용되는 방안이 추진 중이다. 최초의 국산 전투함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전투함을 함명을 따온 곳이자 ‘대한민국 산업화 1번지’이기도 한 울산광역시에 전시하는 것은 사료(史料)로써 활용 가치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한민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전투함으로써 지난 30여 년간 울산함의 위상은 대단했지만, 탄생부터 퇴역까지 울산함이 겪어온 시간들은 결코 순탄하지 못했었다. ▲구축함이 뭡니까?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독려와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불도저와 같은 추진력이 허허벌판이었던 울산 미포만에 국내 최초의 대형 조선소를 탄생시킨 지 불과 1년이 채 되지 않았던 시기에 박 대통령이 정 회장을 청와대로 급히 불러들였다. 당시 박 대통령은 ‘자주국방’의 기치 아래 군사력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는데, 육군은 M-48A5 전차가, 공군에는 F-4E 전투기 등 당시 기준으로도 비교적 우수한 무기체계들이 도입되고 있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해군에는 제대로 된 군함들이 도입되지 못하고 있었다. 미군은 일본의 해상자위대에 많은 투자를 하면서 한국의 해군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우리 해군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구식 구축함이나 퇴역한 미사일 고속정 등의 군함만 공여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주영 회장을 청와대로 부른 박정희 대통령은 정 회장에게 “우리 손으로 구축함을 만들 수 있겠나?”라고 물었고 정 회장은 자신 있게 “예!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자신 있게 대답하고 나온 정 회장은 대통령 집무실을 나와 비서관에게 “구축함이 뭡니까?”라고 물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유일한 조선소 사주(社主)가 구축함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당시 상황은 열악했다. 박 대통령의 지시로 해군에 한국형 전투함 건조를 위한 사업단이 꾸려지고, 당시 사업단은 1974년 발생했던 제4차 중동전의 교훈에 따라 함대함 미사일로 무장한 2,000톤급 전투함 건조를 목표로 설정하고 실제 설계와 건조를 맡을 현대중공업과 협의에 나섰다. 하지만 사업단이나 현대중공업에는 그 누구도 이러한 전투함 건조는 고사하고 개념 정립과 설계를 할 수 있는 인력이 전혀 없었다. 사업단은 미국의 GIB & COX나 영국의 VOSPER 등 유명한 설계용역회사를 찾아가 2,000톤급 전투함 설계 용역을 의뢰했다. 그러나 이 업체들은 설계 견적으로 860만~960만 달러(한화 약 94억~105억원)라는 엄청난 가격을 제시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600달러 수준이었고, 1975년 방산수출액 전체를 합친 액수의 20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이들 업체와는 계약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다른 업체를 모색하던 중 미국의 퇴역군인들이 설립한 JJMA(Jhon. J. Mcmullen. Associated)와 선이 닿았지만, 이 업체 역시 436만 달러의 설계비를 요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현대중공업이 설계를 맡고 JJMA가 자문을 해주는 방식으로 사업 방식이 결정됐다. ▲현대판 포함(砲艦)의 탄생 박정희 대통령이 국산 구축함 건조를 지시한 계기 자체가 1974년 제4차 중동전에서 있었던 ‘에일러트 쇼크’였던 만큼 당시 세계 각국이 건조하고 있던 신형 전투함들은 새로운 위협으로 급부상한 함대함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전투함의 주력 무장은 함포에서 미사일로 옮겨 가고 있었고, 이러한 미사일을 막기 위한 함대공 미사일 탑재가 일반화되기 시작했으며, 잠수함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함미에 헬기 갑판과 격납고를 설치하고 대잠수함 헬기를 운용하는 국가도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사업단은 이러한 전투함을 요구할 수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적 여건에 함대공 미사일과 대잠헬기는 너무도 비싼 무기체계였고, 당시 북한의 해상 위협은 대함 미사일이 아니라 간첩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해군은 2,200톤급의 선체에 35노트 이상을 낼 수 있는 속도 성능과 최대한 많은 함포를 탑재할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완성된 설계 안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무장 배치와 설계에 대해서만 무려 9번의 회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이 특이한 형상의 설계대로 건조가 결정되었다. 현대적인 수상 타격전을 위해 함대함 미사일인 하푼(Harpoon) 8발이 탑재되고, 잠수함에 대응하기 위한 어뢰와 폭뢰가 실린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든 무장은 함포였다. 76mm 속사포 2문이 함수와 함미에 각각 1문 탑재되었으며, 여기에 30mm 기관포가 무려 4문이 장착되는 등 거의 포함(砲艦)에 가까운 수준의 배가 탄생했다. 1978년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건조가 시작된 울산함은 시작부터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건조 과정에서 해군 사업단과 현대중공업 현장 관계자들이 수시로 충돌했고, 건조가 끝나고 진수시켜놓고 보니 선체 균형이 맞지 않아 함수 선체 바닥에 시멘트를 부어 무게 균형을 맞추는 등 웃지 못 할 촌극도 벌어졌다. ▲1981년 취역 '작은 몸체'로 5대양 누벼 각고의 노력 끝에 1981년 1월 1일 취역한 울산함은 최초의 국산 전투함이었기 때문에 취역 초기부터 다양한 데이터를 뽑아내는데 활용되었고, 여기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설계 개선 작업을 거쳐 1984년부터는 8척의 자매함이 순차적으로 건조되었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축소형인 동해급 / 포항급 초계함 28척이 건조되었다. 울산급은 한국형 구축함 사업(KDX-I)을 통해 2000년에 광개토대왕급이 취역하기 전까지 우리 해군에서 가장 강력한 전투함으로 활약했다. 해군에서 가장 강력한 전투함이다보니 가장 많은 작전에 투입되었고, 그만큼 가장 많이 혹사당했다. 3~4m 이상의 높은 파도가 몰아치면 고속정과 초계함은 작전은커녕 안전 문제가 심각해지기 때문에 항구로 대비하는데 반해, 울산급 호위함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장 큰 전투함이라는 이유로 대피하지 않고 그 높은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경계 작전을 수행해야 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해군이 림팩(RIMPAC) 훈련에 참가하면서부터는 이 작은 배를 가지고 태평양의 거친 파도를 넘어 하와이까지 왕복을 거듭해야 했고, 해군사관학교 4학년 생도들의 해외 순항 훈련에도 동원되어 5대양 6대주를 누벼야 했다. 비록 2,200톤에 불과한 작은 배였고, 혹독한 환경에서 임무를 수행했지만, 울산급은 해외에 있는 교민들에게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알리는 사자(使者)이기도 했다. 세계 각국의 항구에 태극기를 게양한 울산급 호위함이 입항할 때 교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고, 망망대해에서 항해 중 마주친 원양어선들은 호위함으로 다가와 자신들이 잡은 생선들을 선물하며 승조원들을 격려했기도 했다. 그만큼 대양으로 나갈 수 있는 전투함으로서 울산급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해군에게도, 대한민국에게도, 해외에 있는 교민들에게도 대단히 큰 것이었다. ▲각국 항구에 입항할 때 교민들 태극기 흔들며 눈물 그러나 기술과 자본이 부족한 상태에서 처음으로 건조한 실험적 성격의 전투함이었던 울산급은 10여년간 혹사를 당하면서 점차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상부 선체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당초 해군은 울산급의 함미 함포를 떼어내고 선체를 개조해 헬기 갑판을 설치하고, 함대공 미사일을 장착하는 등의 개량을 추진해 왔지만, 선체 곳곳에서 균열이 발생하는 등 군함의 상태가 예상보다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자 개량 사업을 포기하고 차기 호위함 건조 사업을 진행했다. 이른바 ‘울산-I' 사업이 그것이다. 해군은 울산급 9척과 포항급 24척 등 32척의 호위함과 초계함을 20여 척 이상의 차기 호위함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인천급으로 명명된 차기 호위함은 만재배수량 3,200톤급의 초기형(Batch-I) 6척, 만재배수량 3,500톤급 이상의 중기형(Batch-II) 8척, 만재배수량 3,800톤급 이상의 후기형(Batch-III) 8척 이상이 건조될 예정인데, 배가 커진 만큼 이 배는 향후 해군의 주력 전투함으로 운용되면서 해외 순항 훈련이나 소말리아 대해적 작전 등 다양한 임무에 투입될 예정이다. 그러나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차기 호위함 20여 척이 모두 전력화되는 것은 오는 2020년대 중반 이후가 될 것이어서 나머지 8척의 울산급 호위함이 모두 ‘안식’을 얻기까지는 앞으로 10여년 가량 더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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